[여호수아 강해(05)] 기생라합은 민족의 배신자인가 목숨걸고 자신과 가족을 살려낸 구원자인가?(수2:8~24)_2025-08-15(금)

by 갈렙 posted Aug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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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cZz5EpN56wQ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여호수아 강해(05)] 기생라합은 민족의 배신자인가 목숨걸고 자신과 가족을 살려낸 구원자인가?(수2:8~24)_2025-08-15(금)

https://youtu.be/cZz5EpN56wQ

 

1. 들어가며 

  인생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지와 같은 사소한 결정부터, 인생의 방향을 좌우하는 중대한 선택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기로에 놓인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돌아온다. 신앙의 여정 또한 마찬가지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가치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요구받는다. 여리고 성이 무너지기 직전,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한 여인이 그곳에 있었다. 성경은 그녀를 '기생 라합'이라 기록한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그녀는 이방인이요, 여관없을 하는 여인이었으며, 자기 민족을 배신한 자였다. 그러나 성경은 놀랍게도 그녀를 믿음의 영웅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는 영광스러운 인물로 평가한다. 어떻게 이러한 역설적인 평가가 가능할까?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여호수아서 2장에 기록된 기생 라합의 이야기를 통해, 단순한 흑백논리를 넘어 생명을 살리는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탐구하고자 한다. 라합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과 그녀의 내면적 고뇌,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녀가 내렸던 위대한 선택을 재조명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어떻게 믿음으로 의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는지 그 지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2. 기생 라합, 그녀는 단지 창녀에 불과한 여성이었는가?
  우리는 '기생 라합'이라는 호칭 때문에 그녀를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기 쉽다. 그러나 성경 본문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녀가 결코 단순한 창녀가 아니었음을 시사하는 여러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오히려 그녀는 창녀가 아니라 여관집을 운영하는 여인으로서, 뛰어난 정보력과 판단력을 갖춘, 영향력 있는 현명한 여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첫째, 성경은 정탐꾼들이 그녀의 집에 '유숙했다'고 기록한다(수 2:1). 이는 그녀의 집이 단순한 사창가가 아니라, 외부인들이 머물 수 있는 숙소, 즉 그 집이 '여관'의 기능을 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그녀의 집이 성벽에 놓여 있었다는 것도 이를 증언해준다(수2:15)

  둘째, 그녀는 주변에 돌아가는 세계정세를 다 꿰고 있었다고 증언한다(수2:10). 그녀는 여관집을 운영하면서 단지 숙박업을 통해 돈만 버는 사람이 나이었다. 그녀는 가나안 땅의 첫관문으로서 외부에서 오는 손님들 곧 대상들을 맞이하면서 고대 근동 지방의 정보를 다 꿰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 여관집은 사실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정보의 중심지였다. 여관집 주인으로서 라합은 국내외 정세에 대해 누구보다 해박한 지식과 정보를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그녀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사건이나 요단 동편의 아모리 두 왕을 전멸시킨 사건과 같이, 수십 년 전의 일까지 상세히 알고 있었다. 이는 그녀가 단순한 소문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당대의 정보를 주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갖춘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셋째, 여리고 왕이 보낸 군사들이 라합의 말을 신뢰하고 그녀가 알려준 방향으로 정탐꾼들을 추격했다는 점이다(수2:3~7). 만약 그녀가 사회적으로 신뢰받지 못하는 천한 신분의 여인이었다면, 국가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사안에서 왕의 군사들이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라합이 평소 지역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신망과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방증한다.

  넷째, 그녀의 집 옥상에 삼대(세마포의 원료)가 널려 있었다(수2:6)는 기록은 그녀가 베를 짜는 등 일상적인 생산 활동을 영위하는 생활인이었음을 보여준다.

  다섯째, 이와 더불어 위기의 순간에 그녀의 부모와 형제, 온 가족이 그녀의 말을 믿고 따랐다(수2:13~14, 18, 6:24)는 사실은, 그녀가 가정 내에서도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신뢰를 인정받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정황들을 종합해 볼 때, 라합은 혹시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좀 자랑할 것 없는 직업을 가졌을지는지 모르나, 실제로는 시대를 읽는 통찰력과 정보력, 그리고 가족을 아우르는 리더십을 갖춘 비범한 여인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그녀의 내면의 중심을 보시고, 위대한 구원 역사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다.

 

3. 거짓말을 할 것인가 생명을 살릴 것인가? - 믿음의 딜레마
  라합의 이야기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그녀가 여리고 왕의 군사들에게 정탐꾼들의 행방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분명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명하는데(출20:16), 어떻게 거짓말을 한 라합의 행위가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있는가?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이름 '라합(Rahab)'의 의미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라합'은 '넓어지다', '커지다', '확장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라하브(rahab)'에서 유래했다. 이는 이름 그대로, 우리가 겪는 문제를 좁은 시야가 아닌 '넓은 시야'로 바라보아야 함을 암시한다. 라합이 직면했던 상황은 단순히 '거짓말은 악하다'는 단편적인 율법의 잣대로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민족에 대한 의리'와 '하나님의 사람들의 생명'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라합의 선택은 더 큰 가치, 즉 '생명을 살리는 것'을 위한 결단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거짓말은 사리사욕을 채우거나 남을 해하기 위한 악의적인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호하고, 궁극적으로 자신과 온 가족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사랑에 기초한 '지혜로운 방편'이었다. 예수께서도 안식일에 사람이나 소나가 우물(구덩이)에 빠지면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하는 안식일 규정이 있어도 그 규정을 어기고 사람을 구해내듯이(눅14:5, 마12:11~12), 안식일이라도 선을 행하는 것과 사람을 살리는 것은 허용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막3:4, 눅6:9). 이는 공산군이 들이닥쳐 자기의 아버지가 있는 위치를 대라고 말했을 때에, 그 위치를 알고 있어서 자신은 모른다고 말하는 자식의 경우처럼, 자식의 거짓말의 죄를 무조건 십계명을 어긴 죄라고 정죄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신약성경은 라합의 이러한 선택을 명백히 지지한다. 히브리서 11장 31절은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기록하며 그녀의 행위를 '믿음'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야고보서 2장 25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 말하며, 그녀의 행위가 곧 믿음의 증거임을 선포한다. 이는 진정한 믿음이란 관념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위기 상황 속에서 생명을 살리는 구체적인 '행함'으로 나타나야 함을 강력하게 증거하는 것이다.

  

4. 그녀의 위대한 선택은 그녀와 그녀의 가족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그때 라합은 이미 여리고 성의 운명을 직감하고 있었다. 애굽의 신들을 무찌르고 홍해를 가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요단 동편의 강력한 왕들을 진멸하신 그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견고한 여리고 성벽도 한 줌의 흙더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녀는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영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깨달았다. 그때 그녀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멸망이 예정된 여리고 왕과 우상들을 끝까지 섬길 것인가, 다른 하나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의 운명을 의탁할 것인가 하는 거이었다. 이때 그녀는 주저 없이 후자를 선택한다. 이는  단순한 생존을 위한 기회주의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수 2:11)는 그녀의 신앙고백은, 이미 그녀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향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그녀는 눈에 보이는 세상의 권력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선택한 것이다. 

  이 위대한 선택의 결과, 라합은 자신뿐만 아니라 그녀의 말을 믿고 순종한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는 놀라운 축복의 통로가 되었다. 붉은 줄은 정탐꾼들과의 약속의 징표를 넘어, 유월절 어린 양의 피처럼, 죽음의 사자가 넘어가는 구원의 상징이 된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이방 여인이었던 라합에게 상상할 수 없는 영광을 허락하셨다. 그녀는 유다 지파의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았고, 다윗 왕의 고조(4대) 할머니가 되었으며, 마침내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그 이름을 올리는 영예를 얻었다(마1:5). 이는 혈통이나 신분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생명을 살리는 행함만이 영원한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라합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것은 자신의 영혼은 소중하다는 것이며, 한 사람의 위대한 결단이 가족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내 가정에 아직 불신자가 있는가? 그렇다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와 네 가족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는 말씀을 믿고 기도하라. 어떤 상황이 주어저도 절대 낙심하지 말라. 왜냐하면 한 사람의 굳건한 믿음의 선택이 자기와 가자기의 온 가족을 구원하는 역사의 시작이 되었다는 것을 기생 라합이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5. 나오며
  기생 라합의 이야기는 낡은 흑백사진처럼 박제된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생생하게 말을 건네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세상은 우리를 끊임없이 민족, 이념, 외모, 신분과 같은 좁은 잣대로 판단하고 정죄하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며,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우리의 믿음의 결단을 찾고 계신다. 라합 그녀처럼, 우리 역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눈앞의 이익이나 세상의 평가를 따르기보다, 더 넓은 시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생명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한 사람의 믿음의 선택이 한 가정을 살리고, 한 민족의 역사를 바꾸며, 마침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기록되는 영광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라합이 창문에 매달았던 붉은 줄처럼, 우리의 삶이 절망 속에 있는 이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전하는 믿음의 증표가 되기를 소망한다.

 

 

2025년 08월 15일(금)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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