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강해(08)]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는데 왜 언약궤가 계속해서 등장하는가?(수4:1~24)_2025-08-20(수)

by 갈렙 posted Aug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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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여호수아 강해(08)]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는데 왜 언약궤가 계속해서 등장하는가?(수4:1~2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gfuLO-vrw84
 

 

1. 들어가며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 앞에는 거대한 장벽, 요단강이 흐르고 있었다. 인간의 힘과 지혜로는 20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건널 수 없는 강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정복의 비결을 명확히 보여주셨다. 그것은 세상의 전략이나 인간의 능력이 아니었다. 바로 ‘하나님의 언약궤’를 따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는 기적의 현장을 생생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유독 ‘언약궤’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그리고 다양한 이름으로 등장한다. 왜 성경은 이토록 언약궤를 강조하는가? 언약궤가 무엇이기에 가나안 정복의 유일한 비결이 되는가? 기본적으로 요단강을 가른 기적의 중심에는 언제나 언약궤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언약궤는 단순한 나무 상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며, 말씀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약궤를 따라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세상이라는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지침이 된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이 말씀을 통해 언약궤에 담긴 깊은 영적 의미를 깨닫고, 우리의 삶을 승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어떻게 체험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2.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약궤는 어떤 의미였으며 어떻게 불렸는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약궤는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은 사실 금으로 입혀놓은 나무상자(궤짝)에 불과한 것이었다(출25:10, 37:1~2). 왜냐하면 광야에서 자라고 있는 조각목(아카시아) 나무를 가져다가 네모난 상자를 만든 후에 그것에 금으로 입혀서 틀을 만들고, 뚜껑을 씌었는데, 뚜껑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금을 쳐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뚜껑에는 두 명의 그룹천사의 모양을 쳐서 만든 것이었다(출25:17~21a). 그런데 이러한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인 성막의 한 중심부 곧 지성소에 안치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속죄소 위에서 만나시겠다고 말씀하셨다(출25:22). 그러므로 언약궤는 구름기둥과 불기둥과 함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신다는 것에 대한 가장 강력한 산 증거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만남의 장소를 만들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언약궤 위 속죄소였기 때문이다(출25:22). 그러므로 언약궤가 있으면 하나님이 거기에 언제나 함께 하고 있는 것이었다. 또한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맺은 약속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언제나 구원의 하나님이 되어주심을 알려주는 귀한 표징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과 영원히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언약궤를 통해 늘 확인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함께 하셔서 그들 자신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가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나무궤짝을 '언약궤(베리트 아론)'라고 불렀는가? 그것은 이 언약궤 안에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이 적힌 율법의 두 돌판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수 3:6, 8, 14, 4:7, 9). 그런데 이러한 언약궤는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렸다. 첫째로, 이 언약궤는 여호와께서 만들라고 하셨을 뿐만 아니라 언약궤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기에, '여호와의 언약궤'라고 불렸다(수 3:3, 17, 4:7, 18). 언약궤의 주인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기에 비록 언약궤를 만든 이는 이스라엘이지만, 그 소유권과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도록 하기 위해 '여호와의 언약궤'라고 불리게 된 이다.그리고 둘째로, '여호와의 궤'라고도 불렸다(수 4:5). 그리고 셋째로, 이것은 그냥 '궤(아론)'라고도 불렸다. 왜냐하면 언약궤는 나무로 만든 상자(궤짝, 관, 널)였기 따문이다. 또한 넷째로 이것은 '주 여호와의 궤'라고 불렸다(수 3:13). 궤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만군의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이 궤는 '온 땅의 주의 언약궤'라고도 불렸다(수 34:7).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그 분은 온 땅을 통치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이시기 때문이다. 여섯째로, 이 언약궤는 '법궤'라고고 불렸다(레16:2). 왜냐하면 이 궤 속에 율법의 말씀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언약궤는 '증거궤'라고도 불렸다(수 4:6). 왜냐하면 이 궤 속에 하나님께서 당신이 누군지를 가르쳐주고 또한 명령하셨던 증거의 말씀인 십계명의 두 돌판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약궤'에 대한 명칭으로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표현은 무엇인가? 그것은 맨 마지막으로 사용된 '증거궤'라는 명칭이다. 이 단어는 언약궤에 대한 최초의 명칭(출25:22)이면서 동시에 구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총22회 사용됨, 출 26:33, 27:21, 레16:13, 민3:31, 수4:16 등등).

 

3.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널 때에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앞 세운 첫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려고 할 때에, 가장 먼저 앞서 요단강으로 나아간 것은 이스라엘의 군대가 아니라 제사장들이 멘 언약궤였다(수 3:6). 이때 하나님께서는 언약궤와 백성 사이에 이천 규빗, 약 1킬로미터의 거리를 두어, 이스라엘 백성더러 그것을 지켜보라고 하셨다(수 3:3~4). 그래서 언약궤가 가는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지켜보라고 하셨다. 

수 3:3-4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고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군대보다 먼저 언약궤를 앞세운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앞서 가셔서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주시므로 길을 열어주시겠다는 뜻이었다. 이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먼저 가셔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도록 앞서가서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주시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로서 가장 먼저 요단강을 건너야 했다. 그러나 당시에 요단강 위에 놓여진 다리는 200만명이 되는 이스라엘 백성을 안전하게 건너게 하는 데에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법궤를 멘 제사장들을 앞세워 요단강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는데 필요한 장애물을 하나님께서 제거해주시겠다는 뜻이었다. 오직 이스라엘이 걸어가야 할 길을 앞서서 걸어가시는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장 서서 이끄시는 언약궤를 바라보고 따라갈 때 가장 안전하게 요단강을 건너갈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인생길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 우리는 늘 불안하고 두렵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며 모든 장애물을 치워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따라가야 한다.

 

4.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널 때에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앞 세운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앞세운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어떻게 흐르는 요단강 물을 멈추게 하였는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었다. 그렇다면 흐르는 요단강 물은 과연 어떻게 멈추게 되었는가? 그것은 바로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범람하는 요단강 물에 자기들의 발을 내디딜 때였다(수 3:15-16). 이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도 기적으로 역사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 3:15-16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그런데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멘 제사장로 하여금 흐르는 물 속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신 것은 사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명령이었다. 유속이 거세고 수심이 1~3m나 되는 흐르는 요단강 물에 발을 담그는 것은 목숨을 건 위험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심 없이 순종했다. 그들이 믿음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 위에서부터 흐르던 물이 멈춰 서되, 그곳으로부터 위쪽으로 약 25km 떨어진 아담 성읍 변두리에 벽을 이루고 멈춰섰기 때문이다(수 3:16).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영적 원리를 가르쳐준다. 하나님의 기적은 모든 상황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우리의 믿음의 순종을 통해 기적이 시작되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다 준비해 놓으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그때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할 것인가 하는 것을 결정해야 한다. 순종할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인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라도 믿음의 발걸음을 내디딜 때, 비로소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과 같은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순종이 기적을 낳는 것이다. 고로 오늘날 우리에게 기적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순종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5.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널 때에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앞 세운 세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널 때에 왜 하나님은 언약궤를 먼저 앞세웠고 또한 기적의 현장에 계속해서 그것이 머물게 하였는가?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하나님을 항상 중심에 두라는 의미이다. 언제 어디서나 언약궤를 떠나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은 항상 언약궤를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는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의 중심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보 라. 그곳에는 언약궤가 있었다. 언약궤가 가장 먼저 요단강물 안으로 들어갔고, 모든 백성이 강을 건널 때까지 강 중앙에 굳건히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백성이 요단강을 다 건넌 후에야 언약궤는 강으로부터 밖으로 나왔다. 이스라엘의 안전과 보호를 언약궤가 맡고 있었던 것이다. 

수 3: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이 모습은 오늘도 우리 삶의 중심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그것은 그곳에 언약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 삶이 무엇을 중심으로 움직이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과연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이 중심이 되고 있는가? 그럿다. 우리의 삶의 시작에도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과정에도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마침에도 역시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앞세우고, 그분의 말씀을 내 삶의 중심에 둘 때, 그분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심으로, 우리가 세상의 그 어떤 풍파에도 끄덕하지 않고 견고히 설 수가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여호수아와 제사장들을 보라.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언약궤, 곧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만을 드러내었다. 요단강을 가른 엄청난 기적 앞에서 그들은 누구도 자신의 공로나 리더십을 내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언약궤만이 백성들 앞에 드러나고 높임 받도록 하였다. 이것이 참된 영적 지도자의 모습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 역시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는 유혹을 정말로 경계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고 그분의 영광만을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도 역시 그 지도자를 통하여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 것이다.

 

6. 나오며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비결은 최신 무기나 뛰어난 전략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따른 것이었다. 언약궤를 앞세워 길을 열고, 언약궤 앞에서 순종하여 기적을 체험하며, 언약궤를 삶의 중심에 둠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기적적으로 요단강을 건너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언약궤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시며, 그분이 말씀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이다. 우리가 세상이라는 요단강을 건너 영원한 가나안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우리도 이러한 지침을 따라가야 한다. 먼저는 내 경험과 지혜를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앞세워야 한다. 그리고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그분의 말씀을 믿고 순종의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뎌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말씀을 중심에 두고, 그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요단강을 가르시고,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을 베푸시며,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온 세상에 증거하실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언약궤 되시는 주님만을 높이고 따름으로, 매일의 삶에서 가나안을 정복하는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모든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2025년 08월 20일(수)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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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약]
본 설교는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널 때 중심 역할을 한 ‘언약궤’의 의미를 통해 오늘날 성도의 신앙 원리를 설명한다. 언약궤를 앞세운 것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것이며(선행), 제사장들의 순종은 기적의 통로가 되었고(순종), 모든 과정의 중심에 언약궤가 있었던 것은 말씀 중심의 삶을 상징한다(중심). 언약궤의 다양한 이름은 곧 온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의미하며, 결국 성도의 승리는 오직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 가능함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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