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여호수아 강해(22)]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는 왜 요단강 동쪽의 땅을 원했을까?(수13:8~14)_2025-09-10(수)
https://youtu.be/k3rYz32GxFw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분배가 시작되는 여호수아 13장의 후반부는 이미 요단 동편 땅을 기업으로 받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들 2지파 반의 선택은 단순히 영토 분배의 문제를 넘어,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중대한 영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하나님의 본래 약속이었던 요단 서편의 땅이 아닌, 요단 동편 땅에 머무르기를 자처했던 것일까?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영적 전쟁을 치르는 성도들 중 일부가 최종 목적지인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 밖’에 머무를 수 있음을 시사하는 강력한 예표이기 때문이다. 구원은 단번에 얻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매일의 삶 속에서 거룩함을 이루어 가며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가 경고하듯, 우리는 장자의 명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음행을 통해서 장자권을 잃어버린 르우벤과 한 그릇 음식에 장자권을 팔아버린 에서와 같은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시간에는 2지파 반이 왜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를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었던 동기를 파헤쳐 봄으로써 우리가 경계해야 할 신앙의 함정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지파는 요단강 동편에 머무르기를 자처했는가?
그렇다면, 왜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지파는 요단강 동편에 머무르기를 자처했는가? 그것은 총 4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요단강 동편의 땅은 목축을 하기에 매우 좋아 보이는 땅이었기 때문이다(민 32:1~5). 이에 대해 민수기 32장을 보면, 르우벤과 갓 지파는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이들의 선조가 원래 목축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요단 동편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가축을 풍성히 전리품으로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지파의 눈에 의해 비친 요단 동편 땅은 당장 자신들의 많은 가축을 기르기에 최적의 장소로 보였기에 그 땅을 요구한 것이다.
둘째, 약속의 땅은 아니었지만 그곳에 있는 풍성한 전리품에 대해 눈이 멀었고 탐심의 마음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는 요단 동편의 아모리 족속의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목초가 풍부한 넓은 땅과 수많은 가축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60여 개에 달하는 견고한 성읍들을 전리품으로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만 얻게 될 미지의 요단 서편의 땅보다는 이미 전쟁하여 확보한 땅이 더 안정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므로 르우벤과 갓 지파에게는 당장 눈앞에 펼쳐진 물질적 풍요와 안정적인 환경이 하나님의 더 크고 온전한 약속보다 더 크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영적 전쟁을 치르다가 얻게 되는 복, 예를 들어 질병 치유나 문제 해결과 같은 일시적인 축복에 만족하여 그것에 안주하려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셋째, 특별히 요단강 동편의 땅은 두 지파 반이 전쟁하여 정복한 땅이었기에 그 땅을 달라고 하기가 쉬웠기 때문이요, 여기에는 자기들이 수고한 것을 자기가 받고자 하는 공로가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민 32:390~40, 신 3:14~15). 사실 요단 동편의 땅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가 앞장서서 목숨을 걸고 싸워 정복한 땅이었음을 성경은 알려준다. 특히 므낫세 지파의 종족의 우두머리였던 야일과 마길은 요단강 동편을 정복 땅을 정복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마음속에는 ‘이 땅은 우리가 피 흘려 싸워 얻어낸 것이기에 이 땅은 바로 우리의 것이다’라는 강한 자부심과 공로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수고와 헌신에 대한 당연한 보상으로서 그 땅을 기업으로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적 전쟁에서 얻은 모든 승리는 사실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신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며 교만의 덫에 걸려 넘어지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
넷째, 2지파 반의 이름을 살펴보면 이들은 원래는 야곱의 4명의 부인들 가운데 3명의 부인들(레아, 레아의 몸종 실바, 라헬)의 장자들로서, 다 자기들이 저지른 죄와 상처로 인하여 스스로 요단강 서편 땅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놀랍게도 요단 동편 땅을 선택한 세 지파는 모두 ‘장자’의 계보에 속한 자들이었다. 르우벤은 야곱의 첫째 정실부인인 레아의 첫째 아들이었고, 갓은 레아의 시녀였던 실바의 첫째 아들이었으며, 므낫세는 요셉의 첫째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장자에게 특별한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히브리서는 이들을 가리켜 ‘장자들의 총회’라고 묘사한다(히 12:23).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장자의 명분을 걷어찼던 자들이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과 통간하는 죄로 장자의 명분을 박탈당했다(히 12:16, 대상5:1~2고, 갓은 첩의 아들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므낫세는 동생 에브라임에게 장자권이 넘어갈 것이라는 야곱의 예언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처럼 과거의 죄와 깊은 상처는 그들로 하여금 ‘어차피 우리는 약속의 땅을 온전히 차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패배주의와 자기 한계에 갇히게 만들었고, 결국 스스로 약속의 땅을 포기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3. 나오며
르우벤, 갓 , 므낫세 반지파의 비극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그들은 과거의 죄를 온전히 청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둘째, 영적 전쟁의 목표를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기업이 아닌, 눈앞의 보이는 복에 두었다는 점이다. 셋째, 자기가 전쟁하여 정복한 땅에 대한 공로를 주장했다는 점이다. 넷째, 그 결과 약속의 땅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엄중한 경고를 준다. 회개를 시작했다면, 중간에 멈추어서 지상에서 받은 복에 만족해서는 아니 된다. 간음죄를 범했다고 할지라도 다윗처럼 자신의 죄를 철저히 눈물로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한다. 한 그릇 음식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처럼 세상의 잠시 잠깐의 쾌락과 안위를 위해 영원한 천국 기업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와 천국 복음을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이 땅의 문제를 해결받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오직 하늘에 예비된 영원한 기업, 새 예루살렘 성인 것이다. 우리는 이 목표를 향해 우리의 시선을 항상 거기에 고정하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여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온전히 차지하는 모든 성도가 되어야 한다.
[설교요약]
본 설교는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요단 서편 대신 동편 땅을 선택한 이유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이들은 목축에 유리한 환경과 전쟁에서 얻은 풍성한 전리품이라는 ‘보이는 복’에 눈이 멀었고, 자신들이 직접 정복한 땅이라는 ‘자기 공로 의식’에 빠졌다. 근본적으로는 장자의 명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죄와 상처로 인해 스스로 약속의 땅을 차지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여 지레 포기해버렸다. 설교는 이를 통해 성도들이 눈앞의 축복에 안주하지 말고, 철저한 회개를 통해 과거를 청산하며, 오직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천국을 최종 목표로 삼아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함을 강력하게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