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은 세번째 하나님이신가?(시139:1~10)(방언, 예언 및 방언통역과 더불어)_2018-03-05(월)

by 갈렙 posted Mar 0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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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은 세번째 하나님이신가?(시139:1~10)(방언, 예언 및 방언통역과 더불어)
https://youtu.be/zrNkB9qS7jk

1. 성령님은 누구신가요?(시139:1~10) 성령님은 세번째 하나님인가요? 양태론에서는 성령님은 세번째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구약시대에 여호와로 불렸던 하나님께서 신약시대에는 예수가 되었고,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는 성령님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이후 만나야 할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이라고 주장합니다. 한편 삼위일체론자들은 성령님은 아버지와 다르며 아들과 다르나 하나님으로서는 같다고 말합니다. 과연 이러한 주장들은 옳은 것일까요? 만약 이러한 정의가 잘못되었다면 어느 부분에서 잘못된 것인가요?

 

2. 오늘날 성령하나님을 많이 부르며, 그분께 기도를 드리며 그분을 환영하고 초청하고 그분을 알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그런 곳으로는 아무래도 신사도와 빈야드와 같은 은사운동과 성령운동을 하는 쪽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운동을 하는 교단에는 이제 순복음이나 장로교, 감리교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교단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운동을 하게 된 이유는 1980년도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의 사역의 뒤를 이어 출현한, 1990년대부터 시작된 G12, 알파코스, D12, 셀 등을 검증도 제대지 않은 채 너무 쉽게 수용해버린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무분별하게 성령과 은사운동을 받아들인 결과 그 후폭풍이 지금 만만치 않습니다. 첫째는 가짜성령운동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물질적으로 더욱 가난해지고 육체는 힘들어지고 영혼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모든 성령의 역사를 다 귀신의 역사로 치부하여 성령의 은사 자체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초대교회 이후 성령의 은사는 다 사라지고 없어진 것일까요? 아니면 성령운동과 은사운동을 하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들은 다 귀신의 역사인 것입니까?

 

3. 성령운동이나 은사운동을 하는 곳을 보면, 처음에는 성령으로 시작한 곳도 많았겠지만 요즘 들어서 보면, 미국의 신사도와 빈야드운동을 그대로 수입한 것이 대부분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령운동과 은사운동은 거의 대부분이 예언사역이나 치유사역 쪽으로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그쪽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보다 자기에게서 더 강력한 능력이 나타나야 하고, 예언사역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은사주의에서는 죽은 자를 살리는 등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나타나야 그나마 명함을 내밀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성령운동이나 은사운동을 하는 자들이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강한 능력과 강한 예언의 출현은 결국 부작용을 낳게 되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부작용과 잘못된 방향이란 어떤 것이 있을까요?

 

4.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사도와 빈야드운동에서 하는 것들 예를 들어, 기름부음사역, 임파테이션, 치유집회, 예언자학교 등을 진짜 성령운동이라고 착각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방언의 역사일 것입니다. 뜻을 전혀 알 수 없는 언어 곧 배우지 않은 언어를 말하는 일이 그 현장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고서는 성령의 역사로 그냥 판단해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속는 것입니다. 방언의 역사는 하나님을 안 믿는 타종교에서도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요, 가짜성령운동을 하는 곳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타종교나 가짜성령운동을 하는 곳에서도 방언의 은사가 나타나는 것인가요?(고전14:2)

고전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5. 사실 성령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잘못된 은사주의로 빠지게 됩니다. 혹은 아예 성령의 은사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를 거부하는 쪽에서는 방언자체마저 다 귀신의 역사로 치부해버립니다(물론 귀신이 주는 방언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이 쓰여질 당시에만 성령의 은사가 있었고 성경이 다 쓰여진 이후에는 없어졌다는 얄퍅한 생각은 영의 세계를 정말로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성령님과 지금의 성령님이 다른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분량이나 정도에 있어서는 조금은 차이가 날 뿐입니다.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시며 은사를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에 대해 알기 원하는 자는 성령님은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내일부터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짜성령운동에 휩쓸리게 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는 것은 지금도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예수께서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이 땅에 보내신 본질적인 사역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요14:26, 요15:26, 16:13)(그러나 성령의 은사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진짜 성령에 의한 올바른 방언이나 예언 그리고 방언통역이란 어떤 것인지를 말해보십시오. 그리고 온전한 성령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99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교회의 무분별한 성령운동과 은사운동의 잘못된 수입과 도입은 결국 귀신들에게 잔치상을 차려준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성령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성령과 은사운동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귀신들은 속임수의 선수들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예언도 속임수요, 치유도 속임수가 거의 대부분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간 버리고, 돈 버리고, 영혼까지도 망가질 수 있습니다. 가짜성령운동에 주의하는 성도가 됩시다.

 

2018년 3월 5일(월)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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