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 산파들의 고민과 동성애법 제정의 고민(출1:15~22)_2018-08-16(목)

by 갈렙 posted Aug 16,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4n_guR1WoH4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히브리 산파들의 고민과 동성애법 제정의 고민(출1:15~22)

https://youtu.be/4n_guR1WoH4

 

1.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는 애굽왕으로부터 어떤 명령을 하달받았습니까?(출1:16)

 

2. B.c.1527년 당시 히브리인들의 출산을 도와주도록 바로왕이 임명한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산파들입니다. 바로왕은 이 산파들에게 히브리 여인들의 출산을 도울 때에 남자아기면 죽여버리고, 여자아기면 살려두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때 성경은 히브리 여인들의 출산을 돕던 여인들을 "히브리[인들의] 산파[들]"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히브리인들이었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바로가 이들에게 말할 때나 이들이 바로에게 대답할 때 히브리인들을 제3자로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산파들이 히브리여인이었다면, 바로가 산파들에게 말할 때에 "너희 민족의 여인을 위하여(출1:15)"이라고 말해야 했지만 바로는 "히브리 여인틀 위하여..."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산파들이 바로에게 보고할 때에도 "히브리여인[들]은 애굽여인[들]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들]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출1:19)"라고 보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름이 애굽인들의 이름이 아니라 셈족계열의 이름이 사용된 것은 아마도 애굽의 제13왕조에서 17왕조 때에 애굽을 지배했던 셈족계열의 힉소스인들이었기 때문이지 않나 추측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파들은 왜 바로왕의 명령을 어기고 히브리인들의 남자아기들을 살렸던 것일까요?

 

3.  히브리인들의 산파들이 히브리인들의 남자아기를 살린 이유는 한 가지,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입니다(출1:17). 그들이 비록 힉소스인들로서 애굽사람들이기 되는 했지만 그들도 여전히 히브리인들과 같은 셈족계열의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은 히브리인들의 신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렇더라도 그들이 왕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려둔 것은 엄연히 불복종입니다. 엄치 처벌받아야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여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자기들의 목숨이 달아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믿음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의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우니나라에서도 차별금지법이 통과되고 동성애법이 통과된다면, 동성애가 죄라고 선포하는 것이 불법이 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면 동성애를 죄라고 설교하는 목회자들은 벌금을 내야 하든지, 감옥에 갇히든지 하는 등의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이 뻔합니다. 이것은 마치 일제시대에 목회자들 중에는 신사참배가 우상이라고 선포하면 목사직에서 면직당하거나 출교당할 수가 있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동성애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동성애자들에게 대해서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입니까?

 

4. 성경에서는 동성애를 하나님께서 매우 엄중하게 금지하는 율법명령 중에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 율법에는 동성애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레18:22-23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23 너는 짐승과 교합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말며 여자는 짐승 앞에 서서 그것과 교접하지 말라 이는 문란한 일이니라
레18:27-30 너희가 전에 있던 그 땅 주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28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가 있기 전 주민을 토함 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29 이 가증한 모든 일을 행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30 그러므로 너희는 내 명령을 지키고 너희가 들어가기 전에 행하던 가증한 풍속을 하나라도 따름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그리고 신약성경에서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롬1:24,25~2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그렇습니다. 성경에서는 동성애를 가증한(혐오스러운) 일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를 하는 자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행위는 가나안 원주민이 행하고 있던 더러운 일로서, 그것으로 인하여 그들이 가나안땅에서 쫓겨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동성애를 하게 되면 개인은 죽게 되고 나라(민족)와 땅까지도 잃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바로 동성애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달라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성애자는 다른 범죄자들과 동일하게 다 죄인들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보듬어서 바른 길로 인도할 책임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동성애 혹은 차별금지법을 법제화하려는 시도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5. 대한민국에서는 동성애로 인하여 발생하는 질병(예를 들어 AIDS)에 대해서 국가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을 무상으로 치료해주고 관리해주고 있는 아주 특별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동성애를 법제화하면 동성애가 잘못된 것이라고, 동성애는 가증한 일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오히려 불법자가 되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이러한 법제화를 쉽게 생각하고 허용했다가, 지금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서양국가들인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나라 그리고 북미국인 캐나다나 미국과 같은 나라의 교회는 지금 급속도로 무너지고 망해가고 있습니다. 동성애를 법제화시켜 주니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무너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잘못된 행위를 고치고(회개하고) 새 사람이 될 것을 권면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지금 캐나다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어머니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냥 부모1, 부모2라고 부르도록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캐나다는 하나님께서 부모님을 통해서 이 땅에 탄생케 한 생물학적인 성을 인정하지 않고, 사회적인 성인 56개의 성(젠다)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법제화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가정이 무너집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어디가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부모가 똑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인데 어떻게 되어 사람이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들은 마음껏 자신의 성정체성을 선택하고 즐길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들이 늙게 되면 언제 자식이 생겨나서 이들에게 사회보장제도에 필요한 세금을 조달해준다는 말입니까? 자기의 성정체성을 자기가 마음대로 정하게 하는 것은 쾌락만을 최고의 가치로 아는 이들의 이기적인 욕망을 사회적으로 보장해주는 아주 나쁜 제도인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파멸의 길로 가도록 길을 터주는 겪이 됩니다. 아니 됩니다.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정해주시는 생물학적인 성을 거부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이지 창조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고 해서 모든 방면에 자유의지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절제와 통제가 있어야 합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인류역사를 보게 되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린 국가와 개인은 반드시 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입니다. 차별금지법이나 동성애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굳세게 막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민족이 앞으로도 대대로 잘 살 수 있고, 후손들에게 밝은 미래를 물려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2018년 8월 16일(목)
정병진목사

 


Articles

90 91 92 93 94 95 96 97 98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