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하나님은 왜 다윗의 회개를 받아주셨는가?(시51:1~19)
1. 구원은 무엇으로 받는 것입니까?(막1:15) 다시 말해 천국은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까?(딤후4:7~8, 마4:17)
2.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사실상 2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믿음이요 또 하나는 회개입니다(막1:15). 구원은 믿음만으로가 아닙니다. 중세시대의 행위공로구원론의 반작용 때문에 종교개혁자들에 의해서 한 때는 이신칭의에 따른 믿음구원론이 강조되었으나, 결국 종교개혁자들의 구원론은 회개의 약화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믿어야 하지만, 더불어 회개가 병행될 때 비로소 자신의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가 있습니다(요일1:7,9). 아무리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지은 죄를 그냥 놔두어서는 용서받지 못합니다. 회개할 때 비로소 예수의 피가 자기의 죄를 깨끗케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 상당수는 예수님만 믿으면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 그리고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은 줄로 알고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죄는 회개함으로 용서받게 되는 것이지, 가만히 있는데 자동적으로 죄가 용서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예수님만 믿기하면 죄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주장이 바로 구원파이단의 사상입니다. 그래서 전 총신대교수였던 김세윤교수는 개신교회의 구원론교리가 마치 구원파의 교리와 흡사하다고까지 비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려면 믿음만 있어서는 아니 되고 회개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회개할 때 비로소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우리의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회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에는 예수님의 피가 비록 모든 인류의 죄를 속죄하고도 남는 효능을 지녔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죄가 자동적으로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 즉 예수님에 대한 믿음만으로 우리의 죄가 자동적으로 속죄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지었다면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인물들 가운데 사울왕이 있습니다. 그는 범죄한 뒤에 분명히 자신이 범죄했다고 고백했습니다(삼상15:2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용서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삼상15:20~22, 30~31).
3. 사울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주께서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백성들을 두려워하여 백성들의 말을 듣고 아말렉의 아각 왕과 기름진 양과 소를 남겨두었던 것입니다(삼상15:8~9). 그러나 그것은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명령(헤렘)에 대한 직접적인 불순종의 행위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사무엘선지자를 보내 그의 죄를 지적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첫째,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로 순종했노라고 변명하기에 바빴습니다(삼상15:20~21).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번제보다 순종을 더 원하셨다고 말하자 그제서야 자신의 범죄했노라고 했습니다(삼상15:24). 하지만 그것은 입술로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둘째로, 사울은 그 일로 말미암아 자신이 버림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면 즉시 하나님께서 금식하고 철저히 통회자복하며 회개해야 했지만 그렇게 행하지 아니하고, 백성들 앞에서 자신이 제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달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삼상15:30~31). 그는 하나님보다 사람의 눈치를 계속 보았고 또한 사람 앞에 자신의 체면을 살려달라고 부탁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사울왕은 죄용서를 받지 못했으며 결국 자살로 인생을 마감하여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범죄(간음죄와 살인죄, 탐심죄) 후 어떻게 했습니까? 다윗은 어떻게 회개했길래, 그렇게 큰 죄들(십계명의 6계명과 7계명과 10계명)을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죄용서를 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까?
4. 다윗은 정말 큰 죄들을 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죄용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 진정성 있는 회개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선 회개에는 사실 3가지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적인 영역과 정적인 영역과 의지적인 영역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회개하려면 첫번째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깨닫는 것이 필요하며, 두번째로는 그 죄를 지은 것에 대해 마음아파하고 애통해하는 것이 필요하며, 마지막으로 세번째로는 자신의 범죄행위로부터 돌아서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이 세 가지 측면이 고루 발견된다는 사실입니다. 첫째, 그는 자신이 죄를 지었음(시32:5,51:3~4)과 죄인인 것(시51:5)을 철저히 시인하고 자복했습니다. 둘째, 그는 지은 죄에 대해 심히 마음 아파했습니다(시51:17). 그는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기를 요를 적셔가며 울며 불며 간구했습니다(시6:6). 그가 지은 죄에 대해서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그의 몸은 수척(쇠약)해졌고, 자신의 뼈와 영혼이 떨릴 정도였음을 그는 고백하였습니다(시6:2~3). 셋째, 그는 의지적으로 죄로부터 돌아섰으니 그 일 뒤로 여자와 동침하지 않았으며, 사람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탐심도 다 버렸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자신이 늙어서 자신의 품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도록 수넴여자 아비삭를 붙여주었지만, 그녀와 동침하지 않았으며, 자신에게 투항하는 어떤 장수들도 죽이지 않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드려 성전을 짓는데에 쓰도록 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 말고 성경의 인물들 중 다른 사람의 예를 통해서 회개의 진정성이 어떤 영역에서 나타났는지 한 번 말씀해보시겠습니까?
5. 우리는 다윗에게서 지정의(知情意)의 고른 영역에서 회개의 진정성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돌아온 탕자"의 비유(눅15:11~24)에서도 공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돌아온 탕자도 역시, 첫째로, 자신이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음을 시인하였으며(눅15:18), 둘째로, 그래서 아버지 앞에서 도무지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자신을 품군의 하나로 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눅15:19). 그리고 셋째로 그는 돌이켰습니다. 즉 자신의 죄악된 삶을 청산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갔던 것입니다(눅15:20). 그렇습니다. 성경에는 다윗이나 돌아온 탕자의 경우처럼, 지정의(知情意)의 영역에서 공히 회개의 진정성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지정의의 3가지 영역에서 회개의 진정성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지정의의 영역 중에서 한 가지만이라도 회개의 진정성을 보인 자는 다 용서받았습니다. 눅23장의 오른편 강도는 정적인 영역과 의지적인 영역에서 어떤 회개를 했는지 비록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지적인 영역에 있어서 확실히 죄를 고백했기에 죄용서를 받고 그날 낙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눅23:32~43). 왜냐하면 오른편 강도는 예수님에 대한 그의 고백과 다른편 강도와의 대화를 통해서 자신은 십자가형벌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범죄자였음을 고백하는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눅5장의 고기잡이의 기적 후에 보여준 베드로의 죄의 고백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철저히 고백하는 그의 겸손한 모습을 통해서 회개의 진정성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눅5:1~11).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으로서 죄를 지었음을 시인하고 고백함으로서 회개의 진정성을 보인다면, 다 용서는 받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진정성있는 회개를 해 왔습니까?
2018년 9월 13일(목)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