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세계교회 가운데 빌라델비아교회는과연 얼마나 될까?(계3:7~13)_2018-09-28(금)

by 갈렙 posted Sep 28,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83KnZRB3tKI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지금 전세계교회 가운데 빌라델비아교회는과연 얼마나 될까?(계3:7~13)

https://youtu.be/83KnZRB3tKI

 

1.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부풀게 하듯(갈5:9), 작은 가르침이라도 그러한 것들을 거룩한 교회 안에 방치하면 나중에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절망하지 않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록 핍박과 고난을 받더라도 거룩한 삶과 바른 진리를 계속 추구하게 되면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가 바로 요한계시록 3장에 나오는 빌라델비아교회(계3:7~13)의 경우입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이 지상에 세워진 교회의 유형 가운데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교회에 속합니다. 그 교회는 대체 무슨 이유로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게 되었을까요?(계3:7~13)

2. 빌라델비아교회는 종교개혁 이후의 시대에 존재하는 교회 유형의 하나로서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교회에 속합니다. 이 교회가 주님께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이유는 2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그들이 비록 작은 능력 밖에 가진 것이 없었지만,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켰기 때문입니다(계3:8b). 그리고 또 하나는 기존의 성도로부터 핍박과 고난을 받는 상황에 처했어도 끝까지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았기 때문입니다(계3:8b). 왜냐하면 이들은 주님처럼 거룩하고 진실함을 추구하였기 때문입니다(계3:7). 사실 빌라델비아교회나 라오디게아교회는 사데교회의 연장선상에 있는 교회들입니다. 그중에서 빌라델비아교회는 사데교회의 훌륭한 부분의 확대판이요, 라오디게아교회는 사데교회의 부정적인 부분의 확대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각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의 첫머리에서 당신이 누군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소개가 처음 다섯 개의 교회(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까지는 요한계시록 1장에 나와있는 예수님의 모습과 속성을 그대로 다시 말씀하신 것이었지만, 빌라델비아교회와 라오디게아교회에서는 요한계시록1장에 나와있지 않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빌라델비아교회는 당신 자신을 거룩하고 진실하신 이로 소개하고 있습니다(계3:7). 이것은 주님께 칭찬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거룩한 주님과 같이 되어야 하고, 진실한 예수님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할 때 거룩하고 진실하신 예수님처럼 될 수 있을까요?

 

3.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계1:8). 그런데 그분을 일컬어 빌라델비아교회에서는 거룩하신 이요 진실하신 이라고 소개합니다(계3:7). 이것을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첫째로, 그분이 거룩하신 이라는 것은 그분은 더럽지 않고 깨끗하며, 세상을 다스리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구별된 존재인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빌라델비아교회의 성도들이 되려면 날마다 우리의 겉옷(행실)을 빨아서 희게해야 합니다. 죄로 얼룩지고 더럽혀진 옷을 흰옷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회개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 희게 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요일1:7).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한 자가 되려면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그분이 진실하신 분이라는 것은 그분은 거짓이나 불순물이 전혀 함유되지 아니한 순수한 말씀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어느새부턴가 누룩을 회당 안으로 들여왔습니다. 그것은 묵은 교리가 되었고 장로들의 유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실 유대인들에게는 성경말씀보다도 해설서인 장로들의 유전의 분량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그것을 외우는 것이 더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도 순수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순수한 예수님의 말씀 그 자체로 돌아가야 합니다(사복음서와 요한계시록의 말씀). 그러므로 사도바울도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순전하고 진실함의 떡으로 지키자고 말했습니다(고전5:8). 그러므로 우리도 매주일 순수하고 깨끗할 뿐만 아니라 불순물이 전혀 섞여있는 순수한 말씀의 떡을 진설하고 또한 그것을 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다 보면 정말 많이 부딪힙니다. 예수님 당시처럼 말입니다. 그럼,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4. 순수한 말씀 그 자체로 돌아가면 기존의 가르침과 많이 부딪힙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는 우상숭배일까요 아닐까요? 오늘날 개신교단에서는 이것을 예식정도로 봅니다. 죽은 자에 대한 예의 쯤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는 죽은 자 때문에 드리는 예배이기에 주님이 받으시지 않습니다. 그럼 누가 와서 그 예배를 받게 됩니까?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 것은 다 귀신들이 와서 그 예배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는 귀신들이 받는 예배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를 받는 귀신들은 저주받은 영이기 때문에 우리가 귀신에게 예배를 드리면 드릴수록 그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는 자라도 그에게서 불치의 병이 나타나게 되고, 각종 사건사고와 우환에도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절대 추도예배나 장례예배와 같은 우상숭배행위를 그쳐야 합니다. 그것은 불신자들이 드리는 제사를 기독교식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사실을 말하면, 궂은 일에 잘해야지 하면서 거부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고 찬양하는데 무슨 귀신이 와서 받겠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전에 다 그렇게 해왔어, 우리 목사님도 그렇게 하셨잖아 하면서 그냥 넘어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순수한 주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할 자들이지, 관습에 따라가야 할 사람들이 결코 아닙니다. 죽은 자들은 죽은 자들이 장사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눅9:60). 죽은 자에 대해서 극진하게 정성스럽게 매장해야 한다는 성경말씀은 전혀 없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를 드렸다는 말씀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쳐야 합니다. 더이상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것을 행하려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모도 조상도 몰라본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웃어르신들이 많은데 그분들이 섭섭해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치려다가도 그만 고치려는 것을 중단합니다. 하지만 우상숭배를 저지른 댓가가 바로 불못 곧 지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계21:8). 몰랐을 때에는 그렇게 행하고 징계의 저주를 받아왔지만 이제 알게 된 이상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자기교회에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예배를 강행하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5. 개교회에서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를 드린다면, 처음에는 몇 번은 여러가지 이유를 대면서 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그것이 변형된 우상숭배행위라는 것을 알려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이상한 사람 내지는 이단 취급을 받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죄된 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사데교회에서 주신 말씀처럼 명목상으로는 살아 있다고 하는 이름은 가졌지만 사실상 그 신앙은 죽어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는 이미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어도 죽는 날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말 것입니다(계3:5). 그러므로 우리는 빌라델비아성도들처럼 혹시 믿는 자들로부터 핍박을 받을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순수한 말씀을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이기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어 천국에서 다시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의 소유가 되었음을 말해주는 이름들이 우리의 이마에 인쳐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교회에 빌라델비아교회의 예처럼, 거룩하고 진실하게 주님을 믿는 자들이 얼마나 될까요? 적어도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를 폐지한 교회를 통계로 본다면, 한국교회의 약 5%정도가 이 가르침을 따라가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장로교의 경우는 약 1%가 이 가르침을 따라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면, 두아디라교회의 경우처럼 끝까지 잘못된 가르침을 따라가지 않으면서도 그 교회에 남아있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계2:24). 그러면 언젠가 주님이 오실 것입니다. 아니면, 빌라델비아교회의 경우처럼, 아예 그러한 잘못된 가르침을 제거하고 실천하지 않는 교회를 찾아가면 됩니다. 그러나 이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룩하고 진실한 우리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 자들만이 이기는 자가 되어 천국에 입성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2018년 9월 28일(금)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Articles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