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령의 인도를 받는 법(05) 영으로 돌이키라(출29:38~46)_2019-04-10(수)

by 갈렙 posted Apr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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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QKUiz7nTSbg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의 인도를 받는 법(05) 영으로 돌이키라(출29:38~46)_2019-04-10(수)

https://youtu.be/QKUiz7nTSbg

 

1. 거듭난 성도라도 성령으로 인도를 받으려면 조금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영(spirit)을 사용하는 법을 전혀 모르고 살아왔고 오히려 혼(soul=지정의)을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영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관이라고 나옵니다(요4:24). 사람의 영이란 영이신 하나님을 접촉하는 대표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이 세상에 속한 시간 중에서 영을 사용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시간은 다른 시간이 아니라 예배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내가 영에 속한 사람이 되어 성령으로 인도를 받으려면 영을 사용하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 시간에 영으로 자신을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혼으로부터 영을 분리하여 영으로 돌이키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혼에 머물러 있던 사람이 영으로 돌이킬 수가 있을까요?

 

2. 출애굽기 29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나오게 한) 또다른 신선한 목적이 나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낸 목적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당신의 언약을 기억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함이었습니다(출2:24~25). 그리고 둘째로, 그들을 애굽땅에서 이끌어내어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풍요롭고 광대한 땅, 곧 가나안 일곱족속이  살고 있는 땅으로 데려가시기 위함이었습니다(출3:7~8). 그런데 출29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세번째 또다른 신선한 목적을 언급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거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거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솨칸"이라는 단어인데, 이는 "거하다. 거주하다. 살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살면서 그들과 교제하려고 그들을 애굽땅에서 불러내시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어느 장소에 거주하시려고 애굽땅에서 그들을 불러내신 것입니까?(출29:42~44)

 

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민족을 애굽 땅에서 불러내신 진짜 목적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주하여 그들과 교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서 교제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그들과 만나고 대화한다는 뜻입니다(출29:42).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과 어디에서 만나고 대화하는 것입니까? 그곳은 넓게 보면 "회막"입니다(출29:42~45).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그곳은 회막 안에 있는 지성소의 법궤 위 "속죄소"라는 자리입니다(출25:22). 우리도 잘 알다시피 회막 곧 성막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바깥뜰"인데 거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성소"인데 거기에는 일곱금촛대와 분향단과 떡상이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지성소"인데, 지성소 안에는 법궤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법궤 위에는 뚜껑이 있는데 그것을 "속죄소"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지성소에서 그것도 속죄소에서 이스라엘과 만나고 그곳에서 모세에게 할 말을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출29장에 가서는 하나님께서 속죄소가 아니라 "회막" 곧 "성막" 자체에서 만나서 말씀하실 것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교제장소를 보다 더 넓게 적용하셨습니다. 그럼, 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4. 사실 사람도 따지고 보면, 몸과 혼과 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육에는 죄된 본성이 자리잡고 있으며, 혼은 나 자신을 가리키는 것인데, 거기에는 귀신들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깊숙한 곳에 영이 들어있는데, 그곳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영으로 들어오실 수가 있습니다(딤후4:22, 슥12:1, 욥32: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나서 말씀하시는 장소는 몸도 아니고 혼도 아니며 영이라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방언통역을 해보면, 방언내용의 한 10%는 사람의 영이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것이며, 한 90%는 성령께서 사람의 그 영에게 말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영이 드리는 기도와 성령께서 그 영에게 하시는 말씀을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이 혼을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 있기에, 혼이 영이 하는 말과 영이 듣고 있는 성령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90%성도들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는 자신의 영이 드리는 기도와 성령이 그의 영에게 하는 말을 이미 알고 있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그것을 목표로 사명선언을 깨닫고 오늘도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바로 출29장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지성소인 영에게만 말씀하시는 것인데, 출29장에서 하나님께서는 회막 그 자체에서 말씀하신다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출29:46). 여기서 회막이란 보다 더 큰 개념으로서, 지성소와 성소와 바깥뜰을 다 포함하는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인 지성소에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에 해당하는 바깥뜰의 번제단에서도 말씀하신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되어서 사람의 몸에서도 말씀하시며 그것을 또한 사람이 알아차릴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5. 출29장에서 하나님께서 회막의 지성소 뿐만 아니라 회막의 바깥뜰에서도 말씀하고 교제하시겠다고 언급하신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사장이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항상 번제를 드리고 있고, 고운 밀가루와 기름의 소제를 드리고 포도주로 전제를 드릴 때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것을 신약적으로 표현하자면, 제사장이 예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제사장이 아침과 저녁에 번제를 드릴 때에 상번제만을 드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때에 첫째, 소제와 전제도 같이 드렸기 때문입니다(출29:40). 이때 소제로는 고운 밀가루가 드려졌고, 기름이 같이 드려졌습니다. 이는 예표론적으로 볼 때, "고운 밀가루"는 이미 다루심을 받아 가루가 되어있는 자신의 혼의 상태를 가리키며, "기름"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곧 아침과 저녁에 상번제를 드릴 때에 자신의 혼이 이미 다루심을 받아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전제로서 포도주가 드려졌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피로 자신의 죄를 씻어내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매일 아침에 하루를 시작할 때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번제를 드린 자가 하나님의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이미 다루심을 받고 주님이 자신을 어떤 용도도 쓰시든지 그 용도로 쓰임받고자 가루가 되어있는 혼의 상태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로 자신의 죄를 다 씻어놓은 상태가 된 자는 하나님께서 이제 영 속으로부터 밖으로 나오셔서 혼과 몸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제사장이 아침과 저녁에 상번제를 드릴 때에 동시에 제사장은 성소에 들어가 일곱금촛대에 불을 밝히고 향단으로 가서는 향을 사르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물론 그 날이 안식일 전날이면 떡상에 떡도 진설해야 했습니다. 이는 제사장이 제대로 자신의 직무를 잘 감당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깨끗해지고 용서받은 사람의 바깥 부분(혼과 육)까지 나오셔서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새벽시간이나 저녁에 하나님 앞으로 가서 기도하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해 할 뿐만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기를 사모하면서 제사장격인 주의 종으로부터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자들은 자신의 영이 드리는 기도와 성령이 자신의 영에게 하시는 말씀을 자신의 혼과 영도 다 알고 있으며, 그것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살 확률이 훨씬 더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 놀라운 일입니다.

 

2019년 4월 10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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