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말했던 진짜 칭의를 얻는 방법과 그러한 실제적인 예가 성경에 있는가?(롬3:20~31)_2019-06-26(수)

by 갈렙 posted Jun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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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81Z_9rtZFSo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울이 말했던 진짜 칭의를 얻는 방법과 그러한 실제적인 예가 성경에 있는가?(롬3:20~31)_2019-06-26(수)

https://youtu.be/81Z_9rtZFSo

 

1. 로마서 5장 9절은 칭의를 얻는 방법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롬5:9(헬라어원문)에 의하면,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더욱더 그분의 피로 더 많은 것에서 의롭게 됨으로 장차 심판의 때에 구원을 받음으로 칭의를 완성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피로 자신의 죄를 씻어내는 계속된 회개가 칭의를 얻어 구원을 받는 데에 꼭 필요한 전제조건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존에 가졌던 칭의관 즉 그리스도의 의가 믿는 자에게 전가되어 그는 단번에 칭의를 얻는다(그래서 더이상 칭의를 위해 해야 할 일은 없다)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그렇다면 칭의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으며 어떤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까?

  칭의는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그리스도의 의가 그분을 믿는 자에게 전가됨으로 주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때 그는 실제 절대 의롭지 않으며, 다만 그리스도의 의로 덧입혀진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법정적으로 의롭다고 선언해주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때 칭의가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칭의를 얻는 순간에 죽을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요. 그후로도 작게는 몇 년에서 많게는 수십년을 더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데, 이때 죄를 안 짓고 살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는 반드시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을 처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죄된 본성과의 싸움을 싸워 이겨야 합니.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난 후부터 죽을 때까지 진정 자신의 죄를 더 많은 것에서 씻어내는 일 곧 회개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그러므로 칭의는 크게 2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시작으로서의 칭의"가 있고, 둘째는 "완성으로서의 칭의"가 있는 것입니다. "시작으로서의 칭의"는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완성으로서의 칭의"는 회개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온전한 칭의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과 "회개"가 동시에 있어야 합니다.

 

3. 그렇다면 시작으로서의 칭의를 얻었던 자가 거룩함을 얻는 회개생활을 거쳐 마지막에 가서로 완성된 칭의를 얻은 예가 성경에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사도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의 예를 말하였습니다(롬4:1~13). 아브라함이 맨 처음 의를 얻게 된 것은 그의 행위로서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의 믿음으로서였습니다(창15:6). 하지만 그는 또 다시 넘어졌습니다. 믿음이 흔들렸고 죄된 육체의 본성을 따라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써서 자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는 회개하는데 무려 13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할례를 행함으로 그의 회개가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것을 두고 사도바울은 아브라함이 그때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침받은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롬4:11).

 

4. 아브라함이 받았던 칭의의 여정을 롬8:30절에 따라 정의한다면 어떻게 정의할 수 있습니까?

  죄인인 한 사람이 믿음으로 칭의를 얻어 구원에 이르는 과정을 사도바울은 롬8:30에서 다음과 같이 4가지로 말했습니다. 첫째는 "미리 정하심"의 과정입니다. 둘째는 "부르심(소명)"의 과정입니다. 셋째는 "칭의(의롭다 하심)"의 과정입니다. 넷째는 "영화(영광스럽게 하심)"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믿는 이들은 "미리 정하심"부터 "영화"에 이르는 과정을 하나님께서 다 해주실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한 번 "미리 정하심" 안에 포함시켜 놓았다면 그는 자동적으로 "영화"의 단계에까지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롬8:30에 나오는 구원의 여정은 결코 자동적인 과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립되려면 "미리 정하심"의 과정에 어떤 개인적인 예정이 있어야 하는데, 성경에는 단 한 군데 구원에 관한 개인적인 예정의 예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초청을 받아 믿고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미리 정하심" 안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구원얻을 자를 정해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개인을 예정해놓으신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믿고 회개하여 끝까지 주님을 따라갈 자를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칭의의 과정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하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개인을 구원하기로 예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라 믿고 회개하고 끝까지 인내함으로 주님을 따라갈 자를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초청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미리 정해놓으신 그 대상에 들어가야만이, 비로소 칭의를 통한 구원의 여정에 우리도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그는 74세에 소명(부르심)을 받았습니다(창12장).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제안을 받아들임으로 구원의 여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기까지 아브라함은 9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가야 했습니다. 즉 그의 나이가 84세가 되던 해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식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늘의 별들을 보여주면서 말이죠. 그러자 아브라함이 그것을 믿었다고 합니다(창15장).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시작으로서의 칭의"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온전한 칭의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채 1년이 되기도 전에 바로 범죄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아내의 말을 듣고 몸종은 하갈을 취해 아들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은 85세 때에 하갈을 취했고 86세 때에 이스마엘을 낳았는데, 그때부터 그는 불안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장막 문에 앉아 하나님께서 언제 오실른지 기약없는 기다림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는 아마 날마다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면서 날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오시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드디어 그의 나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 오셔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했습니다. "이 꼴이 대체 무엇이냐"고 하시면서 다시 시작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바꾸어주셨고, 그때 할례를 행하게 했습니다. 회개의 표적을 몸에 새기라고 한 것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기꺼이 할례를 행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참된 회개를 실천했을 때에, 하나님은 그 해에 사래가 임신하게 했으니, 아브라함은 100세에 진짜 약속의 아들인 이삭을 낳게 됩니다. 즉 100세에 비로소 완성으로서의 칭의를 얻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5. 아브라함 외에도 다른 것에서 시작으로서의 칭의와 완성으로서의 칭의가 예가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거듭남"을 통한 구원의 여정도 칭의의 과정과 비슷합니다.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자기 안에 받아들일 때에 거듭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에 하나님의 생명이 성령을 통해 자기 안에 분배되어 들어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구원얻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에 갔다가 온 자들의 간증을 빌리자면, 거듭 난 자들 중에서 약 5%만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예수님의 피로 회개하여 자신의 죄를 씻어냈어야 했는데 그 일을 하지 않고 있다가 결국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지옥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한 번 믿어 거듭 태어나는 것은 단회적인 사건이지만, 회개생활은 계속적 반복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또한 사도바울은 구원의 여정을 믿음의 경주라고 표현했습니다(빌3:12~13,고전9:27~29). 믿음은 구원의 여정에서 트랙선상에 들어서서 막 출발한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모두 경주자가 다 경주를 완주하지 못합니다. 중간에 탈락하는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경주를 시작했다고 해서 자신은 이미 경주를 마친 것인량 생각해서는 아니 됩니다. 골인지점을 통과할 때까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를 보십시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인하여 전적인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출애굽은 했지만 그들 전부가 다 천국 곧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이는 그들 대부분이 광야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회개만 했더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을텐데,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고 그들 전부가 광야에 엎드려저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칭의는 믿음으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회개라는 과정을 통해 점점 더 의롭게 된 후에라야, 죽을 때에 회개하고 죽어서 완전한 칭의를 얻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회개생활을 잘 하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2019년 6월 26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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