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늘날에는 기적(초자연적인 이적)이 일어나지 않는가?(단6:16~28)_2020-02-18(화)

by 갈렙 posted Feb 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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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EA4_N0o8Z-M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왜 오늘날에는 기적(초자연적인 이적)이 일어나지 않는가?(단6:16~28)_2020-02-18(화)

https://youtu.be/EA4_N0o8Z-M

 

1. 성경에 등장하고 있는 기적 즉 초자연적인 이적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성경에는 여러가지 초자연적인 이적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었는데 나았다는 이야기,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들어갔는데 3일만에 다시 살아나왔다는 이야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맹렬히 타는 풀무불(용광로) 속에 들어갔는데 타지 않고 살아서 걸어나왔다는 이야기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 6장에 보면, 다니엘도 사자굴 속에 던져졌으나 죽지 않고 살아서 나오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오늘날에는 왜 이러한 초자연적인 기적이 안 나타나는 것인가요?

  사실 오늘날에는 성경에 나오는 초자연적인 기적들이 거의 없습니다. 있다면 질병에서 나았다는 이야기 정도는 있지만, 초자연적인 기적의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특히 다니엘서 3장에 나오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겪은 초자연적인 기적과 다니엘서 6장에 나오는 다니엘의 겪었던 초자연적인 기적과 같은 일을 들어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럼, 왜 오늘날에는 이러한 초자연적인 기적이 잘 안 나타나는 것인가요? "그 이유는 이것이다"라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성경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은 3가지 측면에서 초자연적인 기적이 나타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당사자가 매우 열악한 환경 가운데 있을 때에 기적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으면 돌파구가 전혀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둘째, 결과론적으로 볼 때, 그 사건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내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되었을 때에 기적이 나타났다 점입니다. 셋째, 기적을 가져오게 하는 당사자들의 신앙이 다른 사람들과 달라도 무엇인가 달랐다는 점입니다.

 

3. 초자연적인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바탕은 무엇인가요?

  초자연적인 기적이 나타나려면 가장 기본적인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초자연적인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초자연적인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은 그 사건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셨다는 것인데, 그때는 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천사를 보내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우리도 초자연적인 기적을 보기 원한다면 정말 기도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내 기도를 듣고 계시다는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도 안 했는데, 하나님이 개입하시게 되면 사탄이 참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당신이 직접 일하시려면, 당신이 일하실 수 있도록 누군가가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생활이야말로 초자연적인 기적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초자연적인 기적이 나타나는 환경은 어떤 것이었나요?

  초자연적인 기적이 나타나는 환경은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을 때입니다. 풍족하고 넉넉하고 좋은 환경에서는 거의 기적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기적은 역시 너무나 열악한 환경일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과 같은 좋은 환경에서는 기적을 기대하기가 거의 어렵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경우나 다니엘의 경우를 보면, 매우 다 열악환 환경이었습니다.

 

5. 개인의 신앙이 그 핵심인 초자연적인 기적은 어떠해야 하나요?

  그런데 초자연적인 기적의 핵심은 역시 개인의 신앙에 달려 있습니다. 그 신앙 때문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게 된 것입니다. 초자연적으로 말이죠. 그렇다면 초자연적인 기적을 체험했던 분들의 신앙은 어떠했던 것일까요? 그들은 첫째,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 곧 절개신앙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 아깝지 않을 뿐더러, 혹 하나님께서 자신을 거기에서 구해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결코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을 만큼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과연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목숨을 주님의 손에 맡길 만큼의 신앙을 갖고 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둘째, 하나님 이외의 다른 어떤 방법들과 타협하거나 꾀를 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기적을 체험한 자들은 하나님 이외에 다른 그 어떤 도움도 구하려는 시도를 전혀 해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셋째, 주님 때문에 받는 고난과 죽음을 앞두고 결코 두려워 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배반하거나 부인하는 이유는 두려움과 공포심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전기고문을 당하고 있는 앞 사람을 보면서 자기의 순서가 되면 그만 주님을 부인해버리는 것입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즈레 겁을 먹고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때 사탄마귀가 우리에게 심어주는 것은 공포심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돌아보면 늘 배은망덕했던 우리들을 위하여 피조물이 될 수 없는 하나님께서 피조물의 형상을 입으시고 대신 고통받고 죽으셨는데, 어찌 주님을 위해 우리의 한 목숨을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을 위해 내 목숨을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니 그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겠습니까? "이 못난 죄인이 주 예수님을 위해 내 자신을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구나!"하고 생각하기만 해도 감격이 저절로 나오는 자가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고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순간에도 주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2020년 02월 18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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