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자신이 진정 구원얻을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롬10:9~10)_2020-04-02(화)

by 갈렙 posted Apr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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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6JWmgjtULbU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자기자신이  진정 구원얻을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롬10:9~10)_2020-04-02(화)

https://youtu.be/6JWmgjtULbU

 

1. 히브리서에 의하면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나요?

  히브리서에 의하면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라도 구원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무려 5번씩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히2:1~4, 3:7~4:13, 5:11~6:12, 10:26~31, 12:1~29).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구원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그것은 대학교 때 성적장학금을 받은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학력고사 내지는 수능시험을 잘 치러서 대학4년 내내 장학금을 받은 상태로 대학에 입학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가서 어떻게 생활하든지 상관없이 장학금 혜택을 무조건 4년동안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과 만약 학점이 3.0을 넘지 못하게 되면 장학금이 취소된다고 하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은 정말 그가 진정 거듭 태어났다면 그는 이미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믿은 후에 잘못 행하게 되었을 때에 이미 얻은 구원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히6:4~8). 그러한 예는 범죄하고도 회개하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믿음을 부인하는 경우 즉 믿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대학교 들어갈 때에 이미 성적장학금을 받아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학생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받은 성적장학금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얻은 구원을 잃어버리는 시점은 우리가 죽을 때에 일어나는 일인 것이지, 중간에 구원을 잃어버렸다 얻었다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믿을 때에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예수(성령)께서는 사실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다음 시대의 일은 죽을 때에 다시 결정되는 것입니다.

 

2. 우리가 구원얻을 만한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그렇다면 내가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지금 내가 구원을 얻을말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2가지 상황을 가정해놓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만약 지금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죽임당할 수 있는 상황이 하나 있을 수 있고, 또 하나는 지금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내게 큰 어려움으로 작용하지 않을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앞의 경우를 "비상시국 상황"이라고 치고, 뒤의 경우를 "평소 상황"이라고 우선 가정해보겠습니다. 비상시국 상황에서 구원의 문제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을 모른다고 하면서 주님이 누구냐고 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에서 취소될 수 있습니다(마10:32~33). 그런데 만약 그러한 상황에서 주님을 믿는다고 시인할 경우 내가 즉시 고난을 받거나 불이익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죽음(순교)에 이르는 상황이 생길 때에 우리가 구원얻으려면 우리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만약 그때 우리가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에서 결국 탈락하고 말 것입니다(물론 회개할 경우는 다시 회복할 가능성이 아주 조금은 남아있습니다).

 

3. 평소 때 나에게 구원얻을만한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그런데 평소상황에서 내가 구원을 얻을만한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딱 정답이 이것이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다음과 같이 테스트해 본다면 어느정도 감이 오지 않을까 합니다. 그것은 지금 내가 내 삶의 가치를 가장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내가 과연 육적인 이 세상에서의 성공에 두고 있느냐 아니면 오직 영적인 성장과 천국에 두고 있느냐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나는 과연 어디에 더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법과 세상법이 충돌할 경우 어느 법을 따라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그때에 내가 결정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나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르쳐줄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똑같이 돈을 가지고 있더라도 어디에 그 돈을 쓸 것인지를 보면 내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내가 지금 똑같이 시간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그 시간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 그 모습을 보면, 내가 과연 어떤 믿음의 소유자인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모든 우선순위를 항상 주님께 맞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자만이 훗날 주님으로부터 건지심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사도바울은 고후13:5에서, 우리의 구원관에 대해서 무엇을 말했나요?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13:5에서 사람의 구원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계속]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계속] 확증(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계시다는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13:5)" 여기서 "버림받다"라는 형용사는 "아도키모스"라는 단어로서, 그가 어떤 시험에 불합격처리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께서 내 안에 성령으로 계시다는 것을 스스로 모른 채 있다면 그는 아직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진정 믿음을 소유한 자라면 그때에 예수께서는 이미 성령으로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순간 거듭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한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님은 우리가 만지거나 볼 수 있거나 느껴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영이 내 안에 들어와 계시다면,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곧 달라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마치 바람이 불지만 어디에서 불어서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어도, 펄럭이는 나뭇잎을 통하여 우리는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바람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그것의 결과는 분명히 나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내가 구원받을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우리의 비상시국상황에서 그리고 평소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대강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5. 비상시국상황에서 성도는 어떻게 행동하고 있을 때에 구원받은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나요?

  비상시국의 상황을 가정했을 때에, 과연 성도가 구원받았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진정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만약 그때에 자기가 죽는 것이 아깝다든지 두렵다든지 하는 사람은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아직 부족하거나 없거나 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라도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죽는 것이 아니라 의연하게 죽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려면, 성도는 날마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롬10:17). 속죄와 천국이 실제라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누구든지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겨야 자신의 목숨도 내놓을 수가 있기 마련입니다(롬10:17). 저와 여러분은 과연 비상시국의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내어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어떤 핍박과 조롱과 멸시를 받는다 할지라도 그것을 참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목이 칼이 들어와도 주님을 끝까지 부인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럴 수 있습니까? 만약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예"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저와 여러분은 믿음이 어느 정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이미 자기 안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번은 그렇게 했을지라도 마지막 죽는 그 순간까지 그렇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고난과 죽음의 공포에 직면했을 때에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어디 한 번 죽는 것이지 두 번 죽는 것이냐고 하면서, 어차피 빨리 죽을 수 있다면(순교한다면) 더이상 험한 꼴을 보지 않게 될 것이니 감사하면 될 것이요, 만약 그런 상황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나게 된다면, 우리에게 아직 할 일이 남아있는 모양이로구나 하면서 더욱더 주님의 일에 충성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04월 02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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