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구원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행5:1~11)_2020-04-08(수)

by 갈렙 posted Apr 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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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X59YdFzGNeE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구원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행5:1~11)_2020-04-08(수)

https://youtu.be/X59YdFzGNeE

 

1.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오직 은혜로 주어지나가요 은혜와 믿음으로 주어지나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에 대해 사도 바울은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받은 상태로 있으니)"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우리에게는 믿음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은혜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구원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해 우리가 믿음으로 반능할 때에 우리에게 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런 정의야말로 성경 전체가 말씀하고 있는 올바른 구원론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은혜로"만 얻을 수 있는 구원도 없으며, "오직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구원도 없습니다.

 

2. 구원은 믿을 때에 이미 받은 것이지만 죽을 때에 가서야 완성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구원은 믿을 때에(정확히는 믿고 회개함으로 회심할 때에) 받게 됩니다. 그때에는 성령께서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고 믿는 성도들 속에 들어오십니다. 그리고 그때 회개를 통하여 예수님의 피로 지은 지난날의 모든 죄들이 씻겨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을 때 그 사람은 과거의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생명이 그 사람 안으로 들어가게 됨으로 그가 거듭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때에 구원을 이미 받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구원을 받은 자라도 자신이 죽는 날에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히브리서10:26에 따르면, 성도가 되었어도 고의로 죄를 범하는 경우입니다. 그런 죄는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죄들을 가리킵니다(히10:29). 그러므로 믿는 성도는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속죄를 결코 부정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리고 내주하시어, 우리에게 죄를 책망하시고,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하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우리가 거역하거나 모욕해서는 절대 아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그가 죽는 날 그 사람을 떠나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살전5:19, 마28:20, 요14:16). 왜냐하면 믿는 자들 속에 들어오시는 성령께서는 "에이스 톤 아오나(그 시대까지, 그 세대동안)" 함께 하실 것이라고 헬라어원문에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요14:16).

 

3. 성도들이 믿음과 회개로 얻은 구원은 대체 어떤 상태에 있는 것인가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과 회개로 얻은 구원은 사실 완전한 구원입니다. 그래도 받은 구원을 잘 간직하여 잃어버리지 않을 경우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히 자기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잘 간직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는 믿음을 끝까지 잘 지켜야 하고, 둘째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믿었던 자라도 그가 믿음을 포기한다든지, 아니면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있으면 그는 결국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가 죽는 날 그를 떠나가실 것이기 때문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구원의 상태는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지만 아직은 아닌 것입니다.

 

4. 성경에 나오는 예화로 성도들이 구원관을 설명해본다면 어떻게 설명이 가능한가요?

  성도들이 받는 구원의 성격을 한 번 성경에 등장하는 예화로 한 번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삼상16장과 열왕기상 2장에 등장하는 저주하는 "시므이"의 의 모습입니다. 그는 사울왕의 신하로서, 사울왕이 속해있던 베냐민지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이 죽고 유다지파의 사람 다윗이 왕위를 이어받자, 항상 그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다윗의 셋째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다윗왕이 도망친다는 것을 듣고는 기드론시내에 나와서 도망가는 다윗을 향하여 험한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지켜보던 다윗의 장수 아비새가 "죽은 개 같은 자가 왕을 저주하나이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명령만 내리시면 당장 가서 그 놈의 목을 쳐버리겠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기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도 자기를 헤하려 하는데 하물며 베냐민 사람이겠느냐고 하면서, 자신이 저주받는 것은 하나님이 시켜서 하는 일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 전세는 역전되고 말았고 압살롬의 구테타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 같자, 시므이가 베냐민사람 1,000명을 데리고 나가 다윗을 마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내 죄를 내게 돌리지 마옵소서. 과거의 죄를 기억하지 마시옵소서"하였습니다. 그러자 다윗도 그를 용서주었습니다. 그러나 평생 가슴이 멍이 든 사건을 다윗이 어찌 잊을 수 있었겠습니까? 죽음을 앞둔 다윗은 자신의 후계자인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왕상2:9)" 결국 왕위를 이어받은 후 솔로몬은 시므이를 불러다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예루살렘에서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나가지 말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왕상2:36~37). 그런데 어느날 이 말에 유념하지 않던 시므이가 자신의 두 종이 가드왕 아기스에게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가서 두 녀석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솔로몬의 귀에 들어갔을 때에 솔로몬은 군대장관 브나야를 시켜 그의 목을 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범죄에 인해 진즉 죽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그 죄를 간과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죄가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시므이에게 자신이 용서받고 살고 있는지를 잊지 않으려면 지켜야 할 것이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선왕 다윗과 솔로몬왕이 시므이 자신에게 베풀어준 용서를 잊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시므이는 그 말을 소홀히 여겼고 결국 기드론시내를 건넘으로 인하여 죽임당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죄를 용서받은 상태에 있었으나, 그 뒤에 이 땅에 예수님을 대신하여 보내주신 성령님을 거역하고 모욕할 경우 그 사람은 결코 죄용서를 받지 못한 채, 불못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용서받은 죄인이기는 하지만, 죄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닌 칭의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집행유예 상태에 놓여있는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할까요.

 

5. 예수님을 대신하여 진리의 영으로 오신 성령님을 속이고 우롱할 경우는 어떻게 되나요?

  성령님은 승천하신 예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영이자 예수님의 눈입니다(계4:5,5:6). 그러므로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강림하신 성령님은 예수님의 또다른 자기자신에 해당합니다(요14:18~19).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을 대신하여 보내어진 성령님을 누가 속인다거나 우롱할 경우에는 용서가 없습니다(마12:31~32).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셨을 경우 예수님을 거절하거나 모욕한 죄는 다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님을 거역하고 속이고 모욕하는 사람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죄는 하나님의 아들과 그분의 속죄를 부정하고, 죄를 책망하시는 성령을 거역하는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영으로 오신 성령님을 모시고 있었지만, 짓말을 했던 아나비아와 삽비라 부부는 성령을 속인 죄로 결국 죽게 됩니다. 재산을 처분한 후에 그것을 하나님께 다 드리지는 못해도야 "다 드리지는 못하고 조금이나마 드립니다"고 했으면 그들 부부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다 바치는 것처럼 하나님을 속였기 때문에, 자기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속이려고 시도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들 부부는 그날 함께 죽고 말았습니다. 오순절에 성령받아 거듭난 성도였지만 죽을 때에 그만 구원에서 탈락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우리가 믿을 때에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성령님을 존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보이지 않아도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에게 죄를 책망하고,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게 하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하고, 진리만을 증언하도록 돕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 오셨지만 성령님은 믿는 성도를 돕기 위해 오셨는데, 그분을 속이거나 우롱하면 용서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2020년 04월 08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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