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와 천국복음(51) 구원얻는 회개란 무엇인가(12) 음부에서 어떤 부자의 회개(3)( 눅16:19~31)_2020-09-10( 목)

by 갈렙 posted Sep 10,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JP3wDyQIVy8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회개와 천국복음(51) 구원얻는 회개란 무엇인가(12) 음부에서 어떤 부자의 회개(3)( 눅16:19~31)_2020-09-10( 목)

https://youtu.be/JP3wDyQIVy8

 

1.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 사람이 죽으면 구원받은 성도는 즉시 심판을 받고(몇 초도 걸리지 않음) 부활체를 입고서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때는 좌우에서 천사들의 안내를 받고 보좌에 앉아계신 예수님 앞으로 갑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성도는 곧바로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지옥은 지구의 땅 속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천국은 하늘 저 너머에 초광속으로 날아가면 공간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예수께서 구속사역을 완성하기 전의 상황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살지 못했고 회개하지 못했던 당시 부자는 죽어서 음부에 떨어진 것이며, 나사로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받들려서 하늘에 있는 낙원으로 간 것입니다. 특히 낙원은 아직 부활체를 입지 못한 구원받은 성도들이 가는 위로과 안식의 장소로서, 천국의 한 켠에 해당합니다.

 

2. 아브라함의 품과 음부는 어떤 곳인가요?

  그런데,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 "아브라함의 품"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원문에는 "아브라함의 품들(가슴들)"이라는 단어로서, 낙원에 있는 장소이기는 하지만 아브라함을 자신의 조상으로 두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장소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품들"이란 물리적으로 아브라함의 가슴 속이라는 뜻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두었으되 그들 중에 구원받아 낙원으로 간 자들이 머무르는 장소를 뜻합니다. 그런데 음부는 민족이나 가문이 따로 모여있지는 않는 것 같습습니다. 거기는 개별적으로 떨어져서 각자가 고통을 받는데, 음부에서는 유황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뿐더러, 불길이 치솟는 장소이면서 매우매우 뜨거운 장소이기에, 살이 데이고 찢기는 아픔과 더불어 갈증으로 인하여 목이 타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음부의 고통은 이러한 물리적인 고통보다는 정신적인 고통이 더 심한 장소입니다. 막 음부에 떨어졌을 때에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를 잘 몰라 헷갈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내 그곳은 영혼의 감옥과 같은 장소로서 한 번 떨어지면 절대 거기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부자는 지금 그곳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영영토록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숨이 더 콱콱 막혀오는 장소가 바로 음부인 것입니다. 그때 느끼는 절망감이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3. 부자가 음부에서 첫 번째로 어떤 청원을 했나요?

  부자는 음부에 떨어졌지만 그곳에서는 어떤 청원을 한다고 할지라도 소용이 없으며, 그곳에서는 회개를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직 잘 몰랐습니다. 그가 음부에 떨어진지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의 눈에, 저 멀리 위쪽에 아브라함이 보였으며, 그의 품들에 있는 나사로도 같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자기가 보고 싶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셔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서로 대화가 가능했습니다. 영의 세계는 이렇듯 신비하기도 합니다. 음부와 낙원은 지구 땅 속이ㅛ 저 하늘 저 멀리에 있는 장소인데, 그래서 너무너 멀리 있기에 서로를 볼 수도 없고, 혹시 말한다고 해도 그 음성이 들리지도 않을텐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어떤 특별한 조치를 취해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이내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청원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의 품들에 있는 한 사람, 곧 나사로를 보내어, 불길 속에서 목말라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자기를 위해 물 한 방울을 찍어서, 자신의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분명 자기의 조상이고 자기는 그의 후손이기 때문에, 자기자신의 조상에게 그 정로도 부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둘 사이가 얼마나 먼 거리입니까? 그리고 영의 세계에서 음부와 낙원은 결코 오갈 수 없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실을 부자는 아직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4. 부자는 음부에서 두 번째로 어떤 청원을 했나요?

  그러자 부자는 음부가 이제 어떤 곳인지를 곧장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음부에서 아무리 기도를 하고 청원을 해도, 자신의 상태를 좀 더 낫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상태나 운명이 바뀌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그러자 부자는 금방 또 한 가지의 청원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은 이미 음부에 떨어져서 더 이상 아무것도 요청할 수도 없고, 요청해도 쓸데 없는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직 목숨이 살아있는 다섯 명의 형제들은 지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죽은 나사로를 부활시켜 자기의 아버지의 집에 보낸다면, 자기의 다섯 명의 형제들이 나사로의 말을 듣고 그들만큼은 자기가 갇혀있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 지극히 고통받는 장소에 오지 않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비록 자신의 운명을 절대 바뀔 수가 없겠지만 아직 살아있는 형제들의 운명만큼은 바뀔 수가 있음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5. 아브라함은 왜 부자의 두번째 청원을 거절했나요?

  아브라함은 할례받은 이들의 족장으로서 할례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자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으면 할례받은 자였던 그 부자의 청원을 들어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할지라도, 부자의 다섯 형제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서 자신의 형제들을 찾아가 이야기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마음은 이미 닫혀 있고, 천국과 지옥에 대해 관심이 없으며,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어서, 죽은 즉시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데, 그들이 설령 기적을 본다고 할리라도 기적이 그들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현재 모세와 선지자로부터 권함을 듣지 않고 있는데, 그들이 이적을 본다고 한들 어찌 그들에게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혹 이 땅에서 살아있을 때에 모세와 선지자의 외침을 들었는데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사람은 그 어떠한 기적을 보거나 체험해도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모세는 모세오경 곧 율법을 가리키는 것으로 메시야에 대한 예언과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법들을 가리키고, 선지자는 회개하라고 외치는 선지자의 외침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서 살아있을 때에 메시야가 누군지에 대해 들었어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어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회개하라는 선지자의 외침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말씀과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는 결국 부자의 운명에 처하고 말 것이라는 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내용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그분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신뢰해야겠습니다. 또한 회개하라는 주의 종들과 성령의 음성에 즉시 답하여 죽을 때까지 꼭 회개하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죽는 날에 천국에 긍휼을 입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20년 09월 10일(목)

정병진목사

 


Articles

9 10 11 12 13 14 15 16 1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