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76)순례자인 아브라함이 붙들었던 신앙의 2가지 중심 축(창12:5~9)_2021-04-23(금)

by 갈렙 posted Apr 23,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oMfefbe7KyA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76)순례자인 아브라함이 붙들었던 신앙의 2가지 중심 축(창12:5~9)_2021-04-23(금)

https://youtu.be/oMfefbe7KyA

 

1. 아브라함의 순례의 여정의 첫번째 정착지는 어디였나요?

  아브라함이 태어난 곳은 '갈대아우르'였지만 그의 삶의 터전은 '하란'이었습니다. 오늘 5절 말씀을 보면, 그가 하란을 떠날 때에 그가 하란에서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목자들과 노비들)을 데리고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는 그가 갈대아우르를 떠나서 하란에 정착하여 상당기간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자기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더러 하란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땅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확실히 떠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세 가지 것은 이미 우상숭배로 인해 여러 가지 저주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친척이 살던 하란을 떠나, 가나안땅에 도착했는데 그가 도착해서 첫번째로 장막은 친 장소는 바로 세겜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세겜 땅에 있는 모레 상수리나무 아래에 장막을 쳤던 것입니다(창12:5~6).

 

2. 아브라함이 세겜에 도착했을 때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브라함이 세겜에 도착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세겜땅까지 온 상태이지만 세겜에도 하나님이 계신지 아닌 계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나섰던 바로 그 자리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받게 될 구체적인 복도 일러주셨습니다. 이것은 이전에 없었던 복의 선언입니다. 이것은 "내가 이 땅을 네 씨에게 주시라(창12:7)"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첫째, 그가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 대하여 약속하고 보증하는 말씀이요, 둘째, 그의 후손에 관하여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복에 관한 말씀을 주셨지만, 거기에는 아브라함이 차지하게 될 땅에 대한 그 어떤 약속의 말씀도 없었고, 또한 후손에 관한 말씀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움직이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어 구체적으로 그가 받을 복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아브라함에게 임한 저주를 끝내시겠다는 것이요, 그가 받을 진짜 복이 무엇인지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따라가면 이처럼 복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 들어와서 많은 성도님들께서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한 번 복주신다고 약속했다면, 우리가 아무것도 행하지 않았는데 복을 받을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져 있다고 해서 모두가 복이 되는 것이 아니며, 그 복이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가 움직일 때에 바로소 복이 우리 손에 쥐어지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나타나신 가나안 땅의 첫번째  정착지에서 아브라함이 행한 일은 무엇이었나요?

  세겜 땅에 하나님이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가 받을 복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즉시 바로 그 자리에 제단을 쌓았습니다(창12:7). 또한 거기에서 벧엘 동쪽 산으로 이동하여, 벧엘과 아이 성 사이에 장막을 쳤을 때에도 아브라함은 또 제단을 쌓았습니다(창12:8).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자신이 이동하여 머물게 된 장소나 하나님과 특별한 만남이 있던 장소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한편 이후에도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았으니 헤브론에 가서도(창12:18), 그리고 모리아산에 가서도(창22:9) 그는 역시 제단을 쌓았습니다. 다 기록되지는 않았겠지만 아브라함은 늘 이렇게 제단을 쌓았을 것이라고 추정이 됩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게 된 것은 자기가 그 방법을 고안해서 만든 것이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은 아마도 그의 조상 셈에 가서 그 셈으로부터 배웠을 것입니다. 셈은 당연히 노아에게서 배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특별했으니, 그도 평소 때에는 하나님을 향하여 늘 제단을 쌓았으며 홍수 이후에도 제단을 쌓았습니다(창8:20~21).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제단을 쌓는 노아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도 복을 주신 것입니다. 

 

4.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을 뜻하나요?

  이처럼 아브라함은 자신이 가는 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생겨났기에 언제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희생제물로 거기에 양과 소를 바쳤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첫째, 아브라함이 경건한 믿음의 조상에게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아담-넷-노아-셈-에벨로 이어지는 참된 믿음의 조상들로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잘 배웠던 것입니다. 즉 신앙의 유산을 잘 물려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을 때에 제사만 드렸던 것이 아닙니다. 그때 하나님께 기도도 드렸으니, 그것을 잘 대변해주는 말씀이 바로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12:8)"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자신이 정착하는 모든 곳에서 그리고 하나님을 만난 자리에서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방법이었고, 그렇게 행함으로 자신의 지은 죄들을 용서받게 되었으며, 거기에서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다짐할 수 있었언 것입니다. 둘째, 그가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였다는 것을 뜻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만을 자신의 구원자요 인도자로 믿겠다는 표시롤 한 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셋째, 아브라함의 이러한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전해져서 결국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 헌신을 다지려는 자는 예배를 드리는 삶과 기도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예배와 기도는 기적을 가져다 줍니다. 예배와 기도의 삶이야말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중심의 삶을 살겠다는 강력한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을 받게 되었고,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으며,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5. 사람이 복을 받는 2가지 방법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한 마디로 말씀을 따라가고 예배와 기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진짜 복을 받기 위해서는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것도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불순물이 가미된 것을 따라가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고, 수고했다고 하더라도 복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자신이 열심히 살았는데도 하나님의 말씀의 본뜻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있다면, 그가 수고한 것은 결코 복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사실 누구에게나 유효합니다. 하지만 그 말씀대로 사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결정의 문제요 행동의 문제입니다. 말이나 생각으로만 끝내려하지 말고 꼭 실천으로 옮기는 신앙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예배드리는 삶과 기도하는 삶을 항상 중심에 놓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고, 하나님이 나타나신 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는 그가 예배드리는 삶과 기도하는 삶을 꼭 병행하며 잘 살아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가 진짜 복을 받으려면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배에 빠지지 말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고 기도회를 통해 하나님께 청원하심으로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4월 23일(금)

정병진목사

[크기변환]20210423_071144.jpg


Articles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