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기강해(03) 애굽궁중생활 40년과 미디안광야생활 40년(출2:11~25)_2021-08-18(수)

by 갈렙 posted Aug 23,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JEhdZBmoDf0

한 사람이 태어나서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서는 무엇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출애굽기 2장에서는 2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실력이요 또 하나는 인격이라고 한다. 둘 중에 하나가 부족할 때에는 한계가 온다. 그리고 끝까지 오랫동안 쓰임 받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만큼은 2가지가 다 준비될 때까지 강하게 훈련시키셨다. 실력을 위해 40년, 인격을 위해 40년을 준비시켰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모세처럼 80년을 준비시킨 사람은 없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왜 모세를 어렸을 적에 애굽에 보내어 그로 하여금 과외를 받게 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무명의 40년간의 광야가 필요했는지를 파악하게 된다. 지금 당장 쓰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원망하지 말라. 그리고 쓰임 받고자 하는 열망이 있을지라도 자신에게 실력과 인격이 다듬어졌는지 확인해 보라. 인격이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기 마련이다. 준비하자. 그리고 또 준비해 보자. 그것이 주님께 합당하게 오래 쓰임받는 비결이다. 모세의 80년의 준비, 이제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2021-08-18(수) 수요기도회
제목: 애굽기강해(03) 애굽궁중생활 40년과 미디안광야생활 40년(출2:11~25)_동탄명성교회정병진목사
https://youtu.be/JEhdZBmoDf0

 

1. 들어가며

  하나님은 일하실 때 반드시 어떤 사람을 준비시켜서 사용하신다. 출애굽의 영도자 모세도 그중에 한 사람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 받도록 준비되기 위해서는 무엇무엇이 필요한가? 그래서 오늘은 모세의 지도자로서의 준비 과정 중에 2가지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모세의 120년의 인생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태어나서 애굽 궁중에서 자라난 40년이 제1기다. 그리고 애굽인 살인 후 애굽에서 도망하여 미디안 광야에서 보낸 40년은 제2기다. 그리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것이 제3기다. 그중에서 출애굽기 2장은 그의 출생 과정(출2:1~10)에 대해 소개하며, 이어서 40살에 일어난 살인 사건 및 미디안 광야로의 도주 사건(출2:11~22)을 다룬다. 그리고 고통 중에서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출2:23~25)가 소개된다. 출애굽할 때가 다 되었다는 증거다. 그중에서 오늘 이 시간에는 모세의 출생 과정 이후에 40세까지의 애굽의 궁중 생활과 그리고 미디안에서의 40년의 생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왜 그에게 8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2. 사람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 위해서 준비되어야 할 2가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으려면 무엇무엇이 준비되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출애굽기 2장의 모세의 기록을 통해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의 2가지 조건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실력'과 '인격'이다. 주님 앞에 진정 합당하게 쓰임 받으려면 먼저는 실력이 갖추어져야 하고, 인격이 준비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둘 중의 어느 것 하나가 부족하거나 혹시 빠져 있다면 그 사람은 쓰임 받다가도 그 쓰임에서 제외되거나 오래 쓰임 받지 못한다. 일시적으로 잠깐 쓰임 받다가 끝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손에 붙들려 오래 쓰임 받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2가지가 준비되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모세도 하나님께 쓰임 받도록 2가지 것이 준비되어진다. 그런데 그 2가지를 얻는데 모세는 무려 8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먼저, 실력을 갖추기 위해 40년을 보내야 했고, 그리고 나서 인격을 갖추는데 또한 40년을 보내야 했다. 그만큼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은 쉽고도 어려운 작업이다. 결국 모세는 자신의 나이가 8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게 되고 드디어 애굽과 바로 앞에 서게 된다.

 

3. 모세는 어떻게 실력을 갖춘 자가 되었는가?

  먼저, 우리는 모세가 어떻게 지도자로서의 실력 곧 지혜와 능력을 갖추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모세가 어떻게 실력을 갖추게 되었는지에 대해 출애굽기에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정말 중요한 것이 빠져 있을 때에는 어딘가에 반드시 그것을 기록하게 함으로서 보완을 해 주신다. 모세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보자. 노아가 방주를 지었다는 것은 창세기 6~7장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노아는 방주만을 짓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노아는 당시 의를 전파하기도 하였던 것이다(벧후2:5). 당시의 타락한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창세기의 기록에는 그러한 말씀이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실천해야 했던 또 하나의 사명을 기록하게 하셨으니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다. 마찬가지로 모세의 제1기 40년도 그렇다. 그가 태어난 이후 잠시 동안 유모인 자신의 친모에게서 길러졌다. 그리고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40세가 될 때까지 성장한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바로의 딸의 양자이자 바로의 후계자로 길러졌는지 출애굽기에는 그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모세의 기록에는 약 35년의 공백기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40세에서 80세까지는 조금 나오며(출2:11~22), 그리고 80세에서 120세까지는 그가 어떻게 쓰임 받았는지가 정말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출3장~신34장).

  그렇다면, 모세는 어떻게 자신의 실력을 길렀던 것일까? 아니 왜 모세는 실력을 길러야만 했던 것일까? 그것은 신약의 스데반 설교에 언급된다(행7:22). 그리고 모세가 애굽 궁중에서 40세까지 살고 히브리인들을 위해 살기로 마음 먹었다는 것도 스데반의 설교에 나온다(행7:23). 그런데 스데반은  모세의 애굽 궁중 생활 40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행7:22)" 그랬다. 모세는 약 40년의 시간을 당시 세계 최고의 나라에서 지냈으며, 애굽 사람의 뛰어난 모든 지혜를 다 터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는 이제 말과 하는 일에 있어서 능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모세를 애굽 궁중에 보내어 과외를 시켰던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켜 천하 만국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시 세계 최고의 제국인 바로 앞에 서게 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여러분은 장래 바로 앞에 섰는데 주눅이 들어 아무 말도 못하는 모세를 생각해 보았는가? 지혜가 부족하여 애굽의 술사들의 지혜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세를 생각해 보았는가? 그러한 모세는 하나님의 명예를 드러낼 수가 없다. 거짓 우상을 섬기는 사람 앞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소개할 자로서 합당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서 왜 애굽 전역에 모세를 보내어 10가지 재앙을 내리도록 했는지를 말이다. 그것은 애굽 사람과 바로로 하여금 여호와가 누군지를 알게 하려고 함이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장차 40년 뒤에 바로 앞에 서서 하나님을 대신해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미리 애굽에 보내 과외를 시킨 것이다.

 

4. 모세가 애굽 궁중 생활 40년을 보내면서 갖게 된 자의식은 무엇이었는가?

  그리하여 모세는 애굽 궁중에서 40년을 보냈다. 그래서 실력도 갖추었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 속에 모세는 새로운 열망이 속에서 차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은 애굽 사람이 아니라, 종노릇하며 고통 당하고 있는 히브리인의 아들이라는 자의식이었다. 그가 어떻게 그것을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출애굽기에서는 침묵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자의식의 꿈틀거림, 다시 말해 그가 히브리인을 자기의 민족으로 여기고 그들을 위해서 자신의 역할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그는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출애굽기가 아닌 다른 성경이 언급하고 있으니, 그 성경은 바로 히브리서다. 히브리서에서는 그가 40살이 될 무렵 그의 속에 있는 강렬한 열망이 무엇이었는지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히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그랬다. 그의 히브리인으로서의 자의식은 어렸을 적에 유모이자 친모였던 요게벳으로부터 듣고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애굽 궁중에 있으면서도 가까이 살고 있던 히브리인들과 접촉할 기회를 가졌고 그때에 어머니 요게벳이나 누나 미리암 혹은 형인 아론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들었을 수도 있다. 자신이 지금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히브리인 민족의 한 사람이며, 히브리인이 영원히 살 곳은 애굽이 아니라, 가나안 땅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애굽에 있는 히브리인들을 구출해 내는 어떤 일을 하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형제 이스라엘 민족을 돌아볼 생각을 했던 것이다(행7:23). 왜냐하면 그가 40세가 되었을 때에(B.C.1486), 그의 강력한 열망이 표출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애굽인 살해 사건이었다. 하루는 애굽인과 히브리인이 싸우는 것을 보았다. 그가 보기에는 히브리인이 원통한 일을 당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모세는 애굽 사람을 쳐죽인다. 모세는 그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히브리인들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깨달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그 다음날 알게 되었다. 

  다음날이었다. 이번에는 히브리인들끼리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러자 모세는 어떻게 같은 동족끼리 싸우느냐면서 말리게 된다. 하지만 그의 형제는 모세를 밀치며 말하기를, "누가 너더러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고 하면서, "어제는 애굽 사람을 쳐죽임과 같이 오늘은 나를 죽이려하느냐"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모세는 즉시 2가지를 깨닫게 된다. 첫째, 자신이 전날 저질렀던 행동이 무모한 짓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히브리인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자기를 도와줄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히브리인들은 자기를 구원자로서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둘째, 모세의 정적이었던 바로 왕 곧 투트모세3세(B.C.1504~1448)에게 자신을 제거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즉시 애굽을 떠나 멀리 달아나게 된다.

  그렇다. 그가 애굽 사람을 쳐죽일 정도로 자기 민족을 위해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내면의 상태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이미 모세는 애굽 왕자의 타이틀을 버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모세는 이미 고통 당하는 히브리인과 함께 하려고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히브리인들의 노예 탈출을 위해서 필요한 행동은 아니었다. 하나님이 시키신 방법이 아니라 혈기를 앞세운 자기의 앞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5. 하나님께서 쓰임 받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그러자 모세는 우선 애굽의 힘이 미치지 않는 지역으로 도망치게 되는데, 오늘날 아카바만(홍해)의 건너편에 있는 미디안 땅으로 도망을 치게 된다. 모세는 자신의 실력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펼쳐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혈기를 따라 된 것임을 알고는 그것이 자신에게 자기와 자기 민족에게 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자 멀리 도망친 모세는 거기서 무명의 세월을 보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미디안 광야에서의 40년이다. 모세가 미디안으로 도망친 후, 남자 목자들에 의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미디안의 제사장의 일곱 딸들을 도와 양떼에게 물을 먹도록 도와준다. 그 일을 계기로 모세는 미디안의 제사장 르우엘(이드로)의 집으로 초대되었고 그 집에서 살게 된다. 그러자 모세를 예사롭지 않다고 판단한 르우엘은 그를 맏사위로 맞이한다. 그리하여 십보라와 결혼한 모세는 거기서 아들들을 낳고, 르우엘(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면서 광야 40년이라는 무명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것은 그의 혈기를 비롯한 인간적인 욕심을 다 내려놓는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까지 말이다.

  그렇다. 사람은 실력만으로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인격도 다듬어야 한다. 인격도 연마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보라. 그분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셨다(마11:29).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인류 최대의 막중한 일을 끝까지 잘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모세에게는 실력은 있었으나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특히 자신의 혈기 하나도 다스리지 못했던 것이다. 혈기만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는 없지 아니한가? 다듬어지지 아니한 인격으로는 오히려 남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줄 뿐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로서 쓰임 받아야 할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상처를 치유 받고 주의 일을 시작해야 한다. 모세에게는 그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이 다듬어지게 하는데 모세에게는 4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6. 나오며

  한 사람이 하나님께 붙들려 아름답게 쓰임 받기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훌륭한 실력이요 또 하나는 좋은 인격이다. 모세에게 처음 애굽 궁중에서 40년이라는 시간은 실력을 갖추는데 필요한 시기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하나의 열망이 속에서 싹트고 있었으니 그것은 히브리 민족에 대한 자의식이었다. 자기도 고통받고 압제받고 있는 히브리인과 같은 혈통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을 묻지 않았다. 아직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혈기로서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자 떨쳐나섰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과 민족에게 화를 자초하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광야로 가야 했다. 거기에 40년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고, 거기서 인격을 다듬어야 했다. 그러자 이제 하나님께서 그를 쓰시기 위해 그를 찾아 오신다(출3장).

 

2018년 8월 29일(수)
정병진목사

 


Articles

87 88 89 90 91 92 93 94 95 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