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하나님에 의해 선택받은 자라 하더라도 하나님에 의해 쓰임 받을 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자신이 과연 합당한 자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정말 준비되고 있는지도 철저히 확인해 보아야 한다. 특히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실 것이라고 하는 확실한 표징이 자신에게도 있는지 그리고 자신과 함께 할 동역자가 준비되어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 실패가 적다. 그래야 쓰임 받되 오래 쓰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모세가 하나님께 쓰임 받기 전, 하나님과 다섯 차례에 걸친 변론을 하는데, 그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종으로 철저히 준비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표징의 3가지 의미가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큰일을 감당할 자라도 작은 일에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살펴보고자 한다. 이제 하나님과 모세의 변론 현장으로 가 보자.
2021-08-30(월) 새벽기도회
제목: 출애굽기강해(05) 표징을 가지고 애굽으로 들어가는 모세 및 아론의 마중(전체)(출4-1~31)_2021-08-30(월)
1. 들어가며
모세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을 때 그는 첫 번째 부름에 그냥 따라 나서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무려 다섯 번이나 하나님과 변론에 변론을 거듭한 끝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노라고 결단한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모세가 믿음이 없다느니, 아니면 모세가 불순종하는 사람이라느니 하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런데 정말 모세가 믿음이 없고 불순종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과 다섯 차례나 변론을 했다고 보아야 할까? 감사하게도 우리는 모세가 하나님과 변론하는 그 다섯 차례의 과정을 직접 살펴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에서 하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실 것과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맡기실 때에는 철저한 준비를 하고 시작하신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오늘은 계속된 모세와 하나님의 변론들 가운데 3번째와 4번째와 5번째의 변론을 살펴볼 것이며, 그리고 나서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애굽으로 출발하는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애굽으로 향하던 모세가 갑자기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때 애굽으로 돌아가던 노정에 모세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또한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2. 모세는 왜 다섯 번씩이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지 않았던 것일까?
모세는 이전에도 두 번씩이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한 바 있었다. 첫 번째는 자신이 없어서 못 간다고 했다(출3:11).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출3:12). 두 번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 자신을 보낸 분이 누구냐고 물어올 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를 여쭈어보았다(출3:13).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I am that I am)"라고 말씀하심으로, 당신은 자존자이시자 전능자이신 것을 알려 주셨다(출3:14).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게 된다. 이것은 출애굽기 3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제는 출애굽기 4장으로 넘어와서 세 번째부터 네 번째, 다섯 번째 변론이 시작된다. 세 번째는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이 모세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할 때에 어떻게 그들에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출4:1).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3가지 표징을 그들에게 보여 주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보이는지 그 방법까지 일러 주었다. 그리고 네 번째는 그래도 자신은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이므로 못 간다고 말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 중에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소경이나 눈 밝은 자를 누가 만든 것이냐면서, 하나님께서 다 주관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말하게 할 하나님께서 모세의 입과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출4:11~12). 이제 마지막 다섯 번째로 모세는 보낼 만한 자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출4:13).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말 잘하는 모세의 형, 아론을 준비해 놓았으니, 너는 할 말을 아론에게 알려 주고, 아론은 말하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모세가 받아들이고 이제 애굽으로 떠나게 된다.
그렇다면, 모세는 왜 하나님에게 다섯 번씩이나 변론하면서 자신은 애굽에 가지 않겠노라고 말했던 것일까? 정말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었던 것일까? 만약 그것이 아니었다면, 그의 불순종하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아닐 것이다. 모세는 애굽 궁중에서 40년 동안 살았으며,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살았다. 하지만, 정작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개인적으로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셨던 언약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다. 특히 그는 자기 민족 곧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하나님도 알아야 하고, 애굽도 알아야 하고, 이스라엘 민족도 알아야 했다. 그래서 비로소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하나님의 뜻을 묻고 있는 것이다. 마치 기드온이 미디안을 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후에, 정말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실른지를 양털을 가지고 시험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모세는 쉽게 앞으로 달려 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을 정확히 알고 가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는 조상들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적군인 애굽과 자기 민족인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 알고 싶어했다. 그러니까 자꾸 질문을 던졌고 때로는 안 가겠다고 하나님께 말했던 것이다. 결국 모세는 다섯 번에 걸친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무슨 사명을 가지고 어디가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3.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 준 3가지 표징은 무엇인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로만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눈에 보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을 그에게 표징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바로 앞에서 행할 수 있는 3가지 표징이었다. 첫째는 지팡이를 던지면 그것이 뱀이 되고 다시 그것의 꼬리를 잡으면 지팡이가 되는 표징이었다. 둘째는 손을 자기의 품에 넣었다가 빼면 문둥병이 발하고, 또 그같이 행하면 문둥병에서 낫는 표징이었다. 셋째는 나일강 물을 퍼다가 땅에 붓게 되면 물이 변하여 피가 되는 표징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라. 이 3가지 표징들은 모세와 상관없는 것들이 아니며, 멀리 나가서 구해 와야 할 것들도 아니다. 모세의 주변에 있고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을 시키실 때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까지 시키시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것을 가지고 그것을 한층 더 극대화시켜 일을 시키신다. 지팡이와 모세의 손과 나일강의 물이 그랬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이 3가지 표징이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지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지팡이 표징은 일반적으로 표적으로서의 표징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표징이 말해 주는 심오한 뜻이 있다. 지팡이는 모세의 손에 있을 때에는 양 떼를 치는 목자의 지팡이였지만 모세의 손을 떠나는 순간 그것은 뱀(나하쉬, 창3장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를 꾀는 바로 그 뱀)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지팡이가 통제 안에 있을 때에는 지팡이로서 본래의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지만, 자기의 손 밖으로 나갔을 때에는 뱀처럼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평범한 목자의 막대기라도 하나님께서 붙들어 사용하시면 그것은 아주 귀한 도구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은사와 달란트를 철저히 성령의 통제에 내어 드릴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문둥병 표징은 아무리 자신이 실수하여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품으로 나아가 그분 앞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다시 고침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표징이었다. 모세는 첫 번째 표징과 두 번째 표징의 차이를 알고 있었다.
셋째, 피의 표징은 이렇다. 이것은 한 번 강물이 피로 변해 버리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는 표징이다. 한마디로 심판의 표징인 것이다. 그렇다. 두 번째 표징이 다시 회복이 가능한 표징이라면, 세 번째 표징은 회복이 불가능한 표징으로서 심판으로서의 표징인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두 번째 표징까지 경험한다. 하지만 세 번째 표징은 애굽에 내린 표징이었다. 그래서 모세는 자신의 지팡이를 철저히 통제 아래 두었으며, 실수해도 회개하여 용서를 구할 줄 알았으며, 심판 받을 짓을 하지 않았다.
4.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과 애굽에 들어갈 때에는 동역자 아론이 필요했다.
모세는 사실 히브리인이기는 했지만 노예 생활을 안 해 본 사람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질적인 고통을 맛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형 아론은 달랐다. 모질고 기나긴 핍박과 압제를 견디어 온 장본인이었다. 그러니 모세가 바로 왕에게 찾아갔을 때에, 히브리인들의 실제적인 노예 상태를 생생하게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은 아론이었다. 그랬다. 모세에게도 또 다른 한 사람의 동역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모세를 보완해 줄 사람 말이다. 더욱이 그는 말 잘하는 달변가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혼자 못 가겠다고 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그의 형 아론을 붙여 주셨다. 그래서 아론은 죽는 그날까지 모세의 지근거리에서 모세의 협력자가 된다. 그렇다. 큰일일수록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 때로는 짐을 나눠져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부재시에는 대신 맡아 줄 사람이 필요했다. 모세에게는 그 사람이 바로 동역자 아론이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것은 동역자를 통해서 보완하시고 채워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5. 하나님께서 왜 애굽으로 돌아가는 모세를 길에서 만나 그를 죽이려고 하셨을까?
그런데 이제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가려다가 큰일을 당할 뻔 했다.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돌아가는 모세를 만나 그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왜 그러셨을까? 사실 미디안을 떠나는 모세의 마음은 든든하고 힘이 솟구쳐났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신다고 분명하게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의 뜻인 '여호와'라는 의미도 알았으며,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표징 3가지도 같이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할 말도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그에게는 언제라도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동역자 아론을 붙여 주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장인 이드로의 승낙을 필한 후 가족(아내와 두 아들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런데 돌아가던 길에서 어느 여관집에 머물러 있을 때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려고 하신다(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무서운 일이다). 그때였다. 그의 아내 십보라가 차돌을 취해 둘째 아들 엘리에셀의 포피를 자르고 그 피를 모세의 다리에 대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모세가 죽임 당할 처지에서 놓임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막중한 사명을 안고 가는 모세마저 죽이려고 하셨던 것일까? 그것은 모세의 부인이었던 십보라의 행동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십보라가 미디안을 떠나기 직전에 둘째 아들 엘리에셀을 낳은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아들을 낳은지 8일이 되었지만 노중에 할례를 행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십보라의 반대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언약 백성으로서는 절대적으로 해야 할 일을 망각한 행위였던 것이다. 비록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거대한 사명을 부여받은 자라 하더라도 집안에서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큰일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찮은 일도 소홀히 여기면 안되는 것이다.
6. 나오며
애굽으로 들어가야 하는 모세에게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 확실한 표징을 갖고 싶어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과의 세 번째 변론을 시작하여, 3번에 변론을 통해서 3가지 표징을 얻는다. 하지만 모세는 그때 표징을 잘못 사용해서 자신이 받게 될 징계와 심판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가 더 필요했다. 그것은 자신과 함께 할 동역자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 잘하는 아론을 그에게 붙여 주셨다. 그렇다. 모든 사람과 도구들은 언제가 하나님에 의해 합당하게 쓰임 받을 날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종의 길을 가는 사람은 자신과 함께 할 동역자와 표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모세에게 주어졌을 때, 모세는 즉시 떨쳐 일어나 애굽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곧이어 둘째 아들의 할례 미시행으로 인하여 큰 고초를 겪어야 했다. 큰일로 민족 해방의 일을 앞둔 자라 할지라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아니되었던 것이다. 지도자들은 늘 자신이 하는 일에 신중함을 보여야 하고 충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동역자를 잘 만나야 한다. 그리고 큰일을 감당하는 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가정사에 있어서 부모로서 감당해야 할 일을 소홀히 여겨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이 그를 쓰신다. 아멘.
2021년 09월 30일(월)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