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강해(06) 애굽의 바로왕과 이스라엘백성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여호와와 그분의 자기선언(출5:1~6:13)_2021-09-05

by 동탄명성교회 posted Sep 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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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difswL-UgVU

우리에게는 모세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 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대지도자였으며, 시내산에서 거룩한 율법을 받아 반포한 자요, 하나님을 대면하여 알던 자요, 구약을 대표하는 인물들 중 두 명 가운데 하나다 등등 말이다. 하지만 모세가 처음부터 그렇게 쓰임받았을까? 아니다. 모세도 무려 80년의 세월을 하나님과 함께 보내면서 점차적으로 하나님을 알아간 것이지 하루 아침에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그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쓰임받던 초기 시절에는 정말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이었다. 가서 시도해 보았다가 안 되면 금방 하나님께 나아가서, 자기는 입술이 뻣뻣하고 둔한 자이니 자신은 못하겠다고 툴툴거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이 누구인지를 소개해주셨다. 그중에 가장 큰 일은 바로 그분이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분이  여호와라는 말 속에는 무슨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일까? 모세는 과연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게 되었을까? 오늘은 그의 사역 초창기에 있었던 하나님의 자기 소개에 대해 좀 더 깊게 들여다보도록 하자.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하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압제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여 자유인이 되게 하려고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도 고통스러워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려고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산으로 데려가려고 그렇게 했을 것이다. 시내산에 데려가서 율법을 주시려고 그렇게 했을 것이다. 혹은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만의 힘으로는 절대 애굽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으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런 대답들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빼내신 궁극적인 목적은 이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그 땅에 들어갈 때가 되었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땅으로 데려가시기 위해 애굽에서 구출해 내신 것이다. 즉 약속의 땅에 데려가시려고 구출하신 것이다. 하지만 이것 이외에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해내신 다른 숨겨진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과도 상당한 관련성이 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숨겨진 뜻과 의도를 알고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면 우리는 훨씬 더 좋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다 더 빨리 인생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들을 찾아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해내셨는지 그 숨겨진 이유를 찾아보고자 한다.

 

2. 애굽왕 바로를 찾아가 히브리백성들이 광야로 가서 절기를 지키도록 해달라고 요청하는 모세와 아론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가지 표징을 가지고 미디안 땅에서 애굽 땅으로 들어온 모세는 이제 아론과 더불어 포부도 당당하게 애굽왕 바로를 찾아간다(출5:1).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그에게 전달한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이다(출5:2)" 하지만 바로는 단호히 모세와 아론의 말을 완강히 배격한다. "여호와가 누구관데 내가 그의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을 내보내 주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모르니 결단코 그럴 수 없노라. 너희들이 지금 시간이 남아도는가 본데, 어디 가서 절기를 지키겠다고?" 그리고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욱 더 무거운 노역을 시킨다. 이전에는 벽돌을 구울 때에 짚을 주었었는데, 이제부터는 들에 나가서 곡초 그루터기를 주워서 벽돌을 예전 수효대로 만들라고 지시한 것이다(출5:7). 하지만 하루 아침에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자, 애굽의 감독들이 이스라엘의 기록원들을 때리며 왜 어제와 같이 오늘 벽돌의 수효를 내놓지 못했느나고 다그친다. 그러자 참다 못한 이스라엘의 기록원들은 바로를 찾아가 하소연하기 시작한다. "바로 왕이시여, 어찌하여 당신은 당신의 종들에게 이렇게 행하시나이까? 종들에게 짚도 주지 아니하고 예전처럼 벽돌을 만들라니요, 우리가 그일을 감당치 못함으로 지금 매맞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종들의 허물이 될 것입니다(출5:15~16)." 하지만 바로는 완강했다. 그런 하소연은 절대 소용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기록원들은 이제 자기들에게 화가 미친 줄 알고 즉시 나오는데,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모세와 아론을 만나서는 모든 비난의 화살을 그들에게 쏘아댄다. "당신들이 가서 바로에게 제사드리러 가겠노라고 요청함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가 바로와 바로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어버렸고 그들의 손에 칼을 쥐어 있어 우리를 죽이게 하고 있소. 당신들이 이 일에 책임을 지시오(출5:21)" 결국 모세의 아론의 청원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학대만을 더 받고 말았다.

 

3. 더 큰 노역을 할당받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를 찾아가야 했는가?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볼 일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가 모세와 아론의 요청을 거절하고 더 고된 노역에 종사토록 지시했을 때, 이스라엘백성들은 누구를 찾아가야 했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바로의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의 요청은 결코 수용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것은 애굽의 노동력을 쉬게 하는 것이요, 애굽에게 큰 손해를 끼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의 거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그때 과연 누구를 찾아가야 옳았을까? 자기들을 더 압제하는 애굽왕에게 하소연을 해야 했을까 아니면 그것을 요청하도록 명령했던 하나님에게 찾아가야 했던가? 문제는 이것이다. 히브리인들에게 더 큰 노역을 시킨 바로를 찾아간들 바로가 과연 순순히 이스라엘의 청원을 들어주었겠느냐 하는 것이다. 아니다. 여기서 애굽왕 바로는 "사탄마귀"를 상징한다. 사탄마귀는 자기의 백성이 자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거기로 찾아가 하소연하면서 빈다고 해서 사탄마귀를 이스라엘에게 긍휼을 베풀 것 같은가? 사탄마귀는 피도 눈물도 없는 놈들이다. 그들은 지금도 지옥에서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 인간을 고문하고 피를 짜서 마시는 잔인한 놈들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자비를 구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계시며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자로서 자신을 가르쳐준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가야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직은 하나님이 누군지를 잘 몰랐기에 그들은 하나님을 찾아가지 아니하고 바로에게 하소연하러 찾아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 그렇게 하지 말라. 그것은 바보짓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결코 나아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탄마귀는 긍휼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인간을 괴롭히고 죽이고 학대하는 것을 기뻐하는 잔인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4.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소개하신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모세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자기들이 행한 일이 히브리백성들에게 고통만 가중시켰음을 말씀드린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전에는 가르쳐주지 아니한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은 당신이 누군지에 대해 더 자세히 소개해주셨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나는 여호와니라"라는 것이다(출6:2). 그런데 이것은 이미 모세가 미디안땅의 시내산 가시떨기나무에서 들었던 하나님의 자기소개였었다. 그때 분명 하나님께서는 "나는 여호와라. 나는 스스로 있는 존재니라"고 가르쳐주셨다(출3:14). 맞다. 그때에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그분은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분명히 알려주셨다. 그리고 그뜻은 첫째로, 나만 스스로 있는 존재 곧 자존자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둘째로, 나만이 모든 것을 존재케 하는 이 곧 전능자라는 의미였었다. 하지만 이번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두번째 방면으로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괴로워하는 모세를 위로하시면서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앎므로,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출6:2-8 나는 여호와이니라.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4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7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그렇다. 여기서 당신 자신이 누군지를 소개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자신을 누구라고 새롭게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여호와 그분은 바로 "구원자"라는 것이다(출6:6~7). 이전에 미디안땅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자존자"요 "전능자"라고 소개하셨다. 하지만 이번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구원자"라고 소개하신 것이다.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신음하고 고통받는 것을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존재 곧 그들을 구원해내고야마는 구원자이신 것을 소개해주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계신 전능자의 또 다른 측면의 자기소개인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고통받고 억압하고 힘들어하고 신음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는 분이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 하나님더러 가나안땅과 같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는가? 한 번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그렇게 약속해주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으셨기 때문이다. 그것이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진 그분의 마음이요 그것이 그분의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 주는 것이 그분의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뭐라고 달리 설명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기를 기뻐하셨고 그렇게 원하신 것이니 말이다.

 

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민족을 출애굽시킨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출해내시려는 또다른 의도와 뜻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시려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인도해 들이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주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그렇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에게 그렇게 해 달라고 요청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당신의 말을 잘 듣고 순종하자 그렇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본토 친척 아비집이라도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와주었기 때문에 그것이 기뻤던 것이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그렇게 약속해주신 것이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니라(창15:6~7)" 그렇다. 여기서 우리는 좋으신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이처럼 배려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다. 우리 인간이 그분에게 해 드린 것은 너무나 적은 것이지만, 그분은 우리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부어주시는 분이시다. 그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요, 그분이 육신을 오셨으니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당신이 누군지를 알려주고 싶으셨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아는 이들이 없었다. 모세와 아론도 잘 모르고 있었다. 더군다나 애굽왕 바로는 더더욱 잘 모르고 있었다.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이스라엘백성들을 내보내겠느냐?" 그리고 430년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사람들도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이 누군지를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누군지를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으신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영 단번에 애굽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을 구출해버릴 수 있으셨으나 그렇게 행하지 않았다. 애굽사람들이 하나님이 누군지를 잘 알 때까지, 일부러 하나씩 하나씩 10가지 재앙을 내리면서 당신이 누군지를 그들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애굽인들과 바로가 믿고 신뢰해왔던 모든 것들(애굽의 신들)은 사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나약한 것들임을 알게하고, 오직 상천하지에 여호와만이 신들의 신이시며, 하나님만이 주들의 주이신 것을 드러내어, 그분만이 전능자이며 구원자이심을 알려주시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처럼 바로의 거절과 압제를 통해서, 모세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한 번 더 알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괴롭히고 압제하는 절대 두고 보지 않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당신의 백성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반드시 그들을 구출해내시고야마는 분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다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당신의 백성을 괴롭히는 대상들은 절대 그만 두지 않으시고 그들을 심판하시고 그들이 항복할 때까지 그들을 파괴시키시는 무서운 분이신 것을 드러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자이지만, 애굽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분은 심판자인 것이다.

 

6. 나오며

  사람은 사실 하나님을 잘 모른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알되 힘써서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온갖 종류의 우상으로 가득차 있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호세아 선지자는 B.C.750년경 이렇게 외쳤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6:3)" 그렇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해내려는 이유는 그들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했던 땅으로 이주시키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이고 숨겨진 속뜻은 애굽왕 바로도 여호와 하나님이 누군지를 모르고, 모세와 아론도 잘 모르고 있었고, 이스라엘백성들도 여호와가 누군지를 모르고 있으니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가 누군지를 알게 하려고 애굽에서 구출하여 가나안땅으로 옮기려는 것이었다. 그것도 하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재앙을 내리되 10가지 재앙을 나눠서 내리셨던 것이다.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애굽의 신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들로 하여금 알게 하시고 싶으셨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알도록 하기 위해서 재앙을 내리는 중에도 4번째 파리재앙부터는 히브리인들이 사는 장소를 구별하셨다. 애굽사람이 사는 지역에만 재앙을 내리고, 히브리인들이 사는 지역은 보호해주셨던 것이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애굽사람들이 하나님만이 세상주관자요 심판자이신 것을 알게 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자요 보호자인 것을 알게 하셨다. 우리 하나님만을 찬양하자. 할렐루야!

 

2021년 09월 05일(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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