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종말신앙(22)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지극히 작은 자는 대체 누구인가?(마25:40)_2021-09-10(금)

by 갈렙 posted Sep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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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rxzq5E4QKB4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종말신앙(22)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지극히 작은 자는 대체 누구인가?(마25:40)_2021-09-10(금)

https://youtu.be/rxzq5E4QKB4

 

1.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염소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염소는 누구인가? 본문에 따르면, 최소한 불신자는 아니다. 그들도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 왔지만(마25:44), 믿음과 회개에 합당한 열매들을 맺지 않았던 것 뿐이요, 자기가 보기에 보잘것 없다고 판단되어지는 일을 하지 않은 것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은 최소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자들이지 불신자들이 아니다(마25:44).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들은 자신이 불못에 던져질 염소인지를 그날 '그리스도의 심판대'(고후5:10)에 불려 올라간 상황에서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무엇인가 느낄 때도 있었을 것이다.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행동과 언어가 혹 염소가 아닌가 생각하는 일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원문에 보면 '새끼 염소'들이었기 때문이다. 다 자란 염소들이었다면 자신의 행동이 자신이 염소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겠지만, 아직 새끼 염소라 가끔씩 돌출된 자신의 행동이 염소가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내 자신의 경력과 그래도 주님을 위해 행한 것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자신은 염소가 아닐 것이라며 위안을 삼아버린다. 그리고 자기가 염소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자들은 회개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을 건성으로 한다는 것이다. 잠깐은 회개하는 듯하지만 진실로 눈물 콧물 쏟아내면서 회개한 일이 없는 것이다. 회개를 목숨걸고 하지 않으며, 삶의 우선순위의 제일 순위에 놓지도 않는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만 할 뿐이다. 

 

2. 양과 염소를 심판하는 심판이 백보좌 심판이 아닌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양과 염소를 심판하는 이 심판이 백보좌 심판(계20:11~15)이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전에 살펴본 대로, 백보좌 심판은 [보]상이 있는 심판이 아니라 불 못에 던져지는 심판이기 때문이요, 이것은 아마겟돈 전쟁 후에 있을 불신자들에 대한 심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정적인 근거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41절에 나온다. 그것은 이 심판이 있은 후에 염소들이 영원한 불에 던져지게 되는데, 이때까지 여전히 마귀와 그의 천사들은 아직 불 못에 던져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시기는 사탄 마귀(용)와 그의 천사들(귀신들)이 아직 불 못에 던져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 백보좌 심판은 언제 있는가? 백보좌 심판은 용과 귀신들을 불 못에 던진 후에 일어날 일들이라는 것이다. 고로, 장차 불 못에 던져지는 일은 첫째,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염소에 해당하는 자들이 제일 먼저 그곳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둘째, 용과 귀신들이 그 다음으로 그곳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셋째, 불신자 곧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그곳에 최종적으로 던져지게 될 것이다. 

 

3. 본문에서 염소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본문에서 염소들은 결국 자신을 '염소'라고 결코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실제로는 염소인 자들을 가리킨다. 곧 자기 자신은 '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염소'인 자들이 교회 안에 있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양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양이 아닌 자들이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염소란 자기는 양이 아니지만 자기 자신을 스스로 양이라고 포장하고 있는 가짜 양들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사람에 대하여 한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그때에는 "의인들 중에서 악인을 갈라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13:49~50). 자기를 의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악인인 자로서, 결국 풀무불(불의 웅덩이)에 던져질 자들이 염소인 것이다. 

 

4. 의인들이 섬겼던 지극히 작은 자들이란 누구인가?

  그렇다면, 의인들이 섬겼던 '지극히 작은 자들'이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크게 2가지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구약적인 입장에서 보는 것으로서 여호와께서 보시는 '지극히 작은 자들'이란 '객(나그네)과 고아와 과부들'을 가리킨다(신14:29). 이것은 넓은 의미에서 보는 것이다. 이들은 공동체로부터 소외된 자들이요, 가난한 자들의 대명사로 통한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을 도와주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지극히 작은 자들이란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지극히 작은 자들'로서 좁은 의미의 '지극히 작은 자들'인데, 그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내 형제들'에 해당한다. 그럼, 주님이 말씀하시는 '내 형제들'이란 대체 누구인가? 그런데 40절에 보면, 왕(임금)께서 '내 형제들'이라고 했으니, 그들은 왕의 형제들임에는 틀림없다. 즉 그들은 이미 천국에서 들어가서 왕 노릇하고 있던 형제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부터는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 다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는데, 그들 중에 이기는 자들이 곧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들이다. 즉 천국에서 왕 노릇하고 있던 자들이 예수님의 재림 때에 예수님의 뒤를 따라 공중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을 가리켜 '이 내 형제들(these my brothers)'이라고 했던 것은 이들이 예수님 바로 곁에 뒤따라온 자들로서 천국에서 이미 왕 노릇하고 있던 자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5. 이 땅에서 '지극히 작은 자들'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실제적인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 땅에서 '지극히 작은 자들'이란 헬라어 원문을 따라 직역해보면, '보잘 것 없는 자들'이라는 의미다. 즉 이 세상 사람들이 보거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볼 때에 아주 미약해 보이는 자들이 바로 이들인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 중에 가난한 자, 소외된 자, 병든 자를 가리키지 않는 이유는 이미 천국에서 왕 노릇하고 있던 자들이 그때까지 저주를 못 벗어난 자들로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못 먹고 못 마시고 못 입었던 이유는 이들이 저주를 받아서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주님을 만나서 주님의 마음을 알고 보니, 주님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스로 낮아져서 누군가를 섬기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미국에서 하바드 대학이나 프린스턴 대학을 나와 그곳에서 멋진 의사가 되었지만 주님의 마음을 알고는 그곳에서의 편안한 삶을 다 내려놓고 낮고 천하고 가난한 나라 이 대한민국에 선교사로 자원하여 온 이들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무엇인가 부족하여 외국이나 오지에 가서 나그네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돈을 벌 수 없어서 헐벗은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저주가 있어서 혹은 죄를 지어서 이들이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까지 옥에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12사도들을 보라. 그들이 못할 일을 해서 옥에 갇혔는가?(눅21:12, 행4:3, 12:5). 또한 사도 바울을 보라. 그가 배운 것이 없어서 못 입고 못 먹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옥에 갇히게 되었는가?(고후11:23,27). 히브리서를 보라. 그들은 주님 때문에 조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혔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나그네로 살았고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던 것이다(히11:36~37). 또한 일제 시대 주기철 목사를 보라. 배운 것이 없어 무식함으로 일제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못 위를 걸어가야 했는가?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신 '지극히 작은 자'란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의 마음을 알았기에 자기의 모든 권세와 능력과 지혜를 내려놓은 채 특수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고, 선교사들이 되어 일하고 있으며, 교회를 개척하는 개척 목사들이 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 시기 곧 대환난의 시기가 되면 오직 복음을 전파한다는 이유 때문에 옥에 갇히고 매맞고 죽임당하는 지극히 작은 자도 있을 것이다. 

 

2021년 09월 10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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