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강해(07) 구별된 제사장의 범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시는가?(삼상2:12~26)_2021-11-25(목)

by 동탄명성교회 posted Nov 25,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wMrXy67x0s8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07) 구별된 제사장의 범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시는가?(삼상2:12~26)_2021-11-25(목)

https://youtu.be/wMrXy67x0s8  [혹은 https://tv.naver.com/v/23742570 ]

 

1. 엘리의 아들들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성경은 말한다. 엘리 대제사장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행실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언급한다(삼상2:12).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홉니와 비느하스는 행실이 나쁜 정도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벨리알의 아들들'이라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벨리알'이라는 말은 '무가치한, 무의미한'이란 뜻을 지녔다. 그러니까 홉느와 비느하스는 비록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하나님의 나라에는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 자였다는 뜻이요,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추구하고 있기에 무가치한 사람들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벨리알'이라는 말의 의미를 신약성경에서는 좀 더 심각하게 우리에게 말해 준다(고후6:14~16). 

고후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벨리알과 우상을 그리스도 및 하나님의 성전과 비교하여 말한다. 이는 벨리알의 아들들이라는 말은 곧 그가 우상을 섬기는 자요 사탄 마귀에게 속한 자라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 엘리의 두 아들은 우상 숭배자와 같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조금 있다고 살펴보겠다. 

 

2. 엘리의 두 아들에 비해 사무엘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런데 불량자였던 엘리의 두 아들에 비해 사무엘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엘리의 두 아들은 하나님을 대변하는 역할과 직책을 맡고 있는 제사장의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타락하여 있었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엄마 한나에 의해 3살 때에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바쳐진 사무엘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어릴 적에(젖 뗄 무렵에)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었기에, 엘리 제사장 밑에서 제사장의 교육을 받고 자라고 있었다. 왜냐하면 엘리 제사장이 그에게 세마포 에봇을 입혀 일하게 했기 때문이다(삼상2: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은 점점 자랄수록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을 받아가고 있었다(삼상2:26). 이는 그가 기도의 여종이었던 한나의 자녀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는 기도하는 부모를 만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축복을 가지고 태어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한나의 부모는 기도만 지원한 것은 아니었다. 바쳐진 아들이었지만 해마다 새로운 옷을 만들어 입혔기 때문이다. 사무엘의 부모는 한 번 그를 실로에 있는 대제사장에게 맡긴 이후로 그를 내팽개쳐 버린 것이 아니라, 해마다 매년제를 드릴 때에 사무엘을 위하여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입히곤 하였기 때문이다(삼상2:19). 

 

3. 사무엘서의 저자는 엘리의 두 아들과 한나를 어떻게 비교하고 있는가?

  사무엘서의 저자는 히브리어의 발음을 가지고 독특하게 두 종류의 사람들을 비교하고 있다. 하나는 엘리의 두 아들이요 또 하나는 한나가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이 그들에게 내린 판단은 실은 정반대 방향이었다. 엘리는 자기의 두 아들이 히브리어 원문상 '벨리알의 아들들'인데도, 그것을 모른 채 눈감아 주고 있었다(삼상2:11). 그러나 진짜 하나님의 기도의 여종이었던 한나는 '나쁜 여자'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삼상1:16). 기도에 전념하여 오래 기도하다 보니 입술만 움직일 뿐,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보고서 그녀에게 '포도주와 독주를 끊으라'라고 했기 때문이다(삼상1:14). 그는 한나를 '악한 여자'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삼상1:16). 여기서 '악한 여자'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살펴보면, '벨리알의 딸'이라고 나온다. 그러니까 엘리는 실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눈이 어두워지듯이 그의 영적인 판단력도 흐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벨리알의 아들들은 그렇지 않다고 판정하고 한나를 벨리알의 딸이라고 판정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으면 어떡하겠는가? 우리 모두는 이 나라의 영적인 삶을 이끌어 가는 영적인 지도자들을 위해 늘 기도해야 한다. 

 

4. 하나님께서는 홉니와 비느하스를 죽이기로 결정을 한다. 왜 그랬을까?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홉니와 비느하스를 죽이기로 결정하신다. 왜 그랬을까? 첫째로, 좀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이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벨리알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삼상2:11).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지위와 신분을 이용하여, 백성들의 것을 착취하는 자였던 것이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들이 얼마나 제사를 멸시하고 있었는지 하나의 일화를 소개한다. 그들이 아직 제사장이 아니었던 좀 더 젊은 시절 곧 그들이 젊었을 때에 경험했던 일화를 소개해 준다(삼상2:13~17). 그들 모두가 다 소년('나아르')이었을 때다. 그들은 제사를 드리려 백성들이 실로에 찾아오면, 먼저 세 살 고리를 가져다가 삶고 있는 고기를 콕 찍어 걸려 나오는 대로 무조건 가져가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제사 드리는 자가 기름을 태우기도 전에 생고기를 달라고 하여 억지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때 제사 드리는 백성이 그들을 저지해도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참으로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컸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직분을 이용하여 자신의 배만을 채우려는 자를 하나님께서 과연 기뻐하시겠는가? 직분을 남용하여 자기의 배만 채우려는 자의 행위를 계속 지켜보고만 계시는 것일까? 가장 거룩한 제사를 가장 추하게 만들고 있는 그들을 가만히 지켜만 보시는 것일까? 셋째, 그들이 이제 제사장이 되어 직무를 수행하면서도 그들은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을 하곤 하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여인들은 나실인으로 바쳐진 자들 같은데,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러한 여인들과 육체의 쾌락을 좇아가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여 연약한 여성들의 성을 착취하는 일이었다. 자신의 높은 지위를 이용하여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죽이기로 결정하신다. 

 

5. 엘리의 두 아들의 범죄가 큰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사실 엘리의 두 아들이 저지르고 있던 죄들을 일반 평민(백성)이 저지르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강하게 말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들이었다. 하나님의 이름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사장권의 타락은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이 멸시를 당하실 때에는 가만히 있지 아니하신다. 참고 참고 참으시다가 한 방에 끝내버리신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지도자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홉니와 비느하스의 최후를 자기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제사장이란 어떤 위치였는가? 당시 제사장은 사람을 하나님에게 연결시켜 주고,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러한 위치를 망각했다.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자기의 배를 불리는데 사용하고 있었고, 자신의 지위를 남용하여 남의 것을 착취하고 있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들을 하나님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매김 할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리신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하루 아침에 전쟁터에서 나가서 즉사하고 만다. 

 

 

2021년 11월 25일(목)

정병진목사

20211125_071659[크기변환].jpg

 


Articles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