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강해(11) 법궤를 가져간다고 해도 전쟁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삼상4:1~11)_2021-11-30

by 동탄명성교회 posted Nov 30,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e36JVonBnwI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11) 법궤를 가져간다고 해도 전쟁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삼상4:1~11)_2021-11-30

https://youtu.be/e36JVonBnwI  [혹은 https://tv.naver.com/v/23816746 ]

 

1. B.C.1075년경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람들 사이에 치른 1차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진 이유에 대해 이스라엘 장로들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시간이 흘러 사무엘은 청년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이제 엘리 제사장은 나이가 많아 98세를 넘기고 있었다. 시기적으로 보면 B.C.1075년경의 일이다. 그때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버지와 최소 40년이라는 나이 차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들의 나이도 이제 58세를 넘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이스라엘이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쟁에 패하여 죽임당한 자가 4천명 가량이나 되었다. 그러자 군사들이 진영에 돌아오자 이스라엘 장로들이 모여 말했다. "오늘 우리가 블레셋 사람에게 패하게 된 것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가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그것을 가져다가 우리의 원수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합시다." 그들은 자기들이 전쟁에서 패한 이유를 오직 법궤를 모시지 않은 데에 그 원인이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2. 왜 이스라엘 장로들은 전쟁터에 법궤를 가져와야 한다고 판단한 것인가?

  당시 전쟁에 이스라엘은 왕이 없었다. 그러므로 특별한 지도자도 없었다. 그러므로 백성의 장로들이 모여서 전쟁의 의사를 결정해야 했다. 그런데 장로들의 결론은 이스라엘에게 법궤가 없어서 전쟁에서 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도 자기들의 윗대 조상들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진입하려 할 때에는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먼저 요단강 물을 밟았을 때에 요단강의 물이 그쳤고 그들이 마른 땅을 건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수3;17). 그리고 가나안의 첫 성이었던 여리고를 정복할 때에도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맨 앞에 앞장서서 견고한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 번씩 일주일 동안 돌고 마지막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았는데,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성을 지르자 함께 여리고성도 무너졌다는 이야기도 들었을 것이다(수6:12~13,17).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법궤에 큰 힘이 있다는 것을 믿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법궤만 있으면 블레셋과 같은 적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대패하고 말았다. 보병이 무려 3만명이나 죽었으니 말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한 개의 지파가 다 죽어 없어진 것과 같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때 큰 살륙이 있었다고 증거하고 있다. 

 

3. 이스라엘이 법궤를 가져와서 전쟁을 하였으나 2차 전쟁에서도 패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장로들의 의견에 따라 실로에 있었던 법궤가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왔을 때에 이스라엘의 진영에서는 엄청나게 큰 환호 소리가 있었다. 그 환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땅이 올릴 정도였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니네들 이제 다 죽었어. 우리 진영에 방금 그 위대한 법궤가 들어왔거든..." 하지만 2차 전쟁에서도 역시 패하고 말았다. 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전쟁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는가?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실패한 이유로 2가지를 말할 것이다. 첫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들이 블레셋의 철제 무기를 당해 내지 못해서라고 말이다. 둘째는 이스라엘에는 언약궤가 있었지만 그 언약궤가 신통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증거하고 있는 바, 이스라엘 백성이 진짜 전쟁에서 패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3가지다. 첫째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작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무명의 '하나님의 사람'과 '사무엘'을 통하여 엘리 제사장 가문을 없애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이제 그 심판을 해야 할 때가 되었는데, 마침 블레셋이 쳐들어왔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전쟁에서 이기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일부러 징계의 도구로서 블레셋을 시켜 이스라엘을 치도록 하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둘째는 이스라엘이 전쟁의 실패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그들을 붙이신 일이었는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회개하지 않았고 우상 숭배로부터 돌이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그 전쟁에 패하도록 하신 것이다. 셋째, 무엇보다도 가장 크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의지해야 했던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한 채 있었고 오히려 벨리알의 아들들이 되어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홉니와 비느하스가 심판을 받도록 그들을 블레셋에게 붙이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전쟁은 이미 패하도록 작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즉 어떤 위대한 왕이 이 전쟁을 이끌었다고 할지라도 이 전쟁은 반드시 패하게 되어 있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4. 왜 하나님의 언약궤는 아무런 힘이 없는 궤짝으로 변한 것인가? 

  사실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거기에 계시겠다고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출25:22). 주님께서는 언약궤의 뚜껑에 해당하는 두 그룹 사이에서 모세와 말씀하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던 법궤는 어디를 가든지 기적을 창출할 수 있었다. 법궤 자체가 힘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법궤의 뚜껑 곧 하나님께서 두 그룹 사이에 함께 임재해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호수아 때만 해도 전능하시고 초월해 계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살아계심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법궤 위에 임재하고 있었을 때에는 이 법궤가 어디를 가든지 이 세상의 법칙이 아니라 초월적인 법칙들이 적용되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법궤가 뺏겨진 채 블레셋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에도 법궤가 가는 곳마다 거의 초토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지 않는 법궤는 한낱 나무 궤짝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고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귀신들도 예수의 이름으로 떠나가는 것이다. 종이로 인쇄된 성경책을 귀신들린 자에게 들이민다고 해서 귀신이 떠나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분의 임재가 중요하고, 우리 편에서 보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5.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아도 당신이 존재하시며 또한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로서 최고의 전능자이신 것을 어떻게 법궤를 통해 알려 주셨는가?

  사실 하나님께서는 어디 한 곳에 갇혀 계시는 그러한 분은 결코 아니시다. 무소부재하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켜 영계와 물질계가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일부러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그곳이 곧 성막이요, 주님은 성막 안에 있는 지성소 두 그룹 사이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법궤는 그 능력이 탁월하지 아니 할 수 없었다. 고로 법궤가 가면 요단강 물이 말라버렸고, 여리고성이 그만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블레셋 땅으로 이 법궤가 들어갔을 때에는 블레셋의 다섯 고을 사람들은 악한 종기에 시달려야 했고, 그들이 섬기던 다곤 신도 목이 부러지고 손이 부러지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만약 그날에 전쟁터에 가지고 나왔던 법궤의 효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알았더라면 그날 전쟁에 그토록 무참히 패배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법궤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이 교회에 예배드리려고 함께 앉아 있다 할지라도 다 천국가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2021년 11월 30일(화)

정병진목사

[크기변환]20211130_071830.jpg


Articles

9 10 11 12 13 14 15 16 1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