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강해(31) 하나님이 택한 사명자를 과연 죽일 수 있을까?(삼상19:1~24)_2021-12-21(화)

by 동탄명성교회 posted Dec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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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0bborM8v5_U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31) 하나님이 택한 사명자를 과연 죽일 수 있을까(삼상19:1~24)_2021-12-21(화)

https://youtu.be/0bborM8v5_U [ 혹은 https://tv.naver.com/v/24191997 ]

 

1. 사울왕은 왜 자신의 아들인 요나단과 자기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했는가?

  사울왕은 왜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했는가? 그 이유는 후에 나온다. 그 이유는 이새의 아들인 다윗이 있는 동안에는 사울과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의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삼상20:31).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예고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사울왕의 나라가 영원토록 굳건히 서지 못할 것이고 길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삼상13:13~14). 둘째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고 했다(삼상15:26). 셋째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나라를 떼어서 사울보다 더 나은 이웃(친구, 동료)에게 주실 것이라고 했다(삼상15:28).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다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거역한 결과로 주어진 것들이다. 그러므로 사울은 자신의 왕적 지위를 내려놓은 후 왕권을 차기 왕에게 이양해 주었어야 했다. 그렇지만 사울왕은 권력을 내려놓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특히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후, 백성들의 마음이 다윗에게로 향하게 되고 자기보다 다윗을 더 높이게 되자, 그때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 질투하게 된다. 그리하여 다윗을 없애고자 한다. 하지만 그를 죽이려는 개인적인 시도가 실패하자, 이제부터는 공식적으로 그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이 명령은 이제부터는 다윗을 죽이지 않고 다윗을 돕는 자가 있다면 그를 자기의 원수로 간주하겠다는 뜻이다. 

 

2. 다윗을 죽이라고 공식적으로 명령했지만 다윗은 어떻게 되었는가?

  사울은 먼저 개인적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세 번씩이나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삼상18장). 하지만 그는 다윗을 죽이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모든 신하들까지 동원하여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고비고비마다 돕는 자들의 손길을 통하여 보호를 받게 되고 하나님의 강권적인 개입으로 인하여 보호를 받는다. 결국 사울왕의 명령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사울이 죽는 그날까지 약 10년 동안 지속된다. 그중에서 사무엘상 19장의 이야기는 비교적 초기의 내용들을 담고 있다. 여기에 보면 다윗이 어떻게 보호를 받았는지가 나온다. 첫째, 요나단이 아버지의 의중을 떠본 후 다윗을 감싸 주었고(삼상19:2~7), 둘째, 사울이 보낸 자객으로부터는 다윗의 아내 미갈이 다윗을 피신하게 도와준다(삼상19:11~17). 셋째, 이후에 사울은 세 번씩이나 자객들을 보내지만 하나님의 영이 보낸 자객들에게 임하게 되어 그들도 예언을 할 뿐 다윗을 죽이지는 못한다. 그러자 사울이 직접 다윗을 죽이려고 시도하는데 첫째로, 다윗은 수금을 연주할 때에 그를 죽이려고 또다시 다윗에게 창을 던진다(삼상19:8~10). 그러나 다윗은 그 창을 피하고 도망치게 된다. 그리고 둘째로, 사울은 직접 라마나욧에 피신해 있는 다윗을 죽이려고 찾아간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전에도 보낸 자객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예언하게 한 것처럼, 사울왕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하여 예언하게 함으로 실패하게 만드신다(삼상19:22~24). 

 

3. 사울이 계속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시도한 것을 인간적론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사울이 계속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한 근본적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윗에 대한 시기 질투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사울은 다윗의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기까지 신경도 쓰지 않았던 시골 양치기 소년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물리치지 못했던 블레셋의 장수 거인 골리앗을 쳐죽이게 되자, 백성들은 사울왕보다 다윗을 더 높이게 된다. 그러자 사울의 저 밑바닥에 있던 시기 질투심이 그만 발동해서 올라온 것이다. 거기에다가 악령이 그에게 찾아오자 사울은 자신의 미움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채 다윗을 죽이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 사도가 말한 것처럼, 미워하는 마음이 곧 살인이라는 말씀이 진리라는 것이 여기에서도 입증이 된다(요일3:15). 그렇다. 우리는 아무리 화가 나도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아야 한다.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 빨리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잘못된 성품을 타고 내 몸속에 귀신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울은 자기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했다. 시기 질투심의 감정과 미움의 감정을 그냥 놔두고 그것을 따라간 것이다. 그러자 악령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다. 그러자 사울의 광기가 나오게 된다. 

 

4.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버리신다는 샘플로서 사울왕의 예가 가르쳐 주는 교훈은 대체 무엇인가?

  사울은 사실 그가 이 세상에 있을 때에 택하여 왕으로 세워진 특별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그가 악한 일을 저지르는 자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를 세우신 분은 역시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최초의 왕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을 버리게 된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첫째, 그가 자꾸만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거역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우상 숭배로 보시기 때문이다(삼상15:23). 결국 아무리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에게 불순종하는 자를 들어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자는 자기가 잘되면 모든 영광을 자기가 가로채기 때문이다. 고로 자기가 최고라고 하면서 자신의 판단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자일수록 교만한 자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는 사명에 충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세운 목적에 따라 살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불충성하였다. 그러니까 그에게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새로운 사람으로 축이 이동하는 것이다. 셋째, 자기 안에서 솟아 올라오는 죄된 본성을 제어하지 못해 악한 영의 통로로 자신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기 질투심을 제어하지 못했다. 혈기와 분노와 그리고 미움의 감정을 그대로 노출해 버린 것이다. 그러자 그것을 통로로 악한 영이 치고 들어왔고 그를 사로잡아 버렸다. 그러니 아무 죄도 짓지 아니한 다윗을 죽이려고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닌 것이다. 

 

5.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쓰시기 위해 구별하고 그리고 택한 자는 어떻게 지켜 주시는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쓰시려고 택하신 자를 결코 그냥 내버려두지 아니하신다. 특히 그런 자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면 즉시 관여하셔서 그 사명자를 지켜 주신다. 왜냐하면 그 사명 때문에 그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인데, 그가 그 사명을 이루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타인에 의해 그 사명이 잠자게 되는 것을 보고 있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행위들은 당신에게 도전하는 행위라고 보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명자를 반드시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거나 불순종하여 죄를 지었다면 모르지만, 그러한 일이 하나도 없는데도 원수들에 의해 다윗이 공격당하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것이다. 다윗 이외에도 이외 비슷한 예를 성경에서 살펴보자. 그것은 요한계시록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들일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파하라고 이 땅에 보내어진 증인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 사명을 완수하기도 전에 그를 해치려는 자들을 하나님은 그냥 보고 있지만은 않으신다. 오히려 이들을 해치려는 자들을 주님께서 없애버리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증인은 언제까지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간단하다. 그 시기는 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다(계11:7). 다는 아니겠지만 사명자는 자신의 사명이 끝나야 하나님께서도 그가 죽임당하는 것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것도 순교의 제물로 말이다. 

 

2021년 12월 21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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