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강해(25) 전쟁에서 진 압살롬과 그의 어이없는 죽음이 주는 교훈(삼하18:1~33)_2022-01-31(월)

by 갈렙 posted Jan 3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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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TYdP-RDbPnA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하강해(25) 전쟁에서 진 압살롬과 그의 어이없는 죽음이 주는 교훈(삼하18:1~33)_2022-01-31(월)

https://youtu.be/TYdP-RDbPnA  [혹은 https://tv.naver.com/v/24914013 ]

 

1. 압살롬은 어떻게 죽게 되었는가?

  다윗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다윗의 첫째 아들이었던 암논이 자신의 여동생을 겁탈한 사건을 보고서 분노를 이기지 못해 치밀하게 계획한 후 암논을 살해한 사건을 통해 압살롬은 외할아버지가 계시는 아람의 그술로 도망을 친다. 그러다 요압장군의 중재로 3년 만에 예루살렘에 귀환하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 다윗이 2년간 그를 만나주지 않자, 앙심을 품고 있다가 요압장군의 중재로 겨우 화해를 하지만 압살롬은 그때부터 구테타를 치밀하게 계획한다. 그리하여 4년간 백성들의 마음을 훔친 후 드디어 거사를 결행하게 되는데, 그가 왕으로 등극한 장소는 유다 땅 헤브론이었다. 그때 압살롬이 세력들을 모아 예루살렘을 진격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신하들과 자신을 따르는 백성 그리고 군대를 이끌고 피난을 떠나가게 된다. 드디어 요단강 동편 마하나임에 피난처를 정하고 전세를 가다듬은 다윗과 그의 군대는 압살롬이 이끄는 군대와 일전을 벌인다. 그때 전쟁은 숫자적으로 볼 때에는 다윗의 군대가 턱없이 작은 규모였지만 막강한 전투 경험과 탁월한 전략으로 뭉친 다윗의 군대가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때 전쟁에 패하여 노새를 타고 달아나던 압살롬은 그만 상수리 나무가지에 자신의 머리가 걸려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고 그 이야기를 들은 요압장군과 그의 무기든 자들에게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 위에 돌무덤이 만들어진다. 참으로 압살롬은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 것이다. 

 

2. 압살롬은 왜 죽었는가?

  그렇다면 왜 다윗은 살고 왜 압살롬은 죽었는가? 왜 압살롬은 자신의 왕권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죽었던 것인가? 우리는 사무엘하 18장을 통하여 그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살펴볼 수가 있다. 그가 죽은 이유에는 첫째, 그를 위해 목숨을 내걸고 싸워 주고 그를 끝까지 보호해 주려고 하는 이가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패하여 도망칠 때 심지어 그에게는 병기든 자도 도망가고 없었다. 혼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다윗에게는 목숨을 걸고 싸우러 나가는 세 명의 부하 장수들(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이 있었다. 그리고 압살롬이 다윗의 목숨만을 노린다는 것을 파악한 백성들이 다윗으로 하여금 전쟁에 나가지 말도록 다윗을 끝까지 보호해 주었기 때문이다. 둘째, 그는 자신을 보호할 만한 전쟁 수행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 용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위기 상황이 발생하게 되어도, 그는 자신을 보호할 수조차 없는 사람에 불과했기 때문이이다. 셋째, 그가 그토록 자랑하던 자신의 얼굴의 외모와 머리카락이 결국에는 자신의 목이 걸려 죽는 결정적인 위험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윗의 군대에 쫓겨서 도망을 가야 했다. 그런데 그에게는 병기든 자조차 달라붙지 못했다. 또한 전쟁터에서는 왕들이 타는 노새를 타지 말고 재빠른 말을 타고 움직여야 했는데, 노새를 타고 도망가는 바람에, 큰 상수리나무 아래를 지나갈 때에 머리카락 내지는 머리가 나뭇가지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리게 된 것이다. 그것을 보고 받은 요압은 쇠꼬챙이 같은 것을 가지고 가서 그의 심장을 찔렀고 이윽고 요압의 무기든 자들 10명이 달려들어 그를 죽였던 것이다. 넷째, 그의 죄가 자신의 죽음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살인죄와 반란죄였고 패륜죄를 범한 자였다. 그는 자신의 형 암몬을 죽이고도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거나 자신의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한 일이 없었다. 그리고 그가 이 사건 이후에 아들을 무려 셋이나 낳았지만 아기 때에 그들을 다 잃고 만다. 그때 그는 깨달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식이 죽어 나가고 있어도 자신의 죄 때문에 자기 자식이 죽어 나가고 있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죄지은 자를 결코 그냥 두시지 않는다는 것을 여기서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3. 요압은 왜 압살롬을 죽였는가?

  그렇다면 왜 요압은 압살롬을 죽였는가? 사실 그술왕에게로 도망간 압살롬을 데려온 자가 요압장군이었다. 그리고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후 다윗왕과 화해를 시켜준 자도 바로 요압장군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요압은 압살롬을 죽이고 말았는가? 사실 다윗이 전쟁에 출전하는 지휘관들에게 분명하게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부드럽게, 관대하여) 대우하라"고 주의를 주었었다(삼하18:5). 그렇지만 압살롬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는 소식을 그가 들었을 때, 요압은 어떻게 했는가? 그는 오히려 압살롬을 죽이지 않고 소식만 전달해 주는 병사를 향하여 왜 그를 죽이지 않았느냐고 호통을 친 후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달려가 압살롬을 죽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압살롬이 왕이 될 수 있도록 모든 사전 준비를 해 준 사람이 요압장군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는 왜 죽이지 말라고 했던 압살롬을 죽인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둘 중 한 명의 왕이 죽어야 전쟁이 끝난다는 것을 요압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주군이었던 다윗이 죽는 것보다는 이제는 적이 되어 버린 압살롬이 죽는 것이 더 빠른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전쟁은 왕이 죽어야 끝이 나는 법이다. 

 

4. 요압은 왜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달하려는 여호아하스를 말린 것인가?

  압살롬이 죽자,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요압장군에게 요청을 한다. 이 기쁜 소식을 자신이 가서 다윗왕에게 전달해 드리고 싶은데 그것을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압은 한사코 그를 말리고 또 말린다. 왜냐하면 그것은 왕이 하지 말라고 했던 일에 대한 보고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 일 때문에 왕이 상을 주실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크게 상심할 것이다. 고로 그 소식을 전달하지 말라고 말렸던 것이다. 그리고 요압은 종으로 일하고 있던 구스 사람에게 그 소식을 전달하도록 명령한다. 하지만 아히마아스가 하도 보채는 바람에 요압도 허락하자, 발이 빠른 아히마아스는 구스 사람보다 먼저 다윗에게 달려가서 그 소식을 전하려 한다. 하지만 차마 압살롬의 사망 소식을 전하지는 못한다. 또한 늦게 도착한 구스 사람 역시 압살롬이 죽었다고 말하지는 않고, 다만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옵나이다"라고 부드럽게 보고를 한다(삼하18:32). 그러자, 다윗에게 압살롬의 죽음의 소식은 자신이 죽는 것보다 더 아픈 소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요압장군이 한사코 말렸던 것이다. 

 

5. 압살롬의 죽음을 듣고 왜 다윗은 그토록 슬퍼했는가?

  보통 사람 같았으면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뻐해야 옳은 것이다. 왜냐하면 형 암논을 계획적으로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왕위를 찬탈하고 아버지의 하체를 욕보인 압살롬은 마땅히 죽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하염없이 운다. 마음이 심히 아파서 성문 윗층으로 올라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공간에서 혼자 흐느껴 운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그 아들이 결국 폐인이 되어 죽은 것이 다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의 손으로 우리아장군을 죽이지만 않았어도 이러한 일은 없었을 것이며, 남의 아내를 빼앗아서 겁탈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비통한 일은 겪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다윗은 일종의 자책감으로 슬퍼하고 또 슬퍼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역시 다윗처럼 이렇게 나중에 후회할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 죄를 지었음에도 회개하지 못해 끝내 심판날에 가서 그 죄값으로 영원한 형벌을 받는 어리석은 자는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이처럼 다윗은 자신이 범죄한 일에 대하여 4배 이상의 고통을 계속해서 겪어야 했던 것을 우리도 잊지 말아야 한다. 참으로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 다윗이 범죄하지만 않았어도 이처럼 아픈 일들을 겪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2022년 01월 31일(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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