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복음(16) 남의 잘못을 용서해주지 않는 자는 천국에 못 들어가는가?(마18:21~35)_2022-03-09(수)

by 갈렙 posted Mar 0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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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PINL9Bz3BP8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16) 남의 잘못을 용서해주지 않는 자는 천국에 못 들어가는가?(마18:21~35)_2022-03-09(수)

https://youtu.be/PINL9Bz3BP8  [혹은 https://tv.naver.com/v/25678742 ]

 

1.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은 무엇인가?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은 최소 조건이 있고, 충분조건이 있다. 최소 조건은 거듭남과 자백하는 회개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과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통하여 사실 거듭 태어난다. 그리고는 자범죄들에 대하여 '자백하는 회개'를 일평생을 지속하여 구원을 이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의 삶은 모두가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누릴 상의 크기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국이더라도 각자의 신분이 다르고, 받을 면류관이 다르며, 보좌 자리와 천국 집이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왕이라면, 천국에 들어갈 충분조건을 채울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순종' 하고 혹은 '충성'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하늘에서 맡겨 주신 일에 순종하는 것이며, 이 땅에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에 충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의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하며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높아지기를 원하며 군림하기를 원하는 자는 천국에서 낮아지며 섬기는 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천국에 들어가는데 주의해야 할 사항이 한 가지 더 나온다. 그것은 남이 나에게 죄지은 것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2. 남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천국에 못 들어가는가?

  오늘 주님께서는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마18:23~35)'를 통하여, 남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은 자기가 받은 용서를 무효화시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남을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은 천국 곧 새 예루살렘성 안에 결코 들어갈 수 없으며,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어 쫓겨날 것이다. 그리고 거기의 감옥에서 고문(형벌)을 당할 것이다(마18:34). 그러므로 남이 나에게 지은 죄를 용서하는 문제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자신이 받은 은혜가 어떤 성질의 것이었는지를 잘 모르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준다. 

 

3.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은 대체 무슨 잘못을 한 것인가?

  마태복음 28:23~35의 말씀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자기가 어떻게 빚을 탕감받았는지를 잘 모르는 사람은 자기에게 빚진 자를 탕감해 줄 수도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자기에게 빚진 상대방을 탕감해 주지 못하는 자는 결국 자신이 주님께 지었던 빚도 결국 탕감받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그가 진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갇혀서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은 대체 무슨 죄를 저지른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은혜를 저버리는 죄라고 할 수 있다(십계명으로 치자면, 제5계명을 어긴 죄라고나 할까?). 주인이 베푼 은혜로 인하여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큰 빚을 탕감받은 사람인데도, 오히려 자기에게 빚진 약한 자를 긍휼히 여기지 않고 그 빚진 자를 옥에 가둬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긍휼이 없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받은 은혜를 오히려 모욕했기 때문이다. 결국 주님은 그러한 종을 '악한 종'이라고 부르셨다(마18:32). 그렇다. 자신이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모르는 자는 남에게 역시 은혜를 베풀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남을 용서할 줄 모르는 자는 자기의 죄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4.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은 대체 어떤 빚을 탕감받았는가?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은 주인으로부터 1만 달란트를 탕감받았다. 그렇다면 그가 탕감받은 빚, 1만 달란트는 대체 어느 정도 되는 액수인가? 먼저, 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이라는 것이다. 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다. 고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을 60,000원이라고 한다면, 1달란트는 3억6천만원에 해당한다. 이는 노동자의 16년의 품삯인 것이다. 그런데 이 종이 빚진 것은 10달란트가 아니다. 100달란트도 아니고, 1,000달란트도 아니다. 그것은 1만 달란트다. 사실 산술적으로 계산이 나오지 않는 액수다. 그러므로 이 종은 자신이 갚을 수 없을 만큼의 어마어마한 액수를 빚진 것이다. 그런데 주인이 어느 날 자기에게 빚진 여러 종들을 불러다가 결산을 하게 되었다. 그때 1만 달란트를 빚진 자도 역시 그분 앞에 섰는데, 그에게는 갚을 것이 없었다. 그러자 주인은 자기의 아내와 자기의 자식들과 자기가 가진 모든 소유를 다 처분하여 갚으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종은 절하면서 말하기를 "당신은 내게 참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다 갚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주인은 그를 불쌍히 여겨서 놓아 보냈다. 그리고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다. 여기서 탕감하여 주었다는 말은 '없애 주었다' 혹은 '면제해 주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냥 그 책임을 묻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이 종이 나가서는 자기에게 100데나리온(노동자의 석달 열흘치 품삯으로 하루 품삯으로 계산하면, 약 600만원 정도) 빚진 동료 종을 만났다. 그러자 그는 그 종에게 자신의 빚을 갚으라고 하였다. 그런데 상대 역시 돈이 없었다. 그러자 엎드려서 간구하기를 "나에게 참아 주소서. 꼭 갚으리이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상대 종의 청을 들어주지 않고 그가 빚을 갚을 때까지 옥에 가두어 버렸다. 그러자 이것을 지켜보던 그의 동료 종들이 자기들의 주인에게 가서 그 사실을 말해 버렸다. 그러자 이 종의 주인이 그를 불러서 그 종이 빚을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겨 주었다는 것이다. 

 

5. 남의 허물을 용서해 주지 않는 종은 어떻게 되는가?

  그렇다면, 남의 허물을 용서해 주지 않았던 종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 주인은 크게 노한 후에 그가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옥졸들에게 넘겨주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옥졸들'이란 단지 감옥을 지키는 군사를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다. 헬라어로 '바사니스테스(basanistes)'라는 용어로서 '고문주는 자' 혹은 '형벌주는 자'를 가리킨다. 이는 형벌주는 자들에게 그 사람을 넘겨 버렸다는 것이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되겠는가? 감옥 같은 곳으로 끌려가서는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이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영원토록') 그는 고문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종을 '악한 종'이라고 칭하였다. 예수께서 '악한 종'이라고 한 사람은 사실 딱 세 사람 뿐이다. 먼저, 마태복음 24장 하반부에 나오는 '악한 종'이 있다. 그 종은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하고는 동료 종들을 때리면서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셨던 종이었다(마24:45~51). 그러자 주인은 이 종을 몸이 갈라지도록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해 버렸다. 두 번째로 악한 종은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의 비유에 나오는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이다. 이 종은 악하고 게을렀으며 결국 쓸모없는 종이라고 판결났던 종이다. 그러면 왜 이 종은 악한 종이라고 불렸는가? 그것은 그가 자신에게 1달란트(노동자의 16년치 품삯)를 주었던 주인을 그저 인색한 주인이라고 치부하고 고리대금업자라고 나쁘게 말하면서 주인을 가혹한 주인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실은 그가 일하기 싫어서 그렇게 행동했으면서 말이다. 그러자 주님은 이런 자를 바깥 어두운 곳으로 던져버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오늘 비로소 세 번째로 악한 종이 나온다. 이 종은 자신이 받은 상상할 수 없는 은혜를 남에게는 전혀 베풀지 않았던 인색한 자였다. 그는 주인이 베푼 호의를 그만 모욕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바깥 어두운 데 중에서도 고문을 받는 지옥에 떨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용서하라. 내가 용서해 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생각해서 나에게 빚진 자를 용서해 주라.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주님이 우리에게 베푼 십자가의 사랑을 진정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을 판가름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주기도문에서 이미 밝혀 주셨다.(마6:12) 그리고 주기도문을 가르쳐 준 후에는 곧바로,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야 자신도 용서받게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마6:14~15). 이렇게 우리가 용서를 실천하는 것은 나의 영혼과 나의 미래를 위한 것임을 잊지 말고 용서를 실천하며 살기를 바란다. 

 

2022년 03월 09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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