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29) 천국에서 받을 상급(3-2) 천국에서 보좌자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계3:21)_2022-03-24(목)
https://youtu.be/KZHf06pPORQ [혹은 https://tv.naver.com/v/25943191 ]
1. 천국에 들어간 성도의 신분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천국에 들어간 성도는 어떤 신분에 있어서는 모두가 같은 신분을 갖지만 어떤 신분에 있어서는 다른 신분을 갖기도 한다. 같은 신분의 경우라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이요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신분이다. 그러나 다 같이 하나님의 자녀요 다 같이 그리스도의 신부라 할지라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위가 각각 다르다. 다스리는 자의 신분을 갖고 있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섬기는 자의 신분을 갖고 있는 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천국에 들어가 보면 아시겠지만, 천국에는 다스리는 자의 신분을 가진 자는 24장로들과 144,000석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자들 뿐이다. 나머지 서서 예배드리는 수많은 성도들은 다 섬기는 자들로 거기에 참여한다. 왜냐하면 이들이 천국에 들어올 때 이미 그들의 신분이 결정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섬기는 자'라는 말은 다스리는 신분을 가진 자들을 섬기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천국에서 다스리는 자의 신분을 가진 자라면 그들은 다 자기의 보좌들을 가지고 있다. 24장로석과 144,000석의 보좌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만 이 보좌(좌석,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서 예배드리는 자들은 섬기는 자인 것이다.
2. 천국에서 다스리는 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천국에서 다스리는 신분을 가진 자는 사실 두 종류이다. 하나는 왕으로 다스리는 자이고 또 하나는 주인으로서 다스리는 자이다. 그런데 왕으로 다스리는 자들로는 다시 두 종류가 있으니, 24장로들이 있고, 70줄에 앉아 있는 144,000명의 성도들 중에 1번 줄에서 6번 줄까지가 바로 왕 노릇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144,000석의 70줄 가운데에서, 7번부터 70번 줄까지는 주인으로서 다스리는 자들이다. 다시 말해, 천국에 있는 자신의 천국 집에 섬기는 자들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천국에서 '다스리는 자들'인 것이다.
그럼, 천국에서 다스리는 자의 지위를 갖고 있는 자들은 대체 어떤 자들인가?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첫째는 24장로들이 여기에 가장 먼저 포함되며(계4:4), 둘째로, 요한계시록 7장과 14장에 나오는 144,000명의 성도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은 하나님의 종들의 구별된 자들로서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채 있는 자들이다(계7:3~4). 이들의 이마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계14:1). 이들은 하나님 앞에 첫 열매로 드려진 자들로서, 음녀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그분만을 따라갔던 정결한 처녀들이었다(계14:4). 그들의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었다(계14:5). 그리고 셋째로, 이들은 이기는 자들이다(계2:26~27, 3:21). 이들은 장차 철장 권세로 만국(민족들)을 다스리는 자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3. 천국에서 보좌에 앉는 자들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천국에 있는 성도들 중에서 24장로들과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예배드리는 144,000명은 둘 다 천국에 자기들의 보좌들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이들 중에서 24장로들은 천국 성도들의 대표자들로서, 하나님의 보좌 바로 오른쪽과 왼쪽에 비스듬히 놓인 보좌 위에 앉아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앞쪽에 144,000석의 보좌들이 놓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 144,000석에 앉아 있는 자들은 천국에서 다스리는 자들로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자기들의 보좌에 앉아 있다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들이 천국에서 섬기는 자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는 자로 산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이들의 신분과 지위가 천국에서 높고 큰 자들로서 다스리는 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천국에서 보좌에 앉는다는 말은 세부적으로 다음과 같은 2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통치한다. 다스린다'는 뜻이며(시103:19), 또 하나는 '심판한다. 분별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시9:6~7).
시103:19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시9:7-8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요한계시록 3:21에 나온다. 이 말씀은 라오디게아 성도들 중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인데, 이 말씀에 따르면, 예수께서 이겼고 그리하여 예수께서도 아버지의 보좌에 앉게 되었던 것처럼, 이 교회의 이기는 자들도 역시 이긴 자가 된다면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을 것이라고 했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24장로의 보좌와 144,000명의 이기는 자의 보좌가 원래는 예수님의 보좌였음을 말해 준다. 그분이 여기에 앉아서 우주를 다스리고 통치하는데, 그분이 통치하는 것과 심판하시는 것을 다 행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장차 우리 주 예수께서는 자신의 충성된 자들에게도 이러한 권세마저 나눠주시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참으로 놀라운 간증이 아닐 수 없다. 원래 보좌는 통치의 보좌요 심판의 보좌로서 오직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권한이었는데, 이것을 우리들 중에 이기는 자들에게 나눠주시겠다는 뜻이다. 참으로 황송한 말씀이 아닐 수가 없다.
4. 예수께서 공생애를 사실 때에 당신의 제자들에게 약속했던 권세도 역시 심판하는 권세와 다스리는 권세였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서 공생애를 사실 때에 당신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권세는 '심판하는 권세'이자 '다스리는 권세'를 가리키는가? 그렇다. 진정 그분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먼저, 첫째로 마태복음 19장에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던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확실히 말씀하셨다.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의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랐던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19:28)". 그러므로 보좌는 심판하는 보좌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둘째로, 누가복음 22장에서는 모든 시험들 중에 항상 주님과 동행하였던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들어 보자.
눅22:28-30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왕국)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왕국)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장차 앉을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함이다)
그렇다. 제자들이 보좌에 앉는다는 것은 2가지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하나는 '다스린다, 통치한다'는 뜻이요, 또 하나는 '심판한다, 분별한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중에 약속하신 말씀 속에도 역시 2가지 의미가 다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갈 때에 다스리는 자의 신분을 얻게 될 성도들은 그곳에서 섬기는 자들(성도들)로부터 섬김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 더욱 더 뛰어나신 분들은 왕 노릇할 자도 있을 것이다.
5. 천국에서 보좌에 앉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철장(쇠지팡이) 권세'란 대체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천국에서 보좌에 앉게 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철장 권세란 대체 어떤 것인가? 그것은 두아디라 교회의 이기는 성도들에게 약속된 축복으로서, 만국(민족들) 위에 있는 권세가 주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이들은 철장을 가지고 만국을 다스리게 되는데, 그에게 주어진 권세가 얼마나 막강한지 질그릇을 깨뜨리는 것 같이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헬라어 원문을 보면 철장 권세로 그들을 목양하고('포이마이노') 있다고 나온다. 그런데 이 말씀은 구약성경 시편에 나오는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구약때에는 다윗이 하나님께서 다윗 자신에게 철장 권세를 주셔서 열방(이방 민족들)을 깨뜨린다는 말씀이었다(시2:9). 시편 2:9의 말씀은 이렇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그런데 시편 2:9에 나오는 '깨뜨린다'는 동사가 70인역에 보면 '목양한다(포이마이노)'라는 단어로 바뀌어 번역되어 있다. 또한 그것을 예수께서도 그대로 인용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깨뜨린다는 구약의 표현이 신약에 들어와서 '목양한다'는 표현으로 바뀐 것인가?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이 권세는 철장 권세는 아닌 것인가? 아니다. 이것은 분명 철장 권세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이 권세가 깨뜨리는(치는) 권세로 사용될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이 권세가 목양하는 권세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천국의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사는 자들과 성밖에서 사는 자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사는 자들 중에는 '섬기는 자들'이 있다. 이들이 다스릴 때에는 목양하는(기르고 돌보는) 것이다. 그런데 성밖에는 이러한 '섬기는 자들'이 단 한 명도 없다. 다 바깥 어두운 데에 내쳐진 상태에 있는 이들로서, 그들 중에는 수족이 결박되어 행동에 제한을 받는 자들도 있고, 채찍에 맞으며 외식하는 자들이 받는 벌에 처한 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철장 권세를 사용하되 그것을 치는 권세로 사용할 때에는 성밖에 있는 자들을 다스리는데 그것을 사용하는 것 같이 보인다.
2022년 03월 24일(목)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