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복음(30) 천국에서 받을 상급(3-3) 천국에서 보좌자리를 차지하는 이기는 자는 누구인가?(1)(계2:18~29)_2022-03-25(금)

by 갈렙 posted Mar 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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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7idfI1Eo-oE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30) 천국에서 받을 상급(3-3) 천국에서 보좌자리를 차지하는 이기는 자는 누구인가?(1)(계2:18~29)_2022-03-25(금)

https://youtu.be/7idfI1Eo-oE  [혹은 https://tv.naver.com/v/25945195 ]

 

1. 천국에서 보좌 자리는 누가 차지하게 되는가?

  천국에 들어가면 성도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뉘게 된다. 하나는 '다스리는 자'이며 또 하나는 '섬기는 자'이다. '다스리는 자'는 다시 두 종류가 있어서, 주인으로서 다스리는 자가 하나 있고, 왕으로서 다스리는 자가 또 하나 있다. 주인으로 섬기는 자의 집에는 시녀들(여자로서 섬기는 자)과 경호원(남자로서 섬기는 자)이 있다. 그리고 왕으로 섬기는 자는 성밖으로 나가서 왕으로 다스릴 민족들 내지는 나라들이 있다. 특별히 왕으로 섬기는 자를 요한계시록에서는 144,000명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들은 최소한 자기 집에 시녀와 경호원을 데리고 있다. 그리고 144,000명의 다스리는 자들 중에 첫 번째 줄부터 여섯 번째 줄까지는 왕 노릇을 하는 다스리는 자가 된다(참고로, 144,000명은 24반차별로 총 70줄의 좌석이 놓여 있다. 그리고 한 줄에는 여러 명이 있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누가 이 보좌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가?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이 보좌 자리는 이기는 자들이 차지하게 된다(계2:26~27, 3:21).

 

2. 천국에서 보좌 자리에 앉게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천국에서 성도들 중에 보좌 자리에 앉게 된다는 것은 2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이들이 천국에서 자신의 보좌에 앉아서 통치자가 된다는 뜻이다. 이때 통치할 대상은 주인으로서 섬기는 성도들이 될 것이며, 왕으로서 여러 민족들(나라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이들이 천국에서 심판하는 무리에 속한다는 뜻이다. 원래 천국에서 심판하는 자는 인자됨으로 인하여 예수님에게 주어진 예수님의 고유한 권한이었다(요5:27).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기는 자들에게도 이러한 권한을 나눠 주신다고 하셨다(계3:21, 20:4). 그래서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 중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민족들과 열방 민족들을 심판하는 일을 감당할 자가 있는 것이다(눅22:30, 마19:28). 그런데 이때 성도가 심판하는 자들에 속한다고 해서 이들이 다른 성도들을 지옥에 보내는 일을 결정한다는 말은 아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결정하시기 때문이다. 다만 성도들의 행위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다섯째 인을 떼었을 때 있었던 순교자들의 호소처럼 하나님께 어떤 것을 신원해 달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며, 또 어떤 분들은 니느웨 백성들처럼 당시에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던 자들을 정죄할 수도 있을 것이다. 

 

3.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 중에서 보좌 자리를 차지하게 될 자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누가 보좌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들인지를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 중에서 이기는 자들에게는 만국(민족들, 나라들)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2:26~27). 이때 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전의 메시지에서도 살펴보았지만, 그것은 첫째로, 성안에 있는 성도들(섬기는 자들)은 목양하는 일도 될 수 있고, 둘째로 성 밖에 있는 성도들을 철장 권세로 질그릇 깨뜨리듯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 중에서 과연 누가 이 보좌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요한계시록 2:24~28에 나와 있듯이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 중에서 '남은 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여기서 '남은 자들'이란 여선지자인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라가지 않은 소수의 무리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사탄의 깊은 것들을 경험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두아디라 교회는 단어 자체가 복수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두아디라 교회 안에는 두 종류 성도들이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들 가운데, 교회 이름이 복수로 나오는 교회는 딱 두 교회 뿐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는 두아디라 교회요, 또 하나는 사데 교회다. 이 두 교회만이 그 교회의 이름이 성경에 똑같이 두 번씩 나온다. 그리고 두 번씩 나오는 교회 이름이 둘 다 복수로 쓰였다(계2:18,24, 3:1,4). 이는 교회가 심판 날에 교회가 크게 두 무리로 분류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 중에는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들이 있고 또한 그녀의 가르침을 따라가지 않는 남은 자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데 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데 교회 안에는 자기들의 옷을 더럽힌 다수의 교인들과 그리고 더불어 자기들의 옷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흰옷을 입고 다니는 몇 명이 있었던 것이다. 이들 중 후자들은 다 이기는 자들이 되어 보좌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성 밖으로 내어 쫓겨나거나 혹은 불못에 던져지고 말 것이다. 

 

4. 이세벨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세벨의 가르침'이란 무엇이며, '사탄의 깊은 것'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계2:24). 여기에 나오는 '이세벨'은 가명인 것 같아 보인다. 왜냐하면 성도가 과거 바알신과 아세라신을 숭배했던 '이세벨'이라는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실제 그녀의 이름을 들어서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두아디라 교회 안에는 그러한 지도급 인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 이 여자는 대체 어떤 여자인가? 이 여자는 그녀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여자는 저 이스라엘 왕국 당시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의 아내로 시집온 시돈 왕 엣바알의 딸과 같은 자였을 것이다. 당시 그녀는 정략결혼으로 인하여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에게 시집을 왔다. 그런데 그때에 그녀는 바알 선지자와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데리고 북이스라엘로 왔다. 그리고 이방 신전을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 세웠다. 그리고 여호와를 섬기는 선지자들을 찾아서 학살까지 하였다. 그렇다면 두아디라 교회에서 이 여자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사실 이 여자의 정체가 누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는다. 다만 이 여자가 두아디라 도시 안에 위치한 여러 교회들의 종을 가르치고 있었으며 미혹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때 가르쳐진 것은 성도는 음행을 해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고 하여도 크게 상관이 없다고 가르쳤다는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에는 그때 당시 성도들의 고민을 풀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두아디라 도시에는 '길드'라는 상업 조직이 있었다. 일종의 무역 협동 조합인 셈이다. 그런데 이 조합에는 구리 세공업 조합도 있었고, 염색 세공업 조합도 있었다. 그리고 이들 조합원들은 자기들의 경제적 차지와 단결을 위해서 자기들의 수호신을 숭배하였다. 이들은 특별히 제우스의 아들 아폴로(두아디라에서는 '티림노스'라 불렀다)를 섬겼으며, 그리고 제물을 제단에 바쳤다. 그리고 남자들은 신전 창기와 음행을 행하였고, 그리고 바쳐진 고기를 가져다가 각 방에서 식사를 하였다. 이때 혼사 이야기도 오갔고, 사고 파는 일에 관하여도 의논하였다. 그러니 이 모임에 나가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그러니 교회 성도들이 주의 종에게 이 모임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물었을 것이다. 그때에, 이세벨과 같은 여선지자는 그곳에 가서 음행을 저질러도,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괜찮다고 가르친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우상의 제물이 자기의 몸을 더럽힐 수가 없고, 음행을 한다 해도 사회의 보편적인 관습이기에 괜찮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구원에는 그리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이세벨의 가르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5. 누가 두아디라 교회의 이기는 자들이 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단호하게 두아디라 교회 안에 있는 두 종류의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자에게는 엄중한 심판이 내려질 것이라고 했다. 그것도 그의 눈이 불꽃같고 그의 발이 빛난 주석같은 분이 말하고 있다고 했다(계2:18). 이는 그들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이라는 뜻이다.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그리고 이것은 이 땅에서 질병의 침상에 던져지는 일이고, 큰 환난 가운데 빠지게 되며, 그녀의 자식들이 갑자기 죽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런 자들은 죽은 후에 심판을 받아 최소로는 성 밖으로 내어 쫓겨난다든지 아니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 중에는 이러한 이세벨의 가르침을 거부한 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만을 따라가려는 자들이 소수가 남아 있었다. 이들이 바로 두아디라 교회의 남은 자들이다. 이러한 성도들에게 주님은 장차 만국(민족들, 나라들)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우선 첫째로, 이세벨의 가르침을 거부했다. 그러므로 이들은 교회에 와서도 아마 왕따를 당했을 것이다. 둘째로, 이들은 주님의 행위들을 끝까지 지켰다. 여기서 '주님의 행위들'이란 회개할 것과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핍박을 당해도 조롱을 당해도 그들은 그렇게 참고 인내하면서 복음을 전파한 것이다. 왜나하면 주님께서도 역시 그 일을 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한 마디로 정결한 처녀라고 할 수 있다. 세속에 있는 것들로서, 쾌락(음행)의 정욕과 돈(노동 조합에 바친 우상의 제물을 먹음)의 정욕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4장에서는 144,000명이 누군지를 이렇게 소개한다. 이들은 첫째로 이세벨과 같은 여자로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자라고 하였다. 그리고 둘째는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로서 그들의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라고 했다(계14:4~5).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과연 어디에 속한 것인가? 만약 잘못된 길, 멸망의 넓은 길로 가고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돌이키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미 그러한 좁은 길을 가고 있는 분이라면 세상 끝날까지 그 길을 쭉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2022년 03월 25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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