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의 기독론(21) 예수께서는 사람으로 실재하셨던 역사적인 사건이다(01)(계22:16)_2022-05-24(화)

by 갈렙 posted May 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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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1VvsQwULtgI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21) 예수께서는 사람으로 실재하셨던 역사적인 사건이다(01)(계22:16)_2022-05-24(화)

https://youtu.be/1VvsQwULtgI  [혹은 https://tv.naver.com/v/26960999 ]

 

1.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주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동시에 예수님을 사람이셨던 분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 예수님은 100%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100% 사람이셨던 것이다. 이 세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은 다 피조물이었던 것이지 그중에 창조주는 없었다. 오직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사람으로 태어나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은 우리 인간들과 모든 세계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다(계3:14). 그래서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신다. 그분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이다(계4:23, 1:8). 그런데 그분이 한 때 우리처럼 인간이셨던 때가 있었다. 그분도 여느 사람처럼 사람으로서 이 땅에서 태어나신 것이다. 그리고서 33년반의 생애를 사시다가 결국은 원래 있던 곳으로 가셨다. 그러므로 만약 누군가가 예수님을 가리켜 그분이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그는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임에 틀림없다(요이1:7). 반대로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는 결국 구원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행4:12).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인 어떤 존재를 믿어서 천국에 들어갈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둘 다를 알고 믿어야 한다. 그분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셨던 분이라고 말이다. 특히 그분이 사람이 되셔야 했던 이유는 그분이 자신에게 무엇인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직 우리같은 죄많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2. 요한계시록 22:16에서는 부활승천하셔서 보좌에 앉으신 예수께서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 22장 16절에 의하면,예수님은 자신을 "나 예수"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그분은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빛나는) 새별별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요한에게 그동안 계시를 보여주셨던 분이 바로 '나'요 하면서 자신을 '예수'라고 소개하고 있는 분이시다. 

계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그렇다면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나 예수"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사실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서 "나 예수"라고 하는 표현은 오직 이곳에서 단 한 번 발견된다. 그런데 이 표현을 분석해 보면, '나'라는 1인칭 대명사에다가, 그분의 이름인 '예수'라는 말을 결합한 표현이다. 이는 '나 자신은 다른 누구가 아니라 바로 예수라고 하는 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나'라고 소개하신 분은 자신의 이름이 '예수'이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나 예수'라는 주어의 사용은 어디에서 기원하는 표현인가? 그것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자기자신을 소개할 때 사용했던 표현이다. 그러니까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이 누군지를 분명하고 밝히고 싶을 때에 그분께서 자기자신을 '나 여호와'라고 표현하신 것이다. 그것들 중에서 몇 가지 표현을 빌려오면 다음과 같다. 

사43:10-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사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3. 예수께서 자신을 '나 예수'라고 표현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요한계시록의 결론부분에 가서 자기자신을 '나 예수'라고 밝히셨다(22:16). 그렇다면 이 표현은 대체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구약시대에 오직 홀로 한 분이셨던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여호와라고 밝히신 것과 같다. 그분은 종종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고 말씀하셨다. 이 표현은 자신이 다른 누구가 아니라 곧 나를 여호와라고 계시하신 바로 그이가 말씀하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구약의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나 여호와'라고 하셨을 때에는 그분만이 홀로 한 분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홀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으로서, 그분만이 온 인류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을 밝히시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나 예수'도 역시 그분만이 홀로 한 분이시며, 그분이 모든 만물을 창조한 창조주이시며, 그분이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셨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승천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4. 요한계시록에서 예수께서 사람이셨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호칭이나 표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께서 사람이셨다고 하는 것을 표현하는 호칭이나 표현들이 여럿 등장한다. 그것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예수(1:1,5, 22:16,20~21)', '그리스도(1:2,5, 11:15, 12:10, 20:4,6)', '하나님의 아들'(2:18), '어린 양'(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 양), '주'(님)(11:15, 14:13, 22:20~21), '남자(사내)아이'(12:5), '인자'(사람의 아들)(1:13, 14:14),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5:5, 22:16), '유다지파의 사자'(유대인의 왕)(5:5) 그리고 '재림주'(2:25, 16:15, 22:7,12, 22:20), '십자가에 못박힌 분'(11:8) 등이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고 있는 사람이셨던 예수님의 칭호가 곧 천상에 계시는 예수님에 대한 칭호가 사실은 그분이 지상에 계실 때에 사용된 칭호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공생애를 사실 때에 사람들은 그를 "주(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다윗의 자손",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등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칭호들이 요한계시록에도 고스란히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5. 예수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피조물인 우리같은 사람들과는 어떻게 다른가?

  그렇다면 사람으로 오셨던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들과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우선 그분이 우리들처럼 사람의 인성을 지녔다는 것은 똑같다. 눈과 코와 입이 하나인 것도 같고, 먹어야 살고 피곤하기도 하고, 화장실도 이용하셨다. 무엇보다도 그분도 역시 여자의 자궁에서 10달동안 살다가 세상으로 나온 것도 역시 똑같다. 다만 다른 점은 그분 안에는 죄가 없으시다는 것이다(요일3:5,히4:15). 그분은 죄를 알지도(경험하지도) 못하신 분이셨다(고후5:21). 그러므로 이제야 우리는 예수님이 육체를 지니신 사람이셨지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명확히 알게 되었다. 사실 우리 인간은 흙이 육신을 입은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떠한가? 그분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그분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분이시다. 우리들 모두는 타락한 아담의 후손으로서, 모친의 모태 속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귀신(악한 영들 곧 뱀들)의 공격을 받는다. 그래서 태어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자기 속에 선한 것만 거하는 것은 아니며 악한 본성도 함께 갖고 있거 그것을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만이 죄가 없으신 상태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그리고 철저한 하나님의 보호하심 하에 귀신들이 하나도 예수님의 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잌럴어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를 위하여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으로 자신을 희생하신 주님께 항상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2022년 05월 24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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