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11) 오순절날 방언이 복음전파에 활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01)(행2;5~13)_2022-06-16(목)

by 갈렙 posted Jun 1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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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Dj0meeD1FXM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11) 오순절날 방언이 복음전파에 활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01)(행2;5~13)_2022-06-16(목)

https://youtu.be/Dj0meeD1FXM  [혹은 https://tv.naver.com/v/27450228 ]

 

1. 오순절날 방언이 복음전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순절 방언이 120명의 성도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구약 시대에는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사람의 영 속에 들어가니까 사람의 영에게 생명이 공급되고 생명이 공급되니 영이 살아나서 말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영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때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 처음으로 방언이 터져 나올 때 그 방언은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종류의 전혀 딴 언어로서 영의 언어였다. 고린도전서 14:2에서 사도 바울이 언급한 바로 그 '글로싸'가 터진 것이다.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고 하나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터져 나온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그 언어를 알아듣게 하시는 은사를 주셨다. 그래서 듣는 이들이 15개국에서 온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는데 자기들이 태어난 곳의 지방말로 방언을 듣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이한 일 앞에 놀라고 있었다. 

 

2. 오늘날 방언에 대해서 어떤 주장들이 있는가?

  그런데 오늘날에 들어와서 방언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들을 내놓고 있다. 그것은 보통 3종류다. 첫째는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가 아니라 그냥 단순한 지방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1개국에서 찾아온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사용하던 언어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순절날 터져 나온 방언(글로싸) 처음부터 지방말(디아레크토스)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최근 들어와서는 인터넷 온라인 상에서 많은 시청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마지막 사명'의 앤드류 강이 주장하는 바이다. 둘째는 방언은 헛소리 지껄임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데 이것을 방언의 은사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방언은 귀신 소리요 마귀 방언이요 고린도 현상이라는 것이다. 방언은 고린도에서만 일어난 특이한 현상으로서 그것은 이방신의 영향으로 나타난 귀신 소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통독 사경회를 개최하였던 우리 교회(통합측)의 원로 목사님의 주장이다. 그럼, 어떤 주장이 옳은 것인가? 그것은 독자들의 몫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것이 이렇다고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회개와 천국복음에서는 성경에 나온대로 '방언'(글로싸)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표적이요(막16:17~18), 사도 바울이 언급했던 바,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요 하나님과의 대화 채널이라고 본다. 글로(방언)가 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인지에 관하여서는 본 교회 홈페이지 "유튜브방송설교"란의 "성령의 은사(28강)" 참고하기 바란다. 

 

3. 방언과 맞물려 꼭 필요한 은사는 무엇인가?

  방언과 더불어 꼭 필요한 은사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방언 통역'의 은사다. 사도 바울은 바울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이기 때문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반드시 역하기를 기도하라고 말하였다(고전14:13). 방언을 하지만 만약 통역이 없다면, 방언의 은사는 예언의 은사만 못하다고 하였다(고전14:5). 그러므로 방언을 하는 자는 자기의 영이 무슨 말로 기도를 하고 있으며, 하나님과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를 방언 통역을 통해서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4. 방언 통역을 해 보면 그 내용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방언을 통역해 보면 어떤 내용으로 영이 말하고 있을까? 방언 통역은 사실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영적인 수준에 따라 방언 통역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수준이 달라진다. 그러니까 똑같은 방언을 들려주어도 통역하는 분의 영적 수준에 따라 방언 통역이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방언 통역을 받으려면 제대로 방언 통역을 할 수 있는 분을 만나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아예 방언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 개인의 영을 건축하고 재건하고 복구하기 위해서는 방언이 참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고전14:4). 왜냐하면 방언을 하면 자기의 덕을 세운다고 사도 바울이 말했는데, 이 단어는 '오이코도메오'라는 단어로서, 그 뜻이 '짓다. 건축하다'. '세우다. 설립하다', '재건하다. 다시 세우다', '복구하다. 복원하다'의 뜻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이 시대에도 온전한 방언 통역을 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방언 통역으로 공개한다"는 책을 쓰신 송재근 목사 유순자 사모님은 2013년까지 43년 동안 약 1,000회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약 20만 명 이상의 방언 통역을 해 오신 분들이다. 이분들 말에 따르면, 방언의 내용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자신의 영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다. 이것은 방언의 약 10~20% 정도를 차지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의 영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인데, 그때에는 주님(정확히는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이것은 약 80~90%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주의 종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요, 일반 평신도는 자신의 영이 드리는 기도의 분량이 훨씬 더 많다. 

 

5. 방언 통역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방언 통역은 일반적으로 2가지 형태로 진행된다. 하나는 방언하는 자가 방언을 하면 그것을 멈추게 하고 방언 통역자가 방언 통역을 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방언하고 방언 통역하고' 이런 식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방언하는 자는 방언을 하게 하고 방언 통역자는 직독직해로 계속해서 방언 통역을 하는 것이다. 후자가 훨씬 더 영적 수준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방언 통역자들은 어떻게 방언 통역을 하는가? 그것도 2가지 형태인데, 하나는 상대방이 방언하는 것을 들어 보면 그 내용이 무슨 내용이라는 것이 떠오르는 형태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는 실수가 많다. 자기의 생각이 많이 가미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방언하는 자의 말이 자기의 언어로 들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나라 말로 들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그대로 말해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의 단점은 상대방의 허물을 폭로하는 경우, 공동체가 방언하는 자의 죄를 듣고 심한 충격에 빠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죄를 짓고 있는지를 그대로 말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순자 사모님 같은 경우는 그것을 그 사람만 아는 것으로 바꿔서 통역해 달라고 요청하여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방언 통역은 그것이 제대로 될 수 있으면, 교회 공동체를 세우고 복음을 전파하는 데 매우 유익한 채널이 될 수 있다. 

 

 

2022년 06월 16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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