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천국에 이르는 두 개의 관문

by 갈렙 posted Aug 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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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복음 제3]

천국에 이르는 두 개의 관문

천국에 이르는 두 개의 관문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 입혀지는 예복은 과연 칭의(稱義)의 예복인가 아니면 회개와 감사(열매)의 예복인가?”

회개란 어떤 것이며, 회개할 때 얻게 되는 유익은 어떤 것일까?”

 

 

 

 

목 차

1. 천국(天國)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2. 천국잔치의 예복은 어떻게 입을 수 있는가?

3. 천국에 이르는 두 개의 관문(關門)

4. 회개란 지금 당신의 영혼을 리셋(Reset)하는 것이다.

 

 

 

 

 

445-160 화성시 동탄반석로 120, 제일프라자 807(031)613-2001

(남광장 마인츠돔, 우리은행동탄중앙지점 8)

 

1.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이 세상에 사람들 중에 과연 누가 하나님께서 하늘에 마련해 두신 천국(天國)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만약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아마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선택해 두신 단 하나의 민족 곧 이스라엘 백성부터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오시기 전까지는 모두 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선민이라 불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천국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죄인취급받았던 세리들과 창녀들이 먼저 천국잔치에 참여하게 되고, 이어서 이방인들이 그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은 응당 자신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잔치에서 제외되며, 오히려 천국에 결코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자들이 그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럼 누가 그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2:8-10 이에 (임금이)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그렇습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천국잔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던 사람들이 그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원래 천국잔치에 오기로 되어 있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 잔치에 오기를 거절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천국잔치에 참여할 대상을 이제는 모든 사람들에게로 확대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메시야가 오기 오래 전에, 메시야의 나라 즉 천국이 도래하게 되면 그곳에 초대될 제일 첫 번째의 부류의 사람들은 사실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거절함에 따라 이제는 누구든지 천국잔치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악한 자나 선한 자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아무 상관이 없게 된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아무 상관이 없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어떤 종류의 신분을 가졌든지, 어느 민족에 속해 있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지금 모두를 천국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누가복음 14장에서는 딱 두 부류의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 부류는 시내의 거리와 골목에 버려진 사람들 즉 가난하고 병들고 눈 멀고 다리 저는 자들이 천국잔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14:21). 이들은 사실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지옥에 들어갈 자들로 낙인찍었던 바로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오히려 그 천국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고 이들부터 천국잔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부류로 천국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은 성밖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산울타리 너머에 있던 사람들로서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천국이 있는지, 하나님이 계시는지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원래 오기로 초대된 자들이 오지 않는다고 하자, 빈 자리가 이들에게까지 확대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인들과 같은 이방인들도 천국잔치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 묻겠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이 먼저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하나님도 모르고 천국도 모르는 이방인들이 먼저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병들었다고 해서 천국에 먼저 들어가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도 모르고 천국도 모르고 자였기에 그들이 먼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누가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지에 대해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천국잔치에 잇대어진 또 하나의 비유(22:11~13)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22:11-13 임금이 손님들(식사하기 위해 기대어 있는 자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혼인잔치의)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혼인잔치의) 예복을 입지(소지하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그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여기에 보면, 혼인잔치를 위해 마련된 예복을 입은 자가 그 잔치에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혼인잔치의 예복을 입지 않고서는 그 잔치는 어느 누구도 참여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천국잔치에 참여했던 사람은 신분이나 민족에 상관없이 참여할 수 있었지만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혼인잔치의 예복을 소지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예복은 과연 누가 준비한 것입니까? 성읍의 길거리나 골목에서 거지같이 살던 자들이 준비해서 온 것입니까? 아니면 성읍 밖의 이방인들이 그날 잔치에 참여할 줄 알고 미리 준비하고 그날 거기를 지나가다가 참여한 것입니까? 둘 다 아닙니다. 그들은 그 비싸고 귀한 혼인잔치의 예복을 준비할 만한 여유가 없는 자들로서 물질적으로도 여유가 없는 자들이요,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결혼잔치의 풍습에 의하면, 결혼잔치에 초대되어 참여하는 자들이 입었던 예복은 다 결혼잔치를 여는 주인이 마련하여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거지가 되었든지 이방인이 되었든지 비싸고 귀한 혼인잔치의 예복을 입은 사람이 되어 그 잔치에 합당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주인이 마련해서 손에 쥐어준 그 예복을 칭의(稱義)의 예복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의 신분이나 자격으로 볼 때 그 잔치에 전혀 참여할만한 신분이나 자격을 지니지 않았어도 그 예복을 입음으로 인하여 거기에 합당한 신분과 자격이 부여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천국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지만 정작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인이 마련해준 혼인잔치의 예복을 소지해야 함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그곳에 들어온 어떤 사람 중에 혼인잔치의 예복에 주의하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식사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혼인잔치의 예복을 입지 않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찌하여 내가 마련해 준 혼인잔치의 예복을 소지하지 않고 여기에 들어왔소?” 그는 그 예복이 왜 그리 중요한지 전혀 생각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들어올 때에는 그 예복을 받아들고 들어왔지만 그것에 주의하지 않고 어딘가에 내팽개쳐놓았던 것입니다. 그가 그것을 입어보니까 입기에 조금 거추장스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자기집의 종들을 시켜서 그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주인이 마련해 준 혼인잔치의 예복을 입지 않은 채 거기에 참석한 것은 주인의 잔치를 모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2. 혼인잔치의 예복은 어떻게 입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주인이 마련해 준 혼인잔치의 예복은 어떻게 입을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22장의 혼인잔치의 비유의 말씀은 마태복음 21장에 나오는 두 아들의 비유와 포도원 농부들의 비유들을 듣고 있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과 서기관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마태복음 21장에서 나오는 앞의 두 가지 비유들을 듣고 나서 그것이 금방 자기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자들입니다.

먼저, 예수님은 유대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두 아들의 비유(21:28~30)를 들려줍니다. 어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기를 야애,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했습니다. 하지만 맏아들은 , 아버지. 가겠습니다.”하고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둘째아들에게 가서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아니요. 싫습니다.”하고는 그후에 뉘우치고 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그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다로 행하였느냐?” 그러자 그들은 둘째아들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1:31-32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다시 말해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 가겠습니다.”해놓고서는 가지 않았으며 또한 그것을 회개하라고 외치는 세례요한의 외침을 듣고도 끝까지 뉘우쳐 회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어 주님은 또 하나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한 포도원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산울타리를 두르고 그 안에 포도즙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까지 짓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거 타국에 갔습니다. 이제 포도열매를 거둘 때가 가까워지자, 포도원주인은 그의 종들을 그들에게 보내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 종들을 잡아다가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쳐버렸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더 많은 종들을 그들에게 보냈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자신의 아들은 공경하리라고 하고는 그의 아들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세를 바쳐야 할 농부들이 아들을 보고는 서로 말하기를 이 아들은 상속자니 자 우리가 그를 죽여 없애버리고 그가 받을 유업을 우리가 차지하자하고는 그를 붙잡아 포도원 밖에서 죽여버렸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직접 와서는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러자 그들이 답했습니다. “그 악한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주어야 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민족)이 받으리라

여기에 등장하는 포도원주인은 하나님은 상징하고, 그가 보낸 종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지칭하며, 맨 나중에 보낸 아들은 예수님을 상징하고, 마지막으로 악한 그 소작농들은 유대종교지도자들을 상징합니다. 주님은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 포도원주인이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지만 은혜를 악으로 갚고 있는 그들을 심판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에 못 들어가게 될 것이고 오히려 그 은혜를 알고 천국의 열매맺는 민족인 이방인들이 천국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마태복음 21장의 말씀을 통해, 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과 서기관들은 혼인잔치에 못 들어가게 되고, 정작 그들이 죄인취급하던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과 이방인들이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이 두 가지를 비유를 통해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외치는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지자가 말했던 메시야(=그리스도)를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아니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포도원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갖추어놓고 그들에게 포도원을 맡겼지만 결국 그들에게 베푼 은혜에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주인의 종들을 죽이고 아들까지 죽인 그들은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하셨고, 오히려 주인이 베푼 은혜를 알고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이방인 소작농들은 천국에 먼저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마태복음 22장에서 소외된 자들과 이방인들에게 주인이 나눠준 그 예복이 어떤 예복이었는지를 마태복음 21장의 비유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곧 회개의 예복이요, 감사의 열매의 예복인 것입니다.

죄인된 인간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혼인잔치의 예복을 입는 것 뿐인데(22:11~12), 그 예복을 입는 방법은 오직 회개요 오직 감사의 열매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주인이 마련해준 입혀준 혼인잔치의 예복은 그냥 입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입혀지는 예복이었던 것입니다(21:31~32, 43). 그것은 바로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입혀지는 예복이요, 자신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맺은 열매를 뒤돌아보면서 감사의 열매를 주님께 드림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예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당신에게서 회개의 예복이 입혀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감사생활을 통해 당신에게 입혀진 예복이 있음을 확인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고 있다면 당신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운 사람이요, 그렇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지금이라도 당장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3. 천국에 이르는 두 개의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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