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title>46.고린도전서강해(25강)</title>
	<subtitle>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로서, 2007년 동탄신도시에 세워졌습니다.</sub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lang="ko"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atom"/>
	<updated>2026-04-07T01:18:08+09:00</updated>
	<id>https://dongtanms.kr/corinthians1/atom</id>
	<generator>Rhymix</generator>
	<rights>Copyright ⓒ 2017 동탄명성교회. All right reserved.</rights>	<entry>
		<title>고린도전서강해(25)[최종회] 교회성도를 위한 연보와 바울의 마지막 부탁 및 인사(고전16:1~24)_2021-10-27(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74"/>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74#comment"/>		<id>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74</id>
		<published>2021-10-27T17:15:59+09:00</published>
		<updated>2021-10-27T23:12:01+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오늘로서 고린도전서 강해가 끝마쳐진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교회들 가운데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고린도 교회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들의 성숙되지 못한 신앙이 어떻게 지체들에게 역사하고 있었으며, 온전하지 못한 부활신앙은 또한 어떤 폐해를 주고 있었는지까지도 살펴보았다. 그중에서 오늘은 바울이 자기의 마음 속에 담고 있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꺼내놓았다.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진정...</summary>
	<content type="html">&lt;p&gt;&amp;nbsp;&lt;/p&gt; &lt;p&gt;오늘로서 고린도전서 강해가 끝마쳐진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교회들 가운데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고린도 교회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들의 성숙되지 못한 신앙이 어떻게 지체들에게 역사하고 있었으며, 온전하지 못한 부활신앙은 또한 어떤 폐해를 주고 있었는지까지도 살펴보았다. 그중에서 오늘은 바울이 자기의 마음 속에 담고 있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꺼내놓았다.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진정 바라고 바랬던 성숙한 신앙은 대체 무엇이었던 것일까? 그 비밀이 오늘 밝혀진다.&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19&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bn6GG5k6h2Q&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 width=&quot;1278&quot;&gt;&lt;/iframe&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고린도전서는 총 16장으로 구성된 것으로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amp;nbsp;보낸 첫 번째 편지다. 그중의&amp;nbsp;핵심 사항은 1장부터 15장 안에 들어 있으니, 고린도전서는 15장으로 끝났다고 해도 큰 문제 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6장은 일종의 &amp;#39;첨언&amp;#39;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16장은 너무나 중요하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 장에서&amp;nbsp;자신의 속에 있는 마음을 마지막으로 꺼내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amp;nbsp;겉으로 봐서는 잘&amp;nbsp;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조금만 비집어&amp;nbsp;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그의 속마음이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축도를 하기 전에 그가 한 말은 가히&amp;nbsp;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누가 되었든지 저주를 받으라고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고전16:22). 바울은 왜 이러한 말을 마지막으로 써야 했던&amp;nbsp;것일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의 마지막 부분을 좀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이 첨언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의 말은 알고 보면 참으로 뼈아픈 말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고린도전서 16장은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고린도전서는 총 16장으로&amp;nbsp;구성된 편지로서 내용을 뜯어보면 총 세 부분인 것을 알 수 있다. 첫&amp;nbsp;부분은 1:1~9의 도입부이며, 중간 부분은 1:10~15장까지의 본론부요, 끝&amp;nbsp;부분은 16장으로서 종결부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 본론부는 또다시 1:10~6장까지의 전반부가 있다. 이 전반부에서는 고린도 교회의 분쟁과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바울의 책망과 훈계가 기록되어&amp;nbsp;있다. 그중에서 1~4장까지는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분파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5장에서는 근친상간의 음행의 문제를 그리고 6장에서는 성도 간의 소송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amp;nbsp;7장~15장까지의 후반부인데, 여기에서는 고린도 교회가 안고 있는 신앙 생활의 중요한 현안들에 대한 바울의 목회적 답변이 기록되어 있다. 그중 7장에는 성도들의 결혼과 이혼과 재혼에 관하여 기술되어 있고, 8~10장에서는 우상 제물의 취식 문제, 11장에서는 예배 중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와 성찬식 전에 진행되었던&amp;nbsp;애찬식이 갖고 있는&amp;nbsp;문제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2~14장에서는 고린도전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성령의 은사의 문제를 다룬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처럼 성령의 은사가 풍성히 나타난 교회가 성경에는 나오지 않으며, 또한 그것으로 인하여 그렇게 시끄러운 교회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12장은 성령의 초자연적인 9가지 은사와 한 몸 됨의 관계 그리고 성령의 직분의 은사를 다루고 있고, 13장에서는 사랑의 은사를, 그리고 14장에서는 방언과 예언&amp;nbsp;그리고 방언 통역의 은사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5장에서는 고린도전서에 유일하게 나오는 교리에 관한 부분으로서 &amp;#39;부활&amp;#39;의&amp;nbsp;문제를&amp;nbsp;다루고 있다. 과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가능한가? 그리고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으며, 부활 때에는 어떠한&amp;nbsp;몸을 입는가 하는 것을&amp;nbsp;다루고 있다. 그리고 끝으로 종결부로서 16장이 있다. 오늘은 이 마지막 종결부를 쭉&amp;nbsp;살펴보고 그것을 정리하고자 한다. 종결부로서 고린도전서 16장은 또다시 세 부분으로 나눌 수가&amp;nbsp;있는데, 1~4절에서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연보의 수집 및 전달 방법에 대한 지침이 나온다. 그리고 5~12절에서는 바울의 고린도 교회 방문 계획 및 디모데 파송 소식 그리고 고린도 교회가&amp;nbsp;궁금해하고 있는 아볼로의 고린도 방문 여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3~24절에서는 바울의 마지막 권면 및 문안 인사 그리고 축도가 나온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가난해진&amp;nbsp;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바울은 어떻게 연보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실 고린도 교회의 입장에서&amp;nbsp;보았을 때에 예루살렘 교회는 &amp;#39;할아버지 교회&amp;#39;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의 전도로 인하여 최초의 이방인 교회인&amp;nbsp;안디옥 교회가 세워졌고, 이어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한 전도자들 곧 바울의 전도팀에 의하여 고린도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가 A.D.53~55년경에 심한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롬15:25~26). 아마도 예루살렘의 선지자 아가보가 예언한 대로 로마의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예루살렘에 큰 기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amp;nbsp;추측된다. 그러므로 그들로부터 영적인 소산을 물려받아 성장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에게 바울은 이미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바와 같이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 헌금을 준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제 그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면서 어떻게 연보를 할 때에, 억지나 인색함으로서가&amp;nbsp;아니라 자발적인 헌신과 기쁨의 연보가 될 수 있는지를 말한다. 그것은 매주 첫 날(당시에 이방인들은 안식 후 첫 날인 오늘날의 &amp;#39;주일&amp;#39;에 모였다)에 각 성도들이 자기의 형통함의 정도를 따라 미리 연보할 것을&amp;nbsp;따로 떼어 두었다가 바울이 갈 때에 연보를 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하였다(고전16:2). 하나님께서는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내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다(고후9:7). 또한 미리 준비하여 연보하는 것이 참 연보다운 연보이기 때문이다(고후9:5).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의&amp;nbsp;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 드린 연보를 전달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새로운 제안을 하였다. 그것은 원래 바울이 연보를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는 것이 바른 것이지만 혹시 모를 불신을 종식시키기 위해, 고린도 교회가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 주고&amp;nbsp;그들로 하여금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바울도 함께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과 같이 가겠노라고 말한다(고전16:3~4). 그렇다. 바울은 교회에서&amp;nbsp;물질이 중요한 문제인 만큼, 헌금의 투명한 전달을 위해서 자기 자신의 역할까지도 기꺼이&amp;nbsp;내려놓은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대한 어떤 방문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먼저, 구제 헌금의 문제를 언급한 바울은 이제&amp;nbsp;자신의 고린도 교회 방문 계획을 그들에게 밝힌다. 그것은 당시에 바울은&amp;nbsp;에베소에 머물고 있었지만 육로를 이용하여 마케도냐(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를 거쳐서 아가야(아덴, 고린도)로 이동할 계획이라고 말한다(고전16:5~6). 그리고 만약 고린도에 도착하게 된다면 고린도에서 겨울을 보낼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다음 선교지로 생각하고 있는 로마와 서바나(스페인)에 대한 계획을 고린도&amp;nbsp;교회에 전달하고 그 교회로부터 선교 지원을 받았으면 한다고 말을 꺼낸 것이다(고전16:5~6). 이러한 고린도 방문 계획은 일시적으로 잠깐 스쳐 지나가는 고린도 교회 방문이 아니라 고린도에서 약 3개월 정도 머물면서 다음 선교지를 향해 출발하겠다는 계획인&amp;nbsp;것을 밝힌 것이다(고전16:7).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전도 활동으로&amp;nbsp;세운 교회들 가운데 두 번째로 바울이 애지중지한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amp;nbsp;여전히 고린도 교회는 바울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2차 전도 여행 때에 얼마 머무르지 못했던 마케도냐의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그에게 몇 번이고 선교 헌금을 보내왔는데, 고린도 교회는 상당히 큰 규모의 교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에게 합당한 사례비도 주지 않았을 뿐더러&amp;nbsp;선교 헌금이나 구제 헌금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은 하나님께서 에베소에&amp;nbsp;열어 놓은선교의 문을 닫을 수 없기에 그곳에 잠시나마 머물러 있지만(물론 동시에 대적자들의 방해도 심했다), 곧 고린도에 가게 된다면&amp;nbsp;4차 전도 여행을 준비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고린도 교회의 지원을 받고 싶다고 말을 꺼낸 것이다(고전16:6). 고로&amp;nbsp;바울의 고린도 교회&amp;nbsp;방문 계획과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에 관한 말씀을 종합해 보면, 바울은&amp;nbsp;고린도 교회가 마땅히 실천해야 할 실제적인 사랑과 헌신에 대해&amp;nbsp;지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가 받은 은혜가 무궁무진한데도 불구하고&amp;nbsp;구제 및 선교 활동에 대해서는 매우 인색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렇다. 받은 은혜는 많았지만 그것을 갚지 못하고 받기만 하는 교회가 고린도 교회였던&amp;nbsp;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내는 헌금을 가리켜 &amp;#39;은혜&amp;#39;라고 일부러 둘러서 표현한 것이다(고전16:3). 받은 은혜를 그들은 자기들만&amp;nbsp;받고 다른 이들에게는 그 은혜를 나눠 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 그리고 바울은 디모데와 아볼로의 소식을 그들에게 전달해 준다(고전16:10~12). 사실 바울이 이 고린도 전서의 편지를 쓰고 있을 때에 그는 이미 디모데를 고린도 교회에&amp;nbsp;보낸 상태였다(고전4:17). 그러면서 그들에게&amp;nbsp;디모데에 대해&amp;nbsp;소개하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아들과 같다고 했으며(고전4:17), 자신과 같이 주의 일에 힘쓰는 자라고 했다(고전16:10). 그러므로 그가 나이가 어리다 하여&amp;nbsp;업신여기지 말고 바울을 영접하듯이 그를 영접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래서 그가 그 교회에 가더라도&amp;nbsp;멸시받지 않고 평안히 다시 자기에게로 올 수 있도록 편의를 봐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리고 돌아올 때에는 그 교회에 있는 몇몇 형제들을 같이 보내 달라고 요청을 한다. 이는 그 교회가 이전에 자기에게는 제대로 교역자 대우를 하지 못했지만 이번에 보낸 디모데에게만큼은&amp;nbsp;합당한 대우를 해 줄 것을 부탁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그들이&amp;nbsp;궁금해하는 아볼로의 소식도 전해 준다(고전16:12). 왜냐하면 그들은 아볼로가 오기를 많이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아볼로에게 고린도 교회가 보낸 형제들과 함께 고린도 교회를 방문할 것을 많이 권했음을 언급한다. 하지만 아볼로는 그때는&amp;nbsp;갈 뜻이 전혀 없고 기회가 되면 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이는 아볼로의 사려 깊은 행동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도 그 교회가 분파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아볼로가 그곳을 방문하고 이어서 바울이 또 방문하면 틀림없이 아볼로파와 바울파가 대립하여&amp;nbsp;또다시 서로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복음 사역자들에게는 자기에게 맡겨진 은사와 달란트를 따라 교회를 섬기고 온전케 해야 한다. 하지만 언제 그 일을 해야 하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복음 사역자들은 때마다 일마다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바울의 마지막 권면은 무엇이며, 어떤 문안 인사를 했는가?&amp;nbsp;&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바울은 늘 고린도 교회를 걱정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는 은사에 있어서는 정말 부족함이 없는 교회였는데, 그들의 성품과 행동 그리고&amp;nbsp;말은 여전히 어린아이 같아서 분쟁과 시기에 놓여&amp;nbsp;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최종적으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5가지 사항을&amp;nbsp;권면한다(고전16:13~14). 첫째, 깨어 있으라. 둘째, 믿음에 굳게 서라. 셋째, 남자답게 행동하라. 넷째, 강해져라. 다섯째, 그러나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그렇다. 고린도 교회는 어린아이와 같이 약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로 하여금 남자답게 강하게 될&amp;nbsp;것을 마지막으로 주문한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러고 나서 바울은 문안을 한다. 먼저는 그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아 바울을 찾아온&amp;nbsp;세 명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근황을 전하면서 그들을&amp;nbsp;칭찬한다(고전16:15~18). 특별히 그중의 한 명인 &amp;#39;스데바나&amp;#39;는 아가야의 첫 열매로서&amp;nbsp;그의 온 집안이 다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면서, 교회에서도 성도 섬기기에 알려진 사람이니만큼 그리고&amp;nbsp;주의 일에 수고하는 자들인 만큼 그를&amp;nbsp;존중해 주고 그런 일을 하는 형제들에게도 순종할 것을 권고한다(고전16:15~16). 아마도 그는 바울이 아가야의 첫 성이었던 아덴에 전도하러 갔을 때에 전도된&amp;nbsp;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가 고린도 교회를 세우는데 혁혁한 일을 한 것 같고, 이제 고린도 교회의 제반 문제를 물어보기 위해 고린도 교회의&amp;nbsp;파송을 받아 에베소에 온 것이다. 그러자&amp;nbsp;바울은 &amp;#39;스데바나&amp;#39;를 칭찬한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온 &amp;#39;브드나도&amp;#39;와 &amp;#39;아가이고&amp;#39;에 대해서도 더불어 칭찬을 하는데, 이는 자기가 그들로 인하여 답답한 마음이 시원함을 입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amp;nbsp;그들의 노고를 알아주라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이어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의 안부를 그 교회에게 전한다. 바울이 위치한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에베소 교회, 골로새 교회, 두아디라 교회, 서머나 교회. 히에라볼리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등등)이 문안하고, 특히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에 만나서 바울의 협력자가 되어 준 아굴라와 브리스가 그리고&amp;nbsp;그 집에 있는 교회의 문안을 전한다. 사실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에 고린도 교회는 바울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으나,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가 있어서 그들은&amp;nbsp;바울처럼&amp;nbsp;텐트 만드는 일을 함으로&amp;nbsp;그 수입으로 바울의 선교 사역을 위해 지원하고 있었다. 또한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시에도 에베소에까지 와서 그를 돕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마&amp;nbsp;바울 평생에 가장 고마운 분이 이들이&amp;nbsp;아니었을까&amp;nbsp;싶다. 그리고 바울은 자기 전도팀 및&amp;nbsp;교회 그리고 고린도 교회가 각각 거룩한 입맞춤 곧 성령 안에서의 영적인 교제 곧 기도의 교통을 계속하라고 권면한다(고전16:20).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고린도전서의 편지가 사도인 자기의 친필이 들어간 책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지(&amp;#39;필레오&amp;#39;사랑으로 친구 간의 사랑) 아니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언급한다(고전16:22a). 이는 그들이 진정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은 하지만&amp;nbsp;지금처럼 자기 교회를 개척해 준 지도자를 사랑하여 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한가를 말한 것이다. 그만큼 그 교회의 지체들은&amp;nbsp;받은 은혜를 실천하는 면에서는 매우 부족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amp;#39;마라나타&amp;#39;(&amp;#39;우리&amp;nbsp;주여 오시옵소서&amp;#39;라는 아람어)라는 말로서&amp;nbsp;당시의 성도들 간의 인삿말을 그들에게 전한다(고전16:22b). 이는 주께서&amp;nbsp;그들의&amp;nbsp;세대에 오실 것을 다 기대하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그런데도 그들은 받은 은혜를 남에게 베풀면서&amp;nbsp;살지 않고 있었고, 계속해서 받으려고만&amp;nbsp;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 자신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amp;quot;우리도 과연&amp;nbsp;언제까지 고린도 교회 성도들처럼 어린아이로 살아갈 것인가?&amp;quot; 그럼에도 불구하고&amp;nbsp;사도는&amp;nbsp;끝으로 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자신의 사랑이 그들에게 가득하기를&amp;nbsp;축복하면서&amp;nbsp;편지를 마무리 한다(고전16:23~24).&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바울에게 있어서 고린도 교회는 아마도 에베소 교회 다음으로 공을 듬뿍 들인&amp;nbsp;교회인 것 같다. 바울이 개척한&amp;nbsp;교회들&amp;nbsp;중에서 고린도 교회는 두 번째로 오래 머물렀던 교회였으며, 그 교회의 문제를 들었을 때에는 직접 자신의 사람을&amp;nbsp;보내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에게는&amp;nbsp;편지도 두 차례 이상으로 써&amp;nbsp;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 같다고 말했다(고전3:1).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믿은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육신에 속한 자들 같이 서로 간에 치고박고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방언을 교회의 공중 예배 시간에 자랑하듯 말하고 있었으니, 그들의 영적인 성숙도는&amp;nbsp;매우 낮은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amp;#39;고린도&amp;#39;라는 지역은 특성상&amp;nbsp;이러한 은사들이&amp;nbsp;없었다고 한다면 아마도 고린도 교회는 탄생하지도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고 하는 말씀처럼 고린도 교회는 음행과 우상 숭배가 가득한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받아들였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에게 매우 다양하고 많은 은사들을 주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어린아이인지라 그것을 사용할 줄도 잘 몰랐고 그것을 자기 자랑하는데에만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로 바울은 그 교회의 개척 목회자로서 그 교회가 성숙한&amp;nbsp;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교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서,&amp;nbsp;그들에게 아비와 같은 심정으로 권면을 하였다. 때로는 엄하게 책망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달래기도 하면서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해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준 것이다. 그런데 그는 편지를 마감하면서 그들이&amp;nbsp;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의 맹점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면서&amp;nbsp;이전까지는 그들이 받기만 했던 신앙생활이었다면, 이제는 나눠주는 신앙생활을 감당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피력한 것이다. 그들이 이와 같은 바울의 염원을 알아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이 서신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고린도후서의 말씀을 읽어 보면 그들은 여전히 어린아이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 우리도 교회에 다닌지&amp;nbsp;수십 년이 흘렀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어린아이의 신앙 안에 머물러 있을&amp;nbsp;수도 있다. 그것은 나 자신은&amp;nbsp;정말 값없는&amp;nbsp;은혜를 받았지만 그것을 누군가에게 나누기 위해서 응당 내가 치러야 할&amp;nbsp;댓가를 지불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를 보면서 이제 우리도 달라져야 함을 느낀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가 아가서에 나오는 술람미 신부처럼, 다른 신부를 산출하고 양육하며&amp;nbsp;성장하는 신부가 되기를 바라고 계시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1년 10월 27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크기변환]20211027_090041.jp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87672/674/087/9ecf220b5aebc056c2afdb17e0bc6b95.jpg&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고린도전서강해(24) 부활의 몸과 부활의 영광(고전15:35~58)_2021-10-20(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76"/>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76#comment"/>		<id>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76</id>
		<published>2021-10-20T16:04:57+09:00</published>
		<updated>2021-10-21T17:21:11+09:00</updated>
		<author>
			<name>동탄명성교회</name>
		</author>
		<summary type="text">성도들은 죽음 다음 언제 부활하게 되는가? 그리고 부활할 때에는 어떤 몸을 가지고 부활하는가? 지금 현재 우리가 입고 있는 육체가 변화되어 그것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는가? 아니면 전혀 다른 영의 몸으로서 부활하는가? 오늘날 성도들은 대체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주적으로 부활할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죽은 성도들은 그때까지 무덤 속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모두...</summary>
	<content type="html">&lt;p&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dddddd;&quot;&gt;성도들은 죽음 다음 언제 부활하게 되는가? 그리고 부활할 때에는 어떤 몸을 가지고 부활하는가? 지금 현재 우리가 입고 있는 육체가 변화되어 그것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는가? 아니면 전혀 다른 영의 몸으로서 부활하는가? 오늘날 성도들은 대체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주적으로 부활할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죽은 성도들은 그때까지 무덤 속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모두가 다 똑같은 신분이 되어서 다 똑같이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다스릴 것인가? 여기 그 속시원한 해답이 있다.&lt;/span&gt;&lt;/p&gt; &lt;p&gt;&lt;iframe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19&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2Bc_nhb-A3s&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 width=&quot;1278&quot;&gt;&lt;/iframe&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고린도전서 15장은 &#039;부활장&#039;으로 많이 알려진 본문이다. 그리고 이 말씀은 부활절 예배 때에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이 장은 부활에 관한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의 중요성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과 더불어 종말론과 천국에서 받을 상급과 영광에 대해서도 아울러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을 오로지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리고 성도들의 부활에 관한 진리의 증거 자료로만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과연 그리스도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인지도 함께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부활은 충성된 신앙생활의 출발점이 되고 있으며, 천국의 소망에 관한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주에 살펴보았던 말씀 곧 그리스도의 부활의 실제와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는지에 관한 말씀(고전15:1~34) 다음에 나오는 본문으로서, 부활이 어떻게 이뤄지며 또한 그때에 성도들은 어떠한 몸으로 부활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있을 부활의 순간의 변화는 어떠하며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수고가 왜 주 안에서 의미가 있는지까지 살펴보고자 한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부활은 어떻게 가능한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는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것인지 관하여 의문을 품고 있었으며, 또한 사람이 부활할 때에는 어떤 몸으로 부활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고 있었다(고전15:35). 이에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부활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에 관하여 먼저 언급을 하였다. 그것은 첫째, 밀이나 다른 식물의 씨앗이 죽은 뒤에 어떤 형체가 나오는 것과 같다고 설명해 주었다(고전15:36~37). 그때 식물을 씨앗의 형태로만 보았을 때에는 장차 이 식물이 어떤 모습을 갖춘 식물이 될른지를 알 수 없어서 답답하겠지만, 그 씨앗이 죽고 나면 멋지고 아름다운 형체를 갖추게 되듯이 성도들의 부활도 그와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부활 후에 어떤 형체를 갖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정하신 바대로 된다고 언급하였다(고전15:38). 그렇다. 사람이 어떻게 부활의 몸을 갖느냐 하는 것은 씨앗만을 보고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죽은 뒤에 씨앗이 식물의 형체를 나타내 보일 때에 알 수 있듯이, 사람도 죽은 후에 새로운 몸을 갖게 될 때에 비로소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사람은 어떤 몸으로 부활하게 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렇다면 죽은 후에 사람의 부활의 몸은 어떤 몸을 갖게 되는가? 사도 바울은 이제는 부활의 몸을 동물의 모습을 가지고 설명한다. 그것은 육체를 갖고 있는 동물들이 동물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은 것이지만 하나는 사람의 모습, 하나는 짐승의 모습, 하나는 새의 모습, 또 하나는 물고기의 모습이 서로 다르듯이 천국에서 부활의 몸을 가질 사람들의 모습도 역시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고전15:39). 다시 말해, 부활 안에서 성도들이 입을 부활의 모습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부활할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짐승과 새와 동물들이 식물에 비교했을 때에는 다르지만 서로 간에는 비슷하듯이 부활의 몸도 서로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lt;/p&gt; &lt;p&gt;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부활의 몸은 사람이 이 땅에 살았을 때에 입었던 몸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며 말한다(고전15:40). 그러므로 이 땅에 존재하는 동물들의 차이에 대해서는 &#039;알로스(같은 종류의 다른)&#039;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으나, 이 땅에서의 몸과 부활의 몸의 차이를 말할 때에는 &quot;헤테로스(아예 종류가 다른)&quot;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다시 말해, 부활의 몸은 이 땅에 살았을 때 입었던 몸(형체)과는 질적으로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몸은 이 땅에서 우리가 입고 있는 몸과 비슷하기는 할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갔을 때의 우리의 모습은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았을 때 가졌던 모습과 흡사한 것이지 전혀 상관이 없는 모습으로 부활하지는 않을 것이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부활의 영광은 어떻게 다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어서 부활의 몸이 비슷하면서도 서로 차이가 있듯이 부활 안에서 성도들이 차지할 영광도 서로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부활의 몸이 장차 들어가서 살게 될 천국에서 성도들이 누리게 될 영광은 각자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천국에서의 서로 간의 차이는 이 땅의 몸과 그리고 하늘에서 우리가 입을 몸의 차이는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입게 될 부활의 몸이나 혹은 그들이 누리게 될 영광의 차이는 둘 다 &#039;알로스(같은 종류의 다른)&#039;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누리게 될 서로들 간의 영광은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들 간의 차이가 분명하게 있다는 것이 팩트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3가지로 구분해서 말해 주었다. 그것은 이 우주에 속한 행성들을 가지고 설명하였는데, 천국에서 부활의 몸이 누리게 될 영광은 가장 큰 것으로는 &#039;해&#039;의 영광이 있고, 그 중간으로는 &#039;달&#039;의 영광이 있으며, 맨 마지막의 작은 것으로는 &#039;별&#039;의 영광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들 각자의 영광 안에서도 또한 영광의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즉 &#039;별&#039;도 영광을 가지고 있지만 별이 가지는 영광도 천차만별로 차이가 나서, 별들과 별들의 영광이 각각 다르다고 한 것이다. 그러니까 천국에서 성도들이 부활의 몸을 입고서 누릴 영광도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의 차이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별이라 할지라도 그 영광의 정도에 있어서 각기 차이가 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영광을 가진 자로서 천국에 입성하게 되는 것일까?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부활이 일어날 때 성도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사도 바울은 죽은 자가 부활 후에 얻게 될 부활의 몸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이것은 땅에 속한 자의 영광과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얼마나 큰 질적인 차이를 갖게 되는지를 알려 준다. 사도 바울은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언젠가는 다 썩을 것이며, 비천한(욕된) 것이요 연약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부활의 몸은 썩지 아니할 것이요, 영광스러운 것이요, 강한 것이라고 말하였다(고전15:42~43). 그러므로 이 땅에 있는 사람에게 혼의 몸이 있다면, 저 천국에서 살게 될 영의 몸도 있다는 것이다(고전15:44). 그런데 순서는 혼의 몸이 먼저 있을 것이고, 이어서 부활 후에 영의 몸을 입게 된다고 말했다(고전15:44,46).&lt;/p&gt; &lt;p&gt; 한편 이 땅에 속한 몸이 부활의 몸 곧 하늘에 속한 몸을 입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사도 바울은 그때에는 그리스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없이는 하늘에 속한 부활의 몸을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날 때에는 첫 사람 아담의 후손으로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게 되지만, 죽고 부활하게 되면 이제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039;첫 아담&#039;이란 인류의 시조인 바로 그 아담을 가리키며, &#039;마지막 아담&#039;이란 하늘에서 와서 동정녀 마리아의 태를 빌려 이 땅에 사람의 형상을 입으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가 질적으로 다르다고 하였다. 둘의 차이는 &#039;알로스&#039;의 차이가 아니라 &#039;헤테로스&#039;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첫 사람 아담은 이 땅에서 태어났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셨기 때문이다(고전15:45). 그러므로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으려면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절대적으로 힘입어야 한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성도들은 언제 부활의 몸을 입게 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언제 부활의 몸을 입게 되는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50~52의 말씀을 통하여, 사람이 언제 부활의 몸을 입게 되는지를 말해 주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 마지막 나팔이 울려 퍼지게 될 터인데 그때 부활의 몸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에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눈 깜짝할 사이에) 홀연히(갑자기) 부활의 몸을 입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순서도 말했다. 그때 죽은 자가 먼저 부활할 것이고 그 다음에 비로소 살아 남아 있는 자가 부활할 것이라고 했다. 즉 죽은 자가 먼저 부활의 몸을 입음과 동시에 살아 남아 있던 자도 순식간에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사도 바울은 말한다. 그때에는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피와 살덩이가 그만 순식간에 부활의 몸으로 바뀌게 될 것이고,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하는 부활의 몸으로 바뀐다고 했다(고전15:50).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 입고 있는 이 땅에 속한 혼의 몸은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도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 땅에 속한 모든 것은 다 이 땅에서 끝날 것이기 때문이며, 이 땅에 살 때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늘의 생명을 가진 자만이 그날 순식간에 부활의 몸을 입고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이 땅에 살 때에 주 예수께서 주시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죽는 그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오직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늘의 생명을 가진 자만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께서 죽은 후에 사람들에게 &#039;생명주는 영&#039;이 되셨다고 말한다(고전15:45).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주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와 하나님으로 믿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그 사람에게 주시기 때문이다(이때 거듭나는 것이다). &lt;/p&gt; &lt;p&gt; 그런데 이러한 부활의 시기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가 사도 바울이 살아 있을 당시에 일어날 것을 예상하여 언급한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시기에 대해 사도 바울이 여기에 언급한 것이 전체인 것인 양 이해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죽을 성도들도 아주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죽은 성도들의 부활은 언제 일어나게 되는가? 안타깝게도 오늘날에 대부분의 성도들은 죽은 성도들의 부활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일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기 전의 죽은 성도들은 죽은 즉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말하는 것처럼 죽은 성도들이 다 무덤에서 잠자듯 쉬고 있다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부활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그의 후기 서신과 요한계시록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도 바울의 비교적 초기의 서신이었던 데살로니가전서나 고린도전서에서는 성도들의 부활의 시기를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말기의 서신이었던 디모데후서의 말씀에 따르면,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늦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그때에 이르러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이 먼저 있을 것임을 예측하였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자기도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부활체를 입을 것이 아니며, 그가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게 된다(딤후4:18). 또한 A.D.95년경에 기록된 요한계시록을 보라. 거기에 보면 이미 천국에 들어가 있는 성도들의 모습이 여러 번 나온다. 이미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그리스도의 재림의 순간 사망은 어떻게 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사도 바울은 사망을 인격체인 것처럼 말을 하고 있다(고전15:55~56).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되면 성도들은 생명의 부활을 입게 될 것이라고 했다. 동시에 사망도 궁극적으로 멸망받을 것이라고 했다. 사망의 파멸에 대한 말씀은 이사야 25:8의 말씀을 그가 인용한 것으로써, 사망의 완전한 파멸이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있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사망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부터 이미 그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럼 그때는 언제였는가?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실 때였다. 왜냐하면 그날 사망 권세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사실 그리스도 이외에는 그 어떤 자도 사망을 이겨보지 못했었다. 그리고 사망의 뒤를 따라와 집어삼키는 음부의 권세가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던 날 사망 권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음부가 집어삼킬 수 없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들은 바로 그리스도를 믿어 그리스도께서 주신 부활 생명을 가진 자들이다. 이들은 죽어도 음부에 들어가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미 무력화시켜 놓았기 때문이다.&lt;/p&gt; &lt;p&gt; 그렇다면 여기서 &#039;사망&#039;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히브리서 2:14의 말씀에 따르면, 사탄 마귀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다. 그는 사망 권세를 휘두를 권세를 가진 자다. 그런데 그가 그만 예수님에게 불법을 사용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였기 때문이다. 죄 없는 자에게 사망 권세를 사용한 것이다. 사실 악한 사탄 마귀라도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맘대로 권세를 휘두를 수 없다. 그도 자기에게 주어진 합법적인 권한만을 행사할 뿐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2:17의 말씀에 따라, 그는 죄지은 사람에게만 사망 권세를 행사해야 했다. 하지만 사탄은 예수님에게 그 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불법으로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이고 말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사망 권세자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다(그러나 실제로는 자기의 죽을 권세로 자기를 죽음에 내어준 것임).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죽임 당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기에 구약의 약속한 대로 죽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즉 사망 권세를 받고 죽임을 당해 음부에 들어가셨으나 3일 만에 음부의 문을 열고 뚜벅뚜벅 걸어 나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사망 권세가 모든 인류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부터 부활 생명을 받은 자를 음부도 역시 가둘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지금 죽어도 음부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바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lt;/p&gt; &lt;p&gt; 그런데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사망의 완전한 파괴가 일어날 것이다. 그때에는 예수님의 부활의 시기 때부터 무력화되기 시작한 사망 자체를 멸해 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사망과 음부가 동시에 불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계20:14). 그러므로 우리는 사망도 천사와 같은 어떤 세력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은 인류의 속죄와 구원을 위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불법을 저질렀던 사탄 마귀와 귀신들을 때려잡는 방법이 되었다. 고로 불과 유황이 타는 못은 죄를 범한 인류를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 범죄한 사탄 마귀와 귀신들을 위해 준비된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완전히 박살나게 될 사망을 향하여 이렇게 강력하게 선포하였다. &quot;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하나님의 말씀)이라&quot;(고전15:55~56).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이 땅에 출현하기 800년 전에 호세아 선지자가 외쳤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여, 주 예수의 부활의 능력을 강력하게 증거한 것이다(호13:14).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8. 그리스도인들이 주 안에서 수고하는 모든 일은 왜 가치가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들은 이제 사망과 음부의 모든 권세로부터 승리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선포한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전15:57). 왜냐하면 사망과 음부, 사탄 마귀와 그의 세력들로부터 승리하는 모든 근거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이제 주 안에서 우리 성도들이 행하는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부활의 승리가 우리에게는 항상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 성도들을 사망과 음부가 붙잡아 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성도들은 죽으면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이렇게 권면한다. &quot;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여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알기 때문이라(고전15:58)&quot;. 그렇다. 우리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아니할 것이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9.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우리는 오늘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을 통하여 성도의 부활의 근거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있었음을 살펴보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이 확실하다면 성도들의 부활도 역시 확실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예 고린도전서의 한 장을 할애하여 부활에 관한 말씀으로 채웠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미 구약시대부터 예고된 일이었음과 동시에 실제로 그 일이 역사적으로 일어났음을 증거하였다. 그리고 그 증인들이 그 시기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사도들의 대표자인 베드로와 평신도의 대표자인 야고보와 그리고 이방인 선교의 대표자인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기 자신에게도 그분이 나타났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분의 부활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역시 그것을 믿고 있지 않았느냐면서 반문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언제부턴가 관행처럼 죽은 성도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울 일행도 죽음을 무릅쓴 채 기꺼이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활은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인가? 그리고 부활의 몸과 부활의 영광은 대체 어떤 것인가?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식물의 변화와, 동물의 종류 그리고 천체의 빛의 차이를 들어서 그것을 설명해 주었다. 결국 인류가 사망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오직 마지막 아담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 그분이 우리 인류의 죄값을 대신 치르셨으며, 죽고 부활하신 후에는 생명주는 영이 되시어, 우리에게 부활 생명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수고하는 그 어떤 것도 헛되지 않다는 것을 우리도 명심하고 또 명심하자. 그리고 힘차게 그날을 위하여 달려가 보자. &lt;/p&gt; &lt;p&gt; &lt;/p&gt; &lt;p&gt;2021년 10월 20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크기변환]20211020_000956.jp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87672/676/087/9ca583bb13d42bb18bdca87742d4a7b5.jpg&quot; /&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고린도전서강해(23) 그리스도의 부활과 죽은 자의 부활(고전15:1~34)_2021-10-06(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78"/>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78#comment"/>		<id>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78</id>
		<published>2021-10-06T18:05:24+09:00</published>
		<updated>2021-10-07T15:17:26+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오늘날 기독교인 치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부정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부활이 언제 일어나게 되는지, 지금 죽은 성도들은 대체 어디로 가 있는지 그리고 부활체와 영체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죽으면 무덤 속에 들어가서 쉬고 있다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부활한다고 믿는 분들도 더러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부활관을 가진 자들은 자기 식구가 죽어도 화...</summary>
	<content type="html">&lt;p&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dddddd;&quot;&gt;오늘날 기독교인 치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부정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부활이 언제 일어나게 되는지, 지금 죽은 성도들은 대체 어디로 가 있는지 그리고 부활체와 영체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죽으면 무덤 속에 들어가서 쉬고 있다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부활한다고 믿는 분들도 더러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부활관을 가진 자들은 자기 식구가 죽어도 화장을 못하게 한다. 장차 있을 육체의 부활을 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부활에 관한 잘못된 상식들과 부활신앙의 역사 그리고 부활의 순서와 영광스러움에 관하여 전체적으로 조망해보고자한다. 자, 놀라운 부활의 신비,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 보자.&lt;/span&gt;&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19&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R-NJValI3Sg&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 width=&quot;1278&quot;&gt;&lt;/iframe&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고린도전서에서 교리 부분이 있다면 유일하게 고린도전서 15장 한 장 뿐이다. 고린도전서&amp;nbsp;15장은&amp;nbsp;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교리 가운데 하나인 &amp;#39;부활&amp;#39;에 관한 말씀을&amp;nbsp;다루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종말론과 관련지어서 그리스도인들의 부활관도 사실은 뒤죽박죽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오늘날&amp;nbsp;들어와서 그리스도인들 중에&amp;nbsp;부활이 없다거나 혹은 부활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사람이 부활할 때에 어떤 몸으로 부활하게 되는지&amp;nbsp;또한 부활은 언제 일어나게 되는지 관하여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리고 사람이 죽은 다음에는 어떤 상태로 존재하는지에 관하여서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죽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시체는 땅 속에&amp;nbsp;묻히지만 그의 영혼은&amp;nbsp;무덤 속에서 잠자는 상태에 있는가? 그렇다는 분들도 있고, 죽은 다음 하늘에 있는 낙원에 올라간다는 분들도 있다. 그리고 죽더라도&amp;nbsp;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서 산다고&amp;nbsp;하는&amp;nbsp;이들도 있다. 누가 맞는 주장을 하고 있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부활에 관하여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바를&amp;nbsp;살펴보고자 한다. 만약 지금 나의 부활 신앙은 어떤 것이며, 혹 잘못 믿고 있다면 어떤 것을 잘못 믿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란다. 부활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일&amp;nbsp;뿐만 아니라 내가&amp;nbsp;죽은 후에 받을&amp;nbsp;다음 세계의 보상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부활 신앙에 관하여&amp;nbsp;잘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신약성경 중에서 부활장으로 일컬어지는 고린도전서 15장은&amp;nbsp;어떤&amp;nbsp;위치에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웬만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그는 고린도전서 15장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하여 기록된 아주 중요한 성경책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을 주제로 다룰 때에는 공관복음서에 등장하고 있는&amp;nbsp;예수님의 부활 사건과 그리고&amp;nbsp;고린도전서 15장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만큼 공관복음서 이외에 부활에 관한 가장 중요한 말씀이 오늘 우리가 다룰 본문에 들어있다는 것을&amp;nbsp;알&amp;nbsp;수가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고린도전서에서 15장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주지하시다시피 고린도전서는 고린도교회에 발생한 신앙의 전반적인 문제들을 짚어 보고 그것에 대한 처방책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고린도전서에&amp;nbsp;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때에 그 내용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기록하였다. 하나는 고린도교회에 발생한 문제들을 직접 진단하여 처방전을 내리는 전반부(1:10~6장)이고, 또 하나는&amp;nbsp;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질문했던 내용을 목회자로서 답변하는 후반부(7~15장)이다. 전반부는 다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고린도교회의 분쟁 및 분파 문제(1~4장), 성도의&amp;nbsp;근친상간과&amp;nbsp;음행의 문제(5장)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들간의 송사문제(6장)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목회적 답변으로서, 결혼과 이혼과 재혼 문제(7장), 우상의 제물의 섭취 문제(8~10장), 공중예배 가운데 여자들이 머리에 두건을 쓰는 문제(11장 전반부)와 성만찬 문제(11장 후반부) 그리고 성령의&amp;nbsp;은사 문제(12~14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활의 문제(고전15장)가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다룰 부분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의&amp;nbsp;질문 가운데 부활에 관한 문제로서 교리 부분을&amp;nbsp;처음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고린도 교회에서는 부활에 관하여 어떤 문제를 가지고&amp;nbsp;있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amp;nbsp;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자신이 그들에게 전해 주었던 부활 신앙을 버리고 헬라 철학 사상을 수용하여 변질되어&amp;nbsp;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활할 때에 사람이 어떠한 몸으로 부활하며, 부활할 때에 어떤 방식으로 부활하는지를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있는 성도들이 궁금해하고 있는 2가지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고린도전서 15장을 기록하고 있다.&amp;nbsp;그중&amp;nbsp;첫 번째 그들의 질문은 12절에 나와 있다. 그것은 죽은 자들이 정말로&amp;nbsp;부활하게 되는가 하는 의문이었다(고전15:12).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35절에 나와 있으니, 부활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몸으로 부활할 것이며, 어떠한 방식으로&amp;nbsp;부활할 것이냐&amp;nbsp;하는 질문이었다. 바울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처음 질문에 대한 답은 고린도전서&amp;nbsp;15:1~34에 답하고 있으며,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고린도전서&amp;nbsp;15:35~58에서 답하고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성도들의 부활의 예표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정말 실제로&amp;nbsp;일어났던 사건이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amp;nbsp;의심하고 있는 죽은 성도들이 부활할 것이라는&amp;nbsp;근거로서 먼저 말한 것은&amp;nbsp;&amp;#39;그리스도의 부활 사건&amp;#39;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실제했던 역사적인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의 대부분의 종교들은 실제 교주가 그렇게 했는지&amp;nbsp;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그렇게 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실제 그렇게 했다고 믿어 버린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예수님을 신적으로 숭배하기 위해 각색한 일이&amp;nbsp;아니라 실제로 역사 속에서&amp;nbsp;일어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것이 실제로&amp;nbsp;일어났든지 일어나지 않았든지 상관이 없는 부활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성경의 예언을 따라 죽으셨지만 성경을 따라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하면서, 이와 같은 사실은&amp;nbsp;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이 직접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적으로 보았던 사람들을 기록해 놓고 있다. 그들은 사도 게바(베드로), 열두 제자들, 오백여 형제들, 야고보, 모든 사도들 그리고 조산아와 같은 사도 바울이었다. 물론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 외에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 더 있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가 있지만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는 기록하지 않았다. 즉 그분의&amp;nbsp;부활을&amp;nbsp;막달라 마리아도&amp;nbsp;보았고,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도 보았으며,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12제자들 아님)도&amp;nbsp;보았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전달해 준 복음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전달해 준&amp;nbsp;복음은 자기도 전달받아서&amp;nbsp;알게 된 복음이었다. 그러나 그가 복음을 전달받은 경로는 일반 사도들과는 달랐다. 일반 성도들이나 사도들은 복음을 받을 때에 보통 그것을 먼저 받았던 자들로부터&amp;nbsp;또다시 전달받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누구로부터 들어서 전달받은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자신의 영의 눈으로 보고&amp;nbsp;알았으며, 그가 영으로 보았던 그것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가 어느새 사도 바울이 전해 준&amp;nbsp;복음에서 떠나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첫째는 사도 바울이 전해 준&amp;nbsp;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견고히 붙들지 않고 있었다.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었던&amp;nbsp;것이다(고전15:1). 둘째는 사도 바울이 전해 준&amp;nbsp;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실제적인 일로 믿지 않음으로 인하여&amp;nbsp;그들의 믿음을 공허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고전15:2).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확실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을 직접 목격하였던 자들이 여전히 바울 당시에도 살아 있었고, 또한 그것을 전해 주고 있었기 대문이다. 고로 우리는 복음의 핵심 내용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가 3일 만에&amp;nbsp;다시 우리를 위하여 일으키심을 받았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고로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압축해 놓은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그리스도의 부활이 실제로 없었던 사건을 가짜로 말한&amp;nbsp;것이었다면 어떻게 될까?&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실제하지 않은 허구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며, 신앙 고백적으로만 존재하는 이야기였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부활 사건은 역사적인 사실이면서 동시에 신앙 고백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 그것을 믿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러한 부활사건은 성도들의 구원 사건과도&amp;nbsp;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amp;nbsp;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고 한다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의 성도들이 가짜를 믿고 따르는&amp;nbsp;일이 될 것이고, 그러면 인류를 위한 그분의&amp;nbsp;속죄 사역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더욱이 부활이 가짜였다면 장차 자신의 부활이 있을 것임을 소망하고 죽은 자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고 죽은 후에 하늘에서 받을 상과 면류관을 기대했던 소망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므로&amp;nbsp;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amp;nbsp;십자가 사건을 결코 은밀하게 행하지 않으셨다. 당시에 예루살렘에 몰려왔던 120만 명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형 집행이 다&amp;nbsp;공개적으로 처리되도록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사형 사건도 그들의 눈 앞에서 일어난 사건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그분이 사흘 만에 살아난 것도 역사적인 사실로 보고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사람이 죽으면 어떤 상태에 놓이게 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람이 죽는다면 어떤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인가? 어떤 이는 사람이 죽으면 무덤 속에서 잠자는 상태로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무덤 속에서 그의 육체가 신령한 몸으로 변하여 부활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으면 죽은 즉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서, 사람의&amp;nbsp;육체는 원래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의 영혼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악인은 땅속(음부, 지옥)으로 내려가고, 의인은 천국에 올가가기 때문이다. 둘 다 부활체를 입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자들은 이 땅에서 입었던 육체를 다시 입는 것이 아니다. 영혼에게 몸이 주어짐으로&amp;nbsp;영의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죽었을 때에 쉬는 상태에 있다가 장차 주님 오시는&amp;nbsp;날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요한계시록을 보라. 이미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나온다. 거기에는 24장로들도 나오고, 순교자들도 나오며, 144,000명의 처녀들도 나오고, 사도들과 선지자들도 나온다. 이미 천국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이&amp;nbsp;A.D.95년경에 쓰여진 책이라면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약 60~65년이 지난 시점에 이미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 중에는&amp;nbsp;왕 노릇하는 성도들도 있었던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8. 예수님을 비롯한 죽은 성도는&amp;nbsp;어떤 순서대로 부활하는 것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부활은 어떤 순서대로 일어나는가? 사도 바울에 따르면 첫 사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때 부활체를 입은 순서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첫째는 부활의 첫 열매인 그리스도다. 그리스도가 잠&amp;nbsp;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계속해서 성도들의 부활이 있을 것임을 말해 준다. 그분은 부활의 첫 열매이시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예수님만 부활하셨고 나머지 모든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시에 부활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첫 열매라는 단어의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아니다. 구약시대에 죽었던 모든 성도들은 영혼의 상태로 낙원에 가 있다가,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제일 처음으로 살아나심으로 부활체를 입으신 직후에 모두가 한꺼번에 부활체를 입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낙원에 있던 성도들이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구약의 성도들 중에 이기는 자들이 144,000명의 명단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그중에 대표자들은 24장로의 명단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신약의 성도들은 개인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오늘 이 시간까지 천국인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체를 입고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 이후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개인적으로 부활체를 입는 성도들을 가리켜 사도 요한은 &amp;#39;첫째 부활&amp;#39;에 참여하는 자들이라고 말한다(계20:5~6). 그리고 주님의 재림시에는 한꺼번에 성도들의 추수 곧 휴거가 일어난다(살전4:16~17). 이것을 일컬어 &amp;#39;둘째 부활&amp;#39;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성도들의 마지막 부활인 것이다. 그리고 악한 영들의 높은 계급들인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사망을 멸하신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부활의 순서를 이렇게 말했다.&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고전15:23-26&amp;nbsp;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amp;nbsp;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amp;nbsp;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amp;nbsp;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9. 고린도 성도들이 부활을 믿고 있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하고 있는 일부 고린도 성도들이&amp;nbsp;사실은 부활을 믿고 있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만약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면 죽은 자를 대신하여 세례를 받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고전15:30). 이것은 사실 성경적인 세례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있었던 고린도교회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그러한 사례를 들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이미 다 죽은 자의&amp;nbsp;부활을 믿고 있었다고 말한다. 사실 바울 일행도 죽음을 무릅쓴 채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이유는 부활이 있음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고전15:31~32a). 만약 정말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고 할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고전15:32).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깨어서 의를 행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죄를 짓지 말라고 한다.&amp;nbsp;&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0.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부활 신앙은 내세에 대한 신앙의 기초가 되는 아주 중요한 영역이다. 다음의 생이 없다고 한다면, 누가 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으며 누가 주의 일을 충성되이&amp;nbsp;감당하겠는가? 부활은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생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인생의 목표가 달라질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영역인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죽음 후에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amp;nbsp;죽도록 충성한 사람에게는 커다란 상이 주어질 것이다. 물론 성도들 모두가 주님으로부터 보상을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 모든&amp;nbsp;성도는 부활에 대한&amp;nbsp;소망이 있기에 기꺼이 고난을 감수할&amp;nbsp;수 있고, 죽음까지도 불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amp;nbsp;수고와 노력 그리고&amp;nbsp;헌신과 봉사, 심지어 순교까지도 사실은&amp;nbsp;부활 신앙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부활은 성도들 개인의 가장 큰 소망이며, 가장 확실한 기대인 것이다. 이것을 믿기에&amp;nbsp;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금도 자신의 인생을 주님께 드릴 수있으며, 선교사로 자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주를&amp;nbsp;위해 몸된 교회에서 충성하는&amp;nbsp;것이다. 다음 이 시간에는 부활 때 입을 새로운 몸이란&amp;nbsp;어떤 것이며, 그때에 그에게 어떤 영광이 주어지는지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1년 10월 06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고린도전서강해(22) 방언과 예언의 은사 받는 법과 그것의 활용(고전14:20~40)_2021-09-29(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80"/>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80#comment"/>		<id>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80</id>
		<published>2021-09-29T14:04:23+09:00</published>
		<updated>2021-09-30T14:07:13+09:00</updated>
		<author>
			<name>동탄명성교회</name>
		</author>
		<summary type="text">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들 가운데에 말의 은사에는 방언과 방언통역과 예언의 은사가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은사들은 교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까? 그리고 이것을 교회에서 사용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할 때 이러한 은사들을 받을 수 있는가? 소나무 몇 개의 뿌리를 뽑으면 되는가? 그리고 이러한 은사를 구하려는 자는 무엇에 주의하며 구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은사는 받았지만 훗날 주...</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들 가운데에 말의 은사에는 방언과 방언통역과 예언의 은사가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은사들은 교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까? 그리고 이것을 교회에서 사용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할 때 이러한 은사들을 받을 수 있는가? 소나무 몇 개의 뿌리를 뽑으면 되는가? 그리고 이러한 은사를 구하려는 자는 무엇에 주의하며 구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은사는 받았지만 훗날 주님으로부터 버림받아 바깥 어두운데 떨어지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lt;/p&gt; &lt;p&gt;&lt;iframe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19&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LNUiRQRaTzU&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 width=&quot;1278&quot;&gt;&lt;/iframe&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고린도전서 중에서 은사에 관한 부분은 12장부터 시작하여 14장까지 게속 이어진다. 무엇보다도 은사의 문제는 고린도교회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고린도교회에 속해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방언을 매우 귀하게 여겼으며 그것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이 자기의 덕만을 세운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었다.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서는 예언의 은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방언을 마치 자신의 영성을 자랑하기 위한 잣대로 삼았고 그것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들의 잘못된 방언의 은사 사용을 교정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12장부터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와 더불어 직분의 은사를 언급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제 14장에 들어와서 비로소 방언의 한계와 그것을 사용할 때에 주의해야 할 것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방언도 좋은 은사에 해당되지만 방언은 예언에 비해 여러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공중예배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방언과 예언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은사인지를 살펴보고, 방언이 지닌 한계점과 그것이 교회의 공예배에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리고 끝으로 모든 은사를 사용할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도 함께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방언이나 방언 통역 그리고 예언의 은사를 받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고린도전서 14:20~40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 들어와서 드디어 은사들 중에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039;방언&#039;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바울은 방언 통역이나 예언도 방언과 함께 다룬다. 이는 방언 통역과 예언의 은사를 말하기 위함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방언의 잘못된 사용을 지적하면서, 방언의 바른 사용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면서 방언 통역과 예언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바울은 방언의 바른 사용을 위해서 견주어 비교하고 추천할 많은 은사가 방언 통역과 예언의 은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방언의 은사보다는 방언 통역과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면한다.&lt;/p&gt; &lt;p&gt; 우선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1~19의 단락을 통하여, 방언이란 어떤 것이며 교회의 덕을 세움에 있어서 방언은 대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말한다. 이때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는 방언보다는 예언이 상대적으로 유익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린도전서 14:20~25절에서는 방언과 예언의 상반된 역할에 대해서 다룬다. 즉 이 두 가지 은사가 성령의 은사를 믿지 않는 자들과 불신자들에게는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알려 준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14:26~40에서는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교회에서 사용할 때에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말한다. 이때 사도는 그것들에 대한 실제적인 지침까지도 같이 알려 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은사 사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질서와 품위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은사에 대한 말씀을 마치게 된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방언과 예언은 어떤 목적으로 주어진 은사들이며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사실 방언과 예언은 초자연적인 은사들 중에서 &#039;방언 통역&#039;의 은사와 더불어 &#039;말&#039;의 은사에 속한 은사에 해당한다. 그런데 &#039;방언&#039;과 &#039;예언&#039;은 그 목적에 있어서 거의 상반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방언은 개인을 세워 주는 은사라고 한다면, 예언은 교회를 세워 주는 은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방언이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 은사라고 한다면, 예언은 남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 은사이기 때문이다. &lt;/p&gt; &lt;p&gt; 그렇다면 방언과 예언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 &lt;strong&gt;먼저, 첫째로 방언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자&lt;/strong&gt;. 방언은 한 마디로 개인의 덕을 세워 주는 은사라고 할 수 있다(고전14:4). 왜냐하면 방언을 통역해 보면, 방언은 자신의 영에게 주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약 80~90%정도이며, 자기의 영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약 10~20%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언의 내용을 살펴보면, 대부분 3가지 정도로 나온다. 하나는 위로과 격려의 말씀이 나온다. 예를 들어, &quot;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의 눈물을 보았노라. 모든 사람이 내 교회를 버리고 떠날 때에 너 만큼은 나를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아 주어서 참으로 고마웠다. 너의 진심 어린 기도를 내가 들었으니 이제부터 내가 너의 앞 길을 친히 인도해 주마.&quot; 라는 말이 나온다. 또 하나는 책망(꾸짖음)과 폭로의 말씀도 들어 있다. 예를 들어, &quot;너는 왜 나의 종을 쫓아내는 일에 앞장을 섰느냐? 내 종은 내가 판단한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내 종은 내가 세웠으니 내가 판단할 일인 것인데, 네가 네 손으로 그 종을 쫓아내었으니 네가 만일 그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너와 너의 집을 향한 나의 징계가 지금부터 시작될 것이니라.&quot;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사명과 과업에 대한 말씀도 들어 있다. 예를 들어, &quot;내가 너를 이 땅에 보낸 것은 너만 믿고 구원 받으라고 보낸 것이 아니다. 네가 회개함으로 네 자식과 네 집안까지 일으켜 세우라고 내가 너를 보낸 것이다. 너는 네가 했던 일에만 만족하지 말고, 이제는 너의 눈을 들어 너의 가족과 너의 가문을 구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quot; 고로 이렇듯 방언의 내용이 위로와 격려, 책망(꾸짖음)과 폭로, 사명과 과업에 대한 메시지인 것을 가정해 보면, 그것이 예언과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방언은 이러한 말씀을 방언하는 당사자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방언을 통역하는 자가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표적을 믿지도 않은 자나 불신자가 방언을 듣는다면, 아마도 그들을 미쳤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lt;/p&gt; &lt;p&gt; &lt;strong&gt;그런데 둘째로 예언의 역할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자. 예언은 사실 방언과 비슷한 은사이면서도 방언과는 좀 성격이 다르다&lt;/strong&gt;. 좀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방언 통역이란 방언하는 자의 말을 통역자가 듣고 그것을 해석해 주는 것이지만, 예언은 성령께서 내 영에게 주신 말씀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은사이기 때문이다. 고로 예언도 마찬가지로 주님이 그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만을 뚝 떼어놓고 본다면 그것이 통역되어 나온 방언인지 혹은 예언인지 분간할 수 없다. 그러나 예언에는 상대방의 영이 드리는 기도가 들어 있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예언은 정말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예언으로서의 기능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6가지 측면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첫째는 권면과 위로의 역할을 수행한다(고전14:3). 그리고 둘째는 책망과 판단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고전14:24). 또한 셋째는 폭로와 가르침의 기능도 같이 수행한다(고전14:25,31). 왜냐하면 예언을 통하여 상대방이 감추고 있는 일이 드러나게 됨으로 그 사람을 책망하여 결국 그를 회개로 이끌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예언을 모든 회중이 같이 듣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과연 무엇을 기뻐하며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배울 수도 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품과 마음을 배우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계획과 뜻이 무엇인지도 배우게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어떤 죄를 제일 싫어하시고 또한 어떤 일을 매우 기뻐하시는지를 알게 된다. 그러므로 초자연적인 은사로서 예언은 많은 사람을 주님 앞에 엎드리게 한다. 그리고 그럴 때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게 되며,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신다고 고백하게 된다(고전14:25).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공적인 예배시 방언과 예언은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바울은 이제 공예배시에 방언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를 어떻게 실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제시한다. 사도 바울은 먼저, 첫째로 공중예배 때에 등장하는 예배의 요소들 곧 찬송시나, 가르치는 말씀이나 계시 그리고 방언 그리고 방언 통역이 다 교회의 덕을 세우는데에 팔요한 것임을 지적한다(고전14:26). 그리고 이어서 둘째로, 공중예배시 방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설명해 준다(고전14:27~28). 즉 교회에서 방언을 사용할 때에는 첫째, 방언하는 자를 두 명 내지는 세 명 정도만을 세우라고 했다. 그리고 둘째, 중구난방식으로 방언하게 하지 말고,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차례대로 방언을 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교회에서 방언을 하게 할 때에는 반드시 방언 통역자를 세워서 방언하는 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온 회중이 들어서 알게 하라고 하였다(고전14:27). 만약 교회에 이렇게 통역할 수 있는 자가 없다면 방언은 결단코 공중예배시에 사용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래도 혹시 방언을 하고 싶다면 그때에는 개인적으로 그리고 하나님에게만 말하라고 하였다(고전14:28).&lt;/p&gt; &lt;p&gt;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공중예배시 예언을 할 때에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말했다(고전14:29~32). 이때에도 역시 방언 통역 때와 마찬가지로, 첫째, 예언을 두 명이나 혹시 많으면 세 명 정도만을 선별하여 예언하게 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둘째, 역시 이것도 차례대로 질서있게 해야 하며, 셋째, 예언이 끝나면 예언의 내용을 100% 무조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과연 그 예언이 성령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사탄 마귀로부터 온 것인지를 분별하라고 하였다. 왜 그런가? 그것은 예언이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는 단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언은 보통 상대방을 보면서 그때 자기의 마음에 주님께서 떠오르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이때 예언하는 자의 마음과 발성 기관을 거치면서 예언이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언하는 자가 죄를 짓고도 회개를 하지 않았다든지, 하나님 앞에 불경건한 신앙 생활을 하다가 은사를 사용하게 되면 예언이 잘못 나올 수가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예언할 때에도 성령의 통제하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즉 사람이 예언을 할 때에 다른 이에게서 또 예언이 나오면, 그때에는 전에 예언하고 있던 자가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앞의 사람이 예언을 하고 있지만 그 예언이 틀리게 전달될 경우,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시켜서 그 예언을 막으시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로 사도 바울은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뒤에 예언하는 자들의 영에 제제를 받는 것이 좋다고 말한 것이다(고전14:32).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화평 중에 부르시는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고전14:33).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모든 교회에서 여자는 항상 발언하는 위치에 서 있을 수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사도 바울은 은사 사용에 있어서 질서가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매우 강조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고전14:33). 그러므로 공중예배 시간에 방언을 사용할 때나 예언을 할 때에는 반드시 차례를 따라 순서대로 말해야 한다고 하였다(고전14:27~28). 이어서 바울은 모든 성도가 교회 안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율법에서 말씀하셨던 바와 같이(창3;16),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여자가 남자와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 함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에 어떤 질서를 정해 주셨으니, 그것은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으로서 질서있게 창조하셨다는 것이다(고전11:3). 그러므로 여자가 교회에서 자꾸 말하다 보면 교회가 소란스럽게 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왜냐하면 생태적으로 여자는 남자보다 더 많이 말을 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을 보더라도 여자는 뱀에게 계속해서 말을 한다. 이때 남자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말함으로 인하여 여자가 먼저 꾀임을 받아서 죄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도 굳이 여자가 말을 하려고 한다면 직접 나서서 말하기보다는 자기의 집에서 자기의 남편에게 물으라고 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가 소란스럽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여자가 남자에게 묻지 않고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까지 하였다. 이는 은사의 사용에 있어서 대원칙과도 같은 것임을 명심해야 하겠다. 참고로 이러한 명령은 당시 시대적인 상황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에, 오늘날 교회에서도 이와 똑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강요하는 용도로 사용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보다 더 높은 차원의 영성을 갖기를 위하여 바울의 말을 듣고 있는 자는 어떤 생각으로 바울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많은 사람들은 은사의 사용과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을 두고서 자기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워서 그것을 정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누구에게서 나왔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을 통해서 나왔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들에게만 하나님의 말씀이 도착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권면한다(고전14:36). 그리고 특별히 고린도교회를 직접 개척하고 세웠던 사도 바울은 은사에 대해서는 고린도교회에게 좀 더 강경하게 말하였다. 그것은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영적인 자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사도 바울의 권면의 말씀이 주의 명령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만일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하거나 모르는 자가 자기를 선지자나 영적인 자로 자처한다면 그는 영적으로 무지한 자라고 말했다(고전14:38). 그는 영적인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방언과 예언 및 은사 사용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예언과 방언에 대해서 이렇게 마무리 한다. &quot;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고 있으며, 방언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고 있어라(고전14:39)&quot; 그렇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영적인 것을 사모하려면 방언보다는 예언하기를 더 사모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왜냐하면 방언은 개인의 덕을 세워주는 것일 뿐 교회의 덕을 세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은사를 구하는 대원칙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데 있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바울은 교회에서 개인적으로 방언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금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상황은 어떠한가? 방언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방언이 마치 구원의 확실한 표적인 것인 양 떠들어대는 교단도 있으며, 반대로 방언을 지나치게 무시한 나머지 방언을 고린도 현상 내지는 귀신들의 장난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양쪽 다 잘못된 것이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한다.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도 더 방언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다고 말이다(고전14:18). 왜 그런가? 방언이야말로 초자연적인 은사로서, 다른 은사들을 받게 하는 일종의 첫 관문과도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요, 방언을 많이 말할 때에 다른 은사들도 선물로 주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금해서는 아니 된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은사를 사용할 때에는 2가지 태도를 꼭 지켜 줄 것을 권면하였다(고전14:40). 그것은 품위있게 은사를 사용하고, 질서를 따라서 은사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다. 우리는 내가 은사를 가졌다고 해서 무조건 그 은사를 최고로 여긴 채 함부로 사용하여서 교회를 소란스럽게 할 것이 아니라,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때로는 가진 은사라도 잠시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으며, 은사를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될 때까지 때로는 기다릴 필요도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어찌되었든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따라 은사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더 성숙한 은사자의 통제가 없이 은사를 사용하는 것은 귀신의 밥이 될 확률이 매우 크며, 마지막 날에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아 바깥 어둔 데에 내던져지는 이들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8. 어떻게 하면 방언이나 방언 통역 그리고 예언의 은사를 받을 수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할 때 이러한 신령한 은사들을 받을 수 있는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quot;너희들은 영적인 것들을 [계속] 사모하고 있어라. 그런데 너희들은 더욱더 예언하기를 [계속] 사모하고 있어라(고전14:1)&quot;. 그렇다. 사도 바울은 신령한 은사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사모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방언이나 방언 통역 그리고 예언의 은사를 받으려면 이러한 은사를 사모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gt; 그렇다면 실제로 어떤 사람이 이러한 은사를 더 많이 받게 되는 것인가? 그것에 관하여는 몇 가지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으니, &lt;strong&gt;첫째, 방언이나 방언 통역이나 예언의 은사는 다 기도를 많이 하라고 주시는 은사라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도를 많이 하라고 주신 은사들이 대부분인데 기도도 많이 하지 않으려 하면서 은사들을 사모하면 안 되는 것이다.&lt;strong&gt; 둘째, 이러한 은사는 예언의 은사의 경우처럼 그것이 자신의 영적인 상태로 혼합되어 밖으로 표출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은사를 사모하는 자는 반드시 청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이 더럽혀진 상태에 있으면서 은사를 사모하여 은사를 받게 된다면 그 더러움은 누가 과연 책임질 것인가? 그리고 회개를 하지 못해 청결하지 않는 자가 성령의 은사를 받게 되면 성령과 함께 동시도 귀신도 역사하여, 귀신이 보여주고 들려주고 생각나게 한 것을 성령이라고 함으로 나타나게 될 결과들은 누가 또 책임을 지겠는가? 그러므로 거룩한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는 자는 반드시 자신을 청결하게 만드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lt;strong&gt;셋째, 모든 은사는 섬기기 위해 주어진 은사이므로 주신 하나님께 보은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 왜 그런가? 모든 은사를 다른 지체를 섬기라고 주어진 은사요,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주신 은사이기 때문이다. 고로 방언을 제외한 모든 은사들은 다 남을 섬기라고 주신 은사들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들을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려 하고, 그것을 남을 위해 섬기는 용도로 사용하지 않으려 하면서 그것을 구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은 자는 반드시 자신을 주님께서 헌신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은사가 좋다하며 간구했다가 결국 그 은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묶어 둔다면, 결국 주님 앞에 책망받을 일을 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결국 은사를 받기 사모하는 자는 남들보다 더 많이 기도하는 것을 즐거워해야 하고, 섬기는 은사이기에 남들보다 더 부지런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보다 남을 섬기기를 더 기뻐해야 하는 것이다. 남 섬기기를 자기를 섬기는 것보다 우선할 수 있는 자가 은사를 간구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9.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성령의 은사 중에 방언이 은사가 과연 최고의 은사인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울은 방언보다는 예언의 은사를 더 사모하라고 권면하였다. 이는 교회를 건축하는 데에는 방언의 은사가 아니라 예언의 은사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고로 바울은 모든 은사들은 다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주어지는 은사이니만큼, 방언보다는 예언의 은사를 더 사모하라고 한 것이다. 그래도 방언의 은사는 개인의 덕을 세워주는 데에는 그만한 은사가 없기 때문에 방언 말하기를 금해서도 아니 된다고 하였다.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신령한 은사는 방언 통역의 은사요 예언의 은사이니 이러한 은사를 더 사모하라고 한 것이다. 특별히 조금 전에서도 살펴보았지만 그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인 경우에는 방언 통역이나 예언은 거의 비슷한 은사라는 것도 함께 살펴보았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달랐다. 어떤 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없고 하나님만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을 유창한 발언을 따라 신령함의 정도로 측정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는 결국 바울에 의해 크게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교정을 받아야 했다. 개인의 덕을 세우는 방언의 은사를 사용하는 것을 말릴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공예배시에 사용하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방언을 교회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역을 세우라고 하였고, 만일 통역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때에는 잠잠하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방언이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큰 소리로 내뱉는 은사이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들의 눈에 그것은 미친 사람의 소리처럼 들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미친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성령의 제일 표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최초로 나타났던 예루살렘교회가 그랬고, 이어서 이방인 최초로 믿는 자였던 고넬료 가정에서도 그랬으며, 베드로의 뒤를 이어 이방인 선교에 집중했던 바울의 선교 현장에서도 그렇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방언이 만사 형통의 방법은 결코 아닌 것이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에게 방언의 은사는 아무런 유용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방언은 결코 회개를 대신할 수 없으며, 방언은 결코 자신의 성품을 바꾸어 주지도 못하며, 방언으로서는 감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방언을 비롯한 신령한 은사를 구하려는 자는 반드시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더욱더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남들보다 더 많은 기도를 하기 위해 그러한 은사를 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더불어 진정 남보다도 더 십계명을 지키면서 성결한 삶을 살려고 하면서 은사를 구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많은 시간을 다른 지체를 섬기려는 의도에서 은사를 구하고 있는지도 돌이켜 보아야 한다. 어찌되었든지 성령의 은사를 받게 되면 그는 사역자로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lt;/p&gt; &lt;p&gt; &lt;/p&gt; &lt;p&gt;[첨부파일 다운로드(1)] &lt;a href=&quot;?module=file&amp;amp;act=procFileDownload&amp;amp;file_srl=87681&amp;amp;sid=ad0263461483a15127762820ee7742f5&amp;amp;module_srl=220&quot;&gt;고린도전서강해(22) 방언과 예언의 은사 받는 법과 그것의 활용(고전14,20_40).pdf&lt;/a&gt;&lt;/p&gt; &lt;p&gt;[첨부파일 다운로드(2)] &lt;a href=&quot;?module=file&amp;amp;act=procFileDownload&amp;amp;file_srl=87682&amp;amp;sid=accebd94ad43d5d7ab3703202096172e&amp;amp;module_srl=220&quot;&gt;고린도전서강해(22) 방언과 예언의 은사 받는 법과 그것의 활용(고전14,20_40).pptx&lt;/a&gt;&lt;/p&gt; &lt;p&gt; &lt;/p&gt; &lt;p&gt;2021년 09월 29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크기변환]20210929_002136.jp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87672/680/087/34fbaf3bef711f0106db543f356c9ce2.jpg&quot; /&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고린도전서강해(21) 방언과 예언과 방언통역의 은사에 대하여(고전14:1~19)_2021-09-08(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84"/>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84#comment"/>		<id>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84</id>
		<published>2021-09-08T14:06:09+09:00</published>
		<updated>2021-09-28T18:56:52+09:00</updated>
		<author>
			<name>동탄명성교회</name>
		</author>
		<summary type="text">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들 중에 가장 중요한 은사는 대체 무엇인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것을 방언의 은사라고 보았다. 그럼 오늘날에도 진짜 그러한가? 바울은 방언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면서, 방언의 은사가 가진 장점과 단점을 알려준다. 그리고 좀 더 바람직한 신령한 은사로서 예언의 은사와 방언 통역의 은사를 추천한다. 왜 바울은 이러한 2가지 은사를 추천해야 했는가?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그 이유를 분...</summary>
	<content type="html">&lt;p&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들 중에 가장 중요한 은사는 대체 무엇인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것을 방언의 은사라고 보았다. 그럼 오늘날에도 진짜 그러한가? 바울은 방언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면서, 방언의 은사가 가진 장점과 단점을 알려준다. 그리고 좀 더 바람직한 신령한 은사로서 예언의 은사와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의 은사를 추천한다. 왜 바울은 이러한 2가지 은사를 추천해야 했는가? 바울은 고&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린도전서&amp;nbsp;14&lt;/span&gt;장에서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iframe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19&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TAFyAGbodLQ&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 width=&quot;1278&quot;&gt;&lt;/iframe&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 모든 은사에도&amp;nbsp;대전제가 있다. 그것은 사랑의 은사가 모든 은&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사 사&lt;/span&gt;용에 기&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본 바&lt;/span&gt;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아무리 신령한 은사라고 할지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지 아니하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이는&amp;nbsp;사랑이 기본적으로 겸비된 사람에게 어떤 은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 어떤 은사가 우리와 우&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리 교&lt;/span&gt;회에 필요할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나타난 은사들의 문제를 직시하면서 은사들 중에는 개인을 세워주는 은사가 있는가 하면 교회를 세워주는 은사가 있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고린도전&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서&lt;/span&gt;&amp;nbsp;14장의 전체 내용이다. 그렇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잘못된 은사 사용에 대해서 알&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려 주&lt;/span&gt;고 바른 은&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사 사&lt;/span&gt;용을 위한 실제적인 예로&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서&amp;nbsp;방&lt;/span&gt;언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를 비교하여 말한다. 그것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비록 방언의 은사가 신비롭게 보이고 멋있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공예배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면&amp;nbsp;오히려 공예배의 혼란만 가중시킬 뿐&amp;nbsp;교회를 세우는 데에는 유익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신령한 은사를 사모한다면 방언의 은사보다는 상대적으로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고&amp;nbsp;권면한다. 그렇다면 대체 방언의 은사는 어떤 은사를 가리키며, 예언의 은사는 어떠한 은사이길래 바울은 예언의 은사를 더 사모하라고&amp;nbsp;권면하는가? 그리고 대체 방언이 가진&amp;nbsp;한계는&amp;nbsp;무엇인가?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서 방언과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 그리고 예언의 정의와 아울러 이 은사들의 유익성과 한계성을 살펴보고&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자 한&lt;/span&gt;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이러한 3가지 은사를 어떻게 받을 수 있고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것에 대한 부작용은 없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webkit-text-stroke-width:0px;margin:0px;text-align:left;&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2.&amp;nbsp;고린도교회에 예배 중&amp;nbsp;은사 사용에 있어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lt;/span&gt;&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 바울은 고린&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도교&lt;/span&gt;회에서 예&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배 중&lt;/span&gt;&amp;nbsp;은사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방언의 은사 사용이 교회를 건축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바울은 어떻게 그것을 알았을까? 그것은 고린&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도교&lt;/span&gt;회가 방언의 은사를 최고의 은사로 알고 사모하면서 그 은사를 예배 중 사용했지만 그것이 교회의 건&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축&lt;/span&gt;에 전혀 유익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방언을 말하다 보면 방언이 자주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방언의 소리를 분석해 보면 어떤 방언은 일정한 형식이 있고 그 소리가 분명하기도 하지만 어떤 방언은 도무지 방언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amp;nbsp;유치하게 들리는 방언도 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가 방언의 은사를 매우 귀하게 여기고 또한 사모하&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다 보&lt;/span&gt;니, 일종의 좋은 방언과 나쁜 방언&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을&lt;/span&gt;&amp;nbsp;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사&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도 바&lt;/span&gt;울은 방언이 지닌 한계점을 지적하면서 방언이 공&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중 예&lt;/span&gt;배에서 사용될 수 없다는 이유를 설명한다.&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webkit-text-stroke-width:0px;margin:0px;text-align:lef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3. 바울은 왜 방언의 은사보다는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는가?&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 그래서 바울은 교회에서 은사를 사용하려면 방언의 은사보다는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고 그것을 사용할 것을 권면한다. 그렇다면 왜 방언을&amp;nbsp;공&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중 예&lt;/span&gt;배에서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그것은 방언 자체가 지&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니&lt;/span&gt;는 한계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점에서 그렇다. &lt;strong&gt;첫째, 방언은 사람들이 알&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아 들&lt;/span&gt;을 수 없는 말이므로, 그것을 공&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중 예&lt;/span&gt;배에&amp;nbsp;사용한들 아무도 알&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아듣&lt;/span&gt;는 자가 없으며 그 방언을 듣고 &amp;#39;아멘&amp;#39;이라고 할 자가 없다는 것&lt;/strong&gt;이다.일만 마디의 알&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아 들&lt;/span&gt;을&amp;nbsp;수 없는 방언보다는 한 마&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디&lt;/span&gt;의 알&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아 들&lt;/span&gt;을 수 있는 말이 더 유용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방언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자를 세워야 한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lt;strong&gt;둘째, 방언은 개인을 세워주는 은사일 뿐이라는 것&lt;/strong&gt;이다. 사실 방언은 개인을 세워주는 은사이지만 예언은 교회를 세워주는 은사이기 때문에 바울은 방언보다는 예언의 은사를 더 사모하라고 말했던 것이다. 왜 그런가? 여기서 &amp;#39;세운다&amp;#39;는 말은 &amp;#39;덕을 세운다&amp;#39;라는 뜻이 아니다. 이 단어는 &amp;#39;오이코도메오&amp;#39;라는 단어로서, 이 단어의 일차적인 뜻은&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amp;nbsp;&amp;#39;짓&lt;/span&gt;다. 세우다. 건축하&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다&amp;#39;&lt;/span&gt;의 뜻이지만, 이 단어에 대한 이차적인 뜻이&amp;nbsp;&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amp;#39;다&lt;/span&gt;시 짓다. 다시 세우다. 다시 건축하다&amp;#39;는 뜻으로서 &amp;#39;복구하다, 복원하다&amp;#39;라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방언의 은사는 교회를 건축하거나 교회의 쓰러지고 허물어진 곳을 일으켜 세우는 은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영적으로 무너져 있다. 그런데 허물어져 있는 자신의 영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사실 방언이 필요하다. 방언을 하게 되면 자신의 영을 건축하여 튼튼하게 만들&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어 주&lt;/span&gt;고 이미 허물어져 있는 자신의 영도 다시 복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언은 교&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회 자&lt;/span&gt;체를 그렇게 세워주고 복구하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바울은 기왕 신령한 은사를 사모한다면 방언보다는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한 것이다. &lt;strong&gt;셋째, 방언의 은사는 방언을 하고 있는 자&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기 자&lt;/span&gt;신도 알&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아 들&lt;/span&gt;을 수 없는 언어이기 때문에 마음에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lt;/strong&gt;이다. 그러므로 이성적으로 깨닫고 돌이키고 배우게 하는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한 것이다.&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webkit-text-stroke-width:0px;margin:0px;text-align:lef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4. 방언이란 어떤 은사를 가리키는가?&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 그렇다면 대체 &amp;#39;방언&amp;#39;의 은사는 어떤 것인가? 방언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정의하고 있는 곳은 사실 성경을 통틀어서 고린도전서 14장 밖에 없다. 나머지는 그곳에 그러한 현상이 있었다는 것을 말&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해 주&lt;/span&gt;고 있을 뿐이다. 방언이라는 언어가 대체 어떤 것인지를 말&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해 주&lt;/span&gt;지는 않고, 그곳에 방언의 은사가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방언을 어떤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는가? 그것은 고&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린도전서&amp;nbsp;&lt;/span&gt;14:2과&amp;nbsp;&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고린도전서&lt;/span&gt;&amp;nbsp;14:14~15에 나온다. 이 말씀을 헬라&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어 원&lt;/span&gt;문으로 직역&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해 보&lt;/span&gt;면 다음과 같다.&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고전14:2&amp;nbsp;&amp;nbsp;왜냐하면&amp;nbsp;방언으로 발언하고 있는 자는 사람들에게 발언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발언하고 있기 때문이다.&amp;nbsp;왜냐하면 아무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amp;nbsp;그런데 그가 영으로 비밀들을 발언하고 있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고전14:14&amp;nbsp; 왜냐하면 내가 만일&amp;nbsp;[계속]&amp;nbsp;방언으로 기도하고 있으면,&amp;nbsp;나의 영이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amp;nbsp;그럴지라도 나의 이성(생각=누스)은 열매가 없이 있느니라.&amp;nbsp;15&amp;nbsp;그러면 무엇이 있느냐?&amp;nbsp;나는&amp;nbsp;영으로&amp;nbsp;[장차]&amp;nbsp;기도할 것이다.&amp;nbsp;그럴지라도 역시 나는 이성(생각=누스)으로도 역시 기도할 것이다.&amp;nbsp;나는&amp;nbsp;영으로&amp;nbsp;[장차]&amp;nbsp;찬송할 것이다.&amp;nbsp;그럴지라도 나는 이성(생각=누스)으로도 역시 찬송할 것이다.&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 그렇다. 방언이란 2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amp;nbsp;&lt;strong&gt;첫째, 방언은 거듭난 사람의 영이 하나님과 말하는 언어&lt;/strong&gt;이다(고전14:2). 곧 거듭난 사람의 영의 언어가 방언인 것이다. 사람이 거듭나기 전에 사람 안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들&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어 있&lt;/span&gt;지 않다. 그러다가 자신&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이&amp;nbsp;&lt;/span&gt;죄인인 것을 깨닫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amp;nbsp;죄를 대속하시고 하늘&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로&lt;/span&gt;&amp;nbsp;다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목놓아 울게 된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하셨는지, 그분의 사랑과 희생이 너무나 크시다는 것을 깨닫고 그분&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을&lt;/span&gt;&amp;nbsp;이제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새롭게 모신다. 그때에 그는 거듭나게 된다. 그러면 성령께서 그 사람의 영 속에 들어오게 된다. 그것을 거듭남이라고 부르는데, 이때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데, 이때 하나님의 자녀가 재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때에 그 영이 죽&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어 있다&lt;/span&gt;가 다시 살게 되었다는 것을 알&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려 주&lt;/span&gt;는 것이 바로 방언이다&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 아&lt;/span&gt;기가 태어나면 &amp;#39;응애&amp;#39;하고 말을 하듯이 자신의 살아난 영이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의 영이 말하는 것이 바로 방언인 것이다. 하지만 이 방언은 자신의 영&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에게&amp;nbsp;&lt;/span&gt;하나님께서 직접 대화하는 새로운 채널로 부여&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한&amp;nbsp;&lt;/span&gt;것이기에 사람들은 그 말을 알&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아 들&lt;/span&gt;을 수가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말을 알아들으신다. 만약 그것을 통역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비밀 대화인 것을 알 수 있다.&amp;nbsp;&lt;strong&gt;둘째, 방언이란 거듭난 사람의 영의 기도&lt;/strong&gt;라는 것이다(고전14:14~15). 사람에게는&amp;nbsp;누구나 자기가 사용하는 일&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상 용&lt;/span&gt;어가 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한국어다. 그러나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한&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국 아&lt;/span&gt;이들의 경우는 영어와 한국어가 동시에 일&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상 용&lt;/span&gt;어로 사용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상 용&lt;/span&gt;어는 혼의 언어다. 배워서 하는 것이요, 나와 다른 사람&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과&lt;/span&gt;의 의&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사 소&lt;/span&gt;통의 채널이 되는 것이다. 그렇&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지만&lt;/span&gt;&amp;nbsp;방언은 다르다. 방언은 영의 언어일 뿐만 아니라 그 영이 하나님&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께&amp;nbsp;드&lt;/span&gt;리는 기도다. 내 혼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도 있지만 내 영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도 있는 것이다. 내 영이 자신의 소원을 하나님&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께&amp;nbsp;아&lt;/span&gt;뢰는 것이 바로 방언인 것이다. 그래서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의 은사를 가지고 사람이 자신의 영으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통역&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해 보&lt;/span&gt;면, 자신의 영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말이&amp;nbsp;약 80~90&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 정&lt;/span&gt;도가 되며, 자신의 영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영의 기도는 약 10~20% 정도 된다. 나는 잘 인식하고 있지 않아도 영은 자신의 소원을 알고 벌써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방언이다. 그리고 방언의 분량&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이&lt;/span&gt;&amp;nbsp;많아지고 깊어지&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면&lt;/span&gt;&amp;nbsp;어느 순간부터는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찬&lt;/span&gt;양도 나온다. 방언에 음률이 붙어서 자신의 영이 노래를 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을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찬&lt;/span&gt;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webkit-text-stroke-width:0px;margin:0px;text-align:lef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5. 방언은 &amp;#39;외국어&amp;#39; 중의 하나요&amp;nbsp;고린도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방언이란 거듭난 사람의 &amp;#39;영의 말&amp;#39;(고전14:2)이자 &amp;#39;영의 기도&amp;#39;(고전14:14~15)라고 분명하게 정의하였다. 하지만 방언이 영이 말하는&amp;nbsp;언어가 아니라 &amp;#39;외국어&amp;#39;에&amp;nbsp;불과하다고 주장하는 분들도&amp;nbsp;더러 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방언이라는 은사는&amp;nbsp;신약성경이 완성됨과 동시에 교회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또한 최초로 사도행전 2장에 등장하고 있는 나오는 &amp;#39;방언&amp;#39;도&amp;nbsp;그때 예루살렘&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을&lt;/span&gt;&amp;nbsp;찾아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지방에서 쓰던&amp;nbsp;지방어였다는 것이다. 더욱이&amp;nbsp;고린도전서 14장에 사도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알&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아 들&lt;/span&gt;을 수 없는 말로서 &amp;#39;방언&amp;#39;은&amp;nbsp;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무아지경에서 지껄이는 일종의 귀신들의 속삭임이었다는 것이다. 그것도&amp;nbsp;고린도지역&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에만&lt;/span&gt;&amp;nbsp;나타났던&amp;nbsp;고린도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고&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린도전서&amp;nbsp;&lt;/span&gt;14장을 번역하고 있는데, 신약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말이 안 되는&amp;nbsp;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사료된다. 그분들의 이름을 굳이 거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는 어떤 사람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을 경계해야&amp;nbsp;한다. 우리는 오로지&amp;nbsp;성경을 믿고 성경에 나온 말씀대로 따라가야 한다. &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 그렇다면,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방언이란&amp;nbsp;어떤 언어였을까? 정말 &amp;#39;지방말&amp;#39;이었던 것이었을까?&amp;nbsp;&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사도행전&lt;/span&gt;&amp;nbsp;2:4에 보면, 오순절날 마&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가 다&lt;/span&gt;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께서 내려오셨다. 그리하여&amp;nbsp;그들 모두가 다&amp;nbsp;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amp;nbsp;성령이 말하게 하심으로 따라&amp;nbsp;&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amp;#39;다&lt;/span&gt;른 언어&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들&amp;#39;&lt;/span&gt;로 말하기를 시작한다(행2:4). 그런데 이번에 우리말이 개역개정판으로 넘어오면서&amp;nbsp;&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amp;#39;다&lt;/span&gt;른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amp;#39;&lt;/span&gt;이라는 용어가&amp;nbsp;&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amp;#39;다&lt;/span&gt;른 언어&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들&amp;#39;&lt;/span&gt;로 뒤바뀌었다. 번역하는&amp;nbsp;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개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amp;#39;다른 방언&amp;#39;이 &amp;#39;다른 언어들&amp;#39;로 바뀐 것이다. 명백한&amp;nbsp;성&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경 번&lt;/span&gt;역의 퇴보가&amp;nbsp;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여기에 등장하는&amp;nbsp;&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amp;#39;다&lt;/span&gt;른 언어&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들&amp;#39;&lt;/span&gt;은 헬라어로 보면,&amp;nbsp;&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amp;#39;헤&lt;/span&gt;테라이스 글로싸이스(other&amp;nbsp;tongues&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amp;#39;&lt;/span&gt;라는 단어로서 완전히 종류가 다른 언어라고 나오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120명의 성도들이 말했던 언어가 히브리어, 헬라어, 로마어 같은 종류의 이 세상의 언어였다면, 그것에 대한 헬라어 단어는&amp;nbsp;&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amp;#39;알&lt;/span&gt;로이스 글로싸이스(another tongues&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amp;#39;&lt;/span&gt;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이때 사용된 단어는 종류가 다른 언어로 곧 &amp;#39;헤테라이스 글로싸이스&amp;#39;로서 영이 사용하는 특별한&amp;nbsp;언어인 방언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해 준다. 무엇보다도 오순절날 사람들 중에 어떤 이는&amp;nbsp;120명 성도들&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이&lt;/span&gt;&amp;nbsp;말했던 언어를&amp;nbsp;들은 후에 &amp;quot;이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amp;quot;라고 말했다. 자기들이 전혀 알&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아 들&lt;/span&gt;을 수 없는 언어였기에&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amp;nbsp;술 취&lt;/span&gt;한 것 같다고&amp;nbsp;말한 것이다. 그렇다. 여기에 사용되고 있는 &amp;#39;방언&amp;#39;은 분명히 &amp;#39;글로싸&amp;#39;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약속한 표적으로서 주어지는 방언도 역시 &amp;#39;글로싸&amp;#39;이다(막16:17). 그리고 오순절날 마가&amp;nbsp; 다락방에&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서&lt;/span&gt;&amp;nbsp;말해졌던 언어도 &amp;#39;글로싸&amp;#39;였고,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고넬&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료 가&lt;/span&gt;정에 성령이 오셔서 베풀어졌던&amp;nbsp;방언도 역시 &amp;#39;글로싸&amp;#39;였다. 뿐만 아니라 사&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도 바&lt;/span&gt;울이 에베소서에서 안수할 때 성령께서 은사를 주셨는데 그때 받은 방언도 역시 &amp;#39;글로싸&amp;#39;이다. 그리고 방언이 무엇인지에 대해&amp;nbsp;쓰고 있는 고린도전서 14장에서도 방언이라는 단어도&amp;nbsp;역시 &amp;#39;글로싸&amp;#39;라고 나온다. 모두가 다, 이 세상에서 사용하지 않&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는&lt;/span&gt;&amp;nbsp;다른&amp;nbsp;종류의 방언들(헤테라이스 글로싸이스)을 지칭하는 표현들이라고 하겠다.&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webkit-text-stroke-width:0px;margin:0px;text-align:lef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6. 방언 통역이란&amp;nbsp;어떤 것이며,&amp;nbsp;어떻게 진행되는가?&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 그렇다면 &amp;#39;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amp;#39;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이란&amp;nbsp;다른 사람이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내가 알아듣는 은사를 가리킨다. 원래 방언은 그 사람과 하나님만 소통하는 대화 채널이어서 그 소리를 듣는다&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고 해&lt;/span&gt;도&amp;nbsp;무슨 말을 하고 있으며&amp;nbsp;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인데,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의 은사를 받&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게 되&lt;/span&gt;면 그 사람의 방언이 무슨 내용인지를 알&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아듣&lt;/span&gt;게 되는 은사가 바로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의 은사인 것이다.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의 은사는 보통 3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는 상대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의&lt;/span&gt;&amp;nbsp;방언&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이&amp;nbsp;무&lt;/span&gt;슨 내용인지를 영이 느낌으로 그냥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은 상당히 실수할 때도 있다. 정확하지 않은 것을 통역하&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다 보&lt;/span&gt;면 방언의 내용에는 없&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는&lt;/span&gt;&amp;nbsp;것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상대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의&lt;/span&gt;&amp;nbsp;방언이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들리는 것이다. 즉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어로 들리는 것이다. 상대방은 분명히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영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데, 그것이 알기 쉽게 한국어로 들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듣고 그대로 말&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해 주&lt;/span&gt;는 것이다. 이것이 잘 되신 분은 동&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시 통&lt;/span&gt;역이&amp;nbsp;가능하다. 상대방의 방언을 들으면서 바로 동시에 통역하는 것이다. 그런데 동&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시 통&lt;/span&gt;역도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주님께서 그 사람의 죄를 들추&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어 낼&lt;/span&gt;&amp;nbsp;때가 있는데, 그것을 그대로 말했다가 그만 그 사람의 체면이 손상되고 그 사람의 숨은 죄가 드러남으로 성도들을 놀라게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때에는 순화하는 말로 바꾸어서 통역&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해 주&lt;/span&gt;어야 한다. 그러면 방언하는 당사자만 알아듣고 회개를 할 수가 있다. 셋째, 방언하는 자의 입술에서 글자가 나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에는 한국어로 글자가 되어 입에서 나오는 것이 영안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 그 입으로 나오는 글자를 읽&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어 주&lt;/span&gt;면 된다. 이것이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amp;nbsp;통&lt;/span&gt;역이다. 이러한 사람은 지구상에 몇 명 안되는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역 은&lt;/span&gt;사라고 할 수 있다.&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webkit-text-stroke-width:0px;margin:0px;text-align:lef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7. 예언이란 어떤 은사를 가리키며 그것의 7가지&amp;nbsp;기능은 무엇인가?&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 &amp;nbsp;그렇다면 마지막으로 &amp;#39;예언&amp;#39;의 은사란 어떤 것인가?&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amp;nbsp;&amp;#39;예&lt;/span&gt;언&amp;#39;의 은사는 일반적으로 결코 알 수 없는 현재의 상태나 미래의 일을 미리 알고 그것을 미리 말할 수 있는&amp;nbsp;초자연적인 은사를 가리킨다. 그 대상은 개인이 될 수도 있고, 교회가 될 수도 있고, 국가와 민족이 될 수도 있다. &amp;#39;아가보&amp;#39;라는 예루살렘 출신의 예언자는 얼마 후&amp;nbsp;나라에 흉년이 들 것을 예언하였으며(행11:27~28), 개인적으로는 바울이&amp;nbsp;장차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되면 그의 손발이 묶이게 될 것이라고&amp;nbsp;예언하기도 하였다(행21:11). 그렇다면 예언자는 어떻게 현재의 상태나 미래의 일을 말할 수&amp;nbsp;있는가? 그것은 보통 세 가지 방법으로 알게 되어 예언을 한다. &lt;strong&gt;첫째, 마음 속에 성령께서 어떤 영감을 떠오르게 함으로 그냥 알게&lt;/strong&gt; 된다. 그때에는 그냥 그것이 알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언을 하게 되는데, 하지만&amp;nbsp;이러한 종류의 예언은 틀릴 수도 있다. 자기가 마음으로 생각한 것이나 사&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탄 마&lt;/span&gt;귀가 넣&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어 주&lt;/span&gt;는 것을 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lt;strong&gt;둘째, 현재의 모습이나 미래의 모습이 환상으로 보여지는 것을 말하는 경우&lt;/strong&gt;가 있다. 이것은 이전의 예보다는 더 분명한 것이지만 이것도 사&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탄 마&lt;/span&gt;귀가 보여주는 것을 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lt;strong&gt;셋째, 현재의 상태나 미래의 모습을 글자&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로&lt;/span&gt;&amp;nbsp;보여주는 경우&lt;/strong&gt;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 한국에 살고 있지만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를 글자가 떠서 보이는 예언이 있다. 글자가 떠서 보이고 영의 상태가 환상으로 보일&amp;nbsp;정도라면 그분의 영성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amp;nbsp;예언의 은사는 예언 뿐만 아니라 책망과 판단, 위로와 권면, 폭로와 가르침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webkit-text-stroke-width:0px;margin:0px;text-align:lef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8. 나오며&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 우리는 우리가 경험할 수 없다고 성령의 은사를 무조건 무시하거나, 그것을 귀신의 장난으로 보아서는 아니 된다. 2천&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년 전&lt;/span&gt;&amp;nbsp;오순절날&amp;nbsp;마&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가 다&lt;/span&gt;락방에 오신 성령이나 지금의 성령은&amp;nbsp;똑같은 한 분 성령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때에 주셨던 성령의 은사가 지금은&amp;nbsp;없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amp;#39;방언&amp;#39;도&amp;nbsp;들&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어 있&lt;/span&gt;다. 그런데 방언에는 몇 가지 단점이 있다. 그것은 모든 은사들 중에서 자기 개인만을 세워주는 은사라는 것이다. 다른 모든 은사는 다 남을 위해 존재하는&amp;nbsp;은사들이다. 그런데 방언의 은사는 다르다. 방언의 은사는 이 외에도&amp;nbsp;2가지 단점이 더 있으니, 그것이 남들이 알&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아 들&lt;/span&gt;을 수 없는 언어이&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다 보&lt;/span&gt;니 그것을 공&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중 예&lt;/span&gt;배 때에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도 없는데 어찌&amp;nbsp;그 방언을 듣고서 성도들이 &amp;#39;아멘&amp;#39;이라고 화답할 수 있겠는가?&amp;nbsp;뿐만 아니라 방언은 아무리 말을 유창하게 한다고 해도 그 말의 뜻을 알아 들을 수 없으니 자신의 인격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언이 좋은 은사이기는 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권면의 말씀의 경우처럼 굳이 예배 시간에 방언을 사용해야 한다면, 그때에는 반드시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자를 세워서 방&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언 통&lt;/span&gt;역을 하여&amp;nbsp;성도들이&amp;nbsp;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amp;nbsp;아니라면&amp;nbsp;예언의 은사를 구하여서 그것으로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야 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맞는 말씀이라고 하겠다. 방언은 사실 자신을&amp;nbsp;세&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워 주&lt;/span&gt;고 복구하는데는 더&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할 나&lt;/span&gt;위 없이 중요한 도구다. 그러나 그것 자체로서는 남을 가르칠 수도 없고 깨우치게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공예배에서는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말고 상요하려면 오직 개인적인 목적으로 따로 기도할 때에 사용하면 될&amp;nbsp;것이다. 왜냐하면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우리가 방언을 말하면 말할수록 다른 은사들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으며, [회개한 후에] 방언을 말한다면 방언을 말하면 말할수록 영적인 능력들이 계속해서 더 추가되기 때문이다.&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고린도전서강해(21)에 나오는 고전14장 직역 및 명령과선포 다운로드]&amp;nbsp;&lt;/span&gt;&lt;a href=&quot;https://dongtanms.kr/?module=file&amp;amp;act=procFileDownload&amp;amp;file_srl=87686&amp;amp;sid=46cf149feed262cb381b36ffb19558a0&amp;amp;module_srl=220&quot; style=&quot;color:#333333; text-decoration:none; transition:border-color 0.4s ease 0s, box-shadow 0.4s ease 0s, background 0.4s ease 0s, color 0.4s ease 0s, opacity 0.4s ease 0s&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고린도전서강해(21).pdf&lt;/span&gt;&lt;/a&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2021년 09월 08일(수)&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text-align:left; -webkit-text-stroke-width:0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5px&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24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amp;quot;Malgun Gothic&amp;quot;,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ligature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variant-caps: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40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normal&quot;&gt;&lt;span style=&quot;orphans:2&quot;&gt;&lt;span style=&quot;text-transform:none&quot;&gt;&lt;span style=&quot;white-space:normal&quot;&gt;&lt;span style=&quot;widows:2&quot;&gt;&lt;span style=&quot;word-spacing:0px&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ffffff&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thickness: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style:initial&quot;&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color:initial&quot;&gt;정보배목사&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img alt=&quot;[크기변환]20210908_140658.jp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87672/684/087/eaa35611b03d39d70d500d9bace23549.jpg&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고린도전서강해(20) 교회 안에 주신 직분의 은사들과 사랑의 은사(고전12:28~13:13)_2021-09-01(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87"/>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87#comment"/>		<id>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87</id>
		<published>2021-09-01T17:59:51+09:00</published>
		<updated>2021-09-04T11:38:15+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주신 5가지 직분은 무엇이며,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직분의 은사는 무엇인가? 오늘날의 교회에게 있는 &amp;#039;목사&amp;#039;라는 직책은 과연 성경에 등장하고 있는가? 그리고 &amp;#039;방언&amp;#039;이나 &amp;#039;예언&amp;#039;같은 신령한 은사는 언제까지 존재하는 것이며, 이것보다 더 좋은 은사가 있는 것인가?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말은 대체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오늘은 고린도전서 12장과 13장에 대해서 말씀을 함께 나누...</summary>
	<content type="html">&lt;p&gt;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주신 5가지 직분은 무엇이며, 지금까지도&amp;nbsp;남아 있는 직분의 은사는 무엇인가? 오늘날의 교회에게 있는 &amp;#39;목사&amp;#39;라는 직책은 과연 성경에 등장하고 있는가? 그리고 &amp;#39;방언&amp;#39;이나 &amp;#39;예언&amp;#39;같은 신령한 은사는 언제까지 존재하는 것이며, 이것보다 더 좋은 은사가 있는 것인가?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말은 대체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오늘은 고린도전서&amp;nbsp;12장과 13장에 대해서 말씀을 함께 나누자.&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19&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PV0RUNQT6QQ&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 width=&quot;1278&quot;&gt;&lt;/iframe&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직분들이 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의 시대에&amp;nbsp;교회가 탄생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그때 있었던 직분들 중에는&amp;nbsp;지금도 있는 직분도 있으나, 그때는 없던 직분이 지금에 와서 새롭게 생겨난&amp;nbsp;것도 있다. 하지만 초기 교회 가운데 직분은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데에 꼭 필요한 은사였다. 그러한 직분의 은사에는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가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에&amp;nbsp;이러한 직분들은 어떤 직무를 수행하던 것이었을까? 그리고 이러한 직분의 은사들 중에서 지금까지 존속되고 있는 두 가지 은사는 대체 무엇인가? 이 질문을 공부하면 우리는 이어서 사랑의 은사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사랑의 은사는 어떤 은사인지 그리고&amp;nbsp;이&amp;nbsp;은사가 다른 은사들과는 어떤 관련성을 가지고 있고 차이점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이 사랑의 은사의 속성은 대체 무엇인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은사들이 지난 한계점과 그것들의 존속 시기는 언제까지인지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아무쪼록 직분의 은사들과 사랑의 일반 은사에 대해 주님의 가르침을 주목할 수 있기를 바란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교회에게 주어진 5중직 중에서 복음 전하는 자는&amp;nbsp;어떤 직분의 은사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28과 에베소서 4:11을 통하여, 교회에게 주어진 은사에는 5가지 직분의 은사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은사들에는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가 있었다. 이것들 중에서 &amp;#39;사도&amp;#39;와 &amp;#39;선지자&amp;#39;의 은사에 대해서는 지난 주에 살펴보았고 오늘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의 은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 &amp;#39;복음 전하는 자&amp;#39;의 직분은&amp;nbsp;초기 교회 당시&amp;nbsp;사도와 선지자들과 함께 교회를 세우는 은사에&amp;nbsp;속하는 은사다. 그리고 복음 전하는 자는 사도와 선지자와 더불어&amp;nbsp;똑같이 어떠한 하나의 장소에 머물러서 사역하지 않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일하는 은사다. 즉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또한 다른&amp;nbsp;지역에 교회를 세우는 사역자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이 은사는 일종의 &amp;#39;선교사&amp;#39;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선교사는 타지역이나 외국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되, 그곳에&amp;nbsp;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을 가리킨다면, 이 은사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교회를 세우는 은사자인 것이다.&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성경에 등장하고 있는 &amp;#39;복음 전하는 자&amp;#39;의 은사자들은&amp;nbsp;대체 누구인가? 그들로서는 사도 바울과 디모데 그리고 빌립(집사)이&amp;nbsp;성경에 나온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을 받은 전도자다. 그래서 그는&amp;nbsp;적어도 3차례 이상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였다(딤후1:11, 갈1:6~9). 그리고 둘째로, 복음 전하는 자 곧 전도자에는 &amp;#39;디모데&amp;#39;가 있다. 특별히 디모데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자로 임명하여 파송한 사람이다. 그때&amp;nbsp;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amp;quot;너는 때를 얻든지&amp;nbsp;못 얻든지 항상 복음 전파하기를 힘쓰라&amp;quot;고 하였던 것이다(딤후4:5). 그로 하여금 전도자의 직무를 성실히 감당할 것을 권면한 것이다. 셋째로, &amp;#39;빌립(집사)&amp;#39;이라는 전도자가&amp;nbsp;있다. 그는 원래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수집사로 피택된 인물이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불어닥친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던 차에, 사마리아에 가서&amp;nbsp;복음을 전함으로 그곳에 사마리아 교회가&amp;nbsp;개척이 된다. 그러므로 복음 전하는 자 곧 전도자는 오늘날에 전도사 정도의 신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준 사도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나가서 복음을 전하였고&amp;nbsp;교회를 세웠으며, 세례도 주었다. 그리고 빌립 같은 경우에는 능력도 행사하였고 축사도 행했다. 수많은 표적들과 기사들이 그에게서&amp;nbsp;나타났던 것이다.&amp;nbsp;그러므로 오늘날에 와서&amp;nbsp;이러한 의미의&amp;nbsp;순회 전도자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목사와 교사의 직분의 은사는 어떠한 은사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직분으로 교회 가운데 주신 &amp;#39;목사&amp;#39;와 &amp;#39;교사&amp;#39;의 은사는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함께 초기 교회는&amp;nbsp;없어서는 안 될&amp;nbsp;중요한 직분의 은사자들이었다. 왜냐하면 목사와 교사의 은사자들로 인하여&amp;nbsp;교회가 든든히 세워졌기&amp;nbsp;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사와 교사는 이단의 세력으로부터 성도를 보호하고, 귀신으로부터 지켜내며, 세상으로부터 이기는 성도가 되도록 인도하고 세워주는 은사자들이었다. 특히 &amp;#39;목사&amp;#39;와 &amp;#39;교사&amp;#39;의 은사자는 앞의 3가지 은사자와 달리,&amp;nbsp;한곳에 머물러 일하는 사역자들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양육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목사와 교사는 자기가 섬기는 교회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고, 거기에서 풀타임 사역자로 평생을 일하는 분들을 가리킨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목사의 은사란 어떤 것인가? 목사의 은사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amp;nbsp;5중직의 직분&amp;nbsp;은사들 가운데서, &amp;#39;교사&amp;#39;의 은사자와 더불어 함께 등장하고 있는 은사인데(엡4:11), &amp;#39;목사와 교사&amp;#39;라는 명칭을 보면, 단어는 2개이지만 한 개의 정관사만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목사는 반드시 교사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목사나 교사는 양육자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amp;#39;목사&amp;#39;라는 명칭은 사실&amp;nbsp;성경에는 나오지 않고, &amp;#39;목자&amp;#39;로&amp;nbsp;나온다. &amp;#39;목자&amp;#39;는 헬라어로 &amp;#39;포이멘&amp;#39;인데, 양떼들을 지키고 돌보는 목자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왜 교회의 성도들을 양육하는 직분을 일컬어 &amp;#39;목자&amp;#39;라고 했을까? 그것은 아무래도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양으로 생각하시고 당신을 목자로 말씀하신&amp;nbsp;것에서 기원한 것이 아닌가&amp;nbsp;싶다(시100:3). 그리고 예수께서도 당신과&amp;nbsp;우리 인간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하셨기 때문이다. 어느 때에 예수께서 당신을 소개하기를 &amp;quot;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안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amp;quot;고 말씀하신 것이다(요10:11,14~15). 그러므로 오늘날 목사라는 직분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amp;nbsp;양 무리 곧&amp;nbsp;교회의&amp;nbsp;성도들을 목양하는 자를 일컫는다. 이는 예수께서 부활 후&amp;nbsp;나타나셔서 베드로에게 사역을 위임하실 때에,&amp;quot;너는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amp;quot;고&amp;nbsp;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일컬어서&amp;nbsp;&amp;#39;양들의 큰 목자(히13:20)&amp;#39;라고 하였고, 베드로도&amp;nbsp;예수님을&amp;nbsp;&amp;#39;너희&amp;nbsp;영혼의 목자와 감독(벧전2:25)&amp;#39;이자&amp;nbsp;&amp;#39;목자장(벧전5:4)&amp;#39;이라고 말했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럼, 목사는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 자인가?&amp;nbsp;한마디로 목사는 하나님이 맡기신&amp;nbsp;양 무리를 목양하는 직무자를 가리키는데, 그것은&amp;nbsp;한편으로는 양떼를 먹이는 일을 하는 것이며, 또&amp;nbsp;한편으로는 양떼를 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amp;nbsp;양 무리를 &amp;#39;먹인다&amp;#39;(보스코)&amp;#39;는 말은 양들로 하여금 풀을 뜯게 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목사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먹일 수 있어야 한다(요21:15,17). 그리고 목사는&amp;nbsp;양 무리를 &amp;#39;치는(포이마이노)&amp;#39; 일을 행한다. 여기서 &amp;#39;친다&amp;#39;는 말은 &amp;#39;돌보다,&amp;nbsp;지키다&amp;#39;라는 말로서, 양떼들로&amp;nbsp;하여금 세상에서 승리하도록&amp;nbsp;잘 돌보고, 그들을 사탄 마귀와 귀신으로부터 지켜내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자는 2가지를 사용하는 자다. 하나는 &amp;#39;막대기&amp;#39;로서&amp;nbsp;양들을 헤치려 오는 동물들을 후려치는 일을&amp;nbsp;행하는 것이며, 반대로 &amp;#39;지팡이&amp;#39;로서는 양떼들을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로 인도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교사의 은사는 무엇이며&amp;nbsp;어떤 직무를 수행하는 것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마지막으로 예수께서 교회에게 주신 마지막 직분의 은사는 무엇인가? 그것은 &amp;#39;교사(디다스칼로스)&amp;#39;라는 은사다. 이는 성경을 잘 해석하고 가르치는 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교사는 목사의 은사와 더불어 짝을 이루고 있다. 왜냐하면 목사는&amp;nbsp;교사처럼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 위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사는&amp;nbsp;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딤전5:7). 그렇지만 교사가 반드시 목사인 경우가 아닐&amp;nbsp;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고린도 교회에&amp;nbsp;&amp;#39;아볼로&amp;#39;라고 하는 성경 교사가 있었기 때문이다(행18:24~25). 그는 목사도 아니었고 복음 전하는 자도 아니었다. 그런데&amp;nbsp;목사나 교사의 다른 은사에 비해 다른 것은&amp;nbsp;둘 다&amp;nbsp;한곳에 머물러서 성도들을 양육한다는 점이다. 특별히 교사는&amp;nbsp;성경을&amp;nbsp;잘 배워서&amp;nbsp;성경을 잘 가르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amp;nbsp;사도 바울은 자신도 성경 교사로서(딤후1:11, 2:7) 구약의 율법을 잘 해석하여 그것을 신약의 성도들에게 잘 전달하는 일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제자로서 디모데를&amp;nbsp;택하여 에베소 교회에&amp;nbsp;목자와 교사로서 파송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amp;nbsp;그에게 성경을 읽는 것과 권면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고 권하였던 것이다(딤전4:13).&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사랑의 은사는 왜 필요한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의 초반에&amp;nbsp;성령의 초자연적인 특별 은사를 언급한다. 그리고&amp;nbsp;이어서 후반부에서 직분의 은사를 언급한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amp;quot;너희는 더욱 더 큰 은사들을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amp;quot;고 말했다(고전12:31). 그리고&amp;nbsp;&amp;#39;사랑의 은사&amp;#39;를 언급하였다. 그러므로 사랑의 은사는 매우 가장 좋은&amp;nbsp;은사요 큰 은사임에 틀림없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3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사도 바울은 아무리 신령한 은사들 곧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방언을 발설할 수 있는 자라&amp;nbsp;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같고, 울리는 꽹과리와&amp;nbsp;같다고&amp;nbsp;말했다(고전13:1). 그리고 예언의 은사가 있고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아는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있으며, 산을 옮길 수준의 놀라운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고전13:2). 오 정말 그러한가? 그렇다. 거기에 사랑이 없다면, 말의 은사는&amp;nbsp;말장난에 불과하며&amp;nbsp;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가 모든 소유물로 다른 사람들을 구제하고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자기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했다(고전13:3). 왜냐하면 그렇게 수고했어도 천국에서는 아무것도 계산되지 않을&amp;nbsp;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은사 사용에 있어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행하는 것이&amp;nbsp;가장 중요하며 그것을 자신의 마음의 기저에&amp;nbsp;깔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사랑이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이어&amp;nbsp;사도 바울은 사랑이 어떤 것이며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한다(고전13:4~7). 사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이다(요일4:8).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생자를 아낌없이 세상에 보내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대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사도 바울은 사랑의 특성을 총 15가지로 소개한다. 그것을 헬라어 원문을 가지고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amp;nbsp;&lt;/p&gt; &lt;p&gt;고전13:4~7&amp;nbsp;사랑은 오래 참고,&amp;nbsp;사랑은 친절하며,&amp;nbsp;사랑은 시기(질투)하지 않으며,&amp;nbsp;사랑은 자랑하지(허풍떨지)&amp;nbsp;아니하며,&amp;nbsp;교만하게 되지 아니하며,&amp;nbsp;5&amp;nbsp;&amp;nbsp;수치스럽게 행동하지 아니하며,&amp;nbsp;자기 자신의 것들을 찾지(구하지)&amp;nbsp;아니하며,&amp;nbsp;분노하지 아니하며,&amp;nbsp;악한 것을 꾀하지 아니하며,&amp;nbsp;6&amp;nbsp;불의에 대하여 기뻐하지 아니하며,&amp;nbsp;그런데 진리에게 함께 기뻐하고,&amp;nbsp;7&amp;nbsp;모든 것들을 덮어 주며,&amp;nbsp;모든 것들을 믿으며,&amp;nbsp;모든 것들을 소망하며,&amp;nbsp;모든 것들을 견디느니라&lt;/p&gt; &lt;p&gt;&amp;nbsp; 그렇다. 사랑은 일종의 구호나 관념이 결코 아니다. 사랑은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덕목들로&amp;nbsp;가득차&amp;nbsp;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천이 없는 사랑은 공허한 것이다. 그렇다면 15가지 사랑의 항목들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속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amp;#39;인내&amp;#39;라는 속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것이 하나님의 속성인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하나님을 저버리고 떠나갔고&amp;nbsp;죄를 지었지만&amp;nbsp;끝까지 오래 참으셨다. 그리고 회개하기를 끝까지 기다려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도&amp;nbsp;나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주며, 그가 회개하여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있기까지&amp;nbsp;기다려 주어야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초자연적인 은사들과&amp;nbsp;사랑의 은사는 어떻게 다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끝으로 사도 바울은 각종 초자연적인 은사들과 사랑의 은사를 비교한다(고전12:8~13). 그러면서 말하기를 예언이나 방언, 지식의 말씀의 은사 등이&amp;nbsp;참으로 놀라운 은사일지라도&amp;nbsp;이것들은 결국 한시적이며 부분적이라고 말한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만 유효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중 어떤 것도&amp;nbsp;천국에까지 필요한 은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예언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세상의 모든 것까지 그가&amp;nbsp;다 아는 것은 아니며, 그가 영안이 열리는 은사와 환상의 은사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천국과 지옥을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귀신과 천사들&amp;nbsp;모두를 다 볼 수 있는 것도&amp;nbsp;아니다. 다 부분적일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시거나, 우리가 개인적으로 죽어 하늘에 올라간다면,&amp;nbsp;이러한 신령한 은사들은&amp;nbsp;다 그치게 되고&amp;nbsp;폐지될 것이다. 그것들이 천국에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은 말한다. 그렇더라도 어린아이 때에는 이러한 은사들이 상당히 유효하게 쓰인다고 말이다. 왜 그런가? 초자연적인 은사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현존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확실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랑의 은사는 다르다. 하나님께서 영원하시듯 사랑의 은사도 영원한 것이다. 천국에서도 사랑의 은사는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사모하고 추구하는 은사를 정하라고 한다면, 우리는&amp;nbsp;단연코 사랑의 은사를 선택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끝까지 자신을 지켜 내야 할&amp;nbsp;&amp;#39;믿음&amp;#39;도 중요하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amp;#39;소망&amp;#39;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은 역시 &amp;#39;사랑&amp;#39;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8.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건축하게 하고 교회를 건축하게 하기 위해 성령의 선물로서 은사들을 각자에게 분량을 따라 주시고 있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도 역시&amp;nbsp;교회들 가운데 직분의 은사로서, 어떤 사람에게는 사도의 직책을, 어떤 사람에게는 선지자의 직책을 그리고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의 직책을 주시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직분의 은사들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게 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고로 교회는 각종 은사들과&amp;nbsp;5중직의&amp;nbsp;직분을&amp;nbsp;통하여 반석 위에 든든히 세워져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은사들이&amp;nbsp;교회에 풍성하다&amp;nbsp;할지라도 각자에게 사랑의 은사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은사를 받았다가 잘못 사용하여 훗날 심판의 때에 주님으로부터 심한 책망을 받거나, 아울러&amp;nbsp;불법을 행하는 자로 낙인 찍혀 주님으로부터 버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사는 정말 교회의 질서 가운데 겸손하게 그것도 남을 섬기는 것으로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직분의 은사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남들 위에 군림하지 말아야 하며, 신령한 은사를 이용하여 남의 돈을 갈취하는 사람이 되어서도 아니&amp;nbsp; 된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값없이 내주시고 섬겨 주셨듯이 우리도 값없이 주어진 은사와 직분을 가지고 이웃 형제&amp;nbsp;자매를 섬길 수 있어야 한다. 건투를 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1년 09월 01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크기변환]20210901_084441.jp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87672/687/087/1a3f90091df37047b015cdffaf8cf19a.jpg&quot; /&gt;&lt;/p&gt; &lt;div class=&quot;hwp_editor_board_content&quot; data-hjsonver=&quot;1.0&quot; data-jsonlen=&quot;8279&quot; id=&quot;hwpEditorBoardContent&quot;&gt;&amp;nbsp;&lt;/div&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고린도전서강해(19) 교회 안에 주신 여러 직분의 은사들과 그것을 주신 목적(고전12:28~31)_2021-08-25(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89"/>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89#comment"/>		<id>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89</id>
		<published>2021-08-25T18:06:15+09:00</published>
		<updated>2021-09-04T11:34:33+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오늘날 교회 안에는 목사와 전도사, 장로와 권사와 집사 등의 직분의 은사자들이 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생존해 있을 때에는 교회 안에 사도와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그리고 목사와 교사라는 직분의 은사자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도와 선지자 그리고 복음 전하는 자들이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 당시 이러한 직분자들이 존재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다면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래서 오늘은 교회 안...</summary>
	<content type="html">&lt;p&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dddddd;&quot;&gt;오늘날 교회 안에는 목사와 전도사, 장로와 권사와 집사 등의 직분의 은사자들이 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생존해 있을 때에는 교회 안에 사도와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그리고 목사와 교사라는 직분의 은사자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도와 선지자 그리고 복음 전하는 자들이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 당시 이러한 직분자들이 존재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다면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래서 오늘은 교회 안에 있는 은사의 5가지 직분들 가운데, 전체적인 개념 이해와 더불어 이러한 은사자들의 존재 목적 그리고 사도와 선지자의 은사의 직분이 무엇인지를 집중 조명해 보고자 한다.&lt;/span&gt;&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19&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LUq7P-UB604&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 width=&quot;1278&quot;&gt;&lt;/iframe&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바울이 교회를 개척할 당시에 교회에는 어떤 직분의 은사가 있었는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당면한 여러 문제들의 해법을 제시하는 가운데 교회에게 주신 성령의 은사를 언급하게 되는데, 그것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14장까지의 말씀이다. 그중에서 고린도전서 12장은 3가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첫째는 성령의 9가지 특별 은사를 언급하고 있고, 둘째는 교회의 지체들의 유기적인 통일성과 다양성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셋째로, 바울은 교회에게 주신 직분의 은사를 언급한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게 주신 은사의 직분을 총 8가지로 언급하는데, 그것은 3가지와 5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앞의 3가지는 사도들과&amp;nbsp;선지자들과&amp;nbsp;교사들이며,&amp;nbsp;뒤의 5가지는 능력들, 병 고침들, 도움들, 다스림들, 방언들의 종류들이 있다. 앞의 3가지는 초기 교회 가운데 확실히 굳어진 전문적인 교회의 직분의 은사라고 한다면, 뒤의 5가지는 교회 가운데서 주신 은사들(특별 은사들과 일반 은사들)을 조금 더 많이 활용하는 자들에 대한 소개인 것 같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 주신 전문적인&amp;nbsp;은사는 사도와 선지자와 교사 뿐인가?&amp;nbsp;아니면 더 있는가?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교회 가운데 이러한 은사를 주신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교회 안에 어떤 직분자를 전문적인 직분의&amp;nbsp;은사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직분의 은사들과&amp;nbsp;그리스도께서 그러한 은사들을&amp;nbsp;주신 목적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주신 5가지 직분의 은사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amp;nbsp;어떤 전문적인 직분의 은사를 주셨을까?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서는 3가지 전문적인 직분의 은사만을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amp;#39;사도, 선지자, 교사&amp;#39;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교회 가운데 주신 전문적인 은사를 2가지 더 언급하였다. 그것은 &amp;#39;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목자)&amp;#39;라는 은사다(엡4:11). 고로 성경에 기록된 직분의 은사는 크게 &amp;#39;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amp;#39; 등의 5가지로 나눠볼&amp;nbsp;수가 있다. 참고로, 여기에 등장하는 &amp;#39;복음 전하는 자&amp;#39;란&amp;nbsp;오늘날에 &amp;#39;선교사&amp;#39;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르며,&amp;nbsp;목사는 &amp;#39;목자(포이멘)&amp;#39;에&amp;nbsp;대한 대용어이다. 즉 원래는 &amp;#39;목자(포이멘)&amp;#39;라는 은사인데, 이것을 목양과 관련되어 &amp;#39;목사&amp;#39;라는 용어로 바꾼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5가지 직분의 은사를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왜 교회에게 5가지 직분의 은사를 주시는 것인가?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에서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5가지 직분의 은사를 주신 목적을 3가지 언급하고 있다(엡4:11). 그것은&amp;nbsp;&lt;strong&gt;첫째,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기 위함&lt;/strong&gt;이라는 것이다. 이는 성도들을 온전한 사람으로 채비시켜 주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5중직을 주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목사의 가르침과 양육이 없이 성도 혼자서&amp;nbsp;온전해지기는 어려운 일이다.&amp;nbsp;&lt;strong&gt;둘째, 이는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함&lt;/strong&gt;이라고 했다. 이는 교회의 성도들로 하여금 섬기는 일을 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는 섬김을 통해서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되며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에, 거기에서 받을&amp;nbsp;상급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또한 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amp;nbsp;&lt;strong&gt;셋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기 위함&lt;/strong&gt;이라고 했다. 여기서 &amp;#39;그리스도의 몸&amp;#39;이란&amp;nbsp;교회를 가리킨다. 즉 교회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로 건축되기 위해서는&amp;nbsp;5중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처럼 교회가&amp;nbsp;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 위해서는&amp;nbsp;5중직의 직분을 가진 자들이&amp;nbsp;필요한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amp;nbsp;5중직의 직분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교회 가운데 주신 5가지 은사들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amp;nbsp;&amp;nbsp;우선&amp;nbsp;첫째, 이러한 직분이 지금은&amp;nbsp;없어진&amp;nbsp;직분인가 아니면 현재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직분인가 하는 것으로 나눠볼&amp;nbsp;수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amp;#39;사도&amp;#39;와 &amp;#39;선지자&amp;#39;와 &amp;#39;복음 전하는 자&amp;#39;는&amp;nbsp;지금의 시대에는 없어진 직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사도 바울이 이 서신서를 쓰고 있을 당시에 쓰여졌던 직분자로서&amp;nbsp;&amp;#39;사도&amp;#39;와 &amp;#39;선지자&amp;#39;와 &amp;#39;복음 전하는 자&amp;#39;는 지금의 시대에는&amp;nbsp;없어진&amp;nbsp;직분들이라고 하겠다(하지만 &amp;#39;선지자&amp;#39;의 직분과 &amp;#39;복음 전하는 자&amp;#39;는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으나&amp;nbsp;비슷하게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오늘날까지 여전히 유효할 뿐더러 지금까지도 교회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직분은 역시 &amp;#39;목사&amp;#39;와 &amp;#39;교사&amp;#39;의 직분이다. 그리고 둘째, 한 곳에 머무르지 않은 채&amp;nbsp;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직무를 감당하는 직분의 은사가 있고,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amp;nbsp;자신이 죽을 때까지 직무를 감당하는 직분의 은사도 있다. 전자에는 &amp;#39;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amp;#39;가 있다면, 후자에는 &amp;#39;목사와 교사&amp;#39;가 있다고 하겠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라고 주신 2~3가지 직분의 은사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런데 사도 바울은 교회에게 주신&amp;nbsp;5중직 가운데서&amp;nbsp;2~3가지는 교회를 세우는 데에&amp;nbsp;반드시 필요한 직분의 은사라고 언급하였다. &amp;quot;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기초)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엡2:20)&amp;quot;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amp;nbsp;이것들 중에서 필수적인 것은 &amp;#39;사도&amp;#39;와 &amp;#39;선지자&amp;#39;이며, 덧붙여&amp;nbsp;한 가지 추가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amp;nbsp;&amp;#39;복음 전하는 자&amp;#39;다. 이러한 직분자는 교회를 세우는데 반드시 필요한 직분의 은사에 해당한다. 사실 교회라는 개념이 구약시대에는 아직 없었다. 오순절 성령을 받은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는 교회라는 개념이 없을 때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 의해 교회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고&amp;nbsp;정의되기 시작했다. 그렇다. 아직 이 땅에&amp;nbsp;&amp;#39;교회&amp;#39;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기에 12사도들은&amp;nbsp;&amp;#39;교회란&amp;nbsp;이런 것이다&amp;#39;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생겨난 예루살렘 교회는 &amp;quot;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던&amp;quot; 것이다(행2:42).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예루살렘 교회와 그리고 안디옥 교회에 어떤 가르침을 주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교회의 원형의 모습을 잊지 않을 수 있고,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사도 바울은 어떤 직분의 은사를 받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대체 어떤 직분의 은사를 받았을까? 사도 바울은 에배소서&amp;nbsp;4:11에서 언급한 5가지 직분의 은사를 다 받은 사역자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그는 사도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소개할 때에 &amp;quot;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amp;quot;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딤전1:1). 뿐만 아니라 그는 디모데후서에서 &amp;quot;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복음 전하는 자)와&amp;nbsp;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ㄷ딤후1:11)&amp;quot;라고 말했다. 그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복음 전하는 자와 교사로도 세우심을 입은 것이다. &amp;quot;이를 위하여 내가 [복음을]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amp;nbsp;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교사)이 되었노라(딤전2:7)&amp;quot;고 말함으로써 사도 바울은 자신이 &amp;#39;복음 전파자&amp;#39;요 &amp;#39;사도&amp;#39;요 &amp;#39;교사&amp;#39;로 부름&amp;nbsp;받았음을 분명히 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amp;#39;선지자&amp;#39;였다(행13:1). 그는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였다. &amp;quot;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amp;nbsp;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amp;nbsp;마나엔과 및 사울이라(행13:1)&amp;quot; 그렇다. 그는 최초의 이방인 교회였던 안디옥 교회의&amp;nbsp;교사이자 선지자였던 것이다. 더욱이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여 거기에서 1년 6개월 동안 목회를 하였다(행18:11). 그리고 에베소 교회에서는 3년 동안 목양하기도 하였다. &amp;quot;그러므로 여러분(에베소 장로들)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20:31)&amp;quot; 이는 그가 목사(목자)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고로 사도 바울은 사도와 선지자이자, 복음 전하는 자이면서 목사였고 교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사도는 어떤 직분의 은사이며 그 종류는 어떠한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amp;#39;사도&amp;#39;란 어떤 직분의 은사인가? &amp;#39;사도&amp;#39;란 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를 가리킨다. 베드로를 비롯한 어린 양의 12사도는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에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아서 사도가 된 자들이며(눅6:13,9:1, 마10:1~2), 사도 바울을 비롯한 바나바 등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분으로부터 직접 복음을 전하도록 보내심을 받아서&amp;nbsp;사도가 된 자들이다(행14:14). 그러므로 베드로는 할례자들의 사도가 되었고,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다(갈2:7~9). 그런데 사실 사도는 자기가 되고 싶다고 해서&amp;nbsp;될 수 있는 것은&amp;nbsp;아니다. &amp;quot;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으로부터&amp;nbsp;사도로 부르심을&amp;nbsp;받아야&amp;quot;&amp;nbsp;사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고전1:1). 그렇다면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서신서 등을 통하여 어떤 사람이&amp;nbsp;사도가 되었고 그래서&amp;nbsp;쓰임을 받았는가? 첫째, 주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직접적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라야 했다(고전9:1). 둘째, 복음을 위해서라면 고난과 죽음도 참고 인내하는 자라야 했고, 셋째,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통하여 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증거가 있어야 했다(고후12:12). 사도 바울은 정말 부름받은 사도였기에 독사에 물렸어도 죽지 않을 수 있었고, 기사도 많이 나타났으니 죽은 청년인 유두고를 살려 내었으며, 점치는 귀신을 쫓아내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amp;nbsp;가져다가 사람 위에 놓아도 귀신이 떠나가고 병든 것이 치료되기도 하였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과연 &amp;#39;사도&amp;#39;라는 직분이&amp;nbsp;존재하는가? 한 마디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사도와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라는 것이 없었을 때, 교회가 어떤 것인지를 정의했던 사람들이 바로 &amp;#39;사도&amp;#39;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어떤 곳인지, 교회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 기초를 닦은&amp;nbsp;이들이 바로 사도였던&amp;nbsp;것이다. 사실 이들에 의해 처음으로 교회가&amp;nbsp;세워졌고 온전케 되었다. 그러므로 이들이 걸어간 발자취와 그들의 말과 그들이&amp;nbsp;구약을 해석한 것이 기록되어서 신약성경의 책이 되었다. 그러므로 만약 자신의 말이 성령의 계시에 따른 것이어서 그것이 고스란히 성경책이 될 수 있다면 그는 &amp;#39;사도&amp;#39;라고 불리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 그러한 사람은 더 이상 없다고 보여진다. 성경책에 나온 사람 이외에&amp;nbsp;사도직의 은사를 받은 자는 없는 것이다. 다만 오늘날에도 사도적인 권능과 가르침을 행하는 사람들이&amp;nbsp;종종 있기도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8. 선지자는 어떤 직분의 은사이며 그 특징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선지자가 있는가? 사실 선지자는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종들 가운데 하나였다. 구약시대에 선지자는 주로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하였으며,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일을 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일은 신약시대에도 여전히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여전히 선지자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amp;nbsp;12:28에서 언급하고 있는 수준의 선지자는&amp;nbsp;더이상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러한 수준의 선지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음성을 직접 듣고 말할 수 있어야 하며(행13:2, 11:28), 성령의 계시를 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엡3:4~5). 그리고 새로 들어온 성도들로 하여금 그들의 죄를 폭로하여 죄를 회개하고 책망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고전13:24~25). 더욱이 선지자는 개인과 교회와 국가에 대해서 미래의 일을 예언할 수도 있어야 한다(행22:29, 21:11).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이&amp;nbsp;수반되지 않고 있는데도 불구하고&amp;nbsp;자신을 선지자라고 하면서 활동하면 아니된다. 특히 선지자의 은사를 조금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서 자신이 마치&amp;nbsp;선지자인량&amp;nbsp;행동해서는 결코 아니 될&amp;nbsp;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신약성경이 언급하고 있는 선지자에는 누가&amp;nbsp;있었을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 이후에 신약성경에&amp;nbsp;선지자들이 몇 명 나온다.&amp;nbsp;&lt;strong&gt;첫째로, 유대인이었던 &amp;#39;아가보&amp;#39;라는 선지자가 있었다&lt;/strong&gt;. 그는 예언하기를, 예루살렘에 있는&amp;nbsp;유대인들이 내려와서 바울을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줄 것이라고 하였다(행21:11). 그리고&amp;nbsp;&lt;strong&gt;둘째,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에 파송한 선지자들이 있었다&lt;/strong&gt;. 그들은 A.D.49년경에 예루살렘 공의회가 끝난 후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에 파송되었다. 그들은 바로 &amp;#39;유다&amp;#39;와 &amp;#39;실라&amp;#39;라는 선지자다(행15:32). 이들은 당시 선지자로서 성령의 음성을 직접 들었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말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리고&amp;nbsp;&lt;strong&gt;셋째, 안디옥 교회에도 역시 선지자들이 있었다&lt;/strong&gt;. 그들 중에는 바나바와 바울도&amp;nbsp;들어 있었다(행13:1).&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왜 신약시대가 되었음에 불구하고 &amp;#39;선지자&amp;#39;의 직분의 은사가 필요했던 것인가? 그것은 교회를 건축하는 데에 사도의 직분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성경을 기술할 때에&amp;nbsp;선지자의 직분을 가진 자들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amp;nbsp;아닌가 싶다. 그러면 지금도 선지자의 직분이 필요한가? 사실 구약시대의 선지자의 직무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기에,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도 다시 오실 메시야에 관하여&amp;nbsp;선포하고, 성도들의 죄를 책망하여, 회개시키는 사역자로서 선지자는 지금도 필요하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수준의 선지자는 아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짜 마지막 시기가 되면 거짓 그리스도들과&amp;nbsp;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거짓 표적과 기사를 행할 것이며, 택하신 자들이라고 미혹하여 넘어뜨리려고 할 것이다(마24:24).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에서도 여전히 선지자의 직무는 요청된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는 여전히&amp;nbsp;거짓된 선지자들이 게속해서 활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이 쓰여질 당시만 해도 버가모 교회에서는&amp;nbsp;발람 선지자가 활동하고 있었고, 두아디라 교회에서는 이세벨 선지자가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9.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오늘은 부활 승천하신 우리 주 예수께서&amp;nbsp;하늘 보좌에서 이 세상에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를 파송하셨고, 또한 목사와 교사를 임명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렇다. 교회의 성도들이&amp;nbsp;온전해지고, 봉사의 일을&amp;nbsp;행하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교회 위에 세우신 직분의 은사자들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 이들 중에서 교회를 세우기(건축하기) 위해서는 &amp;#39;사도&amp;#39;와 &amp;#39;선지자&amp;#39;와 &amp;#39;복음 전하는 자&amp;#39;로서의 직분자가 반드시 필요하며, 교회의 성도들을 목양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찰 때까지 인도하려면 &amp;#39;목사&amp;#39;와 &amp;#39;교사&amp;#39;의 직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이러한&amp;nbsp;5중직&amp;nbsp;중에서 오늘은 그리스도께서 교회 가운데에 내려 주신 직분들 곧&amp;nbsp;5중직을 살펴보았고 예수께서는 왜&amp;nbsp;그러한 직분의 은사를&amp;nbsp;교회에 허락하셨는지 그&amp;nbsp;이유를 살펴보았다&amp;nbsp;그리고 성경 각 권에 나오는 그리스도의&amp;nbsp;5중직을 체계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리하여&amp;nbsp;사도와 선지자가 대체 누군지를 공부하고 깨달을 수 있었다. 다음&amp;nbsp;이 시간에는 &amp;#39;복음 전하는 자&amp;#39;와 &amp;#39;목사&amp;#39;와 &amp;#39;교사&amp;#39;의 직분에 대해 살펴보기를 원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1년 08월 25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크기변환]20210825_004306.jp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87672/689/087/28f047f6823f62e29eba9c3fad91deab.jpg&quot; /&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고린도전서강해(18) 성령의 은사들과 한 몸 안의 많은 지체들의 신비적인 연합(3)(고전12:8~31)_2021-08-04(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91"/>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91#comment"/>		<id>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91</id>
		<published>2021-08-04T17:17:44+09:00</published>
		<updated>2021-08-04T22:19:52+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구약시대에도 여전히 성령께서 활동하셨다. 그리고 주의 종들에게 은사를 주셨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은사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교회에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그 은사는 어떤 은사인가? 참고로 그것은 2가지 은사다. 그리고 이 땅에 처음으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을 때, 음부가 해하지 못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는 &amp;quot;사도들과 선지자들&amp;quot;을 직분자로 세우셨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누...</summary>
	<content type="html">&lt;p&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dddddd;&quot;&gt;구약시대에도 여전히 성령께서 활동하셨다. 그리고 주의 종들에게 은사를 주셨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은사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교회에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그 은사는 어떤 은사인가? 참고로 그것은 2가지 은사다. 그리고 이 땅에 처음으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을 때, 음부가 해하지 못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는 &amp;quot;사도들과 선지자들&amp;quot;을 직분자로 세우셨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누구였으며 어떤 직무를 수행한 것인가? 특히 &amp;#39;사도&amp;#39;와 &amp;#39;복음전하는 자&amp;#39;의 차이점은 대체 무엇인가?&lt;/span&gt;&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19&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Ug9nC3t86zM&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 width=&quot;1278&quot;&gt;&lt;/iframe&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고린도교회에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하여&amp;nbsp;답변을&amp;nbsp;제시하였다. 그중에서 고린도전서 12~14장은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질문한 것을 답변 형식으로 제시하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지난 두 주간에 걸쳐 &amp;#39;성령의 은사&amp;#39;에 대해 살펴보았다. 첫 시간에는 왜 성령의 은사가 고린도교회에서 문제가 되었는지를 살펴보았고, 두 번째 시간에는 성령의 은사들의 종류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amp;nbsp;그중에서 성령의 9가지 특별은사 가운데, 처음 7가지 은사가 무엇인지에 대해&amp;nbsp;살펴보았다. 오늘은 이제 성령의 9가지 은사 중 나머지 2가지 곧 방언과 방언통역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을 살펴볼 것이고&amp;nbsp;아울러&amp;nbsp;한 몸에 붙어 있는 다양한 지체들간의 유기적인 연합과 통일성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amp;nbsp;마지막으로는 성령의 은사 중&amp;nbsp;교회에게 주신 직분의 은사에 대해서 개론적인 설명과 아울러&amp;nbsp;&amp;#39;사도&amp;#39;와 &amp;#39;복음전하는 자&amp;#39;의 직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성령의 은사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우리는 지난 주에 성령의 은사들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그것은 어떤 은사인지에 관해 살펴보았다. 먼저, 성령의 은사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으니, &amp;#39;일반 은사&amp;#39;와 &amp;#39;특별 은사&amp;#39; 그리고 &amp;#39;직분의 은사&amp;#39;가 있다. &amp;#39;일반 은사&amp;#39;에는 믿지 않는 자들도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은사로서 거기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기도 하다. 이러한 일반 은사는 바울이 로마서 12장에서&amp;nbsp;보다 더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데, 일반&amp;nbsp;은사에는 일반적인 예언,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위로, 구제, 다스리는 일, 긍휼 등의 은사가 있다(롬12:6~8). 그리고 &amp;#39;특별 은사&amp;#39;가 있는데, 그것은 성령께서 믿는 이들에게만 선물로 주시는 초자연적인 은사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이 은사를 총 9가지로 소개하였다. 물론 성령의 특별 은사에는 9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직분의 은사에 대해서도 소개하였다. 그러한 은사에는 &amp;#39;사도&amp;#39;와 &amp;#39;선지자&amp;#39; 그리고 &amp;#39;교사&amp;#39;를&amp;nbsp;비롯하여 추가로 2가지 은사가 있기에, 직분의 은사에는 총 5가지가 있는 것이다(고전12:28).&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은사와 직분과 사역의 차이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성도들에게 있어서 &amp;#39;은사&amp;#39;와 &amp;#39;직분&amp;#39;과 &amp;#39;사역&amp;#39;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 세 가지는 각각 삼위의 하나님께서 역사하신&amp;nbsp;결과로 나타나는 것들로서, 은사의 분배는 같은(동일한) 성령께서 하시고, 직분의 수여는 같은 예수님께서 하시고, 사역은 성부 하나님께서 맡기는&amp;nbsp;일이라고 하였다(고전12:4~6). 참고로 이 세 가지의 차이점은 이렇다. 직분은 주 예수께서 주시는 은사인데, 직분의 은사는 전시간 사역자에게 주시는 것이라고 한다면, 은사는 전시간 사역자가 아니더라도 성령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으로서&amp;nbsp;그 은사를 가진 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은사를 가졌다고 해서 전시간을 봉사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성령의 특별 은사에 &amp;quot;예언&amp;quot;의 은사가 있다. 그런데 직분의 은사에는 &amp;quot;선지자(예언자)&amp;quot;의 은사가 있다. 그런데 둘의 은사는 다르다. 성령의 은사로서 &amp;quot;예언&amp;quot;은 성도가 선물로서 받은 것으로서 사용할 시간이 따로 있겠지만, &amp;quot;직분&amp;quot;은 전시간 동안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헌신도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amp;#39;사역&amp;#39;은 직분은 맡지 않았어도 어떤 일을 도맡아 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회의 청소를 담당한다든지, 안내를 담당한다든지, 예배위원을 담당한다든지 하는 것은 사역을 맡은 것에 해당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는 어떤 것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우리는 지난 시간에 성령의 특별 은사 중에서 &amp;#39;방언과 방언통역&amp;#39;의 은사를 제외한 나머지 7가지 은사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것에는&amp;nbsp;&amp;#39;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침, 능력행함, 예언함, 영들분별함&amp;quot;이 있었다. 이것들 중에서 &amp;#39;앎&amp;#39;에 관한 은사가 있다면 그것은&amp;nbsp;&amp;#39;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영들 분별함&amp;#39;의 은사이다. 그리고&amp;nbsp;&amp;#39;행함&amp;#39;에 관한 은사가 있다면&amp;nbsp;그것은 &amp;#39;믿음, 병고침, 능력행함&amp;#39;의 은사가&amp;nbsp;있다. 그리고 &amp;#39;말&amp;#39;에 관한 은사가 있아면&amp;nbsp;그것에는 &amp;#39;예언, 방언, 방언통역&amp;#39;이 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다루게 될&amp;nbsp;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는 일종의 &amp;#39;말&amp;#39;의 은사에 해당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 &lt;strong&gt;그렇다면, 방언의 은사란 대체 어떤 것인가?&lt;/strong&gt; 방언이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이 말하는&amp;nbsp;언어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것은 영이 주님께 말하는 언어이면서&amp;nbsp;동시에 영이 하나님께&amp;nbsp;드리는 기도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이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언어가 아니라.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다른 영의 언어를 통하여&amp;nbsp;하나님과 교통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는 방언은 &amp;#39;헛소리&amp;#39;라고 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고로&amp;nbsp;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영의 말이기 때문에 하나님만 그것을 알아들으신다. 그런데도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영의 언어를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해석해주는 은사가 있다. 즉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를&amp;nbsp;알아 듣게 하는 것이 바로 &amp;#39;방언통역&amp;#39;인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은 방언통역의 은사와 쌍을 이룬다.&amp;nbsp;&lt;/p&gt; &lt;p&gt;&amp;nbsp; &lt;strong&gt;그렇다면, 방언 통역의 은사는 무엇이며, 방언을&amp;nbsp;통역해보면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 것일까?&lt;/strong&gt;&amp;nbsp;방언통역의 은사는 남이 하는 방언이 무슨 뜻인지를 자신이 알아듣는 은사를 가리키는데, 그때 들려오는 말은&amp;nbsp;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나라의 말로 들려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방언을 들을 때 그 방언의&amp;nbsp;전체적인 내용이 그냥 깨달아지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amp;quot;방언통역&amp;quot;의 은사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언을 통역했을 때에는 거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가?&amp;nbsp;그것은 크게 두 가지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다. 하나는 영이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가 담겨 있으며, 또 하나는 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에게 하시는 말씀이 들어있다. 주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는&amp;nbsp;때로는 책망이나 꾸지람의 말이&amp;nbsp;들어있기도 하고, 위로와 권면의 말씀도 들어있으며, 때로는 주님께서 우리를 앞으로 어떻게 쓰시겠다고 하는 미래의 비전에 관한 말씀도 들어 있다. 그러므로 방언을 통역하면 일종의 예언의 역할을 한다고 하겠다. 방언과 방언 통역에 관하여는 바울이&amp;nbsp;고린도전서 14장에 따로 다루고 있으니 그때 가서 보다 더 자세히 다를 것이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lt;strong&gt;오늘은 다만 왜 거듭난 사람이 되면 방언을 말할 수 있게 되는지에 관하여&amp;nbsp;살펴보고자 한다.&lt;/strong&gt; 사실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는 구약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은 성령의 선물이다. 성령의 특별 은사들 가운데, 방언과 방언 통역을 제외한 나머지 7가지 은사는 구약시대에도 있기는 있었다. 다만 그 강도에 있어서 조금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살던 성도들 중에는 단 한 사람도 방언으로 말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방언을 통역하는 사람도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신약시대에&amp;nbsp;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가 덧붙혀진 것인가? 그것은 사람의 거듭남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구약시대에 성도는 전부가 다 하나님의 백성 혹은 하나님의 종에 불과했다. 한 사람도 거듭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이후&amp;nbsp;사람이 거듭날 때에&amp;nbsp;아주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데 그것은&amp;nbsp;성령이 들어오신다고 예수께서 약속하셨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시어 하늘에 가신 후에 성령께서&amp;nbsp;예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 믿는 자들 속에 들어오실 수 있게 되었다. 그때에 성령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요 죽지 아니하는 생명이요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고 사람 속으로 들어오시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 그러므로 사람 속에 성령이 들어오시면 하나님의 생명이 그 사람의 영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순간 거듭나게 된다(요3:5). 그때 기존에 사람이 갖고 있는 생명에다가 하나님의 생명이 더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가 잡히는데, 그것의 하나가 바로 &amp;#39;방언&amp;#39;이라는&amp;nbsp;것이다. 즉 방언이란&amp;nbsp;죽은 상태에 있었던 우리의 영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오심으로 그 충격파가 생겨&amp;nbsp;영이 말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모든 거듭난 이는 자기 영 속에 성령을 모시고 있으므로 누구든지 방언으로 말할 수가 있다. 하지만 모든 태어난 사람이 다 방언을 말하지는 않는다(고전12:30). 어떤 사람은 방언의 은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의적으로 거절하기 때문에 방언을 하지 못할 수&amp;nbsp;있으며, 영적인 세계를 터부시할 때에도 방언의 은사는&amp;nbsp;나타나지 않을 수&amp;nbsp;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거듭남과 동시에 영의 터치가&amp;nbsp;일어나는데, 그때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다(행2:4).&lt;/p&gt; &lt;p&gt;&amp;nbsp; 그러므로 방언은 자신의 영이 거듭났다고 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이 거듭난 사람이라도 모두가&amp;nbsp;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amp;nbsp;아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받은 자는 구원을 이미 받은 것이라고&amp;nbsp;주장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방언을 말하는&amp;nbsp;자는 아무래도 천국에 들어갈 확률은 높아질 수는 있겠지만, 방언의 은사를&amp;nbsp;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닌 것이다. 반대로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한 자는&amp;nbsp;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라는 주장하는 것도 옳은 것이 아니다. 방언을 말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회개하고 믿음을 지키면&amp;nbsp;천국에 들어갈 수&amp;nbsp;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교회는 다양한 지체들이 모여있는데 어떻게 해서 한 몸이라고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교회에는 다양한 지체들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체들 중에는 더 연약한 지체들도&amp;nbsp;있고, 덜 귀히 여기는 지체들도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아름답지 못한 지체들도 있을 수 있다(고전12:23~24). 하지만 교회는 이러한 지체들이&amp;nbsp;유기적으로 모여있는 연합체인 것이다. 여기서 &amp;#39;그리스도&amp;#39;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amp;#39;교회&amp;#39;는 그리스도의 수많은 지체들이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이지만 그 몸 안에 많은 지체가 있다고 했다(고전12:12, 20, 27). 여기에는 유대인이나&amp;nbsp; 헬라인의 구별이 없으며, 종이나 자유인이나 구별 없이 다 하나의 지체인 것이다(고전12:13). 그러므로 한 지체가 다른 지체더러&amp;nbsp;필요 없다고 해서는 아니 된다. 지체들이 모여 완전한 하나의&amp;nbsp;몸을 이루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 예를 들어 보자. 내가 여름에 덥고 배가 고파서 냉장고에서 시원한 우유 한 잔을 꺼내서 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하자. 그러면 눈만 있어서는 그 우유를&amp;nbsp;먹을 수가 없다. 발이 냉장고 앞으로 가야 하고, 손이 냉장고의 문을 열고 그것을 꺼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이 벌려서 그 우유를 마시게 될 때 비로소 몸은 영양분을 흡수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눈이 가장 소중하게 보이고, 냄새 나는 발은 덜 귀히 보이겠지만, 내 몸이&amp;nbsp;우유 한 잔을&amp;nbsp;마시기 위해서는 모든 지체들이 서로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 몸에 아름답지 못한 지체에 존귀함을 더하여 몸 가운데 분쟁이 없게 하고 오히려 서로 지체가 서로를 돌보게 한다고 하셨다(고전12:24~25). 우리 몸에 있는 각 지체가 다 중요하지만 한 가지의 지체만으로는 자신의 온 몸을 건강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몸의 한 지체가 고통을 받거나 반대로 우리 몸의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온 몸이 함께 고통을 받게 되고 함께 영광을 받게 된다.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amp;nbsp;협력함으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몸인 것이다(고전12:26~27).&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직분의 은사는 과연 누가 주는 것이며, 그러한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이어서 사도 바울은 교회에게 주신 직분의 은사에 관하여&amp;nbsp;언급하였다(고전12:28).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교회에게 주어진 직분의 은사를 크게 8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다시&amp;nbsp;셋과 다섯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앞의 셋은 &amp;quot;사도들, 선지자들, 교사들&amp;quot;을 가리키는 것이고, 뒤의 다섯은 &amp;quot;능력들, 병고침의 은사들, 도움들, 다스림들, 방언들의 종류들&amp;quot;을 가리킨다. 그런데 뒤의 다섯 가지 것들은 사실 직분의 은사라기보다는 특별 은사라고 보아도 무방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사실 바울이 소개하고 있는 고유한 직분의 은사에는&amp;nbsp;앞의 세 가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편지보다 조금 뒤에 썼던 에베소서를 통하여, 교회에게 주어진&amp;nbsp;직분의 은사를 더 언급한다. 2가지를 더 추가한 것이다. 이제 그 다섯 가지 직분의 은사를&amp;nbsp;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mp;quot;사도들, 선지자들, 복음전하는 자들, 목사들, 교사들&amp;quot;이 그것이다(엡4:11). 그러니까 A.D.55년경에 기록했던 고린도 교회 안에는&amp;nbsp;&amp;quot;사도와 선지자와 교사&amp;quot;만&amp;nbsp;있었다면, A.D.61~63년에 기록했던&amp;nbsp;에베소 교회에는 앞의 세 가지의 직분에다가 &amp;quot;복음전하는 자&amp;quot;와 &amp;quot;목사(목자)&amp;quot;가 더 추가된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첫째로, 누가 교회 안에 이러한 직분자를 세우시는 것인가가? 에베소서 4장에 따르면, 그분은&amp;nbsp;죽어서&amp;nbsp;음부에 내려가셨으나 오히려 하늘로 올라가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엡4:8~10). 이것은 고린도전서 12:5의 말씀과 정확히 일치한다. 교회에게 어떤 직분을 주시는 이는 &amp;quot;주님&amp;quot; 곧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 예수께서는 왜 직분을 주시는가? 그것은 3가지로 그 목적이 나와 있다. 그것은 첫째, 성도를 온전하게 하기 위함이며, 둘째,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며, 셋째,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엡4:11).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째로, 교회 안에는 어떤 직분이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다섯 가지 직분이 있는 것이다. 참고로&amp;nbsp;이러한 직분은 전시간 봉사자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시적으로 그 직무를 수행하는 자를&amp;nbsp;가리켜 직분자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시 말해, 이 다섯 가지 직분은 교회 안에 있는 전시간 봉사자들로서,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는 일종의 직업과도&amp;nbsp;같은&amp;nbsp;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amp;#39;사도&amp;#39;의 직분과&amp;nbsp;&amp;#39;복음전하는 자&amp;#39;의 직분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바울은 교회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직분을 주셨는데, 그중에 &amp;quot;사도들과 선지자들&amp;quot;이 있다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이 두 가지 직책은 교회를 세우기 위한&amp;nbsp;직책이라고 하였다(엡2:20). 이 땅에 있는 교회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에 의해서 정의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덧붙혀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 직분자로서 &amp;quot;복음전하는 자들&amp;quot;도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amp;quot;복음전도자&amp;quot;란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amp;nbsp;복음을 전파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amp;quot;사도들&amp;quot;과 &amp;quot;복음전하는 자들&amp;quot;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lt;/p&gt; &lt;p&gt;&amp;nbsp; &lt;strong&gt;먼저, &amp;quot;사도&amp;quot;가 어떤 사람들인지부터 살펴보자&lt;/strong&gt;. &amp;#39;사도&amp;#39;란 헬라어로 &amp;quot;보내심을 받은 자(아포스톨로스)&amp;quot;라는 뜻이다. 그런데 보내심을 받았어도 보냄을 받은 자들 모두를&amp;nbsp;&amp;#39;사도&amp;#39;라고 칭하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어떤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이때 사도들을 보낸 분은 반드시 &amp;quot;주 예수님&amp;quot;이어야 한다. 그리고 사도들을 보내는 목적은 &amp;quot;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기 위함&amp;quot;이어야 한다(행1:21~22). 그리고 다음 주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신약성경에는 사도라는 직분을 가진 자가 참 많이 나온다. 세어보면 총 23명이나 나온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12제자들만을 사도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 주 예수님을 증언하는 자가 선택받았다면 그는 &amp;#39;사도&amp;#39;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도 않은 사람을 가리켜,&amp;nbsp;그를 사도라고 부를 수는 없다.&lt;/p&gt; &lt;p&gt;&amp;nbsp; 그러므로 바울에 대해서 논쟁이 많았다. 왜냐하면 바울은 친히 육신을 입고 오신&amp;nbsp;예수님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바울은 &amp;#39;사도&amp;#39;라고 부른다. 아예 이름을 부를 때에도 이름 앞에 직책을 넣어서 &amp;quot;사도 바울&amp;quot;이라고 쓰거나&amp;nbsp;또한 그렇게 부른다. 그런데 바울이 살아있을 당시만 해도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amp;nbsp;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amp;nbsp;자신에 대한 논쟁을 종식시키고자 아예 성경 한 권을 저술하였으니, 그 책이&amp;nbsp;바로 &amp;#39;고린도후서&amp;#39;다. 그러므로 우리 중&amp;nbsp;누군가가 그가 사도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려면&amp;nbsp;&amp;#39;고린도후서&amp;#39;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동일한 예수님에게서 파송을 받은 자다. 다만 그는 육신을 입으신 주님으로부터 파송을 받은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직접 파송을 받은 차이가 있다. 그러한 장면은&amp;nbsp;사도행전 9장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도 &amp;#39;사도&amp;#39;라고 칭한다. 이러한 사도에 관한 말씀은 다음 주에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lt;strong&gt;둘째, &amp;#39;복음전하는 자&amp;#39;는 사도와 어떻게 다른가?&lt;/strong&gt; 그렇다면 사도와 복음전하는 자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먼저 둘이 같은 점이&amp;nbsp;있다면 그것은&amp;nbsp;두 둘이 다&amp;nbsp;직분의 은사로서, 전시간 봉사자를 지칭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사도란&amp;nbsp;사도적인&amp;nbsp;직무에 전무하는 자요, 복음전하는 자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무하는 자인 것이다. 그러므로&amp;nbsp;앞에서도&amp;nbsp;언급했지만, 사도는 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보내심을 받아서 주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에 전무하는 자를 가리키고, 복음전하는 자는 주 예수님 뿐만 아니라 다양한 복된 소식을 전하는 전시간 봉사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도에는 어린양의 12사도인 &amp;#39;베드로&amp;#39;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파송받은&amp;nbsp;&amp;#39;바울&amp;#39;이 있다.&lt;/p&gt; &lt;p&gt;&amp;nbsp; 한편&amp;nbsp;대표적인 &amp;#39;복음전하는 자&amp;#39;로서는&amp;nbsp;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집사 가운데 하나였던 &amp;#39;빌립&amp;#39;이 있다. 그를 가리켜 사도행전의 저자는 &amp;#39;복음전하는 자(유앙겔리테스)&amp;#39;라고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행21:8). 그럼, &amp;#39;빌립&amp;#39;은 어떻게 되어서 집사에서 복음전도자가 될 수&amp;nbsp;있었는가?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에 불어닥친 핍박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12사도들을 제외한 모든 성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일곱 집사도&amp;nbsp;흩어지는 가운데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파한다(행8:4~5). 그러자 그 동네에서&amp;nbsp;빌립의 전도를 받아 믿음을 갖게 된 자들이 빌립에게서 세례를 받게 된다. 그렇다면 당시 빌립은 어떻게 전도자가 되어 사마리아성에 복음을 전파할 수가 있었는가? 그는 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치고 설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치유와 능력행함의 은사가 있었다. 그래서 병든 자를 고칠 수 있었고, 귀신을 내어쫓아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amp;#39;사도&amp;#39;나 &amp;#39;선지자&amp;#39;라고 말하지 않고, 그를 &amp;#39;복음전하는 자&amp;#39;라고 불렀던 것이다.&amp;nbsp;&amp;nbsp;&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8.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쟁을 없애고 은사들의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성령의 은사들과 직분의 은사들에 대해&amp;nbsp;언급하였다.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교회에는 어떤 직분이 필요하며&amp;nbsp;또한 교회에게 왜 직분자가 생기게 되었으며 그들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특히 교회가 온전케 되기 위해서는 은사로서는 부족하고 직분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양의 12사도들과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도로 부름받은&amp;nbsp;사도 바울을 통하여 교회가 어떻게 기틀을 잡고 또한&amp;nbsp;세워졌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받았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amp;nbsp;오늘은 직분자로서 &amp;#39;사도&amp;#39;와 &amp;#39;복음전하는 자&amp;#39;가 누군지에 대해 조금 살펴 보았다. 다음 주에는 주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직분자의 자격과 역할 및&amp;nbsp;그 기능과 목적에 대해 보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우리에게 고린도전서와 에베소서를 통하여 교회의 직분에 관하여 조금이나마 더 깨닫게 하시고 기도케 하시며&amp;nbsp;사모하게 하신 우리 주님께&amp;nbsp;감사드린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1년 08월 04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크기변환]20210804_141349.jp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87672/691/087/93fe5112b50dea88b7a4cd309c8794ae.jpg&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고린도전서강해(17) 성령의 은사들과 한 몸 안의  많은 지체들의 신비적인 연합(2)(고전12:8~31)_2021-07-28(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93"/>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93#comment"/>		<id>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93</id>
		<published>2021-07-28T18:07:27+09:00</published>
		<updated>2021-07-30T16:07:50+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선물을 주신다. 그것을 &amp;#039;은사&amp;#039;라고 부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교회에서 은사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교회가 기도가 약해지면서 영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의 목회자들 중에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요, 받아도 그것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잘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어떻게 받을 수 있으며, 또한 그것을 어떻게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dddddd;&quot;&gt;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선물을 주신다. 그것을 &amp;#39;은사&amp;#39;라고 부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교회에서 은사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교회가 기도가 약해지면서 영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의 목회자들 중에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요, 받아도 그것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잘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어떻게 받을 수 있으며, 또한 그것을 어떻게 교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 여기, 이에 대한 확실히 해법이 있다.&lt;/span&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19&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soCP2rsXDxY&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 width=&quot;1278&quot;&gt;&lt;/iframe&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고린도전서 12장은 보통 &amp;#39;성령의 은사장&amp;#39;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의 목록(고전12:8~10)이 나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성경에서 성령의 은사들은 고린도전서에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로마서에도 나오고 에베소서에도 나온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2:8~10에 나오는 성령의 9가지 은사는 아주 특별한 은사들이다. 그것이 영적인 은사일 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은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주부터 성령의 은사에 관한 말씀을 시작하였다. 오늘과 다음 주까지 우리는 성령의 은사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에 들어와서&amp;nbsp;성령의 은사에 대해서는 좋아하는 교회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날에 와서 성령의 은사는 홀대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 성령의 은사를 오늘날의 교회는 조금 기피하는 경향이 생긴 것일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령의 은사가 교회에서 기피대상이 되었던 이유와 더불어 초자연적인 성령의 9가지 은사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보이지 않는 영역이지만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성령의 은사에 대해 오늘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도록 하자.&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오늘날 개신교회에서는 왜 성령의 은사를 달가워하지 않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왜 오늘날에 들어와서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은 교회들의 대부분이 성령의 은사에 대해 좋아하지 않으며 기피하려고 하는 것인가? 그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그중에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교회의 지도하는 리더가 성령의 은사에 대해 무지해서 그렇다고 하는 측면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어떤 장로교회이 목회자는 방언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말 방언은 아무 쓸 데 없는 것인가? 사실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너무나 몰라도 문제이고,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하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또한&amp;nbsp;문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바른 관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영분별을 통하여 성령의 은사를 교회를 위해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왜 개신교회에서는 성령의 은사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성령의 은사를 가진 자에 의해서 혹시 교회가 소란스러워지고 분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은사자에 대한 쏠림현상으로 교회가 어지러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은사가 없을 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은사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은사자에게&amp;nbsp;사람들이 대거 몰리게 되고, 거기에 귀신이 역사한 후에&amp;nbsp;부작용이 생기면 교인들끼리 싸우며&amp;nbsp;갈라서고 물어 뜯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우선적으로 은사에 대해 간파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정확한 은사의 정의와 종류들 그리고 각각 은사들의 특징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것이 귀신의 역사인지 성령의 역사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성령의 은사들의 종류에는&amp;nbsp;어떤 것이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성령의 모든&amp;nbsp;은사들에 대해 말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사에는 고전 12장에 기록되어 있는 은사들 이외에도 많은 은사들이 있기 때문이요, 또한 고전 12장에서 언급하지 아니한 유형의 은사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령의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amp;#39;은사&amp;#39;라는 것은 거듭난 성도들을&amp;nbsp;유익하게 하려고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을 가리킨다. 그것은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맞는 것으로 개별적으로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amp;#39;은사&amp;#39;에도 크게는 2가지 종류가 있고, 좀 더 넓게 보면 3가지 종류의 은사들이 있다. 그것에는 일반 은사, 특별 은사, 직분의 은사가 그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lt;strong&gt;첫째, 일반 은사란&amp;nbsp;무엇인가?&lt;/strong&gt; 일반 은사라는 것은 그것이 초자연적인 것은 아니지만 갖고 있으면 매우 유익한 선물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은사는 로마서 12장에 잘 나타나 있다. 예를 들어, &amp;quot;예언(일반적인 의미의 예언), 섬김, 가르침, 위로, 구제, 다스림(지도력), 긍휼&amp;quot;의 은사 등이 있다(롬12:6~8). 그런데 이러한 은사에는 이것들 외에도&amp;nbsp;&amp;quot;노래(찬양), 재물, 사랑, 지혜, 지식, 화평, 언유, 절제, 계획, 친밀함&amp;quot; 등의 은사 등이&amp;nbsp;있다. 그런데&amp;nbsp;이러한 은사들의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한 마디로&amp;nbsp;타고난 것도 있기는 하지만 배워서 가질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이다.&lt;/p&gt; &lt;p&gt;&amp;nbsp; &lt;strong&gt;둘째, 특별 은사는 어떤 은사인가?&lt;/strong&gt; 특별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는 아주 특별한 은사들로서 영적인 선물들을 가리킨다. 그런데&amp;nbsp;이 은사가 가진&amp;nbsp;특징은 모두가 다 초자연적인 은사들이라는 점이다. 또한 이러한 은사들은 배워서 터득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어떤&amp;nbsp;부분은 자신의 조상들로부터 물려받는 것들이기도 하다. 또한&amp;nbsp;어떤 것들은 성도가 기도를 통하여 간구할 때에 주어지는 것들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은사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것은 고전12:8~10에 나오는 9가지 영적인 은사들이다. 즉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침, 능력행함, 예언, 영들분별, 방언, 방언통역의 은사가 바로 초자연적인 은사들인 것이다.&lt;/p&gt; &lt;p&gt;&amp;nbsp; &lt;strong&gt;셋째, 직분의 은사가 있다&lt;/strong&gt;.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사역자를 세우시는데, 그때 사람에 따라 직분의 은사를 주시는 것이다. 고린도전서에서는 8~9가지 직분의 은사가 나온다. 사도,&amp;nbsp;선지자, 교사,&amp;nbsp;능력 행하는 자, 병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 서로 돕는 자, 다스리는 자, 각종 방언을 말하는 자, 방언을 통역하는 자 등의 직분의 은사가 있다. 그런데 에베소서에서는 직분의 은사를 5가지로 언급한다. 그것은 &amp;quot;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amp;quot;다(엡4:11).&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성령의 9가지 특별 은사 곧 초자연적인 은사는 어떻게 구분을 할 수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를 9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초자연적인 은사는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초자연적인 은사들은 다 이 9가지 범주 안에 들어갈 것이다. 이 9가지 특별 은사를 그 성격에 따라 구분하면 우리는 3가지 종류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앎에 관한 은사가 있다. 그것에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영들 분별함의 은사가 있다. 그리고 둘째, 말에 관한 은사가 있다. 그것에는 예언의 은사, 방언의 은사, 방언통역의 은사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함에 관련된&amp;nbsp;은사도 있다. 이러한 은사에는 믿음의 은사, 병 고침(치유, 신유)의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가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성령의 9가지 특별은사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바울이 언급하는 초자연적인 은사에는 총 9가지가 있는데, 이러한&amp;nbsp;은사들을&amp;nbsp;이 한 시간에&amp;nbsp;다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그 윤곽과 특징을 중심으로 설명한다면&amp;nbsp;다음과 같다.&amp;nbsp;&lt;/p&gt; &lt;p&gt;&amp;nbsp; &lt;strong&gt;첫째, 지혜의 말씀의 은사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lt;/strong&gt;가 있다. 이 은사는 2가지 방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하나는 이 둘이 배워서 행할 수 있는 은사가 아님에는 분명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초자연적인 지혜로 말씀들간에 숨어있는&amp;nbsp;연관성을&amp;nbsp;알아차리는&amp;nbsp;은사가 &amp;#39;지혜의 말씀의 은사&amp;#39;라면, 성경말씀 자체를 깨닫는 은사는 &amp;#39;지식의 말씀의 은사&amp;#39;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방향에서 이 은사를 정의하는 분들도 있다. 나름 의미있는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amp;#39;지혜의 말씀의 은사&amp;#39;란 예언과 비슷한 은사로서, 그 사람이 미래에 어떻게 행할 것인지 지식을 얻게 해주는 은사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러한 은사를 받으면 미래에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초자연적으로 알게 된다. 이때 아는 방법은 &amp;#39;꿈&amp;#39;이나 &amp;#39;환상&amp;#39;으로 보여지든지, 때로는 &amp;#39;글자&amp;#39;로 보여지든지 한다. 환상이 강한 사람은 이때 눈을 감아도 보이며, 동영상으로 화면이 보인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amp;#39;지식의 말씀의 은사&amp;#39;는 어떤 사람에게 대해 과거로부터&amp;nbsp;현재까지의 모든 정보(지식)를&amp;nbsp;알게 해 주는 은사다. 이것이 강하게 나타나면 조상의 죄나 본인의 죄 그리고 사람이 무슨 은사를 가지고 있는지를 &amp;#39;글자&amp;#39;나 &amp;#39;환상&amp;#39;으로 볼 수 있다. 보통은 지혜의 말씀의 은사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동시에 주어진다. 그러면 사람에 대한 많은 비밀을 알게 되고, 천국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수준에 도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은사를 받은 사람은 이러한 비밀스러운 내용을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하며, 그것을 함부로 이용해서도 아니 된다. 특히 덕스럽지 못한 내용은 하늘나라에 가서도 비밀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 &lt;strong&gt;둘째, 믿음의 은사&lt;/strong&gt;가 있다. 믿음의 은사란 일반적인 믿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참고로, 여기서 &amp;#39;일반적인 믿음&amp;#39;이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자이심을 믿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amp;nbsp;여기서 말하는 &amp;#39;믿음&amp;#39;의 은사란&amp;nbsp;믿음으로 산을 옮길만한 믿음의&amp;nbsp;은사를 가리킨다(고전13:2, 마21:21~22). 사람들은 절대 믿지 아니할 일을&amp;nbsp;자신은 믿는 것이다. 신약에 들어와서는 베드로와 요한이 믿음을 사용하여 나면서 앉은뱅이된 자를 일으켜 세우는 기적을 행하기도 하였다.&amp;nbsp;&lt;/p&gt; &lt;p&gt;&amp;nbsp; &lt;strong&gt;셋째, 병고침의 은사&lt;/strong&gt;가 있다. 병고침의 은사는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이나 희귀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리킨다. 그런데 병고침의 은사를 받은 자라도 모든 사람의 질병을 다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직 주 예수님만이 가능하다. 병을 고치는 것은 주님이 고치시는 것이요 사역자는 다만 도구이기 때문에 자기가 마음 먹는다고 병을 다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치유 은사 집회에서 목발을 짚고 온 사람이 목발을 던져버리고 걸어가게 하는 것은 사실 지혜의 말씀의 은사와 더불어 기적을 행할 때에 생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역자는 환상으로 그가 목발을 던져버리는 것을 보이기 때문에 그 환자를 불러다가 고치는 것이다. 그리고 영안이 활짝 열리는 사람은 암병을 치료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는데, 그때에는 천국에 있는 치유천사들이 와서 그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보인다. 천사들이&amp;nbsp;환부에 손을 집에 넣어 약을 바르고, 혈관을 타고 들어가서 혈관을 뚫는 것이 보이는 것이다. 참고로 치유천사들은 그 크기가 사람만큼 큰 천사로부터 시작하여, 혈관 속으로 들어갈 만큼 작은 크기의 천사들도 있다. 그리고 병고침의 은사는 기적을 행하는 은사 가운데 귀신을 쫓는 은사가 함께 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병원에서도 낫지 않는 질병 중에는 장부에 귀신들이 붙어 있거나 그것을 둘러감고 있거나 그것을 꼭 쥐고 있을 귀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안으로 보이는 것이다. 특히 정신질환자 중에는 아무 많은&amp;nbsp;귀신이 붙잡고 있다. 특히 우울증과&amp;nbsp;망상에 빠져있는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귀신이 들려서 그러한 증상이 나타나고 있는 바, 이 때에는 병고침의 은사와 축사의 은사를 함께 사용할 때에 병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lt;strong&gt;넷째, 능력들 행함의 은사&lt;/strong&gt;가 있다.&amp;nbsp;능력 행함의 은사는 2가지인데, 먼저는 기적을 행하는 은사가 여기에 속한다. 구약시대에는 엘리야와 엘리사가 기적을 일으켰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기름병에&amp;nbsp;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도 하였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였으며, 물에 빠진 도끼가 떠오르게도 하였다. 신약시대에는 예수께서 기적을 일으키셨으며, 사도들도 기적을 일으켰다. 그리고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해 귀신을 쫓아내는 것도 일종의&amp;nbsp;능력 행함의 은사에 해당한다. 어떤 이는 강력한 악령이 몸 속에 들어와 있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을 내보낼 수 있는 자가 능력행함의&amp;nbsp;은사를 가진 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을 가진 자는 많지 않다.&amp;nbsp;&lt;/p&gt; &lt;p&gt;&amp;nbsp; &lt;strong&gt;다섯째, 예언의 은사&lt;/strong&gt;가 있다.&amp;nbsp; 오늘날에 예언의 은사는 성령께서 마음에 떠오르게 하는 것을 말하는 은사를 가리키지만 정확히는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 예언의 은사라고 할 수 있다. 즉 더 수준높은 예언의 은사자는 글자를 영안으로 보고 말해내는 자이다. 이때에 뜨는 글자는 글자만 나타나기도 하지만 문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또한 환상으로 무엇인가가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예언의 은사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와 같이 간다. 이때에 주님의 얼굴이 나타나서 그분이 직접 입으로 말씀하시는 것을&amp;nbsp;귀에 들린대로 말하는 것이 예언의 은사인 것이다. 또한 예수님의 입에서 글자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예언하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마음에 말씀이 새겨짐으로 그것을 말하는 자도 있다. 그런데 영안이 열린 자라도 하나님이 보여주실 때에만 환상과 글자가 보이는 것이며, 억지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amp;nbsp;&lt;/p&gt; &lt;p&gt;&amp;nbsp; &lt;strong&gt;여섯째, 영들 분별의 은사&lt;/strong&gt;가 있다. 영들 분별의 은사는 어떤 사람에게 역사하고 있는 영이 선한 영인지 악한 영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은사를 가리킨다. 여기서 &amp;#39;선한 영&amp;#39;이라 함은 &amp;lsquo;성령&amp;rsquo;과 &amp;lsquo;천사&amp;rsquo;를 가리키는 것이고, &amp;#39;악한 영&amp;#39;이라고 함은 &amp;lsquo;사탄&amp;rsquo;과 &amp;lsquo;귀신들&amp;rsquo;을 가리킨다. 고로 내가 영적 전투를 하거나 혹은&amp;nbsp;축사를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그 사람에게 역사하고 있는 영을 파악하는 것이다. 사실&amp;nbsp;악한 영은 아기가 엄마의 태중에서 잉태되는 순간부터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무리 경건한 사람에게도 악한 영이&amp;nbsp;들어 있다. 자기나 자기의 조상들이 죄를 많이 지었다고 한다면 악한 영이 그만큼 더 많이 들어있을 것이다. 죄를 지은 만큼 들어있기 때문이다. 영안이 열려 영분별의 은사를 받으면 귀신 즉 악한 영의 실체가 보인다. 그것의 모습은 뱀, 지렁이, 짐승, 용, 식물의 다양한 형태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을 지식의 말씀의 은사로 살펴보면, 그 세력의 성격과 크기가 보이기도 한다. 혹시 영분별의 은사가 &amp;lsquo;눈&amp;rsquo;에 있다면,&amp;nbsp; 악한 영들 곧 세력들을 잘 보게 되고, 은사가 &amp;lsquo;손&amp;rsquo;에 있으면 세력들을 손으로 만질 수가 있으며, &amp;lsquo;발&amp;rsquo;에 있으면 자신의 발에 세력이 감기는 것이나 지나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영안이 열리지 않는 것은 악한 영이 우리의 영의 눈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악한 영들은 영분별로 자기들의 정체가 발각이 되었을 때에 긴장을 한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은 영분별의 은사를 가진 자의 &amp;lsquo;눈&amp;rsquo;과 &amp;lsquo;뇌&amp;rsquo;를 자주 공격한다. 하지만 늘 깨어있어 회개하고 있으면 그들도 공격을 하지 못한다. 사탄은 우리를 보고 있는데, 우리가 사탄을 볼 수 없다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가 쉽지 않다. 상대를 보지 못하면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회개하여, 죄가 씻어지고 악령이&amp;nbsp;떠나가게 되면 눈이 깨끗해지게 된다. 그러면 영안도 열린다. 그리고&amp;nbsp;영분별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amp;nbsp;하나님과 천사도&amp;nbsp;볼 수 있다. 특히 예수님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천사도 본다. 천사들의 직책은 총&amp;nbsp;7가지로서 그들이 하는 일이 정해져 있다.&amp;nbsp; 수호천사, 전령(보고)천사, 전투천사, 치유천사, 예배천사(찬양, 악기연주), 경호천사, 건축천사, 기록천사(생명책, 행위책)가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 &lt;strong&gt;일곱째,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lt;/strong&gt;가 있는데, 이것은 시간관계상 다음 시간에 살펴보기로 하겠다. 간단하게만 말씀드린다면 방언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amp;nbsp;영의 말이기 때문에, 방언 통역의 은사를 가진 자가 아니면 그 내용을 알아 들을 수&amp;nbsp;없다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회에서는 방언의 은사를 제외하고는 성령의 은사를 터부시한다. 아니 성령의 은사를 가진 자를 교회 밖으로 내모는 경우도&amp;nbsp;허다하다. 그것이 어떻게 교회를 어지럽히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인지를 알 수 없기에 아예 처음부터 그 싹을 차단하는&amp;nbsp;것이다. 하지만 성령의 은사는 참으로 교회생활에&amp;nbsp;유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제는 회개를 하여서&amp;nbsp;자신의 죄를 깨끗이&amp;nbsp;씻지 못한&amp;nbsp;상태에서 성령의 은사를 받다보니 사탄마귀가 가라지를 덧뿌리고 가는 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 채&amp;nbsp;은사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는 한 두 번 정도는 은사자의 예언이나 방언통역, 환상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amp;nbsp;뒤로 갈수록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도&amp;nbsp;은사를 받아 교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기를 원한다면 그는 반드시 회개를 통하여 먼저 자신을&amp;nbsp;깨끗하게 해야 한다. 사실 성령의 은사 자체는&amp;nbsp;부정한 것이&amp;nbsp;하나도 없다. 하지만&amp;nbsp;은사자가 더러운 것이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정말 원한다면 죄에 대해 민감해야 하고,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그래서&amp;nbsp;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깨끗하게 한 상태에서 은사를 사용해야 한다. 혹 자신이 회개를 하지 않았다면&amp;nbsp;은사도 받지 않는 것이 더 낫다. 건투를 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1년 07월 28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20210728_083203[크기변환].jp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87672/693/087/efcf0b17a03d7d3bf19e8c9c7659c8a5.jpg&quot; /&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고린도전서강해(16) 성령의 은사들과 한 몸 안의 많은 지체들의 신비적인 연합(1)(고전12:1~11)_2021-07-21(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95"/>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95#comment"/>		<id>https://dongtanms.kr/corinthians1/87695</id>
		<published>2021-07-21T17:30:56+09:00</published>
		<updated>2021-08-04T22:20:18+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왜 오늘날 보편적인 교회에서 은사들이 사라지고 없어진 것일까? &amp;#039;은사&amp;#039;라고 하면, 왜곡된 성령운동을 하는 곳에서만 말해지고 있는 것인가? 왜 오늘날 교회에서는 초대교회가 경험했던 성령의 은사들을 보지 못하게 되었는가? 왜 기존 교회에서는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은사에 대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는 무엇인가? 성령의 은사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1. 들어가며 예수님을 믿으면...</summary>
	<content type="html">&lt;p&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dddddd;&quot;&gt;왜 오늘날 보편적인 교회에서 은사들이 사라지고 없어진 것일까? &amp;#39;은사&amp;#39;라고 하면, 왜곡된 성령운동을 하는 곳에서만 말해지고 있는 것인가? 왜 오늘날 교회에서는 초대교회가 경험했던 성령의 은사들을&amp;nbsp;보지 못하게 되었는가? 왜 기존 교회에서는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은사에 대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는 무엇인가? 성령의 은사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가?&lt;/span&gt;&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19&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8LLGeBqeMYs&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 width=&quot;1278&quot;&gt;&lt;/iframe&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예수님을 믿으면 그것으로 그냥 &amp;quot;땡&amp;quot;하고 종을 치는 것이 아니다. 믿을 때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amp;nbsp;성령님께서&amp;nbsp;자신의 뜻대로 믿는 성도들에게 여러 선물을 나눠주시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amp;nbsp;성령께서 믿는 이들에게 주시는 선물을 가리켜 &amp;quot;은사(카리스마)&amp;quot;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성령의 은사에는&amp;nbsp;어떤 것들이 있는가? 구약부터 있었던&amp;nbsp;은사들과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있는 은사들 간에는&amp;nbsp;어떤 차이를 가지고&amp;nbsp;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믿는 성도들에게는 왜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것일까? 더욱이 성령의 은사를 받는 입장에 있는 성도들은 성령께서 은사를 주실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amp;nbsp;적극적으로 구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성령의 은사들에 관하여 집중해서&amp;nbsp;살펴보고자 한다. 고린도 교회는 대체 어떤 은사를&amp;nbsp;받았던 것일까? 그리고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 가운데 그들은 어떤 은사를&amp;nbsp;최고로 여겼을까? 그리고 오늘날 작금의 시대를&amp;nbsp;살고 있는 우리 믿는 이들이&amp;nbsp;구해야 할 진정한 은사는 어떤 것이며, 은사를 구하기&amp;nbsp;전에 먼저 선행되어야 할 요건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고린도전서에서 12~14장은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고린도전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1장부터 6장까지이며, 후반부는 7장부터 16장까지다. 이중에 후반부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교회의 설립자인 바울에게 제기한 여러 질문에 대한 목회적인 답변을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7장에서 결혼 문제를 살펴보았고, 8~10장에서 우상의 제물 취식 문제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는 고전 11장을 통하여 예배시간에 여자들이 머리에 예배포(수건)를&amp;nbsp;쓰는 문제와 성찬식&amp;nbsp;문제를 살펴보았다. 이제 오늘부터는 예배 가운데 성령의 은사의 사용에 관한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부분은 12장에서 시작하여 14장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부분을 통하여 사도 바울은 12장에서는 성령의 은사의 다양성과 한 몸 안의 많은 지체들의 신비로운 연합을 언급한다. 그리고&amp;nbsp;13장에는 사랑의 은사를 언급하고,&amp;nbsp;14장에서는 방언과 방언통역 그리고 예언의 은사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언급한다. 이것들 중에서 오늘은 성령의 은사에 관한 개론적인 부분이자 다양한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 살펴보고자&amp;nbsp;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 사도 바울은 &amp;quot;신령한 것들&amp;quot; 곧 &amp;quot;영적인 것들&amp;quot;에 관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고전12:1). 이 말은&amp;nbsp;성도라면 영적인 은사들에 대하여 꼭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왜 그런가? 성령의 은사를 모르면&amp;nbsp;은사를 통해서 성도들이 얻을 수 있는 유익들을 놓칠 수가 있기 때문이요, 악령의 역사를 성령의 역사로 잘못 알았다가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amp;nbsp;오늘날 어떤 교회들은&amp;nbsp;성령의 은사들를 거부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바울의 가르침과는 반대된&amp;nbsp;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들에 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령께서 개인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는 은사를 잘 받아서 그것을 적극&amp;nbsp;활용할 필요가 있다. 다만 성령의 은사를 가장한 귀신들의 활동으로 인하여&amp;nbsp;개인과 교회를 나락으로 떨어뜨릴&amp;nbsp;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성령의 은사문제를 통하여 초래될 수 있는 개인과 교회의 영적인 혼란에 대해서&amp;nbsp;미리 대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우상을 섬기는 사람과 성령을 받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과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 간에는&amp;nbsp;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amp;quot;말&amp;quot;에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우상을 섬기는 자를 보자. 그들은&amp;nbsp;일종의 미신을 섬기는 자들이다. 미신이라는 것은 믿음의 대상인 신적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가늠할&amp;nbsp;수 없기 때문에, 항상 두려움 가운데 서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미신을 섬기는 사람은 자신이 섬기는 대상에게 물어볼 수가&amp;nbsp;없다. 왜 이러한&amp;nbsp;방식으로 그 신을&amp;nbsp;섬겨야 하는가 하고 질문할 수도 없다. 왜 그 신에게는 제사를 지내야 하는지도 물어볼 수 없다. 제사 드리는 자가 알아서 좋겠다고 생각하는&amp;nbsp;것들이 하나씩 모여서 오늘날과 같은 형식의 제사가 되었고 그것이 전통이 되어 내려오고 있는 것 뿐이다.&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우상의 실체는 어떠한가? 하나님께서는 &amp;#39;우상&amp;#39;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치신다(렘10:14~15).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수공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시115:4, 사2:8). 그것은 땔감나무에 불과하며, 금붙이 혹은&amp;nbsp;은붙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가져다 놓고는 그것에다가 절을 하고&amp;nbsp;향을 피운다. 그 앞에 음식을 차려놓는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상은&amp;nbsp;나무나 금은붙이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어떤 우상도 인간에게 반응할 수가 없다. 그것은 신적 존재가 아니며, 다만 누군가 만들어서 거기에 가져다 놓은 한낱 조형물에 불과하다(시115:4~7). 그렇지만 사람들이 자꾸 그러한 조형물에다가 예를 갖추어 절을 하게 되면, 귀신이 그 조형물에 달라붙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귀신들이 찾아오는 사람에게 관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인간에 의해&amp;nbsp;미신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상은&amp;nbsp;사실&amp;nbsp;아무것도 아니며, 누가 만들어서 거기에다 가져다 놓은 조형물에 불과한 것을 말이다. 그런데도&amp;nbsp;사람들이 자꾸 거기에다가 절을 하고 향불을 피워놓고 음식을 바치니까, 귀신이 그 조형물에 달라붙게 되어서 귀신이 신의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상을 섬기는 것은 곧 귀신을 섬기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이 섬기는 하나님은 우상과 어떻게 다른가?&amp;nbsp;그분은 살아있는 인격체이시다. 또한 그분은 믿는 이들&amp;nbsp;속으로&amp;nbsp;들어오신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인류의 구원자되신 예수님에 대해 깨우쳐주시고 알려주신다. 그 깨우치심의 핵심은 예수께서 주님이시라는 것이다(고전12:3). 예수께서 우리 인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분이&amp;nbsp;십자가에서 흘리신&amp;nbsp;보혈이 인류의 죄를 속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amp;nbsp;사실이기 때문에, 우리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내 속에 들어온 귀신이 하나씩 떠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을 따라가는 자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고전12:3). 우리는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비로소&amp;nbsp;완전한 신적인 실체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예수믿는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amp;#39;은사&amp;#39;와 &amp;#39;직분&amp;#39;과 &amp;#39;사역&amp;#39;이란 대체&amp;nbsp;무엇이며, 이것들은 과연 누가 주시는 것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게 하고 고백케 하시는 성령께서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 그리고&amp;nbsp;우리 인류의 구원자되시는 예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무슨 일을 행하시는가를 언급한다(고전12:4~6). 그리고 교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여러 가지 사역들은 누가 하게 하는지를 정확히 구분하여 설명한다. 그것이 바로 고전12:4~6에 나와 있는&amp;nbsp;말씀이다.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하여, &amp;#39;은사&amp;#39;와 &amp;#39;직분&amp;#39;과 &amp;#39;사역&amp;#39;의 주체가 누구이며, 그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먼저, &amp;quot;은사&amp;quot;의 분배는 같은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이라고 하였다(고전12:4). 이는 성령을 통하여 믿는 이들에게 은사가 분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은사가 무엇이며 과연 은사는 어떤 목적으로 주어지며, 어떤 종류가 있는지는 조금 있다가&amp;nbsp;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그리고 둘째로, &amp;quot;직분(섬김)&amp;quot;의 분배는 같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라고 언급한다(고전12:5). 이는 교회에서 일하라고 주시는 직분들은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주신다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서신을 통하여, 예수께서 교회에게 주시는 직분을 5가지로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amp;quot;사도와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amp;quot;라고 하였다(엡4:11). 그런데 오늘날에는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의 직분 등이&amp;nbsp;있다. 셋째로, &amp;quot;사역&amp;quot;의 분배는 같은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하였다(고전12:6). 즉 교회에서 여러 가지 행해지는 사역들은 다 성부 하나님께서 분배하여 그렇게 일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찬양하는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은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은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그는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들을 분배받을 수 있고, 직임을 받아서 교회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역의 안배를 따라&amp;nbsp;교회를 섬길 수가 있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하나님께서는 왜 성도들에게 은사들을 주시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이어서 사도 바울은 성령께서 믿는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시는&amp;nbsp;이유에 대해서 설명한다. 왜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은사(성령께서 주시는 선물)를&amp;nbsp;주시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성령께서 성도들을&amp;nbsp;유익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고전12:7). 사도 바울은 믿는 이들에게 나타나는 성령의 은사들은 다 성령께서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나눠 주신다고&amp;nbsp;언급한다(고전12:11). 그러므로 혹시 자신에게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고 있다면, 그는&amp;nbsp;자기와 교회에게 매우 유익이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오늘날 성도들 중에 어떤 이는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에 대해 주저하거나&amp;nbsp;꺼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사가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를 뿐더러,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도&amp;nbsp;잘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를 책임 맡고 있는 주의 종들이 성령의 은사에 대해 잘 모르면, 성령의 은사를 가진 자를 교회&amp;nbsp;밖으로 내모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래서 어떤 교회를 가면, 아예 방언기도를 하지 못하게 막기도 하고, 그러한 사람을 따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들은 무서운 것도 두려운 것도 아니다. 더욱이 그것이 교회를 망가뜨리거나&amp;nbsp;나쁘게 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다만 성령의 은사를 가장하여 들어오는 귀신의 역사가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귀신의 역사 또한&amp;nbsp;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성령이 하시는 역사와 귀신이 하시는 역사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는 더욱 환영하고 귀신의 역사는 더 물리친다면, 교회는 성령의 은사로 인하여 더욱 더 견고해지며 바르게 성장할 수가 있을&amp;nbsp;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성령의 은사들의 종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신령한 은사(특별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다음 주에 더욱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들에게는 크게 3종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amp;quot;일반 은사&amp;quot;이고, 또 하나는 &amp;quot;특별 은사&amp;quot;이며, 마지막으로 또 하나는 &amp;quot;직분 은사&amp;quot;다. 먼저 &amp;quot;일반 은사&amp;quot;를 살펴보자. 이 은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주어지는 신령한 은사가 아니다. 이는 불신자도 갖고 있는 은사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특별 은사와 구별하여 &amp;quot;일반 은사&amp;quot;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은사들에는 고전 13장에 나오는 &amp;quot;사랑&amp;quot;의 은사가 있고,&amp;nbsp;14장에 &amp;quot;절제&amp;quot;의&amp;nbsp;은사가 있다. 이외에도 일반 은사에는 노래(찬양), 화평, 온유, 지혜, 지식, 계획, 지도력, 섬김, 재물의 은사 등이 있다. 그리고 &amp;quot;특별 은사&amp;quot;라는 것이 있다. 이 은사는&amp;nbsp;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초자연적인&amp;nbsp;은사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은사로서&amp;nbsp;총 9가지를 언급한다(고전12:8~10). 그것은 &amp;quot;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침, 능력행함, 예언, 영분별, 방언, 방언통역&amp;quot;인&amp;nbsp;것이다. 참고로&amp;nbsp;다음 주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은사들이 나타나는 경로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의 영의 눈이 열릴 때에 비로소 확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환상을 보고, 귀신을 보고, 천사를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 투영체로 오셔서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고 또한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가 있다. 고로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신령한 은사는 은사자가&amp;nbsp;먼저 보고 먼저 들어서&amp;nbsp;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은사들 중에는 &amp;quot;직분&amp;quot;의 은사라는 것도&amp;nbsp;있다. 사도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교회의 직분의 은사에는 위에서 언급했지만 &amp;quot;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amp;quot;의 은사가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께서 믿는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주시는 은사들에 대해 총 9가지를&amp;nbsp;언급하였다(고전12:8~10). 아마도 이러한 은사들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amp;nbsp;나타났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은사들을 가리켜 &amp;quot;신령한(영적인) 은사&amp;quot;라고 부른다. 이것들은 다 초자연적인 은사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은사들이 오늘날에 과연 얼마만큼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아니 이러한 은사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교회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 왜 그런가? 왜 오늘날 교회에서는 성령의 신령한 은사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사도바울의 권면의 말씀을 잊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첫째, 믿는 자들이 되었어도 신령한 은사들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고전12:1, 14:1). 그것은 은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미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둘째, 더욱 큰 은사들을 사모하라고 하였지만 그것을 사모하지 않기 때문이다(고전12:31). 이 모든 것은 사실 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더불어 이것을 분별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도자들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별히&amp;nbsp;은사의 위험성만을 주지시키고 있을&amp;nbsp;뿐 그것의 유익성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에 이러한 은사들은 교회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하늘 창고에서 은사들이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amp;nbsp;신령한 은사를 말하는 단체가&amp;nbsp;잘못된 성령운동을 하는 곳이 많기&amp;nbsp;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라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은사들에 대한 시각을 바꿔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은사는&amp;nbsp;성령께서&amp;nbsp;개인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amp;nbsp;이것을 잘 받아 활용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특히 마지막 때에는 말씀만이 아니라 능력도 같이 나타나는 지도자가 활동하는 시기가 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시기야말로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고 받는 적기 중의 적기가 아닌가 싶다. 물론 성령의 은사를 받기 전에 더욱더 철저히 회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회개 없이 성령의 은사를 사모했다가 귀신이 주는 은사를 받아서 성령의 은사라고 말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1년 07월 21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PDF&amp;nbsp;자료 다운로드]&amp;nbsp;&lt;/span&gt;&lt;/p&gt; &lt;p&gt;&lt;a data-file-srl=&quot;75129&quot; href=&quot;?module=file&amp;amp;act=procFileDownload&amp;amp;file_srl=87696&amp;amp;sid=bb5f69b52f2234d2253cff59f84e8a86&amp;amp;module_srl=220&quot;&gt;고린도전서강해(16) 성령의 은사들과 한 몸 안의 많은 지체들의 신비적인 연합(1)(고전12,1_11).pdf&lt;/a&gt;&lt;/p&gt; &lt;p&gt;&lt;img alt=&quot;[크기변환]20210721_081832.jp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87672/695/087/b245100aa140674b3a1c6d052107641f.jpg&quot; /&gt;&lt;/p&gt;</content>			</entry></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