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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8.히브리서강해(20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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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로서, 2007년 동탄신도시에 세워졌습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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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6 Apr 2026 21:52:4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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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탄명성교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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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히브리서강해(20)] 최종회 - 히브리서가 이 시대에 들려주는 영적인 교훈은 대체 무엇인가?(히13:20~25)_2024-09-04(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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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2024-09-04(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trong&gt;[히브리서강해(20)] 최종회 &lt;/strong&gt;- &lt;span style=&quot;color: #c0392b;&quot;&gt;&lt;strong&gt;히브리서가 이 시대에 들려주는 영적인 교훈은 대체 무엇인가?(히13:20~2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BbRR3KNF_Lk&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BbRR3KNF_Lk&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 &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h3&gt;1. 들어가며&lt;/h3&gt; &lt;p&gt; 히브리서는 히브리인이 히브리인이자 그리스도인인 공동체에게 보낸 편지다(히1:1~2, 2:1~3, 13:20, 22~24). 그런데 이 편지는 다른 서신들과는 달리 편지의 서두에 발신자와 수신자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맨 끝에 가서 발신자와 수신자가 누구인지를 밝힌다. 아마도 이 편지를 이렇게 써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일반적인 편지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 이 편지를 쓴 자는 이 편지를 받을 자에게 자신을 밝히지 않고서 편지를 쓰다가 마지막에 가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해 놓았을까? 그것은 우리가 히브리서에서 얻을 영적인 교훈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 편지는 대단히 무거운 주제를 말씀하고 있는 편지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구원론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이 편지에서 어떤 영적인 교훈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하는가?&lt;/p&gt; &lt;p&gt; &lt;/p&gt; &lt;h3&gt;2. 이 편지의 영적인 교훈을 이해하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lt;/h3&gt; &lt;p&gt; 이 편지의 서두(히1:1~3)에서 밝히는 것은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자도 히브리인이요 뿐만 아니라 이 편지를 받고 있는 자도 히브리인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편지의 발신자는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말하기를 &quot;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들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의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quot;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편지의 발신자나 수신자가 다 히브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lt;/p&gt; &lt;p&gt; 그런데 이 편지를 통해서 더 알 수 있는 사실들은 &lt;strong&gt;첫째로, 이 편지의 발신자와 수신자 모두가 히브리인이면서 동시에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039;퀴리오스&#039;)으로 믿고 있는 자들&lt;/strong&gt;이라는 점이다(히2:3, 7:14, 8:2, 12:14, 13:20).&lt;strong&gt; 둘째,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자는 여럿이 아니라 어떤 하나의 개인으로서(히13:19,22,23),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있는 자이면서(히13:20), 동시에 원래는 이 편지의 수신자들과 함께 있었다가 잠시 떨어져 있는 이 교회의 지도자였다&lt;/strong&gt;는 사실이다(히13:18~19). 그리고 이 편지의 발신자는 전에도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짧은 시간을 통하여 이미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낸 자였다는 사실이다(히13:22). 그리고 이 편지의 발신자는 디모데를 자신의 형제라고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히13:23). 그리고 &lt;strong&gt;셋째, 이 편지를 받을 수신자들은 이탈리아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 공동체라&lt;/strong&gt;는 것이다(히13:24). 즉 로마 교회라는 것이다. &lt;strong&gt;넷째, 정황으로 보았을 때에 이 편지의 수신자들은 신앙에 있어서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lt;/strong&gt;이다. 왜냐하면 그들 공동체의 지체들 중에 어떤 이가 고난의 큰 싸움을 이미 겪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비방과 환난을 당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경거리가 되고 있었으며, 이들 중에 일부는 그때도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였고 또한 그들의 소유(재산)까지도 빼앗기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히10:32~34). 그 이유는 2가지였다. 그것은 로마 정부로부터 가해지는 박해와 동족으로부터 가해지는 박해 가운데에서,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유혹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이다.&lt;/p&gt; &lt;p&gt; 그러므로 이 편지의 발신자는 이 편지의 수신자들인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권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쓴 것이라는 것이다. 곧 배교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쓴 것이다.&lt;/p&gt; &lt;p&gt; 그렇다면 배교(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포기하는 것)는 로마 교회 성도들 곧 유대인이면서 그리스도인들이었던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만 해서는 안 될 일인가 아니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인가? 그것은 둘 다이다. 이 문제가 왜 그리 중요한가 하는 것은 만약 이 편지가 단지 히브리인이 히브리인들에게만 보내는 편지라고 한다면 이방인들은 이 편지를 굳이 읽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에서는 이 편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편지를 자기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 편지가 들려주는 영적인 교훈은 자신이 히브리인들이든지 아니면 이방인들이든지 상관없이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편지를 히브리인이 히브리인에게 보낸 편지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 편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시대의 이방인인 우리 교회에게도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것은 바로 이 편지를 쓴 목적을 제대로 이해할 때에 비로소 알게 된다.&lt;/p&gt; &lt;p&gt; 그럼, &lt;strong&gt;이 편지를 보내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배교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lt;/strong&gt;이다. 그것은 &lt;strong&gt;구원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lt;/strong&gt;이다. 그러므로 이 편지의 주제는 배교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인데, 그 결과는 이미 얻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편지의 대주제는 구원론에 관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lt;/p&gt; &lt;p&gt; &lt;/p&gt; &lt;h3&gt;3. 왜 오늘날 신학자들은 이 편지의 저자를 바울이라고 말하지 않으려고 하는가?&lt;/h3&gt; &lt;p&gt; 우리는 이 편지의 발신자와 수신자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를 통하여 이 편지의 발신자가 바울이라는 사실을 거부할 수가 없다.&lt;/p&gt; &lt;p&gt; 어떤 이는 이 편지의 발신자가&lt;strong&gt; &#039;바나바&#039;나 &#039;아볼로&#039;&lt;/strong&gt;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바른 주장이 아니다. 바나바가 아닌 것은 비록 그가 유대인이었다고 하지만 그는 디모데와 함께 복음을 전파하러 다니지도 아니했으며 그를 형제라고 부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둘은 같이 활동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039;아볼로&#039;가 아닌 것은 이도 역시 유대인이기는 하지만 히브리서와 같은 주제를 다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lt;strong&gt;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lt;/strong&gt;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이것도 가능하지 않은 것은 이 편지를 쓰는 자가 어떤 개인 곧 &#039;나&#039;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편지의 발신자를 &lt;strong&gt;&#039;누가&#039;&lt;/strong&gt;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그가 디모데를 형제라고 부를 수 있는 가능성은 있지만 누가는 처음부터 이방인이기 때문에 애당초 후보군에 들 수도 없는 인물이다.&lt;/p&gt; &lt;p&gt; 그러므로 이 편지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편지의 발신자는 로마 교회에 먼저 편지를 보냈던 자이다(히13:22). 그리고 이 편지의 발신자는 로마 교회와 함께 있었다가 잠시 떨어져 있었으나 곧 그리로 갈 자이다(히13:18~19). 그리고 이 편지의 발신자는 이 교회의 지도자였던 자다(히13:7,17,24). 그리고 이 편지의 발신자는 디모데를 형제라고 부르는 자이다(히13:23). 그러므로 &lt;strong&gt;이 편지의 발신자는 사도 바울일 수밖에&lt;/strong&gt; 없다.&lt;/p&gt; &lt;p&gt; 사실 사도 바울이 1차로 로마 감옥에 수감된 이후(A.D.60~62), 잠시 석방을 받아 서바나로 전도하러 떠났는데(A.D.63~65), 그만 로마의 네로 황제에 의해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대화재(A.D.64)의 주범으로 몰리어,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재산이 몰수되는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지 말 것을 경고하기 위해 써 보낸 두 번째 편지이기 때문이다.&lt;/p&gt; &lt;p&gt; 그렇다면 &lt;strong&gt;왜 이 편지의 발신자는 자신을 처음부터 밝히지 않았을까? 그것은 이 편지의 주제가 구원론에 관한 것인데, 이 주제가 이전에 써 보낸 로마서(A.D.55년경)와 어쩌면 상충되는 듯한 내용으로 쓰고 있기 때문&lt;/strong&gt;이다. 그것은 구원 탈락의 가능성을 매우 심도 있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에 바울이 써 보내었던 로마서는 그렇지 않다. 한 번 구원을 받은 자라면 그리스도께서 그를 끝까지 지켜 주신다는 내용으로 써 보내었기 때문이다(롬8:33~35). 그러므로 만약 로마서만을 알고 있는 자가 이 편지를 받았을 때에는 바울이 써 보낸 편지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히브리서가 구원을 받은 자라도 얼마든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계속해서 그것도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히2:1~4, 3:7~4:13, 5:11~6:12, 10:26~31, 12:1~29).&lt;/p&gt; &lt;p&gt; 또한 오늘날에 들어와서 &lt;strong&gt;신학자들도 역시 이 편지를 바울의 저작이라고 보지 않으려는 이유는 초기의 바울 저작의 편지들 곧 로마서, 갈라디아서와 같은 편지와 히브리서는 서로 상충되는 듯한 내용이 있기 때문&lt;/strong&gt;이다. 그러므로 구원 탈락의 가능성을 강하게 경고하는 히브리서를 바울이 쓸 리가 없다고 주장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편지의 정황을 보고 이 편지를 읽어 보면 금방 이 편지가 바울의 저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편지를 바울의 편지라고 굳이 말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의 초기의 편지들이 하나같이 믿음을 통한 구원의 확고부동함을 증거해 주고 있는 반면에, 히브리서는 구원은 얼마든지 잃어버릴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lt;/p&gt; &lt;p&gt; &lt;/p&gt; &lt;h3&gt;4. 이 편지의 영적인 교훈들은 무엇인가?&lt;/h3&gt; &lt;p&gt; 그렇다면 이 편지의 영적인 교훈들은 무엇인가? 그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lt;strong&gt;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 정도로 요약&lt;/strong&gt;할 수 있을 것이다.&lt;/p&gt; &lt;p&gt; &lt;strong&gt; 첫째, 그리스도께서 주신 구원은 영원히 구원받으라고 주신 구원이지만 만약 우리가 그 구원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우리가 이미 얻은 구원이라도 얼마든지 잃어버릴 수 있다&lt;/strong&gt;는 것이다(히2:1~4, 3:7~4:13, 5:11~6:12, 10:26~31, 12:1~29). 사실 이 편지에서 예수님은 이 땅에 들어오신 완전한 제사장으로서 또한 완전하고도 흠 없는 제물이 되시어 완전한 성막인 자신의 몸 안에서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 인류의 죄를 단번에 사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원에 있어서 우리 주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그 구원을 받은 우리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김으로 주님을 부인한다면 이미 얻은 구원이라도 얼마든지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한 번 구원은 영원히 구원받으라고 주신 것이지만 이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이미 구원을 받은 자라고 할지라도 얼마든지 배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gt; &lt;strong&gt;둘째,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할지라도 고난과 유혹에 직면했을 때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인내로서 믿음을 견고히 지켜 내야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히3:13). 목숨 걸고 믿음을 사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편지는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흔들리지 말라고 보낸 편지이기 때문이다.&lt;/p&gt; &lt;p&gt; &lt;strong&gt;셋째, 구원은 믿음을 갖는 순간을 통해서 시작되기는 하지만 이러한 구원은 일종의 경주와도 같아서 끝까지 완주하는 자가 결국에 얻게 된다&lt;/strong&gt;는 것이다(히12:1~2). 결국 구원은 순간이 아니라 경주요 여정인 것이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게 되지만 고난을 인내해서 구원을 완성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의 시작은 믿음으로 시작하는 것이지만 구원의 최종적인 완성은 자신이 죽을 때에 비로소 완성되고 결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원의 경주는 바울이 A.D.54~55년경 그의 신앙의 초기에 기록했던 고린도전서에서도 이야기했었고(고전9:24~27) 또한 A.D.60~62년경 바울이 로마 감옥에 1차로 수감되었을 때에 썼던 빌립보서에서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빌3:12~14).&lt;/p&gt; &lt;p&gt; &lt;strong&gt;넷째, 인내하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이미 믿음의 길을 걸어간 믿음의 신앙 선배들의 삶이 많은 도움을 줄 것&lt;/strong&gt;이라는 것이다(히11장). 왜냐하면 신앙 선배들의 삶은 자기들의 눈에 보이는 것에 주목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하신 약속을 붙들었기 때문에 결국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신앙의 목표는 이 땅에서 받을 복이 아니라 저 하늘에서 받을 복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늘에서 주실 복 곧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지어 놓으신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것을 바라보면서 인내로서 자기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한 것이다(히10:35).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받을 축복보다는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치욕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인내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당한 고난들 곧 조롱당하고, 채찍질당하고, 결박당하고, 투옥당하고, 시련을 겪고, 궁핍함을 겪고, 환난을 당하고, 학대를 당해도 결국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믿음의 길을 걸어간 것이다.&lt;/p&gt; &lt;p&gt; &lt;strong&gt;다섯째, 신앙 공동체가 흔들리거나 견고하게 되는 것은 항상 교회의 지도자들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lt;/strong&gt;는 것이다(히13:7, 17, 18~19, 24). 신앙 공동체의 지도자가 약하면 신앙 공동체도 함께 흔들리며, 신앙 공동체의 지도자가 견고하면 그 신앙 공동체 또한 견고하기 때문이다. 이는 잠시 바울이 떠나간 로마 교회가 많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겨두고 간 그들의 인도자들이 많이 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인도하는 자들에 대해 각별한 순종과 애정을 부탁한다.&lt;/p&gt; &lt;p&gt; &lt;strong&gt;여섯째, 구약성경은 모형과 그림자이자 참 형상이 아니기 때문에 성도들이 진정 붙들어야 할 것은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라&lt;/strong&gt;는 것이다. 사람이 확실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모형과 그림자를 붙들 것이 아니라 참 형상을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예수님은 구약 시대에 모형과 그림자로 등장하는 대제사장과 속죄 제물과 성막의 실체이기 때문에 모형과 그림자를 붙든다든지 그것에 만족하지 말고 이미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씀을 성취하러 오신 예수님을 붙들어서 완전한 구원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lt;/p&gt; &lt;p&gt; &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 일&lt;/span&gt;&lt;strong&gt;곱째, 성도들이 진정 바라고 소망해야 할 것은 이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이며, 그것은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일이며, 거기에 들어가서도 상 얻는 자가 되는 것&lt;/strong&gt;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에서 하늘에서 최고의 복에 참여하는 24장로들 가운데 10~11명의 장로들(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까지. 사무엘까지 포함된다면 11명)을 만나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진정 바라보았던 것은 이 땅에서의 안정과 평안이 아니라 하늘에 준비된 새로운 도성 곧 새 예루살렘 성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 성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실 상을 바라보면서 고난을 인내하고 믿음의 경주를 행한 것이다.&lt;/p&gt; &lt;p&gt; &lt;/p&gt; &lt;h3&gt;5. 나오며&lt;/h3&gt; &lt;p&gt; 오늘을 살아가는 이방인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사실 히브리서는 낯설고 생소한 책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는 구약성경을 비교적 소상히 알아야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구약의 율법을 그것보다 훨씬 뛰어나신 그리스도와 비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구약의 천사와 여러 인물들(모세, 여호수아, 아론, 대제사장들)과 비교해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약의 언약과 제사 제도와도 비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신약성경 중에서도 가장 구약적인 성경책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을 제대로 알 때에 비로소 여기에 나온 문제들을 이해할 수 있고 또한 풀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이방인들에게 이 책은 유대인들만큼 소중한 책이다. 왜냐하면 상황만 다를 뿐 이방인들도 꼭 알고 있어야 할 구원의 핵심을 정확히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 번 믿음으로 얻은 구원이라도 얼마든지 탈락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원은 한순간이 아니라 여정이라는 것을 알려 주며, 신앙생활의 핵심은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것이며, 거기에서도 상 얻는 자가 되는 것임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구약의 성경은 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우리가 비록 이방인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멀리할 책이 결코 아닌 것이다. 우리도 부지런히 이 책을 살펴서 유대인인 그리스도인에게 경고하고 있는 구원 탈락의 가능성을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라 할지라도,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는 것을 히브리서도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간음했던 르우벤과 장자권을 경홀히 여겼던 에서는 원래는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였으나, 결국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진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 구원을 얻은 우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할지라도 끝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계속 잘 감당해야 한다. 그리하여 반드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구원을 받아야 하며, 그곳에서 상 얻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gt;&lt;!--EndFragment--&gt; &lt;/p&gt; &lt;p&gt; &lt;/p&gt; &lt;p&gt;2024년 09월 04일(수)&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 &lt;/p&gt; &lt;p&gt; &lt;/p&gt;</description>
		<category>58.히브리서강해(20강)</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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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히브리서강해(19)] 그리스도인의 참된 영적 제사란 무엇이며 히브리서의 저자는 누구인가?(히13:1~25)_2024-08-21(수)</title>
			<link>https://dongtanms.kr/hebrews/154848</link>
				<description>&lt;p&gt;2024-08-22(목)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 #c0392b;&quot;&gt;&lt;strong&gt;[히브리서강해(19)] 그리스도인의 참된 영적 제사란 무엇이며 히브리서의 저자는 누구인가?(히13:1~2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FG3AbtXv6h4&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FG3AbtXv6h4&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lt;!-- [if !mso]&gt; &lt;style&gt; v\:* {behavior:url(#default#vml);} o\:* {behavior:url(#default#vml);} w\:* {behavior:url(#default#vml);} .shape {behavior:url(#default#vml);} &lt;/style&gt; &lt;![endif] --&gt;&lt;/p&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lt;!--p.0 {mso-style-name:&quot;바탕글&quot;;line-height:160%;margin-left:0pt;margin-right:0pt;text-indent:0pt;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word-break:break-hangul;layout-grid-mode:both;vertical-align:baseline;mso-pagination:none;text-autospace:none;mso-padding-alt:0pt 0pt 0pt 0pt;mso-ascii-font-family:함초롬바탕;mso-ascii-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90%;letter-spacing:-0.5pt;mso-text-raise:0pt;font-size:12.0pt;color:#000000;mso-font-kerning:0pt;} --&gt;&lt;/style&gt; &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p&gt; &lt;p&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 히브리서는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039;&lt;/span&gt;&lt;span&gt;강을 건넌 자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039;(&lt;/span&gt;&lt;span&gt;창&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4:13, &lt;/span&gt;&lt;span&gt;수&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4:2~3)&lt;/span&gt;&lt;span&gt;이라는 뜻을 지닌 어떤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039;&lt;/span&gt;&lt;span&gt;히브리인&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039;&lt;/span&gt;&lt;span&gt;이 자신의 동족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039;&lt;/span&gt;&lt;span&gt;히브리인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039;&lt;/span&gt;&lt;span&gt;에게 보낸 편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런데 이 편지는 다른 서신서들처럼 편지 형식을 띠고 있지 않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즉 발신자와 수신자를 표기하지 않고 있으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은혜와 평강을 기원하는 것도 생략하고 있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오히려 이 편지의 서두에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소개하는 것&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1~3)&lt;/span&gt;&lt;span&gt;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왜 그랬을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렇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이 책의 말미에 이 편지를 기록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소개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리하여 우리는 이 편지가 누구에 의해서 쓰여졌는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히브리서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lt;/span&gt;&lt;span&gt;장 전체를 살펴보면서&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들이 진정 드려야 할 영적 제사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최종적으로 이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 &lt;!--[endif]--&gt; &lt;/span&gt;&lt;/strong&gt;&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2. &lt;/span&gt;히브리서 &lt;span lang=&quot;EN-US&quot;&gt;13&lt;/span&gt;장은 어떤 내용의 말씀이 들어있는가&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lt;/strong&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 히브리서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lt;/span&gt;&lt;span&gt;장은 히브리서 후반부의 결말 부분에 해당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히브리서는 우선 내용상 서론부&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1~3)&lt;/span&gt;&lt;span&gt;와 본론부&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4~13:19) &lt;/span&gt;&lt;span&gt;그리고 결론부&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20~25)&lt;/span&gt;&lt;span&gt;로 나눌 수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시 본론부는 전반부&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10:18)&lt;/span&gt;&lt;span&gt;와 후반부&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0:19~13:19)&lt;/span&gt;&lt;span&gt;로 나눌 수 있는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때 전반부가 구약과 신약을 연결 완성시킨 예수의 각종 구약적 요소들에 대한 우월성을 제시하고 있다면&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후반부는 인내하는 믿음과 그에 합당한 생활에 대한 권면을 다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리고 다시 후반부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앞부분&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0:19~12:13)&lt;/span&gt;&lt;span&gt;에서는 인내하는 믿음 자체를 다루고 있다면&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뒷부분&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2:14~13:25)&lt;/span&gt;&lt;span&gt;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관련한 권면의 말씀을 다루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 그중에서 히브리서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1~25&lt;/span&gt;&lt;span&gt;의 말씀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앞부분&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1~19)&lt;/span&gt;&lt;span&gt;에서는 형제사랑 및 음행과 탐욕을 경계하고 있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1~6), &lt;/span&gt;&lt;span&gt;더불어 신앙 사수와 고난을 이기는 믿음의 실천 및 순종을 권면하고 있다고 하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리고 뒷부분&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20~25)&lt;/span&gt;&lt;span&gt;에서는 중보기도 요청&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송영&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문안인사로 구성된 끝맺는 말을 다루고 있다고 하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3. &lt;/span&gt;히브리서 기자가 전하는 마지막 권면의 말씀은 무엇인가&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 성도들이 일상생활 가운데 힘써야 할 일은 무엇인가&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것은 첫째로&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형제사랑하기를 지속하는 것이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음행과 탐욕을 경계하라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1~6). &lt;/span&gt;&lt;span&gt;그리고 둘째로&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신앙을 사수하고 고난을 이기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과 아울러&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께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4&lt;/span&gt;&lt;span&gt;가지 영적인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7~16). &lt;/span&gt;&lt;span&gt;그리고 이 편지를 받을 대상자들을 인도하고 있는 지도자들에 대한 순종을 권면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17).&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4. &lt;/span&gt;그리스도에 의해 영원한 제사가 드려진 이후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진정한 영적인 제사는 어떤 것인가&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단번으로 완성된 제사를 드린 이후&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4&lt;/span&gt;&lt;span&gt;가지 영적인 제사란 어떤 것인가&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4&lt;/span&gt;&lt;span&gt;가지를 언급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15~16).&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 첫째&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찬송의 제사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우리의 찬양을 가리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 둘째&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분의 이름을 시인하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분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시인하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 셋째&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선을 행하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사탄의 길을 따라가는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선을 행하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 넷째&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교통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성도들의 필요를 나눠주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즉 구제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영적인 제물이 되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5. &lt;/span&gt;히브리서 기자는 왜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을 인도하는 자들에 대하여 여러 번 강조하며 언급하였는가&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편지의 수신자들을 인도하고 있는 자들에게 세 번씩이나 여러 차례 언급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렇다면 그 내용은 무엇이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 이유는 무엇인가&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 첫째&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히브리서 기자는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그들을 인도하는 자들에게 무엇을 말했는가&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것은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3&lt;/span&gt;&lt;span&gt;가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첫째는 그들의 결말을 주의하여 지켜보고 그들이 가졌던 믿음을 본받으라고 말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7). &lt;/span&gt;&lt;span&gt;둘째는 그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말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17). &lt;/span&gt;&lt;span&gt;왜냐하면 그들은 마치 자신이 결산할 자인 것처럼 자신에게 맡겨준 영혼들을 위해 깨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그들로 하여금 기쁨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근심함으로 사역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 아무 유익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셋째는 그들에게 항상 인사하라고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24). &lt;/span&gt;&lt;span&gt;그들을 존경하고 따르고 그분의 지도자를 잘 받으라는 말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둘째&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히브리서 기자는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그들을 인도하는 자들에게 위와 같이 신신당부를 했을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것은 많은 영적인 은혜가 그들을 인도하는 말씀 사역자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런데 이들을 의심하고 이들을 시험하고 미워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을 통하 주시고자 하는 은혜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6. &lt;/span&gt;이 편지의 끝인사와 송영 그리고 문안인사 속에 나타나 있는 이 편지의 저자는 대체 누구인가&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 히브리서는 편지의 글이지만 특별하게도 이 편지의 서두에서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히지 않고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들은 누구인가&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 첫째&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 편지의 수신자는 누구인가&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것은 이 편지의 내용을 통하여 금방 찾아낼 수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래서 이 편지의 수신자들은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24). &lt;/span&gt;&lt;span&gt;당시 이 수신자들은 유대인으로서 살아간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다가는 큰 핍박과 환난을 당할 형편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0:32~34).&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gt;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0:32~34 &lt;/span&gt;&lt;span&gt;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33 &lt;/span&gt;&lt;span&gt;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34 &lt;/span&gt;&lt;span&gt;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 그렇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 편지의 수신자들이 당하는 환난과 핍박은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가해지는 박해가 한 가지이고 또한 더불어 로마 정부로부터 가해지는 박해가 또 한 가지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왜냐하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유대인들은 과격한 유대주의자들로부터 끊임없는 선동과 위협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또한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로마로부터 커다란 어려움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것은 유대교가 당시 로마 정부로부터 집회와 활동이 허가된 종교였던 것에 비해&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기독교는 당시 사회에서 불법 종교로 인식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네로 황제가 저지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D.64&lt;/span&gt;&lt;span&gt;년경의 로마 대화재의 방화범으로 오인받고 있었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왜냐하면 네로 황제&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D.54~68 &lt;/span&gt;&lt;span&gt;재위&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가 로마 대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덮어씌워 기독교 대박해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 둘째&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 편지의 발신자 곧 송신자는 누구인가&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 편지의 수신자는 서두에는 나오지 않지만 끝맺는 말과 송영과 문안인사를 살펴보면 대강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것은 다름 아닌 사도 바울이 확실시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왜냐하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 첫째로&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 편지를 쓰고 있는 당사자가 자신을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lt;/span&gt;&lt;span&gt;인칭 단수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039;&lt;/span&gt;&lt;span&gt;나&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039;&lt;/span&gt;&lt;span&gt;라고 표현하면서 곧 자신이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중보기도를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19). &lt;/span&gt;&lt;span&gt;이것은 이 편지의 발신자가 이 편지의 수신자들과 과거에 함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리고 이전에 이 편지의 발신자가 이 편지의 수신자들을 인도하는 직분에 있었음을 계속해서 암시하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7,17,24). &lt;/span&gt;&lt;span&gt;둘째로&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 편지의 수신자에게 전에 편지를 보냈던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것은 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22&lt;/span&gt;&lt;span&gt;을 헬라어 원문으로 직역하면 파악할 수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quot;&lt;/span&gt;&lt;span&gt;그런데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면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너희는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왜냐하면 나도 역시 짧은 시간을 통하여 너희에게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22 &lt;/span&gt;&lt;span&gt;헬라어 직역&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3&lt;/span&gt;&lt;span&gt;차 전도여행 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D.53~58, &lt;/span&gt;&lt;span&gt;행&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8:23~21:16)&lt;/span&gt;&lt;span&gt;에 고린도에서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D.54~55&lt;/span&gt;&lt;span&gt;년경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로마서라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셋째로&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디모데를 형제라고 언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디모데가 풀려난 상황이라는 것을 이 편지의 수신자들보다 먼저 알고 있기 때문이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디모데가 히브리서 기자에게 오면 함께 이 편지의 수신자들인 로마의 유대교 그리스도인들에게 갈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23). &lt;/span&gt;&lt;span&gt;넷째로&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탈리아&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로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로부터 온 자들이 당시 이 편지의 발신자와 함께 있다고 전하면서 그들이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3:24). &lt;/span&gt;&lt;span&gt;다섯째로&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 편지의 발신자도 유대인이요 이 편지의 수신자도 유대인이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히&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1, 2:1~4). &lt;/span&gt;&lt;span&gt;이 편지의 발신자나 수신자는 유대교인들로서 모세와 여호수아&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아론과 제사 제도를 잘 알고 있으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믿음의 선진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장로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 그러므로 이 편지는 바울이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lt;/span&gt;&lt;span&gt;차 감옥 수감&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D.61~63) &lt;/span&gt;&lt;span&gt;이후 잠시 풀려난 상태에서&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D.65~66) &lt;/span&gt;&lt;span&gt;서바나&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스페인&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으로 전도하러 갔다가 돌아가기 전에 먼저 이 편지를 로마에 있는 유대교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리고 나서 바울은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lt;/span&gt;&lt;span&gt;차로 로마에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D.67~68) &lt;/span&gt;&lt;span&gt;순교를 맞이하게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이 편지는 바울이 썼다는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7. &lt;/span&gt;나오며&lt;/span&gt;&lt;/strong&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 우리는 히브리서를 보면서 기존의 사도 바울이 썼던 다른 편지들과는 매우 상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왜냐하면 바울이 쓴 다른 편지들은 한 번 얻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히브리서만큼 강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나 히브리서는 한 번 얻은 구원이라도 얼마든지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무려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5&lt;/span&gt;&lt;span&gt;번이나 강조하면서 역설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는 이전에 사도 바울이 말했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는 사도 바울이 노년에 여러 가지 많은 계시의 영을 받아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참된 구원론에 매우 많이 접근했음을 의미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만큼 그의 구원론도 성숙해져 있었고 또한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사실 이 편지를 쓴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여러 학자들이 언급해 왔듯이&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바나바나 아볼로 혹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지만 이 편지의 마지막 끝맺는 말에 와서 언급하는 여러 단서들은 이 편지의 저자가 사도 바울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증거해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특히 이 저자가 구원의 창시자요 완성자인 그리스도가 누구인지에 대해 이렇게까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동시에 예수님을 구약의 천사와 모세&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리고 여호수아와 아론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은 이 저자가 사도 바울이 아니라면 이러한 내용을 쓸 수가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우리는 말년이 되어 계시의 완성에 다다른 바울이 쓴&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또 다른 작품으로서 보내어진 이 편지를 통해서 예수께서 어떻게 구약의 모든 계시와 제사 제도보다 더 뛰어난 분인지를 더 확실히 공부할 수가 있을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 &lt;!--[endif]--&gt; &lt;o:p&gt;&lt;/o:p&gt;&lt;/p&gt; &lt;div id=&quot;hwpEditorBoardContent&quot; class=&quot;hwp_editor_board_content&quot; data-hjsonver=&quot;1.0&quot; data-jsonlen=&quot;32726&quot;&gt;&lt;!--[data-hwpjson]{ &quot;documentPr&quot;: { &quot;di&quot;: &quot;&quot;, &quot;dp&quot;: { &quot;dn&quot;: &quot;test.hwp&quot;, &quot;ta&quot;: 1, &quot;d1&quot;: 5, &quot;d2&quot;: 1, &quot;dv&quot;: 0, &quot;dr&quot;: 1, &quot;do&quot;: 1, &quot;vj&quot;: &quot;1.1&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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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고(히13:1~6), 더불어 신앙 사수와 고난을 이기는 믿음의 실천 및 순종을 권면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뒷부분(13:20~25)에서는 중보기도 요청, 송영, 문안인사로 구성된 끝맺는 말을 다루고 있다고 하겠다.&quot; } ] } ] }, &quot;01DC3C16D588030000000066&quot;: { &quot;n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67&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B&quot;, &quot;si&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D&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6&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3C16D588030000000067&quot;: { &quot;n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68&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B&quot;, &quot;si&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D&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6&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3C16D588030000000068&quot;: { &quot;n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69&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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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01DC3C16D588030000000096&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성도들이 일상생활 가운데 힘써야 할 일은 무엇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그것은 첫째로, 형제사랑하기를 지속하는 것이고, 음행과 탐욕을 경계하라는 것이다(히13:1~6). 그리고 둘째로, 신앙을 사수하고 고난을 이기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과 아울러, 하나님께 4가지 영적인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다(히13:7~16). 그리고 이 편지를 받을 대상자들을 인도하고 있는 지도자들에 대한 순종을 권면한다(히13:17).&quot; } ] } ] }, &quot;01DC3C16D58803000000006B&quot;: { &quot;n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6C&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B&quot;, &quot;si&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D&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6&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3C16D58803000000006C&quot;: { &quot;n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6D&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B&quot;, &quot;si&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D&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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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c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6&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셋째, 선을 행하는 것이다. 사탄의 길을 따라가는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선을 행하는 것이다.&quot; } ] } ] }, &quot;01DC3C16D588030000000074&quot;: { &quot;n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75&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B&quot;, &quot;si&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D&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6&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넷째, 교통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성도들의 필요를 나눠주는 것이다. 즉 구제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영적인 제물이 되는 것이다.&quot; } ] } ] }, &quot;01DC3C16D588030000000075&quot;: { &quot;n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76&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B&quot;, &quot;si&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D&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6&quot;, &quot;ch&quot;: [ { &quot;t&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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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히브리서 편지의 수신자들을 인도하고 있는 자들에게 세 번씩이나 여러 차례 언급한다. 그렇다면 그 내용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quot; } ] } ] }, &quot;01DC3C16D58803000000007B&quot;: { &quot;n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7C&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B&quot;, &quot;si&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D&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6&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첫째, 히브리서 기자는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그들을 인도하는 자들에게 무엇을 말했는가? 그것은 3가지다. 첫째는 그들의 결말을 주의하여 지켜보고 그들이 가졌던 믿음을 본받으라고 말한다(히13:7). 둘째는 그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말한다(히13:17). 왜냐하면 그들은 마치 자신이 결산할 자인 것처럼 자신에게 맡겨준 영혼들을 위해 깨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로 하여금 기쁨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근심함으로 사역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 아무 유익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셋째는 그들에게 항상 인사하라고 한다(히13:24). 그들을 존경하고 따르고 그분의 지도자를 잘 받으라는 말이다.&quot; } ] } ] }, &quot;01DC3C16D58803000000007C&quot;: { &quot;n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7D&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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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quot;01DC3C16D588030000000081&quot;: { &quot;n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82&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B&quot;, &quot;si&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D&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6&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3C16D588030000000082&quot;: { &quot;n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83&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B&quot;, &quot;si&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D&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6&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히브리서는 편지의 글이지만 특별하게도 이 편지의 서두에서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quot; } ] } ] }, &quot;01DC3C16D588030000000083&quot;: { &quot;n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84&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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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 이 편지의 수신자는 서두에는 나오지 않지만 끝맺는 말과 송영과 문안인사를 살펴보면 대강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도 바울이 확실시된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quot; } ] } ] }, &quot;01DC3C16D588030000000089&quot;: { &quot;n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8A&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B&quot;, &quot;si&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D&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6&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첫째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당사자가 자신을 1인칭 단수 \u0027나\u0027라고 표현하면서 곧 자신이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중보기도를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히13:19). 이것은 이 편지의 발신자가 이 편지의 수신자들과 과거에 함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전에 이 편지의 발신자가 이 편지의 수신자들을 인도하는 직분에 있었음을 계속해서 암시하기 때문이다(히13:7,17,24). 둘째로, 이 편지의 수신자에게 전에 편지를 보냈던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히13:22을 헬라어 원문으로 직역하면 파악할 수 있다. \&quot;그런데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면한다. 너희는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왜냐하면 나도 역시 짧은 시간을 통하여 너희에게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다(히13:22 헬라어 직역).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미 3차 전도여행 때(A.D.53~58, 행18:23~21:16)에 고린도에서 A.D.54~55년경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로마서라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디모데를 형제라고 언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디모데가 풀려난 상황이라는 것을 이 편지의 수신자들보다 먼저 알고 있기 때문이며, 디모데가 히브리서 기자에게 오면 함께 이 편지의 수신자들인 로마의 유대교 그리스도인들에게 갈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히13:23). 넷째로, 이탈리아(로마)로부터 온 자들이 당시 이 편지의 발신자와 함께 있다고 전하면서 그들이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히13:24). 다섯째로, 이 편지의 발신자도 유대인이요 이 편지의 수신자도 유대인이기 때문이다(히1:1, 2:1~4). 이 편지의 발신자나 수신자는 유대교인들로서 모세와 여호수아, 아론과 제사 제도를 잘 알고 있으며, 믿음의 선진들(장로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quot; } ] } ] }, &quot;01DC3C16D58803000000008A&quot;: { &quot;n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8B&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B&quot;, &quot;si&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D&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6&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 그러므로 이 편지는 바울이 1차 감옥 수감(A.D.61~63) 이후 잠시 풀려난 상태에서(A.D.65~66) 서바나(스페인)으로 전도하러 갔다가 돌아가기 전에 먼저 이 편지를 로마에 있는 유대교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2차로 로마에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A.D.67~68) 순교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바울이 썼다는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quot; } ] } ] }, &quot;01DC3C16D58803000000008B&quot;: { &quot;n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8C&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B&quot;, &quot;si&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D&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6&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3C16D58803000000008C&quot;: { &quot;n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8D&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B&quot;, &quot;si&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D&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6&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3C16D58803000000008D&quot;: { &quot;n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8E&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B&quot;, &quot;si&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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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이 되어 계시의 완성에 다다른 바울이 쓴, 또 다른 작품으로서 보내어진 이 편지를 통해서 예수께서 어떻게 구약의 모든 계시와 제사 제도보다 더 뛰어난 분인지를 더 확실히 공부할 수가 있을 것이다.&quot; } ] } ] }, &quot;01DC3C16D588030000000091&quot;: { &quot;n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2&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B&quot;, &quot;si&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D&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6&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quot;01DC3C16D588030000000092&quot;: { &quot;np&quot;: &quot;&quot;, &quot;id&quot;: -2147483648, &quot;p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A&quot;, &quot;si&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D&quot;, &quot;bf&quot;: 0,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C3C16D588030000000095&quot;, &quot;ch&quot;: [ { &quot;t&quot;: &quot;&quot; } ] } ] } }, &quot;sl&quot;: { }, &quot;cs&quot;: { &quot;01DC3C16D58803000000005A&quot;: { &quot;cc&quot;: 2, &quot;ci&quot;: 1936024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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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58.히브리서강해(20강)</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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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히브리서강해(18)] 배교에 대한 히브리서 기자의 다섯 번째 경고와 권면의 말씀(히12:14~29)_2024-08-07(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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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2024-08-07(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 #2980b9;&quot;&gt;&lt;strong&gt; [히브리서강해(18)] 배교에 대한 히브리서 기자의 다섯 번째 경고와 권면의 말씀(히12:14~29)&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NzjYLmb57KI&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NzjYLmb57KI&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 &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h3&gt;&lt;b&gt;1. 들어가며&lt;/b&gt;&lt;/h3&gt; &lt;p&gt; 히브리서에는 배도에 관한 다섯 번의 경고가 나온다. 그것드 중에 마지막이자 가장 강력한 경고의 말씀을 이번 시간에 마주하고자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로마의 극심한 박해 속에서 믿음을 저버리려는 유혹에 빠진 성도들을 향해, 그들이 받은 은혜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이며, 그것을 저버리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엄중하게 선포한다.&lt;/p&gt; &lt;p&gt; 히브리서 11장이 구름같이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의 삶을 통해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면, 히브리서 12장 전반부에서는 그 믿음의 경주를 인내로써 달려가야 하며, 그 과정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 성도들을 아들로 삼으시는 사랑의 훈련인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제 히브리서 12장의 후반부인 이번 말씀은 이 모든 권면에 대한 결론으로서, 이 위대한 구원의 여정에서 결코 탈선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명확히 한다.&lt;/p&gt; &lt;p&gt;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 성도들인 받은 새 언약의 축복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에서 두려움에 떨며 받았던 옛 언약과는 비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소개하였다. 그러나 그 영광이 그만큼 큰 만큼, 그 은혜를 저버린 자에게 임할 심판 또한 더욱 무섭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히브리서 기자의 마지막 경고에 귀 기울이며, 우리가 받은 장자권의 가치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발견하고, 팥죽 한 그릇에 그 영원한 기업을 팔아넘긴 에서와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우리의 신앙을 굳게 세우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lt;/p&gt; &lt;p&gt; &lt;/p&gt; &lt;h3&gt;&lt;b&gt;2. 히브리서 12장 14절부터 29절까지의 말씀은 히브리서 전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lt;/b&gt;&lt;/h3&gt; &lt;p&gt; 히브리서 12장 14절에서 29절의 말씀은 히브리서에 나오는 다섯 번의 경고 중 &lt;b&gt;마지막 다섯 번째 경고&lt;/b&gt;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것은 책 전체의 신학적 논증을 마무리하고 최종적인 결단을 촉구하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교리적인 부분(1~10장)과, 그 교리를 바탕으로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권면하는 실천적인 부분(11~13장)으로 구분된다. 그 중에서 이번의 본문은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진들 이야기와 12장 전반부의 신앙 경주에 대한 권면을 이어받아서, 그 경주에서 탈락하여 배교하게 될 경우 어떤 무서운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즉, 앞선 모든 교리와 권면의 결론으로서, “그러므로 너희는 결코 배교해서는 안 된다”는 최종적인 경고를 말하는 것이다.&lt;/p&gt; &lt;p&gt; 그런데 이러한 경고는 단순히 우리에게 겁을 주기 위함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존귀한 것인지를 깨닫게 함으로써, 세상의 어떤 핍박과 유혹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굳게 지키도록 격려하기 위함인 것이다. 따라서 이 마지막 경고는 히브리서 전체의 메시지를 성도들의 삶에 깊이 새기는 인장(印章)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lt;/p&gt; &lt;h3&gt;&lt;b&gt; &lt;/b&gt;&lt;/h3&gt; &lt;h3&gt;&lt;b&gt;3. 히브리서에 나타난 배교에 대한 다섯 번째 경고는 무엇인가?&lt;/b&gt;&lt;/h3&gt; &lt;p&gt; 히브리서 기자가 전하는 다섯 번째 경고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lt;b&gt;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린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되지 말라&lt;/b&gt;는 것이다.&lt;/p&gt; &lt;blockquote class=&quot;&quot;&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히 12:15-17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16 [어떤 자가]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자기자신의] 장자의 명분(장자권)[들]을 판(돌려준)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있지 않도록) 살피라 17 [왜냐하면]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상속받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찾아내었지만)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발견하지) 못하였느니라&lt;/span&gt;&lt;/p&gt; &lt;/blockquote&gt; &lt;p&gt;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는 배교의 구체적인 예로 두 사람을 지목한다. 하나는 음행을 통해 장자권을 잃어버린 &#039;르우벤&#039;과 팥죽 한 그릇 때문에 장자권을 팔아버린 ‘에서’를 지목한다. 먼저 &#039;르우벤&#039;은 야곱의 장자였지만 일시적인 육체의 욕구를 이기지 못해 아비의 첩이었던 서모 빟라와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고 만다(창 35:22). 그리하여 르우벤은 이 죄로 인하여 장자권 중에서 왕권은 넷째동생인 유다에게 넘겨주었으며(대상 5:1-2, 창 49:8), 기업을 두 몫을 차지할 수 있는 장자의 상속권(신 21:17)을 요셉에게 넘겨주어야 했다(창 49:3-4, 대상 5:1).&lt;/p&gt; &lt;p&gt;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 &#039;에서&#039;는 이삭의 장자로서 엄청난 축복을 받을 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기업을 받을 권리(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과 맞바꾸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만다(창 25:27-34). 성경은 이러한 에서의 행동을 ‘망령된 행실’이라고 규정한다(히 12:16). ‘망령되다’는 것은 ‘거룩한 것을 속되게 여기는 것’, 즉 영원하고 신령한 가치를 하찮게 여기고, 일시적이고 육적인 쾌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를 의미한다.&lt;/p&gt; &lt;p&gt; 당시 로마의 핍박 속에서 많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눈앞의 불어닥친 고난을 피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유혹을 받고 있었다. 이는 마치 에서가 팥죽 한 그릇을 위해 장자권을 팔아버리는 것과 같은 행위였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얻은 영원한 하늘의 기업을, 이 땅에서의 잠시 잠깐의 평안과 맞바꾸려 했던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경고한다. 에서는 나중에 눈물을 흘리며 그 축복을 다시 얻으려 했지만,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처럼 한번 은혜를 저버리고 고의적으로 배교의 길을 선택한 자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이 임할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이다.&lt;/p&gt; &lt;h3&gt;&lt;b&gt; &lt;/b&gt;&lt;/h3&gt; &lt;h3&gt;&lt;b&gt;4. 구약의 이스라엘 총회(시내산)와 신약 교회(시온산)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lt;/b&gt;&lt;/h3&gt; &lt;p&gt; 히브리서 기자는 배교가 왜 그토록 무서운 죄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구약의 성도들이 섰던 시내산과 신약의 성도들이 서 있는 시온산을 극적으로 대조한다.&lt;/p&gt; &lt;p&gt;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받기 위해 모였던 시내산은 &lt;b&gt;두려움과 심판의 장소&lt;/b&gt;였다. 그곳에는 불이 붙는 산과 캄캄함과 흑암과 폭풍이 있었고, 나팔 소리와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얼마나 두려웠던지, 백성들은 더 이상 말씀하시지 말기를 구할 정도였다. 심지어 짐승이라도 그 산에 닿으면 돌로 침을 당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가 있었다(히 12:18-21). 이는 죄인 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감히 나아갈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며,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얼마나 두려운 심판 아래 놓여있는지를 상징한다.&lt;/p&gt; &lt;p&gt;그러나 우리가 이른 곳은 그러한 두려움의 산이 아니다. 우리가 속한 신약 교회는 &lt;b&gt;은혜와 영광의 장소인 하늘의 시온산&lt;/b&gt;이다.&lt;/p&gt; &lt;blockquote class=&quot;&quot;&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히 12:22-24 그러나 너희가 이른(나아간)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무수한) 천사[들]와 23 하늘[들 안]에 기록된 [채 있는] 장자[권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들]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채 있는] 의인[들]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우수한) 것을 말하는(발언하고 있는) 뿌린 피니라&lt;/span&gt;&lt;/p&gt; &lt;/blockquote&gt; &lt;p&gt; 우리 성도들이 장차 들어갈 곳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며, 그곳에는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 그리고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이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과, 우리를 위해 흘리신 그분의 보배로운 피가 거기에 있다. 고로 구약시대 모세가 율법을 받은 시내산이 땅에 속한 영역이라면, 이러한 새 예루살렘 도성과 천사들과 의인들의 영들과 예수님과 그분의 거룩한 피가 있는 시온산은 하늘에 속한 것이다. 고로 시내산이 율법과 정죄의 장소라면, 시온산은 은혜와 구원의 장소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구약의 성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언약 공동체에 속하여 있다. 그러므로 이 엄청난 은혜를 받고도 배교한다는 것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거역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심판을 자초하는 행위가 되고 마는 것이다.&lt;/p&gt; &lt;h3&gt;&lt;b&gt; &lt;/b&gt;&lt;/h3&gt; &lt;h3&gt;&lt;b&gt;5. 에서가 팔아버린 장자권(장자의 권리)의 3가지 축복은 대체 무엇이었는가?&lt;/b&gt;&lt;/h3&gt; &lt;p&gt;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린 ‘장자권’은 단순히 명예나 서열의 문제가 아니었다. 거기에는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상속받게 될 세 가지 엄청난 영적 축복이 들어있기 때문이다.&lt;/p&gt; &lt;p&gt; &lt;strong&gt;첫째는 두 배의 &lt;/strong&gt;&lt;b&gt;기업 상속권&lt;/b&gt;이다. 고대 사회에서 장자는 아버지의 재산을 다른 형제들보다 두 배로 상속받을 권리가 있었다(신 21:17). 이는 영적으로, 우리가 장차 새 예루살렘 성에서 하나님 나라의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될 것을 의미한다. 에서는 당장의 배고픔 때문에 이 영원한 기업을 잃어버렸다. 그리하여 예표로서, 야곱의 장자였던 르우벤이 받을 수 있었던 두 배의 기업 상속권은 요셉에게 돌아갔으니, 요셉의 아들이었던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이스라엘의 12아들들에 포함되어 두 배의 땅을 축복으로 받게 된다. &lt;/p&gt; &lt;p&gt; &lt;strong&gt;둘째는 &lt;/strong&gt;&lt;b&gt;제사장직 수행권으로 축복권&lt;/b&gt;이다. 율법이 주어지기 전, 족장 시대에는 각 가정의 장자가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는 가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가족을 위해 중보하는 거룩한 직무를 수행했다. &lt;!--StartFragment--&gt;그런데 예표로서 야곱의 장자 르우벤이 범죄함으로 인하여 제사장직은 자신의 셋째 동생인 레위에게 돌아갔다. 그리하여 모세시대부터는 레위지파 사람으로서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고 다른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특권을 얻게 되었다(벧전 2:9). 그렇다고 해서 천국에 모든 성도들이 다 왕같은 제사장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직분은 이기는 자들 중에 특별한 분깃을 차지하는 자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lt;/p&gt; &lt;p&gt; &lt;strong&gt;셋째는 통치권(왕권)&lt;/strong&gt;이다. 장자는 아버지를 이어 가문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계승했다. 예표로서, 야곱의 장자였던 르우벤이 받을 수있었던 왕권은 그의 넷째 동생인 유다가 받게 된다. 그리하여 그의 후손 가운데 최초로 왕이 탄생하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다윗이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은 무려 20대가 왕이 된다.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성도들 중에서 악한 영들과 싸워서 이기는 자가 결국 왕이 된다. 이들은 천국에서 왕적 신분을 소유하게 될 것인데, 이들이 다스릴 영토는 성밖에 있다. 이것은 성도들 중에는 천년왕국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는 자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계 20:6, 22:5).&lt;/p&gt; &lt;p&gt; 그런데 에서는 이삭의 장자였던 이러한 세 가지 놀라운 축복, 즉 두 배의 기업과 제사장직과 왕권을 잃어버렸다. 그것들을 썩어 없어질 팥죽 한 그릇과 맞바꾸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배교는 단순히 믿음을 버리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장자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내팽개쳐버리는 망령된 행위와 같은 것이다.&lt;/p&gt; &lt;p&gt; &lt;/p&gt; &lt;h3&gt;&lt;b&gt;6. 나오며 :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붙잡으라&lt;/b&gt;&lt;/h3&gt; &lt;p&gt; 이번 시간에 우리는 히브리서 12장의 마지막 경고를 통해, 배교의 심각성과 우리가 받은 은혜의 존귀함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두려움의 시내산에 오른 자들이 아니라, 은혜의 시온산에 오른 자들이다. 우리는 팥죽 한 그릇이 아닌, 영원한 장자권을 약속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같이 받은 이 커다란 은혜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권면한다.&lt;/p&gt; &lt;blockquote class=&quot;&quot;&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히 12:28-29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왕국)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갖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기 때문이]라&lt;/span&gt;&lt;/p&gt; &lt;/blockquote&gt; &lt;p&gt;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흔들리고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하나님 나라(왕국)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나라(왕국)다. 이 놀라운 나라(왕국)를 기업으로 받았으니, 우리는 마땅히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겨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거역하는 자를 심판하시는 ‘소멸하는 불’이심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된다.&lt;/p&gt; &lt;p&gt; 믿음이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미봉책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오늘을 인내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에서와 같이 잠시의 쾌락과 안위를 위해 영원한 장자권을 팔아넘기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오직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굳게 붙들고,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소망하며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완주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gt; &lt;/p&gt; &lt;hr&gt; &lt;p&gt;&lt;b&gt;[설교요약]&lt;/b&gt;&lt;/p&gt; &lt;p&gt;본 설교는 히브리서 12장 14-29절에 나타난 배교에 대한 다섯 번째 경고를 통해, 성도가 받은 은혜의 존귀함과 그것을 저버렸을 때의 심판을 다룬다. 첫째, 히브리서 12장의 경고는 믿음의 경주(11장)를 이어받아 배교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결론적 위치에 있다. 둘째, 다섯 번째 경고의 핵심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판 ‘망령된’ 에서와 같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히 12:16). 이는 눈앞의 안위를 위해 영원한 기업을 포기하는 배교 행위를 의미한다. 셋째, 신약의 성도들은 두려움의 시내산 언약이 아닌, 은혜와 영광의 시온산, 즉 새 언약에 참여한 자들이다(히 12:22-24). 넷째, 에서가 버린 장자권은 오늘날 성도가 받을 ‘기업 상속권’, ‘제사장직 수행권’, ‘통치권’이라는 세 가지 영광스러운 축복을 예표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으니, 소멸하는 불이신 하나님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섬기며(히 12:28-29)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2024년 08월 07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 &lt;/p&gt; &lt;p&gt; &lt;/p&gt;</description>
		<category>58.히브리서강해(20강)</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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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hebrews/154852#comment</comments>			<pubDate>Sat, 10 Aug 2024 20:34:0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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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히브리서강해(17)] 신앙의 경주 권고 및 징계의 의미와 유익은 무엇인가?(히12:1~13)_2024-07-31(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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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2024-07-31(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b&gt;[히브리서강해(17)] 신앙의 경주 권고 및 징계의 의미와 유익은 무엇인가?(히12:1~13)&lt;/b&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sl9gONjbp9c&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sl9gONjbp9c&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br&gt; 히브리서는 참으로 놀라운 책이다. 천사보다, 모세보다, 아론 제사장보다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증명하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그분의 영원한 제사장직을 통해 우리에게 더 좋은 새 언약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다. 그러나 이 위대한 복음은 단순한 위로와 축복으로 끝나지 않는다. 히브리서 기자는 10장 후반부에서, 진리를 알고도 고의적으로 죄를 짓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엄중히 경고한다.&lt;/p&gt; &lt;p&gt; 이러한 경고를 받은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배교의 유혹과 세상의 핍박 속에서 어떻게 믿음을 지켜낼 수 있는가? 히브리서 기자는 11장에서 구름같이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을 소개하며 그 해답을 제시했다. 그리고 히브리서 12장에서는 그 믿음의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 또한 어떻게 믿음의 경주를 완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권면과 격려를 제시한다. 특히 이번 말씀은 신앙의 경주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징계’의 의미와 유익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룬다. 성도들이 받는 고난은 과연 하나님의 버리심인가, 아니면 사랑의 표현인가? 히&lt;strong&gt;브리서 기자는 왜 성도들에게 신앙의 경주를 힘써 하라고 권면했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징계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신앙의 경주와 징계 속에 담긴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고,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으며,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완주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lt;/strong&gt;바란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strong&gt;2. 히브리서 12장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br&gt; 히브리서 12장은 히브리서 전체 구조 속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자 결론부의 시작점에 위치한다. 이 장은&lt;strong&gt; 앞선 10장과 11장의 내용을 종합하여, 성도들이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삶의 자세를 제시하기 때문&lt;/strong&gt;이다.&lt;/p&gt; &lt;p&gt; 히브리서 10장 후반부는 믿음에서 떠나 고의적으로 죄를 짓는 배교자들에게 임할 무서운 심판을 경고하며 끝을 맺는다. 이러한 엄중한 경고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두려움과 낙심에 빠지게 할 수 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곧바로 11장에서 아벨로부터 시작하여 아브라함, 모세, 다윗, 그리고 수많은 선지자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했던 위대한 신앙의 영웅들을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로 제시한다.&lt;/p&gt; &lt;p&gt; 그리고 이어서 12장은 11장의 결론으로서 “이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한다. 즉, “우리에게 이처럼 구름같이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이 있으니, 너희도 그들처럼 포기하지 말고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야 한다”고 권면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2장은 더 이상 이론적인 교리가 아니라, 믿음의 선배들이 걸어갔던 그 길을 우리도 어떻게 따라가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 강령을 제시하는 실천적인 장이다. 따라서 12장은 앞선 모든 교리적 논증을 바탕으로, 성도들의 삶을 향한 강력한 도전과 위로를 주는 적용과 권면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strong&gt;3. 히브리서 기자는 왜 히브리 성도들에게 신앙의 경주를 힘써 하라고 권면하였는가?&lt;/strong&gt;&lt;/span&gt;&lt;br&gt; 히브리서 기자는 12장 1절에서 3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신앙의 경주를 힘써 달려야 할 이유와 그 방법을 세 가지로 나누어 명확하게 제시한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히 12:1-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lt;/span&gt;&lt;/p&gt; &lt;p&gt; &lt;strong&gt;첫째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는 것&lt;/strong&gt;이다. 경주하는 선수가 무거운 짐을 지고 달릴 수 없듯이, 성도들 또한 신앙의 경주를 방해하는 모든 영적, 정신적 짐들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상처, 세상에 대한 염려, 해결되지 않은 죄의 문제 등은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 무거운 짐들이다. 특히 성도들을 쉽게 얽어매는 죄의 습관들을 과감히 끊어내지 않고서는 결코 믿음의 경주를 제대로 달릴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lt;/p&gt; &lt;p&gt; &lt;strong&gt;둘째는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라’는 것&lt;/strong&gt;이다. 신앙의 경주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과 같다. 그 길에는 수많은 장애물과 고난, 핍박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 경주를 완주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은 바로 ‘인내’이다. 믿음의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도 눈앞의 어려움에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참고 견디며 달려가야 하는 것이다.&lt;/p&gt; &lt;p&gt; &lt;strong&gt;셋째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는 것&lt;/strong&gt;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이다. 우리 성도들의 힘과 의지만으로는 결코 이 경주를 완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선이 세상을 향하거나 자기 자신에게 머물러 있으면 쉽게 지치고 낙심하게 된다. 오직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우리 성도들은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달려갈 힘을 얻게 된다. 그분은 우리보다 앞서 십자가라는 가장 큰 고난을 참으시고 부활의 영광에 이르신 승리의 모델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해, 죄인들의 거역함을 참으신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strong&gt;4. 성도들이 받는 징계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br&gt; 신앙의 경주를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고난과 어려움을 만나게 되는데,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징계’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많은 성도들이 징계라는 말을 ‘벌’이나 ‘형벌’과 동일시하여, 고난이 닥치면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거나 미워하신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징계는 그러한 부정적인 의미가 결코 아니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히 12:5-6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lt;/span&gt;&lt;/p&gt; &lt;p&gt;&lt;!--StartFragment--&gt; 그렇다. 장계는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이나 시련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것을 주의 징계라는 관점에서 보면 &lt;strong&gt;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하여 행하시는 하나의 훈련 과정에 해당한&lt;/strong&gt;다. 그러므로 징계를 잘 통과하여 영적 성숙을 이룰 수가 있다. 왜냐하면 주님의 징계를 하늘나라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훈육방법이기 때문이다.&lt;!--EndFragment--&gt;&lt;/p&gt; &lt;p&gt;&lt;!--StartFragment--&gt; &lt;!--StartFragment--&gt;헬라어에서 ‘징계&#039;는 &#039;파이데이아)’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가 처음에는 &#039;훈육, 교육&#039;이라는 의미로 쓰인 단어였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는 훈련과 가르침이 들어갔으며 또한 교정도 들어갔다. 그리하여 이 단어는 &#039;양육, 훈련, 교정, 징계&#039;라는 의미로 발전하였다. 그러므로 주의 징계라는 것은 부모가 자녀들을 위하여 훈계하고 때로는 매를 양육하듯이,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온전한 그리스도인들으로 양육하기 위해 쓰시는 하나의 훈련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징계는 죄많고 불완전한 인간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과정인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바로 잡으려서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고로 당시 히브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징계는 핍박과 시련을 허용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을 성숙시켜 온전한 자로 만드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허락힌 교육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lt;!--EndFragment--&gt;&lt;/p&gt; &lt;p&gt; 그렇다. 하나님의 징계는 죄에 대한 형벌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을 하나님의 참된 자녀로 만들어 가시는 사랑의 훈련 과정에 해당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 당신의 아들로 받아들이신 자만을 징계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징계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버려진 사생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 아들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 징계가 없는 자는 참 아들이 아니요 사생자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단언하기 때문이다(히 12:8). 따라서 우리는 징계를 가볍게 여기거나, 그로 인해 낙심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징계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훈련을 통해 더욱 성숙한 자녀로 자라가야 하는 것이다.&lt;/p&gt; &lt;p&gt; &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5.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징계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lt;/span&gt;&lt;/strong&gt;&lt;br&gt;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징계하시는 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것은 결코 우리를 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히 12:10-11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lt;/span&gt;&lt;/p&gt; &lt;p&gt;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두 가지로 이야기하였다.&lt;br&gt; &lt;strong&gt;첫째,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려 하심’&lt;/strong&gt;이다. 징계라는 훈련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불순물들을 제거하시고, 우리를 점점 더 당신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도록 만드신다. 고난은 우리를 낮추고,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연단의 도구이기 때문이다.&lt;/p&gt; &lt;p&gt; &lt;strong&gt;둘째,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려 하심’&lt;/strong&gt;이다. 징계가 사실 당시에는 슬프고 고통스럽지만, 그 연단의 과정을 잘 통과한 자들은 마침내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된다. 여기서 ‘의’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평강’은 그 관계 속에서 누리는 참된 안식과 기쁨을 의미한다. 징계를 통해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그 결과 우리의 삶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의의 열매와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평강으로 가득 차게 된다.&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p&gt; &lt;!--StartFragment--&gt;그러나 막상 우리가 징계를 받을 때에는 그것이 당장 즐거워보이지는 않는다(히12:11).. 그것이 오히려 슬퍼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연단을 받은 자는 결국 의로운 자가 되고 또한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징계를 받을 때에 낙심하지 않는 것이다&lt;!--EndFragment--&gt;&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strong&gt;6.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징계하시는 3가지 경우는 언제인가?&lt;/strong&gt;&lt;/span&gt;&lt;br&gt;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징계하시는 경우는 언제인가? 사람들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때에는 다음과 같은 3가지 경우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경우에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바른 대처를 해야 한다. &lt;/p&gt; &lt;p&gt; &lt;strong&gt;첫째,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깨닫고 회개하도록 하기 위함&lt;/strong&gt;이다. 이것이 가장 일반적인 징계의 목적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불순종하거나, 숨겨진 죄를 회개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질병, 물질적 손실, 관계의 어려움 등 다양한 징계의 채찍을 통해 우리를 치신다. 이는 우리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그 죄에서 돌이켜 멸망의 길로 가지 않고 생명의 길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사랑의 경고인 것이다.&lt;/p&gt; &lt;p&gt; &lt;strong&gt;둘째, 더 큰 사명을 맡기시기 위해 우리를 훈련하고 준비시기 위함&lt;/strong&gt;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에게 어떤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더 큰 그릇으로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만드시기 위해 고난의 풀무불 속으로 인도하신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쳐야 했던 시험이나, 요셉이 겪었던 억울한 감옥살이,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던 광야의 시간들이 바로 이러한 훈련의 과정이었다. 이 고난을 통해 그들은 더욱 겸손해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깊이 의지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위대한 지도자로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lt;/p&gt; &lt;p&gt; &lt;strong&gt;셋째, 우리가 교만해지지 않도록 미리 막으시기 위함&lt;/strong&gt;이다. 이는 사람이 온전한 자인지를 테스트하기 위해 사탄의 징계를 허락하시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해다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큰 큰 은혜와 더 큰 능력을 부어주신 사역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이런 자는 사실 교만해져서 넘어질 위험이 크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때로 육체의 가시와 같은 징계를 허락하셔서, 우리가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붙들도록 만드신다. 사도 바울이 받았던 ‘육체의 가시’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다(고후 12:7). 이 징계는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하나님의 역설적인 은혜를 체험하게 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strong&gt;7. 나오며: 사랑의 징계를 통해 거룩한 열매를 맺으라&lt;/strong&gt;&lt;/span&gt;&lt;br&gt; 이번 시간에는 히브리서 12장의 말씀을 통해, 신앙의 경주와 징계의 참된 의미를 살펴보았다. 신앙의 길은 결코 꽃길만이 아니다. 때로는 무거운 짐을 벗어 버려야 하고, 인내하며 달려야 하며, 고통스러운 징계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낙심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구름같이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이 있고, 무엇보다 우리의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께서 우리 앞서 달려가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징계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버리심이 아니라, 우리를 당신의 거룩함에 참여시키고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시려는 아버지의 깊은 사랑의 표현이다.&lt;/p&gt; &lt;p&gt; 그러므로 우리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미봉책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우리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신뢰하며 미래를 내다보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지금 겪는 환난이 장차 우리에게 임할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함을 믿고(고후 4:17),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끝까지 완주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마침내 결승점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으로부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으며,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 쓰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trong&gt;[설교요약]&lt;/strong&gt;&lt;br&gt;본 설교는 히브리서 12장 1-13절을 통해 신앙의 경주와 징계의 의미를 다룬다. 첫째, 히브리서 12장은 10장의 경고와 11장의 믿음의 증인들을 이어받아, 성도들에게 신앙의 경주를 힘써 달릴 것을 권면한다(히 12:1-2). 둘째, 이 경주를 위해서는 모든 죄와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고, 인내하며, 믿음의 주이신 예수를 바라보아야 한다. 셋째, 징계는 벌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을 훈련시키시는 사랑의 과정이며(히 12:5-6), 우리가 하나님의 참 자녀라는 증거이다. 넷째, 징계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고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히 12:10-11). 다섯째,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더 큰 사명을 위해 훈련하실 때, 교만해지지 않도록 막으실 때 징계하신다. 따라서 성도들은 징계를 통해 연단 받아,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고 영원한 기업을 얻어야 한다.&lt;/p&gt; &lt;p&gt; &lt;/p&gt; &lt;p&gt;2024년 07월 31일(수)&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 &lt;/p&gt; &lt;p&gt; &lt;/p&gt;</description>
		<category>58.히브리서강해(20강)</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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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hebrews/154854#comment</comments>			<pubDate>Wed, 31 Jul 2024 23:09:1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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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히브리서강해(16)]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 이야기(6) - 신앙선배들의 3가지 특징(히11:32~40) _2024-07-24(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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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2024-07-24(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 #c0392b;&quot;&gt;&lt;strong&gt;[히브리서강해(16)]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 이야기(6) - 신앙선배들의 3가지 특징(히11:32~40)&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GntkIMGcYqg&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GntkIMGcYqg&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히브리서는 로마에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그만 핍박과 유혹을 이기지 못해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 하자 그들에게 유대교로 돌아가지 말 것을 경고하면서 끝까지 인내하여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라고 쓴 편지다. 그리고 세상에서 살면서 온갖 유혹과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신앙의 경주를 잘 했던 신앙의 인물들을 예시로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이 시간에 살펴볼 히브리서 11장의 말씀이다. 고로 우리는 신앙 선배들이 항상 믿음으로 잘 살았다는 것만을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신앙의 선배들은 세상 속에서 살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삶을 살기 위해 온갖 핍박과 고난, 조롱과 멸시를 견뎌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어떤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가 나오는가? 이들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믿음의 길은 대체 어떤 것인가?&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lt;strong&gt;2. 히브리서 11장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신앙의 선배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하에 태어나서 살았지만 모두들 믿음으로 살았던 인물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누구였는지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들은 구약시대에 살았던 신앙의 선배들로서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총 16명 정도이다. 그들로는 첫째, 아브라함 이전의 신앙선배들로서 ①아벨과 ②에녹과 ③노아가 있다. 둘째, 족장시대의 신앙선배들로서 ④아브라함과 ⑤사라, ⑥이삭, ⑦야곱 그리고 ⑧요셉이 있다. 셋째, 모세시대부터 가나안 입성까지의 신앙선배들로서 ⑨모세와 ⑩기생 라합이 있다. 그리고 넷째, 마지막으로 사사시대 이후의 신앙선배들로서 ⑪기드온과 ⑫바락과 ⑬삼손과 ⑭입다와 ⑮다윗과 사무엘이 있다. 그리고 이외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①모세의 부모 ②이스라엘 백성 ③선지자들이 나온다. 이들 중 현재 천국에서 24장로에 해당하는 분들은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사무엘 등이다. 아벨은 장로인지 분명하지는 않으며, 나머지 분들은 장로급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그리고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이들이 전부 믿음으로 살았던 자들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의 이야기 앞에는 반드시 &#039;믿음으로&#039;라는 말이 총 18번 나온다(히11:3,4,5,7,8,9,11,17,20,21,22,23,24,27,28,29,30,31). 그리고 마지막으로 &#039;믿음을 통하여&#039;라는 말이 두 번 나온다(히11:33,39). 그러니까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 믿음으로 살았던 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lt;strong&gt;3.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신앙선배들의 3가지 특징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그렇다면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신앙선배들의 삶의 특징은 어떻게 요약할 수 있는가? 적어도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lt;strong&gt;첫째, 이들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다&lt;/strong&gt;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철석같이 믿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그들에게 약속하였으나 죽을 때까지 그 말씀이 성취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을 잃지 않고 붙들고 있다가 자신의 아들에게 신앙의 유산으로 물려주었다는 것이다. 그런 대표적인 신앙선배들로는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요셉 등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lt;strong&gt;둘째, 이들 중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나라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lt;/strong&gt;는 것이다. 그렇다. 신앙의 선배들 중에는 늘 이스라엘 주변에 붙어 있어서 가나안 땅 본토를 공격하는 주변 이방 민족들이 있었다. 모압과 암몬, 에돔과 미디안, 블레셋 그리고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다. 이들은 왕을 앞세워 이스라엘을 공격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아직까지 12부족 체제로 있을 때에는 사사들이 이들과 맞서서 싸웠다. 이때 싸워서 승리했던 장수들로 히브리서 기자는 기드온과 바락과 삼손과 입다 사사를 언급한다(히11:32). 그리고 드디어 나라를 통일하여 명실공히 왕국을 이루었던 다윗왕이 있다.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을 공격해 온 주변 나라들과 싸워서 승리했던 이들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그리고 마지막으로 &lt;strong&gt;셋째, 이들 중에는 자신에게 불어닥친 고난과 역경들을 참고 이겨내었다&lt;/strong&gt;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이 선지자들이었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상들과 우상들을 섬길 때에 그들을 책망하는 일을 주로 맡아서 행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왕들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그래서 때로는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고문을 받기도 했으며, 채찍질을 당하기도 했고 톱으로 켜는 시련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타락한 왕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였다. 이러한 선지자들로는 엘리야와 엘리사, 이사야와 예레미야, 다니엘 등이 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lt;strong&gt;4. 신앙선배들로서 사사들과 왕과 선지자들의 삶은 과연 어떠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그렇다면 구약시대 신앙선배들로서 사사들과 왕과 선지자들의 삶은 과연 어떠했는가? 히브리서 기자는 이들의 삶을 먼저 이야기하면서 믿음의 여인들의 삶과 다른 이들의 삶 그리고 딴 이들의 삶을 계속해서 열거한다(히11:32).&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lt;strong&gt;첫째, 사사들과 왕과 선지자들의 삶&lt;/strong&gt;은 어떠했는가?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들과 싸워서 승리한 자들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영적인 장수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사사로서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를 말한다. 그리고 영적인 장수들의 최고로서 다윗왕을 언급한다. 이들은 오로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뒤 주변 이방 나라들에 의해 괴롭힘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구원한 자들이다. 특히 다윗은 선왕이었던 사울왕의 뒤를 이어 주변의 모든 민족을 평정하고 왕위에 오른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lt;strong&gt;둘째, 여인들의 삶&lt;/strong&gt;은 어떠했는가? 그리고 이어서 히브리서 기자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이들은 죽었지만 죽은 자를 도로 받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죽은 자를 다시 살려 주실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엘리야시대에 살았던 사렙다 과부다(왕상17:17~24). 그녀는 죽은 아들을 다시 돌려받았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엘리사시대에 살았던 수넴 여인이 있다(왕하4:14~37). 이 여인도 역시 늘그막에 아들을 얻었는데 그만 죽고 말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살려 주실 것을 믿어서 결국 죽은 아들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lt;strong&gt;셋째, 다른 이들의 삶&lt;/strong&gt;은 어떠했는가? 그리고 이어서 히브리서 기자는 더 뛰어난(우수한) 부활이 있다는 것을 믿었기에,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받았지만 구차히 자신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구하거나 석방을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던 지조 있는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꺼낸다. 이런 이들로는 유다 중후반기에 왕궁에서 활동했던 이사야 선지자가 있고, 유다 말기에 살았던 스가랴 선지자가 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lt;strong&gt;넷째, 딴 이들의 삶&lt;/strong&gt;은 어떠했는가?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이제 마지막으로 딴 이들을 소개한다. 한글 성경으로 보면, 36절 중간에도 &#039;어떤 이들&#039;이라고 번역하고 있고, 37절에서도 &#039;또 어떤 이들&#039;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헬라어 원문은 약간 다르다. 36절 중간에 나오는 &#039;어떤 이들&#039;은 다른(헬, 알로스) 이들이고, 37절에 나오는 &#039;또 어떤 이들&#039;은 딴(헬, 헤테로스)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36절까지 나오는 인물들은 구약의 사사들과 왕과 선지자들을 언급하는 것이지만, 37절부터 28절까지는 구약의 인물들이 아니라 신약의 인물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었으나 그것 때문에 고난받고 시련을 받았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체 어떤 어려움을 겪어야 했는가? 헬라어 원문으로 직역해 보면 이렇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히11:36~39 그런데 딴 이들은 조롱들(비웃음들)과 채찍질들의 시련을 받았다. 그런데 게다가 또한 결박들과 감옥의 [시련도 받았다]. 37 그들은 돌에 맞았다. 그들은 톱질을 당했다. 그들은 칼의 살해 안에서 죽었다. 그들은 양가죽들 안에서, 염소들의 가죽들 안에서 돌아다녔다. 궁핍해지고 있으면서, 욱여싸이고 있으면서, 학대를 당하면서. 38 세상은 이런 그이들보다 합당한 것으로 있지 않아왔다. 그들은 광야들로 인하여 방황하게 되고 있으면서 그리고 산들과 동굴들과 땅의 구멍들[로 인하여 방황하게 되고 있으면서]. 39 그러나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통하여 증거를 받은 후였지만 그들은 약속한 것을 돌려받지는 못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lt;strong&gt;5.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성경에 기록된 신앙의 인물들은 그냥 기록된 것이 아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지닌 자들이었고 또한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부딪히면서 살다간 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세상과 타협하지도 않았고 세상에 안주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했다. 때로는 그것이 그들에게 고통이었고 아픔이었고 냉대였지만 그들은 그것을 참아내었다. 때로는 수모를 당하고 멸시와 천대를 당했다. 그래도 참아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죽은 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죽으면서 자신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자식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너의 때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약속이 아들과 손자 때에서도 이뤄지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후손에게 물려주었다. 이것이 믿음이요 신앙인들의 삶이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하늘의 상을 준비해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구약시대인지라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힌 이방 나라들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는 일에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신약시대 이후부터는 더이상 이방 민족을 죽이는 일을 하지 말라 하시고 오직 영적인 세력들인 마귀와 귀신들과 뱀들과 싸우라고 하셨지만 구약시대는 달랐다. 아직 귀신들이 제대로 집단적으로 활동하던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약시대 이후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교훈을 안겨 준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을 미워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역사하는 귀신을 미워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과연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의 길을 우리도 걷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부터라도 다시 시작하라. 그것이 바로 히브리서의 기록 목적이니 말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2024년 07월 24일(수)&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정보배 목사&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수요기도회 #히브리서강해 #히브리서11장 #믿음의선배들 #신앙이야기 #신앙선배들의3가지특징 #믿음 #약속의말씀 #고난 #인내 #승리&lt;/p&gt; &lt;p&gt; &lt;/p&gt; &lt;p&gt; &lt;/p&gt;</description>
		<category>58.히브리서강해(20강)</category>		<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category>수요기도회</category><category>히브리서강해</category><category>히브리서11장</category><category>믿음의선배들</category><category>신앙이야기</category><category>신앙선배들의3가지특징</category><category>믿음</category><category>약속의말씀</category><category>고난</category><category>인내</category><category>승리</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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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히브리서강해(15)]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 이야기(5) - 사사들, 다윗과 사무엘 그리고 선지자들(히11:32~40)_2024-07-10(수)</title>
			<link>https://dongtanms.kr/hebrews/154860</link>
				<description>&lt;p&gt;2024-07-10(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 #c0392b;&quot;&gt;&lt;strong&gt;[히브리서강해(15)]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 이야기(5) - 사사들, 다윗과 사무엘 그리고 선지자들(히11:32~40)&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pDSDYwJjego&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pDSDYwJjego&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980b9; font-size: 18px;&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 &lt;/span&gt; 멀고도 험하지만 영광이 예비된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할 오늘 우리들에게 히브리서 11장은 매우 유익하다. 이들에 관한 살아있는 기록들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를 미리 보여주고 그들이 받아누린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앙의 선배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이미 걸어갔던 길을 자세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이미 걸어갔던 길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길이 우리의 길이, 그들의 길이 우리의 신앙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놀라운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 처음에는 누구도 걸어가보지 못했던 길을 걸어갔다. 그러나 그들이 걸어간 그 길 끝에는 하늘에서의 영광스런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마침내 천성에 이르러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우리도 장차 주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에 상받기를 원하다면 이러한 신앙선배들의 삶은 많은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의 선배들은 과연 어떤 길을 걸어갔는가? 그리고 그들은 과연 어떻게 그 험하고 어려운 길을 걸어간 것일까? 이긴 자로서 그들이 가진 신앙의 특징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복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우리도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대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980b9; font-size: 18px;&quot;&gt;&lt;strong&gt;2. 히브리서 11장은 어떤 장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히브리서 11장은 일명 &#039;믿음장&#039;이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 이야기가 빼곡히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의 말씀을 통하여, 믿음이란 무엇인지 그 정의를 살펴볼 수 있으며, 믿음의 길을 걸어간 여러 신앙인들의 삶을 엿볼 수가 있다. 그래서 내가 걸어가야 할 믿음의 길이 어떤 길인지를 미리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걸어갔던 믿음의 길에 주님이 준비해주신 상이 어떤 것인지를 통해 우리도 믿음으로 하늘의 상을 소망하며 살아가게 할 것이다. 특히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의 말씀을 통하여 여기에 이름이 기록된 16명의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039;믿음으로&#039; 그 길을 걸어갔었는지를 만나게 된다. &lt;/p&gt; &lt;p&gt; 그렇다면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을 과연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quot;믿음이란 소망되어지고 있는 것들의 본바탕이요 보여지지 않고 있는 것들의 사실들&quot;이라고 정의하고 있다(히11:1).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믿음을 가지려면은 2가지를 기본적인 요소로 가져야 함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찾고 있는 자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히11:6).&lt;/p&gt; &lt;p&gt; 한편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믿음의 인물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누가 과연 구약시대에 주인공이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하늘에 올라가서 이들을 보고 온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발견할 수 없는 놀라운 영적인 진리들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들의 이름들 속에 들어 있다. 그렇다면 바울이 언급했던 믿음의 사람들의 이름들에는 누가 포함되어 있었는가? 거기에는 아벨과 에녹과 노아이 있으며,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있다. 그리고 모세와 기생라합이 있으며, 기드온과 바락과 삼손과 입다가 있고, 다윗과 사무엘이 들어 있다. 이 외에도 믿음의 인물들이 나오고 있지만 그 이름은 거론되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러한 인물들로는 모세의 부모, 여호수아, 여러 선지자들이다. &lt;/p&gt; &lt;p&gt; &lt;/p&gt; &lt;h3 class=&quot;&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b&gt;3.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 이야기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lt;/b&gt;&lt;/span&gt;&lt;/h3&gt; &lt;p&gt;&lt;span&gt; 그렇다면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선배들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그것은 크게 네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lt;/span&gt;&lt;span&gt; 이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 속에서 믿음의 계보가 어떻게 이어졌으며 또한 발전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구분점이 된다.&lt;/span&gt;&lt;/p&gt; &lt;p&gt;&lt;strong&gt; 첫째, &lt;/strong&gt;&lt;b class=&quot;&quot;&gt;아브라함 이전의 믿음의 선배들(히 11:4-7)이 있다.&lt;/b&gt;&lt;span&gt; 이 시대에는 아벨,&lt;/span&gt;&lt;span&gt; 에녹,&lt;/span&gt;&lt;span&gt; 노아와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lt;/span&gt;&lt;span&gt; 이들은 족장 시대가 시작되기 전의 인물들로서 노아 홍수 이전에 살았던 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lt;/span&gt;&lt;span&gt;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서 구원받고 영광스런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lt;/span&gt;&lt;span&gt; 그들의 믿음은 단순한 마음의 동의가 아니라,&lt;/span&gt;&lt;span&gt; 구체적인 행함과 순종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gt;&lt;b class=&quot;&quot;&gt; 둘째, 족장 시대의 믿음의 선배들(히 11:8-22)이 있다.&lt;/b&gt;&lt;span&gt; 여기에는 아브라함,&lt;/span&gt;&lt;span&gt; 이삭,&lt;/span&gt;&lt;span&gt; 야곱,&lt;/span&gt;&lt;span&gt; 요셉이 들어 있다. 이들은 그 시대에 살았던 대표적인 믿음의 거장들이다.&lt;/span&gt;&lt;span&gt;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었으며,&lt;/span&gt;&lt;span&gt;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며 살았다. 그리고 비록 &lt;!--StartFragment--&gt;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았지만 &lt;!--EndFragment--&gt;&lt;/span&gt;&lt;span&gt;영원한 본향을 향한 소망으로 살았던 인물들이다. 또한 이&lt;/span&gt;&lt;span&gt;들의 믿음은 한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영적 유산이 되었다.&lt;/span&gt;&lt;/p&gt; &lt;p&gt;&lt;b class=&quot;&quot;&gt; 셋째, 모세부터 가나안 입성까지의 믿음의 선배들(히 11:23-31)이 있다.&lt;/b&gt;&lt;span&gt; 이들은 바로 모세의 부모,&lt;/span&gt;&lt;span&gt; 모세 자신,&lt;/span&gt;&lt;span&gt; 여호수아,&lt;/span&gt;&lt;span&gt; 기생 라합 등이 그 시대의 산 믿음의 증인들이다.&lt;/span&gt;&lt;span&gt; 이들은 애굽왕 바로의 위협 속에서도&lt;/span&gt;&lt;span&gt; 그리고 광야의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lt;/span&gt;&lt;span&gt;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 앞에서도&lt;/span&gt;&lt;span&gt; 그리고 멸망의 운명 앞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순종하여 기적을 체험하고 구원을 받고 상을 받은 자들이다.&lt;/span&gt;&lt;/p&gt; &lt;p&gt;&lt;b class=&quot;&quot;&gt; 넷째, 사사 시대 이후의 믿음의 선배들(히 11:32-40)이 있다.&lt;/b&gt;&lt;span&gt; 이 시대에는 사사들(기드온,&lt;/span&gt;&lt;span&gt; 바락,&lt;/span&gt;&lt;span&gt; 삼손,&lt;/span&gt;&lt;span&gt; 입다)이 그 이름을 남겼고,&lt;/span&gt;&lt;span&gt; 다윗과&lt;/span&gt;&lt;span&gt; 사무엘이 그 이름을 남겼다. 하지만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lt;/span&gt;&lt;span&gt;수많은 선지자들도 여기에 등장한다.&lt;/span&gt;&lt;span&gt;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전쟁에나가 승리하기도 하였고,&lt;/span&gt;&lt;span&gt;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 죽음까지 불사했던 자들이다.&lt;/span&gt;&lt;span&gt; 이들의 삶은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됨되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h3 class=&quot;&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b&gt;4.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 이야기가 들려주고 있는 24장로들에 대한 하늘의 비밀은 무엇인가?&lt;/b&gt;&lt;/span&gt;&lt;/h3&gt; &lt;p&gt; 그런데 이러한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 이야기는 놀라운 하늘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의 선배들로 언급된 사람들 중에,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24장로들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039;장로들&#039;이란 말이 한글성경에는 안 나온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을 보면 다르다. 한글로서는 &#039;선진들&#039;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있는데, 이것을 헬라어로 보면, &#039;프레스비테로스&#039;라는 단어로서, 한글로는 &#039;장로&#039;라고 번역되어야 할 단어였다. 하지만 천국의 실상을 정확히 몰랐던 당시 한글 성경번역자들은 24장로들이 있는데도, 그냥 믿음의 &#039;선진들&#039;이라고 번역해버리고 말았있다. 하지만 실제는 놀랍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되고 있는 16명의 사람들 가운데, 11명이 24장로들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지자들로 언급된 사람들 4명까지 다 포함하면, 15명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 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서신서인가!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선배들은 단지 과거의 인물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lt;/span&gt;&lt;span&gt; 그들은 장차 우리가 천국에서 만나게 될 &lt;/span&gt;&lt;b class=&quot;&quot;&gt;24장로들이 된 영광스러운 자들&lt;/b&gt;&lt;span&gt;이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gt;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 24장로들이 앉아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계 4:&lt;/span&gt;&lt;span&gt;4,&lt;/span&gt;&lt;span&gt; 10-11,&lt;/span&gt;&lt;span&gt; 5:&lt;/span&gt;&lt;span&gt;8-10).&lt;/span&gt;&lt;span&gt; 그럼, 누가 24장로들인가? 그것은 천국에서 24장로들은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하나님께 가장 충성하고 믿음으로 승리한 자들의 대표라는 것이다. 그리고 &lt;/span&gt;&lt;span&gt;하늘의 상급과 지위에 있어서 정점에 오른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lt;/span&gt;&lt;!--EndFragment--&gt;&lt;/p&gt; &lt;p&gt; 사실 24장로들은 요한계시록에서 비로소 언급되기 시작한다. A.D.95년경 어느날 사도 요한은 성령에 이끌어서 천국에 불려 올라간다. 그때에 그는 3층천에서 진행되는 예배의 광경을 보게 된다. 그때였다. 하나 밖에 없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24장로들이 자신의 금면류관을 벗어서 주님께 드리면서 경배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그러므로 적어도 사도 요한은 24장로에 포함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lt;/p&gt; &lt;p&gt; 그렇다면 대체 24장로들은 누군가? 정확한 것은 사실 잘 모른다. 보고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그들이 누군지가 잘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적인 수준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24장로들이 어떤 모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약성경의 기록과 함께 히브리서 11장의 말씀을 연결해서 보면, 그리고 지금 천상에서 예배드리는 장면을 눈으로 보고 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누가 장로들인지를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럼,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누가 장로들인가? 그들로는 아벨과 에녹과 노아가 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있으며, 모세와 사무엘과 다윗이 있다. 그리고 이름은 거론되지 아니한 선지자들로는 아마도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lt;/p&gt; &lt;p&gt;&lt;span&gt; 이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 이야기는 &lt;/span&gt;&lt;b class=&quot;&quot;&gt;단순히 구원을 얻는 것을 넘어, 천국에서 더 높은 지위와 영광을 얻기 위한 조건&lt;/b&gt;&lt;span&gt;을 우리에게 제시한다.&lt;/span&gt;&lt;span&gt; 그들은 이 땅에서 고난과 시련을 인내하고,&lt;/span&gt;&lt;span&gt;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lt;/span&gt;&lt;span&gt; 세상의 유혹을 물리쳐 승리함으로써 하늘에 영원한 기업과 면류관을 쌓아둔 인물들이다.&lt;/span&gt;&lt;span&gt; 우리 또한 그들처럼 살아있는 믿음으로 이 땅을 살아갈 때,&lt;/span&gt;&lt;span&gt; 장차 새 예루살렘 성에서 24장로와 같은 영광스러운 신분으로 하나님을 영원히 예배하고 다스리는 특권을 누리게 될 것이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h3 class=&quot;&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b&gt;5. 믿음의 선배들이 가진 신앙의 특징은 무엇인가?&lt;/b&gt;&lt;/span&gt;&lt;/h3&gt; &lt;p&gt;&lt;span&gt;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배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이들은 각 시대별로 독특한 상황 속에서 믿음을 지켜낸 인물들이었지만,&lt;/span&gt;&lt;span&gt; 그들의 신앙에는 다음과 같은 4가지 공통된 특징들이 있다.&lt;/span&gt;&lt;/p&gt; &lt;p&gt;&lt;strong&gt; 첫째, &lt;/strong&gt;&lt;b class=&quot;&quot;&gt;아브라함 이전의 믿음의 선배들 곧&lt;/b&gt;&lt;span&gt; 아벨,&lt;/span&gt;&lt;span&gt; 에녹,&lt;/span&gt;&lt;span&gt; 노아의 믿음의 특징은 ‘행함으로 증명된 믿음’이었다는 것이다.&lt;/span&gt;&lt;span&gt; 아벨은 ‘더 나은 제사’를 드렸고(히 11:&lt;/span&gt;&lt;span&gt;4),&lt;/span&gt;&lt;span&gt;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동행했으며(히 11:&lt;/span&gt;&lt;span&gt;5),&lt;/span&gt;&lt;span&gt; 노아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경고를 받고 방주를 준비하는 구체적인 순종’을 보였다(히 11:&lt;/span&gt;&lt;span&gt;7).&lt;/span&gt;&lt;span&gt; 이들의 믿음은 단순히 마음의 동의에 그친 것이 아니었으며,&lt;/span&gt;&lt;span&gt; 그들의 삶에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났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b class=&quot;&quot;&gt; 둘째, 족장 시대의 믿음의 선배들 곧 &lt;/b&gt;&lt;span&gt;아브라함,&lt;/span&gt;&lt;span&gt; 이삭,&lt;/span&gt;&lt;span&gt; 야곱,&lt;/span&gt;&lt;span&gt; 요셉의 믿음의 특징은 ‘영원한 본향을 소망하는 나그네의 믿음’이었다는 것이다.&lt;/span&gt;&lt;span&gt;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지만(히 11:&lt;/span&gt;&lt;span&gt;8), 장막에 거주하면서 ‘하나님이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던 인물이었다’(히 11:&lt;/span&gt;&lt;span&gt;10).&lt;/span&gt;&lt;span&gt; 그리고 이삭과 야곱도 역시 약속을 받아 나그네로 살았으며(히 11:&lt;/span&gt;&lt;span&gt;9),&lt;/span&gt;&lt;span&gt; 요셉은 죽으면서도 자신의 뼈를 가나안에 묻어달라고 유언함으로써(히 11:&lt;/span&gt;&lt;span&gt;22),&lt;/span&gt;&lt;span&gt; 이 땅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영원한 본향과 부활을 바라본 믿음을 보여준 인물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b class=&quot;&quot;&gt; 셋째, 모세부터 가나안 입성까지의 믿음의 선배들 곧&lt;/b&gt;&lt;span&gt; 모세의 부모,&lt;/span&gt;&lt;span&gt; 모세,&lt;/span&gt;&lt;span&gt; 여호수아,&lt;/span&gt;&lt;span&gt; 기생 라합의 믿음의 특징은 ‘세상의 권세와 불가능을 이기는 순종의 믿음’이었다는 것이다.&lt;/span&gt;&lt;span&gt; 모세의 부모는 바로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고 모세를 숨겨주었으며(히 11:&lt;/span&gt;&lt;span&gt;23),&lt;/span&gt;&lt;span&gt; 모세는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바로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믿음으로 홍해를 건넌 인물이었다(히 11:&lt;/span&gt;&lt;span&gt;24-29).&lt;/span&gt;&lt;span&gt; 그리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으며(히 11:&lt;/span&gt;&lt;span&gt;30),&lt;/span&gt;&lt;span&gt; 기생 라합은 자신의 적인 정탐꾼들을 숨겨주는 믿음을 실천하므로, 행함으로 구원을 받았다(히 11:&lt;/span&gt;&lt;span&gt;31).&lt;/span&gt;&lt;span&gt; 이들은 눈앞의 현실과 세상의 권세보다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더 크게 믿고 순종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b class=&quot;&quot;&gt; 넷째, 사사 시대 이후의 믿음의 선배들 곧 &lt;/b&gt;&lt;span&gt;사사들(기드온,&lt;/span&gt;&lt;span&gt; 바락,&lt;/span&gt;&lt;span&gt; 삼손,&lt;/span&gt;&lt;span&gt; 입다) 및 &lt;/span&gt;&lt;span&gt;다윗과&lt;/span&gt;&lt;span&gt; 사무엘&lt;/span&gt;&lt;span&gt; 그리고 수많은 선지자들의 믿음은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인내로 승리한 믿음’이었다는 것이다.&lt;/span&gt;&lt;span&gt; 이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였으며,&lt;/span&gt;&lt;span&gt; 죽은 자를 다시 살리기도 했고,&lt;/span&gt;&lt;span&gt; 사자의 입을 막고 맹렬한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였다(히 11:&lt;/span&gt;&lt;span&gt;33-35).&lt;/span&gt;&lt;span&gt; 그러나 동시에 칼에 죽임을 당하였고,&lt;/span&gt;&lt;span&gt; 톱으로 켜 죽임을 당하였으며,&lt;/span&gt;&lt;span&gt; 돌로 치는 것과 시험과 굶주림과 환난과 학대를 받는 등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고난을 겪기도 하였다(히 11:&lt;/span&gt;&lt;span&gt;37-38).&lt;/span&gt;&lt;span&gt;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인내로 견뎌내며 믿음을 지켜내었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h3 class=&quot;&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b&gt;6.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교훈은 무엇인가?&lt;/b&gt;&lt;/span&gt;&lt;/h3&gt; &lt;p&gt;&lt;span&gt;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이 증언하는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강력한 도전이 아니 될 수 없으며,&lt;/span&gt;&lt;span&gt;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잘 모르는 우리들에게 강력한 영적 나침반이 되는 것이다.&lt;/span&gt;&lt;span&gt; 그렇다면 믿음의 선배들의 삶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lt;/span&gt;&lt;/p&gt; &lt;p&gt;&lt;span&gt; 첫째,&lt;/span&gt;&lt;span&gt; &lt;/span&gt;&lt;b class=&quot;&quot;&gt;믿음은 단순한 지적인 동의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확신하고 순종하며 행하는 삶의 결단&lt;/b&gt;&lt;span&gt;이라는 것이다.&lt;/span&gt;&lt;span&gt;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영원한 상급을 가장 확실한 실체로 믿는 믿음은,&lt;/span&gt;&lt;span&gt; 반드시 내 삶을 통해 구체적인 행함과 순종의 열매로 나타나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gt; 둘째,&lt;/span&gt;&lt;span&gt; &lt;/span&gt;&lt;b class=&quot;&quot;&gt;우리는 이 땅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영원한 본향, 즉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실 새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lt;/b&gt;&lt;span&gt; 사실 이 땅에서 겪는 모든 고난과 시련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비하면 지극히 작은 것이다.&lt;/span&gt;&lt;span&gt; 영원한 것을 소망하며 살 때,&lt;/span&gt;&lt;span&gt; 우리는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gt; 셋째,&lt;/span&gt;&lt;span&gt; &lt;/span&gt;&lt;b class=&quot;&quot;&gt;세상의 권세와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붙들고 순종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lt;/b&gt;&lt;span&gt; 모세와 여호수아가 그러했듯이,&lt;/span&gt;&lt;span&gt; 우리가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도 기적을 베풀어주시며,&lt;/span&gt;&lt;span&gt;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주시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gt; 넷째,&lt;/span&gt;&lt;span&gt; &lt;/span&gt;&lt;b class=&quot;&quot;&gt;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인내로 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lt;/b&gt;&lt;span&gt; 믿음의 선배들은 사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엄청난 고난을 겪었다. 마찬가지로&lt;/span&gt;&lt;span&gt; 우리들도 또한 이 땅에서 많은 환난을 겪을 수 있다.&lt;/span&gt;&lt;span&gt;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인내로 견뎌낼 때,&lt;/span&gt;&lt;span&gt; 비로소 우리의 믿음은 온전하게 될 것이고,&lt;/span&gt;&lt;span&gt; 하늘의 영원한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h3 class=&quot;&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b&gt;7. 나오며: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여 영원한 기업을 얻으라&lt;/b&gt;&lt;/span&gt;&lt;/h3&gt; &lt;p&gt;&lt;span&gt;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lt;/span&gt;&lt;span&gt;믿음의 조상들은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 그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결코 신앙과 타협하지 않았다.&lt;/span&gt;&lt;span&gt; 그리고 그들은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고 앞으로 나아갔다.&lt;/span&gt;&lt;span&gt; 그리고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결코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자기 앞에 주어진 시련들을 이겨내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 속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영광과 돌아갈 본향이 있었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gt; 그러므로 그들은 진정 고난의 길을, 십자가의 길을 담대히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gt; 그러므로 이러한 믿음의 선배들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강력한 도전이 되지 아니할 수가 없다.&lt;/span&gt;&lt;span&gt; 우리도 비록 이 땅에서 나그네로서 살아가고 있지만,&lt;/span&gt;&lt;span&gt; 우리도 역시 저 하늘에 준비된 영원한 본향,&lt;/span&gt;&lt;span&gt;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한 믿음의 경주를 지금도 계속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gt; 그러나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결코 녹록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우리와 성정이 같은 믿음의 선배들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신앙의 기록이 이미 우리 손에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의 선배들 중에는 이미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영광의 자리 곧 24장로의 자리에 앉은 자들도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남은 자리가 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빨리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해야 한다. 그것의 시작은 바로 회개하는 일이다. 회개할 때에 비로소 우리의 앞 길을 막고 있는 악한 영들이 떠나가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주하는 능력이 배가 될 것이다.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를 붙들어주고 계신다. 그러므로 무엇이 두려운가? 지금도 우리에게는 주님이 저 하늘에서 예비해두신 아름다운 지위와 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lt;/span&gt;&lt;span&gt; &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2024년 07월 10일(수)&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 &lt;/p&gt; &lt;p&gt;#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수요기도회 #히브리서강해 #히브리서11장 #믿음장 #믿음의선배들 #신앙이야기 #24장로 #사사들 #다윗 #사무엘 #선지자들 #믿음 #순종 #고난 #인내 #영원한본향 #상급 #믿음의경주&lt;/p&gt; &lt;p&gt; &lt;/p&gt;</description>
		<category>58.히브리서강해(20강)</category>		<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category>수요기도회</category><category>히브리서강해</category><category>히브리서11장</category><category>믿음장</category><category>믿음의선배들</category><category>신앙이야기</category><category>24장로</category><category>사사들</category><category>다윗</category><category>사무엘</category><category>선지자들</category><category>믿음</category><category>순종</category><category>고난</category><category>인내</category><category>영원한본향</category><category>상급</category><category>믿음의경주</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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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히브리서강해(14)]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 이야기(4) - 모세 여호수아 기생라합(히11:23~31)_2024-07-03(수)</title>
			<link>https://dongtanms.kr/hebrews/154862</link>
				<description>&lt;p&gt;2024-07-03(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 #c0392b;&quot;&gt;&lt;strong&gt;[히브리서강해(14)]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 이야기(4) - 모세 여호수아 기생라합(히11:23~31)&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QBvDHdy0PK8&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QBvDHdy0PK8&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 &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h3&gt;&lt;b&gt;1. 들어가며: 믿음의 전당에 오른 인물들의 이야기&lt;/b&gt;&lt;/h3&gt; &lt;p&gt;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특히 이번 시간에 다룰 인물들 중에는 모든 것을 가졌으나 오직 하나님과의 그분의 백성을 위하여 모든 것을 내려놓은 한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항상 2인자 같았으나 자기에게 기회가 주어질 때에 그간 그가 배우고 훈련했던 모든 것을 여실히 보여준 인물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사람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으나 신앙의 결단으로 모든 것을 갖게 된 한 여인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이렇듯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인물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믿음이 무엇이고 고난이 무엇이며 영광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준다.&lt;/p&gt; &lt;p&gt; 앞으로 누가 과연 ‘믿음의 전당’에 자신의 이름을 기록할 수 있을까? 히브리서 기자는 당시 로마의 극심한 박해 속에서 배교의 유혹에 흔들리던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쓰면서, 눈에 보이는 현실의 고난을 뛰어넘어 보이지 않는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았던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다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단순한 과거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믿음이란 무엇이며, 그 믿음이 어떻게 세상을 이기는 능력으로 나타나는지까지 생생한 증언해 준다.&lt;/p&gt; &lt;p&gt; 그래서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아벨, 에녹, 노아와 같은 노아홍수 이전의 사람들 그리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과 같은 족장들의 믿음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그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와 그의 후계자로서의 여호수아, 그리고 이방 여인이었던 기생 라합의 믿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들의 믿음을 통해 과연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된 믿음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모세의 이야기는 그의 부모에게서부터 시작된다. 과연 모세의 부모는 어떻게 애굽왕 바로의 명령을 어기고 아기를 살릴 수 있었는가? 그리고 모세가 모든 것을 버리고 행한 위대한 네 가지 믿음의 결단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철옹성 같던 여리고는 어떻게 무너졌으며, 멸망 받아 마땅했던 기생 라합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고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회복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 &lt;/p&gt; &lt;h3&gt;&lt;b&gt;2. 히브리서 11장은 왜 쓰여지게 되었는가?&lt;/b&gt;&lt;/h3&gt; &lt;p&gt; 히브리서 11장은 히브리서 10장 끝부분의 엄중한 경고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10장 26절 이하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고도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는 자들에게는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이러한 경고 앞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들이 믿음을 잃지 않고 끝까지 인내로 달려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11장을 할애하여 기록한 것이다.&lt;/p&gt; &lt;p&gt; 이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시대에 교회가 잃어버린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관한 물음이다. 과연 한 번 구원 받으면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는 구원을 얻은 것인가? 우리가 가진 믿음은 깨지지 않을 불변의 믿음인가 아니면 고난과 핍박을 견뎌가며 보존해야 할 믿음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단연코 말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얻은 구원은 단순히 ‘한 번 믿었으니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다’는 안일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한 믿음이라도 얼마든지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배도하면서 역시 믿음에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그토록 신앙에 열심을 내던 그들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lt;/p&gt; &lt;p&gt; 그러므로 믿음은 한 번 믿어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닐 수 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지금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이더라도 그 약속을 확신하며,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순종하며 행하는 살아있는 믿음을 소유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우리의 구원의 여정도 믿음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이 행함으로 온전하게 되어야 완성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lt;/p&gt; &lt;p&gt; &lt;/p&gt; &lt;h3&gt;&lt;b&gt;3. 모세의 부모는 어떻게 죽게 될 운명에 처한 모세를 살릴 수 있었는가?&lt;/b&gt;&lt;/h3&gt; &lt;p&gt; 모세가 태어날 당시 애굽 왕 바로는 히브리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는 잔혹한 명령을 내렸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말살하려는 사탄의 계략이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는 이 죽음의 위협 앞에서 놀라운 믿음의 결단을 내린다.&lt;/p&gt; &lt;blockquote&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히 11: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lt;/span&gt;&lt;/p&gt; &lt;/blockquote&gt; &lt;p&gt; 그들은 아기 모세가 ‘아름다운 아이&#039;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를 숨겼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말은 단순히 외모가 잘 생겼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에 대해 사도행전 7장 20절에서는 이때 모세의 용모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웠다”고 증언한다. 즉, 모세의 부모는 갓 태어난 아기를 통해 장차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섭리를 영적인 눈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눈앞의 바로 왕의 명령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더 크게 본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석 달 동안 아기를 숨길 수 있었고, 결국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띄워 보냄으로써 그 아이를 살려낸다. 이 사건은 믿음이란, 세상의 권력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용기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lt;/p&gt; &lt;p&gt; &lt;/p&gt; &lt;h3&gt;&lt;b&gt;4. 모세가 행한 믿음의 4가지 행동은 무엇이었는가?&lt;/b&gt;&lt;/h3&gt; &lt;p&gt; 모세는 장성하여 애굽의 왕자라는 영광스러운 지위를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길을 선택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의 위대한 생애를 네 가지 결정적인 믿음의 행동으로 요약해서 알려준다.&lt;/p&gt; &lt;p&gt;&lt;b&gt; 첫째, 모세는 믿음으로 왕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였다는 것이다(히 11:24).&lt;/b&gt; 40세가 된 모세는 애굽의 왕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우선순위에 있었다. 그러자 그는 모든 부귀영화를 스스로 포기한다. 이는 세상의 썩어질 영광보다 하늘의 영원한 가치를 그가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선택한 이러한 위대한 결단이 이스라엘을 출애굽으로 이끌었던 것이다.&lt;/p&gt; &lt;p&gt;&lt;b&gt; 둘째, 모세는 믿음으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시켰다(히 11:27)는 것이다.&lt;/b&gt;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주님으로부터 받았다. 그러자 그는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애굽의 왕 바로 앞으로 갔다. 그리고 그의 진노를 무서워하지 않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다. 이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믿음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권세보다, 보이지 않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는 믿음이었던 것이다.&lt;/p&gt; &lt;p&gt;&lt;b&gt; 셋째, 모세는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행하였다(히 11:28)는 것이다.&lt;/b&gt; 애굽에 장자죽음의 마지막 재앙이 내리기 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면 그 집안에 있는 장자와 짐승의 첫것이 살고 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애굽 경내에 있는 모든 히브리인들의 집의 좌우인방과 문설주에는 그날 밤 어린양의 피가 발라졌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어린양의 피는 무엇을 예표하는가? 그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예표한다. 당시 이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이 죽음의 재앙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듯이 오늘날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그때 모세는 이 예식을 행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를 구원했던 것이다.&lt;/p&gt; &lt;p&gt;&lt;b&gt; 넷째, 모세는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다(히 11:29)는 것이다.&lt;/b&gt;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힌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모세는 믿음으로 지팡이를 들어 바다를 향해 내밀었고, 하나님께서는 밤새도록 동풍을 불게 하여 바다를 갈라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셨다. 이는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이 어떤 기적을 만들어내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처럼 모세의 삶 전체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버리며,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가능한 명령에 순종하는 살아있는 믿음의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lt;/p&gt; &lt;p&gt; &lt;/p&gt; &lt;h3&gt;&lt;b&gt;5. 여리고성은 과연 어떻게 무너졌는가?&lt;/b&gt;&lt;/h3&gt; &lt;p&gt;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는 어떠한 믿음의 소유자였는가? 그는 이스라엘이 강력한 영도자였던 모세의 뒤를 이은 자였기에 두렵고 떨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했던 것처럼 여호수아에게도 함께 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에게 주어진 과업들은 실로 엄청났다. 특히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처음으로 정복해야 할 여리고 성은 철옹성과 같은 존재였다. 왜냐하면 강력한 이중벽으로 둘러쌓인 여리고 성은 인간의 힘과 전략으로는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는 성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말씀을 믿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제시한 방법은 그 성을 정복할 수 있는 군사전략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이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엿새 동안 매일 성 주위를 한 바퀴씩 돌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돈 후에 모든 백성이 함께 함성을 지르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니 어떻게 되었는가?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말았다. &lt;/p&gt; &lt;blockquote class=&quot;&quot;&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히 11: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lt;/span&gt;&lt;/p&gt; &lt;/blockquote&gt; &lt;p&gt; 그러므로 그날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은 이스라엘의 군사력 때문이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어ㅏ쩌면 황당해 보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lt;b&gt;‘믿음과 순종’&lt;/b&gt; 때문이었다. 그들은 7일 동안 성을 돌며 조롱과 비웃음을 견뎌냈고, 마지막 날 믿음으로 함성을 질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친히 그 견고한 성벽을 무너뜨리셨다. 왜냐하면 날마다 성을 돌면 돌수록 겹겹히 천사들이 와서 그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에워쌓기 때문이다. 고로 이 사건은 영적 전쟁의 승리가 우리의 전략이나 능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에 달려있다는 사실 보여준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수종드는 천사들을 시켜서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군대장관이 여리고성에 미리 파견된 것이다(수 5:13~16).&lt;/p&gt; &lt;p&gt; &lt;/p&gt; &lt;h3&gt;&lt;b&gt;6.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어떻게 죽지 않고 가족들까지 구원할 수 있었는가?&lt;/b&gt;&lt;/h3&gt; &lt;p&gt; 여리고 성에 살고 있던 기생 라합은 멸망 받아 마땅한 가나안 족속의 이방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히브리서 11장의 위대한 믿음의 인물들 가운데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더불어 유이(&lt;!--StartFragment--&gt;&lt;span&gt;唯&lt;/span&gt;&lt;!--EndFragment--&gt;&lt;!--StartFragment--&gt;&lt;span&gt;二)&lt;/span&gt;&lt;!--EndFragment--&gt;하게 이름을 올린 여성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과연 믿음의 조상들의 반열에 그녀의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녀의 믿음 때문이었다. &lt;/p&gt; &lt;blockquote class=&quot;&quot;&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히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lt;/span&gt;&lt;/p&gt; &lt;/blockquote&gt; &lt;p&gt; 기생 라합은 비록 가나안 땅에서 여관집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세상 정세에 아주 밝은 여인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어떤 일을 해 오셨는지를 나그네들을 통하여 전해 들었다. 그때에 비로소 그녀는 깨닫는다. 상천하지에 유일하신 하나님인 오직 여호와 하나님 뿐이라고 말이다(수 2:9-11). 그러기에 당시 여리고 성이 비상상황으로 살벌한 가운데 있었지만 그녀는 그녀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잘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들을 숨겨주기로 결단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무사히 탈출시키는 ‘행함’있는 믿음으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였다. 그녀는 멸망할 여리고 성과 운명을 같이하는 대신,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 편에 서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이 믿음의 행위 하나가, 그녀 자신뿐만 아니라 그녀의 온 가족을 진멸의 심판에서 구원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야고보서 기자는 바로 이 라합의 행위를 들어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임을 논증하기도 하였다(약 2:25). 고로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의 신분이나 과거가 어떠하든지, 살아있는 믿음과 순종의 행함이 있다면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놀라운 복음의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다.&lt;/p&gt; &lt;p&gt; &lt;/p&gt; &lt;h3&gt;&lt;b&gt;7. 나오며&lt;/b&gt;&lt;/h3&gt; &lt;p&gt; 이번 시간에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모세와 여호수아, 그리고 기생 라합의 삶을 통해 참된 믿음의 본질과 그 살아있는 증거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모세의 부모는 보이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그 아이에 있음을 믿었기에 바로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아이를 죽이지 않고 살렸다. 그리고 모세는 세상의 영광보다는 하나님 백성과 고난받는 것을 택하였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기적을 일구어내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비상식적인 명령에 순종하여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으며, 기생 라합은 자신의 목숨을 건 행함으로 믿음을 증명하여 자신도 구원받고 가족들까지 구원할 수 있었다. 고로 이들의 삶은 한결같이 증언한다. 믿음이란 단순히 마음으로 믿는 지적인 동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현실보다 더 확실하게 붙들고, 그 약속에 따라 순종하며 행동하는 삶의 결단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처럼 내가 진정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행함으로 그 열매를 맺게 되어 있는 것이다.&lt;/p&gt; &lt;blockquote class=&quot;&quot;&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lt;/span&gt;&lt;/p&gt; &lt;/blockquote&gt; &lt;p&gt; 이제 우리도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지금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역시 우리 앞에 놓인 모든 죄의 유혹들을 벗어던지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해야 한다. 그리하여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으며, 영원한 기업인 새 예루살렘 성에서 영광스러운 지위를 상속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lt;/p&gt; &lt;p&gt; &lt;/p&gt; &lt;hr&gt; &lt;p&gt;&lt;b&gt;[설교요약]&lt;/b&gt; 본 설교는 히브리서 11장 23-31절을 통해 모세, 여호수아, 기생 라합의 삶에 나타난 ‘행함이 있는 믿음’의 본질을 다룬다. 히브리서 11장은 박해받는 성도들에게 믿음을 잃지 않고 인내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첫째,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의 계획을 믿었기에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고 모세를 살렸다(히 11:23). 둘째, 모세는 애굽의 왕자 지위를 거절하고, 백성을 탈출시키며, 유월절 예식을 행하고, 홍해를 건너는 네 가지 위대한 순종의 행동으로 믿음을 증명했다. 셋째,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아닌, 비상식적인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과 믿음으로 무너졌다(히 11:30). 넷째, 이방 여인 라합은 정탐꾼을 숨겨주는 목숨을 건 행함으로 믿음을 증명하여 자신과 가족을 구원했다(히 11:31). 이들의 삶은 참된 믿음이 반드시 순종과 행함으로 나타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영원한 본향을 향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해야 함을 교훈한다(히 12:1). &lt;/p&gt; &lt;p&gt; &lt;/p&gt; &lt;p&gt;2024년 07월 03일(수)&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 &lt;/p&gt; &lt;p&gt;#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수요기도회 #히브리서강해 #히브리서11장 #믿음의선배들 #믿음의전당 #모세 #여호수아 #기생라합 #믿음 #순종 #행함있는믿음 #믿음의결단 #여리고성 #구원 #믿음의경주&lt;/p&gt; &lt;p&gt; &lt;/p&gt; &lt;p&gt; &lt;/p&gt;</description>
		<category>58.히브리서강해(20강)</category>		<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category>수요기도회</category><category>히브리서강해</category><category>히브리서11장</category><category>믿음의선배들</category><category>믿음의전당</category><category>모세</category><category>여호수아</category><category>기생라합</category><category>믿음</category><category>순종</category><category>행함있는믿음</category><category>믿음의결단</category><category>여리고성</category><category>구원</category><category>믿음의경주</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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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히브리서강해(13)]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 이야기(3) -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히11:1~22)2024-06-26(수)</title>
			<link>https://dongtanms.kr/hebrews/154864</link>
				<description>&lt;p&gt;2024-06-26(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 #c0392b;&quot;&gt;&lt;strong&gt;[히브리서강해(13)]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 이야기(3) -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히11:1~22)&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tYmtEVOnHV8&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tYmtEVOnHV8&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 &lt;!--StartFragment--&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8px;&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히브리서는 정말 놀라운 책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서신서들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1장부터 놀랍다. 천사들의 이야기를 끌어온다. 그래서 천사와 예수님을 비교하면서 천사들을 숭배해온 히브리인들에게 누구를 붙잡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자랑해오던 제사제도가 얼마나 미흡한 것이었는지를 설명하되 그들이 믿음의 조상으로부 믿고 있는 아브라함을 축복했던 멜기세덱을 가져다가 설명한다. 예수님은 바로 아론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을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의 기독교 핍박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배교하고 있었다. 그러자 히브리서 기자는 이제 신앙선배들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리고 그들이 어떠한 길을 걸어갔는지 그리고 얼마나 영광스러운 미래가 그들에게 주어졌는지를 하늘의 광경을 소개하면서 펼쳐나간다. 그것들 가운데 오늘은 단지 죽은 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확신하고 약속을 끝까지 붙들며 고난과 시련을 인내하여 영원한 본향을 바라본 산 믿음의 증인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lt;/p&gt; &lt;p&gt; 이 시간 우리도 히브리서 기자가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들을 따라가면서, 오늘날 교회가 잃어버린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우리의 믿음이 천국의 기업을 상속받는 살아있는 믿음인지를 점검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믿음으로 이 땅의 환난을 이겨내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해 굳건히 나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 &lt;/p&gt; &lt;h3&gt;&lt;b&gt;2. 히브리서 11장은 왜 쓰여지게 되었는가? 이 시대 교회가 잃어버린 &#039;믿음&#039;의 본질은 무엇인가?&lt;/b&gt;&lt;/h3&gt; &lt;p&gt; 히브리서 11장은 히브리서 10장 끝부분의 엄중한 경고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히브리서 10장 26절 이하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고도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는 자들에게는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음을 경고한다. 이러한 경고 앞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들이 믿음을 잃지 않고 끝까지 인내로 달려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11장을 할애하여 기록하였다. 이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시대에 교회가 잃어버린 ‘믿음’의 본질에 관한 물음이다. 과연 한 번 구원 받으면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는 구원인가? 고난과 핍박을 견뎌가며 보존해야 할 믿음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단연코 말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얻은 구원은 단순히 ‘한 번 믿었으니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다’는 안일한 믿음이 아니다. 그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배도하면서 떨어져나갔기 때문이다. 그토록 신앙에 열심을 내면 그들이 떨어져나간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한 번 믿어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닐 수 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믿음은 &lt;b&gt;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지금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이더라도 그 약속을 확신하며,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순종하며 행하는 살아있는 믿음인 것이&lt;/b&gt;다. 그렇다. 우리는 구원의 여정도 믿음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믿음이 행함으로 온전하게 되어야 완성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lt;/p&gt; &lt;p&gt; &lt;/p&gt; &lt;h3&gt;&lt;b&gt;3. 구약 시대의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과연 ‘믿음만으로’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는가?&lt;/b&gt;&lt;/h3&gt; &lt;p&gt; 히브리서 11장에는 족장 시대 이전부터 시작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을 등장시킨다. 그들은 바로 아벨과 에녹 그리고 노아이다.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통념에 대한 성경의 깊은 통찰을 발견할 수 있다.&lt;/p&gt; &lt;p&gt;&lt;b&gt; 첫째, 아벨&lt;/b&gt;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히 11:4)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럼 아벨은 어떤 믿음의 소유자였는가? 그의 믿음은 단순한 마음의 동의가 아니라, ‘더 나은 제사’라는 &lt;b&gt;행함으로 증명된 확고한 믿음&lt;/b&gt;이었던 것이다.&lt;/p&gt; &lt;p&gt;&lt;b&gt; 둘째, 에녹&lt;/b&gt;은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에녹이 가진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라는 &lt;b&gt;하나님과 동행하는 행함&lt;/b&gt;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lt;/p&gt; &lt;p&gt;&lt;b&gt; 셋째, 노아&lt;/b&gt;는 “믿음으로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히 11:7)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노아의 믿음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경고를 받고 방주를 준비하는’ &lt;b&gt;구체적인 순종의 행위&lt;/b&gt;로 증명되었음을 의미한다.&lt;/p&gt; &lt;p&gt; 이처럼 구약 시대 믿음의 선진들은 단순한 ‘믿음’을 넘어선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구원에 이르른 자들이었다. 그들의 삶은 행위 없는 믿음이 아니었고 죽은 믿음도 아니었다. 그들은 삶으로 살아낸 살아있는 믿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lt;/p&gt; &lt;p&gt; &lt;/p&gt; &lt;h3&gt;&lt;b&gt;4. 족장 시대 아브라함의 믿음은 무엇이 달랐으며, 그가 &#039;믿음의 조상&#039;이 될 수 있었던 세 가지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lt;/b&gt;&lt;/h3&gt; &lt;p&gt; 그렇다면 족장 시대를 열었던 아브라함은 대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가? 그는 지금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믿음의 조상’이라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믿음은 단순한 동의가 아닌 세 가지 결정적인 이유로 더욱 빛이 나는 믿음의 유산을 남겨주었다.&lt;/p&gt; &lt;p&gt;&lt;b&gt; 첫째, 약속의 땅을 향한 순종의 믿음이다.&lt;/b&gt;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8)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익숙한 고향을 떠나, 보이지 않는 약속의 땅을 향해 과감히 발걸음을 옮기는 ‘무조건적인 순종’을 감행했다.&lt;/p&gt; &lt;p&gt;&lt;b&gt; 둘째, 영원한 본향을 바라본 믿음이다.&lt;/b&gt; 그는 약속의 땅에서 장막에 거하며,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다(히 11:10)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아브라함은 이 땅의 거처에 안주하지 않고, &lt;b&gt;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실 하늘의 영원한 도성,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살았던 것이다. &lt;/b&gt;&lt;/p&gt; &lt;p&gt;&lt;b&gt; 셋째,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약속을 확신한 믿음이다.&lt;/b&gt; 그는 100세 된 자신과 경수가 끊어진 사라의 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에게 아들을 주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중간에는 조금 흔들리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스마엘 출생 후 그는 많은 고뇌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어느날 찾아온 하나님 앞에 그는 완전히 엎드린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어떤 불가능한 상황이 생긴다고 할지라도 상황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나이 99세요 사라의 나이는 89세였지만 인간적인 계산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quot;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quot;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다. 그리고 과감히 자기를 비롯한 모든 남자들을 데려다가 할례를 행한다. 그것은 설령 할례를 행하고 있는 도중에 적의 공격을 받아 죽는 일이 있더라도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히 온전하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자 그의 아내 사라도 달라졌다. 그녀도 역시 믿음으로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지만나 잉태할 힘을 얻었다. 왜냐하면 그녀도 역시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히 11:11).&lt;/p&gt; &lt;p&gt; 그렇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영적인 눈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약속을 붙잡되 불가능을 넘어서게 하는 하나님을 붙들었다. 그리고 영원한 본향을 향한 변치 않는 소망을 가지고 일평생을 살았다. 그것이 바로 믿음과 순종으로 빚어진 살아있는 믿음이 아니겠는가!&lt;/p&gt; &lt;p&gt; &lt;/p&gt; &lt;h3&gt;&lt;b&gt;5.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이삭, 야곱, 요셉은 각각 어떤 믿음의 삶을 살았으며, 그들의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어떻게 연결되고 계승되는가?&lt;/b&gt;&lt;/h3&gt; &lt;p&gt; 그런데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당대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믿음 유산은 그의 후손들에게로 면면히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삭과 야곱 그리고 유다와 요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들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대로 계승하여 후대에 물려준다.&lt;/p&gt; &lt;p&gt;&lt;b&gt; 첫째, 이삭은 미래를 축복하는 믿음의 삶을 살았다.&lt;/b&gt;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올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히 11:20)라고 기록하였다. 그렇다. 이삭은 자신의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둘째 아들은 야곱을 축복했다. 사실 그가 야곱을 축복하고 나서도 한참을 더 살았다. 그 당시에만 눈이 흘려 에서와 야곱을 분간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에 따르면 아마도 그의 내면에서는 비록 에서가 장자이기 하였지만 영적 장자권이 야곱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이삭도 믿으으로 야곱을 축복해준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lt;b&gt;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신뢰하면서, 인간적인 혈통이 아니라 영적인 질서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내려간다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lt;/b&gt;다.&lt;/p&gt; &lt;p&gt;&lt;b&gt; 둘째, 야곱은 고난 속에서도 영원한 본향을 바라본 믿음의 삶을 살았다.&lt;/b&gt;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히 11:21)라고 기록하고 있다. 비록 야곱의 삶이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모든 상황을 믿음과 기도로 이겨내었다. 그리고 늙어서는 애굽으로 내려가 하나님의 백성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번성할 땅에 안착한다. 그리고 죽음을 앞 둔 상황에서는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에게 두 아들들을 데려오게 한다. 그리고 그의 두 아들들에게 축복한다. 그때 그는 &lt;b&gt;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며 침상하며 경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lt;/b&gt;&lt;/p&gt; &lt;p&gt;&lt;b&gt; 셋째, 요셉은 죽음을 넘어선 부활과 약속의 땅을 믿는 삶을 살았다.&lt;/b&gt;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에 대하여 명하였으며”(히 11:22)라고 기록해 주었다. 요셉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형들의 시기로 인해 몇 번의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지만 애굽의 총리가 된다. 그리고 왕좌 외에는 다른 모든 것을 얻어 왕이나 진배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항상 어릴 적 장막에서 들었던 조상들의 이야기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과 그의 후손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죽을 때에 조상들의 약속에 참여하고자, 자신이 죽더라도 자신의 뼈를 꼭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져가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리하여 그는 &lt;b&gt;죽음 이후의 부활의 영광과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반드시 있을 것임을 믿는 위대한 믿음&lt;/b&gt;을 보여주었다.&lt;/p&gt; &lt;p&gt; 그렇다. 이렇듯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믿음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이 한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고 할지라도 절대 흐릿해지거나 없어져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살아서 빛나는 믿음이었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도 과연 이러한 영적 DNA 유전자가 있을까? 우리 모두도 그들처럼 나그네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도 그들처럼 하늘의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 것이다. &lt;/p&gt; &lt;p&gt; &lt;/p&gt; &lt;h3&gt;&lt;b&gt;6. 히브리서 11장이 증언하는 &#039;믿음&#039;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도전을 주는가?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넘어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얼마나 확신하고 바라보고 있는가?&lt;/b&gt;&lt;/h3&gt; &lt;p&gt; 히브리서 11장이 증언하는 &#039;믿음&#039;은 어떤 믿음이었는가? 아벨, 에녹, 노아와 같은 족장 이전들의 사람들 그리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과 같은 믿음의 족장들이 보여준 믿음은 무엇인가? 사실 그들의 보여준 믿음은 오늘날 우리에게 강력한 도전이 아닐 수 없으며 나아갈 방향을 모르는 우리들에게 강력한 영적 나침반이 아니 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내 눈에 보이는 어떤 현실을 보면서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확신하고 바라보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는 3가지가 필요하다.&lt;/p&gt; &lt;p&gt;&lt;b&gt; 첫째, &#039;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확신&#039;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lt;/b&gt; 히브리서 기자는 선포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고 말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물질이나 성공 욕심에 매여 살고 있다. 하지만 참된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영원한 상급을 가장 확실한 실체로 믿는 믿음이다. 우리는 비록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것을 믿고 앞으로 나아간다. 더욱이 종국적으로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이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것이 실상이라는 사실을 믿고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lt;/p&gt; &lt;p&gt;&lt;b&gt; 둘째, &#039;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는 삶&#039;을 살아야 한다.&lt;/b&gt; 믿음은 단순히 지적인 동의가 아니다. 아벨, 에녹, 노아가 그러했듯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는 행함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길이 어떤 것인지를 알지 못해도(아브라함처럼), 세상의 조롱과 비난 속에서도(노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lt;/p&gt; &lt;p&gt;&lt;b&gt; 셋째, &#039;영원한 본향을 소망하는 삶&#039;을 살아야 한다.&lt;/b&gt; 믿음의 선진들은 모두 이 땅에서 나그네와 행인으로 살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항상 더 좋은 본향을 사모했다. 지금 회개와 천국복음을 사모하는 이들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을 얼마나 사모하고 있는가? 이 땅의 삶에 모든 것을 내걸지 않고, 오로지 영원한 기업인 하늘에 준비된 새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세상의 어더한 고난과 시련도 이겨낼 준비가 되어있는가? 주님은 오늘도 이렇듯 믿음의 조상들의 삶을 우리에게 예시로 보여주고 계신다. &lt;/p&gt; &lt;p&gt; 그렇다. 히브리서 11장은 우리에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는 말씀처럼, 살아있는 믿음은 곧 순종하고 인내하며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삶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가르쳐준다.&lt;/p&gt; &lt;p&gt; &lt;/p&gt; &lt;h3&gt;&lt;b&gt;7. 나오며&lt;/b&gt;&lt;/h3&gt; &lt;p&gt; 오늘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 이야기를 통해, 참된 믿음의 본질과 그 살아있는 증거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믿음의 조상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들었다. 그리고 어떠한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인내하여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위대한 믿음의 용사들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강력한 도전을 준다. 우리도 비록 이 땅에서 나그네와 행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도 역시 저 하늘에 준비된 영원한 본향,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한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믿음은 단순히 구원의 시작점이 완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하늘에서 내가 받을 지위와 상급이 주어지는 순간까지 계속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lt;/p&gt; &lt;blockquote class=&quot;&quot;&gt; &lt;p&gt;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lt;/p&gt; &lt;/blockquote&gt; &lt;p&gt; 그렇다. 이제 우리도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범하기 쉬운 모든 죄들을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믿음의 경주를 계속해서 해야 한다. 그리하여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이라는 칭찬을 받으며, 영원한 기업인 새 예루살렘 성에서 영광스러운 지위를 상속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gt; &lt;/p&gt; &lt;hr&gt; &lt;p&gt;&lt;b&gt;[설교요약]&lt;/b&gt; 본 설교는 히브리서 11장을 통해 &#039;믿음&#039;의 본질과 구약 시대 믿음의 선배들의 삶을 조명한다. 히브리서 11장은 10장의 경고에 이어, 믿음을 잃지 않고 인내로 달려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첫째, 아벨, 에녹, 노아는 단순히 ‘믿음’만이 아닌, ‘더 나은 제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방주를 준비하는 순종’과 같은 **‘행함이 있는 믿음’**을 살았다(히 11:4-7). 둘째,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간 순종’, ‘하나님이 지으실 성을 바란 소망’, ‘불가능한 약속을 확신한 믿음’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히 11:8-11). 셋째, 이삭, 야곱, 요셉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계승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미래를 축복하며 고난 속에서도 영원한 본향을 바라본 믿음의 삶을 살았다(히 11:20-22). 넷째, 히브리서 11장이 증언하는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실상을 확신하고(히 11:1), 말씀에 순종하며, 영원한 본향을 소망하는 삶을 오늘날 우리에게 도전한다. 결국,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인내로 완주하여 영원한 기업을 얻어야 한다(히 12:1).&lt;/p&gt; &lt;p&gt; &lt;/p&gt; &lt;p&gt;2024년 06월 26일(수)&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 &lt;/p&gt; &lt;p&gt;#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수요기도회 #히브리서 #히브리서11장 #히브리서강해 #믿음의선배들 #믿음장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믿음 #설교&lt;/p&gt; &lt;p&gt; &lt;/p&gt; &lt;p&gt; &lt;/p&gt;</description>
		<category>58.히브리서강해(20강)</category>		<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category>수요기도회</category><category>히브리서</category><category>히브리서11장</category><category>히브리서강해</category><category>믿음의선배들</category><category>믿음장</category><category>아브라함</category><category>이삭</category><category>야곱</category><category>요셉</category><category>믿음</category><category>설교</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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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히브리서강해(12)]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 이야기(2) -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히11:1~22)_2024-06-19(수)</title>
			<link>https://dongtanms.kr/hebrews/154866</link>
				<description>&lt;p&gt;2024-06-19(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 #c0392b;&quot;&gt;&lt;strong&gt;[히브리서강해(12)]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 이야기(2) -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히11:1~22)&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CtmQDTMpSuo&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CtmQDTMpSuo&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히브리서는 우리의 신앙의 대상인 예수께서 얼마나 탁월한 분인가를 말씀하면서 동시에 믿음을 끝까지 지키라고 권면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의 전반부(1:3~10:19)는 신앙의 대상인 예수님을 구약의 사람들과 비교하고 있기 때문이며, 히브리서의 후반부(10:20~13:19)는 끝까지 인내하여 믿음을 지켜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반부의 소재가 &#039;예수님&#039;이었다면, 후반부의 소재는 &#039;믿음&#039;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후반부에서는 믿음을 끝까지 인내하여 붙들어야 할 것을 권면하면서 신앙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히브리서는 신앙의 선배들이 어떻게 믿음을 지켜서 하늘의 보상에 참여했는지를 역사적으로 살펴서 기록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lt;strong&gt; 지난 시간에 이어 믿음으로 살다간 믿음의 선배들의 삶을 계속해서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980b9;&quot;&gt;&lt;strong&gt;2. 히브리서 11장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히브리서 11장은 일명 &#039;믿음장&#039;이라고 불린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1장을 통하여, 믿음의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lt;strong&gt;가장 먼저 믿음에 대한 정의&lt;/strong&gt;를 내린다(히11: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곧 믿음은 소망의 실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곧 보이지 않지만 그것들을 확증하게 해 주는 것이 곧 믿음이라고 증언한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배들이 이러한 믿음을 가짐으로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의 시발점은 바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아는 것인데, 사람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사실은 가시적인 것들에게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히11:3). &lt;strong&gt;그리고 둘째로, 시대별로 믿음으로 살다간 사람들을 언급&lt;/strong&gt;하는데, 먼저는 아브라함 이전의 믿음의 선배들을 언급한다(히11:4~7). 그들은 아벨과 에녹과 노아이다. 그리고 이어서 둘째로는 족장시대에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을 언급한다(히11:8~22). 그들은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모세부터 가나안 땅 입성까지의 믿음의 선배들을 언급한다(히11:23~31). 그들은 모세, 기생 라합 등이다. 그리고 넷째로는 사사시대 이후 믿음의 선배들과 신약 성도들을 위해 예비된 새 약속을 언급한다(히11:32~40). 이때 등장하는 인물로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및 선지자들이 있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980b9;&quot;&gt;&lt;strong&gt;3.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렇다면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사람들의 특징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lt;strong&gt;적어도 개인적으로 설명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천국에서 &#039;장로들&#039;로 있다는 것&lt;/strong&gt;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11:2절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039;장로들&#039;(프레스비테로스)이라고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 천국에는 이 땅에 살았으나 믿음으로 살아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 구원받은 인류의 대표자가 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가리켜 요한계시록에서는 &#039;24장로들&#039;이라고 부른다(계4:4,10, 5:6,8,11,14). 그렇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 강해를 진행해 오면서 24장로들이 누군지를 추측해 왔다. 그런데 가장 확실한 명단이 히브리서 11장에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소개된 인물이 24명만은 아니다. 더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에서 개별적으로 소개된 24장로들을 살펴볼 수 있으니, &lt;strong&gt;그들은 총 9명으로서 &#039;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요셉, 모세&#039; 등&lt;/strong&gt;이다. 그리고 영성이 깊은 분들이 천국에서 장로들을 보았다고 하는데 그들의 간증을 살펴보더라도, 앞에서 언급한 9명의 믿음의 사람들이 천국에서 24장로인 것을 증언해 준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980b9;&quot;&gt;&lt;strong&gt;4.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첫 번째 두 번째 사람 아벨과 에녹은 어떤 인물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렇다면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장로들의 &lt;strong&gt;첫 번째 인물은 누구인가? 그는 바로 &#039;아벨&#039;&lt;/strong&gt;이다(히11:4). 그는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은 자다. 그리고 &lt;strong&gt;두 번째 인물은 &#039;에녹&#039;&lt;/strong&gt;이다(히11:5).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아서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진 자다.&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980b9;&quot;&gt;&lt;strong&gt;5.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세 번째 사람 노아는 어떤 인물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그리고 &lt;strong&gt;세 번째 인물은 &#039;노아&#039;&lt;/strong&gt;이다(히11:7). &lt;strong&gt;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고 방주를 준비하였으니 적어도 70년이상을 방주를 지었고 전 세계적으로 임한 홍수로부터 동물들을 보호하였고 자신의 집(가족)을 구원하였던 것&lt;/strong&gt;이다(히11:7). 사실 노아에 대해서 보통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있는 사실은 그가 오랫동안 방주를 지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그가 방주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한 가지 더 행한 일이 있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그 일을 통해서 세상을 정죄하였고 그리하여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이다(히11:7). 이는 그가 방주만 지은 것이 아니라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 회개를 외쳤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두 번째 편지에서 하나님께서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의 일곱 식구들을 보존하셨을 뿐만 아니라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렸다고 간증하였다(벧후2:5). 그랬다. 노아는 방주만 지은 것이 아니라 당시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 사람들을 향해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노아는 자기의 말을 묵묵히 따라준 세 아들들과 그의 자부들 그리고 그의 아내만 방주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980b9;&quot;&gt;&lt;strong&gt;6.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네 번째 사람 아브라함은 어떤 인물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이 기록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바로 &#039;아브라함&#039;이다(히11:8~10, 13~16, 17~19). 그는 히브리서 11장에 이름이 기록된 16명의 믿음의 인물들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이 1절 내지는 2~3절로 끝나지만, 아브라함은 총 10구절이라는 분량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의 사람을 언급할 때에는 반드시 아브라함의 일생을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후대에까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삶을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히브리서 기자가 언급하고 있는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인가? 그것은 그가 크게 2가지 측면에서 믿음의 삶을 살다간 사람이라고 언급하였다.&lt;/p&gt; &lt;p&gt; &lt;strong&gt;첫째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되,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때에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처럼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거류하였다&lt;/strong&gt;는 것이다(히11:8~9). 그는 살아생전에 가나안 땅을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후손들이 차지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죽었다. 하지만 그는 장막에 거주하면서 자신의 아들인 이삭과 손자인 야곱에게 장막에 거주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전수해 주었던 것이다. 그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하란에 정착할 때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다. 사실 그가 갈대아 우르에서 부름을 받았을 때에도 그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몰랐지만 그의 땅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나왔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lt;/p&gt; &lt;p&gt;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서 이러한 담대한 믿음이 생겨났는가? 그것은 그의 성경 외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야살의 책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셈의 장막으로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서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셈으로부터 노아의 홍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계속 위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더불어 타락의 과정까지 다 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가 어떻게 셈의 장막에까지 가게 되었는지는 야살의 책에 자세히 나오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그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하나님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그분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였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가 기꺼이 갈대아 우르를 떠났으며,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는 상태였는데도 주님의 말씀을 따라 어딘가를 향해 출발했기 때문이다. &lt;/p&gt; &lt;p&gt; &lt;strong&gt;둘째로, 그는 시험을 받았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번제물로 드렸다&lt;/strong&gt;는 것이다(히11:17). 그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았지만 정녕 슬하에 아들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아내 사라가 불임의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이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어느 날 아이를 갖게 된다. 그러나 그 아이가 자라서 장성한 자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물로 바치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명령을 하신다. 하지만 그는 아들과 더불어 삼일 길을 걸어가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기꺼이 그의 아들을 잡아서 나무 위에 올려 놓고 죽이려고 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천사를 보내 중단시킨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인 줄을 알겠노라고 하시면서 대신 수풀에 걸린 수양으로 대신 번제를 드리게 한다. 그리하여 그는 혹 하나님께서 그의 자식을 데려간다고 할지라도 그를 도로 살려내실 하나님을 신뢰하였기에 자기 아들을 번제로 드릴 수 있었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평가한다(히11:19). 그렇다. 믿음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니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하나님보다 더 붙들려고 한다.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붙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못 하실 것이 없는 전능자이시기 때문이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980b9;&quot;&gt;&lt;strong&gt;7.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참으로 눈물겹기만 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기까지 여러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조소를 받고 살아야 했으며, 또한 죽임을 당하게 되는 일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묵묵히 그들의 걸어가야 할 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그들이 그러한 길을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은 결코 눈에 보이는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었으며, 그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끝까지 따라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하늘 새 예루살렘 성에 그의 집을 마련하시고 있었다(히11:16). 특히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이삭과 야곱은 죽는 날까지 남의 땅에서 살다가 죽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하나님이 그와 그의 후손에게 주신다고 했지만 끝내 그것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죽는 날까지 남의 땅에 거류하면서 장막에서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일컬음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하늘에 새 예루살렘 성을 마련하시고 그들을 그리로 불러올리신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길이요 믿음의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인 것이다. 그렇다. &lt;strong&gt;믿음이란 지금 당장 약속이 실행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자가 되는 것이요, 그 약속이 실현될 것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참아 기다리는 것이다&lt;/strong&gt;. 그리고 자기 때에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자기 자손 때에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고 그 약속을 유산으로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 &lt;p&gt;2024년 06월 19일(수)&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 &lt;/p&gt; &lt;p&gt;#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수요기도회 #히브리서강해 #히브리서11장 #믿음장 #믿음의선배들 #믿음 #신앙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요셉 #모세 #24장로&lt;/p&gt; &lt;p&gt; &lt;/p&gt;</description>
		<category>58.히브리서강해(20강)</category>		<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category>수요기도회</category><category>히브리서강해</category><category>히브리서11장</category><category>믿음장</category><category>믿음의선배들</category><category>믿음</category><category>신앙</category><category>아벨</category><category>에녹</category><category>노아</category><category>아브라함</category><category>사라</category><category>이삭</category><category>야곱</category><category>요셉</category><category>모세</category><category>24장로</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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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hebrews/154866#comment</comments>			<pubDate>Thu, 20 Jun 2024 00:02:5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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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히브리서강해(11)] 인내하는 믿음과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 이야기(1) -서론과 아브라함(히10:32~11:22)_2024-06-12(수)</title>
			<link>https://dongtanms.kr/hebrews/154870</link>
				<description>&lt;p&gt;2024-06-12(수) 수요기도회&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 #c0392b;&quot;&gt;&lt;strong&gt; [히브리서강해(11)] 인내하는 믿음과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 이야기(1) - 서론과 아브라함(히10:32~11:22)&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gGa64TqRv4M&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gGa64TqRv4M&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구원의 노정에서 탈락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히브리서 기자는 한 마디로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믿음과 회개로 구원을 얻는 것이지만 우리 인간이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어떠한 환란과 핍박이라도 그것을 이겨내는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최종적으로는 인내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quot;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너희의 인내로 너희의 영혼을 얻으리라(눅21:17~19)&quot;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 최종적인 과정은 과연 환난과 핍박을 어떻게 이겨내느냐 하는 것이 관건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성경에 등장하는 신앙위인들은 과연 어떻게 이러한 어려운 고비들을 이겨낼 수 있었는가? 어떻게 인내할 수 있었는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구원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과연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이 필요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lt;strong&gt;2. 히브리서 10:32~11:22의 위치는?&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히브리서 10:32~11:22의 말씀은 히브리서의 본론부(1:3~13:19)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히10:19~13:19), 본서의 본론부의 전반부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 &#039;구약과 신약을 연결하고 완성시킨 예수 그리스도의 구약적 요소들에 대한 우월성&#039;을 다룬 본문에 이어, &#039;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의 신앙과 생활에 대한 진술&#039;의 앞부분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히브리서 기자는 먼저 히10:32~39의 말씀을 통하여, 고난받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위로와 더불어 그들이 인내하는 신앙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구약의 신앙의 위인들은 과연 어떻게 신앙을 인내하였는지 그 예증을 들어서 설명한다. 그것이 바로 히브리서 11장의 이야기다(히11:1~40).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1장의 이야기에서 인내하며 살다간 신앙위인들의 삶을 조명하는데, 그중 첫 번째 단락(히11:1~3)에서는 믿음이란 무엇인가라는 믿음의 정의에 대한 서론적인 설명을 한다. 그리고 두 번째 단락(히11:4~7)에서는 아브라함 이전의 아벨부터 에녹, 노아까지의 믿음의 선진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세 번째 단락(히11:8~22)에서는 족장시대를 살았던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까지의 믿음의 선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네 번째 단락(히11:23~31)에서는 모세부터 가나안 입성시까지의 믿음의 선진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다섯째 단락(히11:32~40)에서는 사사시대 이후의 믿음의 선진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신약의 성도를 위한 예비된 새 약속에 대해 언급한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lt;strong&gt;3. 구원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히브리서 기자가 권면한 것은 무엇이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선진들의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먼저, 구원 탈락에 관한 다섯 번째 경고(히10:26~31)와 더불어서 고난받고 있는 성도들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먼저 언급한다(히10:32~35). 그리고 믿음으로 인내할 것을 권면한다(히10:36~39). 그렇다. 신약의 성도들이 한 번 믿음과 회개를 통해 구원을 얻었다면, 그래서 이미 받은 구원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떠한 고난과 핍박 그리고 환난까지라도 이겨내는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그렇다면 당시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어떤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는가? 그것은 2가지였다. 하나는 종교적인 것으로서, 동족으로부터 받는 비난과 조소 그리고 멸시와 회유였다. 왜냐하면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했던 당시 헬라파 유대인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동족으로부터 비난과 조소를 받아야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문에서 추방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성도들도 있었다. 또 하나는 정치적인 것으로서 로마 정부로부터 받는 부당한 대우였다. 왜냐하면 로마의 네로 황제가 로마시를 불태운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가시킴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을 혐오 집단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당시에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면 불법 종교인이 되어서 자신의 재산을 몰수당하고 감옥에 갇히게 되고, 심지어 죽임당하는 일까지 감내해야 했던 것이다(히10:34). 그러므로 이 사건을 지켜보고 있던 히브리서 기자는 끝까지 인내하며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수할 것을 권면하였던 것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lt;strong&gt;4. 인내하며 살다간 구약시대의 믿음의 선배들의 삶은 대체 어떠했을까?&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그렇다면, 믿음으로 살았던 구약시대의 믿음의 선배들은 어떻게 이러한 고난과 핍박 그리고 환난을 이겨내었던 것인가?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의 편지에서 한 장을 할애하여 아브라함 이전부터 구약의 전 역사를 통해 믿음으로 살다간 선진들의 삶의 자취를 파노라마의 형식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이들의 삶은 다양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으니 그들은 다 &#039;믿음으로&#039; 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의 삶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이야기를 통해서 당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살아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lt;strong&gt;5.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의 삶은 어떠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히브리서 기자는 환난을 당하여 인내할 것을 권면하면서 구약시대에 믿음으로 살다간 인물들을 조명하게 되는데, 첫째로는 아브라함 이전에 살았던 인물들로서 아벨과 에녹과 노아를 조명한다(히11:4~7). 그리고 이어서 둘째로는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의 삶을 조명한다(히11:8~22).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그렇다면 이러한 믿음의 선배들은 과연 무엇을 붙잡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것인가? 그것은 다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약속을 붙잡았다는 것이다. 한 예로서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보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지만 장래에 유업으로 받을 땅을 향하여 나아갈 때에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나아갔던 인물이다(히11:8).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러낼 때부터 2가지 약속 곧 자손에 대한 약속과 영원히 거주할 땅에 대한 약속을 받은 자였다. 다시 말해, 그가 75세가 되었지만 아직 자식을 얻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자식을 하늘의 별들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해 주신다는 약속을 받았으며, 그가 주님의 음성을 따라 들어가게 된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받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죽을 때에 그에게 주어진 후손으로서는 단 두 사람 곧 이스마엘과 이삭 뿐이었다. 그리고 땅도 자신의 아내를 매장하기 위해 헷 족속으로부터 구입한 막벨라 굴뿐이었다.(창23:1~20).&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그렇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손과 땅에 대한 약속만 받았을 뿐, 실제로는 그 약속이 이뤄지는 현장을 지켜보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주께서 자신에게 하신 말씀에 대해 그 어떤 의심도 하지 아니하고, 자기 아들인 이삭을 불러다가 하나님의 2가지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고 하면서 약속을 믿음으로 전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이삭 역시 자신의 아들인 야곱을 불러다가 또 아브라함이 들려준 약속을 전해 주었으며, 야곱 역시 죽기 전에 11명의 아들들과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불러다가 같은 약속을 전달하고 죽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그리고 야곱의 족장들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자손과 땅에 대한 약속은 받았지만 그것이 성취되는 현장을 보지 못한 채 믿음으로 살다가 자식에게 약속을 또한 기업으로 남겨 주고 죽었던 것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lt;strong&gt;6. 아브라함은 어떻게 되어서 모든 믿는 자들의 믿음의 시조가 될 수 있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아브라함은 사실 부르심을 받은 믿는 자들의 시조가 되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그는 혈통적으로 보았을 때에 데라의 적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담의 19대손이었던 데라의 셋째 아들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위로 하란과 나홀이라는 형들이 있었다. 아브라함은 데라가 130세에 낳은 아들로서, 자신의 큰 형이었던 하란의 둘째 딸인 이스가(사래로 추정되는 인물)와 결혼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란의 첫째 딸인 밀가는 자신의 삼촌인 나홀과 결혼하였다(창11:27~29). 그런데 당시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모세의 후계자였던 여호수아가 아브라함의 아버지요 나홀의 아버지였던 데라가 유브라데 강 저편에 있을 때에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언급한 본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수24:2).&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사실 창세기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때까지 세 번의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였다. 첫 번째는 제1대 아담으로부터 시작한 것이요 두 번째는 제10대 노아로부터 시작한 것이요 마지막 세 번째는 제20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제10대 노아와 제20대 아브라함으로부터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첫 사람 아담이 타락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후손을 구원하기로 결정하고는 그에게 여자의 씨(창3:15)로서 메시야를 약속하셨는데, 그만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경건한 셋의 후손들마저 거의 대부분이 타락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자 창조의 시작이었던 아담의 후손들을 홍수로 멸하시고, 아담의 제10대손이었던 노아로부터 다시 시작하신 것이다. 하지만 노아로부터 다시 시작된 인류가 또다시 타락하여 아브라함 대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타락한 무리들과 하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노아의 적자였던 셈의 후손들이 또다시 타락한 무리인 노아의 둘째 아들이었던 함의 후손들과 연합하여 우상을 숭배하고 인간을 신처럼 받들며 살아간 것이다. 이때 하나님을 대적했던 인물은 함의 손자였던 니므롯이었다. 그런데 야살의 책에 보니,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군대장관으로서 그만 니므롯의 오른팔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타락해 가는 인류를 지켜보면서 다시 인류를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아브라함의 영혼을 데라의 아내에게 보낸 것이다. 그래서 셋째 아들로 아브라함이 태어났다. 그러므로 당시 아브라함은 자신의 땅이었던 갈대아 우르와 친척들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우상숭배의 현장이었으며 하나님을 배신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어릴 적부터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돌보심 하에 노아의 적자였던 셈으로부터 신앙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셈은 노아와 더불어 방주를 만들어서 홍수를 직접 겪었던 인물인데, 셈 역시 아버지 노아로부터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홍수 이전의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셈으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었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버린 채 폭력과 살인으로 점철되어 있는 자신의 땅 곧 갈대아 우르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기꺼이 떠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디로 가야 할른지에 대해서는 자기도 알지 못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대로 믿고 따르기로 결정하고 자신의 땅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간 것이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우상숭배의 땅을 떠나서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새로운 땅을 향하여 기꺼이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lt;strong&gt;7.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믿음이란 무엇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말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은 믿음 안에서 믿음의 증거를 얻었다고 말했다(히11:1~2). 그렇다. 믿음은 바라고 소망하는 것들을 실체화시키는 도구인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이는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신뢰할 수 없으며, 영적인 실제를 경험할 수도 없다. 믿음은 4차원의 영의 세계를 3차원으로 끌어오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은 받았지만 그들은 죽기까지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의 자식을 불러다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그러고 나서야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믿음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믿음으로 살았던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떤 복을 예비해 놓으셨는가? 그것은 다음 이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2024년 06월 12일(수)&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quot;&gt;정보배 목사&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히브리서강해 #인내하는믿음 #믿음의선배들 #히브리서11장 #수요기도회 #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인내 #믿음 #신앙 #구원 #아브라함 #이삭 #야곱 #족장시대 #믿음의조상 #약속&lt;/p&gt; &lt;p&gt; &lt;/p&gt;</description>
		<category>58.히브리서강해(20강)</category>		<category>히브리서강해</category><category>인내하는믿음</category><category>믿음의선배들</category><category>히브리서11장</category><category>수요기도회</category><category>동탄명성교회</category><category>정보배목사</category><category>인내</category><category>믿음</category><category>신앙</category><category>구원</category><category>아브라함</category><category>이삭</category><category>야곱</category><category>족장시대</category><category>믿음의조상</category><category>약속</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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