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믿어도 외적인 성령세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행19:1~7)_2019-03-12(화)

갈렙 2019.03.12 10:05:23 동영상URL: https://youtu.be/Keppy0ShizU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수님을 믿어도 외적인 성령세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행19:1~7)_2019-03-12(화)

https://youtu.be/Keppy0ShizU

 

1. 외적인 성령세례란 무엇일까요?

 

2. 외적인 성령세례란 믿는 자들에게 성령께서 밖에서 그 사람 위에 부어짐으로 성령에게 푹 잠기거나 사로잡힌 상태를 가리킵니다(행10:44~45). 그리고 그때가 되면 대부분 성령의 선물로서 은사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공통적인 은사는 방언이었습니다(행2:1~4,8:14~17,10:44~46,19:1~6). 사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당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 곧 성령세례를 기다리라고 했습니다(욜2:28~29). 그러면 위로부터 능력으로 옷입혀질 것이라고 했습니다(눅24:49). 그래서 능력을 받아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행1:8). 그러므로 외적인 성령세례는 힘있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증인에게는 매우 필요한 은혜의 방편입니다. 그렇다면,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은 어떻게 성령세례를 받게 되었을까요?

 

3.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에 의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후에, 안수를 통해서 성령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도 사마리아교회의 경우와 동일하게 사도의 안수를 통해 성령세례를 받게 되는데, 다만 베드로가 아니라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함으로 성령이 그들 위에 내려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방인이었던 고넬료가정에서는 어떻게 되어서 주 예수의 세례를 받지도 않았으며, 사도들로부터 안수도 받지 않았는데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되었던 것일까요?

 

4. 고넬료가정에서는 사도베드로를 초청하여 구원얻을만한 말씀을 듣고 있는 중에 성령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고넬료가정 사람들은 에베소 성도들과는 달리 그날 초청한 베드로를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시며 인류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고 어떻게 죄사함을 받게 되는가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있다는 것을 증거할 차라에, 그들 모두에게 성령이 쇄도하듯 내려오심으로 성령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은 사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성경교사인 아볼로부터 이미 예수님에 관한 것을 다 들었으며,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이 나중에 그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너희가 믿은 후에 성령을 받았느냐(행19:2)"고 물어보았을 때에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성령이 계신지 아니 계신지 듣지도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요한의 회개의 세례만을 받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바울은 그들에게 요한이 말했던 "성령으로 세례주는 이"이신 예수의 세례를 주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했을 때에, 성령께서 그들 위에 내려오셨고 그들도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 방언을 말하게 되었으며 더욱이 예언까지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던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되어서, 바울이 안수하기 전까지 성령세례를 받지 못하였던 것일까요?

 

5.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안수를 통해서 성령세례를 받기 전까지 그들이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첫째,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었고 회개의 세례를 주었던 장본인 곧 아볼로가 아직 성령세례를 받지 않았거나 성령세례를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볼로는 구약성경은 많이 알고 있었고, 예수께서 메시야이심까지 잘 알고 있었으며, 요한의 물세례까지는 실천하고 있었으나, 성령으로 세례받는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자기자신도 성령으로 세례를 받지 못한 상태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둘째, 그는 예수님이 곧 성령으로 오셨음을 그들에게 증거해주지 않았든지 아니면 예수께서 성령으로서 동일한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와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성령님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고, 이미 성령세례를 받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고넬료 가정에 가서 복음을 전할 당시 베드로는 이미 예수께서 성령으로 오셨으며 성령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미 오순절날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볼로로부터 복음을 듣고 세례요한의 물세례까지 받았던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내주하시는 성령까지는 받았지만, 밖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세례 즉 외적인 성령세례는 받지 못한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자의 영적 상태 그리고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줍니다. 사실 30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의 장로교에서는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를 말하지 않거나 금지했던 장로교교단에서는 성령세례를 받거나 성령이 주시는 선물로서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장로교에서는 성령세례는 이미 예수님 믿을 때에 받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방언이 성령세례의 증거라고 가르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사도행전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사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들은 다 귀합니다. 그리고 몸된 교회를 위해 사용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그리소 복음전파를 위해 은사를 받아서 그리고 질서있게 사용한다면 너무나도 귀한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나와 있는대로 믿고 사모하고 또 사모하면 예수께서는 이미 믿는 자에게 성령세례도 부어주시고 성령의 은사도 주시는 것입니다.

 

2019년 3월 12일(화)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