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인도를 받는 법(04) 영과 혼을 분리하라(레17:11)_2019-04-09(화)

갈렙 2019.04.09 07:59:15 동영상URL: https://youtu.be/GH0fT1PMn-Y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의 인도를 받는 법(04) 영과 혼을 분리하라(레17:11)_2019-04-09(화)

https://youtu.be/GH0fT1PMn-Y

 

1.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혼(魂=soul)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영(靈=spirit)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사마리아여인더러 요4:24에서 "하나님은 영(靈)이시니, [그리고 그분을] 예배하는 자가 영(靈)과 진리로(안에서) 예배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영(靈)과 혼(魂)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잘 구분해야 하며, 그것을 잘 사용할 줄 알아야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배시간에 예배의 자리에 앉아있어도 자신의 영을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은 혼으로 예배하기 때문에 많은 날들과 많은 시간동안 예배를 드렸어도,자신에게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영을 사용해 하나님을 접촉할 줄을 잘 모르기 때문에 혼의 감각으로만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결국 그의 영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혼에는 어떤 감각이 주어지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일 뿐,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영(spirit)이란 무엇이며, 혼(soul)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2. 사람을 구분할 때 구약성경(히브리어)에서는 영과 육체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고, 신약성경(헬라어)에서는 영과 혼과 육(flesh)으로 구분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구분한다면, 히브리어에서나 헬라어에서나 다같이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영(spirit), 혼(soul), 육(flesh)은 "루아흐, 네페쉬, 바싸르"이며, 헬라어로는 "프뉴마, 프쉬케, 싸릌스"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말 성경을 보면, "영혼"이라는 단어가 아주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러나 그러한 단어가 원문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영, 혼, 육이라는 단어 외에도 몸, 마음, 정신(이성)이라는 단어도 등장하고 있는데 원문을 살펴보면 다 각각 다른 단어들입니다. 그러므로 단어들마다 그 의미와 용례에 있어서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사람을 어떻게 구분하고 있을까요?

 

3. 성경은 사람을 정확하게 영과 혼과 육(혹은 육체)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창2:7에 보면, 하나님께서 땅의 흙(티끌)을 사용하여 육체를 만드셨으며, 그의 코에 생명의 숨(호흡=네샤마) 곧 영을 불어넣으심으로 그로 하여금 "살아있는 혼"(네페쉬 하야 = a living soul)가 되게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맨 바깥쪽은 육체가 둘러싸고 있지만, 그 안쪽에는 혼이 자리잡고 있으며, 더 깊숙한 곳에는 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욥기서를 보면, 엘리후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루아흐)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호흡=네샤마)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욥32:8)" 그렇습니다. 사람의 깊숙한 곳에 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것을 성막에 비유해보면, 성막이 바깥뜰과 성소과 지성소로 구분되어 있으며, 그런데 지성소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처럼, 사람도 몸과 혼과 영으로 구분되며, 영 안에 하나님이 거주하시고 있습니다(물론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부터 말이죠). 그런데 실은 사람의 혼과 영은 사람의 안쪽에 들어있어서, 그것이 혼인지 영인지 처음에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들어오시는 공간은 영(spirit)이라는 장소이지만, 사탄마귀나 귀신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은 혼(soul)이라는 장소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사람의 영(spirit)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관이기에, 혼만으로 예배하는 사람은 영과 혼을 다 사용하여 예배하는 자와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영과 혼이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에는 무엇이 있으며, 또한 영과 혼을 서로 분리시켜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4. 사람의 영과 혼이 다르다는 것과 이 둘을 서로 분리시켜줄 수 있는 것이 하나 있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히4:12). 히브리서 기자는 영과 혼에 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효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비하여, 혼(프쉬케)과 영(프뉴마)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들]과 뜻(의향)[들]을 판단하나니" 그렇습니다. 사람의 내면에 위치하고 있는 혼과 영을 분리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관절과 골수가 비슷하지만 다르듯이, 혼과 영이 비슷한 것 같지만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그것을 분리시켜주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모친이었던 마리아가 예수님을 임신한 후에 부르는 노래에도 혼과 영이 다르다는 것이 잘 나와 있습니다. 즉 눅1:46~47을 헬라어원문으로 보면, 마리아는 "내 영혼(프쉬케=soul)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프뉴마=spirit)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셨음은"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혼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관이며, 영은 하나님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기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순서를 보게 되면, 혼이 주님을 찬양하는 것인 현재형으로 나와 있고, 영이 구주를 기뻐하는 것은 과거형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는 곧 영이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게 되면 그것이 혼으로 흘러나와 혼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자신의 영으로 하나님을 접촉할 줄 모른다면 그는 혼만이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때에는 찬양시간에 눈물까지 흘릴 수도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그러한 마음은 금방 식어 없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이 기뻐하면서 혼을 뚫고 나와서 찬양으로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 혼만이 흥분되어서 찬양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찬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5. 그러므로 제대로 하나님을 찬양하려면 영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영은 예배하는 기관이며(요4:24),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고 깨닫고 즐거워하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욥32:8,롬8:16). 고로 만약 자신이 제대로 찬양을 부르기를 원한다면 그는 반드시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찬양을 불러야 합니다. 왜냐하면 레17:11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읽어보면, 사람에게 있어서 육체의 생명(혼=네페쉬)은 피에 있으며, 피가 생명(혼=네페쉬)을 속죄한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피를 가진 존재는 다들 혼(soul)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셰퍼트나 앵무새나 돌고래 등도 다 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혼()은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사람의 "지정의"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동물들도 어느 정도 지정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들 중에는 단 하나의 존재도 자기 속에 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사람에게만 영을 주셨기 때문입니다(욥32:8,슥12:1,창2:7).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이러한 자신의 영을 사용하지 않고 혼을 사용하여 마귀의 말에 순종하는 바람에 혼이 그만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후로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교통하는 영은 점차 그 기능이 상실되고 말았고, 혼은 비정상적으로 확대되었으며, 혼이 교만해졌고 결국 죄로 오염된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속죄를 받아야 할 영역은 다름이 아니라 혼(네페쉬)이라는 기관이며, 하나님의 영(루아흐)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간은 사람의 영(루아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오순절 성령강림이후의 성도들 중에 회개생활을 잘 하고 있고 십계명에 잘 순종하고 있는 자는 자신의 영이 드리는 기도를 자신의 혼도 잘 파악하고 있으며, 자신의 영에게 성령께서 말씀하고 있는 것도 잘 알아차린 가운데 그것을 목표로 잘 달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영으로 성령을 접촉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혼에 묻은 죄들을 날마다 예수님의 피로 씻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은혜가 충만하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019년 4월 9일(화)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