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하는 것은 그리 문제되지는 않으나, 왜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는 우상숭배행위가 되는가?(민19:11~22)_2019-08-19(월)

갈렙 2019.08.19 08:02:48 동영상URL: https://youtu.be/PMSDdCngNhU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조문하는 것은 그리 문제되지는 않으나, 왜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는 우상숭배행위가 되는가?(민19:11~22)_2019-08-19(월)

https://youtu.be/PMSDdCngNhU

 

1.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는 정말 우상숭배행위일까요?

   그렇습니다.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는 변형된 제사의식이기 때문입니다.

 

2. 추도예배와 장례예배가 유사 우상숭배행위가 되는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고전10:20에 의하면, 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고로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는 형식만 기독교형태로 바꾼 것일 뿐 변형된 우상숭배행위인 것입니다. 둘째,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행위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인데, 장례가 났거나 죽은 자를 기념하기 위해 드리는 장례추도예배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할 뿐더러, 죽은 자를 위해 드리거나 죽은 자 때문에 드리는 예배이기에,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는 어떻게 됩니까? 사탄마귀가 와서 그 예배를 대신 받게 됩니다. 셋째,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는 죽은 자 때문에 드리는 예배이므로 죽은 자를 미화하고 죽은 자를 신격화하는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사 우상숭배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넷째, 구약시대에 죽은 자의 시체는 부정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민19:11~22). 고로 죽은 자 때문에 예배를 드린다면 예배가 더이상 예배가 되지 못하고 그만 더럽혀지고 맙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이름이 더럽혀진 예배를 받으시지 아니합니다. 특히 장례예배는 대부분 죽은 시신이 있는 장소나 현장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인데, 죽은 시체를 만진 자도 부정한 것이지만 그 시체가 있는 공간(장막)도 함께 부정해지고, 그 시체를 만진 자가 접촉한 것도 부정해진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죽은 자가 있는 장례식장에 가서 죽은 자를 위해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섯째,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는 원래 교회의식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는 원래 교회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1897년 정동감리교회 이무영 성도가 모친 기일을 맞이하여 핍박을 면해보기 위해 고안한 것을 교회가 받아들인 것이고, 이어서 교단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고로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는 합당한 예배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고로,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는 기독교예식을 빙자한 유사 우상숭배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3.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나 우상숭배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는 현상적이고 결과적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첫째로, 사례적으로 보았을 때에 성경에는 단 한 번도 죽은 사람을 위해 그러한 예배를 드렸다고 한 사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문했거나 장례식을 치렀다는 대목은 나옵니다. 사람이 죽었으니 가족을 잃은 것이요, 가족을 잃었다는 것은 잠시동안(혹은 영원히)이지만 이별의 슬픔(아픔)을 맞게 된 것이기 때문에, 가서 위로하고 조문하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가서 죽은 시체로 인하여 부정해졌고 부정한 공간에 가서 예배를 드려준다는 것은 결코 합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죽은 시체가 있는 공간에서 예배한다는 것은 나무에 붙어있는 살아있는 꽃을 억지로 꺾어서 화분에 꽂아놓고는 박수치며 기뻐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에 그것을 통해서 성도들에게까지 저주와 가난과 질병 그리고 사건사고와 우환이 끊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믿는 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심으로 율법의 저주를 담당했기 때문에, 더이상 받을 저주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저주를 받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죽은 자를 위해 예배하는 것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유사 우상숭배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구약의 율법 중에서 의식적인 부정은 더이상 사람을 정죄하지 못합니다. 예수께서 완성하심으로 폐지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십계명을 어길 때에는 지금도 그것은 사람에게 정죄를 합니다. 다시 말해, 성도라도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어기게 되면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행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죽은 자를 위해 예배를 드리거나 국화꽃을 바치는 행위는 분명히 우상숭배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우상숭배행위가 아니라고 한다면, 왜 예수 잘 믿는 성도가 중한 암병에 시달리게 되고, 사건사고에 늘 치어살며, 자녀들은 유리방황하며, 가난이 떠나지 않으며, 질병에 걸려 고통받는 자가 그리도 많은 것입니까? 성도들치고 사실 범죄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되돌아보아도 추도예배와 장례예배 이외에는 성도들에게 다른 심각한 우상숭배행위가 발견되지 않습니니다(물론 권사가 하도 기도응답이 되지 않아서 점치러 왔었다는 것을 무당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겠죠). 어찌보면 사실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우상숭배행위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바로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왜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를 드리면 저주가 찾아옵니까?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는 첫째, 사망이 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망은 사실 마귀가 사용하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왜냐하면 사탄마귀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이기 때문입니다(히2:14). 그런데 신명기30:19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여기에 보니, 생명과 복이 한 짝을 이루고 있고, 사망은 저주와 한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고로 사망이 임한 곳에는 저주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둘째, 추도예배나 장례예배에 귀신이 와서 그 경배를 받는데, 귀신은 저주받은 영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누군가가 죽었을 때에 그의 유가족을 위로하고 조문을 하는 것은 사실상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물론 죽은 영정 사진 앞에서 절하거나, 죽은 영정 사진 앞에 국화꽃을 바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 죽은 사람의 영정 사진을 놓고 절을 하거나 국화꽃을 바치게 되면 그때에는 그것을 받는 대상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죽은 사람을 가장한 귀신들입니다. 이때 귀신들은 저주받은 영이기 때문에,그날 절하거나 꽃을 바친 사람에게 그 저주받은 영의 영향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 속으로 귀신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로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를 드리면 저주가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5. 성도가 특히 중직자가 중한 병에 걸렸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죽음 앞에서 회개시켜 천국에 데려가시려고, 지금 징계 안에 두신 것인데, 이 때에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를 위한 하나님의 인내하심이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고로, 중직자로서 구역장이나 장로 권사 그리고 목회자가 중한 질병에 걸렸으면, 즉시 자신이 우상숭배한 죄는 없나, 음행의 죄나 심각한 범죄를 한 것이 없나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회개하지 못한다면 그는 죽을 때에 구원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계3:5). 그러므로 가족 중에 중한 병에 걸렸다면 즉시 그 사람을 위해서 첫째, 중보기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사람이 회개하여 죄를 완전히 씻어버리게 해달라고 청원하는 것입니다. 둘째, 그 사람 주변에 몰려들고 있는 귀신들을 결박해야 합니다. 귀신이 계속이 찾아와 그를 겁주거나 속여버리기 때문입니다. 한 번 구원 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고 속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2019년 8월 19일(월)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