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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앞에 결산은 어떻게 이뤄지는가?(11:1~15)

[일시] 20191229(주일) 오전9,11

[찬송] 39장 주 은혜를 받으려, 369장 죄짐맡은 우리구주, 597장 이전에 주님을 내가 몰라

PW: 믿음, MIW: 결산

T.S: 믿음이란 결산할 때에 하늘의 상을 잃지 않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기해년 황금돼지띠의 해도 어느새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올 연초에 우리는 어떠한 마음과 자세로 한 해를 맞이했었나요? 그리고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간 우리는 또 어떻게 한 해를 맞이해야 할까요? 적어도 우리는 이미 내가 일구어놓았던 것이 하나도 허물어지지 않은 채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일구어놓은 것들을 하나도 허물어뜨리지 않은 채 다음 해를 맞이할 수 있을까요? 아니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우리가 이 세상에 믿음 지키고 주님을 위해 살았던 모든 흔적들이 하나도 허물어지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오늘은 2019년 기해년의 마지막 주일에 한 해를 마감하면서 나는 과연 어떤 일에 충실했는지를 살펴보고, 이미 일구어놓은 것들을 하나도 허물어뜨리지 않은 채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할 수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세례요한이 예수님으로부터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최고라고 일컬어졌지만,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는 더 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여자가 낳은 사람들 중에 최고라는 칭찬을 들었던 세례요한은 어떻게 되어서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가 될 것이라고 했을까요?

그는 대체 무엇을 잘못 생각했길래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던 것인가요?

그는 대체 마지막에 가서 무슨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길래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가 되어야 했던 것인가요?

 

2)청중적 접근

우리 주변에 보면 처음에는 잘 나가던 사람이었는데, 그의 말년은 너무나 초라하기 그지없는 사람이 되는 경우를 가끔씩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처음은 미약하였지만 나중에 가서 잘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경우는 앞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럼,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28년경 곧 예수님의 공생애의 중기에 세례요한이 요단강 서편에 있는 마케루스라는 헤롯의 여름궁궐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세례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당신이 바로 그 메시야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은 기다려야합니까라고 질문을 던지자, 그 질문에 대하여 예수께서 들려주신 대답과 또한 그의 제자들이 돌아가자 예수께서 무리들을 향하여 세례요한에 대하여 평가해주신 말씀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이때 예수께서는 세례요한을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라고 평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했던 메시야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마지막 주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을 평가하시기를 한 마디로, “여자가 낳은 자들 중에 세례요한보다 더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가 낳은 자들이란 결국 모든 인류를 가리키는 말인데, 주님은 세례요한더러 여자가 낳은 사람들 곧 인류 가운데에 최고라는 극찬을 아끼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리고 만약 무리들이 즐겨받기를 원한다면, 그는 말라기서에 올 것이라고 예언되었던 바로 그 엘리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에 대한 평가를 한 가지 덧붙히셨습니다. 그것은 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 그는 실족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실족하게 되면 천국에서는 결코 큰 자라고 일컬음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께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생각해버리면 누구나 실족하게 됩니다.

믿음이 있어도 자기가 억압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주님이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에는 실족하게 됩니다.

믿음이 있어도 주님께서는 왜 자신을 어려움으로부터 구해주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 쉽게 실족하게 됩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음으로 쉽게 실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다른 것에 있기에 그렇게 보이는 것 뿐입니다.

그렇다면, 왜 세례요한은 마지막 죽음에 앞서 실족하게 된 것일까요?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 세례요한 그는 누구인가?

세례요한은 B.C.4년경 예수님보다 일찍 6개월 먼저 태어난 사람으로서, 당시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이었던 사가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예수님의 오신 길을 예비할 자로서 성별된 자였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자라났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30세가 되었을 때 그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는 요단강에서 자신의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푼 것입니다. 즉 사람들을 향하여 회개하시오. 왜냐하면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라는 말로서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오심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그분에게 세례를 받으려하였지만 예수께서는 한사코 자기에게 세례를 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세례요한은 허락하였고,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물 속에 들어갔다가 올라올 무렵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그러자 그때부터 세례요한은 그를 세상에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분입니다. 이분은 나보다 앞선 자로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이이시며,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나는 이분의 신발끈을 풀기에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흥하여야 하겠지만 나는 쇠하여져야 합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례요한은 자신이 세례를 주던 요단강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마케루스라는 헤롯의 여름궁전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헤롯안디바를 향하여,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책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헤롯안디바는 그 일로 인하여 요한을 붙잡아서 지하 땅굴 감옥에 그를 가두었습니다.

그러자 세례요한은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메시야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질문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11: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는 예수께서 구약에 선지자들에 의해 약속된 바로 그 메시야이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메시야가 오면 이러한 일을 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러한 예언의 말씀을 이사야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35:5-6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그렇습니다. 세례요한은 감옥에서 지금 당신이 그 메시야가 맞느냐고 질문하였는데, 주님께서는 맞다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 왜 세례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최고의 사람인가?

그런데 그의 제자들이 돌아갔을 때에 주님께서는 세례요한이 어떤 사람인지를 무리들에게 설명을 해 줍니다.

첫째, 세례요한은 선지자보다도 더 나은(뛰어난) 자라는 것입니다(11:9).

11: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둘째, 세례요한은 여자가 낳은 사람들 중에 최고라는 것입니다(11:11).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세례요한을 선지자보다도 더 뛰어난 선지자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최고의 사람이라고 극찬을 했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적어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그가 구약의 선지자의 마지막 주자가 되어서, “이분이 바로 그분입니다라고 바로 앞서서 예수님을 모든 사람에게 소개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의 외침으로 인하여 사람들을 이제 천국으로 인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하여 천국을 침노할 수 있도록 그 길을 바로 인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것은 조금 감추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그가 인류의 대표자로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할 어린양이신 예수님께 죄를 넘겨주었던 장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세례요한은 예수님더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왜 세례요한은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가 되었는가?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예수께서는 천국에 들어갔을 때 세례요한이 어느 정도의 사람이 될른지를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이 본문을 헬라어성경으로 직역해보겠습니다.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인들이 낳은 자들 중에 세례요한보다 더 큰 이가 일으켜진 채 있지 않다. 그런데 하늘들의 왕국 안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그 사람보다는 더 크다.

그토록 위대한 자라 칭찬을 들었던 세례요한은 어떻게 되어서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가 될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까요?

어떤 사람은 이 말을 해석하기를, 세례요한이 위대한 선지자이기는 하지만 그는 그리스도를 자기 밖에서 두었을 뿐 자기의 마음 속에 직접 모시지는 못했기,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어떤 이는 그가 그리스도와 한 몸된 신부가 되지 못했기에, 그는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이 땅에서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칭함을 받아도 천국에 들어간 사람의 영광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대답은 2가지입니다.

첫째, 세례요한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기를 감옥에서 구해주지 아니한 것에 대하여 원망과 불평, 의심과 회의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의 사명은 무엇이었습니까?

1: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1: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그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라고 보냄을 받았는데, 그는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당신이 그리스도이십니까?

또한 그는 원망과 불평, 의심과 회의를 가졌습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않는 예수님을 모습을 보면서 실족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는 걸려넘어져 있었습니다.

11: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걸려넘어지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그럼, 세례요한은 무엇에 걸려 넘어져 있었을까요? 그것은 2가지입니다. 첫째, 예수께서 불의한 자를 심판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왜 잘못한 일이 없는 자신을 왜 주님은 돌아보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잘도 고쳐주시고 죽은 자도 살려주시고, 문둥병도 고쳐주시는데, 왜 예수께서는 지금 세례요한이 옥에 갇혀 고통을 받고 있는데, 왜 자신을 돌아보지 않느냐고 실족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구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섭섭한 마음과 원망이 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사실 그가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은 그가 나쁜 일을 해서 갇힌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헤롯이 자신의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자신의 아내로 취했기 때문에, 그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왕이라도 책망했기 때문니다. 그러면 잘한 것입니다. 간음하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있으니 회개하지 않는 자는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으면 잘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면 그것이 그에게 영광이었던 것이지 비참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신을 구해주지 않는다고 예수님에게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마지막 모습은 그가 그간 일구어놓았던 하늘의 상급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를 알게 되었는데, 자기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해서 예수님더러 진정 그리스도인지 밝히 말씀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메시야인지 아닌지를 시험하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진짜 메시야인지 아닌지를 의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장 자기를 구해주지 않는다고, 예수께서 메시야이신 것을 의심하는 발언을 한 것은 그의 커다란 실수였습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오늘날 우리들도 이럴 수 있습니다. 내가 성령충만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에는 기쁘고 행복하고 즐거워합니다. 나같은 죄인을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구나를 생각하면 눈물이 하염없이 흐릅니다.

그런데 어느날 자기 혼자 버려진 듯 주님께서도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에는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시는지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은 쉽게 다 진급하고, 다른 사람은 다 집을 사고, 다른 사람은 자식이 다 대학에 합격하고, 다른 사람은 다 잘 되는데, 왜 자신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혹독하시는가 생각하게 되면 그만 실족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를 잘 이겨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이러한 시험을 이길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정의할 때 가능합니다.

그럼, 예수께서 는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11: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예수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까? 병을 고쳐주시려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까? 장애를 고쳐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까? 죽은 자를 살려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메시야로 오신 것에 대한 표적으로 보여준 것이지, 진짜는 그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죄에 매여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운명에 처한 자들을 살려내시어 그들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 살게 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해주어 그들로 회개하여 천국을 기업으로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구해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오신 분명한 목적은 사탄에 매여있는 우리 인생을 해방시켜 저 하늘나라고 데려가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생각하는 것과 예수님이 생각하는 것이 다를 때에 우리는 세례요한처럼 회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만약 그분이 우리의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할지라도, 어디에나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알고 실족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주님이 오신 목적을 제대로 알아 마지막 순간까지 실족하지 말고 인내함으로 신앙에 꼭 승리하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첫째, 우리는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20:23-24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둘째, 일이 내 기대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원망하지 말로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따라 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실족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실족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기대와 예수님의 기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아마도 예수께서 오셔서 자신을 구해줄 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자신의 의로운 행동에 지지를 표명해줄 정도는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분명 이 땅에 육신의 자유와 해방을 주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의 권력자나 정부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나라를 되찾아주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오신 목적은 죄에 매여 있는 인류에게 속죄를 가져다 주고 마귀에게 붙들려 있는 인생들을 해방시켜 주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이 이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을 맞이하려면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외치는 것으로 그는 만족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구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서운함을 표현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니까, 마지막 시기에는 짐승에 의해 죽임당할 성도들도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때 왜 하나님은 나를 돌아보지 않느냐고 의심과 불평을 쏟아낸다면 그는 세례요한처럼 자신이 그동안 쌓아둔 모든 공력은 다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13:10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우리는 우리가 그동안 쌓아둔 것을 가지고 다시 출발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명을 흔들리거나 원망과 불평, 의심과 회의를 갖게 되면, 우리는 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동안 자신이 쌓아두었던 것을 우리가 지켜내는 것은 주님은 살아계시며, 지금도 나를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시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우리의 삶의 현상에 들어오시고, 때로는 우리의 사명이 끝났으면 우리를 데려가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인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합니다. 우리의 입술로 그만 지금까지 쌓아두었던 공력을 다 허물어버립니다. 우리의 원망과 불평이 얼마나 우리에게 치명적인 해를 가져다 주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는 것은 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 결단의 축복

주님은 주님의 때가 되면 역사하십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에 대해 주님께서 역사하시면 그대로 감사하면 될 것이요, 내가 생각하던 것과 달리 그분이 침묵하시는 듯 하시면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구나하고 생각하시고 때를 기다리시면 됩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그리고 나를 향한 다른 뜻이 여기에 있는 모양이로구나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세례요한 그는 정작 천국에 들어가는 최종적인 관문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던 장본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랬던 세례요한이었지만 자신이 옥에 갇혔을 때에 주님께서 돌아보지 않는다고 주님을 시험함으로 그가 쌓아올렸던 모든 공력은 다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곧 있으면 2020년 새 해가 시작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쌓아 올려두었던 모든 것을 다 허물어버리고 다시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 쌓아두었던 것을 바탕으로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는 우리가 결정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인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인내는 우리의 결실을 풍족하게 하는 마지막 열쇠입니다. “인내는 우리의 쌓아올린 모든 공력이 허물이지 않도록 방어해주는 최종의 무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참지 못합니다. 인내함으로 끝내 결실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인내하심으로 이미 있는 것을 가지고 다음의 일을 그 위에서 추진하십시오. 그러면 그는 천국에서 큰 자라고 일컬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세례요한은 죽을 무렵에 가서야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겸손히 죽음을 맞이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우리가 그간 쌓아올린 상급이 허물어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나의 기대와 하나님의 뜻이 다를 때에는 인내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나의 기대와 하나님의 뜻이 다를 때에는 쉽게 낙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원망과 불평, 의심과 회의가 얼마나 우리의 신앙생활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내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함부로 말을 해버렸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사명에 충실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잘 인내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과 때를 깨닫지 못하게 방해한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원망과 불평으로 나를 이끌어가려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항상 감사할지어다. 인내로서 때를 기다릴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쌓아올린 상급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구나.

2. 원망과 불평, 의심과 회의는 상급의 최대의 적이로구나.

3. 모든 사람과 교회는 사명에 충성해야 하는구나.

4. 누구든지 인내하는 자가 결실을 맺게 되는구나.

5. 나의 기대와 하나님의 뜻이 다를 때에는 기다려야 하는구나.

6. 함부로 말했다가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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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감추어져야 했지만 알려져야 했던 놀라운 소식(마2:1~12)_2019-12-25(수) 갈렙 2019.12.25 132
261 세 종류의 경배자들(마2:1~12)_2019-12-22(주일) 갈렙 2019.12.22 186
260 스룹바벨이 들려주는 놀라운 메시야 족보 이야기(마1:12)_2019-12-15(주일) 갈렙 2019.12.15 281
259 메시야의 조상 다윗이 들려주는 족보 이야기(마1:6)_2019-12-08(주일) 갈렙 2019.12.08 187
258 메시야의 족보에 담겨있는 놀라운 비밀(마1:6~11)_2019-12-01(주일) 갈렙 2019.12.01 187
257 그 길을 어떻게 영광의 길이라 할 수 있나?(요13:30~32)_2019-11-24(주일) 갈렙 2019.11.24 141
256 죽은 자를 기념하는데 왜 예수님은 되고 죽은 자들은 안 되는가?(고전11:23~26)_291-11-17(주일) 갈렙 2019.11.17 209
255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눅13:22~30)_2019-11-10(주일) 갈렙 2019.11.10 272
254 초막절을 지키지 않으면 정말 비를 내리지 아니하는가?(슥14:16~19)_2019-11-03(주일) 갈렙 2019.11.02 268
253 왜 하나님은 일주일간 초막에 거주하라고 했을까?(레23:39~44)_2019-10-27(주일) 갈렙 2019.10.27 183
252 받은 은혜에 내 한 목숨 주님께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눅17:11~19)_2019-10-20(주일) 갈렙 2019.10.19 213
251 외부세력의 위협 앞에서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행4:23~32)_2019-10-13(주일) 갈렙 2019.10.13 381
250 이제는 WCC와 WEA에 속한 교회를 떠나야 하는가?(계18:1~8)_2019-10-06(주일) 갈렙 2019.10.06 262
249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 과연 어디까지 해야 하나?(요18:33~38)_2019-09-29(주일) 갈렙 2019.09.29 194
248 예수님 이후 참된 지혜자는 누구인가?(마11:25~27)_2019-09-22(주일) 갈렙 2019.09.21 219
247 우리의 본향은 진정 어디인가?(히11:8~16)_2019-09-15(주일) 갈렙 2019.09.15 352
246 주기도문강해(08)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마6:13)_2019-09-08(주일) 갈렙 2019.09.07 183
245 주기도문강해(0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6:9)_2019-09-01(주일) 갈렙 2019.09.01 184
244 바울의 기도와 내가 드려야 할 기도(엡1:15~19)_2019-08-25(주일) 갈렙 2019.08.25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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