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와 천국복음(07) 구원에 있어서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약2:20~26)_2020-07-28(화)

갈렙 2020.07.28 07:57:04 동영상URL: https://youtu.be/5ii0UAL_etQ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회개와 천국복음(07) 구원에 있어서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약2:20~26)_2020-07-28(화)

https://youtu.be/5ii0UAL_etQ

 

1. 구원의 필수조건은 무엇인가요?

  구원의 필수조건은 "믿음과 회개"입니다(막1:15).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믿은 후부터 성도는 날마다 회개하여 성결한 삶을 살다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2. 왜 행위들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는 것인가요?

  행위들이 구원이 조건이 되어버리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첫째, 얼마만큼 행위들을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으므로 구원이 요원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믿음과 회개가 부족할 경우, 행함으로서 그것들의 부족한 면을 메우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행위를 많이 한 사람은 자신의 행함(자기의 의)를 드러내어 자랑하게 되고, 행함이 없는 자를 비난하거나 멸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믿는 자들의 구원에 있어서 행위는 왜 염두해 두어야 하는 것인가요?

  믿는 자들이 구원을 받는 데에 행위가 구원에 전혀 상관이 없다고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약2:14). 하지만 행위를 구원으로 조건이라고 단정하고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왜냐하면 눅23장에 나오는 한 편 강도는 행위가 없었어도 그날 낙원(천국)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손치더라도 우리는 행위를 무시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고보 장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했고(약2:26), 그러한 믿음은 결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약2:14). 그렇다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것을 언급하고 있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야고보서와 충돌되는 것이 아닌가요? 얼핏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겠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둘은 바라보는 시점이 약간 다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시작으로서의 칭의를 말하고 있다면, 야고보서는 믿음생활을 끝마칠 무렵 인생을 뒤돌아볼 때에 말하는 칭의 곧 완성단계에서의 칭의를 말하고 있기 때무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믿음이 있었다고 말은 하지만 인생의 말기에 행함의 열매들이 그에게서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사실 헛 것인 것이 분명합니다. 고로 야고보서는 마무리단계로서의 칭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칭의를 말하는 기준점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처음 출발점을 가리키고 있다면, 야고보서는 마지막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믿는 자들의 구원에 있어서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구원에 있어서 믿는 성도의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그것은 크게 3가지 정도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째, 성도에게 있어서 행위는 나 자신이 구원을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가늠케 해주는 척도(바로비터)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행위의 열매들은 자신이 지금 온전한 믿음과 회개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척도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장로는 행위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2:14)",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둘째, 성도에게 있어서 행위는 심판의 기준이 되므로 나로 하여금 언제나 심판을 대비하게 도와주는 것이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심판받는 기준은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들입니다(계20:12,22:12). 각자 자신의 행위를 따라(행위책에 기록되어 있는대로) 각자 심판을 받는 것이지 믿음대로 심판을 받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자신에게 믿음에 따르는 열매로서의 행위들이 보이지 않을 때에, 그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그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 바로 행위들입니다. 그럼, 이러한 행위들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도덕법으로서 "십계명"입니다. 구약의 의식법(절기법, 음식법, 제사법, 성결법)은 이미 예수께서 완성하심으로 폐기되었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지켜야 할 법으로서 천국헌법은 도덕법인 십계명뿐입니다. 십계명법은 마음과 말과 행동을 규정하고 있는 법이었는데, 예수께서 오셔서는 행동의 법까지 마음의 법으로서 확장시키셨습니다. 즉 마음으로 미워하며 살인죄요, 마음의 간음해도 간음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을 따라 심판받을 자처럼 살 것이 아니라 십계명법에 따라 심판받을 자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마25장에 보면, 양과 염소의 심판의 비유가 나오는데, 이때 영영한 불의 형벌에 들어갈 자는 왼편에 있는 자들로서 그들은 말만 하고 행동에 옮긴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마25:41~46). 

  셋째, 마지막으로 성도에게 있어서 행위는 만약 그가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가 된다면 천국에서 상급이 되기 때문에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천국에 들어가서 받게 될 상급은 크게 3가지인데 그것은 "살 집(저택)"(요14:1~2)과 "면류관"(딤후4:7~8)과 자기를 섬겨줄 "천사들"(히1:14)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급은 끝없는 시간 안에서 영원히 주어질 것이기에, 우리는 마치 상을 얻기 위해 달려가는 자처럼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언제나 자신도 "하나님이 위에서 주실 부름의 상을 위해 계속해서 달려가고 있다(빌3:12~14)"고 하였으며,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는 "너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아니할 줄 안다(고전15:59)"고 분명히 가르쳐주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오시면 상이 있을 것입니다(계22:12). 그러므로 행위들는 천국에 들어갔을 경우에는 그것이 상으로 도로받을 것들이 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5. 바울은 구원의 과정을 마치 무엇과 같다고 비유하였나요?

  바울은 구원의 과정을 마치 경주자로 비유했습니다(고전9:24~27, 빌3:12~14, 딤후4:7~8). 그는 성도들에게 상얻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경주자라고 했습니다. 고로 오늘날 우리가 "나는 상을 얻기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는 말은 지극히 정상적인 말이며 지극히 온전한 구원관의 고백인 것입니다. 성도들 중에는 "나는 천국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부지런히 봉사하고 헌금할 필교가 있었어? 그런 것은 천국에서 받지 않으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마치 상을 얻는 것을 구원얻는 것처럼 생각하며 달려가야 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받을 상은 영원무궁토록 내가 누릴 축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020년 07월 28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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