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철목사, 그가 외치는 행위구원론의 기준은 과연 합당한가?(마7:19~27)_2018-02-06(화)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by 갈렙 posted Feb 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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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정이철목사,. 그가 외치는 행위구원론의 기준은 과연 합당한가?(마7:19~27)
https://youtu.be/s44uodEP_vU

 

1. 미국에서 "바른 믿음"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는 정이철목사(자신이 총신출신이라고 밝히고 있음)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니며, 현재 한국교회의 구원론은 구원파와 가깝다"고 말한 전 총신대 김세윤교수에 대해서 행위구원론자라고 하고,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외치고 있는 고신대 박영돈교수를 이단옹호자라고 매도하더니, 지난 2018년 1월 10일에는 정병진목사(동탄명성교회)에 대해서 기독교의 신앙을 파괴하는 행위구원론자요 이단사상 전파자라고 했습니다. 무슨 근거로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는가 그분이 쓴 글을 보았더니, 믿음과 더불어 회개와 성화가 구원을 얻게한다는 주장을 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는 이신칭의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행위구원론이 무엇이며,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른 구원론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단정죄를 하려는 거짓된이단판별사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들을 "행위구원론"같은 잣대로 매도하기를 잘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행위구원론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교회사적으로 어떤 의미였을까요?

 

 

2. "행위구원론"이란 예수님이 없이도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상을 의미합니다. 이는 중세시대를 열기 직전에 펠라기우스(A.D.354~418)라는 사람이 주장한 이단사설입니다. 어거스틴과 동시대에 살았던 펠라기우스가 말한 그의 사상을 요약해보면, 그것은 이렇습니다. "첫째, 인간은 본성은 선하며 선하게 태어난다. 그러므로 둘째, 모든 태어나는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셋째, 아담의 범죄는 단지 개인적인 일에 불과하다. 넷째, 인간이 구원을 얻는 데에 성령의 역사가 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같이 다 비성경적인 주장들입니다. 그렇다면 이같은 주장은 왜 비성경적일까요?(시51:3~5, 롬5:12, 요16:7~9, 마12:20).

시51:3-5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요16:7-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마12: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3. 펠라기우스가 주장했던 거의 대부분은 다 비성경적입니다. 왜냐하면 최초로 창조되었던 인간은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그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인간은 자기의 내면에 죄성을 가진 채 태어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다윗은 모태로부터 자신이 죄가운데 태어났고 그래서 죄를 범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고 했으며(시51:3~5), 사도바울도 한 사람 곧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했습니다(롬5:12). 그리고 사람이 구원얻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움은 필요적인 것임을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요16:11). 왜냐하면 인간의 상태는 이미 죄로 심각하게 오염된 상태여서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없으면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칼빈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인간의 상태가 전적으로 무능력하기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주셔야 하는 상태는 아닙니다. 인간이 죄로 오염되기는 했으나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인간이 그것을 반응한다면 얼마든지 다시 회개하고 믿어서 구원을 향하여 바르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인간의 상태를 어떻게 진단했으며, 그것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마12:20, 사42:1~3).

마12: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사42:1-3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구원얻습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고 사도들이 증언했던 참되고 바른 구원관은 어떤 것입니까?(막1:15, 마4:17, 눅24:47, 행5:30~31, 20:21)

막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마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눅24: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행5:30-31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행20:20-21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5. 고로 사람이 구원을 얻으려면 믿음이 있어야 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사실 참된 믿음을 가지려면 회개가 필요하며, 회개하는 자가 비로소 참된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이철목사는 믿음과 회개로 구원을 얻는다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도들의 증언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말씀을 그대로 전파하는 정병진목사를 행위구원론자로 매도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루터의 가르침이나 만세전개인예정 및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칼빈의 가르침을 제가 따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아니 예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루터와 칼빈의 신학사상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루터나 칼빈처럼 위대한 신학자라도 성경대로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따라가서는 아니 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루터나 칼빈같은 신학자들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회개가 구원을 위한 행위라고 언급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이철목사는 무슨 근거로 회개를 말하면 그것이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그것을 남들을 정죄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기준을 세워놓으면 그것이 진리이고 정통이라는 말입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셔도 소용이 없고 자기의 말이 옳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러면 믿음에 따른 열매로서의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비록 그것을 구원의 기준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이러한 의미는 없습니다. 첫째로, 행위는 자신이 온전한 믿음을 가진 채 그 믿음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척도(바로미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약2:14,21~26). 둘째로, 구원을 받으면 그것이 상급으로 내게 되돌아오기 때문에 의미가 있습니다(마16:27,계22:12).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면, 내가 장차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심판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사람들을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마7:19~20).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기준을 "믿음과 회개"라고는 말할 수 있겠지만, "믿음과 회개와 행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 왜 그런지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마7:21~23, 마6:1~4, 눅18:11~12, 마7:1~5)

마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6:1-4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눅18:11-12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마7:1-5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그렇습니다. 행위구원론은 잘못된 구원론입니다. 만약 행위(정확히는 율법이 제시하고 있는 행위들)를 구원으로 기준으로 제시한다면 아무도 구원받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미 아담의 죄성을 자기 내면에 가지고 있고 밖에는 귀신들이 유혹하고 있는데, 어떻게 죄를 짓지 않고 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은 오직 믿음과 회개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위"를 구원의 기준의 하나로 넣으시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첫째 자신의 믿음이 부족한 데 그것을 기도와 말씀으로 해결하지 않은 채, 행함으로 떼우려고 시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마7:21~23). 예를 들어 믿음이 부족하고 회개하지 않아도 자기는 빠짐없이 주일성수했고 십일조를 내고 봉사하고 있으니 구원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러면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꾸 자기의 의를 드러내려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 앞에 의를 행하려고(보이려고) 시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마6:1~4, 눅18:11~12). 그리고 셋째로, 행위를 하지 못하는 남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마7:1~5). 그러므로 우리들은 바르게 예수님을 믿었으면, 일생동안, 계속해서, 매일, 죽을 때까지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8년 2월 6일(화)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