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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미니안과 칼빈주의 논쟁

울산북부교회 이석배목사

 

알미니안 논쟁

사랑하는 방송가족 여러분, 한 주간 동안도 주님 안에서 평안하셨습니까? 울산북부교회 이석배목사입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종교개혁시대의 역사를 살펴보는 가운데, 오늘은 당시의 유명한 <교리 논쟁> 한 가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사이의 교리 논쟁입니다. 논쟁 그러면, 여러분들 대부분 부담스러워하실 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부분을 살펴보는 것이 대단히 유익한 이유는, 이 논쟁은 그 시대에 가장 치열했던 역사적인 논쟁이었을 뿐 아니라, 이 논쟁으로 인해서 오늘날까지 개신교 교회가 큰 영향을 받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 문제는 우리들 자신도 얼마든지 겪는 신앙적 난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논쟁이 일어난 시대와 장소는 1590년대와 1600년대 초엽 즉, 17세기 초의 󰡐네덜란드󰡑였습니다. 이 나라는(화란이라고도 하죠), 후에 베스트팔렌 조약(1648)으로 비로소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지만, 아직 그 이전인 이 당시만 해도, 정치적으로는 남부지역과 북부지역으로 첨예하게 구분되어져 있었고, 종교적으로는 기존의 카톨릭에 대항하여 루터적인 개신교가 먼저 들어왔었지만, 뒤이어 들어온 칼빈주의적 개신교가 들어와서 강력하게 득세하고 있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 자유로운 나라에서 칼빈주의적 교리, 특히 <예정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으니,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알미니우스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사람은 오늘날의 모든 자유주의적 신학사상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감리교를 비롯해서 성결교, 오순절주의자들 할 것 없이, 이 사람과 그의 사상인 알미니안주의의 영향을 안 받은 교파가 거의 없습니다. 이 사상은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도 칼빈의 주장과 같이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예정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발적 동의와 의지적인 노력이 반드시 들어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그 골자로 하는 사상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니, 성경은 뭐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 여기에 대한 해석과 입장이 첨예하게 달라져서 이것이 큰 논쟁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알미니우스는 어떤 사람일까요?

이 알미니우스는 종교개혁의 난류가 유럽에 소용돌이치던 1560년에, 이 나라의 홀란드령에 있던 우데바티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에 그의 홀어머니와 형제들은 가톨릭 신앙을 거부한 까닭으로 그 지방을 점령한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여 그는 고아가 되었습니다. 그는 마르부르크 대학과 라이덴 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나중에는 칼빈주의 신앙의 본거지인 제네바에 유학해서, 칼빈의 동료요 후계자인 베자(Theodore Beza)에게서 4년 동안 배우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그의 신학적 입장에 처음부터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 후 그는 귀국해서 15년간 암스텔담에서 목회자로 사역했고, 나중에는 라이덴 대학의 신학교수로 7년 동안 봉직하다가, 4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이 논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논쟁이 시작된 것은 알미니우스가 라이덴 대학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아르미니우스를 특별히 적대한 사람은 같은 대학의 교수로 극단적인 칼빈주의자인 고마루스(F. Gomarus)였는데, 그는 칼빈의 후계자인 베자처럼, 하나님께서는 범죄 이전 즉 세상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얼마의 사람은 구원을 받고,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에 상관없이 멸망당하도록 예정하심으로써 당신의 공의와 사랑을 드러내신다는, 예정설 가운데서도 <타락 전 예정설>을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알미니우스는 말하기를, 이러한 주장은,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죄와 인간의 타락도 예정하셨다는 말이 되어,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오해받게 하는 위험한 가르침이라고 여기고는, 인간의 구원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 하나님의 일방적인 예정에 따른 무조건적인 선택에 의하여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구원을 위해 하신 선택은, 예지하신 믿음을 전제로 하신 것이며, 󰡒믿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천명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은혜󰡑도 인간이 거부할 수 있다고 한 점이었습니다. 그는 이 은혜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선한 일의 시작이요, 계속이요, 마침이다....그러나 이 은혜는 저항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의하면 많은 사람이 성령을 거역하였고, 제공된 은혜를 거절하였기 때문이다.󰡓 (ibid., 253, 254)

 

아르미니우스에 의하면, 󰡒만약 사람이 이 은혜를 거절할 수 없다면, 사람이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한 낱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러한 꼭두각시가 아니라 자녀가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의 거저 주시는 은혜가 사람에 의하여 저항 받을 수 있도록 용납하셨다.󰡓고 논증했다. 그는 요한복음 316절을 거듭하여 인용하면서, 이토록 확실한 성경의 논증에 기초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는 자율적인 사랑의 관계이지 일방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기계적인 관계가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또,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저항할 수 있는 까닭은, 은혜의 속성 때문이 아니라 그 은혜가 역사하는 방식 때문임을 강조하면서, 󰡒하나님께서 범죄까지도 예정하셨다고 가르치는 타락 전 예정설은, 선택받지 못한 인간은 자신들의 범죄 여부에 관계없이, 예정된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간다는 결론에 이르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인간이 범한 죄의 창시자로 오해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라고 하면서 반대하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 반대하는 자들은, 그를 5세기에 활동했던 펠라기우스의 가르침을 좇는 이단이라고 비난했습니다. 펠라기우스는 5세기 초 영국의 수도승이었는데, 인간은 범죄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은 선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적인 은혜의 역사가 없이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행할 수 있다는 일종의 도덕적인 <자력구원설>을 주장했었던 사람입니다.

 

물론 아르미니우스의 견해는 펠라기우스의 것과는 다른 것이지만,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보다도 인간의 의지를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서로 통하는 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아르미니우스는, 자신이 삼위일체에 관하여 성경과 일치하는 확고한 신앙을 가졌음을 거듭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소시누스(Socinus)파라는 무고를 당하기도 했는데, 이는 서로간의 논쟁이 치열해지면서 감정적인 갈등에까지 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무고를 당한 아르미니우스는 자신의 주장이 성경적임을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밝히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적인 분위기에서 이 문제를 토의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종교회의를 열어주도록 국회에 요청했습니다만, 그러나 그의 이러한 요청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과로와 병고에 시달리던 그는, 160910, 49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그가 죽은 다음 해인 1610년에, 아르미니우스의 사상을 지지하는 46명의 목사들이, 이 논쟁을 해결하는 방편으로 다섯 가지 신조를 공인해 주도록 탄원하는 항변서를 국회에 제출합니다. 그러자, 이에 대하여 엄격한 칼빈주의를 표방하는 자들에게서,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는 반항변서를 제출하였으며, 이로 인해서, 아르미니우스 지지자들은 칼빈주의에 항의하는 󰡐항변자󰡑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됩니다. 이 양쪽의 다섯 가지 내용을 서로 비교해보면,

 

칼빈주의 5대 강령

1. 사람의 어떠함이나 행위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창세전에 작정하신 바꿀 수 없는 예정에 따라 구원과 멸망이 각각 정해짐.<무조건적 선택>

 

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예정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만의 속죄를 위한 것임. <제한된 속죄>

 

3. 범죄한 인간은 스스로의 구원을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전적으로 타락하였으며, 실제로 중생은 회심보다 우선함. <전적인 타락>

 

4.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선택된 자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지 않을 수 없도록 저항할 수 없는 은혜로 역사하시지만, 저주가 예정된 자들에게는 이 은혜가 주어지지 아니함. <불가항력적인 은혜>

 

5.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믿음을 가지게 된 사람은 결코 상실되지 않으며 끝까지 보존됨. <궁극적인 견인>

 

칼빈주의 5대 교리(TULIP)

T Total Depravity (Total Inability)

(전적 타락, 전적 무능)

U Unconditional Election

(무조건적인 선택)

L Limited Atonement(Particular Redemption)

(제한 속죄, 곧 특정적 구속)

I Irresistible Calling(or Grace)

(불가항력적인 소명, 또는 은혜)

P Perserverance of the Saints

(성도의 견인<굳을 견 참을 인>)

 

1.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인간은 아담의 범죄후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가거나 복음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아담의 범죄후, 부패한 내적 죄의 본성(7:20-8:2)을 유전받게 된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지식과 일에 대해 죽게 되었고, 영적인 눈과 귀가 멀게 되었다. 아담의 범죄후, 인간의 마음은 기만적인 것이 되었으며, 하나님보시기에 절망적으로 부패하게 되었다. 인간의 의지는 부패한 죄의 본성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고, 인간 자신의 악한 본성에 억눌러 그 죄성에 종노릇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7) 그러므로 인간은 영적인 영역에서 스스로 선함을 선택하여 온전히 행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죄에 종노릇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이 전적 부패가 다음과 같은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부패한 인간은 스스로 선악을 판단할 수 없고 , 선한 행동을 할 수 없고, 가능한 죄들에 대해 깊이 몰입되어있다.

이 전적 부패란 타락한 인간이 인간으로서 하게 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보시기에 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아담의 범죄후 모든 인간이 영적인 면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도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2:1)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허물과 죄로 죽어 사탄의 종이 되어, 우리 육체의의 욕심을 따라 지내고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행하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되었다. (2:2-3)

 

인간의 이 전적 무능력이란 인간의 그 타락한 본성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동이 나 생각등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성령으로 거듭나서 주예수님의 생명주는 영(고전15:45)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공중권세 잡은 자의 종이 되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삶을 산다. (2:2-3)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는 육체의 정욕(5:20-24)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고 그것들을 충족시키도록, 날마다 유인하고 매혹하고 있다. 사람이 비록 선을 행할지라도 자기 자신이나 사람의 영광을 위해 행하는 것이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삶을 살지는 않는다. (6:5, 17:9)

모든 인류가 죄를 사랑하고 있기에, 하나님의 죄의 선고와 심판이 모든 인류에게 내려지게 되었다.(6:5, 17:9) 죄란 사람의 외적인 행위 뿐 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내적 행위와 생각까지 포함한다.

사람은 부패한 내적 죄의 본성으로 인해, 주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마음이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신적인 선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었다"라고 말한다.(3:10-12)

그러므로 인간 본성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을 배척하는 인류는 흑암의 신을 섬기고 흑암을 빛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1:1-12) 또한 범죄한 인간은 흑암의 권세을 잡은 사단의 포로가 되었기에 인간의 그 자유 의지는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즉 마음은 바르게 살기 원하지만, 실제로는 원치 않는 죄를 짓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보시기에 전적으로 부패된 인간의 영혼은 그 자신 스스로의 자유 의지와 마음으로는 주예수님을 영접하는 결단을 내릴 수 없다. (15:40) 이는 거듭나지 못한 인간의 의지가 영적으로 '죽음의 신'인 사단에게 포로되었고 죄와 사망의 법 아래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7:17, 딤후2:36)

 

또 타락한 인류는 그 자신의 모습으로는 완전한 진리에 도달치 못하게 되었고, 오히려 죄와 사망의 법에 순종할 수 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기에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전도와 그 복음을 어리석고 미련한 것으로 받아들인다.(고전2:14)

또한 아담의 범죄후 함께 전적 부패한 사람들은 그 영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신령하고 영원한 하늘의 것들을 볼 수 있거나 생각할 수 없고 깨달을 수 조차 없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빛과 진리와 거룩이신 주예수님을 그분으로 깨닫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였던 것이다.

니고데모역시 이스라엘의 유능한 교사였으나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3:3)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이들은 빛(1:3-10)을 볼 수가 없고 이해할 수 없다. 아담의 범죄후 함께 전적 부패한 인류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생각이나 외적인 어떤 행동을 할 수 없다. (2:8-9) 불순종과 함께 타락한 인류는 소망없이 죄에 얽매여 있는 자들이며, 영적인 죽음의 밧줄로 사단에게 포로 된 자이며, 하나님의 사역과 전혀 상관 없는 자들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타락한 본성이 주의 능력으로 깨어지게 되면 죽음은 영생으로 대치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그 믿음과 열심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자원하여 행하게 된다. (2:13)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선물이며 은사이지, 인간의 행위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모든 인류는 창조전에 하나님의 영원하고도 변함없는 목적을 따라 생명으로 인도될 자들을 예정하시고 선택하셨다. 이 예정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선하고도 기쁘신 뜻에 따라 된 것이며 그분의 선하고도 기쁘신 뜻에 따랄 된 것이며, 그분의 영원한 영광과 존귀를 위한 것이다.

또한 이 예정하시고 선택하심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총과 그영원하신 사랑에 위한 것이지 피조물이 조물주에게 끼칠 어떤 행위나 조건이 원인이 된 것은 아니다. (8:28-29, 7:11,13, 고전 1:26-29, 딤후1:9, 15:16, 1:4, 6:44)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경륜에 따라 예정되고 선택받은 자들만이 죄와 사망과 그 모든 소극적인 것에서부터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을 선물로 받게 된 것이다.(13:48) 주예수님께로 나아온 자는 하나님께서 영원전에 택한 자들이지, 사람이 선택한 것이 아니며 주께로 나오는자들는 결코 내쫓김 당하지 않는다,(6:37-390

엘리사 당시에 이스라엘에 문둥병자가 많았으나 오직 이방인이었던 나이만 장군만이 고침받았으며, 엘리야 시대에 온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의 많은 과부가 있었으나 엘리야가 오직 시돈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만 보내심을 받은 것같이, 주님께서는 영원전에 수많은 사람들중에서 특별한 무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셨으며, 그외의 무리들은 강팍케 되도록 내버려 두셨다.(11:7)

나아만 장군이나 사렙다 과부가 그 은혜를 받을만한 어떤 행위를 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하나님께선 이방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셨고,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신 결과 였던 것이다.(9:18) 하나님께서는 실제적으로 모세의 율법을 지키려는 이스라엘을 무시하시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찾지도 않은 이방인들에게 분수에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베푸셨다.(9:25-29) 하나님께서 인간의 어떤 행위나 선행이나 조건이나 마음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대로(9:15-16) 무조건적인 은혜로 선택하시고 예정하신 것이다. 주예수님께서도 친히 '선택'이 하나님의 뜻에 그 근거를 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6:65-66)

주님께서는 인간들이 스스로 자신의 능력과 선행과 그 행위의 의를 자랑하거나 앞세우거나 교만하지 못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예정하심과 선택하심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된 것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영광과 그 뜻에 적극적으로 순종하며 살아야 하며, 주님이외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3:8) 주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안에서 발견되어지도록 전진해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으로 생명과 믿음의 은사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어떤 인간도 스스로의 결단과 의지와 마음으로는 속죄양되시는 '주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다.(5:40)

 

3.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A.문제제기

그리스도는 누구를 위해 죽으려 오셨으며 실제적으로 누구의 죄에 대해 구속을 성취하려고 이땅에 오셨는가? 이 문제에 대해 정통적인 그리스도인은 두가지 상이한 방법으로 해답을 강구해왔다. 알미니안주의자는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으셨다' 고 말하는 보편속죄를 주장하였으나, 칼빈주의자들은 '그리스도는 믿는자만을 위해 죽으셨다'고 믿는 제한 속죄를 가르친다. 알 미니안주의자는 그리스도가 에서와 유다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고 말한다.(요일2:2, 고후5:14, 4:42)

그들은 그리스도가 의도적으로 에수님을 배척하고 지옥에 빠져 들고 있는 버림받은 자들의 죄까지도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속전을 지불했다고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행하신 것(그분이 모든 자을 위해 죽으신 것)과 그분께서 성취하신 것(모든 자들이 다 구원받지 못한 것)을 구분한다.

알미니안주의자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근거로 하여 인간에게 사죄함을 베풀어줄 수 있으나 정죄를 받은 죄인이 그 사죄함을 스스로 거절할 수 있다고 한다. 반면에 칼빈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은 무한한 능력과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오직 그 사실을 믿는 신자, 즉 실제적으로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선택된자만을 위해 죽으셨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선 성부께서 그분 자신에게 주신자들의 죄를 속죄하기위해 , 십자가에 죽도록 계획되었다.(6:37-40)

칼빈주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을 불신하는 인류가 포함된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1:21), 자기 양(10:15), 자기 친구(15:13), 교회(20:28), 신부(5:25)을 위해 죽으셨다고 말한다..

칼빈주의자는 주예수님의 속죄가 그 능력에 있어서 제한이 없고, 무한한 능력과 가치를 지니지만, 그 실제적인 범위에 있어서 그분이 영원전에 선택한 자들에게만 효과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B.정의

하나님께선 그분의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과 경륜에 따라 그 백성들을 예정하셨지, 이 지구상의 모든 인류를 선택하신 것은 아니다.(8:31-33) 그 구원의 은혜는 공로없이 주어지는 은혜인 것이다. 만약 온 인류가 그분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갈보리에서 이룩하신 주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은 그것을 믿음으로 영광에 이른 자보다 불신앙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자가 더 많아지기 때문에, 주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완전한 승리가 되지 못하고 부분적인 승리밖에 되지 못할 것이다. 어떤이들은 베드로서을 언급하면서 이 말을 반박한다.

"주의약속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벧후3:9)

물론 그렇다. 그러나 이 문제는 베드로 후서가 누구에게 보낸 것이며, 그안에 무엇을 언급했는 가하는 질문에 응하므로 답을 얻을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종인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예수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후1:1)

여기에서 베드로는 선택된 자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믿는 자들에게 편지한 것이지, 그들 자신의 의로운 행위와 조건을 믿는자에게 편지한 것은 아니다. 그 구절의 본래 의도는 주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지, 전세계 모든 인류를 위해 죽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5:8)

하나님께선 우리 죄를 위해 그 아들을 죄인되게 하셨고, 그 아들의 몸을 제물로 받으심으로 단번에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다.

바울도 에베소서에서 주예수님께서 택하신 '신부'만이 그분의 사랑의 대상이 됨을 말한다.(5:25)

또한 육체의 소욕을 따라 난 이스마엘은 하나님에 의해 쫒김을 당했고, 약속을 따라 난 이삭이 그 유업을 이을 자가 된 것같이(9:7-9)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받은자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그분이 만세전에 택한 자들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특별한 대상이 되는 것이다. (1:1-4)

성경은 '제한 속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0:14-1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10:25-26)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양'(10:26)을 위해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시어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더구나 주예수님께서는 그의 아들의 이름을 부를 때에 그 양들은 그분을 알고 따른다고 말한다.(10"27)

그러므로 주예수님의 죽으심은 영원전부터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예정하신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속죄의 죽음인 것이다.(벧전2:9, 1:21)

 

4. 불가항력적 은혜( Irresistible Grace)

 

구원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주권에 의한 것이며, 그분은 무한히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의 은총을 피조물이 대항할 수 없다.

알미니안주의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를 (성령이 역사할지라도) 물리치거나 거절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구원을 위한 믿음은 그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 자들에게 무상으로 주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물인 것이다. (4:4-5)

인간은 사실 구원받을 만한 공로가 조금도 없으며, 그 공로를 하나님앞에서 행할 수도 없다(딤후1:9) 그러면 저항할 수 없는 은혜란 무슨 말인가?

첫째로 소극적인 면에서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그들이 원하지 않는 일들'을 억지로 행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예로 주께서는 가롯 유다의 그 한일을 억지로 시킨 것이 아니라 유다가 그 주인인 사단의 기뻐하는 뜻을 따라 '자의'로 행한 것이다.

즉 가롯 유다는 그 부패한 마음이 행하도록 충동질한 것을 순응했고, 행동으로 실제 옮겼던 것이다. 이 사실은 주예수님께서 왜 유다를 택하시어 그의 공생애에 3년동안 함께 있게 하셨는지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둘째로 긍정적인 면에서 그 은혜는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를 말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따라 그분 자신이 예정하신 자들에게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이다. (9:22-23)

하나님의 그영으로 거듭난 사람의 영은 불가항력적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원죄와 자범죄로 죽은 인간의 영은 불가항력적으로 죄와 사망의 법인 사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7:20,8:2)

주 예수님께선 창세전에 그분안에서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모든 자들의 죽은 영혼과 육체를 살리시는 분이시다.

여기에서 살리신다는 말은 그 양들에게 목자되신 주예수님을 불가항력적으로 발견하게 하는 새로운 성품(거듭난 생명)을 주신다는 것이다. 돼지는 본래 타고난 본성 때문에 진창에서 딩굴기를 좋아한다. 그라나 양은 그 본래의 타고난 본성때문에 진창에서 딩굴지 않는다. 가장 적은 새도 그 본래 '날 수 있는 생명의 법'을 가지고 있기에 가르치지 않아도 날 수 있는 것이며, 개에게 짓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 본성이 본래 '짓는 것'을 가지고 있기에 짓는 것이다. 허물과 죄로 죽은 중생하지 못한 영혼은 아담으로부터 전수되어진 그 본래의 타락한 본성과 성품 때문에 '죄와 불신앙'가운데 홀로는 일어서지 못하고 계속 죄의 수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시는 택한 자들에게는 거듭난 생명(새로운 성품과 본성)을 주신다. 이제 주을 믿는 자에겐 옛 것들이 다 지나가고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 새성품과 본성은 인간의 거듭난 새 영을 말하며, 그영은 성령이 거하시는 영인 것이다, 인간의 타락과 범죄로 죽었던 그영이 불가항력적으로 마귀와 어둠을 찾고 좇았던 것 같이, 이제 성도는 주예수님의 그 피의 구속을 통해 새로운 생명, 즉 거듭난 영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인간이 저항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그 은혜로서 사람은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주예수님을 의지하고 사랑할수 있게 된 것이다. 성경은 아들이 원하시는 자만이 아버지에게 올 수 있고 영생을 소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5:21) 사탄은 여호와의 피조물 가운데 가장 능력있는 피조물이었으나 그가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완전히 타락하게 되었다.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미워하기까지 하는 저주받은 교활한 원수로서, 인간보다는 훨씬 큰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하나님보다는 결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능한 존재이다. 하나님은 저주받은 천사의 그 행동을 그분의 뜻안에서 엄격히 제한하셨다. 그예로 욥을 사탄이 시험했을 때, 박해할 수 있었으나 생명에는 손을 될 수 없게 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사탄은 여호와처럼 어디에나 편재하지 못하고 절대로 전능하지 못한 작은 피조물임을 명심해야 한다.

사탄은 단지 하나님이 만든 지극히 적은 피조물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그의 머리는 이미 십자가에서 예수님에 의해 상하게 되었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와 불순종후 타락한 죄의 본성 때문에 사단에게 저항할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아담의 범죄후에 사탄으로 비롯된 죄와 사망의 법(7:17)에 종노롯하게 되었다. 즉 타락한 인간에겐 하나님께서 만드신 가장 강력한 피조물이었던 사탄을 대항하고 저항할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허물과 죄로 물든 인간들은 악한 사탄의 계획과 그 뜻의 통치를 저항할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2:2)

그러기에 사탄은 자기 뜻대로 인간을 유혹하고 매혹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본래 진노의 자식들로서 마귀의 뜻을 따르며,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과 저주아래 있었다. 우리들은 본래 자유롭지 못하고 속박되고 제한된 의지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거듭난 생명과 그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주시지 않았다면 어쩔 수 없이 불가항력적으로 사망과 죄의 법에 끌러 가게 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에게 붙여 주신 선택된 자들만이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날 수 있고 주의 특별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죄와 사망의 법으로 우리가운데 표현되어진 사단에게 포로된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주예수님에게 나올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죄와 사망의 법을 저항하거나 뿌리치고 그 법에서 빠져 나올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은 범죄후 마귀에게 사로잡힌바된 의지와 뜻인 '죄와 사망의 법'을 가지고 있어 주예수님께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창조 당시의 완전했던 그 자유의지가 범죄후에 죄와 사망의 법에 눌리게 되었기 때문에, 온전하게 그 자유의지를 활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한 인간이 되었기에 사람은 하나님께서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이끌어 주시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사람도 주예수님께 나아가는 방법이나 통로를 만들거나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6:44)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여 선을 추구하는 어떤 경향도 일부러 회피하려는 마음을 가진 존재이며, 설사 선()을 행한다해도 그 마음에는 부패하고 타락한 내적인 본성이 잠재해 있기에, 그 마음을 관찰하시는 하나님에게는 그 선한 행동이 외식밖에는 되지 못하며, 온전히 열납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범죄하여 죄와 사망의 법을 가지고 태어나기에 그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만한 어떤 공로를 스스로 행하거나 가질 수 없다. 그러기에 사람은 무조건적으로 생명과 믿음에 이르도록 선택되고 예정받았고 부름받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주예수님의 그 죽음과 그 고귀하신 피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나오도록 하나님께서 특별히 예정하신 자들'만을 위해 특별히 주어진 것이다.

 

5. 성도의 견인( Perseverance of the Saints)

 

한번 선택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변치 않으시며, 전능하신 그 뜻에 의해 결코 그들의 구원을 잃거나 스스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그 선택하심과 예정하심이 인간의 어떤 조건이나 행위로 된 것이 아닌 하나님의 무조건적이며, 주권적인 뜻에서 비롯되었듯이, 우리에게 주신 그 믿음의 선물역시 인간의 그 어떠한 행위나 악행이나 조건들에 의해 구원받지 못할 존재로 다시금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 우리가 확신하노라(1:6)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자들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시고 이루시는 그일은 하나님의 사역이지 인간의 사역이 아님을 바울은 말한다,(1:6)

아버지께서 그 모든 능력을 아들이신 주예수님께 주셨기에,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그 자신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것이다,(3:20-21, 17:2)

우리의 구원은 온전히 주예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기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받은자는 언제나 그 믿음에서 떨어지거나 잃을 수 없다.(6:38-39)

우리가 구원을 얻을 많나 행위를 절대적으로 행할 수 없듯이 구원을 보존하고 유지시키는 행위역시 결코 행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지 사람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예수님께서도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요, 또 거처를 내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10:28)라고 말씀하셨다.

바울도 디모세후서112절에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줄 확신하노라"라고 고백했다. 주예수님께서는 그분자신이 다시 오실 때까지 성도들을 흠없이 보존하시는 놀라운 사역을 행하실 것이다. 사실 인간은 그 구원의 은혜를 자신의 힘으로 보전할 수 없다. 주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성도들을 항상 지켜 주실 뿐 아니라, 항상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기에 성도들은 그분의 성령안에서 보존될 것이다.

만약 그 구원의 은혜의 유지와 보존이 사람의 타락한 본성으로부터 빚어진 불완전하고 변덕스러운 성품에 의존한다면, 그 구원은 결코 소망없이 깨어질 것이다.

 

알미니안의 5개조 전제

 

1. 하나님이 예지하신 바에 따라, 사람의 믿는 여부를 조건으로 한 선택에 의하여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창세전에 작정하심 <조건적인 선택>

2.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으심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 이것을 제한시키는 것은 각 사람의 믿는 여부임. <보편적 속죄>

3. 타락한 상태의 자연적인 인간은 스스로 선하게 될 수도 없고 새로워질 수도 없다. 의지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가 없이는 인간은 자신이 구원에 대해 무력하고 무능함. <자연적인 무력함>

4. 하나님의 은혜가 선행됨이 없이는 인간의 구원은 시작될 수도 없고, 진행될 수도, 보존될 수도 없다. 그러나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는 그 역사하시는 방식 때문에 인간의 악한 의지에 의하여 거부될 수 있음. <저항이 가능한 은혜>

5.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죄와 유혹에서 능히 지키시고 보존해 주지만, 인간의 나태함에도 불구하고, 이 은혜가 상실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성경에 의하여 증명되지 않음. <조건적인 견인>

이렇게 서로 다른 내용을 가진 두 주장이, 쉽사리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논쟁이 가열되는 가운데, 정치적인 변수가 작용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계속해서 이 종교개혁의 역사를 살펴보는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종교문제가 그냥 종교적인 원인과 동기를 가진 문제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인간의 내면적 동기가 섞여서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나라와 자기 집안과, 특히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것과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이 신앙문제가 여러 가지 양상으로 변화되어가더라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변수는 정치적인 동기의 변수입니다. 이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알미니우스의 견해에 동조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당시 네덜란드 총연방 중의 최대 지역인 홀란드의 시민지도자요, 총연방의 주도적인 인물인 올텐바르네벨트와, 국제법의 창시자로서, 당대 최고의 학자중의 한 사람이었던 그로티우스 같은 이도 있었는데, 이들은 신앙과 신학적으로는 관용을, 정치적으로는 공화주의, 그리고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있어서는 제정일치를 주장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또한 계속되고 있던 전쟁에서 스페인쪽과 휴전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스페인과 직접 전면에 나서서 전쟁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한편에서는 전쟁에 승리해서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반드시 쟁취해야 한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 가운데 당시 네덜란드의 독립을 간절히 추구하던 윌리암의 오렌지공의 아들이자 연방의 뛰어난 군사 지도자였던 나싸우의 모리스총독이 주도적인 인물이었는데, 그는 철저한 칼빈주의자로서 이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입장에 분명하게 반대했던 것입니다. 그는 네덜란드 북부의 통치자가 되어서 남부를 정치적 종교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스페인으로부터 재탈환할 꿈을 꾸고 있었기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칼빈파들은 거의 이 모리스와 손을 잡았기 때문에 종교적인 반대파들은 그대로, 정치적인 대적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 총독 모리스 공(Maurice ), 16187월 쿠데타를 일으켜, 그의 정적(政敵)으로 알미니우스의 가르침을 지지하며, 공화제를 주창하던 지방자치주의 국가지도자 올텐바르네벨트와 다른 유력한 알미니우스 지지자들을 모두 반역죄로 기소되어서 처벌을 받고 맙니다.

 

그 후에 네델란드 국회는 국론통일과 논쟁 종식의 목적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종교회의를 소집합니다. 회의는 16181113일부터 그 다음해 161959일까지 지금의 도르르레흐트라고 하는 곳인 <도르트>에서 열렸습니다. 그러나 이미 알미니안주의자들이 거의 국가반역죄로 기소된 상태에서 공정한 회의가 진행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네덜란드 대표 외에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팔라티네이트, 나싸우, 헤세, 브레멘, 스위스 등에서 대표들이 참석했으며, 특히 알미니안주의자들인 <항의파>쪽 사람들은 13명의 대표들이 참석했지만, 오직 피고의 신분으로 참석했을 뿐 의석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결과는 뻔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6개월간이나 계속된 종교회의는 154번의 회의를 거치며 논란을 계속하다가 예상대로 알미니안 교리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93개조의 엄격한 칼빈주의적 조항을 채택하고 마쳤습니다. 이때 나온 조항들은, 당시에 이미 나와 있던 벨기에 신앙고백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함께 네덜란드 개신교의 교리적 기초가 되었습니다.

 

결의된 내용은, 특히 예정론에 있어서, <타락 후 예정설>을 채택한 것 외에는 이전의 칼빈주의 예정설을 그대로 승인하고, 아르미니안의 5개항의 건의는 모두 이단의 신조로 정죄되었습니다. 이후에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설교를 금지 당하였고, 어떤 이들은 나라를 떠난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1625년에 칼빈주의자였던 총독 모리스가 죽고 나자, 이번에는 항의파를 지지하는 그의 동생 프레드릭 헨리가 그 뒤를 계승하였는데, 이렇게 정치적인 분위기가 바뀌어지자, 이번에는 알미니안쪽의 사람들이 대거 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795년 이후에는 네덜란드의 한 신앙공동체로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는데, 오늘날까지 항의파 형제단, 또는 항의파 개혁교회로 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 알미니안 사상은 자기 나라에서보다도 영국에서 훨씬 더 큰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감리교 운동을 일으킨 존 웨슬리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비록 같이 신앙생활을 해도,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는 칼빈이 보았던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예정의 신비도 분명히 있고, 알미니우스가 강조하고자 했던 인간의 의지와 행동도 함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그러한 신학적인 차이는 또한 그 당시의 시대적인 발생동기를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산물인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본질을 지켜나가되 서로 다른 입장에 대해서도 그것이 성경의 근본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인정해줄 수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경계해야 할 부분은 이러한 차이를 잘 이해하거나 극복하지 못하게 되면,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욕심이 틈을 타게 되면서 매우 불행스러운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다른 그 공간을 타고,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하도록 오히려 더 연합과 상호 이해에 힘쓰는 가운데, 4:3의 말씀과 같이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가며, 보다 더 사랑으로 하나 되는 주님의 교회를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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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벨론의 최후와 벨사살 2018. 5. 7. 15:20 기원전 562년 네브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왕이 죽고 난 후, 키루스 대왕에게 함락되기까지 신바빌로니아는 21년동안 대혼란을 겪는다. 네브카드네자르 사 후, 그의 아들 에윌므로닥이 순조롭게 왕 위를 승계하지만 2...
    Date2018.07.10 By갈렙 Views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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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No Image

    알미니안과 칼빈주의 논쟁

    알미니안과 칼빈주의 논쟁 울산북부교회 이석배목사 ●알미니안 논쟁 사랑하는 방송가족 여러분, 한 주간 동안도 주님 안에서 평안하셨습니까? 울산북부교회 이석배목사입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종교개혁시대의 역사를 살펴보는 가운데, 오늘은 당시의 유명한 <...
    Date2018.07.06 By갈렙 Views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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