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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방언통역을 통해서 얻게 된 놀라운 사실(고전14:13~15)

[일시] 2019.03.24.(주일) 오전9,11

[찬송] 12장 다 함께 주를 경배하세, 254장 내 주의 보혈은, 251장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PW: 믿음, MIW: 회개

T.S: 믿음은 아무리 방언을 말한다고 해도 회개하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지난 주일오후부터 시작된 방언에 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과거에도 방언에 관한 말씀을 전한 적이 있어서 찾아보았더니 지난 2015년도에 방언에 관한 설교를 몇 편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방언에 관한 설교를 하게 된 이유는 나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관한 주일말씀을 준비하다가, 과연 나는 확실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가를 살피던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방언통역을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방언과 방언통역은 잘만 사용할 수 있다면 성도들이나 목회자에게 매우 유용하게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어느날 외적인 성령충만을 받아서 방언으로 말하기는 시작했으나 방언의 내용이 무슨 뜻인지도 알지 못한 채 수년동안 기도해온 분들에게는 방언통역은 매우 기쁜 소식이 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이 주신 사명이 무엇이며 그것을 완수하기까지는 방언과 방언통역이 상당히 유익을 줄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제가 방언했던 것을 통역한 내용을 살펴보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놀라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적어도 2가지입니다. 첫째로, 우리가 자기의 영으로 발설을 할 때에, 즉 방언할 때에 예수께서 우리의 영에게 성령으로 무엇인가를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8:26). 이것은 성경에서도 명확히 나와 있습니다.

8:26 이와 같이 []령도 [역시] 우리의 연약함을 [함께] 도우시나니 [왜냐하면]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오히려) []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중보)하시느니라(하시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꾸준히 우리의 영에게 말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방언의 한 방면이었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영에게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방언통역을 통해서 확인할 수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도 롬8:26의 말씀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방언통역을 통해서, 성령께서 우리의 영에게 계속해서 무슨 말씀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의 영에게 하신 말씀을 알아듣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며 고군분투한다면 우리들 중에서 지옥에 떨어지는 자는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의 영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방언통역을 해보면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이것은 대단히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믿는 성도들의 대부분이 자기자신이 방언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영의 기도가 무엇인지를 잘 모를 뿐더러, 그러한 방언기도가 자기가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와는 너무나도 다르며 불일치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영이야 내 속에 들어오신 성령의 음성을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다고 치더라도, 내 마음은 어떻게 내 영의 기도를 알아차리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내 영의 기도와 내 마음의 기도와 왜 일치하지 않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보고, 어떻게 하면 내 영의 기도와 내 마음의 기도를 일치시킬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바울이 비록 자신의 영을 사용해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다 할지라도 동시에 자신은 꼭 자기의 마음으로도 기도할 것이라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더욱 더 신령한 기도이며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능력있는 기도인데, 왜 사도바울은 방언으로만 기도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으로도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을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이제는 방언으로만 기도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었던 것입니까?

또한 반대로 방언으로 기도하면 자기도 자기가 기도하는 것이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지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그냥 마음으로만 기도하면 될 것 같은데, 왜 바울은 마음으로도 기도하면서 동시에 영으로도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입니까?

 

2)청중적 접근

우리도 과연 우리의 영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알고서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자기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와 영이 드리는 기도가 과연 일치하고 있습니까?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55년경 바울이 3차전도여행을 하다가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면서 고린도교회 소식을 듣고 그 교회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그런데 고린도교회로부터 들려오신 소식이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자 부족함이 없는 은사들을 부어주셨지만 그들은 오히려 잘못된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첫째, 그들이 여러 개의 당으로 나누어져 서로 네가 잘났다 내가 잘났다고 하면서 싸우더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고린도교회 성도 중에 자식이 아버지의 후처를 취하여 음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자기들끼리 다투다가 그만 성도들을 세상 법정에 고발했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자신은 이미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기에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어도 상관없다고 하는 자들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특히 다섯째로, 여러 가지 그들에게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났는데, 그중에 방언의 은사를 최고로 여기면서, 심지어 예배시간에도 마구 방언을 말함으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었습니다. 아니 아무리 방언이 좋다고 하지만 예배시간에 방언으로 말하면 방언을 듣는 자는 무엇을 알아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방언을 주신 목적을 모르면 방언의 용도를 잘못 사용하게 됩니다.

믿음이 있어도 방언의 단점과 한계를 모르면 자신이 방언을 말하는 것을 두고 자신이 무슨 신령한 사람인 것인량 착각해 버립니다.

믿음이 있어도 공중예배시간에 대표로 기도할 때에는 남들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사도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자기가 가진 은사를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얼마나 교회를 해치는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방언으로 기도해야 하지만 남들이 이해하는 언어로 기도해야 한다는 말에 귀기울이지 아니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아무리 방언으로 많이 기도해도 방언의 은사만으로 결코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모릅니다.

믿음이 있어도 방언만으로는 자신의 성품이 절대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도 모릅니다.

믿음이 있어도 방언만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감사도 안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회개하지 못하는 자는 방언말함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방언으로도 기도해야 하겠지만, 깨닫는 마음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할 때에 교회가 한 몸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방언말하는 것을 무슨 자랑으로 알아 시도 때도 없이 방언만 말하여 교회를 어지럽히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해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 방언을 말하는 자가 반드시 통역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데 이러한 혼란은 오늘날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나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실 방언의 은사는 놀라운 은사인 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도 성령께서 사람 뒤에 내려오셨지만 단 한 사람도 방언으로 말하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방언이 무슨 특권인 것인량 착각해서는 아니 됩니다. 자신이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하나도 행하지 않고, 오직 방언으로 기도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도 아니 됩니다.

사실 구약시대에도 똑같이 성령이 사람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예를 들어, 삼손같은 경우에 하나님의 성령이 그 사람 위에 내려오니 그에게 커다한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브살렐과 오홀리합의 경우에는 공교한 재주와 기술로 성막의 휘장과 기구들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드온과 같은 경우는 그에게 지도력의 은사가 임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끌고 나라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되기전 사울에게도 성령이 내려오심으로 그도 예언을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다니엘과 예레미야같은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도 성령께서 그들 위에 내려오심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을 했습니다. 심지어 치유기적과 소생의 기적도 일으켰습니다. 특별히 엘리야나 엘리사와 같은 경우는 많은 기적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둘 다 죽은 사람도 살려냈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구약시대에 성령이 내려와서 머물렀다고 하더라도, 한 가지 못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시대의 그 어떤 위대한 선지라라도 방언으로 말한 사람은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아직 공급되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순절 이후에는 믿는 자들 속에 성령이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성령께서 그 사람들 위에서 머물러 계시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면 그들에게서도 구약시대에는 나타나지 아니하는 은사가 임하는데 그것이 바로 방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엘서의 약속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지 아니하시고, 남자여 여자를, 종과 자유인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며, 모든 사람 속에 들어가시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후 생명주는 영이 되신 예수께서 성령으로 사람 속에 들어가시면 죽었던 영이 그만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죽었던 영에게 생명이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두는 아니더라도 예수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다 새로운 영의 언어로 말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방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은 거의 다 할 수 있는 성령의 은사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방언은 영의 말인 것이지 혼의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방언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방언은 사람의 혼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은 결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전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렇습니다. 방언은 혼이 깨달은 것은 자신의 입으로 사용해서 말해내는 것이 아닙니다. 죽었던 영이 살아나서 영의 언어로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 방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누군가가 방언을 신령한 은사인 것처럼 생각하고 계속해서 방언만 하고 있다면 큰 일입니다. 방언기도가 분명 좋은 내용의 기도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무슨 내용인지를 모르고 기도하면 아무것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면 방언일지라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 방언을 통역해보면 무슨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인가?

방언에는 자신의 기도만 들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방언에는 80%가 성령께서 그에게 하시는 말씀도 들어있습니다.

방언을 통역해서 들어보면, 방언의 내용은 크게 2가지입니다. 그것은 약 2080 정도가 되는데, 방언은 첫째, 자신의 영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대체로 감사하는 말과 자신의 소원과 간구가 들어 있습니다. 자기자신의 성품변화와 사명감당을 위해서, 자기가족 구원을 위해서, 주의 종과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자기의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선교사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방언기도에는 하나도 이기적인 기도나 육체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가 들어있지 않습니다. 나쁜 기도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둘째,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통역해서 들어보면, 예수께서 성령으로 말씀하시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것이 무려 80%나 됩니다. 그것에는 위로의 격려의 말씀도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대부분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음을 책망하고 경고하는 내용이 아주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영이 지금 하나님께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성령께서도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알지도 못한 채 계속해서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다면, 영이 드린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신의 소원을 영만 알고 있을 뿐 자신은 전혀 알고 있지 못하니, 그는 일평생 어떤 일을 하고 살아가겠습니까? 무엇을 위해 애쓰겠으며 무엇을 위해 자신을 드리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에게 말씀하시는 성령의 책망과 충고와 권면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데, 어찌 회개를 하겠습니까? 어찌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을 고치려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기의 영이 기도하는 내용을 자신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예언의 은사를 간구하라고 한 것입니다. 자신의 영이 기도하는 것을 자신이 알아듣는 은사가 예언의 은사이며, 남이 하는 방언을 내가 알아듣는 은사가 방언통역의 은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예언의 은사를 받아 자신의 영이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지도 알아보지도 않고, 방언통역을 통해서 성령께서 자신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도 알아보지 않은 채, 그냥 알 수 없는 말만 되풀이하여 기도하면서 자신은 신령한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비록 방언으로 말하고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삶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다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 내 영의 기도와 내 마음의 기도가 일치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언을 통역해보면 내 영의 기도는 이기적이나 육체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는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감사와 하나님의 뜻이 자기에게서 이뤄지기를 바라는 기도만 드리고 있을 뿐입니다.

문제는 내 영의 소원, 성령이 내게 말씀하고 있는 것을 과연 내가 지금 알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깨닫지 못하는 기도는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아무리 신령한 영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나를 변화시켜주지 못합니다.

방언통역을 50년동안 20만명 이상을 해본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평생 자신의 방언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기도해온 어떤 중직자가, 어느날 이웃교회에 방언통역을 해준다고 해서 자신의 방언통역을 받아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자기만 알고 있는 비밀을 성령께서 다 아시고 있다는 것에 놀라면서, 그때부터 진실로 회개하는 삶을 살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도 방언을 받았으니 처음에는 얼마나 뜨겁게 신앙생활을 했겠습니까? 직분을 맡을 수 있었다면 또 얼마나 충성했겠습니까? 하지만 자기 속에 들어오신 성령의 음성을 외면하고 그분이 책망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살다보니, 어느 순간에는 마귀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았는데 문제가 안 생기는 것을 보고는, 더 악랄하게 변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시간은 흘러갔고, 입에 붙은 말처럼 방언을 말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삶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고, 오히려 더 강팍해져서 목사님의 말씀도 듣지 않고 거역하기 일쑤였으며, 나중에는 자기를 책망하는 목사님도 갈아치우고 자신이 권세있는 자라고 으시댔던 것입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믿음이안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방언받았다고 자신을 신령한 사람이라고 자랑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기울이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혹시 방언으로 말하지 못해도 성령의 세미한 음성에 귀기울여 성령이 깨닫게 하실 때마다 즉시즉시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지금 무슨 잘못을 범하고 있는지를 잘 모른다면, 방언통역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잘못을 빨리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래도 안 된다면 책망과 충고와 권면하는 주의 종의 지도를 받으며 자신의 생각과 몸을 쳐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어떻게 권면했습니까? 내가 만약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다면 그것은 내 영이 기도하는 것이다. 그렇더라고 방언을 통역하지 않는다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하니, 나는 차라리 내 마음으로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방언으로 말하면서 자신을 신령한 사람이라고 자랑하지만, 사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교회의 성도들을 편가르기에 힘썼고, 음행하고 있으면서도 뻔뻔스럽게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으며, 교회의 형제를 세상법정에 고소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얼굴을 대하고 있었고, 성찬식을 하면서도 귀신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방언으로 말함이 그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방언으로 2시간을 기도하고, 5시간을 기도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자신의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방언을 말해도 지옥에 떨어질 것이 뻔한데 말입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믿음이란 자신이 방언을 말한다고 우쭐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자신의 방언으로 몇 시간을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으스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성령께서 하나만 깨닫게 해도 즉시 무릎꿇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성령을 근심시키지 않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2)결단

오늘날 교회 안에도 자신의 영이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도 못한 채 그냥 방언기도만 하고 있는 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내 영이 아무리 좋은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내가 회개하지 않고 내가 충성하지 않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내가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않는데 방언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방언으로 내 영이 드리는 기도와 성령께서 나에게 책망하고 충고 권면하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설령 방언통역에 거부감이 들어서 방언통역을 하지 않겠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내 속에서 지금도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책망하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야 합니다. 죄를 끊어야 합니다.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방언을 몇시간씩 많이 말한다고 할지라도 첫째,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계속 죄를 짓고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둘째, 아무리 방언을 많이 말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방언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셋째, 아무리 방언을 많이 말한다고 할지라도 죄를 회개하지 않은 채 방언통역의 은사까지 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것이 과연 온전한 방언통역이요 예언이 되겠습니까? 그러니 방언통역의 은사를 전수해준다고 하면서 돈을 받은 홍혜선 전도사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그런 여인은 차라리 방언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런 여인은 차라리 방언통역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귀신이 잡아쓰는 줄도 모르고, 2014년이 전쟁이 일어난다고 예언을 하는가 하면, 돈을 받고서 방언통역의 은사를 전이해 준다고 하니 이 어인 일이란 말입니까?

 

그럼, 내 영의 기도와 내 마음의 기도와 일치된 기도를 드리기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가능하다면 정말 올바른 방언통역자에게 다만 몇 번만이라도 방언통역을 받아보기를 권해드립니다.

둘째, 만약 방언이나 방언통역의 은사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성도라면, 성령께서 나의 내면에서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실 때마다 즉시즉시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이 내 영에게 바라는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기도를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죄를 책망하는 주의 종의 가르침과 지도를 잘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책망과 충고와 권면이 없는 주의 종 아래에서는 결국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영과 마음이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다가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 뻔합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지금은 방언을 많이 말한다고 신령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방언이 천국을 보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방언을 말해도 지옥에 떨어질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지은 죄들을 회개하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 결단의 축복

, 방언을 주신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자기를 세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14:4). 이는 구원받기에 합당한 자로서 자기를 세우는 것입니다.

고전14: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자기를 세우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방언으로 말하지 못한다 해도, 내면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라도 하면 해야 합니다. 그런 자들이 결국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제대로 세우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주의 종의 책망과 권고를 겸손히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키라고 하면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새벽기도하자고 나오라고 하면 기도하러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주장하면, 방언으로 아무리 기도한들 그의 삶이 달라지겠으며, 그의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건투를 빕니다. 아멘.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를 주신 목적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방언은 자기가 신령하다고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방언은 자기를 세우라고 주신 은사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방언통역은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깨닫고 무엇을 회개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방언을 못한다고 해도 회개하는 자가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방언통역을 못해보았어도 죄를 회개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과 사명에 충성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겸손히 은사를 사용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날마다 회개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날마다 성령의 음성에 귀기울이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주의 종의 책망을 달게 받겠습니다.

주여, 이제라도 회개하여 나를 바로 세우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를 주신 목적을 알지 못하게 가로막은 악한 영들은 내게서 물거갈지어다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은사받은 자로 하여금 교만을 조장하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은사를 주신 목적에 신실할지어다. 날마다 회개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는 자기자신의 영적 상태를 알아 자기를 바로 세우라고 주신 은사였구나.

2. 아무리 방언을 많이 말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영의 소원과 성령의 책망과 권면의 말씀을 모른다면 아무 소용이 없구나.

3. 믿을 때에 자기 안에 들어오신 성령의 음성에 귀기울이며 회개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과 사역에 충성하는 자가 결국 복을 받게 되는구나.

4. 방언이라도 결국 자신이 알아들을 때에 그것이 자기에게 도움을 되는구나.

5. 아무리 방언을 많이 말해도 회개하지 않고 충성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마는구나.

6. 방언과 방언통역은 교회를 세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구원받기에 합당한 자로 만들라고 주신 은사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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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어떻게 되어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쇄도했는가?(행10:44~48)_2019-03-10(설교전문) 갈렙 2019.03.10 233
219 보혜사 성령은 왜 아들을 증언하시는가?(요15:18~27)_2019-03-03(설교전문) 갈렙 2019.03.03 242
218 누가 진정 탕자인가?(눅15:25~32)_2019-02-24(설교전문) 갈렙 2019.02.24 288
217 탕자의 회개는 이전의 회개와 무엇이 다른가(눅15:11~24)_2019-02-17 갈렙 2019.02.17 211
216 여인은 왜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그토록 찾으려 했을까(눅15:8~10)_2019-02-10 갈렙 2019.02.10 614
215 하나님은 과연 누구에게 사랑을 베푸시는가?(눅15:1~7)_2019-02-03 갈렙 2019.02.03 252
214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구원얻는다고 믿었을까?(유1:17~21)_2019-01-27(주일) 갈렙 2019.01.27 226
213 왜 우리는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가?(계21:8,27,22:15)_2019-01-20 갈렙 2019.01.20 228
212 누가 영생을 얻어 천국까지 들어가는가?(요10:27~29)_2019-01-13 file 갈렙 2019.01.13 304
211 빈익빈 부익부는 달란트 뿐인가?(마13:10~13)_2019-01-06 갈렙 2019.01.06 227
210 그날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마25:29~30)_2018-12-30 갈렙 2018.12.30 214
209 하늘에서 온 표적(눅2:8~14)_2018-12-25(성탄절설교) 갈렙 2018.12.25 240
208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뤄지려면(마1:18~25)_2018-12-23 갈렙 2018.12.23 217
207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기다리시는가?(눅1:26~38)_2018-12-16 갈렙 2018.12.16 319
206 이 시대에 누가 진정 복있는 자인가?(눅1:39~45)_2018-12-09(설교전문) 갈렙 2018.12.09 228
205 받은 은혜와 받을 은혜(눅1:26~38)_2018-12-02(설교전문) 갈렙 2018.12.09 254
204 우리에게는 왜 기적이 없는가?(눅1:5~17)_2018-11-25 갈렙 2018.11.25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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