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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떻게 되어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쇄도했는가?(10:44~48)

[일시] 2019310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37장 주 예수 이름 높이어, 86장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 184장 불길같은 주 성령

PW: 사모함, MIW: 사모하면

T.S: 사모하고 사모하면 성령과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된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경건성을 측정했을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기도구제였습니다.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가 그리고 얼마나 구제를 열심히 했는가, 얼마나 확실하게 십일조를 드리는가가 그 사람의 경건성이었습니다. 특히 기도 중에서도 금식하는 기도를 제일로 쳐주었습니다. 그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 금식을 했고, 소득의 십일조를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기도와 구제를 많이 한다고 해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하는 것은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사람에게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불면서 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하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에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게 서서 기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골방에 들어가 은밀히 보시는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할 때에도 이방인처럼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기도를 들어줄 신이 없으니, 말을 많이 해야 들을 줄 알고 기도를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 보통 우리 성도들에게 경건의 기준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사실 어떤 사람이 참으로 믿음이 좋다고 말은 하지만, “주일에 빠진다”, “십일조생활을 하지 않는다”, 또한 교회에서 봉사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어떤 분은 새벽기도에 나오지 않는 성도들은 경건성이 떨어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마도 자신의 육체를 쳐 복종시키는 방법이 새벽기도를 하는 것인데, 아무래도 그 시간에 자신의 몸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가 어찌 하나님의 일에 자신의 몸을 드리겠느냐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런데 놀라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과 구제하는 것이 의무사항도 아닌 한 이방인이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그는 로마사람으로서 이방인이었는데,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 같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 사도행전의 저자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10:2 (고넬료)가 경건하여 [그의] 온 집안과 더불어(함께)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으]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있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고 있]더니

그렇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이 보기에도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변함없는 사람이었고 늘 진행형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기도하가 그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가 오후3시 기도시간에 놀라운 것을 보고 듣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서 주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표시였습니다.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그는 그때의 일로 인하여 그는 어떤 것을 경험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자신과 그리고 함께 있었던 친척과 친구들에게도 성령이 쇄도한 사건입니다. 더불어 성령의 은사까지 임하는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이제 그 사건 속으로 들어가서 어떻게 되어서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쇄도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전했을 때에 그 말씀을 듣고 있는 고넬료 집에 모인 이방인들에게 갑자기 성령이 쇄도함으로서 그들에게 성령의 선물들까지 쏟아지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되어서 한 번도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내려온 적이 없는데 고넬료 가정에 성령이 내려오시게 된 것일까요?

어떻게 되어서 유대인들 대다수도 받지 못했던 성령을 이방인들이 받게 되었던 것일까요?

절반의 유대인이라 일컬어지던 사마리아인들도 사도들이 가서 비로소 그들의 머리 위에 안수했을 때에 성령을 받았는데, 어떻게 되어서 이방인들이 안수없이도 성령을 받게 된 것일까요?

그리고 동시에 성령의 선물까지 쏟아지게 되었던 것일까요?

 

2)청중적 접근

오늘날 우리에게도, 우리가 말씀 잘 듣고 기도하면 성령께서 강하게 쇄도하여 내려오시고 성령의 선물들까지 주어지는 것일까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36년경 지중해 연안의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라는 백부장의 집에서 일어난, 이방인 최초의 성령강림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넬료는 당시 이스라엘의 행정상의 수도였던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의 백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로마장교였습니다. 그런데 로마인이었던 그가 어떻게 되어서 유대교로 개종했는지는 나와있지 않지만, 본문에서 는 이미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이었으며, 온 집안 식구가 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구체적으로 2절과 그리고 22절에 나옵니다.

10:22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민족)이 칭찬하더니(확실히 증거되고 있는 자이더니)...

그는 이스라엘 온 민족에게 확실히 증거되고 있는 사람이었으니, 그가 하나님을 경외할 뿐더러 항상 기도에 열심이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유대인들이 하루에 세 번 이스라엘.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제사드리는 시각 곧 오전9, 12, 오후3시에 3번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고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칭찬이 자자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당시 가까운 시일에 예루살렘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강림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 모든 소식들이 무슨 일인지 그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라고 한다면 자신도 체험하고 싶다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도 중에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피장 시몬의 집에 머물러 있는 사도 베드로를 청하여 그와 그 집안이 구원얻을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오후에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도 그 다음날 정오에, 가이사랴로부터 약 50km 떨어진 욥바에서 기도하다가 비몽사몽간에 어떤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네 보자기 같은 것에 부정한 짐승들이 들어 있었고 그런데 그것을 잡아먹으라는 하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 안에는 부정한 짐승들도 있었기에 그는 그것을 잡아먹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한 것을 네가 속되다거나 깨끗하지 않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환상은 3번씩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환상이 끝날 무렵 베드로를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었습니다. 평소 때에는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을 꺼렸던 베드로였지만 환상 때문에 한 10명쯤과 동행하여 그들을 따라갔습니다.

그랬더니 이미 고넬료가 가까운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까지 모아놓고 있었습니다. 오자 그는 베드로 발 앞에 엎드려 절하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입술을 통해 하시는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도 자신도 똑같은 사람이라면서 그를 일으켜세운 채, 환상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이제 복음을 전할 때가 되었다고 알려주셨다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전한 내용은 이것입니다.

첫째는 만유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시어 그가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자를 치료하셨는데, 그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라고 했습니다.

둘째, 그분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을 전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를 몰라보고 그를 나무에 달아 죽였는데, 하나님께서 사흘만에 다시 살리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을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셨는데 자기들과는 음식까지 함께 잡수셨다고 했습니다.

셋째, 베드로는 예수께서 심판자로 오실 것과 그분을 믿는 자들이 받을 은총에 대해 전했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언제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올 것이지만 그 전에 그를 믿는 자들은 그분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아 용서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4)문제발생원인

그런데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성령께서 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성령의 선물까지 동시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거기에 있는 자들은 방언들을 말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은 매우 놀랐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이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어찌 세례를 주지 않겠느냐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주게 했습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때에는 자기의 눈을 의심하게 됩니다.

믿음이 있어도 할례도 받지 않는 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면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예수님을 믿은 후 세례를 받지 않은 자에게도 즉시 성령이 임한다는 것을 보면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믿음이 있어도,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사모하는 자에게는 아무런 조건없이 성령이 임한다는 것을 보고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과 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방인이라 유대인이나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할례받지 않은 자라도, 세례를 받지 않은 자라도 말씀을 듣고 구원받기를 사모하면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입니다.

 

. 성령세례는 유대인들에게만 부어지도록 되어 있었는가?

성령께서 사람들 위에 부어지는 현상을 두고 우리는 성령세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령세례란 성령께서 주시는 세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뒤에 성령을 보내시어 행하시는 사역입니다(3:11).

3:11 [세례요한]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예수]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그렇습니다. 성령세례 자신이 죄인인 것을 받아들이며,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메시야로서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지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그렇지만 성령이 내려오셔서 사람들 위에 부어지는 것은 성령의 단독적인 사역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왜 죽고 부활하셨는지를 믿고 받아들이는 자에게 주 예수께서 성령으로 행행하시는 사역이므로로, 성령만 오시기를 간구해서는 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치유와 은사집회, 축사집회를 가보면, 성령이 오시기를 손을 펴놓고 간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큰 일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시며, 예수님이 왜 죽었고 어떻게 부활하셨으며, 그분이 지금 하늘에 올라가 어디에 앉아계시는지를 정확히 이해도 못하고 있는데, 성령께서 오시라고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안 됩니다. 성령은 오셔서 예수님을 증언하는 영이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가르쳐주시는 영이므로, 다시 말해 성령은 오직 예수님을 증언하는 영이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하나도 전하지 않은 채, 그냥 성령께서 오셔서 치료해 달라고, 성령께서 오셔서 능력을 주시고 예언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귀신이 성령을 가장하여 와서 거짓 것을 진짜처럼 속여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오심이 곧 예수님의 오심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14:16-19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16:13-16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 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그렇습니다. 그날 강림하신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하지만 그날 베드로가 전한 말 속에는 단 하나도 성령에 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만을 전했어도 예수님의 오심이 성령님의 오심으로, 성령님이 그들에게 쇄도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베드로가 전혀 상상해보지 못했던 일입니다. 베드로는 아마 고넬료가정에 가면서 길에서 이런 생각을 했을른지 모릅니다.

첫째, 그들이 유대교로 개종했으니 우선 할례를 받게 하자. 둘째,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하자. 그리고 셋째,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자. 그리고 넷째, 이것을 증언하려고 성령이 오셨음을 증거하자.

하지만 주 예수님을 소개만 했을 뿐인데(이제 성령에 대해서 말씀하려고 하는 찰나였는데), 그들에게 그만 성령이 쇄도하면서 그들 위에 내려온 것입니다(44~45).

10:44-45 베드로가 이 말(레마들)을 할(발설하고 있을) 때에 성령이 말씀 듣[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위에) 내려오시니(쇄도하셨다) 45 [그러자] 베드로와 함께 온(왔던 만큼 많은) 할례 받은 신자들(할례로부터 있는 믿는 자들=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방인들에게(위에)(역시) 성령[의 선물이] 부어 주심(부어진 채 있음)으로 말미암아 [심히] 놀라니(놀랐다)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할례받은 신자들 앞에 지금 말이 안 되는 현상이 그들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할례도 아직 안 받았는데,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도 않았으며,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도 않았는데, 그만 성령께서 쇄도하듯 그들에게 내려오셨고, 그러자 그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들을 말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 성령은 누구나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제 구약시대로 한 번 돌아가봅시다. 사실 여호와를 섬기던 구약시대에는 누가 성령의 은혜를 받았습니까? 그때는 누구나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정한 몇몇 사람들에게만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그를 사로잡아 은사와 능력을 주셨으며, 계시와 환상을 보게 했습니다.

이제는 이것을 거꾸로 말해보겠습니다. 구약시대에 살았던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기에게 성령을 부어달라고 기도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구약시대에는 기도한다고 해서 성령이 부어지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받기를 기도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성령이 부어지는 현상은 희귀한 현상이었고, 아무나 그러한 특혜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말세에 있어질 것이라는 예레미야(31:33)와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36:26~27)처럼, 오순날에 모든 사람 위에 성령이 부어졌습니다.

그러나 오순절날 마가다락방에 오셨던 성령께서는 단 한 사람의 이방인에게도 부어진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후 예루살렘에 임했던 핍박 때문에 흩어진 안수집사였던 빌립에 의해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 몇 명이 복음을 듣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이 소식이 예루살렘교회에 들려졌고, 이어 예루살렘에 있는 두 대표사도인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파송되었으며, 그들이 가서 그들에게 안수하자 비로소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어떤 상황입니까? 고넬로 가정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이방인들입니다. 그들이 첫째로, 이미 성령을 받았던 다른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둘째,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한다고 공식적으로 공포한 것도 아닙니다. 셋째, 그들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도 아닙니다. 넷째, 그들이 사도들로부터 안수를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성령이 쇄도했던 것입니다.

 

.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쇄도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이방인에게 최초로 성령이 쇄도했던 가장 큰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간절한 기대와 사모함때문입니다. 그들의 간절한 기대는 이미 베드로가 그들에게 설교하기 전부터 가득찼습니다.

그것은 베드로를 초청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행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고넬료로부터 이미 전해들은 후였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고넬료가 이미 평생 한 번 볼까 말까하는 거룩한 천사를 대낮에 기도하다가 만났고, 그 천사로부터 지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누군가를 초청하여 집회를 열어 말씀을 듣는데 강사는 다름이 아니라, 오순절날 3천명을 회개시킨 예수님의 수석사도인 베드로였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그리고 베드로가 설교하기도 전에, 그가 보았던 보자기 환상을 통해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과 유대인들을 구별하지 않으며, 누구든지 그를 믿고 받아들이면 다 죄사함을 받는다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그들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을 들어서자마자, 이미 마음 속에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말씀에 순종할 각오와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고백을 잠시 들어봅시다(28~33).

10:28-33 [베드로가]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30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그들은 베드로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준비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2)청중의 문제와 해결

그렇습니다. 누가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으며, 누가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것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입니다(107:9).

107:9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4. 영적 법칙

이처럼 사모하고 사모하면, 말씀만 들어도 성령이 쇄도하게 됩니다. 사모하면, 안수받지 않아도 성령이 쇄도하게 됩니다. 사모하고 사모하면, 할례받지 않아도 그리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 않아도 성령을 받게 됩니다.

또한 사모하고 사모하는 자에게는 성령께서 오실 때에 선물까지 갖고 오십니다. 사모하고 사모하면 민족이 달라도 상관없습니다. 신분이나 성별이 달라도 상관없습니다. 오직 사모하는 데로 차별없이 성령세례가 부어지는 것입니다. 사모하고 사모하면, 어떤 절차를 밟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들이 아직 성령을 소개하지도 않았는데도, 그들에게 세례를 주지도 않았는데도, 그들 모두가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까지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을 사모하던 가이사랴의 로마군대의 백부장이었던 고넬료와 그의 친척들과 친구들은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있는 중에 성령이 쇄도하여, 이방인들 중에서 최초로 성령받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들었고 어떻게 해서 죄사함을 받는지를 알고 있었기에 그들에게는 안수없이도 성령세례가 임한 것입니다(11:18).

. 청중의 더 큰 복

그렇습니다. 저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표적을 위해 5개월을 기도하고 집회에 참석했더니 그날 방언을 받았습니다.

 

2)결단

사모해야 합니다. 사모하지 않는 자에게는 무엇이든지 주어지지 않습니다. 사모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린 영혼을 만족케하십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13:8). 이제 올 여름에도 다시 집회를 열려고 하는데, “주여, 나에게도 성령의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곧이어 우리교회에 항존식 선거가 있게 될 터인데, 주여, 내게도 항존직에 합당한 자로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가 은혜를 받습니까? 주님께서 주실 은혜를 간절히 기대하고 기도하는 자입니다. 사모하는 자입니다.

 

. 결단의 축복

우리도 지난주에 불렀던 찬송, 185이 기쁜 소식을을 찬송하고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나에게도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표적을 확실히 주시옵소서” “주여, 나에게도 흔들리지 않도록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확실하게 체험하게 해 주시옵소서” “지금 방언을 말하게 해 주시옵소서” “내 몸에 있는 질병을 지금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항존직 선거에 선출될 합당한 자로서 나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주여를 한 번 부르고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성령께서 과연 어떤 사람에게 쇄도하는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령은 사모하고 사모하는 자에게 쇄도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령의 임함은 사모하고 사모하는 자에게는 절차도 생략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령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회개가 동반될 때에 가장 안전하게 임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간절히 기대하고 사모하지 못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주여, 간절히 기도하며 사모하지 못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사모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기대하고 바라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죄는 즉시 회개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기도하고 사모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성령이 어떻게 쇄도하는지를 알지 못하게 가로막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성령을 가장한 미혹의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기도하고 바랄지어다. 사모하고 소망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경건의 기본 중의 기본은 역시 기도생활이었구나.

2.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면 절차도 생략되고 은혜가 임하는구나.

3. 얼마나 준비하고 있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구나.

4. 오순절이후 성령강림은 민족과 신분과 성별의 차별없이 임하는구나.

5. 사모하고 사모하면 절차가 없이도 성령이 임하는구나.

6. 사모하고 사모하면 안수없이도 성령이 임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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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3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를 어떤 방법으로 인도하시는가?(시32:8)_2019-03-31(주일) 갈렙 2019.03.30 297
222 방언통역을 통해서 얻게 된 놀라운 사실(고전14:13~15)_2019-03-24(주일) 갈렙 2019.03.23 211
221 그가 내가 되어(행6:1~6)(구약적인 부르심과 신약적인 부르심의 차이는 무엇인가?)_2019-03-17(주일) 갈렙 2019.03.17 205
» 어떻게 되어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쇄도했는가?(행10:44~48)_2019-03-10(설교전문) 갈렙 2019.03.10 233
219 보혜사 성령은 왜 아들을 증언하시는가?(요15:18~27)_2019-03-03(설교전문) 갈렙 2019.03.03 242
218 누가 진정 탕자인가?(눅15:25~32)_2019-02-24(설교전문) 갈렙 2019.02.24 288
217 탕자의 회개는 이전의 회개와 무엇이 다른가(눅15:11~24)_2019-02-17 갈렙 2019.02.17 211
216 여인은 왜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그토록 찾으려 했을까(눅15:8~10)_2019-02-10 갈렙 2019.02.10 614
215 하나님은 과연 누구에게 사랑을 베푸시는가?(눅15:1~7)_2019-02-03 갈렙 2019.02.03 252
214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구원얻는다고 믿었을까?(유1:17~21)_2019-01-27(주일) 갈렙 2019.01.27 226
213 왜 우리는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가?(계21:8,27,22:15)_2019-01-20 갈렙 2019.01.20 228
212 누가 영생을 얻어 천국까지 들어가는가?(요10:27~29)_2019-01-13 file 갈렙 2019.01.13 304
211 빈익빈 부익부는 달란트 뿐인가?(마13:10~13)_2019-01-06 갈렙 2019.01.06 227
210 그날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마25:29~30)_2018-12-30 갈렙 2018.12.30 214
209 하늘에서 온 표적(눅2:8~14)_2018-12-25(성탄절설교) 갈렙 2018.12.25 240
208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뤄지려면(마1:18~25)_2018-12-23 갈렙 2018.12.23 217
207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기다리시는가?(눅1:26~38)_2018-12-16 갈렙 2018.12.16 319
206 이 시대에 누가 진정 복있는 자인가?(눅1:39~45)_2018-12-09(설교전문) 갈렙 2018.12.09 228
205 받은 은혜와 받을 은혜(눅1:26~38)_2018-12-02(설교전문) 갈렙 2018.12.09 254
204 우리에게는 왜 기적이 없는가?(눅1:5~17)_2018-11-25 갈렙 2018.11.25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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