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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유의지는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가?(6:12~16)

[일시] 20150628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찬송35장 큰 영화로신 주, 138장 햇빛을 받는 곳마다, 358장 주의 진리 위해

PW: 믿음, MIW: 자유의지

T.S: 믿음이란 자유의지를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요? 어제 미국이 결국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에서 동성결혼을 합헌이라고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현재까지 36개주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해왔지만 14개주에서는 반대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의 결정으로 인해 이제는 미국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적이 되어버렸습니다. 미국은 어제(2015626)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해서 세워진 나라입니까? 자기들의 집을 짓는 것보다 교회를 먼저 지었고, 모든 대통령이 성경책에 손을 얹고 서약하는 나라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들은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법과 질서를 무너뜨리는데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미국에 임할 재앙을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미국은 이제 멸망할 것입니다. 아니 반드시 멸망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을 거슬러 동성결혼에 찬성하는 시민이 65%가 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놓고 어기는 국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나마 너무나도 감사드리는 것은 지난 달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메르스전염병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께서 미국방문을 연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대통령께서 일정대로 미국을 방문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6월달을 성소수자의 달로 선포했는데, 그냥 올 수 있었겠습니까? 오바마 대통령은 모든 연방행정기관 종사들과 군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이름하여 <대통령 명령서>입니다.

“6월은 성소수자의 달[LGTB(레스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성전환자)의 달]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동성애에 반대하는 모든 행위를 편견으로 치부하는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미국 정부가 추구하는 성의 다양성을 훼손하는 적(, enemy)이며, 심한 편견자들이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일부분인 성소수자 개개인을 자랑스런 유산(Proud Legacy)으로 여기며 그리고 축복한다.”

결국 어제부로 오바마 대통령이 밀어붙힌 동성결혼이 합법적이 되어서 어제부터는 전 미국에서 강제로 실시하게금 되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자유의지는 죄를 짓는데 쓰라고 주신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라고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파괴하라고 주신 것입니까 아니면 창조의 질서 안에서 축복을 누리라고 주신 것입니까?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과 반대의 길로 행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믿음으로 일차적인 구원을 받은 자는 자신을 죄에게 내주지 말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두 번째의 의를 얻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2)청중적 접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여전히 죄된 육체와 함께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자신을 죄에게 내주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말인가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려 하면, 온통 정신을 성령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며 살아야 하는데, 세상에 늘 발붙여 사는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칭함을 받았으면 그것으로 천국가는 것이 아닌가요?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내실 때에는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것이라 불러내신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우리가 무슨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까?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57년경 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를 떠난 직후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이미 세례받은 성도들에게 세례란 어떤 것을 의미인지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때 바울은 이미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고, 이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들은 자기자신을 더 이상 죄에게 내주지 말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권면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때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죄에게 자신을 내어준다면 죄의 종이 되어 결국에는 멸망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행함으로 두 번째 의에 이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4)문제발생원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칭함을 받았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죄로부터 완전히 놓임받은 것이 아닌데, 어떻게 의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까?

5)문제 심리묘사

내가 예수를 믿는 즉시 죄의 욕망에서도 벗어날 줄 알았는데, 죄된 욕망은 그대로 남아있구나. 그런데 어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의의 열매를 맺으라고 말인가!”

믿음이 있어도 죄된 육체의 소욕을 하루 아침에 버리고 의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이제부터 자신의 자유의지를 육체의 소욕을 따라 죄짓는데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께 드려 의의 열매를 맺으려 합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에게 두 번째 의를 주고 싶어하십니다.

 

. 그렇다면,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느 정도 관여하게 되는가?

그동안 종교개혁자들인간의 자유의지는 구원에 있어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단정해버렸습니다. 특히 칼빈주의자들은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에 따라 되어지는 것이므로 인간의 자유의지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도 만약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죄를 짓고 마귀를 따르는 일에 익숙한 노예의지만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해,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의 자유의지는 완전히 변질되어 어떤 선도 행할 수 없으며, 구원을 위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고 판단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작년부터 제가 말씀을 드려왔지만 칼빈의 예정론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 한 사람이라도 정확히 꼬집어서 그 사람을 구원하시겠다고 개인예정을 한 적이 없으십니다. 있다면 사역적인 예정만 있으며, 유대인과 이방인에 관한 민족적인 예정만 있을 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다 행하신 후에 구원 안으로 죄인들을 초청하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초청을 받은 인간은 그 초청에 응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가 아니고 또 무엇입니까? 구원의 놀라운 잔치에 참여할 것인가와 말 것인가는 부름받은 사람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알 것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후 오직 죄를 지을 노예의지만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여 낳은 첫째아들 가인에게 여호와께서 경고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또한 출애굽하여 광야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을 보십시오.

30:18-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19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그렇습니다. 죄가 유혹해 온다 해도 그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복과 저주와 생명과 사망 가운데 우리가 살기 위하여 복과 생명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전혀 취할 수 없다면 이런 명령은 하지 않으셔야 했을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앞에 나와 고침받은 사람들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들은 축복의 소문을 듣고 스스로 예수님 앞에 나온 자들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해야 할 것은 없지만, 구원의 초청을 듣고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구원받기 위해서 인간 스스로 어떤 노력으 한다 할지라도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들이요 하나님께서 해 주실 일들입니다. 예를 들어, 죄를 짓지 아니하고 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 스스로는 자신이 지은 죄들을 용서받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탄마귀가 지배하는 이 세상으로부터 탈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들입니다. 이것을 위해 죄없으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인간의 속죄제물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죄를 사함받을 수 있는 길을 하나님께서 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영접하고 그분만을 따라가면 마귀가 지배하는 이 세상을 탈출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자신의 개인의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다음부터는 우리의 책임입니다. 믿음의 길로 갈 것인가 타락의 길로 갈 것인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은 그것까지도 하나님이 다 해 주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만세전에 그를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으셨으니 그분이 끝까지 책임지실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잘못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마련해놓으신 구원의 잔치에 초청을 받아 참여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칭의의 옷을 입혀주십니다. 그때에 믿는 자들은 세례를 받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6:3-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으니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계속해서 죄 가운데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때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입니다. 죄를 짓고 살던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난 뒤에 우리는 그분이 부활하신 것처럼 새 사람으로 부활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우리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의 대하여는 산 자로 여겨야 합니다. 그렇게 계산하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자유의지는 어디에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 살아난 그 후에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도바울은 2가지 것을 권면합니다. 하나는 소극적인 것이요 다른 또 하나는 적극적인 것입니다.

첫째, 우리 자신을 더 이상에 죄에게 내주지 말고 즉 죄에게 종노릇하지 말고 죄와 투쟁하라는 것입니다(6:6, 12~13).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쓸모없게 되어) 다시는(더 이상)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6:12-13a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우리가 구원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 해 놓고 누군가를 통해 우리를 그 잔치 안으로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더 이상 죄에게 드려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베푸신 전적인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 안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마음대로 짓지어도 된다는 특권을 부여받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신칭의를 통해 구원 안으로 들어온 자라도 만약 계속해서 죄를 범하게 된다면 그는 더 이상 회개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끝에 가서는 불못에 던져진다고 경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6:4~8)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칭함을 받았습니까? 그리고 지난날에 지은 죄를 용서받았습니까? 그러면 이제부터는 절대 죄에게 자신을 내 주지 마십시오. 이런 일은 하나님이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스스로 자유의지로 결단하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 말씀을 보십시오.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일차적인 구원을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지켜야 하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 하나님이 대신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육체를 쳐 복종시키십시오. 육체의 본성 즉 사람의 성질과 욕망과도 투쟁하십시오. 죄와 투쟁하십시오. 죄를 인격화시키면 마귀입니다. 그러니 마귀와 투쟁하십시오. 마귀도 인격을 가지고 있는지라, 우리가 계속해서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도 떠나가게 되어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죄를 대적하지 않고 죄와 투쟁하지 않으며 육체의 본성대로 계속해서 행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그는 틀림없이 구원의 경주에서 탈락하고 말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믿는 그리스도인 부부가 나옵니다. 그들 부부는 자신의 재산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내 놓았습니다. 사실 누구라도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 부부는 그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때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앟고 육체대로 행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사도들 앞에 내 놓으면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친 것처럼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자신을 명예롭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속이려 시도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세례를 받아 예루살렘교회의 성도였지만 그들은 그날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와같이 명예를 위해 우리가 육체대로 행한다면 우리도 결국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같이 될 것입니다. 구약에도 그러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최초의 왕 사울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처음에 얼마나 겸손한 자였는지 아십니까? 그는 자기더러 나는 이스라엘의 가장 작은 지파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하지만 왕이 되고 나더니, 그는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백성들로부터 높이여김을 받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명예를 위해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셨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더러 앞으로 지을 모든 죄도 다 용서해 줄 것이니 마음껏 죄짓고 살라고 용서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8장에 보면, 간음하다가 현행법으로 체포된 가련한 여인이 한 사람 나옵니다. 이 여인은 귀네(부인)’입니다. 결혼한 여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음행에 빠지자 않도록 성인이 되면 결혼하여 가정 안에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여인은 초막절에 다른 남자와 간음행각을 벌였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그 여자는 가정파괴범으로서 돌로 쳐죽임을 받아야 마땅한 여자입니다(20:10, 22:22~24). 그러나 그때 그 여인을 정죄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그러자 어른에서 시작하여 어린이까지 다 도망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여인은 자신의 죄를 용서받았으니 그때부터 더 간음을 하도록 권리를 부여받은 것입니까?

8:10-11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우리를 의롭다 여겨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해주신 것은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둘째,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 곧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어 그것을 완수하라는 것입니다(6:13, 12:1).

6:13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신 것은 더 이상 범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 첫 번째의 이유라고 한다면, 두 번째 이유는 보다 더 적극적인 이유입니다. 그것은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 안으로 들어오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하신 것은 이제는 우리의 자유의지를 사용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가는 사람이 되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 몸을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은 이유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라고 불러내신 것입니다.

사명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어디에 나를 쓰시려고 나를 구원해 주신 것인가를 알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과연 어디에 쓰시려고 이 자리에 있게 하신 것인가를 깨닫고 그 뜻을 준행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주에 17~18대 국회의원을 지닌 이혜훈 집사의 간증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녀는 느닷없이 국회의원이 된 사람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국회의원을 해 보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에게 그러한 제안이 들어왔을 때에 그녀는 거기에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초선의원일 때에는 그 뜻이 정확히 밝혀지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재선의원이 되었을 때 그녀는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국회에 입성하게 하셨는지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때 이슬람의 자본이 한국을 잠식해들어오도록 문을 열어주는 스쿠크법이 국회에 상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스쿠크법이 없이도, 차별금지법과 평등법만으로도 영국은 10년만에 40%가 이슬람화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만약 스쿠크법이 통과된다면 2~3년 안에 우리나라는 이슬람화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시 국회 조세에 관한 특별법을 관장하는 사람들이 모두 26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장로와 안수집사와 집사님들이 도합 17이나 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스쿠크법을 반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다 자신의 밥그릇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밥그릇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거기에 두신 뜻을 저버렸습니다. “왜 하나님은 지금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하셨는가?” 이것이 바로 사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자신이 사명이 무엇인지 다 가르쳐주지 않는듯합니다. 처음에 그를 불러낼 때부터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사도바울과 같은 경우입니다. 대부분 아니 99%의 성도들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구원 안으로 들어왔는지 잘 모릅니다. 거기에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돈과 명예 때문에 그것을 저버립니다. 그리고 게으름 때문에, 자신의 못된 성질 때문에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저버립니다.

, 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를 보십시오. 거기에 보면,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믿음의 분량대로 나눠주신 달란트에 대한 결산심판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주인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이 사명이 무엇인지 정확히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먼 여행을 떠납니다. 내가 서비스업에 종사해야 하는 것인지, 생산직에 종사해야 하는 것인지, 장사를 해야 하는 것인지, 사업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인지, 공무원이나 회사에 취직해야 하는 것인지 분명하게 가르쳐주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저마다 받은 달란트를 가직고 주인이 다시 와서 결산할 때를 대비하여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들이 주인의 돈을 받아서 그 뒤로 장사하였다고 나오지만 원문에 보면 그들은 다 일했다라고 나옵니다. 모두 다 장사한 것이 아니라 모두 다 자기가 맡아서 해야 할 어떤 일들을 찾아서 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종은 주인이 자신에게 준 책임을 저버렸습니다. 악하고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그때 주인이 다시 돌아와서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우리 하나님께서는 결코 주지도 않으시면서 내 놓으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분명히 뭔가를 주시면서 일하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 행하고 있는 일 중에는 분명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목회자는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으며, 평신도들은 평신도로서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각 가정에서 부모가 해야 할 일과 자녀가 해야 할 일이 각각 따로 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자신의 구원을 완성하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는 착하고 충성되이 살아가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조금도 귀한 여기지 않고 주님께서 자신에게 부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애썼습니다(20:24).

이제는 우리 성도들도 이런 질문을 늘 자신에게 던지십시오. “왜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나를 두셨는가? 왜 이 자리에 나를 있게 하셨는가?”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보일 것입니다. 그것을 완수하십시오. 자유의지는 죄를 마음껏 지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준행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4. 영적 법칙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구원 안으로 들어온 이후 더 이상 자신을 죄짓는데 내주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죄와 투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찾아내어 그것을 성실하게 준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국이라는 나라에 왜 대법관의 위치를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판결을 하라고 주신 것입니까? 오바마가 무서운 것입니까? 목이 잘릴까봐 두려운 것입니까? 그는 사람의 종이지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다.

 

5. 복과 결단

1)

일차적인 구원을 받은 이후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해, 더 이상 자신을 죄에게 내 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성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복을 주실까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여겨주시고 많은 것을 더 맡겨 주실 것입니다. 주인의 즐거운 잔치에 참여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면류관을 씌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이 세상에서 건져내어 천국에 데려가실 것입니다.

2)결단

성도들이여, 왜 자신의 못된 성질에 자기 자신을 주려고 하십니까? 욕정에 자신을 넘겨주시려 하십니까? 왜 돈과 명예에 신앙을 팔아버리려 하십니까?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까? 그러면 게을러서는 아니 됩니다. 편하고 쉬운 길로 가려 해서도 아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데, 그것을 버리고 세상길로 가서는 절대 아니 됩니다. 그러면 사망입니다. 그러면 불사름입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이제 우리 자신을 더 이상 죄에게 내주지 마십시오. 못된 성질에 자신을 맡기지 마십시오. 우리의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위해 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행하십시오. 이제는 더 이상 자유의지를 죄짓는데 사용하지 마십시오.

 

. 결단의 축복

그러면 하늘나라가 여러분의 것이 될뿐더러, 그 나라에 들어가서도 왕노릇할 자가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 안으로 불러주신 이유를 알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믿는 자는 자신의 자유의지로써 더 이상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믿는 자는 자신의 자유의지로써 자신이 해야 할 사명을 찾아내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그동안 죄와 투쟁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나이다. 용서해주소서.

주여, 그동안 우리의 사명에 충실하지 못하였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자유의지를 바르게 사용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자유의지를 죄짓는데 사용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자유의지를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자유의지를 죄와 투쟁하는 데에 사용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내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자유의지를 죄짓는데 사용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속인 악한 영들은 지금 당장 떠날지어다.

내가 예수이름으로 명하노니, 게으름과 못된 성질을 조장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죄와 끝까지 투쟁할지어다. 자신의 사명에 충실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자유의지는 죄를 짓는데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었구나.

2.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모든 준비를 다 하신 후 우리를 구원 안으로 초청하셨구나.

3.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면 그때부터는 죄를 마음껏 지으며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일평생 죄와 투쟁하며 살아야 하는구나.

4. 믿음으로 구원받은 후에 자기 자신을 죄의 종으로 계속해서 내어준다면 그는 결국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구나.

5. 자유의지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것을 성실히 수행하라고 있는 것이로구나.

6. 자신의 사명에 반응하지 않으며 게으르게 행하는 것도 죄가 되는구나.

7.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는 것이야말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과정으로서 매우 중요하구나.


[다운로드하기] 2015-06-28 자유의지는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가(롬6;12~1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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