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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받은 은혜에 내 한 목숨 주님께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17:11~19)

[일시] 20191020일 주일 오전9,11

[찬송] 14장 주 우리 하나님, 242장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PW: 믿음, MIW: 감사

T.S: 믿음은 받은 은혜 잊지 않고 마음과 물질과 섬김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벌써부터 가을걷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땅콩과 고구마는 이미 거두었고, 대추도 따고 밤도 줍고 단감도 따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장을 위한 무와 배추는 벌써 무럭무럭 탐스럽게 자라고 있습니다. 구리빛 늙은 호박도 추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으며, 들녘에는 노랗게 익은 나락들이 농부의 추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달 하순이 지나면 벼추수는 완전히 끝날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도 논작물과 밭작물의 추수에 맞춰 다음주에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려고 합니다.

우리는 구약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기를 필수적으로 지켜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다만, 도시에 살다보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줄 모를 수 있기에, ‘맥추감사주일그리고 추수감사주일을 정해서 지킴으로 한 해 가운데 봄추수가 마치게 되었고 또한 한 해의 가을추수가 마치게 되었음을 확인할 따름입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절기는 오직 구속의 절기만이 남아있으니,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부활절과 예수께서 우리 죄를 속량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나신 날을 기념하는 성탄절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절기에는 구속의 은총에 감사하는 절기도 있었고 창조의 은총에 감사하는 절기도 있었습니다. 구속의 은총에 감사하는 절기는 유월절, 무교절, 오순절, 나팔절, 초막절, 속죄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의 은총에 감사하는 절기도 있으니, 초실절, 칠칠절(맥추절), 수장절 등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 특히 도시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농사의 절기는 이제 의미가 퇴색되어버렸고, 구속의 은총을 기념하는 부활절과 성탄절만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한 해의 추수를 정리하면서 또 한 해의 추수를 준비하는 획을 긋는 시간은 필요합니다. 이스라엘도 그래서 71일을 새 해의 기념일로 지키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개척초기부터 10월 셋째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켰는데, 2014년부터는 추수감사주일을 넷째주일로 옮겨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올해는 10월 넷째주일에 지키는 6번째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추수감사주일이 되면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 것인가요? 도시에 사는 우리들은 농사도 하지 않는데 추수감사주일에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 것인가요? 오늘날 우리에게 감사는 창조의 은총보다는 구속의 은총이 훨씬 더 큽니다. 그러니까 죽어서 지옥형벌을 면치못할 죄인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자연적인 방법을 통하여 마귀의 소굴에서 이끌어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영적인 가나안 땅인 천국에 들어가도록 이끌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거꾸로 물어보겠습니까? 우리가 받은 구속의 은총에 감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만약 우리가 구속의 은총에 감사하지 않는다면 구속의 은혜가 취소되는 것인가요?

사실 우리의 감사생활을 돌아보면 작디 작은 감사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18장에서 주께서 어떤 부자청년에 말씀하신 것처럼 영생얻기 위해서 우리의 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도 못해보았습니다. 그리고 19장에 나오는 삭개오처럼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재산의 절반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내어주지도 못했으며, 욥처럼 고통당하는 이들이 있나 주위를 살펴보지도 못한 해 한 해의 끝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의 감사는 지옥에 떨어지게 되면 비로소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겠는데, 아직 그와같은 경험을 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 감사가 커다랗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번 가정해봅시다. 어젯밤에 뇌출혈로 쓰러져 생사를 오가는 사람이 내 남편이었고 내 아내였다고 하면 어떨까요? 그래서 뇌 한쪽이 죽어서 평생 반신불수가 되어서, 누군가 일평생 병수발을 해야 한다고 칩시다. 모두가 절망 가운데 빠져 있느니, 그 다음날 보니 쓰러졌던 배우자가 뇌출혈의 증상이 멎어있고 붓기를 빠졌으며, 검사는 정확히 못해 죽은 뇌가 다 죽지 않고 일부만 죽어서 혼자서도 얼마든지 기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칩시다. 그러면 우리의 입에서 어떤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게 될까요? “, 주님. 감사합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을까요?

그렇게 보면 우리 인간은 너무나 간사한 자들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환경에 따라 감사를 하기도 하고 환경에 따라 감사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의 삶에 얼마나 감사가 중요한지 그 전후맥락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주님은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잘 말씀하지 않으시는 분이신데, 오늘 말씀에 의하면, 당신의 속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 사람이 다 은혜를 받았는데 왜 한 너만 감사하러 돌아왔느냐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주님은 감사하지 않는 9명의 사람들을 보고 안타까워하신 것인가요? 왜 감사하러 온 그에게 놀라운 복을 선언하시는 것인가요? 그래서 오늘은 정말 감사의 의미가 무엇이며, 감사하는 자가 받게 될 축복은 무엇이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감사를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나병환자들 10명이 동시에 다 고침을 받았지만 사마리아 나병환자만 주님께 돌아와 감사를 표현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길을 가다가 나병환자들 모두가 다 고침을 받았는데, 9명의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하지 않았던 것인가요?

그들은 가족을 떠나 혼자 지내야 하는 치명적이고 고독한 질병에서 낳게 되었는데도, 9명의 나병환자들은 주님께 돌아와 감사하지 않았던 것인가요?

그런데 출신성분으로 볼 때에 외국과 같은 이방인이었던 사마리아인은 왜 주님께서 돌아와 절하며 큰 소리로 영광을 돌리며 주께 감사를 표현했던 것인가요?

사마리아 나병환자나 유대인 나병환자나 둘 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어서, 예수님께 드릴 것 하나도 없는데, 왜 사마리아인은 예수님께 굳이 되돌아가서 절하면서 큰 소리로 감사를 했던 것인가요?

 

2)청중적 접근

오늘날 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는 것인가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공생애를 마치게 될 무렵, 이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중에,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에 있는 길에서 일어난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는데, 멀리서 나병환자 10명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왜냐하면 나병환자는 전염 때문에 격리되어 있어야 한다고 율법에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그런데 이때 이들이 외쳤던 이름과 호칭은 그들이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해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특히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제사장에게로 가는 것을 보면 그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된다는 믿음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특히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또한 그분에 대한 칭호로서 에피스타타(원형 에피스타테스)라는 것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율법선생님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오직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단어인데, 그 뜻은 만물의 주관자라는 명칭입니다. 예전에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했을 때, 그도 예수님을 에피스타타라고 말했습니다. 만물의 주관자시여,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당신의] 말씀(레마)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5:5)”고 했던 것입니다. 고로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보통이상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들에게 가서 너희의 몸을 단번에 보여주십시오.” 그러자 그들이 진짜 그곳을 떠나 제사장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정말 나병이 고쳐졌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낫게 되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큰 소리와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 옆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사마리아 나병환자였습니다.

 

4)문제발생원인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열 사람들이 다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이방인(외국인) 외에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드리려고 돌아왔던 자는 발견되지 않았구나.그리고 사마리아 나병환자에게 말했습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제사장에게]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한 채 있느니라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불치병에서 나음을 입었어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신의 믿음이 자신을 낫게 했다고 착각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의 자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신이 낫게 된 것은 응당 자신의 믿음 때문이라고 생각해버립니다.

믿음이 없으면, 정작 기적같은 치유 후에 또 받아야 할 진정한 축복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을 그만 놓쳐버립니다.

믿음이 없으면, 더 큰 혜택이 기다리고 있는 감사를 그만 놓쳐버버립니다.

믿음이 없으면, 감사하지 않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사마리아 문둥병자는 믿음으로 길을 가다가 주님께로 돌이켰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예수님께 엎드리어 감사했습니다. 그에게는 주님께 감사할 것이 그것밖에 다른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오늘 우리는 여기서 왜 감사가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 본문이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남아 있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 감사란 무엇인가?

감사란 보은하는 마음을 가리킵다. 자신이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을 감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도바울은 일상생활 가운데 3대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말했습니다(살전5:16~18).

살전5:16-18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항상 가지고 있어야할 삶의 태도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감사란 우리가 이 땅에 있을 때에만 할 수 있는 특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다음에 감사하는 것은 의미가 없거나 별로 효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누군가가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칩시다. 거기에서 과연 감사할 사람이 있을까요?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어떤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들어갔다고 칩시다. 거기서 감사할 수 있을까요? ,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아무리 감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따른 혜택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오직 이 땅에 우리가 살아있을 때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직접 자신의 입술이나 물질로 감사하지 않고 방언기도로 감사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받아서 방언을 말한다고 할지라도 방언 자체가 감사를 대신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온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를 받으시는 것이지 영이 드리는 감사를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방언기도로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해도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더러 창조의 은총과 구속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하라고 절기를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받은 은혜는 마음과 물질로 감사로 표현할 수 있도록 때마다 절기를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 감사할 때 어떤 혜택이 더 주어지는 것인가요?

우리는 사마리아 나병환자가 돌아와 감사했을 때에 주님께서 그와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을 유념해 봐야 합니다.

17:17-1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타국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첫째, 나머지 9명도 응당 감사하러 왔어야 옳았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러나 오지 않음으로 인하여 중대한 것을 놓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9명의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놓치고 말았던 것인가요?

첫째,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당신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는 것을 매우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오죽했으면 주기도문에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할 것을 말씀하겠습니까?

둘째, 자기들이 받았던 복이 확실히 인쳐져서 영원히 자기의 것이 되는 것을 놓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만약 사마리아 나병환자처럼 그들이 돌아와 감사를 표현했다면 그들이 받은 병고침이 한 없이 그들의 것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받은 은혜가 인치는 작업인 것입니다.

셋째, 그들은 받은 은혜에 감사가 더해질 때 또 다른 은혜의 축복의 씨앗이 되는 것을 놓치고 말았습니다(19).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오직 돌아온 사마리아 나병환자에게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한 채 있다라고 선포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이어봤자 무엇합니까? 그리고 병고침을 받아봤자 무슨 소용입니까? 구원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마리아 나병환자는 병고침만 받았을 뿐만아니 아니라 감사를 표현함으로 인하여, 구원의 축복까지 받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들 외에 더 많은 축복이 따라오게 하는 감사를 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일시적인 병고침을 받는 복만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복을 받은 후에 그것이 씨앗이 되어 더 큰 은혜로 돌아오게 하는 축복의 씨앗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받은 은혜가 있을 때마다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 그들은 감사를 통해서 하늘에 들어가게 되면 영원히 주어지는 상급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부르는 찬양 한 마디도, 기도 한 조각도 천국에 가면 상급이 됩니다. 우리가 입술을 벌려 복음을 전하려 했던 것 하나도 다 상이 되어 천국에서 상으로 주어집니다. 그런데 그것은 한 순간으로 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 하늘에서 영원토록 누릴 내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기회를 그들을 놓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감사의 기회가 주어질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해야 하는 것인가요?

첫째, 감사하고는 싶으나 드릴 것이 없는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침받은 사마리아 나병환자의 예입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도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찬양하고 엎드려 경배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입술을 벌려 진정으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사실 찬양(악기포함)이란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가장 향기로운 제물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무엇인가를 드릴 수 있는 경우입니다. 그럴 때에는 감사할 수 있는 물질을 담아서 주께 드리면 됩니다. 예를 들어 농부가 추수하여 곡식을 거두어들였다면 추수한 곡식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농사의 추수가 아니라 영적인 추수를 많이 했다면 감사의 마음을 물질에 담아 주님께 올려드리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창조의 은총에 감사하는 절기를 주셨고, 구속의 은총에 감사하는 절기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절이나 수장절의 절기에는 곡식으로 드렸으며, 유월절이나 속죄절의 절기 때에는 감사의 제물을 주님께 바쳤던 것입니다.

26장에 보면, 주님께 값비싼 귀한 나드 한 옥합을 깨뜨린 한 여인이 나옵니다(26:6~13). 그때 제자들은 그것을 300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더 현명한 처사가 아니냐면서 그녀가 그것을 허비했다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그것은 그녀가 예수님에게 좋은 일을 하였다고 하셨습니다(26:10). 왜냐하면 가난한 자들은 제자들과 언제라도 함께 있어서 구제할 수 있지만 예수께서는 이제 떠나면 육신으로는 두 번 다시 만날 수가 없는데, 그녀는 자신의 육신의 죽음을 위하여 미리 향유를 부어 시체를 정결케 하는 아름다운 일을 행하였으니 그녀가 한 행위는 결코 낭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는 것은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한편 자신도 직접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동참하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으나 물질을 드릴 수 있는 경우에는 물질로 동역자를 도와 선교하면 됩니다. 동역자로 하여금 선교하는데 필요한 선교헌금(도서선교헌금과 방송선교헌금)을 내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선교를 위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교회도 선교헌금을 바울에게 보내왔습니다.

셋째, 드릴 것은 없으나 직접 자기의 손 그리고 은사와 달란트로 섬길 수 있는 경우입니다. 그럴 때에는 몸된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몸을 드리고, 은사와 달란트를 몸된 교회를 위해 기꺼이 드리는 것입니다.

넷째, 드릴 것은 없으나 드리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하여 자기자신의 생애 전체를 아예 주께 드리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드문 경우의 일입니다. 받은 은혜가 너무나 많아서, 어떻게 주체할 수가 없는데, 가진 것은 없고 직업을 가진채 주님께 감사하기보다는 자기자신의 전체의 삶을 주께 드려, 주님이 쓰시는 나귀가 되어드리는 것입니다. 저와 같은 경우는 25살의 청년의 나이에 그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사헌금 봉투에 내 몸을 주께 바칩니다라고 써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 큰 은혜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한 몸 주님께 드려 주님의 기쁨이 된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감사란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꼬옥 기억하고 보은하는 것입니다.

감사란 받은 은혜가 인쳐지는 영적인 행위입니다.

감사란 받은 은혜 위에 또 은혜가 이어지도록, 이미 받은 은혜에 축복의 씨앗을 뿌리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감사란 받은 은혜가 있을 때 주님께 내 마음과 물질과 내 몸과 내 인생을 드리는 보은의 행위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주님께 돌아와 감사를 표현했던 사마리아 문둥병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첫째,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17~18).

둘째, 육체인 질병에서 놓임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영원히 자기의 것이 되는 인침을 받았습니다.

셋째, 받은 은혜에 더 큰 은혜를 받았으니, 그가 비록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얻는 축복까지 받았습니다(19). 그의 감사 때문에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어엿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었고, 하늘의 상속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넷째, 주님께 계속해서 쓰임받는 자가 하늘의 상급을 많이 쌓는 자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수많은 믿는 자들에게 사마리아 나병환자의 예가 귀감이 되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그렇습니다. 이것은 비단 사마리아 나병환자의 축복만이 아닙니다.

 

2)결단

하나님은 받은 은혜가 없는데도 바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바칠 것이 없는데 빚을 내서라도 바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칠 것이 없을 때에는 우리의 소중한 마음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성껏 준비하면 드리는 물질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바칠 것이 없어 자기자신을 드릴 때에는 그 사람을 당신의 마음에 새겨놓으시고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주께 드려야할 감사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시고 있다면 정말 감사로 추수감사주일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결단의 축복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귀하게 보십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더 감사할 거리를 만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감사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감사는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하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감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기회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감사는 또 다른 은혜를 받을 씨앗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감사는 마음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제가 제대로 감사치 못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감사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살아서 꼭 보은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감사로 영광돌리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보은하려는 마음을 빼앗아가고자 하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감사의 축복을 놓치게 만들려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받은 은혜에 감사할지어다. 감사로 은혜를 인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감사의 절기에는 창조의 절기와 구속의 절기가 있구나.

2. 받은 은혜에 감사하면 또 다른 축복이 예비되어 나타나는구나.

3. 감사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중대한 것을 놓치는 것이로구나.

4. 감사란 받은 은혜를 인치는 작업이로구나.

5.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구나.

6. 그리스도의 삶에 감사는 중요한 하나님의 뜻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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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눅13:22~30)_2019-11-10(주일) 갈렙 2019.11.10 272
254 초막절을 지키지 않으면 정말 비를 내리지 아니하는가?(슥14:16~19)_2019-11-03(주일) 갈렙 2019.11.02 268
253 왜 하나님은 일주일간 초막에 거주하라고 했을까?(레23:39~44)_2019-10-27(주일) 갈렙 2019.10.27 183
» 받은 은혜에 내 한 목숨 주님께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눅17:11~19)_2019-10-20(주일) 갈렙 2019.10.19 213
251 외부세력의 위협 앞에서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행4:23~32)_2019-10-13(주일) 갈렙 2019.10.13 381
250 이제는 WCC와 WEA에 속한 교회를 떠나야 하는가?(계18:1~8)_2019-10-06(주일) 갈렙 2019.10.06 262
249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 과연 어디까지 해야 하나?(요18:33~38)_2019-09-29(주일) 갈렙 2019.09.29 194
248 예수님 이후 참된 지혜자는 누구인가?(마11:25~27)_2019-09-22(주일) 갈렙 2019.09.21 219
247 우리의 본향은 진정 어디인가?(히11:8~16)_2019-09-15(주일) 갈렙 2019.09.15 352
246 주기도문강해(08)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마6:13)_2019-09-08(주일) 갈렙 2019.09.07 183
245 주기도문강해(0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6:9)_2019-09-01(주일) 갈렙 2019.09.01 184
244 바울의 기도와 내가 드려야 할 기도(엡1:15~19)_2019-08-25(주일) 갈렙 2019.08.25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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