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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값싼 구원론자들이 빼버린 3가지 요소(15;17~21)

[일시] 20151101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36장 주 예수 이름 높이어,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273장 나 주를 멀리 떠났다

PW: 믿음, MIW: 빼버리다

T.S: 믿음이란 구원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리를 뻬버리지 않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음부 곧 지옥에 들어갔던 부자가 이 세상에 살고 있을 때에는 모르고 있었던 것들이 있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부자는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복이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다음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으며, 그곳은 자신의 행실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게 되는데, 한 번 그곳에 들어가게 되면 절대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몰랐으며, 음부에서는 그 어떤 기도나 청원도 소용없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살 때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있어도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또한 어떤 죄를 지었던 자라도 죽기 전에 회개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교회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이런 것들을 다 알고 있는 분들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짜 복있는 사람들입니다. 옆 사람에게 인사합니다. “집사님이야말로 진짜 복있는 분이셨군요.”

성도 여러분, 지난 주일은 무슨 주일이었죠? , 우리 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주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교단적으로는 지난 주일이 종교개혁주일이었습니다. 종교개혁에 불을 당겼던 루터가 비텐베르크성당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던 날(1517.10.31.)을 기념하여 종교개혁주일로 지키고 있는 주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은 한국교회는 과연 어떠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까? 지난 주간에 우리는 충격적인 사건을 접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어떤 목사님을 찾아가 자신의 비리를 폭로한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칼로 여러 차례 찔렀다는 보도였습니다. 어찌 한국교회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요?

얼마 전에 올 해 종교개혁주간을 앞두고 하나님나라연구소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자 하나님나라 복음을 회복하는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종교개혁절 기념강좌서울소망교회에서 열었습니다. 이때 첫 날 강사로 나온 풀러신학교대학교 신약학 교수이자, 전 합동측 총회신학교 신약학교수였고 신대원장이었던 김세윤박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서두에 했습니다.

한국교회 구원론은 구원파와 다르지 않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구호만 남은 개혁주의요, 한국 정통장로교회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칭의론 교리가 오히려 의인으로서의 삶을 방해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한국교회는 내가 예수를 주로 영접하고 은혜받은 뒤에 의인이 다 되어버렸다. 그러니 이제는 최후심판 때에 구원은 따놓은 당상이다.”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구원론에서부터 잘못 되어 부패의 온상이 되어버린 한국교회를 향해 이렇게 쓴 소리를 했습니다. 또한 칭의는 성화를 포함하는 것이므로 칭의는 구원을 완성할 때까지 유보된 것이다.” “결국 진정한 구원이란 그리스도인이 받은 바 구원을 지속적인 순종과 의의 열매맺는 삶을 통해 두려움과 떨림으로 이루어가야 한다.” 라고 정확한 구원론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믿음으로 구원이 완성되어버렸다는데, 그들에게 무슨 도덕이 필요가 있겠으며,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길 이유가 또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벌써부타 자신은 그날 심판대 앞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으니, 지금 무슨 죄를 짓든지 그들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오늘 이 시간에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한국교회를 속여온 값싼 구원론이 얼마나 비성경적인가 그리고 값싼 구원론을 외치는 자들은 과연 인간이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요소들 가운데 무엇을 빼버렸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들고 집을 나간 탕자가 스스로 돌이켜 회개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다는 말씀입니다.

한 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교리와는 달리 어떻게 아들이 타락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까?

한 번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께서 끝까지 견인하신다는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왜 아버지는 탕자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기다리고만 있었던 것일까요?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는 어찌하든지 하나님께서 회개시킨다고 주장하는데, 탕자는 왜 스스로 돌이켜 뉘우치며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간 것일까요?

 

2)청중적 접근

오늘날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전통 위에 서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특히 종교개혁의 선두주자였던 칼빈을 가장 잘 따라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이러한 한국장로교회는 칼빈주의 장로교의 전통에 서 있는 만큼 세계 기독교역사상 가장 많은 퍼센트의 장로교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개혁주의 전통이 지금 한국교회를 어떻게 만들어 버렸을까요? 우리가 어렸을 적만 해도 구원은 죽어봐야 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때부턴가 4영리를 들이대면서 구원은 죽어봐야 아는 것이 아니라면서, 신앙을 고백하면 이미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억지로 강요하기 시작한 후 3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과연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좀전에 말씀드렸다시피 2주전에는 어떤 목사가 자신의 비리를 폭로했다면서 칼을 품 속에 넣어가지고 가서 다른 목사를 찌르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형제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과연 어디에 갔습니까? 원수가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동행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어디로 실종된 것입니까?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욕하는 는 살인하는 것이니 형제에게 노하지 말라 예수님의 말씀은 또 어디로 갔습니까? 과연 이들은 최후의 심판주이신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맞긴 맞습니까? 그들에게 구원은 따놓은 당상이니 그렇게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까?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29년경 그러니까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한 지 횟수로는 3년째가 되는 어느 날, 세리들과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예수께 나아오자, 예수께서 죄인들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비난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비유로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때 3가지 비유를 베풀었는데, 전부 잃었다가 되찾은 것에 대한 비유입니다. 특히 오늘 우리가 읽었던 말씀은 세 번째 비유로서, 일명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한 번 훌륭한 아버지의 자녀로 태어났다면 마땅히 효도해야 하는데, 어찌 아버지의 가슴을 후벼 파면서까지 아버지의 재산을 돈으로 바꾸어 먼 나라로 떠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런데 둘째아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통제를 벗어난 둘째아들, 그에게 더 이상 제동장치는 없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낭비했습니다. 창녀들에게 다 주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나라에 심한 흉년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집에 들어가 아교풀처럼 붙어서 자기를 종으로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주인은 그를 들로 내보내어 돼지를 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도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집에 돌아온 돼지는 쥐염열매라도 먹는데, 자기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돼지였으면 좋겠다. 집에 돌아오면 먹을 것이라도 실컷 먹게.” 그는 집 한 켠에 앉아 달빛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쪼그려 앉아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아버지의 곁을 떠나게 되면 불쌍한 인생이 되어버립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탕자는 뉘우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의 아버지의 집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의 집에서는 날품팔이 일꾼도 풍족하게 먹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집에 돌어갈 면목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 아버지 곁을 떠나왔는데, 이제 이 거지꼴로 어떻게 아버지집에 들어간단 말인가?” 그 순간 자신을 떠나보내던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아들아, 세상살이가 힘들어지거들랑 꼭 다시 내게 돌아오거라, , 알았지?” 그렇지만 아버지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그때 그는 뉘우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내가 다시 아버지의 자식으로는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날품팔이의 한 사람으로 돌아갈 수는 있지 않은가?” 그 순간 그는 자신을 완전히 낮추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께 돌아가게 되면 아버지 앞에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를 되뇌였습니다.

아버지여, 내가 하늘을 향하여 그리고 아버지 앞에서 죄를 지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을 버렸으며, 때도 안 되었는데 아버지의 재산을 달라고 해서 다 허비하고 말았으니 아버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리기에 합당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여, 저를 아버지집의 날품팔이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소서.”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의 뉘우치고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 구원은 하나님이 다 해 주시는 일인가?

우리는 이 탕자의 비유에서 오로지 믿음만 있으면 구원받는다는 값싼 구원론자들과는 전혀 다른 아들과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알 것은, 이 아들이 다시 아들로 받아들여지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아들의 소관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소관에 속합니다. 그를 다시 받아주실지 아니 받아주실지는 전부 다 아버지의 뜻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과를 알고 있으니 그 아버지가 당연히 그 둘째를 다시 맞아주실 것으로 기대하지만, 당시 둘째아들은 그것을 전혀 예측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늘 아버지를 대신하는 아버지는 탕자를 다시 아들로 받아주기 위한 모든 준비를 다 해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둘째아들이 돌아오면 입힐 첫째가는 제일 좋은 옷손가락에 끼울 반지그가 신을 샌달을 준비해놓고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웃사람들을 불러모아 함께 잔치할 살진 송아지까지 준비해놓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만반의 준비는 다 하나님께서 해 주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소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는 죽었다가 깨어난다 해도 구원받을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위해 하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았으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을까요?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최소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것들은 아버지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자신을 데리러 올 때까지 남의 집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주시는 아버지께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에게 자신의 죄를 깨닫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런데 값싼 구원론은 외치는 자들은 우리가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다 아버지께서 알아서 해 주시니 아버지의 사랑을 믿기만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둘째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아버지께서 자신을 사랑해줄 줄로 믿기만 하면 모든 죄는 다 용서되는 것입니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도 않았는데, 어찌 아버지께서 용서해주실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였던 칼빈의 예정론과 예정론의 핵심교리인 성도의 견인교리를 보면, 그 탕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야 합니다. 다 아버지께서 알아서 해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진짜 그럴까요? 아버지가 회개도 대신 해 줍니까? 돌아가는 것도 아버지가 대신 해 주어야 합니까? 하지만 값싼 구원론을 주장하는 오늘날 종교개혁자들의 후예들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조차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회개할 마음조차 가지지 말라고 합니다. 아버지께서 다 해 주실 것을 믿으라고 합니다.

 

. 값싼 구원을 외치는 자들이 빼버린 구원요소들

그런데 오늘날 종교개혁자들의 잘못된 값싼 구원론이 한국교회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가르쳐준 것처럼, 구원받기 위해 최소한 해야 할 도리마저 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믿음만 있으면 천국갈 것이라고 거짓말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값싼 구원론을 외치는 자들은 대체 인간의 구원의 과정에 있어서 무엇을 빼버린 것일까요? 그들은 적어도 3가지를 빼버렸습니다.

 

첫째, 그들은 회개의 중요성을 빼버렸습니다. 오늘날의 값싼 구원론자들은 인간의 회개를 슬그머니 빼버렸습니다.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회개할 때에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송두리째 빼버렸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만으로 구원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맞지만 그리고 우리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속죄제물로 삼으신 것도 맞지만, 내가 지은 죄는 내가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값싼 구원론자들은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 크다는 것을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내가 죄인인지는 잘 몰라도 아버지의 사랑이 크기 때문에, 그분의 사랑 때문에 나는 구원받을 것을 믿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의 지위를 회복하고 있는 탕자의 비유를 보십시오. 이 탕자가 아들로서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아버지가 대신 회개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회개는 아들이 해야 할 몫입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있는 아들의 태도도 한 번 보십시오. 이 탕자는 자신의 회복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습니까? 그는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리기에 전혀 가당치 않은 자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이제 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 날품팔이 품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아버지 앞에 큰 죄를 지었는데, 어떻게 다시 아버지의 아들로 회복되기를 바라겠는가 하면서 자신을 종처럼 여겨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런 자가 바로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교회는 잘못된 구원론 교리에 빠져 있습니다. 이름하여 값싼 구원론에 빠져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닫지 아니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을 시인하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가르칩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크시니 아버지께로 나오지 않아도, 죄를 회개하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더욱이 한 번 예수님을 믿었으면 무슨 죄를 짓더라도 결국에는 다 구원받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만약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죄를 지었으면 회개를 시켜서라도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사랑만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종교개혁자인 루터도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루터가 써붙였던 95개조 반박문의 첫 4개조항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1. 우리의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믿는 자들이 전 생애에 걸쳐 참회하기를 원하셨다.

2. ‘회개라는 말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전에 의한 참회, 곧 사제의 직권으로 집행되는 것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3. 참회는 내적인 회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육신의 정욕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회개가 아니다.

4. 형벌이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동안 계속되는 것처럼 참된 회개도 우리들이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공생애 때에도 부활 후 승천 때에만 회개의 중요성을 언급하셨습니다.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구원의 모든 준비는 하나님께서 다 하시지만 우리가 그 구원을 얻기 위해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나가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 현재의 중요성을 빼버렸습니다. 나의 구원은 과거의 예정된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결정한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값싼 구원론자들은 현재의 삶과 태도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지금 내가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으셨는가가 중요하며, 과거에 주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한 적이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우리는 죄인이므로 주님이 베푸신 구원에 날마다 계속적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과거에 예수믿는 것 때문에 오늘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값싼 구원론을 외치는 자들은 구원은 만세전에 예정된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서 되는 것이니 지금 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하나님의 구원에 응하는 반응까지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구원을 위해 최소한 인간이 해야 할 반응마저 행위구원이라고 막아버리고 있습니다. 행위구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천주교의 구원교리를 가리킵니다. 천주교에서는 교회에 물질적으로 기부하고 선행을 하며, 교회가 주는 세례를 받으면 천국간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바로 행위구원입니다. 예수 없이는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 행위구원입니다. 사실 천주교에서는 구원에 예수님이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 없이도 선행하고 구제하고 헌금 많이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구원을 바라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행위구원이 아닙니다. 그분이 나의 구원자가 되심을 믿는다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도 계속해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주님말씀을 듣고 붙들어야 합니다.

10:27-28 내 양은 내 음성을 (계속해서)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계속해서)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리고 죄도 계속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더러운 옛습관을 따라 행하는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만세전의 예정이나 나의 과거의 고백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현재의 고백과 지금 현재의 회개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셋째, 열매의 중요성을 빼버렸습니다. 값싼 구원론자들은 믿음에 따른 행위의 중요성을 빼버렸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가의 중요성을 빼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더딜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까지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내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내 뒤를 돌아보니 아무것도 없다면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면 우상숭배해도 괜찮은 것입니까? 내가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믿음에 따른 거룩함의 열매를 맺고 있지 않는데, 나의 구원은 안전한 것입니까?

하지만 값싼 구원론자는 믿음에 따른 열매가 없어도 믿음만 있으면 구원받는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믿음대로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를 보고서 심판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거룩함의 열매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열매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했으면 다시는 아버지의 품을 떠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후벼파는 일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7: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회개가 하나님이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몫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죽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회개해야 구원받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지금도 계속해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지금도 계속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이란 내가 믿음에 따른 열매가 있는가를 늘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가 없으면 회개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하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어떻게 되었습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회개하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는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이제 우리들도 회개해야 합니다. 날마다 죽는 그날까지 회개해야 합니다. 나의 구원은 예정된 것이 아니라 오늘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는 것입니다(2:12). 그러면, 우리도 구원받을 것입니다.

 

2)결단

결단하십시오. 회개는 내가 해야 하는 것이며, 지금 하는 것이며, 죽는 그날까지 하는 것이며, 가끔씩 자신의 뒤를 돌아보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가를 돌아봐야 합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마음만 결단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잘못된 것을 고백하고 고쳐야 합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 게으른 것, 거짓말하는 것,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욕하는 것, 앞에서는 아니지만 뒤에서는 마음으로 늘 미워하고 있는 것, 수군수군하는 것, 음란한 것, 자선을 베풀지 않은 것, 작은 일도 귀찮아 하는 것, 다 회개해야 합니다. 고쳐야 합니다. 자신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에 넘기우고 예수님으로 조성된 새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 결단의 축복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로 하여금 옛사람을 행위를 벗어버리도록 도와주십니다. 새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으로 함께 해 주십니다. 할 수 있도록 강하게 해 주십니다. 더럽혀진 마음도 정결하게 해주십니다. 육신도 건강하게 해 주십니다. 의지를 붙들어주십니다. 대하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죽는 그날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십니다.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한국교회의 값싼 구원론의 위험성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참된 구원은 회개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도리가 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나의 구원은 만세전 예정에 따른 것이 아니며, 과거의 신앙고백에 따라 된 것도 아니라 지금 나의 신앙고백에 따라 되어짐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음을 볼 때에 구원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회개와 순종은 하나님이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회개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날마다 회개하되 죽는 그날까지 회개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구원을 위한 우리 인간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예정이나 과거를 의지할 것이 아니라 지금 회개하고 지금 순종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구원에 필요한 인간의 책임을 망각하게 만드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진리를 미혹하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회개하고 주님 말씀에 순종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구원을 위한 모든 준비는 하나님께서 다 해놓으셨구나.

2. 주님이 마련하신 구원을 내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도리가 있구나.

3. 죄에 대한 회개와 말씀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께서 대신 해 주시는 것이 아니었구나.

4. 회개는 내가 오늘도 날마다 해야 할 일이며, 죽는 그날까지 해야 할 일이로구나.

5. 만세전의 예정이나 과거의 신앙고백을 개인의 구원의 근거로 삼아서는 아니 되는구나.

6. 예수 믿은 지 수 년이 흘렀어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는 자는 구원에서 멀어지고 있는 자로구나.


[다운로드하기] 2015-11-01 값싼 구원론자들이 빼버린 3가지 요소(눅15;17~2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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