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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달은 한 사람(5:1~11)

[일시] 20161120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10장 전능왕 오셔서,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384장 무슨 일을 만나든지

PW: 믿음, MIW: 죄인

T.S: 믿음이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주님 앞에 무릎 꿇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죽어서 저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살아서는 자기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만나게 된 사람입니다. 사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니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는 일인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정말 찾으시는 사람은 자신이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을 찾습니다. 주님은 그러한 사람을 찾아서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지난 시간에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받았던 할례의 언약에 대해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할례는 그가 85세 때에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에 대한 인침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할례의 언약을 통해서 그는 자신이 가진 믿음에 대한 보증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할례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육적인 몸을 벗는 것으로서 자신의 죄된 본성을 회개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자신이 지은 낱낱의 죄를 회개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회개생활을 하다보면 자신이 진정 죄된 본성으로 가득찬 죄인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란 더 이상 자신의 생각과 경험으로 살지 않겠다고 하는 약속이었습니다. 그 전에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그가 75세 때에 부름을 받았을 때에는 자기의 후사로서 조카 롯을 의지했습니다. 얼마 후 조카롯을 떠나 보낸 후에는 자기집에서 길리고 자란 다메섹사람 종 엘리에셀을 의지했습니다. 그를 양자라도 삼아서 후사를 이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조카 롯도, 다메섹종 엘리에셀도 후사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별을 보게 해주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그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다시 믿음을 새롭게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의 믿음을 의롭다여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채1년이 지나기도 전에 그의 믿음이 다시 나약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의 말을 듣고 첩을 들여 후사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떠나셨습니다. 무려 13년이라는 세월동안 말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99세 때에 나타나셔서 그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자신의 생각마저 죄된 본성에서 나오는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99세 때에 비로소 자신의 죄된 본성으로 가득차 있던 사람인 것을 시인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본질적인 회개인 것입니다. 낱낱의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우리에게 더욱 더 필요한 것은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아는 것입니다.

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하신 후에 제일 처음으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한 한 사람을 살펴볼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이 되어 구원얻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놀라운 고기잡이의 이적을 경험한 베드로가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자신은 죄인인 것을 시인했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왜 자신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죄인이라고 시인한 것일까요? 혹시 바보 아닌가요? 아니면 어디에 숨겨놓은 죄라도 있었던 것일까요?

예수께서 배 두 척이나 잠길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게 해 주었으면 예수님께 고맙다고 감사의 말을 해야지, 왜 자신은 죄인이라고 말한 것일까요?

어느날 갑자기 자기보다 뛰어난 고기잡이 선수를 만났으면 동업하자고 제안을 해야지, 왜 자기를 떠나달라고 부탁하는 것인가요?

베드로는 대체 무엇 때문에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예수님께 자신을 떠나달라고 요청했던 것인가요?

 

2)청중적 접근

오늘날 우리에게도 베드로와 같은 경우가 된다면 베드로와 같이 고백할 수 있을까요? 과연 자기자신 죄인이니 자기에게서 떠나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까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27년경 예수님의 공생애의 초기에 갈릴리 바다에서 일어난 고기잡이의 기적의 사건입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는 하셨지만 아직까지 한 명의 제자가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들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하는데에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과연 어떻게 되어서 베드로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게 되었을까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 본문의 뜻을 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원문으로 직역해보겠습니다.

5:8 그런데 시몬 베드로가 본 후에 예수의 무릎들에 엎드렸다. 말하면서 당신은 저로부터 떠나주십시오. 왜냐하면 저는 죄인 남자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4)문제발생원인

베드로는 그만 주님앞에 엎드려 자기를 떠나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죄를 짓지도 아니한 사람이 왜 자신을 죄인이라고 일컬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커다란 고기잡이의 기적 앞에서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낮추어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기보다 뛰어난 고기잡이 명사수를 만났으면 그를 붙들려고 해야지, 왜 자기를 떠나달라고 요청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과 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은 주님을 그대로 볼 수 없는 죄인이라고 하면서 자기를 떠나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주님은 정말 기뻐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오신 목적인 이렇게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아는 겸손한 자를 찾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 누가복음은 회개복음서다.

사실 다른 공관복음서에 보면 첫 제자를 부르는 장면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 갈릴리 해변을 그냥 지나가시다가 베드로와 안드레를 만나시고는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4:19)고 했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은 다릅니다. 주님께서 과연 어떤 자를 자신의 제자로 부르셨는지 그 원인과 이유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아는 자를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로 부르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특히 누가복음에서는 회개라는 단어(5)회개하라는 명령(9)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복음서입니다. 그리고 죄인이라는 단어도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죄인이라는 용서는 신약성경에 총45 나오는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보면 각각 5번씩 나오고, 요한복음에서는 4번 나오는데, 누가복음에서는 무려 17이나 나옵니다. 그야말로 죄인이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복음서, 다시 말해 회개와 천국복음서가 바로 누가복음인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예수님 앞에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한 첫 번째 사람이 누굽니까? 그가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는 고기잡이를 기적을 체험했을 때, 예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했고, 자신은 죄인이라도 도무지 주님을 곁에 모실 수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 대체 베드로는 어떻게 되어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대체 베드로는 어떻게 되어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게 되었을까요?

베드로는 첫째,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열심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항상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셋째, 남이 자기에게 뭔가를 요청했을 때에 그것을 쉽게 거절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긍휼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넷째, 무엇보다도 베드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다만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구요? 그가 어느날 예수님과 만났을 때 그가 나눈 대화와 행동 속에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장면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했지만 한 마디도 잡지 못한 채 해변가에 돌아와 그물을 씻고 있는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예수님의 청을 듣고는 자기 배를 육지에서 띄어놓고 설교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물고기를 걷어올린 후 예수님 앞에 엎드리면서 나를 떠나주십시오. 나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자신이 죄인 것을 고백하는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이것을 다시 정리해보면, 첫째는 베드로가 고기잡이를 실패한 후의 장면이요, 둘째는 말씀을 들은 후의 장면이요, 마지막 셋째는 기적을 체험하고 난 후의 장면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 3가지 장면을 통해서 뭔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고백한 것이 당신은 나로부터 떠나주십시오. 왜냐하면 나는 죄인 남자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라는 고백입니다.

 

. 사람은 3번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는 기회가 있다.

, 보십시오. 베드로가 자신이 전능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는 데에는 3가지 다른 환경을 통해 뭔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첫째, 첫 번째의 장면을 봅시다. 베드로는 고기잡이로 일평생을 살아온 정말 배테랑 어부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인간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고, 노하우가 있고,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연 앞에 인간의 지식과 경험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자였던 것입니다. 이런 자가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혜로 모든 세상의 것들을 다 섭렵할 수 있고, 자신의 경험으로는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만약 그가 성질이나 부리고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이 최고인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아마도 아침에 돼서 그물을 씻다가 화가 나서 아마도 그물을 찢어버렸을 것입니다. “내가 두 번 다시 그물질을 하나 봐라!” 하면서 말입니다. 조금 성질이 덜 급한 사람이었다면 아무도 그는 그물을 내팽개쳐놓고 니네들이나 씻어라고 고함을 치면서 집에 들어가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무능과 자신의 지혜와 경험의 부족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오늘에 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지만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어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날 저녁에 다시 그물을 내리기 위해 열심히 그물을 씻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죄인인 것을 발견합니까? 그것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실패라고 하는 상황에서도 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둘째, 이제는 두 번째의 장면을 봅시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청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왠만한 사람이었다면 예수님의 청을 거절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피곤했기 때문입니다. 들어주고 싶어도 눈꺼풀이 풀려서 들어줄 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물질을 밤새도록 했는데 한 마리의 고기도 안 잡혔을 때, 그물을 씻고 있는 베드로의 손에 얼마나 힘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반대로 몇 번 그물질을 하지도 않았는데 고기가 셀 수 없이 많이 잡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기분이 업되겠습니까? 이것 팔아서 이번에는 아내가 그렇게 바라던 반지라도 한 개 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축 쳐저 있습니다. 코가 석 자입니다. 힘이 팔린 상태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자기의 배를 좀 빌리자고 했을 때에 들어줄 맘이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베드로는 긍휼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가 배 위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의 설교를 들었는데 그는 그 피곤한 와중에서도 설교 말씀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듣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설교 후의 그의 반응이 그것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설교를 마치시고 난 후에 그에게 배를 뒤로 물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그 말을 들었던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5절말씀을 원문으로 직역해 보겠습니다.

5: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5: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관자시여, 저희가 온 밤을 통하여 수고한 후에 아무것도 취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입말씀(지금하시는 그 말씀)에 따라 제가 그물들을 내려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대한 호칭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분들에게 랍비여혹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랍비라는 말은 나의 선생님이라는 뜻이며, “선생님이란 헬라어로 디다스칼로스라는 단어로서 말씀을 잘 가르치는 교사를 뜻합니다. 그런데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더러 에피스타타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우리 개역성경에서는 선생님이라고 번역했지만, 원래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디다스칼로스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오는 에피스타타의 원형인 에피스타테스는 교사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주관자, 사령관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베드로는 몇 시간 동안 말씀을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예수님은 율법말씀을 가르치는 율법교사가 아니라, 만물의 주관자요 섭리자인 것을 깨달아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더러 주관자시여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께서 하시는 그 말씀에 따라 자신이 한 번 그 일을 해보겠다고 답변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미친 짓입니다. 왜냐하면 좀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첫째는 시간이 아니었고, 둘째는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밝은 대낮에 고기, 잡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깊은 데로 가서 고기,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관자이신 당신의 말씀이라면 내가 한 번 도전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매우 피곤한 상태에 있었지만 전날 밤의 일과 더불어 자기에게 찾아온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것이 그냥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여기에도 뭔가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말도 안 되는 요청이었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움직였습니다. 그때 아마도 다른 동료들이 말렸을 것입니다. 헛된 일만 하다가 되돌아오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허탕칠 것이 뻔한 일을 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께서 그때 하신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해보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죄인인 것을 발견합니까? 그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피곤한 환경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셋째, 이제 세 번째 장면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말도 안 되는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어부로서 갖고 있는 기본적인 상식과 지식과 경험을 깨뜨리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많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료배를 불러다가 두 배에 가득 채울만큼 많이 고기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때였습니다. 베드로는 즉시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주님에 대한 호칭을 바꾸었고 자신에 대한 호칭을 바꾸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에피스타타에서 퀴리에(아도나이)” 바꾸었고, 자신은 배테랑 어부에서 죄인 남자 바꾸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이제 예수님을 아도나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죄인 남자(아네르 하마르톨로스)”라고 불렀습니다. 더 이상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배테랑 어부가 아니라는 고백입니다. 당시 죄인 남자라는 칭호를 받은 자들은 오직 한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은 세리들을 지칭합니다(9:9~11, 21:31~32). 세리들은 세금을 징수하되 많이 징수하여 착복하던 자들로서 민족으로부터 매국노와 죄인이라고 불렸던 자들입니다.

9:10-11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그러므로 그가 한 말은 이런 뜻입니다. 나는 정말 죄인입니다. 아니 어디에도 쓸데가 없는 죄인입니다. 이때까지 저는 속으로 내 분야에서는 최고라도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만물의 주관자이신 당신 앞에 서보니, 저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것을 깨닫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내 지식이 최고라고, 내 경험이 최고라고 살아왔던 나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정말로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교만해왔던지 저는 죄된 본성으로 조성된 죄인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제 곁을 떠나주십시오. 제가 만물의 주관자이신 주님의 얼굴을 어떻게 쳐다 볼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자신이 죄인인 것을 발견합니까? 그 어떤 축복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해서 나타난 결과이지 자신이 잘나로 똑똑해서가 아닌 것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자신은 보잘 것 없는 무능한 존재인 것을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사람입니다.

 

2)청중의 문제와 해결

오늘날에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조그마한 자신의 실수나 실패에도 얼마나 짜증내며 화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자신의 자아와 자존심을 이기지 못해 제 멋대로 성질부리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절호의 말씀듣는 기회가 자신에게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말씀듣기를 게을리하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더욱이 주님말씀에 순종하여 복을 받기는 받았는데 그것을 얼마나 떠들어대며 자기자신을 자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주님 때문에 자기자신이 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잘해서 된 것인량 으쓱대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자는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이 곁에 두고 싶어하는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어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말씀을 듣는 일에는 두 눈을 부릅뜨고 듣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말씀에 순종하여 축복을 받았어도 전능하신 하나님 때문인 것을 인정하고 자신은 다만 무능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어떻게 되었습니까? 주님께서는 이러한 베드로,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음을 알고, 실패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다음을 준비하는 사람, 아무리 피곤한 환경인데도 두 눈 부릂뜨고 자기에게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놓지지 않으려는 사람, 부자가 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갖춘 사람을 만났음에도 오히려 자신이 무능함과 죄인됨을 인정하려는 사람, 이런 사람을 주님이 찾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를 사람낚는 어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최초의 제자로 부름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후에도 최고의 사도로서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성령받고나자 그의 설교에 3천명, 5천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우리도 믿음으로 베드로와 같이 행하면 베드로와 받았던 복을 우리도 받을 수 있습니다.

 

2)결단

우리도 베드로처럼 첫째, 그 어떤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음을 믿는 사람, 둘째,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을 때에는 최선을 다하여 말씀듣는 기회를 소홀히 여기지 않는 사람, 셋째,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어떤 축복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자기의 자랑을 삼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무능함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주님앞에 엎드리는 사람이 됩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죄인인 것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찾고 기뻐하는 사람인 됩니다.

우리도 이러한 사람이 됩시다. 그래서 베드로처럼 귀하게 쓰임받는 사람이 됩시다. 주님이 기뻐하고 찾으시는 사람이 됩시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주님이 찾으시고 기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찾아내어 쓰시는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께서는 어떤 실패의 순간이 찾아와도 거기에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음을 믿고 내일을 준비하는 자를 쓰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께서는 어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말씀을 듣는 일에는 두 눈을 부릎뜨고 들으려는 자를 쓰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께서는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축복을 받았어도 오히려 주님 앞에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고 겸손히 엎드리는 자를 쓰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이러한 자가 되지 못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주님이 찾으시는 자가 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주님이 쓰시는 자가 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감사하며 살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말씀듣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축복의 순간에도 주님 앞에 엎드리는 자가 되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고 교만하게 한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자기의 분수를 넘어 성질대로 살라고 부추기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겸손할지어다. 항상 주님 앞에 엎드리는 자가 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하나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구나.

2. 하나님은 겸손히 자신을 낮추는 죄인을 기뻐하시는구나.

3. 무슨 일에서든지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구나.

4. 말씀듣는 일에는 두 눈 부릎뜨고 최선을 다해 들어야 하는구나.

5. 순종하여 축복을 받았어도 주님을 이용하여 자기를 높이려 하지 말고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고 겸손히 엎드리는 자가 되어야 하는구나.

6. 자신이 죄인인 것을 철저히 깨닫고 회개하는 자라야 주님께 귀하게 쓰임받는구나.

 

[다운로드하기] 2016-11-20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달은 한 사람(눅5;1~11)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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