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과 부(富)를 동시에 얻을 수는 없는가?(마19:16~22)_2018-10-28

by 갈렙 posted Oct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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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oYJFdDmSaMU
날짜 2018-10-28
본문말씀 마태복음 19:16~22(신약 32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영생과 재물, 구원과 물질, 하나님과 재물, 인간계명과 하나님계명, 우상숭배와 구원,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감, 사람불가능하나 하나님은 가능함,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하심

사람은 과연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나를 중하게 여기면 하나는 가볍게 여기고, 하나를 가볍게 여기면 하나는 중하게 여긴다라고 말이다(마6:24). 사람은 재물을 더 중하게 여기든지 아니면 하나님을 더 중하게 여기든지 하는 것이지, 둘 다를 중히 여길 수는 없다. 그렇다면 사람들 중에 과연 물질을 버리고 하나님을 선택할 자가 몇이나 될까?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청년은 우리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 욕심쟁이 청년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소중한 것이 있고 의지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그것을 포기하라고 한다면 과연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그래도 구원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마19:26).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구원얻을 수 있는가? 그건 아니다. 그런 자는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최소한 하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고 그분의 행하신 일을 알아야 한다. 아니 그분이 행하실 일을 기대하면서 오늘도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만야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들 중에도 구원얻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

 

1. 들어가며

  과연 사람은 부자도 되고 영생도 얻을 수 있을까? 예수님 당시, 한 청년이 그러한 일에 도전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나아가, 부자이지만 영생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19:23~2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진정 얻기를 원한다면, 먼저 선행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과제를 들은 부자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가고 말았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생을 얻으려는 그 청년에게 우리 주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을까? 과연 우리들 중에는 재물을 얻어 부자로 살면서도 영생까지 얻을 수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2. 영생을 얻기를 원하는 부자 청년의 질문은 무엇이었는가?

  어느날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왔다. 그리고 물었다. "선생님,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행해야 합니까?" 이 질문은 사실 잘못된 질문이다. 어떤 사람도 선행을 통해서 구원얻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구원을 얻으려면 지은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데, 아무리 선행을 많이 하고 구제를 많이 한다고 해도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때 그는 이렇게 물었어야 했다. "선생님, 영생을 얻으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이 자신을 구원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는지, 자신이 무슨 선한 일을 행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으냐면서 당돌하게 질문한 것이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우선 그에게 기본부터 들려주었다. 그래서 그가 계명들을 잘 지키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어떤 계명이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제5계명부터 제9계명까지를 말씀하시고는 마지막으로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을 잘 지키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 청년은 그런 것들은 어려서부터 다 준행하고 있노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자기자신을 으시대면서, "아직도 내게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고 말했다. 그는 자기는 어려서부터 계명들을 잘 지켜왔기에, 자신은 영생을 얻기에 합당한 사람일 것이라며 그러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의 정곡을 찌르는 말씀을 하셨다. 그것은 그 청년처럼 부자이면서 영생을 얻으려는 자가 반드시 해야 할 선행과제를 지적하셨다. 그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19: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랬다. 예수께서는 영생을 얻으려면 먼저 선결과제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서 당신을 따라오라고 하셨다. 그것이 바로 그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일러준 것이다. 그렇다. 부자였던 그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가진 소유(그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었다. 그것이 영생으로 들어가기 위한 선결과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청년은 선결과제에 대한 말씀을 듣고는, 그만 근심하며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는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19:22).

 

3. 이 청년은 왜 근심하며 돌아갔는가?

  사람은 과연 무엇 때문에 구원얻지 못하는가? 도둑질했다고 구원얻지 못하는가? 아니면 거짓말했다고 구원얻지 못하는가? 둘 다 아니다. 사람이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떤 죄를 지었든지 사실 구원얻는 데에는 상관 없다. 누구든지 자신이 죄를 지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시인하고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청년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처음부터 시인하지 않으려 했다.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율법을 잘 지켜왔다고 자랑했고 죄를 지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어려서부터 계명들은 잘 지켜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인간에 관한 계명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는 말씀도 지키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문장을 헬라어로보면, 결코 쉬운 계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너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계속해서 공경하라"라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어느 자식이 한 번도 어김없이 부모를 공경할 수 있겠는가? 또한 이 세상 어느 누구가 자신의 이웃을 자기의 몸처럼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겠는가? 그건 인간의 힘으로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를 어여쁘게 여기셨다. 하지만 그는 그것도 모르고 자신을 우쭐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에게 정곡을 찌르는 말씀을 하셨다. "네가 진정 온전하고자 원한다면,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라." 그렇다. 그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때까지 재산을 신처럼 여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에 관한 계명(1~4계명)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고도 우상숭배하는 자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계21:8). 그때 당시 청년은 물질을 우상으로 숭배하고 있었다. 물질을 하나님처럼 떠받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물질을 내버리라는 주님의 말씀에 그는 순종할 수 없었다. 산상수훈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도 물질이 우상이 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 경고하신 적이 있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영생을 얻는 방법이란 무엇이었는가?

  이윽고 그 청년이 떠나간 자리에 예수님과 제자들만 남게 되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19:23-2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그러자 이번에는 제자들이 더 근심으로 가득 찼다. 몹시 놀란 제자들은 "그렇다면 이 세상 사람치고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사람치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오직 주님만을 따라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구원받고 영생얻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사람의 능력만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가능하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나서  들려준 비유가 바로 마20장의 "포도원 품꾼의 비유(마20:1~16)"다.

  이 비유는 포도수확을 위해 품꾼들을 고용하여 들여보내는 포도원주인에 관한 비유다. 이 포도원주인은 자기의 돈이 날아가는 것에는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 그가 신경쓰고 있는 유일한 것은 일을 얻지 못해 장터에서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오전 9시에도 시장에 나가서 서 있는 사람들을 고용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냈고, 정오 때에도, 오후3시 때에도, 심지어는 오후5시 때에도 장터에 나가 일을 얻지 못해 서있는 사람들을 고용하여 자신의 포도원에 들여보냈다.

  이 포도원품꾼의 비유에서 포도원주인은 하나님을 상징하며, 품꾼들은 사람들을 상징하며, 포도원은 사람들의 일터로서 교회를 상징한다. 사실 사람이 포도원에 들어가는 것이 완전히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구원의 시작을 알려준다. 포도원품꾼으로 비유처럼 구원을 최종적으로 결정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포도원에 들여보내려 하신다. 그렇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려고, 이른 아침부터 오후5시까지 장터에 나가서 사람들을 고용하여 자기 포도원에 들여보내시고자 노력하는 분이시다. 바로 그러한 하나님이 우리 주님이라면 우리는 그분으로 인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날이 저물었다. 그러자 주인은 포도원에서 일하는 사람의 태도와 모습을 보고 그들의 품삯을 정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와 1시간 일한 자도 1데나리온의 품삯을 받았다. 그렇다.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해서 다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 들어와 있으면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교회에서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구원이 최종적으로 판가름나는 것이다. 늦게 들어왔더라도 자기를 품꾼으로 불러주신 주인의 은혜를 보답하려는 의지가 강한 자는 1시간만 일해도 하루치 분량의 품삯(1데나리온)을 받아갈 수 있다.

 

5. 구원얻는 2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결국 사람이 구원을 얻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구속사역)을 믿는 일이며,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는 것 뿐이다. 이 세상 어떤 사람치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다 나눠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 전재산을 팔아서 나눠준다는 것은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 실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어떠한 어려움과 역경이 찾아오더라도 끝까지 주님만 따라갈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사실 연약하다. 그리고 부족하다. 의지가 굳건하지도 못하다. 그런데 어찌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버려두고 주님만 따라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오직 오후5시라도 장터에 나가서 품꾼들을 고용하려는 주인이 있어서라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우리 주님이 있어서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것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게 된 사실일 곧 구원은 아니다. 이제 일할 시간이 1시간만 남았으니 대충 떼워야겠다는 식으로 일해서는 그 어떤 사람도 주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 자신의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그러나 만약 그가 구원받는다면 그는 이것이 상급이 될 것이다), 우리의 행위를 통해서 구원받을 자인 것처럼 열심히 일해야 한다. 1시간밖에 일할 수 없는 시간이 주어졌더라도, 우리는 하루종일 일할 분량만큼의 일을 하겠다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행위 때문에 구원받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의 태도와 모습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판단에 의거하여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베풀어준 은혜에 감사하고, 그분이 시키신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충성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당신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에 대하여, 우리가 어떻게 응하는지를 보시고 우리의 구원을 결정하시기 때문이다.

 

6. 나오며

  사람은 자신이 믿음만 있으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아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란 구원에 있어서 기본적인 요소요, 사실 그것이 근간을 이루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성육신과 십자가)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구원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청년은 예수님의 시험에 제대로 응대하지 못했다. 그가 자신의 소유를 기꺼이 버려야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반응을 보일 수가 없었다. 자기의 재산을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요, 그것을 신처럼 떠받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눅16장의 음부에 떨어진 부자의 비유를 보라. 하루 아침에 죽으면 그것이 과연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 그러므로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처럼 떠받들고 있는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것은 구원받을 자의 당연한 모습인 것이다. 부자청년은 그때 자신의 재산을 버림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은혜를 더 생각했어야 했다. 그것을 위해서는 기꺼이 자신의 재산마저도 포기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안달이 나신 분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분은 우리의 태도와 모습을 지금도 지켜보고 있다. 우리가 구원얻기에 합당한 자인지를 살펴보시고 있는 것이다. 행동으로 나타나는 믿음, 구원얻기에 합당한 믿음이 과연 우리에게 있는가? 열매로서 나타나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는가? 나는 과연 구원받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 즉시 회개하기를 촉구한다. 그리고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내게는 너무 귀해서 버릴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내어버리기를 촉구한다. 그래야 구원을 향한 선결요건을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 중에 구원받는 자가 있는 것이지, 그러한 것을 전혀 실천하지 않는 자들 중에 구원얻을 자는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18년 10월 28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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