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만인제사장설의 실제 의미는 무엇인가?(벧전2:4~10)_2018-11-11

by 갈렙 posted Nov 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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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IDjOOPF82wY
날짜 2018-11-11
본문말씀 베드로전서 2:4~10(신약 378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만인제사장설,루터의신학,성직자와평신도의구별,섬기는직분,중보자와사제직분,레위인과제사장들,교회의2가지직분

루터가 주장했던 "만인제사장설"은 원래 어떤 의미였을까? 그런데 그의 주장은 오늘날 상당부분 왜곡되어 전달되고 있다. 왜냐하면 루터의 이 주장을 "모든 사람은 다 제사장이다"라는 말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루터는 모든 사람이 제사장이라는 주장을 하려고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시 일반 평신도들이 사제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며, 죄용서를 받는다고 가르치고 전하는 로마카톨릭의 중보론이 틀렸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들고나온 것이다. 루터는 예수께서 속죄제사를 드린 이후에는 구약시대 레위인이나 제사장 같은 중보자격인 존재가 더 이상 필요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이신 예수님 이외에 그 어떤 중보자가 끼어들어와서도 아니되고 그런 존재가 없어졌기에 모든 성도들은 자기 스스로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음을 주장하기 위해서 "만일제사장설'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왜곡은 심해갔고 그러자 그는 처음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오늘날 성도들이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데 이러한 말씀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더욱이 오늘날 일반 성도들의 직무는 구약시대 어떤 직무를 수행했던 자를 계승발전시킨 것이며, 목회자는 구약시대 어떤 직무를 수행했던 자를 계승 발전시킨 것인가? 오늘은 그것을 찾아보자.

 

1. 들어가며

  오늘날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은 "만인제사장설"에 대해서 아마도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종교개혁자 루터가 말하기를,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성취한 이후에는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이 되었다고 했으니, 이제는 더이상 목회자라는 직분이 필요없게 되었구나. 누구든지 설교할 수 있고 누구든지 성경을 해석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더욱이 더이상 목회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필요없게 되었으니 굳이 평신도들이 목회자의 말에 순종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바로 루터의 가장 염려했던 "만인제사장절"의 오해 중의 오해다. 루터는 이러한 의미로 "만인제사장설"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루터가 어떻게 되어서 만인제사장절을 주장하게 되었으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오늘날 성경이 가르쳐주는 성도들과 목회자의 직분과 위치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루터가 말했던 만인제사장설의 핵심내용은 무엇이었는가?

  루터가 1,517년 종교개혁을 단행했던 이유는 로마교황의 면죄부판매였다. 면죄부판매는 사제 계급이 자신의 지위와 특권을 이용하여 일반성도들을 우롱한 대단한 잘못된 처사였기 때문이다. 당시 사제들은 오직 사제에게만 사죄할 권한이 있다는 것을 악용하여, 돈을 끌어모으기 위한 수단으로 면죄부를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터는 정말 사제에게만 사죄권이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사제계급(신부,주교,추기경,교황)에게만 사죄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회개 기도하면 다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었기 때문이다(요일1:9). 그래서 루터는 예수님 이외에 더이상 중보자는 필요없으며, 모든 성도들은 누구라도 사제라는 직분자 없이 즉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천명하기에 이른다. 그것이 바로 "만인제사장설"인 것이다. 고로 만인제사장설이란 모든 믿는 자들이 제사장들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가 1520년 독일어로 펴낸 논재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글에서도 그는 평신도가 제사장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평신도라 할지라도 누구든지 사제의 도움없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로서 "만인제사장설"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그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모든 믿는 자는 대제사장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 이제는 더이상 사제계급의 중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는 누구든지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할 수 있으며, 하나님에 관한 것을 가르쳐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일 때문에 특수한 지위과 권위를 가진 사제집단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성경은 목회자라는 직분을 인정하나 그것은 직무상의 직책일 뿐이라는 것이다.

 

3.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은 어떻게 왜곡되어 전달되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루터의 만인제사장절을 오해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루터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를 숙지하지 않은 채 글자만 보고 그렇게 판단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사제와 같은 중보자 계급없이 모든 믿는 자들은 다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의 만인제사장설이 아니라, 만인이 다 제사장이구나라고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사용한 명칭만을 제대로 보았더라도, 그러한 오해는 불러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주장이 독일어로 "Priestertum aller Glabigen"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영어로 번역해보면, "Priesthood of all Believers(모든 믿는 자들의 제사장직)"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모든 믿는 자들이 제사장이라는 뜻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은 제사장적으서의 위치와 직무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전부 다 레위인과 제사장들을 통해서만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대제사장으로 오셨고,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대속물로서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온 인류의 속죄제사를 드리셨다. 그러므로 더이상 드릴 속죄제물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구약의 제사장처럼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게 기도하고 죄의 용서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루터의 만인제사장의 취지였고 그가 사용한 "만인제사장설"에 대한 해석이다.

 

4. 1524~25년 이후 루터는 왜 자신의 주장을 대폭 수정해야만 했는가?

  하지만 듣는 자들은 그렇게 듣지 않았다. 자기 생각대로 들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1524년 토마스 뮌쳐는 급진적인 종교개혁을 들고서 나왔다. 사제직이고 뭐고 다 없애버리자는 것이다. 또한 1525년에는 노동자들이 농민운동을 일으켜 지주계급을 싹슬이 청소하려고 시도하게 된다. 자기 위에 있는 권위자들을 없애버리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루터는 자신의 주장이 어딘가에서부터 잘못 전달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의 말했던 과거의 주장을 수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보면 이런 것이다. 첫째, 사제들만이 아니라 모든 신자들도 다 교리를 제대로 판단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1525년 이후에는 일반성도들은 기독교교리를 제대로 판단할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왜나하면 일반성도는 교리적으로 무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 회중이 목사를 세울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1525년 이후에는 일반 성도는 다른 성도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바꿔버렸다. 그리고 셋째, 목사의 부재시에는 회중 가운데서 한 사람이 설교할 수도 있다고 했으나, 1525년 이후에는 공적으로 임명된 설교자만 설교할 수 있으며, 교육을 받지 못한 무지한 일반성도 때문에 영적으로 미성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잘못 설교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교정했다. 그렇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생각대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조금 있으면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버리는 것이다. 루터는 그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래서 루터는 1525년이후 자신의 주장을 대폭 수정하게 된 것이다.

 

5. 루터가 말한 사제직이란 어떤 직분을 가리키는 것이었는가?

  그렇다면 루터가 주장했던 사제직이란 어떤 직분을 가리키는 것인가? 루터가 말한 사제직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의 권리를 남용하여 일반 평신도들 위에 군림하라고 주신 직책이 결코 아니라고 말했다. 사제직이란 하나님께서 섬기라고 주신 직책이지, 결코 평신도들 위에 군림하라고 주신 직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제들은 당시 일반 평신도 위에서 무소불휘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으니, 고해성사를 하는 평신도들의 죄를 자기들이 사해주지 아니하면 죄사함을 받을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고는 면죄부를 비싼 값에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성경도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아놓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방식에 따라서 성경을 해석해놓고는 그것만이 절대적인 해석인 듯이 말했다. 그러자 루터가 그것을 적극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성경에 무슨 내용이 쓰여있는지 몰라서, 사제들의 헛된 해석에 더이상 성도들이 미혹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루터는 즉시 헬라어원문에서 자기나라의 언어인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는데 착수했다. 모든 평신도들의 손에 성경책을 들려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성경을 읽고 성령으로 뜻을 헤아려 바른 진리를 따라가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제들의 엉터리 성경해석에 더이상 미혹받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A.D.1534년 드디어 독일어판 성경을 제작하여 출간하게 되니, 그것은 위클리프영어성경(A.D.1382년) 이후 최초로 라틴어가 아닌 다른 나라 언어로 성경이 번역된 것이다.

 

6. 성경적인 일반 성도의 제사장직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벧전2:4의 말씀과 벧전2:9의 말씀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먼저, 그 본문을 살펴보자.

벧전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선, 이 본문에 등장하는 "제사장"이라는 용어는 "제사장(히에류스= priest)"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제사장직(히에라튜마=priesthood)"이라는 단어다. 다시 말해, 성도들이 다 제사장이라는 뜻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이제는 제사장의 직무를 다 수행하는 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이제 성도들은 누구든지 구약의 제사장처럼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또한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어느 누구도 중간에 끼어들어올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7. 보다 더 성경적인 가르침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보다 더 정확한 성경적인 해석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신약의 성도들은 구약의 레위인들의 직무를 이어받는 자이며, 신약의 목회자들은 구약의 레위인들 중에 제사장의 직무를 이어받은 것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구약의 레위인들의 직무는 회막에서 봉사하고, 제사장을 도와주며, 일반 백성들이 죄있는 상태로 함부로 성막에 접근하지 못하고 중간에 텐트를 치고 막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막이 교회를 상징하고, 제사장은 오늘날 교회의 목회자들을 상징하며, 일반백성들은 죄인들을 상징한다고 해석한다면, 오늘날 레위인인 일반성도들은 교회를 위하여 일하고, 목회자를 도와 협력하며, 죄인들을 주님께로 잘 인도하는 직분을 감당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레위인들 중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구약시대에 제사장의 직분을 가졌던 것처럼, 오늘날 교회에서도 일반 성도들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목회자가 되어 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사장이 자신의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5년간의 인턴쉽 과정을 밟아,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목회자가 되려면 적어도 수년간의 신학공부와 성경지식을 쌓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자들이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처럼, 예배를 집례하고(성만찬과 세례식 포함)(번제단에서 5대 제사를 지냄), 성도들을 성령충만하게 인도하고(일곱금촛대에 붉을 밝히고 기름을 보충함), 중보기도하며(향단에 향을 사름), 매주일 새로운 설교말씀으로 성도들을 섬겨야 하는 것(안식일마다 떡상에 떡을 진설함)이다. 그리고 성경을 가르치며(율법교육), 심방하여 성도들의 가정과 직장과 자녀를 축복하고(축복선언), 잘못된 이단으로 빠지게 되면 훈계하며 치리하는 일(재판)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들어와서 모든 성도들도 다른 중보자 없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으며, 약한 자들과 불신자들을 섬기는 자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제사장의 직임을 이어받는 목회자들은 목회자의 직무로서 다른 성도들을 섬기고 있는 것이지 다른 성도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결코아니다.

 

8. 나오며

   오늘날 루터가 그때의 상황보다 더 나은 지금의 상황에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이러한 가르침을 깨닫게 되었다면, 그는 아마도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했을 것이 아니라 아마도 "만인레위인설"을 주장했으리라고 짐작해본다. 괜히 만인제사장설이라는 주장을 했다가 오해를 불러 일으킨 나머지, 1525년이후 다시 자신의 가르침을 대폭 수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행착오를 다시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할 때에는 단어 하나에도 이처럼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잘못된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는 만인제사장설이라는 것이 원래는 모든 사람이 중보자 없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는 주장이었으며, 제사장과 같은 직분이란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한 직분인 것이지 군림하기 위한 직분이 아니었다는 루터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면서, 성경적인 직분론을 바탕으로 자기 위치에서 질서 가운데 충성하여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18년 11월 11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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