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세례란 무엇을 가리키며 성령세례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행1:6~8)_2019-03-03(주일)

by 갈렙 posted Mar 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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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nR-UxxdsN2o
날짜 2019-03-03
본문말씀 사도행전 1:6~8(신약 187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

성령세례는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다. 주 예수께서 믿는 자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세례에는 물세례가 있고 성령세례, 이 두 가지가 있다. 둘 다 푹 잠기어 사로잡힌 상태를 강조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도 사람이 성령에게 사로잡혀 이끌림을 받게 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되는 것인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되었다면 그에게는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 것인가? 그리고 성령세례는 외적인 것만 있는가 아니면 내적인 성령세례라는 것도 있는 것인가? 성령세례와 맞물려 성령충만이나 성령의 기름부음은 전혀 다른 것인가 아니면 같은 것인가? 오늘날 성령께서 우리 믿는 이들에게 오실 때에 구약적인 방식으로 오는가 아니면 또 다른 방식으로 오는가? 예수께서는 성령세례를 받으면 어떤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는가? 즉 성령세례의 목적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래서 오늘은 이러한 질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자 한다. 구약과 현격히 달라진 신약시대의 성령의 새로운 사역을 성령세례와 함께 이제 살펴보도록 하자.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가? 성령세례란 무엇을 의미하며,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그런데 성령세례를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어떤 교단에서는 성령세례를 기도를 통해서 방언을 말하고 능력과 기적을 체험하는 것과 관련지어서 말하기도 하고, 어떤 교단에서는 성령세례는 그것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이 예수님을 믿을 때에 다 받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무엇이 옳은 주장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성령세례에는 무엇이며, 성령세례에는 어떤 방면이 있으며, 성령세례는 언제 약속되어졌으며, 성령세례는 언제 성취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오늘날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며, 성령세례의 결과는 어떤 것인지를 통해서 성령세례의 목적에 관해 조명해 보고자 한다.

 

2. 성령세례는 무엇을 가리키며 어떤 방면이 있는가?

  "성령세례"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성령세례란 성령이 사람에게 충만히 부어져서 성령에게 그 사람이 푹 잠기게 되는 특별한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는 성령께서 주시는 세례가 아니며, 주께서 성령으로 주시는 세례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성령으로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어주시는 것이다(마3:11). 세례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마3:11)"

  그런데 성경에서는 사람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에 대해 한 가지만 말씀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크게 2가지다. 이름하여, "외적인 성령세례"와 "내적인 성령세례"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성령세례는 두 방면이 있는 것이다. 즉 성령이 어떤 사람에게 부어지되 밖에서 그 사람 위에 부어지게 되면 그것을 "외적인 성령세례"라고 말하며, 그 사람 안에 성령이 가득 채워져 성령에 잠기게 되면 "내적인 성령세례"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세례 가운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기록된 대부분의 성령세례는 다 "외적인 성령세례"를 가리키며, 요한의 기록(요한복음과 요한일서) 그리고 서신서들(특히 사도바울의 서신들)에 기록된 대부분의 성령세례는 거의 다 "내적인 성령세례"를 가리킨다.

 

3. 성령세례는 어떻게 약속되었으며 언제 성취되었는가?

  그렇다면, 성령세례는 언제 약속되었는가? 그것은 세례요한의 언급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것보다 한참 전에 있었다. 그것도 외적인 성령세례에 대한 약속도 이미 있어왔으며, 내적인 성령세례에 대한 약속도 이미 있어왔다.

  먼저, 외적인 성령세례에 대한 약속을 알아보자. 하나님께서는 B.C.800년경 요엘선지자를 통하여, 외적인 성령세례에 대해 이렇게 약속하셨다.

욜2:28-29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예언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환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들]과 여종[들]에게 부어 줄 것이며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B.C.800년경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 위에 성령을 부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사실 구약시대만 해도 성령은 몇몇 특정한 사람 위에만 역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신분상의 차별이 철폐되어,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 결과로서 성령을 받은 자들은 예언할 것이고, 꿈을 꾸며, 환상을 볼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시어 약속하신대로 오순절날에 마가다락방에 모여있는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그대로 성취되기 시작했다(행2:1~4). 그리고 이어서 사마리아교회에서(행8:14~17), 고넬로가정에서(행10:44~46) 그리고 에베소교회에서(행19:4~6) 순차적으로 성취되었다.

행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런데 이때 독특한 점은, 성령이 외적으로 믿는 자들 위에 부어질 때에, 거의 공통적으로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도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예수께서 믿는 자에게 따라올 표적으로 약속하신 것이었기 때문이다(막16:17~18). 그렇다. 예루살렘교회를 시작하여 성령이 부어지자, 사람들은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으며, 예언을 하기도 하였고,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외적으로 성령이 부어질 때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이제는 내적인 성령세례에 관하여 살펴보자. 하나님께서는 외적인 성령세례만을 약속하신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 속에도 성령을 주시어,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들사함을 받게 되며, 하나님이 누군지 알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것은 B.C.595년경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에 기록되어 있다(렘31:33~34).

렘31:33-34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하나님의 법 곧 생명이 성령의 법을 사람들의 속에 곧 그들의 마음에 기록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그들이 여호와를 스스로 알게 될 것이며, 성령께서 들어오셔서 회개케 하심으로 죄를 회개하여 그들의 죄가 사함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예언의 말씀에 따라, 마가다락방에서 성찬만을 마치신 후에, 이러한 약속이 보혜사 성령이 오시게 되면 성취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오순절날 성령강림사건은 사실 외적인 성령세례가 베풀어짐과 동시에, 내적으로도 성령이 충만하게 되는 놀라운 사건이었던 것이다.

  한편, 이것은 내적인 성령세례에 대해서는 사도바울에 의해서도 확인되고 있다(고전12:13, 롬6:3~4).

고전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롬6:3-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그렇다. 내적인 성령세례도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부어지는 것이다. 차별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인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적인 성령세례는 이렇듯 옛 사람을 장사지낸다. 그리고 새 사람으로 다시 살아나게한다. 이것이 바로 내적인 세례를 받은 사람의 결과인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내적으로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자라면 그는 옛 사람이 살아 있을 것이다. 환경이 되면 죄된 본성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적인 성령세례를 받은 자는 성령의 잠겨지므로 옛 사람이 물속에 장사되듯 죽음에 넘기우게 된다. 그러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옛 사람의 본성으로 살지 아니하고 성령님과 결합된 새 사람의 성품으로 사는 것이다. 당신은 내적인 세례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가?

 

4. 성령세례를 받은 결과는 어떤 것인가?

  감사하게도 오순절 성령강림이후 태어나는 모든 성도들은 외적인 성령세례와 내적인 성령세례를 다 받을 수가 있다. 좀 전에도 살펴보았지만 외적인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나타나는 증상과 내적인 성령세례를 받은 증상이 각각 다르다. 먼저, 외적인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그 사람에게서 능력이 나타나게 되며(행1:8),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도 동시에 나타나게 된다(고전12:7~11). 이름하여 성령의 9가지 은사들이 나타나는 것이다(고전12:7~11). 반면에, 내적인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그 사람의 성품이 달라진다.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회개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이 그에게 부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옛 성품을 따라살던 그가 옛 성품을 죽음에 넘기우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서 그리스도의 성품이 나타나게 된다. 그것의 기본은 온유와 겸손이다(마11:19). 그리고 성령의 9가지 열매들인 것이다(갈5:22~23).

 

5. 성령세례가 두 방면이라면 성령충만과 성령의 기름부음도 두 방면이 있다는 말인가?

  성령세례에는 두 방면이 있다. 그렇다면 성령충만과 성령의 기름부음에도 두 방면이 있을까? 그렇다. 두 방면들이 각각 있다. 놀랍게도 성령충만에도 두 방면이 동시에 있으며, 성령의 기름부음에도 두 방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자, 그럼, 성령충만의 두 방면부터 살펴보자. 성령충만에도 외적인 성령충만이 있고 내적인 성령충만이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외적인 성령세례가 부어지자 거기에 있던 120명의 성도들이 동시에 성령으로 충만케 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는 표적으로 방언이 나타났다. 각 나라방언이 터졌기 때문이다. 한편 성령충만에도 내적인 성령충만이 있다. 이것은 성령으로 그 사람의 내면이 가득채워지는 것을 가리킨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

  그러나 같은 성령충만이라도 약간은 차이가 있다. 즉 외적인 성령충만은 갑작스럽게 한꺼번에 부어지는 것이라면, 내적인 성령충만은 달이 차듯이 차근차근 채워지는 성령충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적인 성령충만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어떤 사람은 몇 년 안에 성령충만을 경험하게 되지만, 어떤 사람은 일평생을 통해서 자기자신을 십자가에 죽인 뒤에 비로소 그때 가서 성령충만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성령의 기름부음도 마찬가지다. 외적인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으며, 내적인 성령의 기름부음이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사실 때에는 수많은 귀신들과 싸워야 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외적으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셔야 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8)" 하지만 믿는 자들 속에 들어오신 내주하시는 성령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그 사람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에,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많은 영적인 비밀들을 스스로 알게 된다. 내적인 성령의 기름부음에 대해 사도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고 자만하지는 말라.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일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요일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6. 성령세례는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성령세례는 어떻게 받는 것인가? 이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제일 처음 성령세례를 받았던 당시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는 오순절날이었다. 과연 120명의 성도들은 어떻게 외적인 성령세례를 받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기도"였다. 그것도 "간절한 기도"였다. 그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열흘동안 간절히 기도했다. 그랬더니 성령세례가 임했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게 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성령세례의 키워드가 등장하는데, 이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다름 아닌 "성령"이 주어진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이다(눅11:13).

눅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더불어 성령세례를 받으려면, 선포되는 말씀을 주의하여 집중해서 들어야 하며(행10:44 고넬료가정), 때로는 이미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의 안수도 도움이 된다(행8:17 사마리교회, 행19:6 에베소교회).

  그렇지만 내적인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그것은 날마다 옛사람인 자기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을 죽음에 넘겨야 하는 것이다. 결국 시체가 되면 혈기도 부리지 않을 것이며, 시체가 되면 육체의 욕망에 사로잡히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를 죽음에 넘기는 것은 하루 아침에 이룰 수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내 속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책망에 즉시 반응해야 한다. 그리고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가능해진다.  

 

7. 성령세례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성령세례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왜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것인가?

  먼저, 예수께서 외적으로 성령세례를 주는 이유는 한 가지 이유에서다. 그것은 능력받아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이다(행1:8) 그러므로 복음전파로 연결되지 않은 능력과 은사는 십중팔구가 자기자랑으로 나아가게 되며, 결국에는 더 큰 능력과 더 큰 은사와 더 큰 환상에 사로잡히다가 결국 귀신에게 속아 파멸로 치닫고 만다. 그러므로 내적인 성령세례를 모르는 가운데 외적인 성령세례를 사모하지 말아야 한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위에) 임하시면(내려오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될 것이다) 하시니라

  그렇다면, 우리가 내적으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옛 사람을 죽음에 넘겨 다시는 범죄 때문에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날마다 죄를 책망하신다. 그래서 회개하게 하신다. 그래서 자신이 지은 죄를 사함받도록 하신다. 그리고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 진리의 말씀으로 안내한다. 그래서 그 말씀에 굳게서서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주신다. 그리하여 결국 그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도록 도와주신다.

 

8. 나오며

  오늘은 성령세례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말하고 있는 성령세례는 대부분 외적인 성령세례였다. 그것은 기도를 하고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이 기도하는 무리들 위에 내려오심으로 초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때에는 성령께서 사람들을 사로잡아 버리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외적인 성령세례를 살펴보면, 외적인 성령세례는 순간적으로 갑자기, 집단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내적인 성령세례는 이와는 다르다. 이는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서 충만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요한복음과 요한일서 그리고 서신서에 주로 나온다. 본래 사람은 다 죄된 본성을 따라 살던 옛사람이 자신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새 주인이신 성령께서 그의 마음 가운데 들어오심으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다. 여기서 옛사람의 본성과 성령의 소욕이 충돌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자신의 지은 죄를 회개하고 죄된 본성이 주인인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고 죽음에 넘기우는 자는 결국 내적인 성령충만을 받게 되고 성령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 비록 외적인 성령세례가 구원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복음전파에 있어서 만큼은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므로 늘 기도하는 일과 말씀듣는 일을 사모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내적인 성령세례는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그 사람의 주인이 되는 것이므로, 성령께 내 자리를 늘 내어드려 그분이 나 자신을 주관해 갈 수 있도록 양도할 때, 내적인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을 입게 될 것이다.

 

2019년 3월 3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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