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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oJgdTwb2pgg
날짜 2017-11-26
본문말씀 요한복음 10:22~30(신약 16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장로교의 예정론의 진실, 헬라어원전은두종류다,표준원문과네슬알란트원문,대문자사본과소문자사본,오역된요10:29과요6:37과39절, 알미니안주의

주님의 양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는 만세전에 이미 정해진 것인가 아니면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믿어서 그분의 양이 되는 것인가? 이것은 교단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 그런데 장로교단에 따르면, 만세전에 구원받을 자는 하나님이 미리 정해놓으셨다고 믿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만을 예수님에게 보내주신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근거로서 요10:29, 요6:37, 요6:39의 말씀을 언급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러한 성경구절들은 한글개역성경이 잘못 번역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자는 많지 않다.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었을까? 그것을 알려면, 헬라어성경출간과 성경번역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두번째로 장로교의 만세전예정론 교리가 언제 확정되었는지 그 시기도 알아야 한다. 놀라운 사실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1. 들어가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구약성경부터 자주 등장하는 비유는 목자와 양이라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보면, 다윗은 이것을 처음으로 말했던 인물로묘사된다(시23:1~3).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감히 어떤 신분의 사람으로 비유한 사람이 없었는데, 다윗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하나님을 그렇게 묘사했다. 그리고 시편100편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양의 목자가 되며, 우리 인간은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라고 증거하고 있다(시100:3~5). 그렇다면 왜 많은 비유들 중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비유를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목자와 양의 모습이 꼭 하나님과 인간의 모습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이러한 관계를 한 마디로 딱 정의하라면, 양은 목자없이는 죽은 목숨과 같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양은 스스로 자기를 방어할 수도 없고, 스스로 생명을 유지해 나가기가 어려운 동물이기 때문이다. 양에게는 다른 여타의 초식동물처럼 뛰어난 기능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스스로 자기를 방어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없다. 더욱이 양들은 스스로 푸른 초장이나 물가를 찾아갈 재주도 없다. 시력도 아주 나빠서 한치 앞도 못보고 이리떼들에게 물려간다. 그래서 양떼들은 오직 목자만을 따라가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목자없는 양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2. 사람은 처음부터 주님의 양으로 정해져있는가 아니면 나중에 주님의 양이 되는 것인가?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펴볼 주제는 과연 주님의 양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가 아니면 나중에 만들어지는가 하는 문제다. 여기서 사람을 "주님의 양"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시대에는 그의 백성들을 일컫는 말이었지만(시100:3),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자녀에 대해 일컫는 말이다(요10:27~28). 그런데 대체로 장로교회에서는 주님의 양들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고 있다. 다시 말해, 주님의 양이 되어 영생을 얻게 될 자는 이미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만세전부터 정해져 있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결국 이미 정해진 그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쪽을 주장하는는 교단도 있다. 그러한 교단에서 성결교단과 감리교교단 등이 있는데, 이들은 주로 웨슬리안주의를 따라간다. 이들은 주님의 양은 만세전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서 그분을 따라가게 되면 주님의 양이 된다는 입장이다. 과연 어느 주장이 옳은 것인가?  아니 어느 교단이 성경적으로 옳은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3. 장로교는 만세전에 주님의 양이 될 자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놓으셨다고 믿는다.

  먼저, 주님의 양 곧 신약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자녀는 이미 하나님에 의해 만세전부터 정해져있고 그가 하나님의 양이 된다는 입장부터 살펴보자. 이 입장을 지지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는 아무나 될 수 없고, 이미 만세전부터 하나님께서 작정한 자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예수께로 나오는 자는 아무도 나오지 못하며 오직 아버지께서 보내준 자만 예수님께로 나아오고, 그들만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이들에 있어서 구원받을 자는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는 대부분 칼빈의 5대교리를 따라가는 자들인데, 이들은 구원받을 자는 만세전에 예정되어 있기에, 아버지께서는 오직 그들만을 예수님에게 보내준다고 믿는다. 또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도 오직 아버지께서 작정한 예정된 자만을 위해 죽으셨다고 믿는다. 그리고 한 번 아버지에 의해 만세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는 절대 구원에서 탈락되는 경우는 없으며, 한 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고 믿는다.

 

4. 장로교의 만세전 예정교리를 뒷받침할 만한 성경구절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주장을 하는데에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런 주장을 펼치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이런 주장을 할 때에는 반드시 어떤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만세전 예정를 외치는 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어떤 성경구절들을 인용하는가? 여러가지가 있으나, 그중에 요10:26~29은 그들에게 중요한 성경구절이다. 이들은 주 예수께서 영생을 주실 자들이 이미 정해져 있으며, 예수께서 한 번 그들에게 영생을 주시면,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으며, 또한 아무도 그들을 예수님의 손으로부터 빼앗아갈 갈 수 없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처음부터 "내 양" 곧 예수님의 양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만세전부터 구원받기로 예정된 주님의 양이란 누구를 가리키는가? 이들은 그들이 누군지가 요10:29에 정확히 나와있다고 말한다. 진짜 그럴까? 이제 요한복음10장 29절을 읽어보자. "그들을 (내게)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9)" 그렇다. 이 구절에 의하면, 예수께서 영생을 주실 자는 아버지께서 다 예수님에게 주신 자들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을 예수님에게 주시는 아버지께서 만물보다 크신 분이므로, 아무도 아버지 손으로부터 그들(만세전에 예정된 자들)을 빼앗알 수 없다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만세전 예정과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것을 믿는 자들은 요10:29을 그들의 주장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다.

 

5. 요한복음 10장 29절은 과연 만세전예정교리를 지지하는 성경말씀인가?

  그런데 지금부터 놀라지 말라. 요10:29의 말씀은 헬라어성경을 보면, 개역성경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역성경에 번역된 요10:29의 말씀은 후대사본을 일컬어지는 소문자 헬라어사본으로부터 번역된 것이다. 이것은 후대에 변경되어진 헬라어원문이다그럼,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을까? 우리말 개역성경은 보다 더 원문에 가까운 대문자사본을 토대로 번역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왜 요10:29의 말씀은 후대헬라어사본에서 번역했던 것일까?

 

6. 두 종류의 헬라어신약성경은 어떻게 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가?

  여러분은 헬라어신약성경이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들어보았는가? 헬라어를 공부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헬라어를 공부하지 못하신 분은 잘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이다. 그래서 헬라어원문을 어디에서 번역하느냐에 따라 번역본이 다르게 된다. 그럼, 헬라어원문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하나는 표준원문(Textus Receptus)이라는 헬라어원문이 있고, 또 하나는 네슬알란트 헬라어원문이 있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네슬알란트 헬라어원문에서 번역한 것이고, 킹제임스성경류(한글킹제임스성경, 한글흠정역, 킹제임스완역판, 킹제임스흠정역)는 표준원문에서 번역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헬라어원문이 보다 더 성경원본에 가까운 것일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표준원문은 헬라어신약성경 중에서 소문자로 기록된 헬라어사본을 토대로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면, 네슬알란트 원문은 여러 헬라어성경들을 비교분석한 결과 보다 더 오래된 대문자 사본을 근거로 만들어진 헬라어신약성경이라는 점이다.  

  그렇다. 378년이 되자, 로마카톨릭은 기독교를 대표하는 교구라고 스스로 선언한다. 그러나 당시 전 세계에는 5개의 기독교교구가 있었다. 하지만 점차 다른 교구는 약해지고 로마교구만이 힘을 발휘하게 되어 결국 대표적인 기독교교단이 되었다. 그런데 로마카톨릭은 당시 로마어(라틴어)를 사용했기에,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성경을 로마어(라틴어)로 번역할 필요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380년에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한 2년이 지난 다음, 곧 382년에 드디어 개정판 라틴어성경이 나오게 된다. 예전에 흩어져 있는 옛날 라틴어성경을 바로잡아 만들어낸 것이다. 그 성경이 바로 소위 "불가타(Vulgate)라틴어성경"이라는 것이다. 불가타성경은 로마주교이자 교황이었던 다마수스의 명령에 따라, 약20년(383년~405)동안 번역작업을 시도해 완성된 라틴어성경이다. 그리고 중세시에는 로마카톨릭이 기독교의 대표교단이 됨에 따라 오직 리틴어성경만이 교회에 있었다. 그런데 그 뒤 1,000년이 지난 어느날, 영국의 신학자였던 존 위클리프(1320~1384)가 라틴어성경을 영어로 번역을 시도하였다. 그래서 1380년에는 신약성경을 번역했고, 신구약은 1382년에 번역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처음으로 불가타성경(라틴어)이 영어로 번역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1450년 인쇄술이 발명됨에 따라 성경을 기독교인들의 손에 들려주기 위해 네덜란드의 인문학자이면서 로마카톨릭의 사제였던 에라스무스(1440~1536)가 헬라어성경을 직접 인쇄하여 출간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에라스무스가 사용한 대역본들은 당시에 존재하는 5~6개의 소문자사본이었다. 그런데 소문자사본들은 다 후대사본으로서 12세기 이후의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독자를 대상으로 인쇄되어 나온 헬라어성경은 에라무스가 발간한 헬라어신약성경이 최초였다. 그는 1516년에 초판을, 1519년에 2판을 계속해서 찍어갔는데, 1517년 종교개혁을 단행한 루터는 에라스무스 제2판 헬라어신약성경을 가지고 독일어번역성경을 만든다. 그리고 나서 계속해서 소문자헬라어신약성경이 인쇄되어 출간되는데, 1546년에는 프랑스 파리의 출판업자였던 스테파누스가 헬라어신약성경을 인쇄하여 세상에 내놓았고, 칼빈의 직제자였던 베자(1519~1605)도 소문자계열의 헬라어신약성경을 1565년에 발간하게 된다. 그리고 1611년이 되었을 때에는 베자헬라어신약성경 제10판이 나오게 된다.

  바로 그때였다. 영국의 제임스 국왕에 의해, 1598년에 나온 베자의 헬라어신약성경을 토대로 영어번역이 시도된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킹제임스성경(KJV)"라는 영어성경이다. 그러다가 1624년이 되었을 때, 엘제비어형제들이 소문자계열의 헬라어신약성경을 다시 출판하면서, 책서문에 "Textus Receptus"라는 문구를 써넣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쓰기에 좋은 일반적인 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헬라어신약성경이 표준원문이라는 헬라어신약성경이라고 불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 현재도 사용하고 있는 헬라어신약원전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여기서 또 알아야 할 역사적인 사실은 칼빈(1509~1564)에 의해 시작된 예정론교리가 그의 직제자 베자(1519~1605)를 통해서 구체화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1618년에 이르자, 예정론교리가 확정되어 도르트회의에서 정식으로 통과되는데, 그것이 바로 "칼빈의 5대교리"라는 것이다. 그러자 그 이후 칼빈의 예정론교리는 정통이라는 교리로 자리를 잡게 되고, 이윽고 칼빈의 예정론교리는 영국으로 건너가서 1648년에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을 낳게 된다. 참고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란 1643년~1647년 웨스트민스터 회의 기간중에 제작된 전문33장의 칼빈주의 장로교 신앙고백서를 일컫는다. 이것이 1648년 영국의회에서 인준을 받고 전세계로 펴저갔으니,오늘날 장로교회는 거의 대부분 이러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표준신앙고백서로 활용하고 있다.

 

7. 예정론교리를 만드는데 사용된 헬라어신약성경은 표준원문(소문자)계열이었나 아니면 네슬알란트(대문자)계열이었는가?

  그런데 또 놀라지 말라. 1559년 칼빈의 기독교강요 제3판에 비로소 칼빈도 자신의 예정론을 거기에 수록하는데, 당시에 그가 헬라어신약성경의 원문이라고 알고 사용했던 신약성경은 전부다 소문자헬라어사본(TR게열사본)이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보다 더 앞서서 나온 대문자사본이 아직 발견되기 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획기적인 사건이 하나 일어난다. 1881년에 티센도르프라는 사람이 소문자사본보다 훨씬 앞서서 나온 대문자사본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소문자사본은 11세기에 이후부터 세상에 많이 돌아다녔지만, 대분자사본은 7~8세기까지만 통용된 것들이다. 그리하여 티센도르프에 의해서 표준원문은 더이상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고,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네슬알란트에 의해서 대문자사본을 가지고 만든 헬라어신약성경이 나오고(네슬알란트헬라어신약성경), 이것이 나중에 Greek New Testament(GNT)로 하나로 합쳐져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두 종류의 헬라어신약성경이 존재하는데, 소문자사본에서 번역된 KJV영어성경은 후대헬라어사본(TR사본계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말의 개역성경은 네슬알란트계열의 대문자사본을 대역본으로 하여 번역한 것인데, 묘하게도 요한복음10:29의 말씀은 소문자사본의 것을 토대로 번역해 놓았다는 점이다. 정말 기가막힐 일이다.

 

8. 예정론교리를 뒤받침해주는 요한복음 10:29의 말씀은 예외적으로 소문자사본에서 번역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말의 개역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있는 독자들은 개역성경이야말로 헬라어원문에서 번역한 최고의 성경으로 알고 있는데, 이 본문 중에서 어떤 부분은 대문자사본을 따르지 않고, 요10:29의 경우처럼 이렇게 소문자사본을 따라서 번역해 놓은 것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특히 요10:29의 말씀은 대문자사본을 따르지 않고, 소문자사본을 따라서 번역하고 있는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소문자사본에서 번역된 말씀이 칼빈주의의 예정론을 그대로 뒷받침하는 성경구절로 현재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요10:29의 대문자헬라어성경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그것은 칼빈주의 예정론을 뒷받침하는 성경구절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요10:29의 본문을 소문자사본과 대문자사본을 가지고서 직접 번역해보자. 먼저 개역성경(한글킹제임스성경)부터 살펴보자.

요10:29(개역개정성경) 그들(남성,복수)을 [내게]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10:29(한글킹제임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더 위대하시니, 아무도 내 아버지 손에서 그들을 빼앗아 갈 수 없느니라.

요10:29(소문자사본에서 직역) 나의 아버지께서 내게 [이미] 주신 채 있는 사람(남성,단수)은 모든 것들(중성,복수)보다 더 크다. 그리고 아무도 내 아버지의 손으로부터 [계속해서] 빼앗을 수 없다.
요10:29(대문자사본에서 직역) 나의 아버지께서 내게 [이미] 주신 채 있는 것(중성,단수)은 모든 것들(중성,복수)보다 더 크다. 그리고 아무도 아버지의 손으로부터 [계속해서] 빼앗을 수 없다.

 

9. 요10:29의 본문은 어떤 것이 왜곡되어 번역된 것인가?

  자, 그렇다면, 개역성경은 원래 대문자사본에서 무엇을 바꾸어버렸는가? 첫째, 아버지께서 주시는 대상이 단수(~것)였는데, 복수(그들)로 바꾸었다. 둘째, 아버지께서 주시는 대상을 중성명사에서 남성명사로 바꾸었다. 다시 말해, "~것"을 "~하는 그들(사람들)"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사실 표준원문을 따라서 번역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표준원문에서는 개역성경처럼 "그들"로 나오지 않고, 단지 "~하는 사람,~하는 자(남성,단수)"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개역개정성경을 비롯한 대부분의 영어성경에는 요10:29의 나오는 중성단수명사(that)를 다 남성복수명사(them)로 바꾸어놓았던 것이다.

  그러면, 대문자사본에 나오는 요10:29의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렇다.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이미 보낸 채 있는 것은 만물보다 더 위대한 것이다." 그렇다.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에게 나와서 말씀을 듣고 믿어서 구원얻기를 원하는 자들을 다 구원하셔야 하는데,  그럴려면 예수님에게는 세상에 있는 피조물이나 마귀보다 더 강력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이미 주신 것은 만물보다 더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야만 예수님도 구원얻기 위해 자신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구원하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역성경과 영어성경들은 왜 그렇게 번역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28절에서 예수께서 영생을 주시는 자가 그들(them)이기에 그것과 짜맞추려고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그래야만 만세전부터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보내어주는 예정된 자들이 있다는 칼빈주의 예정론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큰 성경왜곡이며, 성경을 교리에 맞추기 위한 시도인가? 얼마나 큰 불법적인 성경번역인가? 그렇지만 어느 누가 개역성경이 헬라어원문에서 직역한 좋은 성경이라고 믿지, 이것이 왜곡되어 잘못 번역한 것이라고 알겠는가? 더욱이 칼빈주의 예정론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단수명사를 복수명사로까지 바꾸었다는 것을 알겠는가?

 

10. 신약성경 중에서 칼빈주의에 맞게 왜곡되이 번역되어 있는 곳은 또 어디인가?

  더불어 또 놀라운 사실은 개역성경이 요10:29의 말씀뿐만 아니라, 요6:37과 39절의 말씀도 왜곡해서 번역해놓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구절들도 다 칼빈주의 예정론의 교리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성경구절로 왜곡시켜놓았다는 점이다(이것은 다음의 설교를 참고하기 바란다). 간단히 말해서, 개역성경에서는 헬라어원전의 중성단수명사(판)를 남성단수명사(파스)로 번역함으로, 뜻이 완전히 달라지게 해놓은 것이다. 자, 그럼, 간단히 개역성경과 헬라어원문(이곳은 표준원문이나 네슬알란트원문이나 동일함)을 비교해보도록 하자.

요6:35-40(개역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사람)는 다 내게로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사람)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6:35~40(헬라어직역)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명의 떡이다. 나를 향하여 [현재] [스스로] 나오고 있는 자는 결코 [확실하게] 죽지 않을 것이다. 내 안으로(나를) [현재] 믿고 있는 자는 결코 [확실하게] 영원히 목마르지도 아니할 것이다.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다. 나를 [이미] 본 채 있으면서도 나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37 아버지께서 [현재] 내게 주시고 있는 모든 것(중성,단수)은 나를 향하여 다다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를 향하여 [현재] [자기를 위해] 오고 있는 자(사람)를 나는 결코 [확실히] 밖으로 내쫓지 않을 것이다. 38 왜냐하면 내가 하늘로부터 [이미] 내려온 채 있는 것은, 내 뜻을 [계속해서] 행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나를 [과거에] 보내셨던 분의 뜻을 [행하고자 함이다] 39 그런데 나를 [과거에] 보내셨던 아버지의 뜻은 이것이다.  내게 [이미] 주신 채 있는 모든 것(중성,단수)을 내가 그것(중성,단수)으로부터 [확실히]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날 그것(중성,단수)을 [단번에 혹은 확실히] 다시 일으켜세우는 [것이다] 40 그러나 내 아버지의 뜻은 이것이다. 아들을 [현재] 보고 있는 모든 자(사람)(남성,단수) 그리고 그분 안으로(그분을) [현재] 믿고 있는 [모든 자]가 영생을 [계속해서] 얻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 내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그렇다. 37절의 헬라어원문을 보니,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시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들로 하여금 아들에게로 나아오는 자들을 다 구원하라고 아버지께서 주시고 있는 모든 것이었다. 그것은 지혜도 될 수 있고, 보혜사 성령도 될 수 있고, 능력도 되고, 권세도 되고, 아버지의 이름도 되고 모든 것이 다 된다. 그것이 다 예수님을 향하여 다다르게 될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39절을 헬라어원문으로 보니,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보낸 사람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뜻은 이미 예수님에게 주신 채 있는 모든 것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지키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도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사탄마귀로부터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바로 그런 뜻이다.

 

11. 사람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양으로 정해져 있는가 아니면 나중에 정해지는가?

  이제는 결론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보내어 구원받게 할 자 곧 예수님의 양은 만세전부터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서 정해지는 것인가? 다시 말해, 예수님의 양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믿어서 되어지는 것인가? 결론적으로 그것은 후자라는 것이다. 이 세상 천지에 하나님의 자녀(예수님의 양)로 탄생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왜냐하면 다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인류의 시조 아담이 범죄함으로 태어나는 모든 자는 다 죄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요8:44에서 우리 인류는 마귀의 자식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주님의 양) 곧 예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다 죄인으로 태어나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시대 때부터 육적인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었다. 그들은 육적으로 볼 때에 하나님의 양이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들로서 언약을 붙잡고 자손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육적인 유대인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그러한 사실이 자동적으로 그들을 하나님의 양들이 되게 해주시는 않는다. 다만, 그들은 먼저 복음을 듣고 구원받도록 먼저 초대되었고 기회가 먼저 주어진 것 뿐이다. 이것을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께서는 양과 목자의 비유로 말씀하셨다. 즉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울타리 안에 들어있는 양들이라는 것이다. 잠시 잠깐 울타리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날 목자이신 예수께서 그들을 구원하여 영적인 당신의 자녀(양)으로 삼기위해 이 세상에 들어오셨다. 그러자 문지가(세례요한이 될 수 있고, 성령님이 될 수도 있고 아버지 하나님이 되실 수도 있다)가 문을 열어주어서 목자가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그러자 목자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서 이미 구원으로 초청받은 양들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하지만 양들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서두에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양들은 목자가 없으면 죽은 목숨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양들은 살고 생명을 유지하려면 어찌하든지 목자를 따라나서야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는가? 그들을 이끌어 생명강으로 푸른초장으로 인도하시는 목자를 따라나서지 않았다. 그리고 더불어 무서운 이리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시는 예수님을 따라나서지도 않았다. 이제 정말 참 목자가 왔으나 목자를 따라가지 않고, 울타리에 남아버린 것이다.

  그럼 울타리 안에 남아있는 그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두 가지다. 울타리의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울타리를 넘어들어간 도둑과 강도에 의해 살륙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살륙당하지 않했다면, 아마도 굶어죽거나 목말라 죽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목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하나 생각해볼 것이 있다. 그것은 요10:16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울타리 밖에 있는 양떼도 인도하러 왔다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이다. 예수께서는 목사로서 그들도 인도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들도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한 무리(교회)가 되어 한 목자의 목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오순절상령강림사건이후 구원받는 과정을 고스란히 나타내준다.

  그렇다. 처음부터 영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먼저 울타리 안에서 보호를 받고 있고 목자로부터 먼저 부름을 받는 자가 있을 수 있다. 그들의 대표는 역시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하지만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영적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따라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잠시잠깐동안은 울타리 안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겠지만, 결국 도둑이나 강도에서 살륙당하거나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이 없기에 죽고 말 것이다.

  그런데 울타리 밖에도 양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동안 울타리를 받지 못한 채 밖에 있었다. 이들은 "이방인들"을 지칭한다. 그런데 목자되신 예수게서는 그들도 인도하러 왔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따라나선 유대인들(초대교회)처럼 이방인들 중에서도 함께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나가서 구원받을 사람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울타리 밖에 있었지만,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음성을 듣고 그분을 따라나선 이방인 중에도, 어느순간부터 목자를 따라가지 않게되면, 그도 이미 얻은 구원에서 탈락하고 말 것이다. 구원이 그리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 처음부터 영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양은 없다. 다 죄인으로 태어나기에 마귀의 자녀들인 것이다. 그러나 어느날 울타리 안에서 보호를 받고 있던 유대인들이든, 목자가 이 세상에 오신 이후에는 모든 이방인이든,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믿고 따라가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육적인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유대인들이나 혹은 육적으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던 이방인들이나 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따라나서는 자만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 자만이 영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속해 있었더라도, 목자를 따라나서지 않는 유대인들은 결국 구원을 받지 못했다. 오직 목자이신 예수님을 보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따라나선 자만이 그분의 양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12. 나오며

  그러므로 주님의 양은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중에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구원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따라나설 때에 비로소 그분의 양으로 선택되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 번 주님을 따라나섰다고 해서, 그것이 영구적으로 자신을 주님의 양이 되게 하지는 못한다. 한 번 주님을 따르기로 했으면 끝까지 그분을 믿고 따라가는 자라야, 그분의 양이 되어 천국에 골인할 수 있는 것이다. 혹시 중도에 예수님을 버리고 딴 길로 간다면, 그는 반드시 버림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나를 향하여)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5:39)" 그렇다. 유대인들은 처음부터 울타리 안에 있던 양들이었다. 육적인 하나님의 양들로서 육적인 보호를 어느정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목자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에는 그분을 따라나서지 않는 자들이 많았다.유대종교지도자들의 대부분은 아마도 예수님을 따라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약하고 병들고 천대받는 사람들만 주님을 따라나섰다. 그들은 바로 세리와 죄인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먼저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오순절성령강림사건이후부터는 이방인들도 얼마든지 구원의 대상으로 초청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요3;16의 말씀처럼,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이 세상 사람들을 이처럼 사랑하서 그분의 외아들을 목자로 보내주셨으니 그분을 믿는 자만이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주님의 양이 아니었던 자들이라도 얼마든지 복음을 듣고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음성을 따라나선다면 그도 반드시 구원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주 예수님을 믿고 따라오는 양들을 구원하라고,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다 내려보내주셨기 때문이다(요6:37,10:29). 그러므로 끝까지 주님을 붙들고 그분을 따라가는 자만이 주님의 양으로 선택되어지고 그가 바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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