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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2-64.요한서신강해(09강)</title>
	<subtitle>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로서, 2007년 동탄신도시에 세워졌습니다.</sub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lang="ko" href="https://dongtanms.kr/john_epis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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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요한서신강해(09) [최종회]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과 교회의 지도자에 대한 책망 및 칭찬(요삼1:1~15)_2022-01-26(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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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2-01-26T16:19:32+09:00</published>
		<updated>2022-01-28T19:19:08+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교회에는 지도자들이 있다. 누가 과연 주님께 칭찬받을 만한 지도자인가? 반대로 누가 과연 주님께 책망을 듣는 지도자인가? 요한삼서는 15절 밖에 안 되는 편지이지만 여기에 그것을 가르쳐주는 말씀이 들어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람들은 늘 진리의 동역자들이 되어야 한다. 진리의 동역자는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 말이며, 이런 자들에게는 어떤 상이 기다리고 있는가? 요한삼서를 통해서 사도 요한이 그토록 축복해주고 싶어하는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교회에는 지도자들이 있다. 누가 과연 주님께 칭찬받을 만한 지도자인가? 반대로 누가 과연 주님께 책망을 듣는 지도자인가? 요한삼서는 15절 밖에 안 되는 편지이지만 여기에 그것을 가르쳐주는 말씀이 들어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람들은 늘 진리의 동역자들이 되어야 한다. 진리의 동역자는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 말이며, 이런 자들에게는 어떤 상이 기다리고 있는가? 요한삼서를 통해서 사도 요한이 그토록 축복해주고 싶어하는 지도자가 누군지를 한 번 찾아보자.&lt;/p&gt; &lt;div class=&quot;youtube_converted&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rD8A1uHxrHA&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요한삼서는&amp;nbsp;사도 요한이 보낸&amp;nbsp;세 번째 서신으로 알려진 책이다. 사도 요한은 이제 나이가 많아&amp;nbsp;자신을 &amp;#39;장로&amp;#39;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자기로부터 복음을 받아서 영적인 자녀가 되었고 이제는 한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던 가이오에게 편지를 써 보낸다. 고로 요한삼서는 사도 요한이 목회자에게 보낸&amp;nbsp;일종의&amp;nbsp;목회 서신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사도 요한이 개인적으로 가이오를 향한 감사와 기대와 권면의&amp;nbsp;말씀이 들어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 사도 요한은 왜 가이오에게 편지를 보내야 했을까? 그리고 그 편지에 언급한 내용은&amp;nbsp;무엇인가? 우리에게는 고, 조용기 목사님으로 인하여&amp;nbsp;삼중 축복으로&amp;nbsp;말해지고 있는 요한삼서&amp;nbsp;1:2의 말씀만이 아니라, 요한삼서 전체를&amp;nbsp;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으며 무엇에 감사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 편지를 통하여 A.D.90~95년 당시 소아시아에 위치한 교회들이 처한&amp;nbsp;상황을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으며, 목회자와 성도 간에는 어떤 협력 관계가 필요한지도 살펴보게 될&amp;nbsp;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교회 지도자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교회 지도자는 어떤 사람인지도 살펴볼&amp;nbsp;수 있을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요한삼서, 어떤 책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요한삼서는 어떤 책인가? 이 책은 장로인 사도 요한이 A.D.90~95년경 소아시아에 있는 어떤&amp;nbsp;교회의 &amp;#39;가이오&amp;#39;라는 지도자에게 보낸 개인적인 서한이다. 일종의 개인 서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amp;nbsp;이 편지의 수신자인 &amp;#39;가이오&amp;#39;는 어떤&amp;nbsp;교회의 지도급에 있는 인사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 편지를 굳이 구분하자면, 일종의 &amp;#39;목회 서신&amp;#39;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사도 요한은 당신이 파송했던&amp;nbsp;순회 전도자들로부터 가이오와 그가 속한 교회의 사정을 들었던 것 같다(3절). 그러자 그는&amp;nbsp;자신이 이전에 그 교회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또한&amp;nbsp;들은 소식을 가지고&amp;nbsp;가이오에게 편지를 써 보내고 있다. 이때 사도 요한은 이 편지를 &amp;#39;데메드리오&amp;#39;라는 순회 전도자의 손에 들려서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이 편지가&amp;nbsp;짧게 기록된 것임을 알리면서, 곧 찾아가서 대면하게 보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한다.&amp;nbsp;이 책은 총 15절 밖에 되지 않는 짧은 문장이지만, 정확하게 편지 형식을 갖추어 쓴&amp;nbsp;서신서라고 할 수&amp;nbsp;있다. 왜냐하면 송수신자와 축도(1~4절)가 도입부에 나오고,&amp;nbsp;본론부(5~12절)에서 자신의 용건을 밝히고 있으며, 마지막으로&amp;nbsp;끝인사(13~15절)로서&amp;nbsp;이 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때 사도 요한이 요한삼서를 통해서 가이오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소식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정리하면, 그것은 한 마디로 복음 전도 사역자를&amp;nbsp;영접하여 그의 필요를 채워 주었던 가이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amp;nbsp;그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또 권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겠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amp;#39;가이오&amp;#39;라는 인물은 대체&amp;nbsp;누구이며, 그는 어떻게 되어서&amp;nbsp;사도 요한의 마음을 기쁘게 했던 것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요한삼서의 수신자로 거론되고 있는 &amp;#39;가이오&amp;#39;는 대체 누구인가? 우리는 가이오가 누군지에 대해서&amp;nbsp;그를 모든 면에서 다 알 수는 없다. 사실 그가 어느 교회에 속한&amp;nbsp;일꾼인지도 성경에는 정확히 나와 있지 않다. 다만 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도 요한이 그를&amp;nbsp;그 교회의 참된 일꾼이자 지도자로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며, 특히 진리 안에서 사도 요한도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다(1절, 5절). 사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amp;nbsp;대해서는 이 편지의&amp;nbsp;첫 부분인 도입부와 그리고 중간 부분인 본론부의 앞부분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amp;nbsp;수 있다. 그것은 첫째로, 그는 사도 요한이 참으로 사랑하는 자였으며(1절), 둘째로, 그는 진리 안에서 걸어가고 있던 자였다(3절). 이것을 두고&amp;nbsp;사도 요한은&amp;nbsp;매우 기뻐하였다. 그리고 셋째로, 그는 사도 요한의 전도를 통해 영적인 자녀가 되었던 사람 같아 보인다(4절). 그리고 넷째, 그는 그 교회를 방문한 순회 전도자들을 잘 영접하고 그들을&amp;nbsp;지극히 대접했던 사람으로 유명하다(5절). 그러므로 가이오라는 인물은&amp;nbsp;사도 요한이 매우 칭찬하는 교회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사도 요한이 &amp;#39;가이오&amp;#39;라는&amp;nbsp;지도자에게 꼭 전해 주고 싶어했던&amp;nbsp;말씀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럼, 사도 요한이 편지를 써서 가이오에게 꼭 들려 주고자 했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 가운데 있는 순회 전도자들을&amp;nbsp;영접하고 그들을 대접한 것에 대하여&amp;nbsp;가이오를&amp;nbsp;칭찬하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렇다. 가이오는&amp;nbsp;자기&amp;nbsp;교회를 방문하는&amp;nbsp;순회 전도자를 잘 영접하였으며&amp;nbsp;또한 그러한 복음 전도자들이 복음을 전해 주고 교회를 떠나가는 날에는 사역자들이 다음에 머물 장소까지 잘 가실 수 있도록 교통비와 숙박비와 식비 등을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amp;nbsp;사도 요한이 머물고 있던 에베소 교회까지도 그 교회를 다녀온 순회 전도자들을 통해 그 교회의 소식을 잘 알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은 가이오가 베푼 사랑과 선한 행위가 너무 귀하다는 것이다. 사실 순회 전도자들은 자기가 복음을 전파한 교회로부터 무엇인가를 제공받지 않는다면 힘겨운 선교생활을 감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늘 기쁨으로 그것을 감당하고 있었는데 가이오는 달랐다는 것이다. 사실 순회 전도자들은 복음을 전파할 때에&amp;nbsp;이방인에게서는 어떤 사례나 답례도 받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amp;nbsp;사도 요한은 그렇게 순회 전도자를 잘 챙겨 준&amp;nbsp;그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amp;nbsp;&amp;#39;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amp;#39; 즉 &amp;#39;진리의 동역자&amp;#39;라고까지 불러 주었다. 그러므로 오늘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도 역시&amp;nbsp;천국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었다고 하는 것에 만족하거나 그냥 안주해서는&amp;nbsp;아니 될 것이다. 오히려 복음 선교 사역에 기도나 물질로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8절).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amp;nbsp;것은 누가 과연 복음 전파 사역의 동역자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최전방 일선에 나가서 직접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이야말로 복음 전파에 있어서&amp;nbsp;중요한 사역인&amp;nbsp;것 만큼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전방 사역자가 그 사역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후방에서 병참과 무기를 비롯하여 그에게 여러가지&amp;nbsp;보급품을 잘 전달해 주는 후방 사역자가 꼭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라고 해서 복음 전파 사역에는 아무런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접어야 한다. 오히려 후방 사역자들도 전방 사역자들 못지 않게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는 전도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amp;#39;디오드레베&amp;#39;는 어떤 인물이며, 왜 그는 사도 요한으로 꾸중을 듣게 되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본론부 후반에 등장하는 &amp;#39;디오드레베&amp;#39;는 대체 어떤 인물인가? 9~10절의 말씀에 따르면, 그는&amp;nbsp;&lt;strong&gt;첫째, 가이오가 지도자로 있는 바로 그 교회의 지도자들&amp;nbsp;중&amp;nbsp;더&amp;nbsp;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자&lt;/strong&gt;로 보인다(9절). 왜냐햐면 그는 교회에서 성도들을 출교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10절).&amp;nbsp;&lt;strong&gt;둘째, 그는 사도&amp;nbsp;요한의 복음 사역자들을 악한 말로 헐뜯었던 자였다&lt;/strong&gt;는 것이다(10절). 그가 비난했던&amp;nbsp;사역자들 안에는 심지어 사도 요한까지 포함되어 있었다.&amp;nbsp;&lt;strong&gt;셋째, 뿐만 아니라 그는 사도 요한이 보낸 복음 순회 전도자들을 맞아들이지 않고 배척했던 인물&lt;/strong&gt;이다(10절). 그리고&amp;nbsp;&lt;strong&gt;넷째, 성도들 중에서 순회 전도자들을&amp;nbsp;환영하고 환대하는 성도들을 교회에서 출교시키고 있던 인물&lt;/strong&gt;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정리한 말씀으로&amp;nbsp;&lt;strong&gt;다섯째, 그는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교만한 자요 안하무인&lt;/strong&gt;이었다는 것이다(9절). 그는 교회에서 항상 첫째가 되기를 원했었다. 누군가를 다스리고 지배하려는 의지가 매우&amp;nbsp;강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말이 곧 그 교회에서 중요한&amp;nbsp;법이었고 그가 한 번 말하면 다른 사람은 누구도&amp;nbsp;반론을 제기할 수 없고 제기해서는 안&amp;nbsp;되는 것이었다. 그는 순회 전도자들이 자기 교회를 찾아온다 할지라도 그들을 섬기거나 대접할 줄을 몰랐으며, 교회 성도들 중 그들을 대접하는 자들을 오히려 책망하고 출교하는 그러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낮아지지 못했던 교만한 자요, 자기 말을&amp;nbsp;주입시키려 하는 강포한 자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가이오 더러 절대 그를 따라가서는 아니 된다고 권면한다. 그가 그렇게 행동한 것은&amp;nbsp;그가 악한&amp;nbsp;자요 더욱이 하나님도&amp;nbsp;본 채 있지 않은 자였기 때문이다(11절). 그는 사실 하나님을 잘 모르는 자였다. 그는 영적으로 볼 때에도 어린아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자였던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amp;#39;데메드리오&amp;#39;는 누구이며, 그는 무슨 일 때문에 이 편지에 등장하고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이제는 요한삼서에 등장하는 마지막 인물에 대해 주목해 보자. 그는 누구였는가? 그의 이름은 &amp;#39;데메드리오&amp;#39;였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진리에 대해서도 증거를 받은 사람이었다. 특히 사도 요한이 시무하고 있는 에베소 교회에서도 그의 증언이 참이라고 인정해 주는 자였다. 그는 한 마디로 순회 전도자로서 모든 교회에서 인정하는 인물이었던&amp;nbsp;것이다. 특별히 본문에 나오는 데메드리오는 장로인 사도 요한이 쓴 편지를 가이오에게 전달하기 위해 선택된 자로서, 가이오가 시무하고 있는 교회에도 방문한 적이 있는 순회 전도자였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데메드리오가 가이오의 교회에 당도하면 그를 합당하게 전송하고 그의 필요를 채워 줄&amp;nbsp;것을 권면하였다. 그가&amp;nbsp;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때에는 아무것도 받지 않은 채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요한삼서는 장로인 사도 요한이 어떤 교회의 지도자였던 가이오에게 보낸 개인적인 서한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지도자의 자격과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게 된다. 어떤 지도자는 하나님께 칭찬들을 만한 지도자였지만 반대로 어떤 지도자는 악한 지도자로서 성도들이 멀리 해야 할 지도자도 있다는&amp;nbsp;것을&amp;nbsp;배우게 된다. 그중에 가이오는 정말 진리 안에서 걸어가고 있는 있는 참된 지도자였기에&amp;nbsp;사도 요한은 그를 축복한다. 그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그의 육체도&amp;nbsp;강건하기를 기도한다(2절).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교회를 방문하는 복음 전파자를 위해 헌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로 진리의 동역자로서 장차 하늘나라에서 상을 얻을 지도자였음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반대도 있었다. 디오드레베는 악한 지도자였다.&amp;nbsp;순회 복음&amp;nbsp;전도자를 영접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악한 말로 비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교회 성도들이 복음 전도자를 대접했다고 그를 교회에서 출교하는 일까지 서슴없이 행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늘 으뜸되기를 좋아하여 교회 위에서 군림하려고 하였지 도무지 섬기려고&amp;nbsp;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본받고 누구를 귀감으로 삼을 것인가? 덧붙여&amp;nbsp;사도 요한은 말한다. 복음 전파를 위해 수고하는&amp;nbsp;자와 함께 일하는 자가 곧 진리의 동역자라는 것이다. 이는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급이 이들에게 같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더욱더&amp;nbsp;주 안에서 복음 전파에 노력하고 복음 전파자와 함께 동역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운로드] 요한삼서 헬라어 직역 및 명령과 선포문&lt;/p&gt; &lt;p&gt;1.&amp;nbsp;&lt;a data-file-srl=&quot;89811&quot; href=&quot;?module=file&amp;amp;act=procFileDownload&amp;amp;file_srl=92436&amp;amp;sid=74fa10e3198e8feae17bc95cb33b6a4e&amp;amp;module_srl=220&quot;&gt;요한삼서강해.pptx&lt;/a&gt;&lt;/p&gt; &lt;p&gt;2.&amp;nbsp;&lt;a data-file-srl=&quot;89812&quot; href=&quot;?module=file&amp;amp;act=procFileDownload&amp;amp;file_srl=92437&amp;amp;sid=35e4cd62d32598858e94a56e2634e68a&amp;amp;module_srl=220&quot;&gt;요한삼서강해.pdf&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2년 01월 26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요한서신강해(08) 진리 안에서 사랑하고 미혹하는 자를 물리치는 방법(요이1:1~13)_2022-01-05(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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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2-01-05T21:29:32+09:00</published>
		<updated>2022-01-15T20:48:50+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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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동탄명성교회</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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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요한이서는 누가 썼으며, 누구에게 쓴 책인가? 이 책을 왜 초기 교회 사람들은 &amp;#039;요한이서&amp;#039;라고 명명했는가? 사도 요한은 왜 요한일서 외에도 요한이서의 편지를 써 보내야만 했는가? 초신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또한 누구를 가장 조심해야 하는가?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믿음은 왜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그리도 중요한 것인가? 오늘날 우리는 왜 이단세력들을 가까이하면 아니 되는가? 이 ...</summary>
	<content type="html">&lt;div&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dddddd;&quot;&gt;요한이서는 누가 썼으며, 누구에게 쓴 책인가? 이 책을 왜 초기 교회 사람들은 &amp;#39;요한이서&amp;#39;라고 명명했는가? 사도 요한은 왜 요한일서 외에도 요한이서의 편지를 써 보내야만 했는가? 초신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또한 누구를 가장 조심해야 하는가?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믿음은 왜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그리도 중요한 것인가? 오늘날 우리는 왜 이단세력들을 가까이하면 아니 되는가? 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오늘의 말씀이다.&lt;/span&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iframe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IqdK5RJyMtQ&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요한이서는 어떤 책인가?&amp;nbsp;사실 요한이서는 성도들에게 왠지 낯설은 책이다. 왜냐하면 요한이서는 요한일서에 비하면 그리 많이 읽혀지는 책이&amp;nbsp;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요한이서는 요한일서에서 이어서 나오는&amp;nbsp;책으로 우리에게&amp;nbsp;주어져있다. 그렇다면 과연 요한이서는 요한일서의 저자였던&amp;nbsp;사도 요한이 쓴 것일까? 아니면 &amp;#39;장로&amp;#39;로 지명된 어떤 특정한 무명의 인물이 기록한 것인가? 그리고 요한이서는 요한일서와 대체 어떤 관련이 있길래 &amp;#39;요한이서&amp;#39;라고 명명되어&amp;nbsp;있는가? 이제 곧&amp;nbsp;요한이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요한이서는 전형적인 편지 형식의 서신서이다. 편지로서 요한이서를 보면&amp;nbsp;오히려 요한일서가 파격젹이라고 할 수 있다.&amp;nbsp;왜냐하면 요한일서는 송신자와 수신자를 기록하지 않고 있으며, 문안인사나 끝인사도&amp;nbsp;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한이서와 요한일서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 가정하에 요한이서를 본다면, 이 책은&amp;nbsp;과연 어떤 목적을 따라&amp;nbsp;기록된 것인가?&amp;nbsp;요한일서에 미처 기록하지 못했던 내용이 있어서&amp;nbsp;저자가 그것을&amp;nbsp;요한이서에 기록한 것인가? 아니면 요한일서의 편지를&amp;nbsp;보내고 난 후 수신자들에게 발생한 어떤 특정한 사건&amp;nbsp;때문에 저자가 다시 요한이서를 써서 보낸 것인가? 기왕 요한이서를 공부하려 들어왔다면, 지금이야말로 요한이서를 제대로 공부할&amp;nbsp;때가 아닌가 싶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요한이서는 어떤 책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요한이서는 누가 쓴 책인가?&amp;nbsp;요한이서는 이 책을 &amp;#39;장로&amp;#39;라고 자신을 밝히고 있는 분이 썼다고 기록되어&amp;nbsp;있다(요이1:1). 그렇다면 이 &amp;#39;장로&amp;#39;라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헬라어로 보니, &amp;#39;호 프레스뷔테로스&amp;#39;라는 단어인데, 그것은 &amp;#39;그 장로&amp;#39;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amp;nbsp;어떤 특정한 인물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amp;#39;그 장로&amp;#39;는 사도 요한인가 아니면 다른 특정한 인물인가? 이를 위해서 우리는 요한이서의 내용과 필체에 관심을 갖지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책 제목이 &amp;#39;요한이서&amp;#39;라고 명명되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amp;nbsp;요한일서에 붙어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저자가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요한이서에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용어들이 요한일서에&amp;nbsp;고스란히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mp;quot;진리, 아버지와 아들, 사랑, 새 계명, 처음부터, 미혹하는 자,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 적그리스도&amp;quot; 등이 아예 똑같은 단어이다. 그리고 중심주제도 거의 같다. &amp;quot;진리 안에서 서로 사랑하라&amp;quot;, &amp;quot;미혹하는 자를 주의하라&amp;quot;이기 때문이다.&amp;nbsp;다만, 요한이서는 미혹하는 자들에 관하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구체적이고 실체적이다. 즉 요한일서에 비해 새롭게 추가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상을 종합해 보았을 때, 요한이서의 저자는&amp;nbsp;사도 요한이라고&amp;nbsp;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이 편지를 쓰고 있을 당시 사도 요한은 그의 나이가 90세 정도는 되었기에 장로라고 명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초대 교부들 대부분은&amp;nbsp;요한이서를 사도 요한 저작으로 인정한다. 예를 들어, 폴리캅(Polycarp), 이레네우스(Irenaeus),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등이 그렇다. 다만 이 책의 저자가 자기자신을 가리켜 &amp;lsquo;장로&amp;rsquo;(1:1)로 표현한 것을 두고&amp;nbsp;사도 요한이 아니라&amp;nbsp;다른 익명의 장로(Eusebius, Papias)로 추측하는 분들도 있기는 하지만, &amp;lsquo;장로&amp;rsquo;라는&amp;nbsp;호칭이 오늘날과는 달리 당시에는 나이가 지긋하고 연륜이 많은 자에 대한 존칭의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에(벧전 5:1), &amp;#39;장로&amp;#39;라는 호칭은 사도 요한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다.&lt;br /&gt; &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요한이서의 수신자는 누구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나이가 많은 사도 요한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 책은 대체 누구에게 써 보낸 책인가? 장로는 이렇게 말한다. &amp;quot;선택함을 받은 부녀와 그녀의 자녀들(1:1))&amp;quot; 혹은 &amp;quot;선택함을 받은 너의 자매들의 자녀들(1;13)&amp;quot;이 그 수신자라고 말한다. 그러면, &amp;#39;부녀&amp;#39; 혹은 &amp;#39;너&amp;#39;로 지칭되는 이&amp;nbsp;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먼저 &amp;#39;부녀&amp;#39;를 헬라어로 보면, &amp;#39;퀴리아&amp;#39;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amp;#39;퀴리오스&amp;#39;(&amp;#39;주&amp;#39;)의 여성형 명사로서, 어떤 여성의 이름일 수도 있고, 주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 전체를 지칭하는 표현일&amp;nbsp;수도 있다. 그렇지만&amp;nbsp;&amp;#39;퀴리아&amp;#39;를 어떤 개인으로 보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amp;#39;우리&amp;#39;와 &amp;#39;너희&amp;#39;가 비교되면서 등장하는데 개인을 지칭하기 보다는 교회공동체를 향해 부르는 표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이서의 수신자로 등장하는 &amp;#39;퀴리아&amp;#39;란&amp;nbsp;아마도 교회공동체를 지칭하는 대유명사인 듯 하다. 그러므로 여기어 덧붙혀 퀴리아의 자녀들 역시 교회공동체의 각 구성원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요한이서는 왜 기록했으며,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이&amp;nbsp;장로는 왜 요한이서를 기록해야 했는가? 앞에서 살펴본대로 본 저작을 나이 많은 장로였던 사도 요한으로 가정한다면, 이 편지는 요한일서를 보내고 난 뒤고 얼마 안 있어서 써 보낸 편지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첫째, 본 서신의 내용이 요한일서를 읽고 그것을 그대로 실천한 교회공동체를 향한 사도 요한의 칭찬과 기쁨이&amp;nbsp;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요이1:4~6). 그리고 둘째, 이 편지를 써 보내야 했던 직접적인 목적이 중후반에 나오기 때문이다(요이1:7~11). 그것은 바로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인 세력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다. 그것도 그들을&amp;nbsp;결코 가까이 하지 말고 그들을 배척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요한일서를 보내고 난 뒤에 어떤 일들이 교회에서 일어난 것을 알게 된&amp;nbsp;장로 요한은 이 책을 곧이어&amp;nbsp;써보냈다고 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요한이서는 편지 형식을 고스란히 갖춘 전형적인 서신서라고 할 수 있다. 이 편지를 당시 상황을 고려해보나면, 장로&amp;nbsp;요한이 에베소교회나 혹은&amp;nbsp;소아시아 지역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의 회람용 서신으로 이 편지를 기록한&amp;nbsp;것 같다. 그렇다면 이 편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이 편지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할&amp;nbsp;수 있다. 첫째는&amp;nbsp;이 편지의 송신자가&amp;nbsp;수신자에게 전하는&amp;nbsp;인삿말(1:1~3)이다. 그리고&amp;nbsp;둘째는&amp;nbsp;본 편지를 보내는 2가지 주된 목적(1:4~11)이 나온다. 그리고&amp;nbsp;셋째는&amp;nbsp;끝 인삿말(1;12~13)이 나온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장로&amp;nbsp;요한이&amp;nbsp;첫 인사말에서 전하고 있는 &amp;#39;진리&amp;#39;란 무엇을 가리키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장로 요한은 서두 인삿말(1:1~3)에서 각 절마다 &amp;#39;진리&amp;#39;에 대해&amp;nbsp;언급한다. 이 편지의 발신자인 장로 요한 뿐만 아니라 &amp;quot;진리를 아는&amp;nbsp;채&amp;nbsp;있는 모든 자들&amp;quot;도 역시 수신자인 퀴리아와 그녀의 자녀들을 사랑하고 있다고 언급한다(1절). 그리고 진리가 장로 요한 및 그와 함께 있는 이들 안에 머물고 있으며, 또한 그 진리는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확신있게 말한다(2절). 그리고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부터 나와서 진리와 진리 안에&amp;nbsp;함께 할 것이라고 말한다(3절). 그렇다면 장로 요한이 말하고 있는 이 &amp;#39;진리&amp;#39;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우리가 이 진라(&amp;#39;알레데이아&amp;#39;)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한이서의 말씀과 함께&amp;nbsp;요한복음과 요한일서의 책을 함께 검토해본다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amp;nbsp;장로 요한이 쓰고 있는 &amp;#39;진리&amp;#39;가&amp;nbsp;요한복음과 요한일서에도 동시에 많이 언급되고&amp;nbsp;있기 때문이다. 우선 진리는&amp;nbsp;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amp;nbsp;자신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되는 말이다(요1:17, 14:6). 또한 예수께서는 진리를 말씀하는 분이시다(요8:40,45). 그리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말씀&amp;nbsp;또한 진리다(요17:17,8:40) 더욱이&amp;nbsp;예수께서 떠나가시면서 당신을 대신하여 보내주실&amp;nbsp;보혜사 성령도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하셨다(요15:26, 16;13).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요한이서에서는&amp;nbsp;진리에 관한 또 하나의 중요한 진술이 나온다. 그것은 &amp;#39;진리&amp;#39;란&amp;nbsp;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부터 나오는 어떤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요이1:2,9). 고로&amp;nbsp;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말씀이 곧 진리이자&amp;nbsp;아버지와 아들이 하신 말씀이 곧 진리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다른 존재가 하는 말은 진리라고 말할 수 없다.&amp;nbsp;특히 마귀가 하는 말은 결코 진리가 아니며 그것은 거짓이다(요8:44). 왜냐하면 그는 거짓말장이요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인량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을 동시에 알아야 한다.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을 알 때에 그 사람은 진리 안에 거할 수 있게 되며,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요17:3). 그래서 장로 요한은 진리를 받은 자는 진리 안에서 걸어가는(행하는) 자라고 말했다. 특히 장로 요한은 부녀와 그녀의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매우 기쁘다고 하면서 이 편지를 썼다(요이1:4).&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이어 장로 요한은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 곧&amp;nbsp;진리 안에서 걸어가고 있는 부녀와 그녀의 자녀들 때문에 매우 기뻐한다. 실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어 아들이 되셨다. 그러므로 아들을 소유한 자는 아버지와 아들을 동시에 소유한 것이며, 진리를 소유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장로 요한은 &amp;quot;진리가 우리 안에 거주하고 있으며, 진리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요이1;2)&amp;quot;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퀴리아와&amp;nbsp;그녀의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걸어가고(행하고) 있다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인가? 그것은 진리이신 아버지와 아들이 걸어간대로 행하는 것을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한 마디로, 사랑 가운데서 행하는 것이요, 새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요이1:4~6).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amp;#39;사랑&amp;#39;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한 바 있다. &amp;quot;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의]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10)&amp;quot; 그렇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인들을&amp;nbsp;위해&amp;nbsp;그들이 지은 죄를 용서해주려고&amp;nbsp;화목제물로써 그의 아들을 보내신 것이&amp;nbsp;&amp;#39;사랑&amp;#39;인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셨다는 말을 정확히 이해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디에 따로 있는 아들이 있어서&amp;nbsp;그 아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요1:1~3,14,18, 딤전3:16),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임마누엘 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기 때문이다(마1:23). 즉 아기이자 아들로 오신 분은 원래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셨던 것이다(사9: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기 위해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신 것 그리고 그분의 몸을 우리 인류의 화목제물이자 속죄제물로 바치신 것이 곧 &amp;#39;사랑&amp;#39;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아들을 성령을 통하여&amp;nbsp;받게 된 모든 믿는 이들은 자기 속에서부터&amp;nbsp;하나님의 속성인 사랑의 품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을 모신 자들은 서로 사랑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랑을 받은 자&amp;nbsp;처음부터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요이1:6). 그러므로 모든 믿는 자들은 형제와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자기 안에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당시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은 누구였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늙은 요한 사도는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왜 그토록 심히 중요하게 여긴&amp;nbsp;것일까? 특히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을 적그리스요 미혹하는 자라고 말하는 것인가?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서,&amp;nbsp;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것 그 자체만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는데, 실은 이 진술에는 엄청난 더 큰 비밀이 담겨&amp;nbsp;있다. 왜냐하면 에수님의 성육신에 대한 인정은&amp;nbsp;결국 이단이 되느냐 정통 신안을 갖는 것이 되느냐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amp;nbsp;그것은 당시 영지주의 이단 세력들의 미혹이 매우 강력했기&amp;nbsp;때문이었다. 이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각기 다른 존재로 보고 있었으며, 예수와 그리스도를 별개의 존재라고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amp;nbsp;성육신하신 것 자체를&amp;nbsp;부인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또한&amp;nbsp;부인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부활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라고 말한 것은 이와같은 많은 진술들을 부인한 것이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주 크고도 중요한 문제라고 보았던 것이다.&amp;nbsp; 그러므로 예수님의 성육신을 믿고 혹은 부인하는 것은&amp;nbsp;그 바로 진리의 영을 따르는 사람인가&amp;nbsp;아니면 미혹의 영을 따르는 사람인가를 분별해주는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amp;nbsp;이러한 사실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구원과 멸망 곧 천국과 지옥이 갈려지기 때문이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영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고만 보았다. 그리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영적인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라고&amp;nbsp;보았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은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amp;nbsp;문제라든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지 아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신 것인지 아닌지는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안았다. 그것은 그들이 말하는 구원의 정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육신의 사건은&amp;nbsp;죄를 지은 인류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이다. 만약 그날 예수께서 대속의 죽음을 죽지 않으셨다면 모든 인류는&amp;nbsp;죄의 댓가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고 또한 죽어서는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죄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모든 모람들 가운데에는 그 어떤 사람도 대속제물로 죽을만한 흠없는 사람이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육신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가 없다. 그런데 그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부인하는 이들이 영지주의자들이었다. 아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신 분이&amp;nbsp;예수님이신&amp;nbsp;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가 바로 적그리스도요 이단이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8. 왜 성도들은 영지주의자들을 받아주지 말고 멀리해야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왜 성도들은 영지주의자들을 자기의 집&amp;nbsp;안으로 모셔들이지 말고 그들을 멀리 해야 하는가? 심지어 노 사도는 그들에게 인사도 하지 말라고 주문하는가? 그것은 그들은 암덩어리로 누룩과 같이 그들을 용납할 때 많은 영혼이 주님의 성육신을 부인하여 더럽혀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육신이&amp;nbsp;아니고는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없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그 일을 행하신&amp;nbsp;것인데,&amp;nbsp;성육신&amp;nbsp;자체를 부정하고 있으니 큰 일이 되는 것이다. 영지주의 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성육신은 일종의 타락이다. 그들은 신성한 그리스도가&amp;nbsp;육신을 입을 리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가르침을 따라가게 되면 그는 결국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정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초신자들이 잘 알 리가 없다. 더욱이 영지주의자들은 초기교회의 성도들의&amp;nbsp;손님대접 습관을 악이용하려고 하기 땜누에 그 문제는 더욱 더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손님대접하는 일은 구약시대부터 손대접하기를 힘쓰라는 말씀에 따라, 히브리인들이나 지금의 베두인들까지도 기본적으로 실천하는 풍습이었다(히13;2, 롬12;13, 눅9:3~5, 10:7~11). 그런데 이것을 악이용하여 마치 자기들이 참된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인량 가장하여 침투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니 이들의 가르침을 들은 자들은 쉽게 이들의 마수에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늙은 노 사도는 요한일서를 보낸 후에 빨리 이 문제를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둘째 편지를 써 보낸 것이다. 교회가 이단세력에 의해 잠식될 수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그것을 알려주고 싶었던&amp;nbsp;것이다. 그러자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amp;quot;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는 아예 집에 들이지도 말라. 그리고 그들에게 인사도 건네지 말라. 만약 그들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들의 악한 일에 동참하는 것이 된다.&amp;quot;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이단의 가르침을 믿고 따라간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장로 요한은 일차적으로 그런 자는 자기가&amp;nbsp;주님을 위해 힘써 일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요이1:8a). 그리고 그리스도로부터 온전한 보상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요이1:8b). 그리하여 이단에 빠진 것을 회개하지 못하는 자가 발생한다면, 그는 자신의 죄를 용서받지 못한 채&amp;nbsp;영원한 멸망에 처하고 말&amp;nbsp;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9.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장로 요한은 위와 같은 교회의 현실과 이단의 위험성을 너무나 잘 간파하고 있었기에 교회의 성도들에게 요한일서의 편지를 쓰는 것만으로&amp;nbsp;많이 부족함을&amp;nbsp;느끼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마지마긍로 파피루스 종이나 잉크로 그들에게 편지를 써 보내는 것보다는 직접 가서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요이1:12~13). 그렇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러한 이단 세력들이 여기 저기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들은 교묘한 속임수로 위장하여 성도들을 미혹한다. 특히 요즘 들어와&amp;nbsp;이단들은 성도들을 호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알레고리컬 성경해석법을 들이밀며&amp;nbsp;성도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영지주의 계열의 이단들은 비유로 하신 말씀의의 실체를 알려준다고 접근한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성경의 비밀을 제대로 깨우쳐주는 것인량 가장하여 미혹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종류의 이단들은 대부분 지식을 사용하는 악한 영들 가운데&amp;nbsp;상당히 높은 계급의 영들이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성경의 비유해석과 논리를 가지고 접근해 들어온다면 먼저 그를 시험해보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것을 믿느냐고 말이다. 그런데 이단은 교만한 말장난으로 그것을 피해가려고 할 것이다. 그러니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 이에&amp;nbsp;장로 요한은 초신자들은 이러한 이단 세력들을 처음부터 아예 용납하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한&amp;nbsp;것이다. 이들이야말로 자신이&amp;nbsp;마치 훌륭한 성경교사인 것처럼 가장하여 들어오기 때문에, 분별력 없이 그들의 가르침을 따라가게 되면 그들의 미혹에 금방 빠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 사도는 이러한 거짓 교사들을 빨리&amp;nbsp;내쳐야 한다고 말한&amp;nbsp;것이다. 이 때 사용할&amp;nbsp;기준은 이것이다. 말씀을 가르치는&amp;nbsp;교사가 첫째, 예수께서 성육신하신 것을 부인하는가 인정하는가를 보라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와 예수님이 한 분이신가 아닌가를 물어보라는 것이다. 이것이 분명하지 않거나 잘못 전하는&amp;nbsp;자는 이단의 세력이 될 수 있기에, 이런 자들은&amp;nbsp;사도 바울의 말처럼 한 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는 것이 좋을&amp;nbsp;것이다(딛3:10~11).&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2년 01월 05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운로드]&lt;/p&gt; &lt;p&gt;1.&amp;nbsp;&lt;a href=&quot;?module=file&amp;amp;act=procFileDownload&amp;amp;file_srl=92443&amp;amp;sid=54ce81defc63d8d52dfa58aa037c845c&amp;amp;module_srl=220&quot;&gt;2022-01-05 요한이서 헬라어직역과 명령과선포.pptx&lt;/a&gt;&lt;/p&gt; &lt;p&gt;2.&amp;nbsp;&lt;a href=&quot;?module=file&amp;amp;act=procFileDownload&amp;amp;file_srl=92442&amp;amp;sid=94896c69b89ba0f980c3ba6ee3aaa10a&amp;amp;module_srl=220&quot;&gt;2022-01-05 요한이서 헬라어직역과 명령과선포.PDF&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92428/438/092/6925a7549ec7b2d6e82d8ac40ae8f485.jpg&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요한서신강해(07) 세상과 그리고 마귀를 이기는 승리의 요건은 무엇인가?(요일5:4~21)_2021-12-29(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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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1-12-29T20:36:21+09:00</published>
		<updated>2022-01-03T22:58:53+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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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동탄명성교회</name>
		</author>
		<summary type="text">성도들은 세상의 유혹을 어떻게 이길 수 있으며 또한 악한 자 사탄마귀를 어떻게 이길 수가 있는가? 그런데 사도 요한은 거듭난 성도들이 악한 사탄마귀를 이기는 것까지 목표를 두고 요한일서의 책을 집필하였다. 그래서 거듭나서 하나님의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기본적으로 형제를 사랑해야 하겠지만, 세상과 마귀는 정복해야 한다는 것을 꼭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세상과 마귀와의 싸움에서...</summary>
	<content type="html">&lt;div&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dddddd;&quot;&gt;성도들은 세상의 유혹을 어떻게 이길 수 있으며 또한 악한 자 사탄마귀를 어떻게 이길 수가 있는가? 그런데 사도 요한은 거듭난 성도들이 악한 사탄마귀를 이기는 것까지 목표를 두고 요한일서의 책을 집필하였다. 그래서 거듭나서 하나님의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기본적으로 형제를 사랑해야 하겠지만, 세상과 마귀는 정복해야 한다는 것을 꼭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세상과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lt;/span&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iframe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9oJxCxVEGRs&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요한일서는 초신자용 양육교재와 비슷하며, 초기영지주의 이단예방을 위한 좋은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이 책이 신앙의 기본요소를 갖춘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분과 교제하는 가운데&amp;nbsp;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요한일서의 책은&amp;nbsp;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요한일서의 맨 마지막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성도가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 그리고&amp;nbsp;사마귀와의 싸움에서&amp;nbsp;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말씀다. 이 말씀을 올바로 깨닫기 위해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의 의미와, 내가 생명을 자기고 있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아무쪼록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세상과 마귀와&amp;nbsp;더불어 싸우는 영적 싸움에서 우리 모든 성도들이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요한일서 5:4~21의 위치는?&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요한일서는 구분짓기가 상당히 어렵다. 왜냐하면 같은 주제들이 반복해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굳이 요한일서를 구분한다면,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일 처음 &lt;strong&gt;1~2장은&lt;/strong&gt; 하나님과의 교제(코이노니아)라는&amp;nbsp;관점에서 성도의 신앙과 삶을 언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아버지와 아들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놈이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amp;#39;죄&amp;#39;라고 정의하고 그 죄는 오직&amp;nbsp;자백함으로 용서받을 서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모든 성도는 결국에는 죄짓지 않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은 자라도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되면 그는 마귀에게 속해버리기 때문이다. 이어서&amp;nbsp;&lt;strong&gt;3:1~4:6에서는&lt;/strong&gt;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적인 관점에서 성도의 합당한 신앙과 생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씨 곧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자녀는 형제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lt;strong&gt;4:7~5:3의 말씀&lt;/strong&gt;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모두&amp;nbsp;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면서, 이것이 없으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lt;strong&gt;5:4~21&lt;/strong&gt;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어떤 능력을 발휘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사도 요한은 이 부분에서 성도란 하나님께로부 난 자들인데 이는&amp;nbsp;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는 자로서, 이들이 곧&amp;nbsp;예수님에 대한&amp;nbsp;믿음을 사용하여&amp;nbsp;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참 하나님이시며 영생이신 예수님을 자기 안에 모시는 자는 사탄마귀도&amp;nbsp;건드릴 수 없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마귀에 대해서 승리하는 비결을 이 부분이 소개해주고 있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세상을 이기는 성도는 어느 정도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요한은 요한일서를 기록하면서 요한일서를 기록한 목적을 몇 가지로 소개하는데, 그 중에서&amp;nbsp;신앙의 성숙도를 알려주는 부분이 있다. 사도 요한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사람을 칭하는&amp;nbsp;호칭을 통해 알려준다(요일2:12~14). 거기에 보면, 성도들에 관한 호칭이 3~4자기 정도가 나온다. 그것들은 &amp;#39;자녀들&amp;#39; 혹은 &amp;#39;아이들&amp;#39;이 있고,&amp;nbsp;&amp;#39;청년들&amp;#39;과&amp;nbsp;&amp;#39;아비들&amp;#39;이 있다(요일2:12~14). 여기서 &amp;#39;자녀들&amp;#39;이란&amp;nbsp;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아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amp;nbsp;&amp;#39;아이들&amp;#39;은 아버지가 누군지를 아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아비들은 태초부터 계신 이가 누군지를 아는 자들이다.&amp;nbsp;그렇다면 &amp;#39;태초부터 계신 이&amp;quot;는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14에서 그분은&amp;nbsp;&amp;#39;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amp;#39;라고 말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더 자세히 언급할 것이다. 그리고 &amp;#39;청년들&amp;#39;이라는 호칭이 등장하는데 이는 영적으로 강한 자들로서 영적&amp;nbsp;무기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이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악한 자 곧 사탄마귀를 물리치는&amp;nbsp;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세상을 이기는 성도란&amp;nbsp;어린아이의 단계를 넘어선 이들을 가리키는데, 이들 모두는&amp;nbsp;이미 회개하여&amp;nbsp;죄사함을 실천하고 있는 자들을 넘어서서&amp;nbsp;죄를 짓게 만드는 마귀 곧 악한 자 자체를 대적하는 성도들을 가리킨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4. 성도들이 꼭 이겨야 할 2가지 대상은 무엇인가?&lt;/span&gt;&lt;/strong&gt;&lt;/p&gt; &lt;p&gt;&amp;nbsp; 사도 요한은 성도들이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을 요한일서 5:4~21에서 다음과 같이 2가지로&amp;nbsp;언급한다. 그 중의 &lt;strong&gt;하나는 &amp;#39;세상&amp;#39;&lt;/strong&gt;이고, &lt;strong&gt;또 하나는 &amp;#39;악한 자&amp;#39; 곧 &amp;#39;사탄마귀&amp;#39;&lt;/strong&gt;다. 무릇 성도라면 세상을 이겨야 하고 사탄마귀를 이겨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가 세상이나 혹은 마귀는&amp;nbsp;어떻게 이길 수가 있는가?&amp;nbsp;그때 사용하는 무기이자 방편은 바로&amp;nbsp;우리의 &amp;#39;믿음&amp;#39;이다. 영적인 세계에서 승리하는 비결이 바로&amp;nbsp;&amp;#39;믿음&amp;#39;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도 예수께서 누구신지에 관한 믿음을 가지고서 말이다. 그래서&amp;nbsp;사도 요한은 세상을 이기는 믿음에 관하여서 요한일서 5:4~17절에서 언급을 하고, 이어서 악한 자 곧 사탄마귀를 이기는&amp;nbsp;믿음에 관하여서는 요한일서 5:18~21에서 언급을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5. 어떤 성도가 세상을 이길 수&amp;nbsp;있는가?&lt;/span&gt;&lt;/strong&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성도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어떻게 할 때에&amp;nbsp;세상을 이길 수 있는가? 여기서에 언급된 &amp;#39;세상&amp;#39;이라는 단어는 이미 요한일서 2:16~17에서 말했던&amp;nbsp; 바로 그 단어로서, 성도들로 하여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amp;nbsp;빠지게 하는&amp;nbsp;것들을 가리킨다. 즉 &amp;#39;세상&amp;#39;이란 하나님을 대적할 뿐더러&amp;nbsp;사탄마귀의 포로가 되어 있는 모든 것을 이 세상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그럼 왜 사람들은&amp;nbsp;이 세상에 빠지는 것인가? 그것은 세상이 사람들에게 주는 것들이&amp;nbsp;대단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에게 때로는 인기와 명예를 안겨주기도 하고, 칭찬과 부귀를 안겨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지만&amp;nbsp;이 세상의 유혹을 잘&amp;nbsp;이겨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자들이다. 그런데 요한 사도는 이 세상의 본질이 바로 사탄 마귀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amp;quot;이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해(놓여) 있다&amp;quot;고 말한다(요일5:19). 그러므로&amp;nbsp;성도들은 비록 이 세상에 살더라도 어찌하든지 세상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 성도는 세상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고 또한&amp;nbsp;이길 수가 있는가? 그것에 대해 사도 요한은 오직 한 가지&amp;nbsp;조건만 충족시키면 된다고 하였다. 그것은 곧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는 것이라고 하였다(요일5:5). 한 마디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세상을 이기게 해 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는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거듭 태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난 성도가 또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amp;nbsp;&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6. 예수께서 &amp;#39;하나님의 아들&amp;#39;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lt;/span&gt;&lt;/strong&gt;&lt;/p&gt; &lt;p&gt;&amp;nbsp; 사도 요한은 대체 &amp;#39;하나님의 아들&amp;#39;이라는 용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길래,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자가&amp;nbsp;세상을 이긴다고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요한일서에서도 사도 요한이 답하고 있지만,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에 가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요한일서에서 핵심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곧 예수께서 하나님이라는 뜻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은 그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분을 지칭할 때에 그렇게 사용한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은&amp;nbsp;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나타내신 것이라는 말한다. 즉 나타난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라는&amp;nbsp;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러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직 한 분으로서 여호와만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또 다른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수용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 속에 하나님은 언제는 영이신 하나님이었던 것이지, 육체를 입고 있는&amp;nbsp;사람이라고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amp;nbsp;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을 때에, 당시 유대인들은&amp;nbsp;어떻게 사람인 주제에 자기를 하나님으로 빙자하여 말하느냐면서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고소하여 결국 십자가에서 죽게 만든다. 그들의 생각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러나 사실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한 것은 그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분은 하나님으로 나오셨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람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기에,&amp;nbsp;자기자신을 아들이라고 늘 칭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해야 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동시존재가 가능한 분이시므로, 하나님은 아들로도 계시고 그때부터는 아버지로도 함께&amp;nbsp;계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아들로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나타나셨을 때에는,&amp;nbsp;육체를 입지 않는 신성한 하나님을 가리켜 &amp;#39;아버지&amp;#39;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분이 예수님을 이 땅에 파송하였고 사람의 태를 빌려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으려 할 때에 조심할 것은 그분이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amp;nbsp;그러므로 성도가 예수를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amp;nbsp;것은 그분만이&amp;nbsp;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라고&amp;nbsp;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는 자가 있다면 그는 얼마든지 세상을 이길 수 있으며&amp;nbsp;사탄마귀도 이길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amp;nbsp;것을 증거해 주는 3가지가 있다고 말한다(요일5:6~9). 그리고 세 가지는 오직 한 가지 사실을 증언하는데, 그것은 바로 &amp;quot;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amp;quot;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곧 이 땅에 보내어진 육체를 입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amp;nbsp;있는가? 그것이 바로 세 가지 증거 곧 &amp;#39;물&amp;#39;과 &amp;#39;피&amp;#39;와 &amp;#39;그영(보혜사 성령)&amp;#39;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물과 피와 성령이 어떤 것이기에, 이 셋은&amp;nbsp;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해주는가? 사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을 증거해 주는 것은 둘이다. 그중에 하나는 &amp;#39;사람들의 증거&amp;#39;이고 또 하나는 &amp;#39;하나님의 증거&amp;#39;가 있다. 그중에&amp;nbsp;사람들의 증거란 예수님이 육체를 입고 있었으나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았던 자들의 증거를 가리킨다. 그런데 그들 중의 한 명이었던 사도 요한이 지금 그 증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요일1:1-2&amp;nbsp;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amp;nbsp;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lt;/span&gt;&lt;br /&gt; &amp;nbsp;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증거를 직접 눈으로 보았던 이들은 죽고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증거 이외에 또다른 증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증거다. 그것이 바로 &amp;#39;물&amp;#39;과 &amp;#39;피&amp;#39;와 &amp;#39;성령&amp;#39;이라는 것이다. 왜나하면 지금까지 이 지구상에서&amp;nbsp;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셨다가 가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증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amp;#39;물&amp;#39;과 &amp;#39;피&amp;#39;와 &amp;#39;성령&amp;#39;이기 때문이다. 이중에서 &amp;#39;물&amp;#39;과 &amp;#39;피&amp;#39;는 예수께서 육체를 입으실 때 취하신 인성의 일부분이다. 그분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기에, 그때 물질세계에 속한 것을 취하셨다. 그것이 바로 그분의 육체인 것이다. 그런데 그분의 육체는 죽고 부활하신 후에 그 몸을 가지고 승천하심으로 그 몸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 그렇지만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물과 피는 여전히 이 세상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승천하셨던 예수께서는 하늘에 가셔서 그분이 이 세상에 육체를 가지고 오셨으며, 이 육체를 통하여 인류의 죄를 속했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 그분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께서&amp;nbsp;오셔서 오직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증언해주시고 있다(요15:26). 그리고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시기도 하신다(요14:26). 그러므로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 바로 &amp;#39;물&amp;#39;과 &amp;#39;피&amp;#39;와 &amp;#39;성령&amp;#39;인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8.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영접하는 자들 속에는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이 들어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육체를 입으신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에서다. 그분이 직접 인류의 죄를 대신할&amp;nbsp;피를 흘리시고 죽으시기 위함이었다. 이는 피가 죄를 속하기 때문이다(히9:22). 그리고 죽음이 인류가&amp;nbsp;범죄한 죄값이기 때문이다(롬6:23). 그런데&amp;nbsp;인류의 죄를 속죄할 피는 더러운 피로서는 아니 되고,&amp;nbsp;깨끗한 피여야 했기 때문에 죄없으신 하나님께서 피흘릴 수 있는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가지고 오셨던 것들 중에 중요한&amp;nbsp;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amp;#39;생명&amp;#39;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아들을 보내실 때에 그 속에 생명을 주어서 보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은 이 땅에 있는 유한한 생명과는 다르다.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전능하신 하나님의&amp;nbsp;생명이기 때문이요,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는 부활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amp;nbsp;이 세상에 계실 때에 그는 아버지의 유일하신 아들이었다. 즉 독생자였던 것이다. 그분이 아버지의 생명,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유일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께서 자신만을 가지고 있으려고 가지고 온 것이 아니다. 이것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 주려고 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므로&amp;nbsp;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한 가운데서 생명나무를 심어놓으셨던&amp;nbsp;것이다. 그 열매를 따먹고 하나님의 생명을 취하라는것이다. 하지만 첫째 아담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예수께서 둘째 아담으로 그리고&amp;nbsp;마지막 아담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죽고 부할하신 후에 그는 생명을 나눠주시기 시작하셨는데, 그가 쓴 방법은 당신 대신에 보내신 보혜사 성령이시다. 보혜사 성령은&amp;nbsp; 예수님의 또 다른 방식으로 오심으로서, 그분이 오실 때에는 영으로 오시지만 믿는 이들 속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오시어 믿는 이들이 자기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갖게 만들어준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이 그 사람 속에 있는 한 하나님의 생명도 그 사람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이&amp;nbsp;죽은 날까지 생명을 지켜내야 한다. 어떤 일이 불어닥쳐도 그분을 부인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죽을&amp;nbsp;때에 생명을 가지고 오셨던&amp;nbsp;성령께서도&amp;nbsp;떠나버리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한 번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라면, 그 생명은 그가 죽는 날까지 떠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그 사람 속에 계속해서 함께 머물러 계시기 때문이다. 설령 죄를 범하였어도 성령은 그 안에 계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죽을 때에 주님을 부인하거나 죄를 지었는데도 회개하지 않았을 때에는 성령께서도 그 사람을 떠나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곧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으로 믿고 영접한 자들 속에는 누구나 다 영생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말한다. &amp;quot;아들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잇는 자는 생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가지고 있지 않는 자는 [자기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다(요일5:12)&amp;quot; &amp;quot;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고 있는 너희에게이 편지를 쓰는 것은 너희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요일5:13)&amp;quo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9. 내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믿는 이들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는 말은 자기 속에 보혜사 성령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죽고 부활하셨던 예수님을 일컬어 &amp;#39;생명주는 영&amp;#39;이라고 하였다(고전15:45). 그분이 생명주는 영 곧 보혜사 성령이 되어서 우리 안에 거주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생명이 들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성령이 오심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있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생명이나 성령이나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성질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것이 발현됨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증상을 통해서 확인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영이 내 속에 들어오면 그 사람이 그 생명을 받게 되고 그러면 그 사람의 죽어있던 영이 말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amp;#39;방언&amp;#39;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생명은 성질이 곧 빛이요 진리이요 사랑이기 때문에, 이 생명을 받은 자는 어둠 안에 거하지 아니하며, 거짓말도 하지 아니하고, 형제를 미워하지 않게 된다. 이 생명을 받은 자는 빛 가운데 거하며, 진리를 말하며, 형제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요한 사도는 그가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다면 그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양자)가 되었으므로 그도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때부부터 구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혹시 죄를 범한 자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생명을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요일5:14~17). 그러나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자들을 위해서는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0. 죄들 중에 &amp;#39;사망에 이르는 죄&amp;#39;란 대체 어떤 것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성경에 나오는 말씀 중에서 난제가 하나 있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amp;quot;사망에 이르는 죄&amp;quot;다. 대체 사도 요한은 어떤 죄를 가리켜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말했으며, 왜 그러한 죄를 지은 것에 대해서는 기도하라고 말하지 않겠노라고 말한 것인가? 어떤 사람은 성령훼방죄가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 말을 잘못 이해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를 마귀의 역사라고 치부하는 것을 성령훼방죄라고 해석하는 분들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amp;#39;사망에 이르는 죄&amp;#39; 보다 더 원문상으로 정확히 말하면, &amp;#39;사망을 향하여 있는 죄&amp;#39;라는 그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도 요하니 &amp;#39;사망에 이르는 죄&amp;#39;는 결국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는 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사실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이 말씀하고 있는 &amp;#39;사망&amp;#39;은 &amp;#39;생명&amp;#39;의 반대말이며, 여기에서 &amp;#39;생명&amp;#39;은 아버지의 생명이요 영원한 생명이요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생명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사망도 역시 육체적인 사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사망을 뜻하는 것이라야 한다. 다시 말해, 영원한 죽음을 향하여 짓는 죄를 가리켜, &amp;#39;사망에 이르는 죄&amp;#39;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영혼이 영원히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는 어떤 죄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는데, &lt;strong&gt;하나는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죄&lt;/strong&gt;를 가리킨다. 한 마디로 &amp;#39;불신앙의 죄&amp;#39;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결국 죽을 때에 영원한 사망 안에 처하고 말&amp;nbsp;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lt;strong&gt;또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였지만 영원한 사망에 처하는 죄가 있는 것&lt;/strong&gt;이다. 그것은 &lt;strong&gt;자신이 예수님을 한 번 믿었다면 어떤 죄를 짓더라도 그 죄와 상관없이 자신은 구원받는다고 믿는&amp;nbsp;죄&lt;/strong&gt;를 가리킨다. 아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그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계속해서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면 그는&amp;nbsp;죽는 날 그이&amp;nbsp;속에 들어있는 성령께서&amp;nbsp;그를 떠나가실 것이다. 죄를 다 처리하지 못한&amp;nbsp;자까지 주님은 그를 천국에 억지로 데려가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오직 죄를 청산한 자만 천국에 데려가신다. 그것을 위해서 주님은 사람이 되셨고 피흘려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amp;nbsp;회개를 통하여 자신의 죄를 씻어내지 못한 자는 결국 남게 된다. 죄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 자는 매일 자기의 죄를 책망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성령의 책망을 멀리하고 죄짓고 살아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성령이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분은 예수께서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늘 우리에게&amp;nbsp;가르쳐주시고 깨우쳐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우리 속에서 책망하시고 가르쳐주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만약 예수님을 믿은 자가 되었지만 성령의 책망을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국 구약의 사울왕처럼 버림을 받고 말 것이다. 이러한 죄가 바로 사망에 이르는 죄인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1. 악한 자 사탄을 이기는 자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사탄마귀를 &amp;#39;악한 자&amp;#39;라고 칭하였다. 그것도 다섯 번 나오는데, 다 사탄마귀를 지칭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요일2:13~14, 3:12, 5:18~19). 그는 선한 자가 아니라 악한 자다. 그는 선과 악을 알고 있지만 악에 물들어 있는 자다. 그는 악을 밥으로 먹고 사는 것이다. 그는 한 마디로 악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에게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잔인한 자다. 그는 냉혹한 자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자에게 속아넘어가 그의 영원히 갇혀 있을 감옥에 들어가면 아니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의 공격들 즉 유혹과 핍박을 이겨낼 수 있는가? 그런데 사실&amp;nbsp;우리 인간이 가진&amp;nbsp;능력과 지혜만으로는 사탄을 이길 수가&amp;nbsp;없다. 그는 하나님 다음으로 지혜롭고&amp;nbsp;미가엘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상당히 큰 능력을&amp;nbsp;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체를 지닌 우리 인간의 힘과 타락한 본성에 휩싸여 있는 우리 인간의 지혜만으로는 그를 이길 수가 없음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탄마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그는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가 가셨지만 사탄마귀를 이기신 우리 주 예수님을 힘입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께서 사탄마귀보다 크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요일4:4). 사탄마귀는 피조물이고,우리 주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사탄마귀의 권세와 능력과 지혜는 제한적이지만 우리 주님은 무제한적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을 힘입는다면 그를 거뜬히 이길 수가 있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말한다. 하나님께로부터 거듭 태어난 성도는 하나님께서 나셨던 자인 예수께서 그를 지켜주기 때문에 악한 자가 그를 손댈 수 없다고 했다(요일5:18).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 안에 전능자께서 들어와 계시는데 어찌 그 놈이 함부로 우리에게 접근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 가지 그 놈이 우리에 접근하고 우리 안에 들어오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짓게 될 때다(요일3:8).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 것처럼 우리가 그에게 속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탄마귀를 이기셨던 예수님을 힘입기 위해서는 먼저 반드시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회개하기만 하고 예수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면 우리는 거뜬히 사탄마귀를 이길 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마귀는 광야의 시험에서 3대 0으로 예수님에게 판정패 당했으며, 3년반 뒤에 십자가에서 KO패 당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죄없는 예수님을 그가 죽였기 때문에, 그의 계급이 무장해제 당했기 때문이다. 그날 그러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날 마귀는 불법을 사용하여 그가 가진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예수님에게 넘기게 되었으며, 그때 그는 무저갱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는 무저갱에 갇혀 이 지상에 못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주님 재림 직전에 잠깐 풀려서 올라오는 경우를 제외하면 그는 지금도 지하세계에게 자신의 부하들은 올려보내 그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쫄 필요가 없다. 우리 속에 예수님이 계시는데, 그는 예수님 앞에서는 패배자이기 때문에 그는 힘을 잃어버리게 되어있다. 내 안에 사탄마귀보다 더 큰 이가 내주하고 있음을 믿으라. 그리고 담대히 맞서라. 마귀를 대적하면 그가 피한다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피하지 않으면 성령의 검으로 그의 머리를 찔러버리고 그의 몸을 싹뚝 잘라버리라(영의 세계에서 그렇게 명령하면 된다). 그가 우리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그는 계속해서 고통을 당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2. 예수 그리스도는 대체 누구신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를 마무리 지으면서 예수님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공개한다. 그분은 말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려지지만 실은 참 하나님이요 영생이라는 것이다(요일5:20). 그분이 사람들에게&amp;nbsp;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것불렸다는 것과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했다고 해서 그분은 하나님보다 못한 존재가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한 다른 표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공생애 마지막 무렵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amp;quot;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amp;quot; 그렇다. 그분의 신성은 하나님이셨다. 다만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신성한 그분이 육신을 입어 인성을 잠시 취하신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죽고 부활하실 때에 그분의 몸은 신성의 영역으로 다시 이끌어가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신성한 세계의 몸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그분이 비록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다가 가셨지만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낮춰 불러서는 아니 되겠기에 그분을 참 하나님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분만이 영생 곧 영원한 생명이시다. 그러므로 공생애 마지막에 예수께서도 아버지께 기도하실 때에 이렇게 기도하셨다. &amp;quot;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17:3)&amp;quot; 그랬다. 하나님이 보내셨던 분, 그래서 자신을 아들이라고 칭하셨던 분은 하나님의 또다른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도 요한은 자기자신을 우상에게서 멀리할 것을 주문하였다(요일5:21). 그런데 이말을 헬라어 원문을 통해서 보면, 자기자신을 우상으로부터 지켜내라는 말인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우상숭배에 대해서 말하라고 하면 얼마나 많은 지면이 필요할지 모른다. 이 부분은 다른 설교를 참고하기를 바란다. 사도 요한은 초신자들에게는 이 부분까지 다 설명해 주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이 부분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언급한 것&amp;nbsp;같다. 그는 가장 높은 수준의 영성을 갖추고 있으니까 말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3.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요한일서를 공부하다보면 느끼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정말 암송해야 할 요절이 많은 성경책이라는 점이다. 그만큼 이 책은 기초적인 영적인 진리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요한일서는 자범죄&amp;nbsp;용서를 위한 자백의 중요성(요일1:9)을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amp;#39;빛&amp;#39;이시고(요일1:5), &amp;#39;사랑&amp;#39;이라고 하는 정의하고 있다(요일4:8,16). 그리고 우리가 죄를 짓더라도 하늘에서 우리를 위한 대언자가 있다고 말한다(요일2;1). 그리고 이 세상 안에는&amp;nbsp;악한 자가 있어서&amp;nbsp; 이 세상이 그 악한 자 안에 놓여&amp;nbsp;있으며(요일5:19), 악한 자가 사람들을 붙잡고 있는데, 그것들로는&amp;nbsp;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있다고 말한다(요일2:16).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이며(요일2:22),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라고 언급한다(요일4:2~3). 그러므로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오직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를 분별하라고 권면한다(요일4:1). 그리고 요한일서는 진리의 성령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요일5:6), 성령은 예수를 증거하는 영으로서(요일5:6), 그분의&amp;nbsp;가르침은 참되고 거짓이 없다고 말한다(요일2:27). 특히 요한일서는 우리가 대적해야 할 대상에 대해서도 알려주는데 그를 &amp;#39;악한 자&amp;#39;라고 부르며(요일2;13,14, 3;12, 요5:17,18), 죄를 짓게 되면 누구든지 그에게 속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요일3:8).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그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요일3:8). 아담의 장남 가인이 차남인&amp;nbsp;아벨을 쳐죽인 것도 그가 악한 자에게 속한 것이었으니(요일3;12), 보이는 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한다(요일4:20). 그리고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곧 &amp;#39;살인&amp;#39;죄라고 가르쳐준다(요일3:15). 그리고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만큼 귀한 일은 없다고 말한다(요일3:16). 더욱이 요한일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그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셨으며(요일4:10),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셨다고 말한다(요일4:14). 하나님을 아무도 본 사람은 없지만 만일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게 된다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요일4:12).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이기려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어야 한다고&amp;nbsp;가르친다(요일5:5). 그리고 성도가 세상을 이기려면&amp;nbsp;그때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amp;nbsp;우리의 &amp;#39;믿음&amp;#39;이라고 말한다(요일5:4). 그리고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 셋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amp;#39;물&amp;#39;과 &amp;#39;피&amp;#39;와 &amp;#39;성령&amp;#39;이라고 알려준다(요일5:7~8). 그리고 예수께서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기에, 누구든지&amp;nbsp;생명을 얻기를 원하는 자는 아들을 영접해야 할 것이라고&amp;nbsp;말한다(요일5:12).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어 거듭난 자는 예수님께서 그를 지켜주시기 때문에 악한 자라도&amp;nbsp;그를 만질 수 없다고 가르쳐준다(요일5:18). 왜냐하면 우리 믿는 이들 속에 들어와 계시는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요 영생이시라는 것이다(요일5:20).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요한일서를 공부할 때 암송할 성경구절들이다. 놀랍지 아니한가? 요한일서가 바로 이러한 책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틈나는대로 아니 시간을 내어서라도 하루에 한 번씩 요한일서를 읽고 또 읽을 수만 있다면 그는 어마어마한 영적인 유익을 얻게 될&amp;nbsp;것이다. 그리하여 누구든지&amp;nbsp;영생을 소유한 자답게 살기를 바라며, 믿음을 사용하여&amp;nbsp;악한 자를 이기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운로드]&amp;nbsp;&lt;a href=&quot;?module=file&amp;amp;act=procFileDownload&amp;amp;file_srl=92446&amp;amp;sid=14683c6fa980c77d16bf322b7567df30&amp;amp;module_srl=220&quot;&gt;2021-12-29 요한서신강해(07).pptx&lt;/a&gt;&lt;/p&gt; &lt;p&gt;&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amp;nbsp;&lt;a href=&quot;?module=file&amp;amp;act=procFileDownload&amp;amp;file_srl=92447&amp;amp;sid=53363dc8f9c00a6b7fed2949aed9af1a&amp;amp;module_srl=220&quot;&gt;2021-12-29 요한서신강해(07).pdf&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1년 12월 29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92428/444/092/083e558349eb23f6156343656ad1d31b.jpg&quot; /&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요한서신강해(06) 독생자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놀랍고도 위대한 사랑(요일4:7~5:3)_2021-12-15(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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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1-12-15T14:14:06+09:00</published>
		<updated>2021-12-16T22:54:59+09:00</updated>
		<author>
			<name>동탄명성교회</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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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홀로 유일한 아들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아들로서 직접 오신 것인가? 요한일서는 하나님이 빛이시며 또한 사랑이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의 체현으로서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고도 말한다. 그럼 요한 사도는 왜 아들의 탄생을가리켜 하나님의 사랑의 체현이라고 말하는가? 그 비밀을 이제 ...</summary>
	<content type="html">&lt;div&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dddddd;&quot;&gt;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홀로 유일한 아들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아들로서 직접 오신 것인가? 요한일서는 하나님이 빛이시며 또한 사랑이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의 체현으로서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고도 말한다. 그럼 요한 사도는 왜 아들의 탄생을가리켜 하나님의 사랑의 체현이라고 말하는가? 그 비밀을 이제 캐내어보자.&lt;/span&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iframe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jJ9G5XwBFBw&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요한일서의 내용과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사실 요한일서는&amp;nbsp;전체를 한 덩이로 읽거나 특정 구절을 통해서 은혜받기는 쉽지만 그 속에서 구조를 발견하기란 여간 힘든 구조다. 특히 요한일서에서는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직선적 논리 순서를 따르지 않고 순환론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본다. 예를 들어서&amp;nbsp;&amp;#39;형제 사랑&amp;#39;에 대한&amp;nbsp;말씀은&amp;nbsp;분명히 요한일서&amp;nbsp;2장에서도 나오고 있지만(요일2:9~11), 또한 3장에서도 다시&amp;nbsp;나오며(요일3:14~16), 그리고 4장에서도 또 나오기 때문이다(요일4:20~21). 그렇더라도 요한일서의 주제를 살펴보면 크게 3부분으로 나눌&amp;nbsp;수가 있는데, 1~2장에서는 생명을 가진 자들의 교제(코이노니아)의 관점에서 성도의 신앙과 삶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3~4장은&amp;nbsp;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성도들이 가진 신분과 거기에 따른 합당한 생활을&amp;nbsp;다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장에 가서는 믿음을 통한 승리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살펴 보게 될&amp;nbsp;요한일서 4:7~5:3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로서&amp;nbsp;하나님의 참 사랑에 근거한 계명 실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하겠다. 그중에서도&amp;nbsp;이번 시간의 핵심 키워드는&amp;nbsp;&amp;#39;사랑&amp;#39;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하여 &amp;#39;사랑&amp;#39;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amp;nbsp;살펴보고 &amp;#39;사랑&amp;#39;의 구체화된 역사적인 사건과 &amp;#39;사랑&amp;#39;이 어떻게 우리 믿는 이들에게까지 혜택을 베풀어 주는지 그 메카니즘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형제를 사랑하는 일은&amp;nbsp;곧 계명에 순종하는 일이라는 것까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놀랍고도 위대한 사랑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성도들의 사랑은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4:7~12의 말씀을 통하여 성도들은 사실 사랑하며 살아야 할 존재인 것을 천명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amp;nbsp;사랑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요일4:8).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요일4:11). 여기서 우리가&amp;nbsp;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서 하나님의&amp;nbsp;두 번째 속성을 &amp;#39;사랑&amp;#39;이라고 정의하고 있다는 점이다(요일4:8,16). 사실 사도 요한은 성도들과 하나님 사이 그리고 성도들과 성도들 사이에 있는 생명의 교제(코이노니아)에 대해&amp;nbsp;설명하면서 하나님의&amp;nbsp;첫 번째 속성으로서 &amp;#39;빛&amp;#39;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요일1:5). 그런데 이제 형제 사랑의 실천을 교훈하면서&amp;nbsp;그는&amp;nbsp;&amp;#39;하나님은 사랑&amp;#39;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사랑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는&amp;nbsp;것이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을 통해서&amp;nbsp;&amp;#39;사랑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amp;#39;는 말을 살펴보면,&amp;nbsp;&amp;#39;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있는&amp;#39;&amp;nbsp;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사랑이 하나님의 속성이라기보다는 사랑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더 강조하는 표현이라는&amp;nbsp;것이다. 곧 사랑은 그것이 어떤 사랑이든지 모두가 다 신적 기원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제일 속성은 역시 사랑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사랑은 어떻게 밖으로 표출되어 나타나게 되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amp;#39;하나님은 사랑이시다&amp;#39;라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이며 이것을 우리들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라는 말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중에 &amp;#39;하나님(데오스)&amp;#39;이라는 단어에는 정관사가 붙어 있는데, &amp;#39;사랑(아가페)&amp;#39;이라는 단어에는 정관사가 붙어 있지 않다는 것을 우선 주의해야 한다. 이것을 쉽게 설명하자면, 정관사가 붙어 있는 명사는&amp;nbsp;주로 &amp;#39;주어&amp;#39;로 사용된다면, 정관사가 붙어 있지 않는 명사는 주로 &amp;#39;서술어&amp;#39;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amp;nbsp;&amp;#39;하나님은&amp;nbsp;사랑이시다&amp;#39;는 말은 하나님에게는&amp;nbsp;무한한 요소들이 들어 있는데&amp;nbsp;그중에 하나가 바로 &amp;#39;사랑&amp;#39;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것을&amp;nbsp;거꾸로 역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amp;nbsp;&amp;#39;사랑은 하나님이시다&amp;#39;는 말은 진리가 아니라는&amp;nbsp;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속성에는 사랑만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금 있다가 살펴보겠지만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바 되셨던&amp;nbsp;예수님을&amp;nbsp;빼 놓고서&amp;nbsp;&amp;#39;사랑&amp;#39;을 운운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랑의 기원이 분명 하나님으로부터&amp;nbsp;나온 것은&amp;nbsp;분명하지만,&amp;nbsp;사랑이 거기에 있다고 해서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말은 틀릴 수&amp;nbsp;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예수님을 믿지 않는 공동체나 개인도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지 아니한가?&amp;nbsp;그들이 경험하고 있는&amp;nbsp;&amp;#39;필리아&amp;#39; 사랑이든지 혹은 &amp;#39;에로스&amp;#39; 사랑이든지 그들도 역시 사랑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랑을 두고서 하나님이 거기에 있다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랑만으로는 사람이&amp;nbsp;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도 없으며, 또한 구원도 받을 수&amp;nbsp;없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러므로 우리가&amp;nbsp;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려 할 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밖으로 표출되어 나타나게 되는지를 알아야 하며, 그렇게 해서 나타난 실체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이것을 모르면&amp;nbsp;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amp;nbsp;없을 뿐더러 그러한 사랑을&amp;nbsp;받을 수도&amp;nbsp;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밖으로 표출되었고 그것의 실체가 나타난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출현을 통해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분은 자신이 보낸&amp;nbsp;독생자를 통해서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이&amp;nbsp;세상 사람치고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요일4:12, 요1:18). 아니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때 하나님께서 밖으로 표출되어&amp;nbsp;나타나신&amp;nbsp;적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직접 밖으로 표현하신&amp;nbsp;것이다. 그것이 바로 &amp;#39;아들의 성육신&amp;#39;이다(요일4:9~10).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하신 아들을 이 세상에 화목 제물이자 그리고 구원자로 보내셨기 때문이다(요일4:10,14). 그러므로 예수님을 모르면 사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를 수밖에 없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자는&amp;nbsp;구원을 받을 수도&amp;nbsp;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성육신은&amp;nbsp;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amp;nbsp;사랑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왜 예수님을&amp;nbsp;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라고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람들 중에는&amp;nbsp;왜 서양 종교의 하나인 기독교를 믿어야 하느냐고 반문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좋은 종교가 많이 있다고 말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좋은 종교가&amp;nbsp;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을 죄와&amp;nbsp;사망과&amp;nbsp;마귀로부터 건져 주는 그러한 종교는 없다. 그건 우리나라에도 없고 외국에도 없다. 오직 기독교에만&amp;nbsp;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주 예수님을 붙들어야 한다. 왜 그런가? 그분에게는&amp;nbsp;인류가 가진 모든&amp;nbsp;문제를 해결해 주는 열쇠들이&amp;nbsp;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amp;nbsp;하나님의 사랑의 체현이기&amp;nbsp;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의 방편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하여&amp;nbsp;인류가 가진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amp;nbsp;십자가에서 죽으셨다(요3:16). 그러나 이러한 일은 성경의 기록을 읽어보면 다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어디 하루 아침에 되어진 일은&amp;nbsp;결코 아니다. 맨 처음 창조되었던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최초의 사람이었던 아담이&amp;nbsp;범죄함으로 인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죽음이 찾아온 것이다(롬5:12). 그리고 모든 인류는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창3:14). 그러므로 이러한 범죄에 예외는 없다.&amp;nbsp;모든 인류가 아담의 허리에 씨로 들어 있을 때에 같이 범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 가운데 이러한 문제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죄의 삯은 무엇인고 하면 사망이요(롬6:23), 죽은 다음에는 하나님으로부터&amp;nbsp;영원한&amp;nbsp;분리가 일어난다(계21:8). 그러므로&amp;nbsp;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죽기 전에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그것을&amp;nbsp;우리는 &amp;#39;하나님의 사랑&amp;#39;이라고 부른다. 그 일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인류의 죄값을 대신할&amp;nbsp;제물을 이 땅에 보낸&amp;nbsp;일이었는데, 그렇게 해서 오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시다. 그 일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amp;nbsp;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셨던 일로서, 예수께서 탄생하기&amp;nbsp;전&amp;nbsp;수천 년을 예언을 통해서 말씀하시다가 드디어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그 일이 성취가 되기에 이른다. 그 사건이 바로 아들의 성육신 사건이었다.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 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화해시켜 준&amp;nbsp;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예수님의 오심은 과연 있던 아들의 오심인가 하나님 자신의 오심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하신(유일하게 아버지로부터 태어난) 아들 곧 독생자를&amp;nbsp;이 세상에 보내셨다고 하니까, 하늘에 이미 있어서 활동하고 계시던&amp;nbsp;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라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것은 아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 곧&amp;nbsp;시간 밖에&amp;nbsp;영원히 계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는 분명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신 것은&amp;nbsp;맞는 일이다. 하지만 태어나기 전에 아들이&amp;nbsp;이미 하늘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리아의 태중에 성육신될&amp;nbsp;때에 그때에 그분은 비로소 하나님으로부터 그분이 나오셔서 성육신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하나님의 품 속에서부터 나와서 성육신하신 것이다(요1:18).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아들은 없었는가? 아니다. 구약시대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생각과 경륜 속에 이미 그분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분은 하나님의 품 속에 있었다. 그러므로 아들의 오심은 하나님 자신의 오심인 것이지 또 다른 아들의 오심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삼위삼체가 될 수도 있다. 아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원래 한 분이셨다. 그러다가 우리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아들로 오신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들로 오셨다고 하는 표현이 훨씬 더 성경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함께 모여서 회의를 했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구약시대에 한 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자신을 &amp;#39;여호와&amp;#39;라고 계시하신 것이고,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이 &amp;#39;아들&amp;#39;로 오셔서 활동하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분이므로, 아들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 하늘에서 계시는 그분은&amp;nbsp;아버지라 불리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아버지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예수께서 아들로 오심으로 하나님 아버지라는 명칭이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메카니즘으로 나에게까지 전달되고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지금도 모든 인류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아직 하나님께서 아들로 출현하기&amp;nbsp;전의 시대였던&amp;nbsp;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은 다만 약속의 말씀으로 전달되었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들은 그것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그리고 죽어서 낙원으로 갔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들의 눈에&amp;nbsp;볼 수 있게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므로&amp;nbsp;예수님의 12제자로 부름을 받았던 사도 요한도 역시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분을 직접 만져볼 수 있었고 그분과 대화할 수 있었고 그분과 식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대화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인류의 죄를 없애고 하나님의 생명을 전달하여 우리를 하나님의&amp;nbsp;나라로 데려가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amp;nbsp;그분이&amp;nbsp;약속한 바대로 구원자이심을 알려 주시고,&amp;nbsp;드디어 공개적으로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죄값을 대신하여&amp;nbsp;죽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원래부터 죄가 없는 분이시요, 하나님이 사람되신 분이시므로 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시어 하늘로 가셨다. 그리고 우리 모든 믿는 이들에게 보혜사 성령 곧 그분의 영이신 사람 속에 내주하시는 영을 보내 주셨다. 그러므로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분이 보내신 영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요일4:13~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자이며&amp;nbsp;그리스도로&amp;nbsp;믿고 시인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으로 함께 하신다. 이러한 자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약속으로 전달되거나 아들에게서 실현되었으며 지금은 보혜사 성령으로 내 안에 들어와서 그것을 효과있게 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하나님의 사랑의 체현인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는&amp;nbsp;자에게 주어지는 혜택 3가지는&amp;nbsp;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요한은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체현으로서 그분이&amp;nbsp;몸소 나타나셨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3가지 혜택이 주어진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진 자에게 베풀어지는 3가지 놀라운 혜택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의 &lt;strong&gt;첫째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안에&amp;nbsp;거하신다&lt;/strong&gt;는 것이다(요일4:16). 물론 그분이 보내주신 성령으로 그분이 그 사람 안에 거하시는 것이다(요일4:13, 3:24). 고로 이러한&amp;nbsp;성령이 죽을 때에도 떠나가지 않는 자가&amp;nbsp;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되는&amp;nbsp;것이다. &lt;strong&gt;둘째, 심판날에도 담대함을 가질 것&lt;/strong&gt;이라고 하였다(요일4:17). 오늘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은&amp;nbsp;자신에 대한 심판의 날이 될&amp;nbsp;것이다. 왜냐하면 아들로 인하여 이미 인류의 죄 문제가 해결되었고 회개를 통해서 그것을 유효하게 할 수 있었음에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체현인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분의 구속 사역과 우리의 회개를 통하여 그날 심판을 받지 아니할 것이다. &lt;strong&gt;셋째, 두려움이 사라진다&lt;/strong&gt;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자는 항상 어둠에 있는 자다. 그러므로 그들은 늘 불안하다. 어둡다. 걱정과 근심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죄와 저주로부터 벗어난&amp;nbsp;자는&amp;nbsp;더 이상 두려움에 매여 있지 않는다. 믿음과 회개로 두려움은 내보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직 받아본 일이 없거나 그 사랑을 체험해 보지 않은&amp;nbsp;사람인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8.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에게 나타나는 자연발로적인 증상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은 자연발로적으로 형제를 사랑하게 된다고 하였다(요일4:19).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자기&amp;nbsp;안에 모신 자들은 사랑을 할 수밖에 없다는&amp;nbsp;것이다. 또한 그분의 사랑은 마지 못해 베푸는 사랑이 아니라 먼저 다가오시는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요일4:19).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을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고 있는 자가 있다면 그가&amp;nbsp;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한&amp;nbsp;것은 거짓말이라고 했다(요일4:20). 왜냐하면 보는 바 자신의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는 응당 예수께서 말씀하신 새 계명을 지키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새 계명은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니다(요일5:2~3).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amp;nbsp;자신이 받은 사랑을 나누는 것은&amp;nbsp;사랑의 드러남이요 실천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9.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 때에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amp;nbsp;&amp;#39;사랑이 있는 곳에&amp;nbsp;하나님이 있다&amp;#39;는 말이다. 이것은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틀린 말에 해당한다. 왜냐하면&amp;nbsp;&amp;#39;하나님이 있는 곳에&amp;nbsp;사랑이 있다&amp;#39;라고 말했어야 정확히 맞추는&amp;nbsp;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제일 속성은 뭐니뭐니해도 아가페의&amp;nbsp;&amp;#39;사랑&amp;#39;이다. 그분 안에는&amp;nbsp;처음부터&amp;nbsp;사랑이 가득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성육신으로 나타나게 된다. 곧 예수님의 오심이 하나님의 사랑의 체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는 말을 잘못 이해하여, 하나님께서 이미 밖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들을 속죄 제물이자&amp;nbsp;화목 제물로서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 잘못된 생각이다. 그런데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시고 시간과 공간&amp;nbsp;밖에 계시는 하나님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이미 만세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우리에게 나타나게 된 것은 그분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할 때다. 그러므로 아들의 오심은 곧 하나님 자신의 오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을 통하여&amp;nbsp;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 그 아들이 십자가에서 이미 대속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신 후 당신을 대신하여 성령을 보내 주신&amp;nbsp;이상 그분이&amp;nbsp;우리를 계속해서&amp;nbsp;사랑하시는&amp;nbsp;것이다. 그러므로 B.C.8세기경&amp;nbsp;남유다에&amp;nbsp;살았던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다. &amp;quot;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amp;quot; 그렇다. 아기이자 아들로 오신 그분은 기묘자인 모사(보혜사)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아들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예수님을 모르는 자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자라고 할&amp;nbsp;수&amp;nbsp;있다. 그분을 모시고 그분과 함께 사는 자는&amp;nbsp;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수시로 그분의 이름을 불러서 그분의 기름부음을 내 안에 충만하게 채워야 한다. 그렇게 하고 싶을 때에는 이렇게 말하라. &amp;quot;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amp;quot; 이것이 너무 길다고 느껴지면, &amp;quot;주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amp;quot;라고 말하라.&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운로드하기]&lt;/p&gt; &lt;p&gt;&lt;a href=&quot;?module=file&amp;amp;act=procFileDownload&amp;amp;file_srl=92449&amp;amp;sid=7009e786474615998125bee59b570de7&amp;amp;module_srl=220&quot;&gt;2021-12-15 요한서신강해(06).pdf&lt;/a&gt;&lt;/p&gt; &lt;p&gt;&lt;a href=&quot;?module=file&amp;amp;act=procFileDownload&amp;amp;file_srl=92450&amp;amp;sid=4422ca33db93e1d5223a9f67bb15f6da&amp;amp;module_srl=220&quot;&gt;2021-12-15 요한서신강해(06).pptx&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1년 12월 15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92428/448/092/0b0548ad3d9c463476563a9a15e9a66d.jpg&quot; /&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요한서신강해(05) 형제 사랑 실천 및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하는 법(요일3:13~4:6)_2021-12-08(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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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1-12-08T18:07:20+09:00</published>
		<updated>2021-12-10T17:31:47+09:00</updated>
		<author>
			<name>동탄명성교회</name>
		</author>
		<summary type="text">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왜 형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는가? 그것은 우리 속에 무엇인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면 누구든지 그도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인가? 그러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럼 왜 그러한가?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영에 속한 사람인지 적그리스도의 영에 속한 사람인지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여기, 그 해답들이 나와 있다. 1. 들어가며 요한일...</summary>
	<content type="html">&lt;div&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dddddd;&quot;&gt;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왜 형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는가? 그것은 우리 속에 무엇인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면 누구든지 그도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인가? 그러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럼 왜 그러한가?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영에 속한 사람인지 적그리스도의 영에 속한 사람인지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여기, 그 해답들이 나와 있다.&lt;/span&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iframe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s_ahm0Ylu_c&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div&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요한일서는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자들에 대한&amp;nbsp;영적 성장을 다룬 책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amp;nbsp;영지주의와 같은 이단들의 미혹에 과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또한&amp;nbsp;그리스도인들이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 것인가를 알려 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초신자들을 위한 양육 지침서라고 정의할 수 있고 더불어 이단 세력으로부터 성도를 지켜 주는 예비 주사의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앞서 요한일서 1-2장의 내용이&amp;nbsp;하나님과의 교제(fellowship)의 관점에서 성도의 신앙과 생활을 다룬 것이라는 사실을&amp;nbsp;살펴보았고, 이어지는 3:1-4:6에서는&amp;nbsp;하나님의 자녀(children of God)로서의 성도의 신앙과 그것에 합당한 생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살펴볼 것이다. 이것들 중에서 오늘은 3:13~24까지의 말씀을 살펴볼 것인데,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삶의 적극적인 측면의&amp;nbsp;특징으로서 형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삶에 대해&amp;nbsp;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4:1~6의 말씀을 통하여서&amp;nbsp;우리는 적그리스도의 영에 대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경계를 권면하는 내용을 살펴볼&amp;nbsp;것이다. 그래서&amp;nbsp;형제 사랑의 의미는 대체&amp;nbsp;무엇이며,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지를 확실히 정리하고자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그리스도인은 왜 형제 사랑을&amp;nbsp;실천해야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우리는 이제&amp;nbsp;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왜 형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사도 요한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형제 사랑을&amp;nbsp;실천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말했는데&amp;nbsp;&lt;strong&gt;첫째 이유는, 믿는 이들은 형제&amp;nbsp;사랑에 대한 실천을&amp;nbsp;통하여 과연 자신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lt;/strong&gt;이라고 하였다(요일3:13~14). 그러므로&amp;nbsp;만일&amp;nbsp;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있고 또한&amp;nbsp;형제를 미워하고 있는 자가 있다면 그는&amp;nbsp;여전히 사망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내 안에 과연 하나님의 생명이 존재하는지를 우리는 과연&amp;nbsp;무엇으로 확인할&amp;nbsp;수&amp;nbsp;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형제 사랑의 실천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는 반드시 형제를 사랑하게 되어 있다는&amp;nbsp;것이다. 그런데 만약 자기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는&amp;nbsp;형제 사랑을 결국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자는 형제를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amp;nbsp;대표적인&amp;nbsp;사례가&amp;nbsp;바로 가인이 자신의 형제&amp;nbsp;아벨을 미워한 것이다. 결국 그의 미움은 살인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렇다. 가인 자신은&amp;nbsp;형제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그의 마음을 악한 자가 치러&amp;nbsp;들어왔다. 그러자 그는 자기의 아우를 돌로&amp;nbsp;쳐죽이고 만다. 가인 안에는 자기&amp;nbsp;하나님의 생명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누구든지 과연 자기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는 형제를 사랑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는 아니다. 다시 말해, 혹 누가 형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 안에 꼭 영생이&amp;nbsp;들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에, 그냥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요일3:23). 그렇다. 자기 안에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는 응당 형제 사랑을 실천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로 그리스도인들이 형제 사랑을 실천해야 할&amp;nbsp;두 번째 이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형제 사랑이 무엇인지를 직접 보여 주셨기 때문&lt;/strong&gt;이라고 하였다(요일3:16).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amp;nbsp;사랑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삶을 살 수&amp;nbsp;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제가 되어 주시기 위해 먼저는 사람으로 오셨고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인류의 대속물로 내어 주신 것이다. 그분이 누구인가? 그분은 바로 성령으로 우리 믿는 이들 속에 들어와 계신&amp;nbsp;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자신의&amp;nbsp;동생으로 삼으려고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amp;nbsp;자신을 낮추시고 또 낮추시어 피조물의 몸을 입으신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목숨을 죽기까지 내어 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그분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다른 형제를 그렇게 사랑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그리스도인들이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제 삶으로 형제를 도와 주는 것이라고 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재물(재화)을 가지고 있으면서도&amp;nbsp;형제가 궁핍에 처해 있는 것을 보고도 본체만체 한다면 그 사람 안에는&amp;nbsp;하나님의 사랑이 들어 있지 않다고 했다(요일3:17).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말이나 혀로서만 형제를 사랑한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으로 형제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직접 행동과&amp;nbsp;진실함 안에서 형제를 사랑할&amp;nbsp;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누군가 자기의 형제가 궁핍에 처하여 있는 것을 보고도 그를 도와줄 마음을 닫아 버린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어떤 그리스도인이&amp;nbsp;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단계에까지 도달한다면, 그에게는 어떤 유익이 나타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이어서 사도 요한은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단계에 도달하는 자가 갖는 상태를 말해 주었는데, 그것은 자기의 마음이 자기를 책망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 이 수준에 도달하는 자에게 주께서&amp;nbsp;베푸시는 은혜가 있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amp;nbsp;그것을 3가지로 언급했다.&amp;nbsp;&lt;strong&gt;첫째는 하나님 앞에서 담대한 믿음을 갖게 된다&lt;/strong&gt;고 했다(요일3:21). 이는 성도가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amp;nbsp;그런 자에게 담대한 믿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믿음에 담대함이 없는 자는 악한 영들 앞에서 주눅이 들어 버리거나&amp;nbsp;겁먹어서&amp;nbsp;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amp;nbsp;왜 그리스도인들이 악한 영들 앞에서 주눅이 들거나&amp;nbsp;겁먹는지 아는가?&amp;nbsp;그것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그가 책망을 들을 만한 죄악들이 자기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개하고 또한 생명의 교통을 나누고 있으며 또한&amp;nbsp;형제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면 그는 자기 안에 어떤&amp;nbsp;거리낌도 갖지 않게 된다. 그러면 그러한 자는 악한 영들 앞에 선다고 할지라도&amp;nbsp;담대해지는 것이다. 아니 당당히 맞서게 되는 것이다.&amp;nbsp;&lt;strong&gt;둘째는 우리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amp;nbsp;구한 것을 다 받을 수가 있다&lt;/strong&gt;고 했다(요일3:22). 왜나하면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그가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요, 그가&amp;nbsp;하나님이 기뻐하는 일들을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자가 되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러한 자는 기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기도 응답을 풍성하게 받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회개하고 생명을&amp;nbsp;성장시켜&amp;nbsp;형제 사랑을 실천하라. 그러면 그것으로 인하여 형제를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의 분량을 맞춰 주실 것이다.&amp;nbsp;&lt;strong&gt;셋째는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가 그분에 거하는 상호 교통과 상호 내주가 가능하다&lt;/strong&gt;고 했다(요일3:24). 그렇다. 주님과의 친밀도라는 것은 하루 아침에&amp;nbsp;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주님과의 친밀도는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고 그분의 말씀이 또한 우리 안에 거할&amp;nbsp;때에&amp;nbsp;생기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할 수&amp;nbsp;있으며, 그렇게 구한 것들은 또한&amp;nbsp;즉시 응답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요15:7).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물러 있지 못한다면&amp;nbsp;&amp;nbsp;우리는 어떠한&amp;nbsp;선한 열매도 맺을 수 없으며, 또한 마지막에 가서는 가지처럼 잘려 나가 밖에 버려져 불에 던져져 살라지고 말 것이다(요15:6).&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영들이 하나님께 속한 영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초신자들은 사실 사람의 말만 듣는 것으로서&amp;nbsp;그 속에 역사하고 있는 영을 분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영들을 무조건 다 믿지 말라고&amp;nbsp;권고한다. 오히려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를 분별해 보라고 권고한다(요일4:1). 왜냐하면 당시에도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이미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영이 하나님께 속한 영인지 아니면 적그리스도에게 속한 영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amp;nbsp;있는가? 그것에 대해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즉&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느냐 시인하지 않느냐로&amp;nbsp;구분하라&lt;/strong&gt;는 것이다(요일4:2~3). 만약&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amp;nbsp;영이 적그리스도의 영&lt;/strong&gt;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적그리스도의 영은 이미&amp;nbsp;와 있다고 했다(요일4:3). 한편&amp;nbsp;사도 요한은 2장에서도 역시&amp;nbsp;적그리스도가 누군지를 경고하였다. 적그리스도는&amp;nbsp;&lt;strong&gt;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lt;/strong&gt;라고 하였다(요일2:22). 그리고&amp;nbsp;&lt;strong&gt;아버지와 아들의 존재를 부인하는 그가 바로&amp;nbsp;적그리스도&lt;/strong&gt;라고&amp;nbsp;했다(요일2:22). 이는&amp;nbsp;당시 초기 기독교 이단 세력인 영지주의자들을 지칭하는&amp;nbsp;말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이신 아들은 하나님으로 인정했지만 여호와는 하나님으로&amp;nbsp;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호와께서는 물질을 창조했기 때문에 저급한 신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여호와와 예수님은 같은 하나님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amp;nbsp;그리고 아들을 위하여 모든 창조물들 창조했다고 말이다. 그러므로&amp;nbsp;&lt;strong&gt;아버지와 아들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적그리스도&lt;/strong&gt;인 것이다. 특별히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 곧 예수께서&amp;nbsp;물과 피로 오신 것을 믿지 않는 자는 적그리스도인 것이다(요일5:6).&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성도들이 적그리스도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요한이 말한 바, 적그리스도란&amp;nbsp;악한 자인 사탄의 지배를 받는 사람을&amp;nbsp;가리킨다. 그런데 악한 자인 사탄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는 이 세상의 임금(왕)으로 활동하고 있는 타락한 천사들의 우두머리다(요12:31, 14:30, 16:11). 예수께서는 그를 이 세상의 통치자라고 하셨다. 사실 영적인 권세로 서열을 매기자면 그는 하나님 다음으로&amp;nbsp;지혜와 능력을 소유한 자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그를 어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 임금의 통치를 받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이 세상에서 살 수가 있는가? 그런데도 사도 요한은 우리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악한 자인 사탄&amp;nbsp;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우리 믿는 이들 속에 들어가서 내주하고 있는 분이&amp;nbsp;이 세상에 있는 악한 자 곧 사탄 마귀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다(요일4:4). 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사탄 마귀가 아무리 위대한&amp;nbsp;지혜와 강한 능력을 갖고 있다&amp;nbsp;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amp;nbsp;모시고 있는 자를&amp;nbsp;결코 손댈 수가 없는 것이다(요일5:18).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들이 비록&amp;nbsp;사탄 마귀보다 약한 존재일지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그를 대적할 수 있는 것이다. 사탄 마귀는 우리가 가진 권세와 능력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기는 것이다. 사탄이 아무리 강한 능력과 권세와 지혜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amp;nbsp;우리 속에 내주하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보다는 훨씬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사람은 이와는 달리 오히려 이 세상 임금인 사탄 마귀의 말에&amp;nbsp;순종할 것이라고 했다(요일4:5). 이는 그들이 세상 마귀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amp;nbsp;성령으로&amp;nbsp;거듭나서 하나님께 속해 있는 자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이라고 했다(요일5:6).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결코 세상 임금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서 성도들은 누가 진리의 영을 소유한 자인지 반대로 누가 미혹의 영을 소유한 자인지를 구분할 수가 있는 것이다(요일4:6).&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요한일서는 구조가 참으로 특이하다. 점진적인 것도 아니며 또한 수미쌍관형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amp;nbsp;요한일서가&amp;nbsp;순환론적인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것을 달리&amp;nbsp;표현하면&amp;nbsp;동일한 내용을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오늘&amp;nbsp;우리는 요한일서의 말씀을 통하여 &amp;#39;형제 사랑&amp;#39;에 대한 권면과 &amp;#39;적그리스도&amp;#39;에 대한 분별력을 갖추도록 2장에 이어&amp;nbsp;또다시 그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 말씀을 들었다. 그래서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요한일서는 반복해서 말씀을 가르침으로 초신자들을 깨우치고 양육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amp;nbsp;또한 이 책의 기술 목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요한복음의&amp;nbsp;저술 목적은 간단하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요20:31). 그러나&amp;nbsp;요한일서의 기록 목적은 하나가 아니다. 사실 4가지로 나온다.&amp;nbsp;&lt;strong&gt;첫째는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자들의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려 주기 위해&lt;/strong&gt;&amp;nbsp;쓴 것이기 때문이다(요일1:4). 그리고&amp;nbsp;&lt;strong&gt;둘째는 하나님과의 교통을 방해하고 마귀에게 속하게&amp;nbsp;만들어 버리는 죄를&amp;nbsp;더 이상 짓지 않게 하려고&lt;/strong&gt;&amp;nbsp;썼다고 했다(요일2;1). 고로 성도들의 일상생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죄를 범하지 않는 단계에 도달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amp;nbsp;&lt;strong&gt;셋째는 성도들이 미혹하는 자들에게&amp;nbsp;속아 넘어가지 않고 그들을 분별하여 그들에게 속하지 않기 위해서&lt;/strong&gt;라고도 말했다(요일2:26). 그리고 마지막으로&amp;nbsp;&lt;strong&gt;넷째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이&amp;nbsp;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lt;/strong&gt;고 했다(요일5:13). 그렇다. 요한일서는 이처럼 영생에 관한&amp;nbsp;서신이요, 이단에 대한 예방 주사를 맞히기 위한&amp;nbsp;책이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는 이 책을 통하여 자기 안에 들어 있는 생명을 더 성장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죄를 짓지 않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이러한 생명의 능력들이 형제 사랑으로 이어지기를&amp;nbsp;바란다. 그리고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오고 있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을&amp;nbsp;잘 분별하여 시간을 허송세월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영적 싸움에서도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1년 12월 08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92428/452/092/d6a870861090370e9055c2828f27ddc8.jpg&quot; /&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요한서신강해(04) 적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요일2:18~3:12)_2021-12-01(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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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1-12-01T19:24:37+09:00</published>
		<updated>2021-12-02T21:20:24+09:00</updated>
		<author>
			<name>동탄명성교회</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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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1. 들어가며 요한일서는 어떤 책인가? 이 책을 보는 신학자에 따라 정의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확실히 이 책은 초신자를 위한 양육서라고 할 수 있고 동시에 이단의 세력을 대항하게 해주는 예방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생명의 성장을 다루고 있는 책이며, 당시 이단세력인 영지주의를 대항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한일서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영혼이 어떻...</summary>
	<content type="html">&lt;div&gt; &lt;p&gt;&lt;iframe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_m4E7q1esmc&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요한일서는 어떤 책인가? 이 책을 보는 신학자에 따라 정의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확실히 이 책은 초신자를 위한 양육서라고 할 수 있고 동시에 이단의 세력을 대항하게 해주는 예방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생명의 성장을 다루고 있는 책이며, 당시 이단세력인 영지주의를 대항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한일서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영혼이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관하여 관심이 요청되며, 당시 기독교에 침투하여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는 초기 영지주의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그중에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영지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적그리스도는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며, 이에 맞서는 하나님의 자녀는 대체 어떤 존재인지에 관하여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요한일서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요한일서는 구조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요한일서는 교차대구법이 쓰인 것도 아니며, 직선론적인 논리전개방법도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요한일서는 어쩌면 순환론적인 논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요한일서는 하나의 바퀴가 굴러가고 있는데 또 하나의 다른 바퀴가 같이 굴러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므로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반복적으로 나오는 주요 소제들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요한일서 1장에 보면 &#039;빛&#039;과 &#039;어둠&#039;과 &#039;진리&#039;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런데 요한일서 2장에서도 역시 &#039;빛&#039;과 &#039;어둠&#039;과 &#039;진리&#039;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일서를 큰 주제별로 구분한다면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의 주제는 &#039;교제&#039;(코이노니아)로서 성도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더불어 사귀는 교제가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요한일서 1~2장의 말씀이다. 그리고 두번째의 주제는 &#039;하나님의 자녀&#039;라는 주제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존재이며 그리고 무엇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인지를 요한일서 3~4장에서 증거한다. 그리고 세번째 마지막 주제는 요한일서 5장에 나오는데, 그것은 &#039;승리&#039;라는 주제다. 세상과 마귀를 이기는 승리의 비결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당시에 이미 교회에 침투해 들어왔었으나 떨어져나간 바 있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대체 누구를 지칭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사도 요한은 성도들간의 교제에 있어서 이제는 요한일서의 수신자들이라고 불리우는 성도들에게 들어온 이단적 세력에 주의할 것을 권고하기 시작한다. 사도 요한은 그들을 &#039;적그리스도들&#039;이라고 하였고(요일2:18,22,4:3, 요이1:7), &#039;미혹하는 자들&#039;이라고 불렀다(요일2:26, 요이1:7). 그렇다면 대체 이들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바로 교회에 침투해 들어온 초기 영지주의자들이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의 말씀을 통하여 적그리스도 혹은 미혹하는 자가 영지주의자라는 사실을 계속 언급한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은 이러한 거짓 교사들이었던 영지주의자들을 분별하는 방법으로서 어떤 것을 제시하였는가? 사도 요한은 요일2:18~29의 말씀에서, 영지주의 이단세력을 구분하는 방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3가지를 제시하였다. &lt;/p&gt; &lt;p&gt; &lt;strong&gt;첫째, 이단세력은 정통교회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을 수 없다&lt;/strong&gt;는 것이다(요일2:19). 즉 한 때는 영지주의자들도 정통 교회 안으로 들어왔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더이상 참 빛이 아니라 어둠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또한 자기들이 참 진리가 아니라 거짓이라고 알게 되어 교회를 떠나고 없었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로부터 떨어져나간 세력이 있다면 그들이 이단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진리는 진리와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함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진리를 외치는 교회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이다. 만약 참지 못한 채 참된 교회를 뛰쳐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적그리스도의 세력인 것이다. &lt;strong&gt;둘째,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하여 그리고 아버지와 그리고 아들이 누군지에 대하여 부인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이단세력이라는 것&lt;/strong&gt;이다(요일2:22~23). 즉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있다거나,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셨다는 것을 부인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이단세력이요 적그리스도의 세력인 것이다. &lt;strong&gt;셋째, 이들은 계속해서 성도들을 미혹함으로서 자신이 가짜라는 것을 드러낸다는 것&lt;/strong&gt;이다(요일2:26). 누군가 말씀을 가르치는데, 그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점점 더 자신을 헤매게 만드는 자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단세력인 것이다. 왜냐하면 참 진리의 말씀은 그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진정 예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믿는 자들에게 보내주시기 때문이다(행2:33). 이때 성령께서는 진리의 영으로서 진리의 말씀을 증언하시기 때문이다.&lt;br /&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초기 영지주의가 당시 &#039;이단세력&#039;이자 &#039;적그리스도&#039;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사도 요한은 당시 교회에 미혹하는 자들이 있었다고 말하였다(요일2:26). 여기서 교회에 이미 들어와 미혹하고 있던 자들은 바로 다름 아닌 &#039;초기 영지주의자들&#039;이었다. 왜냐하면 첫째,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고 있었기 때문이요(요일4:2~3), 둘째,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요일2:22a). 그리고 셋째,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동시에 하나님으로 시인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요일3:22b). 넷째,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요일3:3). 그렇다면 이들의 고백이 이단이 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 &lt;/p&gt; &lt;p&gt; &lt;strong&gt;첫째,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셨다는 것을 부인하고 있었다&lt;/strong&gt;(요일4:2~3). 왜냐하면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영은 선하고 육(물질)은 악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결단코 육체를 가지신 예수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기간동안에 나사렛 예수에게 들어갔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를 탈출했다고 말했다. &lt;/p&gt; &lt;p&gt; &lt;strong&gt;둘째, 그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부인하고 있었다&lt;/strong&gt;(요일2:22). 이들은 자기들의 교리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더러운 육신을 입을 수 없다고 믿고 있었기에, 당시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들 중에 어떤 이는 그날 십자가에서 죽은 자는 다름이 아니라 그날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구레네 사람 &#039;시몬&#039;이라고까지 말했다. 왜냐하면 &#039;영&#039;은 결단코 죽을 수가 없는 존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lt;/p&gt; &lt;p&gt; &lt;strong&gt;셋째, 그들은 역시 아버지와 아들 중에 한 분을 부인하고 있었다&lt;/strong&gt;. 요한복음이나 요한일서에서 하나님을 말할 때에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이 땅에 보내어진 아들이라고 말하고, 예수님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신앙고백이 아버지도 믿어야 하고 아들도 믿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두 분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가보면 하나의 하나님의 보좌에 다름 아닌 예수께서 앉아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루 우리 주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여호와를 무시하였다. 왜냐하면 여호와가 물질세계를 만들었다고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말한다. 둘 다를 한 분 하나님이라고 시인하지 않는 자는 적그리스도라고 말이다. 그러나 두 분은 아울러 동시에 존재가 가능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때에 우리는 구별된 두 분을 또한 다르다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두 분의 개별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상호침투 내지는 상호내주하시는 한 분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그렇지만 당시 유대교나 오늘날의 여호와증인은 하나님은 믿으나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니 이들이 바로 이단세력인 것이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요한 사도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왜 성령의 기름부음이라고 표현하였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그리스도 곧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오셨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어떤 사람이 기름부음을 받으면 그는 왕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으로 쓰임을 받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장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구주로 보내시는 분은 기름부음을 받게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을 &#039;기름부음을 받은 자(=그리스도)&#039;라고 고백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은 이미 구약성경 이사야서에서 증언하는 것으로서(사61:1~3), &quot;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61:1-3)&quot;라고 하였다. 더욱이 말세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실 주실 때에는 남녀 구분 없이 모든 자에게 보내주실 뿐만 아니라(욜2:28~29), 사람 속에 내주하실 것이라는 말씀도 그는 잘 알고 있었다(겔36:26~27, 렘31:33). 그러므로 마가다락방에서 예수께서 들려주신 보혜사 성령과 성령의 내주에 관하여 그는 요한복음에 그것을 기록할 수가 있었다(요14:16).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교회의 성도들은 영지주의자의 교사들이 가르치는 말씀을 배울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요일2:20). 그리하여 이상한 사람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말라고 했다(요일2:27). 오로지 믿는 이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분은 믿는 이들 속에 내주하시어 예수께서 누구시며, 또한 그분이 하신 말씀을 깨닫게 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요14;26). 그러므로 영지주의의 미혹에 속아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039;하나님의 자녀&#039;와 &#039;마귀의 자녀&#039;는 대체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1~2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그리고 아들이신 예수님과 교통(코이노니아)를 해야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아울러 이러한 교통을 방해하는 이단세력이 있으니 그 세력을 잘 분별해내야 할 뿐만 아니라 성령의 가르침을 잘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후에,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는 대체 어떤 존재를 가리키며, 또한 현재는 어떤 사람을 가리켜 &#039;하나님의 자녀&#039;라고 할 수 있는지를 언급하였다. 이것이 바로 요한일서 3장 1~12절까지의 말씀의 핵심이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난다고 했다(요일3:10). 여기서 &#039;하나님의 자녀들&#039;이란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을 가리키며, 마귀의 자녀들은 미혹의 영으로부터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라고 하였다(요일4:6).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039;하나님의 자녀들&#039;이란 대체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인가?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은 3가지 면이 갖춰진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039;하나님의 자녀&#039;라고 말했다.&lt;/p&gt; &lt;p&gt; 그것은 &lt;strong&gt;첫째로,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분과 같이 되기 위해서 지금 그분이 깨끗한 것처럼 우리도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있는 자라&lt;/strong&gt;고 말했다(요일3:3).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영은 선한 것이고 거룩하며, 육은 악한 것이고 더럽다고 판단했기에, 자기의 육체를 성결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은 자신의 육체로 죄를 짓는 것에 대해 별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어차피 육은 영에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깨끗하심과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않고 있는 자는 장차 주님의 재림의 날에 하나님의 자녀로 발견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둘째,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께서 의롭게 있는 것처럼 자신도 의를 행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요일3:7). 자신의 의로운 행위가 뒷받침되지도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장차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의로움이 비록 발견되지 않고 있어도, 그리스도의 재림시가 되면 응당 자기도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039;미혹&#039;이라는 것이다(요일3:7).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 할지라도 지금도 여전히 죄를 짓고 있다면 그는 마귀에 속한 자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 자는 결코 하나님에게 속한 자가 아닌 것이다(요일3:8). 셋째, 하나님의 자녀는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자라는 것이다(요일3:11~12).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자야말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자라고 하였다. 그리고 만일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있는 자는 사망 안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는 자라고 하였다(요일3:14). 만약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실은 여전히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악한 자에게 속하여 있는 자이다(요일3:12). 그러한 자는 마귀에게 속했기에 결국 최초의 형제 살인자였던 가인처럼 자기의 형제를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고 행할 수 있는 것이다(요일3:12).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사도 요한은 죄를 짓지 아니하고 의로움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자녀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quot;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들을 멸하기 위함이다&quot;. 여기서 &#039;멸한다&#039;는 표현은 그것을 무효화시킨다는 뜻이며 동시에 그것을 폐하여버린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마귀가 아무리 사람들을 미혹하여 죄를 짓게 한다고 해도 쓸모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미 오셔서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다 담당해 놓으셨기에, 믿고 회개하는 자는 지금도 그분의 피로 인하여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믿는 이들 속에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도와주신다. 그러므로 마귀가 어떤 일들을 해도 그 일은 무효화되어버릴 것이며, 폐지될 것이다.&lt;/p&gt; &lt;p&gt; 또한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믿는 이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실 때에 사람 속에 &#039;하나님의 씨&#039;도 주셨다고 말했다(요일3:9). 여기서 말하고 있는 &#039;하나님의 씨&#039;라는 것은 &#039;하나님의 말씀&#039;일 수도 있고 &#039;성령&#039;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요한일서에서 말하고 있는 &#039;하나님의 씨&#039;는 하나님의 &#039;생명&#039;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씨는 그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일정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을 믿은 후 거듭날 때에 사람 속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온다. 그러면 그때의 생명은 우리 안에서 싹이 트게 되고, 말씀과 성령의 도움을 받아 자라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범죄하지 않으려면 최소 자기 안에 하나님의 씨 곧 하나님의 생명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8.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가인은 당시에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노아훙수 이전까지 하나님의 영이 사람과 함께 하고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가인은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잃고 만다. 그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따라가지 않고 악한 자 곧 마귀의 인도를 따라갔기 때문이다(요일3:12). 결국 회개하지 않은 가인은 영원한 멸망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다시 말해 자기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결국 누구의 음성을 따라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다시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의 음성을 따라가지 않고 성령의 음성을 따라가도록 하기 위해 사도 요한은 미혹하는 자 곧 적그리스도에 속한 자들의 특징에 대해 3가지를 말하였다. 그리고 성령의 음성을 따라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징들에 관하여 3가지를 언급하였다. 요한이 자꾸 이것을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미혹하는 영에게 속지 말고 성령의 음성을 따라가서 꼭 영생을 얻으라는 권면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신천지나 하나니의 교회와 같은 이단이 횡횡하고 있다.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까지 미혹하여 끌어가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당시 이단을 분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지금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었으니,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아 이단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서 마지막 날에 꼭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lt;/p&gt; &lt;p&gt; &lt;/p&gt; &lt;p&gt;2021년 12월 01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92428/454/092/43d635c2b0a622e48717b924c7d82fc0.jpg&quot; /&gt;&lt;/p&gt; &lt;/div&gt;</content>			</entry><entry>
		<title>요한서신강해(03) 형제 사랑 준수와 세상 사랑에 대한 경계(요일2:3~17)_2021-11-24(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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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1-11-24T17:06:04+09:00</published>
		<updated>2021-11-29T18:37:14+09:00</updated>
		<author>
			<name>동탄명성교회</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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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자신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기에 혹시 잘못해서 죄를 범해도 그 죄가 자신의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믿는 것은 잘 믿는 것일까? 누가 오늘날에도 역시 빛 가운데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며, 누가 지금 어두운 가운데 걸어가고 있는 자인가? 이 놀라운 물음들에 대한 해답이 바로 여기에 들어 있다. 1. 들어가며 요한일서는...</summary>
	<content type="html">&lt;div&gt; &lt;p&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dddddd;&quot;&gt;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자신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기에 혹시 잘못해서 죄를 범해도 그 죄가 자신의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믿는 것은 잘 믿는 것일까? 누가 오늘날에도 역시 빛 가운데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며, 누가 지금 어두운 가운데 걸어가고 있는 자인가? 이 놀라운 물음들에 대한 해답이 바로 여기에 들어 있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lt;iframe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k_egdl9DRrA&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gt;&lt;/iframe&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br /&gt; 요한일서는 어떤 책인가?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의 특징을 딱 2가지로 요약하여 말하라고 한다면, 이 책은 예방 접종책이자 초신자용 훈련 교재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일서는 사도 요한이 자신이 없는 여러 교회들을 비집고 들어 온 영지주의라는 이단에 맞설 수 있도록 신앙의 가장 초보적인 교리들을 써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처음으로 교회에 나오는 자에게 이 책은 매우 중요한 책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지난 두 번의 시간을 통하여, 이 책의 서론 부분과 아울러, 성도의 교제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았다. 오늘은 이제 하나님과 교제하는 성도의 표징으로서 형제 사랑 계명 준수와 세상에 대한 사랑 경계 부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이번 시간을 통하여, 영지주의의 미혹을 보다 더 정확히 분별해낼 수 있고 그것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육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유혹을 이길 수 있는지도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사도 요한은 영지주의자들과 성도들을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가? &lt;/strong&gt;&lt;/span&gt;&lt;br /&gt;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3~11의 말씀에서,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것과 참된 성도들이 갖고 있는 신앙의 차이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사실 오늘 본문 말씀은 당시 영지주의자들의 미혹에 직면하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매우 피부에 와 닿는 말씀일 것이다. 하지만 달라진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썩 다가오지 않는 말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본문 말씀은 영지주의의 실체를 알아보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lt;br /&gt; 그렇다면,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무엇을 주장했을까? 이 책은 사실 이단의 세력에 대한 예방 접종을 위한 책이다. 그러므로 이단의 예방을 위해서 우리는 이 책을 보다 더 면밀히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이단들 역시 성경을 이용하여 사람을 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이단들의 특성과 그들의 접근 방법을 잘 알아 놓는다면 그들을 쉽게 분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어떻게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었는가? 그것은 크게 3가지였다. 첫째로, &quot;나는 그분 곧 하나님(혹은 그리스도)을 안다&quot;고 말했다는 것이다(요일2:4). 그들은 하나님이 누군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진정 하나님을 아는 자라면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있었을 텐데, 그들은 지금 계명을 준수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들은 &quot;나는 그분 안에 살고 있다(머무르고 있다)&quot;라고 말했다는 것이다(요일2:6). 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말한다. 만약 그들이 정말로 그분 안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들은 그분이 행하셨던 바대로 형제를 사랑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그렇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아무리 자기들이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다고 주장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대로 행하고 있지 않고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셋째로, 그들은 이미 빛 가운데서 걸어가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요일2:9). 그러나 그들이 빛 가운데 걸어가고 있다고 말은 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형제를 미워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직 어둠에 있었던 것이다. 고로 우리는 영지주의자들이 말로서는 자신들이 어떠어떠한 상태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들은 그들의 말에 합당한 행동을 하지 않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영지주의의 구원관은 어떤 것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 요한서신 강해 첫 시간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영지주의 이단은 2세기 말경부터 3세기에 맹위를 떨친 가장 위험한 기독교 이단이었다. 얼핏 보기에 그들은 기독교와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빛과 어둠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말하며 진리를 찾으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039;빛&#039;과 &#039;어둠&#039; 그리고 &#039;진리&#039;를 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주장과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바는 차이가 있었다. 그중에서 오늘은 그들의 구원관과 사도 요한이 말하는 구원관에 있어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lt;br /&gt; 영지주의의 구원관은 대체 어떤 것인가? 영지주의자들은 영지를 깨닫는 것을 곧 &#039;구원&#039;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속죄양 같은 것은 필요 없다. 그들에게 죄나 사탄 마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럼, 그들이 말하는 &#039;영지(영적인 지식)&#039;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자신이 누군지를 깨닫는 것이다. 결국 이들이 주장하는 &#039;구원&#039;은 인간은 원래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와서 멀리 있다 보니 어둠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가 누군지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어느 날 예수라는 청년의 육체 속에 잠깐 영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30세 때에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에 하나님의 영이 예수님 속에 들어왔고,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깨우쳐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 준 다음, 십자가에서 예수가 죽기 전에 그를 떠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예수님의 성육신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도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들은 오직 자신이 누군지를 깨달으면 그것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에 그분이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면 적그리스도요 미혹하는 자요 이단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처음으로 아들로 오셨다는 것을 믿고 그분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적그리스도라고 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믿고 회개할 때에 주어지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왜 사도 요한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는가?&lt;/strong&gt;&lt;/span&gt;&lt;br /&gt; 사도 요한은 영지주의자들과 참된 성도들의 차이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는가? 그것은 그분의 계명을 준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자신이 누군지를 깨달았으면 그것으로 구원은 이미 끝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선한 행실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영지주의 중에 어떤 분파는 육체라는 것은 영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사람이 어떤 죄를 저지른다 할지라도 자신의 영혼에는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을 가리켜 &#039;에피큐로스(쾌락주의) 학파&#039;라고 부른다다. 그런데 당시 교회에 침투해 있는 영지주의자들의 생각도 그랬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도덕률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형제 사랑을 성도가 실천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새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다. 곧 주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했던 것처럼 그들이 &quot;서로 사랑하라&quot;고 말씀하셨다(요13:34~35). 이는 형제가 서로 사랑할 때에 그가 어둠에서 빛의 세계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며, 그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왔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lt;br /&gt; 그러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언급하신 계명(도덕적인 계율)은 이전에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미 구약시대 때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웃을 자기의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레19:18).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자기가 주님으로부터 직접 들었던 새 계명을 말할 때, 그것은 옛 계명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라고 말했다(요일2:7). 그렇지만 예수께서 말씀하신 새 계명은 구약 계명에 비하면 질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의 계명은 원수는 미워하고 이웃은 사랑하라는 명령이었다면, 신약의 예수께서는 이제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까지도 위해 기도할 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이다(마5:43~44). 이처럼 새 계명은 사랑해야 할 대상의 범위가 훨씬 더 넓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구약시대에 여호와께서는 이방신을 섬기는 자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들을 죽이라고 하신 것일까? 정말 영지주의자들의 말처럼 여호와가 저급한 신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명령하신 것은 아닌가? 그러나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무엇이 죄인지를 가르쳐 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그리하여 죄를 짓게 되면 어떤 심판과 어떤 결과를 맛보게 되는 것임을 알려 주어야 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래야, &quot;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할꼬?&quot;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고, 비로서 그때에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예수께서는 죄를 지어 죽어가는 자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피 흘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그분이 대신 담당하시고 그분은 죽을 우리 인간을 살리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원수라고 할지라도 그를 죽여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그도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형제를 미워했고 심지어 살인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오직 깨달은 영지를 가지고 있으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왜 그러한 어리석은 생각을 갖게 된 것인가? 그것은 그들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을 통하여 그들의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성도들은 영적으로 어떤 단계를 거쳐 성장하는가?&lt;/strong&gt;&lt;/span&gt;&lt;br /&gt; 사도 요한은 이제 영적으로 거듭나서 예수님을 자기 안에 모신 자들을 성도라고 하면서, 이제 갓 태어난 모든 성도들은 성장해 가야 한다고 하였다. 즉 어린 아이로 태어난 성도가 양육을 받아 점점 자라서 청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비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성도라도 지금 자신이 어떤 영적 성장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영적인 나이에 따른 권면의 말씀을 전한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보았을 때에 &#039;아이들&#039;이란 대체 누구를 가리키며, &#039;청년들&#039;과 &#039;아비들&#039;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lt;br /&gt; 사도 요한은&lt;strong&gt; 첫째, &#039;자녀들&#039; 혹은 &#039;아이들&#039;을 두 종류의 단어로 표현했다&lt;/strong&gt;. 하나는 &#039;자녀들(테크니아)&#039;이라고 말했다(요일2:12). 이것은 아버지가 자녀를 양육할 때에 쓰는 단어이다. 그런데 또 하나는 &#039;아이들(어린이들)(파이디아)&#039;이라는 용어도 있다(요일2:14). 이 단어는 스승이 자기의 제자를 양육하고 훈련해야 할 때에 쓰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이런 자들은 어떤 영적 상태의 성도를 가리키는 것인가? 사도 요한은 말한다. 그것은 영적으로 초신자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자기가 어린 자녀라 할지라도 두 가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첫째로, 어떤 죄든지 지은 죄들은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받는다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했다(요일2:12). 그리고 자신은 영적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하나님을 부를 때에 &#039;아버지&#039;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요일2:14). &lt;br /&gt; 그리고 사도 요한은 &lt;strong&gt;둘째, &#039;청년들&#039;이란 영적으로 성장하여서 이미 강해진 자들을 가리킨다고 했다&lt;/strong&gt;. 그래서 이들은 악한 자인 사탄 마귀와 싸워서 이미 이긴 싸움을 싸워 이기고 있는 자들이라고 했다(요일2:13,14). 그렇다면 청년들은 대체 어떤 무기로 악한 자와 싸워서 이길 수가 있는 것인가? 그것은 &#039;하나님의 말씀&#039;이다(요일2:14). 하나님의 말씀이 칼이 되어 영적 전쟁터에서 승리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영적 싸움에서, 이 세상 임금인 사탄 마귀를 이기려면 두 가지가 필요한 것이다. 하나는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낸 당신의 아들이자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요일5:4~5). 그리고 또 하나는 악한 자를 대적할 말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요일2:14). 고로 영적인 전쟁을 수행할 자는 말씀을 많이 알수록 칼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lt;br /&gt; 이제 마지막으로 &lt;strong&gt;셋째, &#039;아비들&#039;이란 어떤 존재를 가리키는가?&lt;/strong&gt; 이들은 한 마디로 영적인 지식과 생활이 성숙한 상태에 도달해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들은 이미 성경을 꿰뚫고 있는 자들이고 영적인 세계를 꿰뚫고 있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미 예수께서 &#039;태초부터 계신 이&#039;라는 것을 알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039;태초부터 계신 이&#039;라 함은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말씀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태초부터 계신 이라고 불리운 것이다(요일1:1, 요1:1~3). 그러므로 우리도 역시, 온 우주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또 다른 하나님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요일2:13~14). 처음에 세상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된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대적자였던 사탄 마귀의 반란으로 인하여, 인간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자는 태초부터 계신 분 곧 창조주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한 자라도 결코 거듭난 성도를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 참 믿음인 것이다(요일5:18).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에 주의해야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br /&gt; 이어서 사도 요한은 사람이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고 언급한다. 그것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게 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있지 않기 때문이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형적없이 사라질 때에 같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요일2:15~17). 그렇다. 이 세상에 속한 물질적인 세계는 영의 세계에서는 아무 쓸모 없는 것들이다. 또한 영의 세계에 그것을 가지고 갈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있을 때에 영적인 세계를 사모하고 그 세계에서 누릴 것을 잘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악한 자요 미혹하는 자인 사탄 마귀는 사람을 한사코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에 미쳐 살도록 꼬드긴다. 악한 자가 인간을 꼬드길 때 사용하는 미끼가 사도 요한은 총 3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039;육체의 정욕&#039; 곧 &#039;육신의 욕망&#039;이 있다는 것이다. 사탄은 이것을 부추켜서 그것을 일평생 추구하며 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육체의 욕망대로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육체가 즐거워하는 것에만 푹 빠져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 역시 다 헛된 것이다. 이것들 모두가 언젠가는 썩어 없어져 갈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이 하루 세 끼 밥 먹는 것은 다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루에 필요한 먹을 양식이 있고 입을 옷이 있다면 거기에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데 힘써야 한다. 둘째는 &#039;안목의 정욕&#039;이란 &#039;눈들이 보는 대로 갖고 싶어하는 욕망&#039;을 가리킨다. 사람이 되어서 무엇인가를 갖고 싶어하는 욕망은 사실 끝이 없다. 우리나라처럼 잘 살아도 상대적인 빈곤함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 번 눈으로 보면 그것을 갖고 싶어 안달이 나는 이들이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래서 무엇인가를 얻었다고 치자, 과연 사람은 그것을 얻은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갈까? 아니다. 또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더 좋은 것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그는 또 안달이 나서 가만히 있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갖고 싶어하는 욕망에 결코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셋째는 이생의 자랑이다. 이 땅에 있는 것들을 떠벌리고자 하는 마음이 &#039;이생의 자랑&#039;이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랑하는데 바쁘다고 생각한다. 또한 자기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것도 헛된 것이다. 아무리 비싼 것이 있다고 자랑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도 그것을 내세에 가지고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세상에 속한 것, 물질적인 것, 유한한 것에 결코 목숨을 걸지 말아야 한다. 있으면 감사하고 그것을 가지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더욱 힘쓰는 것이 되어야 한다.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br /&gt; 참으로 영지주의는 초기 기독교의 역사에 매우 위협적인 이단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오직 깨달음만이 중요했기에, 예수님의 성육신도 그들에게는 필요없는 것이었고, 더욱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도 역시 그들에게는 아무런 중요성을 띠지 못했다. 그들은 이미 깨달음을 통하여 이 세상을 초월한 자들이고 구원은 이미 받은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구원파나 신천지 등은 신종 신세대에 땅을 뚫고 올라온 영지주의의 변형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어서 더 이상 회개하지 않아도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받은 것이라고 믿는 것도 신종 영지주의에 물든 자들이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에 물든 자들은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개하지 않아도 이미 예수께서 자신의 죄와 죽음과 저주를 끝내셨기 때문에 자신이 구원받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처음 믿을 때 곧 회심할 때에는 회개(돌이킴)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그 뒤부터는 자범죄가 발생하면 즉시 회개(자백)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죄를 회개하지 않는 이들이 태반이다. 이미 골고다의 사건으로 자신의 구원은 결정난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아니다. 예수께서 치르신 골고다의 사건이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주님께서 죽으셨다는 것을 뜻하며, 우리가 믿어도 비로소 다시 회개할 때에 그분의 피로서 우리가 죄 용서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요일1:9). 그러므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한 번 믿었다고 해도,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 이미 목욕한 자는 발을 씻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겠는가?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라도 십계명을 지키지 않으며,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지 않고 있다면, 그는 결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야 하기 때문이다(빌2:12). &lt;/p&gt; &lt;p&gt; &lt;/p&gt; &lt;p&gt;2021년 11월 24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92428/458/092/9e6ea22c391dc66aeb2f6975e5c8fc7f.jpg&quot; /&gt;&lt;/p&gt; &lt;p&gt; &lt;/p&gt; &lt;p&gt;[첨부파일/다운로드]&lt;/p&gt; &lt;p&gt;&lt;a href=&quot;?module=file&amp;amp;act=procFileDownload&amp;amp;file_srl=92460&amp;amp;sid=8114919b0604dc8126c92b4ae46e4294&amp;amp;module_srl=220&quot;&gt;2021-11-24 요한서신강해(03) 형제사랑준수와 세상사랑에 대한 경계(요일2,3_17).pdf&lt;/a&gt;&lt;/p&gt; &lt;p&gt;&lt;a href=&quot;?module=file&amp;amp;act=procFileDownload&amp;amp;file_srl=92461&amp;amp;sid=dd5ba093479c98ebb98d87fe237d0812&amp;amp;module_srl=220&quot;&gt;2021-11-24 요한서신강해(03) 형제사랑준수와 세상사랑에 대한 경계(요일2,3_17).pptx&lt;/a&gt;&lt;/p&gt; &lt;/div&gt;</content>			</entry><entry>
		<title>요한서신강해(02) 성도의 코이노니아의 핵심요소와 그것이 가능케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일1:5~2;2)_2021-11-10(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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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1-11-10T18:39:58+09:00</published>
		<updated>2021-11-11T18:32:23+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교회 생활을 하다보면 가끔씩 &amp;#039;코이노니아&amp;#039;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 말은 대체 무슨 말인가? 성도들의 친교를 가리키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를 가리키는 말인가? 그런데 요한일서 1장에 보면 이 말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이며, 이것을 방해하는 요소는 또 무엇인가? 그리고 자신은 빛 가운데 걸어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어둠 가운데 행하고 있는 자들은 누구였는가? 왜 사도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dddddd;&quot;&gt;교회 생활을 하다보면 가끔씩 &amp;#39;코이노니아&amp;#39;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 말은 대체 무슨 말인가? 성도들의 친교를 가리키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를 가리키는 말인가? 그런데 요한일서 1장에 보면 이 말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이며, 이것을 방해하는 요소는 또 무엇인가? 그리고 자신은 빛 가운데 걸어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어둠 가운데 행하고 있는 자들은 누구였는가? 왜 사도 요한은 그들을 분별하라고 그렇게 강조해서 말해야 했던가?&lt;/span&gt;&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19&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EgvXSoKg9Gs&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 width=&quot;1278&quot;&gt;&lt;/iframe&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요한일서는 초신자들로 하여금 영적인 자양분을 얻게 하고, 영혼을 노리고 있는&amp;nbsp;거짓 교사들이었던 초기 기독교 영지주의 이단의 미혹으로부터 성도들을&amp;nbsp;지켜낼&amp;nbsp;뿐만 아니라, 사랑이신 하나님을 본받아 형제와 이웃을&amp;nbsp;사랑으로 섬기는 실천적인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소중한 책이다. 요한일서는 알다시피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와 함께 사도 요한이 쓴 서신으로서, 이것들&amp;nbsp;중에서&amp;nbsp;첫 번째 책이 요한일서다. 이 책이&amp;nbsp;쓰여진&amp;nbsp;시기는 대략 A.D.90~95년경으로 추정되며, 그 대상은 소아시아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로서 사도 요한이 전파한&amp;nbsp;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은&amp;nbsp;성도들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누군지를 잘 모르거나 신앙의 기초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초신자용 신앙 지침서가 바로 요한일서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요한일서 강해 두 번째 시간으로서, 코이노니아(교제, 교통, 사귐)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코이노니아가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코이노니아에는 어떤 방면이 있으며, 코이노니아를 가능케 하고 그것을 지속시켜 주는 것은 대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amp;#39;코이노니아&amp;#39;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amp;#39;코이노니아(koinonia)&amp;#39;란&amp;nbsp;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교제를 가리키는 헬라어 단어인데, 이 단어를 한글로 번역할 때에는 보통 &amp;#39;교제(친교)&amp;#39; 내지는 &amp;#39;사귐&amp;#39;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영어에서는 이 단어를 대부분 &amp;#39;fellowship&amp;#39;으로 번역하고 있으며&amp;nbsp;가끔식&amp;nbsp;&amp;#39;communion&amp;#39;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amp;#39;코이노니아&amp;#39;의 본래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 단어의 뿌리를 찾아보면 알 수가 있는데, 원래 이 단어는 &amp;#39;코이노스&amp;#39;라는 형용사에서 온 말이다. 형용사 &amp;#39;코이노스&amp;#39;는 우리말로는&amp;nbsp;&amp;#39;공통된&amp;#39;이라는 뜻을 가졌다. 따라서 &amp;#39;코이노니아&amp;#39;라는 말은&amp;nbsp;상호 간에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amp;nbsp;서로가&amp;nbsp;공통된 정서를 함께 나누며 공통된 목표를 지향하며&amp;nbsp;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 &amp;#39;코이노니아&amp;#39;란&amp;nbsp;공통된 분모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교제를 일컫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이러한 교제를 가능케 하는 그리스도인 간의 공통 분모는 대체 무엇인가?&amp;nbsp;그것은 한 마디로 &amp;#39;생명&amp;#39;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amp;nbsp;좀 더 크게 확대해 보면 그것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우리와 교제를 나누실 하나님이 먼저&amp;nbsp;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었으며(요5:26), 이 생명을 예수에게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요일1:2, 5:11~12)&amp;nbsp;또한&amp;nbsp;우리 성도들에게도 이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다(요일5:13). 이때 하나님께서 분배해 주시는 영원한&amp;nbsp;생명을 가진 자를 일컬어 성경에서는 &amp;#39;거듭난 자&amp;#39;라고 말하고 있고, &amp;#39;하나님의 자녀&amp;#39;라고도 말한다. 그러므로 자기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는 자는 영적인 교통을 나눌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성도들은 대체 누구와 코이노니아를 가지는 것인가?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인의&amp;nbsp;코이노니아에는 두 가지 방면이 있다고 했다. 그것들&amp;nbsp;중&amp;nbsp;한 가지는 하나님 및&amp;nbsp;예수님과 갖는&amp;nbsp;교통이라고 했다(요일1:3).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성도들 간의 교통이라고 했다(요일1:7). 그런데 이것들&amp;nbsp;중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갖는&amp;nbsp;교제를 수직적 교제라고&amp;nbsp;부르며, 성도들끼리 갖는&amp;nbsp;교제를 수평적인 교제라고 부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성도들이&amp;nbsp;서로 코이노니아를 갖기&amp;nbsp;위하여&amp;nbsp;꼭 해야만 하는 일 2가지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요한은 성령을&amp;nbsp;통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받은 성도들이&amp;nbsp;하나님과 그리고 성도들 간에 교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amp;nbsp;필요한 사항이&amp;nbsp;2가지&amp;nbsp;있다고 말했다.&amp;nbsp;그중&amp;nbsp;첫 번째는&amp;nbsp;성도들은 반드시 빛 가운데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요일1:5~7). 왜냐하면 우리 주 하나님이 빛이시며(요일1:5),&amp;nbsp;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그 빛을 비추러 오신 참 빛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요1:9, 요일2:8).&amp;nbsp;그러므로 성도가&amp;nbsp;이 빛 가운데 걸어가지 않는다면 그는 어둠 가운데서 걸어가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두 번째는&amp;nbsp;성도가 죄를 범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즉시 죄를 자백하여 예수의 피로 깨끗이&amp;nbsp;씻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요일1:9). 이는&amp;nbsp;그리스도인의 코이노니아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가&amp;nbsp;&amp;#39;회개&amp;#39;라는 것을 알려 준다. 주님과 우리 믿는 이들 사이에 그리고 우리 믿는 이들 사이에 코이노니아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했던&amp;nbsp;것이다. 정리하면, 그것의 첫 번째는 반드시 성도가 어둠의 일을 끊고 생명의 빛 가운데서 걸어가는 것이다. 이때 자신이 빛 가운데 걷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amp;nbsp;실제로 죄를 짓고 있는 이가 있다면 그는 현재&amp;nbsp;어둠 가운데 걸어가고 있는 것을 반증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지은 죄를 자백하여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사도 요한은 왜 빛 가운데서 걸어감으로 하나님과 코이노니아를 이루어야 하고 그래서&amp;nbsp;형제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강하게 말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요한이 &amp;#39;빛&amp;#39;과 &amp;#39;어둠&amp;#39;이라는 단어를 꺼내어 사용할&amp;nbsp;때에는 당시 유행하고 있던 초기 기독교 영지주의를 염두해 두고 쓴&amp;nbsp;것이다. 영지주의자들도 역시 &amp;#39;빛&amp;#39;과 &amp;#39;어둠&amp;#39;이라는 개념을 고스란히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고 있는 빛과 어둠이라는&amp;nbsp;개념과 예수께서 말씀하신&amp;nbsp;빛과 어둠이라는&amp;nbsp;개념은 사실상 다른 것이다. 그들은 영지를 깨달은 자를 일컬어&amp;nbsp;빛 가운데 있는 자요, 구원받은&amp;nbsp;자라고&amp;nbsp;말하지만, 사도 요한은 이 세상에 참 빛을 비추러 오신 예수님을 믿는 자가 빛의 아들이 되어 빛 가운데 살 수 있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요12:35~36).&amp;nbsp;&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렇지만&amp;nbsp;당시 초기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은 자기들은 현재 빛 가운데 걸어가고&amp;nbsp;있다고 늘 말하곤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 순간에도 역시&amp;nbsp;죄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영지를 깨달았기 때문에&amp;nbsp;더 이상 육체에 속한 어떤 것이 자신의 영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실제로는 죄를 짓고 있었어도&amp;nbsp;그들에게&amp;nbsp;그것은&amp;nbsp;문제되는&amp;nbsp;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만약 그 상태로&amp;nbsp;죽는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불타는 영영한 불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러면, 초기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에 있어서 &amp;#39;영지&amp;#39;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인간이&amp;nbsp;원래&amp;nbsp;하나님으로부터 방출되어 나온&amp;nbsp;신적 존재이므로 그러한&amp;nbsp;사실을 깨닫는 것이&amp;nbsp;빛을 받는 것이요&amp;nbsp;영지를 깨닫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길을 사람들이 모르니까 그 길을 알려 주려고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진리의 빛을 깨닫도록 빛을 비추기 위해 예수께서 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참된 빛을 받을 수 있게&amp;nbsp;해 주는 존재는 굳이 예수님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다만 영지를 깨우쳐 줄 존재만 있으면 되었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 그러나 예수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는가? 그리고 예수께서는 무엇 때문에 사람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야 했던 것인가? 그리고 왜 하나님이셨던 그분이&amp;nbsp;십자가에서&amp;nbsp;못 박혀 죽으셔야만 했던 것인가? 그것은 한 가지 이유에서다. 오직 우리 인류의 죄값을 대신 담당하시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었기 때문이다(롬6:23). 그런데 하나님은&amp;nbsp;본래 영이시므로 죽으실 수가 없으셨다(요4: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amp;nbsp;피 흘려 죽기 위해 사람이 되신 것이다. 이것을 &amp;#39;성육신&amp;#39;이라고 부르는 것이다(요1:14). 그러나 이미 영지를 깨달은 영지주의자들은 예수가 육체를&amp;nbsp;입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물질세계는 저급한 신이 만들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께서는&amp;nbsp;그들에게 아주 저급한 신으로 밖에는&amp;nbsp;생각이 안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구원자이신 예수께서&amp;nbsp;육체를 입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amp;nbsp;육체를 입고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거짓 선지자요, 그가 바로 적그리스도라고 말했다(요일4:1~3, 요이1:7). 그래서 오늘날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들을 일컬어&amp;nbsp;가현설론자라고 부른다. 그렇다. 기독교의 최대의 이단이었던 초기 영지주의자들은 영지를 깨닫기만 하면 자기도 하나님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었다. 영지를 깨달으면 하나님이 된다고 믿은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어찌 피조물이 신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가르침은 사실&amp;nbsp;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에게 던진 미끼였다. 그런데 이것을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영지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성육신과 그리고&amp;nbsp;그분의 죽음은 정말&amp;nbsp;불필요한 것들이었다. 빛을 비추러&amp;nbsp;오신 예수께서 더러운 육체를 입으실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그때에 예수께서&amp;nbsp;육신을 입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 죽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지금까지 인류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 그리고&amp;nbsp;인류 중 단 한 사람도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감사 드리자. 그리고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 감사 찬양을 올려 드리자. 왜냐하면 그분의 성육신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며, 이 세상을 탈출하여 천국에&amp;nbsp;들어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러므로 영지를 깨달은 영지주의자들에게&amp;nbsp;있어서&amp;nbsp;더 이상 계명은 필요치 않는 것이다. 그들은 육체를 가진 형제를 사랑하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amp;nbsp;것이다. 다시 말해 영지만 깨달으면 그들은 이미 신이 된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득도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말한다. 자신이 빛 가운데 걸어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있는 이들을 무조건&amp;nbsp;따라가지&amp;nbsp;말라는 것이다. 그가 진실로 형제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라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빛 가운데서 행하고 있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는 지금 어둠 가운데 있는 자라고 판단하라는 것이다. 그런 자하고는 교제를 끊으라는 것이다. 그들 속에는 진리가 없기 때문이요, 그들은 거짓말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코이노니아가 단절되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모셨음에도&amp;nbsp;죄된 본성으로 인하여 죄를 짓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우선 사도 요한은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고 말을 한다든지 혹은&amp;nbsp;자신은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그들이 바로 미혹하는 자 곧 영지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따르지 않고 사탄이 가르쳐 준&amp;nbsp;말장난을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amp;nbsp;인간인지라 연약함에 쌓여 죄를 짓는 성도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사도 요한은 말한다. 이미 2천년 전에 예수께서 인류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amp;nbsp;속죄 제사를 드렸지만, 그 속죄의 효력이 나타나게 하려면 반드시 지은 죄를 자백하라는 것이다(요일1:9). 죄를 자백할 때에라야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지은&amp;nbsp;죄들로부터 그를 깨끗하게 하고 죄지은 자를&amp;nbsp;용서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 가운데는 현대 영지주의자들이 많이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들은&amp;nbsp;한 번 믿어서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다. 자신이 예수를 믿을 때에 이미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받은 것이라고 믿고 있는 자들이다. 사실 우리가 처음으로 예수님을&amp;nbsp;믿는 회심의 회개를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amp;nbsp;주님께로 돌아온 사람의 죄들을&amp;nbsp;용서해 주시고(이때에 지옥 갈&amp;nbsp;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이다), 그로 하여금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받게 하신다. 그러면 그가&amp;nbsp;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비로소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 죄된 본성이 영영 사라진 것이 결코 아니다. 여전히 죄된 본성은 남아 있다. 그래서 그것은&amp;nbsp;육체가 죽는 날까지 활동할 것이다. 그러므로 섰다 하면 넘어질까 조심해야 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다.&amp;nbsp;이러한 고민을&amp;nbsp;말씀하고 있는 성경이 바로&amp;nbsp;로마서 7장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지을 수 있으며&amp;nbsp;또한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만약 누군가가 회심의 회개를 하였고 예수님을 모셔 들였다면, 그는 그때부터는 발을 씻는 회개를 해야 한다. 그는 이미 목욕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발을 씻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현대에도 있다. 이들이 바로 현대판 영지주의자들이다. 한 번 믿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바로 오늘날의 영지주의자들인 것이다. 속지&amp;nbsp;말자. 우리는 요한 사도를 통해 주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어느 때고 죄를 지었다면 죄를 자백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amp;nbsp;2천년 전에 골고다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가 우리의 죄를&amp;nbsp;깨끗하게 하고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해 줄&amp;nbsp;것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성도의 단절된 코이노니아를 회복시키기 위해 예수께서는 지금 하늘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래서 사도 요한은 편지를 써 보내는 목적을 2장 1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amp;quot;내가 너희에게 이 편지를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1:2)&amp;quot;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죄를 지었어도 아무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의 말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죄를 지었으면 회개하라는 것이다(요일1:9). 그리고 우리의 최대의 목표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다(요일2:1). 왜냐하면 우리가&amp;nbsp;죄를 범했다고 할지라도 그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실 분이 계시다는 것이다. 그분은 바로 의로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첫 번째 변호사(파라클레토스)인 셈이다. 그리고 오순절 이후에 예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 오신 성령님께서는&amp;nbsp;두 번째 변호사(파라클레토스)인 셈이다(요14;16, 26, 15:26). 그런데 이미 속죄 사역을 마치고 승천하시어&amp;nbsp;하늘에 계신 우리 주 예수님은 믿는 자들의 죄만을&amp;nbsp;용서해 주시는 것일까? 아니다. 그분은 믿는 이들의 죄를 용서해 줄&amp;nbsp;화목 제물이실&amp;nbsp;뿐만 아니라, 장차 믿을 자들까지 포함하는&amp;nbsp;화목 제물이신&amp;nbsp;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amp;nbsp;너무 절망하거나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amp;nbsp;그때마다 즉시즉시 회개하여 하나님과의 교통(코이노니아)을&amp;nbsp;단절시키지&amp;nbsp;말아아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라면, 그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단절되지 않도록&amp;nbsp;미리미리 예방해야 하는데,&amp;nbsp;그것은 빛을 따라 행하든지 아니면 지은 죄를 자백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요한이 A.D.90~95년경에 보낸 편지에서 가장 염려하고 있었던&amp;nbsp;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이제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신자들이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에 속아 마치 그것이 진리의 가르침인 줄을 알고 따라가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이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소아시아의&amp;nbsp;성도들에게 예방 주사를 미리 맞혀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amp;nbsp;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amp;nbsp;이제 갓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서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를 시작하는 이들이자, 성도 간에 코이노니아를 소망하고 있는 이들이&amp;nbsp;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영지주의자들도&amp;nbsp;이렇게&amp;nbsp;말하고 있었다. &amp;quot;예수님은 하나님의 빛으로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며, 어둠 가운데 있는 우리 인간들을 하나님께로 되돌아가게 인도해 주는 선구자이십니다.&amp;quot; 그런데 이들의 주장 가운데 어디 틀린 말이 있는가? 없다. 여기까지는 우리 주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그들의 가르침이나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더럽고 추한 물질계를 만든 신은 저급한 신이라고 주장하였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육체를 입고 오셨건만, 그들에게 예수님의 성육신은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그분이&amp;nbsp;더럽고 추한 육체를 입을 리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 중에는&amp;nbsp;그리스도가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amp;nbsp;속에 잠시 들어가서 일하다가 예수께서&amp;nbsp;십자가에서 죽기 직전에 그를 떠났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어떤 이는 예수님은 실제로 육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에 육체를 가진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amp;nbsp;십자가에서 죽어서는 아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야말로&amp;nbsp;미혹이요&amp;nbsp;사탄의 궤계요&amp;nbsp;적그리스도의 속임수인 것이다(요일2:18, 26, 4:1,3,6, 요이1:7).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이 편지에서 예수님의 성육신을 이 편지의 서두(요일1:1~2)에서부터 주장하기 시작한&amp;nbsp;것이다. 이어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amp;quot;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요일2:22)&amp;quot;.&amp;nbsp;&amp;quot;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다(요일5:5~6a)&amp;quot;. 우리를 위해 육신을 입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우리 주 예수님을 영원히 찬양하며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1년 11월 10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크기변환]20211110_161036.jp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92428/462/092/6ca0285325877ccce2761da644e98dbf.jpg&quot; /&gt;&lt;/p&gt; &lt;p&gt;&amp;nbsp;&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요한서신강해(01) 요한일서 과연 어떤 책인가?(요일1:1~4)_2021-11-03(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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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1-11-03T17:23:25+09:00</published>
		<updated>2021-11-11T00:41:22+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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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동탄명성교회</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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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요한일서, 대체 이 책은 무슨 책인가? 왜 이 책은 &amp;#039;공동서신(일반서신)&amp;#039;이라고 부르게 되었는가? 그리고 이 책은 서신서임에도 불구하고, 왜 발신인과 수신인 그리고 인삿말도 없는 책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 이 책의 주제는 대체 무엇인가? &amp;#039;생명의 교통&amp;#039;인가 &amp;#039;사랑의 실천&amp;#039;인가? 왜 이 책은 영을 분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미혹하는 자와 적그리스도를 주의하라고 언급하는가? 대체 이들 수신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요한일서, 대체 이 책은 무슨 책인가? 왜 이 책은 &amp;#39;공동서신(일반서신)&amp;#39;이라고 부르게 되었는가? 그리고 이 책은 서신서임에도 불구하고, 왜 발신인과 수신인 그리고 인삿말도 없는 책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 이 책의 주제는 대체 무엇인가? &amp;#39;생명의 교통&amp;#39;인가 &amp;#39;사랑의 실천&amp;#39;인가? 왜 이 책은 영을 분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미혹하는 자와 적그리스도를 주의하라고 언급하는가? 대체 이들 수신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오늘은 요한서신(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강해의 첫 날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메시지 전체가 흥미진진하다.&lt;/p&gt; &lt;p&gt;&lt;iframe allowfullscreen=&quot;&quot; frameborder=&quot;0&quot; height=&quot;719&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OHOQ55jldTk&quot; title=&quot;YouTube video player&quot; width=&quot;1278&quot;&gt;&lt;/iframe&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amp;#39;요한서신&amp;#39;이란&amp;nbsp;요한일서와 요한이서와 요한삼서를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면 요한서신은&amp;nbsp;과연 어떤 책인가? 누가 누구에게 쓴 책이며, 무슨 목적으로 쓴 책인가? 오늘은 요한서신의&amp;nbsp;첫 번째 책인 요한일서의 배경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 요한서신은 요한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쓴 편지다. 그런데 이 책은 크게 보면 서신서 중의 하나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은 언제 이 편지를 쓴 것일까? 나이가&amp;nbsp;50대에 쓴 것인가 아니면 60대에 쓴 것인가? 그리고 이 편지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어떤&amp;nbsp;일이 당시에 일어났던 것인가? 사실 아무런 문제도&amp;nbsp;없는데 나이&amp;nbsp;든&amp;nbsp;사도가 누군가에게&amp;nbsp;편지를 쓸&amp;nbsp;리가 만무하다. 고로&amp;nbsp;요한서신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 서신의 배경을 파악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이&amp;nbsp;서신서가 한 눈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요한서신들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편지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이며, 우리는 이 편지를&amp;nbsp;통하여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성경을 쓰게 하실 때에는 반드시 어떤 목적과 의도가&amp;nbsp;있어서 편지를 쓰게 하셨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이 편지의 배경과 원인을 찾아본다면, 이 편지를 이해하는데 매우&amp;nbsp;유익한&amp;nbsp;도움이 될 것이다.&amp;nbsp;자, 오늘은 첫 시간이니 만큼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그리고&amp;nbsp;무슨 목적으로&amp;nbsp;이&amp;nbsp;책이 쓰이게 되었고 그 주제는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요한서신은 신약성경 가운데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amp;nbsp;요한서신 곧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와 요한삼서는 한 마디로 서신서에 속한다. 그런데 요한서신은 좀 더 크게 보면 공동서신(共同書信)에 속하고, 더 크게 보면 서신서에 속하며, 더 크게 보면 신약성경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신약성경은 크게 네 종류로 구분된다. 복음서와 역사서와 서신서 그리고 계시서(묵시서)가 있다. 복음서에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이 있으며, 역사서에는 사도행전이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서신서들이다. 서신서에는 또한 바울이 쓴 편지들만을 모아서 &amp;#39;바울서신&amp;#39;이라고 부르는데, 13권의 성경책이 있다. 로마서에서 디도서까지가&amp;nbsp;바울서신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8권의 성경책들&amp;nbsp;곧 히브리서에서&amp;nbsp;시작하여,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까지를 우리는 공동서신 혹은 일반서신이라고 부른다(여기에서 &amp;#39;히브리서&amp;#39;는 바울서신이라고 하는 학자들도 더러 있다). 공동서신(일반서신)이라고 하게 된 이유는&amp;nbsp;처음에는 단순히 바울서신 이외의 다른 편지들을 가리키는 말로 시작되었지만, 이 8권의 서신들의 특징이 하나같이 이단을 대적하고 또한 박해 중에서 능히 믿음을 굳건히 하라는 모든 교회의 공통된 메시지를 담고 있기에, 교회 전체를 위한 서신(바울서신은 특정한 교회나 목회자를 위한 서신이었다), 곧 &amp;lsquo;공동서신&amp;rsquo;이라 칭하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히브리서나 요한일서 같은 경우에는 그 수신자와 발신자까지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요한서신은 신약성경에서 어떤 책으로 분류되며 누가 쓴 책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럼 요한서신은 신약성경에서 어떤 책으로 분류되며, 누가 쓴 책인지를 살펴보자. 사실 요한서신은 요한일서와 요한이서 요한삼서를 통칭하는 표현으로서, 이 세 권의 책들은 누가 썼는지 이 편지만으로는 알 수 없다. 누가 썼다고 기록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 편지들을 요한이 쓴 편지라고 알려져&amp;nbsp;있다. 이 책의 제목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 책의 제목들이 그렇게 알려진&amp;nbsp;것일까? 그것은 적어도 기독교 초기 교회의 전승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면 누가 최초로 이 책들을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와 요한삼서라고 명명했고 이 책들을 사도 요한이 쓴 책이라고 명명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amp;nbsp;알렉산드리아 출신의 학자 아폴로니우스(Apollonius)가 최초라고 한다. 그가&amp;nbsp;2세기 말에 처음으로 이 세 권의 책들을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와 요한삼서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리고&amp;nbsp;초기 교부 오리겐((Ὀ&amp;rho;&amp;iota;&amp;gamma;&amp;epsilon;&amp;nu;&amp;epsilon;&amp;sigmaf;, 185년경~254년경) 이후에는 바울서신 외의 다른 모든 편지들을 &amp;#39;공동서신&amp;#39;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는데, 그때 당시만&amp;nbsp;해도 특정한&amp;nbsp;몇몇&amp;nbsp;서신만을 일컬어 &amp;#39;공동서신&amp;#39;이라고 했지만, 나중에는 히브리서를 제외한 7서신을&amp;nbsp;일컬어 &amp;#39;공동서신&amp;#39;이라고 부르게 된다. 그럼 누가 공동서신이라는 표현을 쓴 것인가? 그는 다름 아닌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Eusebius,&amp;nbsp;A.D.&amp;nbsp;263-339년경)다. 그리고 훗날에는 &amp;#39;히브리서&amp;#39;가 바울서신에서&amp;nbsp;점차&amp;nbsp;공동서신으로 분류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amp;nbsp;오늘날&amp;nbsp;대부분 신학자들은 히브리서부터 유다서까지 총 8권의 편지들을&amp;nbsp;&amp;#39;공동서신&amp;#39;이라고 부른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요한서신은 누구에게 보낸&amp;nbsp;책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요한서신들은 요한이 누구에게 보낸 편지인가?&amp;nbsp;요한이서와 요한삼서는 그 편지를 받는 대상이 나온다. 요한이서의 서두에&amp;nbsp;보면&amp;nbsp;&amp;#39;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amp;#39;이라고 나오고(요이1:1), 요한삼서는 요한이 사랑하고 있던&amp;nbsp;장로 &amp;#39;가이오&amp;#39;라고 나온다(요삼1:1). 그런데 요한일서의 서두에는 수신인도 안 나오고 발신인도 안 나오고 문안 인사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요한일서는 누구에게 보내어진&amp;nbsp;편지란 말인가? 우리는 요한일서가 아주 독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편지는 일반적인 편지 형식을 따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편지들은 다&amp;nbsp;&amp;#39;나&amp;nbsp;누구누구는 아무개에게 편지하노니, 너희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amp;#39;라는 형식으로 쓰고 있는데, 요한일서는 서두에서나&amp;nbsp;말미에 수신자와 발신자 그리고 문안 인사가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amp;nbsp;이 편지가 그렇게 쓰여질&amp;nbsp;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나중에 짐작할 수 있을&amp;nbsp;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렇다면, 요한일서의 수신자는 대체 누구인가? 감사하게도 총 다섯 장 분량의 요한일서를 잘 읽어 보면, 이 편지를 누구에게 썼는지 대강 짐작케 하는 단서들을 살펴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도 요한이 그들을 향하여 부른 호칭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이 편지를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보낸 것이다. 첫째로,&amp;nbsp;사도 요한은 이 편지를 받을 대상을 향해&amp;nbsp;&amp;quot;나의 자녀들아(아이들=테크니아)(1회)(요일2:1)&amp;quot; 혹은 &amp;quot;자녀들아&amp;quot;라고 불렀다(5회)(요일2:12, 28, 3:7, 18, 4:4). 이는 이들이 영적으로 볼 때에 아직 어린 자식들이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amp;nbsp;&amp;nbsp;그리고 이어&amp;nbsp;둘째로 사도 요한은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amp;nbsp;&amp;quot;사랑하는 자들아(아가페토이)&amp;quot;라고 불렀다(5회)(요일2:7, 3:2, 21, 4:1, 7). 이는 사도 요한과 친분이 있거나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어서 사도 요한이 그들을 매우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사도 요한이 이 편지를 받는 대상을 가르쳤든지 사도 요한에 의해 복음을 받아들였던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셋째, 사도 요한은 이 편지를 받는 사람에게 &amp;#39;아이들아&amp;#39;라는 표현도 사용하였지만&amp;nbsp;그것&amp;nbsp;외에도 &amp;#39;아비들아&amp;#39;(파테레스)(요일2:13,14), &amp;#39;청년들아&amp;#39;(네아니스코이)(요일2:13,14)라는 표현도 함께&amp;nbsp;사용하였다. 이는 영적으로 다양한 계층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넷째, &amp;#39;아이들아(파이디아)&amp;#39;라는 표현도 사용하였다. 여기에 나오는&amp;nbsp;&amp;#39;아이들아&amp;#39;라는 헬라어 단어는 &amp;#39;파이디온&amp;#39;이다. &amp;#39;어린아이&amp;#39;라는 것이다. 적어도 4~5세에서 초등학교 아이들 정도의 아이들을&amp;nbsp;일컫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영적인&amp;nbsp;나이로 볼 때에 유아들과 같은&amp;nbsp;자들에게도 쓴 것이다. 그러므로 이상으로 우리는 이 편지가 장성한 분량에 도달한 어른을 위한 편지가 아니라, 이제 복음을 듣고 받아들여 영적으로 탄생한 어린아이부터 성숙한 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쓴 것이라고 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사도 요한은 언제&amp;nbsp;어디에서 목회를 하였거나 또한 바울의 뒤를 이어 성도들을 가르친 것일까?&amp;nbsp;&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사도 요한은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질 때만 해도 핵심 멤버였다. 왜냐하면 12사도들 중에서 3명 안에 드는 핵심 멤버(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하여 3천 명이 되었을 때에도 그는 베드로와 같이 사역을 하였다. 그리고 사울이 스데반을 죽인 사건 이후로 예루살렘 교회에도 세찬 핍박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행8:1~3). 그러자 12사도들 이외에 모든 성도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어떤 이는 자기 고향으로 가서 교회를 세우기 시작한다. 그중에 빌립 집사는 예루살렘 교회의 7명의 안수 집사들 가운데 하나였는데, 그가&amp;nbsp;사마리아에 가서 교회를 세웠고(행8:4~13), 또 다른 이들은 이방 땅 안디옥에까지&amp;nbsp;가서 복음을 증거하게 된다(행11:19~20). 그러자&amp;nbsp;그곳에서도 교회가 생긴다. 그것이 바로 최초의 이방인 교회인 &amp;#39;안디옥 교회&amp;#39;다. 교회가 생길 때마다 사도들이 가서 성령의 선물받기를 도와주면서 교회는 성장하지만, 사도행전 15장 이후 사도들의 행적은 더이상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A.D.66년경에 이스라엘의&amp;nbsp;농민들의 반란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자 로마가 군대를 보내어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압박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때 잠시 쉬는 틈을 타서 기독교인은 예루살렘을 빠져나온다. 그중에 아마도 사도 요한도 포함되었으리라 본다. 그렇다면 그는 대체&amp;nbsp;어디로 갔는가?&amp;nbsp;다른 역사적인 기록을 보면, 사도 요한은 A.D.70년 이스라엘 나라가 멸망당하자, 그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쓰임받을 수 있도록 날마다 간절히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는 요한은&amp;nbsp;바울의 주된 사역지였던 에베소 교회로 사역지를 옮긴다. 그리고 그곳에서 적어도 30년을 목회하면서 에베소 교회를 돌보았고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의 지도자들을 도와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노년의 시기였던 A.D.90~95년 사이에 소아시아 전역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요한일서를 써서 보낸 것으로 보인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amp;nbsp; A.D.90~95년 당시 사도 요한이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런데&amp;nbsp;A.D.90~95년 당시 교회에 큰 어려움이 찾아왔다. 물론 로마의 도미시안 황제(A.D.81~96)의 황제 숭배&amp;nbsp;강요도 큰 핍박이었다. 도미시안 황제는 자기를 주 하나님으로 섬기도록 했다. 그런데 오직 그리스도인들만큼은 그 지시를 이행할 수 없었다. 그러자 기독교인에게&amp;nbsp;대대적인 핍박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이 교회 내에 침투해 오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의&amp;nbsp;공격이었다. 이들은 영적인 지식 곧 그들이 말하는 비밀스러운 지혜를 얻어서 구원얻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인데, 이 사상은 원래&amp;nbsp;헬라 사상과 동방 종교의 신비 사상을&amp;nbsp;유대교의 신앙과 기독교 신앙에 접목함하여&amp;nbsp;많은 교회의 성도들을 혼란에 빠뜨린 이단종파다. 어느새부턴가 영지주의자들은 교회까지&amp;nbsp;치고 들어왔고&amp;nbsp;성경 교사로서 활동한다. 그리고&amp;nbsp;이 세상은 저급하고 무가치한 물질세계와 영원하고&amp;nbsp;완전한 영의 세계로 이분화되어 있으며, 인생은 그 영혼이 육체에 갇힌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이제는 영혼이 육체로부터 빠져나와 영적 세계로 복귀함으로 구원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영지주의자들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저급신으로 취급하였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물질세계를 창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영지주의자들은 우주의 기원은 최고의 절대신(모나드=단일자)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보았는데, 이것으로부터 아이온이 빠져나와 여러 신들이 생겨났는데, 가장 멀리 떨어진 신들 중에는 데미우르고스(여호와)가 있고, 이 신이 물질세계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amp;nbsp;그리스도는 절대신으로부터 가장 먼저 나온 아이온이자 절대신과 마주하는 신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그만이 구원의 길을 제대로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셨으니&amp;nbsp;그분은&amp;nbsp;저급한&amp;nbsp;육체를 입을 리가 없다고 하였다. 단지 그분은 육체를 입은 흉내만 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눈에는 그분이 사람으로 보였으나 그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신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사상적 체계를 바실리데스(Basilides)(A.D.117-138)라는 사람이&amp;nbsp;기독교 영지주의를 집대성하게 된다. 이것을 &amp;#39;가현설(Docetism)&amp;#39;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요한일서 4:2과 요한이서 1:7에 나오는 바,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인 것이다.&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요일4:2-3&amp;nbsp;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amp;nbsp;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요이1:7&amp;nbsp;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lt;/span&gt;&lt;/p&gt; &lt;p&gt;&amp;nbsp; 또 한 부류는 그리스도(아들)와 예수를 분리하는 자들이었다. 그중에서 케린투스(Cerinthus, 50-100 AD, Egyptian theologian)라는 사람은 그리스도는 절대신으로부터 나온 최고의 존재로서 예수께서 세례를 받을 때에 하나가 되었지만, 그가 죽을 무렵에 예수를 떠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예수를 잠깐 양자로 삼아서 썼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을 &amp;#39;양자론&amp;#39;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이단도 요한일서에 고스란히 나온다(요일2:22).&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요일2:22&amp;nbsp;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lt;/span&gt;&lt;br /&gt; &amp;nbsp; 결국 영지주의 이단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3가지 방면에서 정면 충돌하고 있었다. 첫째, 예수는 육체를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더럽고 불결하고 무가치한 육체를 입을 수가 있겠느냐고 한 것이다. 둘째, 예수는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육체를 입지 않았으니 죽을 리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 죽은 자는 예수가 아니라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는 것이다. 셋째, 예수는 부활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분이 죽지 않았으니 부활할 리도 없는 것이다. 결국 영지주의는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3대 신앙고백을 정면으로 뒤집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만약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어 아들로 오지&amp;nbsp;않았다면 인류의 죄를 없앨 수가 있었겠는가? 아마 시작 자체도&amp;nbsp;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값을 대신해&amp;nbsp;죽지 않았다면 인간의 죄는&amp;nbsp;여전히 지금까지도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인간이 사망을 이기고 음부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어찌 알 수&amp;nbsp;있겠으며, 우리의&amp;nbsp;죄를 사함받기 위한 제사가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졌는지를 어떻게 확인할&amp;nbsp;수 있겠는가? 고로 영지주의는 매우 무서운 기독교 이단이자, 적그리스도인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요한일서의 3대 주제는 무엇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러므로 요한일서의 기록 목적은 다른 데에 있지 않았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을 부정하는 영지주의 이단 세력이 교회에 침투함에 따라,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성도들의 신앙을 무너뜨리고 어린 영혼들을 빼가려는 것으로부터, 성도들을 지키고 이단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지 알게하고, 이들의 배후에서 역사하고 있는 악한 영들을 이길 수 있는&amp;nbsp;방법을 일러주기 위한 예방 주사용으로 쓰여진 편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편지의 수신인과 발신인도 생략하고 문안 인사도 생략한 채 곧바로 예수님의 성육신부터 쓰기 시작한다. 자, 이제, 요한일서 1:1~2의 말씀을 보자.&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요일1:1-2&amp;nbsp;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amp;nbsp;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lt;/span&gt;&lt;br /&gt; &amp;nbsp; 그렇다. 사도 요한은 자신을 비롯한 여러 증인들이 태초부터 있어 온&amp;nbsp;생명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가&amp;nbsp;33년 반을 사시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인류의 속죄의 값을 대신 치르시고 죽으셨음을 증언다. 그리고 죽었다가 3일만에 부활하신 것을 직접 자신이 보았다고 증언한다. 사도 요한 자신이 직접 그분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말씀도 들었고, 자신은 그분 가까이에서&amp;nbsp;자세히 그분을 지켜 보았으며 직접 손으로도 만져 보았다고 말한다. 고로 요한일서의 3대 주제 가운데 2가지의 주제가 여기에서 나온다. 그중에&amp;nbsp;첫 번째가 바로&amp;nbsp;이단 세력의 분별과 퇴치법이다. 그런데 다음 주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이단 세력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신성한 생명과 이 생명과의 교통에&amp;nbsp;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두번째 주제다. 그리고&amp;nbsp;아울러 하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시어 인류의 죄를 없애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어 사람이 되게 하셨고&amp;nbsp;우리의 친족(고엘)이 되어 대신 죽어 인류를&amp;nbsp;사랑했던 것처럼, 예수님을 생명으로 취한 사람은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세번째 주제다. 그러므로 요한일서는 다음과 같은 3가지&amp;nbsp;주제를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첫째, 이단 분별 및 퇴치, 둘째, 신성한 생명과의 교통, 셋째, 형제와 이웃 사랑이다. 덧붙여&amp;nbsp;요한이서는 이단을 제대로 분별하여서 그들과 교제하지 말 것을 교훈하는 책이며, 요한삼서는 이와는 반대로 교회의 지도자와 교사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것인데, 그들을 냉혹하게 대했던 장로 &amp;#39;디오드레베&amp;#39;를 책망하고 진리대로&amp;nbsp;형제와 이웃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고 있는&amp;nbsp;데메드리오를 칭찬하는 것이 요한삼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8.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러므로 요한일서는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초를 제공하는 책이자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이단 세력을 침투시켜 교회를 망가뜨리려는 사탄을 어떻게 생명의 능력으로 제압하는지를 알려 주는 책이다. 그리고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형제와 이웃을 사랑함으로 자신이 거듭난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고 가르쳐 주는 책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고 말하는 책이 바로 요한일서이다. 즉 하나님에게서 나와 있어 왔던 영원하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amp;nbsp;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며, 그분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가서는 그분이 참된 하나님이요 영생이시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 요한일서이다. 오늘은 요한서신 강해 중 첫 날이므로 이 책의 저자와 수신자 그리고 이 책을 썼던 시기 그리고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다음 주에는 신성한 생명의 능력과 교통과 아울러 어떻게 사람이 죄를 사함&amp;nbsp;받을 수 있는지를 좀 더 살펴볼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1년 11월 03일(수)&lt;/p&gt; &lt;p&gt;정보배목사&lt;/p&gt; &lt;p&gt;&lt;img alt=&quot;20211110_233720[크기변환].jpg&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92428/464/092/10bbd09c33d5edbd81174c1cf2b3f18d.jpg&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