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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침묵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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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80)]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1) 손대지 아니한 돌(단2:25~49)_2026-08-31(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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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31T09:12:57+09:00</published>
		<updated>2026-08-31T18:40:31+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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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80)]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1) 손대지 아니한 돌(단2:25~4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1l23I9Z34wM 기독론(180)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1) 손대지 아니한 돌 (단 2:25-49)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다니엘서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세상 제국들을 심판하고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왕이다. 이사야가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는 고난받는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80)]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1) 손대지 아니한 돌(단2:25~49)&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1l23I9Z34wM&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1l23I9Z34wM?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80)&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1)&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손대지 아니한 돌&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단 2:25-49)&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세상 제국들을 심판하고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왕이다. 이사야가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는 고난받는 종을 보여 주고, 예레미야가 마음에 법을 기록하는 새 언약(新約, new covenant)의 중보자(仲保者, mediator)를 보여 주며, 에스겔이 참 목자와 새 성전을 보여 준다면, 다니엘은 하늘에서 와서 세상 왕국들을 깨뜨리고 영원히 왕 노릇 하실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이사야의 그리스도는 처녀에게 잉태되고 한 아기로 태어나며 이새의 줄기에서 나오는 아들로 표현되어 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지만,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고 부자의 묘실에 묻혔다가 다시 살아나는 분이다(사 7:14; 9:6; 11:1-2; 53:4-12; 61:1). 그리고 에스겔의 그리스도는 흩어진 양을 모으는 참 목자요 새 성전을 일으키는 분이며(겔 34장; 40-48장), 예레미야의 그리스도는 다윗의 의로운 가지로 와서 이스라엘과 새 언약을 세우는 분이다(렘 23:5-6; 31:31-34). 이 모든 예언을 이어받아 다니엘은 구름을 타고 오는 인자 같은 이의 영원한 왕권을 선포한다(단 7:13-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는 내용상 &lt;strong&gt;묵시서(默示書, apocalyptic literature)&lt;/strong&gt;에 해당한다. 꿈과 환상을 통하여 장차 이루어질 세계 역사를 미리 보여 주기 때문이다. 구약의 대표적인 묵시서는 에스겔서와 스가랴서와 다니엘서이며, 요한계시록은 이 세 책의 환상과 상징을 아주 많이 이어받는다. 에스겔의 보좌와 성전, 스가랴의 말들과 전쟁, 다니엘의 짐승들과 세계 제국이 요한계시록에서 종말의 완성으로 다시 나타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다니엘은 &lt;strong&gt;역사서&lt;/strong&gt;다. 다니엘서 &lt;strong&gt;제1장부터 제6장&lt;/strong&gt;까지가&amp;nbsp;&lt;strong&gt;다니엘과 세 친구가 실제로 경험한 신앙 승리의 역사&lt;/strong&gt;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특히 제1장에는 왕의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사건이 나오고, 제3장에는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아 풀무불에 던져진 사건이, 제6장에는 기도를 멈추지 않아 사자 굴에 던져진 사건이 나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다니엘은 &lt;strong&gt;예언서&lt;/strong&gt;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lt;strong&gt;제7장부터 제12장까지&lt;/strong&gt;는 네 짐승, 숫양과 숫염소, 칠십 이레, 힛데겔 강가의 환상을 통해 미래 역사를 예언으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니엘서는 역사서이면서 예언서이지만, 그 내용은 묵시서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히브리 성경은 다니엘서를 성문서로 구분하지만 기독교의 구약 배열은 예언서에 둔다. 전반부만 보면 역사적 신앙 간증이고, 후반부만 보면 미래 예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부분의 중심은 하나다. 세상 왕이 아무리 강해도 인간 나라를 실제로 다스리는 분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며, 믿음의 지조를 지키는 자가 마지막에 승리한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살펴볼 다니엘서 제2장은 이 두 부분을 이어 주는 중요한 장이다. 느부갓네살은 장래 일을 생각하다가 거대한 신상(첼렘=우상)의 꿈을 꾸었다. 그 신상은 금과 은과 놋과 쇠와 쇠와 진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돌 하나가 날아와 신상의 발을 치자 신상 아래에서부터 위로 전체가 산산이 부서졌다. 그런데 그 손대지 않은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했다(단 2:31-3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lt;strong&gt;손대지 아니한 돌은 하늘로부터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lt;/strong&gt;를 가리킨다. 세상 제국의 왕들이 세우는 나라는 흥했다가 쇠하고 결국 사라지지만, &lt;strong&gt;그리스도께서 세우시는 나라는 영원히 망하지 않는다.&lt;/strong&gt; 그분은 초림(初臨, first coming) 때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고, 재림(再臨, second coming) 때에는 사탄과 그를 따르는 세상 권세를 완전히 멸하실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다니엘은 어떻게 이 비밀을 알게 되었는가? 금과 은과 놋과 쇠와 쇠와 진흙은 각각 무엇을 가리키는가? 마지막 시대의 성도는 이 계시를 알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다니엘이 뜻을 정한 믿음으로 받은 은사와 높임, 느부갓네살의 꿈이 다니엘에게 계시된 과정, 신상이 보여 주는 세계 제국의 흥망성쇠, 쇠와 진흙이 섞인 발의 종말론적 의미, 돌이 신상을 부서뜨린 사건의 초림과 재림 성취, 손대지 아니한 돌이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는 이유, 그리고 믿음의 지조와 회개로 재림을 준비해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다니엘은 뜻을 정한 믿음으로 어떤 은사와 높임을 받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이 &lt;strong&gt;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할 수 있었던 출발점&lt;/strong&gt;은 &lt;strong&gt;제1장에 나오는 그의 결단&lt;/strong&gt;이었다. 그는 열네 살에서 열다섯 살 무렵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왕궁 자문위원 후보로 선발되었다. 삼 년 동안 갈대아의 학문과 언어를 배우고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으면 출세할 길이 열려 있었다. 그러나 왕의 음식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었고 율법이 금한 부정한 음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니엘은 출세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단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ldquo;뜻을 정하였다&amp;rdquo;는 말이 중요하다. 그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유리하면 믿고 불리하면 물러선 것이 아니다. 왕의 명령을 거역하면 자문위원의 길이 막히고 노예로 평생 벽돌을 굽다가 끝날 수도 있었지만, 먼저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환관장에게 무례하게 대항하지 않고 열흘 동안 채식을 먹여 시험해 달라고 지혜롭게 요청했다(단 1:9-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그 결단을 기뻐하셨다. 열흘 뒤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이 왕의 음식을 먹은 소년들보다 더 아름답고 윤택하게 보이게 하셨다. 이어 네 소년에게 학문과 모든 책을 깨닫는 지식과 지혜를 주셨고, 다니엘에게는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닫는 은사까지 더하셨다(단 1:15-17).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지혜를 받았지만 다니엘은 꿈과 환상을 해석하는 보너스까지 받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뜻을 정하여 실천하려고 했을 때에는 반드시 위기가 찾아온다. 그렇게 살면 가진 것을 다 잃을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위기를 말씀과 믿음으로 이겨 내면 하나님께서 더 큰 일을 맡길 수 있도록 그에게 선물로 은사와 능력을 주신다.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시는 것이다. 다니엘은 음식의 시험에서 믿음을 지켜 환상과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은사를 받았기에, 제2장에 가서 세계 역사의 비밀을 해석할 그릇으로 쓰임받을 수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다니엘 처럼 &amp;quot;뜻을 정한다&amp;quot;(단 1:8)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생활의 작은 영역에서도 분명한 경계를 세운다는 뜻이다. 필자를 전도한 고등학교 친구는 주일에도 오락실에서 갤러그의 마지막 단계까지 갈 만큼 오락을 좋아했다. 반대로 어떤 이는 예수님을 믿은 뒤 중학생인데도 더이상 만화를 보지 않겠노라로 결정하고 그 결정을 지키는 이도 있다. 무엇을 끊고 단절해야 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즐기는 것이 보이면 마음에서 먼저 결단해야 한다. 결단이 실현될 때 작은 간을 소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 때문에 강하고 담대해질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회개를 외치는 사명을 감당하던 중 예상하지 못했던 강력한 불의 은사를 받았다. 또한 장차 백마를 타고 그리스도 앞에서 마지막 시대의 전사들을 이끌어 가는 장수의 모습도 환상으로 보았다. 물론 이것은 필자가 받은 개인적인 영적 체험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가진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은사와 능력을 더하여 주신다는 사실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어떤 이는 사람의 신앙을 그가 어느 교단 소속인지를 통해 결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의 신앙은 그가 어느 소속인가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다. 개인이 실제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얼마만큼 성경 말씀을 따라가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필자는 WCC의 신학이나 신사도&amp;middot;빈야드 운동을 결코 따라가지 않는다. 그리고 특정 교단이 가르치는 교리의 전통보다 오직 성경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려고 한다. 다니엘도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를 배우기는 하였지만 결코 바벨론의 신을 따라가지 않았다. 세상 속에서 필요한 지식은 배우되, 마음의 주인은 바꾸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우리가 알 것은 내가 어느 교단이나 어떤 친교 단체에 속했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자동으로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가 어떤 사상을 가졌다고 해서 자녀도 반드시 그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각 사람이 무엇을 믿고 누구를 따르는지가 실은 중요한 것이다. 다만 교단이나 소속단체가 성경을 거스르는 믿음을 강요한다면 그때에는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느부갓네살의 신상 꿈은 어떻게 다니엘에게 계시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느부갓네살이 왕위에 오른 지 이 년째 되던 때였다. 그가 장래 일을 생각하다가 한 꿈을 꾸었다(단 2:1, 29). 그 꿈은 개인의 운세가 아니라 바벨론 이후 마지막 시대까지 이어질 세계 제국의 역사를 담은 계시적인 꿈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벨 신을 섬기는 이방 왕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꿈을 주어 인간 나라의 주권자가 누구인지를 알려 주고자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자 왕은 갈대아의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들을 불러들여 꿈을 해석하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꿈의 내용을 말해 주지 않은 채 그 꿈이 무엇이었는지부터 알아맞히고 해석까지 하라고 했다. 알아내지 못하면 몸을 쪼개고 집을 거름터로 만들겠다고 위협했다. 술사들은 왕이 꿈을 말해 주어야 해석할 수 있으며, 육체와 함께 살지 않는 신들 외에는 이를 밝힐 자가 없다고 대답했다(단 2:2-1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자 왕은 크게 노하여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근위대장 아리옥이 지혜자들을 죽이러 나갔을 때 다니엘도 그 명령을 듣게 되었다.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젊은 청년 관료였던 다니엘은 급히 왕에게 시간을 구했다. 그리고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이 은밀한 일에 관하여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자고 요청했다(단 2:12-1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날 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환상으로 그 비밀을 보여 주셨다. 느부갓네살이 꿈에서 보았던 신상의 모습과 그 의미를 그대로 알게 하신 것이다. 다니엘은 먼저 하나님을 찬송했다. 지혜와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고 세우시며,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단 2:19-2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꿈과 환상은 서로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다. 꿈은 잠자는 동안 주어지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꿀 수 있다. 느부갓네살이 그 예다. 환상은 깨어 있는 중에 영적인 장면을 보는 경우가 많으며 꿈보다 더 선명한 계시가 될 수 있다. 느부갓네살은 꿈을 꾸었지만 다니엘은 밤 환상으로 그 꿈과 해석을 받았다. 중요한 것은 꿈과 환상의 주인이 사람이 아니라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느부갓네살은 제2장과 제4장에서 두 번 중요한 꿈을 꾸었다. 제2장의 거대한 신상은 바벨론부터 마지막 시대까지 이어질 제국의 역사를 보여 주고, 제4장의 큰 나무는 교만해진 느부갓네살 개인이 낮아졌다가 회복될 일을 보여 준다(단 4:10-27). 후반부의 다니엘은 제7장에서 네 짐승, 제8장에서 숫양과 숫염소, 제9장에서 칠십 이레, 제10장부터 제12장에서 힛데겔 강가의 환상을 본다. 앞의 두 꿈이 후반부 네 환상의 문을 여는 셈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은 왕 앞에 나아가 바벨론의 지혜자와 술객이 이 비밀을 보인 것이 아니며, 오직 하늘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이 계신다고 증언했다(단 2:27-28). 그는 자기 능력을 자랑하지 않고 계시의 근원을 하나님께 돌렸다. 그 결과 무명의 포로 소년은 왕에게 엎드려 절을 받을 만큼 높임을 받고,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며 모든 지혜자의 어른이 되었다(단 2:46-49).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해 애굽의 총리가 된 것처럼 다니엘도 하나님께 받은 꿈 해석으로 제국의 고위 관료가 되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신상의 다섯 부분은 어떤 세계 제국의 흥망성쇠를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느부갓네살이 본 신상은 크고 광채가 찬란하며 모습이 심히 두려웠다. 머리는 순금이고, 가슴과 두 팔은 은이며,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고, 두 다리는 쇠이며, 발과 발가락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다(단 2:31-33). 이는 세계 제국들이 차례로 일어나고 사라질 것을 한 신상 안에 압축해 보여 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순금 머리는 바벨론 제국과 느부갓네살 왕&lt;/strong&gt;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주시고 사람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까지 다스리게 하셨다. 다니엘은 왕에게 &amp;ldquo;왕은 곧 그 금 머리니이다&amp;rdquo;라고 해석했다(단 2:37-38). 느부갓네살은 자신이 만왕의 왕인 것처럼 교만해졌고, 제3장에서는 실제로 금 신상을 만들어 모든 사람에게 절하게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은으로 된 가슴과 두 팔은 바벨론 뒤에 일어날 메대와 바사 제국&lt;/strong&gt;을 가리킨다. 이 제국의 대표적인 왕은 고레스다. 그는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유다 백성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건축하도록 허락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고레스를 기름부음받은 자와 목자로 부르셨다(사 44:28; 45:1). 느부갓네살이 자신을 높였다면 고레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쓰임받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놋으로 된 배와 넓적다리는 헬라 제국&lt;/strong&gt;을 가리킨다. 알렉산더 대왕은 메대와 바사를 무너뜨리고 빠른 속도로 넓은 지역을 정복했다. 다니엘서 제7장의 표범과 제8장의 숫염소도 헬라 제국의 신속한 정복을 보여 준다(단 7:6; 8:5-8, 21). 제2장의 신상과 제7장의 네 짐승은 같은 세계 역사를 서로 다른 상징으로 반복해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쇠로 된 두 다리는 로마 제국&lt;/strong&gt;을 가리킨다. 쇠가 모든 것을 부서뜨리는 것처럼 로마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앞선 나라들을 깨뜨리고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단 2:40). 다니엘이 본 세계 제국의 큰 줄기는 바벨론, 메대와 바사, 헬라, 로마로 이어진다. 그 뒤에는 로마의 유산을 이어받은 여러 나라가 나타나지만 이전과 같은 하나의 세계 제국은 세워지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금 머리에서 쇠 다리까지 내려오는 순서는 시간의 흐름이다. 그러나 돌이 발을 치고 신상이 무너질 때에는 쇠와 놋과 은과 금이 한꺼번에 부서진다. 이는 마지막 제국 안에 앞선 모든 제국의 우상숭배와 폭력과 교만의 정신이 함께 들어 있음을 보여 준다. 바벨론의 종교적 교만, 메대와 바사의 법과 통치, 헬라의 문화, 로마의 군사력은 형태를 바꾸어 마지막 시대까지 이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쇠와 진흙이 섞인 발과 열 발가락은 로마 이후 마지막 시대의 분열된 나라들&lt;/strong&gt;을 가리킨다. 그 나라들은 쇠처럼 강한 부분과 진흙처럼 약한 부분이 함께 있고 서로 결합하려 하지만 완전히 하나가 되지 못한다(단 2:41-43). 바로 이 발의 시대에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날아와 신상을 치므로 세상 제국의 역사가 끝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귀신의 집은 흙집과 쇠집과 놋집의 형태로 나타나며, 그 가운데 놋집이 가장 강하다. 그러나 은과 금으로 된 귀신의 집은 보지 못했다. 금은 하나님의 영원한 신성을, 은은 죄의 독을 제거하고 속죄(贖罪, atonement)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역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느부갓네살이 자신을 금 머리로 높인 것은 하나님의 자리를 흉내 내려는 사탄의 교만을 드러낸다. 이 부분은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직접 경험한 내용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쇠와 진흙이 섞인 발은 마지막 시대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쇠와 진흙이 섞인 발은 강함과 약함이 공존하지만 서로 붙지 않는 마지막 시대의 특징을 보여 준다. &amp;ldquo;그들이 다른 민족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쇠와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amp;rdquo;라고 했다(단 2:43). 사람들은 정치와 경제와 혼인을 통해 하나가 되려고 하지만 근본이 다른 세력은 끝내 완전히 섞이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과거에는 이 발과 열 발가락을 주로 유럽연합&lt;/strong&gt;으로 해석했다. 로마 제국의 영역에서 여러 나라가 생겼고 유럽연합을 이루었으나 민족과 국가의 차이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사건도 그 결합이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러나 &lt;strong&gt;마지막 시대의 더 큰 대립은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결합과 충돌로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lt;/strong&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로마 제국의 유산은 기독교 문명을 통해 세계로 퍼졌고, 중동과 옛 동로마의 많은 지역에서는 이슬람 세력이 성장했다. 오늘날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은 경제와 외교를 위해 협력하지만 신앙과 문명의 뿌리까지 하나가 되지는 않는다. 터키가 국호의 국제 표기를 튀르키예로 바꾸며 이슬람권의 중심성을 강화하려는 모습,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긴밀히 협력하는 모습에서도 함께 움직이면서도 섞이지 않는 양상을 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장차 인공지능과 세계적인 경제 체계가 국가와 종교를 하나로 묶으려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세계 정부와 마지막 통치자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쇠와 진흙은 끝내 하나가 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통합은 완전한 평화의 나라를 이루지 못하며, 마지막에는 세상 권세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방향으로 모이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의 계시는 역사가 우연히 흘러가지 않는다고 선포한다. 바벨론부터 마지막 발가락 시대까지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고 정하신 범위 안에서 진행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 제국이나 세계 정부를 하나님의 나라로 착각하지 않아야 한다. 겉으로 강력해 보이는 쇠의 권세도 진흙처럼 무너질 요소를 품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손대지 아니한 돌 앞에서 끝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돌이 신상을 부서뜨린 사건은 초림과 재림에서 어떻게 성취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느부갓네살이 바라보는 동안 사람의 손으로 떼어 내지 아니한 돌이 나와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쳤다. 그러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한꺼번에 부서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처럼 바람에 날아갔다. 신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했다(단 2:34-35). 신상의 머리가 아니라 발을 먼저 쳤다는 것은 이 심판이 세계 제국의 마지막 시대에 일어남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돌이 발을 치자 발에서부터 두 다리와 배와 가슴과 머리까지 거꾸로 무너진다. 마지막 시대의 권세가 심판받을 때 바벨론에서 시작된 사탄의 제국 체계 전체가 끝나는 것이다. 인간이 쌓아 올린 정치와 종교와 경제 권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나라는 온 세계를 가득 채우는 큰 산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이 예언은 예수님의 초림에서 먼저 시작되었다&lt;/strong&gt;.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復活, resurrection)을 통해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다(창 3:15; 골 2:14-15). 그러나 사탄과 세상 제국이 그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탄은 머리에 치명상을 입었지만 그의 세력은 마지막 때까지 활동하며 성도들을 미혹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이해한 종말의 사건 순서에 따르면 예수께서 승천하신 뒤 사탄 마귀는 무저갱(無底坑, abyss)에 갇혔고, 그를 대신하는 악한 영들이 세상에서 활동해 왔다. 마지막 때 다섯째 나팔이 울리면 무저갱이 열리고 그 세력이 잠시 올라오며, 적그리스도(Antichrist)의 통치는 더욱 강해진다(계 9:1-11). 그 뒤 재림하시는 예수께서 아마겟돈에서 그들을 치신다. 초림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한 시작이고 재림은 그 왕국을 완전히 끝내는 완성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그러므로 손대지 아니한 돌의 완전한 성취는 재림 때 이루어진다&lt;/strong&gt;.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군대와 함께 전사요 심판주로 오셔서 아마겟돈 전쟁에서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그들을 따르는 세력을 치실 것이다(계 19:11-21). 그때 사탄이 지배하던 세상 제국은 산산이 부서지고 그리스도의 왕국이 온 땅을 다스리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무천년설(無千年說, amillennialism)은 이 돌을 주로 초림하신 그리스도와 교회의 확장으로 해석하고,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는 재림하실 그리스도의 종말 심판으로 해석한다. 초림에서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 부분적인 성취가 시작되었다는 점은 옳다. 그러나 신상 전체가 겨처럼 사라지고 돌이 온 세계를 가득 채우는 완전한 성취는 재림 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 예언의 중심은 재림하실 그리스도에게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지막 때에는 무저갱이 열리고 그곳에 갇힌 악한 영들이 올라오는 사건이 있으며, 이어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세상을 장악하려 할 것이다(계 9:1-11; 11:7). 그러나 그들의 때는 짧다. 하늘로부터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세력을 치시고 영원한 왕권을 드러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손대지 아니한 돌은 바로 이 최종 승리를 보장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손대지 아니한 돌은 왜 재림하실 그리스도의 예표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히브리어에서 &lt;strong&gt;돌은 אֶבֶן(에벤)&lt;/strong&gt;이고 손은 יָד(야드)다. &amp;ldquo;에벤에셀&amp;rdquo;은 도움의 돌이라는 뜻이다(삼상 7:12). 다니엘서 제2장은 아람어로 기록되었지만, &amp;ldquo;손대지 아니한 돌&amp;rdquo;이라는 표현의 핵심은 분명하다. 사람의 손으로 깎거나 떼어 내어 만든 돌이 아니라 인간의 기원과 능력 밖에서 나온 돌이라는 뜻이다. 곧 인간이 창조하거나 세운 왕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신적인 왕을 가리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돌로 증언&lt;/strong&gt;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람에게는 버림받았으나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라고 불렀다(벧전 2:4). 그분은 죽은 우상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돌이며, 그에게 나아오는 성도들도 산 돌처럼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벧전 2:5). 다니엘서의 돌이 세계 제국을 끝내는 왕권을 보여 준다면, 베드로전서의 산 돌은 죽음을 이기고 교회를 세우는 생명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제7장의 인자 같은 이도 같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앞에 나아가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고, 모든 백성과 나라와 다른 언어를 말하는 자들의 섬김을 받는다.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단 7:13-14). 제2장의 돌과 제7장의 인자는 모두 하늘에서 와서 영원한 왕국을 세우는 분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단 2:44-45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 왕께서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은 참되고 이 해석은 확실하니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돌은 세상 왕국을 조금 개선하는 정치 지도자가 아니다. 세상 제국의 뿌리를 부서뜨리고 다른 백성에게 넘어가지 않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만왕의 왕이다. 그분의 왕권은 전쟁하고 깨뜨리며 심판하는 왕권이다.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으로 초림하신 예수께서 다니엘의 손대지 아니한 돌로 재림하여 구원 경륜을 완성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손대지 아니한 돌에는 그리스도의 세 특징이 들어 있다. 첫째, 사람의 손에서 나오지 않았으므로 그 기원이 하늘에 있다. 둘째, 신상을 부서뜨리므로 사탄의 제국을 심판하는 권세가 있다. 셋째,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므로 그 나라가 영원하고 우주적이다. 하늘적 기원과 심판의 권세와 영원한 왕국이 한 돌의 상징 안에 함께 들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따라서 성도의 소망은 인간이 만든 제국이나 지도자에게 있지 않다. 어떤 왕도 스스로 영원한 나라를 만들 수 없다. 왕들을 세우고 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만이 사탄의 왕국을 끝내고 영원한 나라를 세우신다. 손대지 아니한 돌은 재림하실 그리스도의 하늘적 기원과 심판의 권세와 영원한 통치를 함께 보여 주는 예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마지막 시대 성도는 어떻게 믿음의 지조와 회개로 재림을 준비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지막 시대의 &lt;strong&gt;첫 번째 준비는 뜻을 정하는 것&lt;/strong&gt;이다. 다니엘은 왕의 음식 앞에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미리 결정했다. 위기가 닥친 뒤에 계산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 마음을 정했다. 우리도 예수님만 믿고 술과 우상숭배와 음란과 거짓을 따르지 않겠다고 결정해야 한다. 세상의 압력이 강해져도 말씀의 기준을 바꾸지 않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은사를 구해야&lt;/strong&gt; 한다. 다니엘은 친구들과 함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밤 환상으로 비밀을 보여 주셨다. 그 은사는 다니엘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방 왕에게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증언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불의 은사와 환상과 분별력도 자신을 높이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영혼 구원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회개(悔改, repentance)로 자신과 가정과 민족을 깨끗하게 해야&lt;/strong&gt; 한다. 마지막 시대에는 악한 영의 활동이 더욱 강해지고 세상은 적그리스도의 통치 체계를 향해 움직인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회개하여 내 속의 악한 영을 몰아내고, 가족에게 역사하는 악한 영을 처리하며, 나라와 민족을 짓누르는 악한 영도 몰아내야 한다. 회개는 개인의 구원만이 아니라 재림하실 주님의 전사를 준비하는 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미국이나 유명한 해외 사역을 무조건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께서 지금 어디에서 역사하시는지를 분별해야&lt;/strong&gt; 한다. 예언과 임재와 쓰러짐만 반복하면서 실제로 귀신이 떠나지 않고 사람이 거룩해지지 않는다면 열매를 살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대한민국에서 회개와 천국 복음을 일으키고, 악한 영을 몰아낼 전사들을 준비하고 계신다. 우리가 이 사명을 감당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을 지키실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대한민국이 군사력과 경제력만으로 마지막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아니다. 회개를 통해 자기 안과 가정과 민족의 악한 영을 몰아내고, 아시아와 유럽과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할 전사의 분량이 채워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명을 위해 선교사들을 보내고 계신다. 장미준 선교사와 같이 다시 선교지로 들어가는 종들도 완악한 땅을 변화시키는 주역으로 준비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다니엘처럼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증언해야&lt;/strong&gt; 한다. 그는 바벨론을 떠나 광야로 숨지 않았다. 제국의 관료로 충성되게 일하면서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고, 왕 앞에서 하늘의 하나님을 선포했다. 그 결과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의 하나님이 모든 신 중의 신이며 모든 왕의 주재라고 고백했다(단 2:47). 우리도 직장과 학교와 나라에서 신앙의 지조를 지켜 윗사람들이 &amp;ldquo;네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다&amp;rdquo;라고 고백하게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지막 시대는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가 아니라 정신을 차릴 때다. 신상의 발과 열 발가락 시대가 가까워질수록 세상 통합의 압력과 신앙의 혼합도 강해질 것이다. 그러나 손대지 아니한 돌이 반드시 와서 신상을 부서뜨린다. 그러므로 믿음을 굳게 지키고 날마다 회개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작은 일에 충성하여 마지막 시대의 전사로 준비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다니엘이 뜻을 정한 믿음으로 받은 은사와 높임, 느부갓네살의 꿈이 계시된 과정, 신상의 다섯 부분이 보여 주는 세계 제국의 흥망성쇠, 쇠와 진흙이 섞인 발의 종말론적 의미, 돌이 신상을 부서뜨린 사건의 초림과 재림 성취, 손대지 아니한 돌이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는 이유, 그리고 믿음의 지조와 회개로 재림을 준비하는 길을 살펴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믿음의 역사는 뜻을 정하는 데서 시작된다&lt;/strong&gt;. 다니엘은 출세와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왕의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결단을 보시고 지혜와 분별력을 주셨으며, 꿈과 환상을 해석할 은사까지 더하셨다. 우리도 작은 시험에서 말씀을 선택해야 큰 사명을 맡을 그릇으로 준비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세계 역사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다&lt;/strong&gt;. 바벨론의 느부갓네살도 자기 꿈을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꿈과 해석을 보여 주셨다. 금과 은과 놋과 쇠로 상징된 제국들이 차례로 일어났다가 사라진 사실은 왕들을 세우고 폐하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증언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쇠와 진흙의 발은 마지막 시대의 불완전한 연합을 보여 준다&lt;/strong&gt;. 민족과 국가와 종교가 정치와 경제로 결합하려 해도 완전히 하나가 되지 못한다. 성도는 인간이 만든 세계 정부에서 완전한 평화를 기대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손대지 아니한 돌은 초림과 재림의 그리스도를 함께 보여 준다&lt;/strong&gt;. 예수께서는 초림 때 십자가와 부활로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고, 재림 때에는 아마겟돈에서 사탄의 세상 체계를 완전히 부서뜨리실 것이다. 그분은 사람의 손으로 세워진 왕이 아니라 하늘에서 오시는 만왕의 왕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마지막 시대에는 믿음의 지조와 회개를 함께 붙들어야 한다&lt;/strong&gt;. 세상 학문과 직무에는 충성하되 우상과 죄에는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 날마다 회개하여 자신과 가정과 민족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능력을 영혼을 살리고 재림의 길을 준비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상 제국은 아무리 강해도 정해진 때가 되면 겨처럼 사라진다. 그러나 손대지 아니한 돌이 세우는 나라는 영원히 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 권력의 위세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늘로부터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믿음의 지조를 지켜야 한다. 그리하여 날마다 회개하고 맡겨진 일에 충성함으로 재림하실 왕의 길을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31일(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다니엘서 2장의 &lt;strong&gt;&amp;#39;손대지 아니한 돌&amp;#39;&lt;/strong&gt;을 중심으로,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는&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주권과 심판&lt;/strong&gt;을 조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금, 은, 놋, 철로 상징되는 세상 제국들이 결국&amp;nbsp;&lt;strong&gt;하늘로부터 임한 신성한 돌&lt;/strong&gt;에 의해 파괴될 운명임을 강조하며, 이를 장차 재림하여 악한 세상을 끝내실&amp;nbsp;&lt;strong&gt;그리스도의 예표&lt;/strong&gt;로 설명합니다. 특히 다니엘이&amp;nbsp;&lt;strong&gt;뜻을 정하여&lt;/strong&gt;&amp;nbsp;신앙의 순결을 지켰을 때 하늘의 지혜를 얻은 것처럼, 성도들 역시 혼탁한 마지막 시대에&amp;nbsp;&lt;strong&gt;회개와 믿음의 지조&lt;/strong&gt;를 지켜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세속 권력의 유한함과&amp;nbsp;&lt;strong&gt;하나님 나라의 영원성&lt;/strong&gt;을 대비시키며, 독자로 하여금 깨어 있는&amp;nbsp;&lt;strong&gt;영적 군사&lt;/strong&gt;로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할 것을 촉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77)]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02)(렘16:10~13 )_2026년 08월 28일(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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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8T08:45:14+09:00</published>
		<updated>2026-08-28T17:18:13+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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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77)]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02)(렘16:10~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dSaZ7U5Jdy4 기독론(177)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02) (렘 16:10-13)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성경은 어느 한 부분만 보아서는 안 된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만 붙들어서도 안 되고, 어느 신학...</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77)]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02)(렘16:10~13)&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dSaZ7U5Jdy4&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dSaZ7U5Jdy4?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77)&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0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렘 16:10-13)&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은 어느 한 부분만 보아서는 안 된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만 붙들어서도 안 되고, 어느 신학자나 종교개혁자의 말만 반복해서도 안 된다. 인간은 불완전하므로 한 사람이 모든 진리를 다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구원을 받으려면 로마서나 갈라디아만 볼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과 야고보서와 히브리서와 요한계시록까지 함께 보아야 믿음으로 시작된 구원(救援, salvation)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알 수 있다. 성경 전체가 무엇을 말하는지 살피지 않고 편하고 쉬운 길만 붙들게 되면 마지막 결산의 날에 심히 당황하게 되거나 슬피 울며 이를 갈 수도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람은 어떻게 회개하고 어떻게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예레미야 16장 10절부터 13절에서 남유다 백성은 하나님께 묻는다. 도대체 여호와께서 왜 남유다에 이렇게 큰 재앙을 선포하셨으며 우리가 무슨 죄를 범했느냐 라고 말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두 가지를 함께 대답하신다. 먼저 그들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우상에게 절했고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셨다. 이어서 당시 백성은 자기 조상들보다 더욱 악을 행했고, 각자 완악한 마음을 따라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심판의 원인은 조상들의 죄만도 아니고 현재 세대의 죄만도 아니었다. 조상들의 죄와 자기 죄가 함께 쌓여 마침내 형벌의 분량이 차버린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왜 회개(悔改, repentance)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할 때에도 두 가지 방면을 함께 보아야 한다. 조상들의 죄로 들어와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면이 있고, 자신이 직접 죄를 지어 불러들인 방면이 있다. 조상죄만 탓하며 자기 책임을 피해서도 안 되고, 자기 죄만 보며 여러 세대에 걸쳐 내려온 영적 영향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예레미야는 조상들이 범죄하고 사라졌지만 후손이 그 죄악의 결과를 담당한다고 말하였으며(애 5:7), 동시에 신 포도를 먹은 사람의 이가 신 것처럼 각 사람이 자기 죄악으로 죽는다고도 말했다(렘 31:29-30). 이 두 말씀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은 죽은 조상을 구원하거나 조상의 영원한 죄책을 대신 담당하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그 죄를 통하여 후손에게 내려온 더러운 악한 영들의 영향을 끊고 자신을 정결(淨潔)하게 하기 위해서다. 반면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는 일은 자기 영혼의 구원과 직접 연결된다. 예수님을 믿은 뒤에도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고(계 3:5), 그리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없게 되는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계 21:27; 22:14-1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누구든지 믿을 때에 예수님의 피로 속죄(贖罪, atonement)를 받고 칭의(稱義, justification)를 얻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은혜다(롬 5:1). 그러나 칭의는 구원의 전 과정을 끝내는 종착점이 아니라 구원 여정에 들어서는 출발점이다. 그 뒤에는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지은 죄를 자백하며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삶이 뒤따라야 한다(계 22:14).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가 말한 것처럼 행함은 믿음을 온전하게 한다(약 2:22). 마지막에는 우리가 믿는다고 입술로 고백했는지만이 아니라 그 믿음이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도 주님 앞에 드러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회개의 분량을 단순한 횟수로 계산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천 번을 회개하고도 많은 영들이 남아 있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그보다 적게 회개했는데도 귀신의 집이 무너지는 특사 조치를 받을 수도 있다. 차이는 &lt;strong&gt;조상들이 지은 죄와 자신이 직접 지은 죄의 분량, 그리고 그 죄를 얼마나 진실하게 통회했는가&lt;/strong&gt;에 달려있다. 하나님께서는 기계적인 반복보다 죄를 슬퍼하며 가슴을 찢고 회개하는 중심을 보신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칭의가 구원 여정의 출발점인 이유, 믿음과 행함과 회개의 관계, 회개해야 할 죄의 세 범주, 조상죄 회개의 목적, 조상죄와 자기 죄가 함께 쌓인 결과, 칠십 년의 형벌과 회개 분량의 관계, 그리고 특사 조치가 진실한 통회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칭의는 왜 구원의 완성이 아니라 구원 여정의 출발점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칭의&amp;#39;란 무엇인가? 칭의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은혜다. 죄인은 자기 선행으로 과거의 죄를 없앨 수 없고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만들어 낼 수도 없다. 그러므로 믿음 없이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아니 구원의 여정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다. 누구나 자신이 죄인이며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자이심을 믿는 것을 회심(回心, conversion)이라고 부른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그의 죄를 예수님의 피로 덮어 주시고 생명 주는 영을 집어넣어 그를 거듭나게 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죄가 예수님의 피로 덮였다는 말과 죄의 모든 흔적이 실제로 사라졌다는 말은 결코 같지 않다.&amp;nbsp; 즉 예수님을 믿어도 죄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처음 처음 믿을 때 자신의 지은 모든 죄를 하나씩 하나씩 다 기억하여 자백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면 아마도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죄사함을 받고 생명을 받을 수 있도록 먼저 죄를 덮어버리고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것이다. 하지만 죄를 통하여 들어온 뱀들과 귀신들이 그 순간 자동으로 모두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칭의를 얻은 뒤에도 성질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혈기와 음란과 거짓의 유혹을 받으며, 오래된 저주의 영향 속에서 고통받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주 예수님을&amp;nbsp; 믿은 뒤에도 자백하는 회개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도 칭의를 결코 구원의 완성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앞으로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롬 5:9). 이미 얻은 칭의와 장차 받을 구원을 구별해놓은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성결(聖潔)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롬 5:1). 믿음으로 구원의 문에 들어섰다면, 이제는 그 은혜를 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계속 죄를 사랑하고 이웃을 미워하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면, 그 믿음이 온전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 믿음이 최종적으로 그를 구원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알아야 할 사실은 믿었다는 이유가 그의 구원을 최종적으로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구원받은 자라고 구원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대표적인 말씀이 바로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amp;#39;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종&amp;#39;의 비유이다.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은 주인으로부터 큰 빚을 탕감받았지만(여기서 탕감은 내버려두다는 뜻이다), 자기에게 작은 빚을 진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러자 주인은 그가 받은 은혜를 거두어들이고 다시 그를 옥졸에게 넘기고 말았다(마 18:23-35). 용서받은 자는 용서받은 자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는 큰 용서를 받았으면서 자기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그는 용서받은 자답게 사는 삶이 아니다. 그런 자는 훗날 그가 받은 용서가 취소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구원의 완성은 무엇인가? 자신이 죽는 마지막 날까지 믿음을 지켜내어,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가는 데 있다.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했으며, 주께서 자신을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딤후 4:7-8, 18). 요한계시록의 표현으로 말하면 생명책(生命冊, Book of Life)에 그의 이름이 남아 있고, 자기 두루마기를 빨아 문들을 통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야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칭의를 귀하게 붙들어야 하겠지만, 그것을 회개와 순종을 생략하는 구원 보증서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칭의를 받은 순간부터 진짜 구원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믿음은 행함과 회개를 통해 어떻게 온전해지고 끝까지 보존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은 행함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믿음과 행함은 사실 따로 존재하는 관념이 아니다. 참으로 주님을 믿는 사람은 그 믿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amp;ldquo;주여, 주여&amp;rdquo;라고 말하는 사람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들어간다고 하셨다(마 7:21). 믿음으로 구원을 시작하였지만, 마지막에는 그 믿음이 순종의 열매를 맺고 있었는지를 주님께서 확인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행위로 구원을 사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행함은 믿음을 대신하는 값이 아니라 살아 있는 믿음이 밖으로 드러난 증거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는 그의 쓴 야고보서에서 이 사실을 매우 분명하게 말하였다.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이 어떻게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하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다. 아브라함의 믿음도 역시 이삭을 드리는 행함과 함께 일했고 그 행함으로 온전하게 되었다고 했다. 기생 라합도 정탐꾼을 영접하고 다른 길로 내보내는 행함으로 믿음을 드러냈다고 했다(약 2:14-2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약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믿음과 행함을 서로 싸우게 만들면 안 된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구원의 첫 노정에 필요한 믿음과 그에 따르는 속죄와 칭의를 강조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율법을 지켜 자신의 행위로 의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전가받아 의롭다 하심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야고보서는 다르다. 야고보서는 구원의 노정에 끝부분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믿음을 강조한다. 믿었던 사람이 이제 인생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자신에 맺은 열매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생의 노정에서 그가 맺은 열매가 죄밖에 없다면 그의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구원을 논하고자 할 때에는 출발점의 말씀(속죄와 칭의)과 결승점의 말씀(열매)을 함께 보아야 한다. 하나를 붙들고 다른 하나를 성경에서 빼려고 하면 온전한 구원관에 이를 수 없다. 그러나 종교개혁자 루터는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그는 행위를 강조하는 야고보서를 사도적 저작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했다. 이 어찌 해괴망측한 독단인가!&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처음에 가졌던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 어려움이 닥칠 때 입술로 주님을 부인하고 형편이 좋아지면 다시 믿겠다고 하는 태도는 신실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한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는가! 결혼한 사람이 한 배우자만 바라보아야 하듯, 그리스도와 언약을 맺은 사람은 다른 신과 세상의 쾌락을 따라 행하는 영적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will)를 존중하시므로 언제나 억지로 당신에게 순종하게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무엇을 믿고 누구를 따라갈 것인지 우리는 날마다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혹시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서 우리가 넘어졌다면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믿음의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주님께 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믿은 뒤 지은 죄를 감추면서 &amp;ldquo;나는 이미 칭의를 얻었다&amp;rdquo;고 말하는 것은 믿음을 보존하는 길이 아니다. 죄를 자백하고 예수님의 피로 씻을 때 믿음이 다시 살아 움직이고, 성령의 인도를 따를 힘이 생긴다. 믿음은 필수적인 시작이며, 회개와 순종은 그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온전하게 하는 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 사역 현장에서 관찰한 바로는, 임종을 앞둔 성도에게 천사와 악한 영들이 다가와 그 영혼을 데려가려고 다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의 영혼이 이미 구원을 받아서 생명책에 기록되었지만 그후에 지은 죄가 많아서 구원을 잃어버릴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에 저승사자(악령들)가 그를 데려가려고 온 것이다. 고로 이 때에는 정말 주변에서 기도해주면서 그로 하여금 회개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 각각 선악간에 몸으로 행한 것을 받게 된다고 말씀한다(고후 5:10). 그러므로 이때에 가족은 임종을 맞고 있는 자에게 복음을 다시 들려주고, 의식과 동의가 가능한 범위에서 자신이 지은 죄를 진실하게 고백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때 회개를 돕는 기도문은 주문이 아니라 잊고 있던 죄를 하나님 앞에 인정하도록 돕는 안내자가 되어주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회개해야 할 죄의 세 범주는 무엇이며 구원과 정결에 어떻게 연결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보여 주는 회개의 범주는 총 세 가지다. &lt;strong&gt;첫째는 조상들이 죄를 지었지만 자신은 같은 죄를 직접 짓지 않은 경우&lt;/strong&gt;다. 므낫세는 여호와의 성전에 우상의 제단을 쌓고, 일월성신을 섬기고,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찾아 물었다. 하나님께서는 므낫세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죄 때문에 남유다를 여러 민족 가운데 흩겠다고 하셨다(대하 33:1-7; 렘 15:4). 후대 사람이 므낫세와 같은 죄를 직접 짓지 않았어도 그 후손이 그가 지은 죄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애 5: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15:4&amp;nbsp;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으리라&amp;nbsp;&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애 5:7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 경우 그의 후손이 자신의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는 목적은 죽은 조상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조상의 구원 여부는 그가 살아 있을 때, 그가 하나님과 맺은 관계에 따라 이미 결정되어 더 이상 할 수 있는 영역이 없다. 그의 후손이 회개한다고 해서 죽은 조상의 영원한 운명이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상죄 회개는 그 죄로 인해 후손에게 내려온 더러운 영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그 더러운 영들로부터 자신을 정결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 구별을 놓치면 조상죄 회개를 구원의 조건처럼 오해하거나, 반대로 구원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정결의 필요까지 버리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는 자신의 조상들도 죄를 지었고 자신도 같은 죄를 지었거나 더 큰 죄를 지은 경우&lt;/strong&gt;다. 예레미야 16장에서 하나님은 조상들이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말씀하신 뒤, 당시 백성이 조상들보다 더욱 악을 행했다고 말했다(렘 16:11-12). 그래서 예레미야는 &amp;ldquo;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amp;rdquo;을 함께 인정했다. 그리고 그들의 조상들이 지은 죄보다도 현재 살고 있는 이들의 죄악이 더 크다고 말했다. 한편 다니엘도 예루살렘이 수치를 당한 이유를 &amp;ldquo;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죄악&amp;rdquo;이라고 고백하고 있다(렘 14:20; 단 9:16). 그러므로 이때에 회개할 때에는 자기의 조상죄만 회개해서는 안 된다. 자기가 조상들이 지은 죄들로 내려온 악한 영들의 영향으로 더 많은 죄를 저질렀음을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지금 자신이 당하고 있는 형벌을 조상탓으로 여기지 말고, 자신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철저히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는 조상들이 같은 죄를 짓지 않았어도 자신이 죄를 지은 경우&lt;/strong&gt;다. 예레미야는 또 한 가지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다고 해서 아들의 이가 신 것이 아니라, 신 포도를 먹는 사람마다 자기 이가 시며 각 사람이 자기 죄악으로 죽는다고 말했던 것이다(렘 31:29-30). 이는 에스겔 18장에도 매우 강조해서 나온다(겔 18:20). 이는 개인의 자유의지와 책임을 분명히 한 말씀이다. 조상의 배경이 깨끗하더라도 내가 우상을 섬기고 거짓말하고 음란과 혈기에 빠지면 그 죄의 결과를 내가 받기 때문이다. 자기 죄에 대한 회개는 자기 구원과 직접 연결되므로 미룰 수 없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31:29-30&amp;nbsp;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amp;nbsp;&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18:20&amp;nbsp;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기도문은 이 세 범주를 모두 함께 다 다룬다. 조상 제사, 부처와 불교, 무당과 점쟁이, 미신과 잡신을 섬긴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고, 동시에 교만과 거짓과 음란과 혈기와 분노 같은 생활 및 성품상의 죄를 회개하기 때문이다. 우상숭배의 죄를 지으면 귀신들이 들어오고, 생활과 성품상으로 죄를 지으면 뱀이 들어온다는 것은 필자가 회개와 축사 현장에서 확인한 영적 작동 원리이다. 이처럼 악한 영들은 두 종류가 있다. 그러나 이 영들은 서로 얽혀 있으므로 우상숭배만 회개하고 생활상에 짓는 자범죄를 숨기거나, 자범죄만 말하고 조상 우상숭배의 죄를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조상죄 회개는 왜 조상의 구원이 아니라 후손의 정결을 위한 것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보통 그리스인들이라면 &amp;ldquo;왜 내가 조상의 죄를 회개해야 하는가&amp;rdquo;라는 반응이 나온다. 조상이 지은 죄는 조상의 책임이고 나는 내가 지은 죄만 책임지면 된다는 것이다. 영원한 구원의 책임만 놓고 보면 각 사람이 자기 믿음과 자기 죄에 대하여 판단받는 것이 맞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성경은 조상의 죄가 후손의 현실과 영적 상태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출애굽기 20장 5절은 하나님께서 우상을 섬기는 자의 죄악을 삼사 대까지 갚는다고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와 예레미야애가도 조상의 죄가 후대의 심판에 영향을 미친다고 증언하고 있다(렘 15:4; 애 5: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조상죄의 영향은 그의 후손이 조상의 죄책을 그대로 물려받아 조상 대신 지옥에 간다는 뜻이 아니다. 그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이 후손에게 내려와서 유혹하고 억압하며 저주를 주며, 같은 죄를 반복하도록 만드는 영적 영향이다. 조상이 제사를 오래 지내고 무당과 점쟁이를 의지했다면 그와 관련된 영들이 후손의 육체와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그 영들은 그 가문이 음란에 약한지, 혈기와 거짓과 탐욕에 약한지, 교만에 약한지를 알고 더 교활하게 죄로 끌고 간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그 유혹을 따른 자기 책임도 사라지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lt;strong&gt;조상죄 회개는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결의 문제&lt;/strong&gt;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했다(요일 1:9). 필자는 이 정결을 죄와 연결된 더러운 영이 떠나는 실제적인 과정으로 본다. 조상이 제사한 죄를 후손이 자기 가문의 죄로 인정하고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자백할 때, 그 죄를 근거로 붙어 있던 영이 떠날 길이 열린다. 이는 조상을 원망하거나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세대에서 그 죄의 연결을 끝내기 위해 회개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조상죄 회개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처음 회개를 시작한 사람이 조상죄에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면 자기 죄부터 회개해도 된다. 굳이 조상죄까지 회개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자기 죄를 회개하는 것이 구원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다만 조상죄의 영향을 그대로 둔 채 살아간다면, 그 영들이 계속 내 속에서 죄로 유혹하고 가난과 신기와 삶의 막힘 같은 저주의 통로로 역사할 것이다. 그러므로 더 깨끗한 삶과 더 온전한 순종을 위해서라면 조상죄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서 질병과 장애를 다룰 때에는 진술의 층위를 구별해야 한다. 필자는 회개와 축사 사역에서 조상과 자신의 죄가 가난, 신기, 중한 질병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사례를 목회적으로 관찰해 왔다. 그러나 모든 질병이나 장애를 특정 죄의 직접 결과라고 의학적으로 단정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아픈 사람과 장애인을 정죄해서도 안 된다. 몸과 정신의 증상은 전문 의료진의 진단과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하며, 자살 충동이나 환청, 현실 판단의 어려움이 있으면 즉시 가족과 의료기관과 응급 도움을 함께 요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회개와 기도는 필요한 치료를 중단시키는 명령이 아니라 영혼과 삶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는 목회적 길을 제시하기 위함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조상들의 죄와 자기 죄가 함께 쌓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죄는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 쌓일 수 있다. 므낫세 한 사람의 악한 통치가 남유다에 끼친 영향을 보자. 그는 열두 살에 왕이 되어 오십오 년 동안 다스리면서(남북왕조 왕들 가운데 가장 오래 통치한 왕임)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과 아세라와 일월성신을 섬겼으며, 여호와의 성전 안에 우상의 제단을 쌓았다.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고 신접한 자를 의지했다. 오랜 통치 기간에 죄가 나라 전체에 깊이 스며들었다(대하 33: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므낫세의 손자 요시야 시대에 잠시 개혁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 뒤에 세워진 왕들과 백성은 다시 죄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남유다가 멸망한 원인을 므낫세의 죄라고도 말할 수 있고, 예레미야 시대에 살던 백성의 죄라고도 말할 수 있다. 둘 다 맞는 것이다. 조상들의 죄가 심판의 그릇을 채워 왔고, 현재 세대가 회개하지 않고 더 악을 행하여 마지막 분량을 채웠기 때문이다(렘 16:11-12). 예레미야는 청년의 때로부터 그날까지 &amp;ldquo;우리와 우리 조상들&amp;rdquo;이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 목소리에 순종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렘 3:2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러한 원리는 개인과 가정에도 적용된다. 조상들이 오랫동안 우상을 섬기고 사람을 억압하며 인색과 음란과 거짓의 죄를 지었다면 그 영향이 후손에게 내려올 수 있다. 그런데 후손도 똑같이 무당에게 묻고 제사를 붙들며 혈기와 탐욕을 따라 살면 내려온 영에 자신이 불러들인 영까지 더해진다. 그 결과 죄의 유혹은 강해지고, 가난과 관계의 파괴와 신기의 고통과 질병의 문제가 겹쳐 나타날 수 있다. 조상보다 자기가 더 악을 행했다면 조상만 탓해서는 결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회개할 때에는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와 더불어 자기자신의 성품상의 죄도 함께 회개해야 한다. 조상 제사의 죄는 회개하면서 자기 자신의 교만과 거짓과 음란과 혈기와 분노를 붙들고 있다면 연결된 영들이 서로 힘을 공급한다.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간 죄를 회개하면서 탐욕과 두려움 때문에 다시 점을 보러 간다면 회개의 열매가 없다. 죄의 이름을 입으로 읽는 데서 그치지 말고, 그 죄를 미워하고 실제 생활에서 끊어야 한다. 믿음의 행함이 바로 여기에 필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내게 죄가 많이 쌓였다는 사실을 가지고 그것을 낙심할 이유로 볼 것이 아니라 더 진실하게 회개할 이유로 보아야 한다. 조상과 자신이 심은 것이 많다면 처리해야 할 분량도 많은 것은 당연하다. 어떤 사람은 수천 번 회개하고도 많은 영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만 미워하셔서가 아니라, 여러 세대와 자기 삶에서 들어온 영의 양과 뿌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횟수와 비교하지 말고 자기 가문과 자기 삶의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죄의 결과가 내 몸이나 내 정신의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모든 문제를 한 원인으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필자의 목회적 관점에서는 치료를 받는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조상과 자기의 죄를 살피고, 용서할 사람을 용서하고, 우상과 악한 습관을 끊는 일이 영적 정결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죄를 감추지 않고 빛으로 가져올 때 저주의 연결이 약해지고 성령의 인도를 더 온전히 받을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하나님께서 정하신 형벌의 70년은 회개 분량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남유다는 죄가 가득 찼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벨론에 넘겨,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 칠십 년 동안 형벌을 받게 했다. 예레미야 25장은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 폐허가 되고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예레미야 29장은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하나님께서 백성을 돌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필자는 &amp;ldquo;칠십 년이 차면&amp;rdquo;이라는 표현을 형벌의 정해진 분량이 채워진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즉 &lt;strong&gt;죄의 결과는 대충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까지 담당해야 한다&lt;/strong&gt;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전에 끊임없이 선지자를 보내 그들이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얼마나 안타까우셨는지 예루살렘 거리에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그 성을 용서하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끝내 이스라엘 백성은 돌아오지 않았다(렘 5:1). 마침내 죄가 가득 차자 나라가 무너지고 성전이 불에 탔으며, 백성은 정해진 기간 동안 포로 생활을 해야 했다. 이처럼 살아 있을 때 은혜의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심판이 시작된 뒤에는 공의의 형벌을 고스란히 담당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이 칠십 년의 원리는 회개의 분량을 이해하는 데 도움&lt;/strong&gt;을 준다. 조상과 자신이 수십 년, 수백 년, 여러 세대에 걸쳐 죄를 쌓았다면, 몇 백 번의 형식적인 고백만으로 모든 결과가 즉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떤 고통은 평생 담당해야 할 형벌처럼 깊이 자리 잡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amp;ldquo;이 저주가 천 번 하면 끝납니까, 이천 번 하면 끝납니까&amp;rdquo;라고 먼저 물어볼 것이 아니라, 죄가 얼마나 하나님을 아프게 했는지를 깨닫고 평생 회개할 각오를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회개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죄를 자백할 때 형벌을 일으키는 악한 영들을 내보내고, 정해진 고통의 기간을 긍휼로 줄여 주실 길을 열어 놓으셨다.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남유다가 회개하지 않아 칠십 년을 채워야 했다면, 오늘의 우리는 살아 있을 때 회개하여 하나님의 노여움을 풀어 드리고 저주의 통로를 끊을 수 있다. 이것이 회개가 보화 중의 보화인 이유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의 분량은 하나님께 값을 지불하여 용서를 사는 공로가 아니다. 죄를 하나씩 인정하고 그 죄와 연결된 영을 내보내는 정결의 과정이다. 같은 죄를 천 번, 만 번 반복했다면 그만큼 깊은 습관과 많은 영적 통로가 생겼을 수 있다. 회개기도문과 평생 회개기도문은 이 죄들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자백하도록 돕는다. 숫자는 성실함을 점검하는 도구일 뿐, 하나님의 긍휼을 조종하는 공식이 아니다. 진실하게 회개하면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와 방법을 맡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특사 조치는 왜 형식적인 횟수가 아니라 진실한 통회와 연결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가끔씩 회개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특사 조치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회개에 있어서 &amp;#39;특사 조치&amp;#39;란 사람에게 정해진 회개의 분량을 모두 채우기 전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긍휼로 귀신의 집을 파괴하고 많은 영을 한꺼번에 내보내 주시는 은혜를 가리킨다. 필자는 수천 번을 채우기 전에 이러한 조치를 경험했다. 처음에는 필자가 특사조치를 받게 된 것을 두고 마지막 시대에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할 사명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정결하게 하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을 사역하고 회개의 차이를 살피면서 그 안에 또 하나의 원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에게 있던 영의 대부분은 나 자신이 직접 악을 행하여 불러들인 영이라기보다 조상들의 우상숭배로 내려온 영이 대부분이었다. 필자는 예수를 믿기 전에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친이 술을 드시면 동생들이 맞을 매까지도 대신 맞으면서 살았고, 도둑질과 큰 악을 피하며 살았다. 스스로 무당을 찾아가거나 우상을 의지한 일도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 쪽에는 조상 제사의 영이 강했고, 어머니 쪽에는 무당과 불교와 미신의 영이 워낙 강했다. 그러니 필자의 머릿속에 있는 귀신의 집에는 불교 대사의 영들로 가득 차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어머니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 흰 보새기 그릇에 물을 떠 놓고 천지신명과 칠성신과 여러 신에게 자녀들이 잘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병원에 쉽게 갈 수 없던 시절이니 그때에는 필자가 아프면 쌀이나 녹두를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올리고 주문을 외우는 방식으로 주술도 받았다. 필자가 모친이 살아 계실 때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모친은 자식들이 잘 된다고 하기에 모르고 그렇게 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므로 필자는 그 죄를 멀리서 평가하지 않고 오히려 내 죄인 것처럼 끌어안았다. &amp;ldquo;우리 어머니가 모르고 자식 잘되라고 그랬으니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amp;rdquo;라고 눈물로 통회 자복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필자가 직접 짓지 않은 조상들의 죄까지 자기의 죄처럼 아파하며 회개하는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고 특사 조치를 베푸셨다. 내 속에 있는 귀신의 집을 모두 파괴한 뒤 그 안에 있는 모든 귀신들을 다 제거해주셨다. 물론 뱀들도 모조리 떠나가게 해 주셨다. 이것을 가리켜 특사 곧 특별 사면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이러한 특사는 횟수를 적게 채우라는 것이 아니다. 사천 번이나 오천 번을 입으로 반복해서 회개한다고 할지라도 자기 죄를 숨기면서 마음으로 통회하지 않으면 영들은 잘 나가지 않는다. 반대로 조상죄의 큰 짐을 대신 지고 회개하면서 그 죄를 진실하게 슬퍼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회개의 분량을 다 채우기 전에 긍휼을 베푸신다. 이것이 바로 특사 조치인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조상들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죄를 실로 많이 지었다면 자신에게는 더 깊은 책임이 뒤따른다. 예를 들어, 조상들도 갖가지 우상숭배를 하였고, 자신도 불교 단체의 책임자로서 오래동안 활동했거나, 일마다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가서 물어보고 했거나, 음란과 거짓과 혈기로 많은 영을 불러들였다면 자기 죄의 분량만큼 회개의 분량도 같이 채워야 한다. 조상죄만 탓하면서 자기 죄를 숨긴 채 회개하고 있다면 그에게서 특사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 내가 회개하고 있지만 내게서 특사조치가 늦어진다고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아직 인정하지 않은 죄와 끊지 않은 행위가 없는지 살피고 철저하게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진실한 통회자복은 죄의 결과만 없애 달라고 조르는 기도가 결코 아니다. 그 죄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음을 깨닫고, 죄 자체를 미워하며, 다시 그 길로 가지 않겠다고 돌이키켜 회개하는 것이다. 횟수를 채우면서도 계속 우상과 악한 습관을 버리지 않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서 회개의 열매는 약하다. 더욱 특사조치는 기대할 수가 없다. 반대로 날마다 가슴을 부여안고 하나씩 하나씩 자기와 자기 조상의 죄를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귀신의 집을 한꺼번에 무너뜨리실 것이다. 그래서 나를 정결케 해주실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내가 특사 조치를 받았다고 해서 회개를 끝내서도 아니 된다. 왜냐하면 특사는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허가 아니라 더 깨끗하게 살며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은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죄를 지으면 다시 악한 영을 불러들일 수 있으므로 우리는 평생 회개해야 한다. 행여 특사를 받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는 한꺼번에 집을 무너뜨리는 은혜를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날마다 하나씩 정리하며 성품을 빚는 길을 걷게 하시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진실하게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칭의가 구원 여정의 출발점인 이유와 믿음이 행함과 회개로 온전해지는 과정, 회개해야 할 세 범주, 조상죄 회개의 목적, 조상죄와 자기 죄가 함께 쌓일 때 나타나는 결과, 칠십 년의 형벌과 회개 분량의 관계, 그리고 특사 조치와 진실한 통회의 관계를 살펴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칭의를 구원의 완성으로 바꾸지 말아야&lt;/strong&gt; 한다. 죄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구원의 길에 들어선다. 그러나 그 믿음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며, 믿은 뒤의 삶에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열매가 나타나야 한다. 행함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대신하지 않지만 살아 있는 믿음을 온전하게 한다. 넘어졌다면 즉시 회개하여 믿음의 길로 돌아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회개해야 할 죄의 세 범주를 구별해야 &lt;/strong&gt;한다. 조상들이 지은 죄로 내려온 영향이 있고, 조상과 자신이 함께 지은 죄가 있으며, 자신이 자유의지로 선택하여 지은 죄가 있다. 조상죄를 회개하는 것은 죽은 조상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후손인 자신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다. 자기 죄의 회개는 자기 영혼의 구원과 직접 연결되므로 결코 미뤄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조상 탓만 하거나 자기 죄만 보아서는 안&lt;/strong&gt; 된다. 남유다가 멸망한 것은 므낫세를 비롯한 조상들의 죄가 쌓였기 때문이면서, 예레미야 시대 백성이 조상들보다 더욱 악을 행했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고통에도 여러 원인이 함께 있을 수 있다. 조상에게서 내려온 영적 영향은 끊고, 내가 불러들인 영의 통로는 내 책임으로 닫아야 한다. 우상숭배의 죄와 생활 및 성품의 죄를 함께 자백하고 실제 행위도 돌이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회개의 횟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아야&lt;/strong&gt; 한다. 죄의 역사와 분량이 사람마다 다르므로 정결의 속도도 다르다. 칠십 년이 차야 했던 바벨론 포로 생활처럼, 죄의 결과에는 담당해야 할 분량이 있다. 그러므로 몇 번이면 끝나는지 계산하기보다 평생 회개할 중심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는 자에게 형벌을 줄이고 저주의 연결을 끊어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특사 조치를 숫자로 얻으려 하지 말아야&lt;/strong&gt; 한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입술의 반복만이 아니라 죄를 슬퍼하는 진실한 마음이다. 필자가 조상들의 죄를 자기 죄처럼 끌어안고 눈물로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귀신의 집을 파괴하는 긍휼을 베푸셨다. 자기 죄를 감추지 말고, 조상들의 죄까지 가슴 아파하며, 다시 죄로 돌아가지 않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여섯째, 몸과 정신의 고통을 겪는 사람을 정죄하지 말아야 &lt;/strong&gt;한다. 필자의 영적 해석과 목회 현장의 관찰을 모든 질병의 보편적인 의학 원인으로 판단해서는 아니 된다. 기도하고 회개하면서도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하며, 위급한 정신건강 증상에는 즉시 가족과 의료기관의 도움도 요청해야 한다. 교회는 아픈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세우는 곳이 아니라 영혼과 몸이 함께 도움을 받도록 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살아 있는 지금이 은혜를 받을 때다. 심판이 시작된 뒤에야 회개하려 하지 말고 오늘 죄를 인정해야 하기를 바란다. 믿음으로 시작한 구원을 끝까지 지키고, 날마다 자기 죄와 가문의 죄를 예수님의 피 앞에 자백하며, 성령께 순종하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죄와 저주의 연결에서 벗어나 자기 두루마기를 깨끗이 빨고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영원히 주님과 함께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28일(금)&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구원의 여정에서&amp;nbsp;&lt;strong&gt;철저한 회개&lt;/strong&gt;가 갖는 필수적인 역할을 강조하며, 특히 본인과&amp;nbsp;&lt;strong&gt;조상들의 죄&lt;/strong&gt;를 정결케 하는 원리를 예레미야서를 통해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단순히 예수를 믿는다는 고백인&amp;nbsp;&lt;strong&gt;칭의&lt;/strong&gt;는 구원의 시작일 뿐이며, 천국에 안전하게 입성하기 위해서는 삶에서 지은 죄를 씻어내는&amp;nbsp;&lt;strong&gt;성결의 과정&lt;/strong&gt;이 뒤따라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이 설교는 회개의 범위를 세 가지 층위인&amp;nbsp;&lt;strong&gt;조상의 죄, 조상과 나의 공통된 죄, 그리고 나 자신의 죄&lt;/strong&gt;로 구분하여, 가문을 통해 내려오는 영적 저주와 형벌을 끊어내기 위한&amp;nbsp;&lt;strong&gt;회개 기도문의 중요성&lt;/strong&gt;을 강조합니다. 결국 신앙의 궁극적 목적은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amp;nbsp;&lt;strong&gt;생명책의 이름&lt;/strong&gt;이 지워지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며, 진실한 뉘우침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amp;nbsp;&lt;strong&gt;특별 사면&lt;/strong&gt;과 같은 정결함을 입는 것에 있음을 시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ChatGPT Image 2026년 8월 28일 오후 05_02_2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c032a92d317d0e4720011a3be915dc3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146e6e2c094284f8c583d24453ff826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14afcc37c729f7cce0b39477c1e583e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d16a89cf32d83c1c5be67578875fa18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1f7b1f47b6ca1c5af833aa32eb48b27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ab7b5a0f397d970980a1a917d20edfd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43a255b9084d173854c68e970a95c2b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b85c713407b741b01de4b55fa5f31bc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75f308f4e799db0f06e8e3faaa95420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72d87a53a22cf72cc3738d8d75580fb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5f686ef7606fe24751dc9ddaa6b07e1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6abb539082a418002b8e411b4296e06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12354425db7d9fd457f7124f0a43b06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812c533f820cfa5197066f4a1e39074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262eb8b3cf35fbc40870a909057da6b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The_Path_to_Complete_Purification.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fad799e769b78c04846cb8cb9af1c06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구원의_완성_회개와_정결의_여정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f9186109cd6b45a5832c483a04e52e2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Spiritual_Anatomy_and_Purificatio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c2a64aae4a510224b8e68f3d345c70d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Spiritual_Anatomy_and_Purificat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ffa7701749ee89cdf978d2636f96d95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Spiritual_Anatomy_and_Purificat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a39c5f99f824d074f8d665ae8f1336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Spiritual_Anatomy_and_Purificat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a6f7451aac7daa10f82558e50bb6aa6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Spiritual_Anatomy_and_Purificat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033c2e594e75f77515385e3cce7379b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Spiritual_Anatomy_and_Purificat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62b0ac4c00ab1b9aa97da18e79f479e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Spiritual_Anatomy_and_Purificat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804dcc4249cc1c0979b939c6c37e723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Spiritual_Anatomy_and_Purificat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110cd35e6c0415faeb674e506fd8065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Spiritual_Anatomy_and_Purificatio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57a8765f7415cadbb7157b476dfdc12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7)] Spiritual_Anatomy_and_Purificatio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18/265/88bc2ba3c5f3f72a86b96eb6c5429d0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76)]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렘16:10~13)_2026-08-27(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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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7T20:23:46+09:00</published>
		<updated>2026-08-27T21:48:26+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76)]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렘16:10~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BKjQHVKliwY 기독론(176)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 (렘 16:10-13)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죄를 정결하게 하려면 자기 죄만 회개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기 조상들이 지은 죄도 회개해야 하는가? 그리...</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기독론(176)]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렘16:10~13)&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BKjQHVKliwY&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BKjQHVKliwY?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76)&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렘 16:10-13)&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죄를 정결하게 하려면 자기 죄만 회개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기 조상들이 지은 죄도 회개해야 하는가? 그리고 같은 회개기도문으로 같은 횟수를 회개했는데도 어떤 사람은 빠르게 결과가 나타나고 어떤 사람은 수천 번을 회개해도 여전히 많은 영이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는 회개(悔改, repentance)의 분량과 조상죄와 자범죄, 사람 안에 들어오는 영의 종류,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amp;lsquo;특사 조치&amp;rsquo;의 비밀이 함께 들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회개의 중요성을 본격적으로 깨달게 된 것은 2013년부터다. 예수를 믿은 뒤에도 지은 죄들을 회개하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고, 자기 두루마기를 빨지 않는 사람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하며, 죄를 품고 사는 사람은 성 밖이나 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못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요한계시록을 통해 깨달았다(계 3:5; 21:8; 22:14-15). 예수를 믿었다는 사실이 이후의 모든 삶과 무관하게 구원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안전장치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ㅈ사ㅣㄴ이 믿은 뒤에 지은 죄들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처음 믿을 때 받은 은혜를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되겠지만, 그 은혜를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가증으로 바꾸어서도 안 된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도 이기는 자가 되어 흰옷을 입어야 하고, 성 안에 들어가려면 자기 두루마기를 계속 빨아야 한다. 믿음은 구원의 문을 여는 시작이며, 그 뒤에는 죄를 버리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생활이 따라야 한다(빌 2:12). 이 때문에 회개는 믿지 않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를 믿은 성도에게도 날마다 필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2013년 당시에는 예수님의 피의 역할 가운데, 그 피가 죄를 덮어 주는 속죄(贖罪, atonement)의 방면을 주로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2020년에 이르러 죄를 자백할 때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는 정결(淨潔)의 방면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믿을 때에는 죄가 덮여 의롭다고 여김을 받지만, 이미 들어온 뱀들과 귀신들이 자동으로 떠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자기 죄와 조상의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할 때 더러운 영이 떠날 근거가 생기고 삶의 실제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것을 말이다(요일 1:7-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뒤 약 6년 동안 교회에서 수많은 사람이 회개기도문과 평생 회개기도문으로 반복하여 회개했고, 그 과정에서 회개의 횟수와 정결의 열매에 관한 데이터가 점차 쌓였다. 회개기도문으로 500회를 회개한 사람, 2,600회를 채운 사람, 3,000회를 넘긴 사람, 4,570회까지 회개한 사람도 나타났다. 그런데 횟수가 많다고 언제나 모든 저주가 더 빨리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조상들이 지은 죄의 분량과 자신이 직접 지은 죄의 분량이 사람마다 달랐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예레미야서는 이 문제의 답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남유다는 므낫세를 비롯한 조상들의 죄 때문에 심판을 받았지만, 예레미야 시대의 백성도 자기 조상들보다 더욱 악을 행했다고 하기 때문이(렘 15:4; 16:11-12). 그러므로 사람이 어떤 형벌을 받게 되는 데에는 자기의 조상의 죄와 자기 죄를 함께 보아야 하며, 어느 한쪽만 탓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뒤에도 죄성과 악한 영이 남는 이유, 회심의 회개와 자백의 회개의 차이, 사람 안에 들어오는 세 종류의 영, 조상죄가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는 과정, 회개 분량과 특사 조치의 원리, 그리고 조상과 자신이 함께 져야 할 회개의 책임이 무엇인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아도 왜 죄성과 악한 영은 그대로 남아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잘못 알고, 예수를 믿게 되면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가 실제로 다 사라져 버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믿음으로 얻는 칭의(稱義, justification)는 죄를 없는 것처럼 덮어 주시는 은혜일 뿐 죄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죄인이 예수님의 피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덮어버리고 의롭다고 여기신다. 그리고 그에게 생명을 주신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과거에 지은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들이 그 순간 모두 빠져나가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때 구원이 완성된 것도 아니다. 마태복음 18장의 일만 달란트 빚진 자처럼 탕감받은 은혜를 저버리고 다시 죄악으로 돌아간다면 그는 이전의 빚이 다시 문제가 되어 감옥에 들어갈 수 있다(마 18:23-3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사람의 성품이나 생활이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 방언을 말한다고 해서 자신의 성품이 자동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방언할 때 성령께서 혀를 붙들어 사용하실 수 있지만, 혀와 육체 안에 이미 자리 잡은 뱀들이 처리되지 않았다면 그가 행하는 정상적인 방언 가운데에도 이상한 말과 저주의 말이 섞여 나올 수 있다. 혀를 성령께서 쓰실 때도 있고 그 속에 남은 악한 영이 끼어들 때도 있기 때문이다. 고로 방언이 성령 충만(聖靈充滿, fullness of the Holy Spirit)의 한 방면이기는 하지만, 성령 충만의 완성은 성령께서 전인격을 사로잡아 인도하시는 데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축사(逐邪, exorcism) 현장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악한 영들로서 뱀과 귀신은 다루는 방식도 약간 다르다. 뱀은 손에 장착된 칼로 집어 올리고 잘라 처리해야 하며, 귀신은 &amp;ldquo;나오라&amp;rdquo;는 명령으로 쫓아내야 한다(막 16:17-18). 몸에 뱀이 많은 사람은 축사 사역자의 손이 닿을 때 살을 칼로 자르는 것처럼 심한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반응은 필자가 축사 과정에서 관찰한 영적 체험에 해당한다. 몸의 통증과 질병은 필요한 의학적 검사와 치료도 함께 받아야 하며, 회개와 축사는 안전한 치료를 밀어내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령은 거듭날 때 사람의 영 안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조상과 자신이 지은 죄로 들어온 뱀들과 귀신은 육체 안에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과 육체가 정결해졌다는 사실을 같게 보아서는 안 된다. 성령의 내주(內住, indwelling of the Holy Spirit)는 죄를 깨닫고 이길 능력을 주지만, 죄를 자백하고 악한 영을 내보내는 순종은 성도가 계속해야 할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도 바울은 말한다. 사람 안에는 생명의 성령의 법과 육체 안에 남은 죄와 사망의 법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역사한다는 것을 말이다(롬 8:1-2; 갈 5:16-17).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이끄시지만, 육체 안의 뱀들과 귀신은 이전에 익숙했던 죄를 다시 선택하게 한다. 성령께서 혀를 붙드셨다는 한 가지 체험만으로 육체 전체가 정결해졌다고 생각하면 이 싸움에서 넘어진다. 혀와 생각과 감정과 생활의 각 영역에 남은 죄를 찾아 회개하며, 성령께 그 영역을 계속 내어 드려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를 모르면 예수를 30년 믿고도 성품이 거칠고, 가난과 질병과 신기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결코 설명하기 어렵다. 믿을 때 생명은 받았지만 더러운 영을 내보내는 정결의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고 방언을 말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자기 죄와 조상들의 죄를 자백하며 실제로 깨끗해져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회심의 회개와 자백의 회개는 속죄와 정결에서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에는 서로 구별해야 할 두 방면이 있다. &lt;strong&gt;첫째는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하는 회심(回心, conversion)의 회개&lt;/strong&gt;다.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서 &amp;ldquo;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amp;rdquo;라고 고백했듯이, 자신이 죄인이며 스스로 구원(救援, salvation)받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는 회개다(눅 5:8). 이때 예수님의 피가 과거의 죄를 덮고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고 여겨 생명을 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러한 회심의 회개는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지만, 그가 지은 모든 죄를 하나씩 자백하여 제거한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천국의 행위책에 기록된 죄를 예수님의 피로 덮어버려서, 그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죄를 인격화하면 그 죄를 통해 들어온 뱀과 귀신인데, 이들도 우리 몸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은 직후에도 혈기와 분노와 음란과 탐욕이 올라오고, 이전의 생활 습관과 저주가 계속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는 믿은 뒤 자기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하는 자백(自白)의 회개&lt;/strong&gt;다. 사도 요한은 죄를 자백하면 죄 사함뿐 아니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된다고 말했다. 예수님의 피에는 죄를 덮는 속죄의 효능과 죄의 더러움을 씻는 정결의 효능이 함께 있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믿을 때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를 죄를 자백할 때 죄는 용서되어지면서 동시에 그 죄를 통하여 들어온 더러운 영이 떠날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그래서 정결은 막연히 &amp;ldquo;나는 죄인입니다&amp;rdquo;라고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조상 제사와 불교와 무당&amp;middot;점쟁이와 미신&amp;middot;잡신을 섬긴 죄, 교만과 거짓과 음란과 혈기&amp;middot;분노와 술&amp;middot;담배의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해야 한다. 고로 우리 동탄명성교회에서 제공하고 있는 &amp;#39;회개기도문&amp;#39;은 크게 우상숭배의 죄와 생활 및 성품 속의 죄를 다루며, &amp;#39;평생 회개기도문&amp;#39;은 일생의 죄를 더 세밀히 찾아 자백하도록 도와주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고 우상숭배의 죄를 조상죄로, 그리고 교만과 거짓과 음란을 자범죄로만 기계적으로 나눌 수는 없다. 조상들도 생활 속에서 교만하고 거짓말하고 혈기를 부린 자가 있으며, 오늘의 나도 우상숭배의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상숭배는 하나님께서 그 죄악을 삼사 대까지 물으신다고 특별히 경고하셨기 때문에 후손에게 미치는 영적 영향이 오래 간다(출 20:5). 또한 회개할 때에는 죄의 종류뿐 아니라 누가 그 죄를 지었으며 그때 어떤 영이 들어왔는지도 함께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amp;#39;속죄&amp;#39;와 &amp;#39;정결&amp;#39;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amp;#39;속죄&amp;#39;는 믿음으로 죄를 덮어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 출발이며, &amp;#39;정결&amp;#39;은 믿은 뒤 죄를 자백하여 더러운 영을 실제로 내보내는 과정이다. 회심의 회개로 생명을 받은 사람은 자백의 회개로 날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빨아야 한다. 이것이 삶과 성품을 변화시키고 저주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핵심 통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사람 안에 들어오는 세 종류의 영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 안에 들어오는 영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는 조상들로부터 &amp;#39;내려온 영&amp;#39;&lt;/strong&gt;이 있다. 출애굽기 20장 5절의 원리에 따라, 자기의 조상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죄를 지었을 때 그에게 들어간 악한 영들은 혈통을 따라 그의 후손에게 내려간다. 하나님께서 이를 허용하신 목적은 후손을 무조건 멸망시키려는 데 있지 않고, 징계를 통해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데 있다. 조상이 받을 영원한 죄책이 후손에게 그대로 전가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죄로 들어온 영의 현세적&amp;middot;영적 영향은 후손에게 그대로 내려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위로부터 &amp;#39;내려온 영&amp;#39;은 단순한 과거의 기억이 아니다. 조상이 제사를 많이 지냈다면 제사의 영이, 무당을 섬겼다면 무당의 영이, 인색하고 남을 착취했다면 가난하게 하고 앞길을 막는 영이 후손 안에서 들어와 활동한다. 그것들이 육체에 역사하면 몸의 질병과 연약함으로, 혼에 역사하면 신기와 집착과 분노와 낙심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관계를 회개와 축사 현장에서 반복하여 관찰했다. 그러므로 현재의 고통만 다루지 말고 그 뒤에 연결된 조상의 죄와 악한 영의 경로를 찾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는 자신이 죄를 지어 &amp;#39;불러들인 영&amp;#39;&lt;/strong&gt;이 있다. 우상을 섬기거나 무당에게 묻고, 거짓과 음란과 혈기와 탐욕을 반복하면 그 죄와 같은 속성을 가진 영들을 자기 안으로 불러들인다. 예를 들어,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영이 자기에게 많지 않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불교 신도회장 등으로 오랫동안 우상을 섬겼거나 사소한 일마다 점쟁이를 찾아다녔다면 불러들인 영의 분량이 매우 많다. 사람은 자기가 심은 것을 거두게 되므로 자신이 직접 지은 죄는 그만큼 더 많이 회개해야 한다(갈 6:7-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는 자기 안의 영이 다른 사람의 같은 종류의 영을 끌어당겨 들어온 영&lt;/strong&gt;이다. 일명 &lt;strong&gt;&amp;#39;끌어당긴 영&amp;#39;&lt;/strong&gt;이다. 자기 안에 조상 무당의 영이나 강한 신기의 영이 남아 있으면, 축사나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상대방 속에 있는 같은 종류의 영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있는 끌어당기는 영이 다른 동자신과 무당의 영을 끌어와 내 속에 저장하면, 사람의 사정을 신기하게 알아맞히고 성령의 은사가 큰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의 계시가 아니라 귀신이 주는 정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때문에 사역자가 먼저 충분히 회개하고 정결케 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자기 안에 귀신의 집과 같은 종류의 영이 남아 있으면 남을 돕다가 오히려 더 많은 영을 끌어들일 수 있다. 반대로 자기 안의 집이 파괴되고 끌어당기는 영이 사라지면, 상대방의 영이 정착할 자리를 찾지 못한다. 필자는 자신의 귀신의 집이 하나님의 특사 조치로 파괴된 뒤에 사역 중에 다른 영이 들어와 정착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내려온 영&amp;#39;, &amp;#39;불러들인 영&amp;#39;, &amp;#39;끌어당긴 영&amp;#39;은 들어온 경로가 서로 다르지만 나가는 길은 한 가지다. 그 영이 들어오게 한 죄를 찾아내어,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낱낱이 자백하고, 떠날 근거를 없앤 뒤 축사하면 된다. 그때 나와 내 조상이 &amp;ldquo;무슨 무슨 죄를 지었습니다&amp;rdquo;라고 자백하고 &amp;ldquo;무슨 무슨 영을 받아들였습니다&amp;rdquo;라고 고백하면 되는 것이다. 이 두 방면이 항상 함께 해야 한다. 그러므로 만약 회개 없이 명령만 반복하거나, 축사 없이 죄만 인정하는 것으로는 온전한 정결에 이르기가 매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조상들의 죄로 인한 영들은 어떻게 후손의 육체에 들어오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람의 원죄는 과연 어떻게 생기는가? 그것은 DNA를 통하여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유전되어 생기는가? 아니다. 영적인 실제를 살펴보니, 부모 속에 들어있는 영들은 부부의 성생활을 통하여 자궁에 들어온다. 그러면 남편의 영과 아내의 영이 자궁에서 만난다. 남편 속에 들어있는 영은 남편 가문에서부터 물려받은 영이며, 아내 속에 들어있는 영은 아내 가문에서부터 물려받은 영들이다. 그러므로 여자의 자궁 속에서 두 가문의 영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임신이 되면, 자궁 속에 있는 영들이 그 태중의 아니 속에 들어가게 되어 두 가문의 영들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여자의 자궁 안에는 자기 친가에서 내려온 영과 남편의 가문에서 내려온 영이 함께 모여 있다. 그러므로 자궁 안에서 수정되어 새 생명이 생기는 순간 양쪽 가문의 영들이 아이의 육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태어난 아이는 부모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느날 갑자기 시기하고 빼앗고 화를 내는 죄된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자기 육신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고, 선을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게 하는 죄가 있다고 고백했다(롬 7:18-20). 그래서 필자는 이 죄의 본성을 연구해보았다. 그랬더니 이것은 단순히 유전자로 전달되는 추상적인 성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궁에서 육체 안으로 들어온 뱀들과 귀신들의 실제적인 역사였던 것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왜 사람의 육체 속에는 이렇듯 뱀들과 귀신들로 가득차게 되는가? 그것은 하와와 아담의 타락으로 시작되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장 14절에서 뱀에게 평생 흙을 먹고 살라고 징계를 내리셨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흙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아파르(עָפָר)다. 이 단어는 창세기 2장 7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체를 지으신 재료였다. 필자는 이 두 본문을 연결해 보았다. 그랬더니 뱀이 사람의 육체를 먹고, 육체 안에서 활동하게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가인에게서 나온 시기와 질투, 혈기와 분노, 살인의 감정은 부모가 가르친 행동이 아니라 태중에서부터 들어온 죄된 본성 곧 가인 속에 들어온 악한 영으로서 뱀들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경우이다(창 4:3-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은 죄인인 여자의 몸에서 태어났는데 죄없는 분으로 태어나실 수가 있었는가? 다시 말해 예수께서는 우리처럼 엄마의 자궁에서 10달 동안 지난 후에 태어나셨지만 그분에게는 죄가 없으셨다. 왜 그게 가능했던 것인가? 그 이유는 마리아 자신이 죄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잉태 순간에 마리아의 자궁 안에 있던 악한 영들이 예수님의 육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된 본성 없이 잉태되셨고 태중에서 자라셨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본래부터 죄가 없었다는 로마 가톨릭의 무염시태 교리는 잘못된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신약시대가 되면 악한 영들은 2개의 구조로 활동하고 있다. 하나는 뱀들의 활동이고 또 하나는 귀신의 활동이다. 사실 구약의 초기 시기에는 육체 안에 뱀들이 들어가서 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그때에는 아직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들인 귀신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구약에도 엔돌의 신접한 여인에게 역사한 영과 사울 왕을 괴롭힌 악령과 같은 귀신들이 있었음을 본다(삼상 16:14; 28:7-20).&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글너데 예수님의 탄생 이전에 매우 중대한 일이 영계에서 발생했다. 그것은 사탄마귀를 따라서 악한 영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는 사탄의 왕국과 수많은 귀신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기에서 우리 나라 사람들은 무당과 불교의 영과 미신과 조상 제사를 오랫동안 섬긴 이방 민족의 역사가 더해지면서, 사람의 몸에는 뱀과 귀신들로 가득차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주의해야 할 일은 이 원리를 우리가 알게 되었다고 해서 조상만을 탓하고 원망해서는 안 된다. 조상에게서 내려온 것은 영적 영향인 것이지 조상의 영원한 죄책을 대신 지고 심판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고로 후손들은 자기에게 내려온 영향을 예수님의 피로 깨끗히 처리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신약의 성도들은 날마다 조상들의 죄를 자기 죄처럼 회개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직접 불러들인 영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자기 죄를 숨김없이 자백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회개의 분량과 정결의 속도가 사람마다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같은 회개기도문으로 같은 횟수를 회개해도 결과가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그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기의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영의 분량과 자신이 불러들인 영의 분량이 서로 각각 다르기 때문&lt;/strong&gt;이다. 삼 대째 예수를 믿은 사람과 조상 대대로 우상을 섬기다가 처음 예수를 믿은 사람은 그 출발점이 같을 수 없다. 그런데 삼 대째 믿는 집안이라고 할지라도 본인이 회개하지 않았다면 조상 영들이 결코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다. 또한 그렇게 해서 여러 세대 동안 제사를 끊고 우상을 섬기지 않았던 성도라도, 흩어진 영들이 먹이를 얻지 못해 바짝 마른 비활동성 상태가 되어 있을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amp;#39;비활동성 상태&amp;#39;라는 말은 영이 떠났다는 뜻이 아니다. 예배를 드리고 우상 제사를 끊었으므로 힘을 공급받지 못해 활동이 우리 몸에서 약해진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삼 대째 믿는 사람이 처음 회개를 시작하면 적은 횟수에도 말라 있던 영들이 빠르게 떠날 수 있다. 반대로 조상 대대로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고 본인도 계속 같은 죄를 지었다면 영들이 힘을 얻어 활발하게 움직이므로 더 많은 회개와 축사의 과정이 필요하다. 예수를 몇 대째 믿었느냐보다 실제로 내가 진정 우상숭배을 끊고 살았는지, 그리고 그 죄를 자백하여 영을 내보내려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아내인 조경미 사모는 외할머니 때부터 약 삼 대째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녀가&amp;nbsp; 기본적인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약 120회를 회개했을 때였다. 그때부터 몸의 좋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력이 좋아져서 안경을 벗었으며, 건초염이 사라졌고, 매일 먹던 두통약을 먹지 않게 되었다. 반면에 필자는 500회를 넘길 때까지 아무런 변화 없이 졸음과 대치하며 싸워야 했다. 눈물을 흘리며 진실하게 회개했는데도 아무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차이를 살피면서, 조상 대대로 내려온 영의 분량이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회개해야 할 분량이 각각 정해지고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lt;strong&gt;왜 필자는 몇백 번이 아니라 천 번에 걸친 회개를 해야&lt;/strong&gt; 했는가? 그것은 필자의 &lt;strong&gt;가문이 많은 영들을 내게 물려주었기 때문&lt;/strong&gt;이다. 필자에게는 무당의 신기, 불교의 가난의 영, 조상 제사의 질병의 영과 착취와 인색함과 도박과 보증의 영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종이 70명이나 있던 집안이었기에 억압과 폭력과 착취와 수탈이 행해졌고, 삼대조 할머니는 무당이 되지는 않았지만 강한 신기를 지니고 살았다. 훗날 필자의 머릿속에 있는 귀신의 집을 보니, 첫째 칸에는 사명대사와 서산대사 같은 불교의 대사 영들로 가득 들어 있었다. 그리고 필자가 어렸을 적에는 동네 사람 중에 반승려처럼 살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나를 유심히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린 것이 상당히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amp;nbsp; 그분이 자기 안에 있는 영을 통하여 필자 안에 들어 있는 많은 불교 영을 알아보았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필자 자신은 선한 사람이었다. 필자가 18살에 비로소 예수를 믿었는데, 예수님을 믿기 전에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살았으며, 동생들이 맞을 매를 대신 맞을 만큼 선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스스로 무당을 찾아가거나 우상을 의지한 일도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를 따라 무덤에 가서 말표 고무신을 거꾸로 놓고 세 번 절한 일과,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제사 떡을 이웃에 돌린 일이 대표적인 우상숭배의 죄였다. 고로 내가 우상숭배의 죄를 지어 직접 불러들인 영은 비교적 적었지만 조상에게서 내려온 영은 엄청나게 많았던 자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필자의 머리와 눈에는 엄청나게 많은 영들이 들어 있었다. 왜냐하면 필자의 어머니께서 당시에는 가난해서 자식이 아파도 병원에 데려갈 수 없었기에, 필자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아플 적마다 쌀이나 곡식을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올리면서 떼었도 붙였다 하면서, 주문을 외우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의식에 직접 어떤 뜻을 두고 참여한 것이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행한 일을 그대로 보고 그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그러므로 자신이 의도적으로 지은 죄는 비록 적더라도 가문과 양육 환경을 통해 내려온 영의 분량은 매우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필자는 기본적으로 회개의 분량이 많아야 했던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 우리 교회 성도들은 회개기도문으로 자백할 때에 회개를 최소 250회요, 500회 정도는 기본으로 한다. 외부에서 찾아온 성도들 중에는 우리보다 더 많이 회개하여 약 2,600회에 이른 자도 있었고, 3,000회를 넘기거나 4,570회까지 채운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1,000회만 하고도 영이 거의 사라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3,000회나 5,000회를 해도 많은 영이 남은 사람이 있었다. 조상죄가 많고 자기 죄도 많으면 내려온 영과 불러들인 영을 모두 처리해야 하므로 더 많은 회개가 필요하다. 특히 자기 죄를 부끄러워 숨기면 횟수만 쌓이고 그 죄와 연결된 영은 남아 있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의 횟수는 공로를 계산하는 기계적인 숫자가 아니다. 죄의 종류와 분량을 비추어 보는 자료이며, 중요한 것은 진실하게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는 것이다. 자기가 심은 죄가 많으면 그만큼 오래 회개해야 하고, 징계가 질병이나 자녀의 문제와 삶의 막힘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횟수와 비교하여 낙심하거나 안심하지 말고, 자기와 자기 가문의 실제 죄를 살피며 끝까지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귀신의 집을 없애는 &amp;lsquo;특사 조치&amp;rsquo;를 베푸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하나님은 과연 누구에게 한꺼번에 귀신을 전부 떠나가게 하는 특사조치를 내리는가? 여기서 특사 조치란 회개의 일반적인 분량을 모두 채우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풀어 귀신의 집을 파괴함으로 사람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을 싹 다 내보내 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가리킨다. 필자는 약 회개기도문으로 약 1,000회 가까이 회개했을 때 이 조치를 받아 자기 안의 귀신의 집이 파괴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수천 번을 더 회개해야 할 만큼 내게는 너무나 조상의 영들이 많았는데도, 하나님께서 집을 무너뜨려 더 이상 영들이 정착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종으로 쓰시려고 필자에게 특별히 은혜를 베푸시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회개 과정을 살핀 뒤 좀 더 보편적인 원리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즉 필자 안의 영들 가운데 약 99퍼센트는 필자 자신이 직접 죄를 지어 불러들인 영이 아니라 조상들의 죄 때문에 내려온 영들이었다. 고로 필자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여러 조상들을 향해 조상들이 지은 죄까지도 자기 죄로 받아들이고 눈물로 통회 자복하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그대로 실천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amp;ldquo;네가 직접 지은 죄도 아닌데, 조상들의 죄를 이처럼 자기 죄처럼 눈물로 회개하는구나&amp;rdquo;라고 보시고, 회개의 분량을 다 채우기도 전에 긍휼을 베푸어주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특사 조치란 누구에게나 같은 시점에 자동으로 주어지는 공식 같은 것은 아니다. 조상죄가 많더라도 자신이 우상숭배와 자범죄를 심하게 지어 많은 영을 직접 불러들였다면 자기 죄에 대한 회개의 분량도 그만큼 많아진다. 또한 일마다 무당을 찾아가 물어보고 오랫동안 우상을 섬기며 생활 속 죄를 반복해 왔다면 그는 자기 죄를 숨긴 채 조상죄만 회개해서는 뱀들과 귀신이 싹 다 떠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이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갈 6: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지만 &lt;strong&gt;조상의 죄 때문에 큰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 그 죄를 자기 죄처럼 진실하게 끌어안고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긍휼&lt;/strong&gt;이 임하기도 한다. 특사 조치의 핵심은 횟수를 적게 채우는 데에 요령이 있어서 아니었다. 자기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는 조상들의 죄까지라도 가슴 아파하며 통회하는 사람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숫자만 채우고 빨리 끝내려는 사람보다 죄 자체를 슬퍼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이 긍휼을 입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그렇게 해서 귀신의 집을 파괴했다고 할지라도, 회개를 중단해서는 결코 안 된다. 새로운 죄를 지으면 다시 영을 불러들이데, 이전보다 더 악한 영들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사는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허가 아니라, 더 깨끗하게 살며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은혜인 것이다. 그러므로 특사 조치를 구하기 전에 자기 죄와 조상의 죄를 숨김없이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분량만큼 부지런히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특사 조치를 받지 못했다고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집을 한꺼번에 파괴하는 은혜를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날마다 회개하며 하나씩 영을 내보내는 길을 걷게 하시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방법의 차이가 아니라 끝까지 정결해지기 위해 회개를 지속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즉시 처리해 주시든 오랜 훈련을 통과하게 하시든, 죄를 미워하고 예수님의 피를 붙들며 회개하는 사람은 마침내 저주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조상의 죄와 자기 죄에 대한 책임을 예레미야는 어떻게 함께 말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남유다가 조상들의 죄 때문에 심판받았다는 사실도 인정하면서, 당대 사람들이 이전의 조상들보다 더 범죄하여 그들 자신이 자기들의 죄로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함께 말하였다. 고로 우리도 어느 하나의 죄만 붙들고 있으면 성경의 전체 뜻을 놓치고 말 것이다. 성경은 조상들의 죄가 자기의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씀하고 있고, 각 사람이 회개하면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그 죄를 용서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남유의 14대 왕이었던 므낫세는 열두 살에 왕이 되어 55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렸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과 아세라와 일월성신을 섬겼으며, 성전 뜰에 우상의 제단을 쌓았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자녀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고 신접한 자와 박수를 찾아 물었으며, 아세라 목상을 성전에 두었다(대하 33:1-7). 그의 오랜 통치 동안 남유다의 죄가 가득 찼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므낫세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죄 때문에 유다 백성을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 흩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칼과 개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이라는 네 가지 심판도 선언하셨다(렘 15:3-4). 요시야가 잠시 우상을 제거하고 개혁했지만,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과 여호야긴과 시드기야 시대에 백성은 다시 범죄했다. 므낫세 때 조상의 죄가 크게 쌓였고 후대가 자기 죄를 더하여 결국 바벨론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애가는 조상들이 범죄하고 사라졌지만 후손이 그 죄악을 담당한다고 탄식한다. 이것은 조상들의 죄로 인한 역사적&amp;middot;영적 결과가 후손에게 미친다는 원리를 보여 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애 5:7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예레미야 31장은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을 더는 사용하지 않을 날이 온다고 말한다. 각 사람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며, 신 포도를 먹은 사람의 이가 시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렘 31:29-30). 이와 마찬가지로 에스겔 선지자도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게 될 것이고,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않는다고 언급하였다(겔 18:19-20). 이것은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영원한 심판으로 천국과 지옥을 가르치는 것의 책임은 각자의 죄와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본문은 두 원리가 한 자리에서 결합된다. &lt;strong&gt;하나님께서는 먼저 조상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lt;/strong&gt;고 말씀하신다. &lt;strong&gt;이어 당대 백성이 조상들보다 더욱 더 악을 행하고 완악한 마음을 따라 하나님께 더 순종하지 않았다&lt;/strong&gt;고 책망하신다(렘 16:11-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16:11-12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조상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너희가 너희 조상들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행동하고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므로&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지금 내가 겪는 모든 고통을 두고서 모두 조상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물론 조상의 우상숭배로 내려온 영이 내게 큰 영향을 줄 수도 있겠지만, 자신도 같은 죄를 선택하고 더 악하게 살았다면 그 죄에 책임은 자신이 저야 한다. 반대로 조상의 죄가 아무리 많더라도 자신이 죄를 멀리하고 진실하게 회개하면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긍휼을 베푸어주실 것이다. 조상죄 회개는 죽은 조상의 영원한 운명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그 죄로 인해 내게 내려온 악한 영의 영향과 연결 고리를 처리하는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따라서 회개의 바른 순서는 조상들의 죄를 자기 죄처럼 통회하되 자기 죄를 숨기지 않는 것이다. &amp;ldquo;조상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amp;rdquo;고 원망만 하지 말고, 내가 조상보다 더 악하게 행한 것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조상과 내가 함께 쌓은 죄를 예수님의 피 앞에 내놓고 자백할 때 더러운 영이 떠나고 가정의 저주가 끝나며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죄를 정결하게 하는 데 있어서 &lt;strong&gt;자기 죄와 자기 조상들의 죄를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았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죄된 본성과 악한 영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회심의 회개로 죄를 덮어 칭의를 받고 생명을 얻은 뒤에는, 자백의 회개로 죄 사함과 모든 불의에서의 깨끗함을 계속 받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 안에는 &lt;strong&gt;조상들로부터 &amp;#39;내려온 영&amp;#39;, 자신이 죄를 지어 &amp;#39;불러들인 영&amp;#39;, 자기 안의 영이 다른 사람에게서 &amp;#39;끌어당겨 들인 영&amp;#39;&lt;/strong&gt;이 있다. 조상 영은 부부의 성생활과 자궁을 통하여 양쪽 가문에서 후손의 육체로 들어오며, 자범죄를 반복하면 같은 속성의 영을 스스로 불러들인다. 이 영들은 들어온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고 축사할 때 떠날 근거를 잃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회개의 분량과 정결의 속도가 사람마다 다른 것은 내려온 영과 불러들인 영의 종류와 분량이 다르기 때문&lt;/strong&gt;이다. 약 120회부터 변화를 경험한 사람도 있고, 500회가 지나도록 변화가 더딘 사람도 있으며, 4,570회까지 회개한 사람도 있다. 숫자 자체가 구원을 사는 공로는 아니지만, 자기와 가문에 쌓인 죄를 끝까지 처리하려면 필요한 분량만큼 진실하게 회개해야 한다. 조상의 죄를 자기 죄처럼 통회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귀신의 집을 파괴하는 특사 조치를 베푸실 수도 있지만, 이를 회개를 줄이는 공식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lt;strong&gt;므낫세와 조상들의 죄가 남유다의 심판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면서도, 당대 백성이 조상보다 더욱 악을 행했다&lt;/strong&gt;고 책망한다. 조상의 죄는 후손에게 영적&amp;middot;현실적 영향을 미치지만 각 사람은 자기 죄로 하나님 앞에 선다. 그러므로 &lt;strong&gt;조상 탓만 해서도 안 되고, 조상죄의 영향을 부정해서도 안 된다. 자기 죄와 조상들의 죄를 함께 인정하고 예수님의 피로 씻어야 &lt;/strong&gt;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제 우리는 회개 횟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 안에 남은 죄와 영을 살펴야 한다. 회개기도문과 평생 회개기도문을 따라 조상들의 우상숭배와 자기의 생활 및 성품 속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자기와 가문에 내려온 모든 저주의 연결을 끊고 성령께 쓰임받는 사명을 감당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27일(목)&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말씀요약]&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회개의 비밀&lt;/strong&gt;을 정보배 목사 자신의 사역 경험과 성경적 근거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설명하며, 우리가 겪는 고난과 영적 억눌림의 원인이&amp;nbsp;&lt;strong&gt;자기의 죄&lt;/strong&gt;뿐만 아니라&amp;nbsp;&lt;strong&gt;조상들의 죄&lt;/strong&gt;로부터 대물림된 악한 영들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인간의 내면에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영, 스스로 불러들인 영, 그리고 외부에서 끌어당긴 영 등&amp;nbsp;&lt;strong&gt;세 종류의 영적 실체&lt;/strong&gt;가 공존한다고 분석하며, 특히 자궁에서부터 유전되는 뱀과 귀신들이&amp;nbsp;&lt;strong&gt;죄된 본성의 실상&lt;/strong&gt;임을 역설합니다. 이 설교는 각기 다른&amp;nbsp;&lt;strong&gt;회개의 분량&lt;/strong&gt;과 효과의 차이를 언급하며, 조상의 죄를 자신의 죄처럼 간절히 자백할 때 하나님의&amp;nbsp;&lt;strong&gt;특사 조치&lt;/strong&gt;로 정결함을 얻을 수 있다는 영적 원리를 제시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단순히 예수를 믿는 것에 안주하지 말고,&amp;nbsp;&lt;strong&gt;자백의 회개&lt;/strong&gt;를 통해 내면의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어 삶의 저주를 끊어내고&amp;nbsp;&lt;strong&gt;천국 복음&lt;/strong&gt;에 합당한 정결한 삶을 살 것을 독려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ChatGPT Image 2026년 8월 27일 오후 09_31_0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dbd6c8ce4243dfbcfdf81f566bf17d8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216aab8b6cab213a958292307f40285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29aba83d5cd243ccae74bfa3caceaeb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5aa98afa3be61533020af8e4a6ee8e7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ac4714d64d0e8b0595d4666096d8a92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9764ac292ada30452fbaa3f51d61243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6235ebbb9321ce85082706629d6883f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21277e7043ef5394250edd8a3af0ab1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d44dae3bbbbeba74fad813ac315e91c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f182dbaaf6ab899fa1536fc8a372e9e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8794d0410a962f44ff933526e78dd85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db99027aacbcf5759e5527b57755aa4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2df8e79bc9dc2431cf2b82f97d78304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dd6c18da4d20e67122668df557f9f46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영적_정결의_비밀과_원리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1b8ede0b5bc2c7d817b4550b81f6d39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7e99ea61ffa9f1dfc22bc64702e4865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80b465fcd0215d01e8ab9526a7693d8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e01a2c7fdfa2f8c27a73a2e45364184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067b21a39c2f5b94e2439fa6c59884e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e4681f2c540517e98e3f23bb508051e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8d5e771b6e473aed2b235e5f4063bf4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3bf320ba974cd0923fbfe6dd3f53d84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f95f9c8a7321d87f3685576c9840152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bdeccad7275931c688103f6a8fb2766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455206aed546f094c68f51b9bd601f0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6)] Spiritual_Cleansing_Blueprint (1).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5/526a8f27a4478bcee4642e15aef831f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75)] 신약 성도는 속죄와 내주하는 성령을 받았는데도 왜 여전히 죄를 지을까?(렘31:31~34)_2026-08-26(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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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6T08:31:31+09:00</published>
		<updated>2026-08-26T22:33:22+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75)] 신약 성도는 속죄와 내주하는 성령을 받았는데도 왜 여전히 죄를 지을까?(렘31:31~3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nYt4IOTVfG4 기독론(175) 신약 성도는 속죄와 내주하는 성령을 받았는데도 왜 여전히 죄를 지을까? (렘 31:31-34)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예레미야 기독론의 핵심은 새 언약(新約, new covenant)이다. 이사야와 다니엘도 메시아와 하나님 나라...</summary>
	<content type="html">&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75)] 신약 성도는 속죄와 내주하는 성령을 받았는데도 왜 여전히 죄를 지을까?(렘31:31~3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https://youtu.be/nYt4IOTVfG4&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nYt4IOTVfG4?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75)&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신약 성도는 속죄와 내주하는 성령을 받았는데도&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왜 여전히 죄를 지을까?&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렘 31:31-34)&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 기독론의 핵심은 &lt;strong&gt;새 언약(新約, new covenant)&lt;/strong&gt;이다. 이사야와 다니엘도 메시아와 하나님 나라를 풍성하게 예언했지만, 새 언약을 예레미야처럼 선명하게 말하지는 않았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법을 백성의 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며,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겠다고 예언했다(렘 31:31-34). 여기에는 속죄(贖罪, atonement)와 성령의 내주(內住, indwelling of the Holy Spirit)가 함께 들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예레미야만 보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신약 성도는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께서 안에 들어오셨는데도 왜 여전히 죄를 짓는가 하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B.C.595년 새 언약의 약속을 주었지만 이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충분히 풀어 주지는 못했다. 그 답은 에스겔의 새 언약 예언과 함께 볼 때 비로소 선명해진다. 에스겔은 새 영과 새 마음과 하나님의 영을 약속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먼저 맑은 물로 모든 더러운 것과 우상숭배에서 정결(淨潔)하게 하겠다고 선포한다(겔 36:25-2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은 한 사람이나 성경 중 어느 한 권만 붙들어서는 온전히 알기 어렵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특정한 방면에 들어 쓰셨다. 사도 바울은 서신들을 통해 믿음으로 얻는 칭의(稱義, justification)와 &amp;#39;생명의 성령의 법&amp;#39;(롬 8:1)을 힘 있게 전했고,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일&amp;middot;이&amp;middot;삼서와 요한계시록을 통해 생명과 정결과 마지막 계시를 보충했다. 바울을 읽되 요한도 읽고, 예레미야를 읽되 에스겔도 읽어야 한다. 성경 전체를 통전적으로 볼 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온전한 구원(救援, salvation)의 길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사실 구원의 여정의 시작이요 출발점이다. 그러면 거듭남 곧 중생(重生, regeneration)을 겪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 안에 분배되는 일이며, 그 뒤에는 죄를 자백하여 깨끗해지고 거룩해지는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의 과정이 있다. 마지막에는 부활체를 입는 영화(榮化, glorification)에 이르러야 한다. 칭의만 모든 과정인 것처럼 확대하면 믿은 뒤의 자범죄와 몸 안에 남아 있는 악한 영을 처리하지 못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필자는 2013년부터 회개(悔改, repentance)가 보화 중의 보화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회개는 예수님의 속죄를 부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피의 정결하게 하는 효능을 실제로 적용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죄를 깨닫게 하고 진리로 인도하시지만, 사람은 자유의지로 그 음성을 거절할 수 있다. 또한 성령이 영 안에 들어오셨어도 육체 속의 뱀과 귀신들이 자동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예레미야와 에스겔의 새 언약을 함께 살펴보면서 속죄와 성령의 내주를 받은 성도가 왜 다시 죄를 짓고, 어떻게 자백과 정결을 통하여 성화와 영화로 나아가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왜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함께 보아야 새 언약이 온전히 드러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와 에스겔은 새 언약의 서로 다른 면을 보여 주는 짝이다. 예레미야는 법이 돌판 밖에 머물지 않고 사람의 속과 마음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죄악을 사하여 다시 기억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했다(렘 31:31-34). 이것은 죄를 덮는 &amp;#39;속죄&amp;#39;와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거하시는 &amp;#39;내주&amp;#39;를 약속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는 그 내적 변화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amp;#39;새 마음&amp;#39;을 주고 &amp;#39;새 영&amp;#39;을 속에 두시며,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 이어서 &amp;ldquo;내 영&amp;rdquo;을 속에 두어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이 약속 앞에 맑은 물로 더러운 것과 모든 우상숭배에서 깨끗하게 하는 &amp;#39;정결&amp;#39;의 단계가 놓여 있다(겔 36:22-2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36:25-27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 36장이 말하고 있는 대상은 &amp;ldquo;이스라엘 족속&amp;rdquo;, 원문으로 보면 &amp;#39;이스라엘 집&amp;#39;이다. 예레미야는 새 언약을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세우겠다고 했지만, 에스겔은 포로 가운데서 불러 모을 이스라엘 집을 집중하여 말한다(렘 31:31; 겔 36:22-24). 유다 집이 혈통적인 언약 백성을 가리킨다면, 이스라엘 집은 하나님을 붙들고 끝까지 이기는 영적 후손까지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남유다의 남은 백성 가운데서 나온 열두 제자와 언약을 세우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여 이기는 자들을 만들라고 명하셨다(마 28:18-20).&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두 예언을 포개어 보면 &amp;#39;&lt;strong&gt;새 언약&amp;#39;의 세 요소&lt;/strong&gt;가 나타난다. &lt;strong&gt;첫째는 죄를 사하고 기억하지 않으시는 &amp;#39;속죄&amp;#39;&lt;/strong&gt;다(렘 31:34). &lt;strong&gt;둘째는 하나님의 영이 사람 안에 들어와 법을 가르치고 행하게 하는 &amp;#39;성령의 내주&amp;#39;&lt;/strong&gt;다(렘 31:33, 겔 36:26-27). &lt;strong&gt;셋째는 맑은 물로 모든 더러운 것과 우상숭배를 씻는 &amp;#39;정결&amp;#39;&lt;/strong&gt;이다(겔 36:25). 고로 예레미야의 속죄와 내주만 말하고 에스겔의 정결을 생략하면, 예수 믿은 뒤에 왜 죄가 반복되는지 설명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는 신약에서도 같다.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길(롬&amp;nbsp; 3:28; 갈 2:16)과 성령을 따라 행하는 길을 가르쳤다(갈 5:16-17). 그러나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피가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고, 죄를 자백하면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방면을 더 분명히 밝혔다(요일 1:7-9). 요한복음은 내주하는 성령을 강조하고(요 14:16-17), 요한일서는 정결을(요일 1:9, 3:3)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두루마기를 빨아 성에 들어가는 마지막 결과를 강조한다(계 22: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은 주로 서신서만을 기록했지만 사도 요한은 복음서와 서신서와 계시록을 모두 남겼다. 요한은 다른 복음서가 기록하지 않은 내용을 보충하려는 목적을 분명히 가지고 요한복음을 썼다(요한복음은 92%가 타복음서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더욱이 요한복음은 주후 90년경, 요한계시록은 주후 95-96년경 기록된 마지막 시기의 계시다. 그러므로 먼저 주어진 바울의 계시를 존중하면서도, 더 뒤에 주어진 요한의 생명과 정결과 종말의 계시를 함께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사도의 강조만으로 닫히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amp;#39;요한복음&amp;#39;과 &amp;#39;요한일서&amp;#39;와 &amp;#39;요한계시록&amp;#39;을 반복하여 공부해야 한다. 그중에 &amp;#39;요한복음&amp;#39;은 하나님께서 생명 주는 영으로 사람 안에 들어오시는 거듭남을 보여 주고(요 3:3-8), &amp;#39;요한일서&amp;#39;는 그 생명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지를 가르치며(요일 1:9; 3:2-3), &amp;#39;요한계시록&amp;#39;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예수님과 천국에 들어갈 정결한 성도의 최종 모습을 보여 준다(계 1:17-18). 이 세 책을 함께 볼 때 예수님이 누구시며 성도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가 온전히 연결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종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과 교리만 반복해서 가르쳐서는 안 된다. 즉 이신칭의를 강조하고 있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만 말할 것이 아니라, 구원의 탈락 가능성을 강력하게 제시하는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와 마태복음과 요한의 글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 선지자는 먼저 보고 전파하는 파수꾼이다. 적이 오는 것을 보았으면 나팔을 불어야 하듯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자기 자신의 생각과 섞지 않고 전해야 한다(겔 3:17-19; 33:1-7). 성령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성경 전체를 살펴야 한다. 그럴 때 새 언약의 온전한 그림이 열리게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새 언약의 속죄와 성령의 내주는 언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새 언약으로서 속죄와 성령의 내주는 언제 어떻게 성취가 되었을까? 먼저 옛 언약을 살펴보자. 옛 언약은 주전 1446년경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세우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모세에게 돌판에 새겨 주셨고, 모세는 언약서를 낭독한 뒤 소의 피를 백성에게 뿌렸다(출 24:3-8). 그러나 이때는 법이 사람의 외부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읽지 않고 외면하면서 마음대로 죄를 지었다. 또한 이 때 사용된 짐승의 피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피를 보여 주는 모형에 불과한 것이었기에 반복해서 드려야 했다.&amp;nbsp;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 이스라엘 백성에 남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 영적 간음과 육적 음행을 저질렀다(렘 31:3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주전 595년경 예레미야를 통해 법을 사람 안에 두고 죄를 사하시는 &amp;#39;새 언약&amp;#39;을 약속하셨다(렘 31:31). 그런데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언약이 온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것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참 목자이자 다윗의 왕으로 오실 메시아를 기다려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하여 새 언약에 대한 약속이 주어진 후, 약 600년 뒤인 주후 30년경, 하나님께서 친히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예수께서 마가 다락방에서 열두 제자와 새 언약을 체결하셨다(눅 22:20). 그런데 모세가 당시에는 짐승의 피로 세웠다면 이때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새 언약을 맺으셨다. 그때 예수께서는 &amp;ldquo;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amp;rdquo;이라고 말씀하신 뒤 십자가에서 실제로 자신의 피를 흘리셨다(눅 22:19-20). 그리고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이기는 자들을 만들라고 명하셨다(마 28:18-20).&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하여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신약시대에 아버지와 아들의 방식으로 동시에 존재하셨다. 아들의 인격은 아버지께 기도했고, 겟세마네에서 &amp;ldquo;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amp;rdquo;라면서 순종했다(마 26:39). 이것은 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혹은 아들이 되기도 하는 양태론(樣態論, modalism)이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서로 다른 세 신으로 나누어서도 안 된다. 아들은 인간으로 낮아지신 자리에서 구별된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밤,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아버지께 구하여 또 다른 보혜사(保惠師, Paraclete)를 그들에게 보내주시겠다고 하셨다(요 14:16-17). 그러면 진리의 영인 성령은 제자들과 함께 계실 뿐 아니라 그들 속에 계실 것이라고 했다. 예레미야가 &amp;ldquo;내 법을 그들의 속에 두겠다&amp;rdquo;고 한 약속과 에스겔이 &amp;ldquo;내 영을 너희 속에 두겠다&amp;rdquo;고 한 약속이 보혜사 성령의 오심으로 성취되기에 이른 것이다. 또한 여기에 나오는 &amp;ldquo;영원토록&amp;rdquo;이라는 번역도 원문 그대로 보면, &amp;quot;그 시대동안&amp;quot; 혹은 &amp;quot;그 세대 동안&amp;quot;이라고 번역하여,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는 약속으로 보아야 한다. 즉 한 번 성령을 받으면 성령이 그에게 영원무궁토록 거주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오순절 이후 성도 안에 들어오신 성령께서는 이 땅의 성도의 삶이 마쳐질 때까지 함께하시며 하나님의 법을 가르쳐주신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4:16-17&amp;nbsp;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내주하는 성령은 성도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내주하시는 성령은 성도 안에서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 여기서 내주하는 성령이란 &amp;#39;보혜사&amp;#39;이신 성령을 가리킨다. 헬라어로 보혜사라는 파라클레토스(&amp;pi;&amp;alpha;&amp;rho;ά&amp;kappa;&amp;lambda;&amp;eta;&amp;tau;&amp;omicron;&amp;sigmaf;)라는 단어로서, 곁에 와서 돕는 분이라는 뜻을 지니며, 돕는 자와 상담자와 위로자, 변호사의 역할을 행하신다. ㄱ고로 예수께서 보내실 성령께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성도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요 15:26; 16:13-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내주하시는 성령은 성도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일까? 그것은 주로 4가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성령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가르치고 생각나게&lt;/strong&gt; 하신다고 했다(요 14:26). 사람에게 배운 지식은 성경 전체의 틀을 잡는 데 필요한 지식이기는 하지만, 진리를 실제로 열어 보이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필자도 역시 새벽 설교 시간에 원고만 의지하지 않고 성령께 입을 내어 드리는 훈련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면 배운 내용을 반복하는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무엇이 참되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별하게 되기 때문이다(요 14:26; 요일 2:2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친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성령은 예수님을 증언&lt;/strong&gt;한다(요 15:26). 예수께서 아버지의 말씀만을 전하셨듯이, 성령께서도 스스로 말하지 않고 들은 것을 말하며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성령의 역사는 성령 자신을 높이는 데 있지 않고, 예수께서 누구시며 무엇을 이루셨는지 알게 한다. 또한 장래 일을 알리시며 깨끗해진 사람에게 환상과 분별을 주신다(요 16:13-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성령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lt;/strong&gt;하신다(요 16:7-11). 죄에 대하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을 드러내는 일이고, 의에 대하여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의가 되심을 깨닫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심판에 대하여는 이 세상 통치자가 이미 심판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의로 천국에 갈 수 없고, 예수께서 주시는 속죄와 생명을 받아야 가능하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죄에 대한 책망은 예수님이 죄 사함을 위하여 보내심을 받은 메시아라는 사실을 믿도록 인도한다. 이는 우리가 예수님을 거절하면 여전히 죄 가운데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에 대한 책망은 사람이 자기 선행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amp;lsquo;여호와 우리의 공의&amp;rsquo;이신 예수님의 의를 옷 입어야 함을 가르친다(렘 23:6; 마 3:15). 그리고 심판에 대한 책망은 사탄 마귀가 최종 승자가 아니라 이미 판결받은 세상 통치자임을 알게 한다. 이 세 가지를 분명히 알 때 죄 앞에서는 회개하고, 의를 위해서는 예수님을 의지하며, 영적 싸움에서는 담대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다. 그러므로 거짓말의 아비를 따르지 않고 진리를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더 분명히 역사하신다. 마음속에 기존 교리를 지키려는 욕심이 진리보다 크면, 성령께서 깨닫게 하셔도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고 거역한다. 그러나 &amp;ldquo;주님이 말씀하신 것이면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내용도 그대로 가르치겠다&amp;rdquo;는 자세로 들을 때에, 성령께서 성경의 부분들을 연결하여 전체 뜻을 깨닫게 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성령은 안에서 악한 자보다 크신 하나님을 의지&lt;/strong&gt;하게 하신다(요일 4:4). 사람은 흙으로 지어진 약한 존재지만 안에 계신 분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다. 필자는 나보다 영적 계급이 높은 악한 영을 대할 때도 전능자가 내 안에 계신다는 말씀을 믿고 담대하게 축사해왔다. 믿음의 근거는 내 능력이 아니라 안에 계신 성령과 이미 심판받은 세상 통치자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성령이 안에 계신다고 모든 가르침이 자동으로 알아지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음성을 사모하고, 그분이 말씀하실 때 순종할 때에 가능하다. 진리임을 속으로 알면서도 기존 교리와 자기 생각을 고집하면 성령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게 된다. 내주 자체와 내주하시는 분의 지도를 받아 사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구약의 외적 성령 역사와 신약의 내적 성령 역사는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 시대에 역사하신 성령과 신약 시대에 역사하신 성령의 방식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먼저 구약 시대에 역사하셨던 성령도 강력하게 일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는 주로 특정한 사람에게 임하여, 특정한 사명을 위하여 주어졌는데, 전부 다 사람 밖에서 임재하시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자 삼백 명으로 미디안의 큰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고, 삼손에게 임하자 나귀의 턱뼈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칠 수 있었다(삿 7:7, 19-22; 15:14-16).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성령이 주시는 지혜와 재주로 성막 기구를 만들었고, 사울에게 성령이 임했을 때 그는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했다(출 31:1-6; 삼상 10:9-1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구약 시대에는 성령께서&amp;nbsp;&lt;strong&gt;외적으로 임하시어, 특정한 사람에게 어떤&lt;/strong&gt;&amp;nbsp;&lt;strong&gt;능력과 기적, 예언과 치유, 판단과 기술&lt;/strong&gt;을 얻게 하셨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의 외적인 역사는 신약에도 계속되었다. 신약의 책들 중에서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성령께서 구약시대처럼 사람에게 어떤 능력을 주어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게 하시는 방면을 풍성하게 보여 준다(눅 4:18-19; 행 1:8; 10:38). 그리고 신약 시대에는 이보다 더 많은 은사와 능력을 주어졌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은사와 능력이 주어진 것은 귀한 일이지만, 그것이 곧 그 사람의 내면이 깨끗하다는 증거는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몇 사람에게 있었던 구약의 외적 임재 방식은 단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 사람이 범죄할 때 성령이 떠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울이 하나님을 거역하자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서 떠나고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건이다(삼상 16:14-15). 그래서 다윗도 이것을 지켜보았기에 자신이 범죄한 뒤에는 &amp;ldquo;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amp;rdquo;라고 하나님께 간구할 수밖에 없었다(시 51:11). 그런데 성령이 떠나고 악령이 임했던 사울이 끝내 회개하지 않고 또다시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다른 영을 의지하는 바람에 그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삼상 28:3-25; 31:1-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신약 시대의 성령이 일하시는 방식은 많이 달라졌다. 구약 시대처럼 성령이 사람 위에 임재하여 은사와 능력을 주는 것 외에도 내주의 방식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즉 신약 시대에 성령께서는 성도의 영 안에 들어가시어 사심으로 믿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해 주고 지속적으로 함께하실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보혜사 성령이 &amp;ldquo;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amp;rdquo;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영과 연합하여 말씀을 가르치고 죄를 깨닫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도록 이끄시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다(요 14:16-17; 고전 6:17; 롬 8:9-1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성령의 외적 역사와 내적 역사는 서로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주하는 성령을 받은 성도에게 전도와 치유와 축사를 위한 능력이 위로부터 따로 입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밖으로 큰 능력이 나타나는 것과 안의 성품이 변화되어 정결함을 입는 것은 결코 같은 일이 아니다. 구약의 선지자처럼 예언하고 기적을 행하는 성도라고 할지라도 마음과 육체에 더러운 것이 남아 있는 성도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았다는 사실로 자기 영적 상태를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자기 안에 계신 성령의 책망을 따라 계속 깨끗해져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가 알 것은 자신이 신약 시대에 태어나 성령을 받았다는 이유 때문에 자신의 구원 혹은 자신의 깨끗함이 끝까지 자동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아다. 신약에서는 범죄했다고 해서 구약의 사울처럼 곧바로 떠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 않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담대하게 죄를 지을 위험성도 있다.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끝내 회개하지 않아 죽을 때에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며, 그때는 성령께서 그에게서 떠나가신다. 그러므로 &amp;ldquo;성령을 받았다&amp;rdquo;는 과거의 체험을 죄의 면허로 삼지 말고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계 3:5; 22:14-15).&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속죄와 성령의 내주를 받은 성도가 여전히 죄를 짓는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속죄와 성령의 내주를 받은 성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죄를 짓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lt;strong&gt;&amp;nbsp; 첫째 이유는, 내가 비록 속죄를 받고 성령의 내주가 함께 하고 있어도 나에게는 여전히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will)가 활동하기 때문&lt;/strong&gt;이다. 성령이 사람 속에 들어가시더라도 그 사람을 인격 없는 기계로 만들지는 않으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거듭나면 그때부터는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함께 공존하게 된다. 그때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서로 대적할 수도 있는데, 그때 나는 어느 편을 따를 것인지를 내가 선택해야 한다. 만약 이때 내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는 않겠지만, 육체를 따라 살면 우리가 비록 속죄를 받고 성령을 모시고 있다고 할지라도 다시 죄를 범하고 마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5:16-17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이유는, 내가 비록 속죄 받고 성령께서 내 안에 거주하신다고 할지라도 내 육체 안에 이미 들어온 채 있는 악한 영들은 단 한 놈도 스스로 떠나가지 않기 때문이다.&amp;nbsp; &lt;/strong&gt;그렇다. 사람이 거듭나면 자기 안에 성령과 악한 영이 공존하게 된다. 왜냐하면 성령과 악한 영들의 거처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거듭날 때 성령은 사람의 영 안에 들어오시지만, 악한 영들은 이미 육체 속에 들어와서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이전의 내가 지은 죄와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를 통하여 내 육체 안에 들어온 뱀과 귀신들은 스스로 절대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4절을 보라.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제 뱀은 흙(&amp;#39;아파르&amp;#39;)를 먹고 살라고 하였다. 그런데 창세기 2장 7절에서 사람의 육체가 흙(&amp;#39;아파르&amp;#39;)으로 지어진 것을 연결해서 보면, 악한 영은 육체 속에 들어와서 살 수 있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은 사람의 육체 속에 있으면서 죄의 욕망을 일으킨다. 내가 영 안에 있을 때에는 성령이 나를 선으로 이끌지만, 내가 육체 안에 있을 때에는 악한 영이 나를 죄로 끌어당기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이유는, 속죄와 칭의는 내가 처음 믿을 때에 받는 것이지만 정결과 성결은 일평생을 두고 내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lt;/strong&gt;이다. 내가 처음에 예수를 믿겠다고 결정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었던 모든 과거의 죄를 아들 예수님의 피로 덮어버린다. 그래서 죄는 있지만 죄 없는 자처럼 여겨 주신다. 이것을 칭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생명주는 영신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생명을 분배해 넣어 주신다. 만일 이때 우리가 자신이 지은 모든 과거의 죄를 하나도 빠짐없이 회개해야만만 생명을 분배해 주신다면 우리 인간은 아무도 거듭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우리가 믿을 때에 주어지는 칭의는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믿은 뒤에는 내가 과거에 지었던 죄들을 자백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할 때에라야 우리가 깨끗하게 되기 때문이다(요일 1: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성도는 속죄와 정결을 포함한 성결을 서로 구분하지 않으면 잘못될 수 있다. 하나는 모든 죄를 완벽하게 회개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구원받을 시간을 놓쳐버릴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내가 믿을 때 모든 문제가 끝났으므로 이후의 자백과 정결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다. 그러면 아니 된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피로 죄를 덮고 생명을 주신 뒤, 안에 계신 성령의 책망을 따라 하나씩 죄를 자백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야 내가 깨끗해지는 것이다. 이때에 내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을 떠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속죄와 이에 따른 칭의는 구원의 시작을 가리키며,&amp;nbsp; 정결과 성결은 나를 깨끗하게 하여 주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에 해당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이유는, 죄 된 본성을 죽음에 넘기고 성령을 따라 사는 훈련을 등한히 여기기 때문&lt;/strong&gt;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므로 이제는 나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사신다고 고백했다(갈 2:20). 그리고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따라 살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신을 해방시킨다고 했다(롬 8:1-2).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교리로만 알고 성령께 순종하지 않는다거나 혹은 자기의 몸 안에 들어있는 악한 영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로마서 7장의 바울의 탄식처럼 원하는 선은 행하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고 말 것이다(롬 7:15-2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필자는 사실 서른 살 무렵 우리나라의 영성가 이상관 목사로부터 &amp;lsquo;생명의 성령의 법&amp;rsquo; 세미나를 듣고 이것이 죄를 이기는 유일한 길이라고 여기고 그것을 붙들었다. 십 년 동안 유행가를 한 번 부르지 않을 만큼 필자는 나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며 살았다. 그래서 한때는 교회도 부흥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난하게 하는 영과 사람을 밀어내는 영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결국 가정은 가난하게 살았고, 교회는 부흥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amp;quot;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영역은 달라지지 않을까?&amp;quot; 나는 오랫동안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그 답은 성령을 따라 사는 것에만 있지 않았다. 거기에 더하여, 자백함으로 자신의 과거의 죄와 그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을 내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칭의만으로 해결되지 않은 죄와 악한 영은 어떻게 정결해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면 속죄와 성령의 내주만으로 해결되지 않은 죄와 악한 영은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가? 그것은 내가 지은 죄들과 조상들이 지은 죄들을 구체적으로 자백함으로 정결케 할 수 있다.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우리들 마음 속에 두겠다는 약속에 앞서, 맑은 물로써 모든 더러운 것과 우상숭배에서 정결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겔 36:25-27). 즉 사람이 범죄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는 사실까지 명확히 알려준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사도 요한도 주님을 향하여 자신도 주님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는 자마다 예수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요일 3:2-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3:2-3&amp;nbsp;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자백에는 두 결과가 뒤따른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용서)하시고 행위책에 기록된 죄마저 지우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둘째, 그 죄를 통하여 육체에 들어온 악한 영들이 떠날 근거가 생긴다. 죄 사함과 모든 불의에서의 깨끗함은 구별되는 것으로서, 하나의 자백 안에서 함께 일어나는 일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책을 덮어줄 뿐 아니라 우리의 더러워진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히 9: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죄를 자백할 때에는 막연히 &amp;ldquo;죄인입니다&amp;rdquo;라고만 말하지 말고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사건과 행동을 구체적으로 시인해야 한다. 어떤 우상을 섬겼는지, 누구를 미워하고 속였는지, 어떤 음행과 탐욕을 품었는지를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이때에 &amp;ldquo;이 죄를 통하여 이러이러한 영을 받아들였습니다&amp;rdquo;라고 자백함으로, 죄와 악한 영의 통로를 함께 끊어야 한다. 구체적인 자백은 죄를 미화하거나 책임을 피하지 못하게 하며, 악한 영이 붙들고 있던 근거를 예수님의 피 아래 내려놓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과정은 한 번에 모든 기억을 끌어내어 끝내는 일은 아니다. 성령께서 빛을 비추실 때마다 새롭게 깨닫고 자백해야 한다. 처음에는 큰 우상숭배와 음행을 회개하고, 그다음에는 말과 생각과 성품 속에 숨어 있는 교만과 분노와 미움까지 다루게 된다. 회개의 횟수를 자랑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지만, 꾸준히 자백한 만큼 정결의 실제 열매가 쌓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개인의 자범죄뿐 아니라 조상들의 우상숭배로 내려온 영적 영향도 다루어야 한다. 왜냐하면 조상의 영원한 죄책을 후손이 대신 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상숭배를 발판으로 들어온 악한 영의 영향은 삼사 대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출 20:5-6). 회개하지 않은 세대가 거듭되면 아주 오래된 영이 후손의 육체에까지 내려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조상을 구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상과 자신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자백하여 후손에게 작용하는 악한 영을 제거하려면 조상들의 죄까지도 자백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필자 자신도 과거에 회개할 때에는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살았다는 일반적인 말로 회개했다. 그렇지만 어머니를 따라 무덤에서 고무신을 거꾸로 놓고 세 번 절했던 것처럼 구체적인 우상숭배의 사건은 자백하지 않았다. 그는 용서받았으니 제거된 채 있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그 죄를 통하여 이미 들어온 영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내 속에 들어와있는 더러운 영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고백하고 그 죄로 악한 영을 받아들였음을 시인해야 한다. 그럴 때에 정결이 내게서 실제가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사람이 구원을 받았어도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야 했다(고후 7:1).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더러워진 양심만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자백할 때 육체 안의 더러운 영도 떠나게 하기 때문이다. 정결은 행위로 구원을 사는 일이 결코 아니다. 이미 받은 속죄의 피를 믿고 그 피의 또 다른 효능인 깨끗함을 적용받는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회개기도문과 평생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하는 일을 주문을 읽는 일로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예수께서도 주기도문으로 자신의 제자들에게 기도의 모범을 가르쳐 주셨듯이, 무엇을 어떻게 회개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회개기도문과 평생 회개기도문은 구체적인 죄를 자백하도록 돕는 길잡이인 것이다. 고로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회개할 때에는 그 문장을 읽는 데서 끝나지 말고 자기 죄를 인정하며 끊을 때에 비로소 악한 영이 떠나가고 성령의 인도를 더 온전히 받을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칭의에서 성화와 영화로 나아가려면 왜 평생 자백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속죄나 칭의는 믿을 때 한 번 받는 구원의 시작이지만, 정결과 성화는 평생 반복해야 할 과정이다. 죄를 하나 자백할 때 그 죄가 씻기고 관련된 악한 영이 떠날 근거가 생긴다. 죄의 종류와 뿌리가 아주 많기 때문에 한두 번의 회개기도로 모든 과정이 끝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의 분량을 채우며 날마다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요한계시록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자기의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생명나무에 나아가고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가 주어질 것이라고 하셨다(계 22:14). 씻음이란 한 번 옷을 받은 사실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질 때마다 어린양의 피로 빠는 지속적인 행위인 것이다. 고로 속죄를 믿는 사람일수록 죄의 자백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성도가 속죄와 칭의를 받았아면 그때부터는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amp;nbsp; 한다. 그래야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게 되기 때문이다(딤후 2:20-21). 아무리 많은 은사와 능력을 행했어도 회개하지 않아 더러운 상태라면 그 사람의 수고는 나무와 풀과 짚처럼 불타 없어질 수 있다. 반대로 정결한 상태에서 순종한 일은 금과 은과 보석처럼 남아 하늘의 상급이 될 것이다(고전 3:12-15). 고로 성도가 하루를 산다고 해도 주님 앞에서 계산될 삶을 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천국을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은사의 창고에는 성도들이 구하지 않아 남은 은사가 아주 많았고, 그중 가장 줄어들지 않은 것이 축사의 은사였다. 어떤 사람은 예언을 사모하지만 회개 없이 예언만 좇으면 거짓 영이 섞이기 쉽다. 미국의 신사도와 빈야드 계열에서 예언을 앞세우다가 미혹된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은사의 크기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깨끗한 그릇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조상에게서 내려온 성향도 무조건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나는 조상 제사를 통하여 들어온 논리적으로 따지는 영과 가르치는 영이 있었지만, 회개로 나쁜 영향은 제거하고 논리성과 가르치는 재능을 이제는 복음을 전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새벽 네 시부터 큰 소리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습관도 새벽마다 정성을 들이던 어머니에게서 이어진 면이 있다. 악한 영은 내보내되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성품과 재능은 선하게 드려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회개는 보화 중의 보화다. 자기 소유를 팔아서라도 얻을 가치가 있는 천국의 보화처럼, 죄를 자백하여 정결해지는 길은 영원한 미래를 준비해 준다. 평생 회개하면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면 죄의 충동이 약해지고, 은사와 능력과 축사의 무기도 깨끗하게 사용되며, 행한 일이 하늘에서 금과 은과 보석으로 남고 빛나는 충성의 면류관을 얻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필자는 2013년부터 자백하는 회개의 가치를 본격적으로 발견한 뒤 회개기도문을 통해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가르쳐 왔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기도를 배웠고 예수님도 주기도문이라는 모범을 주셨듯이, 기도문은 기도를 대신하는 주문이 아니라 회개 기도의 길을 익히는 샘플이다(눅 11:1-4). 이를 주술이라고 매도하면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치신 뜻까지 놓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문구 자체가 아니라 그 내용을 자기 죄로 인정하고 진심으로 돌이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정결하지 않은 채 은사만 구하면 위험하다. 예언과 환상이 나타나도 그 근원이 성령인지 거짓 영인지 분별하지 못할 수 있다. 성령의 은사는 회개를 대신하지 않고, 오히려 깨끗한 그릇 안에서 바르게 쓰일 때 주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은사를 얼마나 받았는가보다 오늘 내 양심과 육체가 예수님의 피로 얼마나 씻기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칭의에서 멈추지 않고 성화로 나아간 사람은 마지막에 영화의 몸을 입고 정결한 신부로 주님 앞에 서게 된다. 그러므로 날마다 자백하고 예수님의 피로 씻으며, 생명의 성령의 법 안에 머물러야 한다. 회개와 천국 복음은 믿음을 무너뜨리는 행위 복음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은 생명을 끝까지 지키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완전한 복음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신약 성도가 속죄와 내주하는 성령을 받고도 여전히 죄를 짓는 이유와 그 해결의 길을 살펴보았다. 예레미야는 죄를 사하고 법을 마음에 기록하는 새 언약을 약속했고, 에스겔은 새 영과 하나님의 영을 속에 두는 약속 앞에 모든 더러운 것과 우상숭배에서 정결하게 되는 과정을 놓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새 언약은 주전 595년경 예언되었고 약 600년 뒤인 주후 30년경 예수께서 마가 다락방에서 자기 피로 체결하셨다. 성령께서는 보혜사로 성도 안에 들어와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진리로 인도하며, 죄와 의와 심판을 깨닫게 하신다. 구약의 외적 역사와 달리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영 안에 들어와 생명을 주고 지속적으로 이끄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럼에도 자유의지가 육체의 소욕을 선택할 수 있고, 육체 안에 남아 있는 뱀과 귀신들이 죄로 유혹하므로 성도는 다시 죄를 짓는다. 속죄는 죄를 덮어 생명을 받을 길을 열지만 몸 안의 악한 영을 자동으로 내보내지는 않는다. 덮인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할 때 죄 사함과 모든 불의에서의 깨끗함이 일어나고, 악한 영이 떠날 근거가 생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칭의는 한 번 받는 시작이지만 정결과 성화는 평생 계속해야 한다. 바울의 칭의와 생명의 성령의 법을 붙들면서 요한의 정결과 두루마기를 빠는 신앙까지 나아가야 한다. 은사와 능력보다 깨끗한 그릇이 먼저이며, 회개의 횟수 자체보다 죄를 실제로 끊고 성령께 순종하는 열매가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자백하는 회개를 행위 구원이라고 오해하지 말고 예수님의 피가 지닌 깨끗하게 하는 효능으로 받아야 한다. 날마다 죄를 자백하고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며, 성령의 음성을 따라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칭의에서 성화와 영화로 나아가 정결한 신부로 주님 앞에 설 날을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26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신약 성도가 죄 사함과 성령의 내주를 경험하고도 왜 반복해서 죄를 짓는지에 대한 해답을 예레미야와 에스겔의&amp;nbsp;&lt;strong&gt;새 언약&lt;/strong&gt;을 통해&amp;nbsp;&lt;strong&gt;통전적으로 고찰&lt;/strong&gt;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레미야의 속죄 약속뿐만 아니라 에스겔이 강조한&amp;nbsp;&lt;strong&gt;정결의 과정&lt;/strong&gt;이 병행되어야 함을 역설하며, 단순한 믿음의 단계인&amp;nbsp;&lt;strong&gt;칭의를 넘어 성화의 단계&lt;/strong&gt;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내주하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자백과 회개를 통해 우리 육체 속에 잔존하는&amp;nbsp;&lt;strong&gt;악한 영들을 내보내는 실천&lt;/strong&gt;이 필수적임을 강조합니다. 결국 이 텍스트는 사도 요한의 신학적 전통을 따라&amp;nbsp;&lt;strong&gt;자기 두루마리를 빠는 정결함&lt;/strong&gt;을 유지함으로써 천국 입성을 준비하는&amp;nbsp;&lt;strong&gt;완전한 회개와 천국 복음&lt;/strong&gt;의 성취를 그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ChatGPT Image 2026년 8월 26일 오후 10_11_2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973d9d5f5c3c3f7e8255d081ff2785a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9049394337b300bdd2dd81ef2ff66ca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4aad2d83fd3b95c3413b8b169783203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ed59a1080d241daa75448b283fa337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52a8accff6930355aa46948536155d4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8893fae060a175a13ad17185528bcd0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727e9b2537e3adcebf9426fd873106e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ff577d6298f3336ff1944ed5b38c50f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8e06c7a3df34b8aaa5cfcb95090e51a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6c57bc508b1d72c9a38b9dc2e9a44f8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292879f4acdd0ed192ea4d09d22a5ec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69a49f64aa8f34710e45eecd193a352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Spiritual_System_Architecture.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de971caef2d5220fa0467e9b8aa7e63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6534d71df36bbe3020e4a7c8fdf2c3c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9ead925e69857e42bf5da4a44ce90f2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60a460f73ef748033c6856023268863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17115be1b897d8037a0f5de1a486210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f2473447adab23889d27c8c9681e70f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9d017e6577e8fa661187bf607c761ce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673261c54931fdd3ff002b72edc7083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d7814eb683731b42473e7517a1478f7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0993553c9bb4a4f2ce06bcc49b6d724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2d4b1186ee9423b644bfb779c7da580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70ed0628ec86e84752455a00ba1736e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6e9a2c66695d8e377ee543c9b2b8fd0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3cac2475d872e817cddc98fd4837732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2a1a7ddfe88dac4199aeaaebd16c24c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ath_to_Radical_Holiness.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f33e64959c598210f627c64bfa2d060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새_언약의_완성과_구원_여정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32d156debcfd82553331a5bbf9f0176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urification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86/265/33cc136e28dfbe46c0075a6c8b1cfe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5)] The_Purification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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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74)] 배역한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하나님께서 내놓은 처방전, 새 언약의 비밀(렘31:31~34)_2026-08-25(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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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5T09:06:08+09:00</published>
		<updated>2026-08-25T20:51:33+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74)] 배역한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하나님께서 내놓은 처방전, 새 언약의 비밀(렘31:31~3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VsnBzpUMMXQ 기독론(174) 배역한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하나님께서 내놓은 처방전, 새 언약의 비밀 (렘 31:31-34)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창조된 인류가 죄악으로 가득 차자 노아 홍수로 심판하셨다. 그러나 홍수 뒤의 인류도 하...</summary>
	<content type="html">&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74)] 배역한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하나님께서 내놓은 처방전, 새 언약의 비밀(렘31:31~3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https://youtu.be/VsnBzpUMMXQ&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VsnBzpUMMXQ?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74)&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배역한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하나님께서 내놓은 처방전, 새 언약의 비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렘 31:31-34)&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창조된 인류가 죄악으로 가득 차자 노아 홍수로 심판하셨다. 그러나 홍수 뒤의 인류도 하나님만 섬기지 않았다. 노아의 후손 가운데 니므롯이 일어났고,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도 우상숭배의 흐름에 합류했다. 나는 성경이 인용하는 야살의 책의 전승도 참고하면서 이 역사를 살핀다. 하나님께서는 혈통이나 한 지도자만 믿고 인류를 이끄는 방식이 아니라,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따라오는 한 사람을 통해 새로운 구원(救援, salvation)의 경륜을 시작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사람이 &amp;#39;아브라함&amp;#39;다. 하나님께서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시자,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순종하여 나아갔다(창 12:1-4; 히 11:8). 그에게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기 생명을 보전하려고 아내를 누이라고 했고, 사라의 말을 따라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13년 동안 나타나지 않으신 시간을 지나 99세에 다시 찾아오셨을 때, 그는 &amp;ldquo;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amp;rdquo;는 말씀을 받고 할례에 순종했다(창 16:16; 17:1-27). 이후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에서도 사흘 길을 걸어 모리아산까지 가며 순종했다(창 22:1-1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할례는 남자가 사흘 동안 제대로 힘을 쓰기 어려울 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순종이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포함하여 집안의 모든 남자에게 그날 할례를 행했다. 그 뒤 백 세에 아들을 얻었고 사라는 구십 세에 이삭을 낳았다(창 17:23-27; 21:1-5). 이삭을 바칠 때의 나이에 관하여 요세푸스는 약 25세로, 야살의 책은 약 37세로 전한다고 알려져 있다. 어느 기록을 따르든 이삭은 아버지에게 붙들려 간 어린아이가 아니라 함께 순종한 장성한 아들이었다. 아브라함은 오랜 훈련을 통하여 자기 계산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사람으로 빚어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창 13:14-17; 22:17). 그러나 아브라함이 살아 있을 때 눈에 보이는 약속의 자손은 이삭 한 명뿐이었고, 소유한 땅도 사라를 장사할 막벨라 굴과 밭뿐이었다.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창 15:13-16; 23:16-20). 약속은 이삭과 야곱과 열두 아들에게 이어졌고, 야곱의 가족은 기근을 피해 애굽에 들어갔다가 약 400년 뒤에 출애굽하여 비로소 가나안으로 향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러 갈 때 주변의 아모리 족속들은 아브라함의 원수가 아니었다. 동맹이 되어 함께했다(창 14:13-24). 그러므로 비록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어도, 아직 죄악이 관영하지 않은 사람들을 때가 되기 전에 쫓아내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욕심대로 성급하게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심판의 분량이 차고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 긴 기다림은 훗날 이스라엘이 그 땅을 받는 일도 은혜와 공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문제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00년을 지내면서 어느새 다신론(多神論, polytheism)과 형상숭배에 물들었다는 데 있었다. 시내산 아래에서도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한 신이라고 불렀다(출 32:1-6). 가나안에 들어간 뒤에는 다 쫓아내지 못했던 일곱 족속의 풍속을 좇아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며 영적 간음과 육적 음행에 빠졌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짓지 않고 영원한 기업을 누리도록 율법과 제사 제도를 알려 주셨지만, 백성은 마침내 언약을 깨뜨렸고 마침내 B.C.586년 바벨론의 심판을 맞이하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배역한 백성을 포기하셨는가? 아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아홉 해 전인 주전 595년경, 하나님께서는 &lt;strong&gt;예레미야를 통해 새 언약(新約, new covenant)을 약속&lt;/strong&gt;하셨다. 돌판 밖에 기록된 법을 마음 안에 두고, 짐승의 피가 아니라 &lt;strong&gt;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贖罪, atonement)&lt;/strong&gt;를 이루며, 사람 속에 생명주는 영이신&amp;nbsp;&lt;strong&gt;성령께서 거하시게 하는 처방&lt;/strong&gt;이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하나님께서 왜 새 언약을 내놓으셨으며, 그 언약의 대상과 내용은 무엇이고, 예수님의 피와 성령의 내주(內住, indwelling of the Holy Spirit)가 어떻게 역사하며, 새 언약 안에 있는 성도가 왜 여전히 죄를 짓는지를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배역한 이스라엘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내놓으신 까닭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내놓으신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lt;strong&gt;자기 백성이 옛 언약(舊約, old covenant)을 깨뜨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갔기 때문&lt;/strong&gt;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셨으나, 그들은 우상들을 다른 남편처럼 섬겼다(렘 31:32). 예레미야 시대에는 유다의 성읍 수만큼 우상이 많고 예루살렘 거리 수만큼 바알에게 분향하는 제단이 많다고 책망받았다(렘 2:13; 11:13). 하나님께서 많은 기적과 말씀을 주셨는데도 육체의 욕망과 주변 민족의 미혹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범죄 이후 인류 역사의 실패를 보시며 죄를 막을 계명을 하나씩 분명히 하셨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은 살인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보여 주었고, 노아의 수치를 드러낸 함의 집안에 임한 일은 부모를 공경해야 할 이유를 보여 주었다(창 4:8-12; 9:20-27). 이처럼 십계명은 인간이 되풀이한 죄를 막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도록 주신 생명의 울타리였다(출 20:1-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시내산 언약의 목적은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데 있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 말씀에 순종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누리게 하려 하셨다(출 19:3-6; 신 28:1-14). 율법을 어겼을 때에는 회개(悔改, repentance)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제사제도를 주셨다. 율법과 제사는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마련하신 은혜의 질서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을 다 쫓아내지 못했고, 그들과 섞이면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다. 영적 간음은 결국 생활의 음행과 불의로 이어졌다. 마침내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까지 타락했고, 백성은 성전이 있다는 사실만 믿은 채 죄에서 돌이키지 않았다. 죄가 계속 쌓이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성전이 무너지게 하시고 다윗 왕조가 끊어지게 하셨으며, 많은 사람을 칼과 기근으로 죽게 하고 약 5만 명을 포로로 끌려가게 허락하셨다(렘 7:1-15; 25:8-1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알과 아세라 숭배는 단지 나무와 돌 앞에 절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남신과 여신의 성적 결합이 비와 풍요를 가져온다고 믿어 음행을 종교 의식으로 끌어들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와 소산을 기다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쾌락과 풍요의 신을 좇았다. 그래서 우상숭배는 영적 간음이며 동시에 육적 음행으로 번졌다. 오늘도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돈과 쾌락과 다른 영을 함께 의지하면 이름만 달라졌을 뿐 같은 다신론의 길을 걷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때 하나님께서 판단하신 것은 율법 자체가 악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거룩한 법이 사람 밖에만 있고 사람 안의 욕망이 바뀌지 않으면, 백성은 법을 알면서도 거역한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반복되는 짐승의 제사만으로는 죄의 문제를 영원히 끝낼 수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법을 마음에 기록하고 영원한 피로 죄를 처리하며 성령을 안에 보내시는 새 길을 예고하셨다. 새 언약은 실패한 백성을 버리신 표가 아니라, 끝까지 자기 백성을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처방전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예레미야의 회복 예언에서 새 언약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서에서 새 언약은 &lt;strong&gt;심판 뒤의 회복을 약속하는 &amp;lsquo;위로의 책&amp;rsquo;의 중심&lt;/strong&gt;에 있다. 예레미야서를 구분해보면 이렇다. 먼저 예레미야서는 제1장의 소명으로 시작한다. 제2장부터 제25장까지는 유다를 향한 열두 예언 묶음이고, 제26장부터 제45장까지는 바벨론 침공 전후에 주어진 사건과 예언이며, 제46장부터 제51장까지는 주변 열 나라를 향한 심판 예언이다. 제52장은 예루살렘 멸망과 여호야긴의 회복을 기록한 부록이다. 그 가운데 제30장부터 제33장까지가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을 집중적으로 선포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회복 예언의 배치는 선지서마다 다르다. 이사야서는 제40장부터 제66장까지가 회복을 집중적으로 말하고, 에스겔서는 제33장부터 제48장까지가 회복을 다루되 제40장부터 제48장까지의 새 성전과 땅이 특히 중심이다. 그러나 예레미야서는 마지막이 열방 심판 예언으로 끝나고, 회복의 노른자위는 책 가운데에 있으니 그것은 제30장부터 제33장까지다. 바로 이 예언서의 한가운데에서 새 언약이 선포되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복의 첫 내용은 포로가 조상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와 다시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내용이다(렘 30:1-3). 그러나 땅을 기업으로 받게 하겠다는 약속은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되었고 이어져왔다. 예수님도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5:5). 가나안 땅의 회복은 단지 고향으로 돌아오는 정치적 사건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이 마침내 영원한 기업을 얻는 구원의 그림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어서 예레미야는 야곱의 환난 뒤에 하나님께서 멍에를 꺾으시고 백성이 여호와와 하나님께서 세우실 왕 다윗을 섬길 것이라고 예언했다(렘 30:7-9). 여기의 다윗은 이미 죽은 옛 왕이 다시 통치한다는 뜻이 아니라,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게 하신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바벨론 포로 귀환이 먼저 이루어졌지만, 완전한 회복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의 통치 안에서 비로소 이루어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제31장에서는 흩으신 하나님께서 목자가 양 떼를 모으듯 이스라엘을 모으신다고 말씀하신다(렘 31:10). 그러나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도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다. 이후 예루살렘은 계속 타락하였고 주후 70년에 이르러서 완전히 무너졌고, 유대인은 약 2천 년 동안 나라 없이 흩어져 살았다.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독립했지만 영적으로는 예수님을 믿는 이가 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는 육적인 회복만으로는 새 언약의 완전한 목적에 이를 수 없음을 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스라엘의 회복 예언의 핵심은 예레미야 31장 31절부터 34절까지 기록된 &amp;#39;새 언약&amp;#39;에 대한 약속이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백성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사람의 내면을 당신의 법을 새겨넣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법을 사람의 속에 두고 사람의 마음에 기록하며,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회복하고,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하나님을 알게 하며, 죄악을 사하고 다시 기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땅의 회복보다 더 깊은 회복은 죄와 하나님을 떠나는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 한민족이 받은 은혜도 회개와 말씀의 회복 속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가난하던 시절에는 명절이나 제삿날에야 쌀밥과 새 양말을 기대할 만큼 어려웠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은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고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그 영적 전환의 중요한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1907년 평양 대부흥의 회개 운동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 회개가 훗날 어떤 열매를 맺을지 다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백성을 통해 나라를 일으키셨다. 그러므로 받은 복을 우리만 누리지 말고, 마지막 시대에 회개와 천국 복음을 세계에 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약속한 새 언약은 곧바로 체결되지 않았다. 즉 바벨론에서 돌아온 스룹바벨 시대에 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 이어졌다. 얼마동안 기다려야 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아들의 신분으로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의 위로는 단순한 귀환 예언이 아니다. 심판을 통과한 백성에게 메시아와 새 언약을 주어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하시려는 구원 경륜의 핵심 약속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시내산의 옛 언약은 어떻게 세워졌으며 그 약점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옛 언약&amp;#39;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옛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손을 잡고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뒤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세우신 언약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두 돌판에 새겨 주셨고, 모세는 언약서를 백성에게 읽어 주었다. 백성이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준행하겠다고 대답하자, 모세는 제물의 피를 백성에게 뿌리며 &amp;ldquo;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amp;rdquo;라고 선포했다(출 24:3-8). 말씀과 피로 언약이 체결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 언약에는 &amp;#39;복&amp;#39;과 &amp;#39;책임&amp;#39;이 함께 있었다.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약속의 땅에서 복을 누린다. 죄를 지었을 때에는 소와 양과 염소 같은 제물을 드려 속죄를 받아야했다. 제사 제도는 죄의 삯이 사망임을 보여 주고, 죄인 대신 피 흘릴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쳤다(레 17:1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옛 언약에는 약점이 있었다. 즉 인간의 죄를 온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었다. 첫째, 법이 돌판과 율법책이라는 외부에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백성이 말씀을 가까이 두고 배우면 생명의 길을 알 수 있었지만, 보지 않거나 배우지 않으면 모른다고 외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왕은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 읽어야 했고 제사장들은 백성을 가르쳐야 했으나, 왕과 제사장부터 말씀을 버리고 따르지 않았다(신 17:18-20; 말 2:7-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죄를 처리하는 피가 짐승의 피였다. 고로 그 피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희생을 미리 보여 주는 모형이었기에, 죄를 지었으면 반복해서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해마다 대속죄일 제사가 되풀이된 사실 자체가 죄의 문제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모형으로 주어진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영원히 없애지는 못한 것이다(히 10: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하나님의 법을 읽고 가르치는 일의 중요성은 교회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종교개혁의 중요한 열매 가운데 하나는 라틴어 성경을 성직자만 붙들고 있던 시대를 넘어, 1,534년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백성이 직접 읽게 한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개혁의 정신을 말하면서도 성경보다 교파들이 만들어낸 교리만 앞세운다면 개혁의 핵심을 잃어버린다. 돌판과 책에 기록된 말씀이 사람의 마음까지 들어오려면, 누구나 성경을 읽고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옛 언약의 약점은 하나님의 법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법이 밖에 있고 죄의 욕망이 안에 있는 인간이었다. 죄를 지적하는 계명은 있었지만 그 계명을 기쁨으로 지킬 새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죄를 덮는 짐승의 피는 있었지만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영원히 효력을 나타낼 하나님의 피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돌판을 마음판으로 바꾸고, 짐승의 피를 예수님의 피로 바꾸며, 사람 안에 성령을 보내시는 새 언약을 준비하셨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예레미야 31장에 약속된 새 언약의 대상과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새 언약의 대상은 누구인가? 주님은 그들이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amp;ldquo;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amp;rdquo;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출애굽 때 세운 언약과 같지 않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남편이 되셨는데도 조상들이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다(렘 31:31-3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amp;#39;유다 집&amp;#39;은 혈통적으로 언약 안에서 태어난 유대 백성을 가리키고, &amp;#39;이스라엘 집&amp;#39;은 이방인과 혼혈족이 되어버린 북이스라엘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이름처럼 믿음으로 이기는 영적 후손으로서 이방인까지 품는 표현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혈통적으로 유다와 베냐민에 속한 유대인들이었지만, 그들을 통해 천국 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전해졌다. 베드로가 처음에는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에게 가는 일을 어려워하자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의 집으로 그를 인도하셔서 천국 열쇠를 사용하게 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사도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다(행 10:9-48; 9:15; 갈 2:7-8). 그리하여 새 언약은 유대인에게서 시작되어 이기는 모든 민족에게 열리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새 언약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네 가지다. &lt;strong&gt;첫째, 하나님께서 법을 사람의 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lt;/strong&gt;하신다는 것이다. &lt;strong&gt;둘째,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lt;/strong&gt;이 되신다는 것이다. &lt;strong&gt;셋째,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하나님을 알게&lt;/strong&gt; 된다는 것이다. &lt;strong&gt;넷째, 하나님께서 악행을 사하고 죄를 다시 기억하지&lt;/strong&gt; 않으신다는 것이다(렘 31:33-34). 즉 법의 내면화, 언약 관계, 하나님을 아는 지식, 완전한 죄 사함이 하나로 묶여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하나님의 법이 사람의 마음에 기록되는 것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그것은 성령의 내주로 이루어진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 되고,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하신다(고전 6:17; 요 14:26; 16:8). 밖에서 명령만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안에 계신 성령께서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가르치시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사람의 자유의지를 없애고 기계처럼 순종하게 하시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며 사람이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기를 기다리신다(계 3:20).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고, 그 안에 거하시며 하나님과 떨어지지 않을 생명의 관계를 맺으신다(요 1:12-13). 그러므로 새 언약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안에 계신 성령의 음성을 듣고 따라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예수께서는 언제 누구와 무엇으로 새 언약을 체결하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드디어 예레미야의 예언이 있은 후 625년이 지났을 때,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새 언약을 체결하신다. 떡을 떼어 자기 몸이라고 하시고, 잔을 주시며 자기 피로 세우는 &amp;#39;새 언약&amp;#39;이라고 선포하셨다(눅 22:20). 시내산에서는 모세가 짐승의 피를 뿌려 옛 언약을 체결했지만, 새 언약에서는 예수님이 자신의 몸과 피로 새 언약을 체결하셨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눅 22:19-20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옛 언약은 여호와께서 세우셨고 새 언약은 예수께서 세우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한 분 하나님이 체결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서로 다른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약의 여호와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한 분 하나님께서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하여 아들의 신분으로 새 언약을 체결하신 것이다. 고로 예수님의 제자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께 &amp;ldquo;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amp;rdquo;라고 고백했고,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교회를 사셨다고 증언했다(요 20:28; 행 20:2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필자 역시 한 분 하나님을 분명히 배우기 전에는 예수님께 기도하면 아버지께서 섭섭해하지 않으실까, 성령님을 초청하면 또 다른 분이 어떡하나 하는 걱정으로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여 주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성경이 풀리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amp;ldquo;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amp;rdquo;라고 말씀하셨다(요 14:14). 고로 우리가 예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찾아오신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한 분 하나님을 셋으로 나누는 다신론으로 믿어서도 안 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나타나심과 사역을 뒤섞는 양태론으로 가서도 안 된다. 구약에도 주 하나님이 계시고 신약에도 주 하나님이 계신다. 이사야는 우리에게 나신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예언했다(사 9:6).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셨다(계 1:8, 17-1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예수께서는 누구와 새 언약을 체결하신 것인가? 예수께서는 마가 다락방에 있던 제자들도 언약을 체결하셨다. 그들은 혈통적으로 볼 때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하셨다(마 28:18-20). 그리하여 12사도의 하나였던 베드로는 할례받은 이들에게 주로 복음을 전했고, 이어서 바톤을 이어받은 바울은 이방인 복음 전파를 기쁨으로 감당하면서 새 언약을 땅끝까지 전해주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에 복음의 은혜를 주신 목적도 우리만 복을 누리게 하려는 데 있지 않다. 이 회개와 천국 복음도 역시 모든 민족에게 전해져야 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더 좋은 약속으로 세워진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仲保者, mediator)이시다(히 8:6). 그분은 제삼자의 피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간 분이 아니라 자기 피를 가지고 이 땅에 법궤와 하늘의 성전으로 가셨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고 새 언약을 친히 보증하셨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확실함은 인간의 결심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친히 흘리신 피와 지금도 살아 계신 중보자에게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예수님의 피와 성령의 내주는 새 언약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새 언약의 두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영원한 속죄요 또 하나는 영원한 성령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피는 짐승의 피처럼 반복해서 드릴 모형이 아니라 죄를 실제로 처리하는 참된 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기 피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고, 성령께서는 믿는 이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법을 알게 하고 지키도록 이끄신다(히 9:11-14; 10:10-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놀라운 사실은 지금부터 듣는 말씀에 있다. 그때 흘리신 &lt;strong&gt;예수님의 피에 두 가지 효능&lt;/strong&gt;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죄를 사하여 의롭다고 칭해 주는 &lt;strong&gt;칭의(稱義, justification)의 효능&lt;/strong&gt;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사람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사실을 힘 있게 증언했다(롬 3:23-26; 갈 2:16). 예수님의 피가 비로소 죄를 덮어버림으로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는 죄와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는 &lt;strong&gt;정결(淨潔)의 효능&lt;/strong&gt;이다. 사도 바울 이후 약 30년을 더 살며 계시를 받았던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며, 죄를 자백하면 죄 사함과 함께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에는 속죄만이 아니라 이 정결의 방면을 반드시 회복하고 전해주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1:7-9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속죄(죄 사함)와 정결(깨끗함)은 사실 구별되지만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예수를 믿을 때 피로 자신의 죄가 용서함 받는 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면, 믿은 뒤에 지은 죄를 방치하기 쉽다. 그러나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면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 나의 죄가 지워지고,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을 떠나보낼 근거가 생긴다. 예수님의 피는 죄책만 덮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람의 안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의 법을 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은 예수님께서 물과 피로 임하셨으며 성령께서 이를 증언하신다고 했다(요일 5:6-8). 예수님은 승천하셨지만 우리에게 피의 효능과 씻음의 은혜를 남겨 두셨고, 성령께서 그것을 실제로 적용하신다. 피로 죄를 사하고 깨끗하게 하며, 성령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게 하는 것이 새 언약의 작동 원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령께서는 사람의 영과 연합하여 안에서 말씀하신다. 무엇이 죄인지, 지금 따라가는 가르침이 생명의 말씀인지, 과거의 신앙 습관이 하나님의 뜻과 맞는지를 깨닫게 하신다. 그러므로 교단의 교리나 사람의 말이 성경과 성령의 가르침보다 앞설 수 없다. 종교개혁이 성경을 모든 사람의 손에 돌려준 것은 귀한 일이지만, 후대가 개혁자의 일부 강조만 붙들고 성경 전체를 놓친다면 다시 돌판 밖의 종교로 돌아가는 셈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새 언약을 받은 성도는 예수님의 피와 성령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 &lt;strong&gt;피를 말하면서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정결에 이르지 못하고, 성령을 말하면서 예수님의 피를 떠나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lt;/strong&gt;. 죄를 자백하여 깨끗함을 받고,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amp;ldquo;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amp;rdquo;는 관계가 실제 삶에서 열매 맺는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새 언약 안에 들어온 성도도 왜 여전히 죄를 짓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새 언약 안에 들어온 성도가 여전히 죄를 짓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이 비록 성령을 받았어도 자유의지가 사라지지 않고 있고, 육체의 욕망 역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법을 마음에 기록하고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셨지만,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거절하고 육체의 소욕을 따르면 다시 죄를 짓게 된다. 새 언약은 죄를 지을 수 없도록 사람을 강제로 묶는 제도가 아니라, 죄를 이길 생명과 능력을 안에 주고 그 인도를 선택하여 따르게 하는 언약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5:16-17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믿는 자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은 분명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가르쳐주신다. 고로 생명의 말씀을 들을 때,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amp;ldquo;내가 지금까지 진리의 말씀이 아닌 것을 믿고 살았구나. 내가 헛다리를 짚은 채 수 십 년을 보냈구나&amp;rdquo; 하고 깨닫게 하신다. 그런데도 사람은 더 편하게 살고 싶고 더 쉽게 천국에 들어가고 싶어서, 성령의 책망보다 익숙한 교리와 과거의 신앙 방식을 따라가려 한다. 진리가 틀린 말씀이 아니라, 자유의지로 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특히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더 두려운 책임을 져야 한다.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교리만 반복하거나, 영적 간음과 육적 음행을 가볍게 여긴 채 목회자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하나님을 알게 하신다는 새 언약의 약속은 교만하게 배우기를 멈추라는 허가가 아닌 것이다.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씀 앞에 누구나 겸손히 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평신도는 계속 배우려고 마음이 있다. 그러나 한 번 목회자가 된 사람은 자신이 꼭대기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여 배우기를 멈추기 쉽다. 그러나 성경을 알지 못하고 가르친 잘못은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고 많은 영혼을 그릇된 길로 이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가르치는 자를 더 엄히 심판하신다(약 3:1). 목회자는 사람에게 배운 교리를 지키는 데 만족하지 말고, 성경을 다시 펴고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예수님의 피가 영원한 효력을 지녔다고 해서 회개가 필요 없어졌다고 가르쳐서는 아니 된다. 오히려 영원한 피가 준비되었기에 언제든 자기가 지은 죄를 자백하고 씻음받아야 한다. 믿은 뒤의 지은 죄는 가만 두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자백할 때에 죄 사함도 받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며, 죄의 충동을 일으키던 악한 영도 떠나보낼 근거를 획득한다. 이렇게 깨끗해질수록 성령의 인도를 더 분명히 따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이 실패했던 이유를 오늘의 교회가 또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언약 백성이라는 이름과 성전과 제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보다 다른 신과 우상과 쾌락을 더 사랑했다. 오늘도 예수를 믿는다는 이름과 교회 직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돈과 명예와 음행과 자기 교리를 더 사랑하면 같은 배역의 길을 가는 것이다. 새 언약의 표지는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라 마음에 기록된 법을 따라 사는 순종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믿는 자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이기지 못하고 죄를 고집하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고 성령께서 떠나며 성 밖에 남을 수 있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고, 요한계시록은 두루마기를 빠는 자와 성 밖에 있는 자를 구별한다(계 3:5; 22:14-15). 새 언약을 한 번 받았다는 과거의 체험만으로 안심하지 말고, 날마다 피로 씻고 성령을 따라 끝까지 이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을 따라 행하고, 죄를 깨달을 때 즉시 자백하며, 예수님의 피로 정결함을 받아야 한다. 속죄의 은혜를 죄의 면허로 바꾸지 말고, 성령의 내주를 감정적인 체험으로만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 말씀과 성령을 따라 육체의 소욕을 거절하고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될 때, 새 언약이 목표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준비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배역한 이스라엘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내놓으신 새 언약의 비밀을 살펴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으며, 출애굽한 이스라엘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셨다. 그러나 백성은 애굽과 가나안의 우상숭배에 물들어 언약을 깨뜨렸고, 마침내 바벨론의 심판을 받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옛 언약의 법은 돌판 밖에 기록되었고, 제사에는 반복해서 드려야 하는 짐승의 피가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약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법을 사람의 마음에 기록하고 예수님의 영원한 피로 죄를 처리하며 성령을 사람 안에 보내시는 새 언약을 약속하셨다. 예레미야 30장부터 33장까지의 위로와 회복은 이 약속에서 절정에 이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한 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마가 다락방에서 자기 피로 새 언약을 체결하셨다. 예수님의 피는 죄를 사하여 의롭다 하실 뿐 아니라, 죄를 자백하는 사람을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 성령께서는 마음에 거하시며 하나님의 법을 생각나게 하고 죄와 의와 심판을 깨닫게 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새 언약의 은혜를 받았어도 성령을 거스르고 육체의 소욕과 익숙한 교리를 따르면 다시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은 뒤의 죄도 계속 자백하여 예수님의 피로 깨끗함을 받고, 안에 계신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 새 언약을 죄를 덮어 주는 장치로만 여기지 말고 하나님만 사랑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게 하는 생명의 언약으로 받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배역한 백성에게 마지막으로 내놓으신 처방은 더 강한 외적 통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와 성령의 내주였다. 우리는 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고 말씀을 배우며 성령을 따라 죄와 싸워야 한다. 그리하여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고 예수님의 피로 날마다 정결함을 받아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차지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25일(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본 설교는 하나님께서 반복적으로 타락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시키기 위해 제시하신&amp;nbsp;&lt;strong&gt;새 언약의 비밀&lt;/strong&gt;과 그 성취 과정을 기독론적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아브라함부터 시작된 구속사를 훑으며, 돌판에 새겨진 율법이라는&amp;nbsp;&lt;strong&gt;옛 언약&lt;/strong&gt;이 인간의 육체적 정욕과 한계로 인해 실패할 수밖에 없었음을 지적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은 법을 인간의&amp;nbsp;&lt;strong&gt;마음속에 직접 기록&lt;/strong&gt;하고 성령을 내주하게 함으로써, 단순히 죄를 덮는 수준을 넘어&amp;nbsp;&lt;strong&gt;본질적인 정결과 순종&lt;/strong&gt;이 가능하도록 설계하셨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의 칭의론을 넘어 사도 요한이 강조한&amp;nbsp;&lt;strong&gt;예수 피의 두 가지 효능&lt;/strong&gt;, 즉 속죄와 자백을 통한 정결함을 강조하며 마지막 시대 성도들이 가야 할&amp;nbsp;&lt;strong&gt;회개와 천국 복음&lt;/strong&gt;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 이 글의 핵심 목적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ChatGPT Image 2026년 8월 25일 오후 08_47_5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330d1a5f0de43b606a9cb626248d8167.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51c2af9050563ec696f127d69c3900a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e6fca4cff0886eb1f1c7bc248310416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cc9b34de650c736ccd209dc22a1262b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a27b6a2a0dab770a2c3e8c4337e0f35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67ced1e2e55b0d986be0eb77ac2d327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b89141937ee71ee7ec19c59d9d2f353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e5d535563afbd05be928f6f85f4d30d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6cd00883ed85bd9a08da6d8298ed656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5616aa01827965c62dc7d35b1ecee83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628692797971bbf5898b13ec4ee59bf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dba3a63c1cd606eb86e4ac53a447523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7a45527d763a89845c33805c91ec8d3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425093c83eb5d9f26ddab5aafb48e6a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79ba64935d40fcae3f50a3b06d4521e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Prescription.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ec96d6fbdca02c79fdeb5032a3c459d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새_언약과_영적_회복_원리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04/265/4dbe870cbb9a2ee007aca25779092cd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4)] The_New_Covenant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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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73)] 예레미야는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해 어떤 중요한 예언을 쏟아냈는가?(렘23:1~8)_2026-08-24(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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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4T20:48:30+09:00</published>
		<updated>2026-08-25T09:10:39+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73)] 예레미야는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해 어떤 중요한 예언을 쏟아냈는가?(렘23:1~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E8xcYOHRXMA 기독론(173) 예레미야는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해 어떤 중요한 예언을 쏟아냈는가? (렘 23:1-8)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구약의 중요한 직분에는 &#039;왕&#039;과 &#039;선지자&#039;와 &#039;제사장&#039;이 있다. 이 직분을 맡은 사람은 기름부음을 받았으며, 사무...</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73)] 예레미야는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해 어떤 중요한 예언을 쏟아냈는가?(렘23:1~8)&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E8xcYOHRXMA&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E8xcYOHRXMA?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73)&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예레미야는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해 어떤 중요한 예언을 쏟아냈는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렘 23:1-8)&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의 중요한 직분에는 &amp;#39;왕&amp;#39;과 &amp;#39;선지자&amp;#39;와 &amp;#39;제사장&amp;#39;이 있다. 이 직분을 맡은 사람은 기름부음을 받았으며, 사무엘은 세 직분의 기능을 함께 보여 준 초기 인물이었다. 그중에서도 &amp;#39;다윗&amp;#39;은 왕직을 대표한 인물이었고, &amp;#39;아론&amp;#39;은 제사장을 대표하는 자였으며, &amp;#39;이사야&amp;#39;는 선지자로서 메시아의 탄생과 사역과 고난과 영광을 풍성하게 예언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직분을 온전하게 성취하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그분에게 &amp;#39;그리스도&amp;#39;라는 직책을 붙이는 이유는 예수께서 &amp;#39;기름부음받은 자&amp;#39;로서 완벽한 삶을 살으셨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선지자로서 대표적인 인물을 고르라고 하면 구약인물을 연구하신 분들은 단연코 &amp;#39;이사야&amp;#39;를 거론할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의 선지자들 중에 그만큼 메시야를 풍성하게 예언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보다 약 백 년 뒤쯤에 활동했던 &amp;#39;예레미야&amp;#39;와 &amp;#39;에스겔&amp;#39;과 &amp;#39;다니엘&amp;#39;도 저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한 선지자였다. 참고로 이 셋은 같은 시대에 다른 장소에서 활동했던 선지자들이다. 그중에서 &amp;#39;에스겔&amp;#39;은 환상 가운데 장차 이루어질 성전과 생명수의 강과 회복된 땅을 보았다. 그 환상에서 새 성전이 나오는데, 그것을 오늘날 천년왕국 시대에 지어질 성전이라고 해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한 예언은 100% 성취되지만 인간이나 민족에 대한 예언은 그들의 순종에 따라 일부는 성취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성취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러므로 인간을 향한 예언은 저 천국에서 완전하게 성취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100% 순종할 사람은 예수님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강가의 나무들을 보았는데, 신약시대 사도 요한은 생명수의 강과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를 보았다(겔 47:1-12; 계 22:1-2). 이는 인간을 향한 완전한 성취는 천국에서 실현된다는 것을 여실히 말해준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서, 베냐민 지파의 땅인 아나돗에 거주하고 있던 제사장이었다. 그는 요시야 왕 제13년인 주전 627년경 부름받아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약 41년 동안 예언했다(렘 1:1-3). 그는 제사장이면서 선지자로 부름받았기에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타락을 누구보다 자세히 알 수 있었고, 그들이 권력과 탐욕을 따라 거짓을 예언하는 모습을 날카롭게 책망할 수 있었다. 또한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현장을 지켜보며 백성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쳤다. 그러므로 그는 눈물의 선지자이자 회개의 선지자라고 불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서는 제1장의 그의 소명으로 시작된다. 제2장부터 제25장까지에는 유다를 향한 열두 가지 예언 묶음이 있고, 제26장부터 제33장까지에는 바벨론의 제3차 침공 전후 사건과 예언이, 제34장부터 제45장까지에는 함락 직후의 사건과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제30장부터 제33장까지는 심판 뒤의 회복을 말하므로 &amp;lsquo;위로의 책&amp;rsquo;이라 불린다. 그리고 제46장부터 제51장까지에는 애굽을 비롯한 열 나라를 향한 심판이 나오며, 제52장은 여호야긴의 회복을 전하는 부록 부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어떤 선지자로 부르셨을까? 예레미야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남유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워 나라들을 뽑고 파괴하며 다시 건설하고 심게 하는 사명을 맡기셨다(렘 1:4-10).&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 책은 대부분 심판과 심판의 중요성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심판만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남유다가 멸망하는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서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키시고, 그를 통하여 유다와 이스라엘을 구원하며 새 출애굽과 새 언약을 이루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렘 23:5-8; 31:31-34; 33:14-18). 예레미야 23장과 33장에 흩어진 내용을 함께 살펴보면, 장차 오실 메시아의 신분과 직분과 사역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을 본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예레미야가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해 예언한 일곱 가지가 무엇이며, 그 약속을 누리기 위해 오늘 우리가 어떻게 회개하고 순종해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예레미야가 장차 도래할 메시야에 대해 예언한 7가지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예언한 메시아의 모습을 살펴보면, 대략 일곱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그는 다윗에게서 나오는 의로운 가지로 오신다. 둘째, 그는 왕으로 오신다. 셋째, 그는 지혜롭게 다스리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의로운 통치자다. 넷째,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구원자다. 다섯째, 그의 이름은 &amp;lsquo;여호와 우리의 공의&amp;rsquo;다. 여섯째, 그는 자기 백성을 애굽과 바벨론보다 더 근본적인 종살이에서 이끌어 내는 새 출애굽의 인도자다. 일곱째, 그는 속죄와 성령의 내주를 약속하는 새 언약의 중보자요 체결자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 일곱 가지 그리스도에 관한 중심 본문은 일곱째 정의를 제외하면 모두 예레미야 23장과 33장에 나오는 것들이다. 특히 23장과 33장의 말씀은 대부분 겹친다(렘 23: 5-6, 33:15-18). 그중에서 예레미야 23장은 여호와께서 악한 목자들을 책망한 뒤, 하나님께서 친히 남은 양 떼를 모으시고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키실 것이라고 말씀한다. 그러면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릴 것이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amp;lsquo;여호와 우리의 공의&amp;rsquo;라고 불릴 것이라고 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3:5-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구원의 규모를 새 출애굽으로 확장한다. 훗날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단지 애굽에서 나온 사건만을 말하지 않고, 북방 땅과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돌아온 일을 두고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고백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렘 23:7-8). 역사적으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회복을 가리키지만, 그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사탄 마귀의 권세에서 건져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영적 출애굽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23:7-8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방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살리라 하시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다만 예레미야 23장과 33장의 차이는 장차 도래할 메시야가 왕직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직을 함께 수행하실 것을 밝힌다. 다시 말해 예레미야는 다윗의 자손 가운데 이스라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레위 사람 제사장도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릴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다(렘 33:14-18). 그러나 역사 속에 다윗 왕조와 레위 제사장직은 중단되었지만, 예수님 안에서 그 약속의 실상이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영원한 왕이시며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이다(시 110:4; 히 7:20-2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마지막 일곱째 예언은 &amp;#39;새 언약&amp;#39;의 중보자이차 체결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시대처럼 구약시대에는 돌판에 기록된 율법만 주셨느데, 장차 그날이 오면 이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백성의 속에 두며 마음에 기록하고 그들의 죄악을 사하겠다고 약속하셨다(렘 31:31-34). 이 새 언약에는 죄를 처리하는 속죄와 하나님의 법을 마음속에서 따르게 하는 성령의 내주가 함께 들어 있다. 다만 이 내용은 예레미야 기독론에서 따로 살펴야 할 만큼 중요하므로, 여기에서는 메시아가 새 언약의 중보자요 체결자로 오신다는 사실만 먼저 말씀드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지금까지 언급한 일곱 예언은 사실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 왕과 제사장의 직분을 담당하고,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며, 자신의 의로 유다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새 출애굽과 새 언약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약속이 한 사람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메시아가 다윗의 의로운 가지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예레미야가 예언한 첫 번째 메시야는&amp;nbsp; &amp;lsquo;다윗의 의로운 가지&amp;rsquo;로 오신다는 것이다(렘 23:5, 33:15). 이 말은 메시야가 장차 다윗의 혈통을 따라 사람으로 오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윗 시대에 다윗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삼하 7:12-16). 그러나 다윗의 후손으로 이어진 유다 왕조는 죄로 인하여 타락했고, 예레미야 시대에는 시드기야 왕을 끝으로 무너지게 된다. 인간 왕조로만 바라본다면 그 약속은 끊어진 것처럼 보인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서 한 의로운 가지를 다시 일으키셨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amp;lsquo;가지&amp;rsquo;라는 표현은 잘려 나간 나무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유다 왕조가 바벨론에 의해 잘려 나가고 다윗의 보좌가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그 뿌리에서 새 왕을 일으키신 것이다. 이사야도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고 예언했다(사 11:1-5). 예레미야의 &amp;lsquo;다윗의 의로운 가지&amp;rsquo;는 이 약속을 이어 받아 멸망 뒤에도 다윗 언약이 끝나지 않았음을 선포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로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족보는 그분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고 시작한다(마 1:1-16). 이는 예수님이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구원자라고 주장한 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오래전부터 약속하신 메시아라는 뜻이다. 메시아를 분별하려면 감동적인 말이나 놀라운 결과만 볼 것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이 그에게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구약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자기가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거짓 영의 미혹을 분별하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예레미야는 단지 &amp;lsquo;다윗의 가지&amp;rsquo;라고 하지 않고 &amp;lsquo;의로운 가지&amp;rsquo;라고 했다. 다윗의 후손이라고 해서 모두 의로운 왕은 아니었다. 여호야김과 여호야긴과 시드기야를 비롯한 마지막 왕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나라를 멸망으로 끌고 갔다. 장차 오실 메시아는 그들과 달리 죄가 없고,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통치하며, 백성을 의롭게 하는 왕이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세우기도 하고 뽑기도 하신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에 말씀을 두시고 또한 그를 여러 나라와 왕국 위에 세우신 목적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는 한편 건설하고 심게 하려는 것이었다(렘 1:9-10). 그러므로 죄악으로 굳어진 왕조는 뽑힐 것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폐기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옛 왕조의 실패를 뛰어넘어 완전한 왕을 새로 심으실 것인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다윗의 의로운 가지라는 이름에는 심판 뒤의 회복과 인간 왕의 실패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함께 담겨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다는 사실은 그의 참된 인성이 무엇인지도 보여 준다. 그는 실제 역사 속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인간의 연약함과 고난을 담당하셨다. 동시에 다윗이 &amp;lsquo;내 주&amp;rsquo;라고 불렀던 분이므로 단지 다윗보다 뒤에 태어난 인간 왕에 머물지 않는다(시 110:1; 마 22:41-46).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본래는 다윗의 주이신 분,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메시아는 어떻게 왕이자 의로운 통치자가 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lt;strong&gt;둘째로, 다윗의 가지가 &amp;lsquo;왕이 되어&amp;rsquo; 지혜롭게 다스린다&lt;/strong&gt;고 예언했다(렘 23:5, 30:9, 34장). 그러므로 예수님은 탄생부터 왕으로 증언되셨다. 동방 박사들은 &amp;ldquo;&lt;strong&gt;유대인의 왕&lt;/strong&gt;으로 나신 이&amp;rdquo;를 찾았고(마 2:2),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도 그 머리 위에는 &amp;ldquo;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amp;rdquo;는 죄패가 붙었다(마27:37). 사람들이 조롱의 뜻으로 붙인 칭호까지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왕권을 증언하는 표지가 되게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도 자신의 나라와 왕권을 부인하지 않으셨다. 다만 그의 나라는 세상의 정치 체제와 같은 방식으로 세워지지 않는다(요 18:33-37). 그는 &lt;strong&gt;영계의 왕&lt;/strong&gt;이시며 &lt;strong&gt;자연 만물의 왕&lt;/strong&gt;이시다. 그러므로 귀신들을 꾸짖어 내쫓으셨고, 바람과 바다를 잠잠하게 하셨으며, 물 위를 걸으시고 물고기의 입에서 성전세를 얻게 하셨다(막 1:23-27; 4:39-41; 마 14:25; 17:27). 이러한 사건은 피조 세계가 그분의 명령 아래 있음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예수님의 왕권은 힘만 나타내는 권세가 아니다. &lt;strong&gt;셋째로, 그는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의로운 통치자&lt;/strong&gt;다(렘 23:5). 예레미야 시대의 왕들과 관리들은 권력을 자기 욕심에 사용했고, 제사장과 선지자들까지 탐욕과 거짓에 빠졌다. 그들은 &amp;ldquo;평안하다&amp;rdquo;고 외치면서 임박한 심판을 감추었다. 그러나 메시아는 악을 선하다고 부르지 않으며, 뇌물이나 사람의 지위에 따라 판결을 굽게 하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정의와 공의는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왕은 악을 심판하는 정의를 실행하면서도 회개하는 사람을 구원하는 의로운 길을 마련해야 한다. 예수님은 죄를 눈감아 주는 방식으로 사람을 구원하지 않으셨다. 죄의 삯인 사망을 친히 담당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고, 믿고 회개하는 이에게 자신의 의를 입혀 주셨다(롬 3:23-26). 십자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나타난 왕의 통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 33장은 다윗에게 이스라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렘 33:17). 역사상 다윗 왕조는 중단되었으나 예수님의 왕권은 끝나지 않는다. 그분은 부활하고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고, 마지막에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나타나실 것이다(행 2:30-36; 계 19:16). 세상의 왕들은 일정 기간만 다스리지만 예수님의 나라는 영원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죄를 용서해 주는 구주로만 알고 통치자로는 모시지 않는 모순에서 벗어나야 한다. 왕을 믿는다는 것은 그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뜻이다. &amp;ldquo;주여, 주여&amp;rdquo;라고 부르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마 7:21). 의로운 왕을 기다리는 사람은 오늘 자기 생각과 생활도 그 왕의 말씀 아래 복종시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메시아는 왜 유다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예언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lt;strong&gt;넷째로, 메시야는 유자와 이스라라엘의 구원자로 오실 것&lt;/strong&gt;이라고 했다(렘 23:6). 메시아의 날이 도래하면, 유다는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라고 했다(렘 23:6). 예레미야 33장에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하신 선한 말씀을 성취할 날이올 것을 언급하면서 유다의 구원과 예루살렘의 안전을 약속하고 있다(렘 33:14-16). 그런데 예레미야가 활동할 당시 북이스라엘은 이미 주전 722년 앗수르에 멸망한 뒤였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유다와 이스라엘을 함께 부르신 데에는 회복의 범위가 남유다에만 갇혀 있지 않다는 뜻이 담겨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먼저, 유다는 예레미야 당시에 혈통적으로 남아 있던 언약 백성을 가리킨다. 그래서 훗날 예수님은 유다 지파와 다윗의 가문을 통해 오셨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한사코 당신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보내심을 받으셨다고 말씀하셨다(마 10:5-6; 롬 1:3). 그리고 그의 제자들에게 남은 유대인들에게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분의 구원은 혈통적인 유대인에게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도 품으려고 했던 유대인들이 그분을 거부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이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하시기에 이른다. 왜냐하면 복음은 혈통적으로 유다민족에게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이방인 민족에게까지 전파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마 28:18-20; 행 1: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예레미야가 서로 구별하여 사용했던 &amp;lsquo;유다&amp;rsquo;와 &amp;lsquo;이스라엘&amp;rsquo;은 혈통적인 언약 백성인 유대인들과 영적으로 이기는 자의 무리인 교회로 봐야 한다. 특히 요한계시록 7장과 14장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 명을 해석할 때에 단지 혈통적인 이스라엘의 12지파만으로 단정지어서는 아니 된다. 만약 그렇게 말했다면 144,000명은 야곱의 후손이라고 했어야 했다. 하지만 성경은 144,000명이 이스라엘 12지파에서 나온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amp;#39;이스라엘&amp;#39;이라는 뜻이 &amp;#39;이기는 자&amp;#39;를 가리키는 용어인 만큼 하나님께 충성하여 이긴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함을 알려준다(계 7:1-8; 14:1-5).&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혈통적인 이스라엘을 완전히 지워 버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이스라엘을 각각 부르시면서 흩어진 자기 백성을 모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언급된 이스라엘은 혈통적인 이스라엘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장차 &amp;#39;이기는 자들&amp;#39;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는 남유다 백성이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회복이 있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메시아를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구원받는 영적 회복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장차 모든 구속받은 백성은 혈통적인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하여 이기는 자들이 어린양의 피로 씻은 한 무리가 되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계 7:9-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메시아가 구원자라는 말은 단지 외적인 환경을 평안하게 만드는 분이라는 뜻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백성은 바벨론의 칼과 포로 생활에서 구원받아야 했지만, 모든 인간은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에서 구원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마 1:21). 죄를 그대로 품은 채 정치적 안전만 얻는 것은 메시아 구원의 완성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별히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약속과 메시아 자신에 관한 예언도 구별해야 한다.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고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을 이루신 예언은 하나님께서 친히 성취하셨다. 그러나 사람이 받을 복과 직분에 관한 약속은 그 사람의 믿음과 순종에 따라 성취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회복의 약속도 그들이 불순종했기에 이 땅에서 온전히 누리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시지만 사람의 불순종까지 복으로 인정하지는 않으시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12제자들 모두에게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릴 약속을 주셨다(눅 22:28-30). 그러나 필자가 천국을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열두 제자 가운데 실제로 이십사 보좌에 앉은 이는 베드로뿐이다. 이 사례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약속을 들은 것과 그 약속에 합당하게 끝까지 사는 것은 같지 않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amp;lsquo;여호와 우리의 공의&amp;rsquo;라는 이름은 무엇을 뜻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lt;strong&gt;다섯째로, 메시아의 이름이 장차 &amp;lsquo;여호와 우리의 공의&amp;rsquo;&lt;/strong&gt;라고 불릴 것이라고 예언했다(렘 23:6). 이는 여호와께서 친히 자기 백성의 공의가 되어 주신다는 뜻이다. 사람은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고 자기 행위로 죄값을 없앨 수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죄인이 받아야 할 심판을 담당하고 우리에게 의로운 길을 열어 주셔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요한은 오히려 자신이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만류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amp;ldquo;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amp;rdquo;라고 말씀하셨다(마 3:13-15). 필자는 이 세례를 인류의 대표자인 세례 요한이 안수하여 세상 죄를 예수님께 넘기는 사건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다음 날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언했다(요 1:2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이때 인류의 대표자였언 세례 요한으로부터 넘겨받은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가볍게 넘기지 않으셨고, 죄 없으신 아들에게 죄의 형벌을 담당하게 하심으로 공의를 이루셨다. 동시에 그 대속을 믿고 회개하는 사람에게 죄 사함의 길을 여셨다. 그러므로 &amp;lsquo;우리의 공의&amp;rsquo;는 우리가 스스로 의롭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루신 속죄를 의지한다는 고백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 33장에서는 메시아만이 아니라 그분의 성읍도 &amp;lsquo;여호와 우리의 공의&amp;rsquo;라는 이름을 얻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메시아의 의가 그가 다스리는 백성과 성읍의 정체성이 된다는 뜻이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인간의 공로나 교단의 이름을 앞세워 들어갈 수 없다. 오직 어린양의 피로 씻고 예수님의 의를 입은 사람이 들어간다(계 7:13-14; 21:2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칭의의 복음을 들을 때, 이제는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으니 죄를 계속 지어도 괜찮다는 허가로 들어서는 안 된다.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는 길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요일 1:7-9). 종교개혁 시대에는 행위 공로에 맞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진리가 강력하게 선포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 시대의 교리만 붙들고 예수님이 명하신 회개와 순종과 거룩함을 밀어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은 인간 가운데 가장 뛰어나게 쓰임받은 종이지만 하나님은 아니다. 필자는 사도 바울이 말했던 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발언과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딸을 결혼시키지 말라는 권면 및 우상 제물에 관한 바울의 일부 권면에도 당시 상황과 인간적 한계가 들어있다고 본다(고전 7:25-40; 8:1-13; 14:34-35). 사실 바울은 어떤 진리의 말씀에 대하여 한 쪽 측면만을 증언했지만, 예수님은 전체 구원 경륜의 주인이심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이나 종교개혁자의 말을 예수님의 말씀보다 위에 두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자기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불법을 행하는 사람을 결국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요한계시록에서 예수께서는 믿는 자가 되었어도 날마다 죄를 씻어야만 생명나무와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마 7:21-23; 계 22:14-15). 그러므로 &amp;lsquo;여호와 우리의 공의&amp;rsquo;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속죄를 붙드는 동시에 날마다 죄를 자백하고 깨끗함을 받아 그분의 뜻대로 사는 것이어야 한다. 공의의 이름은 값싼 위로가 아니라 죄를 끊고 거룩한 성에 들어가게 하는 구원의 능력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메시아는 어떻게 새 출애굽의 인도자이자 영원한 제사장이 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여섯 번째로 예레미야는 장차 오실 메시아를 새 출애굽의 인도자&lt;/strong&gt;라고 예언하였다(렘 23:7-8). 사실 성경에는 육적인 출애굽의 큰 모형이 두 번 나타난다. 첫째는 모세를 통하여 애굽의 종살이에서 나온 출애굽이고, 둘째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새 출애굽이다. 예레미야는 훗날 백성이 더 이상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사건만을 고백하지 않고, 북방 땅과 흩어진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고백할 것이라고 예언했다(렘 23:7-8). 당시 백성에게 이러한 말씀은 바벨론 귀환의 약속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애굽 왕 바로와 바벨론 왕이 붙들고 있던 종살이는 더 깊은 영적 실상을 가리킨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여 죄의 종이 되었고 사탄 마귀의 권세 아래 놓여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강한 자를 결박하고 그 세간을 빼앗듯이 마귀의 일을 멸하며 사람을 자유롭게 하려고 오셨다(마 12:28-29; 요일 3:8). 그러므로 새 출애굽의 최종 목적은 이 땅의 한 나라로 돌아오는 데 있지 않고, 죄와 사망과 악한 영의 권세에서 벗어나 천국에 들어가는 데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출애굽에는 피가 필요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름으로 죽음의 심판을 피했다(출 12:5-13). 새 출애굽에서도 예수님의 피가 필요하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자기 피를 흘려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셨다(요 1:29; 계 1:5-6). 피가 죄를 처리하므로 마귀가 사람을 붙들던 법적 근거가 제거되고, 믿고 회개하는 사람은 어둠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다(골 1:13-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사역을 위해 메시아는 왕일 뿐 아니라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왕은 원수를 정복하고 백성을 다스리지만,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속죄를 담당한다. 예레미야 33장은 다윗의 왕위에 앉을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릴 레위 제사장이 끊어지지 않을 것을 함께 말한다(렘 33:17-1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렘 33:17-1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내 앞에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사를 항상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역사 속 레위 제사장들은 죽음 때문에 직분을 영원히 계속할 수 없었고, 그들이 드린 제사도 반복되어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다 지파에서 오셨으면서도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다(시 110:4; 히 7:11-28). 그는 짐승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로 단번에 속죄를 이루셨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하신다(히 9:11-14; 10:10-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님은 새 출애굽을 시작만 해 놓고 떠나는 지도자가 아니다. 왕으로서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고, 대제사장으로서 자기 피로 죄를 씻으며, 끝까지 중보하여 백성을 목적지에 이르게 하신다. 이 구원의 완성은 새 언약과 연결된다. 죄를 사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기록하여 성령을 따라 걷게 하시는 것이다(렘 31:31-34). 새 언약의 두 측면인 속죄와 성령의 내주(內住)는 다음 말씀에서 더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메시아의 약속을 누리려면 왜 회개와 순종이 필요한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는 회개의 선지자다. 그는 패역한 백성에게 돌아오라고 끊임없이 외쳤다. 이스라엘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팠다(렘 2:13). 언약 백성이라는 신분과 성전과 다윗 왕조가 있다는 사실만 믿고 우상숭배와 불의를 계속했기에 결국 땅에서 뽑혀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약속을 받은 것과 약속을 실제로 누리는 것은 같지 않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에서 회개와 관련하여 주목할 인물이 있다면 그는 바로 &amp;#39;욥&amp;#39;과 &amp;#39;다윗&amp;#39;과 &amp;#39;예레미야&amp;#39;가 있다. 그 중에 &amp;#39;욥&amp;#39;은 하나님을 직접 뵌 뒤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했고, &amp;#39;다윗&amp;#39;은 자신의 죄를 숨기지 않고 통회했으며, &amp;#39;예레미야&amp;#39;는 한 민족을 향하여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외쳤다(욥 42:5-6; 시 51:1-17; 렘 3:12-14). 이런 의미에서 예레미야는 구약의 세례 요한과 같은 회개의 선지자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메시아의 길은 회개로 준비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도 속죄와 칭의만 말하고 정결과 성결을 외면하면 구원을 온전히 준비할 수 없다. 믿음으로 예수님의 피를 의지해야 하지만, 믿은 뒤에도 죄를 자백하여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어야 한다(요일 1:7-9). 생각과 감정과 생활 속의 죄를 그대로 둔 채 구원받았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과 불법을 행하는 사람을 분명히 구별하셨다(마 7:21-2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죄를 반복하면 악한 영이 들어와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붙들고 회개를 방해한다. 처음에는 회개의 말씀이 옳다고 느끼다가도 속에 있는 영들이 쫓겨날 것을 알고 사건과 두려움을 일으키면 중간에 멈추기 쉽다. 그러므로 영적 싸움은 가볍게 시작할 일이 아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끝까지 회개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한 영을 대적해야 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다(엡 6:10-1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영적 현상이 나타난다고 모두 성령의 역사는 아니다. 필자는 일부 신사도 계열에서 나타나는 기괴한 웃음과 통제되지 않는 몸짓을 악한 영의 역사라고 여기고 있다. 자기 안의 영을 점검하고 회개로 깨끗하게 하지 않은 채 예언과 능력만 좇으면 마지막에 미혹될 수 있다. 은사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회개와 정결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우리 교회가 귀신만 쫓아내는 교회인 것은 아니다. 축사는 전체 사역 가운데 한 부분이다. 중심은 회개와 천국 복음이며, 죄를 자백하고 깨끗하게 되어 마침내 천국에 들어갈 사람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악한 영을 내보내는 목적도 사람이 죄의 충동에서 벗어나 성령의 다스림을 받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데 있다. 회개와 축사 체험 자체를 자랑해서는 안 되며, 변화된 생각과 성품과 순종의 열매가 나타나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처음에는 필자는 장차 천국에서 세례 요한 마을에 들어갈 사람으로 보여졌다. 그리고 필자는 그것을 회개를 외쳐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명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2024년경 천국의 집이 세례 요한 마을에서 엘리야 마을로 옮겨지는 장면을 보았고,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싸울 때 사용했다는 칼을 받는 체험을 했다. 이 체험을 통하여 회개를 선포하는 사명에 더하여 악한 영들과 싸우는 영적 전사의 사명을 맡았음을 깨달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역의 활동영역이 커진 것도 처음부터 알았던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회개하여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일에 집중했지만, 한 영혼을 돕는 과정에서 악한 영을 내보내는 사역까지 열렸다. 필자는 어떤 필요한 사람이 떠났을 때 안타까워했으나,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위험을 막기 위해 그를 뽑으셨다는 깨달음을 받기도 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심기도 하고 뽑기도 하시며, 순종하는 정도에 따라 처음보다 더 큰 사명을 맡기시기도 한다. 그러므로 과거에 받은 약속만 붙들고 현재의 순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오늘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말씀 한마디로도 마귀를 멸하실 수 있지만 우리를 영적 싸움에 동참시키신다. 흙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회개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길 때, 교만하여 타락한 사탄은 수치를 당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순종할 기회를 주시고 그 수고에 따라 하늘의 상을 주기 원하신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은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며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는 기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많은 사람이 유튜브를 통해 회개와 천국 복음을 듣고, 직접 만난 적이 없어도 회개기도문으로 500번씩 회개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민족 안에 아직 회개하는 무리를 남겨 두셨다는 소망의 표지다. 횟수만 채우는 것이 목적은 아니지만,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고 같은 죄를 끊기 위해 꾸준히 기도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귀가 가벼워서 새로운 말만 따라다니지 말고, 옳다고 깨달은 진리 안에 뿌리를 내리며 끝까지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대한민국의 정치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가 타락하더라도 진실로 회개하는 한 무리가 있다면 소망이 있다. 그러나 교회까지 회개를 버리고 죄를 괜찮다고 말하면 예레미야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과 다를 바 없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은 죄를 방치하게 하는 면허가 아니라 회개하고 순종하도록 부르시는 은혜다. 우리는 메시아가 이루신 속죄를 믿고, 성령께서 마음에 새기시는 법을 따라, 생각까지 예수님의 피로 씻으며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가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해 쏟아낸 일곱 가지 예언과 그 약속을 누리는 길을 살펴보았다. 예레미야는 멸망 직전의 예루살렘에서 약 41년 동안 회개를 외쳤지만, 심판의 한복판에서도 다윗의 의로운 가지가 오실 소망을 놓치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가 예언한 메시아는 다윗의 의로운 가지이며 왕이자 의로운 통치자다.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amp;lsquo;여호와 우리의 공의&amp;rsquo;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자기 백성을 죄와 사탄의 권세에서 이끌어 내는 새 출애굽의 인도자다. 또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속죄를 이루고, 죄 사함과 성령의 내주를 약속하는 새 언약을 체결하신다. 이 모든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만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왕조와 레위 제사장직은 역사 속에서 중단되었지만 예수님의 왕권과 제사장직은 영원하다. 그는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며 자기 피로 죄를 씻고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만 부르고 왕의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는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지만 사람이 받을 복과 직분에는 믿음과 순종이 요구된다. 이스라엘은 언약과 성전과 다윗 왕조를 자랑하면서도 회개하지 않아 땅에서 뽑혔다. 우리도 칭의만 붙들고 정결과 성결을 버려서는 안 되며, 죄를 자백하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어야 한다. 회개의 횟수보다 중요한 것은 죄를 끊고 생각과 성품과 생활이 실제로 변화되는 열매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레미야의 메시아 예언은 절망 속에서 주어진 소망이다. 이사야와 에스겔과 다니엘의 예언이 서로 다른 측면에서 그리스도를 증언하듯이, 예레미야는 의로운 왕과 새 출애굽과 새 언약을 통하여 예수님을 보여 준다. 우리는 사람의 교리나 명성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높은 기준으로 삼고, 회개와 순종으로 그분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다윗의 의로운 가지이자 여호와 우리의 공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붙들고 새 출애굽의 구원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년 24일(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해 계시된&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사역&lt;/strong&gt;을 신학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레미야를 왕과 제사장, 선지자의 타락상을 고발하며 회개를 외친&amp;nbsp;&lt;strong&gt;눈물의 선지자&lt;/strong&gt;로 규정하고, 그가 예언한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인&amp;nbsp;&lt;strong&gt;의로운 가지이자 통치자&lt;/strong&gt;로 오실 것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사하고 성령의 내주를 가능케 하는&amp;nbsp;&lt;strong&gt;새 언약의 체결자&lt;/strong&gt;라는 점을 부각하며, 이를 통해 성도가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목적지가&amp;nbsp;&lt;strong&gt;거룩한 회개와 천국 입성&lt;/strong&gt;에 있음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구약의 예언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지 설명함으로써, 현대 신앙인들에게&amp;nbsp;&lt;strong&gt;영적 분별력과 철저한 회개&lt;/strong&gt;의 삶을 촉구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ChatGPT Image 2026년 8월 25일 오전 12_40_1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7966027d72e696399592c8b5ccc6cb1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dfe7b26db7ff38d79849d62b509b9fd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2fa0d2616a45b1ec0f73c78d35a4285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2398735ff58adf61b07fd6f3e68c500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c841c2c0c766671cf2037d3b14fba35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0dc2203557cb8cd6fcd6306c03332de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ceb324ade091ab2b218a339a7111232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bb431bac07e15fe1ae9c3c89801fa51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e20cc0bbff5cc19e52e9ef4841dc4fa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19defa82bfe6f71ac3e67da98d45fb5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7e8b0bc55aac0bfd1f64ead6aced576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3cc67d526d147800f0fe25c9f92e1e3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35be44500d15e1f97da39626b84abe0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Seven_Messianic_Prophecies_of_Jeremiah.pdf_13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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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9869cda12751f658e5e0bd09ad0bc78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5967fb1d5aab44ed6654fd3b06107f8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c83f7a0901bf9dc89150ded42ae7904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57dd8da1ba285deaa3a2ceaa760f93b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c4474389de8ab9d10f1044fcdf21322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1e4d1d3c051d6c7ae09002c6b6b2860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57f8f1ce40aaf2c456f36529bc91832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9d18a3fc4f8aad1a22d905e02047363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4ad7dbb61848c1f6a76231ff7c01ac9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3)] Jeremiah_s_Messianic_Blueprint.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31/264/c9484a094b3c521fb36c67c73b576d3e.webp&quot; /&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71)] 거짓말하는 가짜 예언자들 사이에서 참 선지자의 삶을 보여준 에스겔(겔13:1~23)_2026-08-21(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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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1T13:51:28+09:00</published>
		<updated>2026-08-23T00:22:11+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71)] 거짓말하는 가짜 예언자들 사이에서 참 선지자의 삶을 보여준 에스겔(겔13:1~2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zOgKTc8SqbM 기독론(171) 거짓말하는 가짜 예언자들 사이에서 참 선지자의 삶을 보여준 에스겔 (겔 13:1-23)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에스겔은 말로만 장래를 예고한 선지자가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의 몸과 가정과 일상을 말씀의 표징으로 사용하셨...</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71)] 거짓말하는 가짜 예언자들 사이에서 참 선지자의 삶을 보여준 에스겔(겔13:1~23)&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zOgKTc8SqbM&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zOgKTc8SqbM?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71)&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거짓말하는 가짜 예언자들 사이에서&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참 선지자의 삶을 보여준 에스겔&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겔 13:1-23)&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은 말로만 장래를 예고한 선지자가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의 몸과 가정과 일상을 말씀의 표징으로 사용하셨다. 그는 패역한 백성에게 보냄을 받아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파수꾼이 되어 심판을 경고했다. 이 점에서 그는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신 예수님의 삶을 미리 보여 주었다(겔 2:3-7, 3:4-11, 17; 요 14:10).&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에스겔이 섬긴 시대에는 참된 경고보다 듣기 좋은 거짓 예언이 더 환영받았다. 하나님께 아무것도 보지 못한 자들이 자기 심령을 따라 말하면서도 &amp;ldquo;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amp;rdquo;고 주장했다. 평강이 없는데도 평강이 있다고 선포했고, 곧 무너질 담에 회칠하여 안전하다고 말했다. 어떤 여자 예언자들은 부적과 수건을 이용해 영혼을 사냥하고, 보리 몇 움큼과 떡 몇 조각을 얻으려고 거짓말로 예언했다(겔 13:3, 6-10, 17-1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거짓 예언이 위험한 까닭은 단순히 예측이 빗나가기 때문이 아니다. 회개해야 할 사람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살아야 할 영혼을 죽음의 길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죄가 가득 차 심판이 가까웠는데도 안전하다고 위로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지 않는다. 거짓된 평강은 상처를 치료하지 않은 채 겉만 덮는 회칠과 같다. 비바람이 닥치면 담도 무너지고 그 아래 피하던 사람도 함께 다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런 시대에 참선지자는 사람들의 환호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에스겔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을 짊어진 표징으로 430일을 한쪽으로 누웠고,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뒤에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공개적으로 애곡하지 않았다(겔 4:4-6, 24:15-18). 그 삶은 죄인을 살리기 위하여 인류의 무거운 죄짐을 담당하신 예수님의 고난과, 심판받는 백성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아픔을 예표적으로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에도 거짓 예언은 형태만 달라질 뿐 같은 방식으로 영혼을 잠들게 한다. 과거의 교리와 유명한 인물의 말을 성경보다 높이고, 믿는다고 고백했으니 이후의 회개와 순종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목자가 양 떼를 먹이기보다 양의 기름과 털로 자기만 배불리며, 진리를 몰라도 배울 생각 없이 아는 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참선지자의 길은 날마다 성경과 성령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받은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하며, 자신부터 회개와 순종의 길을 걷는 데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에스겔이 어떻게 삶으로 예수님을 예표했는지, 거짓 예언자와 거짓 목자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마지막 시대의 주의 종과 성도가 어떻게 참선지자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에스겔은 어떻게 삶으로 인류의 죄를 담당하실 예수님을 예표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만 전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왼쪽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390일 동안 짊어지고, 그 기간이 끝나면 오른쪽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40일 동안 담당하라고 하셨다. 하루를 일 년으로 정하셨으므로 그의 몸은 430년이라는 긴 죄악의 역사를 보여 주는 표징이 되었다(겔 4:4-6). 그는 잠자는 자세조차 마음대로 정할 수 없었다. 몸이 불편할 때마다 하나님을 거역한 백성의 죄와 다가올 심판을 기억했을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4:4-6 너는 또 왼쪽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짊어지되 네가 눕는 날수대로 그 죄악을 담당할지니라 내가 그들의 범죄한 햇수대로 네게 날수를 정하였나니 곧 삼백구십 일이니라 너는 이렇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고 그 수가 차거든 너는 또 오른쪽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 일로 정하였나니 하루가 일 년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 430일의 표징을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430년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받았지만 그 약속이 역사 속에서 성취되기까지 긴 시간을 지나야 했다. 출애굽기에는 430년이 끝나는 바로 그날 여호와의 군대가 애굽 땅에서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다(출 12:40-41). 약속은 반드시 성취되지만, 죄악의 역사와 연단의 기간을 건너뛰는 것은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이 죄악을 담당했다는 말은 그가 이스라엘을 위해 속죄 제물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의 행동은 백성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오래되었는지를 몸으로 드러내는 예언적 표징이었다는 뜻이다. 죄책을 실제로 해결하신 분은 흠 없는 몸을 제물로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예수님은 친히 나무에 달려 우리 죄를 담당하셨고, 우리는 그분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나음을 얻었다(사 53:4-6; 벧전 2:2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지만 죄인의 자리로 내려오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시며 그 짐을 자신에게 가져오라고 하셨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짐을 지셨다(마 11:28; 고후 5:21). 에스겔이 한쪽으로 누울 때마다 백성의 죄악을 생각했듯이, 예수님은 공생애 내내 완고한 백성을 품으셨다. 예루살렘이 자신을 거절할 것을 아시면서도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듯 그들을 모으려 하셨다(마 23:3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의 고통은 예수님의 고난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미리 비추는 그림자다. 그는 한 민족의 죄악을 표징으로 짊어졌지만, 예수님은 단번에 드린 제사로 영원한 속죄의 길을 여셨다(히 10:10-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참된 말씀의 종은 입으로만 십자가를 말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맡겨진 영혼의 짐을 품고, 사람들이 듣지 않아도 기도하며, 자기 편안함을 내려놓고 살리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사람의 죄값을 대신 치를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속죄는 오직 그리스도의 일이다. 다만 주의 종은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감당하며 복음의 일꾼으로 충성해야 한다(골 1:24-25). 이것이 에스겔이 삶으로 보여 준 행동 예언의 의미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아내의 죽음과 예루살렘 멸망은 하나님의 어떤 슬픔을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의 삶에서 가장 아픈 행동 예언은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이었다. 하나님은 &amp;ldquo;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 번 쳐서 빼앗겠다&amp;rdquo;고 미리 말씀하시면서도,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지 말라고 하셨다. 그는 죽은 자를 위한 일반적인 애도 행위를 삼가고, 머리에 수건을 동이고 발에 신을 신은 채 조용히 탄식해야 했다. 아침에 이 말씀을 백성에게 전한 뒤 저녁에 아내가 죽었고, 다음 날 그는 명령받은 대로 행했다(겔 24:15-1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24:16-18 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 번 쳐서 빼앗으리니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며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지 말고 사람이 초상집에서 먹는 음식물을 먹지 말라 하신지라 내가 아침에 백성에게 말하였더니 저녁에 내 아내가 죽었으므로 아침에 내가 명령을 받은 대로 행하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내는 에스겔의 눈에 가장 귀한 존재였다. 그런 아내를 잃고도 공개적으로 울지 못했으니 그의 내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감정 없는 사람을 만들려고 이렇게 하신 것이 아니다. 에스겔의 개인적 슬픔을 통하여 예루살렘 성전과 백성을 잃으시는 하나님의 더 큰 슬픔을 보여 주신 것이다. 백성에게 성전은 &amp;ldquo;너희 세력의 영광이요 너희 눈의 기쁨이요 너희 마음에 아낌&amp;rdquo;이었다(겔 24:2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 표징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추어 설명한다. 성경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연결한다(엡 5:25-32). 그러므로 에스겔이 아내를 잃은 아픔은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의 멸망을 바라보시는 아픔을 제한적으로 보여 준다. 이것은 모든 세부를 문자적으로 같게 만드는 등식이 아니라, 사랑하는 존재가 심판 아래 놓일 때 느끼는 고통을 보여 주는 예표적 연결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즐거워하지 않으셨다. 죄가 가득 찼으므로 공의에 따라 심판하셨지만,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그가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겔 18:23, 33:11).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선지자들을 보내 경고하신 것도 이 때문이다. 심판을 유보하고 또 유보하셨지만, 백성이 계속 우상숭배와 불의를 행하자 마침내 성과 성전을 넘겨주실 수밖에 없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도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셨다. 그 성이 평화에 관한 일을 알지 못한 채 심판을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눅 19:41-44). 십자가를 앞두고도 자신을 배척하는 백성을 저주하기보다 품으려 하셨다. 에스겔이 아내를 잃고 조용히 탄식한 모습에는 죄인을 심판하시면서도 그 영혼이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미리 비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심판을 전하는 사람은 냉혹한 정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이 멸망할 것이라고 말하며 우월감을 느낀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다. 참선지자는 죄를 죄라고 분명히 말하되, 한 사람이라도 돌이켜 살기를 바라며 눈물로 경고한다. 다가올 재림과 심판을 말하는 목적도 공포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하게 하려는 데 있다(벧후 3: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었다. 공개적인 장례 의식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는 탄식했다. 참된 주의 종은 자기 슬픔을 하나님께 맡기고 심판의 메시지와 하나님의 눈물을 함께 품어야 한다. 진리를 굽히지 않으면서 영혼을 불쌍히 여길 때 그리스도의 심정을 드러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거짓 예언자들은 무엇을 보지 못한 채 누구의 영을 따라 말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 13장은 거짓 예언자의 근본 문제를 정확히 드러낸다. 그들은 하나님께 받은 환상이나 말씀이 없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자기 심령에서 떠오른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포장했다. 하나님이 보내지 않으셨는데도 자신이 보냄받았다고 주장했고, 거짓된 점괘를 말하면서 그 말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겔 13:3, 6-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13:3 주 여호와의 말씀이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어리석은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진저&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참선지자는 먼저 듣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자신의 모든 말을 마음으로 받고 귀로 들은 뒤 백성에게 가라고 하셨다(겔 3:10-11). 파수꾼으로 세우실 때도 &amp;ldquo;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amp;rdquo;고 하셨다(겔 3:17). 말의 출처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자기 욕망과 두려움과 상상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바꾸는 순간 선지자는 거짓말하는 사람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거짓 예언자는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침묵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답을 기대하고 찾아오며 먹을 것과 대가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정직하게 말하면 자기 권위와 생계가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자기 생각을 계시로 만들고,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들려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붙인 거짓말은 평범한 착오보다 훨씬 무겁다. 그것은 백성으로 하여금 거짓을 진리로 믿게 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도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전통과 기득권을 앞세웠다. 예수님이 성전의 부패를 드러내고 병든 자와 죄인을 품으시자, 그들은 자신의 자리와 권위를 지키려고 예수님을 제거하려 했다(마 21:12-16, 45-46; 요 11:47-53). 입으로는 하나님을 말했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영접하지 않았다. 에스겔이 거짓 선지자들 사이에서 외로이 섰듯이, 예수님도 왜곡된 종교 체계 한가운데서 아버지의 뜻을 전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도 &amp;ldquo;하나님이 말씀하셨다&amp;rdquo;는 표현 자체가 그 말을 참되게 만들지는 않는다. 말씀의 내용이 성경과 맞는지, 그 열매가 회개와 거룩함인지, 말하는 사람이 자기 이익을 구하는지 살펴야 한다(신 13:1-3; 마 7:15-20; 요일 4:1). 성령은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죄에 대하여 책망하신다(요 14:26, 16:8, 13). 성령의 이름으로 죄를 합리화하고 인간의 욕망을 부추긴다면 그 출처를 의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자기 생각을 전하지 않기 위하여 성경을 반복해서 살피고 성령의 깨우침을 구한다고 고백한다. 현대의 자료와 인공지능은 정보를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많이 유통되는 견해가 곧 진리는 아니다. 모든 답을 성경과 대조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참선지자의 권위는 자신을 크게 보이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말씀하지 않으신 것을 말하지 않으며, 말씀하신 것은 반대가 있어도 전하는 데서 나온다. 하나님 앞에서 받은 것이 없다면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거짓 계시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낫다. 사람의 박수보다 하나님의 판단을 두려워하는 태도가 자기 심령을 따라 말하는 오류에서 선지자를 지켜 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평강이 없는데도 평강을 외치는 예언은 왜 영혼을 사냥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거짓 선지자들이 전한 대표적인 메시지는 &amp;ldquo;평강&amp;rdquo;이었다. 나라가 우상숭배와 불의로 가득하고 바벨론의 칼이 다가오는데도 괜찮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이 모습을 누군가 약한 담을 쌓자 다른 사람들이 그 위에 회칠하는 것으로 비유하셨다. 담의 기초와 내부가 부실한데 겉만 희게 칠하면 잠시 튼튼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폭우와 우박과 폭풍이 닥치면 담은 무너진다(겔 13:10-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13:10 이렇게 칠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 어떤 사람이 담을 쌓을 때에 그들이 회칠을 하는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칠한 담은 회개 없는 위로를 보여 준다. 죄를 버리지 않고 우상을 품은 채 살아가는데도 구원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안심시키면 돌이킬 이유를 잃는다. 듣는 순간에는 편하지만 심판의 비바람이 닥칠 때 그 말은 영혼을 지켜 주지 못하고 회개할 기회까지 빼앗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자 예언자들의 행위도 같은 목적을 가졌다. 그들은 사람들의 팔뚝에 부적을 꿰어 매고 키가 크거나 작은 사람의 머리에 맞는 수건을 만들며 영혼을 사냥했다. 보리 몇 움큼과 떡 몇 조각을 얻으려고 거짓말을 지어내어, 죽지 않아야 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렸다(겔 13:17-19). 필자는 이 장면을 종교적 외형과 신비한 도구로 권위를 꾸미면서 물질적 이익을 얻는 거짓 사역으로 설명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13:18 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려고 팔뚝에 부적을 꿰어 매고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를 위하여 수건을 만드는 여자들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가 어찌하여 내 백성의 영혼을 사냥하면서 자기를 위하여 영혼을 살리려 하느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영혼을 사냥한다는 것은 사람을 하나님의 생명으로 이끄는 대신 자기 영향력 아래 붙잡아 두는 것이다. 거짓 예언자는 상대가 죄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보다 계속 자신을 찾아오기를 원한다. 신비한 말과 물건과 행위를 의존하게 하여 판단력을 빼앗고, 대가를 받으며, 자기 권위를 강화한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예언자의 반응을 더 두려워하게 만든다면 이미 영혼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길에서 벗어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는 오늘날의 쉬운 구원 메시지에도 적용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복음의 기초다(롬 3:28). 그러나 믿음을 죄를 계속 지어도 된다는 면허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은혜는 경건하지 않은 것을 버리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가르친다(딛 2:11-14). 회개와 순종의 열매가 전혀 없는데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면, 평강이 없는 사람에게 평강을 선포하는 셈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참된 위로는 죄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살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들이 사냥한 영혼을 놓아주고, 다시는 그들의 손에 사냥물이 되지 않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겔 13:20-23). 말씀은 잘못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돌이킬 길을 제시한다.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죄를 자백하여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거룩함을 이루어 가게 한다(요일 1:7-9; 롬 8:13-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듣기 편한가만 묻지 말고 그 말이 영혼을 어디로 이끄는지를 보아야 한다. 죄를 가볍게 만들고 말하는 사람에게 종속시키는 메시지는 경계해야 한다. 반대로 죄를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끌며 실제 삶의 변화와 순종을 낳는 말씀은 생명을 살린다. 참된 평강은 위험을 부정해서 얻는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할 때 주어지는 열매다(롬 5:1).&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자기만 먹는 거짓 목자와 양 떼를 살리는 참목자는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거짓 예언자의 문제는 에스겔 34장에서 거짓 목자의 문제로 이어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지 않고 자기만 먹었다고 책망하셨다. 그들은 양의 기름을 먹고 털을 입으며 살진 자를 잡았지만, 약한 자를 강하게 하지 않고 병든 자를 고치지 않았다. 상한 자를 싸매거나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도 않았고, 잃어버린 자를 찾지도 않았다(겔 34:2-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34:2-3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목자가 양의 젖과 털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은 성경이 인정하는 원리다(고전 9:14). 문제는 양에게서 도움을 받으면서도 양을 살리는 책임을 버리는 데 있다. 성도들이 피땀 흘려 드린 예물로 생활하면서 진리를 연구하지 않고, 병들고 눌린 영혼을 외면하며, 자기 자리만 지킨다면 삯꾼의 길로 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공적 권한을 맡은 지도자도 같은 원리 아래 자신을 살펴야 한다. 권한과 재정은 백성을 섬기라고 맡겨진 것이다. 국가의 권세는 악을 행하는 자에게 두려움이 되고 선을 행하는 자를 보호하는 하나님의 일꾼이어야 한다(롬 13:1-4). 법과 제도를 자기 이익에 사용하면 맡겨진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거짓 목자의 반대편에는 하나님 자신이 계신다. 하나님은 목자들이 양 떼를 버렸으므로 친히 양을 찾고 돌보겠다고 하셨다. 흐리고 캄캄한 날에 흩어진 곳에서 건져 내고, 좋은 꼴을 먹이며, 잃어버린 자를 찾고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싸매고 병든 자를 강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겔 34:11-16). 그리고 한 목자, 곧 하나님의 종 다윗을 세워 그들을 먹이게 하시겠다고 하셨다(겔 34:2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약속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된다. 예수님은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며, 삯꾼처럼 위험이 오면 도망하지 않으신다. 자기 양을 알고 양도 주님을 알며, 우리 밖의 양까지 인도하여 한 무리와 한 목자가 되게 하신다(요 10:11-16). 거짓 목자가 양의 생명을 이용해 자기를 살린다면, 참목자는 자기 생명을 내어 주어 양을 살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의 종은 이 선한 목자의 마음을 본받아야 한다. 말씀을 정확히 먹이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며, 병든 자와 상한 자를 외면하지 않고, 길을 잃은 자를 찾아야 한다. 필자가 귀신 들리고 병들고 억눌린 영혼을 위한 축사 사역을 힘들어하면서도 계속 감당하는 이유도 &amp;ldquo;네가 아니면 누가 그 영혼을 돌보겠느냐&amp;rdquo;는 주님의 마음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없이 직분만 유지해서는 참목자가 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동시에 양들도 사람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 목자는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종이지 영혼의 주인이 아니다. 말씀을 전하는 이가 양을 자기 영향력 아래 묶거나, 자신에게 배운 사람의 사명까지 통제하려 한다면 선한 목자의 질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모든 주의 종과 성도는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그분 앞에서 직분과 삶을 결산한다(벧전 5:2-4). 그러므로 목자는 양을 먹이고, 양은 그리스도의 음성을 분별하며 함께 생명의 길을 걸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참선지자는 왜 사람의 전통보다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참선지자의 기준은 유명한 사람의 이름이나 오랜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교회사의 위대한 인물도 성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완전한 사람은 아니다. 칼빈이든 어거스틴이든 웨슬리든 그들의 가르침은 성경 아래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amp;ldquo;네가 칼빈보다 똑똑하냐&amp;rdquo;는 질문으로 성경의 확인을 막아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유명한지가 아니라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하셨는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입으로 &amp;ldquo;주여, 주여&amp;rdquo;라고 부르는 것만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하셨다. 주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불법을 행하면 주님께 외면받을 수 있다(마 7:21-23). 믿음의 고백과 삶의 열매를 분리해서는 안 된다. 참된 믿음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순종으로 나타난다(마 7:24-27; 약 2: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요한계시록의 경고를 통하여 이미 믿는 사람도 끝까지 이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기는 자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반대로 이기지 못하면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는 경고로 읽는다(계 3:5). 또한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성문으로 들어갈 권세를 얻고,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성 밖에 있다고 말한다(계 22:14-15). 그러므로 회개와 거룩함을 선택 사항으로 만들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가르침은 행위로 구원의 값을 벌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죄 사함과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믿음으로 받는다(롬 3:24-28).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죄를 자백하여 깨끗함을 받고, 성령을 따라 몸의 행실을 죽이며,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한다(요일 1:9; 롬 8:13; 빌 2:12-13). 믿음은 시작이며, 끝까지 주님을 붙들고 순종하는 삶으로 완성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 번역과 사본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어떤 번역본 하나를 오류가 전혀 없는 절대 기준으로 높여서는 안 된다. 필자는 후대의 소문자 사본을 주로 반영한 번역보다 더 오래되고 초기 본문에 가까운 대문자 사본들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킹제임스성경도 유익한 참고 자료로 사용하되 유일하게 완전한 번역으로 절대화하지 말라고 권한다. 중요한 구절은 여러 번역과 사본 자료를 비교하고 문맥과 원어를 점검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개인의 독특한 해석을 무조건 진리라고 주장해서도 안 된다. 사람의 전통을 성경 아래 두듯이 자신의 생각도 성경 아래 두어야 한다. 본문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 예수님의 전체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는지,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주신 경고와 일치하는지 검증해야 한다(행 17:11; 계 2:7). 오래된 견해라고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며 새롭다고 무조건 참된 것도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2013년부터 2020년까지 구원 얻는 회개를 집중적으로 전하며 성경 전체를 다시 살폈다고 고백한다. 그 과정에서 한 번의 믿음 고백만 강조하고 이후의 회개와 성결을 약화한 기존 구원론의 한계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이 깨달음 때문에 반대와 오해를 받아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하기로 결정했다. 참선지자는 자기 체계를 보호하려고 성경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 앞에서 자기 체계를 고치는 사람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마지막 시대의 주의 종과 성도는 어떻게 참선지자의 길을 걸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먼저 주의 종은 자신이 온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목회 경력이 길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배울 수 없다고 생각하면 더 성장하기 어렵다.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라도 어떤 분야에서 앞서 걸었고 성경적 열매가 있다면 겸손히 물어야 한다. 아는 체하며 거짓된 답을 주는 것보다 &amp;ldquo;나는 아직 모른다&amp;rdquo;고 인정하고 배우는 편이 영혼을 살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약 육 년 전만 해도 축사 사역을 충분히 알지 못했지만, 그 분야에 먼저 길을 닦은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찾아가 배웠다고 고백한다. 배우는 동안 자신이 이미 아는 성경 지식을 내세워 따지지 않고, 필요한 것을 겸손히 받으려 했다. 배움은 수치가 아니다. 다만 가르친 사람이 배우는 이의 사명까지 소유하거나 통제할 수는 없다. 각 사람의 길과 부르심은 궁극적으로 주님께 속한다(고전 3:5-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음으로 주의 종은 말씀과 성령 앞에서 깨어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잠든 밤에도 파수꾼 한 사람은 성벽 위에서 적의 움직임을 살펴야 한다. 위험을 보았다면 나팔을 불어야 하며, 반대가 두려워 침묵해서는 안 된다(겔 33:2-6). 참선지자는 사람을 공격하려고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려고 경고한다. 자신부터 회개하고 삶을 정결하게 하면서, 성도들이 죄와 저주와 악한 영의 억압에서 벗어나도록 실제적인 길을 알려 주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말씀을 전하는 자의 영적 상태가 공동체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이며,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다(계 1:20). 한 명의 사자가 어떤 말씀을 전하고 어떤 영의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교회가 살기도 하고 병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강단은 경력이나 말솜씨만으로 맡길 자리가 아니다. 말씀과 성품과 회개의 열매를 살피며 두려운 마음으로 세워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이 마지막에 본 것은 회칠한 낡은 담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오는 새 성전이었다. 여호와의 영광이 동쪽 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오고 성전에 충만했다(겔 43:1-5).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성전을 헐면 사흘 동안 일으키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킨 것이었다(요 2:19-21). 사람의 제도와 건물이 하나님의 임재를 보장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참성전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셔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43:4-5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도들도 이 사명에서 구경꾼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진리를 전하는 종과 함께 기도하고, 각자 받은 은사와 달란트와 물질과 시간을 사용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한다. 선지자를 선지자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고, 의인을 의인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는다(마 10:41). 눈과 귀와 손과 발의 역할이 다르듯 각자의 분량은 다르지만, 한 몸을 이루어 같은 목적을 섬길 수 있다(고전 12:12-2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지막 시대에는 간신히 구원의 문턱만 넘으려는 신앙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주님의 재림을 맞을 기름과 등불을 준비하고, 맡겨진 달란트를 남기며,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마 25:1-30). 필자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전쟁을 감당할 강한 군사를 세우기 원하신다고 강조한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진리를 전하고, 들은 사람은 말씀으로 무장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참선지자의 길은 특별한 명칭을 얻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이 보여 주신 만큼 정직하게 말하고, 모르는 것은 배우며, 자기 이익보다 영혼의 생명을 앞세우고 끝까지 순종하는 데 있다. 주의 종은 내려놓으라 하시면 내려놓되, 맡겨진 동안에는 한 사람이라도 깨우기 위해 충성해야 한다. 성도도 한 알의 밀알처럼 이 사명에 참여해야 한다(요 12:24-26).&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거짓말하는 가짜 예언자들 사이에서 에스겔이 어떻게 참선지자의 삶을 살며 예수님을 예표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을 짊어진 표징으로 사백삼십 일을 한쪽으로 누웠고, 사랑하는 아내를 잃는 아픔을 통하여 심판받는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슬픔을 드러냈다. 그의 고통은 그리스도의 속죄와 동일한 것이 아니라, 장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실 예수님의 순종과 사랑을 미리 비추는 행동 예언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거짓 예언자는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말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했다. 평강이 없는데도 평강을 외치고, 무너질 담에 회칠하며, 보리 몇 움큼과 떡 몇 조각을 위해 영혼을 사냥했다. 그 결과 회개해야 할 사람이 안심하고, 살아야 할 영혼이 죽음의 길에 머물렀다. 오늘날에도 죄를 가볍게 여기게 하고 회개와 순종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메시지는 같은 열매를 낳을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거짓 목자는 양의 기름과 털로 자기만 배불리고 양 떼를 먹이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친히 흩어진 양을 찾고 상한 자를 싸매며, 한 목자 곧 종 다윗을 세우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약속은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주의 종은 자기 자리와 이익보다 영혼을 살리는 일을 앞세우고, 성도는 사람을 절대화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음성을 분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의 전통과 유명한 신학자와 특정 번역본은 성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최종 기준은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성경 전체의 가르침 앞에서 모든 교리와 체험을 검토해야 한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복음의 기초를 붙들면서도, 계속 회개하고 성령을 따라 거룩함을 이루며 끝까지 이기는 삶을 준비해야 한다. 구원의 은혜를 죄의 면허로 바꾸지 말고 순종의 열매로 나타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지막 시대의 참선지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말씀 앞에 세워야 한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겸손히 배우며,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 때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 생각을 꾸미지 않아야 한다. 다가오는 위험을 보았다면 사람들의 반응과 상관없이 나팔을 불어야 한다. 동시에 심판받는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눈물을 품고, 정죄의 기쁨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돌이켜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에게 맡겨진 역할은 서로 다르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전하고, 어떤 사람은 기도하며, 어떤 사람은 물질과 시간과 은사로 돕는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하나님께 받은 분량을 충성스럽게 사용하여 참된 말씀의 사역에 참여하는 것이다. 말씀을 맡은 종은 양 떼를 바르게 먹이고, 성도는 들은 말씀으로 자신을 단장하며, 모두가 참성전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셔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제 우리는 주님이 자신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지금 어느 자리에 서 있는지, 무엇이 부족하며 어떤 부분을 도울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듣기 좋은 거짓 평강보다 생명을 살리는 진리를 선택하고, 기름과 등불을 준비하며, 맡겨진 달란트에 충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에스겔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길을 끝까지 따라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21일(금)&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설교핵심]&lt;/span&gt;&lt;/strong&gt;&lt;/p&gt; &lt;p&gt;이 설교는 에스겔 선지자의 고난과 순종을&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삶&lt;/strong&gt;에 투영하며, 오늘날 지도자들이 가져야 할&amp;nbsp;&lt;strong&gt;참된 사명감&lt;/strong&gt;을 촉구하는 설교를 담고 있습니다. 에스겔이 이스라엘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수백 일간 옆으로 누워 자거나 아내의 죽음 앞에서도 슬픔을 억제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알린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듣든지 아니 듣든지&amp;nbsp;&lt;strong&gt;회개와 천국 복음&lt;/strong&gt;을 전파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인간의 이론이나 신학적 기득권에 안주하여 평강만을 외치는&amp;nbsp;&lt;strong&gt;거짓 선지자들의 태만&lt;/strong&gt;을 강하게 비판하며, 오직 성경의 본질로 돌아가 자기 갱신과 겸손한 배움을 실천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정보배 목사는 성도와 목회자 모두가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여&amp;nbsp;&lt;strong&gt;강력한 영적 군대&lt;/strong&gt;로 준비될 때, 다가올 심판 앞에서 생명을 살리는 사역을 완수할 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1)] ChatGPT Image 2026년 8월 23일 오전 12_19_4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61/264/e5994f1887b2311d12bb69b83df6707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1)] Ezekiel’s_Blueprint_for_Chris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61/264/425bf2fab20110d7767b8aa064e0a5a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1)] Ezekiel’s_Blueprint_for_Chris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61/264/1e65f4289126d5eb106e901fb1a1d60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1)] Ezekiel’s_Blueprint_for_Chris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61/264/a162f02cd3c4910d9aa023c0275ee71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1)] Ezekiel’s_Blueprint_for_Chris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61/264/6d09774095faceaefc20ccb6540dd91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1)] Ezekiel’s_Blueprint_for_Chris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61/264/2f34291030f365418ea3cd23bfa9196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1)] Ezekiel’s_Blueprint_for_Chris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61/264/e78a7dbc1057a2dd6860651157c8ae0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1)] Ezekiel’s_Blueprint_for_Chris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61/264/804ea37ce54207fe0566e41ceadfaf2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1)] Ezekiel’s_Blueprint_for_Chris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61/264/667190ade41f3e3ab51cca9ad8d62fc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1)] Ezekiel’s_Blueprint_for_Chris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61/264/bb9ab4f05a8e3623cd6e36bb8f95586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1)] Ezekiel’s_Blueprint_for_Chris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61/264/b34230924dc955d11ccfac5ae8808e2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1)] Ezekiel’s_Blueprint_for_Chris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61/264/2f0dc5978f8277d44d2a883500d221c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1)] Ezekiel’s_Blueprint_for_Chris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61/264/d425dbb4bc0292d430dad2d9cb3b7b6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1)] Ezekiel’s_Blueprint_for_Chris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61/264/6e1538b556652d21cbe5c096caccd4c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1)] Ezekiel’s_Blueprint_for_Chris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61/264/428c2efa77bdc5cfbde48a31bb51ba5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1)] Ezekiel’s_Blueprint_for_Christ.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61/264/4d6c645f8e3b9ecba8e2d718b0faec8a.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1)] 참_선지자와_거짓_예언자_비교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61/264/b3d420996bd250e7efdfcd1c85b5023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1)] The_Plumb_Line_of_Truth.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61/264/836090108a018ee088cda2153d4cca4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1)] The_Plumb_Line_of_Truth.pdf_2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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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70)] 이스라엘의 파수꾼이 되어 미리 예수님처럼 살았던 선지자 에스겔(겔3:16~21)_2026-08-20(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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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0T08:28:48+09:00</published>
		<updated>2026-08-20T22:25:52+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70)] 이스라엘의 파수꾼이 되어 미리 예수님처럼 살았던 선지자 에스겔(겔3:16~2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Ywd5YlisLIk 기독론(170) 이스라엘의 파수꾼이 되어 미리 예수님처럼 살았던 선지자 에스겔 (겔 3:16-21)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에스겔은 말로만 예언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준 행동 예언자였다. 패역한 백...</summary>
	<content type="html">&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70)] 이스라엘의 파수꾼이 되어 미리 예수님처럼 살았던 선지자 에스겔(겔3:16~21)&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https://youtu.be/Ywd5YlisLIk&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Ywd5YlisLIk?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70)&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이스라엘의 파수꾼이 되어&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미리&amp;nbsp;&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01em;&quot;&gt;예수님처럼 살았던 선지자 에스겔&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겔 3:16-21)&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은 말로만 예언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준 행동 예언자였다. 패역한 백성에게 보냄을 받고, 사람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했으며, 자기 몸과 생활을 말씀의 표징으로 내어 드렸다. 그의 사역을 깊이 살펴보면 예수님의 삶과 겹치는 부분이 많고, 오늘날 진리를 전하는 주의 종이 감당해야 할 길도 선명하게 보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번 말씀에서 두드러지는 &lt;strong&gt;에스겔의 사명은 파수꾼&lt;/strong&gt;이다. 파수꾼은 성벽 위에서 밤낮으로 깨어 성 밖을 살피는 사람이다. 멀리서 적군이 다가오고 먼지가 일어나거나 기습공격의 기미를 발견하면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알려야 한다. 백성이 미처 알지 못하는 위험을 먼저 보고, 전쟁과 죽음이 닥치기 전에 아군에게 전쟁을 준비하게 하는 것이 그의 책임이다. 그러므로 파수꾼이 졸거나 두려워 침묵하면 성 전체가 기습을 당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이 지켜야 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백성이 아니었다. 할례를 받고 안식일을 지키며 자신을 언약 백성이라고 여겼지만,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고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 바벨론 포로가 된 이유를 조상들의 잘못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면서 자기 안에 이어진 완고함과 우상숭배는 보지 못했다.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지만 멸망으로 가는 사람을 깨우는 일이 에스겔에게 맡겨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악인만 경고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의인이라도 죄의 길로 돌이키면 살지 못할 수 있으므로 깨우쳐야 한다고 하셨다. 반대로 경고를 받고 범죄하지 않으면 그도 살고 파수꾼도 자기 영혼을 보전한다(겔 3:20-21). 그러므로 파수꾼의 사명은 불신자를 처음 믿게 하는 전도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미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끝까지 생명의 길을 걷도록 회개시키고 바로 세우는 데까지 나아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도 아버지께 받은 말씀을 전하시며 회개하라고 외치셨다. 자기 백성에게 오셨지만 대부분은 영접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제자들과 여인들과 남은 자들은 들었다. 마침내 120명이 성령을 기다렸고, 그들로부터 교회가 시작되어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으로 전해졌다(행 1:8, 15, 2:1-4). 에스겔의 파수꾼 사명은 예수님의 경고와 구원 사역을 미리 비추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도 &lt;strong&gt;모든 사람이 잠들 때 깨어 있어야 할 파수꾼이 필요&lt;/strong&gt;하다. 믿기만 하면 이후의 삶과 무관하게 안전하다는 말로 영혼을 잠을 재울 것이 아니라, 속죄받은 사람이 정결과 성결의 길을 걸어야 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한다고 알려야 한다. 사람들의 반대와 오해가 두려워 입을 닫으면 위험을 알면서도 나팔을 불지 않은 파수꾼이 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하나님이 왜 에스겔을 파수꾼으로 세우셨는지, 누구의 말씀을 누구에게 전하게 하셨는지, 악인과 의인을 어떻게 깨우치며 피의 책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사명이 예수님과 오늘의 파수꾼에게 어떻게 이어지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하나님은 왜 에스겔을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파수꾼은 위험이 닥친 뒤에 원인을 분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위험이 오기 전에 경고하는 사람이다. 성벽 위의 파수꾼은 다른 사람보다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본다. 적군의 움직임을 먼저 발견하면 즉시 나팔을 불어 군사들이 무장을 갖추고 백성이 피할 길을 찾게 해야 한다. 위험을 보았는데도 침묵하는 파수꾼은 자기 직무를 버린 사람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3: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영적 위험을 에스겔에게 먼저 보여 주셨다. 백성은 포로가 된 현실을 억울하게 여기면서도 자신들의 죄와 우상숭배를 보지 못했다. 조상이 범죄한 결과 아래 태어났다는 사실만 말할 뿐, 자기들도 그 영향 속에서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며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파수꾼은 그들의 자기기만을 깨뜨리고 지금의 상태로는 안전하지 않다고 알려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파수꾼이 나팔을 부는 목적은 사람을 정죄하여 죽이는 데 있지 않다. 다가오는 칼을 피하여 살게 하는 데 있다. 에스겔 33장은 하나님이 한 땅에 칼을 임하게 하실 때 백성이 파수꾼을 세우고, 그가 칼을 보면 나팔을 불어 경고한다고 설명한다(겔 33:2-5). 경고는 심판이 실제로 다가오기 때문에 필요한 사랑의 행동이다. 아무 문제도 없다고 안심시키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살 수 있는 길을 정확히 알려 주는 것이 사랑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교회도 같은 위험에 놓일 수 있다. 오랜 세월 예수를 믿고 기도하고 금식했어도 성품이 달라지지 않고, 우상숭배와 탐욕과 음란과 교만을 버리지 않았다면 현재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이나 과거의 신앙 고백만으로 영혼이 자동으로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주님을 예배하는 일이 기쁘지 않고, 말씀을 사모하거나 순종하려는 열망도 없으며, 죄를 계속 합리화한다면 파수꾼의 경고를 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처음에는 믿지 않는 사람을 전도하여 영접 기도까지 이끄는 일을 매우 기뻐하면서 감당했다. 필자 자신도 불신자에서 신자가 된 과정을 겪었기에 복음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미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교인 가운데 온전한 구원을 준비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들을 깨워 회개시키는 특수한 사명을 나에게 맡기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필자가 맡은 사명은 기존의 교리 체계와 여러 방면에서 충돌하였다. 오랫동안 안전하다고 배웠던 성도들에게 지금의 믿음과 삶을 다시 살펴야 한다고 말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파수꾼은 사람들의 익숙함을 보호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혼을 보호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위험이 분명하다면 나팔을 불어야 한다. 다수가 듣지 않아도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경고를 받고 생명을 보전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에스겔은 누구의 말을 듣고 누구를 대신하여 전해야 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에게는 자기 생각을 선포할 권리가 없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을 마음으로 받고 귀로 들은 뒤 포로 된 자기 민족에게 가서 전하라고 하셨다. 사람들의 반응에 맞추어 내용을 바꾸거나, 듣기 좋은 부분만 골라 말해서도 안 되었다.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amp;ldquo;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amp;rdquo;라고 선포해야 했다(겔 3:10-1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3:10-11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말씀을 마음으로 받는다는 것은 정보만 기억한다는 뜻이 아니다. 먼저 자기 존재가 말씀 앞에 붙들리고, 그 말씀의 무게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귀로 듣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교리와 여론보다 지금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주의 깊게 분별하는 일이다. 파수꾼은 자기 확신을 크게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정확히 받아 전달하는 사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도 자신의 말을 독립적으로 만들어 전하지 않으셨다.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자기 안에 계시며, 자신이 하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안에서 일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4:10). 예수님의 이 순종은 에스겔의 사역이 미리 보여 준 길이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입의 말을 듣고 대신 경고했듯이, 예수님은 아버지께 받은 말씀을 세상에 전하셨다(요 14: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4: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의 하나님의 종들도 역시 이 시대에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자기 학식과 교단의 전통과 대중의 요구만 반복하면 살아 있는 파수꾼이 될 수 없다. 성경을 깊이 살피고 성령이 어떤 잘못을 깨우치시는지 민감하게 들어야 한다. 기존의 신학은 참고할 수 있다. 하지만, 서로 반대되는 장로교와 웨슬리안의 교리를 각각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지 아니한가! 고로 최종 기준은 교리가 아니라 성경과 성령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오늘날에 인공지능도 기본 상식과 설교 자료를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다수가 말해 온 보편적 견해를 종합하는 성격 때문에, 그것을 곧바로 성령의 음성과 동일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필자는 성경 번역과 연구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면서도 잘못된 관성에 따라 답한 부분을 반복해서 고치게 하고 검토하게 한다. 도구는 사용할 수 있지만 최종 판단은 성경 본문과 성령의 깨우침 앞에서 내려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이 듣기 싫어한다고 말씀을 바꾸면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도 기존 교계가 불편해할 내용을 그만 전하라는 선배들의 충고를 여러 차례 들었다. 그러나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분이 주님이시며,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 분명하면 살아 있는 동안 전해야 한다고 고백한다. 파수꾼은 자신의 안전보다 맡겨진 영혼의 생명을 앞세워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하나님은 왜 그를 같은 언어를 쓰는 동족에게 보내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에스겔을 언어가 다르고 말이 어려운 민족에게 보내지 않고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셨다. 그들은 에스겔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거부한 것이 아니라 알아듣고도 마음이 완고하여 듣지 않았다(겔 3:5-7). 자기네 언어이자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실 때에는 당신의 종이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언어와 가장 가까운 대상을 그에게 맡기신다는 사실도 보여 준다. 에스겔은 자기 언어로 자기 민족을 깨워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역시 복음을 전하면서 세계 공통어인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여 직접 설교할 수 있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에스겔의 부르심을 보며 자신이 가장 잘하는 한국어로 한국 교회와 백성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 먼저임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번역자와 영상과 책의 통로를 붙여 다른 언어권으로 보내실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어로 먼저 선포된 말씀이 영어로 번역되어 전달되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대한민국이 세계적인 산업과 기술의 나라로 성장한 과정도 한 예가 된다. 과거에는 일본과 미국의 제품을 부러워했지만 오늘날에는 한국의 가전제품과 휴대전화가 세계에서 최고로 인정받는다. 필자는 이와 같이 마지막 시대의 중요한 영적 깨달음도 한국어로 먼저 나오고 다른 언어로 번역될 수 있다고 본다. 물질적 발전을 자랑하는 데 그치지 말고, 하나님께 받은 진리로 세계를 섬길 책임을 깨달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한국어의 역사도 이 사명과 연결된다. 세종대왕은 1443년에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1446년에 반포했다. 한글은 발음 기관의 모양과 천지인의 원리를 반영한 배우기 쉬운 문자였지만 오랫동안 &amp;lsquo;언문&amp;rsquo;이라 불리며 천한 백성이 쓰는 글로 낮게 여겨졌다. 그런데 개신교 선교사들이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고 학교와 병원을 세우면서 누구나 말씀을 읽고 배울 수 있는 길이 열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제물포에 도착한 일은 한국 선교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미국의 선교사들은 이 나라를 지배하려는 군대로서가 아니라 성경과 교육과 의료로 백성을 섬기기 위해 왔다. 그러자 한글 성경을 읽은 평민과 여성에게 배움의 길이 열렸고, 교육받은 이들이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며 학교와 교회를 세웠다. 한글과 성경의 만남이 대한민국의 영적&amp;middot;교육적 성장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선교사들이 세운 배재학당과 이화학당과 연희전문학교 같은 교육기관들은 신분 때문에 배울 수 없었던 이 나라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한글을 익혀 성경을 읽은 평민과 여성들이 공부를 계속하고, 해외에서 학위를 받은 인재들이 다시 학교와 사회를 세웠다. 필자는 오늘날 대부분의 자녀가 대학 교육을 받을 만큼 강한 교육열도 이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배우기 쉬운 한글과 성경의 만남이 잠자던 총명함을 깨웠고, 평범한 사람도 다니엘처럼 말씀을 연구할 토대를 얻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우리 민족은 어떠한 민족이었는가? 무속과 제사와 수많은 미신 속에서 살아왔다. 문지방을 밟거나 밥을 먹으며 소리를 내거나 다리를 떨면 복이 나간다는 식의 금기가 일상을 지배했다. 그러나 한글 성경이 보급되면서 그런 두려움 뒤에 있는 우상숭배와 악한 영의 역사를 점차로 분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복음의 빛이 들어왔기에 한국인은 말씀을 더욱 간절히 받아들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사계절이 분명한 환경도 기다림과 부지런함을 익히는 데 한몫했다고 본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지나며 다음 계절을 준비하듯, 한국 성도에게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는 것 같은 영적 열망이 자라난 것이다. 또한 자유대한민국이 전쟁과 핵의 위협 속에서도 세계 선교를 감당하도록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배경은 우월감을 갖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 때 복음으로 세계를 섬길 책임을 깨닫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일본 열도와 제주도가 태풍과 지진의 위험을 막아 주는 지리적 울타리처럼 보이는 것도 마지막 시대에 세계 선교를 주도할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리적 조건이나 군사력만으로 나라가 안전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북한과 공산주의 국가가 핵무기를 가지고 생명을 위협하는 현실에서 자유와 생명을 존중하는 나라가 되도록 깨어 있어 기도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치지형도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상태가 아니라 세계가 신뢰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복음 선교의 문도 넓게 열릴 것으로 본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파수꾼은 악인과 의인을 각각 어떻게 깨우쳐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 3장은 파수꾼이 상대해야 할 사람을 악인과 의인으로 나눈다. 악인에게는 지금 가는 길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경고해야 한다. 악인이 경고를 받고 돌이키면 살 수 있다. 파수꾼은 죄가 가져올 결과를 감추지 말고, 회개의 길이 열려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려야 한다(겔 3:18-19, 33:8-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의인에게도 경고가 필요하다. 과거에 의롭게 살았거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이후의 모든 선택이 자동으로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의인이 자기 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면 그의 과거 의로운 행위가 기억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겔 3:20, 33:12-13). 그러므로 이미 믿는 사람도 현재 죄를 짓고 있다면 깨우쳐 범죄하지 않게 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3:21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므로 그가 범죄하지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파수꾼의 사명이 불신자를 교회로 데려오는 데서 끝나지 않음을 보여 준다. 처음 믿게 하는 일도 귀하지만, 믿는다고 하면서 멸망의 길을 걷는 사람을 깨우는 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을 의인이라고 여기며 죄를 가볍게 보는 사람이 경고를 받고 회개하여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도록 준비시키면, 그도 살고 파수꾼도 자기 영혼을 보전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도 믿음이라는 이름만 붙들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지 않는 사람을 경고하셨다. &amp;ldquo;주여 주여&amp;rdquo;라고 부르는 것만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다(마 7:21). 행위가 구원의 값을 지불한다는 뜻이 아니다. 참된 믿음에는 회개와 순종의 열매가 나타나며, 열매가 전혀 없다면 자신의 믿음이 살아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오늘날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죄 사함의 교리만 듣고 정결과 성결을 놓쳤다고 진단한다. 예수를 믿고 오랫동안 기도해도 악한 영을 한 번도 내보내지 못하고 질병과 저주에 눌려 있는 까닭은 죄를 자백하고 깨끗해지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가르친다. 이것은 성경이 모든 질병의 원인을 귀신이라고 직접 말한다는 뜻이 아니라, 필자가 축사 사역에서 확인한 영적 체험과 해석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파수꾼은 악인에게는 죄에서 돌이키라고 하고, 의인에게는 의롭다 함을 받은 뒤에도 죄에 머물지 말라고 해야 한다. 어느 한쪽만 말하면 온전한 경고가 아니다. 믿음의 출발을 부정해서도 안 되고, 믿은 뒤의 회개와 순종을 삭제해서도 안 된다. 시작과 과정과 끝을 함께 전하여 영혼이 실제로 생명의 길을 걷게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경고를 외면한 자와 침묵한 파수꾼의 피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 33장의 나팔 비유는 책임의 경계를 분명히 한다. 파수꾼이 다가오는 칼을 보고 나팔을 불었는데도 어떤 사람이 경고를 듣지 않았다면, 그가 죽은 책임은 자기에게 돌아간다. 경고를 받았다면 생명을 보전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외면했기 때문이다(겔 33:4-5). 하나님은 사람을 억지로 회개시키지 않으시며, 말씀을 들은 사람에게 응답의 책임을 물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반대로 파수꾼이 칼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않으면 문제가 달라진다. 백성 중 한 사람이 자기 죄악으로 죽더라도 하나님은 그 피를 파수꾼의 손에서 찾겠다고 하신다. 죄인은 자기 죄 때문에 죽지만, 살릴 수 있는 경고를 알고도 숨긴 파수꾼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영혼의 위험을 본 사람에게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겔 33: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33:6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파수꾼은 밤이고 낮이고 깨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잠들어도 한 사람은 성벽을 지켜야 한다. 술에 취하거나 졸아서 적군을 놓치면 자신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 성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다. 영적 파수꾼도 시대의 흐름과 교회의 상태를 살피고, 죄와 거짓 가르침과 임박한 심판을 분별하여 나팔을 불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책임 때문에 주의 종은 외롭고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있다. 필자는 설교와 축사와 새가족 돌봄과 교회 행정과 재정 확인을 감당하다 보면 주일 사역이 끝난 뒤에도 새벽 두 시까지 일할 때가 있다. 또한 주일 설교사역이 끝나도 보이지 않는 악한 영을 상대하는 축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축사 사역은 집중력과 영육의 에너지를 크게 요구한다. 월요일이 되면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만큼 지치지만, 고통받는 영혼을 누가 불쌍히 여기고 도울 것인가라는 주님의 물음 때문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을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저녁 늦게까지 말씀을 준비를 할 때면 가족은 편안히 잠들어 있다. 그러면 아내가 남편의 사역을 당연히 감당할 일로 여기며 전적으로 믿고 걱정하지 않는 모습이 부럽게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신뢰 역시 사역을 지탱하는 한 부분이다. 지도자의 외로움은 자기를 높이라는 신호가 아니라, 사람에게 기대기보다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을 더 의지하라는 부르심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들이 그만 말하면 편해질 것이라고 권한다고 할지라도 파수꾼의 사명은 맡겨진 경고를 포기할 수 없다. 필자도 역시 기존 교리를 흔들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말을 듣지만, 하나님이 보여 주신 구원의 길을 숨겼다가 영혼들이 잘못되면 그 책임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다시 용기를 내어본다. 그러나 자기 생각을 함부로 정죄의 나팔로 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먼저 주님께 묻고 성경으로 확인하며 성령의 허락 안에서 정확히 말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경고를 한 다음에는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듣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움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파수꾼은 진리를 분명히 전하고 자신의 삶으로 증언해야 하며, 듣는 사람은 말씀 앞에서 돌이킬 책임을 져야 한다. 이렇게 각자의 책임이 분명할 때 경고는 협박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초청이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속죄받은 의인에게도 왜 회개&amp;middot;정결&amp;middot;성결이 필요한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를 믿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구원의 출발이다. 그러나 출발한 사람이 계속 죄의 길을 걷고도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에스겔은 의인이 죄악을 행하면 죽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예수님도 사람을 열매로 알고, 마지막에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셨다(마 7:16-23, 16:27). 믿음과 행위를 서로 원수처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참된 믿음은 순종의 열매를 맺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성경에서 말하는 &amp;#39;속죄&amp;#39;와 &amp;#39;정결&amp;#39;과 &amp;#39;성결&amp;#39;은 서로 다른 영역이다. &amp;#39;속죄&amp;#39;는 예수님의 피로 죄의 값을 용서받는 일이고, &amp;#39;정결&amp;#39;은 회개와 자백을 통하여 죄와 더러움에서 깨끗해지는 일이며, &amp;#39;성결&amp;#39;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성품과 행실이 거룩하게 변화되는 일이다. &amp;#39;속죄&amp;#39;만 반복하여 말하면서 &amp;#39;정결&amp;#39;과 &amp;#39;성결&amp;#39;을 생략하면, 용서받았다고 주장하면서도 죄의 습관과 악한 영의 영향 아래 머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큰 집에 금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와 질그릇도 있으며,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고 말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조건에는 깨끗함과 거룩함과 준비됨이 있다(딤후 2:20-21). 사울 왕처럼 한때 쓰임받았어도 불순종을 계속하면 버릴 그릇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도 자신을 살피고 죄를 회개하여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후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리는 성경을 이해하도록 돕는 참고 자료이지 성경 위에 서는 최종 기준이 아니다. 장로교의 구원론과 웨슬리안의 구원론이 서로 다른 지점을 가리키고 있는데, 어느 한 전통만 절대적인 정통으로 놓고 다른 쪽을 모두 이단이라 하면 모순이 생긴다. 필자는 그래서 성경적인 구원론 정립을 위해 매우 노력하였다. 그래서 성경적인 구원론을 정리한 『바른 히브리서 강해』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믿음으로 시작한 사람이 어떻게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온전한 구원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어떤 이는 필자가 회개와 성결을 강조한다면서 행위구원론자가로 매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라.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고, 요한계시록에서는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생명나무와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는다고 말씀하셨다(마 7:21, 계 22:14). 행위는 구원의 값을 대신하는 공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믿음과 계속되는 회개의 열매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자신이 정말 달라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겸손과 순종이 자라고, 예배가 기쁨이 되며, 죄를 미워하고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이 깊어져야 한다. 그러나 성품과 삶에 있어서 아무 변화 없이 신앙의 연수만 쌓이고 있다면 그는 진정한 파수꾼의 나팔을 듣고 다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의인을 깨우치는 목적은 믿음을 빼앗는 데 있지 않고 끝까지 생명을 얻게 하는 데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에스겔의 사명은 예수님과 오늘의 파수꾼에게 어떻게 이어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은 하나님의 입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대신 깨우는 파수꾼이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받은 말씀을 전하며 &amp;ldquo;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amp;rdquo;고 외치셨다(마 4:17). 믿음의 이름만 가진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뜻을 행하라고 경고하고, 생명의 길과 멸망의 길을 분명히 보여 주셨다. 고로 에스겔의 삶은 자기 백성에게 배척받으면서도 끝까지 경고하고 살리는 예수님의 사역을 미리 나타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은 소수라도 할지라도 그들이 곧 교회의 씨앗이 된다. 그러자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사람들 중에서 백이십 명이 한곳에 모여 성령을 기다렸고, 성령이 임한 뒤 그들은 세계로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다가 1885년 한국에 온 미국 선교사들을 통하여 그 복음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졌으며, 오늘날 대한민국은 다시 세계를 향해 복음을 전할 책임을 받은 민족이 되었다. 듣는 사람이 적어 보여도 파수꾼의 한 번의 나팔이 다음 세대와 다른 민족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2020년 코로나 시기에 대면 모임이 막히자, 생방송을 통하여 설교가 더 널리 퍼지게 될 것을 전적인 하나님의 섭리로 본다. 오랫동안 신앙생활하면서도 풀리지 않던 질문을 가진 사람들이 우연히 &amp;lsquo;회개와 천국복음&amp;rsquo; 채널을 듣게 되었고, 속죄와 정결과 성결을 구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시대의 재난이 오히려 참된 말씀을 듣게 하는 새로운 통로가 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필자의 삶에는 새벽을 깨우는 제대로 된 훈련 기간이 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새벽 네 시에 정화수를 뜨러 나갈 때, 문 여는 소리를 듣고 따라가기 위해 늘 귀를 기울였다. 당시에는 우상숭배의 환경에서 그렇게 했지만, 그 경험을 통하여 새벽에 깨어 있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이제는 우상을 섬기기 위한 새벽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대한민국과 세계 성도를 깨우는 말씀을 새벽에 전하고 있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지만 파수꾼의 사명은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다. 말씀 후 축사 사역을 하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젖고, 설교와 행정과 재정과 새가족까지 돌보고 나면 몸이 많이 지친다. 하지만, 한한 영혼이 자기 문제를 해결받고자 찾아왔는데 그렇다고 그들을 외면할 수는 없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지도자는 외롭고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받았으니 주님께서 맡기신 일에 충성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말씀을 배우는 성도도 파수꾼의 사명에 동참해야 한다. 교회 홈페이지의 신론과 기독론,&amp;nbsp; 구원론과 성령론, 은사론과 교회론, 종말론과 요한계시록 강해를 차례로 공부하고, 창세기 강해 172편과 『하나님의 경륜』을 통하여 하나님이 인간을 영과 혼과 몸으로 지으신 목적과 구원 경륜을 살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의 지식을 쌓는 데서 멈추지 말고 받은 달란트와 사명을 따라 다른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지막 시대에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등과 기름을 준비하고,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처럼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마 25:1-30). 서머나 교회처럼 죽도록 충성하고,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적은 능력으로도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아야 한다(계 2:8-11, 3:7-13).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의 파수꾼은 사람을 겁주기 위하여 나팔을 부는 사람이 아니다. 잠든 영혼과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믿는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진리를 외치는 사람이다. 자기 말이 아니라 성경과 성령의 말씀을 전하고, 자신도 날마다 회개하며, 위협과 피로 속에서도 맡겨진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때 에스겔과 예수님을 통하여 이어진 생명의 경고가 이 시대에도 울려 퍼진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워 악인과 의인을 깨우치게 하신 뜻을 살펴보았다. 파수꾼은 다가오는 칼을 먼저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을 살리는 사람이다. 자기 생각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고 귀로 들어, 하나님을 대신하여 동족에게 경고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악인이 경고를 듣고 돌이키면 살 수 있고, 의인도 죄의 길로 향할 때 깨우침을 받아야 생명을 보전한다. 파수꾼이 충분히 경고했는데도 사람이 외면하면 그 책임은 듣지 않은 사람에게 돌아가지만, 위험을 알고도 침묵했다면 하나님은 그 피를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신다. 그러므로 영혼의 상태를 보고도 괜찮다고만 말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속죄받은 의인에게도 정결과 성결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뒤 회개와 자백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성품과 행실을 바꾸어야 한다. 행위가 구원의 값을 대신하지 않지만, 참된 믿음에는 반드시 회개와 순종의 열매가 따른다. 믿음과 행위를 갈라놓지 말고 끝까지 생명의 길을 걸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의 파수꾼 사명은 아버지께 받은 말씀으로 자기 백성을 깨우신 예수님의 삶을 미리 보여 주었다. 그 복음은 제자들을 거쳐 한국에 이르렀고, 한글 성경과 교회와 교육을 통하여 이 민족을 깨웠다. 이제 한국 교회도 받은 말씀을 자기 안에만 간직하지 말고 세계의 잠든 영혼을 깨우는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의 주의 종과 성도는 성경과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고, 사람의 평가보다 맡겨진 영혼의 생명을 귀히 여겨야 한다. 자신도 날마다 회개하며 깨어 있고, 다가오는 위험을 분별하여 사랑으로 경고하며, 작은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듣고 전하여 자신과 맡겨진 영혼을 함께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20일(목)&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p&gt; &lt;p&gt;이 설교는 에스겔 선지자의 사명을 현대 목회자의 역할과 연결하여,&amp;nbsp;&lt;strong&gt;시대의 파수꾼&lt;/strong&gt;으로서 진리를 파수하고 성도들을 깨워야 하는 당위성을 강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에스겔이&amp;nbsp;&lt;strong&gt;패역한 세대&lt;/strong&gt;를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사역자도 대중의 기호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amp;nbsp;&lt;strong&gt;오직 성령이 주시는 음성&lt;/strong&gt;을 대변하며 영혼들을 회개로 인도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특히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의 중심지라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맹목적인 교리에 안주하지 말고&amp;nbsp;&lt;strong&gt;속죄를 넘어선 성결한 삶&lt;/strong&gt;과 행함이 있는 믿음을 회복하여&amp;nbsp;&lt;strong&gt;구원의 완성&lt;/strong&gt;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설파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마지막 때에 직면한 성도들이 영적 잠에서 깨어나&amp;nbsp;&lt;strong&gt;천국 입성을 준비&lt;/strong&gt;할 수 있도록 경고의 나팔을 부는 파수꾼의 사명을 다짐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ChatGPT Image 2026년 8월 20일 오후 10_11_4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4a3e4c126d31f977f52fcfa2ac780387.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The_Midnight_Watchma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d12bbfc92844a8d1d681955d0fd0f41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The_Midnight_Watchma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9128405cefa6584ae70aab44aecd6d0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The_Midnight_Watchma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d90ad962ea47fb47ab44ce991542e56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The_Midnight_Watchma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7ff3ed0b4ae522d0167ce7f70c1a7c9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The_Midnight_Watchma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c79ee82ad36d7e55067600bba6c7318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The_Midnight_Watchma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1d458db05a7d17de2f1e709a12ba0f2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The_Midnight_Watchma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9c9256790fcdccfc7bc55a543909305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The_Midnight_Watchma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ce13f3133b45cc2df218a9c71fd4ac7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The_Midnight_Watchma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a11d6fcece5fb5a4297ed5d11034b20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The_Midnight_Watchma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56cc64adc1f65e311c7f8cf4ff03462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The_Midnight_Watchma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d59245838f9cb24627232fff64fbd79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영적_파수꾼의_사명_안내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2105bdabb9e5490d75590f9cda3b062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The_Watchman’s_Calling.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d99e52e70967c4c3600f6dabd5a5dc0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The_Watchman’s_Calling.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b16a43a24d63f682394f5f98ce5f33e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The_Watchman’s_Calling.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dc7b72af90a0f5ed39675a4d1a23638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The_Watchman’s_Calling.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f9821e065d689b97404c6910bac5c41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The_Watchman’s_Calling.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ff080575ef8346a77862813f61ecd6c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The_Watchman’s_Calling.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bcd445bcedc95dac3cad249af5be420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The_Watchman’s_Calling.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6fa4973376d4598e63868a0e1d1f2ae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The_Watchman’s_Calling.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993cc1cfdee571d9597d5fd72210f2d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70)] The_Watchman’s_Calling.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96/264/add0eb913d669b83c197451ece865ce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69)] 패역한 족속 가운데 보냄을 받아 미리 예수님처럼 살았던 선지자 에스겔(겔2:1~7)_2026-08-19(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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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19T09:00:07+09:00</published>
		<updated>2026-08-20T00:52:38+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69)] 패역한 족속 가운데 보냄을 받아 미리 예수님처럼 살았던 선지자 에스겔(겔2: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Jsel06jladM 기독론(169) 패역한 족속 가운데 보냄을 받아 미리 예수님처럼 살았던 선지자 에스겔 (겔 2:1-7)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에스겔은 말로만 예언한 선지자가 아니었다. 예레미야에게도 행동으로 말씀을 보여 준 경우가 있지만, 에스겔은...</summary>
	<content type="html">&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69)] 패역한 족속 가운데 보냄을 받아 미리 예수님처럼 살았던 선지자 에스겔(겔2:1~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https://youtu.be/Jsel06jladM&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Jsel06jladM?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69)&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패역한 족속 가운데 보냄을 받아&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미리 예수님처럼 살았던 선지자 에스겔&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겔 2:1-7)&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은 말로만 예언한 선지자가 아니었다. 예레미야에게도 행동으로 말씀을 보여 준 경우가 있지만, 에스겔은 특별히 자신의 몸과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드러낸 행동 예언자였다. 하나님은 그에게 장차 일어날 심판과 회복을 입으로 선포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의 삶 자체가 말씀의 표징이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에스겔을 이해하려면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시대에 누구에게 보냄을 받았으며 그 말씀을 어떻게 살아 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활동하던 때에 유다의 운명은 이미 심판을 향해 기울어 있었다. 므낫세 시대부터 쌓인 우상숭배와 피 흘림이 가득했고, 백성은 거듭된 경고에도 돌이키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의 끝이 이르렀으며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셨다(겔 7:2-4). 이는 하나님이 오랫동안 참지 않으셨다는 뜻이 아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셨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완고하게 반역하는 상태가 끝까지 계속되었기에 마침내 징계가 집행되는 때가 온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이미 심판이 정해졌고 대부분의 백성이 듣지 않을 것을 아시면서도 하나님은 왜 에스겔을 그들에게 보내셨는가? 하나님은 그 시대를 버려 두지 않으셨다는 증거를 남기기 원하셨다. 백성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 하셨다(겔 2:5). 당장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나라가 무너지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여전히 자기 종에게 말씀하시고 역사하고 계셨다. 에스겔의 존재와 순종은 심판의 시대에도 하나님이 침묵하지 않으셨다는 역사적 표지가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러한 에스겔의 모습은 자기 땅에 오셨으나 자기 백성에게 영접받지 못하신 예수님의 삶을 미리 비춘다(요 1:10-11). 예수님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오셔서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셨지만,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그분을 배척했다. 병들고 귀신 들리고 소외된 이들은 예수님께 달려왔으나,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 한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기로 결의했다. 에스겔이 패역한 족속 가운데 보냄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도 완악한 자기 백성 가운데 보내심을 받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모두가 듣지 않은 것은 아니다. 패역한 백성 가운데에도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 있었고, 예수님 시대에도 말씀을 받아들인 제자들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평안하다는 말만 찾고 회개와 심판의 말씀을 외면하지만, 생명을 갈망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주시는 음성을 듣는다. 그러므로 결과가 작아 보인다고 말씀 전하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이라도 듣고 돌이켜 영원한 생명을 준비한다면 선포의 사명은 헛되지 않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과 예수님의 닮은 점은 &amp;lsquo;인자&amp;rsquo;라는 호칭, 서른 살 무렵의 소명, 열린 하늘, 하나님의 영과 말씀의 임재, 패역한 자기 백성에게 보냄받은 일, 삶으로 말씀을 증언한 일 등에서 드러난다. 이번 말씀은 그 가운데 첫 두 가지 환경에 집중한다. 에스겔과 예수님은 모두 듣기 싫어하는 자기 백성에게 보내졌고, 낯선 외국어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언어로 동족에게 말씀을 전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에스겔의 &amp;lsquo;인자&amp;rsquo;라는 호칭과 소명, 패역한 백성에게 보냄받은 이유, 예수님과의 닮은 삶, 같은 언어를 쓰는 동족을 향한 사명, 그리고 이 시대에 말씀을 듣고 전하는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에스겔의 &amp;lsquo;인자&amp;rsquo; 호칭과 서른 살의 부르심은 무엇을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에스겔을 부르실 때 &amp;ldquo;인자야&amp;rdquo;라고 말씀하셨다. 시편에도 사람이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느냐는 뜻으로 인자(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이 언급되지만, 하나님께서 한 선지자를 계속하여 &amp;lsquo;인자&amp;rsquo;라고 부르신 것은 에스겔서에서 특별히 두드러진다. 필자가 설교를 준비하며 세어 본 바로는 에스겔서에 이 호칭이 무려 아흔세 번 나온다. 다니엘에게 한 번 사용된 예가 있지만, 구약에서 이처럼 한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쓰인 경우는 에스겔이 독보적이다(단 8: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2:1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lsquo;인자&amp;rsquo;는 사실 &amp;#39;사람(아담)의 아들&amp;#39;이라는 뜻이다. 에스겔은 하늘의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지만 어디까지나 연약한 인간이었다. 그를 세우고 말하게 하는 힘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과 능력에서 왔다. 하나님은 &amp;ldquo;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amp;rdquo;고 하신 뒤 그에게 말씀하셨고, 그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워, 그가 들은 말씀으로 경고하게 하셨다(겔 2:1-3, 3:17). 마른 뼈 골짜기에서는 &amp;ldquo;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amp;rdquo;고 물으셨고, 새 성전 환상에서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마음에 두라고 하셨다(겔 37:3, 40:4). 고로 인자란 칭호는 하나님 앞에서 듣고 보고 순종하여 전달하는 사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도 자신을 반복하여 스스로를 &amp;lsquo;인자&amp;rsquo;라고 부르셨다. 인자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고,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며, 장차 구름을 타고 권능과 영광으로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9:6, 17:22-23, 24:30). 예수님은 참하나님이시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참사람으로 오셨다. 사람의 연약함과 고통을 실제로 짊어지시고 아버지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셨다. 그러므로 에스겔에게 집중된 인자라는 호칭은 장차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말씀을 몸으로 살아 내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의 사역 시작도 예수님을 예표한다. 에스겔은 서른째 해에 그발 강가의 포로들 가운데 있을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특별히 임했고 여호와의 권능이 그 위에 있었다(겔 1:1-3). 예수님도 약 서른 살에 요단강에서 세례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 위에 임했으며, 그 뒤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눅 3:21-23, 마 3:16-17). 서른 살 무렵, 열린 하늘과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말씀이 사역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이 서로 닮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이 닮음은 우연한 외형의 반복만이 아니다. 하나님은 행동 예언자인 에스겔의 생애에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자취를 미리 새겨 놓으셨기 때문이다. 에스겔은 자기가 편한 방식으로 살 수 없었고, 본 것과 들은 것을 그대로 전하며 하나님이 명령하신 표징을 수행해야 했다. 예수님도 자기 뜻을 행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 오셨다고 했다(요 6:38). 에스겔의 순종은 제한된 인간 선지자의 표징이었지만, 예수님의 순종은 구원의 뜻을 온전히 성취한 실체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amp;lsquo;인자&amp;rsquo;라는 호칭은 연약함만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면서도 받은 말씀을 감추지 않고, 고난 속에서 말씀을 삶으로 나타내는 사명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참된 하나님의 종은 말로만 옳은 것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전한 말씀 때문에 손해와 외로움과 배척이 오더라도 그 말씀대로 살아 내야 한다. 에스겔이 먼저 걸어간 인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비추며, 오늘날 말씀을 맡은 자가 어떠해야 하는지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에스겔이 보냄 받은 패역한 족속은 어떤 상태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이 보냄 받은 대상은 누구였는가?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도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 자손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amp;lsquo;패역한 백성&amp;rsquo;, &amp;lsquo;나를 배반하는 자&amp;rsquo;, &amp;lsquo;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amp;rsquo;라고 하셨다(겔 2:3-4). 패역하다는 말은 단지 실수하거나 지식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다. 말씀을 듣고도 거역하며, 거듭된 은혜와 경고를 받고도 자기 길을 고집하는 반역의 상태를 가리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2: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조상들이 내게 범죄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많은 민족 가운데 선택하여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려 하신 민족이었다(출 19:5-6). 그런데 그들은 그 은혜를 잊고 우상을 섬겼으며, 자녀를 몰렉에게 바치는 가증한 일까지 행했다. 므낫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무죄한 피를 심히 많이 흘렸다(왕하 21:1-16). 전승에 따르면 그는 회개를 촉구하던 이사야 선지자를 톱으로 켜서 죽게 했다. 은혜를 받은 백성이 오히려 하나님의 종을 미워하고 죽이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패역이 가득 찬 상태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오래 참으셨지만 죄가 가득 차자 결국 그들의 끝이 이르렀음을 선포하셨다. 에스겔 7장에서 &amp;ldquo;끝났도다&amp;rdquo;라고 반복하여 말씀하시며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하고 가증한 일을 보응하겠다고 하셨다(겔 7:2-4). 그러므로 에스겔의 시대는 조금만 더 설득하면 국가적 심판이 철회될 수 있는 평범한 때가 아니었다. 이미 바벨론을 통한 징계가 집행되는 때였고, 예루살렘과 성전의 멸망이 다가오고 있었다. 백성이 겪는 환난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서 생긴 일이 아니라, 오랫동안 거역한 죄에 대하여 하나님이 심판하고 계셨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패역한 백성의 특징은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 귀가 있어도 듣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이 반역하는 족속 가운데 거주한다고 하시며, 그들에게 볼 눈과 들을 귀가 있어도 보지 않고 듣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겔 12:2). 문제는 정보가 없다는 데 있지 않았다. 선지자의 경고가 있었지만 듣기 싫어서 외면한 데 있었다. 마음이 굳어지면 심판의 징조가 눈앞에 나타나도 평안하다며 자기 확신을 붙들고, 회개를 촉구하는 말을 불편한 공격으로 여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에도 같은 위험이 있다.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구원이 자동으로 안전하다고 여기며, 죄를 버리고 돌이켜야 한다는 말씀을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 그래도 지도자가 괜찮다고 말하면 스스로 말씀을 살피지도 않고 그냥 안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눈먼 지도자를 눈먼 사람이 따른다면 어떻게 되는가? 둘 다 함께 구덩이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마 15:14). 성도는 누가 평안을 약속했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말이 성경의 진리와 성령의 책망에 맞는지를 분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할 때에도 많은 사람이 듣기 편한 말보다 너무 엄하고 위험한 말을 한다고 여겼다. 기존 종교 체계와 기득권을 건드리는 말씀을 전하면 누군가가 필자를 해칠 수 있다고 염려하고,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권고도 받았다. 그러나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주님이 맡기신 말씀이 분명하다면 살아 있는 동안 그대로 전해야 한다. 패역한 시대일수록 하나님의 종은 사람의 반응보다 말씀의 진실성을 붙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듣지 않을 백성에게도 말씀을 전해야 했던 까닭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성공률을 보장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백성이 심히 패역하여 듣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먼저 알려 주셨다. 그럼에도 &amp;ldquo;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니라&amp;rdquo;고 명령하셨다(겔 2:7, 9). 선지자의 책임은 사람들의 반응을 조종하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충실히 전하는 데 있다. 듣게 하고 돌이키게 하는 일은 성령께 속하며, 선지자는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증언을 남겨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2:5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2:9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에는 심판 중에도 자기 백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 나라가 무너지고 성전이 불타며 포로 생활이 이어지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떠나셨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로들 가운데 에스겔을 세워 계속 말씀하셨다. 훗날 백성이 지나간 역사를 돌아볼 때, 하나님이 아무 경고 없이 심판하신 것이 아니며 가장 어두운 때에도 참된 선지자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알게 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따라서 에스겔의 사역은 당대의 가시적 성과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당시에 많은 사람이 외면했더라도 그의 말과 행동은 기록되어 뒤 세대에 하나님의 공의와 신실하심을 증언했다. 에스겔의 기록을 읽는 &lt;strong&gt;우리는 바벨론의 침공이 우연한 국제 정세의 결과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음을 안다. 또한 심판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회복의 길을 준비하셨음을 본다. 선지자의 순종은 시간을 넘어 다음 세대를 깨우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다&lt;/strong&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회개와 천국복음을 여러 해동안 전했지만 처음에는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구원 얻는 회개의 필요성을 외쳤으나 소수만 귀를 기울였다. 2020년에는 병들고 귀신 들리고 소외되고 가난에 눌린 이들에게 저주로부터 해방되는 회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구체적으로 전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듣지는 않았지만 영적으로 목마르고 실제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이들은 이 말씀을 듣고 찾아왔다. 고로 듣는 사람이 적다는 사실이 말씀의 가치를 없애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오늘날 영상과 기록의 통로도 사용하신다. 말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면, 지금 듣지 못한 사람도 훗날 필요한 때에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생방송 설교와 유튜브 영상을 통하여 내 자신의 설교와 신앙의 흔적을 남겨 왔고, 지금은 영상이 9,130편에 이르렀다. 과거의 부족했던 설교까지 모두 지우지 않은 것은 한 사람의 배움과 변화의 과정도 기록이 되기 때문이다. 설교 당시에는 반응이 작아도 어느 날 들을 귀가 열린 사람이 찾아와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충성이다. 한 사람이라도 듣고 회개하여 자기 미래를 준비한다면 말씀을 전한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다. 천국에 이른 뒤 그 시대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은혜에 감사할 사람이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말씀을 맡은 자는 대중의 환호나 즉각적인 결과를 기준으로 입을 열고 닫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고, 그 시대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셨다는 증거를 남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에스겔은 어떻게 행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예표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은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을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삶으로 표현했다. 하나님은 그가 먹는 음식과 눕는 자세와 침묵과 이동을 표징으로 삼으셨다. 그의 몸과 일상은 더 이상 개인의 편의를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알리고자 하시는 심판과 고통과 회복을 눈에 보이게 전달하는 계시의 도구가 되었다. 이것이 행동 예언자의 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행동 예언은 사람들이 알아주기 위한 연출이 아니다. 말씀을 전하는 당사자가 먼저 그 말씀의 무게를 몸으로 감당하는 순종에 해당한다. 말만 하는 사람은 반응이 나쁘면 표현을 바꾸거나 물러설 수 있지만, 삶이 표징이 된 사람은 자기 존재를 걸고 말씀을 증언한다. 에스겔은 패역한 백성이 비웃고 거부할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이 명하신 행동을 해야 했다. 그가 감당한 외로움과 고통은 참된 선지자가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말씀을 삶으로 이루신 완전한 본이시다. 그분은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영접받지 못했고, 제자들에게조차 버림받았으며, 침 뱉음과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예루살렘에서 수많은 기적과 말씀을 경험한 사람들 중 단 한 사람도 예수님의 고난 앞에서 그분을 변호해주지 않았다. 고로 죄가 없으신 분은 홀로 버림받고 죽음의 길을 가야했다. 에스겔이 패역한 백성 속에서 고독하게 말씀을 살아 낸 일은 이 예수님의 길을 미리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에스겔이나 예수님 역시 모두 자신의 편안함을 지키기 위해 사명을 바꾸지 않았다. 에스겔은 심판이 임한다고 하는 불편한 말씀을 전해야 했고, 예수님은 회개하라고 외치며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든 자들을 책망하셨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위와 이권이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분을 죽이려 했다. 진리가 기득권의 죄를 드러낼 때, 진리를 회개로 받지 않는 사람은 진리를 전하는 사람을 제거하려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에게도 말씀 때문에 외로운 길을 가야 했던 때가 있었다. 기존 교계가 보편적으로 말하지 않는 내용을 전한다는 이유로 그러한 말씀을 중단하라는 압박을 받았고, 그러다 목회자로서의 길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염려까지 들었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깨달은 것은 삶의 경계를 정하시는 분이 주님이라는 사실이다. 주님이 여기까지라고 하시면 언제라도 내려놓을 준비를 하되, 살아 있는 동안에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진리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의 신앙에도 말과 삶의 일치가 필요하다. 평안할 때 진리를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말씀 때문에 손해를 보고 홀로 서야 할 때까지 순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려운 길이 올 수 있다는 말씀을 미리 들으면 실제 고난이 닥쳤을 때 &amp;ldquo;올 것이 왔구나&amp;rdquo; 하고 견딜 수 있다. 에스겔과 예수님의 삶은 고난 자체를 숭배하게 하지 않고, 고난 속에서도 아버지의 뜻을 놓지 않는 순종을 배우게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예수님은 에스겔처럼 자기 백성에게 어떻게 배척받으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세상을 지으신 분이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지 못했고, 자기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10-12). 이 말씀은 거절과 영접이 동시에 일어났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다수가 배척했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멸망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며, 패역한 세대 한가운데에서도 예수님을 알아보고 따르는 사람들이 나왔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11-13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 달려온 이들은 당시 대개가 병들고 귀신 들리고 죄인 취급을 받으며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종교적 기득권보다 치유와 구원과 긍휼이 절실했다. 그들은 &amp;ldquo;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amp;rdquo;라고 부르짖었다. 반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백성이 예수님께 모이는 것을 자기 영향력에 대한 위협으로 보았다. 헤롯 가문도 참된 왕이 나타나는 일을 정치적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종교와 정치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메시아를 제거하려는 세력이 형성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표적을 보면서 진실을 보지 못했다. 마음이 완악해지면 귀로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눈으로 보아도 알지 못한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을 들어 백성의 굳은 마음을 지적하시고,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셨다(마 13:13-15). 진리를 들을 귀는 단순한 청력이 아니다. 자기 생각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말씀 앞에서 돌이키려는 마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제자들은 완전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눈이 보고 귀가 듣기에 복이 있다고 하시며,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그들이 보는 것을 보고자 해도 보지 못하고 듣는 것을 듣고자 해도 듣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다(마 13:16-17). 하나님의 비밀은 학식과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자동으로 열리는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처럼 받고 회개하며 따르는 사람에게 열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에는 성경 강해와 영상과 여러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고, 인공지능을 통하여 많은 정보를 빠르게 정리할 수도 있다. 이는 배우고 비교하며 확인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지금까지 축적된 보편적 교리와 다수의 견해를 종합하여 답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것이 곧 이 시대에 성령께서 깨우치시는 모든 진리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필자는 더러운 영들이 떠난 뒤 성령만 의지하는 가운데 이전보다 말씀이 모든 삶과 더 선명하게 연결되는 체험을 했다. 설교하기 좋은 시대인 동시에, 익숙한 통념이 진리인 것처럼 더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 위험한 시대이기도 하다. 모든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성경과 성령의 인도 안에서 적극적으로 분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진리를 듣는 일은 결국 각 사람의 책임이다. 지도자가 괜찮다고 말해도 마음에 말씀과 맞지 않는 부분이 느껴진다면 성경을 찾고 기도하며 확인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대신 믿고 대신 판단해 줄 수 없다. 신앙의 길은 때로 외롭지만, 먼저 걸어간 에스겔과 예수님의 길을 알면 배척과 고난이 왔을 때 낙심하지 않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떠나도 주님이 보고 계시며, 들을 귀를 가진 사람은 반드시 말씀을 듣는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하나님은 왜 에스겔을 같은 언어를 쓰는 동족에게 보내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에스겔은 누구에게 보냄을 받았는가? 하나님은 에스겔을 보내실 때에,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이방 민족에게 보내지 않고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셨다. 만일 하나님이 그를 알아듣기 어려운 언어를 쓰는 이방 민족에게 보냈다면 그들이 오히려 들었을 것이라고 하셨다(겔 3:5-6).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완고함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들은 언어를 몰라서 못 들은 것이 아니라, 분명히 알아듣고도 듣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3:5-6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나라들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동시에 이 말씀은 하나님이 종에게 가장 잘 감당할 수 있는 언어와 대상을 맡기신다는 사실도 보여 준다. 에스겔은 외국어를 새로 배워 먼 민족에게 가라는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말로 자기 민족의 죄를 깨우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했다. 예수님도 공생애 동안 주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며 유대 땅에서 그들이 알아들을 언어로 천국복음을 전하셨다(마 15:2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한때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여 국제 집회에서 이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면 더 많은 사람이 듣지 않았겠느냐고 생각도 하였다. 그러나 에스겔의 소명을 보며 자신감을 얻었다. 하나님은 필자를 먼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가장 잘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한국 교회와 한국 백성에게 말씀을 전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다른 언어권으로 전달할 때가 찾아오면 하나님께서눈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필자에게 붙여주어 번역과 자막의 길을 여실 것이다. 실제로 필자의 설교를 영어로 번역하여 인터넷에 올리는 사람도 생겨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한국어를 사랑하고 정확히 다루는 배경도 사명에 사용되었다. 필자는 국문학을 공부하며 작품의 중심 내용과 배열, 복선과 상징을 분석하는 훈련을 받았다. 그 훈련은 성경의 문맥과 구조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구약의 에스겔서와 다니엘서와 스가랴서에 놓인 상징과 예표를 앎으로 요한계시록의 표현을 바르게 연결할 수 있었다. 이처럼 과거의 역사를 공부하는 일은 지나간 지식을 쌓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를 분별하고 미래를 준비하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리 나라는 실로 대단한 나라다. 일제의 침략을 받아 국권을 잃고 삼십육 년 지배를 받았지만 한국어는 그대로 보존되었다. 그러한 역사가 지구상에 없다. 또한 발해가 망하자 발해를 떠나 베링해를 거쳐 아메리카와 남미로 이주한 토종 한국인도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도 멕시코나 남미 나라들에 가면&amp;nbsp; 원주민 언어 속에 한국어들이 많이 남아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은 언어와 민족의 뿌리에 대한 필자의 관심을 보여 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에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런데 이러한 예화의 핵심은 언어가 단순한 전달 수단이 아니라 한 민족의 역사와 사고를 담는 그릇이라는 데 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이 가진 언어와 문화와 교육의 배경을 복음 전달의 통로로 사용하심으로 최소한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한국어로 한국어를 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달할 책임이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필자는 일반 교육자의 길과 목회자의 길 사이에서 고민한 적도 있다. 교육계의 지도자로부터 교직을 맡아 달라는 권유를 받았고, 학교 교목에 지원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전도하는 길을 하고 자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학교에는 해마다 새로운 학생이 오므로 복음을 전하기 좋은 자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길이 열리지 않았고 결국 목회의 자리에서 성경을 가르치게 되었다. 돌아보면 세상 학문을 가르치는 교사보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가르치는 사명으로 인도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가진 언어와 무대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주신 말과 경험과 자리에서 자기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전한 말씀이 다른 민족에게도 필요하다면 어느날 번역자를 통하여 다른 민족에게 갈 것이다. 그리고 한 지역 교회에서 전한 설교라도 영상을 통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가능성을 먼저 갖추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장 잘할 수 있는 언어로 맡겨진 백성에게 정확히 말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패역한 시대에 말씀을 듣고 전하는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패역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먼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어야&lt;/strong&gt; 한다. 에스겔 시대에는 나라가 멸망하고 백성이 포로가 되었으므로 하나님이 떠나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바로 그때 에스겔에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환상이 나타났으며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다. 눈에 보이는 형편이 무너졌다고 하나님의 통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심판의 때에도 하나님은 자기 종을 세우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을 살리며, 다음 세대를 위한 말씀을 남기시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스스로 말씀을 듣고 선포된 말씀을 분별해야&lt;/strong&gt; 한다. 지도자의 말만 의지하여 괜찮다고 안심하지 말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성령께서 무엇을 책망하시는지 살펴야 한다. 오늘은 유튜브와 여러 성경 자료와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궁금한 내용을 확인하기 좋은 시대다. 다만 많은 정보가 있다고 자동으로 진리에 이르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적어도 여러 자료를 비교하고, 무엇보다 성경 본문과 맞는지를 확인하며, 죄를 가볍게 만들고 회개를 막는 가르침은 경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들은 말씀을 한 귀로 흘리지 말고 자기 미래를 준비해야&lt;/strong&gt; 한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구원 얻는 회개와 저주로부터 해방되는 회개의 필요성을 들려주셨다면, 지식으로만 저장하지 말고 실제로 죄를 자백하고 돌이켜야 한다. 교회에 나온다는 사실이나 과거의 신앙 고백만으로 안심하지 말고, 현재의 삶에 회개의 열매가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귀가 복되다는 것은 귀한 말씀을 많이 안다는 뜻만이 아니라, 들은 말씀에 순종하여 생명의 길로 들어간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말씀을 맡은 자는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진리를 전해야&lt;/strong&gt; 한다. 물론 자기 생각과 감정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포장해서는 안 된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성령의 인도를 구하며, 받은 내용이 진실한지 거듭 확인해야 한다. 그렇게 확인한 말씀이라면 사람들이 싫어하고 기존 체계가 압박하더라도 침묵해서는 안 된다. 주님의 종은 듣기 좋은 말로 사람을 붙드는 사람이 아니라, 영혼이 심판을 피하고 천국을 준비하도록 생명의 길을 알려 주는 사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말로 전한 진리를 삶으로 남겨야&lt;/strong&gt; 한다. 에스겔은 자신의 몸을 통하여 그 시대에 선지자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오늘날의 성도도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정직과 회개와 충성으로 말씀을 살아 내야 한다. 사람들은 설교 내용만이 아니라 그 말씀을 전한 사람이 위협과 고난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본다. 말과 삶이 일치할 때, 그 존재 자체가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신다는 증거가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여섯째, 자신의 길이 외롭다고 잘못된 길이라고 단정하지 말아야&lt;/strong&gt; 한다. 예수님도 사랑하던 제자들에게 버림받고 홀로 십자가를 지셨다. 에스겔도 대부분이 듣지 않는 백성 가운데 말씀을 전했다. 신앙의 결정은 결국 각자가 주님 앞에서 해야 한다. 다만 외로움을 자기 의로움의 증거로 삼아서는 안 되고, 끊임없이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살피며 바른 길이라면 끝까지 걸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마지막으로 하나님이 각 사람의 삶을 섭리 가운데 사용하심을 믿어야&lt;/strong&gt; 한다. 지금 겪는 고난과 제한이 모두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먼저 지나간 길이 훗날 같은 어려움을 만난 사람에게 길을 보여 줄 수 있다. 하나님은 평범한 배경과 부족한 능력도 사용하시며, 성령을 의지하여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깨달음과 통로를 열어 주신다. 절대 절망하지 말고, 오늘 맡겨진 자리에서 주님의 뜻을 성실히 살아 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이 패역한 족속 가운데 보냄을 받아 말과 행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미리 보여 준 선지자였음을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그를 아흔 번 이상 &amp;lsquo;인자&amp;rsquo;라고 부르셨고, 서른 살 무렵 열린 하늘과 하나님의 환상과 말씀 가운데 사역을 시작하게 하셨다. 에스겔은 연약한 사람의 아들로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본 것과 들은 것을 전하며, 자기 삶을 말씀의 표징으로 내어 드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가 보냄 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도 거듭 배반한 패역한 족속이었다. 이미 심판이 집행되는 때였고 대부분이 듣지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하나님은 그 시대에도 선지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남기기 원하셨다. 나라가 무너지는 중에도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셨으며, 들을 귀 있는 소수를 살리고 다음 세대가 역사의 의미를 깨닫도록 증언을 보존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도 자기 땅과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영접받지 못하셨다. 병들고 소외된 자들은 긍휼을 구하며 나아왔지만, 종교적&amp;middot;정치적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려 그분을 배척했다. 그럼에도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졌다. 다수가 거부하는 시대에도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있고, 한 영혼을 살리는 말씀은 결코 헛되지 않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에스겔을 낯선 언어의 먼 민족보다 같은 말을 쓰는 동족에게 먼저 보내셨다. 이는 이스라엘이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도 듣지 않았음을 드러내며, 동시에 하나님이 종의 언어와 배경을 사명에 사용하심을 보여 준다. 우리도 다른 사람의 능력과 무대를 부러워하기보다 이미 주어진 언어와 경험과 자리에서 충성해야 한다. 필요한 때에는 하나님께서 기록과 영상과 번역의 통로를 열어 말씀을 더 멀리 보내실 것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패역한 시대일수록 말씀을 맡은 자는 듣든지 아니 듣든지 진리를 전해야 하고, 말씀을 듣는 자는 한 귀로 흘리지 말고 회개와 순종으로 자기 영혼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눈앞의 형편이 절망적이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보고 계시며 일하고 계신다. 우리의 말과 삶을 통하여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사람이 있었다는 증거를 남겨야 한다. 그리하여 들을 귀로 생명의 말씀을 받고 자기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끝까지 진리를 살아 내어, 패역한 시대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증언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19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p&gt; &lt;p&gt;이 설교는 에스겔 선지자가 &amp;lsquo;행동 예언가&amp;rsquo;로서 구약 시대에 이미&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예표&lt;/strong&gt;하며 살았음을 강조하는 설교 강해입니다. 정보배 목사는 에스겔이 패역한 족속에게 보냄을 받아 거절당하면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한 과정이, 자기 땅에 오셨으나 영접받지 못했던&amp;nbsp;&lt;strong&gt;예수의 고난 섞인 사역&lt;/strong&gt;과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부르실 때 사용하신 &amp;lsquo;인자(Son of Man)&amp;rsquo;라는 칭호가 훗날 예수의 자기 계시로 이어진다는 점을 들어, 에스겔이 단순한 대언자를 넘어&amp;nbsp;&lt;strong&gt;삶 자체로 그리스도를 보여준 인물&lt;/strong&gt;이었음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정보배 목사는 에스겔과 예수처럼 진리를 외치는 자는 외로울 수밖에 없음을 밝히며, 현대의 성도들 또한&amp;nbsp;&lt;strong&gt;영적 분별력&lt;/strong&gt;을 가지고 이 시대에 선포되는 참된 복음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권고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ChatGPT Image 2026년 8월 19일 오후 09_45_2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47/264/87c7cebc2dcc240e36dd07044dff7af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개인묵상용_Ezekiel_the_Prototype_of_Chris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47/264/a60de1d9c9e53f7d095d683d9062e77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개인묵상용_Ezekiel_the_Prototype_of_Chris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47/264/d0cc4e9614a6caee3777bc224b205bd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개인묵상용_Ezekiel_the_Prototype_of_Chris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47/264/eba6496f1974b427b1994e609d8d819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개인묵상용_Ezekiel_the_Prototype_of_Chris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47/264/db25a0070819db9eec679d7704d89cb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개인묵상용_Ezekiel_the_Prototype_of_Christ.pdf_5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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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개인묵상용_Ezekiel_the_Prototype_of_Chris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47/264/a6f9244cafce29f82cc092597d5000c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개인묵상용_Ezekiel_the_Prototype_of_Chris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47/264/30f3a1aa725e19fe9eef078af1b0c89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개인묵상용_Ezekiel_the_Prototype_of_Chris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47/264/968a44ce80dfb6cfca7903f16397a22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개인묵상용_Ezekiel_the_Prototype_of_Chris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47/264/77bbb078373aed10947eb987f138879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개인묵상용_Ezekiel_the_Prototype_of_Chris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47/264/c6cde8dcf9b1fed17cb15b18fe0436f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개인묵상용_Ezekiel_the_Prototype_of_Christ.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47/264/7cc639cf933c90506f2ed15d2bb4191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에스겔과_예수의_평행_사역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47/264/32a48c4e7d7665966a54a8ef517a35e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The_Parallel_Path.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47/264/e8c2955411adb5c14576909584391fb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The_Parallel_Path.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47/264/40de6baf03164d5fe510c7b2906c6ed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The_Parallel_Path.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47/264/808061d8e51c2b5ca138e38b7fd11cb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The_Parallel_Path.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47/264/d7fae7070aee3cc62684710b678419b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The_Parallel_Path.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47/264/fb83d4cd19aa1fc85526f43653b5736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The_Parallel_Path.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47/264/c609051c827f2b36acc6fdee3723e6b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The_Parallel_Path.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47/264/483f35cb65d662d8e387ed2f7992330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The_Parallel_Path.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47/264/673851c131dbf3db560aa7816655102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9)] The_Parallel_Path.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47/264/6b7b741b1e4ee6073d04b81537ad3ee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68)] 에스겔 선지자는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자였는가?(겔1:1~3)_2026-08-18(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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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18T09:43:22+09:00</published>
		<updated>2026-08-18T13:20:30+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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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68)] 에스겔 선지자는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자였는가?(겔1: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ZzcIuC5EjsI 기독론(168) 에스겔 선지자는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자였는가? (겔 1:1-3)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장차 일어날 일을 말로 전하는 사람이다. 메시야가 처녀에게서 태어나고 베들레헴에서 나며 갈릴리에...</summary>
	<content type="html">&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68)] 에스겔 선지자는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자였는가?(겔1:1~3)&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https://youtu.be/ZzcIuC5EjsI&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ZzcIuC5EjsI?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68)&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에스겔 선지자는&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어떤 면에서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자였는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겔 1:1-3)&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장차 일어날 일을 말로 전하는 사람이다. 메시야가 처녀에게서 태어나고 베들레헴에서 나며 갈릴리에서 사역하고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것을 선포한 예언들이 여기에 해당한다(사 7:14, 9:1-2, 미 5:2, 슥 9:9). 그런데 말로만 예언하지 않고 자기 몸과 생활을 통하여 장차 이루어질 일을 미리 보여 준 선지자도 있다. 이러한 사람을 &amp;#39;행동 예언자&amp;#39;라고 부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은 환상을 많이 본 환상 선지자이면서 대표적인 행동 예언자다. 그는 네 생물과 하나님의 보좌, 성전의 죄악과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장면, 마른 뼈가 살아나는 골짜기, 새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의 분배를 환상으로 보았다. 그 환상들은 당시 이스라엘의 현재 상태와 앞으로 이루어질 심판과 회복,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과 영원한 천국의 모습까지 보여 주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에스겔의 독특함은 환상에만 있지 않다. 하나님은 그의 몸과 결혼과 식사와 침묵과 여러 행동을 표징으로 사용하셨다. 그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을 담당한다는 뜻으로 삼백구십 일 동안 왼쪽으로 눕고 다시 사십 일 동안 오른쪽으로 누웠다. 서른 살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과 말씀을 받아 사역을 시작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아흔 번 이상 &amp;lsquo;인자&amp;rsquo;라고 불렸다. 그의 생애가 장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미리 비추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말씀을 행동으로 살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주변의 선지자들이 모두 백성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할 때 혼자 심판과 회개를 선포하면 배척과 압박을 받는다. 실제 성취가 늦어지거나 백성의 불순종 때문에 예언한 모습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거짓 예언자라는 비난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보여 주시고 말씀하신 것을 가감 없이 전하고 몸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참된 선지자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우리에게도 각자만이 감당할 수 있는 몫이 있다. 다른 사람이 견디기 어려운 가족과 환경과 영적 짐이 주어졌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하여 이루실 뜻이 있음을 살펴야 한다. 그 길이 힘들어도 주님을 의지하여 순종하면 하늘의 뜻이 땅에서 드러나고, 우리의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에스겔이 말과 환상과 행동을 통하여 어떻게 그리스도를 예표했으며, &amp;lsquo;인자&amp;rsquo;라는 호칭과 그의 순종이 오늘 우리의 사명에 무엇을 가르쳐 주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에스겔은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자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은 먼저 말로 그리스도를 예언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거짓 목자들을 책망하며 하나님께서 한 목자를 세우실 것인데 그가 하나님의 종 다윗이라고 하였다(겔 34:23). 역사적인 다윗이 다시 환생한다는 뜻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잃은 양을 찾고 좋은 꼴을 먹이며 목숨을 버리는 참목자로 오셨다(요 10:1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에스겔은 말로만 예언하지 않았다. 그의 사역 시작부터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을 닮았기 때문이다. &lt;strong&gt;첫째로, 에스겔은 서른 살에 하늘의 열리면서 성령이 그에게 임하면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lt;/strong&gt;. 즉 그가 서른 살이 되던 해에 그발 강가에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으며, 여호와의 말씀이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그 위에 있었다(겔 1:1-3). 예수님도 약 서른 살에 세례받으신 뒤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며 하늘에서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눅 3:21-2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로, 에스겔은 자신의 몸으로 장차 예수께서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를 예언&lt;/strong&gt;하였다. 에스겔의 몸은 이스라엘 역사를 보여 주는 표징이 되었다. 그는 토판에 예루살렘을 그리고 포위 공격의 모형을 만들었으며, 왼쪽과 오른쪽으로 오랫동안 누워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을 담당하였다. 먹을 음식과 물의 양도 제한받았고,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 나누어 불사르고 칼로 치고 바람에 흩었다(겔 4-5장). 장차 예루살렘에 임할 기근과 칼과 흩어짐을 자신의 몸으로 먼저 보여 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에게&amp;nbsp;환상과 행동은 서로 떨어진 두 사역이 아니었다. 환상은 하나님께서 보고 알게 하신 뜻이고, 행동은 그 뜻을 선지자의 삶 안에 새겨 백성이 눈으로 보게 한 계시였다. 에스겔은 하늘의 보좌를 본 뒤 땅에서 제멋대로 살 수 없었다. 그가 본 하나님의 거룩함과 심판을 자기 몸의 순종으로 증언해야 했다. 그러므로 참된 환상은 호기심을 채우는 신비 체험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회개와 순종과 사명으로 이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행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의 예표는 죄악을 담당한 일이다. 에스겔은 자기가 짓지 않은 민족의 죄를 짊어지는 자세로 오랜 시간 누워 있어야 했다. 이는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 인류의 죄와 저주를 자기 몸에 담당하고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미리 보여 준다(사 53:5-6, 벧전 2:24). 에스겔이 제한된 기간 동안 상징적으로 담당한 것을 예수님은 실제 속죄 사역으로 완성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lt;strong&gt;셋째로,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계시를 받고 백성에게 전달하는 중보자의 위치&lt;/strong&gt;에 섰다. 패역한 백성이 듣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말씀을 전해야 했고, 악인과 의인에게 경고하지 않으면 그 피 값을 자기 손에서 찾겠다는 파수꾼의 책임을 받았다(겔 3:17-21). 예수님도 아버지께 들은 말씀을 세상에 전하고 사람들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 주셨다(요 8:26-2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마지막으로&amp;nbsp;&lt;strong&gt;넷째로, 에스겔 자신이 계시의 표징&lt;/strong&gt;이 되었다. 하나님은 그를 반복하여 &amp;lsquo;인자&amp;rsquo;라고 부르셨다. 예수님이 자신을 인자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에스겔도 사람의 아들로서 연약함과 고난을 감당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장차 오실 인자의 삶을 미리 나타냈다. 그러므로 그는 말씀 예언자와 환상 선지자에 머물지 않고 자기 존재와 생활로 그리스도를 예표한 행동 예언자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행동 예언은 무엇이며 말씀 예언과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말씀 예언은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내용을 입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메시야의 탄생 장소와 사역과 고난과 재림을 말로 알려 주는 예언이 그 예다. 행동 예언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행동을 선지자가 실제로 수행하여, 장차 일어날 사건과 하나님의 뜻을 눈에 보이게 전달하는 것이다. 말이 귀에 들리는 계시라면 행동은 몸으로 보여 주는 계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행동 예언은 연극이나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한 과장이 아니다. 선지자 자신의 편안함과 명예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몸을 복종시키는 순종이다. 에스겔은 한쪽으로 장기간 누워 있어야 했고, 허리를 줄로 묶은 것처럼 몸을 이리저리 돌리지 못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얼굴을 두고 팔을 걷어 올린 채 예언해야 했다(겔 4:7-8). 몸의 고통과 불편함 자체가 백성의 죄와 임박한 심판을 드러내는 표징이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행동 예언자는 말한 내용과 삶이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은 것을 자기 생각으로 꾸며 내거나, 환난이 두려워 받은 말씀을 숨기면 표징의 기능을 잃는다. 당시에는 적은 보상과 먹을 것을 위하여 거짓 예언을 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에스겔은 사람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주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야 했다(겔 13:1-10). 참된 선지자는 인기를 얻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진실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환상이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먼저 그 열매를 점검해야 한다. 그것이 성경의 말씀과 일치하는지, 자신을 높이는 대신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는지, 죄를 가볍게 여기게 하는 대신 회개로 이끄는지를 살펴야 한다. 악한 영도 놀라운 장면을 보여 주고 사람의 생각을 속일 수 있으므로, 충분히 회개하지 않은 채 환상만 의지하면 받은 것을 잘못 해석할 위험이 크다. 말씀과 성령 안에서 분별하고 자기 삶이 거룩해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사명에는 큰 압박이 따른다. 기존의 교리와 신학 체계를 흔드는 말씀을 전하면 주변의 지도자들이 불러 경고하고 직분과 명예를 막을 수 있다. 예레미야도 다른 선지자들이 평안을 외칠 때 심판을 선포하다가 박해와 감금을 당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을 부탁하셨다면 사람들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앞세워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에게 맡겨진 회개와 천국복음 사역도 이와 같은 책임이 있다. 필자는 평범하고 우상숭배에 찌든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회개하여 몸 안의 악한 영들을 내보내고 그들이 만든 집까지 파괴하였다. 악한 영의 집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그곳에서 후임자의 다른 영이 올라올 수 있으므로, 회개의 분량을 채우고 진실한 눈물로 회개해야 한다.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그 진실성과 믿음과 간절함을 보시고 허락하실 때 악한 영의 집이 완전히 파괴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내용은 에스겔의 행동 예언과 같은 성경 사건은 아니지만, 맡겨진 말씀을 자신의 삶으로 살아 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갈 사람을 찾으신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맡기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비난과 오해를 견디며 진리를 삶으로 증언할 때 그 사람의 존재가 하나님의 계시를 보여 주는 표징이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서른 살의 소명은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과 어떻게 닮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은 &amp;ldquo;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amp;rdquo;에 그발 강가의 포로들 가운데 있을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다. 이어 여호와의 말씀이 제사장 부시의 아들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그 위에 있었다. 제사장이 본격적으로 직무를 시작할 나이에 성전이 아닌 바벨론 포로지에서 선지자의 소명을 받은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1: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도 약 서른 살에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그때 곧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렸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그 위에 임했으며, 하늘에서 &amp;ldquo;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amp;rdquo;라는 음성이 들려왔다(마 3:16-17, 눅 3:21-23). 이처럼 에스겔과 예수님 모두 서른 살 무렵, 하늘이 열리고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뒤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눅 3: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공통점은 단순히 나이가 같다는 데 있지 않다. 에스겔은 포로로 잡힌 백성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고, 예수님은 죄와 사탄에게 붙잡힌 인류에게 천국복음을 전하고 자유를 주기 위하여 오셨다. 에스겔이 하늘의 환상을 보고 말씀을 받은 뒤 백성에게 나아갔듯, 예수님도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광야의 시험을 이기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다(마 4:1, 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에게 임한 환상은 현재와 미래를 함께 보여 주었다. 그는 바벨론 포로 상황과 예루살렘 성전의 죄악을 보았고, 앞으로 임할 멸망과 포로 귀환과 마른 뼈의 회복과 새 성전을 보았다. 참된 환상의 은사는 현재의 영적 상태를 진단해줄 뿐 아니라 하나님이 장차 이루실 경륜도 보게 하신다. 에스겔 40장부터 48장까지의 새 성전과 생명수 환상은 그리스도의 사역과 교회와 영원한 천국까지 바라보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소명을 받는 순간부터 에스겔의 삶은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삶이 되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을 보고, 말씀하신 것을 듣고, 명령하신 행동을 해야 했다. 예수님도 자기 뜻을 행하러 온 것이 아니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그 일을 온전히 이루기 위하여 오셨다(요 4:34, 6:38). 참된 소명은 은사와 권세를 얻는 영광만이 아니라 자기 뜻을 내려놓고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는 순종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어떤 계기로 부르셨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병과 고난과 가족 문제 때문에 주님께 나왔더라도, 그 과정을 통하여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발견할 수 있다. 하늘의 뜻이 임했으면 작은 순종부터 시작해야 한다. 서른 살의 에스겔과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일어서서 자기에게 맡겨진 공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390일과 40일의 행동은 그리스도의 무엇을 예표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왼쪽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고 하셨다. 이스라엘의 범죄한 햇수대로 삼백구십 일을 정하셨고, 그 기간이 끝나면 오른쪽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사십 일 동안 담당하게 하셨다. 하루를 일 년으로 계산한 행동 예언이었다(겔 4:4-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4:4-6 너는 또 왼쪽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짊어지되 네가 눕는 날수대로 그 죄악을 담당할지니라 내가 그들의 범죄한 햇수대로 네게 날수를 정하였나니 곧 삼백구십 일이니라 너는 이렇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고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오른쪽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 일로 정하였나니 하루가 일 년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한 방향으로 오랫동안 누워 몸을 돌리지 못하는 일은 큰 고통이다. 사람이 움직이지 못하면 몸에 욕창이 생길 수 있으므로 누운 환자도 자세를 바꾸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에스겔은 자기 편안함보다 하나님의 표징을 앞세워야 했다. 허리를 줄로 동인 것처럼 정한 날이 차기까지 자세를 바꾸지 못하고 민족의 죄악을 몸으로 짊어졌다(겔 4: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삼백구십 일과 사십 일을 합하면 사백삼십 일이 된다. 필자는 이 수를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와 연결한다. 아브라함에게 약속이 주어진 뒤 출애굽에 이르기까지 사백삼십 년이 언급되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 성전 시대를 지나 바벨론 포로에 이르는 역사도 죄악을 담당하는 사백삼십 년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출 12:40-41, 갈 3:17). 에스겔은 하루를 일 년으로 삼아 그 민족의 긴 죄악을 압축하여 몸으로 보여 주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12:40-41&amp;nbsp;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amp;nbsp;&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3:17&amp;nbsp;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행동은 죄가 없는 사람이 다른 이들의 죄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함을 받으셨으며,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사 53:5-6). 에스겔은 상징적으로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를 담당했지만, 예수님은 실제로 온 인류의 죗값과 저주를 담당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죄를 담당하려면 사람의 아들로 오셔야 했다. 피곤함과 배고픔과 아픔을 실제로 겪고, 채찍에 맞고 십자가를 지며 피 흘려 죽을 수 있는 육체가 필요했다. 하나님으로서 속죄할 자격을 가지셨고, 사람으로서 인류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에스겔이 인간의 몸으로 민족의 죄악을 담당한 표징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죄를 짊어지실 성육신과 십자가를 미리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복음의 서른여덟 해 된 병자도 이스라엘 역사와 연결하여 볼 수 있다. 정탐꾼들이 가나안을 살핀 뒤 불신앙으로 광야를 방황한 실제 기간 가운데 서른여덟 해가 언급된다(신 2:14). 예수께서 베데스다에서 서른여덟 해 된 병자를 일으키신 것은 오랜 광야의 고난을 지나 이제 메시야가 백성을 자유롭게 하고 약속의 기업으로 인도하러 오셨음을 보여 주는 표징으로 해석할 수 있다(요 5:5-9). 숫자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 안에서 의미 없이 기록된 것이 아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신2:14&amp;nbsp;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에게도 오롯이 담당해야 할 몫이 있다. 물론 죄를 속량하는 구주는 오직 예수님이시며 우리가 그분의 대속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족과 공동체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며, 다른 사람이 피하려는 수고와 고난을 감당하는 책임은 각자에게 주어진다.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는 순종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삶에 나타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amp;lsquo;인자&amp;rsquo;라는 호칭에 담긴 네 가지 의미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90번 이상 &amp;lsquo;인자&amp;rsquo;라고 부르신다. 정확히는 93번이다. 이러한 호칭은 구약의 다른 선지자에게는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다니엘에게 한 번 사용된 사례가 있을 뿐이다(단 8:17).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킬 때 반복하여 &amp;#39;인자&amp;#39;라고 하셨다. 머리 둘 곳 없는 인자,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인자, 안식일의 주인인 인자, 땅속에 사흘 동안 있을 인자, 천사들과 함께 다시 올 인자라고 말씀하셨다(마 8:20, 9:6, 12:8, 40, 16:2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lsquo;인자&amp;rsquo;는 히브리어 표현으로 &amp;lsquo;아담의 아들&amp;rsquo; 곧 사람의 아들을 뜻한다. &amp;lsquo;벤&amp;rsquo;은 아들이고 &amp;lsquo;아담&amp;rsquo;은 사람이다. 에스겔이 자비로운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피조된 인간의 아들로서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시지만 구원 사역을 위하여 사람의 아들로 오셨기에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2:1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왜 에스겔을 선지자로 세울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인자라고 불렀고, 그의 예언 사역 내내 그를 인자라고 불렀을까?&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02:01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lt;br /&gt; 겔 02:03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보내노라&lt;br /&gt; 겔 03: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lt;br /&gt; 겔 33:0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lt;br /&gt; 겔 37:03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lt;br /&gt; 겔 40:04 인자야, 너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의미는 인간의 연약함 때문&lt;/strong&gt;이다. 에스겔은 신이 아니라 피곤하고 배고프며 몸에 통증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장기간 한쪽으로 눕고 제한된 음식을 먹으며 백성의 반역을 견뎌야 했다. 예수님도 인자로 오셔서 배고픔과 피곤함과 슬픔과 육체의 고통을 실제로 겪으셨다. 인자라는 호칭은 구원 사역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 신의 흉내가 아니라 참사람의 순종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의미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순종함 때문&lt;/strong&gt;이다. 인간은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다. 에스겔이 패역하고 얼굴이 뻔뻔하며 마음이 굳은 백성에게 말씀을 전하려면 하나님의 영과 권능을 의지해야 했다(겔 2:2-4). 예수님도 아버지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여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연약함을 인정할수록 자기 지혜보다 하나님을 붙들고 받은 말씀을 그대로 행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의미는 하늘 계시의 전달자라는 위치 때문&lt;/strong&gt;이다. 에스겔은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중보적 사명을 가졌다. 당시 많은 거짓 선지자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지 않았으면서도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에스겔은 실제로 하늘의 보좌와 영적 실상을 보고 들었다.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내용을 바꾸지 않고 하나님께 받은 것을 정확히 전해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의미는 계시의 표징 자체이기 때문&lt;/strong&gt;이다. 에스겔은 계시를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자기 몸으로 살아 냈다. 그의 서른 살 소명과 열린 하늘, 죄악 담당과 고난, 인자라는 호칭은 예수님의 삶을 미리 비추었다. 예수님도 단지 아버지의 말씀을 전달한 선지자가 아니라 그 말씀 자체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분이다(요 1:14). 인자는 계시의 전달자이면서 동시에 그 계시를 자기 삶으로 드러내는 표징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예수님이 자신을 &amp;lsquo;인자&amp;rsquo;라고 부르신 것은 신성을 부정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아담의 후손과 같은 참사람의 자리로 낮아져 인간이 담당해야 할 순종을 완성하셨다는 뜻&lt;/strong&gt;이다.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인류를 구원할 자격과 생명을 가지셨고, 사람이시기에 우리 대신 시험과 고난과 죽음을 통과하실 수 있었다. 인자라는 이름에는 성육신의 낮아짐과 십자가의 고난, 부활과 재림의 영광이 함께 들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네 가지 의미는 오늘의 사명자에게도 적용된다. 자신이 연약한 사람임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순종하며, 받은 계시를 가감 없이 전하고, 말한 진리를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지식과 말만 앞서고 삶이 따르지 않으면 행동 예언자의 길을 갈 수 없다. 사람의 아들로서 고난을 감당할 때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인자이신 그리스도가 나타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사람에 대한 예언은 왜 순종에 따라 성취가 달라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시므로 반드시 성취된다. 예수님은 약속대로 오셨고 고난받고 죽고 부활하셨으며 그리고 다시 오실 것이다. 그러나 특정 사람과 공동체를 향한 예언은 그들이 믿고 순종하느냐에 따라 성취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하나님께서 길과 사명을 보여 주셔도 사람이 거부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실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이 본 새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의 분배가 역사 속에서 문자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이 원리에 적용된다. 에스겔이 환상을 잘못 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그 예언을 받을 만큼 회개하고 순종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영적으로 성취하시고 장차 새 예루살렘에서 완성하신다. 불순종한 담당자에게서 촛대가 옮겨졌다고 해서 하나님의 경륜이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언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성취를 보장받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주의 종으로 쓰임받을 것이라는 말씀을 받았다면 성경을 배우고 회개하며 맡겨질 일을 준비해야 한다. 작은 일은 무시하면서 큰 사명만 기다리는 사람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종과 같다(마 25:24-30).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신 뒤 더 큰 것을 맡기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특별히 뛰어난 머리나 학벌 때문에 회개와 천국복음의 사명을 맡은 것이 아니다. 한 번 읽고 모두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성경을 반복하여 읽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였다. 자신의 지혜를 의지할 수 없으므로 날마다 주님께 묻고 성령의 깨우침을 구하였다. 그렇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계속 읽자 다른 사람이 말하지 못했던 영적 진리들이 연결되어 보이기 시작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하나님은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우상숭배의 영이 많이 내려온 가정에서 필자를 태어나게 하셨고 그 영들을 실제로 처리하는 길을 걷게 하셨다. 악한 영을 하나 내보내도 그 집이 파괴되지 않으면 다른 영이 다시 올라오는 체험을 통하여 충분하고 진실한 회개의 필요성을 배웠다. 어려운 과정을 통과한 삶 자체가 다른 영혼들에게 회개의 길을 보여 주는 표징이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을 향한 예언은 운명표가 아니라 순종으로 들어가야 할 초청이다. 하나님이 하시지만 사람을 통하여 하시며, 그 사람에게 상을 주기 위하여 수고에 참여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즉시 직접 처리하실 수 있지만 연약한 사람에게 말씀과 은사와 책임을 맡기신다. 우리가 순종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그 수고가 천국의 상급으로 남는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우리는 맡겨진 고난과 사명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오늘날에 우리 자신들은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자신에게만 주어진 몫이 있음을 인정해야&lt;/strong&gt; 한다. 다른 가족이 감당하지 못할 완고한 배우자나 자녀가 곁에 있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그 영혼을 붙들고 천국으로 이끌려는 뜻이 있을 수 있다. 왜 나에게 이런 짐을 주셨느냐고 원망하기보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없으므로 내게 맡기셨다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다른 사람의 길과 자기 길을 비교하지 말아야&lt;/strong&gt;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늙어서는 남이 띠 띠우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죽음을 예고하셨다. 베드로가 요한은 어떻게 될지를 묻자, 주님은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며 자신을 따르라고 하셨다(요 21:18-22). 베드로에게는 베드로의 길이 있고 요한에게는 요한의 길이 있으며, 우리 각자에게도 고유한 길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연약함 때문이라도 사명을 포기하지 말고 더 주님을 의지해야&lt;/strong&gt; 한다. 자신이 똑똑하지 않으면 더 많이 읽고 확인하면 된다. 사람의 평가와 기존 체계의 압박이 두려워도 하나님께 받은 진리를 전해야 한다. 에스겔은 패역한 백성이 듣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말씀을 전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2:7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회개와 정결을 계속해야&lt;/strong&gt; 한다. 축사에서 악한 영 하나가 나갔다고 모든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죄가 쌓인 만큼 악한 영이 들어오고 집을 이루었으므로 회개의 분량을 채워야 하며, 입술만 움직이는 형식이 아니라 진실함과 눈물로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믿음과 간절함을 보시고 허락하실 때 남아 있던 영과 집까지 처리될 수 있다.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하늘의 계시를 왜곡하지 않고 전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작은 일에 충성해야&lt;/strong&gt; 한다. 큰 사명을 부러워하면서 눈앞의 작은 봉사와 훈련을 무겁다고 피하면 하나님께서 더 큰 일을 맡기실 수 없다. 말씀 한 편을 준비하고 한 영혼을 돌보고 가정을 위하여 기도하는 작은 순종을 쌓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 과정을 모두 보고 계시며, 충성을 확인하신 뒤 더 넓은 사명을 맡기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여섯째, 삶으로 그리스도를 표현해야&lt;/strong&gt; 한다. 하늘의 계시를 전달하는 입술만 있고 고난을 감당하는 생활이 없으면 온전한 증인이 될 수 없다. 에스겔이 자기 몸으로 메시야의 죄악 담당과 순종을 미리 보여 주었고, 예수님이 인자로서 아버지의 뜻을 죽기까지 이루셨듯, 우리도 맡겨진 자리에서 희생과 순종을 살아 내야 한다. 그때 가족과 공동체는 우리의 말을 넘어 삶에서 그리스도를 보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이 시대에 회개와 천국복음을 듣게 된 것도 우연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lt;/strong&gt;. 먼저 자신과 가정이 죄와 저주에서 벗어나도록 회개하고, 천국에서 받을 신분과 상급을 바라보며 충성해야 한다. 직접 말로 전하기 어렵다면 책과 영상으로 알려 주고, 선교 현장에 나가지 못하면 기도와 물질로 동역할 수 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진리를 전하되 결과를 억지로 만들려 하지 말고, 각자 받은 은사와 자리에서 충실히 씨를 뿌려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기는 힘들지만 하늘에 준비되는 상이 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에는 특별한 상이 크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피하는 짐을 주님을 의지하여 감당한 수고는 하나님께서 그 상이 크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힘으로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amp;ldquo;주님, 저는 부족하오니 도와주옵소서&amp;rdquo;라고 고백하며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러면 누구든지 끝에 가서는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통하여 하셨다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고난이 찾아올 때 사명이 잘못되었다고 성급히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 말씀에 비추어 바른 길인지 확인하고, 바른 길이라면 견딜 힘과 지혜를 구해야 한다. 에스겔과 예수님 앞에도 순종을 포기하게 만들 만한 고난이 있었지만, 끝까지 아버지의 뜻을 붙든 순종이 생명과 회복의 길을 열었다. 오늘의 인내가 훗날 한 영혼과 한 가정을 살리는 통로가 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이 말씀만 전한 선지자가 아니라 자신의 몸과 생애로 그리스도를 예표한 행동 예언자였음을 살펴보았다. 그는 환상을 보고 미래를 말했을 뿐 아니라, 서른 살에 열린 하늘과 성령의 권능 가운데 사역을 시작하고,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을 몸으로 담당하며, &amp;lsquo;인자&amp;rsquo;로 불리는 삶을 살아 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의 삼백구십 일과 사십 일은 죄 없는 사람이 민족의 죄악을 짊어지는 표징이었다. 예수님은 그 표징의 실체로 오셔서 인류의 죄와 저주를 실제로 담당하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 에스겔이 제한된 기간 동안 몸으로 보여 준 일을 예수님은 참사람이자 참하나님으로서 온전히 완성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lsquo;인자&amp;rsquo;라는 호칭에는 인간의 연약함, 하나님을 의지하는 순종, 하늘 계시의 전달자, 계시의 표징이라는 네 의미가 담겨 있다.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고난을 겪고 아버지께 순종하며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 자체를 육신으로 살아 내셨다. 에스겔은 이 인자의 길을 미리 걸어감으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나타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을 향한 예언은 순종을 요구한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보여 주셨더라도 회개하지 않고 준비하지 않으면 담당자가 바뀌고 촛대가 옮겨질 수 있다. 각자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에게 맡겨진 가족과 공동체와 민족의 짐을 감당해야 한다. 작은 일에 충성하고, 충분하고 진실하게 회개하며, 사람들의 반대 속에서도 받은 진리를 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의 연약함은 사명을 포기할 이유가 아니라 주님을 더 의지할 이유다. 하늘의 뜻을 입으로만 말하지 않고 삶으로 살아 내며, 고난 가운데 그리스도의 희생과 순종을 표현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맡겨진 십자가와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여 삶으로 인자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18일(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선지자 에스겔이 단순한 말의 전달자를 넘어 자신의 삶과 몸으로 메시아를 예표한 &amp;#39;행동 예언가&amp;#39;였음을 강조합니다. 그는 예수님과 동일하게&amp;nbsp;&lt;strong&gt;서른 살에 사역을 시작하며 하늘이 열리는 환상&lt;/strong&gt;을 경험했으며, 구약에서 유일하게&amp;nbsp;&lt;strong&gt;&amp;#39;인자&amp;#39;라는 칭호&lt;/strong&gt;로 불림으로써 인류의 고난을 짊어질 그리스도의 인간적 면모를 미리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에스겔이 이스라엘의 죄악을 담당하기 위해 수백 일간 옆으로 누워 지낸 고통스러운 행보는&amp;nbsp;&lt;strong&gt;인류의 죄를 홀로 지신 예수님의 순종&lt;/strong&gt;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에게 에스겔처럼&amp;nbsp;&lt;strong&gt;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lt;/strong&gt;하며 삶을 통해 진리를 증명하는 태도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8)] ChatGPT Image 2026년 8월 18일 오후 01_12_31.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1/264/177f3ef4cf8b3fdb3d0e08f9a3d8ee9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8)] Ezekiel_Prefiguring_Chris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1/264/3956052e009de5f4781443add603db1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8)] Ezekiel_Prefiguring_Chris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1/264/c4879da74105785c9adf6a7ad7e69a3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8)] Ezekiel_Prefiguring_Chris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1/264/d5715ab5bd187ad6fde021a01fff5ab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8)] Ezekiel_Prefiguring_Chris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1/264/cbd443a2ecbb4bb54dc831b8041c273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8)] Ezekiel_Prefiguring_Chris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1/264/e815b8ff9c5b21e135e9aab543ac1f8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8)] Ezekiel_Prefiguring_Chris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1/264/a812eef2b2e1bbb7f2e3790c619d6b8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8)] Ezekiel_Prefiguring_Chris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1/264/be4c10e459fb67d690a2e588d653cd3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8)] Ezekiel_Prefiguring_Chris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1/264/08a48e661f185ff6af13a11ad11e7e1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8)] Ezekiel_Prefiguring_Chris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1/264/f6f968dfc50adbb797c782438488209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8)] Ezekiel_Prefiguring_Chris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1/264/cab499f86650c459191794c3b38c57f7.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8)] 에스겔과_그리스도의_예표적_관계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1/264/38f907e31aa7b55627a8ff553584b2c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8)] Ezekiel_the_Living_Cross_of_Chris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1/264/fc1282d012874ce872ecf2ca11f298f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8)] Ezekiel_the_Living_Cross_of_Chris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1/264/192784d06bead906a74b63f38798187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8)] Ezekiel_the_Living_Cross_of_Chris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1/264/275b22704a8e2b87e1fa0924151a25e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8)] Ezekiel_the_Living_Cross_of_Chris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1/264/802a430e3ae41587251030677f5319c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8)] Ezekiel_the_Living_Cross_of_Chris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1/264/7873a6f8f5d08930860a0c19c5f3410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8)] Ezekiel_the_Living_Cross_of_Chris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1/264/1f69d121a341b9f4fcf20a757561eab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8)] Ezekiel_the_Living_Cross_of_Chris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1/264/69e2eab1d5d7d0d6823cd2c6cacfecc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8)] Ezekiel_the_Living_Cross_of_Chris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1/264/0235117577d23c79387a68b2d6fe02e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68)] Ezekiel_the_Living_Cross_of_Chris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1/264/0131b66d28f4d6e826ae591d0e3bfa8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