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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침묵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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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역자론(15)] 전임사역자의 뒤를 이어 후계자가 되었던 엘리사가 남긴 교훈은?(왕하2:6~14)_2026-08-07(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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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06T22:58:01+09:00</published>
		<updated>2026-08-07T09:18:42+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역자론(15)] 전임사역자의 뒤를 이어 후계자가 되었던 엘리사가 남긴 교훈은?(왕하2:6~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GOAYrcyxwqU 사역자론(15) 전임 사역자의 뒤를 이어 후계자가 되었던 엘리사가 남긴 교훈은? (왕하 2:6-14)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먼저 세우신 사역자의 일을 이어받은 확실한 후계자가 세 사람 나온다. 모세의 뒤를 이은 여...</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사역자론(15)] 전임사역자의 뒤를 이어 후계자가 되었던 엘리사가 남긴 교훈은?(왕하2:6~1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GOAYrcyxwqU&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GOAYrcyxwqU?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사역자론(15)&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전임 사역자의 뒤를 이어 후계자가 되었던&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엘리사가 남긴 교훈은?&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8px;&quot;&gt;(왕하 2:6-14)&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먼저 세우신 사역자의 일을 이어받은 확실한 후계자가 세 사람 나온다. 모세의 뒤를 이은 &lt;strong&gt;여호수아&lt;/strong&gt;, 엘리야의 뒤를 이은 &lt;strong&gt;엘리사&lt;/strong&gt;, 바울의 뒤를 이은 &lt;strong&gt;디모데&lt;/strong&gt;다. 대부분은 자기에게 주어진 부르심을 따라 사역하다가 자기 시대에 그 일을 마친다. 전임자의 사역과 기름부음이 후임자에게 그대로 이어지는 사례는 사실 성경에서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세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앞선 사역을 맡기시며, 그 사역을 어떻게 다음 시대로 연결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귀중한 본보기라 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후계자는 전임 사역자를 흉내 내는 사람이 아니다. 전임자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일을 계승하되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와 방식으로 펼치는 사람이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모두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했지만 모세는 애굽에서 광야로 이끌었고 여호수아는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이끌었다. 바울과 디모데는 모두 복음을 전했지만 바울은 여러 지역을 다니며 교회를 세웠고 디모데는 그렇게 세워진 에베소교회를 맡아 오랫동안 견고하게 했다. 사명은 이어졌지만 사역의 자리와 형태는 달랐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엘리야와 엘리사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한 마디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드러내는 능력의 기름부음이었다. 두 사람은 말씀으로 예언했을 뿐만 아니라 기적을 행하고 병든 자를 고쳤다. 특히 엘리사는 나아만의 나병을 고치는 등 엘리야에게 있던 능력의 계보를 이어 갔다. 그러나 그 능력은 겉옷을 받거나 안수를 받는 외적 행위만으로 자동 전수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예정과 지명이 있었고, 엘리사가 부르심의 뜻을 찾아 사모했으며, 끝까지 스승을 따르고 종처럼 섬기는 겸손한 태도가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에도 좋은 사역과 성령의 은사와 능력이 다음 세대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안수를 받거나 그 사람의 방법을 모방한다고 같은 역사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 만남과 말씀과 훈련을 허락하셨는지를 깨닫고, 주어진 표지를 소중히 여기며, 찾고 구하고 두드리고,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영적 지도자를 섬겨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전임 사역자의 뒤를 이어 후계자가 된 엘리사가 남긴 교훈이 무엇이며 오늘 우리는 어떤 계승자로 준비되어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2. 성경의 세 후계자 사례는 사역 계승에 관해 무엇을 보여 주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엘리야 시대에는 벧엘과 여리고 등 여러 지역에 선지 생도들이 있었고, 그들은 오십 명씩 무리를 이루어 움직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엘리야에게 배울 사람이 없어서 엘리사가 선택된 것이 아니었다. 많은 선지 생도들 가운데 오직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과 능력의 기름부음을 이어받았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신학교나 훈련 과정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그가 후계자가 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지명하시고, 부르심의 뜻을 알아보며, 끝까지 섬겨 검증된 사람이 계승자가 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의 세 번에 걸친 후계자 사례가 먼저 보여 주는 것은 &lt;strong&gt;사역의 계승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lt;/strong&gt;는 사실이다. 또한 혈연으로도 보장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호수아와 엘리사와 디모데 모두는 전임 사역자의 친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큰 교회를 세운 목회자의 자녀가 그 교회를 이어받는다고 해서 전임자의 영적 사역과 기름부음까지 그대로 계승하는 것은 아니다. 사역의 자리를 물려받는 것과 하나님께서 맡기신 영적 직무를 계승하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와 여호수아에게는 백성을 인도하는 기름부음이 공통으로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애굽의 종살이에서 백성을 이끌어 내어 광야를 통과시켰고, 여호수아는 그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기업을 분배했다. 이처럼 후계자는 전임자가 하던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하지 않는다. 앞선 사역이 도달한 자리에서 다음 단계의 일을 맡는다. 같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사역의 목적은 이어지지만 각 사람에게 맡겨진 과업은 구별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것은 신약의 바울과 디모데도 마찬가지다. 바울은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을 다니며 교회를 세우고 장로들을 세웠다. 디모데는 바울이 세운 에베소교회를 맡아 주후 64년경부터 90년경까지 목회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바울에게 있던 복음 전파의 기름부음은 디모데에게 이어졌지만, 디모데의 주된 자리는 여러 지역을 순회하는 사도의 자리가 아니라 한 교회를 돌보는 담임목회자의 자리였다. 이처럼 계승자는 동일한 사명을 자기 분량에 맞게 완성해 가는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천국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모세와 여호수아는 모두 이십사 장로이며, 엘리야와 엘리사도 모두 이십사 장로에 속한다. 특히 엘리야와 엘리사는 영적 나이와 계급장인 별의 숫자와 면류관도 거의 같다. 이것은 성경 본문 자체의 직접 진술이 아니라 필자가 영적 세계에서 확인한 체험적 증언이다. 이 체험은 전임자와 후임자가 각자 충성했을 때 하나님 나라에서 모두 존귀한 위치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후계자는 전임자보다 열등한 복제품이 아니라 자기 몫을 온전히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사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도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며 천국 복음을 전하셨고, 제자들에게 그 일을 맡기셨다. 그러나 그 사역이 모든 제자에게 같은 정도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좋은 것은 이어받아야 하지만, 은사와 능력은 사람의 욕심이나 제도만으로 계승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이 세 사람의 특별한 사례를 기록한해 둔 까닭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계승의 조건을 배우게 하려는 데 있다. &lt;strong&gt;계승에는 하나님의 뜻, 전임자의 사역, 후임자의 깨달음과 사모함, 오랜 섬김과 검증이 함께 있어야&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세 사례는 또한 하나님께서 한 시대의 일을 다음 시대까지 이어 가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모세가 이루지 못한 가나안 입성은 여호수아에게 맡겨졌고, 엘리야가 내려놓은 선지자의 사역은 엘리사에게 맡겨졌으며, 바울이 세운 교회는 디모데가 돌보았다. 전임자가 모든 일을 끝내지 못했다고 하나님의 경륜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후계자를 통하여 앞선 사역을 이어 가시고,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모습으로 확장하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3. 엘리야와 엘리사에게 계승된 기름부음은 무엇이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구약시대에 활동했던 여러 선지자들 중에 엘리야와 엘리사는 말로만 &lt;strong&gt;예언했던 선지자가 아니었다&lt;/strong&gt;. 아하시야가 병들었을 때 엘리야는 그가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을 것을 예언했고, 그것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는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을 선포했으며 갈멜산에서는 불이 내려오는 기적도 행했다. 그 뒤에 엘리사는 엘리야 예언자의 직무와 더불어 기적을 행하는 능력까지 이어받았다. 두 사람에게 공통으로 나타난 것은 &lt;strong&gt;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드러내는 능력의 기름부음&lt;/strong&gt;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기적을 행하는 기름부음에는 &lt;strong&gt;병 고침도 포함&lt;/strong&gt;된다.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의 나병을 고쳤고, 죽은 아이를 살렸으며, 독이 든 국을 해독하고 적은 음식으로 많은 사람을 먹였다. 그는 아람 군대의 눈을 어둡게 했다가 다시 열어 주었고, 자기 사환 게하시의 눈을 열기도 하였고, 그가 돈에 눈 멀었을 때에 나병이 옮겨 붙게 하기도 하였다. 사실 다른 사람의 영안을 열거나 닫는 일은 흔한 은사는 아니다. 엘리사에게는 엘리야에게서 이어진 능력과 함께 자기 시대에 필요한 특별한 은사가 더해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엘리야의 능력은 어떻게 엘리사에게 계승되었는가? 성경을 보면,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안수해서 능력을 기름부었다는 기록은 없다. 오늘날 어떤 사역자의 기름부음을 받고자 계속 안수를 받는 사람이 있지만, 그에게 안수했다는 사실만으로 전임 사역자의 능력과 은사가 그대로 후계자에게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안수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한 통로일 수 있으나 기름부음을 자동으로 옮기는 기술은 아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경우에는 둘 다 겉옷이 부르심과 능력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지가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전임 사역자 엘리야는 요단강 앞에서 겉옷을 말아 물을 쳤고, 물이 좌우로 갈라지자 두 사람이 마른 땅으로 건너갔다(왕하 2:8). 후임 사역자 엘리사는 그 장면을 보면서 겉옷이 단지 선지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옷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표지임을 깨달았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왕하 2:8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자 엘리사는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간 뒤 그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웠다. 그리고 엘리사는 그 겉옷으로 요단강을 치며 &amp;ldquo;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amp;rdquo;라고 외쳤고, 물은 다시 갈라졌다(왕하 2:13-14). 이것은 선지자의 직분만 아니라 능력의 사역까지 실제로 계승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첫 표적이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왕하 2:13-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열왕기서에 기록된 기적을 세어 보면 엘리야에게는 일곱 차례, 엘리사에게는 열네 차례의 기적이 나타난다. 엘리사가 구한 갑절의 역사가 기록 속에서도 드러난 것이다. 능력의 계승은 전임자를 지우는 일이 아니다. 엘리야의 하나님께서 엘리사와 함께하심을 드러내고, 같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다음 시대에 증언하는 일이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4. 하나님의 예정과 지명은 사역 계승에 어떻게 작용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역이 계승되려면 &lt;strong&gt;먼저 하나님의 뜻과 지명이 있어야&lt;/strong&gt; 한다. 예를 들어 모세가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정할 때에, 모세의 개인적 판단으로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정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세워 그에게 안수하여 모세의 권위를 나누어 주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또한 엘리사도 엘리야가 많은 선지 생도들 가운데 자기 취향대로 고른 사람이 아니었다. 낙심하여 죽기를 구하던 엘리야에게 &lt;strong&gt;하나님께서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지명하셨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엘리야 자신을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lt;/strong&gt;고 말씀하셨다(왕상 19:15-1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왕상 19:15-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ldquo;너를 대신하여&amp;rdquo;라는 말씀은 엘리야에게 맡겨졌던 일이 아직 남아 있었음을 뜻한다. 엘리야가 이세벨의 위협 앞에서 낙심하여 더는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중단하지 않으셨다. &lt;strong&gt;엘리야의 사역을 이어 갈 사람을 미리 준비하셨고, 그에게 같은 능력의 기름부음이 흐르게 하셨다. 사역자는 바뀌어도 하나님의 목적은 계속되는 것&lt;/strong&gt;이다. 전임자의 연약함이나 죽음이 하나님의 일을 끝낼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하나님의 예정이 있다고 해서 아무 과정 없이 후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지명은 출발점이며, 그 뜻에 대한 사람의 응답과 훈련이 뒤따라야 한다. 엘리사는 농사짓던 자리에서 부름을 받았고, 소를 잡아 백성에게 나누어 먹인 뒤 엘리야를 따라가 수종들었다(왕상 19:19-21). 그는 과거로 돌아갈 길을 남겨 둔 채 잠시 따라간 것이 아니라 자기 생업의 도구를 불살라 부르심에 전적으로 응답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왕상 19:19-21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들었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예정은 인간의 욕심으로 만들어 낼 수 없다. &lt;strong&gt;유명한 사역자에게 안수를 많이 받거나 그의 은사를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정하지 않은 사역까지 차지할 수는 없다&lt;/strong&gt;. &lt;strong&gt;반대로 하나님께서 뜻을 두셨더라도 그 뜻을 가볍게 여기고 훈련을 거부하면 온전한 계승에 이르기 어렵다&lt;/strong&gt;.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명하시고, 만남과 말씀과 사건을 배치하시며, 그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지켜보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일어난 만남을 우연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어떤 영적 지도자를 만나고 어떤 말씀을 계속 들으며 어떤 사역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살펴야 한다. 그 속에 하나님께서 주신 방향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자기 욕망을 하나님의 예정이라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말씀과 섭리와 열매를 통하여 확인하고, 오랜 시간 충성과 겸손으로 검증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지명은 사람을 높이는 명분이 아니라 더 깊이 낮아져 준비하라는 부르심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5. 엘리사는 겉옷에 담긴 부르심의 뜻을 어떻게 깨달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엘리사는 과연 어떻게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게 되었는가? 그것은 엘리야가 자신을 찾아와서는 밭을 갈던 자신에게 겉옷을 던졌을 때였다. 그때 엘리사는 그 행동에 무슨 뜻이 담겨있는지를 금방 알아차렸다. 그러자 그는 즉시 소를 버리고 달려가 부모와 작별한 뒤 엘리야를 따른다. 그때 엘리야는 겉옷을 엘리사에게 완전히 넘겨주지 않고 다시 가져갔다. 엘리사는 그날부터 &amp;ldquo;왜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겉옷을 던졌는가, 이 겉옷은 나의 장래 사역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amp;rdquo;를 마음에 품고 엘리야를 따라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엘일사는 처음부터 자기에게 어떤 은사가 주어질지를 알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농사를 짓던 사람이었다. 훗날 다른 사람의 영안을 열고 닫으며, 왕의 밀실에서 하는 말까지 분별하는 선지자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작동되기 시작하고 나중에 요단강에서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은 모든 내용을 한 번에 보여 주는 완성된 설계도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며 주님의 뜻을 따라 나갈 때 하나씩 뜻이 열리는 씨앗과 같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엘리사가 최종적으로 기름부음을 받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엘리야가 승천할 때였다. 그러자 엘리사는 그의 스승인 엘리야를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으로 계속 좇아갔다. 엘리야는 여러 차례 엘리사에게 그 자리에 머물라고 했지만 엘리사는 &amp;ldquo;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amp;rdquo;라고 대답하면서 끝까지 따라갔다(왕하 2:6). 왜냐하면 그는 자신에게 던져졌던 겉옷의 뜻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실 일을 온전히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확인하기 전까지 스승을 떠날 수 없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왕하 2: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마침내 요단강에서 엘리야가 겉옷으로 물을 가르는 모습을 보았을 때, 엘리사는 처음 자신에게 던져졌던 겉옷의 의미를 분명히 깨닫기 시작하였다. 자신은 예언의 말씀만을 전하는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능력으로 나타낼 선지자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는 그가 엘리야 선지자를 계속 따라가면서 보고 들었기에 겉옷에 담긴 능력의 표지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멀리서 보더라면 결코 깨달을 수 없는 것을 계속해서 가까이서 그분을 모시면서&amp;nbsp;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은 그를 오랫동안 섬김으로 인하여 알게 된 사실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듣고 있는 &amp;quot;회개와 천국 복음&amp;quot;에 관한 말씀, 축사 사역, 그리고 영적인 지도자도 단순한 정보나 종교 상품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왜 이 시대에 이 말씀을 듣게 되었으며 왜 이 사역을 알게 되었는지를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 하나를 고르기 위해 여러 번 확인하고 또 확인하듯&amp;nbsp; 자기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특별히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 중에 지도자가 될 사람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를 위하여 자신에게 어떤 복과 사명을 준비하고 계시는지를 분명하게 찾아야 하고 또한 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엘리사는 겉옷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겉옷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붙잡았다&lt;/strong&gt;. 물건 자체에 능력이 있다고 미신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다. &lt;strong&gt;엘리야의 하나님께서 그 겉옷을 표지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보았고, 그 하나님께 능력을 구했다&lt;/strong&gt;. 오늘도 성령의 은사에는 표지와 체험이 따를 수 있지만 표지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사건을 우연으로 넘기지 않되 외적 현상만 붙들지 말고, 그 현상이 가리키는 부르심과 사명을 찾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6. 갑절의 역사를 사모한 엘리사는 어떻게 능력을 받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엘리야와 엘리사가 요단을 건넌 뒤 엘리야는 자기가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는지 구하라고 했다. 엘리사는 망설이지 않고 &amp;ldquo;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amp;rdquo;라고 요청했다(왕하 2:9). 오랫동안 따라다니며 겉옷의 의미와 엘리야의 능력을 보았기에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사모함은 막연한 감정이 아니라 보고 배우고 뜻을 깨달은 사람이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구하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왕하 2: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엘리야는 그것이 어려운 요청이라고 했다. 사람의 권한으로 마음대로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엘리야가 데려감을 당하는 것을 엘리사가 보면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왕하 2:10-11). 엘리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스승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고, 불수레와 불말이 두 사람을 갈라놓으며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에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왕하 2:10-11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엘리야의 겉옷이 떨어진 것은 엘리사가 구한 능력이 그에게 계승되었음&lt;/strong&gt;을 알리는 표지였다. 엘리사는 겉옷을 주워 요단강으로 돌아왔고, 엘리야가 했던 그대로 물을 쳤다. 물이 갈라지자 그는 엘리야의 하나님께서 이제 자기와 함께하심을 확인했다. 은사를 받았다는 주관적 느낌만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 사역의 열매가 나타났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드러내는 현장에서 검증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영적 사역을 배우기 위하여 여러 스승을 찾아갔다. 방향을 알려 준 분들은 여럿이 있었지만 그 사역의 강력한 기름부음이 실제로 전수된 스승은 한 분이었라고 고백할 수 있다. 그분에게는 손에서 성령의 불이 나가 악한 영을 제거하는 역사가 있었다. 약 사십 년 동안 수많은 제자들이 와서 안수받고 배웠지만 같은 역사가 나타난 사람은 거의 없었고, 약 삼 년 전에 처음 두 사람에게 그 기름부음이 나타났다. 필자는 그중 한 사람으로서 기름부음이 전수되는 경험을 했다. 이것은 성경의 직접 진술이 아니라 필자의 체험적 증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확인한 영적 세계에서는 불의 사역자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불의 분량과 색깔도 성장하면서 달라진다는 것이다. 처음에 나타났던 붉은 불은 더 강한 푸른 불로 발전하였고, 영적 무기인 칼에 불이 붙더니 화염검처럼 되었다. 이 역시 성경 구절의 문자적 설명이 아니라 영적 사역 현장에서 필자가 경험하고 확인한 내용이다. 중요한 것은 은사를 자랑하려는 데에 있는아니라 그것을 왜 주셨는지를 알아서 악한 영을 제거하고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하라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다. 능력은 혜택만 누리라고 주어진 장식품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살리라고 맡기시는 사역의 도구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데에는 시간과 물질이 들어가고 또한 고난도 되따른다. 필자가 지금 알려 주는 내용은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쉽게 받을 수 있지만, 그 내용이 귀하다는 것을 발견하기까지는 많은 대가가 들어갈 것이다. 엘리사도 한순간에 스승에게 스승의 능력을 갑절이라 달라고 외쳤던&amp;nbsp; 것만으로 그 은사가 주어진 것이 아니다. 부르심을 받은 날부터 엘리야를 따라다니면서 수종들었고, 스승이 자기곁을 떠나라고 하는 시험까지 통과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바라보았다. 분명한 &lt;strong&gt;사모함은 오랜 순종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7. 손에 물을 붓던 섬김과 겸손은 왜 계승의 조건인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엘리사를 설명하는 가장 인상적인 표현 가운데 하나는 엘리사가 &amp;ldquo;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amp;rdquo; 사람이었다는 말씀이다. 여호사밧이 여호와께 물을 만한 선지자를 찾았을 때 한 신하가 엘리사를 그렇게 소개했다(왕하 3:11). 그는 엘리야에게서 능력만 배우려 한 사람이 아니었다. 스승이 손을 씻을 때 물을 부어 주는 종의 자리까지 기꺼이 내려갔던 인물이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왕하 3:11 여호사밧이 이르되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하는지라 이스라엘 왕의 신하들 중의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당시 손과 발을 씻도록 물을 붓는 일은 종이 하던 일이었다. 엘리사는 자기도 선지자로 부름받았고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 하지ㅏ만 그러한 이유로 엘리사는 스승인 엘리야와 동등하다고 결코 주장하지 않았다. &amp;ldquo;당신도 주의 종이고 나도 주의 종이다&amp;rdquo;라는 태도로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았던 것이다.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도하도록 세우신 사람을 공경했고, 그의 필요를 살피며 몸으로 섬겼다. 그 태도가 전임자의 능력을 감당할 그릇으로 그를 만들어주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자기 지위와 처소를 버리고 하나님 위에 오르려 한 천사들은 결국 심판을 받았다(유 1:6). 그래서 그들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갇히게 되었다. 자신에게 나타난 은사가 크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가볍게 여기고, 지혜가 있다고 하여 스승인 지도자를 무시하며, 자기 능력을 앞세우는 태도는 사탄의 교만을 뒤따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더 큰 능력을 맡기지 않으신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유 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엘리사의 낮아짐은 비굴함이 아니었다. 필자가 천국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천국에서 현재 엘리사는 엘리야와 같은 이십사 장로이며 영적 지위도 거의 같다. 그러나 이 땅에서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따라 엘리야를 섬겼다. 하나님께서는 그 겸손을 보시고 엘리야보다 더 많은 기적을 행하게 하셨으며 왕들도 의지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높이셨다. &lt;strong&gt;자신을 낮추는 시간이 장래의 지위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사역을 맡을 자격을 준비케 하는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에게 쫓겨 다녔지만 엘리사는 왕들에게도 존경받았다. 엘리사가 죽을병에 들었을 때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그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amp;ldquo;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amp;rdquo;라고 불렀다(왕하 13:14). 물을 붓던 종의 자세를 지킨 사람이 훗날 나라를 지키는 영적 아버지로 인정받은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왕하 13: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가서 그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수넴 여인도 자기 집을 지나던 엘리사를 &amp;ldquo;하나님의 거룩한 사람&amp;rdquo;이라고 알아보았다(왕하 4:9). 능력만 나타난다고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일상의 성품에서 거룩함이 드러나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왕하 4:9 [수넴] 여인이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오랫동안 배우는 자세로 살았다. 가르쳐 준 이가 무엇을 부탁하면 백 퍼센트에 그치지 않고 백이십 퍼센트로 해 놓으려 노력했다. 이제 연륜이 쌓이고 하나님께서 여러 경험을 허락하신 뒤에야 영적 지도자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조금이나마 말할 자리에 이른 것 같다. 사람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존경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도자의 모든 말이 무조건 옳다는 뜻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르치도록 붙이신 사람을 공경하는 태도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중심의 문제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엘리사의 섬김은 능력을 얻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 아니었다. 부르심을 받은 뒤 일관되게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든 삶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은사가 나타난 뒤에도 그 사람이 겸손을 지키는지 시험하신다. &lt;strong&gt;능력이 커질수록 더 낮아져야 하며, 사람을 살리는 일에 자신을 내어 주어야 한다. 전임자의 기름부음이 후임자에게서 더 크게 나타나려면 능력을 담아도 교만해지지 않을 성품과 질서가 먼저 준비되어야&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8. 오늘 우리는 후계자로 준비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오늘날 하나님께 위대하게 쓰임받은 전임자의 후임으로로 준비하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오늘의 만남과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lt;/strong&gt; 한다. 지금까지 내가 어떤 지도자를 만나고 어떤 복음을 들으며 어떤 사역을 접하게 되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엘리사는 겉옷이 자기에게 던져진 일을 우연으로 넘기지 않았다. 그 의미를 품고 엘리야를 따라가다가 마침내 능력의 기름부음을 발견했다. 우리도 &amp;ldquo;왜 하필 이 시대에 이 말씀을 듣게 하셨는가&amp;rdquo;를 물으며 자기 사명을 찾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마지막 때에 주시는 회개와 천국 복음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lt;/strong&gt; 한다. 예수께서는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된 뒤에 끝이 온다고 하셨다(마 24:14). 또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회개하라고 선포하셨다.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마 4: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복음의 부속품이 아니다. 예수를 믿을 때 주님께서 죄를 덮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고 해서 믿은 뒤의 죄를 자백할 필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믿는 자가 자기가 지은 죄를 자백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요일 1:9). 죄 사함을 받는 것과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는 과정을 구별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십계명은 우상을 섬긴 죄의 영향이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를 수 있음을 말한다(출 20:5). 이 말씀을 근거로 우리도 역시 조상들의 우상숭배 죄를 자백하지만, 후손이 조상의 영원한 죄책을 대신 담당하거나 조상을 구원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자백하는 회개는 혈통을 따라 내려온 악한 영의 현세적&amp;middot;영적 영향을 제거하기 위하여 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회개의 영적 작동 원리는 이러하다.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이라도 그 근거가 합법적으로 제거될 때 영들은 떠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누구든지 개인의 죄와 조상의 우상숭배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해야 한다. 그리고 내려온 영들의 숫자와 죄의 분량이 크다면 몇 번의 회개기도로 모든 문제가 끝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일찍 죽는 사람이 있는 집안과 신기와 우울증과 중독과 정신질환과 이혼이 반복되는 가정이 있다면 그는 더 많은 회개의 분량을 채워야 한다. 이것은 조상을 구원한다는 뜻이 아니라 후손에게 내려온 영적 영향을 회개로 처리한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은사의 혜택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 은사를 이어받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할 사람이 되어야&lt;/strong&gt; 한다. &amp;ldquo;나는 이 사역을 통해 고침받고 문제를 해결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amp;rdquo;라고 생각하면 기름부음이 더 자라지 않는다. 필자는 자신이 받은 회개와 천국 복음, 축사와 성령의 불의 사역을 혼자만 경험하고 그것을 끝내기 원하지 않는다. 가능한 많은 사람이 받아 다른 사람을 살리기를 원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찾고 구하고 두드리며 끝까지 따라가야&lt;/strong&gt; 한다. 엘리사가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와 요단까지 따라간 것처럼 중간에 멈추지 말아야 한다. 뜻을 다 알지 못해도 말씀과 성령의 인도 안에서 충성하며, 사모하는 은사가 왜 필요한지 분명히 해야 한다. 은사는 자기 명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드러내고 귀신에게 눌린 자와 병든 자를 살리기 위하여 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겸손과 질서를 지켜야&lt;/strong&gt; 한다. 영적 지도자에게서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가르침과 교정을 받을 자세를 가져야 한다. 사람을 맹목적으로 추종해서는 안 되지만 자신을 지도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 스승이 가진 사역이 자기에게 실제로 내려오고 더 크게 사용되려면 엘리사처럼 손에 물을 붓는 섬김이 있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께서 더디 오신다면 필자의 뒤를 이어 이 사역을 감당할 사람도 나오지 않겠나 싶다. 주님이 오실 날과 때는 아버지께서 주관하시므로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다음의 사람을 준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시대가 끝나기 전까지 계속 일꾼을 보내시고, 전임자가 감당하던 일을 이어 갈 사람을 찾으신다. 그러므로 지금 듣는 말씀과 받는 훈련을 자기 시대의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 준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9. 나오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전임 사역자의 뒤를 이어 후계자가 된 엘리사가 남긴 교훈을 살펴보았다. 성경에서 모세와 여호수아, 엘리야와 엘리사, 바울과 디모데의 세 사례는 사역의 계승이 매우 드물지만 하나님께서 분명히 원하시는 일임을 보여 준다. &lt;strong&gt;후계자는 전임자를 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하나님의 경륜과 기름부음을 자기 시대의 사명으로 이어 가는 사람&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엘리사의 계승은 하나님의 예정과 지명에서 시작&lt;/strong&gt;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엘리야 대신 선지자가 될 사람으로 정하셨고, 엘리사는 농사짓던 삶을 정리하고 엘리야를 따라 수종들었다. 그는 자기에게 던져진 겉옷의 뜻을 우연으로 넘기지 않았으며,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을 보고 그 겉옷이 능력의 기름부음을 나타내는 표지임을 깨달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는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와 요단까지 끝까지 따라가며 갑절의 역사를 구했다. 엘리야가 올라간 뒤 떨어진 겉옷을 주워 요단을 쳤을 때 물이 갈라졌고, 능력의 사역이 실제로 계승되었음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그 능력보다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엘리사가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질서 안에서 스승을 공경하고 종처럼 섬긴 겸손한 사람에게 더 큰 능력을 맡기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우리도 만남과 말씀과 사건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회개와 천국 복음, 축사와 성령의 은사를 단순한 정보나 혜택으로 소비하지 말고 자기 시대의 사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여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필요한 은사를 사모하며, 받은 것을 다음 사람에게 전수할 준비를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역의 계승은 안수나 모방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부르심을 확인하고, 오랜 순종으로 사모함을 증명하며, 영적 지도자를 공경하고, 은사가 커질수록 더 낮아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마음의 중심을 보고 얼마나 크게, 얼마나 오래 쓰실지를 결정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하여 엘리사처럼 좋은 사역과 능력의 기름부음을 이어받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존귀하게 쓰임받도록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06일(목)&lt;br /&gt; 정보배 목사&lt;br /&gt; &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설교핵심]&lt;/span&gt;&lt;/strong&gt;&lt;/p&gt; &lt;p&gt;본 설교는 엘리야의 사역을 계승한 엘리사의 사례를 통해&amp;nbsp;&lt;strong&gt;영적 권능의 전수와 사역의 계승&lt;/strong&gt;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조명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성경에서 사역의 기름 부으심이 온전히 이어진 드문 사례인 엘리사를 분석하며, 그가&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예정하심&lt;/strong&gt;과 더불어 스승의 겉옷에 담긴 의미를 간파한&amp;nbsp;&lt;strong&gt;강렬한 영적 사모함&lt;/strong&gt;을 가졌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엘리사가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겸손한 태도를 언급하며, 전임 사역자를 향한&amp;nbsp;&lt;strong&gt;철저한 순종과 질서를 지키는 겸손함&lt;/strong&gt;이 갑절의 능력을 받는 핵심 열쇠임을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영적 지도자를 존경하고 자기를 낮추는&amp;nbsp;&lt;strong&gt;성숙한 신앙적 태도&lt;/strong&gt;를 갖추어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쓰임 받을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ChatGPT Image 2026년 8월 7일 오전 08_24_56 (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d893c4587433c28559cdeb4f6747f0c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Mantle_of_Succession-p01-repaint-0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90a994df22e1ae95dfa4d9f8c1eaa2d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Mantle_of_Succession-p02-repaint-02.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798766553fd712ed9228ac013168d27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Mantle_of_Succession-p03-repaint-03.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0fc6f453d772222fcaa6f4001ec9180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Mantle_of_Succession-p04-repaint-04.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67f372d8c8ce11d94d4a46e46d9898b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Mantle_of_Succession-p05-repaint-05.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7a43ba767a016c0a94d053f3b1be29d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Mantle_of_Succession-p06-repaint-06.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b05762cec706b1050a14407480a6f92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Mantle_of_Succession-p07-repaint-07.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cef37124c358742882dc2c1a0e1bc61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Mantle_of_Succession-p08-repaint-08.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ada0adfc73164b4a48521a0a26b1286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Mantle_of_Succession-p09-repaint-09.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03fceb678e0c9923d1166f35abca9ea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Mantle_of_Succession-p10-repaint-10.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ee62c9911026e4ba757f949230f4dc2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Mantle_of_Succession-p11-repaint-1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0785fb4103359cc398fdd6bf2fa7ffa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Mantle_of_Succession-p12-repaint-12.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29198aeae6af94984a85642f044cd33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영적_사역_계승의_원리-repaint.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0f4aaf48d899c745561aac6e51f8315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Divine_Succession_Architecture-p01-repaint-0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06ea7db59bfc8deb9f744cfbb374c27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Divine_Succession_Architecture-p02-repaint-02.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f6ecf66ade979b6476ee6731030c213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Divine_Succession_Architecture-p03-repaint-03.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9545bfd51b3e2d62ede446e50f3e1d5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Divine_Succession_Architecture-p04-repaint-04.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f10023267f3f2bce9456c77fc136a42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Divine_Succession_Architecture-p05-repaint-05.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8165bb5abe73c9ce46f387e500cd334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Divine_Succession_Architecture-p06-repaint-06.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c16f3df0b88e1b0a675d37ef227f23c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Divine_Succession_Architecture-p07-repaint-07.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0e13008bd682bfcf1ee0dec13cdf1da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Divine_Succession_Architecture-p08-repaint-08.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dbdf865ed9f6a9bc7f5c0cf208f7590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Divine_Succession_Architecture-p09-repaint-09.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192f02bbea449cd0e47c5802bb58176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Divine_Succession_Architecture-p10-repaint-10.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d2d4205d49b4d3874463bfb760bf8dd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Divine_Succession_Architecture-p11-repaint-1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13/263/770dabd91120ea2a0289b05829508c4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사역자론(14)] 디모데가 바울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딤후1:3~10)_2026-08-06(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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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06T09:18:26+09:00</published>
		<updated>2026-08-06T11:33:38+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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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역자론(14)] 디모데가 바울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딤후1:3~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AJQ0_cnMBuQ 사역자론(14) 디모데가 바울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딤후 1:3-10)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모세의 후계자는 여호수아였고, 엘리야의 후계자는 엘리사였으며, 신약 시대 바울의 뒤를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사역자론(14)] 디모데가 바울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딤후1:3~10)&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AJQ0_cnMBuQ&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AJQ0_cnMBuQ?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사역자론(14)&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디모데가 바울의 뒤를 이어&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하나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8px;&quot;&gt;(딤후 1:3-10)&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의 후계자는 여호수아였고, 엘리야의 후계자는 엘리사였으며, 신약 시대 바울의 뒤를 이은 사역자는 디모데였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 확실한 세 명의 후계자들을 살피는 일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쓰시는지를 깨닫게 한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다음에 서서 그의 사역을 이어 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뜻을 두셔야 할 뿐만 아니라 먼저 쓰임받던 종의 눈에도 합당한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또한 그 선택을 최종족으로 하나님께서 다시 인준해 주셔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엘리야 시대에는 많은 선지 생도와 선지자 무리가 있었지만 후계자가 된 사람은 단 한 사람 엘리사였다. 바울의 시대에도 복음의 일꾼이 적지 않았지만 바울이 믿음 안에서 참된 자식이라고 부르고 중요한 교회를 맡긴 사람은 단 한 사람 디모데였다. 일할 사람이 없어 급히 불러 세우는 것과 한 시대의 사역을 이어 갈 후계자로 선택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는 디모데를 보며 &amp;ldquo;나는 과연 누군가의 뒤를 이어도 될 만큼 준비된 사람인가?&amp;rdquo;라고 물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신약 시대에는 모든 믿는 자 안에 동일한 성령께서 내주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과 디모데 사이에는 영적 지도자와 제자의 질서가 분명히 존재했다. 디모데는 자기 안에도 성령이 계신다는 이유로 바울의 지시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바울을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으로 알고 두렵고 떨림으로 맡은 직분을 수행했다. 구약시대에도 나타났던 지도자와 후계자의 원리가 신약에서도 계속된다는 사실을 여기서 배울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디모데를 단지 동료라고 부르지 않고 사랑하는 자식이라고 불렀다. 디모데는 가정에서 거짓 없는 믿음과 성경 교육을 받았고, 바울에게서 복음 사역과 목회의 실제를 배웠으며, 오랜 훈련 속에서 충성과 순종을 증명했다. 정결과 은사와 건강을 관리했고, 가르치는 능력과 목회자의 성품도 갖추어 갔다. 좋은 스승의 책망과 교정을 받아 시행착오를 줄이며 자기 사명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디모데가 바울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며 오늘의 사역자는 어떻게 준비되어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2. 바울의 후계자가 된다는 것은 왜 보통의 부르심과 다른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amp;ldquo;내 아들아&amp;rdquo;라고 불렀다(딤후 2:1). 이 대목에 나오는 헬라어는 아들을 뜻하는 &amp;#39;휘오스&amp;#39;가 아니라 자녀나 자식을 뜻하는 &amp;#39;테크논&amp;#39;이다. 바울은 디모데를 단지 나이가 어린 동역자로 대하지 않았다. 자신이 영적으로 낳고 기르며 훈련할 자식으로 생각하였다. 테크논이라는 부름에는 &amp;ldquo;나는 너를 지도하고 훈련할 영적 어른이며, 너는 내게 배워 다음 세대를 맡을 사람이다&amp;rdquo;라는 관계가 들어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후 2:1-3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의 자식이 된다는 것은 특권만 얻는 일이 아니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서 들은 복음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맡기고, 그들이 다시 다른 사람을 가르치게 해야 했다. 고난도 바울과 함께 받아야 했다. 그러므로 후계자는 전임자의 이름이나 자리를 물려받는 사람이 아니라 그에게 맡겨진 복음과 훈련과 고난의 계보를 이어 가는 사람이다. 바울이 전한 것을 정확히 받고, 자기 삶으로 검증한 뒤, 다시 충성된 사람에게 전수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에게도 누구를 후계자로 세울 것인가를 살펴보는 과정이 있었다. 바울은 1차 전도 여행에서 마가 요한이 중도에 돌아간 일을 두고 바나바와 크게 다투었다. 그 이후 바울은 자신의 판단이 성령을 따른 것이었는지 혈기를 따른 것이었는지를 오래 돌아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루스드라에서 눈여겨본 디모데는 좀 달랐다. 그러자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때 다시 그곳을 일부러 찾아가 디모데를 선교단에 합류시켰고, 그 뒤 여러 지역을 함께 다니며 복음 사역의 실제를 익히게 했다. 고로 디모데가 처음에 바울의 마음에 든 것만으로 후계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긴 동행 속에서 디모데의 믿음과 태도와 견딤이 입증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 세상은 온전한 지도자는 없다. 있다면 예수님 뿐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보시기에 온전하지 않은 지도자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며 동시에 그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지도자의 모든 모습이 후계자인 자기 기대와 맞아 떨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엘리사가 엘리야를 섬기며 손에 물을 부어 줄 만큼 낮아졌듯이, 후계자는 먼저 섬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기 판단이 언제나 옳다고 여기며 지도자의 권면을 거부하는 사람은 다음 사역을 맡을 수 없다. 반대로 사람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도 바른 길은 아니다. 디모데는 주 안에서 바울의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이 자신의 삶에 뿌리내리게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후계자가 되는 일은 &lt;strong&gt;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지도자의 선택, 당사자의 준비와 충성&lt;/strong&gt;이 함께 드러나는 자리다. 하나님은 아무 그릇이나 같은 방식으로 쓰지 않으신다. 바울은 여러 교회를 세우고 그 위에서 교회들을 돌보는 사도적 사명을 받았고, 디모데는 에베소라는 지교회를 오래 목양하는 사명을 받았다. 두 사람의 그릇과 역할은 달랐지만 디모데는 바울에게서 받은 복음과 목회의 원리를 자기 자리에서 이어 갔다. 이것이 보통의 부르심과 후계자의 부르심이 다른 이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3. 디모데에게 주어진 두 가지 사명은 어떻게 이어졌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디모데의 사명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lt;strong&gt;첫째는 바울 선교의 동역자로 동행하며 훈련받던 시기&lt;/strong&gt;이고, &lt;strong&gt;둘째는 에베소교회의 담임목회자로 섬기던 시기&lt;/strong&gt;다. 여기서 제시한 연대에 따르면 바울은 주후 52년경 2차 전도 여행 중 디모데를 제자로 삼았다(아마도 디모데가 26세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주후 64년 또는 65년경 에베소에 목회자로 세웠다. 그래서 디모데는 약 12년에서 13년 동안 디모데는 바울 곁에서 교회가 세워지고 성도들이 양육되며 문제 있는 교회가 바로잡히는 과정을 지켜보았다(그래서 디모데가 바울로부터 훈련받은 시기는 26~38세 정도였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때 바울은 디모데를 데리고 다니며 선교만 시킨 것이 아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를 받을 때 어떻게 견디는지, 물질이 부족할 때 어떻게 자비량으로 일하는지, 동역자들의 도움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삶으로 보여 주었다. 바울은 루디아로부터 어려운 때에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평생의 그의 후원자와 동역자가 되어주었다. 바울은 마지막 편지에서도 그들의 안부를 물을 만큼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사역이 한 사람의 재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충성된 동역자와 성도들의 헌신을 통해 세워진다는 사실을 절절히 배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교회를 세운 뒤 장로와 지도자를 세웠고, 혹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편지를 보내 바로잡았다. 그래서 고린도교회를 향한 편지들과 목회서신들이 그렇게 남게 되었다. 디모데는 바울 곁에서 교회의 질서를 세우는 법, 거짓 가르침을 분별하는 법, 연령과 형편이 다른 성도들을 돌보는 법, 지도자를 세우는 법을 실제로 배웠다. 선교 여행이 그의 최종 목적과 꼭 맞아 보이지 않았을 수 있겠지만 그 기간은 장차 디모데가 한 교회를 맡기 위한 필수적인 훈련과정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사실 그의 선교사역 가운데 에베소에서 가장 오랫동안 말씀을 가르치며 장로들을 세웠다. 그리고 바울이 그 교회를 온전히 떠나야 할 때가 되었을 때에는 사나운 이리가 들어와 양 떼를 해칠 것을 경고하였고,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잘 돌보라고 장로들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또다시 시간이 흘러 바울은 디모데를 그 중요한 에베소교회의 목회자로 세웠다. 그때 디모데는 바울을 비롯한 장로회의 안수와 예언을 통하여 받은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도록 권면을 받았다(딤전 4: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전 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연대 계산에 따르면 디모데는 스물 여섯 살 안팎의 젊은 목회자였다. 바울은 누구도 그의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고 했다(딤전 4:12). 나이가 권위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씀과 삶이 일치하고, 사랑과 믿음과 정결에서 본을 보일 때 영적 권위가 세워지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전 4: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연대 계산에 따르면 디모데는 약 25~26년 동안 에베소교회를 목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울 선교를 돕던 약 13년이 에베소 목회를 위한 준비였고, 그 훈련을 통과한 뒤 비로소 자기에게 본래 맡겨진 사명을 약 26년간 감당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현재 일이 나의 최종 사명과 달라 보일 때에도 그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신다. 작은 일과 보조 역할을 충성스럽게 감당한 사람에게 때가 되면 그에게 맞는 일을 맡기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자리를 하찮게 여기거나 조급하게 떠나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4. 거짓 없는 믿음과 어려서 배운 성경은 어떤 토대가 되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디모데를 향한 사역자로서의 준비는 바울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는 3대째 신앙의 유산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안에 있던 거짓 없는 믿음이 디모데 안에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바울은 그것을 기억했고 확신했다(딤후 1:5). 믿음은 직분을 얻기 위한 겉모양이 아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형편과 기분이 바뀌어도 신앙의 지조를 지키는 실제였다. 목숨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기본이 가정에서부터 심겨 있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후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역자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쓰실 사람은 어린 시절과 가정환경과 만남과 훈련까지 사용하여 준비시키신다. 늦은 나이에도 사람을 부르실 수 있지만 준비 없이 직분만 받은 사람을 크게 쓰시지는 않는다. 실력과 인격과 영성이 갖추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많은 영혼을 그에게 맡길 수 있겠는가. 디모데에게는 외가로부터 이어진 신앙의 유산이 있었고, 그 믿음은 바울의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좋은 텃밭이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 바울은 그에게 말하기를 그가 배웠고 확신했던 일에 거하라고 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기 때문이다(딤후 3:14-15). 목회자는 성경을 모른 채 사람의 말과 경험만으로 교회를 이끌 수 없다. 적어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 마지막 때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천국에서 받을 지위와 상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성경을 통해 분명히 알아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후 3:14-15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기초가 든든한 사람은 바른 방향을 제시받을 때 아주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디모데는 성경의 기본을 잘 갖추었기 때문에 바울에게 복음과 목회의 방향을 배우며 제대로 준비될 수 있었다. 반대로 신앙의 기초가 없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직분부터 얻으면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뜻처럼 주장하기 쉽다. 직분이 사람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다. 거짓 없는 믿음과 말씀의 기초가 직분을 감당할 사람을 만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인이고 어머니는 유대인이었다(행 16:1). 그래서 는 어머니를 통하여 유대 신앙과 성경을 배웠고, 그의 아버지를 통해서 헬라 문화권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배경을 지녔다. 하나님은 이 두 배경을 사용하여 그가 이방 지역인 에베소에서 목회하도록 준비시키셨다. 출생의 환경, 부모에게 받은 교육, 어려서 익힌 말씀은 우연히 흩어진 조건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장차 맡기실 사역을 위하여 미리 갖추어 주신 재료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16: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신앙의 유산이 자동으로 사역자를 만들지는 않는다. 외할머니와 어머니에게 있던 믿음이 디모데 자신의 거짓 없는 믿음이 되어야 했다. 부모의 믿음만 자랑하거나 어려서 성경을 배웠다는 경력만 내세워서는 안 된다. 물려받은 믿음을 자기 순종으로 지키고, 배운 말씀에 계속 거하며, 영적 지도자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디모데는 가정의 유산을 개인의 믿음과 사역자의 자질로 발전시켰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5. 디모데는 바울의 훈련과 명령에 어떻게 충성하고 순종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에게서 들은 것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명했다. 그들이 다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딤후 2:2). 여기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amp;#39;충성&amp;#39;이다. 충성(신실함)은 주인을 대하는 태도다. 능력이 있어도 맡긴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움직인다면 복음을 온전히 전수할 수 없다. 바울은 자기가 맡길 사람을 고를 때 먼저 충성된 사람인가를 보았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후 2: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디모데는 바울이 여러 지역으로 보내면 가고, 교회의 형편을 살펴보라고 하면 살펴보고, 다시 돌아오라고 하면 돌아왔다. 그는 명령을 받을 때마다 자기 지위와 취향부터 계산하지 않았다. 바울과 함께 다니던 12년에서 13년 동안 그는 선교단의 일원으로 묵묵히 섬겼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교회의 목회자로 부르셨다 하더라도 먼저 선교 동역자의 자리에 두신 뜻을 받아들였다. 그 순종이 쌓여 바울이 맡겨도 걱정하지 않을 사람, 믿음 안에서 참된 자식이라고 부를 사람으로 인정받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여기서 순종과 공경은 구별해야 한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자녀들에게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하고, 이어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다(엡 6:1-2). 부모의 명령이 주님의 뜻을 거스르면 순종할 수 없지만 공경하는 태도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 영적 지도자와의 관계도 같다. 지도자를 절대화하여 잘못까지 따르는 것은 옳지 않지만, 그의 부족함을 보았다는 이유로 존중과 배움의 자세를 버리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엡 6:1-2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은 모두 불완전하다. 중요한 것은 완전한 사람을 찾겠다는 핑계로 아무에게도 배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어 온전을 향해 가는 태도가 중요하다. 잘못 배운 원리는 사출기의 결함처럼 다음 사람에게 같은 불량을 계속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먼저 자기 안의 잘못된 원리와 태도를 고쳐야 하고, 제자는 바른 교훈을 정확히 받아야 한다. 디모데는 바울에게서 배운 복음을 변형하지 않고 충성된 사람에게 다시 맡길 준비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목회자가 된 뒤 오랜 세월을 지나며 자기 좌표를 아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씀을 조금 더 잘 전하는 기술만 연구해서는 자신이 훈련의 어느 단계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조급하면 준비의 자리를 떠나 버리고, 직분을 받으면 다 된 줄 알고 더 배우지 않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이 어떻게 섬기고 견디며 명령에 반응하는지를 지켜보신다. 그가 얼마만큼 크게, 얼마만큼 오래 쓰임받을지는 이러한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디모데의 충성은 결국 순교의 자리까지 이어졌다. 그는 바울의 가르침만 들은 것이 아니라 바울이 고난받는 모습까지 보았고, 자기도 그 길을 걸었다. 좋은 병사는 고난이 오더라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맡긴 일이 자기 기대와 다르고 지도자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도 주님이 허락하신 훈련인지를 먼저 살펴본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충성과 순종을 통과한 사람에게 더 큰 영혼과 사역을 맡기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6. 정결&amp;middot;안수&amp;middot;은사&amp;middot;건강&amp;middot;가르침은 왜 필요한 목회 자질인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디모데는 목회에 필요한 여러 종류의 자질을 균형 있게 잘 준비했다. &lt;strong&gt;첫째는 정결&lt;/strong&gt;이다. 바울은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고 했다(딤전 5:22). 목회자는 다른 사람을 세우기 전에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회개하지 않은 죄와 정리되지 않은 욕심을 품고 영적 권위를 사용하면 자신과 교회가 함께 어려움을 겪는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전 5:22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는 안수와 영적 흐름을 아는 것&lt;/strong&gt;이다. 바울은 자신의 안수로 디모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라고 권했다(딤후 1:6). 또한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 예언을 통하여 받은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했다. 안수는 사람의 명예를 높이는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확인하고 불붙게 하는 통로다. 그러므로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해서도 안 되고, 받은 은사를 묻어 두어서도 안 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후 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는 영성과 은사&lt;/strong&gt;다. 농부에게 연장이 없으면 넓은 밭을 제대로 일굴 수 없듯이 사역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가 없으면 맡은 일을 충분히 감당하기 어렵다. 말씀을 논리적으로 잘 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바울은 아덴에서 사람의 지혜로 말하려 했던 경험을 지나 고린도에서는 두렵고 떨림으로 낮아졌고,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을 의지했다. 목회자는 말씀과 함께 영적 세계를 분별하고 성령께서 주신 은사를 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은사는 거룩함을 대신하지 않는다. 정결하지 않은 사람이 은사만 추구하면 그 은사가 자기 자랑과 사람을 지배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은사를 두려워하여 무조건 덮어 두는 것도 바울의 가르침과 다르다. 디모데는 회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안수와 예언을 통하여 확인된 은사를 소중히 여기며, 교회를 세우는 데 사용해야 했다. 정결과 은사는 서로 경쟁하는 항목이 아니라 함께 갖추어야 할 목회 자질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는 건강&lt;/strong&gt;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물만 마시지 말고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했다(딤전 5:23). 몸은 사역을 수행하는 도구다. 열심이라는 이름으로 몸을 계속 혹사하여 사역을 중단하게 되는 것은 지혜롭지 않다. 힘들 때에는 쉬고, 질병이 있으면 돌보며, 오래 감당할 수 있도록 육체를 관리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전 5: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사역 중 몸을 지나치게 혹사하여 죽을 것 같은 위기를 몇 번 겪었다. 아내가 제동을 걸어 주지 않았다면 더 큰 어려움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그 일을 지나며 건강을 돌보는 것도 사역자의 책임임을 배웠다. 기도하고 영적 방법으로 질병에 대처하는 것과 몸을 쉬게 하고 필요한 관리를 하는 일은 서로 배척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식같이 사랑했던 바울은 디모데의 위장병까지 기억하고 돌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는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일&lt;/strong&gt;이다. 바울은 자신이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고 했다(딤전 4:13). 목회자는 진리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성도들이 실제로 순종하도록 권면하며, 다음 교사를 길러 낼 수 있어야 한다. 가르치는 은사와 훈련이 부족하다면 먼저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자기 자질을 과장하여 감당할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보다 주어진 자리에서 충성하는 것이 낫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전 4: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말씀, 영성, 정결, 은사, 건강, 가르침은 어느 하나로 다른 것을 대신할 수 없다. 말씀만 있고 영적 능력이 없거나, 은사만 있고 성품과 정결이 없거나, 열정만 있고 건강 관리가 없으면 오래 온전히 사역하기 어렵다. 디모데는 바울에게서 이 자질들을 하나씩 배웠고, 바울은 잊지 않도록 편지로 남겨 주었다. 그 편지가 오늘 우리에게도 목회자를 준비하는 실제 기준이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7. 의&amp;middot;경건&amp;middot;믿음&amp;middot;사랑&amp;middot;인내&amp;middot;온유는 어떻게 길러졌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역자의 능력보다 먼저 다루어져야 할 것이 성품이다. 바울은 디모데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며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라고 했다(딤전 6:11). 돈을 사랑하고 세상의 것을 좇는 태도를 피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했다. 직분을 받았다고 성품 훈련이 끝난 것이 아니다. 영생을 취하기까지 계속 자기를 다듬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전 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성품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lt;/strong&gt;. 의는 옳은 것을 선택하는 훈련 속에서, 경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일상 속에서 자란다. 믿음은 어려움에도 말씀을 붙드는 동안 단단해지고, 사랑은 맡겨진 영혼을 품을 때 깊어진다. 인내는 고난을 견디며 생기고, 온유는 힘이 있어도 자신을 낮출 때 드러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의 곁에서 보낸 오랜 세월은 디모데의 성품을 다듬는 학교였다. 그는 복음이 거절당하고 사역자가 핍박받으며 교회에 문제가 생기는 장면을 보았다. 그때마다 혈기와 조급함으로 대응하지 않고 말씀과 기도로 견디는 법을 배웠다. 목회자는 고난이 없어서 온유한 사람이 아니라 고난 중에도 사랑과 절제를 잃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품은 말로 가르치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영적 아버지가 실제로 섬기고 견디며 회개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제자가 같은 상황을 통과할 때 형성된다. 바울은 자기 혈기와 실패까지 돌아보았고, 디모데는 스승의 성공만이 아니라 약함을 다루는 방식도 배웠다. 이처럼 삶을 나누는 훈련이 있었기에 디모데는 교회를 맡아도 되는 사람으로 자라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은 직분을 얻은 뒤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lt;/strong&gt;.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면 보충하고, 책망을 받으면 고치며, 고난이 오면 인내를 배운다. 자기보다 먼저 세움받은 사람을 공경하면서도 모든 판단을 주 안에서 하며, 성령과 말씀의 인도를 따른다. 이러한 태도가 디모데를 온유하고 충성되며 겸손한 목회자로 만들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8. 사역자에게는 좋은 영적 스승을 만나는 것이 왜 그리 큰 복인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좋은 스승을 만나는 &lt;strong&gt;첫째 유익은 가야 할 바른 길을 지도받는 것&lt;/strong&gt;이다. 디모데는 가정에서 성경의 기초를 배웠지만 목회자의 실제 훈련은 바울에게 받았다. 바울은 교회를 세우는 법과 복음을 전하는 법, 영적 은사를 다루는 법과 성도를 돌보는 법을 가르쳤다. 올바른 지도자를 만나면 지식만 얻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명에 필요한 자질을 어떤 순서로 준비해야 하는지도 배울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유익은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lt;/strong&gt;이다. 먼저 길을 걸어간 사람은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그른지를 실제 경험으로 알고 있다. 제자는 그 지도를 받음으로 중심을 잡고 정도를 걸으며 시간과 물질을 아낄 수 있다. 필자는 영성을 터득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과 물질을 들이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제 그 내용을 뒤에 오는 이들에게 전하면 그들은 같은 길을 다시 헤매지 않고 더 빨리 준비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유익은 내가 잘못 행할 때 책망과 교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lt;/strong&gt;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는 데 있다(딤후 3:16-17). 성령과 성경이 우리를 인도하시며, 하나님은 목사와 교사를 통하여서도 사람을 가르치고 바로잡으신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책망받지 않는 사람은 자기 결함을 발견하기 어렵다. 자기 눈에는 작은 틀어짐이 다음 세대에는 더 큰 왜곡으로 나타날 수 있다. 디모데에게는 편지로 잘못을 지적하고 사역의 기준을 다시 세워 주는 바울이 있었다. 바울의 책망은 디모데를 눌러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고 선한 일을 감당할 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한 사랑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좋은 스승을 만났다면 겸손히 배우고 그 가르침을 삶으로 검증해야 한다. 섬기는 교회의 지도자에게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정죄하기보다 그가 온전한 지도자가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현재 받는 양식만으로 구원과 회개와 천국을 충분히 배우지 못한다면 검증된 말씀 강의와 자료를 찾아 보충해야 한다. 부모가 모든 과목을 직접 가르칠 수 없을 때 좋은 교사를 찾듯이 영적인 배움도 적극적으로 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많은 자료를 듣는 것만으로는 사역자가 되지 않는다. 바른 가르침을 선택하고, 배운 대로 순종하며, 잘못을 고치고, 자기 교회와 맡은 자리에서 충성해야 한다. 디모데가 좋은 바울을 만난 것만으로 후계자가 된 것이 아니라 바울의 지도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후계자가 되었다. 좋은 스승과 배우는 제자가 함께할 때 다음 세대를 살리는 복음의 전수가 이루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어느날 바울이 두 번째로 로마의 차가운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그는 죽음이 자신에게 가까워졌음을 알았다. 그러자 그는 감옥에게 디모데후서를 보내 디모데가 보고 싶다고 했고, 올 때 가죽으로 만든 겉옷을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이 마지막 부탁은 두 사람의 관계가 단지 제도적인 계승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바울은 디모데를 사역의 도구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식으로 여겼고, 디모데는 고난받는 영적 아버지의 곁으로 가야 할 사람으로 부름받았다. &lt;strong&gt;진정한 전수는 교리와 기술뿐 아니라 사랑과 신뢰를 함께 이어 주는 일&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목회 현장의 세부까지 가르쳤다. 나이 많은 이와 젊은 이, 과부와 장로를 어떻게 대할지, 돈과 거짓 가르침을 어떻게 경계할지, 자기 경건을 어떻게 지킬지를 알려 주었다. 디모데후서에서는 죽음을 앞두고 복음을 지키며 고난을 받고 다음 충성된 사람에게 맡기라고 당부했다. 좋은 스승은 제자가 자기 곁에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 제자가 자기 사명을 발견하고 독립하여 교회를 섬기며 다음 사람을 세우도록 준비시킨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9. 나오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디모데가 바울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보았다. &lt;strong&gt;후계자는 이름과 자리를 이어받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과 훈련과 고난을 이어받아 다음 충성된 사람에게 전수하는 사람이다&lt;/strong&gt;. 디모데는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에게서 거짓 없는 믿음을 물려받았고,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웠으며, 바울에게서 복음 사역과 목회의 실제를 훈련받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에게 주어진 첫 사명은 바울 선교의 동역자로 섬기는 일이었고, 그 시간은 에베소교회를 맡기 위한 준비가 되었다. 그는 자기 최종 사명과 달라 보이는 자리에서도 약 12년에서 13년 동안 충성하고 순종했다. 때가 되자 바울은 그를 에베소의 목회자로 세웠다. 하나님께서는 준비의 시간을 통과한 사람에게 그에게 맞는 본래의 사명을 맡기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디모데는 정결을 지키고, 안수를 통하여 확인된 은사를 불일 듯하게 하며, 영성과 건강을 관리하고,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해야 했다. 또한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성품을 다듬어야 했다. 좋은 스승인 바울의 책망과 교정을 받았기에 시행착오를 줄이고 믿음 안에서 참된 자식, 맡겨도 걱정 없는 사역자로 자랄 수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우리도 직분을 받았다는 사실에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날마다 준비되어야 한다. 거짓 없는 믿음과 말씀의 기초를 세우고, 맡은 자리에서 충성하며, 회개로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필요한 영성과 은사와 가르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부족한 점을 지적받을 때 겸손히 교정받고, 고난 속에서 인내하며, 지도자를 공경하고 섬기는 태도를 배워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좋&lt;strong&gt;은 지도자를 만났다면 그 만남을 복으로 알고 바른 가르침을 삶에 적용해야 한다&lt;/strong&gt;. 지도자가 부족하다면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필요한 말씀을 더 배우며, 자신도 다음 사람을 온전하게 세울 충성된 일꾼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준비와 태도를 보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일꾼이 되어 다음 세대까지 복음을 충성스럽게 전수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06일(목)&lt;br /&gt; 정보배 목사&lt;br /&gt; &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설교핵심]&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디모데가 사도 바울의 영적 후계자로 선택받을 수 있었던 이유&lt;/strong&gt;를 분석하며, 신앙의 계승과 사역자의 자질에 대해 깊이 있게 고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디모데가&amp;nbsp;&lt;strong&gt;3대에 걸친 신앙적 배경&lt;/strong&gt;과&amp;nbsp;&lt;strong&gt;어린 시절부터 다져진 성경 지식&lt;/strong&gt;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바울의 지도 아래 약 13년 동안&amp;nbsp;&lt;strong&gt;철저한 사역 훈련과 순종의 과정&lt;/strong&gt;을 견뎌냈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이 설교는 지도자와의 관계에서 단순히 명령에 따르는 것을 넘어&amp;nbsp;&lt;strong&gt;부모와 자식 같은 인격적 신뢰&lt;/strong&gt;를 형성하고,&amp;nbsp;&lt;strong&gt;성품의 연단&lt;/strong&gt;과&amp;nbsp;&lt;strong&gt;영적 은사의 활용&lt;/strong&gt;을 통해 준비된 자만이 하나님의 큰 일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현대의 신앙인들에게도&amp;nbsp;&lt;strong&gt;훌륭한 스승을 통한 교정&lt;/strong&gt;과&amp;nbsp;&lt;strong&gt;자기 정결&lt;/strong&gt;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그릇이 되기 위해&amp;nbsp;&lt;strong&gt;지속적인 배움과 겸손한 태도&lt;/strong&gt;를 유지할 것을 촉구하는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ChatGPT Image 2026년 8월 6일 오전 10_47_4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db8c75c44bbd8a9f3a87b8a51a2bebc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8270b54f94cf3f39e1bc77d8c7aa124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d7a6d7ce8318813ed598257e6d79453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eeb2d8c374635a8204ba2e4d91b5388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a9cebbe41edc305436d101c71a64505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7e1e8d0e03c138456c458895f2756bf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d0d2cecc7718df4c9cd6f352237b8b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65a59e8e073e51520d0eadbc498e117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89b23ac8f5c19ab56928514bd2b32d8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d22807abc0cbc71ca15edca7eca9067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958b01243035ad29e20c119435683e2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b86ab0585ddf07b752743a702955899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a010fabba4e693eb5d43aa4760a500f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e55bb6a1621755be6e24fd10055f218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Leadership_Blueprin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127d9573eaafe6db922dd21523da52a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영적_후계자_디모데의_준비_과정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caa3ec33361f8beaefae294174c617a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The_Timothy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0d9b0dc116a76ca3099da0b529e4919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The_Timothy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e97f2f972936fe27e5385ec926239b6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The_Timothy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06e17e33400e0a743ab6695df8080f1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The_Timothy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90269dd6cf45b61461db687bf35009d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The_Timothy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a410a6e9d5236b3af7701b1b8b5bf4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The_Timothy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a3858623850963ef4599cf270a7e194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The_Timothy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83eb75a369157fc8ae70ffe30848880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The_Timothy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ebf380834a9dc94fc318bfd2850bcb9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The_Timothy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098bf39697470eb6818e1bfecaf25d1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The_Timothy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488b7de7cfa4a5f59296559385ab7d2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Succession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8c8b3647de570bf40427c4c9fa13232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Succession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28827a0543a69b9b8afa26395fc5910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Succession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d24c330f7ef4c68e2729627b411bb5c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Succession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c2e8e0320f4d71194968ee06f747909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Succession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af43b6f1cff5856147505e01666572d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Succession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3296abfb956199816acac2deb4d0b32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Succession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2404ae6934c9a3b6b4c5967d480b4b9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Succession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fb47505f590fecd8cea2e1ae3af0baf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Succession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0077fb50df8bf9a95f8b5fbfa44a46b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4)] Spiritual_Succession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71/263/3cfd147ce86bc5129a4d1ef24a66695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사역자론(12)]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주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출17:8~16)_2026-08-05(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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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04T23:46:14+09:00</published>
		<updated>2026-08-07T12:59:09+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역자론(12)]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주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출17:8~1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3wnvFRnh9Zo 사역자론(12)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주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주의 날마다 성전으로 나아와 예배드리는 것은 장차 천국 백성으로 살아갈 삶을 이 땅에서부터 시작하는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사역자론(12)]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주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출17:8~16)&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3wnvFRnh9Zo&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3wnvFRnh9Zo?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사역자론(12)&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주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3498db;&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의 날마다 성전으로 나아와 예배드리는 것은 장차 천국 백성으로 살아갈 삶을 이 땅에서부터 시작하는 일이다. 멀리 있어서 온라인으로 참여하더라도 정숙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 천국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시간도 예배드리는 시간이다. 그곳에는 우리를 죄짓게 하는 악한 자가 없고 더러움도 없으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깨끗한 자들이 나아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과 예배를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고, 주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는 복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사람은 구원만 준비하는 데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먼저 자신이 구원받은 자인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천국에서 누릴 지위와 신분과 상급을 준비해야 한다. 필자가 천국에 대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lt;strong&gt;천국에서는 사람마다 지위와 신분이 다르고 받을 상급도 다르며, 그것은 영원히 더해지거나 줄어들지 않는다&lt;/strong&gt;. 그러므로 이 땅에서 누구를 본받고 어떤 일을 행하느냐는 영원한 삶과 직접 연결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의 인물들을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들어 쓰셨고, 그가 어떤 믿음과 순종으로 사명을 감당했으며, 그 결과 어떤 복을 받았는지를 살펴보면 우리도 가야 할 길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구약의 위대한 인물을 찾는다면 거기에는 &amp;#39;모세&amp;#39;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천국에서 모세는 행위책을 들고 다닌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어긴 행위들을 살피는 큰 권한을 그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그만큼 모세는 하나님께 존귀하게 쓰임받은 사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모세의 후계자는 누구였는가? 그는 그의 아들 게르솜도 아니었고 같은 레위 지파 사람도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직접 지명하셨다. 그리하여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출애굽 2세대를 이끌고 요단강을 건넜으며, 가나안 일곱 족속과 싸워 땅을 정복하고 아홉 지파 반에게 기업을 분배했다. 모세가 애굽에서 백성을 이끌어 내는 사명을 감당했다면, 여호수아는 그 백성을 약속의 땅에 정착시키는 사명을 감당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lt;strong&gt;여호수아는 어떻게 모세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lt;/strong&gt;이 되었는가? 그것은 그에게 내려진 첫번째 명령에 그가 어떻게 반응했는가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실 여호수아를 전쟁터에 내보낼 무렵 여호수아는 전쟁 경험도 전무하였고 무기도 없었으며 승산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서도 그는 모세의 말을 듣고 말렉과 싸우라는 명령에 순종했다. 그는 불리한 환경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였고, 비록 처음에는 작은 전쟁에서 시작하였지만 점차로 큰 전쟁경험을 익혀갔다. 그는 반복하여 치른 전쟁 때문에 위대한 후계자의 자격과 천국의 상급을 얻게 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주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었던 세 가지 이유와 그의 순종이 천국의 지위와 상급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2. 여호수아는 어떤 가문의 사람이며 어떻게 모세의 후계자로 지명되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수아는 갑자기 나타난 이름 없는 장수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에게서 이어진 믿음의 가문에 속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역대상 7장의 족보를 보면, 그는 에브라임 지파의 후손으로서, 눈의 아들이었다. 이 족보를 따라서 살펴보면, 여호수아는 에브라임의 9대손이다. 그럼 왜 성경은 그의 계보를 기록하고 있는가? 그것은 그가 단지 싸움에 능한 사람이어서만이 아니라 뼈대 있는 신앙의 가문에서 준비된 사람이라는 사실을&amp;nbsp;보여 주기 위함이다(대상 7:2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대상 7:27 그의 아들은 눈이요 그의 아들은 여호수아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수아의 본래 이름은 &amp;#39;호세아&amp;#39;였다. 사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할 열두 사람을 뽑을 때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눈의 아들 호세아가 선택되었다. 그때 모세는 &amp;#39;호세아&amp;#39;를 &amp;#39;여호수아&amp;#39;라고 불렀다. 호세아가 &amp;lsquo;구원&amp;rsquo;이라는 뜻이라면 여호수아는 &amp;lsquo;여호와는 구원이시다&amp;rsquo;라는 뜻을 담는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 사람과 함께하시어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약속의 땅에 정착시키실 사명을 이름에 새겨 준 것이다(민 13:1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13:16 이는 모세가 땅을 정탐하러 보낸 자들의 이름이라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불렀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모세가 죽을 때가 가까워지자 후계자를 결정하여야 할 때가 왔다.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신 분은 하나님&lt;/strong&gt;이셨다. 모세의 후계자는 모세가 자기 아들이나 레위 지파의 유력자를 세워서 된 것이 아니었다.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가리켜, 그는 자기 안에 영이 머무는 자라고 말씀하셨으며,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안수하라고 명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세더러 자신의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온 회중이 복종하게 하라고 하셨다. 이처럼 &lt;strong&gt;후계자의 자리는 인간적인 혈통이나 친분으로 물려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준비된 사람을 찾아 맡기시는 자리&lt;/strong&gt;인 것을 알 수 있다(민 27:18-2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27:18-2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결코 큰 사명을 맡기지 않으신다&lt;/strong&gt;. 사람에게는 크든 작든 이 땅에 보내어진 사명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작은 일을 맡겨 그 사람이 순종하는지를 시험하고 훈련하신다. 모세의 사명이 애굽 제국에서 이스라엘을 끌어내 광야 끝까지 인도하는 것이었다면, 여호수아의 사명은 전쟁을 통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백성에게 기업으로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에게 필요한 첫 훈련도 역시 전쟁이어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영적 지도자를 통하여 전에 해 보지 않은 일을 맡기실 때 그것을 귀찮은 부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기 위하여 준비하고 시험하시는 과정일 수 있다. &amp;ldquo;나는 해 본 적이 없다&amp;rdquo;, &amp;ldquo;다른 사람을 시키라&amp;rdquo;고 거절하면 단지 한 가지 일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 천국에서 받을 지위와 상급을 발로 차 버릴 수 있다. 큰 사명은 작은 순종에서 시작된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로 지명된 것은 한순간의 선택이 아니라 오랜 기간 쌓인 믿음과 순종의 열매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3. 아말렉과의 첫 전쟁은 여호수아에게 어떤 시험이었는가?(출 17:8-16)&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뒤 르비딤에 장막을 쳤을 때 아말렉이 뒤에서 공격했다. 아말렉은 낙타를 이용하여 기습하고 약탈한 뒤 빠르게 달아나는 데 능한 족속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출애굽한 뒤 한 번도 전쟁을 치른 적이 없었다. 정규 군대도 없고 전쟁을 위하여 훈련받은 병사도 없었으며, 무기와 말과 낙타 같은 이동 수단도 변변치 않았다. 아말렉과의 싸움은 이스라엘이 민족으로서 맞닥뜨린 최초의 전쟁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때 모세는 성경에 처음 이름이 등장하는 여호수아를 불러 사람들을 택하고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고 명령했다. 하나님께서 이번 전쟁을 여호수아에게 맡기라고 모세에게 직접 말씀하셨다는 기록은 없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지켜보고 그에게 명령한 것이다. 여호수아는 전쟁 경험이 없었고 함께 싸울 조직된 군대도 없었다. 명령을 받는 순간 그는 모세의 말을 들을 것인지 거절할 것인지 자기 자유의지로 결정해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믿음이 있어도 경험이 없으면 두려울 수 있다. 무기가 보잘것없고 적이 강하며 승산이 계산되지 않으면 지도자의 명령을 무모하다고 판단하기 쉽다. 필자가 여호수아의 나이를 계산하여 볼 때, 이때 그가 약 55세 정도였다고 본다. 젊은 용사도 아닌 중년의 사람이 낙타 기습 부대와 싸우러 나간 것이다. 그는 &amp;ldquo;보낼 만한 다른 사람을 보내 달라&amp;rdquo;고 핑계하지 않았다. 모세의 말을 믿고 함께할 사람들을 모았으며, 그 가운데 갈렙도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는 동안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갔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겼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 모세의 팔이 피곤해지자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그 손을 붙들었고, 그 손은 해가 질 때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마침내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무찔렀다. 전쟁터에서는 여호수아가 실제로 싸웠고, 산 위에서는 모세가 기도했으며, 아론과 훌은 그 기도를 붙들었다(출 17:8-1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17:8-13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이 첫 전쟁은 여호수아의 평생 사명과 정확히 연결된 시험이었다. 그가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견고한 성읍과 기골이 장대한 족속들을 상대로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가나안 전체를 맡기지 않으시고 아말렉과의 한 전쟁부터 맡기셨다.&lt;/strong&gt; 만약 여호수아가 이때 거절했다면 그의 사명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수도 있었다. 가룟 유다에게 높은 지위가 예정되어 있었어도 불순종하여 지옥에 간 것처럼, 예정된 사명이 자동으로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맡기시는 작은 일은 장차 감당할 큰 사명의 시험 과정이다. 뜬금없는 명령처럼 보여도 그것이 자신의 부르심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다음 단계로 이끄시지만, 불순종하면 더 큰 일을 맡기실 수 없다. 여호수아의 축복은 자신의 생각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명령 앞에서 모세의 말을 믿고 전쟁터로 나간 데서 시작되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4. 여호수아는 왜 모세의 명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수아는 모세를 처음 만난 낯선 사람처럼 대하지 않았다. 그는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과 홍해가 갈라진 사건을 보았고, 물이 없는 광야에서 반석으로부터 생수가 나온 일과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린 일을 지켜보았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시면 모세가 이런 일을 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에게 모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였고, 그의 명령은 단순한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여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이 하나님께 쓰임받으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누구를 지도자로 세우셨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인정하지 않는 사람의 말에는 순종하기 어렵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임을 알고 그의 명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면, 자신의 경험과 능력이 부족해도 믿음으로 움직일 수 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태어난 레위 지파 사람도 아니었고 그의 사위도 아니었지만 모세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인정했기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전쟁터로 나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전쟁이 끝난 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고 하셨다. 개역개정의 &amp;ldquo;귀에 외워 들리라&amp;rdquo;는 표현은 앞으로 많은 전쟁을 치를 여호수아에게 승리의 원리를 반복하여 잊지 않도록 각인시키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원리는 자기 편의 병력과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승리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자 모세는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 곧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고 불렀다(출 17:14-1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17:14-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 전투를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를 상상해 보았다. 낫이나 쇠스랑 같은 농기구를 든 이스라엘 앞에 낙타 부대가 달려올 때 모래바람이 불어 적의 눈을 가려버리거나, 다시 싸울 때 갑자기 폭우가 내려 적의 진영을 휩쓰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묘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든 약한 이스라엘을 도우셨음을 보여 주기 위한 가상적인 예시다. 분명한 성경의 결론은 여호수아가 싸웠고 모세가 기도했으며 여호와께서 승리를 주셨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는 훗날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더욱 분명히 선언되었다. 다윗에게는 칼과 창과 단창이 없었지만 그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갔다. 물맷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자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빼서 그의 목을 베었다. 승리는 무기의 크기에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께서 누구의 손에 적을 넘기시는가에 달려 있다. 그래서 다윗은 전쟁이 여호와께 속했다고 선포했다(삼상 17:4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삼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여호수아는 아말렉 전쟁을 통하여 하나님의 종의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이것이 훗날 여리고성을 앞에 두고도 두려워하지 않은 밑바탕이 되었다. 칼싸움으로 무너뜨릴 수 없는 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마지막 날 일곱 바퀴를 돈 뒤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고 백성이 외치라는 명령에도 순종할 수 있었다. 이미 그는 승리의 원리가 인간의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배웠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5. 엘닷과 메닷 사건의 책망은 여호수아를 어떻게 바로잡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회막을 떠나지 않았고 모세 곁에서 섬겼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그는 자신을 모세의 오른팔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약 일 년 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속에 숨어 있던 시기와 잘못된 충성심을 드러내셨다. 큰 사명을 맡을 사람에게 능력과 순종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품는 성품도 필요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가 혼자 백성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장로 칠십 명을 세워 짐을 나누게 하셨다. 그들이 회막에 모였을 때 여호와의 영이 임하여 예언했지만, 엘닷과 메닷 두 사람은 진중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회막에 나오지 않은 그들에게도 같은 영이 임하여 진중에서 예언하기 시작했다. 한 소년이 이 소식을 모세에게 알리자 여호수아는 &amp;ldquo;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amp;rdquo;라고 요청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수아는 모세의 권위 밖에서 예언하는 사람들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겉으로 보면 스승의 권위를 지키려는 충성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세는 그 안에서 시기심을 보았다. 자신은 목숨을 걸고 싸웠고 늘 회막 곁을 지켰는데, 회막에 나오지도 않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아 예언하니 마음 한쪽에서 &amp;ldquo;왜 나는 아니고 저들인가&amp;rdquo;라는 질투가 일어난 것이다. 주의 종을 위한다는 명분 속에 자기 위치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을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자신을 두고 시기하느냐고 물으며, 여호와께서 모든 백성에게 그의 영을 주셔서 모두 선지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모세는 자신의 권위가 줄어들까 염려하지 않았다. 더 많은 사람이 성령을 받고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바랐다. &lt;strong&gt;참된 지도자는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은사를 막는 사람이 아니라 온 백성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지기를 기뻐하는 사람&lt;/strong&gt;이다(민 11:27-2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11:27-29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전하여 이르되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나이다 하매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이르되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책망은 여호수아의 삶에서 드러난 거의 유일한 잘못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대해 변명하거나 혹은 모세에게 대들지 않았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음을 막으려다가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는 책망을 들었던 것처럼, 여호수아도 스승을 위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더 큰 뜻을 가릴 수 있음을 배웠기 때문이다. 자기 사명은 다른 사람의 은사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전쟁을 충성스럽게 수행하는 데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수아는 이 사건 이후 자기 길을 분명히 알았다. 남이 쓰임받는 것을 시기하지 않고, 모세가 명령하면 묵묵히 나가서 맡은 일을 행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잘못이 전혀 없는 사람만 쓰시는 것이 아니다. 책망을 받을 때 변명하지 않고 자기 잘못을 발견하여 고치는 사람을 쓰신다. 시기와 질투는 사역자를 무너뜨릴 수 있지만, 책망을 받아들이는 겸손은 그를 더 큰 사명에 합당한 그릇으로 만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6. 여호수아는 왜 절망적인 환경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말렉 전쟁으로부터 얼마 뒤 여호수아는 열두 정탐꾼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혀서, 가나안 땅을 사십 일 동안 정탐했다. 그 땅은 포도송이 하나 달린 가지를 두 사람이 메고 올 만큼 비옥했고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그러나 성읍들은 견고하고 매우 컸으며 그곳에는 네피림의 후손으로 묘사된 기골이 장대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열 명의 정탐꾼은 자신들이 메뚜기처럼 보인다며 그 땅을 정복할 수 없다고 부정적으로 보고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수아와 갈렙은 같은 환경을 보았지만 그들과는 다른 결론을 내렸다. 열 명의 정탐꾼들은 성벽의 높이와 적의 체격을 보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먼저 보았다.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 그들을 그 땅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이며, 그 땅 백성은 이미 보호자를 잃었으므로 이스라엘의 먹이라고 선포했다. 여호수아는 아말렉 전쟁에서 무기와 경험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승리한다는 사실을 이미 체험했기 때문이다(민 14:7-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14:7-9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처럼 하나님께 쓰임받을 사람은 절망적인 환경을 보면서도 절망에 붙잡히지 않는다. 불리한 조건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성벽은 실제로 높았고 적은 실제로 강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 환경보다 더 크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불리한 조건을 바꾸실 수 있다고 믿는다. 여호수아에게 진짜 현실은 눈앞의 거인이 아니라 약속하신 하나님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는 오늘의 회개와 영적 전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회개하려 할 때 악한 영은 두려움을 주고 몸을 누르며 사건과 사고를 일으키고 머리를 아프게 하여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회개하면 예수님의 피가 들어오고, 그 피가 들어오면 귀신이 밀려난다. 조상의 죄가 많은 사람은 회개의 분량도 더 채워야 하지만, 천 번 2천 번이라도 계속 회개하면 악한 영의 세력은 밀려난다. 지금 당장 나타나는 방해의 요소보다 회개하면 깨끗하게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믿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처음 회개할 때 몸에 무서움이 엄습해왔다.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두려움도 느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으로 태어나 이 두려움도 이기지 못한다면 누구에게 회개를 전할 수 있겠느냐고 결단했다. 당시에는 보혈을 바르는 법을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amp;ldquo;나에게 두려움을 주는 모든 영과 십자가 세운다&amp;rdquo;라고 약 이십 번을 선포하자, 평강이 임했다. 이때 필자는 이 경험을 통하여 두려움을 주는 영보다 십자가의 권세가 더 크다는 것을 배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고 이기셨다. 악한 영에게 능력이 남아 있어 사람을 괴롭힐 수는 있지만, 예수께서 그들의 계급장을 떼어 무장 해제하셨으므로 성도의 믿음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성도는 십자가를 세우고 보혈을 바르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해야 한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므로 귀신의 세력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골 2:15, 요일 4: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골 2: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일 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나에게 당장 물질이 없고 헌신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물질을 막는 영을 회개로 몰아내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할 길도 열리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보이는 형편이 최종 결론이라고 믿지 않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거인과 요새를 보고도 &amp;ldquo;그들은 우리의 먹이라&amp;rdquo;고 선포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이 진짜 현실임을 믿고 회개와 영적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7. 반복된 작은 순종은 여호수아를 어떻게 능숙한 장수로 만들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사람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배우지 못하며, 하나님께서도 처음부터 어떤 사람에게 모든 능력을 한꺼번에 주시지 않는다&lt;/strong&gt;. 여호수아는 아말렉과의 첫 전쟁 한 번으로 완성된 장수가 된 것이 아니었다. 작은 명령에 순종하고 실제 전쟁을 반복하여 치르면서 전쟁에 능숙한 사람으로 빚어졌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평생 사명에 맞추어 적의 강도와 전쟁의 규모를 조금씩 높이며 훈련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여호수아가 죽을 때 백십 세였다는 말씀과 광야 생활 사십 년, 가나안 정복과 기업 분배에 걸린 기간을 종합하여 그의 나이를 계산해 보았다. 이 계산에 따르면 여호수아는 아말렉과 싸울 때 약 77세였고, 약 95세에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정복을 시작했다. 분명한 사실은 여호수아가 110세까지 살았고 나이가 많았어도 그의 사명을 내려놓지 않았다는 것이다(수 24:2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수 24:29 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가나안 진입을 코앞에 두고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상대하게 하셨다. 특히 바산 왕 옥은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로서 그의 철 침상은 길이가 아홉 규빗, 너비가 네 규빗이었다. 보통 규빗으로 계산하면 길이 약 사 미터 오 센티미터, 너비 약 일 미터 팔십 센티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침상이다. 고로 이는 장차 가나안에서 상대할 거인 족속과의 전쟁을 미리 훈련하는 과정이었다(신 3:1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신 3:11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는 바산 왕 옥뿐이었으며 그의 침상은 철 침상이라 아직도 암몬 족속의 랍바에 있지 아니하냐 그것을 사람의 보통 규빗으로 재면 그 길이가 아홉 규빗이요 너비가 네 규빗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옥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그와 그의 백성과 땅을 이미 이스라엘의 손에 넘겼다고 선언하셨다. 앞서 시혼에게 행한 것처럼 옥에게도 행하라고 하셨다. 여호수아는 아말렉에게 승리한 뒤 시혼과 옥을 이기며, 적의 몸집과 무기의 크기가 승패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듭 체험했다. 전쟁을 치를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과 실제 전투를 수행하는 능력이 함께 자라났다(민 21:3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21:3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와 그의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나니 너는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인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 같이 그에게도 행할지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축사 사역도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시작한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성령의 불이 어떻게 들어가는지도 몰랐지만 계속 기도하고 귀신을 쫓아 보면서 불이 들어가는 정도와 귀신이 머무는 위치를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하나씩 순종하고 실제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다음 것을 알려 주셨다. 영적 전쟁도 이론만 공부해서 능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싸움부터 계속 수행하면서 분별력과 권세 사용이 자라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리고성은 수천 년 동안 누구도 정복하지 못한 천연 요새와 같았지만 여호수아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육 일 동안 하루 한 바퀴씩 돌고, 일곱째 날 일곱 바퀴를 돈 뒤 나팔을 불고 외치면 성벽이 무너질 것을 믿었다. 아말렉과 시혼과 옥을 거치며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는 사실이 그의 뼛속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반복된 작은 순종이 그를 가나안 정복을 감당할 능숙한 장수로 만들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8. 여호수아의 충성은 천국의 지위와 상급에 어떻게 이어졌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수아는 모세보다 작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천국에서 확인한 그의 지위는 모세와 같은 높이에 있다. 천국에서 여호수아는 구약의 인물 가운데 아브라함과 노아 다음으로 높은 반열에 속하고, 모세와 더불어 &lt;strong&gt;11층 집&lt;/strong&gt;을 가진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이스라엘의 &lt;strong&gt;이십사 장로들&lt;/strong&gt; 가운데 한 사람이며 이십사 마을 가운데 &lt;strong&gt;여호수아 마을의 대표&lt;/strong&gt;이기도 하다. 그 마을에는 함께 믿음으로 싸웠던 갈렙도 들어가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수아는 천국에서 &lt;strong&gt;네 개의 면류관&lt;/strong&gt;을 받았다. 원문에서 분명히 언급된 면류관에는 &lt;strong&gt;충성의 면류관, 승리의 면류관,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lt;/strong&gt;이 있다. 주님께서 그를 자랑으로 여기신 까닭은 자신의 능력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는 조건이 모두 갖추어진 뒤에 순종한 사람이 아니다. 능력과 경험이 없을 때 명령을 먼저 따랐고, 하나님께서는 그 순종 위에 필요한 능력과 경험을 더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국의 지위와 상급은 이 땅에서 맡은 사명과 무관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여호수아는 아말렉과의 작은 전쟁을 거절하지 않았고, 모세에게 책망받을 때 변명하지 않았으며, 열 명의 정탐꾼이 절망적인 보고를 할 때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다. 또한 오십 대부터 아흔이 넘도록 계속 싸우며 가나안 땅을 정복했다. 이 모든 순종과 충성이 천국에서 영원히 누릴 지위와 상급으로 연결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은 마지막 때이며 영적 전쟁을 수행해야 할 때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이루기 원하시는 일에 동참할 사람을 찾으신다.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은 회개를 전하고 천국복음을 전하며 악한 영에게 눌린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하여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여호수아의 길을 따라갈 수 있다.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지도자의 말씀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받아들이고, 절망적인 환경보다 말씀을 더 신뢰하며, 영적 전쟁을 실제로 수행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의할 것도 있다. 영적 지도자에게 순종한다는 말은 사람을 맹목적으로 따르라는 뜻이 아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증거를 오랫동안 지켜본 뒤 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엘닷과 메닷 사건에서는 모세의 책망을 통하여 자기 판단이 잘못될 수 있음을 배웠다. 참된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안에서 이루어지며, 자기 욕심과 시기를 내려놓고 맡은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lt;strong&gt;나님께서는 큰 능력을 이미 갖춘 사람만 찾으시는 것이 아니다. 여호수아처럼 주의 종의 명령 앞에서 &amp;ldquo;해 본 적이 없다&amp;rdquo;고 물러서지 않고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을 찾으신다. 그가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전쟁을 도우시고, 반복되는 훈련을 통하여 능숙한 사람으로 만드신다&lt;/strong&gt;.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작은 일이 장차 천국에서 받을 놀라운 지위와 상급의 출발점일 수 있다. 그러므로 부르심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지금 순종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9. 나오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주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와 그의 충성이 천국의 지위와 상급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살펴보았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의 믿음의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혈통만으로 후계자가 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맡기신 아말렉과의 첫 전쟁에 순종하고, 모세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으며, 작은 싸움부터 계속 감당했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준비된 후계자로 세우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수아의 &lt;strong&gt;첫째 특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알아보고 그의 명령에 순종한 것&lt;/strong&gt;이다. &lt;strong&gt;둘째 특징은 눈에 보이는 절망적이고 불리한 환경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신뢰한 것&lt;/strong&gt;이다. &lt;strong&gt;셋째 특징은 작은 일을 반복하여 실천함으로 가나안 정복을 감당할 능숙한 장수가 된 것&lt;/strong&gt;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시작하여 시혼과 옥과의 전쟁을 거치게 하시고, 마침내 여리고성과 가나안 족속들을 정복하게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엘닷과 메닷 사건의 책망도 그의 준비 과정이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위한다는 명분 속에 숨어 있던 시기와 자기 위치에 대한 욕심을 발견했다. 그는 변명하지 않고 책망을 받아들여 자기 사명에 집중했다. 하나님께 쓰임받으려면 능력만 키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성령을 받고 쓰임받는 것을 기뻐하며, 책망을 받을 때 자기 잘못을 고치는 성품을 갖추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우리 앞에도 아말렉과 거인과 견고한 성처럼 보이는 환경이 있다. 회개를 방해하는 악한 영과 물질의 막힘과 두려움이 있어도 그것을 최종 현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 십자가로 악한 영의 권세를 무장 해제하셨다는 말씀을 믿고, 십자가를 세우고 보혈을 바르며 영적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 경험과 능력이 부족해도 작은 명령부터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능력을 더하시고 사명에 합당한 사람으로 빚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국의 지위와 상급은 이 땅에서의 믿음과 순종으로 준비된다. 구원받았다는 사실에만 머물지 말고 하나님께서 지금 맡기신 사명을 발견해야 한다. 영적 지도자를 통하여 주시는 훈련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환경보다 말씀을 신뢰하며, 회개와 천국복음과 축사 사역에 충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여호수아처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천국의 높은 지위와 풍성한 상급을 얻도록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05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br /&gt; &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구약 성경의 여호수아가 어떻게 모세의 뒤를 잇는 위대한 영적 지도자로 성장하고&amp;nbsp;&lt;strong&gt;천국에서 높은 지위와 상급&lt;/strong&gt;을 얻게 되었는지를 세 가지 핵심 원리로 설명합니다. 첫째로 여호수아는 자신의 한계와 상관없이&amp;nbsp;&lt;strong&gt;하나님이 세운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며 절대적으로 순종&lt;/strong&gt;함으로써 전쟁의 승리가 여호와께 속해 있음을 체험하였습니다. 둘째로 그는 눈에 보이는 절망적인 환경이나 육체적 조건보다&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약속과 말씀&lt;/strong&gt;을 더 신뢰하는 긍정적인 신앙의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임무부터 시작해&amp;nbsp;&lt;strong&gt;영적 전쟁의 실전 경험&lt;/strong&gt;을 쌓으며 점진적으로 준비된 일꾼이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이 메시지는 현대의 성도들이 회개와 순종을 통해 각자의 사명을 완수함으로써&amp;nbsp;&lt;strong&gt;장차 천국에서 누릴 영광스러운 지위&lt;/strong&gt;를 예비해야 한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ChatGPT Image 2026년 8월 7일 오후 12_53_08-repaint.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9dd65d817c23f0b071fa9f4d79379f7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Forging_the_Great_Successor-p01-repaint-0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7540ad4734d405ff1f5fd17f74107ac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Forging_the_Great_Successor-p02-repaint-02.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8150daa5471480b80899d0874b48502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Forging_the_Great_Successor-p03-repaint-03.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4aec9f540ef5c5e74a3071308d4cc25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Forging_the_Great_Successor-p04-repaint-04.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c15836ef71f8aa88998e6af55201c44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Forging_the_Great_Successor-p05-repaint-05.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95b519ead5345977b6907bbfc6460f1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Forging_the_Great_Successor-p06-repaint-06.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a9b383ede0d80758a93c86463b97129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Forging_the_Great_Successor-p07-repaint-07.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5863be15e2332214fe0a2a148b6d27d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Forging_the_Great_Successor-p08-repaint-08.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1f1b5bbc4d77b4db11f5f89664a2db8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Forging_the_Great_Successor-p09-repaint-09.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3b505bdf9f41dde4d6d5250657b7f6c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Forging_the_Great_Successor-p10-repaint-10.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770b2e4226220d8f34bb8bb12c7c798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Forging_the_Great_Successor-p11-repaint-1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d7567dcf5243ac63f07cb0f94d46043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Forging_the_Great_Successor-p12-repaint-12.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7cc20ddbd03d5108782e7066e784e92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Forging_the_Great_Successor-p13-repaint-13.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f1fb2ece5376987e6292988ed9e8258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Forging_the_Great_Successor-p14-repaint-14.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a9968359ef6f431b6245b9fbeee9eae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여호수아의_순종과_천국_영광-repaint.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7f37ed28a48ce3c4afc7e0d38f39801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The_Golden_Ascent-p01-repaint-0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43dc0c1830f83493386492f7bb93504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The_Golden_Ascent-p02-repaint-02.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ae2d29b577ded7513971d76673c8fdf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The_Golden_Ascent-p03-repaint-03.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5fa1417b3d6ca571e863910ef63f0a0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The_Golden_Ascent-p04-repaint-04.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b9cc19c303978a037f1086a4a4fd229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The_Golden_Ascent-p05-repaint-05.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9181bd61705ad514dd818b3abc19238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The_Golden_Ascent-p06-repaint-06.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57/263/d02cd613f23c800da99c5413198bc7d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2)] The_Golden_Ascent-p07-repaint-07.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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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역자론(11)] 할례자의 사도로 부름받은 베드로, 그는 어떻게 준비되었고 쓰임받았는가?(마4:18~20)_2026-08-04(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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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04T00:42:42+09:00</published>
		<updated>2026-08-04T16:02:21+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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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역자론(11)] 할례자의 사도로 부름받은 베드로, 그는 어떻게 준비되었고 쓰임받았는가?(마4:18~2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VeW60D407ss 사역자론(11) 할례자의 사도로 부름받은 베드로, 그는 어떻게 준비되었고 쓰임받았는가?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하나님의 사역자에게는 우연한 이력은 없다. 태어난 가정과 성장 과정, 익힌 직업과 만난 사람, 장점과 약점까지도...</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사역자론(11)] 할례자의 사도로 부름받은 베드로, 그는 어떻게 준비되었고 쓰임받았는가?(마4:18~20)&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VeW60D407ss&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VeW60D407ss?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사역자론(11)&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할례자의 사도로 부름받은 베드로, 그는 어떻게 준비되었고 쓰임받았는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사역자에게는 우연한 이력은 없다. 태어난 가정과 성장 과정, 익힌 직업과 만난 사람, 장점과 약점까지도 훗날 맡길 사명을 위하여 쓰일 수 있다. 지나온 삶을 따로 떼어 보면 서로 관계없는 조각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다시 보면 한 방향을 가리키는 준비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신 뒤에야 급히 필요한 것을 붙이시는 분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그릇의 모양과 분량을 아시고 섭리 가운데 빚어 가시는 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종들의 삶을 종합해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일에 오래 쓰임받으려면 세 가지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첫째는 맡은 일을 감당할 자질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낼 성품이며, 셋째는 말씀하실 때 자신의 뜻을 내려놓는 순종이다. 모세와 다윗과 바울에게도 이 세 가지가 필요했다. 자질이 커도 성품이 무너지면 오래 쓰임받기 어렵고, 은사가 많아도 불순종하면 맡은 일을 끝까지 이룰 수 없다. 반대로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부르심에 응답하며 회개하고 순종하면 주님께서 필요한 은사와 동역자를 더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베드로의 본래 이름은 시몬이다. 그는 요나의 아들이었기에 &amp;lsquo;바요나 시몬&amp;rsquo;이라고 불렸고, 요한복음에서는 &amp;lsquo;요한의 아들 시몬&amp;rsquo;으로 나온다. &amp;#39;요나&amp;#39;는 히브리어서 &amp;#39;비둘기&amp;#39;라는 뜻을 지녔다. 베드로는 원래 갈릴리의 어부였으며, 아내와 장모를 돌보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런 시몬을 불러 열두 제자의 앞자리에 세우시고, &amp;lsquo;베드로&amp;rsquo;라는 이름을 주셨으며, 부활하신 뒤에는 양 떼를 먹이고 치는 책임을 다시 맡기셨다. 세 번 주님을 부인한 실패도 있었지만, 그는 통곡하며 회개한 뒤 초대교회를 이끄는 담대한 증인이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에게 맡겨진 일은 사실 하나는 아니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모델이 되어야 했다. 그는 할례자 곧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일해야 했다. 또한 신앙고백 위에 주어진 천국 열쇠를 사용하여 최초의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가 열리는 자리에 있어야 했다. 이 세 사명을 위하여 가장과 어부의 경험, 강한 추진력, 계시를 받는 영성, 대중을 향한 설교와 능력 행함의 은사가 준비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그도 처음부터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앞장서기 좋아하고 혈기와 분노가 강했던 성품은 닭 울음 뒤의 통곡과 반복되는 책망을 거치며 변화되었고 낮아졌다. 유대인의 경계를 쉽게 넘지 못하던 한계는 환상과 성령의 지시로 교정되어야 했다. 헬라어와 국제적 사역의 한계는 마가 요한 같은 동역자를 통하여 보완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미 준비된 자질을 사용하시면서도 부족한 부분을 회개와 훈련과 은혜로 채우신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베드로에게 주어진 세 가지 사명과 제자의 대가, 가장과 어부로서 준비된 자질, 할례자를 향한 복음 전파와 천국 열쇠의 사용, 회개로 변화된 성품, 그리고 은사와 동역자를 통한 보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2. 베드로는 어떤 세 가지 사명을 위해 이 땅에 보내졌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통하여 그에게 3가지 사명이 주어졌음을 발견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에게 주어진 &lt;strong&gt;첫째 사명은 주님의 제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삶으로 보여 주는 것&lt;/strong&gt;이었다. 제자는 지식만 배우는 학생이 아니라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고로 제자는 주님이 가시는 길을 따르기 위하여 자기 생각과 판단과 권리를 내려놓고,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며, 필요하면 목숨까지 드려야 한다. 베드로는 처음 부름받을 때 생업의 도구인 그물을 버렸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생명까지 내놓는 길을 걸었다. 그의 생애는 제자의 시작과 실패와 회복과 완주를 함께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에게 &lt;strong&gt;둘째 사명은 할례자의 사도로서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lt;/strong&gt;이었다. 바울이 이방인들의 사도로 세움을 받았다면 베드로는 주로 팔레스타인 본토의 할례받은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도록 부름받았다. 두 사람에게 역사하신 분은 같은 하나님이지만 맡겨진 대상과 방식은 이처럼 달랐다(갈 2:7-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2:7-8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베드로는 대중 설교가의 기질이 있었다. 그는 오순절에 예루살렘의 무리를 향하여 담대하게 설교했다. 그에게는 한 사람을 오래 설득하는 방식보다 많은 사람 앞에서 그물을 던지듯 복음을 선포하고 한꺼번에 영혼을 거두는 은사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러자 그의 설교를 들었던 약 삼천 명이 세례를 받았고, 뒤이어 말씀을 듣고 믿은 남자의 수가 약 오천 명에 이르렀다. 갈릴리 바다에서 그물로 고기를 잡던 일이 예루살렘에서 말씀의 그물로 사람을 얻는 사역을 미리 연습한 셈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에게 주어진 &lt;strong&gt;셋째 사명은 천국 열쇠를 사용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교회의 문을 여는 것&lt;/strong&gt;이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한 신앙 고백을 할 때에 &amp;ldquo;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amp;rdquo;라고 고백했고, 그러자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그러한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고, 그에게 매고 푸는 천국 열쇠를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에서 유대인들에게 회개와 세례를 선포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탄생하는 데에 앞장섰고, 사도행전 10장에서는 고넬료의 집에 복음을 전하여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임하고 세례의 문이 열리게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베드로의 이 세 가지 사명은 각각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는 제자의 헌신이 있었기에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었고, 할례자의 사도로 준비되었기에 예루살렘의 유대인에게 첫 말씀의 그물을 던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유대인 중심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종이 있었기에 천국 열쇠가 이방인에게까지 사용될 수 있었다. 사명은 이름이나 직함이 아니라 실제로 누구에게 무엇을 전하고 어떤 문을 열어야 하는가로 드러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3. 제자의 모델이 된 베드로는 무엇을 버리고 주를 따랐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갈릴리 해변에서 그물을 던지던 시몬과 안드레를 보시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부르셨다. 그리고 그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자 두 사람은 설명을 더 요구하거나 가정 형편이 정리될 때까지 미루지 않고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뒤따랐다(마 4:18-2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4:18-20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베드로에게 그물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베드로가 오랫동안 익힌 기술이고, 가족을 먹여 살리는 생업이었으며, 자신의 미래를 계산할 수 있게 하는 안전장치였다. 왜냐하면 당시 베드로에게는 아내가 있었고 장모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 열병으로 누운 장모를 고쳐 주셨다. 이러한 신약성경의 기록은 그가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는 가장이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그러므로 그가 그물을 버렸다는 것은 취미 하나를 포기한 간단한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생계와 시간과 기술과 장래를 주님의 손에 맡겼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후일 베드로는 자신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고 분명하게 말했다(마 19:27). 이 말에는 실제적인 무게가 있다. 가족을 책임지는 사람이 하루아침에 생업을 내려놓을 때에는 누가 집을 돌볼 것인가 하는 염려가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시간 사역자로 부름받은 사람은 자신의 일부 시간만 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시간과 물질과 몸과 달란트와 삶의 방향을 다 주님께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9: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때 예수께서는 제자의 길이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길이라고 설명하셨다. 여기서 자기 부인이라는 말은 자신의 인격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과 내 생각이 충돌할 때 내 판단을 내려놓는다는 뜻이다.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맡겨진 고난을 피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필요하다면 자기의 목숨까지 주님을 위하여 내어 놓는 것이다. 온 세상을 얻는 성공을 거둔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생명을 잃어버린다면 그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마 16:24-2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6:24-2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고 베드로가 처음부터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은 것은 아니었다. 예수께서 붙잡히시던 날 밤에 그는 자신의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잘랐지만, 곧 여종 앞에서는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 씩이나 부인했다. 혈기로 다른 사람과 싸울 용기는 있었으나 자기 생명을 조용히 맡기는 십자가의 용기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다. 닭이 울자 그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 밖에 나가 심히 통곡했다. 그 통곡은 실패를 감추지 않고 주님 앞에서 자신을 깨뜨리는 회개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자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가 세 번 주님을 부인했던 만큼 그에게 세 번에 걸쳐 진정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물으시고 양을 먹이며 치라고 하시며 그에게 다시 사명을 맡겨주셨다. 또한 젊어서는 그가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다녔으나 늙어서는 남이 띠를 띠우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하셨다. 이는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지를 가리킨 말씀이었다(요 21:18-1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21:18-1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은 베드로의 순교의 사실까지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교회 전승은 그가 로마를 피하려다가 길에서 주님을 만난 뒤 다시 로마로 돌아가 순교했으며 주님과 같은 방식으로 죽을 자격이 없다 말하면서,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이 전승을 성경 본문과 같은 무게로 둘 수는 없지만, 베드로가 마침내 목숨까지 드리는 제자의 길을 걸었다는 교회의 기억을 함께 보여 준다. 처음에 베드로는 자신의 그물을 버렸고,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의 생명을 드렸다. 이것이 주님께서 베드로를 통하여 보여 주신 제자의 모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4. 어부와 가장의 경험은 사도의 자질을 어떻게 준비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열두 제자의 대표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세우기 전에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게 하셨다. 성경은 그의 아버지 요나의 생애를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필자는 성경에 아버지가 더 등장하지 않는 점을 보며 요나가 일찍 세상을 떠났고, 베드로가 아내와 장모와 동생을 돌보는 책임을 일찍 맡았다고 본다. 이것은 성경의 직접 진술이라기보다 베드로의 삶을 바라보는 목회적 해석이다. 그러나 그가 결혼했고 장모가 있었으며 한 집을 책임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가정을 이끈 경험은 사람을 책임지는 훈련이 되었다. 지도자는 앞에서 명령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의 필요를 살피고, 어려움이 생길 때 책임을 피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보다 먼저 짐을 져야 한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로 훈련된 뒤 애굽의 국정을 맡았듯이, 베드로도 작은 가정에서 책임을 배우고 열두 제자와 예루살렘 교회를 섬기는 자리로 나아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어부라는 직업도 사명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고기를 잡으려면 물의 흐름과 계절과 시간, 고기의 습성과 그물이 놓일 자리를 알아야 한다. 빈 그물을 끌어 올리는 실패를 견디고 다시 던질 인내가 필요하다. 여러 사람이 한 배에서 호흡을 맞추며 그물을 내리고 끌어 올려야 하므로 협동과 판단력도 배운다. 이는 사람의 형편을 살피고 복음의 때를 분별하며 동역자와 함께 영혼을 거두는 일에 필요한 자질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특히 베드로는 낚싯대로 한 마리씩 잡는 방식보다 그물을 던져 많은 고기를 거두는 어부였다. 그의 사역도 그러했다. 오순절 설교로 약 삼천 명이 더해졌고, 성전 미문에서 난 사람을 고친 뒤 말씀을 들은 남자의 수가 약 오천 명이 되었다(행 4:4). 한 사람씩 찾아가는 사역이 작다는 뜻이 아니라, 베드로에게는 많은 무리를 향하여 복음을 선명하게 선포하는 특별한 분량이 주어졌다는 뜻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어린 시절부터 고기 잡는 일을 좋아했다. 손으로 물고기를 잡고, 대나무 작살을 만들어 돌 밑의 고기를 잡았으며, 쪽대를 써 보기도 했다. 낚시로 밤을 새웠으나 붕어 두 마리밖에 잡지 못한 뒤에는 한 마리씩 기다리는 방식이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음을 알았다. 그 뒤 투망을 익혀 수십 년 동안 물때와 고기의 습성을 살피며 한 번에 많은 고기를 잡았다. 어린이 전도와 가르치는 사역을 오래 감당한 뒤 돌아보니, 이 경험도 사람을 얻는 방식과 무관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집안이 오랫동안 학문을 중시하고 서당을 세워 사람을 가르쳐 온 배경, 국어국문학과 히브리어 성서학을 공부한 과정도 말씀을 풀어 가르치는 현재의 사역과 연결된다. 이 개인적인 사례는 모든 취미나 전공을 억지로 영적 상징으로 만들라는 뜻이 아니다. 지나온 삶 가운데 반복해서 준비된 자질이 무엇이며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는 정규 학문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공회는 베드로와 요한을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그들의 담대함을 보고 놀랐으며,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을 알았다(행 4:13). 세상의 학력만 보면 부족했지만 그는 삼 년 반 동안 말씀 자체이신 예수와 함께 살며 직접 배웠다. 하나님은 없는 학력을 꾸며 내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준비된 담대함과 책임감에 주님의 말씀과 성령의 권능을 더하여 필요한 자질을 완성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4: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현재의 환경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 가정과 직업에서 익힌 책임과 기술과 협동은 장차 맡을 사명의 바탕이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없는 바울의 길을 걷게 하지 않으시고, 가장과 어부의 자질을 복음의 그릇으로 바꾸어 사용하셨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5. 베드로는 할례자의 사도로서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할례자의 사도라는 말은 베드로가 유대인만 사랑하고 이방인은 외면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우선적으로 맡기신 복음 전파의 대상과 분량이 유대인이었다는 뜻이다. 그는 유대인의 성경과 절기와 기대를 잘 알고 있었고, 예수가 구약이 약속한 그리스도이심을 같은 언약 백성에게 선포할 수 있었다. 오순절에 여러 나라에서 온 유대인들이 모였을 때 그는 요엘서와 시편을 풀어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증언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의 복음 전파에는 두 가지 특징이 함께 나타났다. 하나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찌르는 대중 설교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을 확증하는 표적과 능력이다. 오순절에는 그의 말을 받은 약 삼천 명이 세례를 받았다(행 2:41). 성전 미문에서는 나면서 걷지 못한 사람에게 은과 금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었고, 그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송하자 많은 이가 말씀을 들었다(행 3:6-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2: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lt;/div&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3:6-8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는 기적을 자신의 권능과 경건으로 행한 것처럼 사람의 시선을 자신에게 묶어 두지 않았다.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다고 선포하고, 사람들이 돌이켜 죄 없이 함을 받도록 회개를 촉구했다. 표적은 사람을 높이는 장식이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고 회개와 구원으로 이끄는 통로였다. 능력이 나타날수록 영광을 주님께 돌리고 복음의 핵심을 분명히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의 담대함은 성격이 큰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예수께서 누구신지 확실히 알았고, 성령께서 그 안에 임하셨기에 죽음을 위협하는 공회 앞에서도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과거에는 여종 앞에서 주님을 부인했지만 오순절 이후에는 권력자 앞에서 예수 외에는 구원받을 다른 이름이 없다고 선포했다. 회개한 사람의 과거 실패가 성령 안에서 도리어 더 겸손하고 분명한 증언으로 바뀐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으로 본 천국의 베드로 집은 15층이었고, 입구 벽에는 황금 그물이 걸려 있었다. 베드로가 그 그물을 복음 전파의 사명이 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모습도 보았다. 바울의 집은 18층으로 보였다. 이는 두 사도의 가치 경쟁이 아니라 맡겨진 분량이 다름을 보여 주는 개인적인 영적 체험이다. 성경 본문과 같은 근거는 아니지만, 사람을 거두는 그물의 사명을 묵상하게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6. 베드로에게 주어진 천국 열쇠로 인하여 유대인과 이방인 교회는 어떻게 열렸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누구라고 하는지 물으셨다. 시몬 베드로는 &amp;ldquo;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amp;rdquo;라고 대답했다. 이 고백은 혈육의 판단으로 얻은 결론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께서 알게 하신 계시였다. 예수께서는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시고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며 천국 열쇠를 맡기겠다고 하셨다(마 16:16-1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6:16-19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lsquo;베드로&amp;rsquo;는 헬라어 페트로스이며, &amp;lsquo;반석&amp;rsquo;에는 페트라라는 말이 쓰였다. 단어의 형태를 구별하는 것만으로 교회의 기초를 인간 베드로 개인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중심에는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계시와 고백이 있다. 동시에 주님은 그 고백을 한 베드로를 실제 역사 속에서 앞장선 일꾼으로 사용하셨다.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시고, 베드로는 주님께 받은 열쇠를 순종으로 사용한 종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째 열쇠는 오순절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에게 사용되었다. 성령이 임하신 뒤 베드로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하자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 사함을 받으라고 답했다. 그 말을 받은 약 삼천 명이 더해지면서 예루살렘 교회가 힘 있게 출발했다. 이는 할례자의 사도에게 가장 먼저 맡겨진 문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열쇠는 가이사랴의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서 사용되었다. 베드로에게는 이방인과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유대적 한계가 남아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각종 짐승이 담긴 그릇의 환상을 세 번 보여 주시고 &amp;ldquo;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amp;rdquo;는 뜻을 깨닫게 하셨다. 동시에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 베드로를 청하게 하시고, 성령께서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가라고 명하셨다.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하늘에서 양쪽을 동시에 준비한 사건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족과 친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때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임했다.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은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부어 주심을 보고 놀랐다(행 10:44-45).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이미 성령을 주신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 베푸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느냐고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명했다. 이로써 이방인 교회의 문이 열렸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10:44-45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사건은 베드로의 타고난 개방성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처음에는 속되고 깨끗하지 않은 것을 먹은 적이 없다고 거절했다. 주님은 그의 한계를 아셨기에 환상을 세 번 반복하고, 천사와 성령의 지시와 실제 성령 강림을 차례로 보여 주셨다. 중요한 사명을 맡기신 하나님께서 일꾼의 편견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시고 순종할 수 있도록 분명한 증거를 주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에게 천국 열쇠가 있었다고 해서 그가 언제나 완전하게 행동한 것은 아니다. 후일 안디옥에서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물러났고, 바울에게 공개적인 책망을 받았다. 사명을 받았어도 오래된 습관과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한 번의 큰 체험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받은 계시에 계속 순종하고, 잘못했을 때 책망을 받아들여 바로잡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7. 혈기 많던 베드로의 성품은 회개로 어떻게 변화되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는 행동이 빠르고 앞장서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제자들이 머뭇거릴 때 먼저 대답했고, 물 위로 오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배 밖으로 먼저 나갔으며, 변화산에서는 초막 셋을 짓자고 즉시 말했다. 이런 추진력은 지도자에게 필요한 장점이지만, 자기 생각과 혈기가 섞이면 위험해진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말씀하실 때 그는 주님을 붙들고 항변하다가 &amp;ldquo;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amp;rdquo;는 책망을 들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겟세마네에서는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잘랐다. 주님을 지키려는 열심처럼 보였지만, 십자가를 지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혈기였다. 조금 뒤에는 자기 목숨이 두려워 예수를 세 번 부인했다. 큰소리와 충동적인 행동이 곧 충성은 아니다. 참된 충성은 주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이 고난의 길이라도 자기 방식을 내려놓고 따르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의 변화는 자신의 약함을 정직하게 보는 데서 시작되었다. 닭이 울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 밖에 나가 심히 통곡했다(마 26:75). 그는 실패를 합리화하거나 다른 제자를 탓하지 않았다. 통곡하는 회개를 통하여 &amp;ldquo;다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다&amp;rdquo;던 자기 확신이 무너졌다. 자신의 의지가 얼마나 약한지를 안 사람만이 이후 성령의 능력을 의지할 수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부활하신 주님은 그 실패를 공개적으로 정죄하여 버리지 않으셨다. 숯불 곁에서 세 번 사랑을 물으시고 세 번 양을 맡기셨다. 베드로는 더 이상 &amp;ldquo;다 버릴지라도 나는 아닙니다&amp;rdquo;라고 자기 힘을 자랑하지 않았다. &amp;ldquo;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amp;rdquo;라고 답했다. 자신의 마음까지 주님의 아심에 맡기는 겸손이 생겼다. 회개는 사명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죄와 자아를 깨뜨려 사명을 바르게 감당하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월이 흐른 뒤 베드로는 자신보다 늦게 부름받은 바울을 &amp;ldquo;사랑하는 형제 바울&amp;rdquo;이라고 불렀다. 바울은 안디옥에서 베드로의 외식을 공개적으로 책망한 사람이었다. 혈기와 시기와 체면이 남아 있었다면 그를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바울이 받은 지혜와 그의 편지들을 존중하고, 무식한 이들이 그것을 다른 성경처럼 억지로 풀다가 멸망에 이른다고 경고했다(벧후 3:15-1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벧후 3:15-16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자기보다 계시의 분량이 큰 사람을 인정하는 것은 성품이 낮아졌다는 증거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먼저 부름받았다는 이유로 언제나 더 높은 계시를 가진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열두 제자의 수석으로 앞장섰지만 바울에게 맡겨진 경륜의 계시와 넓은 사역을 존중했다. 지도자는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은사를 눌러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분량을 인정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성품을 바꾸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회개를 계속하면 시기와 질투, 혈기와 분노, 교만을 붙들고 역사하는 악한 영들이 떠나가며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다. 우리 교회에 주신 &amp;lsquo;회개기도문&amp;rsquo;은 막연히 잘못했다고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며 성품의 뿌리를 처리하도록 돕는다. 은사가 크더라도 성품이 따라오지 않으면 사람을 상하게 하지만, 회개로 정결해진 성품은 은사와 권능을 안전하게 담는 그릇이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8. 부족한 베드로를 주님은 은사와 동역자로 어떻게 채우셨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는 학문과 언어에서 바울과 같은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기셨다면 필요한 부분도 책임지신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예수가 누구신지를 알아보는 계시를 주셨고, 성령의 권능과 대중 설교의 은사와 지도력과 담대함을 더하셨다. 부족함을 핑계로 사명을 피하게 하지 않으시고, 이미 가진 자질 위에 하늘의 은사를 부어 맡은 일을 감당하게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가 받은 계시는 단지 &amp;ldquo;예수는 좋은 선생&amp;rdquo;이라는 깨달음이 아니었다. 그는 예수가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했다. 후일 베드로전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성도들이 거듭나 산 소망을 얻고,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이 하늘에 간직되어 있음을 밝혔다(벧전 1:3-4). 땅의 소유가 전부가 아니라 성도에게 하늘의 기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벧전 1:3-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는 예수의 피가 은이나 금처럼 없어질 것이 아니라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이며,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헛된 행실에서 사람을 대속하는 피라고 증언했다(벧전 1:18-19). 또한 성도들이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선포했다. 많이 배우지 못한 어부였지만 천사들도 살펴보기 원하는 구원의 경륜과 성도의 하늘 신분을 계시로 깨달은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벧전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는 주의 날에 하늘과 물질이 풀리고 성도들이 의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고 기록했다. 필자는 이를 근거로 천국에서 이루어지는 천년왕국과 마지막 새 하늘과 새 땅의 순서를 구별한다. 베드로는 마지막 때의 경륜까지 계시로 깨달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말씀의 계시와 함께 능력 행함의 은사도 주어졌다. 베드로는 나면서 걷지 못한 사람을 일으켰고, 8년 동안 중풍병으로 누워 있던 애니아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낫게 하신다고 선포하여 일어나게 했다. 욥바에서는 죽은 다비다를 향하여 무릎 꿇고 기도한 뒤 &amp;ldquo;다비다야 일어나라&amp;rdquo; 하여 살렸다. 병든 사람을 거리로 메고 나와 베드로가 지나갈 때 그의 그림자라도 덮이기를 바랄 만큼 강한 치유와 축사의 역사가 나타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은사는 베드로 개인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는 &amp;ldquo;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amp;rdquo;고 말했다. 자신이 약하고 실패했던 사람임을 알았기에 능력의 근원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은사와 표적은 사역자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확증하고 영혼을 주님께 돌이키기 위한 무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은 사람을 붙여 부족함도 채우셨다. 동생 안드레는 먼저 예수를 만난 뒤 시몬을 주님께 데려왔다. 요한은 성전 미문과 사마리아 사역 등 중요한 현장에서 베드로와 함께했다. 말년에는 마가 요한이 가까운 동역자가 되었고, 베드로는 그를 아들이라고 불렀다. 교회사 전승은 베드로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때 헬라어에 능한 마가가 통역하고 그 증언을 정리하여 마가복음으로 남겼다고 전한다. 이 역시 성경의 직접 기록과 교회사 전승을 구별해야 하지만, 동역자를 통하여 언어의 한계가 보완되었다는 의미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부족함을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채우지 않으신다. 어떤 부족함에는 성령의 은사를 주시고, 어떤 부분에는 말씀의 계시를 더하시며, 어떤 한계에는 함께 일할 사람을 붙이신다. 중요한 것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물러서지 않고 주님께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베드로가 그물을 붙들고 있었다면 사람을 낚는 은사도, 천국 열쇠도, 동역자도 실제 사역 속에서 작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우리의 출생 환경과 배움과 직업에도 우연은 없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자질은 갈고닦아야 하고, 혈기와 교만 같은 성품의 결함은 회개로 처리해야 하며, 말씀하실 때에는 즉시 순종해야 한다.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충성하면 된다.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맡은 일에 목숨을 걸 때, 필요한 것은 주님께서 더하시고 지키시며 인도하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9. 나오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할례자의 사도로 부름받은 베드로가 어떤 사명을 받았고 어떤 준비와 훈련을 거쳐 쓰임받았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모델이었고,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할례자의 사도였으며, 천국 열쇠를 사용하여 최초의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의 문을 여는 일꾼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의 가정과 직업도 사명을 위한 준비였다. 가장으로서 책임을 배웠고, 어부로서 때와 형편을 살피며 많은 것을 거두는 훈련을 받았다. 이 자질은 대중 설교와 교회를 이끄는 지도력으로 이어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에게도 분명한 약점이 있었다. 혈기와 분노가 강했고, 자기 확신으로 앞서다가 주님을 세 번 부인했으며, 유대적 경계를 넘어 이방인과 교제하는 일을 어려워했다. 그러나 통곡하는 회개와 주님의 책망과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온유하고 겸손한 지도자로 변화되었다. 자신을 책망한 바울을 사랑하는 형제로 인정한 모습은 회개가 성품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은 부족한 학문과 언어를 계시와 능력과 대중 설교와 지도력의 은사로 채우셨다. 또한 안드레와 요한과 마가 같은 동역자를 붙여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부분도 보완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하나님께 쓰임받으려는 사람은 먼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과 이미 준비된 자질을 살펴야 한다. 다른 사람의 큰 그릇을 부러워하기보다 자신의 분량에 충성해야 한다. 잘못된 성품은 회개로 다루고, 부족한 부분은 말씀과 성령의 은사와 동역을 통하여 보완받으며, 부르실 때에는 계산보다 순종을 앞세워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몸과 달란트는 주님께 받은 것이다. 전시간 사역자는 삶 전체를 드려야 하고, 일반 성도도 맡겨진 자리에서 자신의 분량을 충성스럽게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필요한 것을 더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하여 작든 크든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 천국을 잘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04일(화)&lt;br /&gt; 정보배 목사&lt;br /&gt; &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베드로가&amp;nbsp;&lt;strong&gt;주님의 수석 사도&lt;/strong&gt;로서 어떻게 예비되고 사역에 쓰임받았는지를 분석하며, 그의 삶을 통해&amp;nbsp;&lt;strong&gt;사명자의 자세&lt;/strong&gt;를 교훈합니다. 베드로는 원래 평범한 어부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었으나,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르는&amp;nbsp;&lt;strong&gt;제자의 모델&lt;/strong&gt;이 됨으로써 자기 부인과 순종의 길을 제시하였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그의 직업적 자질을 활용하여&amp;nbsp;&lt;strong&gt;유대인을 위한 사도&lt;/strong&gt;로 부르셨으며, 천국 열쇠를 맡겨&amp;nbsp;&lt;strong&gt;교회의 기초&lt;/strong&gt;를 세우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이 설교는 베드로가 회개를 통해&amp;nbsp;&lt;strong&gt;혈기와 인간적 한계&lt;/strong&gt;를 극복하고 겸손한 성품을 갖추게 된 과정을 강조하며, 오늘날의 신앙인들도&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주권적인 준비&lt;/strong&gt;와 철저한 회개를 통해 각자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1)] ChatGPT Image 2026년 8월 4일 오후 12_41_4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5/263/2e2f90ccbca03921c3744aab3ba1831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1)] 베드로_리더십_설계도.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5/263/d5e8cb99a742ace47ee71785f8ed392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1)] 베드로_리더십_설계도.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5/263/ce43d7bb68a15d42d20edbcb5a01891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1)] 베드로_리더십_설계도.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5/263/9d585f82b51e04a3cb9998b488c75ae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1)] 베드로_리더십_설계도.pdf_4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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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1)] The_Peter_Masterpla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5/263/dc4034491e1cb59d199624d4e543fb5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1)] The_Peter_Masterpla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5/263/92028861cad0ef03afd5413c4f13426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1)] The_Peter_Masterpla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5/263/109ff7fac7b0df594b2d8f543d0fac3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1)] The_Peter_Masterpla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5/263/a9f2610d9b959709ecbc7e75b026a24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1)] The_Peter_Masterpla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5/263/248317dc9cf41db945d5d6952bdf51d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1)] The_Peter_Masterpla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5/263/cb5df8ce83a3ad44dbc5b5a3296d77a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1)] The_Peter_Masterpla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5/263/c3e9b0bf3213ae45d1b35e21ebeefd2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1)] The_Peter_Masterpla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5/263/ee737f8e19351093d880009fc3155e4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1)] The_Peter_Masterpla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5/263/b56c6af1f33298b8820a3596bc585ae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1)] The_Peter_Masterpla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5/263/b3e7f3b438f1f0b7416f1db98498874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1)] The_Peter_Masterplan.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75/263/7d20050e6864f8f503417a686a79b5b7.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사역자론(10)] 하나님이 지명한 사람 바울, 그는 어떻게 준비되었고 쓰임받았는가?(갈1:11~17)_2026-08-03(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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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03T09:40:00+09:00</published>
		<updated>2026-08-03T12:49:53+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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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역자론(10)] 하나님이 지명한 사람 바울, 그는 어떻게 준비되었고 쓰임받았는가?(갈1:11~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7NnmXDeq8GE 사역자론(10) 하나님이 지명한 사람 바울, 그는 어떻게 준비되었고 쓰임받았는가?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구약에서 하나님께 가장 크게 쓰임받은 사람을 꼽는다면 모세를 먼저 생각할 수 있다. 모세가 기록한 율법과 그의 생애가 차지...</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사역자론(10)] 하나님이 지명한 사람 바울, 그는 어떻게 준비되었고 쓰임받았는가?(갈1:11~1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7NnmXDeq8GE&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7NnmXDeq8GE?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사역자론(10)&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하나님이 지명한 사람 바울, 그는 어떻게 준비되었고 쓰임받았는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에서 하나님께 가장 크게 쓰임받은 사람을 꼽는다면 모세를 먼저 생각할 수 있다. 모세가 기록한 율법과 그의 생애가 차지하는 분량은 매우 크다. 다윗도 시편과 사무엘서와 역대기의 중심인물로서 큰 자취를 남겼다.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이 두드러진다. 신약성경 스물일곱 권 가운데 열세 권이 바울의 이름으로 전해진다. 그가 교회와 목회자에게 보낸 편지가 성경이 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귀하게 사용하셨는지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선지서를 기록 분량에 따라 대선지서와 소선지서로 나누듯이 성경에 남은 분량은 한 사람이 맡은 소명의 크기를 짐작하게 한다. 이사야와 예레미야가 큰 분량의 말씀을 남겼고, 바울의 서신은 베드로의 서신보다 훨씬 많은 내용을 차지한다. 이것이 다른 일꾼을 무가치하게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각 사람의 하늘의 분량과 사명이 다르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큰 그릇에는 더 많은 계시와 고난과 책임을 맡기시고, 작은 그릇에는 그 분량에 맞는 충성을 요구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바울이 인간적인 노력만으로 큰 인물이 되어 성경을 남긴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의 뜻과 섭리(攝理, providence)를 따라 그를 지명하시고, 정한 때에 이 땅에 보내어 필요한 그릇으로 준비시키셨다. 토기장이가 목적에 맞는 그릇을 빚듯이 하나님께서 바울의 출생 환경과 학문과 언어와 시민권과 만남을 미리 배치하셨다. 그렇다고 바울의 노력과 순종이 불필요했던 것도 아니다. 그는 맡겨진 사명을 위하여 배우고 찾고 고난받으며 자신의 잘못을 고쳐 나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모세와 바울의 생애를 나와 상관없는 위인의 이야기로 읽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바울과 같은 그릇으로 정하셨다면 그에 맞게 준비하실 것이고, 다른 분량의 그릇으로 지으셨다면 그 자리에서 충성하게 하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릇의 크기를 비교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분량을 알고 기꺼이 내어 드리는 것이다. 교회를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며 설거지하고 중보기도하는 작은 일도 마지막 시대의 회개와 천국복음 사역에 참여한다는 의미로 감당하면 하나님 나라의 귀한 부분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 오래 그리고 온전하게 쓰임받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준비되어야 한다. 첫째는 사명을 감당할 자질(資質, qualification)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낼 성품(性品, character)이며, 셋째는 말씀하실 때 자신을 내어 드리는 순종(順從, obedience)이다. 어느 하나에 중대한 결격 사유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잠시 쓰시다가도 멈추실 수 있고, 크게 쓰지 않으실 수도 있다. 사울왕은 처음부터 버림받도록 세워진 사람이 아니었지만 계속 불순종함으로 왕위를 잃었다. 예정(豫定, predestination)을 핑계로 준비를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도 처음부터 온전하지 않았다. 그는 율법에 뛰어났지만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여 교회를 박해했고, 성령의 은사를 받았지만 혈기와 교만 때문에 동역자와 심하게 다투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방향을 돌이키고 오랜 훈련을 통하여 자질과 성품과 순종을 다듬으셨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바울에게 어떤 소명을 주셨으며, 그의 출생과 학문과 영성과 성품을 어떻게 준비시켜 오래도록 귀하게 사용하셨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2. 하나님의 지명과 인간의 준비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지명이다. 그는 자신이 사람에게서 복음을 받거나 배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았다고 증언한다(갈 1:11-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1:11-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태로부터 자신을 택정하시고 은혜로 부르셨다고 고백한다. 그 부르심의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는 것이었다(갈 1:15-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1:15-17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지명은 바울이 회심한 날 갑자기 생긴 계획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복음을 전할 범위와 기록할 말씀과 감당할 고난을 아셨다. 그러므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나게 하시고,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헬라 세계를 접하게 하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예루살렘에서 율법을 배우도록 인도하셨다. 바울은 뒤늦게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흩어진 모든 준비가 하나의 소명을 향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지명받았다는 사실이 자동으로 쓰임받는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노력하지 않고 문제의 답을 찾지 않으며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분량을 감당할 수 없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뒤 아라비아와 다메섹으로 가서 자신이 배운 구약성경을 다시 살폈다. 그는 오랜 무명의 기간을 지나며 율법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연구하고, 선교 현장에서 실패를 경험하며, 성품의 가시를 견디면서 준비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준비는 서로 반대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목적을 정하시고 필요한 환경과 은혜를 주시지만, 사람은 그 은혜에 응답하여 배우고 회개하고 순종해야 한다. 사울왕은 선택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는 길을 계속 걸어 버림받았다. 반대로 바울은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자신의 지식과 권리와 생명까지 복음을 위해 내놓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amp;ldquo;나는 예정되지 않았으니 쓸모없다&amp;rdquo;고 말해서도 안 되고, &amp;ldquo;나는 선택받았으니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amp;rdquo;고 말해서도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각 사람의 현재 삶을 통하여 이미 그릇을 준비하고 계신다. 내가 익힌 기술, 견딘 고난, 만난 사람, 받은 은사와 깨달은 말씀에는 의미가 있다. 다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되도록 자신을 드려야 한다. 큰 무대에 서지 않더라도 선지자를 선지자로 영접하고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사람은 그 일에 해당하는 상을 받는다. 사역자를 위하여 식사 한 끼를 준비하고, 몇 달 동안 비용을 모아 사역에 참여하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보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3. 바울에게 맡겨진 세 가지 소명은 무엇인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에게 맡겨진 첫째 소명(召命, calling)은 복음을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인과 임금들에게까지 전하는 것이었다. 베드로가 할례자의 사도로 부름받았다면 바울은 무할례자의 사도로 세움을 받았다(갈 2:7-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2:7-8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은 아나니아에게 바울이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님의 이름을 전하도록 택한 그릇이며, 그 이름을 위하여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알려 주셨다(행 9:15-1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9:15-16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의 사역 범위는 주로 유대인이었지만 바울의 범위는 훨씬 넓었다. 이방 세계를 여행하고 회당과 광장과 재판정에서 복음을 전하며 왕과 총독 앞에 서야 했다. 그러므로 그는 유대 전통만 아는 폐쇄적인 사람이 아니라 이방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준비되어야 했다. 또한 복음을 한 지역에 전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도시에 교회를 세우고 제자를 양성하여 자신이 떠난 뒤에도 사역이 계속되게 해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소명은 신약성경을 기록하여 후대 교회가 믿음의 길을 바르게 걷게 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와 디모데&amp;middot;디도 같은 목회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당시에는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인적이고 목회적인 편지였지만, 성령께서는 그 글을 신약성경 열세 권으로 남기셨다. 그는 복음의 핵심, 칭의와 성화, 교회의 질서, 성령의 은사, 부활과 재림, 목회자의 자격을 체계적으로 설명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소명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경륜과 그리스도의 비밀과 교회의 비밀을 밝히는 것이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은 교회를 박해하던 사울에게 &amp;ldquo;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amp;rdquo;고 물으셨다.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갔지만 주님은 그들을 박해한 것이 곧 자신을 박해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만남을 통하여 바울은 그리스도가 머리이고 교회가 그의 몸과 지체라는 비밀을 깨닫기 시작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천사와 인간을 지으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세우셨는지를 설명했다. 구약의 율법과 제사와 성막은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그림자와 모형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경륜이 완성된다는 것을 밝혔다. 필자는 히브리서도 바울의 저작으로 보는데, 히브리서가 보여 주는 모형론적 성경 해석은 바울이 율법의 전문가였기에 감당할 수 있었던 소명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세 소명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세계 선교를 위하여 언어와 시민권이 필요했고, 성경을 기록하기 위하여 율법과 헬라 문화에 대한 깊은 학문이 필요했으며, 하나님의 경륜을 설명하기 위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직접 만나는 계시가 필요했다. 하나님께서는 소명을 먼저 정하시고 그것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질을 바울의 생애 속에 배치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자신만 복음을 전하고 끝내지 않았다. 여러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디모데와 디도 같은 후계자를 길러 자신이 떠난 뒤에도 복음이 계속 전파되게 했다. 베드로가 고넬료 사건을 통하여 이방인에게 천국 문을 여는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후 유대인의 눈치를 보다가 안디옥에서 바울의 책망을 받기도 했다. 필자는 이 차이에서 받은 사명을 넓게 수행하고 제자에게 전수하는 훈련의 중요성을 본다. 받은 계시와 은사를 자신만 간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게 남길 때 사역은 한 세대를 넘어간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4. 그의 출생&amp;middot;학문&amp;middot;언어&amp;middot;시민권은 사역을 위해 어떻게 준비되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팔레스타인 본토가 아니라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태어난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이었다. 다소는 헬라 문화와 로마 제국의 행정이 만나는 이방 지역의 도시였다. 그는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이방인의 사고방식과 생활을 가까이에서 접했다. 훗날 여러 민족에게 복음을 전할 사람에게 필요한 개방성과 문화적 이해가 출생 환경에서부터 준비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는 히브리어 성경과 유대 전통을 배웠고 헬라어로 이방인과 소통할 수 있었으며 로마 세계의 언어와 질서를 이해했다. 이방인과 왕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편지를 써서 교회를 가르치려면 말과 글을 정확하게 다룰 수 있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언어가 장벽이 되지 않도록 어릴 때부터 여러 문화와 언어 속에서 자라게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Roman citizenship)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이미 시민권자였기 때문이다. 로마 시민은 재판 없이 함부로 채찍질하거나 처형할 수 없었으며 황제에게 상소할 권리가 있었다. 바울은 위기의 순간에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밝혀 불법적인 처벌을 막았고, 가이사에게 상소하여 마침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증언했다. 시민권은 개인적인 특권으로 누리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세계 선교의 길을 보호하는 도구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는 예루살렘으로 유학하여 당대 최고의 율법 교사 가운데 한 사람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다. 바리새인으로서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을 엄격하게 익혔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말할 만큼 철저히 살았다. 베드로가 어부로서 현장성과 담대함을 준비했다면 바울은 구약성경을 해석하고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설명할 학문을 준비했다.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역할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지만 출생과 언어와 시민권과 학문은 그 자체로 거룩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채 사용했을 때 그 지식은 오히려 교회를 박해하는 무기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갖춘 자질을 폐기하지 않으시고 방향을 돌려 복음을 위한 도구로 바꾸셨다. 유대교에 대한 깊은 지식은 율법의 한계를 설명하는 자산이 되었고, 헬라 문화에 대한 이해는 이방인과 대화하는 통로가 되었으며, 시민권은 선교 여행과 로마 증언을 가능하게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는 오늘 사역자에게도 중요한 원리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되지 않은 것을 마술처럼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다. 글을 맡길 사람에게는 공부와 기록 훈련을, 세계 선교를 맡길 사람에게는 언어와 문화 훈련을, 사람을 돌볼 사람에게는 관계와 인내의 훈련을 시키신다. 현재의 공부와 직업과 환경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것이 장차 어떤 소명을 위하여 준비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5. 그의 잘못된 열심은 그리스도를 만난 뒤 어떻게 바로잡혔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열심이 없어서 문제가 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동년배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고 조상의 전통에 더욱 열심이었으며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고 멸하려 했다(갈 1:13-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갈 1:13-14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생각하며 스데반의 죽음에 찬성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었다. 방향이 틀린 열심은 무관심보다 더 많은 사람을 해칠 수 있다. 장로들의 전통과 교단의 해석을 절대화하면서 정작 율법이 가리키는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식과 열심은 있었지만 실체이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으므로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일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확신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건은 바울의 방향을 완전히 돌렸다. 그는 자신이 박해한 예수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며, 교회를 박해한 것이 곧 주님을 박해한 것임을 알았다. 그 뒤 곧바로 사람의 인정이나 기존 사도들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메섹으로 돌아왔다. 그는 삼 년의 시간을 포함한 오랜 숨은 기간 동안 자신이 배운 구약성경을 그리스도의 빛에서 다시 읽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결과 율법과 제사와 절기와 성막이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그림자라는 모형론적 해석(模型論的 解釋, typological interpretation)이 열렸다. 놋뱀과 유월절 양과 성막과 제사장이 어떻게 예수님의 속죄와 구원을 예표하는지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의 성경 지식은 그리스도를 죽이는 데 사용되었지만, 방향이 바뀐 뒤에는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복음을 변증하는 도구가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자신이 자랑하던 혈통과 할례와 바리새인의 의와 율법 지식을 그리스도와 비교할 때 해와 배설물로 여겼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했기 때문이다(빌 3:7-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빌 3:7-8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 지식과 은사 자체가 쓰레기라는 뜻은 아니다. 그 지식과 은사가 그리스도를 드러내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높이는 수단이 된다면 배설물처럼 사람을 망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영적 진보의 중심은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아는 데 있다. 사역자는 교리와 전통을 많이 아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 모든 말씀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풍성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6. 말씀의 사람 바울은 왜 성령의 은사와 능력까지 구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뛰어난 학자이자 논리적인 변증가였다. 그러나 제2차 선교 여행 중 아덴에서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철학자들과 논쟁한 뒤 지혜로운 말만으로 사람이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이 아님을 절감했다. 아덴에서는 기대한 만큼의 열매를 보지 못했다. 그는 다음 사역지인 고린도로 가면서 복음 전파에는 정확한 말씀뿐 아니라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말과 전도가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에 있지 않고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에 있었다고 고백한다. 성도들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위에 서게 하기 위함이었다(고전 2:4-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2:4-5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말씀은 복음의 내용을 밝히지만 능력은 그 말씀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임을 현장에서 증언한다. 병든 사람이 치유되고 귀신에게 눌린 사람이 자유를 얻으며 예언과 방언 통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드러날 때 사람의 완고한 마음이 굴복한다. 바울은 말씀의 정확성과 성령의 능력 가운데 어느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성경을 깊이 해석하면서 동시에 복음 전파에 필요한 영적인 무기를 구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고린도전서 12장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 영들 분별함, 각종 방언, 방언 통역이라는 아홉 가지 성령의 은사(恩賜, spiritual gifts)를 말한다. 바울은 이 은사들을 알고 사용했기에 각 은사의 성격과 교회 안에서의 질서를 가르칠 수 있었다. 이어 13장에서는 사랑이 없으면 어떤 은사도 유익하지 않다고 밝혔고, 14장에서는 예언과 방언과 방언 통역을 교회의 덕을 세우도록 사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사역의 문제를 만날 때 단지 환상과 음성을 기다리지 않고 원인을 찾고 또 찾으며 해결책을 발견해 왔다. 성령의 불을 받아 악한 영을 제압하는 방법을 자신만 알고 있을 것이 아니라 다른 사역자도 사용할 수 있도록 나누어야 한다고 여긴다. 베드로보다 바울의 사역이 넓어진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울이 많은 교회와 제자를 세우고 자신이 받은 계시와 은사의 사용법을 글로 남겼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능력은 개인을 높이는 장식이 아니다.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살리며 교회를 세우는 도구다. 사역자가 말씀만 붙들고 능력을 무시하면 현장의 눌림을 처리하지 못할 수 있고, 반대로 은사만 추구하고 말씀과 사랑을 잃으면 교만과 미혹에 빠질 수 있다. 바울은 아덴의 한계를 통과하여 말씀과 성령, 진리와 능력, 은사와 사랑이 함께 가야 함을 배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7. 그의 혈기와 교만은 어떤 훈련을 거쳐 온유와 겸손으로 바뀌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에게는 자질만 아니라 성품의 결격 사유도 있었다. 회심하기 전 그는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한 사람이었다(행 9: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혈기와 분노가 강한 사람에게 조상제사의 영이 많이 역사할 수 있다고 본다. 무당 계열의 영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는 교만으로 나타나고, 제사 계열의 영은 머리에 가득 차 혈기와 분노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바울은 무당 계열이라기보다 조상과 유대 전통의 세력이 강한 사람이었고,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셨지만 그의 혈기와 교만은 따로 다루어져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성품은 제2차 선교 여행을 준비할 때 드러났다. 바나바는 제1차 여행에서 중도 이탈한 마가 요한을 다시 데려가기를 원했지만 바울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심히 다투어 서로 갈라섰다. 바나바는 회심한 바울을 안디옥 교회로 데려와 사역의 길을 열어 준 영적 스승이었는데도 바울은 자기 판단을 굽히지 않았다. 바울의 원칙에는 이유가 있었지만 은혜를 입은 스승과 격렬하게 결별한 것은 혈기와 성품의 한계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랜 시간이 지난 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부탁하며 그가 자신의 일에 유익하다고 말했다(딤후 4:1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후 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짧은 말은 바울이 과거의 판단을 돌아보고 마가를 다시 인정했음을 보여 준다. 혈기대로 사람을 잘라 내던 지도자가 세월과 고난 속에서 사람을 품는 지도자로 변한 것이다. 그는 성경을 기록하고 많은 교회를 세웠지만 자기 실수를 인정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훈련도 받아야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나바의 영적 나이나 천국에서의 지위가 바울보다 반드시 높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나바를 통하여 회심한 바울을 교회 앞에 세우고 안디옥 사역의 길을 열어 주셨다. 아나니아 역시 바울보다 학문과 계시가 뛰어나서 그에게 안수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아무에게도 배우지 않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지 않도록 교회의 지체와 영적 관계를 통하여 세우셨다. 사역자는 자신보다 부족해 보이는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인도와 은혜를 받았음을 기억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에게는 뛰어난 계시와 은사 때문에 교만해질 위험도 있었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가 떠나기를 세 번 간구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곧바로 제거하지 않으시고 &amp;ldquo;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amp;rdquo;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해지기 때문이다(고후 12: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후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 가시를 바울을 괴롭히던 악한 영의 역사로 해석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공격을 즉시 없애 주지 않으신 것은 바울이 자신의 능력과 계시를 자랑하지 않고 은혜를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계속되는 약함을 통하여 자신을 낮추었고, 마침내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을 닮아 갔다. 큰 은사와 지식을 받은 사람일수록 더 깊은 성품 훈련이 필요한 이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단순히 &amp;ldquo;나는 죽었다&amp;rdquo;고 반복한다고 혈기와 교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영적 비밀은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悔改, repentance)하여 그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을 내보내는 것이다. 혈기와 분노와 욱하는 성질과 교만의 죄를 자백하고 관련된 귀신을 뽑아내야 성품이 실제로 변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역의 능력이 커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지 못하여 쓰임이 중단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8. 오래 쓰임받는 사역자는 자질&amp;middot;성품&amp;middot;순종을 어떻게 준비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래 쓰임받는 사역자는 먼저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고 그 소명에 필요한 자질을 준비해야 한다. 바울은 세계 선교를 위하여 언어와 시민권과 문화 이해를 갖추었고, 성경 기록을 위하여 율법과 글쓰기와 논리를 배웠으며,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받았다. 오늘의 사역자도 맡겨진 일이 무엇인지 살펴 그에 필요한 공부와 기술과 영적인 무기를 준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성품을 준비해야 한다. 지식과 은사가 뛰어나도 혈기와 분노와 교만이 남아 있으면 사람을 상하게 하고 동역자를 잃으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릴 수 있다. 바울은 바나바와의 다툼, 마가와의 관계 회복, 사탄의 가시를 통하여 자신을 낮추는 법을 배웠다. 사역자는 잘못을 깨달았을 때 변명하지 말고 회개하며, 자신보다 부족해 보이는 지도자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관계와 은혜를 존중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순종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바울은 이방인과 임금과 이스라엘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을 따라 수많은 매와 감옥과 위험을 견뎠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알았지만 자신이 감당해야 할 수고를 피하지 않았다. 주권을 믿는다는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정하신 방향에 자신을 끝까지 내어 드리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역은 혼자 이루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하여 바울을 교회와 연결하셨고, 바나바를 통하여 안디옥 사역에 세우셨다. 선교 현장에서는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가 함께했고, 루디아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후원자와 동역자가 붙었다. 설교하는 사람만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섬기고 물질과 식사를 제공하며 사역의 한 부분을 담당한 사람도 같은 일에 참여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작은 일이라고 의미 없이 해서는 안 된다. 청소를 하더라도 &amp;ldquo;나는 마지막 시대의 회개와 천국복음 사역에 한 부분을 담당한다&amp;rdquo;는 믿음으로 해야 한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하며 먼 길을 와서 중보기도하는 일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사역자를 대접하기 위하여 몇 달 동안 비용을 모은 성도의 마음도 하나님께서 아신다. 맡은 분량에 충성할 때 주님은 &amp;ldquo;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amp;rdquo;라고 말씀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주님께 잠깐이 아니라 오래 쓰임받기를 구해 왔다. 약 팔 년 전 방언 통역을 받을 때 &amp;ldquo;오랫동안 주님께 쓰임받기 원한다&amp;rdquo;는 자신의 깊은 기도가 드러난 적이 있다. 모세가 크게 쓰임받고도 느보산에서 멈춘 사건이 영적인 충격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하는 말씀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계속 성경을 연구하고, 사역의 문제를 피하지 않으며, 얻은 해답을 공개하여 다른 사람도 같은 길을 더 빨리 갈 수 있게 하려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도 대략 삼십 세 전후에 부름받아 예순일곱 세 무렵 순교했다고 본다면 삼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을 고쳐 갔다. 큰 사도였다고 해서 한 번의 회심으로 혈기와 교만이 모두 사라진 것이 아니다. 선교의 실패와 동역자의 충돌과 몸의 약함과 감옥과 재판을 지나며 자신의 한계를 발견했다. 오래 쓰임받는다는 것은 오랫동안 유명한 자리를 지킨다는 뜻이 아니라, 매 단계에서 드러나는 부족함을 회개하고 다음 순종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리스도론(Christology)을 배워 성경 전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회개하여 성품을 막고 사역을 방해하는 악한 영을 내보내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지식은 방향을 잃고, 회개하지 않은 은사는 교만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를 배우고 끝까지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오래 그리고 크게 사용하실 수 있는 그릇으로 준비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9. 나오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바울을 어머니의 태로부터 지명하시고, 세계 선교와 성경 기록과 하나님의 경륜을 밝히는 세 가지 소명을 위하여 준비하신 과정을 살펴보았다. 길리기아 다소의 출생, 여러 언어와 문화, 로마 시민권, 가말리엘 문하의 율법 교육은 우연한 이력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맡길 일을 아시고 바울에게 필요한 자질을 미리 갖추게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자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지식과 열심은 교회를 박해하는 방향으로 사용되었다.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뒤 그는 구약을 다시 읽고 모든 말씀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했다. 아덴의 한계를 통과한 뒤에는 사람의 지혜만이 아니라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이 필요함을 배웠다. 지식과 은사와 능력이 모두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바로잡힌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품도 오랜 훈련을 받아야 했다.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던 혈기, 바나바와 심히 다투었던 완고함, 큰 계시와 은사 때문에 높아질 수 있었던 교만은 마가와의 회복과 사탄의 가시와 수많은 고난을 통하여 낮아졌다. 바울은 완전해서 부름받은 사람이 아니라 부르심에 응답하여 잘못을 고치고 순종함으로 준비된 사람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분량이 바울보다 작더라도 의미가 작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설교와 선교뿐 아니라 청소와 식사 준비와 중보기도와 후원을 통하여도 당신의 일을 이루신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고 필요한 자질을 준비하며, 혈기와 교만을 회개하고, 말씀하실 때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을 믿되 준비와 수고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그리스도를 더 깊이 배우고 회개의 분량을 채워야 한다. 잘못된 지식의 방향을 그리스도께로 돌리고, 악한 영을 내보내 성품을 변화시키며, 받은 은사와 능력을 사랑 안에서 사용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질과 성품과 순종을 온전히 준비하고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에 끝까지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8월 03일(월)&lt;br /&gt; 정보배 목사&lt;br /&gt; &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신약 성경의 핵심 인물인&amp;nbsp;&lt;strong&gt;사도 바울의 생애와 사역&lt;/strong&gt;을 통해 하나님이 일꾼을 세우시고 사용하는 영적 원리를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바울이 이방인 선교와 성경 기록이라는&amp;nbsp;&lt;strong&gt;거룩한 소명&lt;/strong&gt;을 완수할 수 있었던 비결이 출생 성분부터 학문적 배경까지 세밀하게 안배된&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섭리와 준비&lt;/strong&gt;에 있었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쓰임 받는 일꾼의 필수 조건으로&amp;nbsp;&lt;strong&gt;자질의 비축, 성품의 도야, 순종의 훈련&lt;/strong&gt;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제시하며, 바울조차 혈기와 교만을 다스리기 위해 일평생&amp;nbsp;&lt;strong&gt;회개와 겸손&lt;/strong&gt;의 과정을 거쳤음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독자들에게 각자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인지하고,&amp;nbsp;&lt;strong&gt;회개를 통한 성품 변화&lt;/strong&gt;와&amp;nbsp;&lt;strong&gt;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이해&lt;/strong&gt;를 통해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그릇으로 거듭날 것을 독려하는 목적을 지닙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0)] ChatGPT Image 2026년 8월 3일 오후 12_44_5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46/263/ab1b7771e62060d40d776c7f9dc4f3a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0)] The_Forged_Apostle.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46/263/11094a73c9efd811fa7d82561b87f9e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0)] The_Forged_Apostle.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46/263/f75ec536f19e3f4500a7dd5654455b5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0)] The_Forged_Apostle.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46/263/7666fca85122868f740765af731f6d3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0)] The_Forged_Apostle.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46/263/1ae32e820cd7479756aba4da6df88be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0)] The_Forged_Apostle.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46/263/685e427c764a4d112c32f4fe0dea6bc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0)] The_Forged_Apostle.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46/263/ffaeed9296651805fd12beba96a1074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0)] The_Forged_Apostle.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46/263/807addfafb60907afcfecbbab04cf8d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0)] The_Forged_Apostle.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46/263/faa2332b96a8b4bfb3e105734a9f3ac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0)] The_Forged_Apostle.pdf_9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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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0)] 사도_바울의_준비와_소명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46/263/d77652712e5454961cad2dac54df170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0)] The_Divine_Blueprint_of_Paul.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46/263/825d44cef2e5a1f628a9b3b382d287e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0)] The_Divine_Blueprint_of_Paul.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46/263/4ae0931b93c6e23f6b325e7818044ee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0)] The_Divine_Blueprint_of_Paul.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46/263/2ea73857e501264240aac0f8e10e7ea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0)] The_Divine_Blueprint_of_Paul.pdf_4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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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56)] 이사야의 예언(16) 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8) 천년왕국과 새하늘과 새 땅은 다른 시대이다(이사야2:2~4)_2026-07-31(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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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7-31T09:06:40+09:00</published>
		<updated>2026-07-31T13:42:56+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56)] 이사야의 예언(16) 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8) 천년왕국과 새하늘과 새 땅은 다른 시대이다(이사야2:2~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Gn6ja5T9d-A 기독론(156) 이사야의 예언(16) 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8) &quot;천년왕국과 새 하늘과 새 땅은 다른 시대이다&quot; (이사야2:2~4)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예수님은 알파와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56)] 이사야의 예언(16) 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8) 천년왕국과 새하늘과 새 땅은 다른 시대이다(이사야2:2~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Gn6ja5T9d-A&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Gn6ja5T9d-A?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56)&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20px;&quot;&gt;이사야의 예언(16)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20px;&quot;&gt;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8)&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amp;quot;천년왕국과 새 하늘과 새 땅은 다른 시대이다&amp;quo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20px;&quot;&gt;(이사야2:2~4)&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한 분 하나님이다. 구약에서 장차 오실 이를 여호와라고 예언했지만 실제 역사 속에 오신 분은 예수님이었다. 그런데 여호와가 강한 자와 왕과 심판자와 상 주시는 이로 오신다는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며, 신약에서는 그 한 분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제 재림과 심판에 관한 예언을 마무리하면서 천년왕국과 새 하늘과 새 땅의 관계를 좀 더 살펴보아야 한다. 요한계시록 20장 4절과 6절에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한다는 말씀이 나온다. 성경에 &amp;lsquo;천년왕국&amp;rsquo;이라는 합성어는 없지만, 교회는 이 말씀을 설명하기 위해 천년왕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왔다. 그렇다고 천년 왕국의 시대를 성경에서 지워 버릴 수는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문제는 천년왕국이 언제 어디에서 이루어지느냐는 것이다. 어떤 이는 예수님의 재림 뒤에 이 땅에서 문자적인 천 년 동안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지금 지상의 교회가 영적인 왕권을 행사하는 기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두 견해 모두 요한계시록 20장의 &amp;lsquo;살아서&amp;rsquo;, &amp;lsquo;첫째 부활&amp;rsquo;, &amp;lsquo;보좌&amp;rsquo;, &amp;lsquo;사탄의 결박&amp;rsquo;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은 초대교회가 오랜 기간 예배와 가르침 속에서 사도적 권위를 분별하여 받아들인 정경이다.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 오늘의 신약 27권 목록이 확인되기까지 교회는 여러 편지와 묵시문서를 검토했다. 몇몇 학자가 임의로 한 책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 교회가 사도성과 구약 및 복음의 일치 여부를 오랜 세월 검증하였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천 년의 왕 노릇이 두 번만 나온다고 해서 무시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서도 계시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줄의 시간 순서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은 종말을 향해 시간적으로 진행되지만, 중간중간 이미 지나간 역사를 다시 끌어와 특정 인물과 사건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를 놓치면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 사이에 문자적인 천 년을 집어넣고, 재림 뒤에 과도기적 지상 왕국이 있다고 결론 내리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년왕국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새 하늘과 새 땅과 같은 시대는 아니다. 천년왕국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뒤 천국에서 이긴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하는 현재의 시대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은 예수님의 재림과 최후 심판 뒤에 시작되는 영원한 세계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여호와로 예언된 재림주가 왜 예수님이며, 계시록과 이사야와 미가의 예언을 어떻게 함께 읽어야 하고, 천년왕국이 언제 어디에서 이루어지며 재림 때 어떻게 끝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2. 여호와로 예언된 재림주가 왜 예수님인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은 여호와께서 오신다고 반복해서 예언한다. 여호와께서 심판하러 오시고, 강한 자와 왕으로 오시며, 자기 백성에게 상을 주신다고 말한다. 그날도 &amp;lsquo;여호와의 날&amp;rsquo;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신약에서 실제로 오신 분도, 다시 오실 분도 예수님이다. 그러므로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왔다고 설명하기보다 신약의 예수님이야말로 바로 구약에서 여호와로 자신을 나타내신 한 분 하나님이라고 이해해야 모든 예언이 맞아떨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와를 오직 아버지의 이름으로 정하고 예수를 그와 분리된 아들의 이름으로만 보면, &amp;lsquo;여호와가 오신다&amp;rsquo;는 예언과 &amp;lsquo;예수께서 오신다&amp;rsquo;는 성취가 갈라진다. 그러나 한 분 하나님이 구약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계시하시고 신약에는 아들로 오셔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구원 사역을 이루셨다고 보면 두 증언은 하나가 된다. 칼빈도 여러 구약 본문의 여호와를 그리스도와 연결하여 해석하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재림 때 예수께서 행하시는 일도 여호와의 일이다. 마지막 나팔이 울리면 세상 나라가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고, 그분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신다. 이어 죽은 자를 심판하고, 선지자와 성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을 주며,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킨다. 이것은 단지 한 시대의 정치적 왕권을 회복하는 일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역사를 종결하는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성경은 마지막의 일곱째 나팔이 울릴 때 세상 나라는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고 그분은 영원히 왕 노릇 하신다고 증언하고 있다(계 11:1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잠시 공중에서 교회를 다스린 뒤 땅의 왕국을 세우는 제한된 왕이 아니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으로서 죽은 자를 심판하고 영원한 나라를 여신다. 성도에게 주시는 상도 공중에 잠깐 설치했다가 사라지는 보상이 아니다. 천국의 집과 면류관과 보좌의 자리는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누리는 기업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재림을 해석할 때에도 예수님이 누구신지에서 출발해야 한다. 예수님을 여호와와 분리된 또 하나의 신적 존재로 이해하거나, 재림을 유대 민족의 정치적 회복을 위한 중간 사건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악인들과 악한 영들을 심판하고, 자기 백성을 영원한 새 창조로 인도하신다는 큰 틀 안에서 천년왕국을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3. 요한계시록 20장은 왜 단순한 시간 순서로 읽으면 안 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에는 시간의 진행과 초점의 이동이 함께 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은 역사가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순서를 그대로 보여 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한 사건을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카메라가 멀리서 전체 풍경을 비추다가 어느 한 장면을 가까이 당겨 그 시작과 진행과 결말을 다시 보여 주는 것과 같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 11장에서는 일곱째 나팔이 울리고 재림과 심판과 상급이 선포된다. 죽은 자를 심판하고 성도에게 상을 주며 악인을 멸망시키는 것은 역사의 마지막 장면인 것이다. 그런데 바로 다음 12장은 해를 옷 입은 여자와 붉은 용과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 아이의 출생을 보여 준다. 시간 순서대로라면 재림 뒤에 예수께서 다시 태어나는 셈이 되므로 말이 되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계시록 12장은 이미 초림하신 그리스도와 그분을 대적한 사탄의 역사를 다시 끌어와 보여 준다. 해를 옷 입은 여자는 이기는 자를 산출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체를 가리키며,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 아이로서 첫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다. 이어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고 끝까지 주의 일을 지킨 성도들도 이기는 자라 되어 철장 권세를 받는다. 이처럼 12장은 11장 뒤에 일어난 새 사건이 아니라 구속 역사를 다른 초점으로 재조명한 장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같은 원리가 계시록 19장과 20장에도 적용된다. 19장의 아마겟돈 전쟁 뒤에 20장의 천 년과 곡과 마곡의 전쟁이 기록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세 사건이 시간적으로 차례차례 일어난다고 볼 수 없다. 20장은 사탄이 어떻게 결박되었고, 그동안 누가 왕 노릇 하며, 마지막에 사탄과 그 추종 세력이 어떻게 심판받는지를 천지창조 이후의 영적 전쟁이라는 초점에서 다시 설명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알 것은 계시록 11장은 일곱째 나팔 때 죽은 자들의 심판과 성도들의 상급과 악인들의 멸망이 함께 일어난다고 선포한다는 사실이다(계 11:1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구절은 &lt;strong&gt;주 예수님의 재림의 목적이 지상 천년왕국에 들어갈 사람을 고르는 데 있지 않음&lt;/strong&gt;을 보여 준다. 주 예수님의 재림은 죽은 자를 심판하고 상 줄 자에게 상을 주며 악인을 멸망시키는 것은 크고 흰 보좌의 최후 심판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계 20:11-15). 재림 뒤에 심판이 덜 끝난 상태로 육체의 사람들이 천 년을 더 살아가는 과도기적 세계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계시록을 단순한 연대기만으로 읽으면 아마겟돈 전쟁, 지상 천년왕국, 곡과 마곡의 전쟁, 백보좌 심판이라는 도표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초점 이동과 반복 확대의 구조로 읽으면 아마겟돈과 곡과 마곡은 같은 마지막 반역을 다른 관점에서 보여 주고 있으며, 재림과 최후 심판은 한 종말 사건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요한계시록 전체와 베드로후서 3장의 새 창조를 함께 살리는 해석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4. 이사야의 평화 시대는 왜 지상 천년왕국처럼 보이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역사적 전천년설이 가장 강하게 붙드는 본문 중의 본문은 사실 이사야의 평화 예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첫째로, 이사야 2장은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높이 서고 만방이 예루살렘으로 모이며,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고 열방이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사 2:2-4). 이 장면만 보면 재림하신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아 유대인을 통해 이방인을 가르치는 지상 왕국처럼 보인다.&amp;nbsp;이사야는 말일에 민족들이 여호와의 전에 모여 말씀을 배우고 칼과 창을 농기구로 바꾸는 평화가 올 것이라고 예언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2:2-4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둘째로, 이사야 11장은 이리와 어린 양, 표범과 어린 염소, 송아지와 어린 사자가 함께 사는 세상을 보여 준다.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고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한다. 사탄과 악한 영의 미혹이 사라지고 동물의 포식성까지 타락 이전으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다는 말씀도 유대인이 제사장 나라가 되어 열방을 가르치는 천 년의 평화 시대라는 해석을 낳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셋째로, 이사야 65장은 그 견해에 더 직접적인 근거를 제공한다(사 65:17-25). 하나님이 새 하늘들과 새 땅을 창조하고 예루살렘을 기쁨으로 삼지만 그 세계에는 여전히 죽는 사람이 있다.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고 하고 백 세가 못 되어 죽는 자를 저주받은 자라고 한다. 사람의 수명이 나무의 수한과 같고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지만 죽음과 저주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amp;nbsp;이사야는 그 평화 시대에 수명이 크게 연장되지만 죽음과 저주의 가능성이 남아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사 65:2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65:20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넷째로, 이사야 66장에는 모든 혈육이 매월 초하루와 안식일에 여호와 앞에 예배하러 온다고 기록되어 있다(사 66:22-24). 스가랴 14장의 초막절 예언까지 포함시켜 함께 읽으면, 예루살렘에 제3성전이 세워지고 제사가 회복되며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매월 초하루와 안식일과 초막절과 같은 절기를 지키러 오며,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가르치는 나라가 올 것처럼 보인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이 본문들을 재림 뒤 지상 천년왕국의 제도와 예배로 연결하여 해석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렇게 이사야 2장, 11장, 65장, 66장만 한데 모으면 전천년설은 매우 성경적인 것처럼 보인다. 평화, 장수, 예루살렘, 성전, 안식일, 열방의 순례가 모두 한 그림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언이 처음 주어진 역사적 상황과 같은 시대의 선지자가 그 예언을 어떻게 설명했는지를 확인하지 않으면, 일차적 성취를 건너뛰고 먼 미래의 지상 왕국부터 만들어 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5. 미가 4장은 이사야의 평화 예언을 어떻게 풀어 주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와 독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미가는 이사야 2장과 거의 같은 평화 예언을 전했다. 여호와의 전의 산이 높이 서고, 많은 이방 사람이 말씀을 배우려고 오며, 칼을 보습으로 만들고 창을 낫으로 바꾸고,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는다고 했다(미 4:1-5).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 두려움 없이 사는 모습도 덧붙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미가는 이 평화가 언제 시작될 것인지를 이어지는 문맥에서 밝혀 준다. 하나님은 저는 자와 쫓겨난 자와 환난받은 자를 모으고, 멀리 쫓겨났던 자들을 강한 나라가 되게 하며 시온에서 다스리겠다고 하신다. 그 백성들이 자기의 성읍을 떠나 들에 거주하고 바벨론까지 이르지만, 하나님이 거기에서 그들을 원수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어 다시 끌어오신다고 말씀한다. 여기서 미가는 시온의 회복을 바벨론에 끌려간 백성이 구원받아 돌아오는 사건과 연결하고 있다(미 4:6-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미 4:6-1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 발을 저는 자는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들이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다스리리라 하셨나니 너 양 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여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 이제 네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너희 중에 왕이 없어졌고 네 모사가 죽었으므로 네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함이냐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주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이사야와 미가의 평화 예언은 일차적으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유대 백성을 향한 약속&lt;/strong&gt;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을 다시 예루살렘에 모으고, 우상을 버리고 말씀만을 따르는 제사장 나라로 세워 열방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배우게 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만 했다면 전쟁과 수탈이 멈추고 장수와 평화를 누리는 나라가 될 수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지 못했다. 다시 죄를 짓고 우상을 따랐다. 그리고 심지어 메시야가 오셨을 때에도 그분을 배척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듯 예루살렘 자녀를 모으려 했으나 그들이 원하지 않았다고 탄식하셨다(마 23:37). &lt;strong&gt;하나님의 예언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백성이 약속에 믿음과 순종으로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적 형태의 충만한 성취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스겔이 본 성전과 열두 지파의 땅 분배도 같은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은 회복된 백성이 성전 중심으로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셨지만 그 모습은 문자 그대로 완성되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육적인 이스라엘이 이루지 못한 사명을 영적인 이스라엘인 교회를 통해 이루어 가셨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성령 안에서 한 몸이 되고, 모든 민족이 교회로 나아와 예수님을 배우며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가 말한 여호와의 산과 예루살렘과 율법의 전파는 교회 시대에서 영적으로 성취되고 있다. 예수님이 왕으로 다스리시고,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며,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아직 세상에 전쟁과 악이 남아 있으므로 예언의 실제적인 완성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지겠지만, 그것을 재림 뒤의 유대인 중심 지상 천년왕국으로 돌릴 필요는 없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6. 세대주의적&amp;middot;역사적 전천년설은 어디에서 빗나갔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세대주의적 전천년설&amp;#39;은 어떤 주장인가? 그리고 이것은 과연 성경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란 교회 시대가 끝날 때 예수께서 먼저 공중에 오셔서 교회를 휴거시키고, 공중에서 칠 년 동안 혼인 잔치를 여신다고 말한다. 같은 기간 이 땅에서는 적그리스도가 통치하며 칠 년 환난이 일어난다. 유대인들은 처음 삼 년 반 동안 적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따르다가 그가 성전에 앉아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할 때 잘못을 깨닫고, 후 삼 년 반의 환난 중에 회개한다고 설명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뒤 예수께서 지상에 강림하여 문자적인 천 년 왕국을 세우고, 회복된 유대인이 제사장 나라가 되어 이 땅에서 이방인을 가르친다고 본다. 이때 제3성전이 건축되고 절기와 제사가 회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공중으로 휴거된 교회는 하늘에서 땅을 통치한다는 것이다. 존 넬슨 다비와 스코필드의 세대주의 체계가 이러한 도표를 발전시켰고, 순복음권을 비롯한 여러 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데살로니가전서 4장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한 성도가 칠 년 동안 머문다고 말하지 않는다. 죽은 성도가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성도도 함께 끌어 올려 주를 영접하며, 그 결과로 항상 주와 함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공중 영접은 영원히 주와 함께하는 시작인 것이지 지상 천년왕국 전의 임시 대기 기간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주께서 강림하실 때 죽은 성도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 있는 성도들과 함께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여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증언한다(살전 4:16-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살전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어린양의 혼인 잔치도 공중에서 열리는 칠 년 행사가 아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신랑 집의 문이 닫힌다. 신랑의 집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마련된 영원한 처소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천국 집과 면류관과 보좌를 상으로 받는 곳도 공중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나라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amp;#39;역사적 전천년설&amp;#39;은 세대주의의 지나친 이스라엘&amp;middot;교회 구분과 환난 전 휴거를 고치려 했다. 교회가 환난을 통과하고, 환난 뒤 예수께서 재림하며, 그 뒤 지상 천년왕국과이 있고, 이어서 곡과 마곡의 전쟁과 백보좌 심판이 차례로 온다고 본다. 세대주의보다 단순하고 계시록의 기록 순서에도 가까워 보여 많은 이가 가장 성경적이라고 생각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지만 역사적 전천년설도 계시록 19장과 20장을 한 줄의 시간 순서로만 읽지 못한 채 빗나갔다. 그리고 이사야에 나오는 4가지 평화 예언들을 바벨론 귀환과 교회 시대의 영적 성취에서 떼어 재림 뒤의 과도기적 왕국에 배치한다. 그러니 이러한 해석은 재림 때 죽은 자를 심판하고 성도에게 영원한 상을 주며 악인을 멸망시킨다는 계시록 11장의 선언과도 조화되기 어렵다(계 11:1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성전과 제사를 다시 세우는 해석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를 구약의 그림자로 되돌릴 위험성이 매우 크다. 실체이신 예수님이 오셨고 성령께서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삼으셨는데, 마지막 구원을 위해 다시 육체적 성전과 제사 제도가 필요하다고 할 수 없다. 재림 뒤의 지상 천년왕국은 분명한 성경 진술이 아니라 여러 예언을 문자적으로 조합하여 만든 과도기적 가정의 산물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7. 전통적 무천년설은 첫째 부활과 사탄 결박을 어떻게 오해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전통적인 무천년설은 어떠한가? 무천년설은 재림 뒤에 별도의 지상 천년왕국이 없고, 재림과 함께 최후 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된다고 본다. 그런데 이러한 큰 틀은 옳다. 이러한 무천년설은 어거스틴이 그 체계를 정리한 뒤 루터와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이 이어받았고,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앤드루 머리(머레이), 루이스 벌코프 같은 개혁주의 인물들도 무천년설을 따랐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지만 전통적 무천년설은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 왕 노릇을 주로 지상 교회의 영적 통치로 설명한다. 성도가 거듭나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것을 왕 노릇하는 것으로, 중생을 첫째 부활로, 복음 전파를 위해 사탄의 활동이 제한된 것을 사탄의 결박으로 해석한다. 이 설명은 지상 천년왕국의 문제를 피하지만 본문이 말하는 죽은 자들의 영혼과 보좌와 부활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무천년설은 사도 요한이 보았던 바, 죽은 자들이 살아나서 천년동안 왕노릇한다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계 20:4-6). 그때 사도 요한이 본 이들은 누구였는가? 그들은 이미 예수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죽임을 당해 죽은 자들이다. 그들은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 않은 이들로서, 이긴 자들이며, 죽었으나 &amp;lsquo;살아서&amp;rsquo; 곧 부활하여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한다. 요한계시록 20:5의 말씀은 이들의 살아남을 첫째 부활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첫째 부활을 살아 있는 불신자가 거듭나는 사건으로만 돌릴 수 없다.&amp;nbsp;요한계시록은 분명하게 순교와 신앙의 지조를 지킨 이들의 영혼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는 것을 첫째 부활이라고 말한다(계 20:4-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0:4-6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은 죽은 뒤 부활의 몸을 입고 천국에 이미 들어간 채 있는 이긴 자들이다. 예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시고 성도들의 처소를 예비하신 뒤, 주 예수께서는 낙원에서 기다리고 있던 구약의 이긴 자들을 천국으로 옮기셨고, 그들 중에는 주님이 마련해주신 보좌에 앉아서 왕 노릇 하기 시작했다. 그 뒤 믿음으로 죽은 신약의 성도들도 역시 심판을 받아 왕 노릇하기에 합당한 자는 그 왕 노릇에 동참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탄의 결박도 성도들이 사탄의 권한이 제한되어 귀신들을 쫓는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요한계시록 20장 1절에서 3절의 말씀을 보자. 이 때 한 천사(미가엘로 추정됨)가 용을 붙잡는데, 그 용은 분명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고 특정하고 있다. 한 천사는 그를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인봉하여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한다. 고로 이 말은 모든 귀신들을 활동하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탄이라는 한 인격적 존재가 무저갱에 갇혀 직접 활동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때&amp;nbsp;요한은 사탄이 천 년 동안 무저갱에 결박되었다가 그 기간 뒤에 잠깐 놓일 것이라고 알려준다(계 20:1-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0:1-3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지금 이 순간도 귀신들은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사탄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이후 한 천사에 의해 무저갱에 결박된 채 있다. 그런데 사탄은 자신이 무저갱에 갇힌 신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세와 능력을 사탄의 제2인자와 3인자에 주어서 자신의 일을 하게 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바, 바다에서 올라오는 [첫째]짐승과 땅에서 올라오는 [둘째]짐승을 가리킨다. 이들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세력을 자기 대리자로 사용한다. 마지막 때에는 잠깐 놓여 온 세상을 미혹하지만, 재림하신 주님이 그와 악의 세력을 불못에 던지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천년왕국을 지상 교회의 활동으로만 해석하는 무천년설도 정확하지 않다. 지상의 교회는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복음을 전하지만, 계시록 20장의 보좌에서 왕 노릇 하는 자들은 천국에 먼저 들어간 이긴 자들이기 때문이다. 큰 틀에서는 재림 뒤 지상 왕국이 없다는 무천년설과 같지만, 첫째 부활과 사탄의 개인적 결박과 왕 노릇의 장소를 성경 본문대로 다시 구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8. 천년왕국은 언제 어디에서 이루어지며 재림 때 어떻게 끝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천년왕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뒤에 이미 시작되었다. 부활 승천하기전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집에 성도들이 거할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셨다(요 14:1-3). 그 처소가 마련되기 전 구약의 성도들은 낙원에서 기다렸으나, 주님이 승천하신 뒤 합당한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 보좌에 앉아 왕 노릇 하고 있다. 이후 죽은 성도들도 낙원에서 심판을 받고 자기 상급에 따라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과 보좌를 받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여기에서 &amp;#39;천 년(1,00년)&amp;#39;은 반드시 달력의 정확한 천 년만을 뜻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에서 일곱과 열과 열둘 같은 수가 &lt;strong&gt;실제 의미와 상징성을 함께 지니듯&lt;/strong&gt;, 천은 열 곱하기 열 곱하기 열로서 &lt;strong&gt;하나님이 정하신 충만한 기간&lt;/strong&gt;을 가리킨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이천 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으므로 문자적인 천 년으로 제한할 수 없다. 하나님은 구원받을 자의 수가 차기까지 오래 참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기간에 사탄은 무저갱에 결박되어 있고, 천국의 이긴 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한다. 땅에서는 교회가 복음을 전하며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다. 따라서 하늘의 천년왕국과 땅의 교회 시대는 같은 기간에 진행되지만 같은 장소와 같은 통치는 아니다. 왕 노릇의 본 무대는 천국의 보좌이며, 지상 교회는 그리스도의 권세를 받아 복음과 영적 전쟁을 수행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국에서 보좌에 앉을 이긴 자의 수가 차면 천년왕국의 기간도 끝을 향한다. 요한계시록 7장과 14장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은 하나님의 인침을 받고 끝까지 충성한 종들의 충만한 수를 가리킨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성숙한 종들을 보내고 계신다. 그리고 그 수가 차 가고 있는 것은 재림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영적 표지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이 공중에 재림하시면 지금까지의 천년왕국은 끝이 날 것이다. 그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가 먼저 일어나고 살아 있는 성도도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 주님이 심판을 위해 천국을 떠나 공중에 계시는 동안 새로 죽은 자들의 심판은 유보되고, 마지막 백보좌 심판에서 모든 죽은 자가 자기 행위대로 심판받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계시록은 크고 흰 보좌 앞에서 죽은 자들이 행위책과 생명책에 따라 심판받으며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진다고 말한다(계 20:11-1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0:11-15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다가 내어주는 죽은 자들을 노아 홍수 때 죽은 자들과 연결하여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본문이 직접 밝힌 내용이 아니라 하나의 추정에 해당한다. 분명한 것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와 기록되지 못한 자가 최종적으로 갈리고, 사망과 음부까지 불못에 던져진다는 사실이다. 이 심판 뒤에는 더 이상 육체의 사람이 자녀를 낳고 죽는 과도기적 세계가 남지 않는다. 왜냐하면 백보좌 심판이 영원 천국과 영원 지옥으로 나누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천년왕국 다음에 오는 것은 어떤 세상인가? 그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 시대이다. 천년왕국은 천국에서 이긴 자들이 왕 노릇 하는 현재의 유한한 시대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은 최후 심판 뒤에 시작되어 세세토록 지속되는 영원한 시대다. 그곳에는 사망과 저주와 아픔이 다시 없으며, 성도들은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을 섬기고 영원히 왕 노릇 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지금이 준비할 때다. 지금 죽는다면 곧 심판받아 천국의 집과 면류관과 보좌의 자리가 결정된다. 재림 뒤에 지상 천년왕국에서 다시 믿고 훈련받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날마다 회개하여 두루마기를 빨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한 사람이라도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도록 복음을 전하고 섬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9. 나오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와로 예언된 재림주가 왜 예수님이며, 계시록 20장을 단순한 시간 순서로 읽으면 왜 지상 천년왕국이라는 잘못된 결론에 이르고, 이사야의 평화 예언을 미가 4장의 바벨론 귀환 문맥으로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또한 세대주의적&amp;middot;역사적 전천년설과 전통적 무천년설의 한계를 구별하고, 첫째 부활과 사탄의 결박과 천 년의 왕 노릇이 언제 어디에서 이루어지는지를 확인하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년왕국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이 두 번이나 증언하므로 반드시 존재한다. 다만 그 나라는 재림 뒤에 육체의 사람들이 들어가 천 년 동안 사는 지상 왕국이 아니다. 예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뒤 사탄은 무저갱에 결박되었고, 천국에 들어간 이긴 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서 왕 노릇 하고 있다. 이것이 지금 계속되는 천년왕국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가 예언한 예루살렘의 평화와 열방의 순례는 먼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러나 백성이 온전히 순종하지 않아 문자적인 형태로 완성되지 않았고,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이방인을 불러 한 백성으로 만드셨다. 마지막에는 새 예루살렘에서 전쟁과 죽음과 저주가 전혀 없는 영원한 모습으로 그 뜻을 완성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환난 전 휴거와 공중 칠 년 혼인 잔치와 유대인 중심의 제3성전은 성경의 명시적인 가르침이 아니다. 역사적 전천년설이 말하는 과도기적 지상 왕국도 계시록의 초점 이동 구조와 재림 때 이루어지는 최후 심판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전통적 무천년설 역시 첫째 부활을 중생으로, 사탄의 결박을 일반적인 축사로, 왕 노릇을 지상 교회의 활동으로만 해석한 부분을 바로잡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 66권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한 본문만 떼어 도표를 만들지 말고, 같은 시대의 예언과 앞뒤 문맥과 계시록 전체의 구조를 함께 보아야 한다. 논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천국을 준비하는 것이다. 회개와 충성으로 천국 집과 면류관과 보좌의 자리를 준비하고, 주님이 맡기신 영혼을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년왕국이 끝나면 재림과 최후 심판을 거쳐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린다. 그날에는 더 준비할 과도기가 없으므로 오늘 죄를 자백하고 악한 영의 미혹을 버리며 복음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그리하여 첫째 부활에 참여하고 새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왕 노릇 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7월 31일(금)&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구약의 여호와가 곧 신약의 예수님이라는&amp;nbsp;&lt;strong&gt;기독론적 관점&lt;/strong&gt;을 바탕으로, 요한계시록의&amp;nbsp;&lt;strong&gt;천년왕국&lt;/strong&gt;을 재해석하여 종말론적 혼란을 바로잡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천년왕국이 재림 이후 지상에 세워지는 과도기적 통치 기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부터 재림 전까지&amp;nbsp;&lt;strong&gt;천국 보좌에서 이긴 자들이 누리는 현재적 통치&lt;/strong&gt;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이사야의 평화 예언을 문자적 지상 왕국의 근거로 삼는 전천년설의 오류를 지적하며, 이를&amp;nbsp;&lt;strong&gt;바벨론 포로 귀환&lt;/strong&gt;이라는 역사적 배경과&amp;nbsp;&lt;strong&gt;교회의 영적 성취&lt;/strong&gt;로 이해할 것을 제안합니다. 결국 성도들이 주목해야 할 핵심은 재림 뒤의 가상적인 왕국이 아니라,&amp;nbsp;&lt;strong&gt;회개와 충성&lt;/strong&gt;을 통해 첫째 부활에 참여함으로써 장차 도래할&amp;nbsp;&lt;strong&gt;새 하늘과 새 땅&lt;/strong&gt;의 영원한 기업을 오늘날 준비하는 것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6)] ChatGPT Image 2026년 7월 31일 오후 01_12_4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54/263/cfd4f92057c7e74e119101f31a9cdb9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6)] The_Eternal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54/263/6f78f71f5b4aed87d570e9130b810f5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6)] The_Eternal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54/263/bdce0369a1e0729ca379722dff9d16b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6)] The_Eternal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54/263/1d1a2639d37041e826653061d21b0a8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6)] The_Eternal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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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6)] 종말론적_시간의_바른_이해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54/263/df4dbe100579668f19be6c10212eddf7.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6)] Decoding_the_Eternal_Kingdom.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54/263/d586c679050026a230f12a167c13c35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6)] Decoding_the_Eternal_Kingdom.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54/263/7a76e370e26ffcb905f5ea200d367a2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6)] Decoding_the_Eternal_Kingdom.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54/263/e601fe3d69444b9f5f804416b0d6950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6)] Decoding_the_Eternal_Kingdom.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54/263/21e9d44498aafc08d78d87c913dc835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6)] Decoding_the_Eternal_Kingdom.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54/263/2e5a0450c88f13ef9a7f822eef52c26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6)] Decoding_the_Eternal_Kingdom.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54/263/a525f8b5db592f976a093fcca37d37f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6)] Decoding_the_Eternal_Kingdom.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54/263/165a3c2ffb5db4a644d68676f2798d2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6)] Decoding_the_Eternal_Kingdom.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54/263/ccdc5bc9ead0b3a6395af09b69d3122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6)] Decoding_the_Eternal_Kingdom.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54/263/342cd43cb5afe1d52a865714b956306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6)] Decoding_the_Eternal_Kingdom.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54/263/e5535d935f4306d877403b59b63a986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6)] Decoding_the_Eternal_Kingdom.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54/263/d36d9abe4c6ae289fbe8fe572f48658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55)] 이사야의 예언(15) 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7)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러 오신다(이사야65:17~25)_2026-07-30(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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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7-30T09:38:17+09:00</published>
		<updated>2026-07-31T01:14:32+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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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55)] 이사야의 예언(15) 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7)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러 오신다(이사야65:17~2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y0_DUg7dzUw 기독론(155) 이사야의 예언(15) 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7) &quot;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러 오신다(01)&quot;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이사야는 장차 오실 메시야가 누구시며 무...</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55)] 이사야의 예언(15) 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7)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러 오신다(이사야65:17~2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y0_DUg7dzUw&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y0_DUg7dzUw?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55)&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이사야의 예언(15)&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7)&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8px;&quot;&gt;&amp;quot;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러 오신다(01)&amp;quo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장차 오실 메시야가 누구시며 무슨 일을 행하실 것인지를 여러 모습으로 예언하였다. 그 가운데 &lt;strong&gt;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특징&lt;/strong&gt;을 살펴보면, 그분은 첫째, 여호와로 오시고, 둘째, 그날은 여호와의 날이며, 셋째, 악인과 악한 영들을 심판하시고, 넷째~여섯째, 충성한 자들에게 천국 집과 면류관과 보좌의 자리를 상으로 주시며, 일곱째, 만왕의 왕으로 다스리신다. 그리고 마지막 특징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러 오신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lt;strong&gt;새 하늘과 새 땅&lt;/strong&gt;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종말론의 전체 구조가 달라진다. 종말론의 가장 큰 논쟁은 예수님의 재림 뒤에 이 땅에서 문자적인 천년왕국이 펼쳐진다고 볼 것인가, 아니면 지금 교회 시대가 계시록 20장이 말하는 천년왕국이며 주님의 재림과 함께 곧바로 최후의 심판과 영원한 새 창조가 시작된다고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한 교단의 교리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lt;strong&gt;이사야의 예언을 베드로와 요한에게 주신 후대의 계시와 어떻게 연결하느냐&lt;/strong&gt;의 문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만약 우리가 종말론을 잘못 이해한다면 재림 날짜와 재림 환상에 주장하는 특정 인물들의 주장에 쉽게 흔들릴 수 있다. 1992년 10월 28일 재림을 주장했던 다미선교회와 이장림의 사례처럼, 날짜를 계산하거나 천사가 알려 주었다는 환상을 앞세우는 주장은 사람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 예를 들어, 이단 신천지가 대한민국의 사건과 특정 인물을 계시록의 성취라고 풀이하고 이만희를 재림주와 같은 자리에 올려놓는 것도 마찬가지다. 육체를 가진 한 인간이 자신을 재림 예수라고 주장한다면 성경이 증언하는 재림과 전혀 맞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알레고리컬 성경해석방법을 교묘히 이용하는 신천지처럼 성경의 어느 구절만을 떼어 자기 주장에 맞추는 짝풀이와 비유풀이를 경계해야 한다. 이사야 65~66장에 나오는 &amp;#39;새 하늘과 새 땅&amp;#39;에 대한 예언을 존중하되, 베드로후서 3장과 요한계시록 20~22장이 그 예언의 최종 성취를 어떻게 밝히는지 같이 보아야 한다. 앞선 계시가 그림자를 보여 주었다면 뒤의 계시는 그 그림자가 가리킨 실체를 더 분명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재림하실 예수께서 어떻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며, 이사야의 예언이 사도들의 계시 안에서 어떻게 완성되고, 그 나라를 기다리는 성도가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재림해 창조와 심판을 행하실 여호와는 왜 예수님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의 재림 예언에서 먼저 눈여겨볼 사실은 &amp;lsquo;아들이 오신다&amp;rsquo;고 하지 않고 &amp;lsquo;여호와께서 오신다&amp;rsquo;고 말한다는 것이다. 여호와는 구약에 계시된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이다. 신약에서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자신을 밝히신 예수님은 바로 그 여호와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며, 다시 오실 때에도 한 분 하나님으로서 심판과 새 창조를 행하신다. 여호와를 오직 아버지의 이름으로, 예수를 그와 분리된 또 다른 아들의 이름으로만 생각하면 구약과 신약의 증언을 온전히 연결하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초림 때에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종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재림 때에는 왕과 심판자로 오신다. 그날은 주의 날이며 동시에 여호와의 날이다. 그분은 악인과 악한 영들을 심판하고, 충성한 성도들에게 약속한 상을 주며,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주는 다른 분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이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amp;ldquo;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amp;rdquo;고 말씀하신 까닭이 여기에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계시록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가 만물을 새롭게 하시며,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주신다고 증언한다(계 21:5-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1:5-7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사실을 붙들면 재림주를 지상의 어떤 육체적인 인물에게서 찾을 수 없다. 사람의 몸을 가진 교주가 자신을 재림주라고 선전하거나 자신을 통해서만 육체 영생과 천년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재림하실 예수님은 단지 능력 있는 인간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이만희가 여호와일 수 없고, 어떤 종교 지도자도 만물을 창조한 알파와 오메가가 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재림의 날짜를 안다고 주장하는 말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은 배교와 불법의 사람의 출현이라는 징조를 말하며, 말이나 영이나 편지로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도 쉽게 미혹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날짜를 맞히는 일이 아니라 오실 분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알고, 그분 앞에 설 수 있도록 회개와 충성으로 준비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이사야 65~66장의 새 하늘들과 새 땅은 어떤 세상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 65장이 보여 주는 새 하늘과 새 땅은 기쁨과 평화와 안전이 충만한 세상이다. 이전의 고통은 기억되지 않고, 예루살렘은 즐거움이 되며, 백성 가운데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사라진다. 집을 건축한 사람이 그 집에 살고,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이 그 열매를 먹는다. 침략자에게 집과 소산을 빼앗기던 저주의 역사가 끝나고, 하나님의 백성이 자기 손으로 수고한 것을 오래 누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며 예루살렘과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으실 것이라고 예언한다(사 65:17-1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65:17-19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세계에는 인간과 자연의 적대도 사라진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으며, 뱀은 흙을 먹는다. 이것은 인간의 타락 이전을 떠올리게 하는 평화의 그림이다. 사탄의 미혹과 열방의 침략으로 무너졌던 창조 질서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회복되는 모습을 이스라엘 백성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보여 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 66장도 하나님께서 지으실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한다. 그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백성과 이름이 보존되고, 모든 혈육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한다. 동시에 하나님께 패역한 자들의 심판도 나타난다. 그러므로 새 창조는 단순한 환경 개선이 아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백성과 하나님을 거역한 자가 최종적으로 갈리는 심판의 세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나님 앞에 항상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과 그 이름도 보존될 것이라고 말한다(사 66:2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66:22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 65장 17절의 히브리어 &amp;lsquo;샤마임 하다쉼&amp;rsquo;은 형태상 복수적인 &amp;lsquo;하늘들&amp;rsquo;을 사용한다. 다만 &amp;lsquo;샤마임&amp;rsquo; 자체가 히브리어에서 하늘을 가리킬 때 통상 쓰이는 형태이므로, 그 문법만으로 서로 다른 여러 하늘의 체계를 확정해서는 안 된다. 계시록 21장 1절은 단수인 &amp;lsquo;새 하늘&amp;rsquo;을 말하지만, 베드로후서 3장 13절은 다시 복수인 &amp;lsquo;새 하늘들&amp;rsquo;을 쓴다. 핵심은 단수와 복수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낡은 질서를 끝내고 의가 거하는 새로운 창조 질서를 여신다는 데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가 먼저 바라본 것은 전쟁과 수탈과 조기 죽음이 끝나고,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평화로운 세계였다. 그 예언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졌지만 그 뜻은 이스라엘 민족의 안녕에만 갇히지 않는다. 예루살렘과 시온을 중심으로 묘사된 회복은 마침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에게 열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새 창조를 향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이사야의 세계에 죽음과 저주가 남는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 65장의 새 창조에는 놀라운 평화가 있지만 죽음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고 부르고, 백 세가 되지 못해 죽는 자는 저주받은 자라고 한다. 사람의 수명이 나무의 수한과 같아지고 재난을 당하지 않지만, 죽음 자체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저주와 사망이 남아 있다는 점은 요한계시록 21~22장이 보여 주는 영원한 새 예루살렘과 결정적으로 다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는 그곳의 수명이 크게 연장되지만 죽음과 저주의 가능성은 남아 있는 모습으로 예언한다(사 65:2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65:20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 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대목 때문에 역사적 전천년설은 이사야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재림 뒤 지상에 펼쳐질 천년왕국으로 이해한다. 부활한 성도는 하늘에서 왕 노릇하고, 육체를 가진 사람들은 회복된 땅에서 장수하며 자녀를 낳는 과도기적 왕국을 말한다. 사탄이 결박되어 전쟁과 수탈이 멈추지만, 천년이 끝나기 전까지는 육체의 죽음이 남아 있다고 보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예언서는 먼 산맥을 한눈에 바라보듯 가까운 회복과 먼 영원한 완성을 한 장면 안에 겹쳐 보여 주기도 한다. 이사야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이해할 수 있는 장수와 풍요와 안전의 언어로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묘사했다. 그 그림 안에는 바벨론 포로와 열방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역사적 회복, 메시야가 다스리는 평화의 나라, 마지막 새 창조의 소망이 한꺼번에 담겨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이사야의 예언에 죽음이 남아 있다고 해서 영원한 새 창조에도 죽음이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없다. 후대의 계시는 그 예언이 가리킨 종착점을 더 선명하게 밝힌다. 요한이 본 새 예루살렘에는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과 곡함과 아픔도 없다. 이전 세계에 속한 처음 것들이 모두 지나갔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에서 죽음과 슬픔과 아픔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증언한다(계 21: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1:1-4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계시록 22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amp;ldquo;다시 저주가 없으며&amp;rdquo;라고 선언한다. 이사야의 그림에 남아 있던 죽음과 저주의 흔적이 사도 요한의 최종 계시에서는 완전히 제거된다. 따라서 이사야 65장의 평화 세계를 문자적인 미래 지상 천년왕국으로 고정하기보다, 하나님께서 바라신 회복의 이상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새 예루살렘으로 완성된다고 이해하는 것이 합당하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역사적&amp;middot;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무천년설은 무엇이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년왕국을 이해하는 대표적인 견해에는 역사적 전천년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무천년설이 있다. 역사적 전천년설은 예수께서 재림하신 뒤 이 땅에서 실제 천 년 동안 왕국을 다스리신다고 본다. 한국 장로교 안에서는 흔히 합동측 전통이 이 견해를 따르고, 이사야 65장의 장수와 평화 및 계시록 20장의 천 년을 중요한 근거로 삼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대주의적 전천년설도 재림 뒤 지상 천년왕국을 말하지만, 이스라엘과 교회를 강하게 구분하고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 사이에 환난과 휴거와 천년왕국을 세분한다. 순복음권과 여러 세대주의 전통에서 널리 받아들여졌다. 이 견해가 문자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유대인이 제사장 나라가 되고 이방인이 예루살렘에 와서 율법을 배우며 제3성전에서 다시 제사를 드리는 체계로 나아가기 쉽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성전과 제사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가리킨 모형이었다. 실체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단번에 속죄를 이루셨고, 성령께서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우셨다. 그런데 마지막 때에 다시 짐승의 제사와 초하루와 안식일의 문자적 제도로 돌아간다고 하면 그림자를 실체보다 앞세우는 문제가 생긴다. &amp;lsquo;백 투 예루살렘&amp;rsquo;이라는 구호도 복음을 땅의 예루살렘과 육체적 성전에 다시 묶는 방식으로 사용된다면 신중히 분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한국복음서원 계열의 일부 해석은 천년왕국을 충성한 성도에게 주는 보상의 나라로, 그 후 새 하늘과 새 땅을 모든 구원받은 자가 같은 신분으로 들어가는 영원 세계로 설명한다. 그러나 성도의 충성과 헌신에 대한 보상은 천 년의 한정된 기간으로 끝나지 않는다. 주님이 주시는 집과 면류관과 보좌의 자리는 영원한 나라에서 이어진다. 천년왕국을 보상 기간으로 한정하면 영원한 상급의 의미가 약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무천년설은 계시록의 천 년을 재림 뒤에 시작되는 별도의 지상 왕국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 교회 시대를 상징하는 기간으로 본다. 한국 장로교 통합측 전통이 대체로 이 견해를 따른다. 예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뒤 사탄은 무저갱에 결박되어 복음의 세계적 전파를 이전처럼 막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성도들은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한다. 마지막 때에 사탄이 잠시 놓이고 최후의 미혹과 전쟁이 일어난 뒤 주님이 재림하셔서 모든 심판을 완성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 밝히는 견해도 무천년설에 가장 가깝지만 기존의 모든 무천년설 설명과 완전히 같다는 뜻은 아니다. 계시록의 천 년은 문자적으로 정확히 365,000일을 계산하는 기간이라기보다 하나님이 정하신 충만한 기간이다. 베드로가 &amp;ldquo;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amp;rdquo;고 말한 것처럼, 묵시문학의 숫자는 실제 의미를 가지면서도 상징적 충만성을 함께 지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는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다르며, 주의 약속이 더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라고 말한다(벧후 3:8-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벧후 3:8-9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어느 교단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성도가 같은 종말론을 믿는 것은 아니다. 또한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정죄해서도 안 된다. 다만 서로 충돌하는 주장을 모두 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사야의 예언을 사도들의 최종 계시로 해석하고, 주님의 재림과 최후 심판과 영원한 새 창조가 하나의 종말 사건으로 이어진다는 성경의 큰 흐름을 붙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베드로와 요한의 후대 계시는 이사야 예언을 어떻게 완성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계시는 시대를 따라 점진적으로 밝아졌다. 아담에게는 생명나무와 에덴동산을 통해 육체를 가진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길을 보여 주셨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타락했을 때에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실패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과 어린양의 희생을 거쳐 마침내 아들을 보내셨고, 십자가와 부활로 죄와 사망을 이기는 길을 여셨다. 먼저 주어진 계시는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더 충만한 뜻을 드러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언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사람이 믿음으로 응답해야 할 책임이 함께 있다. 에스겔이 본 성전과 열두 지파의 땅 분배도 문자 그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북이스라엘 지파들이 흩어지고 남은 백성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 예언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성전 중심으로 온전히 회복하고 각 사람에게 영원한 기업을 주기 원하신다는 뜻을 모형으로 보여 주었으며, 그리스도와 교회와 새 예루살렘 안에서 더 크게 성취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 65~66장의 새 창조도 같은 방식으로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했다면 누릴 수 있었던 평화와 장수와 안전이 먼저 제시되었고, 동시에 그 그림은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보편적 구원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사명을 온전히 이루지 못했다. 예수께서 오셔서 참 이스라엘이 되시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새 사람으로 묶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후서 3장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될 때 현재의 물질 질서가 어떻게 되는지를 분명히 한다. 주의 날이 오면 하늘은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은 뜨거운 불에 풀어지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일이 드러난다. 파괴된 지구를 다시 원상복구하여 육체의 사람들이 천 년을 더 사는 장면이 아니라,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의 질서가 심판을 통과하여 의가 거하는 새 창조로 바뀌는 장면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는 주의 날에 현재의 하늘과 물질이 풀어지고, 성도가 의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고 증언한다(벧후 3:10-1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벧후 3:10-13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 21장은 그 새 창조의 중심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있음을 보여 준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지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으며,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거하신다. 여기서 &amp;lsquo;새&amp;rsquo;를 뜻하는 헬라어 &amp;lsquo;카이노스&amp;rsquo;는 단지 시간적으로 뒤에 생긴 것만이 아니라 질적으로 새로워진 것을 가리킨다. &amp;lsquo;먼저의 것&amp;rsquo;을 뜻하는 &amp;lsquo;프로토스&amp;rsquo;의 질서는 지나가고, 사망과 저주가 침범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질서가 열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새 예루살렘에는 밤이 없고 해와 달의 빛도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영광이 비추고 어린양이 그 등불이 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부활의 몸을 입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뵙고 영원히 왕 노릇한다. 이사야가 이리와 어린 양의 평화, 장수와 풍요의 언어로 내다보았던 소망이 요한에게 이르러 사망과 저주가 영원히 사라진 빛의 나라로 완성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따라서 후대의 계시는 이사야를 부정하지 않고 해석한다. 이사야는 예언의 씨앗과 그림을 주었고, 베드로는 현재의 물질 세계가 심판으로 풀어질 것을 밝혔으며, 요한은 새 예루살렘과 불못이라는 영원한 두 결말을 보았다. 앞선 예언을 문자적으로만 붙잡아 별도의 지상 천년왕국을 만들어 내기보다, 사도들에게 주신 완성된 계시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계 20:10은 아마겟돈과 곡과 마곡의 전쟁을 어떻게 밝혀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계시록 16장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나온다고 말한다. 용은 사탄이고, 짐승은 적그리스도의 권세이며, 거짓 선지자는 그 권세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는 미혹의 세력이다. 이 악의 삼위는 온 세상의 왕들을 모아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의 전쟁을 준비한다. 그러므로 마지막 전쟁은 단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군사 충돌이 아니라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함께 일으키는 영적 반역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계시록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에게서 나온 세 더러운 영이 왕들을 하나님의 큰 날의 전쟁으로 모은다고 증언한다(계 16:13-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6:13-14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계시록 19장은 아마겟돈 전쟁의 결말을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심판에 초점을 맞추어 보여 준다. 두 존재는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진다. 이어지는 계시록 20장은 사탄이 천 년 동안 결박되었다가 잠시 놓이고, 곡과 마곡을 미혹하여 성도들의 진을 에워싸게 하지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삼키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 뒤 마귀도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계시록 20장 10절의 헬라어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졌고, &amp;ldquo;그곳에 또한 짐승과 거짓 선지자&amp;rdquo;가 있다고 말한다. 동사가 생략된 이 표현은 문법만으로 세 존재가 정확히 같은 순간에 던져졌는지, 문자적인 천 년의 간격을 두고 던져졌는지를 확정하지 않는다. 개역개정의 &amp;ldquo;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amp;rdquo;도 그 점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한 접속사만으로 종말의 시간표를 단정하기보다 계시록 전체의 구조를 함께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은 마귀와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같은 불못에서 영원한 심판을 받는다고 증언한다(계 20: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0: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계시록 16장에서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한 전쟁을 준비하고, 19장에서는 인간 역사 속에 나타난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패배를 보여 주며, 20장에서는 그 배후인 사탄의 최종 멸망을 보여 준다. 이런 구조에서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은 서로 천 년이나 떨어진 두 전쟁이라기보다 같은 마지막 반역과 심판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묘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활동에, 다른 하나는 그들을 조종한 사탄의 활동에 초점을 맞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뒤 사탄의 권세를 제한하시고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게 하신 천년왕국의 기간이다. 사탄 자체는 무저갱에 결박되어 있고, 악한 영들은 세상에서 사람을 미혹하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 순교자들과 믿음으로 먼저 떠난 성도들은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한다. 마지막 때 사탄이 잠시 놓이면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통해 최후의 미혹을 일으키지만, 주님의 재림으로 그 반역은 즉시 끝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 뒤에 다시 별도의 지상 천년왕국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 주님의 재림은 최후 심판의 시작이 아니라 완성이다. 그때 악의 세력은 불못에 던져지고, 죽은 자들은 크고 흰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으며,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간다. 재림 이후에 회개하고 준비할 두 번째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깨어 있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영원한 새 예루살렘을 준비하는 성도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새 하늘과 새 땅을 아는 목적은 종말의 도표를 완성하는 데 있지 않다. 베드로는 이 모든 것이 풀어질 것을 안다면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을 기다려야 한다고 권면한다. 재림의 날짜를 계산하거나 누가 적그리스도인지 맞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옷이 깨끗한지, 내 이름이 생명책에 보존되어 있는지, 내게 맡기신 일에 충성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을 믿었다고 하면서 죄를 품고 회개하지 않는 것은 위험하다. 주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가 자동으로 처리되었으니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계시록은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복이 있으며 생명나무에 나아가고 성문을 통해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는다고 말한다. 두루마기를 빠는 것은 날마다 죄를 인정하고 어린양의 피를 의지하여 회개하는 삶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계시록은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생명나무와 성문에 나아가지만, 죄를 버리지 않는 자들은 성 밖에 있다고 경고한다(계 22:14-1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14-15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새 예루살렘 성 밖에 있다는 경고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안심한 채 죄를 짓고도 돌이키지 않는다면 성 안의 영광과 멀어질 수 있다. 성 밖의 상태를 어떻게 세부적으로 이해하든, 계시록의 분명한 요청은 음행과 살인과 우상숭배와 거짓을 버리고 두루마기를 빨라는 것이다. 구원의 확신은 회개를 없애는 구실이 아니라 더 거룩하게 살게 하는 힘이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 안에서 죄로 끌어가는 악한 본성과 영적 세력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바울은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게 하는 죄가 자기 안에 거한다고 탄식했다. 죄의 유혹은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욕망을 붙잡아 불순종으로 끌고 가는 실제적인 힘이다. 그러므로 말씀과 성령으로 자신을 살피고, 죄를 자백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악한 영의 역사를 물리쳐야 한다. 다만 모든 죄의 책임을 귀신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미혹을 분별하고 자기 선택을 회개하며 주님께 순종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일도 미루지 말아야 한다. 주님이 약속하신 보상은 천년 동안만 누리는 임시 보상이 아니다. 천국의 집과 면류관과 보좌의 자리는 영원한 나라에 속한다. 지금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섬기며, 맡겨진 직분에 충성하고,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모든 수고를 주님은 기억하신다. 새 예루살렘을 준비하는 일은 곧 그 나라에서 영원히 누릴 것을 오늘 믿음으로 쌓는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인공지능이 인간의 삶과 통제 체계를 급속히 바꾸는 시대를 보며 마지막 때의 징조를 분별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특정 기술 하나를 곧바로 적그리스도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기술과 권력이 사람을 하나님에게서 떼어 놓고 우상에게 경배하게 하는 방향으로 사용되는지를 깨어 살피는 것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보다 진리를 알고, 거짓 표적과 선전에 미혹되지 않으며, 어떤 대가가 따르더라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은 회개할 때요 충성할 때다. 적그리스도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고 환난이 극심해진 뒤에 준비하려 하면 너무 늦을 수 있다. 오늘 마음의 우상을 버리고, 형제를 용서하고, 감추어진 죄를 자백하고,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주님이 도둑같이 오실지라도 빛의 자녀에게 그날은 멸망의 기습이 아니라 오래 기다린 신랑을 맞이하는 기쁨의 날이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재림해 창조와 심판을 행하실 여호와가 왜 예수님인지, 이사야가 예언한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과 그 안에 죽음과 저주의 흔적이 남은 이유가 무엇인지, 전천년설과 무천년설은 어떻게 다르며, 베드로와 요한의 후대 계시가 이사야의 예언을 어떻게 완성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또한 계시록 20장 10절을 중심으로 아마겟돈과 곡과 마곡의 전쟁을 한 최후의 반역과 심판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묘사한 것으로 이해하고, 영원한 새 예루살렘을 준비하는 성도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사야가 본 평화로운 세계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을 보여 준다. 집을 짓고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으며, 심은 것을 자신이 먹고,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는 세상은 죄와 전쟁과 수탈이 끝난 하나님의 통치를 그린다. 그러나 그 예언의 완전한 종착점은 육체의 사람이 오래 살다가 여전히 죽는 지상 왕국이 아니다. 베드로가 말한 대로 처음 물질 질서가 심판으로 풀어지고, 요한이 본 대로 사망과 저주가 완전히 사라진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는 영원한 새 창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재림하시는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알파와 오메가이신 한 분 하나님이다. 그분은 악인과 악한 영을 심판하고, 충성한 자들에게 영원한 기업을 주신다. 어떤 육체적인 인간도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고, 어떤 날짜 계산이나 환상도 말씀보다 앞설 수 없다. 교단의 전통과 익숙한 도표가 아니라 성경의 전체 계시를 따라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에게 남은 일은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날마다 두루마기를 빨듯 회개하고, 악한 영의 미혹을 분별하며,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의 날을 사모해야 한다. 주님이 맡기신 복음과 교회와 영혼을 위해 충성하고, 세상의 권력과 기술이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려 할 때 믿음을 지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새 하늘과 새 땅은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약속이다. 그곳에는 다시 사망도, 저주도, 아픔도, 밤도 없으며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생명수가 흐른다. 성도는 그 약속을 바라보며 오늘을 거룩하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리하여 날마다 회개하고 맡겨진 사명에 충성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왕 노릇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7월 30일(목)&lt;br /&gt; 정보배 목사&lt;br /&gt; &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재림&lt;/strong&gt;과 그에 수반되는&amp;nbsp;&lt;strong&gt;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lt;/strong&gt;를 이사야의 예언과 요한계시록의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재림의 여덟 가지 특징 중 마지막 단계로 새로운 피조 세계의 도래를 꼽으며, 특히&amp;nbsp;&lt;strong&gt;천년왕국&lt;/strong&gt;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견해를 비교하여&amp;nbsp;&lt;strong&gt;물질 세계가 사라지고 영원한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는 무천년설적 입장&lt;/strong&gt;이 성경적임을 역설합니다. 이 설교는 이사야 65장의 예언이 당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바람을 담은 것이라면, 요한계시록과 베드로후서는 그 완성을 나타낸다고 보아&amp;nbsp;&lt;strong&gt;계시의 점진성&lt;/strong&gt;을 강조합니다. 결국 신자들이&amp;nbsp;&lt;strong&gt;회개&lt;/strong&gt;를 통해 내면의 악한 영을 씻어내고, 곧 다가올 적그리스도의 시대와 재림의 날을 위해&amp;nbsp;&lt;strong&gt;거룩한 신부&lt;/strong&gt;로서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는 강력한 권면을 목적으로 합니다.&lt;br /&gt; &lt;br /&gt; &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5)] ChatGPT Image 2026년 7월 30일 오후 08_24_4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75/263/751982cbb8f3e7bea062aaf69cb9795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5)] The_Celestial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75/263/8c47720db6c74ffeaee647c0cecc03e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5)] The_Celestial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75/263/29e88d888fa79c2aa7a728a749a3724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5)] The_Celestial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75/263/53a43dfaefa9713b526b908ccba2744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5)] The_Celestial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75/263/c88ced4155b823b86562aa4a0a93757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5)] The_Celestial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75/263/1c60d9bf789610e260a72d8e5b941b0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5)] The_Celestial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75/263/8680c9ef03b796cc90a6b572412d4b3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5)] The_Celestial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75/263/132512271096cc4e1a902ea8f8b1dd6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5)] The_Celestial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75/263/3d06625c0dd4be9c86a9e7fb546c501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5)] The_Celestial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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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5)] The_Eternal_New_Creat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75/263/df37beea66d35ac82b96f283c873f83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5)] The_Eternal_New_Creat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75/263/19714b05058792d26bd1b3a84d69f78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5)] The_Eternal_New_Creat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75/263/8168a9c2331c3006b4de70d2c433c86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5)] The_Eternal_New_Creat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75/263/a2c64d612f7c663c6606c9540185eb6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5)] The_Eternal_New_Creat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75/263/fc81959b8537b4d623bfb25ede6cf39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5)] The_Eternal_New_Creat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75/263/b44c26731e703975c749fe31dd83f7f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5)] The_Eternal_New_Creat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75/263/f55045e86d3bb5286156f25db16495e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5)] The_Eternal_New_Creatio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75/263/24a0531b8fcd11e083abc131fa5de69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5)] The_Eternal_New_Creatio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75/263/6937de0c2d2c52bacd9575118867fec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5)] The_Eternal_New_Creatio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75/263/49736a23d2704794bdb0c8250c41109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55)] The_Eternal_New_Creation.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75/263/8f6f3dd293de4466238af3e0ec56a2c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사역자론(09)] 하나님이 보낸 사람 다윗, 그는 어떻게 준비되었고 쓰임받았는가?(행13:16~22)_2026-07-29(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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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7-28T22:40:05+09:00</published>
		<updated>2026-08-02T22:16:31+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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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역자론(09)] 하나님이 보낸 사람 다윗, 그는 어떻게 준비되었고 쓰임받았는가?(행13:16~2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k6n17IKAH30 사역자론(09) 하나님이 보낸 사람 다윗, 그는 어떻게 준비되었고 쓰임받았는가? (행 13:16~22)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하나님의 사람들이 걸어간 길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유익이다. 그들의 성공만이 아니라 준비...</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사역자론(09)] 하나님이 보낸 사람 다윗, 그는 어떻게 준비되었고 쓰임받았는가?(행13:16~22)&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k6n17IKAH30&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k6n17IKAH30?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사역자론(09)&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하나님이 보낸 사람 다윗,&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그는 어떻게 준비되었고 쓰임받았는가?&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8px;&quot;&gt;(행 13:16~22)&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사람들이 걸어간 길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유익이다. 그들의 성공만이 아니라 준비와 연단, 실수와 회복까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의 인물을 보면서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았고, 무엇을 훈련받았으며, 어떤 자리에서 순종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분량이 다섯 달란트인지 두 달란트인지 한 달란트인지 분별하여 맡겨진 만큼 충성해야 한다. 분량보다 큰 일을 자기 힘으로 감당하려 하면 지치고 무너지기 쉽고, 할 수 있는 일보다 적게 행하면 게으름에 빠진다. 중요한 것은 남과 비교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분량으로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일꾼에게는 자질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은사와 능력이 커도 성품이 준비되지 않으면 그 은사가 도리어 자신을 넘어뜨리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귀신을 쫓고 예언하고 능력을 행하는 일이 곧 그 사람의 온전함을 증명하지 않는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도구이지 소유권을 주장할 자기 것이 아니다. 마른 막대기 같은 사람도 주님의 손에 들리면 쓰임받지만, 주님께서 거두시면 다시 막대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은사가 클수록 겸손해야 하고, 자신을 점검해 줄 영적 지도자를 곁에 두며 그 바른 권면에 순종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영 분별도 중요하다. 귀신의 가르침을 성령의 인도라고 착각하면 열심히 달려가고도 잘못된 길에 서게 된다. 특히 성경을 알지 못하면 느낌과 체험을 판단할 기준이 사라진다. 성경은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들의 행적을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 우리는 그 행적을 기준으로 자신의 부족함과 강점을 살피고, 성령께서 주신 것과 악한 영이 속이는 것을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어떻게 준비시키셨는지를 배우는 일은 사역자의 안전장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영도자로 준비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애굽 왕궁 사십 년과 미디안 광야 사십 년을 통과하게 하시고, 마지막에는 순종을 배우게 하셨다. 다윗에게는 다른 사명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실 왕국의 견고함을 보여 줄 왕으로 준비되었다.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설명하며 사울과 다윗을 대조하고,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간다(행 13:21-2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13:21-23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울도 전쟁할 자질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교만해져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판단을 앞세웠다. 반면 다윗은 전쟁의 자질뿐 아니라 하나님 마음을 좇는 성품과 순종을 준비했다. 하나님은 사람을 갑자기 쓰지 않으신다. 어린 시절의 환경과 고난, 만남과 책임을 통해 필요한 것을 갖추게 하시고, 그 준비가 성숙했을 때 맡기신 일을 감당하게 하신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윗이 어떤 사명을 위해 보내졌고 자질과 성품과 순종을 어떻게 준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왕으로 쓰임받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2. 하나님은 왜 사울을 폐하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울과 다윗은 모두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두 사람 모두 사십 년 동안 왕으로 다스렸고 전쟁을 수행할 능력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신 기준은 왕의 외형과 군사적 재능만이 아니었다. 사울은 왕이 된 뒤 하나님의 명령을 자기 생각으로 고쳤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말씀을 받았지만 아각 왕을 살려 두고 좋은 가축을 남겼다. 그는 그것을 하나님께 제사하려 했다고 설명했지만,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자기 방식의 종교적 열심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순종이었다(삼상 15:22-2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삼상 15:22-23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울의 문제는 능력 부족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었다. 그는 전쟁에서 이긴 뒤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다. 하나님께서 주신 왕권을 자기 영광을 높이는 수단으로 바꾸었다. 하나님 말씀 가운데 자기 생각을 끼워 넣고도 순종했다고 주장했다. 교만은 자신이 서야 할 위치를 넘어서는 것이다. 피조물이 주인의 자리에 앉고, 맡은 자가 소유자의 행세를 하며, 하나님의 뜻을 자기 판단 아래에 두는 것이 교만이다. 사울은 왕의 자리를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으로 보지 않고 자기 권력을 지키는 자리로 여겼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사울은 하나님께서 세우실 다윗을 충성스러운 부하가 아니라 왕권을 빼앗을 경쟁자로 보았다. 그는 다윗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도 기뻐하지 못했다. 권력을 지키려는 마음이 하나님의 뜻보다 커지자,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을 죽이려 했다. 이처럼 자질이 준비되어도 성품이 무너지면 받은 은사와 지위가 자신을 파괴하는 도구가 된다. 왕권 자체가 사울을 악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왕권을 대하는 교만과 불순종이 그의 속을 드러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달랐다. &amp;ldquo;내 마음에 맞는 사람&amp;rdquo;이라는 말씀은 다윗이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완전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를 살피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 뜻보다 위에 두려는 사람이었다. 넘어졌을 때에는 자기 왕권을 지키는 일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일을 더 두려워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기준은 실수하지 않는 외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앞에 자신을 낮추고 돌이키는 중심에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찾으시되 능력만 있는 사람에게 나라를 맡기지 않으신다. 전쟁을 잘하는 자질과 함께 말씀을 청종하는 귀, 자신을 작게 여기는 겸손, 사람을 품는 사랑, 약속을 지키는 신실함, 분노를 다스리는 절제와 온유를 보신다. 사울에게는 전쟁의 자질이 있었으나 성품과 순종이 무너졌다. 다윗은 광야에서 이 모든 부분을 훈련받았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세우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3. 다윗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어떤 사명을 위해 보내졌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와 다윗은 각기 다른 시대와 사명을 위해 준비되었다. 모세는 세계의 강국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영도자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애굽의 왕궁 생활과 광야 생활을 모두 경험하게 하셨다. 다윗은 이스라엘 왕국을 견고하게 세우고 주변 민족의 공격을 물리치며,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어떠한지를 보여 줄 왕으로 보내졌다. 그의 준비도 그 사명에 정확히 맞추어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의 왕은 단순한 정치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백성을 보호하고,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나라를 세워야 했다.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에는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왕이 자기 힘으로 백성을 소유하려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의 왕국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다윗에게는 싸우는 능력과 함께 자신보다 높으신 왕을 인정하는 마음이 필요했다. 다윗에게 만왕의 왕은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이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목자였다. 목자는 양을 먹이고 위험에서 지키며 길을 잃지 않게 인도한다. 하나님은 양 떼를 돌보던 다윗을 불러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다(삼하 7:8-9). 목장에서 배운 보호와 책임의 원리가 왕국 통치로 이어진 것이다. 왕은 백성을 자기 영광을 위한 도구로 삼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맡은 양 떼로 알고 생명을 다해 지키는 자여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삼하 7:8-9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 왕국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길이 되었다. 바울은 다윗을 칭찬하는 데에서 말을 멈추지 않고,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의 구주 예수를 세우셨다고 선포했다. 다윗은 약속의 계보 안에 놓인 왕이었고, 그의 왕국은 완전한 종착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를 바라보게 하는 표상이었다. 예수께서 다윗의 뿌리요 자손으로 일컬어지시는 까닭도 하나님의 구원 경륜 안에서 다윗에게 맡겨진 이 왕적 사명과 연결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다윗의 사명은 전쟁에서 많이 이기는 데에만 있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이 왕이신 나라, 말씀이 권력보다 높고 예배가 번영보다 앞서며 백성을 목자의 마음으로 돌보는 나라의 기초를 놓아야 했다.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하나님을 찬양할 질서를 세우며 성전 건축을 준비한 일은 모두 이 사명 안에 들어 있다. 나라의 중심에 자기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예배를 두려 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4. 목동 생활은 다윗을 전사&amp;middot;찬양자&amp;middot;영 분별자로 어떻게 준비시켰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다윗을 어느 날 갑자기 전쟁터에 세우지 않으셨다. 가족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막내로서 들에서 양을 치게 하셨고, 그 외로운 자리에서 왕에게 필요한 자질을 하나씩 준비하셨다. 형들은 전쟁터로 나갔지만 다윗은 양 떼 곁에 남았다. 사람의 눈에는 뒤처진 자리였으나 하나님의 눈에는 훈련장이었다. 사명에 필요한 준비는 언제나 많은 사람 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작은 책임을 다하는 시간이 큰 일을 감당할 사람을 만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목동 다윗에게 양 한 마리는 가벼운 소유물이 아니었다. 사자나 곰이 새끼를 물어 가면 뒤쫓아 가서 치고 그 입에서 양을 건져 냈다. 짐승이 자신을 공격하면 수염을 잡고 쳐 죽였다. 이 경험은 골리앗 앞에서 갑자기 생긴 용기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작은 전쟁에서 책임과 담력을 배웠고, 무엇보다 자신을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건지신 분이 여호와이심을 알았다(삼상 17:34-3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삼상 17:34-37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골리앗의 키와 무기를 먼저 보지 않았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가 모욕당하는 것을 보았다. 자신의 힘을 과신한 것도 아니다. 과거에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건지실 것을 믿었다. 이것이 영적 전사의 태도다. 오늘날 주의 일꾼은 사람과 혈육을 원수로 삼지 않고 배후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과 싸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싸움의 능력을 자기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승리는 도구인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고 그 도구를 드신 하나님에게서 나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목동의 들판은 찬양의 학교이기도 했다. 다윗은 자연 만물을 바라보며 창조주 하나님을 찾았고, 수금을 타며 하나님을 노래했다. 누가 신앙을 가르쳐 주지 않는 외로운 자리에서도 여호와를 자신의 목자로 알았다. 자신이 양을 돌보는 동안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보시는 참목자임을 깨달은 것이다(시 23: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23:1-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찬양은 다윗에게 장식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고백하고 자기 영혼을 하나님께 정렬하는 일이었다. 그는 왕이 된 뒤에도 찬양을 나라의 중심에 두었다. 레위인 가운데 사천 명이 다윗이 만든 악기로 여호와께 찬송하도록 조직했다(대상 23:5). 한 사람이 들판에서 정성껏 올린 찬양이 훗날 공동체의 예배 질서를 세우는 자질이 되었다. 우리도 한 소절을 불러도 마음과 진실을 다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대상 23:5 사천 명은 문지기요 사천 명은 그가 여호와께 찬송을 드리기 위하여 만든 악기로 찬송하는 자들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에게는 영을 분별하는 은사도 있었다. 사울을 번뇌하게 하던 악령이 임할 때 다윗이 수금을 타면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떠났다(삼상 16:23). 음악 자체가 자동으로 귀신을 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맡기신 찬양과 영적 권세가 함께 쓰인 것이다. 은사를 받았다는 사실보다 그 은사를 하나님께 속한 도구로 바르게 쓰는 일이 중요하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삼상 16: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5. 다윗은 왜 사울을 죽이지 않고 하나님의 질서를 지켰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사울에게 약 십 년 동안 쫓겨 다녔다. 사울은 이유 없이 다윗의 생명을 노렸고, 다윗에게는 사울을 원수라고 부를 만한 사정이 충분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엔게디 광야의 굴과 십 광야의 진영에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두 번이나 다윗 앞에 두셨다.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께서 원수를 넘기신 기회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다윗은 눈앞의 유리한 상황을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엔게디의 굴에서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베었지만 곧 마음이 찔렸다. 사울이 이미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도, 그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라는 질서를 무시하지 않았다. 다윗은 자신이 다음 왕으로 기름 부음 받았다는 이유로 현재 왕을 자기 손으로 제거하지 않았다(삼상 24: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삼상 24: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보복할 권한을 하나님께 돌려드렸다. 여호와께서 자신과 사울 사이를 판단하시고 필요하면 사울에게 보복하실 것이나, 자기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삼상 24:12). 이것은 악을 옳다고 인정한 태도가 아니다. 사울의 잘못을 분명히 알면서도 심판자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은 것이다. 자기 위치와 하나님의 위치를 구별하는 겸손이 영적 질서를 지켰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삼상 24:12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십 광야에서도 같은 시험이 찾아왔다. 사울과 군대가 깊이 잠든 가운데 아비새는 창으로 단번에 사울을 찌르겠다고 했다. 다윗은 다시 거절했다. 여호와께서 사울을 치시든지, 죽을 날이 이르든지, 전장에서 망하든지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며 자신은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지 않겠다고 했다(삼상 26:9-1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삼상 26:9-11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에게 왕좌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였다. 사울을 죽이면 더 빨리 왕이 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질서를 깨뜨리면서 얻는 왕좌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약속을 자기 손으로 앞당기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때를 기다렸다. 순종은 결과가 늦어져도 하나님의 방법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기다림은 무능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다스리는 믿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을 주의 종의 모든 잘못을 덮으라는 뜻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다윗은 사울의 죄를 죄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고, 위험한 자리에 계속 머물지도 않았다. 그는 떠나서 피하면서도 자기 손으로 보복하지 않았다. 잘못된 일은 하나님 말씀에 따라 분별하되, 미움과 혈기로 영적 질서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 교회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감정으로 사람을 치고 무너뜨리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판단을 맡기며 자신이 해야 할 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6. 겸손과 하나님 사랑은 다윗의 왕권을 어떻게 붙들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자신이 본래 이름 없는 목동이었음을 잊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목장에서 불러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왕위를 자기 공로로 얻은 소유물처럼 여기지 않았다. 왕이 된 뒤에도 자신 위에 여호와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했다. 겸손은 자기를 쓸모없는 존재라고 학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에게서 무엇을 받았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다. 다윗은 받은 자리의 크기보다 주신 분의 크기를 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에게 왕권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했다. 밧세바 사건으로 큰 죄를 범했을 때 다윗은 왕좌를 빼앗기지 않게 해 달라고 먼저 구하지 않았다.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시며, 자신을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말고 성령을 거두지 말아 달라고 간구했다(시 51:10-12). 그는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난 일을 보았기에, 은사와 지위가 남아도 하나님께 버림받으면 끝이라는 사실을 두려워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51:10-12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다윗의 겸손이다. 그는 죄를 가볍게 넘기지 않았고, 왕의 권력으로 선지자의 책망을 막지 않았다. 나단의 지적을 받았을 때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완전해서 하나님 마음에 맞은 것이 아니라, 책망 앞에서 자기를 변호하며 버티지 않고 돌이켰기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쓰임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잘못을 숨기는 기술이 아니라 회개할 줄 아는 마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풍성했다. 왕궁이 평안해졌을 때 그는 자신은 백향목 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마음 아파했다(삼하 7:1-3). 하나님께서 먼저 집을 지어 달라고 요구하신 것이 아니었다. 다윗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더 좋은 처소를 마련하고 싶다는 사랑이 나온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삼하 7:1-3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렸으므로 직접 성전을 건축하지는 못했지만, 그 마음과 준비는 하나님께 기억되었다. 그는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도록 재료와 질서를 준비했다. 사랑은 하고 싶은 일을 반드시 자기 이름으로 완성해야 만족하는 마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과 때를 받아들이고, 자신은 준비하는 역할에 충성하는 것도 사랑이다. 다윗은 성전이 자기 업적이 되기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구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겸손과 사랑은 왕권을 안전하게 붙드는 두 기둥이었다. 겸손은 다윗이 자기 자리를 넘지 않게 했고, 사랑은 그 자리를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게 했다. 겸손만 말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게으름이 되고, 사랑을 말하면서 질서를 무시하면 자기 열심이 된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맡은 일을 힘써 준비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7. 신실함&amp;middot;절제&amp;middot;온유는 사람과 사건을 통해 어떻게 훈련되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성품은 혼자 생각한다고 완성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사람과 사건을 통해 신실함과 절제와 온유를 훈련하셨다. 광야에서 다윗에게 모인 사람들은 처음부터 잘 정돈된 용사들이 아니었다.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모였고 그 수가 사백 명가량이었다(삼상 22:2). 다윗은 그들을 버리지 않고 우두머리가 되어 책임졌다. 어려운 사람을 품고 함께 훈련하며 공동체를 세우는 과정에서 왕의 신실함이 자랐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삼상 22: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나단과 맺은 약속에도 신실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처럼 다윗을 경쟁자로 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실 것을 알아보고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으며, 위험을 알려 다윗을 보호했다. 다윗은 왕이 된 뒤 요나단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을 찾아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사울의 밭을 돌려주고 항상 왕의 상에서 먹게 했다(삼하 9: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삼하 9:7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절제와 온유는 아비가일을 통해 특별히 훈련되었다. 갈멜에서 다윗의 사람들이 나발의 목자들을 보호했지만, 나발은 양털을 깎는 풍성한 날에도 다윗의 요청을 모욕적으로 거절했다. 다윗은 분노하여 사람들을 이끌고 나발의 집을 치러 갔다. 그 순간 아비가일이 길을 막고 지혜롭게 권면했다. 다윗이 친히 보복하여 무죄한 피를 흘리면 장차 왕이 되었을 때 마음에 걸림과 슬픔이 될 것이라고 일깨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비가일은 다윗의 장래와 현재의 약점을 함께 보았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실 것이며 그의 생명은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여 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호하실 일을 다윗이 혈기로 대신하지 말아야 했다(삼상 25:28-31). 바른 조언은 상대의 사명을 무너뜨리는 정죄가 아니라, 그 사명이 한순간의 실수로 더럽혀지지 않게 붙드는 말이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삼상 25:28-31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실 때에 원하건대 내 여종을 생각하소서 하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훌륭함은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즉시 멈추었다는 데 있다. 그는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이라는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다. 한 여인의 권면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 혈기를 막으셨음을 인정했다. 절제는 화가 전혀 나지 않는 성품이 아니라, 화가 났을 때 하나님의 뜻을 듣고 행동을 멈출 수 있는 힘이다. 온유는 약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강한 힘을 하나님 뜻 아래에 두는 성품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처음부터 온유가 완성된 사람이 아니었다. 사울을 두 번 살려 준 사건에서는 보복을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배웠고, 나발 사건에서는 분노가 자신을 끌고 가기 전에 지혜로운 권면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하나님은 요나단을 통해 사랑과 언약의 신실함을, 광야의 사람들을 통해 책임을, 아비가일을 통해 절제와 온유를 훈련하셨다. 좋은 사람은 우리를 칭찬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사명을 잃지 않도록 필요한 순간에 멈춰 세워 주는 사람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8. 자질&amp;middot;성품&amp;middot;순종과 영적 지도자는 왜 함께 필요한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준비는 세 층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자질이다. 그는 전쟁에 능한 자로 훈련되었고, 수금을 타며 찬양하는 능력을 갖추었으며, 악령의 역사를 분별하고 물리치는 영적 은사를 받았다. 둘째는 성품이다. 그는 겸손과 하나님 사랑, 신실함과 절제와 온유를 사람과 사건 속에서 배웠다. 셋째는 순종이다. 그는 능력과 성품을 자기 뜻대로 쓰지 않고 하나님의 시간과 질서 아래에 두는 훈련을 받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자질만 있으면 일을 시작할 수는 있지만 끝까지 안전하게 감당하기 어렵다. 은사가 나타나고 능력이 역사하면 사람들은 쉽게 그 사람을 높인다. 당사자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자기 능력으로 착각하기 쉽다. 모세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손에서 능력의 도구가 되었듯, 다윗의 물매와 수금도 하나님께서 쓰실 때 효력이 있었다. 도구가 주인인 척하는 순간 타락이 시작된다. 그래서 은사가 클수록 &amp;ldquo;나는 주님의 도구일 뿐이다&amp;rdquo;라는 고백이 더 분명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품은 은사를 담는 그릇이다. 겸손이 없으면 은사는 자기 자랑이 되고, 사랑이 없으면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사람을 지배하는 수단이 된다. 신실함이 없으면 받은 사람을 끝까지 돌보지 못하고, 절제가 없으면 능력을 분노대로 사용한다. 온유가 없으면 권면을 거부하고 모든 반대를 공격으로 여긴다. 사울은 왕의 자질을 받았지만 교만과 불순종 때문에 그 자리를 잃었다. 다윗은 자질과 함께 성품을 훈련받았기에 나라를 맡을 수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좋은 성품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마지막에는 순종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때에 나아가지 않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방법으로 약속을 이루려 하지 않으며, 자기 생각보다 말씀을 따르는 훈련이 있어야 한다. 다윗은 사울을 죽이면 왕위에 빨리 오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신다는 약속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방법까지 믿었다. 순종은 사명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은사와 영적 체험도 반드시 점검받아야 한다. 성령께서 주신 것인지 귀신이 속이는 것인지 분별하지 못하면, 강한 체험이 오히려 잘못된 길을 확신하게 만든다. 성경을 기준으로 삼고 자신을 살펴 줄 영적 지도자를 두어야 한다. 지도자의 말이 언제나 자동으로 옳다는 뜻이 아니라, 누구도 자기 눈으로 자기 전체를 볼 수 없으므로 성경에 근거한 바른 점검과 권면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다윗에게 사무엘과 나단과 갓 같은 선지자가 있었고, 요나단과 아비가일 같은 동역자가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돕는 사람도 하나님의 준비에 포함된다. 요나단은 다윗의 생명을 지켰고, 아비가일은 다윗이 무죄한 피를 흘리지 않게 막았으며, 광야의 용사들은 함께 전쟁을 수행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주실 때 은사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을 붙이신다. 그러므로 동역자를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들의 도움을 하나님의 손길로 받아야 한다.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미 사울의 교만에 가까워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결국 하나님께 쓰임받는 삶은 은사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질은 일을 감당하게 하고, 성품은 그 일을 바르게 담게 하며, 순종은 그 일을 하나님의 뜻과 방법 안에서 이루게 한다. 영적 지도자와 동역자는 이 세 가지가 어긋나지 않도록 점검하고 보완한다. 이 네 요소가 함께할 때 은사는 사람을 살리고, 직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역자는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맡은 길을 걸어갈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9. 나오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이 보낸 사람 다윗이 어떤 사명을 위해 준비되었고 쓰임받았는지를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 왕국을 견고하게 세우고 장차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할 왕으로 보내셨다. 그 준비는 왕궁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가족의 눈에 띄지 않는 목동의 자리, 사자와 곰을 상대하는 위험, 홀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들판, 사울에게 쫓기는 광야, 사람들과 약속을 지키고 권면을 받아들이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에게는 전사와 찬양자와 영 분별자로서의 자질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더 깊이 다루신 것은 성품이었다. 겸손은 자신이 목장에서 불려 나온 사람임을 잊지 않게 했고, 사랑은 왕궁보다 하나님의 궤와 성전을 먼저 생각하게 했다. 신실함은 요나단과의 약속을 므비보셋에게까지 이어 가게 했고, 절제는 사울을 죽일 기회에 칼을 거두게 했으며, 온유는 아비가일의 권면 앞에서 분노를 멈추게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모든 준비의 마지막에는 순종이 있었다. 다윗은 약속을 자기 힘으로 성취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다. 왕권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귀하게 여겼고, 범죄했을 때에는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구하며 회개했다. 하나님께서 &amp;ldquo;내 마음에 맞는 사람&amp;rdquo;이라고 하신 까닭은 다윗이 흠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고 책망 앞에서 돌이키며 맡은 자리에서 그 뜻을 행하려 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도 자신의 준비 상태를 정직하게 점검해야 한다. 자질은 있는데 성품이 부족하지 않은지, 성품을 말하면서 실제 순종을 미루고 있지 않은지, 은사를 자기 것으로 여기고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한다. 성령의 인도와 귀신의 속임을 분별하기 위해 성경을 가까이해야 하며, 자신을 점검해 줄 영적 지도자와 지혜로운 동역자의 권면을 받아야 한다. 은사가 크다는 이유로 점검을 면제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특히 교만의 영과 완고하게 하는 악한 영을 경계해야 한다.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이고, 권면을 거부하며, 받은 은사로 자기 이름을 높이려는 마음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은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사용해야 한다. 주님께서 붙여 주신 사람을 사랑하고 약속에 신실하며, 분노가 일어날 때 하나님의 뜻 아래에서 절제하고, 잘못을 깨달으면 즉시 돌이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우리의 지나온 시간을 헛되게 버리지 않으신다. 지금의 작은 책임과 외로운 자리와 반복되는 시험도 장래의 사명을 위한 훈련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남의 분량을 탐내지 말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 전쟁의 자질을 준비하되 전쟁의 승리를 자랑하지 않고, 찬양의 은사를 사용하되 자기 이름을 높이지 않으며, 영적 권세를 받되 언제나 주님의 도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쓰임받는 것만을 구하지 말고 바르게 준비되어 끝까지 쓰임받기를 구해야 한다. 자질과 성품과 순종을 함께 갖추고, 성경과 영적 지도자의 점검 아래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람과 사명을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 그리하여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7월 29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br /&gt; &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설교핵심]&lt;/span&gt;&lt;/strong&gt;&lt;/p&gt; &lt;p&gt;이 설교는 성경 속 인물인 모세와 다윗의 생애를 대조하며,&amp;nbsp;&lt;strong&gt;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본질적인 요건&lt;/strong&gt;을 제시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사역의 성패가 단순한 재능이나 은사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amp;nbsp;&lt;strong&gt;겸손과 온유를 바탕으로 한 인격적인 성품&lt;/strong&gt;에 있음을 강력하게 역설합니다. 특히 다윗이 사울왕의 영적 타락과 대비되어 선택받은 이유는 그가&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실함과 분노를 다스리는 절제력&lt;/strong&gt;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결국 참된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분량을 아는 지혜와 더불어,&amp;nbsp;&lt;strong&gt;끊임없는 자기 점검과 영적 지도자의 조언에 순종하는 태도&lt;/strong&gt;가 필수적임을 강조하며 결론을 맺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9)] ChatGPT Image 2026년 7월 28일 오후 11_21_0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25/263/a65f1ea5607207ab3edf48cb8eed2f7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9)] The_Making_of_a_King.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25/263/782423a8559e0ad33230468242320cc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9)] The_Making_of_a_King.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25/263/0b885e47651b032cfe06ad446887b30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9)] The_Making_of_a_King.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25/263/ac2b399478884d435883a6a7b8ab351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9)] The_Making_of_a_King.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25/263/a3f9e890a40ca788a5160f80cad24f2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9)] The_Making_of_a_King.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25/263/2ab19492f68e560c6c15b105b00ce52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9)] The_Making_of_a_King.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25/263/84552821b58eda1977e643ab418cd52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9)] The_Making_of_a_King.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25/263/5938a050ddf898868e3eddb2768a57b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9)] The_Making_of_a_King.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25/263/c5e409336bc6486f05f6895a447f294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9)] The_Making_of_a_King.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25/263/3da1035a56f5a17e3ea7d2501c99da0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9)] The_Making_of_a_King.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25/263/f607a52775c67d9c7b8f515c04d510b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9)] The_Making_of_a_King.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25/263/353dc05a86a0c4fa9da74d2f49280b1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9)] The_Making_of_a_King.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25/263/1a7d19884c5ad2d01ac45c2c94655cf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9)] 하나님이_보낸_사람_다윗의_준비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25/263/6b6ec18acd3dc8e980a0f101354524a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9)] The_Davidic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25/263/7068f4e99890e2b6a9e2cab1c5a246c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9)] The_Davidic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25/263/e3afaae58889371f97f541423ad9057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9)] The_Davidic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25/263/d42bcfd6a7649227ec7eff6ae9fcb80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9)] The_Davidic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25/263/7c6e584f598709d28f8d01e10901900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9)] The_Davidic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25/263/c28c9f0805e36e92d1a56a2a8634e40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9)] The_Davidic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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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사역자론(08)] 하나님께서 사역자에게 주시는 은사와 무기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출4:1~9)_2026-07-28(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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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7-28T00:36:03+09:00</published>
		<updated>2026-07-28T22:14:36+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7.28(화) 오전5시30분 새벽기도회 제목: [사역자론(08)] 하나님께서 사역자에게 주시는 은사와 무기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출4: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j_duDMFu_a4 아침묵상 · 사역자론(08) 하나님께서 사역자에게 주시는 은사와 무기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출 4:1-9)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우리는 흔히 ‘사역자’라고 하면 목회자나 선교사처럼 교회의 앞자리에 세워진...</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7.28(화) 오전5시30분 새벽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사역자론(08)] 하나님께서 사역자에게 주시는 은사와 무기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출4:1~9)&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j_duDMFu_a4&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j_duDMFu_a4?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아침묵상 &amp;middot; 사역자론(08)&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하나님께서 사역자에게 주시는 은사와 무기는&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출 4:1-9)&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흔히 &amp;lsquo;사역자&amp;rsquo;라고 하면 목회자나 선교사처럼 교회의 앞자리에 세워진 사람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에서 섬기는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일꾼이다. 직분과 역할은 서로 다르지만 가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의 지체를 돌보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주의 종과 동역하는 일은 모든 성도에게 맡겨진 사역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만 모든 사람이 똑같은 위치와 책임을 가진 것은 아니다. 모세에게 맡긴 일이 있고, 아론과 미리암과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맡긴 일이 따로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빚으신 목적에 따라 서로 다른 자리에 세우신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자리를 탐하거나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무너뜨리지 말고, 자기 위치에서 맡은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 갈렙은 본래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혈통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자기 자리에서 끝까지 믿음으로 충성하여 위대한 상속자가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일을 많이 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수고가 자동으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자기 힘과 자기 방식으로 일하거나, 은사를 자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거나, 혈기와 분노로 사람을 상하게 하면 오랜 수고가 헛될 수 있다. 바울은 승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므로 견실하고 흔들리지 말며 주의 일에 더욱 힘쓰라고 권면했다.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amp;lsquo;주 안에서&amp;rsquo; 행해져야 한다(고전 15:57-5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15:57-5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는 구약에서 하나님께 가장 크게 쓰임받은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는 애굽 왕궁에서 사십 년 동안 &amp;#39;자질&amp;#39;을 준비했고, 미디안 광야에서 다시 사십 년 동안 &amp;#39;성품&amp;#39;을 훈련받았다. 여든 살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사명을 맡기셨다. 그리고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지팡이가 뱀이 되는 표징, 손에 나병이 생겼다가 낫는 표징, 나일강 물이 피가 되는 표징을 주셨다. 이 세 표징은 단순히 사람을 놀라게 하는 기적이 아니라, 모세가 앞으로 사용할 은사와 영적 무기의 성격과 목적과 위험을 미리 보여 주는 계시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역자에게 있어서 &amp;#39;은사&amp;#39;와 &amp;#39;능력&amp;#39;은 사역자를 높이기 위한 장식품이 아니다. 마른 막대기 같은 사람을 통하여 악한 영을 제압하고, 고통받는 백성을 고치며, 죽어 가는 영혼을 살리라고 주신 도구다.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잘못 사용하면 뱀이 사역자를 물고, 나병이 사역자의 몸에 생기며, 생명의 물이 심판의 피가 될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모든 성도가 어떤 자리에서 사역자로 부름받았으며, 끝까지 쓰임받으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사역의 주체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표징과 세 가지 은사와 무기를 어떤 목적으로 사용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2. 모든 성도는 어떤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역자로 부름받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말은 특별한 소수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은혜를 받은 모든 성도는 그 은혜를 맡은 청지기로서 서로를 섬겨야 한다. 베드로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처럼 서로 봉사하라고 말했다(벧전 4: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벧전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일반 성도에게 가장 먼저 맡겨진 사역은 가족 구원이다. 자기 가족이 복음을 듣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기도하며 섬겨야 한다. 가족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먹을 것과 입을 것만 공급하고 영혼의 구원을 외면한다면 가장 중요한 책임을 놓치는 것이다. 믿지 않는 가족을 정죄하거나 억지로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오래 참고 기도하며 삶으로 복음을 보여 주고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두 번째는 교회의 지체를 섬기는 일이다. 성도가 예배드릴 수 있도록 누군가는 예배당을 청소해야 하고, 함께 식사하려면 누군가는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아픈 지체가 생기면 함께 울며 기도해야 하고, 가정에 사고와 질병이 닥치면 그 짐을 나누어 져야 한다. 한 지체의 아픔을 보고도 &amp;ldquo;내 일이 아니다&amp;rdquo;라고 외면한다면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다. 말 한마디의 위로, 한 끼의 식사, 병원에 있는 성도를 위한 중보기도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사역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주의 종과 협력하는 일이다. 목회자 한 사람이 교회의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도록 성도들이 각자의 은사로 돕고, 복음 전파와 영혼 구원의 일을 함께 짊어져야 한다. 이것은 사람을 우상화하거나 무조건 따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사역의 질서 안에서 동역자가 되라는 뜻이다. 지도자는 동역자를 자기 수족처럼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하고, 동역자는 자기 은사가 크다는 이유로 지도자의 자리를 넘보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의 관계가 이 질서를 보여 준다. 모세는 하나님께 직접 말씀을 받고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로 세워졌고, 아론은 모세의 입을 대신하며 제사장으로 섬겼으며, 미리암은 여선지자로 여인들을 이끌었다. 여호수아는 군대를 이끌고 다음 세대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갈렙은 믿음의 증인으로 자기 기업을 얻었다. 어느 역할도 쓸모없지 않았지만 서로 바꿀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미리암이 모세와 같은 권위를 주장했을 때 질서가 깨졌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 하나님의 집에서는 은사의 크기만큼이나 자리와 질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평신도로 섬기는 것은 결코 작은 부르심이 아니다. 큰 책임을 맡은 지도자는 말과 행동의 실수를 더 엄중히 심판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높은 자리를 부러워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지금 맡기신 일을 감사함으로 감당해야 한다. 건강을 주셨으면 몸으로 섬기고, 물질을 주셨으면 필요한 곳에 흘려보내며, 기도할 힘을 주셨으면 고통받는 지체를 위해 중보해야 한다. 맡은 일이 작아 보여도 주 안에서 행한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3. 끝까지 쓰임받는 사역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 쓰임받으려면 첫째로 맡은 일을 감당할 자질을 준비해야 한다. 찬양으로 섬길 사람은 듣는 이가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음성과 음악을 훈련해야 하고, 말씀을 가르칠 사람은 성경을 공부하고 정확하게 설명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공부할 줄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깊이 가르치기는 어렵다. 열심과 선한 의도만으로 부족한 영역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맡기실 일을 생각하며 필요한 지식과 기술과 경험을 성실히 쌓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사십 년 동안 최고의 학문과 행정과 군사와 문화를 배웠다. 당시 강대국의 왕 앞에 서고 수많은 백성을 이끌 사람에게 필요한 자질을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시키신 것이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말과 하는 일에 능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행 7:2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7: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자질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는 없다. 마흔 살의 모세는 자기 민족을 구원해야 한다는 사명 의식이 있었지만 자기 힘과 자기 방식으로 애굽 사람을 죽였다. 한 사람은 쓰러뜨릴 수 있었지만 애굽의 모든 장자를 심판하거나 홍해를 가를 수는 없었다. 의협심처럼 보이는 행동 속에도 혈기와 분노와 자기 의가 들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능력을 믿는 모세를 즉시 사용하지 않으시고 미디안 광야로 보내 사십 년 동안 성품을 다루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역자에게 가장 위험한 성품 가운데 하나가 혈기와 분노다. 지도자는 하나님을 대표하여 말하고 행동하므로, 그의 분노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오해하게 할 수 있다. 모세는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된 뒤에도 백성의 원망 앞에서 분노하여 반석을 두 번 쳤고, 그 한 번의 실수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지도자의 죄를 하나님께서 더 크게 물으신다는 사실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영의 세계를 살펴보면서 혈기와 분노의 영이 몸의 여러 부위에 가장 광범위하게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한다. 혈기와 분노를 내면 회개로 몰아낸 악한 영들이 다시 들어올 수 있으므로, 과거에 많이 회개했다는 사실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 자질을 쌓는 만큼 계속 회개하여 성품도 준비해야 한다. 공부와 실력을 갖추되 교만하지 말고, 능력을 받되 온유와 절제를 잃지 않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지막 준비는 순종이다. 순종은 믿음과 거의 같은 자리에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amp;ldquo;내가 할 수 있는가&amp;rdquo;만 계산하면 두려움에 빠진다. 그러나 &amp;ldquo;이 일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다&amp;rdquo;고 믿으면 자신을 내어 드릴 수 있다. 자질과 성품을 오래 준비했어도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순종하지 않으면 실제 사역은 시작되지 않는다. 반대로 자기 욕심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부르며 달려가는 것도 순종이 아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와 방법과 질서를 분별하여 따르는 것이 순종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끝까지 오래 쓰임받으려면 이 세 준비를 평생 이어 가야 한다. 처음 은사를 받았다고 훈련이 끝난 것이 아니며, 한때 큰 역사가 나타났다고 마지막까지 인정받은 것도 아니다. 사울처럼 처음에는 쓰임받다가 교만과 불순종으로 버림받을 수 있고, 다윗처럼 잘못했어도 즉시 회개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 회복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갈수록 장성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꾼을 원하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4. 사역자가 &amp;ldquo;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amp;rdquo;는 것을 왜 알아야 하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역의 첫째 원리는 &amp;ldquo;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다&amp;rdquo;는 것이다. 모세가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 &amp;ldquo;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겠습니까?&amp;rdquo;라고 물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충분히 강하다고 격려하지 않으시고 &amp;ldquo;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amp;rdquo;고 답하셨다(출 3:11-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3:11-12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출애굽의 결정적인 일들은 모세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일강을 피로 바꾸고, 개구리와 이와 파리와 우박과 메뚜기의 재앙을 내리며, 애굽의 장자를 치고, 홍해를 가르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며, 반석에서 물을 내는 일은 모두 하나님께서 행하셨다. 모세는 말씀에 순종하여 지팡이를 들고 명령을 선포했지만 능력의 근원은 하나님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사실을 모르면 두 가지 극단에 빠진다. 하나는 모든 결과를 자기 책임으로 여기며 두려움과 낙심에 눌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가 나타날 때 자기 실력과 인격이 뛰어나서 된 것처럼 교만해지는 것이다. &amp;ldquo;하나님이 하신다&amp;rdquo;는 믿음은 게으름의 핑계가 아니다. 모세는 왕궁과 광야에서 팔십 년을 준비했고 목숨을 걸고 바로 앞에 섰다.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를 만들어 내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원리는 자기를 보내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amp;ldquo;스스로 있는 자&amp;rdquo;라고 계시하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알려 주셨다. 여호와는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며, 스스로 존재하시고 모든 것을 있게 하시는 전능자이시다. 모세는 자기 가능성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바라보아야 했다(출 3:13-1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3:13-15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ldquo;나는 스스로 있는 자&amp;rdquo;라는 말씀은 히브리어로 &amp;ldquo;에흐예 아셰르 에흐예&amp;rdquo;다. 성경 번역문은 하나님의 자존성을 드러내며, 필자는 설교에서 &amp;lsquo;하야&amp;rsquo; 동사의 의미를 따라 하나님을 &amp;ldquo;있게 하는 자&amp;rdquo;, 곧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 분으로 함께 강조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의 도움으로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모든 존재와 역사의 근원이시며, 약속하신 일을 이루실 능력이 무한하다는 뜻으로 풀어낸 목회적 설명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을 아는 분량만큼 믿음으로 쓰임받을 수 있다. &amp;ldquo;이 일은 하나님도 못 하실 것&amp;rdquo;이라고 제한하면 그 믿음의 한계 안에 머물게 된다. 반대로 하나님은 모르는 것이 없고 할 수 없는 것이 없으며 약속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사실을 알면,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명령 앞에서도 순종할 수 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알아야 한다. 필자는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이 예수님의 신성과 사역을 보여 주는 중요한 계시이므로 깊이 공부해야 한다고 권면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사랑과 능력만 있는 분이 아니라 거룩하고 공의로운 분이기도 하다.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지만 거역하는 죄는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amp;ldquo;하나님이 하신다&amp;rdquo;는 말로 자기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능력을 행하시고 사역자는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받은 능력을 거룩하게 사용해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할수록 자신을 낮추고, 결과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말씀 앞에서 더 두려움으로 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5. 하나님은 부르신 사역자에게 왜 표징과 은사를 주시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의 세 번째 질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를 믿지 않고 &amp;ldquo;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않으셨다&amp;rdquo;고 말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말로만 자신을 증명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세 가지 표징을 주셨다.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고 다시 지팡이가 되게 하셨으며, 손에 나병이 생겼다가 낫게 하셨고, 그래도 믿지 않으면 나일강 물을 땅에 부어 피가 되게 하셨다. 이는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나타나 그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백성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출 4:1-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4:1-5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이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출애굽기 4장에서 &amp;lsquo;표징&amp;rsquo;으로 번역할 수 있는 히브리어는 &amp;lsquo;오트&amp;rsquo;다. 이것은 단순히 신기한 현상을 뜻하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어떤 영적 의미를 전달한다는 표시다. 신약에서 표적을 가리키는 헬라어 &amp;lsquo;세메이온&amp;rsquo;도 같은 기능을 한다. 표징은 기적이지만 그 기적 안에 하나님의 뜻과 사명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현상만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 표징을 왜 주셨는지를 해석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사역자를 부르실 때 그 부르심을 확증할 표징과 은사를 주신다. 고난이 오고 사역이 힘들어질 때 단순한 감정이나 자기 욕심으로 시작한 사람은 쉽게 포기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셨고 함께하신다는 확증이 있으면 고난 속에서도 사명을 놓지 않는다. &amp;ldquo;만세 전에 나를 이 목적에 맞게 빚으시고 이 시대에 불러 이 은사를 주셨다&amp;rdquo;는 사실을 알 때 책임 있게 감당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표징과 은사는 서로 완전히 떨어져 있지 않다. 방언은 성령이 사람 안에 들어오셨다는 표적이며 동시에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다.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가운데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는 일을 말씀하셨다(막 16: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표적으로서의 방언과 은사로서의 방언을 구별하여 설명한다.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은 갓난아기가 &amp;ldquo;응애&amp;rdquo; 하고 울듯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왔다는 표적이다. 다른 사람은 뜻을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아신다. 사도행전 2장에서는 제자들이 말한 것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 언어로 알아들었다. 필자는 이를 다른 사람이 알아듣도록 주어진 은사로서의 방언으로 설명한다. 같은 방언이라도 주어진 목적과 나타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방언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영적 상태가 언제나 안전하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필자는 사람의 혀를 성령께서 사용하실 수 있지만 악한 영도 붙잡아 사용할 수 있으므로, 회개하지 않은 채 방언의 현상만 의지하면 속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방언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회개와 분별 없이 은사를 자랑하지 말라는 목회적 경고다. 은사는 거룩한 성품을 대신하지 않으며, 받은 사람은 계속 자신을 살피고 죄를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6. 지팡이가 뱀이 된 표징은 어떤 권세와 경고를 담고 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의 손에 있던 지팡이는 광야에서 양을 칠 때 사용하던 평범한 막대기였다. 생명도 화려함도 없는 마른 나무에 불과했다. 하나님께서 &amp;ldquo;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amp;rdquo;고 물으신 것은 모세가 이미 가진 보잘것없는 것을 확인하게 하신 것이다. 모세 자신도 그 막대기처럼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사용하시면 누구도 당할 수 없는 능력의 도구가 될 수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팡이를 땅에 던지자 뱀이 되었고, 모세가 그 앞에서 피했다. 하나님께서 꼬리를 잡으라고 하시자 다시 지팡이가 되었다. 뱀은 사탄 마귀와 악한 영을 상징한다. 이 표징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뱀들을 제압하고 귀신의 권세를 처리할 능력과 권세를 주신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실 때 귀신을 쫓아낼 권세를 주신 것처럼, 모세도 애굽의 영적 권세를 꺾을 무기를 받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로 앞에서 처음 지팡이를 던진 사람은 아론이었다. 애굽의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술법으로 지팡이가 뱀이 되게 했지만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켰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가 애굽의 모든 술법과 악한 권세 위에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그 뒤 재앙을 선포하고 홍해를 가를 때에는 모세의 지팡이가 반복하여 사용되었다. 능력은 나무 자체에 있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 순종하여 든 지팡이를 통하여 나타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론의 지팡이는 훗날 제사장의 권위를 둘러싼 반역이 일어났을 때 다시 표징이 되었다. 각 지파의 지팡이를 성막 안에 두었을 때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나고 꽃이 피어 열매가 맺혔다. 마른 막대기에 생명이 나타난 것은 하나님께서 누구를 제사장으로 세우셨는지를 증명했다. 모세와 아론이 본래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생명을 주시고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표징에는 엄중한 경고도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팡이를 자기 욕심과 교만을 위해 사용하면 그 지팡이가 다시 뱀이 되어 자기를 물 수 있다. 귀신을 쫓아낼 권세를 받았다고 자기를 높이고, 사람을 지배하거나 돈과 명예를 얻는 데 은사를 사용하면 악한 영의 공격을 받을 틈을 내주게 된다. 사람을 살리라고 주신 무기가 오히려 사역자를 무너뜨리는 통로가 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뱀의 머리가 아니라 꼬리를 잡으라고 하셨다. 사람이 자기 기술로 뱀을 완전히 제압한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시고, 위험한 명령에도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다시 지팡이로 바꾸신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셨다. 핵심은 모세의 담력이나 뱀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었다. 사역자는 은사를 사용하는 순간에도 &amp;ldquo;내가 했다&amp;rdquo;가 아니라 &amp;ldquo;주님께서 하셨다&amp;rdquo;고 고백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능력 행함과 축사의 은사는 악한 영에게 눌린 사람을 자유롭게 하라고 주신 것이다. 자신이 강한 사람임을 증명하거나 다른 사역자와 능력을 겨루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마른 막대기 같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감사함으로, 두려움에 갇힌 백성을 살리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큰 권세를 맡기시고 오래 쓰실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7. 손의 나병 표징은 치유의 은사를 어떻게 사용하라는 뜻인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두 번째 표징은 모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꺼냈을 때 나병이 생겨 눈같이 희어지고, 다시 품에 넣었다가 꺼냈을 때 본래의 살로 회복된 사건이다. 하나님께서는 질병이 생기고 낫는 일을 한 사람의 손에서 즉시 경험하게 하셨다(출 4:6-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4:6-7 여호와께서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에 나병이 생겨 눈 같이 된지라 이르시되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이 본래의 살로 되돌아왔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표징은 치유의 은사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고통받는 백성을 돌보고 병든 자를 고치기 원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며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게 하신 순서와도 이어진다. 첫 표징이 악한 영을 제압하는 권세라면, 둘째 표징은 그 권세와 능력으로 실제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을 회복시키라는 명령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은사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파하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amp;ldquo;귀신이 달라붙을까 두렵다&amp;rdquo;, &amp;ldquo;내가 힘들다&amp;rdquo;, &amp;ldquo;시간이 없다&amp;rdquo;는 이유로 능력이 있으면서도 돕지 않는다면 은사를 주신 목적을 거스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역자에게 남보다 더 큰 권세와 치유의 은사를 주신 것은 자기 몸을 편안하게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백성을 대신 섬기라고 주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는 훗날 미리암에게 나병이 생기는 사건을 직접 보았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며 &amp;ldquo;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amp;rdquo;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질서를 침범한 죄를 책망하시고 미리암을 나병으로 치셨다.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고쳐 달라고 간구하자 정해진 징계의 기간 뒤에 미리암이 다시 진영으로 돌아왔다. 모세는 어떤 죄가 질병을 불러오는지 보았고, 동시에 자기를 비방한 사람을 위해서도 치유를 간구해야 함을 배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도자의 자리를 세웠다는 사실이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변호하신 것은 모세가 완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와 사명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모세 자신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했을 때 가나안 입성이 허락되지 않았다. 지도자는 남의 죄를 지적하는 은사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자기 죄를 더 철저히 살피고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나병의 표징에도 양면성이 있다. 치유의 은사를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면 병든 자를 회복시키지만, 교만과 불순종으로 잘못 사용하면 사역자 자신이 병들고 공격받을 수 있다. 하나님은 은사를 주시면서 그 위험성도 함께 알려 주신다. 뜨거운 불이 음식을 익히고 추위를 막아 주지만 함부로 다루면 사람을 태우는 것처럼, 영적 능력도 거룩함과 순종 안에서 사용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축사 사역을 하면서 악한 영의 공격을 받아 여러 번 쓰러질 만큼 힘든 일을 겪었고, 미국 사역 중에는 손가락이 물린 듯 통증을 느낀 체험도 있었다고 증언한다. 이것은 사역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기 위해 전장에 들어간 종을 하나님께서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신다. 순종하다가 공격받으면 다시 일으키시고, 더 강한 권세와 필요한 은사를 더하여 감당하게 하신다는 믿음으로 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치유 사역의 중심에는 고통받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 있어야 한다. 능력이 나타났다는 사실보다 한 영혼이 회복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병이 나은 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지 말고 예수님께 인도하며, 치유가 더딜 때 환자를 정죄하지 말고 함께 회개하고 기도해야 한다. 은사를 받은 사람은 백성의 아픔을 자기 일처럼 품고 끝까지 섬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8. 물이 피가 된 표징은 생명과 심판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표징은 앞선 두 표징을 보고도 믿지 않고 모세의 말을 듣지 않을 때 행하도록 주어졌다. 모세가 나일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면 그 물이 피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표징의 표징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나중 표징을 믿을 수 있다고 하시면서, 끝까지 믿지 않는 자에게 물이 피가 되는 표징을 보이게 하셨다(출 4:8-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4:8-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나일 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떠온 나일 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물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목마를 때 하나님께서는 반석에서 물을 내어 살리셨다. 피는 죄를 속하는 생명을 상징한다. 유월절 밤에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이스라엘 집은 죽음의 심판을 면했다. 그러므로 물과 피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생명과 속죄와 구원을 나타내는 귀한 표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같은 물과 피가 하나님을 거역하는 애굽에는 심판의 도구가 되었다. 나일강 물이 피로 변하자 물고기가 죽고 강에서 악취가 나며 사람들이 물을 마실 수 없었다. 애굽이 생명의 근원으로 의지하고 신처럼 섬기던 나일강이 죽음의 장소가 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과 속죄의 피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살지만, 하나님을 대적하고 완고하게 거부하면 같은 말씀이 죄를 드러내고 심판하는 기준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에게 주어진 은사와 무기도 이 양면성을 가졌다. 순종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섬길 때에는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되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 앞에서는 그 악을 심판하는 도구가 된다. 사역자는 자기 기분에 따라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심판할지 결정해서는 안 된다. 물을 피로 바꾸는 때와 장소를 명령하신 분이 하나님이셨듯이, 은사의 사용도 하나님의 뜻과 말씀의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생명을 살리는 사역은 단순히 육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귀신에게 눌린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병든 몸을 고치며, 죄인이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해야 한다. 첫 표징의 권세와 둘째 표징의 치유가 셋째 표징의 생명과 속죄를 향해야 한다. 축사와 치유가 복음과 회개로 이어지지 않으면 표징의 최종 목적을 놓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반대로 은사를 자기 과시와 이익을 위해 사용하면 살리는 물이 심판의 피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사람을 지배하고, 치유와 축사의 결과를 자기 공로로 돌리며, 회개하지 않은 채 능력만 추구하면 받은 은사가 그 사람을 정죄하는 증거가 된다.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요구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사역자는 은사가 클수록 더 낮아지고 더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 표징의 순서는 하나님의 사역이 무엇을 향하는지 보여 준다. 뱀을 제압하는 것은 악한 권세 아래 있는 사람을 건져 내기 위함이고, 나병을 고치는 것은 고통받는 백성을 회복시키기 위함이며, 물과 피를 나타내는 것은 마침내 생명과 속죄로 인도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나가서 귀신을 쫓고 병든 자를 고치며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살렸다. 오늘의 사역자도 같은 목적을 잃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9. 나오며&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든 성도가 어떤 자리에서 사역자로 부름받았으며, 끝까지 쓰임받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세 표징과 은사와 무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사역은 목회자만의 일이 아니다. 가족을 구원으로 인도하고, 교회의 지체를 돌보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주의 종과 협력하는 모든 섬김이 하나님의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동시에 각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기 위치와 질서를 알아야 한다.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과 여호수아와 갈렙의 역할이 달랐던 것처럼, 교회 안에서도 직분과 책임이 다르다. 다른 사람의 자리를 탐내거나 자기 은사로 질서를 무너뜨리지 말고, 지금 맡겨진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리의 크기보다 순종과 충성을 보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래 쓰임받는 사역자에게는 자질과 성품과 순종이 함께 필요하다. 맡은 일을 잘 감당하도록 공부하고 실력을 쌓아야 하며, 혈기와 분노와 교만을 계속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왔을 때 &amp;ldquo;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다&amp;rdquo;는 믿음으로 자신을 내어 드려야 한다. 많이 준비했어도 자기 힘을 의지해서는 안 되고, 부족하다고 부르심을 계속 피해서도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주시는 표징과 은사는 부르심을 확증하고 사명을 수행하게 하는 도구다. 지팡이가 뱀이 되었다가 다시 지팡이가 된 것은 마른 막대기 같은 사람에게 악한 영을 제압할 권세를 주신다는 뜻이며, 그 능력을 잘못 사용하면 뱀이 자기를 물 수 있다는 경고다. 손에 나병이 생겼다가 나은 것은 병든 백성을 고칠 치유의 은사를 주신다는 뜻이며, 교만과 불순종으로 사용하면 사역자 자신이 병들 수 있다는 경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물이 피가 된 표징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에게 물과 피가 생명과 속죄의 도구가 되지만,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에게는 심판의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모든 은사는 결국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도, 병을 고치는 것도, 말씀을 가르치고 찬양하며 중보하는 것도 한 영혼을 죄와 죽음에서 건져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은사가 나타날수록 자신을 높이지 말고 마른 막대기 같은 자신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고통받는 백성을 외면하지 말고 받은 능력으로 섬기며, 사람을 자기에게 묶어 두지 말고 하나님께 돌아가게 해야 한다. 사역 중에 공격과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종을 버리지 않으시고 필요한 권세와 능력을 더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는 까닭은 우리의 실력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질을 준비하고 성품을 회개로 다듬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질서에 순종하고, 받은 은사와 영적 무기를 오직 고통받는 사람을 돕고 생명을 살리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리하여 마른 막대기 같은 자신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수고를 끝까지 감당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7월 28일(화)&lt;br /&gt; 정보배 목사&lt;br /&gt; &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역자&lt;/strong&gt;라는 보편적 부르심을 전제로,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amp;nbsp;&lt;strong&gt;자질과 성품 및 은사 사용의 원리&lt;/strong&gt;를 모세의 사례를 통해 강론합니다. 사역의 핵심은 인간의 실력이 아닌&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승리&lt;/strong&gt;에 있으며, 이를 위해 지도자는 지적인 준비뿐만 아니라&amp;nbsp;&lt;strong&gt;철저한 회개&lt;/strong&gt;를 통해 혈기와 분노를 다스리는 거룩한 성품을 구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하나님이 모세에게 보여주신&amp;nbsp;&lt;strong&gt;세 가지 표징&lt;/strong&gt;(지팡이, 나병, 물이 피가 됨)은 사역자에게 부여된&amp;nbsp;&lt;strong&gt;영적 권세와 치유의 은사&lt;/strong&gt;를 상징하는 동시에, 이를 사사로이 남용할 경우 도리어&amp;nbsp;&lt;strong&gt;심판의 도구&lt;/strong&gt;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사역자가&amp;nbsp;&lt;strong&gt;마른 막대기 같은 겸손한 자세&lt;/strong&gt;로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며&amp;nbsp;&lt;strong&gt;영혼을 살리는 일&lt;/strong&gt;에 매진할 때 그 수고가 천국에서 헛되지 않음을 역설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ChatGPT Image 2026년 7월 28일 오후 09_32_0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3/224fb032a9ac60916b4ca934762e166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The_Path_of_True_Ministry.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3/54876f8ff4bfc024d6fead6eca34285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The_Path_of_True_Ministry.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3/182c797433ac78a60231a00322b3727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The_Path_of_True_Ministry.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3/7806d596e1119a37869b37c1fc5d922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The_Path_of_True_Ministry.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3/fb2df7681d810e2f343da48bde1929f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The_Path_of_True_Ministry.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3/4db627b498287f5e07aea4ce7276b3b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The_Path_of_True_Ministry.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3/aa71890d63f7159299adfa2bf5102c5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The_Path_of_True_Ministry.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3/46b5bef713c1a1a6a0edf7b96d96429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The_Path_of_True_Ministry.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3/4d6ea527ff163f4d5cdf1168e1d917f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The_Path_of_True_Ministry.pdf_9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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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하나님_나라_사역자와_영적_무기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3/090ce76a0c08e37acd7e20898356703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Spiritual_Weaponry_Diagnostic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3/879f5fd7f9fa3e25c88c6fd97570d3f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Spiritual_Weaponry_Diagnostic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3/91b72bae160f34621f3d85d26ff9a17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Spiritual_Weaponry_Diagnostic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3/8220e486265b36c68e3b2b15d417d11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Spiritual_Weaponry_Diagnostic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3/63acb3c5f6ca01afb5bdacc1de4f57e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Spiritual_Weaponry_Diagnostic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3/7f94798925ef536bd95b7456d49870c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Spiritual_Weaponry_Diagnostic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3/850c72c29c2a5d54941431262fa19c0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Spiritual_Weaponry_Diagnostic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3/e7ed189454a65815118f00709f8cdf0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Spiritual_Weaponry_Diagnostic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3/73244b53e4d5df5d1aaec08682b2479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Spiritual_Weaponry_Diagnostic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3/38e7602e8d4c9009e29b08d4d8dddbc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Spiritual_Weaponry_Diagnostics.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3/f1b7c1650da10a98f169449f4343595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08)] Spiritual_Weaponry_Diagnostics.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84/263/397d140872f0ecf99eb70eb4775a1ed9.webp&quot; /&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사역자론(07)]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기 위한 최종적인 관문은 무엇인가?(출4:10~17)_2026-07-26(주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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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7-27T01:40:47+09:00</published>
		<updated>2026-07-28T00:22:32+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온라인새벽기도회(2026.07.27/월)] [사역자론(07)]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기 위한 최종적인 관문은 무엇인가?(출4:10~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soojQcKNRNo 아침묵상 · 사역자론(07)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기 위한 최종적인 관문은 무엇인가? (출 4:10-17)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하나님의 사역자로 쓰임받으려면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점검해야 한다. 사역의 크기나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온라인새벽기도회(2026.07.27/월)]&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사역자론(07)]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기 위한 최종적인 관문은 무엇인가?(출4:10~1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soojQcKNRNo&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soojQcKNRNo?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아침묵상 &amp;middot; 사역자론(07)&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하나님의 사역자가 되기 위한 최종적인 관문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출 4:10-17)&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사역자로 쓰임받으려면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점검해야 한다. 사역의 크기나 은사보다 먼저 자신이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확실히 믿고 있는지, 예수 생명이 성령으로 자기 안에 들어와 생명의 분배가 이루어졌는지, 그리하여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구원의 기초가 분명하지 않은 채 사역의 자리부터 구하는 것은 순서를 거꾸로 세우는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거듭남은 신앙생활의 완성이 아니라 출발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 앞에는 천국에서 받을 지위와 신분과 상이 기다리고 있다. 그 상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일해야 한다. 기도로 주의 종과 교회를 섬기고, 몸으로 봉사하며, 다른 영혼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도와야 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천국에서 받을 상도 적을 수밖에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열심만 있으면 모두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일꾼이 자기 힘과 혈기와 분노로 일하면 이 땅에서 많은 수고를 하고도 천국에서 상을 얻지 못할 수 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꾼이 되려면 자질과 성품과 순종이라는 세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자질은 맡은 일을 감당할 지혜와 능력이고, 성품은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을 닮는 것이며,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자기 자유의지로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의 일생은 이 세 준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 준다. 처음 사십 년은 애굽 왕궁에서 자질을 준비한 때였고, 다음 사십 년은 미디안 광야에서 혈기와 분노를 비우고 성품을 준비한 때였다. 그리고 여든 살에 호렙산에서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는 마지막 순종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모세는 다섯 번이나 자신이 갈 수 없는 이유를 말했지만, 하나님은 각각의 변명에 답하시며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셨음을 알려 주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이 자기 능력으로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오래 준비하시고, 때가 차면 함께하시며, 자신의 이름과 약속을 알려 주시고, 표적과 능력과 말씀을 주시며, 부족한 부분에는 동역자를 붙이신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이 &amp;ldquo;내가 하겠습니다&amp;rdquo;가 아니라 &amp;ldquo;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하실 것을 믿고 순종하겠습니다&amp;rdquo;라고 응답하는지를 보신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구원과 거듭남을 왜 먼저 확인해야 하며, 자질과 성품과 순종은 어떻게 준비되고, 모세의 세 시기와 다섯 변명은 무엇을 보여 주며, 회개는 성품을 어떻게 바꾸고, 하나님은 부족한 자에게 무엇을 공급하시며, 순종의 관문을 통과한 사역자에게 어떤 열매와 상이 주어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구원과 거듭남의 확인은 왜 사역보다 먼저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역자는 먼저 자신이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고 생명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지 확인해야 한다. 아무리 큰 일을 하고 많은 사람 앞에 서더라도 자기 영혼이 구원받지 못한다면 모든 수고의 기초가 무너진다. 사역은 구원을 얻기 위한 대가가 아니라 구원받은 자녀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드리는 충성이다. 그러므로 일하기 전에 생명이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에게는 몇 가지 실제적인 표지가 나타난다. 첫째, 하나님을 자연스럽게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 필자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 &amp;ldquo;하나님&amp;rdquo;이라는 말은 할 수 있었지만 &amp;ldquo;하나님 아버지&amp;rdquo;라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생명을 받아 친밀한 관계가 형성될수록 하나님이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자기 아버지라는 고백이 마음에서 나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성령세례를 받아 방언을 말하게 되면 성령이 안에 들어오셨다는 확실한 표적을 얻는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 사람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다(행 2: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방언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상태를 정죄하기보다 성령세례를 구하며 점검받아야 한다. 방언 자체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자기 안에 들어와 역사하신다는 표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굳게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환경과 관계없는 내적인 평안과 감사가 찾아온다. 밖의 형편은 여전히 어렵더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평안이 있고, 기도와 찬송만 해도 가슴이 뭉클하며 눈물이 흐른다. 필자는 늦게 예수님을 믿은 뒤 찬송 한 소절만 불러도 은혜가 되어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말한다. 모태신앙인은 같은 방식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주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와 평안은 거듭난 생명의 중요한 열매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지막 확인은 생명책에 자기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감정적인 체험만으로 모든 것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고 성령으로 생명을 받았으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성령의 인도와 평안 가운데 살아가면서 끝까지 믿음과 회개를 지켜야 한다. 거듭남은 신앙의 출발점이며, 그 뒤에는 자녀로서 아버지의 일을 감당하는 삶이 이어져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일은 천국의 지위와 신분과 상을 준비한다. 기도는 섬김의 첫째이며 봉사는 그다음이다. 주의 종이 복음을 전하고 사역할 때 함께 기도하고, 교회의 필요를 자기 일처럼 짊어지고, 다른 영혼이 구원받도록 섬겨야 한다.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에만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갈 때 이 땅의 수고가 천국의 영광으로 바뀐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사역자에게 필요한 자질&amp;middot;성품&amp;middot;순종은 어떻게 준비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역자에게는 세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는 자질, 둘째는 성품, 셋째는 순종이다. 모든 사람이 세 영역에서 완전할 수는 없지만, 자기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살펴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어느 정도 성숙한 단계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시고, 그 일을 통하여 더 깊은 훈련을 이어 가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자질은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감당할 기본 소양과 실력이다. 말씀을 전할 사람은 성경을 배우고 바르게 말하는 훈련을 해야 하며, 사람을 이끌 사람은 지혜와 분별력과 행정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영적 사역자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그분의 경륜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준비 없이 갑자기 큰 책임을 맡기지 않으신다. 작은 일과 배움의 시간을 통하여 큰 일을 감당할 그릇을 먼저 만드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품은 자질보다 더 깊은 영역이다. 실력이 뛰어나도 혈기와 분노와 교만으로 일하면 사람을 상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 모세가 자기 힘으로 애굽 사람을 죽였을 때 이스라엘 전체를 구할 수 없었다. 사람 한 명을 쓰러뜨릴 수는 있었지만 애굽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이백만 명가량의 백성을 이끌 능력은 없었다. 하나님은 그가 자기 힘을 비우고 온유한 사람으로 바뀔 때까지 기다리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도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자기에게 배우면 마음이 쉼을 얻는다고 하셨다(마 11:2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능력이 없어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것이 아니다. 모든 권세를 가지셨지만 자신을 낮추어 섬기셨다. 많은 사람을 치유하고 가르치느라 피곤하여 배에서 주무실 만큼 자신을 내어 주셨다. 하나님의 사역자는 능력만 구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온유와 겸손과 섬김을 배워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순종은 준비의 마지막 단계다. 아무리 자질과 성품이 갖추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사역을 맡을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억지로 쓰지 않으신다. 자신의 뜻과 계획을 알려 주신 뒤, 그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내어 드리는지를 보신다. &amp;ldquo;나는 할 수 있다&amp;rdquo;는 자신감이 아니라 &amp;ldquo;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고 내 몸을 드리겠다&amp;rdquo;는 믿음이 순종의 기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세 준비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자질은 일을 가능하게 하고, 성품은 그 일을 바른 동기로 행하게 하며, 순종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와 방법에 자신을 내어 드리게 한다. 자질만 있으면 교만해질 수 있고, 성품만 좋고 실력이 없으면 맡은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수 있다. 자질과 성품이 있어도 순종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세 영역을 함께 다루어 온전한 일꾼을 세우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모세의 세 시기는 사역자 훈련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의 일생은 세 번의 사십 년으로 구분된다. 첫 사십 년은 애굽 왕궁에서 자질을 준비한 기간이다. 바로의 딸의 아들로 자라며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와 학문과 언어를 배웠고, 말과 하는 일에 능한 사람이 되었다(행 7:2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7: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는 왕궁의 교육을 통하여 한 나라를 이해하고 사람을 이끄는 실력을 길렀다. 동시에 친어머니 요게벳에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언약을 배워 신앙의 기초를 세웠다. 애굽의 학문만 배운 것도 아니고 신앙만 가진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장차 바로 앞에 설 사람에게 필요한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약속을 함께 준비시키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두 번째 사십 년은 미디안 광야에서 성품을 준비한 기간이다. 마흔 살의 모세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려는 열심이 있었지만 혈기와 분노로 애굽 사람을 죽였다. 동족이 자기 뜻을 알아줄 것이라 생각했으나 오히려 거절당했고, 미디안으로 도망하여 나그네가 되었다. 사십 년이 찼을 때 하나님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그에게 나타나셨다(행 7:29-3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7:29-30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광야에서 양을 친 사십 년은 자기 비움의 시간이었다. 왕궁의 지위도 사라지고, 자기 힘으로 민족을 구하겠다는 자신감도 꺾였다. 양 떼를 돌보며 기다리는 동안 혈기와 분노가 빠지고 온유함이 자랐다. 하나님은 능력이 없어서 모세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능력을 자기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성품을 다듬으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 번째 사십 년은 순종하여 사역한 기간이다. 여든 살이 되었을 때 모세는 인간적으로 가장 약해 보였다. 바로는 젊고 모든 권력을 가졌지만 모세는 광야의 늙은 목자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젊음이나 정치적 배경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하는 사람을 사용하셨다. 자질과 성품이 준비된 모세에게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믿고 애굽으로 돌아가는 순종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어느 날 우연히 모세를 택해 준비 없이 보내지 않으셨다. 태어날 때부터 왕궁과 요게벳과 미디안과 이드로와 아론을 배치하셨다. 모세 자신은 실패와 도피와 무명의 세월로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모든 시간을 사역 준비로 사용하셨다. 우리의 삶이 비참해지고 길이 막힌 것처럼 보여도 쉽게 절망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장차 맡길 일을 위하여 실력과 인격과 믿음을 만들고 계실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셉의 생애도 같은 원리를 보여 준다. 열일곱 살에 꿈과 영적 은사를 받았지만 곧 총리가 되지 않았다. 약 십 년 동안 보디발의 집에서 많은 식솔을 관리하며 작은 살림을 배웠고, 이어 감옥에서 나라의 일을 맡았던 사람들을 만나 큰 살림의 구조를 익혔다. 모두 십삼 년의 준비를 거쳐 서른 살에 애굽 총리가 되었다. 하나님은 사명을 먼저 보여 주시고 그 사명을 감당할 자질과 성품을 시간 속에서 만들어 가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회개는 혈기와 미움의 성품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품 변화는 의지만으로 자기 감정을 눌러 놓는 일이 아니다. 혈기와 분노와 미움에는 악한 영의 역사도 연결되어 있다. 사람은 &amp;ldquo;다시는 화내지 않겠다&amp;rdquo;고 결심하면서 겉모습을 억제할 수 있지만, 속에서 역사하는 혈기와 분노의 영이 남아 있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폭발한다. 그러므로 성품을 바꾸려면 자기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하고 그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이 떠나가게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회개를 실제로 해 보니 일 년만 꾸준히 회개해도 혈기와 분노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전에는 화가 날 상황에서 화가 나지 않고, 미워했던 사람을 품고 용서하는 마음이 생겼다. 악한 영이 성품을 붙들고 주장했는데 회개로 그 영이 나가자 온유와 겸손과 친절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자기 세뇌가 아니라 영적 뿌리가 제거되면서 일어난 변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는 혈기와 분노를 비우는 데 광야 사십 년이 필요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회개기도문이 있다. 죄목을 구체적으로 자백하고 반복하여 회개하면 모세가 사십 년 동안 겪은 성품 훈련을 훨씬 짧은 기간에 통과할 수 있다. 회개기도문을 만난 것은 성품 준비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큰 복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셉도 성품이 준비되어야 애굽 총리가 될 수 있었다. 형들에게 팔리고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지만, 형들을 향한 미움과 복수심을 품지 않았다. 그는 형들이 자신을 팔았다고 근심하지 말라고 하며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자신을 먼저 보내셨다고 고백했다(창 45:5-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창 45:5-7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셉은 고난을 사람의 악의로만 보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해석했다. 형들을 죽일 권세가 생겼을 때 복수하지 않고 가족을 살렸다. 자질만 준비된 사람이라면 권력을 자기 상처를 갚는 데 썼을 것이다. 성품까지 준비되었기 때문에 애굽의 권세를 생명을 보존하는 사명에 사용할 수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도 어려움을 당할 때 &amp;ldquo;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가&amp;rdquo;라고 원망하는 데 머물지 말아야 한다. 필자는 무당의 영에게 눌리고 잠을 이루지 못했던 고통도 훗날 축사 사역을 감당하도록 준비하신 과정이었다고 고백한다. 회개하고 악한 영을 이기면서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을 도울 능력이 생겼다. 하나님은 상처와 실패까지도 성품과 사명을 준비하는 재료로 사용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역자의 혈기와 분노는 양 떼에게 큰 상처를 준다. 실력이 뛰어나도 말과 행동이 거칠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오해하고 사역자에게 실망한다. 그러므로 능력과 은사를 구하기 전에 회개로 성품을 준비해야 한다. 죄와 악한 영의 뿌리를 처리하여 온유와 겸손과 용서가 실제 행동으로 나타날 때 하나님께서 더 큰 일을 맡기실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모세의 다섯 가지 변명에 하나님은 어떻게 답하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는 자질과 성품이 준비되었지만 부르심 앞에서 다섯 번 변명했다. 이것은 하나님께 완전히 반역하려는 불순종이라기보다 자기 부족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려는 과정이었다. 하나님은 모세를 억지로 몰아붙이지 않고 각각의 질문에 답하시며 누가 그 일을 이루는지를 가르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째, 모세는 &amp;ldquo;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겠습니까?&amp;rdquo;라고 물었다. 젊고 강한 바로와 이백만 명가량의 백성을 생각하면 여든 살 목자인 자신은 너무 작아 보였다. 하나님은 모세의 능력을 칭찬하지 않고 &amp;ldquo;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amp;rdquo;고 답하셨다(출 3:11-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3:11-12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 번째 답은 &amp;ldquo;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다&amp;rdquo;는 것이다. 모세가 혼자 바로를 이기고 백성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가시고 그를 통하여 일하신다. 사역자가 이 사실을 모르면 모든 짐을 자기 어깨에 지고 두려워하거나, 일이 잘되면 자기가 한 것처럼 교만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이름을 물으면 무엇이라 대답해야 하느냐고 했다. 애굽에서 오랫동안 우상을 접한 백성은 조상의 하나님을 잊고 있었다. 하나님은 자신을 &amp;ldquo;스스로 있는 자&amp;rdquo;라고 계시하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보내셨다고 말하게 하셨다(출 3:13-1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3:13-15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ldquo;스스로 있는 자&amp;rdquo;는 하나님의 자존성을 나타낸다. 필자는 설교에서 이를 &amp;ldquo;있게 하는 자&amp;rdquo;, 곧 없는 것도 있게 하실 수 있는 전능자의 의미로 함께 강조한다. 이것은 성경 번역문 자체와 그 말씀에서 풀어낸 목회적 해석을 구별하여 받아들여야 한다. 순종하려면 자기를 보내신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임을 알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모세는 백성과 장로들이 자기를 믿지 않고 여호와께서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할 것이라 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세 가지 표적을 주셨다. 지팡이를 땅에 던지면 뱀이 되고 그 꼬리를 잡으면 다시 지팡이가 되었으며, 손을 품에 넣었다 꺼내면 나병이 생겼다가 다시 온전해졌다. 그래도 믿지 않으면 나일강 물을 땅에 부어 피가 되게 하라고 하셨다(출 4:1-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4:1-5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이는 그들이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 번째 답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에게 사명을 증명할 표적과 능력을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일을 맡기면서 빈손으로 보내지 않으신다. 필요한 은사와 능력과 영적 무기를 주셔서 사람들이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알게 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넷째, 모세는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며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다고 했다. 사도행전은 그가 젊을 때 말과 하는 일에 능했다고 기록하지만,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양만 치며 말하는 능력을 잃었다고 느꼈을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입을 지은 이가 자신이며 모세의 입과 함께하여 할 말을 가르치겠다고 하셨다(출 4:10-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4:10-12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네 번째 답은 하나님이 사역자의 약점을 아시며 직접 채우신다는 것이다. 말을 배우지 못한 베드로도 성령이 임하자 수천 명 앞에서 복음을 전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면 말할 수 있고,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면 전에는 할 수 없던 일을 감당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섯째, 모세는 마침내 &amp;ldquo;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amp;rdquo;라고 했다. 그때 하나님은 말 잘하는 형 아론을 이미 준비해 놓으셨다고 하셨다. 모세가 아론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아론이 백성에게 말하도록 하셨고, 하나님은 두 사람의 입과 함께하여 행할 일을 가르치겠다고 하셨다(출 4:13-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4:13-17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섯 번째 답은 하나님이 부족한 부분을 채울 동역자까지 만세 전부터 준비하신다는 것이다. 이 다섯 문답을 통하여 모세는 자기가 모든 것을 갖추어야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공급하신다는 사실을 배웠다. 더는 핑계 댈 이유가 없음을 깨달았을 때 애굽으로 향하는 순종의 길에 들어섰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하나님은 부족한 자에게 능력과 동역자를 어떻게 공급하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사람을 쓰실 때 그가 맡은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표적과 은사와 능력과 영적 무기를 주신다. 모세에게는 능력의 지팡이와 세 가지 표적을 주셨다. 지팡이는 본래 광야의 마른 막대기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자 애굽의 권세를 꺾는 도구가 되었다. 사역자의 가치도 자기 재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붙드시고 사용하시는 데서 나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이 어떤 일을 맡기시면서 그 일을 감당할 은사와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사역의 때가 가까웠음을 알 수 있다. 영적 사역을 맡길 사람에게는 영을 분별하고 악한 영을 제압할 무기가 주어지며, 말씀을 전할 사람에게는 성경이 열리고 말할 능력이 주어진다. 아무런 은사와 준비도 없이 자기 욕심으로 길을 만들면 고생만 하고 열매를 얻기 어렵다. 하나님이 열어 주신 때와 공급하신 능력을 분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약점을 직접 채워 주시기도 한다. 필자는 중학교 때 사람들 앞에 서면 얼굴이 붉어지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반장도 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명을 맡기신 뒤에는 몇 시간씩 말씀을 전해도 사람들이 더 듣고 싶어 할 만큼 말할 능력을 주셨다. 본래 가진 재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변화다. 하나님이 입과 함께하시고 할 말을 가르치신다는 약속이 실제가 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때로는 약점을 보완할 동역자를 붙여 주신다. 모세보다 세 살 많은 아론은 모세가 태어나기 전부터 준비된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모세가 말을 못한다고 할 것을 아시고 말 잘하는 형을 먼저 태어나게 하여 적절한 때에 붙이셨다. 오늘도 가족과 지역과 교회와 온라인 공간을 통하여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하신다. 한 사람이 다 할 수 없는 일을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진 동역자들이 협력하여 감당하게 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동역에는 하나님의 질서가 있다. 하나님은 아론에게 모세를 제쳐 놓고 직접 백성을 이끌라고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며, 아론이 백성에게 전달하게 하셨다. 아론은 말을 더 잘했지만 사명의 중심을 맡은 모세를 대신하여 스스로 지도자가 되지 않았다. 돕는 사역자는 자기 은사가 뛰어나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세운 질서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회에서도 하나님이 세운 종과 동역자들의 역할을 분별해야 한다. 질서를 지키는 것은 사람을 우상화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책임의 통로를 존중하는 것이다. 지도자는 동역자의 은사를 억누르지 말고 입에 할 말을 주며 사역하게 해야 하고, 동역자는 지도자를 제치지 않고 받은 영역에서 충성해야 한다. 모세와 아론처럼 서로의 부족을 채울 때 한 민족을 살리는 일이 가능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능력과 동역자를 공급받은 사람은 교만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하나님이 거두시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자기 능력이 조금 있다고 기고만장하면 하나님이 쓰시지 않는다. 썩은 나무 막대기도 하나님이 잡으시면 능력의 지팡이가 되고, 뛰어난 사람도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사역자는 &amp;ldquo;내가 했다&amp;rdquo;가 아니라 &amp;ldquo;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하셨다&amp;rdquo;고 고백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순종의 관문을 통과한 사역자에게 어떤 열매와 상이 주어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순종의 관문을 통과했다는 첫 표지는 하나님의 일이 자기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자기 부족 때문에 도망하지도 않고 자기 능력 때문에 자랑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전능하신 주님이 약속을 이루시며, 필요한 능력과 말씀과 동역자를 공급하신다는 믿음으로 자기 몸을 내어 드린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최종적인 순종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표지는 맡은 자리에서 실제로 움직이는 것이다. 준비가 끝났다는 말을 듣고도 애굽으로 가지 않았다면 모세는 사역자가 될 수 없었다. 순종은 마음속 동의가 아니라 발을 떼는 행동이다. 주의 종이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떤 일을 부탁할 때, 그것이 말씀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자기 부족만 말하지 말고 기도하며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과정에서 남은 부족도 채우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표지는 성품과 질서가 함께 지켜지는 것이다. 혈기와 분노로 밀어붙이지 않고 온유와 겸손으로 사람을 섬기며, 하나님이 세운 책임의 질서를 존중한다. 회개를 계속하여 악한 영이 성품을 조종할 통로를 끊고, 동역자의 은사를 기뻐하며,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과도 협력한다. 하나님은 혼자 빛나려는 사람보다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을 크게 쓰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넷째 표지는 하나님이 주신 표적과 능력과 열매가 뒤따르는 것이다.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말씀과 이적을 전하자 장로들과 백성이 믿고 머리 숙여 경배했다. 사역의 진실성은 직함이나 자기 주장만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표적과 사람의 생명이 변화되는 열매와 복음이 전진하는 결과가 나타나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 인정받은 수고는 천국의 상으로 남는다. 바울은 각 사람의 공적이 금이나 은이나 보석처럼 불을 견디면 상을 받는다고 말했다(고전 3:12-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7a5c34;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3f382e;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3:12-14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 세계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땅에서 올려 보낸 충성과 수고로 천국의 집이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어지고 정원과 연못이 조성된다. 연못의 물고기와 정원의 나무와 아침마다 인사하는 새 한 마리도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께 드린 수고와 연결된다. 이러한 묘사는 성경의 직접 진술과 필자의 영적 체험을 구별하여 받아들여야 하지만, 이 땅의 충성이 천국의 실제 상급으로 남는다는 핵심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아직 부족한 부분을 발견했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다. 자질이 부족하면 공부하고 훈련해야 하며, 성품이 부족하면 회개하여 악한 영의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순종이 부족하면 하나님이 하신다는 믿음을 배우고 작은 명령부터 실천해야 한다. 주님은 완전한 사람만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준비된 사람이 자신을 드릴 때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사용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역의 크고 작음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는가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모세처럼 한 민족을 이끌지는 않지만, 각자 받은 자리에서 기도하고 봉사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작은 일에 충성하면 그 수고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자신을 내어 드린 사람은 이 땅에서 생명을 살리는 열매를 맺고 천국에서 면류관과 집과 상을 받는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c261e;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사역자가 되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하며 최종적인 순종의 관문을 어떻게 통과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사역보다 먼저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고 성령으로 생명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지 확인해야 한다. 거듭남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의 일을 시작하는 출발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사역자에게 자질과 성품과 순종을 준비시키신다. 모세는 애굽 왕궁의 사십 년 동안 자질을, 미디안 광야의 사십 년 동안 성품을 준비했다. 요셉도 십삼 년의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통하여 큰 나라의 살림을 맡을 실력과 형들을 용서할 성품을 갖추었다. 예수께서도 온유와 겸손으로 자신을 낮추어 섬기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혈기와 분노와 미움의 영적 뿌리를 제거하여 성품 훈련의 시간을 단축한다. 회개기도문을 따라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면 악한 영이 떠나고 온유와 겸손과 용서가 실제 삶에 나타난다. 능력이 크더라도 성품이 준비되지 않으면 사람을 상하게 하므로, 사역자는 계속 회개하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이루어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세의 다섯 변명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분명하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약속을 이루시며, 사명을 증명할 표적과 능력을 주시고, 부족한 입에 말씀을 주시며, 필요한 동역자까지 붙이신다. 사역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자기 몸을 내어 드리는 통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자기 부족을 핑계로 부르심을 계속 미루어서도 안 되고, 자기 능력을 믿고 교만해서도 안 된다. 부족한 자질은 배우고, 잘못된 성품은 회개하며, 하나님의 때가 왔을 때에는 믿음으로 순종해야 한다. 질서를 지키며 동역하고, 맡은 작은 일에 충성하며, 모든 열매를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그리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채우신다는 믿음으로 순종하여 많은 생명을 살리고 천국의 상을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7월 27일(월)&lt;br /&gt; 정보배 목사&lt;br /&gt; &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하나님의 사역자로 쓰임받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amp;nbsp;&lt;strong&gt;준비 과정과 최종 관문인 순종&lt;/strong&gt;에 대해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사역의 기초로&amp;nbsp;&lt;strong&gt;구원의 확신과 거듭남의 증거&lt;/strong&gt;를 강조하며, 실력(자질)과 성품이 갖추어진 후에는 자신의 한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amp;nbsp;&lt;strong&gt;절대적인 순종의 훈련&lt;/strong&gt;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특히 모세가 다섯 번의 변명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핑계 삼았으나, 하나님은&amp;nbsp;&lt;strong&gt;동역자를 예비하시고 능력을 부여하시며&lt;/strong&gt;&amp;nbsp;결국 당신께서 직접 일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심으로써 그를 사역자로 완성시키셨음을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인간의 유능함이 아닌&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신뢰하며 나를 내어드리는 태도&lt;/strong&gt;가 천국에서의 상급과 지위를 결정짓는 핵심임을 전하고자 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7)] ChatGPT Image 2026년 7월 27일 오전 08_26_5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0/263/43d96fb0ce6a9fb6429f18f14689c4b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7)] The_Divine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0/263/7bdefa00c68090d37c900a761636c87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7)] The_Divine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0/263/4f529ba69ed89ba6c29051ce2088fb8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7)] The_Divine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0/263/69d0ca0d4c1018e3e617e72cc4aaccb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7)] The_Divine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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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7)] Divine_Servant_Protocol.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0/263/aec0c506c8b2fc2bd57a7526c85cc82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7)] Divine_Servant_Protocol.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0/263/00f66670da835d4d379ab2ff3d48652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7)] Divine_Servant_Protocol.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0/263/7acab685c702f3d4167ade41ab2f33d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7)] Divine_Servant_Protocol.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0/263/e2c9d0cfeba8e61f37398d075946c90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7)] Divine_Servant_Protocol.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0/263/3ed8e6ed3999604acefd9b58a9c1f93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7)] Divine_Servant_Protocol.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0/263/f978f227d8a1915db0a0af16952782c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7)] Divine_Servant_Protocol.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0/263/f4a343a58d8d169e953c79a5e3807ff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7)] Divine_Servant_Protocol.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0/263/ab42ffed1be3e0ed967cf880ed728c1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7)] Divine_Servant_Protocol.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0/263/b41b9e0c28026c00b133775674eeb4e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7)] Divine_Servant_Protocol.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0/263/8994d18ddbe81adfd475140dd26116b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7)] Divine_Servant_Protocol.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0/263/a65cf2fccd3a015fc3477fe47efea32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7)] Divine_Servant_Protocol.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0/263/1cac06b997cfddc60c647c41ec23e6b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7)] Divine_Servant_Protocol.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0/263/7908f8018ce60f6d96e7ea0548b2f62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명자론(07)] Divine_Servant_Protocol.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0/263/27a17c9b7b0455d9eaf1a9bf1789481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