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title>아침묵상</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lang="ko"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atom"/>
	<updated>2026-09-24T18:09:39+09:00</updated>
	<id>https://dongtanms.kr/morning_qt/atom</id>
	<generator>Rhymix</generator>
	<rights>Copyright ⓒ 2017 동탄명성교회. All right reserved.</rights>	<entry>
		<title>[사역자론(18)]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천국에서 받을 5대 면류관은 무엇인가(02)(딤후4:7~8)_2026-09-24(목)</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266965"/>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266965#comment"/>		<id>https://dongtanms.kr/morning_qt/266965</id>
		<published>2026-09-23T22:53:21+09:00</published>
		<updated>2026-09-24T17:27:29+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역자론(18)]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천국에서 받을 5대 면류관은 무엇인가(02)(딤후4:7~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aIZrTujzlic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 1. 천국의 통치와 성도의 상은 이 땅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2. 천국 집의 터와 규모는 어떻게 정해지며 부모의 기도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3. 예배·기도·전도·섬김은 천국 집에 어떤 재료와 열매...</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사역자론(18)]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천국에서 받을 5대 면류관은 무엇인가(02)(딤후4:7~8)&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aIZrTujzlic&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aIZrTujzlic?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천국의 통치와 성도의 상은 이 땅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가?&lt;br /&gt; 2. 천국 집의 터와 규모는 어떻게 정해지며 부모의 기도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lt;br /&gt; 3. 예배&amp;middot;기도&amp;middot;전도&amp;middot;섬김은 천국 집에 어떤 재료와 열매로 쌓이는가?&lt;br /&gt; 4. 천국 집을 짓는 일과 면류관을 받는 일은 무엇이 다른가?&lt;br /&gt; 5. 바울은 왜 여러 면류관 가운데 의의 면류관을 자신의 상으로 말했는가?&lt;br /&gt; 6. 바울이 큰 집과 면류관을 받은 삶의 네 가지 특징은 무엇인가?&lt;br /&gt; 7. 오늘의 사역자는 끝까지 충성하며 어떤 상을 준비해야 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텍스트는 성도가 이 땅에서 행한 &lt;strong&gt;신앙의 수고&lt;/strong&gt;가 천국에서 어떤 &lt;strong&gt;실질적인 보상&lt;/strong&gt;으로 결실을 맺는지 구체적인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헌신이 &lt;strong&gt;천국 집의 재료&lt;/strong&gt;가 되어 집의 크기와 화려함을 결정하며, 특히 &lt;strong&gt;전도와 충성&lt;/strong&gt;은 영광스러운 &lt;strong&gt;면류관&lt;/strong&gt;이라는 특별상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합니다. 사도 바울의 삶을 최고의 모범으로 제시하며, 세상 유혹을 뒤로하고 끝까지 사명을 완수하는 자만이 주님이 인정하시는 &lt;strong&gt;의의 면류관&lt;/strong&gt;을 얻을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결국 이 글은 성도들에게 막연한 믿음을 넘어 &lt;strong&gt;행한 대로 갚아주시는&lt;/strong&gt;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하며, 미래의 영원한 영광을 위해 현세의 삶을 &lt;strong&gt;성실하게 준비할 것&lt;/strong&gt;을 강력히 권면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사역자론(18)&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천국에서 받을 5대 면류관은 무엇인가(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딤후 4:7-8)&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번 시간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가 천국에서 받을 면류관을 살피는 두 번째 시간이다. 주님이 우리를 불러 믿게 하시고 예배하게 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찬송과 기도는 허공에 사라지지 않는다. 필자가 천국(天國, kingdom of heaven)을 살피며 보아 온 바에 따르면,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행한 일 하나하나가 천국 집의 재료가 되어 올라간다. 그러므로 지금 사는 하루, 예배하는 한 시간, 영혼에게 건네는 한마디를 가볍게 볼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훈련을 받고 있을 때, 어느날 스승 목사님으로부터 주일예배를 빠져 벽에 구멍이 난 천국 집이&amp;nbsp; 있다는 것을 들었다. 그 구멍 옆에는 &amp;lsquo;몇 년 몇 월 며칠 주일 빠졌음&amp;rsquo;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고 했다. 그럼 그것을 어떻게 메울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에 그것은 전도로 메울 수 있다고 하셨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 필자는 예배 시간을 더 귀히 여기게 되었다. 천국 집의 빈자리가 자기 집의 문제라면 주일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말씀을 사모하고 예배를 지키며 복음을 전하는 일이 우리의 영원한 삶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천국 집만 잘 준비하면 되는가? 아니다. 천국에는 면류관(冕旒冠, crown)이라는 또 하나의 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천국 집의 재료는 수고했던 한 번 한 번의 삶에서 재료가 올라가지만, 면류관은 주님을 위해 맡은 일을 끝까지 감당한 충성(忠誠, faithfulness)한 자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상을 가리킨다. 바울은 죽음을 앞두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므로 자기는 의의 면류관(義의 冕旒冠, crown of righteousness)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딤후 4:7-8). 왜 그는 여러 가지 상들 가운데 바로 그 의의 면류관을 붙잡았는가?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천국의 삶과 상을 이 땅에서 어떻게 준비하는지, 천국 집의 재료와 면류관이 어떻게 다른지, 바울의 삶을 따라 의의 면류관을 받을 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천국의 통치와 성도의 상은 이 땅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국은 근심과 슬픔과 아픔과 고통이 없는 나라다. 거기에는 사탄과 귀신도 없고 죄의 유혹도 없다. 그러나 그곳이 무엇이 없다는 것만으로 천국을 설명할 수는 없다. 천국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선하고 인자하신 주님의 통치 아래 사는 것이 그 나라의 특징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자기처럼 영광의 보좌에 앉을 권한을 이기는 자에게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계 3:21). 필자는 천국의 스물네 장로와 십사만 사천의 보좌를 보면서, 주님이 귀히 여기시는 이들에게 통치권을 나누어 주시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모두가 똑같은 신분과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 성도들은 보통은 자신이 천국에만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 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필자가 살펴본 천국에서는 어떤 사람에게 집도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면류관도 있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영광스럽게 다스리는 지위까지 주어진 채 있었다. 그러나 천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집이 없이 천국의 변두리인 꽃밭에서 산다. 그러므로 &amp;lsquo;구원받은 성도는 모두 왕 같은 제사장이니 천국에서도 똑같이 왕 노릇할 것&amp;rsquo;이라고 쉽게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이 땅에서부터 우리는 그 위치에 들어갈 합당한 삶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천국에서의 나의 집과 나의 상과 나의 지위는 모두 다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살 때 어떻게 믿고 섬겼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준비는 내가 죽은 다음에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어서 그 영혼이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천국에서 건축 천사들이 짓던 천국 집도 마무리된다. 천국에 간 뒤에 뒤늦게 벽돌을 더 올리거나 집을 보수할 수는 없다. 면류관도 이 땅에서 살아낸 충성도에 따라 결정된다. 바울이나 베드로는 과연 나와 다른 존재였는가? 아니다.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사람이었고 나도 사람이다. 그들은 순교했지만 우리는 그들보다 이 땅에서 더 오래 살 수도 있다. 그만큼 준비할 시간이 내게 주어졌는데 그 시간을 우리는 허투루 쓸 수가 없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내가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만으로 하늘에서 상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예배 한 번을 드려도 천국집을 짓는 재료가 올라가고, 찬송하고 기도해도 역시 올라간다. 그리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수고가 있다면 더더욱 천국 집이 아름답게 조성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신앙을 적당히 유지한 채 천국의 영광이 주어지기를 바라서는 아니 된다. 세상의 소식만 듣고 영혼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평소 때에 배우지 못한 성도는 무엇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이 세상을 살 수 있다. 사실 필자의 부모는 두 분 다 초등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자식들만큼은&amp;nbsp; 배우게 하려고 학교에 보내 주셨다. 그러므로 영혼을 맡은 주의 종들은 자녀가 천국을 잘 준비하도록 가르쳐야 하고, 가르치지 못한다면 과외라도 받게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중에서도 필자는 &amp;#39;회개(悔改, repentance)와 천국복음&amp;#39;을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말하고 싶다. 못 배운 부모가 자녀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면 더 배울 수 있도록 인도해주듯이, 주의 종들도 성도도 하여금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코로나 시기에 필자는 자신의 영혼을 깨우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때부터 필자는 온 힘을 다하여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고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천국 집의 터와 규모는 어떻게 정해지며 부모의 기도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국 집은 어디에 지어지는가?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천국은 스물네 마을로 나뉘어져 있고 각 사람은 그중에 한 마을에 마련된 집에서 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우리가 천국에 가면, 열두 진주문들 중에 하나의 문을 통과하여 들어간다. 그러면 꽃밭이 펼쳐지고, 중심에 있는 시온산 쪽으로 갈수록 높이 올라간다. 그 한가운데 꼭대기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으며 높은 집일수록 산 위쪽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천국 집의 위치와 크기에는 이 땅에서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가 반영된다. 따라서 넓고 아름다운 천국집을 갖게 되는 것은 지금 살아가는 나의 삶에서 비롯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천국 집을 지으려면 &lt;strong&gt;첫째로, 집 터가 마련되어야&lt;/strong&gt; 한다. 필자는 처음으로 예수를 믿고 오히려 부모님을 전도한 사람이다. 그런데 열심히 회개한 뒤 필자의 천국 집이 어떠한가를 보려고 했으나 처음에는 집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필자에게 귀신이 많아서 보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집을 지을 땅을 살펴보니 터는 있었지만 백 평이 채 되지 않았다. 필자는 주님을 위해 젊은 시절부터 목숨을 걸어 왔다고 여겼기에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아내는 필자보다 여섯 달 뒤 회개에 참여하여 천국 집을 보게 되었는데, 아내의 집터는 삼백 평이 넘었다. 필자의 아내는 3대째 믿는 신앙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나중에 천국 상황을 살펴서 알게 된 사실은 부모의 신앙과 기도가 자녀의 집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었다. 아내는 삼 대째 믿는 가정에서 자랐고 필자는 부모가 믿지 않던 집에서 자랐다. 믿는 부모가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면 그 자녀의 집을 지을 터가 일찍 마련되고 넓어질 수 있었다. 한나가 사무엘을 위해 기도했을 때 사무엘의 집터를 준비하는 천사들이 돌을 치우고 땅을 고르는 모습이 있었다. 자녀가 태어나기 전부터 기도의 손길이 그의 장래를 준비해주 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다. 그러므로 부모라면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처음 본 필자의 집터가 백 평이 되지 않았지만, 회개하고 충성하자 그 이후 더 훨씬 넓어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터가 마련되면 그 위에 집이 지어진다&lt;/strong&gt;. 하나님은 예배와 기도와 수고로 올려 보낸 재료를 받아 천사들을 통해 집을 짓는다. 일생의 삶이 집의 모습으로 남는다. 이때 겉으로 큰 사역을 했는지보다 무엇을 위하여, 얼마나 성실하게 살았는지가 중요하다. 교회당을 지어 하나님께 바친 사람, 복음을 위해 자기 집을 내놓은 사람, 자녀를 훌륭한 주의 종으로 길러 낸 부모, 선교지에 가서 일생을 바친 사역자의 집이 높게 지어진 것을 보았다. 그 가운데 일곱 층이 넘는 집도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반면 사람 눈에 작아 보이는 사역이 하늘에서도 작다고 단정할 수 없다. 필자는 시골에서 적은 수의 할머니 성도들을 돌보며 일평생 목회한 사역자를 보았다. 헌금이 넉넉하지 않은 작은 교회를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그가 일흔 살 가까이 되어 준비된 천국 집을 살펴보니 일곱 층이었다. 화려한 무대나 큰 숫자 없이도 하나님은 오랜 충성을 보신다. 부모의 기도가 집터를 준비하고, 본인의 믿음과 섬김이 그 집을 올린다. 지금 가진 환경을 핑계 삼지 말고 각자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집을 지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예배&amp;middot;기도&amp;middot;전도&amp;middot;섬김은 천국 집에 어떤 재료와 열매로 쌓이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천국 집을 마련할 재료는 특별한 행사를 할 때만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lt;strong&gt;그리고 찬송과 기도 등을 포함한 교회에서 행했던 모든 섬김들이&amp;nbsp;천국집의 재료가 되어 올라가기 때문&lt;/strong&gt;&lt;/span&gt;이다. 물론 주간에 모여 합심으로 나라와 민족과 교회를 중보할 때에도 천사가 그 수고의 재료를 가지고 올라간다. 복음을 위하여 물질을 드리는 일도, 길에서 한 사람에게 &amp;lsquo;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amp;rsquo;라고 말하는 일도 하늘에 기록되며 상이 된다. 무슨 큰일을 해야 비로소 기록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루를 어떻게 쓰느냐가 바로 천국 집의 벽과 정원에 그대로 쌓여 아름다운 천국 집과 정원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일에 예배드리러 오는 성도들을 위하여 &lt;strong&gt;음식을 준비할 때에는 천국의 내 집 연못에 물고기 한 마리가 생긴다&lt;/strong&gt;. &lt;strong&gt;믿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하면 정원에 꽃 한 송이가 생겨난다&lt;/strong&gt;. 그러므로 꼭 내가 전도한 사람이 교회에 출석해야 상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도를 받은 이가 실제로 교회에 출석하고 생명책에 기록되어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많아지면, 그 열매에 면류관의 상도 뒤따른다. 내가 건넨 말 한마디도 결코 없어지지 않고 기록되어 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서두에서 천국 집에 구멍이 난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자. 주일예배를 비운 사람들은 자신의 천국집의 벽에 구멍이 난다. 그러나 전도로 그것을 메울 수도 있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예배를 빠지는 일을 가볍게 여기지 않기를 강력하게 권고한다. 천국 집의 빈 공간은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복음을 전하며 살 때에 채워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을 귀히 여기고, 아직 살아 있을 때 삶의 방향을 돌려 천국 집을 잘 준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천국 집을 짓는 재료를 내가 천국에 올려 보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천국 집을 짓는 재료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랑과 자기 영광을 위해 행한 수고는 그 행위가 불을 지나며 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집을 높이 올리는 것이 왜 어려운지 조사하다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많은 일을 했다는 숫자만으로는 천국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솔로몬의 수고를 생각해 보라. 그러나 그가 자신의 영광을 위해 행한 일은 남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내가 행한 행위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한 것인지, 남에게 보이려는 마음으로 한 것인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큰 헌신도 그 동기가 잘못되었으며 천국 집의 재료로 남지 못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작은 일이라도 주님을 사랑함으로 행한 것이라면 그것은 소중한 것이다. 토요일에 미리 와서 교회 구석구석을 한 번 청소하는 일, 교회 식구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일, 지나가는 이에게 복음을 한마디 전하는 일도 귀중한 천국 재료가 된다. 그런데 한 번 행한 일과 일생 계속 행하는 일에는 천국 집과 면류관의 차이를 만든다. 그러나 집을 짓는 일을 시작조차 하지 않은 사람인데 그가 어느 날 천국에서 좋은 집을 받는 일은 결코 없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기도와 물질과 시간으로 천국 집이 지어지고 있으니,&amp;nbsp; 이 땅에서의 하루를 정말 귀중하게 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천국 집을 짓는 일과 면류관을 받는 일은 무엇이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국에서 주시는 상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amp;#39;천국 집&amp;#39;이요 또 하나는 &amp;#39;면류관&amp;#39;이다. 천국 집은 우리가 행한 선한 수고가 재료가 되어 천국 집이 이루어진다. 면류관은 그 수고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특별히 기뻐하시는 오래된 충성과 풍성한 열매를 따라 주어지는 상이다. 그러므로 천국 집이 있다는 사실과 면류관을 쓴다는 것은 같은 말은 아니다. 내가 교회에 나와서 청소를 했다면 그 일이 집의 재료가 되어 올라갔다. 그러나 청소를 한 번 했다는 사실만으로 충성의 면류관을 받지는 못한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동안 맡은 청소를 끝까지 감당할 때에 충성의 면류관이 주어진다. 이 차이를 알아야 작은 수고도 귀히 여기면서 거기에서 멈추지 않을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본 천국 집의 경우, 모든 집의 1층에는 황금 탁자가 놓여 있고 그 위에 면류관이 놓여 있다. 1층의 벽에는 전도상, 봉사상, 구제상, 희생상, 사랑상, 인내상, 예배상, 기도상처럼 그 사람이 받은 상이 걸러져 있다. 그 상에 따르는 영광스러운 상품이 바로 황금 탁자 위에 올려놓인 면류관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스무 개가 넘는 면류관이 놓여 있기도 하였다. 그렇다. 천국집의 1층을 보면, 한 사람의 생애에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주님을 위하여 끝까지 산 날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 거기에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천국에서 성도들은 주님이 정하신 시간이 되면 예배의 자리인 영광의 광장으로 나아간다. 천국에서는 지상에서의 절기와 주일처럼,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려고 예복으로 갈아입고 영광의 광장 위쪽으로 올라간다. 그때 면류관을 쓰고 나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집의 재료가 되는 수고를 많이 한 사람이라도, 주님 앞에서 면류관의 상을 받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amp;#39;껄껄껄&amp;#39;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천국의 성도들이 하는 말이 &amp;lsquo;조금만 더 예배를 잘 드릴걸, 중보기도에 조금만 더 힘쓸걸&amp;rsquo; 하는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영원히 누릴 영광을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서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바울은 무엇이라 말했는가? 그들이야말로 &amp;#39;자기의 기쁨이요 자알이자 면류관&amp;#39;이라고 했다(빌 4:1). 또 그들이 자신의 쓸 것을 거듭 보내어 준 일에 대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했다(빌 4:15-18). 빌립보 교회는 한 번 돕고 끝내 버린 것이 아니라 복음의 시초부터 함께 끝까지 수고한 충성이 그들의 삶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주님의 일에 꾸준히 동참한 사람에게만 면류관이 주어지는 것이다. 천국에서는 이 땅에서 행한 전도의 열매와 기도와 섬김들이 빛이 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일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사람을 기뻐하실 만큼 변함없이 주님을 섬기는 마음과 삶이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빌립보에서 자주 장사를 하던 루디아를 생각해 보라. 그는 장사해서 얻은 것을 바울의 사역과 복음을 위하여 기쁨으로 드렸다. 그리고 한 번의 호의로 끝내지 않고 바울 사역자를 계속해서 도우며 섬겼다. 필자는 루디아의 섬김에서 바울이 말한 향기로운 제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본다(빌 4:18). 시작의 열심이 끝까지 이어질 때 그 사람의 일생이 면류관이 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면류관의 모습도 한 가지로만 고정되어 있지 않다. 면류관들이 많으면 예배드리러 가면서 그것을 겹쳐 쓴다. 그래도 하나도 무겁지 않다. 그러면 보석에서 빛나는 빛이 더 강력해진다. 면류관은 솜털같이 가벼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천국 집은 이 땅에서 행한 삶의 흔적들을 그대로 보여 주고, 면류관은 끝까지 충성한 삶에 대한 주님의 특별한 인정의 결과&lt;/strong&gt;다. 고로 지금도 예배와 기도와 전도와 봉사를 행하고 있는 사람은 귀한 천국집의 재료를 지금도 올려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 길을 날마다 지속하여 선한 싸움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의로우신 재판장 앞에서 받을 상이 있는 것이다. 고로 일반적으로 천국 집을 준비하는 것보다 면류관을 쓰는 일이 더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 작은 순종을 시작하고, 내일도 같은 길을 걷고,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그 길을 놓지 않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바울은 왜 여러 면류관 가운데 의의 면류관을 자신의 상으로 말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번에 전하는 핵심 말씀은 바울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디모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 있다. 이 편지는 주후 67년 무렵 두 번째 로마 감옥에 갇힌 상태로 쓴 바울의 편지로서 유언과 같은 말이다. 이때 편지를 받을 대상자인 디모데는 바울이 세운 에베소 교회에 파송한 일종의 목회자였다. 이때 바울은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날 시각이 가까웠다고 밝히면서 자기의 삶을 세 마디로 정리했다. 그것은 선한 싸움을 싸웠고, 달려갈 길을 마쳤고, 믿음을 지켰다는 것이다(딤후 4:6-7). 일의 크기보다 먼저 삶의 끝까지 놓지 않은 믿음이 돋보인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이어 의의 면류관이 자신을 위하여 예비되어 있으며,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 약속은 바울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열려 있다고 했다(딤후 4:8). 의의 면류관은 한두 번 뜨거웠다가 그친 사람의 상이 아니다. 바울은 끝까지 싸우고 마치고 지킨 일생을 돌아보며 그 상을 말했다. 주님이 판단하실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후 4:8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왜 바울은 자기가ㅇ&amp;nbsp; &amp;nbsp; ㅍㅍ 받을 많은 면류관 가운데 의의 면류관을 이렇게 분명히 말했는가? 그는 주님의 일을 하느라 몸을 움직인 횟수만 헤아리지 않았다.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삶을 보시고 옳다고 인정하실지를 바라보았다. 자기에게 맡겨진 길을 끝까지 걷고 믿음을 버리지 않은 자로 서려 했기 때문이다. 이 면류관은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며 사는 모든 성도에게도 소망이 된다. 바울처럼 큰 선교의 업적을 남길 수 없다고 해서 그 약속의 문 앞에서 물러설 이유는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본문을 모르면 믿음은 있어도 천국의 상을 준비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amp;lsquo;천국에만 들어가면 됐지 무슨 상이 필요하냐&amp;rsquo;고 말한다. 그러면 기도와 섬김과 전도와 희생에 마음을 쏟지 못하고, 맡은 일을 쉽게 내려놓는다. 그러나 주님은 행한 대로 갚으신다. 상의 약속을 알면 손해처럼 보이는 수고도 하늘을 바라보며 감당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기 고백을 남기면서 선한 싸움과 믿음의 완주가 헛되지 않다고 들려주었다. 장차 의의 면류관을 주실 분이 의로우신 재판장이시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편지 끝에서 바울은 주께서 자신을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그분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실 것이라고 고백한다(딤후 4:18). 감옥과 죽음이 눈앞에 있어도 그의 시선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주의 나타나심과 천국을 바라보았다. 우리도 신앙생활의 마지막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세상에서 인정받고 편히 사는 일만 바라본다면 그날의 상을 생각하지 못한다. 필자는 사역자와 성도 모두가 바울의 고백을 자신의 장래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바울이 큰 집과 면류관을 받은 삶의 네 가지 특징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천국 집을 살피며 본 구약의 인물 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운 집과 많은 면류관을 받은 사람은 아브라함이었다. 모세가 이백만 명가량을 이끌고 홍해를 건넌 일을 생각하면 모세가 첫째일 듯하지만, 필자가 본 자리에서는 아브라함이 앞서고 모세가 그다음이었다. 신약에서는 한 번에 삼천 명, 또 오천 명에게 말씀을 전하고 병든 이를 일으킨 베드로가 첫째일 것 같지만, 필자가 본 가장 큰 집은 사도 바울의 것이었다. 베드로가 그 뒤였다. 여기서 사람의 눈에 드러난 기적과 숫자만으로 하늘의 상을 잴 수 없음을 배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의 집은 멀리서도 알아볼 만큼 빛나는 큰 성과 같았다. 문 오른편에 그의 이름이 있었고 천사들이 집 밖을 지키고 있었다. 필자가 살핀 터는 약 삼천 평, 건평은 약 이천 평이며 집은 열여덟 층이었다. 정원을 지나 집까지 한참 걸어야 했고, 아이 같은 천사들과 찾아온 사람들로 활기가 있었다. 분수가 있는 연못이 스물네 개나 되었고 물고기와 나무와 숲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 모세에게서 본 연못은 열두 개였고, 십사만 사천에 속한 사람들에게도 둘이나 셋이면 많은 편이었다. 이 크기와 숫자는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본 바를 전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집의 면류관도 빛과 보석이 특별했다. 바울이 얼마나 많은 전도의 열매와 상을 얻었는지 한눈에 다 셀 수 없었다. 면류관들이 겹쳐졌다가 하나로 합쳐질 때 그 빛에 일생의 수고가 드러나는 것이다. 필자가 사역을 위해 찾아온 목회자들을 살피며 본 집터 가운데 백 평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에 삼천 평의 터는 더욱 놀라웠다. 바울에게 그런 집과 면류관이 왜 주어졌는가? 필자는 그의 삶에서 네 가지를 붙잡았다. 그것은 재능이나 인기의 네 가지가 아니라 주님 앞에서 일생을 드린 네 모습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째, 바울은 자기가 좋아하고 추구하던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얻는 길로 돌이켰다. 그는 유대인 가운데 출세할 길을 바라며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다. 예수 믿는 사람을 붙잡아 가두려고 권한을 구하고 스데반이 죽는 자리에도 있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뒤에는 예전에 자기에게 유익하던 것을 해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아는 일을 가장 귀히 여겼다(빌 3:7-8). 하늘의 것을 얻으려면 이 땅의 출세와 욕망을 첫자리에 두던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바울은 말로만 포기하지 않고 그 방향으로 끝까지 걸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바울은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는 데 일생을 드렸다. 그는 결혼하지 않았고 개인의 안락을 위해 집 한 칸 마련하는 일에 삶을 걸지 않았다. 바울의 독신은 그에게 주어진 특별한 길이다. 결혼한 모든 사역자가 가정을 떠나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손으로 일한 것도 사치와 축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전할 길과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여러 사람의 집을 오가며 선교했고, 자기 몸을 편히 쉬게 하는 일보다 복음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곳으로 가는 일을 앞세웠다. 필자는 그가 땅에서 자기 집을 위해 살지 않았기에 천국에서 아름답고 큰 집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는 땅의 장막 같은 삶 너머에 하나님이 마련하실 영원한 집을 바라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바울은 목숨까지도 주님과 복음을 위해 드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복음을 전하다 여러 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고 돌에 맞아 죽은 듯 쓰러지기도 했지만 다시 일어나 전했다. 그에게 자기 생명을 오래 붙드는 것보다 복음의 사명을 마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필자는 이런 사람에게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진다고 본다. 순교(殉敎, martyrdom)의 자리까지 주님을 따를 각오로 살았고, 주님을 부인해야만 편해지는 순간에도 믿음의 지조를 지켰다. 그 길을 오늘의 사역자도 마음에 새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기철 목사님의 삶도 그 길을 보여 준다. 일제강점기에 교단 총회가 신사참배를 국민의례라고 하던 때에 그는 우상숭배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 일로 잡혀가 고문당하고 몸이 쇠약해졌지만 천황 앞에 절하라는 요구를 따르지 않았다. 못을 박은 판 위를 걷게 하는 고통을 겪고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다. 산정현교회에서 전한 마지막 설교 &amp;lsquo;5종목의 나의 기원&amp;rsquo;에 담긴 일사각오의 마음을 생각한다. 한 번 죽을 목숨을 주님께 드리는 것을 소원으로 삼았던 것이다. 성도가 주님께 충성하는 길에 고난이 닥쳐도 무엇을 붙들어야 할지 그의 삶이 묻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설교 뒤에 성도들과 함께 찬송한 노래가 &amp;lsquo;이 세상 험하고&amp;rsquo;였다. 몸은 고문으로 쇠약해졌으나 주님을 향한 고백은 약해지지 않았다. 소나무가 푸를 때 찍히고 백합화가 시들기 전에 꺾여도 주님께 드려진다면 그 삶이 귀하다는 필자는 그의 말을 기억한다. 바울이 마지막 편지에서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말한 것과 함께 놓고 읽으면, 면류관을 바라보는 믿음이 단지 상을 계산하는 마음이 아니라 주님을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임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넷째, 바울은 주님을 위해 받은 고난과 환난과 핍박을 불평으로만 대하지 않고 감사했다. 그는 자신이 이전에 교회를 박해하던 죄인이었음을 잊지 않았고, 그럼에도 자신을 불러 주신 주님의 긍휼을 크게 여겼다. 그래서 생명이 여러 개라도 주님께 드리고 싶을 만큼 그 은혜를 귀하게 여겼다. 고난이 왔다고 사랑을 거두거나 사명을 내던지지 않았다. 그는 떠날 시각이 가까웠을 때에도 주님이 자기 곁에 서서 힘을 주셨다고 고백했다(딤후 4:16-18). 주님이 살리신 삶을 끝까지 주님께 드리겠다는 마음이 그의 네 번째 모습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네 모습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세상의 유익을 내려놓았기에 사명을 첫자리에 둘 수 있었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려 했기에 생명의 위험도 지나갔다. 자신을 불러 주신 은혜를 기억했기에 그 고난을 견디면서도 믿음을 지켰다. 필자는 바울의 집과 면류관을 이야기할 때 건물의 층수만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층과 빛에 드러난 한 사람의 삶을 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바울과 똑같은 선교 여행을 할 수 없어도 그가 붙들었던 주님과 복음과 충성의 방향은 따라갈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오늘의 사역자는 끝까지 충성하며 어떤 상을 준비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우리가 바울에게서 배울 첫걸음은 지금 맡겨진 일을 소중히 하는 것이다. 천국 집의 재료를 올리는 일은 먼 나라로 떠나야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예배에 참석하고, 말씀을 듣고, 교회를 청소하고, 음식 한 접시를 준비하고, 복음을 전하며, 그 일을 위해 물질과 시간을 드릴 수 있다. 그 한 번 한 번이 집의 재료가 된다. 그러나 그 수고를 잠깐 해 보고 그만두면 면류관에 이르는 충성을 배우지 못한다. 각자의 형편에서 시작한 선한 일을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를 전하는 사역도 쉽지 않다. 사람을 돌아오게 하고, 죄를 자백하게 하며, 천국 성 안에 들어갈 길을 준비하게 하는 데에는 오해와 핍박이 따른다. 필자는 회개하지 않으면 성 밖에 머물 사람이 회개하여 성 안에 들어가게 되는 일을 볼 때, 그것을 도운 사역자에게 큰 상이 따른다고 전한다. 천국 집이 지어지는 속도도 달라진다고 보았다. 주님이 맡기신 말을 전하다 어려움이 와도 그 말씀을 바꾸지 말고 묵묵히 걸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기철 목사님에게도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국민의례라고 한마디 하면 풀려날 수 있었지만 그는 믿음의 지조를 버리지 않았다. 바울에게도 세상에서 편안히 살 길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길을 내려놓고 주님을 택했기에 선한 싸움을 마쳤다고 말할 수 있었다. 오늘 우리에게도 선택의 순간이 온다. 예배를 뒤로 미룰지, 성도를 위해 기도할지, 복음을 말할지 침묵할지 결정해야 한다. 작은 선택이 모여 삶의 방향을 만들고, 그 방향을 끝까지 지킬 때 주님이 기뻐하시는 충성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의 상은 사람의 박수로 대신할 수 없다. 어떤 집은 아직 주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도 넓어지고 높아지는 것을 보았다. 충성이 더해지자 시온산 쪽으로 집의 자리가 옮겨지는 모습도 보았다. 처음 필자에게 보인 집터가 작았다고 끝이 아니었던 것처럼 성도의 남은 생애도 아직 열려 있다. 오늘 일찍이 시작한 일을 놓치지 말고, 작은 교회와 작은 구역과 한 영혼을 향한 섬김을 계속해야 한다. 주님은 그런 삶을 기억하시고 집과 면류관에 그 수고를 새기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처럼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는 사람은 주님 앞에서 자기 삶이 의롭다고 인정받기를 구한다. 충성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전도의 상과 기쁨과 영광의 상을 말할 때에도 중심은 같다. 주님께서 &amp;lsquo;너는 내 기쁨&amp;rsquo;이라고 하실 만큼 끝까지 믿음을 지켰는가. 필자는 우리가 그 질문 앞에서 도망치지 않기를 바란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지금부터 천국 집을 세우고 주님이 기뻐하실 면류관을 준비할 수 있다. 자신의 생애를 주님께 드리는 일이 곧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는 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국 집의 터와 재료, 끝까지 충성한 자에게 주어지는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바라본 바울의 네 가지 삶을 살펴보았다. 예배와 기도와 전도와 섬김의 작은 수고는 천국 집을 짓는 재료가 된다. 주님께 맡은 일을 죽을 때까지 감당하는 충성은 면류관의 상으로 이어진다. 바울은 세상의 유익을 내려놓고 사명을 완수했으며, 생명까지 드릴 각오로 고난 중에도 주님의 은혜를 기억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곧 천국을 준비할 시간이다. 주일예배를 귀히 여기고, 말씀을 사모하며, 복음을 전하고, 작은 섬김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며 믿음을 지켜 의의 면류관을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23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98)] 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 어떻게 예수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우두머리이자 왕이 되셨는가?(호1:10~11)_2026-09-23(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266924"/>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266924#comment"/>		<id>https://dongtanms.kr/morning_qt/266924</id>
		<published>2026-09-23T09:11:51+09:00</published>
		<updated>2026-09-23T22:14:17+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98)] 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 어떻게 예수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우두머리이자 왕이 되셨는가?(호1:10~1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4UKj0rPl_wg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 1. 호세아서는 왜 소선지서의 첫머리에 놓였는가? 2. 고멜을 값을 주고 사 온 사건은 무엇을 예표하는가? 3. 호세아·여호수아·예수의 이름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4...</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98)] 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 어떻게 예수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우두머리이자 왕이 되셨는가?(호1:10~11)&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4UKj0rPl_wg&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4UKj0rPl_wg?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호세아서는 왜 소선지서의 첫머리에 놓였는가?&lt;br /&gt; 2. 고멜을 값을 주고 사 온 사건은 무엇을 예표하는가?&lt;br /&gt; 3. 호세아&amp;middot;여호수아&amp;middot;예수의 이름은 어떻게 연결되는가?&lt;br /&gt; 4. 여호수아는 왜 이스라엘에게 완전한 안식을 주지 못했는가?&lt;br /&gt; 5. 호세아서의 &amp;lsquo;다윗&amp;rsquo;과 &amp;lsquo;한 우두머리&amp;rsquo;는 누구를 가리키는가?&lt;br /&gt; 6. 북이스라엘의 회복 약속은 어떻게 성취되는가?&lt;br /&gt; 7. 예수님과 바울과 베드로는 &amp;lsquo;내 백성 아닌 자&amp;rsquo;를 누구로 해석했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본 설교는 구약의 &lt;strong&gt;호세아&lt;/strong&gt;를 신약의 &lt;strong&gt;예수 그리스도&lt;/strong&gt;를 비추는 결정적인 &lt;strong&gt;예표&lt;/strong&gt;로 정의하며, 그 이름과 삶의 궤적이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어떻게 상징하는지 심도 있게 고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호세아와 여호수아, 그리고 예수라는 이름이 모두 &amp;lsquo;구원&amp;rsquo;이라는 동일한 어원을 공유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호세아가 음란한 고멜을 대가를 치르고 다시 사온 사건을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신 예수님의 &lt;strong&gt;대속물&lt;/strong&gt; 사역과 연결해 설명합니다. 특히 본문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진 민족이 마지막 날에 &lt;strong&gt;다윗&lt;/strong&gt;으로 예표된 &lt;strong&gt;한 우두머리&lt;/strong&gt; 아래 하나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혈통적 이스라엘을 넘어 &lt;strong&gt;이방인&lt;/strong&gt;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영적 안식을 주는 것으로 성취되었다고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lt;strong&gt;언어적 유희&lt;/strong&gt;와 역사적 성취를 통해, 진정한 회개를 거쳐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자만이 하늘의 &lt;strong&gt;상속자&lt;/strong&gt;가 될 수 있다는 &lt;strong&gt;회개와 천국 복음&lt;/strong&gt;의 핵심 가치를 전파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98)&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어떻게 예수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우두머리이자 왕이 되셨는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번 시간은 호세아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표(豫表, typology) 가운데,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호세아서는 소선지서의 첫 번째 책이다. 그러나 호세아서가 소선지서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되지는 않았다. 북이스라엘을 향해 정의와 공의를 외쳤던 아모스서가 호세아서보다 먼저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호세아서가 앞에 놓인 것은 이 책의 이름부터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책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신약성경에서도 마가복음이 먼저 기록되었지만 마태복음이 복음서의 첫머리에 놓였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약속의 성취자임을 먼저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호세아서도 소선지서의 첫머리에서 예수님을 가리킨다. 호세아라는 이름 자체가 구원 혹은 구원자를 뜻하고,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를 통해 생명씀이 흘러가게 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서에는 그리스도의 예표가 다섯 가지 정도 나타난다. 음란한 신부를 다시 값 주고 사 오시는 남편, 참된 왕 다윗의 자손, 다시 살려 회복시키시는 분, 애굽에서 불러내신 하나님의 아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구속자(救贖者, redeemer)이시다. 이번 시간은 그 가운데 두 번째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한 우두머리 아래 모이고 그들이 다윗의 자손을 왕으로 섬기게 된다는 약속의 말씀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호세아서의 이름과 역사적 배경을 통하여 예수님이 어떻게 참된 우두머리와 왕이 되셨는지를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호세아서는 왜 소선지서의 첫머리에 놓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서는 무엇보다도 그 이름부터 예수님을 가장 강력하게 소개하기 때문에 소선지서의 첫머리에 놓인 것 같다. 호세아 1장 1절은 이 책의 저자를 &amp;ldquo;브에리의 아들 호세아&amp;rdquo;라고 소개한다. &amp;#39;브에리&amp;#39;는 솟구쳐 나오는 샘과 관련된 이름이다. 생명수가 샘에서 솟아나듯 호세아를 통하여 구원의 말씀이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amp;#39;호세아&amp;#39;는 구원 또는 구원자라는 뜻이며, 히브리어 &amp;lsquo;야샤&amp;rsquo;에서 나온 이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호세아의 이름은 여호수아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어진다. 민수기 13장 8절에서 에브라임 지파의 정탐꾼으로 파송된 자로 눈의 아들 호세아를 소개하고 있다. 모세는 그의 이름을 여호수아라고 고쳐 불렀다(민 13:16). 여호수아는 &amp;lsquo;여호와&amp;rsquo;와 &amp;lsquo;야샤&amp;rsquo;가 결합된 이름으로서,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끌었지만, 그의 이름은 장차 오실 참된 구원자를 가리키는 표지가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온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히브리어 이름은 무엇인가? 그것은 &amp;#39;예슈아&amp;#39;(예수아)이다. 그런데 &amp;#39;예슈아&amp;#39;는 &amp;#39;여호수아&amp;#39;의 축약형이고, 이것이 헬라어로 옮겨지면서 그 이름이 &amp;#39;예수스&amp;#39;가 되었으며 이것이 남성 명사이니, 뒤에 나오는 &amp;#39;스&amp;#39;가 떨어지면 그분의 이름은 &amp;#39;예수&amp;#39;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천사가 꿈 속에서 요셉에게 나타난 전한 말은 &amp;ldquo;[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amp;rdquo;고 말했다(마 1:21). 그렇다. &amp;#39;예수&amp;#39;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amp;#39;호세아&amp;#39;와 &amp;#39;여호수아&amp;#39;와 &amp;#39;예수&amp;#39;라는 이름은 서로 동떨어져 있지 않다. &lt;strong&gt;&amp;#39;호세아&amp;#39;는 구원을 가리키고, &amp;#39;여호수아&amp;#39;는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을 더 분명하게 보여 주며, &amp;#39;예수님&amp;#39;은 실제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신 분&lt;/strong&gt;이시다. 그러므로 &lt;strong&gt;호세아서가 소선지서의 첫머리에 놓인 것은 그 이름으로부터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고 있었기 때문&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고멜을 값을 주고 사 온 사건은 무엇을 예표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서의 예수님 예표는 이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호세아가 고멜을 다시 사 온 사건은 예수님께서 자기 목숨을 대속물(代贖物, ransom)로 주시려는 일을 미리 보여 준다(마 20:2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amp;nbsp;마 20:28&amp;nbsp;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amp;nbsp;&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nbsp; 그뒤 고멜은 호세아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낳았지만, 다른 남자의 사랑을 따라 집을 떠났다. 나중에는 노예 시장에 팔릴 만큼 비참한 상태가 되었다. 그때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그 여자를 다시 사랑하고 값을 주고 사 오라고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호세아는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고멜을 사온다(호 3:2).&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호 3:2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nbsp;그렇다면 호세가 지불한 그 값은 얼마 정도 되는가? 그&amp;nbsp;값은 당시에 은 삼십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노예의 몸값 정도 되는 액수다(출 21:32).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긴 사건도 이 장면과 상당히 겹쳐 보인다(마 26:15). 한편 이 여자의 이름이 &amp;#39;고멜&amp;#39;이라고 하는데(호 1:3), &amp;#39;기업 무를 자&amp;#39;를 뜻하는 고엘과 연결지어 보면(룻 2:20), 이 둘은 언어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이는 고엘로서 호세아가 고멜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 다시 사 오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도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마 20:28). 대속물은 속전(贖錢, ransom price)이며, 값을 치르고 사 오는 값이다. 우리는 죄와 사망 아래 팔려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를 값으로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다. 호세아가 고멜을 찾아간 것은 고멜이 먼저 돌아왔기 때문이 아니다. 남편이 먼저 찾아가 값을 지불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고멜은 과연 어떤 여자였을까? 어떤 이는 그녀가 신전 창기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은 그녀를 가리켜 &amp;#39;디블라임의 딸 고멜&amp;#39;이라고 소개한다(호 1:3). 그렇다. 그녀의 아버지의 이름이 그녀의 이름 앞에 붙었다. 그렇다면 그의 아버지는 당시 그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인물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비록 그 여자 속에 음란하게 만드는 영, 밖으로 떠돌아다니게 하는 영, 꾸미고 사치하려는 영이 강하게 역사했지만 그녀를 음녀로 보기에는 과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여자의 상태가 아무리 무너져 있었어도 호세아로 하여금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식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바람난 신부를 찾아 값을 주고 사 오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리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내어 주셨다(엡 5:25). 죄인을 그냥 눈감아 주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피값을 지불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속전(&amp;#39;코페르&amp;#39;)으로 산 신부이다.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다시 죄를 따라가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는 다른 사랑을 버리고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호세아&amp;middot;여호수아&amp;middot;예수의 이름은 어떻게 연결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호세아라는 이름은 대체 어떤 단어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것의 뿌리는 사실 &amp;#39;야샤&amp;#39;이다. &amp;#39;야샤&amp;#39;라는 말은 구원하다 또는 구원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눈의 아들은 원래 호세아였다. 그런데 모세가 그 이름을 &amp;#39;여호수아&amp;#39;로 고쳐 불렀다(민 13:8). 그렇다면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어떤 이름인가? 그것은 &amp;#39;여호와&amp;#39;라는 단어와 &amp;#39;야샤&amp;#39;라는 단어가 합쳐진 이름으로서, 그 뜻은 &amp;#39;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amp;#39;는 뜻이다.&amp;nbsp; 그리고 바벨론 포로기 이후 등장하는 이름으로서 &amp;#39;예슈아&amp;#39;(예수아)는 여호수아의 축약형으로 나온 단어이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여호수아이며, 예슈아인 것이다. 그러다가 히브리어로 &amp;#39;예슈아&amp;#39;였던 자가 헬라어로 옮겨 부를 때에 예수스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호세아와 여호수아와 예수는 모두 &amp;#39;구원&amp;#39;이라는 의미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이러한 연결은 단순한 발음의 유사성만 가진 것이 아니다. &amp;#39;호세아&amp;#39;는 북이스라엘이 바알과 아세라를 따라가며 멀어지는 가운데 구원을 외쳤다. 그리고 &amp;#39;여호수아&amp;#39;는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땅을 기업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amp;#39;예수님&amp;#39;은 자기 백성을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건져 하늘의 기업으로 이끄셨다. 고로 성경에 등장하는 이름은 이처럼 대부분 자신의 사명과도 함께 연결되어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호세아 선지자와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의 이름이 같다는 것도 매우 의미심장하다. 호세아 선지자의 이름은 &amp;ldquo;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amp;rdquo;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마지막 왕 호세아는 이러한 여로보암 1세의 구원의 외침을 듣지 않았다. 그는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다가 애굽을 의지하게 되었고, 하나님보다 다른 힘을 붙들고 말았다. 그러자 결국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왕 살만에셀에게 B.C.722년경에 멸망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사람을 구원받으려면, 구원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이름을 믿고 여호와께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호세아&amp;#39;라는 이름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실제로는 재물과 사람과 세상의 힘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었다면 평생 그분만 붙들어야 한다. 다른 신과 다른 힘을 함께 붙들 수는 없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여호수아는 왜 이스라엘에게 완전한 안식을 주지 못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구약 시대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어떤 인물이었는가? 그는 모세의 뒤를 이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9지파 반에게 가나안 땅을 나누어 준 장본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완전한 안식을 준 것은 아니었다. 히브리서 4장 8절은 &amp;ldquo;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amp;rdquo;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가나안 땅을 정복한 것은 참된 안식에 대한 모형이었고, 완전한 안식은 그때도 남아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이스라엘 민족도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모두 다 쫓아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과 섞여 살면서 나중에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게 된다. 그 땅을 차지한 것은 맞지만 그들이 영혼의 안식을 얻은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가서 차지한 땅은 하나님께서 주셨던 최종 안식이 아니었다. 정말로 주어진 참된 안식은 죄와 마귀에게 눌린 사람이 자유를 얻고,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쉬는 것으로서 그것은 오직 예수님이 주시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어느 날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십팔 년 동안 귀신에게 매여 꼬부라진 여자를 고쳐 주신 일이 있었다. 그때 주님은 그 여자가 아브라함의 딸인데 사탄에게 매인 바 되었으니 안식일에 그 매임에서 풀어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셨다(눅 13:16).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희년의 성취자로 오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진정한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악한 영의 매임에서 놓이는 것임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말씀을 많이 묵상하고 전했지만, 실제적인 안식을 충분히 누리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회개의 기도문을 붙들고 회개를 계속하였다. 약 천 번 정도 회개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 몸에 있는 악한 영들의 집이 파괴되면서 진정한 안식이 찾아왔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보여 준 안식은 실제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원수들을 쫓아내었던 사실은 우리 안에 있는 악한 영의 세력을 몰아내는 것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안식은 땅을 차지하는 정도의 안식이 아니라 죄와 마귀에게서 해방되어 하나님과 함께 사는 안식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호세아서의 &amp;lsquo;다윗&amp;rsquo;과 &amp;lsquo;한 우두머리&amp;rsquo;는 누구를 가리키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 3장 5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장차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호세아 1장 11절은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장차 올 다윗은 죽은 다윗 왕이 다시 살아 온다는 뜻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가리킨다. 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과연 호세아 1장 10-1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로서 북이스라엘은 과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날이 올 것인가?&amp;nbsp; 그리고 유다와 이스라엘이 함께 모여 하나의 머리인 다윗 왕을 세운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이 과연 실현될 수 있는가?&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째 아들의 이름 이스르엘도 이 약속과 연결된다. 이스르엘은 하나님이 흩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바알을 섬긴 이스라엘을 흩으셨지만, 흩으신 것에서 끝내지 않으시고 다시 모으신다.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날이 시작된 것처럼,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날이 온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1세 이후 마지막 왕 호세가가 죽기까지 약 210년 동안 남유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예배하지 못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 1세가 벧엘과 단의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여호와라고 부르게 했다. 그리고 그들 나름의 절기를 만들어 그것을 지키게 하였다. 그 결과 북이스라엘은 일종의 혼합주의(混合主義, syncretism)의 신앙에 빠지고 말았고, 결국에는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그러나 호세아 선지자는 이러한 북이스라엘이 언젠가는 마지막 날에 다윗 왕을 찾을 것이라고 하였다. 북이스라엘의 회복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왕으로 섬길 때 이루어진다는 뜻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실제 역사는 어떻게 되었는가? 남유다는 비록 망했어도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에서 살면서 결코 신앙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의 후손이 꼭 와서 자신들을 자유와 해방으로 안내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비록 원수들의 땅에 살고 있었지만 그들의 왕통이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그래서 여호야긴 왕의 후손인 스룹바벨이 1차 포로 귀환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고, 그 왕손의 계보를 따라 어느 날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마 1장).&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왕통과 혈통의 정통성을 잃어버린 채 여러 민족과 섞여 살면서 혼혈민족인 사마리아인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북이스라엘이 다윗을 왕으로 섬기는 날이 온다는 말인가? 그런데 그 답은 다윗의 혈통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데에 있음을 신약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북이스라엘의 회복 약속은 어떻게 성취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북이스라엘의 회복 약속을 문자적으로만 보면, 마지막 때 북이스라엘 열 지파가 다시 국가로 회복되어 다윗의 왕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는 이 약속을 이스라엘 민족과 교회를 끝까지 나누는 방식으로 이해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호세아서의 약속, 곧 호세아 1장 10-11절의 약속의 말씀이 신약에서 어떻게 해석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해석은 예수님과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내린 해석을 따라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사도 바울은 호세아가 말했던 바 &amp;ldquo;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하리라&amp;rdquo;는 말씀을 어떻게&amp;nbsp; 사용했는지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로마서 9장에 나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9:25-26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amp;#39;내 백성이 아닌 자&amp;#39;는 유대인 중에서뿐만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시는 자라고 말했다(롬 9:24-26). 바울은 이 약속을 북이스라엘 열 지파만의 회복으로 가두지 않았던 것이다. 유대인 가운데 부르심을 받은 자와 이방인 가운데 부르심을 받은 자가 다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해석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베드로도 같은 방식으로 호세아의 말씀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즉 유대인들과 피 한 방울이 섞이지 아니한 이방인들도 얼마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고,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벧전 2:9-10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베드로전서 1장 1절을 보자.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성도들에게 편지를 쓴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방 지역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베드로는 &amp;ldquo;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amp;rdquo;이라고 말했다(벧전 2:9). 이어서 &amp;ldquo;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amp;rdquo;고 말한다(벧전 2:10). 이것은 호세아가 말했던 로암미와 로루하마가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서 성취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예수님도 이와 같은 약속을 말씀하셨다는 사실이다(요 10:16).&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도 역시 &amp;ldquo;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amp;rdquo;고 하셨다(요 10:16). 우리 안에 있던 양은 유대인을 가리키고, 우리 밖에 있던 다른 양은 이방인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무리로 모으실 것이고 한 목자에게 있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에스겔 34장 23-24절을 보라. 거기에 보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한 목자와 한 명의 다윗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장차 하나님께서 한 목자를 세워 당신의 양들을 먹이게 할 것인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종 된 다윗이며, 그가 그들 중에 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바로 그 한 목자이자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왕이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그리고 우리에 들지 않았던 이방인까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한 백성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세대주의의 문자적 해석을 우리는 성경 전체의 최종 해석으로 삼을 수는 없다. 참고할 수 있는 역사적 가능성을 말할 수는 있지만, 예수님과 바울과 베드로가 보여 준 해석보다 앞설 수는 없다. 하나님은 특정 혈통만을 위해 이방인을 부르신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갈 3:29).&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예수님과 바울과 베드로는 &amp;lsquo;내 백성 아닌 자&amp;rsquo;를 누구로 해석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호세아가 예언했던 바 &amp;ldquo;내 백성 아닌 자&amp;rdquo;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은 누구인가? 북이스라엘인가 아니면 이방인들인가? 역사적으로 보면 북이스라엘도 하나님에게서 점차 멀어져 갔지만, 이방인은 원래부터 언약 밖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명령하신 것은 음란한 여자인 고멜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둘째가 딸 로루하마였고, 셋째가 아들 로암미였다. 여기서 로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고, 로루하마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호세아의 두 자녀의 이름은 곧 다가올 북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amp;#39;내 백성이 아닌 자&amp;#39;를 북이스라엘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신약에서는 그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에게까지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첫째, 사도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이 약속이 유대인 중에서뿐만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분명히 해석하였다(롬 9:24-26). 그리고&amp;nbsp;둘째, 사도 베드로 역시 이방의 여러 지역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언급하였다(벧전 2:10).&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amp;#39;내 백성이 아닌 자&amp;#39;가 &amp;#39;내 백성&amp;#39;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는 약속은 북이스라엘 민족의 회복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무엇보다도 셋째, 예수님은 이 약속을 하나의 우리와 한 목자의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요 10:16). 이는 유대인만 구원받는다는 약속이 아니다. 그것은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도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에 들지 않았던 다른 양들인 이방인들 역시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한 무리의 양떼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다인이나 북이스라엘 백성이나 이방인들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들이 지금도 큰 은혜를 받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구약 시대에는 감추어져 있던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반대로 남유다가 그 땅을 잃어버리고 멸망당했던 것처럼, 그리고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해 그 민족이 거의 사라져 버린 것처럼, 교회도 주님이 맡기신 기회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면 이방인들에게 주어진 놀라운 기회를 모두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 예수님 이후 하나님께서는 혈통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백성을 통하여 일하고 계신다(마 21:43).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며 하늘의 기업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가 언약의 자손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끝까지 갈라놓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을 미워하거나 죽여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유대인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고, 이방인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예수님 안에서 둘이 하나가 되고, 한 왕과 한 목자 아래에서 한 백성이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번 시간은 우리는 호세아서가 소선지서의 첫머리에 놓인 이유와 더불어, 고멜을 값을 주고 사 온 사건이 예수님의 대속을 어떻게 보여 주는 것인지, 호세아&amp;middot;여호수아&amp;middot;예수의 이름이 어떻게 구원이라는 의미로 연결되는지를 살펴보았다. 또한 여호수아가 완전한 안식을 주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참된 안식을 주셨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하나님께서 호세아 1장 10-11절과 3장 5절에서 말씀하셨던, 다윗과 한 우두머리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어느 날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한 왕 아래 모이고, 우리에 들지 않았던 다른 양들까지 한 무리가 되는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고 있다. 바울과 베드로도 호세아의 말씀을 유대인과 이방인을 함께 부르시는 하나님의 구원으로 해석한 바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오늘날에는 누구든지 예수님만을 자신의 참된 왕과 목자로 붙들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자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특히 예수님을 자신의 왕으로 부르는 데에만 머물지 말고, 진짜 다른 신과 세상의 힘을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회개와 천국 복음을 듣고 우리에게 주어진 교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시대가 되었다. 그러므로 결국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하늘의 기업을 이어받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23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ChatGPT Image 2026년 9월 23일 오후 10_02_4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28524f3f6877121d171ea4757e76f2e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Blueprint_of_Redemptio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a0b3676fca8cbacbdc6f79327a6ad93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Blueprint_of_Redempt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9189a59610d8a9f003ab904ad54ffac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Blueprint_of_Redempt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dd8d0101f4eee4058de6bea1ad8d63c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Blueprint_of_Redempt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817819aa38b9759fd0b5bd05557744f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Blueprint_of_Redempt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7ba5d83e509db832ac16edc2bb8597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Blueprint_of_Redempt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89dcfcf3fb9a49139bad8ed9d573854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Blueprint_of_Redempt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fcd056da8d5906c372d4b3a57c76e46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Blueprint_of_Redempt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f042865114df2b40b5d343e971cf807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Blueprint_of_Redemptio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a32fc534fcb7251f2027e5841594872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Blueprint_of_Redemptio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47aa0f089da7fa1dd7fe8c999ce576b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Blueprint_of_Redemptio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a4081734d71282cf9d00edd61d18c5a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Blueprint_of_Redemption.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b4c1f2e31cdcb20d156d62e0cfac36b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Blueprint_of_Redemption.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b11b065efc9bd23f2af801e8f4b7718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Blueprint_of_Redemption.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9eac4d6456824e1009bf526654d611d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Blueprint_of_Redemption.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74a0360e703b7b78a7e0edcfc85fd8a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호세아서와_예수_그리스도의_구속.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f0d75e3b21ca9ec1407c234d18017a3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호세아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b1773a3f9e6d948d5ffea550331eeb97.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Hosea_the_Blueprint_of_Chris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8c1e5fc292bd73f7524df1dc396684b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Hosea_the_Blueprint_of_Chris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97c5884202dffb069564efda9029e3f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Hosea_the_Blueprint_of_Chris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9f9d419cd8f4e8fa0929623fbeaefc5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Hosea_the_Blueprint_of_Chris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d6cb7f231d12f858927e5e10944cecf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Hosea_the_Blueprint_of_Chris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3e4bdf6890becafb271ec8111ca5bb1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Hosea_the_Blueprint_of_Chris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37fd9c5cb685ec21bf329d96e5e49b1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Hosea_the_Blueprint_of_Chris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2bf632c70b3758c9c7ad12b538afa88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Hosea_the_Blueprint_of_Chris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2e9d2afd2df02561b466e77b973d27e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8)] Hosea_the_Blueprint_of_Chris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4/266/9daac60f37ba5f47912114423a8b6a10.webp&quot; /&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97)] 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2) 왜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그 무거운 짐을 지게 하셨을까?(호1:1~9)_2026-09-22(화)</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266875"/>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266875#comment"/>		<id>https://dongtanms.kr/morning_qt/266875</id>
		<published>2026-09-22T09:08:56+09:00</published>
		<updated>2026-09-22T22:02:51+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97)] 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2) 왜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그 무거운 짐을 지게 하셨을까?(호1: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7IXgmpXjxro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 1. 하나님은 왜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하셨는가? 2. 북이스라엘은 왜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우상을 따랐는가? 3. 호세아서의 역사적 배경과 호세아의 활동 시기는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97)] 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2) 왜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그 무거운 짐을 지게 하셨을까?(호1:1~9)&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7IXgmpXjxro&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7IXgmpXjxro?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하나님은 왜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하셨는가?&lt;br /&gt; 2. 북이스라엘은 왜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우상을 따랐는가?&lt;br /&gt; 3. 호세아서의 역사적 배경과 호세아의 활동 시기는 어떠했는가?&lt;br /&gt; 4. 하나님은 왜 여로보암 2세 때 호세아를 선지자로 부르셨는가?&lt;br /&gt; 5. 호세아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어떻게 보여주는가?&lt;br /&gt; 6.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은 그리스도의 어떤 모습을 예표하는가?&lt;br /&gt; 7. 호세아의 외침을 듣는 자와 거부하는 자의 마지막은 어떻게 되는가?&lt;br /&gt; &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호세아서를 통해 나타난&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예표&lt;/strong&gt;와 이스라엘을 향한&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끝없는 사랑&lt;/strong&gt;을 조명합니다.정보배 목사는 하나님께서 선지자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라는 가혹한 명령을 내리신 이유가 단순히 개인의 고난이 아니라, 배반한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고&amp;nbsp;&lt;strong&gt;값 주고 사오시는 구속자&lt;/strong&gt;의 마음을 직접 체험하고 전하게 하기 위함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구원자라는 뜻을 가진&amp;nbsp;&lt;strong&gt;호세아의 이름&lt;/strong&gt;이 여호수아를 거쳐 예수라는 이름으로 연결되는 구속사적 의미를 분석하며, 가장 풍요롭던 여로보암 2세 시대에 이 메시지가 선포된 배경에는&amp;nbsp;&lt;strong&gt;언약을 성취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lt;/strong&gt;가 있음을 설명합니다. 결국이 설교는 호세아의 외침을&amp;nbsp;&lt;strong&gt;회개와 천국 복음&lt;/strong&gt;으로 재해석하여, 오늘날 성도들이 심판주가 아닌 구원자로 주님을 만나기 위해&amp;nbsp;&lt;strong&gt;철저한 회개와 진리&lt;/strong&gt;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력한 권고를 담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97)&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2)&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왜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그 무거운 짐을 지게 하셨을까&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호 1:1-9)&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번 시간은 구약의 기독론(基督論, Christology)가운데, 호세아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표를 살펴보고 있다. 그렇다면 호세아서에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어떤 예표들이 등장하는가? 보는 이에 따라서 다를 수 있겠지만 필자는 다섯 가지 중요한 그리스도의 예표가 있음을 본다. 첫째는 음란한 신부를 다시 값을 주고 사 오시는 남편이신 그리스도이고, 둘째는 참된 왕 다윗의 자손이며, 셋째는 다시 살려 회복시키시는 분이다. 넷째는 애굽에서 불러내신 하나님의 아들이고, 다섯째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구속자로서의 그리스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랑이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신랑이시기를 원하신다는&amp;nbsp;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은 자신의 신랑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다시 말해 결혼하여 끝까지 함께 하자고 했던 신부가 그만 바람이 나서 자신의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따라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을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직접 체험하라고 명령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세아서의 충격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바람난 아내처럼 다른 신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고 호세아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호세아에게 처음부터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하고, 그녀를 통하여 자식을 낳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여인이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났지만 다시 그녀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일까? 이것은 한 선지자를 괴롭히기 위한 명령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호세아의 몸과 가정에 새겨 놓아서 북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호세아가 왜 그 무거운 사명을 짊어져야 했는지, 호세아의 이름과 시대적 배경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지, 그리고 회개의 외침을 듣는 사람과 거부하는 사람의 마지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하나님은 왜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하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 1장 2절을 보라. 여기에는 선지자인 호세아에게 주어진 소명이 얼마나 무거운 것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을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정상적인 결혼이 아니다.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를 취하여 자식을 낳으라고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녀와의 사이에서 자녀까지 낳으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호세아로 하여금 북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떠나 다른 신을 따라간 영적 간음의 상태를 직접 경험하도록 하신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호 1: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호세아더러 결혼하라고 한 여자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어떤 주석가가 이야기하듯이 그녀는 처음부터 바울 신전의 신전 창기였을까? 필자는 아니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녀를 디블라임의 딸이라고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호 1:3). &amp;#39;디블라임&amp;#39;이라는 말은 여기에만 나오는 이름인데, 어찌 되었든 그녀의 이름과 그녀의 아버지를 기록했다는 것은 그녀가 그래도 이스라엘의 정식 가문에 속한 여인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만 그녀 안에는 영적으로 음란한 영, 밖으로 돌아다니게 하는 영, 자신을 꾸미고 사치하려는 영이 더 크게 역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워낙 얼굴이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호감을 받을 만한 모습을 지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녀는 집 안에 있기를 거부하고 늘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호세아는 과연 그 여인을 사랑했을까? 성경에 보면 &lt;strong&gt;호세아가 그녀를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결혼을 했던 것&lt;/strong&gt;이다. 그래서 호세아는 고멜과의 사이에서 자녀 셋을 낳았다. 아들이 &amp;#39;이스르엘&amp;#39;, 그리고 이어 딸이 &amp;#39;로루하마&amp;#39;, 또 다른 아들이 &amp;#39;로암미&amp;#39;였다(호 1:4-9). 결론적으로 보면, 호세아의 자녀의 이름 하나하나는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스르엘은 &amp;#39;하나님이 흩으신다&amp;#39;는 뜻이고, 로루하마는 &amp;#39;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amp;#39;는 뜻이며, 로암미는 &amp;#39;내 백성이 아니다&amp;#39;는 뜻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호세아가 이때 경험한 고통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또 한 번의 무거운 명령이 더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또 다른 무거운 짐을 그에게 지워야 했는가? 그것은 그녀가 자식을 셋이나 낳았으면 남편과 가정의 충실한 사람이 되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후 고멜은 자녀 셋과 남편을 뒤로하고 다른 남자의 사랑을 따라가버리고 말았다(호 3:1). 그러자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그녀의 배신을 몸으로 직접 겪게 하셨다. 그것은 남의 품에 안겨있는 그녀를 다시 데려와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호세아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그를 북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보여 주는 살아 있는 표적이 되게 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때로 말씀만 들려주지 않으시고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을 아로새기신다. 예레미야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하신 것도 나라의 멸망을 보여 주기 위한 표적이었다(렘 16:1-4). 에스겔의 아내가 죽었을 때 슬퍼하지 말라고 하신 것도 예루살렘의 멸망을 백성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겔 24:15-24). 호세아의 결혼 역시 북이스라엘의 음행과 하나님의 사랑을 한 가정 안에 나타내는 표적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호세아는 왜 이러한 주님의 명령을 거절하지 않았는가? 선지자는 자기 행복만을 위해 이 땅에 보내어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종은 때로 자신이 원하지 않는 길이라도 하나님이 맡기신 백성을 살리기 위해 걸어가야 한다. 그런데 결국 호세아의 고통은 헛되지 않았다. 그의 가정은 북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큰 사랑으로 그들을 붙드시는지 보여 주는 설교가 되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북이스라엘은 왜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우상을 따랐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 것도 버린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들도 역시 안식일과 절기를 지켰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여호와께 예배하지 않고, 벧엘과 단에 세운 송아지 앞에서 예배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북이스엘을 창설한 여로보암 1세가 만든 송아지를 여호와라고 불렀고,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섬겼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상을 섬기는 혼합주의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왜 북이스라엘 사람은 한 분 하나님만을 섬긴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자 농사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목축하는 사람로서 물이 없으면 양 떼를 물 있는 곳으로 데려가면 되었다. 하지만 땅을 경작하는 사람에게는 땅을 이동시킬 수가 없으므로 비가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그러므로 가나안 본토인들은 비와 농작물들에게 비를 바알과 아세라가 내려 준다고 믿었다. 그래서 당시 바알 신전에는 음란한 행위를 통해 비를 불러온다고 생각하는 성전 의식이 있었다. 그것이 곧 음행이다. 그러자 북이스라엘도 역시 이 이러한 가나안 신앙에 물들어, 하나님이 주신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바알에게 바치며 음행을 저질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호 2: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바알이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었다고 말씀하신다. 은과 금도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셨는데, 오히려 백성들은 그것으로 바알의 제단을 꾸몄다. 물과 양털과 삼과 기름과 술을 주시는 분이 분명 하나님이셨는데, 그들은 &amp;ldquo;나를 사랑하는 자들&amp;rdquo; 곧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농경신이 주었다고 말했다(호 2:5). 하나님이 주신 복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다른 신의 공로로 돌린 것은 북이스라엘의 커다란 죄악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북이스라엘은 혼합주의 신앙이었다. 안식일에는 여호와를 섬기는 듯했지만 사실은 송아지 우상을 섬겼으며, 평일에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다. 신앙과 생활이 하나가 아니었다. 예배 시간에는 하나님을 부르지만, 생업과 재물과 풍년을 위해서는 다른 신을 찾았던 것이다. 이들이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 그들은 하나님을 남편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하나님은 일찍이 시내산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언약을 맺으셨다. 당시 출애굽할 때에 하나님은 애굽의 신들이 가짜라는 사실을 열 가지 재앙으로 드러내셨고, 홍해를 가르셨으며, 광야에서 그들을 먹이셨다. 그리고 &amp;ldquo;너는 나만 따르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고 너는 나의 백성이다&amp;rdquo;라고 말씀하셨다. 일종의 결혼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결혼은 원래부터가 배타적인 관계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만 바라보고 살기로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도 역시 여호와만 섬겨야만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신을 따라가고 말았다. 애굽에서 보았던 우상들이 모두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고도, 가나안에서 다시 우상을 받아들였다. 하나님은 &amp;ldquo;내가 너를 사랑하여 애굽에서 불러냈는데, 너희는 나를 부를수록 점점 멀리한다&amp;rdquo;고 탄식하셨다(호 11:1-2). 이 탄식이 호세아서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아픈 마음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호세아서의 역사적 배경과 호세아의 활동 시기는 어떠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호세아는 언제 활동한 선지자인가? 호세아 1장 1절은 그의 활동 시기가 언제였는지를 말해준다. 왜냐하면 그가 활동했던 당시의 남유다 왕들과 북이스라엘 왕들의 이름을 기록해두었기 때문이다.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에, &lt;strong&gt;남유다는 웃시야(B.C.792-740), 요담(B.C.750-732), 아하스(B.C.735-716), 히스기야(B.C.716-687)가 왕으로 있었고, 북이스라엘은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2세(B.C.793-753)가 왕으로&lt;/strong&gt; 있었다. 이때 여로보암 2세는 북이스라엘의 13대 왕으로서, 약 40년 동안 통치했다. 그러나 호세아는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 때까지 활동했으므로, 실제는 북이스라엘의 13대왕이었던 여로보암 2세(B.C.793-753) 통치 말기 때부터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었던 호세아 왕(B.C.732-722)때까지 활동한 선지자였다. 왜냐하면 그가 마지막으로 활동한 시기가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이었는데, 그 왕이 통치하고 있을 때에 북이스라엘의 앗수르의 살만에셀&lt;strong&gt;(B.C.727-722)&lt;/strong&gt; 왕에게 패배하여 멸망당하였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amp;nbsp;호 1: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nbsp; 그러나 여로보암 2세 때 북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시기는 북이스라엘 역사상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토가 가장 넓었고 물질적으로 가장 번성하던 시기였다. 당시는 제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앗수르라는 나라도 쉽게 북이스라엘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북이스라엘은 정치&amp;middot;군사적으로 강한 나라가 되어 있었다. 한편 북이스라엘의 여호보암 2세 당시, 남유다의 웃시야 왕도 같은 시대에 살면서 국력이 향상되었다. 고로 두 나라는 서로 전쟁하기보다 서로 타협하며 안정된 시기를 누렸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깊이 타락했다. 겉으로는 부유하고 강했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고 송아지 우상과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호세아는 바로 그 여로보암 2세 때 말기부터 활동하여,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었던 제19대 호세아(B.C.732-722) 때까지 활동했던 선지자다. 고로 그 기간은 짧게 보면 약 30년이고, 길게 보면 60년 가까운 기간이다. 호세아 선지자의 이름과 마지막 왕의 이름이 같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호세아 선지자는 &amp;ldquo;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amp;rdquo;는 메시지를 전했지만, 마지막 왕 호세아는 그 구원의 외침을 듣지 않았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북이스라엘의 왕조는 여로보암 왕조, 바아사 왕조, 오므리 왕조, 예후 왕조로 계속 바뀌었다. 여로보암 2세 이후에는 스가랴(B.C.753-752)가 살룸(B.C.752)에게 죽고, 살룸은 므나헴(B.C.752-742)에게 죽고,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B.C.742-740)는 베가(B.C.752-732)에게 죽고, 베가는 호세아(B.C.732-722)에게 죽었다. 반역과 쿠데타가 이어졌다. 왕들은 앗수르와 애굽 사이를 오가며 사람의 힘을 의지했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호 7:11; 8:9; 12: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 시대에 하나님은 호세아를 부르셨다. 나라가 가장 넓고 풍요로울 때, 백성이 가장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을 때였다. 하나님은 멸망 직전의 백성에게 마지막으로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셨다. &amp;ldquo;너희가 나를 버렸지만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않았다. 돌아오라. 내가 너희를 다시 품겠다.&amp;rdquo; 호세아의 가정과 예언은 이 마지막 부르심의 표적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서가 소선지서 가운데 앞부분에 놓인 것도 이 책이 하나님의 사랑을 강하게 보여 주기 때문이다. 아모스도 북이스라엘을 향해 예언했지만, 호세아는 자신의 가정과 결혼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었다. 죄를 지적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배신한 아내를 끝까지 사랑하는 남편의 마음으로 돌아오라고 외쳤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하나님은 왜 여로보암 2세 때 호세아를 선지자로 부르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여로보암 2세 때 왜 호세아를 불러 선지자의 직분을 맡기셨을까?&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그 첫 번째 이유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lt;/strong&gt;였다(창 13:14-16; 15:5-7). 북이스라엘도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열 지파로 이루어진 백성이지 않는가!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역시 가나안 땅을 주셨고, 자손을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북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겼다고 해서 하나님이 처음부터 그들을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약속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로보암 2세 때는 북이스라엘이 그 약속을 누리는 외적 조건이 가장 좋았다. 영토가 가장 넓었고 경제적으로는 매우 풍요로웠다. 그러므로 북이스라엘만 치면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을 가장 많이 차지한 때가 바로 그때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좋은 때를 영원히 이어 가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백성은 풍요를 주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풍요를 준다고 믿는 바알에게 갔다. 하나님은 그들이 잘되기를 바라셨지만, 그들의 죄 때문에 심판하지 않을 수 없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두 번째 이유는 호세아라는 이름 자체가 사명을 보여 주었기 때문&lt;/strong&gt;이다. 호세아는 &amp;ldquo;구원&amp;rdquo; 혹은 &amp;ldquo;구원자&amp;rdquo;는 뜻이다. 히브리어 &amp;#39;야샤&amp;#39;에서 나온 이름이다.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의 이름을 여호수아로 바꾼 것도 같은 구원의 의미를 확장해서이다(민 13:8, 16). 왜냐하면 &amp;#39;여호수아&amp;#39;라는 말은 &amp;#39;여호와&amp;#39;에다가 &amp;#39;야샤&amp;#39;를 합친 것으로서, &amp;#39;여호와가 구원하신다&amp;#39;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예수님의 히브리어 이름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amp;#39;예슈아&amp;#39;이다. 그런데 &amp;#39;예슈아&amp;#39;라는 이름은 여호수아라는 이름의 축약형이다. 그런데 히브리어 &amp;#39;예슈아&amp;#39;를 헬라어로 옮길 때에 남성이니까 &amp;#39;예수스&amp;#39;가 되었고, 어근만 따로 떼어서 현재까지 &amp;#39;예수&amp;#39;라고 부른다. 어느날 천사는 예수님의 양부가 될 요셉을 찾아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amp;ldquo;[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 [칭]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amp;rdquo;고 말했다(마 1:21). 그러므로 &amp;#39;예수&amp;#39;라는 이름은 &amp;#39;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amp;#39; 혹은 &amp;#39;여호와가 구원이시다&amp;#39;라는 뜻이다. 이것을 다시 히브리어로 옮기면, &amp;#39;예수아&amp;#39;가 되고 &amp;#39;예수아&amp;#39;는 &amp;#39;여호수아(예호수아)&amp;#39;의 축약형이다. 고로 호세아라는 이름 자체는 장차 오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세 번째 이유는 호세아가 브에리의 아들이었기 때문&lt;/strong&gt;이다(호 1:1). 여기서 &amp;#39;브에리&amp;#39;라는 말은 &amp;#39;솟구쳐 나오는 샘&amp;#39;이라는 단어에서 온 이름이다. 생명수가 솟아나는 샘처럼, 호세아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이 생명수처럼 북이스라엘에 흘러가게 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호세아를 불러내어 구원자의 예표로 사용하신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안에 생명이 있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에 그 생명을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게 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당시 하나님이 호세아를 찾아서 불러내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한 사람을 어느 시대에, 어느 가정에, 어떤 이름으로 태어나게 하실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시대에 회개의 복음을 듣고 거룩한 신부와 주님의 전사로 준비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이 자리로 인도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호세아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어떻게 보여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lt;strong&gt;&amp;#39;호세아&amp;#39;와 &amp;#39;여호수아&amp;#39;와 &amp;#39;예수&amp;#39;는 서로 다른 이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구원이라는 알파벳의 단어의 의미로 서로 연결&lt;/strong&gt;되어 있다. 여기서 &amp;#39;호세아&amp;#39;는 &amp;#39;구원하신다&amp;#39;는 뜻이고, &amp;#39;여호수아&amp;#39;는 &amp;#39;여호와가 구원하신다&amp;#39;는 뜻이며, &amp;#39;예수&amp;#39;는 &amp;#39;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amp;#39;이라는 뜻이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천국을 예표하는 가나안 땅으로 이끌었다면,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와 사망에서 건져 하늘의 기업으로 이끌어 주신다(마 1:2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눈의 아들이었던 여호수아의 본명이 원래 호세아였는데(민 13:8), 그는 에브라임 지파의 대표자가 되어 가나안 땅을 정탐하는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모세가 여호수아로 바꾸어 준 것이다. 고로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이끌었고,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승리하여 땅을 나누어 준 장본인이다. 이것의 영적인 의미는 율법만으로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없고, 여호수아로 예표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와 악한 영을 이기며 기업을 차지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히 4: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예수님의 구약 이름인 &amp;#39;호세아&amp;#39;는 놀라운 이름이다. 그분의 이름에는 그분의 사명과 인류를 향한 끝없는 사랑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님은 지금 우리를 세상의 어려움에서 건져 내실 뿐만 아니라, 실은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건져내시는 분이다. 우리가 바람난 신부처럼 세상을 좇아 떠나갔지만, 예수께서 오셔서 자기 목숨을 속전으로 지불하여 우리를 다시 사셨다(막 10:45). 호세아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고멜을 사 온 것은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교회를 사신 일을 그대로 예표하고 있다(호 3:2; 엡 5:2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선택하셨는가? 이는 그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에게 &amp;ldquo;너희를 구원할 자는 바로 나 뿐이다&amp;rdquo;고 선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그러한 구원의 이름을 듣고도 계속 딴 길로 갔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라는 이름을 입술로 부르면서, 실제로는 재물과 사람과 세상의 힘을 의지하며 살고 있지는 아니한가 돌아보아야 한다.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한 번 빋었다면 우리는 평생 그분만을 의지해야 한다. 다른 신과 다른 힘을 함께 붙들어서는 아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처럼 끝없는 사랑과 구원의 역사는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호세아가 고멜을 찾아간 것도,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것도 그분이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찾았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던 것이다(롬 5:8). 이 사랑을 깨달으면 회개가 억지 의무가 아니라 내가 돌아갈 생명의 길이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은 그리스도의 어떤 모습을 예표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와 고멜의 결혼은 어떤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신랑 되심을 보여 주는 그림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고, &amp;ldquo;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amp;rdquo;고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그들은 도 다른 신에게 그들의 마음을 내어주고 말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떠난 북이스라엘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도록 호세아에게 그 배신을 체험하게 하셨다. 그리고는 다시 고멜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리하여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어떻게 배신했는지, 하나님이 그들을 얼마나 끝까지 사랑하시는지 동시에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고멜은 어떠했는가? 호세아로부터 세 자녀를 낳고도 집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amp;ldquo;이제는 네가 내 아내가 아니다&amp;rdquo;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호세아 2장 2절에 하나님은 &amp;ldquo;그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그의 남편이 아니라&amp;rdquo;고 말씀하시는 것을 본다. 이것은 언약이 깨진 현재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관계를 끝내기 위해 이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니라, 다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호세아는 고멜이 다른 남자의 품에 있을 때에도 그녀를 사랑해야 했다. 더 나아가 그 여자가 노예 시장에 팔려 있을 때, 노예의 값을 지불하고 그녀를 다시 사 와야 했다.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은 한 여종의 몸값에 해당하는 값이다. 고멜은 남편에게 그냥 돌아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누군가 값을 주고 사 와야 할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이 장면은 죄인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고, 오직 주님이 값을 치러 구원하셔야 구원받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호 3: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인류를 사랑하셔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속량물로 내어 주셨다(엡 5:25). 그분은 우리의 죄를 그냥 눈감아 주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피 값을 지불하신 것이다. 우리는 원래 죄의 종으로 팔려 있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신 것이다. 이것이 속전의 사랑이며, 호세아의 무거운 결혼 생활이 예표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고멜을 사랑하라고 하시면서 호세아에게 &amp;ldquo;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amp;rdquo;고 말하게 하셨다(호 3:3).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다른 신을 따르지 말고 주님과 함께 살라고 하신다.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도 주님만 사랑하는 신부로 준비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제 그 사랑은 더이상 죄를 허용하는 사랑이 아니다. 고멜을 다시 데려온 뒤에도 호세아는 더이상 그녀가 음행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값 주고 사신 것은 우리가 다시 죄로 돌아가도 괜찮다는 것을 뜻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다른 신을 따르지 말고 오직 주님과 함께 살라는 언약의 요구다. 은혜를 받았으면 거룩함으로 응답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호세아의 외침을 듣는 자와 거부하는 자의 마지막은 어떻게 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가 외친 핵심은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고, 하나님이 주신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까지 우상에게 바쳤다.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계속 말씀하셨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끝내 회개하지 않았고, 마지막 왕 호세아 때까지 송아지 우상을 버리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호세아를 보내 구원받으라고 외치셨지만,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는 그 외침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다가 애굽을 의지했고, 하나님 위에 다른 것을 의지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구원받으라는 외침을 들었지만, 마지막 왕 호세아의 시대에는 심판이 임했다. 구원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 이름을 믿고 여호와께 돌아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 1장 11절은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울 날을 말한다. 호세아 3장 5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다윗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한 통치자 아래 모이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하나 됨을 보여 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호 3:5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번 시간에 우리가 듣는 외침도 이와 같다. &amp;quot;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amp;quot;(마 4:17)는 주님의 외침을 우리는 이제 뼈아프게 새기고 실천해야 한다. 자기의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기 때문이다(계 22:14). 주님은 우리가 우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와 거룩한 신부로 준비되기를 원하신다. 회개를 통해 죄를 씻고 악한 영을 내보내며, 주님이 맡기신 마지막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의 외침을 듣고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만난다. 그러나 그 외침을 거부하고 세상과 우상을 계속 따라가는 사람은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님을 맞게 된다. 그러므로 회개와 천국 복음을 들을 때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이 말씀을 듣게 하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복음을 받아들여 회개하고, 거룩한 신부와 마지막 시대의 전사로 준비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하셨는지, 북이스라엘이 왜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우상을 따랐는지, 호세아가 활동한 시대와 여로보암 2세 때의 배경을 살펴보았다. 또한 호세아라는 이름이 여호수아와 예수의 이름으로 이어지며,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을 품고 있음을 확인했다.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은 죄인을 찾아 값 주고 사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주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무리한 짐을 지우신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주는 사명을 맡기셨다. 고멜을 사랑한 호세아의 고통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나타냈다. 예수님은 더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셨다. 우리는 주님의 피 값으로 산 신부이며, 다른 신을 따르지 않고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호세아의 외침을 듣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사람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만나지만,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은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님을 맞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름만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만을 구원자로 붙들고 회개와 거룩함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끝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22일(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ChatGPT Image 2026년 9월 22일 오후 09_56_1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a1ebaa0286e7dd051b6ff7547151644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Christ_in_Hosea.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eb4b336bf6fc4e4124607aaff35f0ac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Christ_in_Hosea.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6e2a7e83a62e7276dd264db26d4e6db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Christ_in_Hosea.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7a02e417d7b2287dd4d75a09b09a333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Christ_in_Hosea.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6307067f55fe8a976040abde278a060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Christ_in_Hosea.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5d7a6b377fe88bd621a547048c309a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Christ_in_Hosea.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c0b6c9587b39d905694a5fd75fec0b6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Christ_in_Hosea.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640be78bf0c11b808ea5b62de727d87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Christ_in_Hosea.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0c0f38193c534493fc094b47b66c50b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Christ_in_Hosea.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0ac43c9b7ec28da97f56a14a34805e9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Christ_in_Hosea.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8605186d8a031dc2d7c9c4cc5b01b60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Christ_in_Hosea.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f88c36a3f49027f845a4f80d32e40cf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Christ_in_Hosea.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7e1fd97ebd28e938bb00850f6a5502a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Christ_in_Hosea.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d9bc8fd1d4ed54c39a7d21098c4c7f0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Christ_in_Hosea.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7636de3d95ec8adf598ecfe83bd90a5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Christ_in_Hosea.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bd8bece34726ddef8873c9b10a33effa.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호세아_고통의_삶과_구원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0543250c4239b33a556826da5a600c5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호세아와_예수_그리스도의_구원.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75bef85914d9d81c03c00bccc78f2e7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Hosea’s_Gilded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4c0286af92a519a8650a0efe315cffb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Hosea’s_Gilded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98317a2a914d4792dd13cd9e9f746f3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Hosea’s_Gilded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b4e9cccfb8e2b8ababad08dc59d3404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Hosea’s_Gilded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464f1b9e65fa78a9bdf0e1ab1f28bc2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Hosea’s_Gilded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c5ee32a583c2b87d46b7adcd17738be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Hosea’s_Gilded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53a90facf7e5abc927fd9a055ebc553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Hosea’s_Gilded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c2cd869cba99145f7d8692c78c7efaa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Hosea’s_Gilded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1c22015d66f2651c622189a62308f53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Hosea’s_Gilded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d119ac3fbdb3b68189927962e0a0b5d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Hosea’s_Gilded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e3f6e413939c0f38b4503ca37103cb9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7)] Hosea’s_Gilded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875/266/da9e53a57edbc8da9906aa50ed5b04ca.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사역자론(17)]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천국에서 받을 5대 면류관은 무엇인가?(01)(고전4:1~20)_2025-09-21(월)</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266770"/>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266770#comment"/>		<id>https://dongtanms.kr/morning_qt/266770</id>
		<published>2026-09-21T01:32:58+09:00</published>
		<updated>2026-09-22T00:08:04+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사역자론(17)]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천국에서 받을 5대 면류관은 무엇인가?(01)(고전4:1~2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8do3PUAEadU [이 설교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들] 1.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뜻과 사명은 어떻게 발견되는가? 2. 하나님의 부르심은 왜 충성의 과정 속에서 점차 드러나는가? 3. 악한 영의 방해를 이기고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사역자론(17)]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천국에서 받을 5대 면류관은 무엇인가?(01)(고전4:1~20)&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8do3PUAEadU&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8do3PUAEadU?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뜻과 사명은 어떻게 발견되는가?&lt;br /&gt; 2. 하나님의 부르심은 왜 충성의 과정 속에서 점차 드러나는가?&lt;br /&gt; 3. 악한 영의 방해를 이기고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lt;br /&gt; 4. 천국의 면류관은 무엇이며 사역자의 삶을 어떻게 증언하는가?&lt;br /&gt; 5. 다섯 면류관 가운데 충성의 면류관은 누가 받는가?&lt;br /&gt; 6. 모세와 다윗은 맡겨진 백성을 위해 어떻게 충성했는가?&lt;br /&gt; 7. 오늘 맡겨진 작은 일과 영혼들을 위해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본 설교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천국에서 받게 될 영광스러운 보상인&amp;nbsp;&lt;strong&gt;다섯 가지 면류관&lt;/strong&gt;을 소개하며,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amp;nbsp;&lt;strong&gt;충성의 면류관&lt;/strong&gt;에 대해 깊이 있게 고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요셉과 같은 성경 인물들의 삶과 자신의 목회 경험을 예로 들어, 우리 삶의 모든 사건이&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섭리와 계획&lt;/strong&gt;&amp;nbsp;아래 있음을 역설하며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는 자세를 강조합니다. 특히&amp;nbsp;&lt;strong&gt;충성&lt;/strong&gt;이란 단순히 잘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amp;nbsp;&lt;strong&gt;책임을 끝까지 이행하는 신실함&lt;/strong&gt;을 의미하며, 이는 성도들을 향한 중보의 마음과 영적 싸움을 감내하는 태도로 증명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각자에게 주어진&amp;nbsp;&lt;strong&gt;작은 일에 충실함으로써&lt;/strong&gt;&amp;nbsp;내세의 상급을 준비하고, 주님께 인정받는 참된 일꾼으로 거듭날 것을 강력히 권면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사역자론(17)&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천국에서 받을 5대 면류관은 무엇인가?(01)&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고전 4:1-20)&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땅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아간다. 그러나 자신이 왜 태어났으며 하나님께서 어떤 뜻과 섭리(攝理, providence) 가운데 자신을 이 땅에 보내셨는지를 아는 사람과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산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가정의 구원을 이루고, 주의 종을 위해 기도하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길 기본적인 책임을 맡기셨다. 그 가운데에는 모세나 바울처럼 특별한 사명(使命, mission)을 받고 이 땅에 보냄을 받은 사람도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인생길을 처음부터 전부 보여 주시는 것은 아니다. 요셉도 열일곱 살에 형들의 곡식 단이 자기 단에 절하고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지만, 애굽의 총리가 되어 가족을 살릴 것까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지는 못했다(창 37:5-11). 그는 꿈을 마음에 간직한 채 종살이와 감옥을 지나면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하나씩 깨달아 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예수님을 믿던 열여덟 살 무렵부터 나 자신이 목사가 될 것이라는 마음을 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성경 지식도 없었고, 찬송가도 몰랐고,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라디오 신앙 상담에서 목회자는 특별한 부르심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잠시 그 생각을 접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군에서 군종병으로 일하게 하시고, 교회학교 교사와 찬양 인도자로 섬기게 하셨고, 마침내 신학대학원에 들어가는 길까지 차례로 열어 주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실 고등학교 2학년 고등부 주일학교에 처음 나가게 되었는데, 이미 다른 친구들은 삭개오와 나아만 장군, 사르밧 이야기만 들어도 다 그 일들을 알고 있었고 여러 복음성가도 기타를 치면서 잘 불렀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모두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런데도 &amp;ldquo;나는 목사가 될 것 같다&amp;rdquo;라는 생각만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번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과 동역자들을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라고 말한다. 맡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재능이나 명성이 아니라 충성(忠誠, faithfulness)이다. 천국의 면류관(冕旒冠, crown)은 바로 이 땅에서 주님이 맡기신 일을 어떻게 감당했는지를 드러내는 영광의 상급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4:1-2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맡은 일이 작다고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새벽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일,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일, 가족의 구원을 위해 회개하는 일, 교회의 작은 필요를 채우는 일도 하늘에서는 잊히지 않는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시고, 끝까지 신실했던 사람에게 충성의 면류관을 씌우신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사명을 어떻게 알게 하시며, 천국의 면류관이 무엇을 증언하는지, 맡은 자가 어떠한 충성으로 그 상을 준비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뜻과 사명은 어떻게 발견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맡기신 뜻과 사명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그것을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과정에서 알게 된다. 어떤 사람은 요셉처럼 어린 시절부터 반복되는 꿈과 분명한 말씀을 통해서 알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삶의 만남과 사건과 훈련을 지나면서 뒤늦게 자기 길을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우연처럼 보이는 일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찾아내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꿈을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啓示, revelation)의 꿈으로 분별해 왔다. 요셉의 꿈도 한 번의 호기심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형들이 그를 &amp;ldquo;꿈꾸는 자&amp;rdquo;라고 불렀을 만큼 분명했고, 훗날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와서 절했을 때 그 꿈이 실제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다(창 42:6-9). 하나님이 주신 꿈과 환상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람의 심령에서 사라지지 않고 때가 되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처음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의 일이다. 흰옷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나타나 손을 얹어 무릎을 꿇고 있는 제 머리에 안수해 주셨다. 다만 그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신 것 같은 것은 분명하다. 그때는 워낙 악한 영들이 많아서 그것을 다 기억에 저장하지 못했다. 그래서 일생을 두고 그때 하신 말씀을 발견해 나간 것 같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어머니 권사님께서 요양원에 계실 때 천국에 가셨다. 그리고 거기서 주님을 뵌 체험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어머니께서 본 주님은 흰 머리를 하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계셨다. 주님께서는 &amp;ldquo;지금은 내려가고 일 년 뒤에 오라&amp;rdquo;는 취지로 말씀하셨다. 이것은 필자의 어머니가 체험한 영적 사건이다. 이러한 체험은 사람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해진 때와 사명을 다하기까지 이 땅에서 충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대학교 때에 국어국문학을 공부했고 교생 실습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교육계로 들어오라는 간곡한 권유를 받기도 하였다. 그때 교생실습에 채점을 매겼던 교육감은 나에게 가르치는 은사가 있으니 꼭 교사가 되어 나라를 위해 일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를 목회자로 부르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기 전이다. 학교에 있으면서 신학대학원 시험을 어떻게 치르는지 알아보려고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신대원 시험을 약 다섯 달 앞둔 어느 날이었다. 대학교 중앙도서관 복도에서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준비 모임을 갖는다는 광고를 보았다. 일곱 명가량이 모였다. 필자가 그 자리에 간 이유는 장차 신대원 시험에 무슨 과목이 있고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알아보려고 간 것이었는데, 성경을 잘 을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성경 과목 정리를 맡게 되었다. 군 제대후에 전국의 부흥집회를 하시는 이상관 목사님(&amp;quot;생명의 성령의 법 세미나&amp;quot; 강사)을 따라 다니며 찬송 인도를 하게 되었는데, 남는 시간마다 성경을 읽어 각 장의 내용을 익혀 두었던 일이 그 자리에서 인정을 받을 줄은 필자도 몰랐다. 그리고 5개월 후에 연습 삼아 치러 본 신대원 시험에 덜컥 합격했고 그 뒤에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사명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완성된 설계도대로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쌓아 둔 지식들, 그리고 만난 사람, 그리고 우연처럼 보이는 벽광고지 한 장, 맡겨진 작은 섬김을 서로 연결하여 길을 여신다. 그러므로 오늘 듣는 말씀 한마디와 만나는 사람 한 명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발견하게 하는 표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하나님의 부르심은 왜 충성의 과정 속에서 점차 드러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찾으시고 어떤 사람에게 당신의 일을 맡기시는가?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그것이 작은 일이라도 그것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신다. 필자도 처음부터 지금처럼 성경과 성령의 사역에 함께 쓰임받을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 강력한 불의 사역자로 쓰임받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단지 대학교 1학년에 교회학교 초등부(3~4학년)를 섬기고, 군대에 들어가서 군종병으로 일하면서 설교하고, 그리고 제대 후에는 부흥집회에서 찬양을 인도하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신학을 공부하는 과정을 충성스럽게 밟아나가자 다음 단계가 차례로 열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왜 하나님께서 요셉처럼 한꺼번에 모두 보여주지 아니하는 것일까? 왜 하나님께서는 나의 미래를 단계적으로 보여주시는가?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아직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알려주면, 처음부터 교만해지거나 겁에 질려 그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한 단계 한 단계의 순종을 요구하시고 그 순종이 확인되면 다음 단계를 보여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날 문득 알게 되는 소명은 단순히 나의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통해 그 소명을 감당할 사람으로 변화되는 과정의 하나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감당할 수 없는 미래의 무게를 한꺼번에 지우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 맡긴 일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신 뒤 그다음 일을 맡기신다. 작은 일에 충성하면 더 큰 일을 맡기고, 그 일에도 충성하면 더 넓은 사역과 더 큰 은사와 권세를 주신다. 이것은 사람을 차별하는 방식이 아니라 감당할 그릇을 빚는 하나님의 훈련이다(마 25:2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이 세상에 보내어진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님께서 사용할 그릇의 크기와 모양이 각각 다르다. 모세가 걸어가야 할 길과 아론과 미리암과 여호수아가 걸어가야 할 길이 달랐다. 신약에서도 바울의 길과 의사 누가의 길과 디모데의 길은 서로 같지 않았다. 사실 모든 성도가 다 똑같은 직분과 다 똑같은 사역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자리에서든 하나님께 받은 몫을 발견하여 그 일을 끝까지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특별히 쓰신 성경 인물들을 보라. 그들로는 아담,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유다, 모세, 여호수아, 다윗,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베드로, 바울, 디모데, 누가, 요한 등이 있는데, 이들은 서로 다른 사명을 각각 수행했다. 이들은 같은 일을 하도록 복제된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시대에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감당한 사람들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반대로 부르심과 예정된 길이 있다고 해서 그 길을 저절로 완주하는 것도 아니다. 구약의 사울 왕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지 못했고, 신약의 가룟 유다도 사도로 택함을 받았지만 주님을 떠나 자기 길을 가고 말았다. 그러므로 &amp;ldquo;나는 만세전에 구원받을 자로 선택받았으니 어떻게 살아도 된다&amp;rdquo;는 생각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맡겨진 사명은 계속해서 찾고 구하며 순종할 때, 비로소 열매가 맺히기 마련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먼저 작은 문을 열어주셨다. 그래서 내가 그 문으로 들어가 충성하면, 하나님께서는 다음 문을 열어 주셨다. 말씀을 연구하는 눈과 성령의 은사도 같은 방식으로 더해졌다. 그러므로 지금 하는 일이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낙심해서는 안 된다. 오늘의 충성이 내일의 사명을 밝히는 등불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악한 영의 방해를 이기고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알려면 먼저 무엇이 필요한가? 그것은 그것을 알게 해 달라고 하는 간구의 기도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lt;strong&gt;내 사명을 알기 위해서 제일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은 회개(悔改, repentance)하는 일&lt;/strong&gt;이다. 필자는 지금도 많이 어렵지만, 왜 처음부터 환상과 사명의 전모를 분명히 보지 못했는지를 처음에는 정말 몰랐다. 당시에는 조상의 우상숭배를 통해 내려온 무당의 영과 조상 영과 부처의 영 등 수많은 악한 영들이 내 머리 특히 내 눈에 가득했고, 그것들이 나의 영적인 눈을 가리고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그러한 과정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선명하게 보고 특별한 사역자의 길만 걸었다면, 아마 영적으로 눌려 자기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의 형편을 깊이 헤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필자 자신도 많은 회개와 영적 싸움을 통하여 막힌 것을 뚫고 나왔기에, 악한 영의 방해로 사명을 발견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실제적인 길이 무엇인지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사역 현장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무당의 영과 부처의 영과 조상 영이 강하게 역사하는 가정은 신앙의 길이 막히고 반복되는 가난과 어려움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런 가정에 전혀 소망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필자도 같은 방해의 역사를 회개와 영적 싸움으로 통과했기 때문에, 지금 자기의 앞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자기 사명이 없다고 단정해서는 아니 된다. 회개하며 주님을 찾으면 가려졌던 길이 점차로 열리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자신의 사명을 가리고 있는 악한 영을 치우려면, 막연히 &amp;ldquo;언젠가 나도 알게 되겠지&amp;rdquo; 하며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그럴수록 하나님께 구하고 말씀을 가까이하며,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맡겨진 일을 충성스럽게 행해야 한다. 영적인 눈은 호기심으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정결과 순종과 충성의 과정에서 밝아지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가족 구원을 위한 회개와 영적 싸움도 중요하다. 피로 연결된 가족을 위해 회개하고 그들을 붙드는 악한 영을 십자가에 세우는 일을 계속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싸움에 필요한 영적 계급과 권세를 나에게도 더하신다. 싸움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더 높은 영적 계급만을 구해서는 아니 된다. 실제 전쟁에 참여하고 때로 공격을 받아도 영혼을 살리기 위해 물러서지 않을 때 더 큰 권세가 맡겨지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 사역의 훈련을 받을 때에는 먼저 자기 안에 있던 악한 영들과 그것들이 만든 집을 처리하는 일까지 매우 힘든 여정을 통과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들을 다 제거한 뒤에는 성도들을 도울 수가 있었다. 지금은 성도들을 괴롭히는 영들을 불러내 차례로 처리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때로 그 일을 감당하면서 허리가 휘고 손이 떨릴 만큼 고통도 컸지만, 맡겨진 성도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더욱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피로 연결되지 않은 성도들의 영적 문제까지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지를 스승 목사님에게 여쭤보았다. 그때에 스승 목사님은 한 교회의 담임목사는 교회에서는 영적 부모가 됨으로 성도들을 위한 사역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이는 필자가 훈련 과정에서 배우고 체험한 영적 사역의 원리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자신에게 은사와 권세를 자기 자랑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영혼을 살리는데에 써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사명을 찾는 사람은 먼저 자기 안의 방해를 회개로 처리하고, 이미 맡겨진 가족과 교회와 영혼을 위해 충성으로 처리해야 한다. 내가 편안해질 만큼만 회개하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사람이 자유함을 얻을 때까지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그 충성의 길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보냄받았는지를 더욱 분명히 알려 주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천국의 면류관은 무엇이며 사역자의 삶을 어떻게 증언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lt;strong&gt;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쓰게 될 면류관은 누구에게 주어지는 것&lt;/strong&gt;인가? 그것은 &lt;strong&gt;이 땅에서 주님이 맡기신 일을 신실하게 수행한 사람에게 주어진다&lt;/strong&gt;. 그러므로 면류관은 &lt;strong&gt;일종의 명예상인 것&lt;/strong&gt;이다. 사실 구원(救援, salvation)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지만, 천국에서 받을 상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고 무엇을 주님께 드렸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교회에 나와서 작은 화분이지만 거기에 물을 한 번 준 일, 예배 설교자를 위해 물 한 잔을 준비하여 강대상에 올리는 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드린 여러 헌금들과 봉사들도 하늘에서는 그 상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천국에 자기의 집이 있는 경우에 1층에는 다 금으로 만든 책상과 같은 것이 있고, 그 위에 각 사람이 받은 면류관들이 놓여 있음을 본다. 그런데 예배드리러 갈 때를 보면 모두가 다 그 면류관들을 쓰고 예배드리러 간다. 그리고 여러 면류관을 가지고 있을 경우, 그것을 어떻게 한꺼번에 쓰는지 유심히 살펴보니, 양손으로 면류관을 모으면 하나의 면류관처럼 합쳐졌다. 그리고 그것을 머리에 쓴다고 할지라도 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1층의 책상 위에 면류관을 내려놓으면 다시 각각의 면류관으로 나뉘어 제자리에 놓이곤 하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이때 성도들이 받을 면류관은 &lt;strong&gt;모양과 거기에 박혀있는 보석들과 거기에서 나오는 빛이 각각 달랐다&lt;/strong&gt;. 그리고 그러한 일들은 그 사람이 여태껏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무엇에 충성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먼저, 십사만 사천 명의 보좌에 앉아있는 이들에게는 모두가 자신의 머리에 다 면류관을 쓰고 있었고, 이십사 장로들을 보니, 어떤 장로들은 네 개, 또 어떤 장로들은 다섯 개 이상의 면류관을 쓴 이도 있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일반 성도 가운데서 앞자리에 서서 예배하는 이들 중 한두 개의 면류관을 쓴 이들이 있지만, 세 개를 쓴 경우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우리가 상급으로 받을 면류관을 여러 개를 자기의 머리에 쓰더라도 목이 무거워지는 일도 없었다. 천국의 것은 이 땅의 물질 법칙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면류관은 그 사람을 과시하는 데 쓰이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천국의 상을 준비한다는 것은 자기 이름을 높이는 일이 아니라, 받은 모든 영광을 다시 주님께 돌려드릴 삶을 준비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의 중요한 인물들이 받은 면류관과 천국 집과 영적 상태를 살피며 자료를 정리해 보니, &lt;strong&gt;위대한 신앙인들에게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이 &amp;#39;충성의 면류관&amp;#39;이었다. 그리고 가장 받기 어려운 것은 &amp;#39;생명의 면류관&amp;#39;이었다&lt;/strong&gt;. &amp;#39;생명의 면류관&amp;#39;은 목숨을 바친 순교자에게 주어지며, 스데반도 이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 또한 생명의 면류관은 육체적인 순교만이 아니라 자기 마음과 생명을 온전히 주님께 드린 사람에게도 주어질 수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이번 첫 시간에는 &lt;strong&gt;진정한 사역자들이 받는 다섯 면류관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널리 발견되는 &amp;#39;충성의 면류관&amp;#39;에 대해 집중하여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 &amp;#39;면류관&amp;#39;은 그 사람이 유명하다는 확실한 증거는 아니다. 다만 그들이 &lt;strong&gt;하나님이 맡기신 자기의 책임을 끝까지 감당했다&lt;/strong&gt;는 뜻이다. 이 세상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어도, 맡은 자리에서 신실했다면 주님께서 그 충성을 기억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상을 사모하는 일은 탐욕이 아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그분이 맡기신 일을 잘 감당하고, 마지막 날 &amp;ldquo;잘하였도다&amp;rdquo;라는 칭찬을 받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이기 때문이다. 천국의 면류관을 바라보는 사람은 사람의 박수보다 하나님의 평가를 중히 여기며, 보이는 일뿐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작은 일에도 충성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다섯 면류관 가운데 충성의 면류관은 누가 받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amp;#39;충성의 면류관&amp;#39;은 대체 누가 받는가?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맡았던 사람이 받는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맡지 않은 사람에게 충성을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4장 1-2절에서도 &amp;ldquo;맡은 자&amp;rdquo;로 번역된 말은 헬라어 오이코노모스(oikonomos)이며, 집을 관리하도록 책임을 부여받은 청지기(steward)를 가리킨다.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자기 것처럼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인이 명령한 뜻대로 관리하고 보고하는 사람을 가리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청지기에게는 두 가지 자세가 필요하다. 하나는 종처럼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맡겨진 것을 주인처럼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다. 주인이 개에게 먹이를 앞에 두고 돌아올 때까지 먹지 말라고 명했다면, 배가 고프고 침이 흘러도 기다리는 것이 충성이다. 자기 욕구보다 주인의 명령을 앞세우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충성이란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만 골라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부족하고 힘들어도 주님이 맡기셨다면 그것을 감당하는 것이다. 맡겨진 일을 내가 감당할 수 없어서 혹시 넘어지거나 악한 영의 공격을 받아 수행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보시고 그에게 감당할 능력을 더하신다. 그러므로 &amp;ldquo;내가 이 일을 하다가 죽어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amp;rdquo;는 마음으로 맡겨진 책임을 붙드는 것이 충성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미국에 회개와 천국복음 선교를 다녀올 때였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야 했다. 오랜 비행 중에 앞으로 나올 책을 교정하다가 잠시 쉬면서 옛날 영화 「국제시장」을 보았다. 흥남 철수 때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어린 여동생을 끝까지 지키라는 부탁을 받지만, 배에 오르는 마지막 순간에 동생의 손을 그만 놓치고 만다. 그는 평생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짐을 안고 살다가 훗날 미국으로 입양된 동생을 다시 만나 눈물로 사과하는 장면이 나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에게는 약 십사 년 만의 미국 방문이었다. 과거에는 장거리 이동 뒤 몸살로 며칠씩 눕곤 했지만, 이번에는 중보기도팀이 기도해 주었기에 무사히 일정을 감당할 수 있었다. 긴 비행시간에도 놀기보다 출판할 책을 교정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잠시 본 영화 한 편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맡겨진 책임을 끝까지 지키라는 메시지를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영화를 보면서 필자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영혼과 사명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amp;ldquo;주님, 일평생 주님이 맡기신 일에 대하여 후회 없는 인생을 살겠습니다&amp;rdquo;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것이 충성이다. 맡겨진 일을 하다가 아무리 힘든 상황이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마지막까지 맡은 것을 붙들고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이 충성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충성은 성품과도 관련된 것으로서, 결과보다 책임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것이 드러난다. 많은 사람을 이끌었어도 자기 영광을 구했다면 충성된 청지기라고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작은 교회와 몇 명의 영혼만을 맡았어도 주님의 마음으로 끝까지 돌보았다면 그는 충성된 사람이다. 주님은 성공의 숫자보다 신실함을 보시고 충성의 면류관을 주신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모세와 다윗은 맡겨진 백성을 위해 어떻게 충성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 66권에서 충성을 다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있다면, 그는 대체 누구인가? 그는 모세와 다윗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모세&lt;/strong&gt;다. 그는 하나님의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했던 인물이다(히 3:4-6).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는 사명을 맡기셨다. 비록 모세 자신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눈앞에서 생을 마쳤지만, 마지막까지 백성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모세는 출애굽 이후 미디안 광야로 들어가, 거기에서 사십 년 동안 이백만 명가량의 백성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거듭해서 하나님을 시험했고 모세를 원망했다. 물이 없다고 원망했으며,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했다. 그리고 애굽에 먹던 부추와 파와 마늘을 그리워했다. 지도자들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도 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힘으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다. 그렇다. 충성이란 모든 문제에 스스로 답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백성을 품고 하나님 앞에 끝까지 엎드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히 3:4-6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광야의 백성은 물이 없고 먹을 것이 없을 때마다 모세를 원망했다. 고라 일당은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에 반역했고, 백성은 애굽의 음식을 그리워하며 돌아가자고 했다. 전승에 따르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훌은 금송아지를 만들자는 요구에 반대하다 죽임을 당했고, 두려움에 빠진 아론은 결국 백성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하나님께서는 금송아지 사건을 보고 진노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때 모세는 자신을 괴롭힌 백성을 죽여달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며, 그렇지 않으려면 자신을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 달라고까지 중보기도했다(출 32:31-32). 이처럼 충성된 지도자는 백성이 자기를 인정할 때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백성이 배반하고 원망해도 하나님께 맡겨진 영혼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들을 품고 기도하는 사람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둘째, 다윗&lt;/strong&gt;이다. 그도 충성된 지도자의 마음을 여실히 보여 준 인물이다. 그가 통치 말년에 인구조사를 행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않는 일이었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징계를 내리셨다. 그러자 전염병으로 백성 칠만 명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다윗은 죽어 가는 백성을 보며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amp;ldquo;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amp;rdquo;하면서 백성들을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오히려 자기와 자기 아버지의 집을 쳐 달라고 간구했다(삼하 24:10-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다윗은 자기 잘못 때문에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 지도자의 죄가 백성의 고통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그는 그것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모세와 다윗에게 공통된 충성은 백성을 자기 성공의 도구로 삼지 않고,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기 생명과 집까지 내어놓는 것임을 알 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우리 사역자들도 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성도가 말을 듣지 않고 문제를 일으킨다고&amp;nbsp; 해서 쉽게 버려서는 안 된다. 물론 죄를 옳다고 두둔하라는 뜻은 아니다. 진리를 분명히 가르치되, 맡겨진 영혼이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끝까지 기도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집에서 종으로 충성하는 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오늘 맡겨진 작은 일과 영혼들을 위해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lt;strong&gt;우리는 어디에서 충성해야&lt;/strong&gt; 하는가? 그것은 &lt;strong&gt;오늘 내가 맡은 자리&lt;/strong&gt;이다. 그것이 나의 충성의 출발점이다. 더 큰 강단과 더 많은 사람과 더 눈에 띄는 사역이 주어질 때에라야 충성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가정에서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감당하며, 새벽마다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지금 맡기신 일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신이 눈에 띄는 일을 맡아 감당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먼저 작은 일이라고 그것을 책임있게 감당하는 것을 보신다. 예를 들어 보자. 배우자와 자녀와 부모를 위해 기도하는 일이 충성의 자리이다. 또한 맡은 부서의 약속을 지키는 일과 예배 전에 자리를 정돈하고 물 한 잔을 준비하는 일이 충성의 자리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책임을 가볍게 여기면서 더 큰 사명을 달라고 요구한다면 그는 아직 충성의 그릇이 만들어지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자리가 내가 충성해야 할 자리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예배의 자리부터 지켜야 &lt;/strong&gt;한다. 혹시 예배의 자리가 멀어 현장까지 올 수 없다면 정한 시간에 온라인으로라도 옷깃을 여미며 말씀을 듣고, 예배가 끝난 뒤에는 곧바로 회개와 가족 구원을 위한 기도로 드려야 한다. 그리고 회개도 몇백 번이나 몇 천 번을 회개했다고 이제 다 했다고 멈추어서는 안 된다. 자신과 가족과 맡겨진 영혼이 악한 영의 억압에서 자유함을 얻을 때까지 기도를 계속할 수 있어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가족의 구원을 포기하고 말고 기도해야&lt;/strong&gt; 한다. 남편이나 부모가 아직 믿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붙들고 기도해야 한다. 필자의 아버지도 기독교에 대한 깊은 반감이 있었고 인간적으로는 믿기 어려워 보였지만, 아버지께서 꼭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음으로 붙들었다. 그랬더니 정말 믿고 천국에 가셨다. 신실한 믿음이란 현재의 모습에 실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실행될 것을 믿음으로 보고 그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교회와 맡겨진 영혼을 위해 자기 은사와 능력을 사용해야&lt;/strong&gt;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은사는 나 자신이 특별하다고 그것을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영혼을 살리고 귀신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며, 가족과 성도가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섬기라고 주신 것이다. 그리고 맡겨진 책임을 더 깊이 감당할수록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불과 능력과 영적 무기를 더해 주신다는 것을 알라.&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작은 봉사도 하늘의 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믿고 감당해야 &lt;/strong&gt;한다. 청소 한 번, 물 한 잔 강대상에 올리는 일, 작은 헌금 하나라도 주와 복음을 위해 행하고 있다면, 그 모든 것은 다 천국 집을 짓는 재료가 된다. 이 땅의 삶은 하늘과 결코 단절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행하는 것은 단 하나도 헛 된 것이 없으며, 반대로 내가 행하지 않은 것이 저절로 상으로 주어지지도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힘들지라도 책임을 내려놓지 말아야&lt;/strong&gt; 한다. 충성은 형편이 좋을 때 잠시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다. 몸이 힘들고 공격이 찾아오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amp;ldquo;주님이 맡기셨다&amp;rdquo;는 한 가지 이유로 인하여 계속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과정을 전부 보시고 우리에게 더 큰 일을 맡길 것인지, 아니면 더 큰 권세와 은사를 주실지를 결정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어느 날 문득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날은 내가 세상에서 얼마나 유명한 자로 살았는가보다 주님이 내게 맡기신 일에 얼마나 신실했는가가 드러나는 날이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맡은 작은 책임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가정과 교회와 영혼을 위해 끝까지 충성함으로 천국에서 충성의 면류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사명을 어떻게 알게 하시며, 천국의 면류관이 무엇을 증언하고, 맡은 자가 어떠한 충성으로 그 상을 준비하는지를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모든 길을 처음부터 보여 주시지 않고, 오늘 맡겨진 작은 일에 충성할 때 다음 길을 열어 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셉은 꿈을 마음에 간직한 채 종살이와 감옥을 통과했고, 필자도 예수님의 안수와 목회 소명을 받은 뒤 군종병과 교회학교와 찬양 인도와 말씀 연구의 과정을 지나 신학대학원으로 인도받았다. 우연처럼 보이는 만남과 사건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는 사명을 발견하게 하는 표지가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악한 영은 영적인 눈을 가리고 사명의 길을 방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과 회개와 영적 싸움을 통해 방해를 이기고, 가족과 교회와 맡겨진 영혼을 살리는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은사와 권세는 자기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혼을 살리기 위해 주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천국을 살피며 확인한 면류관은 이 땅에서 걸어온 충성의 길을 보여 주는 명예의 상이었다. 여러 면류관은 예배 때 하나로 합쳐져 머리에 씌워졌고, 그 모양과 보석과 빛은 각 사람이 감당한 사명을 증언했다. 그중 가장 많이 발견된 것이 충성의 면류관이며, 가장 받기 어려운 것은 자기 생명을 온전히 드린 이에게 주어지는 생명의 면류관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충성의 면류관은 무엇인가를 맡은 청지기가 받는다. 충성은 잘할 수 있는 일만 골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맡기셨기에 힘들어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다. 모세는 원망하고 반역하는 백성을 위해 자기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달라고 기도했고, 다윗은 자기 죄 때문에 고통받는 백성을 대신하여 자신과 자기 집을 쳐 달라고 간구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더 큰 일이 오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오늘 맡겨진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가족 구원을 위해 회개하며, 교회를 섬기고, 한 영혼이 자유함을 얻도록 끝까지 기도해야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께서 보고 계시며, 주와 복음을 위해 드린 수고는 천국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하여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찾고, 맡겨진 가정과 교회와 영혼들을 끝까지 책임지며, 주님 앞에 서는 날 충성의 면류관과 &amp;ldquo;잘하였도다&amp;rdquo;라는 칭찬을 받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21일(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ChatGPT Image 2026년 9월 21일 오후 11_53_4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9d75681c3366b0b42bcf9e8186e573b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The_Crown_of_Faithful_Stewardship.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4ea81cbba06b358295e326a5f401d31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The_Crown_of_Faithful_Stewardship.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103bf92d88af73be74e2cba93407fce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The_Crown_of_Faithful_Stewardship.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c8d9265b237e6cd34151f682ba229fb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The_Crown_of_Faithful_Stewardship.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bbb18623dc74eb2580e484ad368999c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The_Crown_of_Faithful_Stewardship.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74e25868893753146ce9d4ad1334c43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The_Crown_of_Faithful_Stewardship.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b9d32c27c6005eab8bca11ece618240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The_Crown_of_Faithful_Stewardship.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17d49c99d072b6534ff7e624d6f1b12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The_Crown_of_Faithful_Stewardship.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b9d55ca864b9c5ff426f30b31bc8554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The_Crown_of_Faithful_Stewardship.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cd5f196461931f8aaa916f976d1d6c0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The_Crown_of_Faithful_Stewardship.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0008977c558182af44d2a62141731d5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The_Crown_of_Faithful_Stewardship.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9b63723cb37e81b67fd0279d1c923d9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The_Crown_of_Faithful_Stewardship.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93fdfe55098444bee94eb257c49e8ff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The_Crown_of_Faithful_Stewardship.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2c10d9d2bd2764c4869b88e569b634f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The_Crown_of_Faithful_Stewardship.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77ce91246da4eb1cb3c31b66f7a7068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The_Crown_of_Faithful_Stewardship.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6ff0447d47be5624bff506c8a8404c9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진정한_사역자의_충성의_면류관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0056e7710aa633978c81446eedc6959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천국의_면류관을_얻는_길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3718a85a230b52fa76024bd23129aa7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Crowns_of_Divine_Stewardship.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50ccda8f4b0c6767a31f12dc0d69073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Crowns_of_Divine_Stewardship.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0c90749a69e95414440655051d0da7c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Crowns_of_Divine_Stewardship.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44e65eb06866e35d3814b3f019906ac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Crowns_of_Divine_Stewardship.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069db0e6ac54540b2be83b2e3c842cd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Crowns_of_Divine_Stewardship.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a1ff709f98d33dbd7c31116d1be5cca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Crowns_of_Divine_Stewardship.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8f59de577632917d308d8ef1847e959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Crowns_of_Divine_Stewardship.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374735712d81d777be71acce554e41d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Crowns_of_Divine_Stewardship.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978b54a9f97b02ad7a85ea56542cd84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Crowns_of_Divine_Stewardship.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19d6e22a6e687f18d584c1f97b1c5a7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Crowns_of_Divine_Stewardship.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e53d7da64a04f16a97ec0738daecf44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7)] Crowns_of_Divine_Stewardship.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70/266/e58561d8f79069d0b266f5c9a5dd183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95)]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6)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오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 그는 누구인가?(02)(단10:1~19)_2026-09-18(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266610"/>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266610#comment"/>		<id>https://dongtanms.kr/morning_qt/266610</id>
		<published>2026-09-18T09:31:34+09:00</published>
		<updated>2026-09-18T13:32:24+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95)]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6)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오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 그는 누구인가?(02)(단10:1~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lsLW3X5H1sA [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 1. 다니엘이 환상에서 본 존재와 실제로 대화한 존재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2. 단 10:10-15의 보냄받은 이는 왜 가브리엘 천사인가? 3. ‘인자의 모양 같은 이’...</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기독론(195)]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6)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오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 그는 누구인가?(02)(단10:1~19)&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lsLW3X5H1sA&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lsLW3X5H1sA?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p&gt; &lt;p&gt;1. 다니엘이 환상에서 본 존재와 실제로 대화한 존재는 어떻게 구별되는가?&lt;br /&gt; 2. 단 10:10-15의 보냄받은 이는 왜 가브리엘 천사인가?&lt;br /&gt; 3. &amp;lsquo;인자의 모양 같은 이&amp;rsquo;는 세마포 옷 입은 이와 어떤 관계인가?&lt;br /&gt; 4. &amp;lsquo;세마포 옷들&amp;rsquo;과 우바스 금띠는 그의 정체를 어떻게 밝혀 주는가?&lt;br /&gt; 5. 단 12장의 맹세는 그가 하나님이 아니라 천사임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br /&gt; 6. 계 10장의 힘센 천사는 왜 그리스도의 모습과 권세를 지녔는가?&lt;br /&gt; 7.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자는 어떤 자세로 맡은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p&gt; &lt;p&gt;이 설교는 다니엘서에 등장하는&amp;nbsp;&lt;strong&gt;세마포 옷을 입은 이&lt;/strong&gt;의 정체를 분석하며, 그가&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대리자&lt;/strong&gt;라는 사실을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환상 속 인물이 신적 위엄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맹세하거나 천사 가브리엘과 유사한 호칭을 사용하는 점을 들어, 본질은&amp;nbsp;&lt;strong&gt;천사적 존재&lt;/strong&gt;이나 권위를 위임받은&amp;nbsp;&lt;strong&gt;그리스도의 에이전트&lt;/strong&gt;라고 정의합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의 힘센 천사와 비교하며, 주님께서 사역의 편의를 위해 자신의 형상과 옷을 입혀 보낸&amp;nbsp;&lt;strong&gt;신실한 전달자&lt;/strong&gt;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역자라면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고 오직&amp;nbsp;&lt;strong&gt;그리스도만을 높이는 겸손한 태도&lt;/strong&gt;를 유지해야 한다는 영적 교훈을 목적으로 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95)&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6)&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오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 그는 누구인가?(0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단 10:1-19)&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스도론(基督論, Christology)은 구약성경에 감추어진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아 신약의 성취와 연결하는 공부다. 다니엘서에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네 가지 중요한 예표(豫表, type)가 나온다. 제2장의 손대지 아니한 돌, 제7장의 인자 같은 이, 제9장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그리고 제10장과 제12장의 세마포 옷을 입은 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앞의 세 예표는 모두 장차 일어날 일을 미리 보여 준 환상(幻像, vision)이다. &amp;#39;손대지 아니한 돌&amp;#39;은 미래에 세상 나라를 심판할 그리스도를 보여 주며, &amp;#39;인자 같은 이&amp;#39;는 고난과 죽음을 통과하고 하늘의 권세를 받으실 분을 보여 준다. &amp;#39;기름부음을 받은 자&amp;#39;는 초림하실 시기와 십자가에서 끊어지실 일까지 예언한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므로 미래의 일을 현재로 당겨 다니엘에게 보여 주실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amp;#39;세마포 옷 입은 이&amp;#39;는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다니엘은 그 모습을 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음성을 듣고, 사람의 모양을 취한 존재에게 입술과 몸을 만짐받으며 대화한다. 다니엘서 제12장에서는 강 양쪽의 두 사람(천사)가 강물 위에 있는 &amp;#39;세마포 옷 입은 이&amp;#39;에게 질문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단순히 미래의 그리스도를 본 것인지, 당시 실제로 나타난 천사와 대화한 것인지 구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전편에서는 세마포 옷 입은 이가 요한계시록 제1장의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와 매우 닮았으나, 제12장에서는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한다는 긴장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다니엘서의 문맥과 히브리어 표현, 요한계시록 제10장의 힘센 천사를 함께 대조하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는 &lt;strong&gt;본래 천사이지만 장차 영광을 받으실 그리스도를 대리하도록 그분의 모습을 입고 나타난 존재&lt;/strong&gt;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해석은 단순히 천사의 이름을 밝히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과 권세와 직분을 누구에게 맡기시는지, 맡은 자가 왜 끝까지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주님의 옷을 입고 주님의 일을 수행한다고 해서 대리자가 주님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니엘서 제10장과 제12장의 &amp;#39;&lt;strong&gt;세마포 옷 입은 이&amp;#39;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대리 천사로 나타났으며, 그 사실이 오늘날 직분을 맡은 우리에게 어떤 자세를 요구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다니엘이 환상에서 본 존재와 실제로 대화한 존재는 어떻게 구별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제10장 5-6절은 먼저 다니엘이 눈을 들어 본 광경을 기록한다.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다. 몸은 황옥 같고 얼굴은 번갯빛 같으며, 눈은 횃불 같고 팔과 발은 빛난 놋 같았다. 말소리는 많은 무리의 소리와 같았다. 이 모습은 부활하여 영광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거의 같다(계 1:10-2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단 10:5-6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장면만 놓고 보면 하나님께서 미래의 영광스러운 그리스도를 환상으로 미리 보여 주셨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니엘은 그 음성을 듣자 온몸의 힘이 빠지고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했으며, 호흡조차 남지 않았다(단 10:8-9). 요한계시록 제1장에서 사도 요한이 인자 같은 이를 보고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된 장면과 매우 닮았다(계 1: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환상에서는 미래의 모습뿐 아니라 미래에 들려질 음성도 현재처럼 들을 수 있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제10장 5-9절에서 그 모습을 보고 음성을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존재가 당시 육체를 입고 실제로 나타난 예수님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장차 영광받으실 그리스도의 형상과 음성을 미리 당겨 보여 주신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입술과 몸을 만지고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제16절 이후의 장면은 그 현장에 보냄받은 존재의 활동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제10장 16절과 18절에서는 단순히 미래를 보는 환상을 넘어 실제 그 존재와 접촉하고 대화를 한다. &amp;#39;사람의 아들들의 모양 같은 이&amp;#39;가 다니엘의 입술을 만지고(단 10:16), &amp;#39;사람의 모양 같은 이&amp;#39;가 다시 그를 만져 힘을 준다(단 10:18). 다니엘은 그를 향하여 &amp;ldquo;내 주여&amp;rdquo;라고 부르며, 자신이 환상 때문에 근심하고 기력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는 다니엘의 말을 듣고 &amp;ldquo;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amp;rdquo;고 대답한다(단 10:16-1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환상으로 미리 본 그리스도의 모습과 다니엘 곁에서 대화한 존재를 구별할 실마리가 생긴다. 미래의 그리스도는 환상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당시 다니엘에게 손을 대고 환상을 설명하는 존재는 그 현장에 있는 존재여야 한다. 그러니까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받은 천사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게도 하시고, 그에게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외형과 권위를 입혀 대리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사(天使, angel)를 뜻하는 헬라어 앙겔로스(ἄ&amp;gamma;&amp;gamma;&amp;epsilon;&amp;lambda;&amp;omicron;&amp;sigmaf;, angelos)는 본래 소식을 전달하는 사자를 가리킨다. 천사는 날개가 보이게 나타날 수도 있고 사람처럼 날개 없이 나타날 수도 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때에도 천사들이 흰옷을 입은 청년 또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막 16:5; 눅 24:4; 행 1:10). 그러므로 사람의 외모를 취했다고 해서 그 존재 자체가 인간이거나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라고 단정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사는 하나님의 환상과 말씀을 전달하고 그 뜻을 해석할 수 있지만, 인류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죽을 수는 없다. 육체가 없는 천사에게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맡기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오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천사는 복음의 소식을 전달하는 종이며, 예수님은 몸을 내어 주어 그 복음 자체를 이루신 구원자다. 전달자의 역할과 구속자의 신분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핵심은 외형과 본체, 대리자와 본래 주인을 구별하는 것이다.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 주지만, 그가 하는 행동과 관계를 보면 보냄받은 존재의 특징도 함께 지니고 있다. 이 두 측면을 모두 보존할 때 제10장과 제12장의 난제가 풀린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단 10:10-15의 보냄받은 이는 왜 가브리엘 천사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제10장 10절부터는 어떤 존재의 한 손이 다니엘을 어루만져 무릎과 손바닥으로 땅을 짚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 존재는 누구인가? 그는 &amp;#39;세마포 옷을 입은 이&amp;#39;인가? 어니면 또 다른 어떤 존재인가? 그때 그는 다니엘에게 &amp;ldquo;큰 은총을 받은 사람&amp;rdquo;이라고 부르며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고 밝힌다. 다니엘이 기도하며 스스로 겸비하기로 결심한 첫날부터 그의 말이 들렸고, 그의 기도 때문에 자신이 왔다고 설명하고 있다(단 10:10-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단 10:11 그가 내게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하더라 그가 내게 이 말을 한 후에 내가 떨며 일어서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이 보냄받은 이는 소식 전달 천사장인 가브리엘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다. 왜냐하면 다니엘서에서 그는 2가지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하나는 환상을 해석하는 이로 등장하고 있으며, 기도 응답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파송된 천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첫째, 다니엘 제8장을 보면, 가브리엘은 에서 숫양과 숫염소의 환상을 해석하라는 명령을 받고 다니엘에게 그 뜻을 알려 주기 위해 등장한다(단 8:16-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둘째, 그는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파송받은 천사로 등장한다. 이러한 예는 누가복음 제1장에서도 발견되는데, 그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고 자신을 밝히며, 사가랴와 마리아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도록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한다(눅 1:19, 26-27).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환상을 해석하고 하나님의 소식을 전달하는 일이 고유한 임무라는 것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히 그가 가브리엘 천사장이라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그가 바사 왕국의 군주에 의해 이십일 일 동안 가로막혔고, 가장 높은(첫째가는) 군주 가운데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자기를 도와주어서 다니엘게 오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단 10:13). 만일 이 존재가 전능하신 그리스도라고 한다면, 악한 영에게 이십일 일 동안 막혀 미가엘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가브리엘이라면 한 나라를 지배하는 강한 악한 영에게 막힐 수 있고, 하나님의 군대를 담당하는 미가엘의 도움으로 그 길을 뚫을 수도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군주로 번역된 히브리어 사르(שַׂר, śar)는 통치자 또는 지휘자를 뜻한다. 바사 왕국의 군주는 바사 제국의 배후에서 활동하는 악한 영의 지휘자이며, 미가엘은 하나님의 편에서 군대를 맡은 높은 통치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천상 세계에는 맡은 분야와 계급에 따른 질서가 있다. 가브리엘은 소식 전달을, 미가엘은 하나님의 군대를 담당하는 대표적인 천사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파악한 천상 질서에는 최소한 일곱 분야의 천사와 그 분야를 맡은 대표 통치자들이 있다. 소식 전달과 군대뿐 아니라 예배와 치유를 비롯한 여러 사역에 담당 천사가 있다. 모든 이름과 구조가 성경에 낱낱이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가브리엘과 미가엘의 서로 다른 직무는 천상 세계가 무질서하게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 아래 맡은 일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더욱이 이러한 장면은 기도 응답이 영적 전쟁을 통과하여 전달된다는 사실도 보여 준다. 다니엘의 기도는 첫날부터 하나님께 들려졌지만 응답을 가지고 오는 천사가 세 이레(이십일 일) 동안 방해를 받았다. 영적 세계를 살펴보면 힘이 약한 천사가 더 강한 천사에게 기도를 전달하고, 여러 단계를 거쳐 기도가 올라가고 응답이 내려오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이 듣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전달 과정에 싸움이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은 성도들의 기도가 금 대접에 담겨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계 5:8; 8:3-4). 필자가 환상 가운데 살펴본 바에 따르면, 기도를 맡은 천사들은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강한 영을 만나면 더 높은 천사에게 그것을 넘기고, 마침내 해당 분야를 맡은 천상 존재에게 전달한다. 그런데 다니엘의 경우에는 소식 전달의 최고 책임자인 가브리엘조차 바사의 군주에게 막혀서 내려오지 못함으로 하늘의 군대를 맡은 미가엘이 와서 길을 열어 주었다. 이 사건은 응답이 늦어져도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해야 할 이유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처럼 나라와 지역을 붙들고 있는 악한 영은 개인을 공격하는 영보다 강하다. 그러므로 자기 안의 악한 영을 충분히 처리하지 않은 채 나라와 민족의 영을 함부로 상대하면 오히려 눌릴 수 있다. 그러므로 회개와 천국복음연구소에서 발행한 &amp;quot;나라와 민족을 위한 회개기도문&amp;quot;을 처음부터 사용하면 안 된다. 먼저 &amp;quot;회개기도문&amp;quot;으로 천 번 정도 기도한 다음에,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 영적 전쟁은 객기나 호기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와 순종과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서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마지막 날에 그의 백성이 당할 일을 깨닫게 하려고 왔다고 말하면서, 제11장에서 이어질 나라들의 역사와 마지막 환난을 설명해준다(단 10:14; 11:2 이하). 따라서 제10장 10-15절의 손은 환상을 전달하고 해석하도록 보냄받은 가브리엘의 손이라고 판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브리엘과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은 세마포 옷을 입은 이를 무조건 하나로 합치면 안 된다. 그러면 세마포 옷을 입은 이가 미가엘의 도움을 필요로 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amp;lsquo;인자의 모양 같은 이&amp;rsquo;는 세마포 옷 입은 이와 어떤 관계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제10장 16절에 보면 &amp;ldquo;인자 같은 이&amp;rdquo;가 또 나온다. 한글로만 본다면 다니엘서 제7장 13절에 나오는 &amp;ldquo;인자(사람의 아들) 같은 이&amp;rdquo;와 같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 표현은 다르다. 제7장에서는 &amp;#39;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amp;#39;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간다. 그러나 제10장 16절에 등장하는 존재는 &amp;#39;사람의 아들 같은 이&amp;#39;가 아니다. &amp;#39;사람의 아들들의 모양 같은 이&amp;#39;이다. 그리고 제18절에는 &amp;#39;사람의 모양 같은 이&amp;#39;라고 나온다. 여기서 강조점은 그 존재의 본체보다 그가 취하고 있는 외모와 형상에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바로 이 존재는 다니엘의 입술을 만져 말문을 열게 했다. 그리고 다시 그를 만져 힘을 준다. 다니엘이 처음 세마포 옷 입은 이를 보았을 때 힘을 잃었던 사실과 연결해 보면, &amp;#39;사람의 모양 같은 이&amp;#39;는 &amp;#39;세마포 옷 입은 이&amp;#39;가 다니엘과 접촉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영광스러운 외형을 보았고, 뒤에는 그 존재가 사람의 모양으로 가까이 와서 대화를 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때 다니엘은 그를 향하여 &amp;ldquo;내 주여&amp;rdquo;라고 불렀다. 여기에 사용된 표현은 &amp;#39;아도니(אֲדֹנִי, ʾădōn&amp;icirc;)&amp;#39;, 곧 &amp;ldquo;나의 주&amp;rdquo;라는 존칭이다. 인간은 자신보다 높은 계급의 천사를 만났을 때 존칭으로 &amp;#39;내 주&amp;#39;라고 부를 수 있다. 사도 요한도 천상 존재를 향하여 &amp;#39;내 주&amp;#39;라고 말한 적이 있다(계 7:13-14). 아직 흙으로 지어진 연약한 인간에게 천사는 지혜와 능력이 훨씬 뛰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천사끼리는 어느 누구도 서로를 가리켜 &amp;#39;나의 주&amp;#39;라고 부르지 않는다. 가브리엘과 미가엘은 각자 하나님께 받은 직무를 수행하는 동료 통치자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주인이 될 수 없다. 축사 현장에서 보면 타락한 영들은 사탄을 자기 주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교만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amp;ldquo;내 주여&amp;rdquo;라고 부른 사실만으로 &lt;strong&gt;그 존재&lt;/strong&gt;를 곧 하나님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겠지만, &lt;strong&gt;평범한 천사를 넘어 그리스도의 권위를 대리하는 특별한 존재임&lt;/strong&gt;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 하나의 긴장은 이 존재가 가브리엘처럼 다니엘을 &amp;ldquo;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amp;rdquo;라고 부른다는 데 있다(단 10:19). &lt;strong&gt;말하는 방식은 영락없이 천사와 같고, 외형과 권위는 그리스도와 같은 것이다&lt;/strong&gt;. 바로 이 두 특징이 해답으로 인도한다. 고로 &lt;strong&gt;그는 본체로서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모습을 입고 그분을 대신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천사인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구약 시대에는 한 분 하나님께서 홀로 일하셨으며, 아직 아들이 사람들 앞에 별도의 위격으로 나타나 활동하시는 때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시편 제110편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장차 아들이 아버지 우편에 앉으실 일을 미래의 환상으로 미리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과 접촉하여 현장에서 환상을 해석하는 존재를 곧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 이전의 예수님이라고 본다면, 구약시대에 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활동하셨을 뿐 두 위격이 같이 나타나 활동한 적이 없다는 사실과 충돌하게 된다. 그러므로 &lt;strong&gt;다니엘서에 나오는 &amp;#39;세마포 옷을 입은 이&amp;#39;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세워 미래의 모습을 현재에 보여 주신 것으로 풀어야&lt;/strong&gt;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amp;lsquo;세마포 옷들&amp;rsquo;과 우바스 금띠는 그의 정체를 어떻게 밝혀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제10장 5-6절에 나오는 &amp;#39;세마포 옷을 입은 이&amp;#39;를 해석하는 중요한 열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의외로 본문에 들어 있다. 우리말에서는 단수로 번역되어 있는데, 히브리어로 보면, &amp;ldquo;세마포 옷&amp;rdquo;이 단수가 아니라 &amp;#39;세마포 옷들&amp;#39;이라고 되어 있다. 히브리어 본문은 세마포를 복수형, 곧 &amp;#39;바딤&amp;#39;으로 쓰여 있다. 고로 &amp;#39;세마포 옷을 입은 이&amp;#39;는 &amp;ldquo;세마포 옷들을 입은 이&amp;rdquo;로 읽어야 한다. 가브리엘과 미가엘은 한 벌의 옷을 입은 천사로 나타났지만, 이 존재는 자신의 흰옷 위에 또 다른 옷을 덧입은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그가 덧입은 옷은 어떤 옷이었는가? 놀라지 말라. 그가 덧입은 옷은 장차 승리하고 영광을 받으실 예수 그리스도의 옷이었다. 또한 그의 허리에 두른 우바스 순금 띠는 왕의 위엄과 이긴 자의 신분을 그대로 보여준다. 천사는 스스로 죄와 시험을 이겨 왕이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므로 결코 자신의 힘으로 금띠를 두를 수 없다. 얼굴이 번갯빛 같으며 눈이 횃불 같고 팔과 발이 빛난 놋 같다는 것도 감찰과 심판(審判, judgment)의 권세를 지닌 그리스도의 형상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요한계시록 제1장의 예수님과 다니엘 10장에 나오는 천사의 모습은 거의 일치한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1장에서 예수님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있었고, 가슴에 금띠를 띠셨으며, 눈은 불꽃 같고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았기 때문이다(계 1:13-16). 이것은 &lt;strong&gt;세마포 옷을 입은 천사가 자기의 영광을 드러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입혀 장차 오실 분을 미리 보여 주셨다&lt;/strong&gt;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다니엘서 제12장 6절도 강물 위쪽에 있는 이를 &amp;ldquo;세마포 옷들을 입은 자&amp;rdquo;로 기록하고 있다. 제10장과 동일하게 겉옷에 대해 복수형으로 다시 나온다. 그러므로 다니엘 10장과 12장의 세마포 옷 입은 이는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는 천사로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천사적 신분 위에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옷을 덧입고 환상의 주권자를 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렇듯 천사가 하나님을 대리하는 자로 등장하는 것은 성경 곳곳에 있다. 창세기 제22장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하나님으로서 일인칭으로 말씀을 전한다. 출애굽기 제3장에서 모세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도 거룩한 땅에서 신을 벗으라고 명하며 하나님으로서 그에게 말한다. 천사가 하나님처럼 말했다고 해서 그 천사 자체가 하나님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내신 분의 이름과 권세를 입고 말하는 대리자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마포 옷을 입은 이도 마찬가지다. 그는 본래 높은 계급의 천사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옷과 외형과 권위를 입히셨기 때문에 다니엘 앞에서 주님을 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리자(代理者, agent)는 주인의 일을 정확히 수행하지만 주인과 동일한 본체는 아니다. 이 구별을 붙들면 그가 그리스도처럼 보이면서도 하나님께 맹세하는 이유가 동시에 설명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단 12장의 맹세는 그가 하나님이 아니라 천사임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제12장에는 강 이쪽 언덕과 저쪽 언덕에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두 존재가 서 있다. 제10장부터 이어지는 문맥을 보면 이들은 가브리엘과 미가엘로 추정된다. 그중 하나가 강물 위쪽에 떠 있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에게 놀라운 일의 끝이 언제인지 묻는다. 그러자 질문을 받은 그이는 좌우 손을 하늘로 들어 영원히 살아 계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며 말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단 12:7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니 하나님 자신(아들)이 또 다른 하나님(아버지)을 가리켜 맹세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은 천사가 창조주를 가리켜 맹세한 것이다. 구약 시대에 성부와 성자가 두 분으로 동시에 나타나 서로 대화하고 맹세하는 장면은 그 어디에도 없다. 아직 아들은 성육신하지 않아서 밖으로 자신을 드러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장면은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천사가 영원하신 하나님을 가리켜 말씀의 확실성을 보증한 장면이라고 하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그가 평범한 소식을 전하는 천사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강 양쪽의 두 천사와 같거나 그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질문을 받고 종말의 기간을 선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때 그는 그리스도를 대신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천사일 뿐이다. 그때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amp;ldquo;한 때와 두 때와 반 때&amp;rdquo; 곧 마흔두 달, 1,260일 동안 성도의 권세가 깨어지는 마지막 환난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달한다(단 7:25; 계 12:6, 14; 13:5). 고로 그는 마지막 전쟁과 성도의 고난에 관한 하나님의 시간표를 위임받은 높은 통치자급 천사인 것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세마포 옷을 입은 이&amp;#39;는 누구인가? 제10장의 우바스 금띠와 놋 같은 팔과 발은 그가 그리스도의 왕권과 심판권을 가진 자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제12장의 맹세는 그 존재가 본래 신분이 천사임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어느 한쪽만 붙들면 해석의 오류가 생긴다. &lt;strong&gt;외형만 보면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라고 하기 쉽고, 맹세만 보면 그리스도와 무관한 보통 천사라고 하기 쉽다. 그러나 두 장을 함께 보면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은 천사&lt;/strong&gt;라는 결론이 나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하나님은 장차 영광을 받으실 예수님의 모습을 천사에게 입혀 다니엘에게 미리 보여 주셨다&lt;/strong&gt;. 그러므로 &lt;strong&gt;그는 그리스도의 예표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 자신은 아니다&lt;/strong&gt;. 미래의 그리스도를 환상으로 보여 주는 상징성과 당시 현장에서 다니엘과 대화하는 천사적 실재가 한 존재 안에 결합되어 있다. 이것이 힛데겔 강가 환상의 독특한 방식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계 10장의 힘센 천사는 왜 그리스도의 모습과 권세를 지녔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amp;#39;세마포 옷을 입은 이&amp;#39;에 대한 해답은 요한계시록 제10장으로 조명해 보면 더욱더 분명해진다. 그때 사도 요한은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본다. 그의 머리 위에는 하나님의 보좌를 연상시키는 무지개가 있고, 얼굴은 해 같으며, 발은 불기둥 같다. 오른발로 바다를 밟고 왼발로 땅을 밟았으니 온 세상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진 자로 등장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0:1 내가 또 보니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외형만 보면 영락없이 예수 그리스도다. 구름을 입고 오시며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불기둥 같은 발로 심판하실 분은 예수님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복음서원 계열의 세대주의자들의 해석을 보면, 그 힘센 천사를 예수님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자체 본문은 그를 거듭 &amp;ldquo;천사&amp;rdquo;라고 말하며(계 10:1, 5, 9), 그도 다니엘서 제12장의 존재처럼 오른손을 하늘로 들고 창조주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고 있다(계 10:5-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0: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왜 이 천사가 그리스도의 모습과 권세를 지니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그것은 그가 자기 손에 들고 있는 작은 두루마리가 그 답을 준다. 이 두루마리는 이미 요한계시록 제5장에 나왔던 바로 그 두루마리다. 그때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는 안팎으로 기록되고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가 있었다. 그것을 아무도 펼 수 없어 사도 요한이 울었으나, 유다 지파의 사자요 다윗의 뿌리이신 어린양이 이기셨으므로 그 두루마리를 받아서 인을 떼기 시작하셨다(계 5: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인을 하나씩 떼자, 계시(啓示, revelation)가 열려 보여졌다. 그 결과, 제10장에 이르렀을 때 두루마리는 이미 거의 펼쳐졌고 남은 분량이 얼마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곱 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의 일곱째 인이 떼어지면서 일곱 개의 나팔이 불어졌는데, 그때에는 이미 여섯째 나팔까지 불려지고 마지막 일곱째 나팔을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면 일곱째 나팔이 불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세상 나라(왕국)가 우리의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가 나라(왕국)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게 될 것이다(계 11:15). 다시 말해, 이제까지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비밀이 다 성취되는 것이다(계 10: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제 예수께서는 공중으로 가셔서 알곡을 추수하는 일을 수행하셔야 할 때였다(계 14:14-16).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아직 조금 남아 있는 계시를 신뢰받는 천사에게 맡기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곱째 나팔이자 일곱 대접 재앙이다.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어떤 고위급 천사에게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게 하여 이 일이 여전히 예수님의 주권 아래 진행됨을 보여 주고 계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에는 사건의 전개 순서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일곱 인 가운데 마지막 일곱째 인은 다시 일곱 나팔로 펼쳐지고, 제10장은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에 들어간 삽입 계시인 것이다. 어린양이 큰 두루마리의 인을 거의 다 떼셨으므로 남은 것은 펼쳐진 작은 두루마리일 뿐이다. 고로 예수님이 펼쳐 보이기 시작하신 계시를 천사가 이어서 전하지만 주권이 천사에게 넘어간 것은 아니다. 남은 말씀까지 예수님의 이름과 형상으로 집행하도록 위임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자 그 &amp;#39;힘센 천사&amp;#39;는 작은 두루마리를 요한에게 주어 먹게 한다. 그러자 요한의 입에서는 꿀같이 달았으나 배에서는 쓰게 되었다. 거기에 재앙과 애곡의 예언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요한은 조금 남아 있지만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전해야 할 예언을 또 보고 전달한다(계 10:8-11).&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요한계시록 제11장 15절을 보면,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고 그분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실 것이다. 그러나 계시를 전달받은 힘센 천사는 종말의 주인이 아니라 종말의 주권자이신 그리스도의 명령을 집행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고로 &lt;strong&gt;다니엘서의 세마포 옷을 입은 이와 요한계시록의 힘센 천사는 같은 대리 원리를 보여 주는 사례&lt;/strong&gt;인 것이다. &lt;strong&gt;주님의 가장 신뢰받는 천사가 그리스도의 옷과 형상을 입고 그분의 남은 말씀을 전달하고 있는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자는 어떤 자세로 맡은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처럼 &lt;strong&gt;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자신의 말씀을 맡길 신실한 사람을 찾으신다&lt;/strong&gt;. 천사가 하나님의 소식을 전달하는 앙겔로스인 것처럼, 주의 종도 어쩌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자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고 해서 그 말씀이 자기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능력과 권세와 지혜가 나타나도 그것은 주님께서 그분의 옷(권세와 능력 등)을 덧입혀 주셨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다니엘 12장에서 세마포 옷을 입은 그 천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었지만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두 손을 하늘로 들어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했다. 요한계시록 제10장에 나오는 힘센 천사도 온 땅을 밟는 권세와 해 같은 얼굴을 지녔지만 자신을 예배하라고 하지 않았다. &lt;strong&gt;대리자는 언제나 자기를 보내신 분을 높이고, 맡겨진 말씀이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를 잊으면 이단의 길로 들어간다. 많은 것을 깨달았거나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는 이유로 자신을 높이고, 주님이 맡기신 말씀을 자기 신분을 높이는 도구로 사용하면 사탄의 교만을 따르게 된다. 신천지의 이만희와 같은 이단 지도자들이 말씀을 자기중심적으로 짜 맞추어 자신을 구원의 중심에 놓는 것이 그 예다. 말의 능력이 사람을 모을 수는 있어도 그리스도를 높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 시대에 말씀을 전하는 자는 주님이 입혀 주신 옷을 벗기시면 본래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의 옷을 자기 옷으로 착각하고, 맡겨 주신 능력을 자기 능력으로 여기며, 직분(職分, office)을 자기 소유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자리를 내려놓으라고 하시면 언제든지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일을 맡겨도 끝까지 타락하지 않고 전할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깊은 말씀과 더 큰 일을 맡기시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이 자세를 보여 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본래 양의 뒤를 따르던 천한 목자였고,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감당하기 과분한, 왕의 직분을 맡기셨음을 잊지 않았다. 아들 압살롬이 반역했을 때에도 그는 왕좌를 자기 생명처럼 붙들지 않고 그것을 내주고 기꺼이 예루살렘을 떠난다. 그리고 그의 통치 말년에 인구 조사의 죄로 백성에게 전염병이 임했을 때에는 백성이 무슨 죄를 범했느냐고 하면서, 자신과 자기 아버지의 집을 치시라고 요청한다(삼하 24:17). 자기 지위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을 더 귀하게 여긴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와 자손으로 불리시기를 기뻐하신다(계 5:5; 22:16). 그렇다. 다윗은 하늘에서 왕 노릇 할 이기는 자의 전형적인 예표다. 참된 왕은 백성을 이용하여 자기를 높이지 않고 백성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 놓는다. 주의 종도 주님의 양 떼를 살리기 위해 직분을 사용해야 하며, 자기 이름과 조직을 세우기 위해 성도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이 예수님을 모세의 사자나 다른 위대한 인물의 이름보다 특별히 다윗의 뿌리와 자손으로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다윗은 왕권을 받았지만 왕좌보다 하나님의 뜻을 귀하게 여겼고, 자기 집보다 하나님의 백성을 먼저 생각했다. 이기는 자에게 맡겨질 하늘의 왕권도 자기 영광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양 떼를 섬기는 자리다. 그러므로 다윗의 마음을 잃은 채 왕의 권세만 탐한다면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될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의 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다.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 2:6-8). 하늘의 참주인이 자신을 낮추셨다면, 그분의 일을 잠시 위임받은 우리는 더욱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빌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말씀을 많이 깨닫고 능력이 크게 나타날수록 그것을 맡겨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여야 한다. 나를 위해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를 지신 한 분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이 맡겨 주신 일에 목숨을 다해 충성해야 한다. 나는 대리자일 뿐이라는 고백을 잃지 않는 사람이 마지막까지 안전하게 쓰임받는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리는 두 시간에 걸쳐,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타난 세마포 옷을 입은 이의 정체와 그가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다니엘서 제10장 10-15절에 나오는 &amp;#39;보냄받은 이&amp;#39;는 미가엘의 도움을 받아 바사 왕국의 군주를 통과한 가브리엘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사람의 모양을 취하여 다니엘을 만진 존재와 세마포 옷 입은 이는 문맥에 따라 구별하면서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세마포 옷을 입은 이&amp;#39;가 누군지에 대한 해답의 핵심은 세마포 옷이 원문에서 복수형으로 나타난다는 데 있었다. 그는 본래 높은 계급의 고위급 천사였지만, 하나님께서 말세에 나타날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려주기 위해 그의 옷 위에 장차 영광을 받으실 그리스도의 옷을 덧입혀 주었다. 그러므로 우바스 순금 띠와 번갯빛 얼굴, 횃불 같은 눈과 놋 같은 팔과 발은 승리한 왕이요 심판주이신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했다는 사실은 그의 본래 신분이 천사였음을 밝혀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 제10장의 힘센 천사도 같은 원리를 보여 준다. 그는 구름과 무지개와 해 같은 얼굴과 불기둥 같은 발을 지녀 예수님처럼 보이지만, 창조주를 가리켜 맹세하고 어린 양이 열어 놓으신 작은 두루마리를 전달한다. 예수님께서 남은 계시의 전달을 맡기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형상과 권세를 입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 환상의 모습은 오늘도 말씀 맡은 자의 겸손과 충성(忠誠, faithfulness)으로 이끌어간다. 주님께서 자신에게 옷을 입혀 주시고 말씀과 능력과 직분을 맡기셨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의 소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라도 그 자리를 내려놓을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양 떼를 귀하게 여기며, 모든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께 돌려야 한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맡겨 주신 옷과 직분을 자기 영광으로 삼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만 높이며 끝까지 충성하는 복된 주의 종과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18일(금)&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 ChatGPT Image 2026년 9월 18일 오후 01_07_4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a21af0f148820e9777ece35ab67ee78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ce4b7cc6aa960a37ab9609f104b9f02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0c1d795fb0bbc7ad08ecbe4fbddf86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8620c032471dc5bef3086186be629a1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a6f36d166cb5056251699f83fea7c14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6535d271d308504888550804ffce3ef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315ac54e15de9f8e3ca49d7da0d1caf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530cb112c6a7b156e8cf06d6400f44d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a7a0e8844cdb3ba8611b3b0e96645fd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0b542e44398ce608a78469a1a22dc46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7f761d7509a8a2a5ac5d7643823a04d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a6cb4f0fbe4b9158bd4ad446e4c3807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987ac5f4133a1a613c319e59d468a6a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a3f37cd87addeeda68b6137b3aac489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30204ba176af51fcc6a5d2c4bdc87d8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Linen_Clad_Agent.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81bc5c6822b4a612ba38df9b7f26f76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그리스도의_형상을_입은_대리자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a6e57999ae6161105b611a50395068b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다니엘서_세마포_입은_대리자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447da1dc7ac99731b9c4143da05b608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4dabaaf525aa961969655e09f6246c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4586022dc2520e24ea396c165134a56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805a78d3b61cfc794b451a2135be5e2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e982273db805c075fc516e9c3c5581e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c8d55a6c056ec92d20d5915d7326d05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0c70477dd8ac176753f1524e15d04bb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ed897405f3d703a4a658c7d13deff74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ebc9b2fa2fa63be97a5d35fe7ffd3cf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bc823d6435c8e40743ece52fe942cfe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694071d552d9565c5f9971a0ba2e065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444d4060822516fe55c7cd2ea729cb5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da3fd3c47150a9b7a859e566515ef68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c2a9c8e9752e278b42309f6709f734e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5)]The_Divine_Proxy.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610/266/3bcfbbd71a099bca9f2e540095aa1d0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94)]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5)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오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 그는 누구인가?(01)(단10:1~19)_2026-09-17(목)</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266523"/>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266523#comment"/>		<id>https://dongtanms.kr/morning_qt/266523</id>
		<published>2026-09-17T09:27:10+09:00</published>
		<updated>2026-09-17T15:09:56+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94)]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5)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오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 그는 누구인가?(01)(단10:1~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pFjMmK2XCGg [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7가지 질문] 1.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는 어떤 존재들이 등장하는가? 2. ‘인자 같은 이’의 번역은 해석에 어떤 혼란을 일으켰는가? 3. 세마포 옷과 우바스 금띠는 어떤 신분을...</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94)]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5)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오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 그는 누구인가?(01)(단10:1~19)&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pFjMmK2XCGg&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pFjMmK2XCGg?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는 어떤 존재들이 등장하는가?&lt;br /&gt; 2.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의 번역은 해석에 어떤 혼란을 일으켰는가?&lt;br /&gt; 3. 세마포 옷과 우바스 금띠는 어떤 신분을 나타내는가?&lt;br /&gt; 4. 그의 모습은 요한계시록 1장의 그리스도와 어떻게 닮았는가?&lt;br /&gt; 5. 흰옷과 많은 물소리만으로 그의 정체를 확정할 수 있는가?&lt;br /&gt; 6. 다니엘서 10장과 12장의 세마포 옷 입은 이는 같은 존재인가?&lt;br /&gt; 7. 한 분 하나님이라는 진리는 왜 이 환상을 푸는 열쇠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다니엘서 10장에 등장하는&amp;nbsp;&lt;strong&gt;세마포 옷을 입은 이&lt;/strong&gt;의 정체를 신학적으로 고찰하며, 그를&amp;nbsp;&lt;strong&gt;그리스도의 예표&lt;/strong&gt;로 해석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설교는 이 존재가 요한계시록의 예수 그리스도와 흡사한 외양을 지녔음을 강조하면서도,&amp;nbsp;&lt;strong&gt;하나님은 한 분&lt;/strong&gt;이라는 유일신 신앙의 틀 안에서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질문을 던집니다. 특히 천사나 구약의 다른 현현들과의 차별점을 논하며,&amp;nbsp;&lt;strong&gt;그리스도 중심적 성경 해석&lt;/strong&gt;을 통해 세대주의적 오해를 극복하고 진정한 삼위일체론에 도달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통일성&lt;/strong&gt;을 열쇠 삼아,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는&amp;nbsp;&lt;strong&gt;승리하신 왕 예수&lt;/strong&gt;를 발견하도록 돕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94)&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5)&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오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 그는 누구인가?(01)&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단 10:1-19)&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스도론(基督論, Christology)은 성경 전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발견하는 공부다. 다니엘서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네 가지 모습으로 예표(豫表, type)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 제7장에서는 인자 같은 이, 제9장에서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제10장과 제12장에서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가 그것이다. 앞의 세 모습은 이미 살펴보았고 이제 마지막으로 네 번째 모습을 살펴볼 차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문제는 구약 시대에 그리스도가 존재하셨지만 아직 사람들에게 독립된 위격으로 나타나 활동하지 않으셨다는 데 있다. 그런데 많은 신학자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나타난 천사, 여호와의 천사, 창세기 1장의 복수 표현, 풀무불 속의 넷째 존재까지를 &amp;#39;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 이전의 그리스도&amp;#39;라고 해석해 왔다. 이러한 해석 때문에 한 분 하나님과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y)를 이해하는 데 혼란이 생겼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다니엘서 10장 5-6절에 나오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누구인가? 우선 그분은 매우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왜냐하면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고, 몸은 황옥 같았으며, 얼굴은 번갯빛 같고, 눈은 횃불 같으며, 팔과 발은 빛난 놋 같고,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다. 이 모습은 요한계시록 1장에서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았다(단 10:5-6; 계 1:13-1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지만 같은 힛데겔 강가의 환상(幻像, vision)의 끝부분인 다니엘서 12장에도 세마포 옷을 입은 이가 또 한 번 나온다. 그는 강물 위에 서서 두 손을 하늘로 들고 영원히 살아 계신 이를 가리켜 맹세한다.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께 맹세하는 높은 천사인가, 아니면 아직 성육신하지 않은 아들이 아버지께 맹세하는 것인가, 아니면 제10장과 제12장에 서로 다른 존재가 같은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인가. 이 질문을 해결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예표를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환상을 풀기 위해서는 외형 한두 가지를 보고 성급히 정체를 확정해서는 안 된다. &amp;#39;흰옷&amp;#39;(흰 겉옷)은 예수님도 입으시고(마 17:2) 천사도 입으며(막 14:5, 눅 24:4, 행 1:10), &amp;#39;많은 물소리&amp;#39;는 하나님(겔 43:2)과 그리스도(계 1:15)와 천사 무리(계 19:6)와 네 생물의 날개짓 소리(겔 1:24)에게도 사용된다. 그러므로 흰 옷을 입은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제10장과 제12장을 하나의 큰 환상으로 읽되, 각 존재가 서 있는 위치와 하는 말과 행동, 누구에게 질문하고 누구를 가리켜 맹세하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우선 무엇보다 구약 시대에&lt;strong&gt;&amp;nbsp;하나님은 한 분으로 나타나 일하셨다는 사실을 첫 번째 해석 열쇠&lt;/strong&gt;로 붙들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등장하는 존재들을 구별하고, &amp;lsquo;인자 같은 이(단 10:16)&amp;rsquo;의 번역이 낳은 혼란과 세마포 옷&amp;middot;금띠&amp;middot;많은 물소리의 의미를 살피며, 다니엘서 10장과 12장의 긴장을 한 분 하나님이라는 진리로 어떻게 풀어 가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는 어떤 존재들이 등장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제10장부터 제12장까지는 서로 분리된 여러 환상이 아니라 힛데겔 강가에서 본 하나의 큰 환상이다. 다니엘은 장차 일어날 큰 전쟁에 관한 말씀을 받았고 그 뜻을 깨달았다(단 10:1). 이 환상은 바사와 헬라의 충돌만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백성을 둘러싸고 벌어질 영적 전쟁과 종말의 사건까지 내다본다. 제10장은 환상의 서론에 해당하고, 제11장은 전쟁의 전개, 그리고 제12장은 마지막 때와 끝을 다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 번째로 눈에 띄는 존재는 세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 우바스 순금 띠를&amp;nbsp;&lt;/strong&gt;&lt;span style=&quot;box-sizing:border-box;margin:0;padding:0;text-align:left&quot;&gt;&lt;strong&gt;띤&lt;/strong&gt;다&lt;/span&gt;(단 10:5-9). 다니엘은 그를 보자 힘이 빠지고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했으며 아무 힘도 남지 않았다. 그의 모습은 평범한 인간이나 일반 천사의 모습으로만 보기 어려울 만큼 장엄하다. 그래서 많은 해석자들은 그를 &amp;#39;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amp;#39;라고 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어 &lt;strong&gt;두 번째로 환상을 설명하는 천사&lt;/strong&gt;가 등장한다(단 10:10-15). 그는 다니엘이 기도한 첫날부터 그 말이 응답되었지만 바사 왕국의 군주가 세 이레 동안(21일간) 막았고,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도우러 왔다고 말한다(단 10:12-13). 그리고 이어 바사와 헬라의 군주, 남방 왕과 북방 왕의 전쟁, 마지막 환난과 부활을 설명한다. 제8장에서 가브리엘이 숫양과 숫염소의 환상을 해석해 주었듯이, 제10장 이후의 긴 설명자도 가브리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본문이 모든 대목에서 이름을 반복해 밝히지는 않으므로 이는 문맥에 따른 추정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세 번째로 사람의 모습을 한 존재들&lt;/strong&gt;이 다니엘에게 힘을 준다(단 10:16-19). 제10장 16절에는 &amp;#39;사람의 아들들의 모양 같은 이&amp;#39;가 다니엘의 입술을 만지고, 제18절에는 &amp;#39;사람의 모양 같은 이&amp;#39;가 다시 그를 만져 힘을 준다. 우리말 번역만 보면 제7장의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와 같은 표현처럼 보이지만 원문의 구조는 조금 다르다. 그렇다면 이들을 세마포 옷을 입은 이와 같은 존재로 볼 것인가? 아니면 설명자와 보조 천사들로 볼 것인지에 따라 등장인물의 수가 달라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네 번째로 미가엘이 이름을 가지고 등장&lt;/strong&gt;한다(단 10:13, 21; 12:1).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돕는 큰 군주이며, 마지막 환난의 때에도 백성을 위하여 일어나는 천사장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다섯 번째로 제12장 5절에는 강 이쪽 언덕과 저쪽 언덕에 각각 서 있는 두 사람&lt;/strong&gt;이 나온다(단 12:5-6). 천사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으므로 이 두 사람도 높은 천사들로 보아야 한다. 문맥상 가브리엘과 미가엘일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 역시 확정이 아니라 추정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마지막으로 강물 위쪽에 &amp;#39;세마포 옷을 입은 이&amp;#39;가 나타난다(단 12:6-7)&lt;/strong&gt;. 두 사람 중 하나가 그에게 놀라운 일의 끝이 언제인지를 묻고, 그는 두 손을 들어 영원히 살아 계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며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말한다(단 12:6-7). 이 존재는 질문하는 두 천사보다 높은 위치에 있지만 자신보다 높은 영원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한다. 바로 이 장면이 제10장의 세마포 옷을 입은 이와 동일한 존재인지를 어렵게 만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환상 속 존재들을 한 사람으로 뭉뚱그려서는 안 된다. 세마포 옷을 입은 이, 환상을 해설하는 천사, 다니엘을 만져 주는 사람 모양의 존재, 미가엘, 강 양쪽의 두 사람, 영원히 살아 계신 이를 각각 구별해야 한다. 누가 보여 주고 누가 설명하며 누가 질문하고 누가 맹세하는지를 살필 때 정체에 가까이 갈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의 번역은 해석에 어떤 혼란을 일으켰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제7장의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와 제10장의 &amp;#39;사람 모양 존재들&amp;#39;을 같은 표현으로 생각하면 환상 전체가 뒤섞인다. 제7장 13절의 표현은 하늘 구름을 타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는 &amp;lsquo;사람의 아들 같은 이&amp;rsquo;를 가리킨다. 그는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아 모든 백성과 나라와 언어가 그를 섬기게 하며, 그의 권세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단 7:13-14). 이는 장차 죽고 부활하여 영광을 얻으실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확실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제10장 16절의 표현은 제7장과 같지 않다. 원문의 뜻을 살리면 &lt;strong&gt;&amp;lsquo;사람의 아들들의 모양 같은 이&lt;/strong&gt;&amp;rsquo; 또는 &amp;lsquo;사람의 아들들의 형상을 가진 이&amp;rsquo;에 가깝다. 어떤 한 분을 고유하게 가리키는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라기보다 &lt;strong&gt;사람의 모습을 취한 존재&lt;/strong&gt;를 말하는 것이다. 천사는 영적 존재지만 사람 앞에 나타날 때 청년이나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제10장 18절도 똑같은 문장이 아니다. 여기에는&lt;strong&gt; &amp;lsquo;사람의 모양 같은 이&amp;rsquo;&lt;/strong&gt;가 다시 다니엘을 만졌다고 되어 있다. 16절의 존재와 18절의 존재가 같은지, 서로 다른 천사인지, 앞에서 말한 설명자와 같은지는 문맥을 더 살펴야 한다. 그런데 번역에서 모두 비슷하게 &amp;lsquo;인자 같은 이&amp;rsquo; 또는 &amp;lsquo;사람의 모양 같은 이&amp;rsquo;로 처리하면, 독자는 자동으로 한 존재라고 생각하거나 모두 그리스도라고 단정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번역의 작은 차이는 등장인물의 수를 바꾼다. 어떤 해석자는 세마포 옷 입은 이(단 10:5-6)와 입술을 만진 이(단 10:16)와 몸을 만진 이(단 10:10)를 모두 같은 존재로 본다. 다른 해석자는 세마포 옷 입은 이, 가브리엘, 두 보조 천사처럼 각각 다른 존재로 나눈다. 또 어떤 이는 제10장의 세마포 옷 입은 이는 그리스도이고 나머지는 천사라고 본다. 본문의 원어 표현을 구별하지 않으면 어느 견해를 선택해도 확신하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제3장의 풀무불 사건에서도 같은 주의가 필요하다. 느부갓네살은 불 가운데 다니는 넷째의 모양이 &amp;lsquo;신들의 아들&amp;rsquo;과 같다고 말했다(단 3:25). 이 표현만 보고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같은 장 28절에서 느부갓네살은 하나님께서 &amp;lsquo;그의 천사를 보내사&amp;rsquo; 세 사람을 구원하셨다고 직접 해석한다. 그러므로 사람이나 신들의 아들과 같은 모습이 곧 그리스도라는 뜻은 아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단 3:28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비슷한 우리말만 보지 말고 원문의 표현과 같은 문단 안의 해설을 함께 보아야 한다. &lt;strong&gt;&amp;lsquo;사람 같다&amp;rsquo;, &amp;lsquo;사람의 아들 같다&amp;rsquo;, &amp;lsquo;인자 같다&amp;rsquo;는 말이 모두 같은 신분을 뜻하지 않는다&lt;/strong&gt;. &lt;strong&gt;천사가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날 수 있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습이 환상으로 미리 보일 수도 있다&lt;/strong&gt;. 표현 하나를 붙들고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세마포 옷과 우바스 금띠는 어떤 신분을 나타내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이 넷째 환상 가운데 본 존재는 세마포 옷을 입고 있었다(단 10:5-6; 12:6-7). 세마포는 희고 깨끗한 옷으로 거룩함과 영광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본래의 영광을 잠시 드러내셨는데,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마 17:1-2). 필자가 만난 예수님도 흰 통옷을 입고 계셨다. 그러므로 흰 세마포는 예수님의 거룩한 영광과 잘 어울린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7: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흰 겉옷만으로 그를 예수님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 부활의 아침에 예수님의 무덤 안에는 흰옷을 입은 한 청년이 앉아 있었고, 누가복음은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막 16:5-6; 눅 24:4).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에도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제자들 곁에 서서 그분이 다시 오실 것을 말했다(행 1:10-11). 그런데 이들 모두는 천사들이다. 천사도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여 흰 옷이나 빛나는 옷을 입고 나타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세마포 옷보다 더 주목할 만한 표지는 바로 &amp;#39;우바스의 순금 띠&amp;#39;다. 다니엘서 제10장의 존재는 허리에 순금 띠를 띠고 있고, 요한계시록 제1장의 인자 같은 이도 역시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다. 금띠는 단지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왕의 권위와 승리한 자의 영광을 나타낸다. 금관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싸움에서 이기고 통치권을 받은 왕의 복장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에서 천사가 흰옷을 입은 장면은 여러 번 나오지만, 천사가 왕의 승리를 상징하는 금띠를 띠었다는 기록은 찾기 어렵다.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피조물이며 자기 사명을 완수하기 때문에 왕이 되거나 면류관을 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반면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셔서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고, 죄와 사망과 마귀를 이기셨기 때문에, 만왕의 왕으로 등극하셨고, 보좌에 앉으셨다(빌 2:6-11; 계 19:1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몸이 황옥 같고 얼굴이 번갯빛 같으며 눈이 횃불 같다는 묘사는 그분의 영광과 감찰의 권세를 보여 준다. 불꽃 같은 눈은 사람의 외모만 보지 않고 마음과 행위를 꿰뚫어 심판(審判, judgment)하는 눈이다. 또한 팔과 발이 빛난 놋 같다는 것은 손으로 붙들고 발로 밟아 악을 심판하는 권세를 나타낸다. 이 모든 표지는 부활하여 전능한 통치자와 심판주가 되신 예수님과 매우 가까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한 가지 표지로 정답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 자신의 말씀을 대신 말하게 하고 심판을 집행하게도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의해 소돔과 고모라에 파송된 두 천사가 그 성들을 심판했다. 그리고 창세기 22장과 출애굽기 3장을 보면, 여호와의 천사가 하나님의 일인칭 말씀을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전달하기도 한다(창 22:15, 출 3:2). 위임받은 천사가 하나님의 권세를 나타내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으므로 옷과 빛만이 아니라 그가 누구에게 말하고 누구를 가리켜 맹세하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그의 모습은 요한계시록 1장의 그리스도와 어떻게 닮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다니엘서 제10장에 나타난 우바스 정금 띠로 띠었던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누구인가? 우리는 이 모습과 가장 가까운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하나의 본문은 또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요한계시록 제1장에 나오는 이시다. 사도 요한은 일곱 금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는 것을 보았다. 머리와 털은 흰 양털과 눈같이 희고, 눈은 불꽃 같으며,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았다.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았다(계 1:12-1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단 10:5-6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두 본문의 평행은 매우 분명하다. 세마포 또는 발에 끌리는 옷, 허리나 가슴의 금띠, 번갯빛과 해 같은 얼굴, 횃불과 불꽃 같은 눈, 빛난 놋과 단련한 주석 같은 팔과 발, 무리의 소리와 많은 물소리 같은 음성이 서로 대응한다. 다니엘도 그랬고 요한도 그랬듯이, 그들은 그 존재 앞에서 힘을 잃고 죽은 자처럼 엎드렸으며, 그때 그 존재는 손을 대어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했다(단 10:8-12; 계 1: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요한계시록 제1장에서는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계셨던 &amp;#39;인자 같은 이&amp;#39;가 누구인지 본문이 분명히 밝힌다. 그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며 살아 있는 자다. 그리고 전에 죽었으나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이라고 말씀한다(계 1:17-18). 그런데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 사이를 거니시는 이는 부활하고 승리하여 영광을 얻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분이 예수님이신 것은 분명하다.(계 2:1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천상에 계신 예수님은 사복음서에서 고난받으시던 예수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예수께서 육신으로 사명을 수행하실 때에는 아직 금띠와 왕관을 얻은 승리자의 모습이 전면에 보이지 않았다. 겟세마네에서 자기 뜻을 꺾고 아버지께 순종했으며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명을 완수하신 뒤에야 예수께서는 높임을 받으셨다. 금띠는 그 승리와 왕권을 나타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때문에 다니엘서 제10장의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직 성육신하지 않은 시점인데도 다니엘은 훗날 죽고 부활하여 영광을 얻으실 그리스도의 천상 모습을 미리 본 것처럼 보인다. 다니엘서 제7장에서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 영원한 나라를 받는 미래의 장면을 보았듯이, 제10장에서도 미래에 완성될 영광을 환상으로 앞당겨 보았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amp;lsquo;미래의 그리스도를 환상으로 보았다&amp;rsquo;는 것과 &amp;lsquo;성육신 이전의 아들이 실제로 다니엘 앞에 나타나 활동했다&amp;rsquo;는 말은 확실히 다르다. 다윗이 시편에서 장차 높임받을 주를 미리 보았고, 다니엘이 미래의 인자를 보았다고 해서 구약 시대에 아들이 아버지와 별개의 모습으로 계속 활동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 차이를 구별해야 한 분 하나님과 성육신의 비밀을 지키며 설명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흰옷과 많은 물소리만으로 그의 정체를 확정할 수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흰 옷을 입은 이의 음성으로 들린 &amp;#39;많은 물소리&amp;#39;는 어떠한가? 이것은 위엄과 압도적인 권세를 나타내지만, 하나님에게만 사용되는 고유한 표현은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첫째, 에스겔은 동쪽에서 오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그분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다고 했다(겔 43:2). 이 경우 많은 물소리는 &lt;strong&gt;하나님의 음성&lt;/strong&gt;이다. 온 땅이 그 영광으로 빛났으므로 창조주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겔 43: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둘째, 에스겔 제1장에서는 &lt;strong&gt;네 생물이 움직일 때 그 날개 소리&lt;/strong&gt;가 많은 물소리와 전능자의 음성과 군대의 소리 같다고 했다(겔 1:24). 네 생물은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받드는 천상 존재들이다. 그들의 수많은 날개가 함께 움직이면 하나님의 음성처럼 장엄한 소리가 난다. 여기에서는 &lt;strong&gt;천상 생물들의 소리&lt;/strong&gt;가 많은 물소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도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제1장에서는 부활하신 &lt;strong&gt;예수님의 음성&lt;/strong&gt;이 많은 물소리와 같다고 했다(계 1:15). 제19장에서는 &lt;strong&gt;허다한 무리&lt;/strong&gt;가 많은 물소리와 큰 우레소리 같은 소리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통치를 찬양하고 있다(계 19:6). &lt;strong&gt;그러므로 많은 물소리만으로 하나님인지 그리스도인지 천사 무리인지 결정할 수 없다. 말하는 주체와 문맥을 함께 보아야&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이러한 판단은 &lt;strong&gt;흰옷(흰 겉옷)의&amp;nbsp;&lt;/strong&gt;&lt;span style=&quot;box-sizing:border-box;margin:0;padding:0;text-align:left&quot;&gt;&lt;strong&gt;경우&lt;/strong&gt;에도&lt;/span&gt;&amp;nbsp;마찬가지다. 예수님의 변화된 옷은 빛과 같이 희었지만(마 17:2), 부활의 무덤과 승천의 현장에 나타난 천사들도 흰옷을 입었다(막 14:5, 눅 24:4, 행 1:10). 얼굴의 빛과 놋 같은 발도 하나님께 권세를 위임받은 천사에게 부분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천사는 자기 권세로 심판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심판의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lt;strong&gt;천사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일인칭으로 &lt;/strong&gt;말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할 때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 그를 불러 막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했다(창 22:11-18). 그 천사가 하나님처럼 말한다고 해서 천사 자신이 여호와이거나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인 것은 아니다. 보냄받은 자가 보내신 분의 권위로 말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천사와 귀신은 어디까지나 피조물이므로 전지(全知, omniscience)하지 않다. 그들은 사람의 행동과 눈빛과 반복되는 선택을 오래 관찰하여 우리 인간의 마음을 추측할 뿐, 마음 자체를 꿰뚫어 볼 수는 없다. 특히 악한 영은 한 집안에서 음란과 혈기와 교만 같은 약점이 어떻게 되풀이되는지를 지켜본 뒤 그 지점을 공격한다. 높은 계급의 귀신일수록 인간을 오래 관찰했기에 더 많은 것을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전지성이 아니라 축적된 관찰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은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으로서(시 7:9; 잠 21:2, 렘 11:20, 살전 2:4), 불꽃 같은 눈을 지니신 그리스도(계 2:23)와 생명 주는 영으로 오신 성령이시다(행 5:3, 9). 그러므로 귀신이 내 마음을 다 안다고 해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내 안에 계신 전능자를 믿고, 회개(悔改, repentance)하여 악한 영의 통로를 닫으면서 담대히 맞서면 된다. 세마포 옷을 입은 이의 불꽃 같은 눈도 이러한 하나님의 감찰과 심판의 권세를 생각하게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따라서 &lt;strong&gt;세마포 옷, 번갯빛 얼굴, 불꽃 같은 눈, 놋 같은 팔과 발, 많은 물소리는 흰옷을 입은 이가 누군지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단서지만 각각만으로는 결정적인 증거가 아니다&lt;/strong&gt;. 그런데 제10장에서 가장 강한 그리스도적 표지는 승리한 왕의 우바스 금띠이며, 제12장에서 가장 강한 천사적 표지는 영원히 살아 계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는 행동이다. 두 단서를 함께 놓아야 환상의 긴장과 더불어 실체가 보인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다니엘서 10장과 12장의 세마포 옷 입은 이는 같은 존재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제10장과 제12장은 다니엘이 보았던 넷째 환상으로서, 같은 힛데겔 강가 환상의 앞과 뒤다. 두 곳 모두 &amp;lsquo;세마포 옷을 입은 이&amp;rsquo;가 나온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표현은 그들이 같은 존재라고 보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워 보인다. 제10-11장에서는 흰옷을 입은 이가 환상을 보여 주고 있고, 가브리엘이 그 내용을 해설하고 있으며, 제12장에서 다시 그가 나타나 환상의 끝을 확정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읽으면 &lt;strong&gt;&amp;#39;세마포 옷을 입은 이&amp;#39;는 환상의 주권자&lt;/strong&gt;이고&lt;strong&gt; &amp;#39;가브리엘과 미가엘&amp;#39;은 그를 섬기는 천사들&lt;/strong&gt;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제12장의 행동은 제10장의 외형과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강 양쪽에 서 있는 두 사람 중 하나가 강물 위쪽의 세마포 옷을 입은 이에게 놀라운 일의 끝이 언제인지 묻는다. 그는 좌우 손을 하늘로 들고 영원히 살아 계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며,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지나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진 뒤 모든 일이 끝날 것이라고 말한다(단 12:5-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단 12:7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언제나 맹세하는 이는 맹세의 대상보다 아래에 있다. 고로 가브리엘이나 미가엘로 추정되는 두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하고 있다면, 강물 위쪽에 있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그들보다 높은 계급의 천사일 수 있다. 그러나 이 흰옷 입은 이가 하늘의 영원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한다면 그 자신이 영원하신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 장면만 보면 &lt;strong&gt;제12장의 세마포를 입은 이는 높은 계급의 천사&lt;/strong&gt;로 보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lt;strong&gt;제10장과 제12장의 존재를 서로 다르게 볼 수도&lt;/strong&gt; 있다. &lt;strong&gt;제10장에서는 미래의 영광스러운 그리스도를 환상으로 보여&lt;/strong&gt; 주고, &lt;strong&gt;제12장에서는 비슷한 세마포 옷을 입은 고위 천사가 종말의 기간을 맹세했다&lt;/strong&gt;고 해석할 수 있다. 세마포 옷은 그리스도만의 전유물이 아니므로 같은 복장만으로 동일 인물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반대로 &lt;strong&gt;같은 존재로 본다면 &amp;lsquo;영원히 살아 계신 이를 가리켜 맹세했다&amp;rsquo;는 말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가 남는다.&lt;/strong&gt;&amp;nbsp;구약 시대에도 아버지와 아들이 두 분처럼 동시에 나타나 서로 대화했다고 보면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구약의 한 분 하나님이라는 계시와 충돌한다. 아직 성육신하지 않은 아들이 다니엘 앞에 별도로 나타나 아버지를 향하여 맹세했다는 해석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이 본문에 나오는 &amp;#39;한 때와 두 때와 반 때&amp;#39;는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가 말하는 7년 대환난을 직접 말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다니엘 12장에 나오는 세마포 옷 입은 이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에 대해서만 말할 뿐이기 때문이다(단 12:7). 그런데 &amp;#39;한 때와 두 때와 반 때&amp;#39;는 &amp;#39;때&amp;#39;를 일 년으로 계산한다면, 3년 반을 가리킨다. 이는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 마흔두 달과 1,260일도 같은 3년 반을 가리킨다고 하겠다(계 11:2-3; 12:6, 14; 13:5).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는 아예 7년이라는 말이 안 나온다.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은 다니엘서 제9장의 마지막 한 이레를 약 2천 년 뒤로 옮겨서 7년 대환란이라는 시간표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것은 작위적인 해석이며 만들어진 말이다.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환상의 정체와 기간을 모두 본문 자체에서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이번 첫 시간에는 제10장과 제12장의 세마포 옷 입은 이를 두고, 반드시 같은 존재라고, 혹은 반드시 다른 존재라고도 성급히 확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제10장의 그리스도적 영광과 제12장의 천사적 행동을 모두 보존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 &amp;#39;한 분 하나님&amp;#39;이라는 첫 열쇠 외에 다른 해석 열쇠를 적용하므로, 이 두 장면이 어떻게 하나로 풀리는지를 더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한 분 하나님이라는 진리는 왜 이 환상을 푸는 열쇠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의 계시는 항상 분명하다. 그중에서도 &lt;strong&gt;하나님이 오직 한 분이심을 항상 그리고 분명히 선포&lt;/strong&gt;한다. 여호와 이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고 이후에도 없으며, 여호와 외에 구원자가 없다(사 43:10-11). 이는 구약 시대에 아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lt;strong&gt;독생하신 하나님은 아버지 품속에 계셨지만 아직 육신을 입고 사람들에게 나타나 사역하지 않으셨다&lt;/strong&gt;(요 1:18). 구&lt;strong&gt;약의 무대에서 자신을 계시(啓示, revelation)하고 일하신 분은 한 분 여호와 하나님&lt;/strong&gt;이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원칙을 놓치면 구약의 천사들을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라고 주장하게 된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 모세에게 나타난 천사, 여호와의 사자, 풀무불 속의 넷째 존재를 별개의 아들로 해석하고, 창세기 1장 26절의 &amp;ldquo;우리&amp;rdquo;를 곧바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대화로 확정한다. 그 결과 유대인은 기독교가 한 분 하나님이 아니라 세 신을 믿는다고 오해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별히 다니엘서 제3장은 이 원칙을 보여 주는 분명한 사례다. 느부갓네살은 넷째의 모양이 신들의 아들과 같다고 했지만 곧 하나님이 그의 천사를 보내셨다고 설명했다. &lt;strong&gt;다니엘서 3장에 나오는 천사는 사람이나 신적 존재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나 그는 성육신 이전의 예수님이 아니었다. 또한 하나님의 사자가 하나님의 말씀과 권세를 전달했다고 해서 그 사자 자체가 아들 하나님이 되는 것도 아니다.&lt;/strong&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특별히 마태복음 4장에 나오는 사탄에 의한 예수님의 시험받으심도 이 비밀을 뒷받침한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사탄은 &amp;ldquo;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amp;rdquo;이라고 물었다(마 4:3, 6). 구약 시대에 아들이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나타나 활동했다면 사탄이 그 존재를 모르고 확인하려 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救援, salvation)을 위하여 친히 아들로 오신 일은 감추어졌던 비밀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lt;strong&gt;오늘날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아들로 오셨고, 죽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뒤 생명을 주는 영으로 성도 안에 오셨다. 지금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lt;/strong&gt;다만 이 완성된 신약의 계시를 구약의 모든 천사 현현에 거꾸로 집어넣어 세 분이 늘 별도로 나타났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lt;strong&gt;구약 시대의 인물이나 선지자는 미래의 그리스도를 환상으로 미리 볼 수&lt;/strong&gt; 있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장차 자신의 주에게 오른편에 앉으라고 하시는 장면을 보았고, 다니엘은 인자 같은 이가 영원한 나라를 받는 미래를 보았다(시 110:1; 단 7:13-14). 그러므로 &lt;strong&gt;다니엘서 제10장의 모습이 부활 후 그리스도와 같다는 사실은 그가 미래의 영광을 앞당겨 보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성육신 이전의 아들이 그 현장에 별도로 서 있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lt;/strong&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한 분 하나님이라는 열쇠는 제10장의 그리스도적 모습과 제12장의 맹세 장면을 동시에 지켜 준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미래 영광을 보되 구약에서 두 하나님을 만들지 않아야 하고, 천사의 역할을 인정하되 그리스도의 예표를 지워서도 &lt;/strong&gt;안 된다. 이 첫 번째 열쇠 위에 다음 해석 열쇠를 더해야 세마포 옷 입은 이의 정체를 끝까지 풀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진리는 오늘의 신앙도 바로잡는다. 우리가 바라볼 예수님은 연약한 모습으로 십자가를 향해 가시던 분만이 아니라, 사명을 완수하고 금띠를 띠며 교회 사이를 거니시는 천상의 왕이시다. 그분은 교회의 촛대를 옮기고 미지근한 자를 토해 내겠다고 경고하시며 각 사람의 행위를 불꽃 같은 눈으로 살피신다(계 2:5; 3:16). 한 번 믿었다는 과거만 의지하지 말고 믿은 뒤 지은 죄를 날마다 회개하며 이기는 자로 준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등장하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와 여러 천상 존재의 정체를 분별하는 첫 번째 과정을 살펴보았다. 다니엘서 제10장부터 제12장은 마지막 큰 전쟁을 다루는 하나의 환상이지만, 세마포 옷 입은 이와 해설자와 사람 모양의 존재들과 미가엘과 강 양쪽의 두 사람을 구별해서 읽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제10장의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우바스 순금 띠와 번갯빛 얼굴과 횃불 같은 눈과 빛난 놋 같은 팔과 발을 지녔다. 그의 모습은 요한계시록 제1장의 부활하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거의 그대로 평행하게 보여준다. 특히 금띠는 천사의 흰옷과 구별되는 왕권과 승리의 표지다. 그러므로 그는 미래에 영광을 얻으실 그리스도를 강하게 예표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흰옷과 많은 물소리만으로 정체를 확정해서는 안 된다. 천사도 흰옷을 입고 나타나며, 많은 물소리는 하나님의 음성과 천상 생물의 날갯소리와 그리스도의 음성과 허다한 무리의 소리에 모두 사용된다. 제12장의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영원히 살아 계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므로 높은 천사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제10장과 제12장의 존재가 같은지 다른지는 다음 열쇠까지 적용하여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 번째 열쇠는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진리다. 구약에서 독생자는 아버지 품속에 계셨고 한 분 여호와께서 자신을 나타내셨다. 선지자가 미래의 영화로운 그리스도를 환상으로 보는 것과 성육신 이전의 아들이 실제로 별도로 활동했다는 주장은 구별해야 한다. 그래야 삼위일체를 믿으면서도 구약의 한 분 하나님을 바르게 고백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우리는 다니엘이 미리 본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불꽃 같은 눈으로 마음을 살피고 교회 가운데를 거니시는 주님 앞에서 믿은 뒤 지은 죄까지 회개하며, 끝까지 사명을 완수한 이기는 자로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한 분 하나님과 영광스러운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고 그분의 통치를 끝까지 따르며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17일(목)&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ChatGPT Image 2026년 9월 17일 오후 02_49_2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a4abdfdaf52fbb800cf6d9d0d13f5a0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c43fa0b376c71bdc0fce146b988c1d5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00e5fba05c1f0ef1f5123a7b4d63e89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09882a7b5084e38dc914c3f4c3c7234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328ce62bae1e24dfb7bcc338080c5fb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e24c6d74e2847f1ccc23f5b7fb0fd7c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58cd1def9e44b9c30b55df328b1bacc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301baed3c49a1e87ac3a35e918cbb9a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d4afa7050265198705c31e5d3ee009b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bbf97319c796bf017c0e4ebf9cfd826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0db7a794949326a3a7c733d7136a06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60c5ddc36266d5aee149155d67e8fc5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6e3148430b6b89e3939ff7f4a655ee9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The_Man_in_Linen_Mystery.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4b9cb7ab55e1dba2791a1f48989c0d6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다니엘서_세마포_인물_분석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1520a7cbfffbdf7d98dcb8629d3dfb2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다니엘서의_그리스도_예표_인포그래픽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8b5a442dc1eae4ad5cde2e9e43b257aa.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Daniel_s_Fourth_Chris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12de3b6d146bf8715a98317da50b744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Daniel_s_Fourth_Chris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0b21a135f298b23e74d8f2235055dc5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Daniel_s_Fourth_Chris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b05e8284f8c6fa9d8fed7ed2c4989a0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Daniel_s_Fourth_Chris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5ee10c12b3e8e80b9b14a7ebc25b1e8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Daniel_s_Fourth_Chris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4979844cc17b90ea9f04a2739d1a9f6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Daniel_s_Fourth_Chris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af5aa2767f7b877db1ed7ce0ac01b4f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Daniel_s_Fourth_Chris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c56fb15ecc20c78461660649bd19e39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Daniel_s_Fourth_Chris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b73d9e7ce9aac7b68ae588e621ed5b8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Daniel_s_Fourth_Chris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35e9a761276802e5a7ca7a93ad710e5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4)] Daniel_s_Fourth_Chris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3/266/723ad54b8e7f4e5384d40faad440a95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93)]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4) 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의 해석과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02)(단9:24~27)_2026-09-16(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266479"/>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266479#comment"/>		<id>https://dongtanms.kr/morning_qt/266479</id>
		<published>2026-09-16T08:30:02+09:00</published>
		<updated>2026-09-17T09:04:02+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93)]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4) 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의 해석과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02)(단9:24~2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YUm3zJD82MI [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7가지 질문] 1. 세대주의는 어떤 공헌과 오류를 함께 남겼는가? 2. 육적 이스라엘만 편드는 종말론은 왜 복음과 어긋나는가? 3. 144,000명과 온 이스라엘의 구원을 어떻게 이해해야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 &lt;strong&gt;[기독론(193)]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4) 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의 해석과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02)&lt;/strong&gt;&lt;/span&gt;(단9:24~2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YUm3zJD82MI&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YUm3zJD82MI?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br /&gt; 1. 세대주의는 어떤 공헌과 오류를 함께 남겼는가?&lt;br /&gt; 2. 육적 이스라엘만 편드는 종말론은 왜 복음과 어긋나는가?&lt;br /&gt; 3. 144,000명과 온 이스라엘의 구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lt;br /&gt; 4. 70이레를 그리스도 중심의 연속된 기간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는?&lt;br /&gt; 5. 7년 평화조약과 환난 전 휴거 해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lt;br /&gt; 6. &amp;lsquo;하나님의 성전&amp;rsquo;은 왜 물질적인 제3성전만을 뜻하지 않는가?&lt;br /&gt; 7. 종말을 준비하는 교회가 세워야 할 성전과 싸울 대상은 무엇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p&gt; &lt;p&gt;이 설교는 다니엘서의&amp;nbsp;&lt;strong&gt;70이레&lt;/strong&gt;&amp;nbsp;예언을 중심으로&amp;nbsp;&lt;strong&gt;세대주의적 종말론&lt;/strong&gt;의 한계를 지적하며 성경의 바른 해석 방향을 제시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세대주의가 성경 읽기를 대중화하고 선교 열정을 고취한 공로가 있으나, 마지막 한 이레를 미래로 유예하여&amp;nbsp;&lt;strong&gt;적그리스도와 유대인&lt;/strong&gt;&amp;nbsp;중심의 교리를 만든 것은 성경적 근거가 부족한 자의적 해석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제3성전 건립이나 이스라엘에 대한 맹목적 지지보다는, 모든 민족을 향한&amp;nbsp;&lt;strong&gt;회개와 천국 복음&lt;/strong&gt;이 신약의 핵심 경륜임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물질적 성전 회복에 집착하기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amp;nbsp;&lt;strong&gt;영적 성전&lt;/strong&gt;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철저한 회개를 통해 천국 입성을 준비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93)&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4)&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의 해석과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0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단 9:24-27)&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9장의 70이레는 성경의 종말론(終末論, eschatology)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예언이다. 이 예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스라엘과 교회의 관계, 마지막 한 이레의 주인공, 환난과 휴거의 순서, 예루살렘 성전(聖殿, temple)의 재건 여부까지 달라진다. 여기에서 대체 신학(代替神學, replacement theology)과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라는 서로 다른 신학적 흐름도 갈라진다. 그러므로 70이레는 날짜를 계산하는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救援, salvation)의 경륜을 밝히는 말씀으로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대주의는 19세기 존 넬슨 다비(A.D.1800-1882)에 의해 체계화된 뒤 미국 교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A.D.1909년 스코필드 관주성경 발간은 방대한 주석을 따로 구입하기 어려웠던 평신도에게 성경 해석의 기본 틀을 제공했고, 임박한 재림(再臨, second coming)을 강조하여 수많은 사람을 선교에 헌신하게 했다. 한국 교회도 그 열매를 크게 누렸다.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들의 수고와 세대주의가 일으킨 선교 열정까지 부정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공헌이 있다고 해서 모든 해석이 옳은 것은 아니다. 마지막 한 이레를 앞선 69이레에서 떼어 2천 년 뒤로 옮기고, 그 기간에 적그리스도(Antichrist)가 이스라엘과 7년 평화조약을 맺는다고 해석한 데서 여러 문제가 생겼다. 교회를 이스라엘의 시간표에 잠시 끼어든 존재로 보고, 환난 전에 교회 전체가 휴거되며, 예루살렘에는 반드시 제3성전이 세워져야 한다는 체계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그리스도께서 초림 때 이루신 새 언약(新約, new covenant)과 속죄(贖罪, atonement)보다 미래의 적그리스도와 물질적 성전에 시선이 쏠리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의 중심은 육적 이스라엘도, 적그리스도도, 날짜 계산도 아니다.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다. 하나님은 유대인뿐 아니라 모든 민족이 회개(悔改, repentance)하고 복음을 받아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신약 시대의 성전은 먼저 예수님의 몸이며, 이어 성령을 모신 교회와 성도이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 어린양 자신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세대주의의 공헌과 오류를 함께 분별하고, 육적 이스라엘과 144,000명에 대한 문자적 해석의 한계를 살피며, 70이레와 7년 평화조약과 제3성전의 문제를 그리스도 중심으로 바로잡고, 마지막 시대 교회가 세워야 할 성전과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세대주의는 어떤 공헌과 오류를 함께 남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대주의가 인류에게 공헌한 것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공헌은 평신도라도 누구든지 성경을 읽고 해석하도록 도움을 주었다는 것&lt;/strong&gt;이다. 스코필드 이전에는 주석이 백과사전처럼 여러 권으로 되어 있어 목회자나 부유한 사람만 소유하기 쉬웠다. 그러나 관주성경은 성경 본문 아래에 해석과 시대 구분을 붙여 놓았다. 평신도도 성경을 펼쳐 해당 구절의 의미와 관련 성구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성경 읽기를 목회자에게만 맡기지 않고 모든 성도에게 확대한 것은 분명한 유익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공헌은 재림의 긴박성과 선교의 열정을 일깨운 것&lt;/strong&gt;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가능한 한 빨리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 때문에 의사와 교사와 선교사들이 낯선 나라로 들어갔다.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도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복음을 전하여 이 민족을 섬겼다. 오늘날 한국이 세계적인 선교 국가가 된 데에는 그 헌신의 열매가 들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lt;strong&gt;세대주의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지나치게 분리&lt;/strong&gt;했다. 하나님께서 육적 이스라엘을 위한 경륜을 따로 가지고 계시며, 교회는 그 계획 사이에 잠시 삽입된 존재라고 보았다. 메시아를 거절하여 멈춘 이스라엘의 시계가 교회의 휴거 뒤 다시 움직이고, 마지막 7년에는 하나님께서 다시 유대 민족을 중심으로 일하신다고 규정한다. 이 틀을 유지하려면 70이레의 69이레와 마지막 한 이레 사이에 본문이 말하지 않은 약 2천 년의 공백을 넣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세대주의는 &lt;strong&gt;구약의 이스라엘과 예루살렘과 성전에 관한 예언을 미래에 문자적으로 성취해야 한다고 주장&lt;/strong&gt;한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제3성전이 세워지고, 유대인들이 다시 제사를 드리며, 이방 민족들이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가야 한다고 본다. 다니엘서 9장 27절의 한 이레를 적그리스도의 7년으로 바꾸고,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불법한 자를 그 성전 안에 앉히면서 하나의 종말 시간표가 완성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해석은 성도의 관심을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일보다 미래의 정치와 전쟁에 집중시킨다. 예수께서 한 이레의 절반에 끊어지심으로 죄를 속죄하고 희생제사를 그치게 하신 사건이, 적그리스도가 조약을 깨고 제사를 금지하는 사건으로 바뀐다. 성도는 회개와 성결(聖潔)을 준비하기보다 이스라엘의 전쟁과 제3성전의 건축을 종말의 시계처럼 바라보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세대주의를 전부 악한 것으로 몰아붙여서도 안 되고, 그 공헌 때문에 오류까지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성경 보급과 선교의 열매에는 감사하되, 본문에 없는 공백과 시간표는 내려놓아야 한다. 사람이나 단체를 정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빗나간 중심을 바로 세우는 것이 목적이다. 신학은 성경을 돕는 도구여야 하며 성경 위에 서는 틀이 되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육적 이스라엘만 편드는 종말론은 왜 복음과 어긋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공생애 초기에 열두 제자를 보내시면서 이방인의 길로도, 사마리아인의 고을로도 가지 말고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다(마 10:5-6). 메시아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고, 율법과 언약과 예배와 약속을 받은 유대 민족 가운데 태어나셨다(롬 9:4-5).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적 역할과 그들에게 먼저 주어진 은혜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지만 예수께서는 가버나움의 백부장과 수로보니게 여인에게서도 큰 믿음을 보셨다(마 8:5-13; 15:21-28). 부활하신 뒤에는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하셨다(마 28:18-20). 베드로가 할례자 중심의 사역에 머물렀을 때에는 바울을 불러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다(갈 2:7-9). 하나님의 구원 경륜은 유대인에게서 시작되었지만 유대인에게만 갇히지 않았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자기 동족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했다.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육신의 동족이 돌아오기를 바랄 만큼 고통스러워했다(롬 9:1-5). 그러나 혈통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김을 받고,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받은 이면적 유대인이 참 유대인이다(롬 2:28-29; 9:6-8).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민족과 상관없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다(갈 3:28-2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귀한 사명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군사 행동을 옳다고 하고, 팔레스타인 사람과 무슬림의 죽음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사람의 생명도 귀하고 팔레스타인 사람의 생명도 귀하다. 우리 민족도 육적 혈통으로 보면 이방인이 아닌가! 신약시대에 이르러 하나님께서는 어느 민족이든 회개하고 진리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딤전 2: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하는 세대주의적인 종말론은 신앙을 육적인 전쟁으로 끌어 가려고 한다. 이스라엘이 이기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고 박수치고, 상대 민족이 죽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순간 복음의 보편성을 잃는다. 예수께서는 믿지 않는 사람을 죽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라고 하신 적이 없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박해를 가한 것이 아니라 박해를 받았고, 남을 죽인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구약의 예언들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일은 반드시 성취된다. 그러나 사람을 향한 예언은 언제나 그의 순종 여부에 따라 완성 여부가 결정된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말씀을 받고도 자기 민족을 괴롭힌 앗수르가 망하기를 바라며 다시스로 도망쳤다. 하나님은 그를 돌이켜 니느웨에 회개를 선포하게 하셨고, 그 성의 사람들이 돌이키자 재앙을 거두셨다(욘 1:1-3; 3:4-10).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원수까지 구원하기 원하셨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세워 일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혈통적 특권보다 믿음과 순종이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육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성도의 유일한 사명은 아니다. 교회가 받은 명령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끝까지 증인이 되고 모든 민족에게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행 1:8; 눅 24:47). 이스라엘도 이 보편적인 복음 안에서 구원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한 민족을 편애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새 사람으로 만드시는 분이다(엡 2:14-18).&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144,000명과 온 이스라엘의 구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 7장에는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가운데 인침을 받은 144,000명이 나온다. 그런데 세대주의는 이를 육적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각각 12,000명씩 나오는 문자적인 유대인 사명자로 본다. 교회가 환난 전에 휴거되고 나면, 이들이 마지막 7년 동안 세계에 복음을 전하며, 마침내 육적 이스라엘 전체를 구원으로 이끈다고 해석한다(계 7:4-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1년경 앗수르에 멸망하여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졌다. 오늘날 누가 르우벤 지파이며 누가 납달리 지파일 수 있겠는가? 그리고 혈통으로 정확히 열두 지파에서 똑같이 12,000명씩 뽑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요한계시록의 숫자와 지파 명단은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충만함과 완전한 질서를 보여 주는 영적 의미로 보아야 한다. 단순히 현대 이스라엘 국적이나 유대 혈통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 14장의 144,000명은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에 서 있고, 이마에 어린양과 아버지의 이름을 지니며, 사람 가운데서 속량되어 하나님과 어린양께 처음 익은 열매가 된 이들이다(계 14:1-5). 그들의 핵심 표지는 국적이 아니라 어린양을 따르는 믿음과 정결(淨潔)과 충성이다. 마지막 때 주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혈통 때문에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준비되어 어린양을 끝까지 따르기 때문에 선택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펴본 바에 따르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쓰실 144,000명의 사명자 가운데에는 한국인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성경의 문자를 한국 민족으로 바꾸자는 뜻이 아니다. 마지막 사명자의 범위를 육적 유대인에게만 가두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어느 민족에서든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충성하는 사람을 불러 쓰신다. 마지막 전쟁에 참여할 자는 교단과 혈통이 아니라 영적 준비 상태로 구별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로마서 11장의 &amp;ldquo;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amp;rdquo;는 말씀도 육적 유대인만 자동으로 모두 구원받는다는 뜻으로 좁혀서는 안 된다(롬 11:25-27). 유대인 가운데도 그리스도를 믿고 돌이키는 자가 구원받으며, 이방인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자가 하나님의 백성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는 조건은 혈통이 아니라 믿음이며, 꺾이는 이유는 불신앙이다(롬 11:17-2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을 아예 버렸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바울은 이방인 신자가 교만하지 말고 원가지를 향해 자랑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나님은 꺾인 가지도 믿지 아니함에 머물지 않으면 다시 접붙이실 수 있다(롬 11:18-24).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그들의 불신앙까지 언약의 특권으로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이방인도 같은 믿음과 회개로 들어왔으므로 두려움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144,000명과 온 이스라엘의 구원을 바르게 이해하면 교회의 시야가 넓어진다. 유대인을 사랑하되 모든 민족을 함께 품고, 마지막 사명을 특정 혈통에 맡긴 채 자신은 환난 전에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나 자신이 어린양을 따르는 정결한 첫 열매로 준비되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종말론은 다른 민족의 역할을 구경하게 하는 지식이 아니라 오늘 내가 충성된 사명자로 준비되게 하는 말씀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70이레를 그리스도 중심의 연속된 기간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는?&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리는 지금까지 몇 시간을 통하여 다니엘의 70이레를 바르게 해석하는 기준을 살펴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그중에 첫 번째 기준은 그리스도 중심&lt;/strong&gt;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니엘서 9장 24절은 허물을 마치고 죄를 끝내며 죄악을 속죄하고 영원한 의를 드러내며 환상과 예언을 성취하고 지극히 거룩한 것에 기름을 붓는 일을 말한다. 그런데 고레스와 아닥사스다 왕 그리고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모두 포로 귀환과 성전 및 성벽 재건에 쓰임받았지만 인류의 죄를 영원히 없애지는 못했다. 고로 이 여섯 가지 항목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것이다(단 9:24; 히 9:11-1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기준은 70&amp;times;7이라는 수에 담긴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의 구조&lt;/strong&gt;다. 하나님은 일곱째 해에 땅을 쉬게 하고 동족의 빚을 면제하며 종을 놓아 주라고 하셨다(레 25:2-7; 신 15:1-18).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난 49년 다음 해에는 희년의 나팔을 불어 자유를 선포하고, 팔린 기업을 되돌리며, 각 사람이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셨다(레 25:8-13). 490년은 희년의 49년을 열 번 품은 기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의 실체로 오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에게 안식을 주고, 죄의 빚을 탕감하며, 사탄에게 눌린 자를 풀어 주고, 잃어버린 하늘의 기업과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셨다(마 11:28; 눅 4:18-21). 그러므로 70이레는 적그리스도가 활동할 시기를 계산하는 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해방을 이루시는 구속의 시간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기준은 7이레와 62이레와 1이레를 연속된 기간으로 보는 것&lt;/strong&gt;이다. 본문 어디에도 69이레 뒤에 시간이 멈추고 2천 년의 교회 시대가 삽입된다는 말이 없다. 7이레와 62이레 뒤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나타나고, 이어지는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에 그가 끊어짐을 당하며 희생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한다(단 9:25-27). 이 세 구간은 한 예언 안에서 이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거꾸로 계산하면 연대도 자연스럽게 풀린다. 기원전 457년 아닥사스다 왕 제7년에 에스라가 귀환하여 백성을 말씀으로 돌이켰고, 뒤이어 느헤미야가 와서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했다(스 7:7-10; 느 2:1-8). 그때부터 7이레와 62이레가 지나 주후 27년경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받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마 3:13-17; 행 10:38).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인 약 3년 반 뒤에 주후 30년경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끊어짐을 당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신의 피를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하셨다(마 26:28). 그분이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 반복하던 희생제사와 예물은 효력을 다하고 그치게 되었다(히 10:10-14). 그러므로 다니엘서 9장 27절의 &amp;lsquo;그&amp;rsquo;는 많은 사람과 새 언약을 굳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석해야 한다. 뒷부분의 황폐하게 하는 자는 그리스도와 대조되는 별개의 존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70이레를 연속된 기간으로 보면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으로 한 예언은 초림하신 그리스도와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을 향해 마무리된다. 그 뒤 복음의 문은 모든 민족에게 활짝 열렸다. 이스라엘의 역사적 의미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진 약속의 실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것이다.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께 속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이자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가 된다(갈 3:29).&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7년 평화조약과 환난 전 휴거 해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성경에는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lt;strong&gt;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amp;lsquo;7년 평화조약&amp;rsquo;을 맺는다고 하는 문장이 없다&lt;/strong&gt;. 다니엘서 9장 27절은 그가 한 이레 동안 많은 사람과 언약을 굳게 한다고 말할 뿐이다. 그런데 &amp;lsquo;한 이레&amp;rsquo;를 7년으로 계산한 뒤 그 주체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적그리스도로 바꾸고, &amp;lsquo;언약&amp;rsquo;을 정치적인 평화조약으로 바꾸면서 7년 평화조약이라는 교리가 만들어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여기에다가 데살로니가후서 2장이 결합되었다. 바울은 주의 날 전에 배교하는 일이 있고,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 자신을 높이며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울 것이라고 했다(살후 2:1-4). 세대주의는 이 불법한 자를 다니엘서 9장 27절의 &amp;lsquo;그&amp;rsquo;와 동일시하고, 그가 유대인에게 성전을 지어 주겠다고 약속하기 때문에 평화조약을 맺는다고 추론했다. 3년 반 뒤에는 조약을 깨고 그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한다는 시간표가 완성되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살후 2:1-4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영이나 또는 말이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에는 1,260일과 마흔두 달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나온다(계 11:2-3; 12:6, 14; 13:5). 이것들은 3년 반에 해당하지만 &lt;strong&gt;&amp;lsquo;7년 대환난&amp;rsquo;이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lt;/strong&gt;. 다니엘서의 마지막 한 이레를 미래로 옮긴 뒤 그 전반과 후반을 각각 3년 반으로 나누어 요한계시록에 덧씌웠기 때문에 7년 대환난이 된 것이다. 서로 다른 본문을 이미 정한 시간표에 맞추어 짜 맞춘 결과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환난 전 휴거설(患難前携擧說, pretribulationism)도 같은 구조에서 나온다&lt;/strong&gt;. 하나님께서 마지막 7년에 다시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일하시려면 그 사이에 삽입되었던 교회가 먼저 하늘로 올라가 자리를 비워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적그리스도의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교회 전체가 휴거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성도들이 자신의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고 환난과 죽음을 겪을 것을 말씀하셨다(마 24:9-13). 요한계시록도 짐승이 성도들과 싸워 이기고 죽이는 장면을 보여 준다(계 13:7-10).&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회의 휴거가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요한계시록 14장에는 익은 곡식을 거두는 추수가 나온다(계 14:14-16). 다만 &lt;strong&gt;예수 믿는 이름만 가졌다고 교회 전체가 환난 전에 자동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lt;/strong&gt;. 주님의 마지막 전쟁에 참여할 첫 열매와 알곡으로 준비된 자가 먼저 거두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안전한 탈출만 기대할 것이 아니라 환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순교까지 각오하도록 준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환난을 피할 것이라는 확신만 가지고 있다가 실제 핍박이 닥치면 믿음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성경의 종말론은 공포를 조장하지 않지만 고난을 숨기지도 않는다. 교회는 적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추측하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 어떤 박해 속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을 믿음과 회개와 충성을 준비해야 한다. 주께서 재림하시면 입의 기운으로 불법한 자를 죽이고 강림의 광채로 폐하실 것이다(살후 2:8). 마지막 승리는 교회의 정치력이나 무력이 아니라 재림하시는 그리스도께 속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amp;lsquo;하나님의 성전&amp;rsquo;은 왜 물질적인 제3성전만을 뜻하지 않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만약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데살로니가후서 2장 4절에 나오는 &amp;lsquo;하나님의 성전&amp;rsquo;을 예루살렘에 다시 세워질 제3성전으로 단정하려면 먼저 신약에서 &amp;lsquo;성전&amp;rsquo;이 어떻게 쓰였는지 살펴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헬라어에는 &amp;#39;성전&amp;#39;으로 번역되는 대표적인 두 단어가 있다. &amp;lsquo;히에론&amp;rsquo;(ἱ&amp;epsilon;&amp;rho;ό&amp;nu;)은 성전 뜰과 건물을 포함한 물질적 성전 구역을 가리킨다. &amp;lsquo;나오스&amp;rsquo;(&amp;nu;&amp;alpha;ό&amp;sigmaf;)는 본래 성소를 뜻하며 물질적 성소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영적인 성전에도 쓰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적그리스도가 앉아서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석하는 데살로니가후서 2장 4절에 쓰인 &amp;#39;성전&amp;#39;은 어떤 단어가 쓰였는가? 놀랍게도 그 단어는 &amp;lsquo;히에론&amp;rsquo;이 아니라 &amp;lsquo;나오스&amp;rsquo;라는 단어다. 그러므로 &lt;strong&gt;이 구절만으로 예루살렘에 물질적인 돌 성전이 반드시 재건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없다&lt;/strong&gt;. 불법한 자가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를 침범하고, 하나님께 속한 자리에서 자신을 높이며, 성도와 교회를 핍박하는 영적 실재를 포함한다. &lt;strong&gt;물질적인 성전이 다시 세워질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그것을 종말의 필수 조건으로 만들 근거도 없다&lt;/strong&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일찍이 유대인들에게 &amp;ldquo;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amp;rdquo;라고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46년 동안 지은 건물을 생각했지만, 요한은 예수께서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한다(요 2:19-21). 이때 예수님의 몸을 가리키는 &amp;lsquo;성전&amp;rsquo;도 나오스다. 하나님께서 사람 가운데 거하시는 참 성전은 먼저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하신 예수 그리스도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2:19-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부활하신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신 뒤에는 믿는 성도와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 안에 계신다고 말했다. 여기에서도 성전은 &amp;#39;히에론&amp;#39;이 아니라 &amp;#39;나오스&amp;#39;다(고전 3:16-17; 6:19). 성령의 내주(內住, indwelling of the Holy Spirit)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거하시는 거룩한 처소가 되기 때문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3: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amp;nbsp;&lt;strong&gt;성전의 궁극적인 완성은 새 예루살렘에서 나타난다&lt;/strong&gt;. 요한은 그 성 안에서 별도의 성전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이 그 성전이시기 때문이다(계 21:22). 구원의 경륜은 돌로 된 성전으로 되돌아가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과 어린양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영원히 거하시는 데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1: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제3성전의 건축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교회의 중심 사명이 될 수 없다. 돌 성전이 실제로 세워진다 해도 그것이 예수님의 몸과 교회라는 참성전을 대신하지 못한다. 지금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성전은 회개하여 죄를 씻고 성령께서 거하실 처소가 된 사람들이다. 성전의 재건 여부를 바라보며 종말의 날짜를 계산하기보다 나 자신이 거룩한 성전으로 준비되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종말을 준비하는 교회가 세워야 할 성전과 싸울 대상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종말을 준비하는 교회가 세워야 할 성전은 먼저 성도 자신이다. 하나님의 성령을 모신 사람은 거룩한 성전이므로 죄와 악한 영이 마음과 몸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죄를 회개하고 악한 영이 붙어 있을 근거를 제거하며 예수 이름의 권세로 그들을 내보내야 한다. 이것이 성전을 정결하게 하는 실제적인 과정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교회의 싸움은 사람을 향한 싸움이 아니다. 바울은 &lt;strong&gt;우리의 씨름이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lt;/strong&gt;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lt;strong&gt;슬람교도나 팔레스타인 사람, 다른 정치 진영과 민족을 원수로 삼아 없애려 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복음을 전하고, 그 배후에서 죄와 미움과 전쟁을 일으키는 악한 영들과 싸워야&lt;/strong&gt;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예수께서는 어떤 정치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무장 군대를 조직하지 않으셨다&lt;/strong&gt;.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며 천국 복음을 전하셨고, 원수들의 손에 자신을 내어 주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도 복음을 위해 핍박과 순교를 감당했다. 신약의 교회는 사람을 죽여 승리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죽기까지 어린양을 따름으로 악한 자를 이기는 공동체다(계 12:1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싸움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다. 악한 영이 가득한 채 외부의 적만 공격하면 사탄에게 속는다. 혈기와 분노와 미움으로 이스라엘을 돕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교만과 음란과 탐욕과 시기와 미움을 자백하고 끊어야 한다. 회개로 성전이 깨끗해질 때 성령의 권세와 은사가 바르게 나타나며, 주님이 마지막 때 쓰실 수 있는 군사로 준비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교회는 모든 민족에게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한다. 유대인도 들어야 하고 무슬림도 들어야 하며, 공산권과 복음이 닿지 않은 종족도 들어야 한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면 죄의 빚을 탕감받고 마귀의 종살이에서 해방되며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과 하늘의 기업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것이 70이레가 보여 주는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의 복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이 마지막 때 나팔을 불어 사명자를 소집하실 때에는 준비된 자가 참여한다. 적진과 내통하는 간첩을 전쟁에 데려갈 수 없듯이, 죄와 악한 영을 품은 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거룩한 전쟁에 합당하지 않다. 교회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이나 특정 종말론을 믿는다는 사실이 준비를 대신하지 못한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라야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는다(계 22: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박해를 피하기 위한 계산보다 믿음을 지키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환난이 오더라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죽음 앞에서도 복음을 증언하며,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해야 한다. 동시에 최종 심판과 원수 갚음은 주님께 맡겨야 한다. 우리가 사람에게 보복하는 것이 아니라 재림하시는 그리스도께서 황폐하게 하는 자를 심판하고 모든 전쟁을 끝내신다(살후 2:8; 계 19:11-2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의 사명은 분명하다. 물질적인 제3성전을 세우는 일보다 성도와 교회를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야 한다. 육적 원수를 만들어 미워하기보다 악한 영과 죄를 대적해야 한다. 유대인만을 위한 특별한 복음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동일한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렇게 준비된 성도가 하늘의 기업과 신분을 얻고, 주님의 마지막 사역에 귀하게 쓰임받는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의 마지막 한 이레를 둘러싼 세대주의 해석과 종말론을 바르게 이해하는 길을 살펴보았다. 세대주의는 관주성경을 통하여 평신도의 성경 읽기를 도왔고 선교 열정을 일으켰지만, 이스라엘과 교회를 과도하게 분리하고 마지막 한 이레를 2천 년 뒤로 옮김으로 7년 평화조약과 환난 전 휴거와 제3성전이라는 시간표를 만들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구원은 육적 이스라엘에게만 제한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처음에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가셨지만 마침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하셨다. 이스라엘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팔레스타인과 무슬림을 포함한 모든 민족의 생명을 똑같이 귀히 여겨야 한다. 144,000명과 온 이스라엘의 구원도 혈통의 특권이 아니라 어린양을 따르는 믿음과 회개와 충성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70이레는 그리스도 중심, 안식년&amp;middot;면제년&amp;middot;희년 중심, 연속된 시간이라는 세 기준으로 읽어야 한다.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에 새 언약을 굳게 하고 제사를 그치게 하신 분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단번에 속죄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다. 요한계시록의 1,260일과 마흔두 달을 다니엘서의 미래 7년에 억지로 묶어 교회 전체의 환난 전 휴거를 확정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데살로니가후서의 성전은 &amp;lsquo;히에론&amp;rsquo;이 아니라 &amp;lsquo;나오스&amp;rsquo;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예루살렘의 물질적 제3성전만으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몸이 성전이고, 성령을 모신 성도와 교회가 성전이며,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과 어린 양께서 친히 성전이 되신다. 교회가 힘써 세워야 할 성전은 회개로 깨끗해진 사람과 거룩한 공동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다. 사람을 미워하고 죽이는 종말론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의 최종 승리를 바라보는 종말론을 붙들어야 한다. 날마다 죄를 회개하여 성전을 정결하게 하고, 모든 민족에게 희년의 복음을 전하며, 하늘의 기업과 마지막 사명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중심의 바른 종말 신앙으로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16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ChatGPT Image 2026년 9월 17일 오전 08_53_4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139c61dc24f08df5feaefbb7eed3550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94ffeb93d1003a674ff80e8ab082dfb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c9a16fea717d4d2c7965a451319e836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938b384b53a3acd8c12ed5b769eebe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b6c7330d455a11fcbd8e6d62e1ccb5e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e02ea5284c2955ca29d82baf86d7a97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803556262b9577fe60198e597d1e240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fb76a5b3668f3dabeacc76d3ff6a95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40445b0f4a1f84f3b2f88aeafba3d75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bb2c248b7ca0ad6b01a4c43ca6bdefc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3d9ab96eeda4aa0dd5ad2808c967ffe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4dc4b12adca7cde49936bfd592fcba8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6d6d5ad3677a22b78ac48aea6261191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70c8c3d03390add596dc4869e241217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7165de3d3c7edacec023eff23647b87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Blueprint_of_Redemption.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99d79e62b668d93b9df90d93fa6d893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그리스도_중심의_70이레_인포그래픽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9f6414bd37ac67f5ffbda5d3762b256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다니엘의_70이레_해석_비교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3ea9818e3cbbeaa1fb5aafb59bb31d2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a48083aad098295527cbb7e37fa8ec6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d25b6d62ef0c450e08feb545625867c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8432a7041d38214800e7d09f4394a04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d6b16978210f85003d1bc7f72ce4588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50351a1368a4a28ac97c29d50077aea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c62a6511fd0f1bf19d78b2cbf42a5dc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d2038e1326a9e66860d588d6e23ba57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79d3551e66792a33a426ec6f9e48135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0b59555c25d2546a9b3a9fb315a4514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a1966929d69db2a492c262958ad8565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ab56e10dedec6f86104cdefa5df7702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3)] The_Christocentric_Seventy_Weeks.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79/266/8af41ecdccce31a044a8585f8a6ea21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92)]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3) 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의 해석과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단9:24~27)_2026-09-15(화)</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266416"/>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266416#comment"/>		<id>https://dongtanms.kr/morning_qt/266416</id>
		<published>2026-09-15T11:57:20+09:00</published>
		<updated>2026-09-19T20:28:05+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92)]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3) 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의 해석과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단9:24~2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WhqAlJuyIgM [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7가지 질문] 1. 한국교회의 종말론은 왜 세대주의의 강한 영향을 받았는가? 2. 바른 종말론을 위해 성경 연구와 영적 실상이 왜 함께 필요한가? 3. 70이레를 바르게 해석하는 세 가지 기...</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92)]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3) 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의 해석과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단9:24~2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WhqAlJuyIgM&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WhqAlJuyIgM?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p&gt; &lt;p&gt;1. 한국교회의 종말론은 왜 세대주의의 강한 영향을 받았는가?&lt;br /&gt; 2. 바른 종말론을 위해 성경 연구와 영적 실상이 왜 함께 필요한가?&lt;br /&gt; 3. 70이레를 바르게 해석하는 세 가지 기준은 무엇인가?&lt;br /&gt; 4. 70이레는 BC 457년부터 AD 34년까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lt;br /&gt; 5. 세대주의는 왜 마지막 한 이레를 2천 년 뒤로 분리했는가?&lt;br /&gt; 6. 다니엘서 9장 26-27절의 &amp;lsquo;그&amp;rsquo;는 누구를 가리키는가?&lt;br /&gt; 7. 7년 평화조약과 제3성전 해석을 벗어나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lt;br /&gt; &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그리스도 중심의 성경 해석&lt;/strong&gt;을 바탕으로 세대주의적 종말론의 오류를 비판하고 다니엘서의 &amp;lsquo;70이레&amp;rsquo;에 대한 바른 이해를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한국 교계에 깊이 뿌리박힌&amp;nbsp;&lt;strong&gt;세대주의 신학&lt;/strong&gt;이 이스라엘과 교회를 극단적으로 분리하고 마지막 한 이레를 적그리스도의 평화 조약 기간으로 오해함으로써 성도들이 천국의 실상을 준비하는 데 혼란을 주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특히&amp;nbsp;&lt;strong&gt;70이레의 연속성&lt;/strong&gt;을 강조하며,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에 일어난 사건은 적그리스도의 통치가 아니라&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와 대속적 죽음&lt;/strong&gt;을 통해 구속사가 완성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신학적 전통이나 문자적 계산보다&amp;nbsp;&lt;strong&gt;그리스도의 희년 선포&lt;/strong&gt;라는 관점에서 종말론적 틀을 바로 잡아야 함을 역설하며, 성도들이 제3성전 건립과 같은 외적 징후에 매몰되지 말고&amp;nbsp;&lt;strong&gt;회개와 거룩함&lt;/strong&gt;으로 내면의 성전을 세울 것을 촉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92)&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3)&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의 해석과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단 9:24-27)&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신학적 사고의 틀은 성경을 보는 각도와 신앙의 목표를 결정한다. 성경에는 창조에서 종말까지 장엄하고 방대한 내용이 담겨 있으므로, 어느 부분을 중심에 놓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신학적 사조가 만들어진다. 특히 종말론(終末論, eschatology)은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결정하므로 그 영향이 매우 크다. 잘못된 종말론을 받아들이면 적그리스도와 날짜 계산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일을 누리지 못한 채 엉뚱한 일을 준비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한국교회는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제물포에 도착한 뒤 2026년까지 141년 동안 세계에서 보기 드문 성장을 이루었다. 복음이 정복과 억압이 아니라 학교와 병원과 봉사의 모습으로 전해졌기에 우리 민족은 기독교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오늘날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주신 큰 복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복음을 전해 준 미국과 캐나다의 선교사들은 당시 서구 교회를 휩쓸던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들에게 배운 한국의 지도자들이 다시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면서 세대주의적 종말론은 한국교회에 깊이 뿌리내렸다. 그 결과 이스라엘과 교회를 완전히 분리하고, 환난 전 휴거설(患難前携擧說, pretribulationism)과 7년 대환난과 제3성전(第三聖殿, Third Temple) 재건을 당연한 종말의 시간표처럼 받아들이는 교회가 많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러한 흐름을 바로잡으려면 다니엘서 9장의 마지막 한 이레를 다시 보아야 한다. 70이레의 중심은 미래에 나타날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기름부음을 받고 한 이레의 절반에 끊어짐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를 중심에 놓고 70&amp;times;7이 품은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의 뜻을 보며, 7이레와 62이레와 1이레를 연속된 시간으로 읽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한국교회의 종말론이 왜 세대주의의 강한 영향을 받았는지, 성경 연구와 영적 실상을 왜 함께 알아야 하는지, 70이레를 푸는 세 기준과 그 역사적 성취, 마지막 한 이레를 2천 년 뒤로 분리한 해석의 문제, 다니엘서 9장 26-27절의 &amp;lsquo;그&amp;rsquo;가 누구인지, 그리고 7년 평화조약과 제3성전 해석에서 벗어나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한국교회의 종말론은 왜 세대주의의 강한 영향을 받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한국교회의 종말론이 세대주의의 강한 영향을 받은 것은 한국에 복음을 전한 초기 선교사들의 신학적 배경과 관계가 있다. 북장로교와 남장로교, 캐나다와 호주 등지에서 온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했고, 그들이 한국의 젊은 인재들을 미국으로 보내 신학을 공부하게 했다. 당시 미국 교회에는 존 넬슨 다비(A.D.1800-1882)에게서 시작되어 스코필드 관주성경(A.D.1909)과 달라스신학교 및 밥 존스 신학교를 통하여 체계화된 세대주의가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한국의 지도자들도 자연스럽게 그 종말론을 받아들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물론 선교사들이 전해 준 복음의 열매는 매우 귀하다. 한국은 오랜 기독교 역사를 가진 나라가 아니었지만 불과 몇 세대 만에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약 1만 5천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대주의적 종말론이 주님의 재림(再臨, second coming)이 임박했다는 긴박감을 주어 선교 열정을 불러일으킨 측면도 있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의 헌신과 세대주의가 낳은 모든 열매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다만 그들이 전한 종말 시간표까지 성경 자체와 동일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신학적인 틀은 이단을 방어하는 과정에서도 형성되었다. 초대교회에 아리우스와 몬타누스 같은 이단적 가르침이 나타나자 교회는 공의회를 열어 믿음의 내용을 교리로 정리했다. 이 작업은 복음을 보호하는 데 필요했지만, 인간이 만든 설명 체계에는 실수가 더해질 수 있다. 처음에는 성경을 지키기 위한 울타리였던 교리가 시간이 지나면서 성경을 바라보는 안경이 되고, 마침내 그 안경에 맞추어 본문을 번역하고 해석하는 일이 생겼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러한 사상적 틀의 영향은 정치와 사회에서도 드러난다. 공산주의 체제는 기독교를 적대해 왔는데도 일부 목회자는 그 사상을 등에 업고 성경적 기준을 흐린다. 모든 죄는 다 죄이지만, 오늘날 동성 간 성행위를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성경이 그것을 죄라고 규정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야 한다(롬 1:26-27; 고전 6:9-10). 또한 악한 체제를 분별하지 않은 채 평화라는 말만 앞세운 결과 북한이 핵무기를 57개나 만들도록 허용한 셈이 되었다. 어떤 사상적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같은 단어와 현실을 전혀 다르게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성도는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평신도는 히브리어와 헬라어, 교회사와 조직신학을 모두 다 공부하기가 어렵다. 목회자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일반대학 4년과 3년의 신학대학원, 2년의 인턴십과 고시 및 안수 과정을 포함하여 약 10년을 준비한 뒤 목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 긴 과정에서도 성경 전체를 직접 공부한 분량은 극히 적었다. 신학교는 성경 66권을 한 절씩 파고들기보다 신학의 틀과 여러 학자의 견해를 가르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목회자가 졸업 뒤 어떤 자세로 20년, 30년을 연구하느냐에 따라 성경 이해의 깊이는 크게 달라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장로교와 감리교와 침례교와 순복음교회는 저마다 물려받은 전통이 있다. 그 전통은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있지만, 성경보다 높은 최종 기준이 될 수는 없다. 필자도 장로교의 건전한 훈련을 받아 목사가 된 것을 귀하게 여기며 교단을 사랑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어떤 사상을 가졌다고 자녀가 그 사상까지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교단의 틀이 본문과 어긋난다면 성경을 따라 바로잡아야 한다. 종말론을 결정하는 최종 권위는 특정 교단이나 달라스신학교나 유명한 주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바른 종말론을 위해 성경 연구와 영적 실상이 왜 함께 필요한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른 종말론을 세우려면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일과 영적 실상을 분별하는 일이 함께 가야 한다. 성경만 연구하면서 실제 천국의 모습을 전혀 알지 못하면 본문에 기록된 것을 자기 체계에 맞추어 설명할 위험이 있다. 반대로 꿈과 환상과 예언만 좇으면서 성경과 신학의 검증을 받지 않으면 악한 영이 보여 준 것을 하나님의 계시(啓示, revelation)로 착각할 수 있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온전한 분별에 이르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 연구에 깊이 들어간 대표적인 흐름으로 본다면, &lt;strong&gt;한국복음서원과 워치만 니 계열&lt;/strong&gt;을 들 수 있다. 그들이 펴낸 &lt;strong&gt;『회복역 성경』&lt;/strong&gt;에는 존중할 만한 방대한 연구와 주석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흐름도 존 넬슨 다비의 세대주의가 중국으로 들어가 꽃피운 한 갈래다. 성경 본문을 깊이 파고들었지만 천국의 실제 신분 체계를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에서 성도에게 주어질 신분의 차이를 왕국 시대에만 적용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면 모두 똑같이 왕 같은 제사장이 된다고 해석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천국에서 성도의 신분은 모두 같지 않다. 대제사장과 제사장과 레위인, 그리고 섬기는 자의 위치처럼 각 사람이 이 땅에서 준비한 분량에 따른 구별이 있다. 베드로전서 2장 5과 9절의 헬라어 표현도 왕 같은 제사장 한 사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 체계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천국의 실상을 보지 못하면 이런 차이를 읽어 내지 못하고, 장차 받을 신분과 상급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른 한편에는 &lt;strong&gt;요셉과 다니엘과 에스겔과 스가랴처럼 꿈과 환상과 예언을 강조하는 흐름&lt;/strong&gt;이 있다. 오늘날에는 신사도운동과 빈야드운동, 예언과 기름부음과 축사를 강조하는 선교단체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영적 은사(恩賜, spiritual gift) 자체를 모두 부정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도 꿈과 환상과 예언이 분명히 나온다. 그러나 필자가 분별한 바에 따르면 이 흐름에는 많은 악한 영이 역사하고 있다. 성경의 기준과 신학적 분별이 약한 상태에서 보이는 것만 따라가면 귀신이 보여 준 천국을 참된 천국으로 믿고 전할 수 있다. 실제를 말하면서도 진리에서 멀어질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경과 영적 실상은 서로를 배척하는 두 길이 아니다. 성경은 체험의 진위를 판단하는 기준이며, 성령께서 보여 주시는 실제는 성경의 말씀을 더 입체적으로 깨닫게 한다. 살아 계신 주님은 지금도 만날 수 있는 분이다. 다만 영적 체험을 받았다는 이유로 성경 위에 서려 해서는 안 되며, 성경 지식을 많이 쌓았다는 이유로 주님의 현재적인 인도를 부정해서도 안 된다. 말씀과 성령 안에서 양쪽을 함께 분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런 균형을 이루기 위하여 &lt;strong&gt;성경 원문을 연구하고 천국의 실상을 함께 살펴&lt;/strong&gt;왔다. 그러나 필자는 세계적인 석학들처럼 라틴어와 아람어와 고대 근동의 모든 자료를 평생 연구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선배 학자들이 남긴 방대한 주석과 원어 자료를 활용하고, 헬라어 연구와 영적 체험을 통하여 신학의 잘못된 틀을 분별할 수는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논문과 원어 자료를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인공지능도 사실이 아닌 답을 만들어 내는 환각 현상이 있으므로 반드시 본문과 자료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사명은 선배들의 모든 연구를 대신하는 데 있지 않다. 구원론과 삼위일체론과 교회론과 성령론과 은사론과 종말론에 스며든 잘못된 틀을 바로잡고, 성경과 천국의 실제가 함께 증언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데 있다. 유명한 학자와 큰 기관의 이름만 보고 따라갈 것이 아니라 그 해석이 그리스도를 높이는지, 성경의 문맥과 일치하는지, 실제 하늘의 경륜과 맞는지를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70이레를 바르게 해석하는 세 가지 기준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70이레를 바르게 해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필자는 3가지로 정해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기준은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으로 읽는 것&lt;/strong&gt;이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연구하지만 그 성경이 바로 자신을 증언한다고 말씀하셨다(요 5:39). 구약의 예언은 적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데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무엇을 이루실 것인지를 보여 주는 데 중심이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9장 24절은 70이레 동안 여섯 가지가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반역을 끝내고, 죄를 마감하며, 죄악을 속죄(贖罪, atonement)하고, 영원한 의를 가져오며, 환상과 예언을 성취하고, 지극히 거룩한 것에 기름을 붓는 일이다(단 9:24). 고레스와 아닥사스다와 스룹바벨과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포로 귀환과 성전과 성벽의 재건을 수행한 귀한 도구였지만, 인류의 죄를 영원히 속죄할 수는 없었다. 이 여섯 가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기준은 70&amp;times;7이라는 숫자를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의 구조로 읽는 것&lt;/strong&gt;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7년마다 땅을 쉬게 하는 안식년(安息年, sabbatical year)을 주셨고, 일곱째 해에는 동족의 빚과 종살이를 풀어 주는 면제년(免除年, year of release)을 명하셨다(레 25:2-7; 신 15:1-18).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낸 49년 다음 해에는 희년(禧年, jubilee)의 나팔을 불어 종을 놓아주고, 팔린 기업을 돌려주며, 각 사람이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셨다(레 25:8-1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은 이 명령을 온전히 지키지 않았지만 예수께서는 안식과 면제와 희년의 성취자로 오셨다. 그분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에게 쉼을 주셨고, 죄의 빚을 탕감하셨으며, 마귀의 종 된 사람을 풀어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과 하늘의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셨다(마 11:28; 눅 4:18-21). 그러므로 70이레의 숫자는 단순한 날짜 계산표가 아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에게 완전한 자유와 해방을 주시는 희년의 시간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기준은 7이레와 62이레와 마지막 1이레를 끊지 않고 연속된 490년으로 읽는 것&lt;/strong&gt;이다. 본문은 앞의 69이레 뒤에 2천 년의 교회 시대를 삽입한 다음 마지막 한 이레를 시작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예루살렘을 돌이키고 건축하라는 말씀이 나간 뒤 7이레와 62이레가 지나며, 이어진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진다(단 9:25-27). 세 구간은 한 예언 안에서 연속하여 진행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세 기준 가운데 하나라도 놓치면 해석이 비틀어진다. 만약 그리스도 중심을 잃으면 마지막 한 이레의 주인공을 적그리스도로 바꾸게 된다. 또한 희년의 구조를 놓치면 70&amp;times;7이 가리키는 죄 사함과 해방을 보지 못한 채 날짜만 계산하게 된다. 그리고 연속성을 버리면 본문에 없는 2천 년의 공백을 끼워 넣게 된다. &lt;strong&gt;그리스도 중심, 안식년&amp;middot;면제년&amp;middot;희년 중심, 그리고 연속된 시간&lt;/strong&gt;이라는 세 가지를 함께 붙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제안하는 해석 역시 인간의 해석이므로 틀릴 가능성은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또 하나의 절대 교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한 성도에게 성경 전체와 역사적 성취를 일관되게 설명하려면 가장 타당한 틀을 제시해야 한다. 여러 해석을 종합해 보았을 때 이 세 기준을 적용하면 70이레의 문맥과 연대가 함께 풀리고, 무엇보다 예언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선명히 드러난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70이레는 BC 457년부터 AD 34년까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70이레의 기산점은 언제일까? 그것은 예수께서 기름 부음을 받으시고(A.D.27년) 한 이레의 절반(A.D.30년)에 돌아가신 날짜를 기준으로 역추적하면 된다. 그러니까 A.D.27년을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출현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을 마지막 한 이레의 시점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뒤로 62이레(434년)을 계산하면 B.C. 408년이 나오고, 거기서 다시 7이레(49년)을 뒤로 가면, 기원전 457년, 아닥사스다 왕 제7년이 70이레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즉 바사 아닥사스다 왕 7년에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록 조서를 받은 때가 70이레의 기산점이 되는 것이다(스 7:7-10, 25-26). 그리고 이어서 아닥사스다 왕 20년에 느헤미야가 통치자(나기드)가 되어 예루살렘에 와서 허물어진 성전을 다시 짓는다. 그러므로 다니엘서 9장 25절에도 역시 그 기산점인 예루살렘을 &amp;lsquo;돌이키고&amp;rsquo; 그리고 &amp;lsquo;건축하라&amp;rsquo;는 두 가지 내용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이다. 앞의 단어는 히브리어 &amp;lsquo;슈브&amp;rsquo;(שׁוּב)로서, 돌아오다 또는 돌이키다라는 뜻이고, 뒤의 단어 &amp;lsquo;바나&amp;rsquo;(בָּנָה)는 건축하다는 뜻이다. 개역개정은 &amp;lsquo;슈브&amp;rsquo;를 &amp;lsquo;다시&amp;rsquo;라는 부사처럼 처리하였고, 거기에다가 &amp;lsquo;건축하라&amp;rsquo;는 뜻을 합하여 &amp;lsquo;중건하라&amp;rsquo;고 번역했지만, 백성을 돌이키는 일과 성읍을 건축하는 일을 함께 보아야 한다. 즉 백성을 돌이킨 일은 에스라고 한 것이고, 성읍을 건축한 것은 느헤미야가 한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유다인들의 포로 귀환은 세 차례의 흐름을 가진다. 먼저 고레스 왕 통치 원년(B.C.538)에 그의 명령으로 스룹바벨이 백성을 이끌고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다(스 1:1-4; 2:1-2). 다음으로 아닥사스다 왕 제7년(B.C.457)에 에스라가 돌아와 율법을 가르치고 이방 여인과 결혼한 문제를 다루며 백성 전체의 회개(悔改, repentance)를 이끌었다(스 7:10; 9:1-10:17). 마지막으로 아닥사스다 왕 제20년(B.C.445/444)에 느헤미야가 파송되어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했다(느 2:1-8; 6:15). 그러니까 남유다 백성을 돌이킨 사람은 에스라이고. 성벽을 세운 사람은 느헤미야이므로, 두 사역의 시작을 품은 아닥사스다 제7년을 기산점으로 삼는 것이 합당하다. 왜냐하면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했던 기간이 7이레(49년) 안에 다 들어가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기산점에 등장하는 바, 다니엘서 9장 25절의 &amp;lsquo;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amp;rsquo;은 &amp;lsquo;왕&amp;rsquo;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amp;lsquo;멜레크&amp;rsquo;(왕)가 아니라 &amp;lsquo;나기드&amp;rsquo;(נָגִיד)(통치자)이기 때문이다. &amp;#39;나기드&amp;#39;는 한글로 &amp;#39;지도자&amp;#39; 또는 &amp;#39;통치자&amp;#39;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왕인 고레스나 아닥사스다와 그 명령을 수행한 지도자인 스룹바벨과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구별해야 한다. 마소라 본문의 구두점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7이레 뒤에 기름 부음을 받은 지도자가 나타난다고 읽을 수도 있고, 7이레와 62이레 전체 뒤에 나타난다고 읽을 수도 있다. 어느 독법을 취하든 포로 귀환과 회개와 성읍 건축은 이 기간 안에 이루어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70이레의 기간은 어떻게 산정할 수 있는가? 기원전 457년에서 7이레인 49년이 지나면 기원전 408년이 된다. 거기서 다시 62이레인 434년이 지나면 주후 27년경에 이른다. 이때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마 3:13-17; 행 10:38). 이 날짜를 기준으로 마지막 한 이레가 시작된다. 그리고 한 이레의 절반인 약 3년 반 뒤, 주후 30년경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끊어짐을 당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다니엘 9장 26절에서 예언하고 있는 바, 예수께서는 자신의 피를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다(마 26:28). 그리고 이어서 그분은 십자가에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려 구약의 희생제사와 곡식제사를 그치게 하셨다. 이러한 제사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하신 것이다(히 9:11-15; 10:10-14). 그러므로 한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한 분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보아야 한다. 고로 주후 27년에 시작된 마지막 한 이레는 주후 34년경에 마무리되고, 그 안에서 초림하신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사역이 완성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하여 마지막 한 이레의 중심에 십자가가 놓이면서 이스라엘의 봄 절기도 성취된다. 예수께서는 유월절 날에 유월절 양으로 죽으셨고, 무교절과 초실절의 뜻을 이루어 부활하셨다. 그리고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어 주시어 교회가 탄생하게 하였다(고전 5:7; 15:20; 행 2:1-4).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과 칠칠절이라는 전반기 절기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성령 강림으로 완성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니엘 9장 24절에 나오는 바, 지극히 거룩한 것에 기름 부음 위함이라는 예언의 성취인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다니엘서 9장 26절에 나오는 바, 62이레 뒤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amp;lsquo;끊어져 없어질 것&amp;rsquo;이라는 표현은 번역에 오해를 불러온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표현은 그가 끊어질 것이며 &amp;lsquo;그에게 속한 것이 없다&amp;rsquo;는 뜻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amp;lsquo;없어질 것&amp;rsquo;이라고 번역하면 메시아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듯한 오해를 줄 수 있다. 정동수 목사의 킹제임스 흠정역은 &amp;lsquo;그것은 그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니라&amp;rsquo;고 옮기지만, 히브리어의 부정 표현을 그렇게 확정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타인에 의해 끊어지지만 부활로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기산점을 고레스나 느헤미야에게 먼저 맞춘 뒤 예수께 도달하려 하면 연대가 어긋나기 쉽다. 반대로 주후 27년의 기름부음과 주후 30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거꾸로 계산하면 기원전 457년의 에스라 귀환과 일치한다. 70이레는 기원전 457년부터 주후 34년까지 이어지는 연속된 구속사의 시간이며, 그 한가운데에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세대주의는 왜 마지막 한 이레를 2천 년 뒤로 분리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세대주의가 마지막 한 이레를 분리하고 떼어서 중간에 교회시대를 집어넣고, 그 시기를 2천 년 뒤로 분리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스라엘과 교회를 완전히 별개의 경륜으로 나누고, 마지막 7년을 적그리스도와 이스라엘의 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세대주의는 69이레까지 진행된 뒤, 메시아가 출현하였지만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서 거절되자 이스라엘을 위한 시간표가 멈추게 되었고, 그 사이에 성경이 예고하지 않은 교회 시대가 삽입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교회가 7년 대환난 전에 휴거된 뒤에야, 멈추었던 마지막 한 이레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 시작된다고 설명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시간표에서는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7년 평화조약을 맺고, 3년 반이 지나면 조약을 깨뜨려 성전 제사를 금지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유대인은 그때에 제사를 다시 드리고 있어야 하므로 예루살렘에 제3성전이 먼저 세워져야 한다고 본다. 그 결과 이스라엘과 교회의 완전한 분리, 환난 전 휴거설, 7년 대환난, 적그리스도의 평화조약, 제3성전 재건이 하나의 체계로 묶이게 되었다. 이 모든 구조를 떠받치는 핵심 본문이 바로 다니엘서 9장 27절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인 로버트 앤더슨과 해럴드 호너는 70이레의 기산점을 아닥사스다 왕 제20년, 곧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러 간 기원전 445년 또는 444년으로 잡았다. 그러나 거기서 69이레인 483년을 지난 때를 A.D.32년이나 33년으로 본다. 그러나 1년을 365일로 계산하면 필자의 계산으로는 주후 38년 또는 39년 무렵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시점과 맞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한 해를 360일로 계산하여, 예수께서 끊어지신 연도를 주후 32년 또는 33년이라고 산출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A.D.32년이나 33년이 아니라, 30년에 돌아가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세대주의의 계산법은 억측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그들은 문자주의(文字主義, literalism)를 표방하면서도 날짜가 맞지 않게 되자, 한 해의 길이를 달리 계산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한 이레는 본문에 없는 긴 공백을 집어넣는 일을 시도하였다. 대한민국에서 대표적으로 세대주의 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를 보자. 그분이 제시한 도표를 보면 기원전 445년을 70이레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리고 69이레 뒤를 주후 30년으로 그림에 표시해 놓았다. 하지만 단순히 483년을 B.C.445이나 444년에 맞추면 예수께서 돌아가신 해는 A.D.38년이 되고 만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세대주의는 영국의 존 넬슨 다비에게서 두 방향으로 전파되었다는 것도 우리가 알아야 한다. 세대주의의 한 갈래는 미국으로 가서 스코필드와 달라스신학교를 거쳐 미국의 근본주의와 한국의 사랑침례교회 같은 흐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다른 한 갈래는 중국으로 가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거쳐 지방교회와 한국복음서원으로 이어졌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발전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교회의 분리, 69이레와 마지막 한 이레 사이의 공백, 환난 전 휴거라는 핵심 틀은 똑같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회복역 성경』&lt;/strong&gt;은 다니엘서 9장 27절의 번역 자체는 비교적 잘했지만, 각주에서 69이레와 마지막 한 이레 사이에 길이를 알 수 없는 간격이 있다고 주석하고 있으며, 마지막 7년 초에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견고한 평화언약을 맺는다고 주석하고 있다(회복역 성경 참조). 또한 로마의 티투스(디도)로 예표된 적그리스도가 재건될 성전을 황폐하게 할 것이므로 제3성전의 건축이 필수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한국복음서원은 본문 번역은 비록 바르게 했다고 하지만, 주석의 신학적 틀이 독자의 결론을 세대주의로 이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대주의 안에도 성경을 사랑하고 선교와 연구에 헌신한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모든 가르침을 나쁘다고 단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세대주의가 바르게 설명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이레를 분리함으로써 초림하신 그리스도의 언약과 십자가를 적그리스도의 조약과 박해로 바꾸어 놓은 부분은 바로잡아야 한다. 사람과 단체를 정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성경의 중심을 다시 그리스도께 돌려놓는 것이 목적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다니엘서 9장 26-27절의 &amp;lsquo;그&amp;rsquo;는 누구를 가리키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다니엘서 9장 26-27절에 나오는 첫 번째 &amp;lsquo;그&amp;rsquo;는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가? 결론적으로 보았을 때, 70이레의 예언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한다면, 그분은 A.D.27년에 기름부음을 받았던,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26절을 보자. 여기에는 두 명의 다른 존재가 대조된다. 먼저 69이레 뒤에 끊어짐을 당하는 &amp;#39;기름부음을 받은 자&amp;#39;가 있고, 그다음에는 &amp;#39;장차 올 한 통치자의 백성&amp;#39;이 있어 그가 성읍과 성소를 파괴한다. 그러므로 앞에 등장하는 &amp;#39;기름부음을 받는 자&amp;#39;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고, 후자는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을 무너뜨린 로마의 티투스(디도) 장군과 그의 군대를 가리킨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때 티투스(디도) 장군은 장차 마지막 시대에 활동하게 될 적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26절의 본문은 그리스도와 그를 대적하는 통치자를 나란히 대조해서 보여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27절도 똑같은 대조 구조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부분의 &amp;lsquo;그&amp;rsquo;는 한 이레 동안 많은 사람에게 언약을 굳게 하고, 이레의 절반에 희생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한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피를 흘려 새 언약(新約, new covenant)을 세우고 단번의 제사로 속죄를 완성하신 예수께 정확히 해당한다(마 26:28; 히 10:12-14). 이어지는 뒷부분에는 가증한 것들의 날개 위에 서서 철저히 황폐하게 하는 자가 나오고, 정해진 끝에 진노가 그 황폐하게 하는 자 위에 쏟아진다. 그가 바로 장차 적그리스도가 될 자이다. 그러므로 앞에 나오는 그분인 그리스도와 뒤에 나오는 황폐하게 하는 자는 서로 다른 존재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만일 27절 앞부분의 &amp;lsquo;그&amp;rsquo;를 26절의 장차 올 통치자 곧 적그리스도로 본다면, 27절 뒷부분도 같은 대명사 &amp;lsquo;그&amp;rsquo;로 계속 받아야 자연스럽다. 그러나 히브리어 문장은 뒤에서 &amp;lsquo;황폐하게 하는 자&amp;rsquo;를 별도의 주체로 다시 제시한다. 그러므로 한 절 안에서도 많은 사람과 언약을 굳게 하는 그리스도와 가증한 것을 의지하여 황폐하게 하는 대적자가 대조된다고 보아야 문맥이 맞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70이레의 본문에는 어디에도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amp;lsquo;평화조약&amp;rsquo;을 맺는다는 말이 없다. 단지 많은 사람에게 언약을 강하게 하거나 굳게 한다고 되어 있다. &amp;lsquo;언약&amp;rsquo;을 정치적 평화조약으로 바꾸는 순간 예수께서 피로 세우신 언약이 사라진다. 또한 히브리어 동사는 희생제사와 예물을 &amp;lsquo;금지한다&amp;rsquo;기보다 &amp;lsquo;그치게 한다&amp;rsquo;는 뜻이 맞다. 적그리스도가 가능한 제사를 폭력으로 금지하는 장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사 때문에 반복 제사가 효력을 다하고 그치는 장면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서로 다르게 번역한 번역본들을 비교해 보면, 신학의 틀이 번역에 얼마나 성경 해석에 깊이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 있다. 허성갑 목사의 『직역성경』은 많은 부분을 원문에 가깝게 옮겨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다니엘서 9장 24절의 &amp;lsquo;거룩한 것들의 거룩한 것&amp;rsquo;을 &amp;lsquo;지성소&amp;rsquo;로 한정해 놓았고, 25절의 &amp;lsquo;슈브&amp;rsquo;를 &amp;lsquo;다시&amp;rsquo;로 처리하였으며, 26절을 &amp;lsquo;끊어져 없어질 것&amp;rsquo;이라고 옮긴 부분은 70이레의 의미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7절에서 제사와 곡식제사가 그친다고 번역한 점은 바르게 번역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한편 백석대 총장을 역임했던 고영민 박사의 『원문번역직역성경』도 방대한 원어 연구의 결실이지만, 27절의 &amp;lsquo;그&amp;rsquo;를 &amp;lsquo;그 왕&amp;rsquo;이라고 바꾸어 번역했다. 원문에는 &amp;lsquo;왕&amp;rsquo;이라는 명사가 없는데 세대주의적 선이해가 번역문에 들어간 것이라 추정된다. 왜냐하면 각주에서 69이레와 마지막 한 이레 사이에 현 교회 시대가 놓인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한국복음서원에서 발해한『회복역 성경』은 앞부분을 비교적 정확히 옮기면서도 제사를 &amp;lsquo;바치지 못하게 한다&amp;rsquo;고 표현하는 측면이나, 각주에서 그를 적그리스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정말 아쉬움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킹제임스 흠정역을 번역한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는 &amp;lsquo;언약을 확정하고 희생물과 봉헌물을 그치게 한다&amp;rsquo;는 앞부분을 잘 살렸지만, 황폐하게 하는 자의 주체는 다소 모호하게 번역하고 있음을 본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무리 원어에 능통하고 방대한 연구를 한 사람이라도 이미 가진 신학적 틀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운가 보다. 그러므로 번역자의 명성과 학위만 볼 것이 아니라 원문에 실제로 어떤 단어가 있고, 문장의 주체가 어떻게 바뀌며, 앞뒤 문맥이 누구를 대조하는지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26절과 27절을 함께 읽으면 언약을 굳게 하고 제사를 그치게 하는 이는 그리스도이며, 성읍과 성소를 황폐하게 하는 이는 그를 대적하는 통치자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7년 평화조약과 제3성전 해석을 벗어나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7년 평화조약과 제3성전 재건은 또 어떠한가? 다니엘서 9장 27절에서 직접 말씀하고 있는 것은 정말 종말의 필수 조건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본문에 없는 평화조약을 만들어서 집어넣고, 그 조약이 깨어지려면 성전 제사가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고 추론한 결과, 제3성전이 종말론의 중심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제3성전은 끝까지 세워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종말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제3의 성전이 건축되느냐를 지켜보며 날짜를 계산하는 것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왜냐하면 신약시대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와 연합한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기 때문이다(요 2:19-21; 고전 3:16; 6:19).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성전은 예루살렘에 돌로 지어지는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날마다 예루살렘에 제3성전을 세워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 아니라, 오늘의 교회가 회개하여 깨끗해지고 주님이 쓰실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지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대주의적 시간표를 따르면, 성도의 눈은 언제 이스라엘과 적그리스도가 조약을 맺는가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 중심의 70이레를 따르면, 예수께서 무엇을 이루셨고 어떻게 해서 우리가 그 축복을 누릴 것인가에 관심을 두게 된다. 그분은 안식년의 쉼을 주셨고 면제년의 빚을 탕감하셨으며 희년의 자유와 기업 회복을 가져오신 분이시다. 십자가의 목적은 미래의 공포를 계산하게 하는 데 있지 않고, 지금 죄와 마귀에게 매인 사람을 해방하는 데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종말을 준비한다는 것은 날짜와 인물을 맞히는 일이 아니다. 먼저 회개하여 우리 안의 악한 영을 제거하고, 그리스도께서 거하실 깨끗한 성전이 되어야 한다. 주께서 장차 나팔절에 나팔을 불어 하늘의 군대를 소집하실 때에 적진과 내통하는 그를 데려가실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지금은 누가 적그리스도인지 추측하는 때가 아니라, 죄를 자백하고 내 안에 간첩으로 숨어있는 악한 영을 내보내며 주님의 뜻에 충성할 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지금은 천국에서 받을 신분과 상급을 준비해야 한다. 모든 성도가 천국에서 똑같은 지위를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회개하고 충성하며 주님의 사명을 감당한 분량에 따라 왕과 제사장의 신분과 기업이 달라질 것이다. 세대주의적 틀이 이 차이를 왕국 시대의 일로만 돌려버리면 성도는 영원한 천국을 준비할 동력을 잃는다. 종말론은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시간표가 아니라 오늘의 삶을 거룩하게 만드는 진리여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지막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세대주의를 따른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되고, 유명한 학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해석을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옳은 것은 감사히 배우고 잘못된 것은 성경으로 분별해야 한다. 필자도 선배들이 쌓아 놓은 연구를 존중하고 활용한다. 다만 어떤 교단과 기관과 번역본도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보다 앞설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스도께서 한 이레의 절반에 끊어지심으로 죄를 속죄하고 새 언약을 세우셨다는 사실을 붙들어야 한다. 그분이 안식과 면제와 희년을 이미 가져오셨으므로 그 은혜를 누리고, 아직 죄와 마귀에게 묶인 사람에게 해방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것이 바른 종말론이 낳는 실제 열매이며,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교회의 올바른 자세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의 마지막 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 해석과 종말론을 바르게 이해하는 길을 살펴보았다. 한국 교회는 복음과 함께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전해 받았고, 그 틀은 이스라엘과 교회의 분리와 환난 전 휴거, 7년 평화조약과 제3성전 재건이라는 시간표를 만들었다. 선교와 성경 연구에 끼친 유익은 존중해야 하지만, 본문에서 벗어난 해석은 성경 앞에서 바로잡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성경 연구와 영적 실상이 함께 가야 한다. 성경 없는 체험은 미혹에 빠질 수 있고, 영적 실상을 알지 못하는 연구는 자기 신학의 틀 안에서 본문을 제한할 수 있다. 그리스도 중심, 안식년&amp;middot;면제년&amp;middot;희년 중심, 7이레와 62이레와 1이레의 연속성이라는 세 기준으로 70이레를 읽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기원전 457년의 에스라 귀환에서 시작된 70이레는 주후 27년의 예수님의 기름부음과 주후 30년의 십자가를 거쳐 주후 34년경까지 이어진다. 한 이레의 절반에 많은 사람과 언약을 굳게 하고 희생제사를 그치게 한 &amp;lsquo;그&amp;rsquo;는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다. 황폐하게 하는 통치자는 그와 대조되는 별개의 존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도는 2천 년의 공백과 미래의 평화조약을 계산하기보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속죄와 해방을 붙들어야 한다. 예루살렘의 돌 성전이 재건되기를 기다리기보다 우리 자신과 교회가 회개로 정결해져 거룩한 성전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천국의 신분과 기업을 바라보며 맡겨진 사명에 충성하고, 죄와 마귀에게 묶인 이들에게 희년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의 관심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있어야 하고, 날짜가 아니라 십자가의 성취에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말씀과 성령 안에서 진리를 분별하고 주님의 재림을 온전히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15일(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설교에 사용한 그림들]&lt;/p&gt; &lt;p&gt;&lt;img alt=&quot;[다니엘의70이레의 기산점] ChatGPT Image 2026년 9월 15일 오전 02_11_59.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ccb643ec1cf4008b36c1b3495aa669a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다니엘의 칠십이레_사랑침례교회 정동수목사(칼라)_성경바로알기.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9a63c6a7c458b296ace4da470dd7fff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다니엘의 칠십이레_사랑침례교회 정동수목사(흑백)_성경바로알기.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a301f5a8a552816a9ed47076c2c2e37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천국과 하나님의 왕국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도표.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0a161328116860af740f7a56e1135a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칠십이레와 그리스도께서 오심 및 성도의 휴거에 관한 도표 - 한국복음서원.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27b63adca38943e81768265e53d24ef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다니엘 9장의 히브리어 원문번역 및 주석들(고영민,한국복음서원).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099ce8ef5288674db2019b1eeb63481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다니엘 9장의 히브리어 원문번역 및 주석들(고영민,한국복음서원).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a532f4f775d474551663f579f10c58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다니엘 9장의 히브리어 원문번역 및 주석들(고영민,한국복음서원).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0a0bad1fe297841c6c9175d27de44e7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다니엘 9장의 히브리어 원문번역 및 주석들(고영민,한국복음서원).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a2dcca4f61220905f7caabdb28cff8f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다니엘 9장의 히브리어 원문번역 및 주석들(고영민,한국복음서원).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bcc45c9b5efa8703a4bbbce57a7fbb4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다니엘 9장의 히브리어 원문번역 및 주석들(고영민,한국복음서원).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ada277355f616c537dc16572d3339df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atGPT Image 2026년 9월 15일 오후 08_35_3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ca3c19c8d4f33977468c128cc7920bc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abd06d264fed6234ede756c524565fb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5c336125595041467aad222fb6978eb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299937c61e733a51c7701eaf50534c9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278ac5fbb362086c8a1668e6634d5ca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809de98195d66771deacd2cc93bb535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7b559de442d49a75f3fc387532203a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5ea29fe58b0297306795a8e472b4297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a539a59d46c705b2c4c4480cbb91259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3d2692df5d59b02399bd10562302c8c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253de6d4bef062f28d4a58920bdf4d1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6337306e3806a3c422e06e654c105b2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3d2ada7571feb7e02b458a3a668e404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fe1fe1cfb4dcbff9809b284f6123729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fd1ecc4a0c3b32f105645853cd0d2f6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Christ_Centered_70_Weeks.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adb94d7d6b3ef27c7034fae5b85c47b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다니엘의_70이레_오해와_진실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3cd54fe03d9ace44ebc376a2c3da83e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그리스도_중심_다니엘_70이레_시간표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6fd0e2cf0444feffc0b4d9b6963dea2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Decoding_the_70_Week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507c312e5e4904b82788f9c17b2140d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Decoding_the_70_Week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f7a3803d3b1d354b961e80df213a6c6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Decoding_the_70_Week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36fc025158c3730df95048999589c0e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Decoding_the_70_Week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5c6d5f71daed60ca79abdaae2ad7053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Decoding_the_70_Week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4bbc6217a12343533cec14f0589cc12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Decoding_the_70_Week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f811c4431677552fe30237780014c4c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Decoding_the_70_Week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06d305885b3f5adf106ffdf31fd8fe3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Decoding_the_70_Week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fa9e8f1cec25837016659eeace228af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Decoding_the_70_Week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f8cbcdbdfa701e3133a1a0787f4fe56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Decoding_the_70_Weeks.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616cb40b7a51b3f708f56adef5d9ed0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Decoding_the_70_Weeks.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87bcbbb918c7785a38c316b2d519912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Decoding_the_70_Weeks.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9d39c3c4b9572b777609c93d22260f9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Decoding_the_70_Weeks.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565c3d8c9ee9ec3a0931f3f8e4a7f00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Decoding_the_70_Weeks.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7f8c543206c1405b087e51358124c47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92)] Decoding_the_70_Weeks.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16/266/114b5dd9d77d3ca15a903ab7cd6f0fdf.webp&quot; /&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사역자론(16)]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가 되려면 어떤 삶의 자세가 필요한가?(딤후4:6~8)_2026-09-14(월)</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266335"/>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266335#comment"/>		<id>https://dongtanms.kr/morning_qt/266335</id>
		<published>2026-09-14T08:08:22+09:00</published>
		<updated>2026-09-14T21:18:13+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역자론(16)]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가 되려면 어떤 삶의 자세가 필요한가?(딤후4:6~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mNPVNppsOOA [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의 첫째 조건은 왜 깨끗함인가? 2.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끝까지 완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3. 작은 사역에도 목숨을 내놓는 자세가 왜 필요한가? 4. 하나님의 주...</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사역자론(16)]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가 되려면 어떤 삶의 자세가 필요한가?(딤후4:6~8)&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mNPVNppsOOA&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mNPVNppsOOA?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1.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의 첫째 조건은 왜 깨끗함인가?&lt;br /&gt; &amp;nbsp; 2.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끝까지 완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lt;br /&gt; &amp;nbsp; 3. 작은 사역에도 목숨을 내놓는 자세가 왜 필요한가?&lt;br /&gt; &amp;nbsp; 4.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역자는 왜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하는가?&lt;br /&gt; &amp;nbsp; 5. 크게 쓰임받을수록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lt;br /&gt; &amp;nbsp; 6. 의의 면류관을 받을 충성되고 의로운 사역자는 어떤 사람인가?&lt;br /&gt; &amp;nbsp; 7. 평신도 사역자가 감당해야 할 세 가지 사명은 무엇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참된 사역자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내면의 자세와 실천적 요건들을 강조하는 신앙적 권면을 담고 있습니다. 가장 본질적인 토대는&amp;nbsp;&lt;strong&gt;회개를 통한 자기 정결&lt;/strong&gt;로, 자신을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시켜야만 악한 영의 흔듦을 받지 않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일꾼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사역자는 사람의 비난이 아닌&amp;nbsp;&lt;strong&gt;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태도&lt;/strong&gt;로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사명을 묵묵히 완수해야 하며, 때로는 생명까지 내걸 수 있는&amp;nbsp;&lt;strong&gt;철저한 충성심과 순종&lt;/strong&gt;이 요구됩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권한이 주님께 있음을 인정하는&amp;nbsp;&lt;strong&gt;겸손한 마음가짐&lt;/strong&gt;을 유지함으로써, 겉모습만이 아니라 중심까지 의로운 모습으로 천국의 상급을 예비하는 삶을 살 것을 촉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사역자론(16)&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가 되려면&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어떤 삶의 자세가 필요한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딤후 4:6-8)&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와 일꾼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삶을 오랜 세월 다듬으시고, 말씀을 배우게 하시며, 성품과 순종(順從, obedience)을 훈련하셔서 당신이 쓰실 그릇으로 준비하신다. 그러므로 큰일을 맡는 것보다 먼저 살펴야 할 것이 있다. 과연 나는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깨끗한 그릇인가 하는 문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모든 사역의 &lt;strong&gt;기초에는 회개(悔改, repentance)가 있어야&lt;/strong&gt; 한다. 회개하여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악한 영이 혈기와 교만과 음란과 명예욕과 자기 자랑을 통하여 사역을 흔든다. 처음에는 열심히 일한 것처럼 보여도 마음과 성품이 정결(淨潔)하지 않으면 결국 변덕과 다툼과 타락으로 나타난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깨끗함 하나만으로 모든 준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lt;strong&gt;자신에게 맡기신 사명(使命, mission)을 분명히 알고 묵묵히 걸어가야 하며, 그 사명을 수행하는 데에 작은 일에도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lt;/strong&gt; 한다. 모든 주권(主權, sovereignty)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하며, 아무리 많이 수고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일하신 것임을 알고 겸손(謙遜, humility)해야 한다. 끝까지 신실하고 의롭게 달려간 사람이라야 주께서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을 바라볼 수 있다(딤후 4:6-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원리는 목회자나 특별한 은사(恩賜, spiritual gift)를 받은 사람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모든 성도는 가정의 파수꾼이며, 하나님이 세우신 종을 돕고, 교회의 지체를 섬기도록 부름받았다. 어떤 직분과 역할을 맡았든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사역자요 일꾼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의 첫째 조건이 왜 깨끗함인지,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완수하는 길은 무엇인지, 작은 사역에도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와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자세, 겸손과 충성과 의로움, 그리고 평신도가 감당할 세 가지 사명이 무엇인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의 첫째 조건은 왜 깨끗함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 인정받는 &lt;strong&gt;사역자의 첫째 조건은 &amp;#39;깨끗함&amp;#39;(정결)&lt;/strong&gt;이다.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를 사모하는 것보다 먼저 정결한 사람이 되기를 사모해야 한다. 은사와 능력과 지식이 있어도 그릇이 깨끗하지 않으면 그 안에 담긴 것이 오염된다. 쓰임을 받는 것과 주인에게 인정받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한때 크게 쓰임받았더라도 혈기와 교만과 음란과 명예욕을 회개하지 않으면 악한 영이 그 약점을 붙들고 사역을 흔들어 버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큰 집에 금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으며, 귀하게 쓰는 그릇과 천하게 쓰는 그릇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릇의 재료보다 중요한 것은 그릇이 깨끗한가 하는 점이다. 누구든지 악한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고, 거룩하여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되기 때문이다(딤후 2:20-2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후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서 &amp;lsquo;주인&amp;rsquo;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일반적으로 주님을 가리키는 &amp;lsquo;퀴리오스&amp;rsquo;가 아니라 &amp;lsquo;데스포테스&amp;rsquo;(&amp;delta;&amp;epsilon;&amp;sigma;&amp;pi;ό&amp;tau;&amp;eta;&amp;sigmaf;)다. 이는 절대적인 주권자요 소유주라는 뜻을 지닌다. 사역자는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빌리는 사람이 아니다. 나를 소유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 필요에 따라 사용하시는 그릇이다. 그러므로 그릇이 스스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준비는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다. 훈련자가 명령해서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다. 날마다 자기 죄를 살피고 자백하며 악한 영이 붙들 근거를 없애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깨끗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역을&lt;/strong&gt; 시작하면 &lt;strong&gt;작은 자극에도 변동이 심해진다&lt;/strong&gt;. 귀신은 혈기를 자극하여 관계를 깨뜨리고, 교만을 부추겨 책망을 거부하게 하며, 음란과 명예욕을 통하여 위대한 종까지 무너뜨리려 한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는 언제나 회개가 들어가야 한다. 회개 없이 시작한 열심은 오래 가지 못하고, 회개 없이 사용하는 은사는 자기 자랑의 도구가 되기 쉽다. 먼저 죄를 자백하고 악한 영을 내보낼 때 마음이 안정되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능력도 온전히 사용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원(救援, salvation)은 인간의 실력이나 공로로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 죄 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수 있겠는가.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다(엡 2:8-9). 그러나 구원받은 뒤에 어떤 삶을 살고 얼마나 충성했는지에 따라 하늘에서 받을 지위와 신분과 상이 달라진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일하지 않은 것을 일한 것으로 계산하지 않으시고, 사람 앞에서만 보인 충성을 영원한 상으로 바꾸어 주지도 않으신다(고후 5:10; 계 22:12).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사실과 행한 대로 상을 받는다는 사실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사역의 출발점은 더 큰 일을 달라고 구하는 데 있지 않다. 오늘 내 안에 있는 혈기와 분노와 시기와 질투와 음란과 자랑을 발견하고 회개하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는 금그릇인가 질그릇인가를 먼저 보시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그릇인가를 보신다. 나를 깨끗하게 하는 일에 힘쓸 때 비로소 주권자의 손에 붙들려 오래도록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끝까지 완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lt;strong&gt;끝까지 완수하려면 먼저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lt;/strong&gt; 한다. 사명이 분&lt;strong&gt;명하지 않으면 환경과 사람의 말에 따라 쉽게 흔들린다&lt;/strong&gt;. 어제까지 하던 일을 오늘 갑자기 그만두고, 지난번에 강조한 것을 다음에는 외면한다면 아직 자기 길을 확정하지 못한 것이다. 사명이 분명한 사람은 처음과 끝이 일관된다. 상황이 어렵고 비난이 따라와도 묵묵히 자기 길을 걷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에게 주어진 사명은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을 단숨에 알게 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랜 시간 조금씩 길을 열어 주셨다. 예수를 믿기 시작할 때부터 천국에 깊은 관심을 갖게 하셨고, 스물다섯 살 무렵에는 생명의 성령의 법 세미나로 알려진 이상관 목사를 만나 배우게 하셨다. 그는 필자의 첫 번째 영적 스승이었다. 필자는 전국 부흥회를 다니는 그를 돕기 위하여 반주를 맡았고, 설교 내용을 기록하여 주보에 요약해 올렸다. 같은 말씀을 거듭 듣고 적다 보니 설교의 흐름과 예화와 성구를 거의 외울 만큼 배우게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시절 필자에게 특별한 실력이 있어서 반주를 맡은 것이 아니었다. 부탁을 받았을 때 &amp;lsquo;아멘&amp;rsquo; 하고 순종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맡기신 분이 책임지실 것이라는 마음으로 섬겼다. 배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이미 안다는 태도가 아니라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누구를 만나든 경청하고 필요한 것을 배우려 했다. 그 모든 배움은 하나님께서 회개와 천국복음의 진리를 찾아가게 하신 과정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다가 1998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07년에 교회를 개척했다. 그리고 2013년에 이르러 비로소 회개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회개 없이는 구원의 여정을 완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경 전체에서 회개의 뜻과 사례를 찾기 시작했다. 그 뒤 4년 동안 연구하고 외친 내용을 모아 2017년에 시중에 나온『회개와 천국복음』(2017, 발해)을 펴냈다. 이 책에서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구원이 어떻게 시작되고 이루어지는지를 정리했다. 예수를 믿고 칭의(稱義, justification)를 받을 때 구원은 시작되지만, 광야와 같은 교회 생활을 지나 천국에 들어갈 때 구원의 경륜이 완성된다. 그러므로 믿음과 회개로 끝까지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한다(빌 2:12; 히 3: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사명을 발견하는 과정은 대개 이처럼 한 걸음씩 진행&lt;/strong&gt;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릇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열어 주시고, 배움과 훈련과 인내를 통하여 사람을 만드신다. 만일 처음부터 모든 환상과 계획을 한꺼번에 보여 주셨다면 필자는 교만해져 타락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때마다 하나씩 알려 주셨고, 마침내 세계에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할 터전까지 마련하게 하셨다. 사명은 어느 날 생겨난 개인의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생을 통하여 빚어 가시는 부르심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사명이 분명해지면 사람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게&lt;/strong&gt; 된다. 필자는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그 이후의 과정과 상관없이 자동으로 영원한 구원을 보장받는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워할 분은 사람이나 마귀가 아니라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하나님 한 분이시다(마 10:28). 하나님께서는 참새 한 마리도 허락 없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며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고 계신다(마 10:29-31). 다윗을 죽이려던 사울이 삼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추격했어도 하나님께서 블레셋의 침입을 통하여 막으시자 다윗을 잡지 못했다. 그래서 그곳은 &amp;lsquo;셀라하마느곳&amp;rsquo;, 곧 분리의 바위라 불렸다(삼상 23:26-2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그리고&amp;nbsp;&lt;strong&gt;회개를 시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악한 영의 공격이 나타났다고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lt;/strong&gt; 하나님께서 중심을 아시고 지켜보신다. 하나님이 쓰시기로 작정하여 오랜 세월 준비하신 사람을 사탄이 마음대로 끌어내릴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비난을 피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받은 사명을 믿음으로 끝까지 수행하는 것이다. 배우는 마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이 열어 주신 길을 따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걸어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작은 사역에도 목숨을 내놓는 자세가 왜 필요한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는 &lt;strong&gt;맡은 일이 크든 작든 목숨을 내놓는 자세로 감당&lt;/strong&gt;한다는 사실이다. 목회와 선교처럼 눈에 띄는 일만 사명이 아니다. 교회를 청소하고,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찬양 한 곡을 맡는 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역이다. 작은 일이라고 적당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를 청소할 때에도 영혼을 회개로 깨끗하게 하듯 하나님의 집 한편을 깨끗하게 한다는 &lt;strong&gt;마음으로 충성(忠誠, faithfulness)해야&lt;/strong&gt;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은 성령께서 각 성에서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는 증언을 들었어도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기 위하여 자기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고백했다(행 20:22-2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목숨을 내놓는다는 것은 자기 생명을 함부로 다루거나 무모하게 행동한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편의와 기분에 따라 버리지 않고, &lt;strong&gt;손해와 고난을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책임진다&lt;/strong&gt;는 뜻이다. &amp;lsquo;이번에는 할 수 있지만 다음에는 못 하겠다&amp;rsquo;며 수시로 돌아서는 사람이 아니라, 한 번 맡은 일을 초지일관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힘들고 부족하다. 모든 능력이 확보된 뒤에 사명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먼저 순종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과 권세를 더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의 첫 스승이었던 광주의 사랑의 빛 교회 이상관 목사는 예수를 믿기 전 조직폭력배로 살다가 감옥 독방에서 성경을 읽고 주님을 만나 목회자가 되었다. 그가 백 평 남짓한 가건물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 소음 문제를 빌미로 위협적인 사람들이 찾아온 일이 있었다. 마침 그날 이상관 목사님의 후배였던 조직폭력배의 우두머리가 있었는데, 그 우두머리의 한마디에 찾아온 사람들이 다 물러갔다. 그 일을 계기로 필자는 왜 그 후배가 우두머리가 되었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싸울 때에는 &amp;lsquo;너를 쓰러뜨리고 나는 살아야겠다&amp;rsquo;는 자세로 싸우지만, 그분은 &amp;lsquo;오늘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amp;rsquo;는 각오로 싸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이야기는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다.&lt;strong&gt; 사명 앞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는 결단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lt;/strong&gt;를 설명하는 비유다. 영적 싸움에서도 악한 영을 두려워하여 피하기만 하면 영권이 자라지 않는다. 회개하고 믿음으로 맞서며, &amp;lsquo;나는 쓰러질지라도 하나님의 원수를 끝까지 대적하겠다&amp;rsquo;는 자세로 서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사탄에게 마음대로 삼켜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싸울수록 믿음이 단련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권(靈權)을 경험하게 된다(약 4:7; 벧전 5:8-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 주셨다. 그렇다면 우리도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드릴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한 아이가 내놓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매우 작은 도시락이었지만, 주님 손에 드려졌을 때 수많은 사람을 먹이는 재료가 되었다(요 6:8-13). 전능하신 주님은 우리 도움 없이도 일하실 수 있지만, 우리의 작은 내어드림을 통하여 일하시기를 기뻐하신다. 그 과정에서 믿음을 시험하시고 하늘의 상을 준비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은 사역일수록 가볍게 여기지 말고 생명을 드리는 마음으로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역자는 왜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역자에게서는 &lt;strong&gt;절대적인 순종&lt;/strong&gt;이 나온다. 나를 부르시고 세우시며 일을 맡기시는 분도 하나님이요, 사역을 멈추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사역자는 자기가 주인이 되어 일을 붙드는 사람이 아니라 주권자의 명령에 따라 시작하고 멈추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amp;lsquo;여기까지다&amp;rsquo;라고 말씀하시면 그날 멈출 수 있어야 한다. &amp;lsquo;내가 이토록 수고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amp;rsquo;라고 자기 권리를 주장한다면 아직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지 못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하나님의 불을 보았고, 큰 승리를 경험했다(왕상 18:20-40). 그러나 이세벨이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로 도망했고, 다시 호렙산까지 가서 자신만 홀로 남았다고 호소했다(왕상 19:1-14). 그는 열심이 특심이었지만 더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will)를 무시하지 않으셨다. 다메섹으로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며,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대신할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명하셨다(왕상 19:15-1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왕상 19: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엘리야는 그 명령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를 지나 요단강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께서 자기를 데려가시기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엘리사에게 기꺼이 자신의 겉옷과 사명을 넘겨주었다(왕하 2:1-14). 그는 그간 자기가 세운 업적을 붙들고 자리를 지키려 하지 않았다. 시작하라고 하실 때 시작하였고, 후계자에게 맡기라고 하실 때 맡겼으며, 그만두라고 하실 때 그만두었다. 이것이 순종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순종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는 자기 생각이다. 어떤 생각을 밤낮으로 되풀이하다 보면 며칠 뒤에는 그럴듯한 논리가 서게 된다. 마침내 &amp;lsquo;내 생각이 옳고 명령한 사람이 틀렸다&amp;rsquo;고 확신하게 된다. 사탄은 이렇게 생각을 이론으로 굳혀 하나님의 뜻에서 사람을 이탈시키려 한다. 바울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한다고 말했다(고후 10:4-5). 그러므로 자기 논리가 아무리 합당해 보여도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그 생각의 출처와 열매를 살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특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안에서 지도자의 정당한 가르침을 받을 때 자기 고집을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 이는 사람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라는 뜻이 아니라, 말씀에 어긋나지 않는 하나님의 인도와 사역의 질서를 존중하라는 뜻이다. 순종하는 사람은 자기 의견이 없어서 따르는 것이 아니다. 내 삶과 사역의 최종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기 때문에 따른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크게 쓰임받을수록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크게 쓰임받을수록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lt;strong&gt;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이 사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하시고 있는 일이기 때문&lt;/strong&gt;이다. 많은 수고를 했더라도 은사와 기회와 능력과 열매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다. 그런데 이것을 잊고 &amp;lsquo;내가 했다&amp;rsquo;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받은 것을 자기를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하기 마련이다. 자기가 최고라고 여기고 다른 사람의 책망을 듣지 못하게 된다. 책망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바로 교만의 뚜렷한 표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자기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고 말했다. 그때 그가 그것이 떠나가기를 세 번 간구했지만 주님은 &amp;lsquo;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amp;rsquo;고 대답하셨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하여지므로 바울은 오히려 자기 약한 것을 자랑했다(고후 12:7-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후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교만하려는 바울에게 두 가지 장치를 두셨다. 하나는 사탄의 사자가 남아 있게 하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약한 부분을 완전히 없애 주지 않으시는 것이다. 이것은 사탄에게 사람을 넘겨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강하다고 착각하지 않고 늘 주님을 찾도록 붙들어 두시려는 배려의 선물이다. 모든 문제가 즉시 해결되고 모든 능력을 한꺼번에 받으면 자기 힘으로 일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부족한 것이 남아 있기에 고개를 숙이고 은혜를 구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큰 사명을 받은 사람일수록 더 큰 시험을 만날 수 있다&lt;/strong&gt;.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크게 쓰시는 만큼 더 깊이 무릎 꿇게 하시고, 끝까지 순종하는지를 살피신다. 높은 계시와 강한 은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저절로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일꾼도 얼마든지 사탄에게 이용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날마다 자신의 동기와 태도를 하나님 앞에서 점검해야 한다. 약함이 드러날 때 불평하기보다 그것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겸손은 하나님 앞에서만 낮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섬기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과거 우리 교회에서 식당 봉사 책임을 맡은 이는 목회자에게 좋은 음식을 챙기며 잘했지만, 다른 봉사자들에게는 위압적으로 명령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 함께 섬기는 다른 지체를 위압적으로 눌러서는 안 된다. &amp;lsquo;하나님께서 내게 이 일을 맡기셨고 당신에게도 일을 맡기셨으니 서로 연합하여 감당하자&amp;rsquo;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많으면 일을 나누고, 부족한 사람은 도우며, 각 사람을 하나님의 종으로 존중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역자는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하여 &lt;strong&gt;겉모습만 잘 꾸미지 말아야&lt;/strong&gt; 한다. 하나님은 보이는 자리와 보이지 않는 자리의 태도를 모두 살피신다. 내가 설교하거나 앞에 설 때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똑같아야 한다. 나 같은 부족한 사람을 사용해 주시는 것이 감사하여 끝까지 낮은 자리에서 봉사할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계속 쓰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의의 면류관을 받을 충성되고 의로운 사역자는 어떤 사람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성도가 훗날 천국에서 주님 앞에 설 때에 받을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머리에 쓰는 면류관이다. 그중에서 의의 면류관을 받을 사역자는 자기에게 맡겨진 길을 끝까지 달리고 믿음을 지킨 사람이다. 바울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전제와 같이 벌써 부어지고 떠날 시각이 가까웠다고 고백했다. 그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며 믿음을 지켰기에,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주실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확신했다. 그 면류관은 바울에게만 아니라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질 것이다(딤후 4:6-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왜 바울은 단순히 면류관이라고 하지 않고 &amp;lsquo;의의 면류관&amp;rsquo;이라고 했는가? 면류관을 주시는 분이 그날 의로우신 재판장이 되어서 판정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역의 크기나 사람의 평판만 보지 않으시고 마음과 동기와 과정까지 심판하신다. 불의하게 이룬 성과에는 상을 주지 않으시며, 사람 앞에서는 열심히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형편없이 산 이중적인 삶도 인정하지 않으신다. 설교할 때의 말과 설교하지 않을 때의 생활이 같고, 사람 앞과 하나님 앞이 같은 사람이 의로운 사역자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amp;#39;충성&amp;#39;은 맡은 일을 신실하고 변함없이 감당하는 것이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다(고전 4:2). 주님도 달란트를 남긴 종들에게 &amp;lsquo;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amp;rsquo;라고 칭찬하시며 더 많은 것을 맡기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하셨다(마 25:21, 23). 충성은 잠시 뜨거웠다가 식는 열심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마음으로 주인이 맡긴 일을 완수하는 태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땅의 삶과 천국의 상급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시며, 불로 각 사람의 공적을 시험하신다(고전 3:12-15).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여 충성하지 않은 삶까지 충성한 것으로 계산되는 것은 아니다. 천국은 의가 지배하는 나라이므로, 이 땅에서 교만하고 불의하게 살면서 하늘에서 높은 지위와 아름다운 집을 기대할 수 없다. 반대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일을 정직하고 신실하게 감당했다면 의로우신 주께서 결코 잊지 않으신다(히 6:10).&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구원은 믿을 때 시작되지만, 천국에 들어갈 때 완성된다고 가르쳐 왔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것은 구원의 시작이었지만, 불순종한 다수는 광야에서 엎드러지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고전 10:1-12; 히 3:16-19). 그러므로 한때 믿었다는 생각이나 한때 쓰임받았다는 경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날마다 회개하고 믿음을 지키며 끝까지 달려가야 한다. 주께서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재판장 앞에 서기를 힘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의로운 사역자는 &lt;strong&gt;자기 공로를 자랑하지 않으면서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lt;/strong&gt; 모든 능력은 은혜로 받았다고 고백하되, 받은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더 많이 수고한다(고전 15:10). 자신이 세운 결과가 아니라 주님의 평가를 바라보고, 눈앞의 칭찬보다 마지막 날의 면류관을 소중히 여긴다. 이러한 사람이라야 생애 마지막에 바울처럼 &amp;lsquo;달려갈 길을 마쳤다&amp;rsquo;고 고백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평신도 사역자가 감당해야 할 세 가지 사명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특별한 사명자들 외에 모든 평신도에게도 분명한 사명이 있다. 그것은 세 가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lt;strong&gt;첫째, 자기 가정의 파수꾼이 되어야&lt;/strong&gt; 한다. 파수꾼은 위험을 먼저 보고 깨우는 사람이다(겔 33:7). 가정에 죄와 분열과 영적 공격이 들어오지 않도록 자신부터 깨어 회개하고, 배우자와 자녀를 말씀과 기도로 지켜야 한다. 다른 가족을 책망하기 전에 자기 안의 혈기와 교만을 처리하고, 사랑과 인내로 가정예배와 신앙생활을 세워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하나님께서 쓰시는 주의 종을 도와야&lt;/strong&gt; 한다. 이는 목회자를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사람을 우상화하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복음 사역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시간과 재능과 물질로 협력하며, 필요한 일을 기꺼이 나누어 맡는 것이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어 주었을 때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이길 수 있었다(출 17:10-13). 사역의 현장에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뿐 아니라 곁에서 손을 붙들어 주는 충성된 동역자가 필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셋째, 교회의 지체를 섬겨야 &lt;/strong&gt;한다. 교회는 한몸이며 성도는 서로 지체다. 눈이 손에게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고, 머리가 발에게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다(고전 12:12-27). 식당 봉사와 청소와 교사와 찬양과 안내는 서로 경쟁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자리다. 맡은 역할이 다르다고 우열을 정하거나, 책임을 맡았다고 다른 지체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서로 봉사해야 한다(벧전 4:10-1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세 가지 사명을 감당할 때에도 &lt;strong&gt;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깨끗함&lt;/strong&gt;이다. 혈기와 분노로 가정을 지키려 하면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시기와 질투로 주의 종을 도우면 사역을 분열시키며, 교만과 명예욕으로 지체를 섬기면 봉사가 지배로 변한다. 그러나 회개하여 악한 영이 떠나가고 마음이 깨끗해지면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능력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며 자신이 할 일도 더욱 분명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평신도의 사명은 목회자의 사명보다 낮은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다른 분량과 자리를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훗날 하나님은 저마다 맡은 자리에서 얼마나 신실했는지를 보신다. 가정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기도를 드리고, 주의 종의 짐을 말없이 나누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한 지체를 돌보는 일이 하늘에서는 귀한 사역으로 기록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유명한 일을 했는가가 아니라 주인이 맡긴 일을 깨끗한 마음과 충성된 자세로 감당했는가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평신도도 자신을 단순한 예배 참석자로 여겨서는 안 된다. 나는 가정에 세워진 파수꾼이며, 복음 사역을 함께 짊어진 동역자이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꾼이기 때문이다. 이 정체성을 붙들고 날마다 회개하며, 작은 일에 목숨을 내놓고,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며, 겸손과 충성으로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삶의 자세를 살펴보았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어느 날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배움과 훈련과 인내를 거치고, 좋은 지도자를 만나 가르침을 받으며, 순종과 성품을 하나씩 다듬는 가운데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모든 준비의 &lt;strong&gt;첫째는 깨끗함&lt;/strong&gt;이다. 회개하여 혈기와 교만과 음란과 명예욕과 자기 자랑을 처리하지 않으면 악한 영이 약점을 붙들어 사역을 흔든다. 그러나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고, 은사와 능력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 큰일을 맡는 것보다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을 먼저 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자기 사명을 분명히 발견한 뒤에는 &lt;strong&gt;둘째로,&amp;nbsp;사람의 비난과 환경의 어려움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걸어가야&lt;/strong&gt; 한다. 작은 봉사에도 생명을 드리는 자세가 필요하며, 시작과 끝과 결과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많은 일을 이루었더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행하셨음을 알고 낮아져야 한다. 약함과 시험이 남아 있을 때에는 불평하기보다 그것을 통하여 주님을 더 의지하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마지막에는 충성과 의로움&lt;/strong&gt;이 남게 해야 한다. 사람 앞과 하나님 앞이 같고, 보이는 자리와 보이지 않는 자리의 삶이 같아야 한다. 구원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고 믿음과 회개로 달려갈 길을 마쳐야 한다. 평신도 역시 가정의 파수꾼으로 서고, 주의 종을 도우며, 교회의 지체를 섬기는 세 가지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나는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어떤 결격 사유가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발견한 죄는 회개하고, 부족한 성품은 고치며, 맡기신 자리에서는 물러서지 않고 충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주님 앞에 서는 날 의로우신 재판장께 인정받고 의의 면류관을 받도록 끝까지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14일(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ChatGPT Image 2026년 9월 14일 오후 09_01_4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b38ac60a4855d76cac32311232061be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7864f2c9ee4e1507fff8907f64cdb05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f754597534104312fd9225126b427d7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d488b9c95917ee435bb4dae80ede884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70ef40a45c3eba7759c6bea9351d4e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097483af9528c25ea54a6a53fdd42f9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a74f4240493ff4e3322e88f5639bbc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696ec150dce1a3e1a9620645ad73b53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1f6964e99c2852b57e709a73acd5129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37ad2b6bae177fbaad4713ee0b22a84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56fa7406e490363663223a980adf3d0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Forging_the_Master_s_Vessel.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95a8ba5c12ecf6af217ba66a2ed659f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하나님께_인정받는_사역자의_길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543094fba81b6f875ca987fb054d982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_사역자의_7가지_삶의_자세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b62d5a8daca1c9dd3e2745eac50d424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8c2758273891d20869f231e12421034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52f695dc15337f22967fcabc4b229a7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d39f1089890fa764196e4ab2f220cb6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c130a7e065e04a1c15e2183547a60e9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e3ea03ea956960a08c8581300f42b00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096546b880d777635acdd1b64084d10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6482234da97ad7708cf0ba4b0d27028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1c748aecbbfb45e0b2d1add053a6fbe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08b1284ac9ca8dd654bc65fe4e38953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94455bc98ee37336bf53de5d89e164b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사역자론(16)] The_Masterpiece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35/266/075375ea337543dffb6288b14e79fbb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90)]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1)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5)(단9:24~27)_2026-09-11(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266264"/>
	<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s://dongtanms.kr/morning_qt/266264#comment"/>		<id>https://dongtanms.kr/morning_qt/266264</id>
		<published>2026-09-11T09:14:47+09:00</published>
		<updated>2026-09-11T12:43:15+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오늘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90)]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1)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5)(단9:24~2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bSDlEjPO81c [설교의 메시지를 파악하게 해주는 핵심질문 7가지 ] 1. 70이레를 바르게 해석할 세 가지 마스터 키는 무엇인가? 2. 왜 70이레의 핵심은 날짜가 아니라 죄 용서와 그리스도인가? 3. 다니엘서 9장 24절의 여섯 가지 목적은 어떻게 성취되는가? 4. 70과...</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오늘 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90)]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1)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5)(단9:24~2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bSDlEjPO81c&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bSDlEjPO81c?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설교의 메시지를 파악하게 해주는 핵심질문 7가지 ]&lt;/strong&gt;&lt;/p&gt; &lt;p&gt;1. 70이레를 바르게 해석할 세 가지 마스터 키는 무엇인가?&lt;br /&gt; 2. 왜 70이레의 핵심은 날짜가 아니라 죄 용서와 그리스도인가?&lt;br /&gt; 3. 다니엘서 9장 24절의 여섯 가지 목적은 어떻게 성취되는가?&lt;br /&gt; 4. 70과 490이라는 수에는 어떤 안식년과 희년의 비밀이 있는가?&lt;br /&gt; 5. 안식년과 면제년은 무엇이 다르며 각각 무엇을 놓아 주는가?&lt;br /&gt; 6. 희년이 회복하는 네 가지는 우리의 구원과 어떻게 연결되는가?&lt;br /&gt; 7. 희년의 성취자 예수를 믿는 성도는 마지막 때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190)&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1)&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70이레의 환상과 성취(05)&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단 9:24-27)&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의 70이레(七十週, seventy weeks)는 왜 70에 7을 곱한 기간으로 주어졌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날짜와 연도를 맞추는 일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그 기간에 이루려 하신 뜻을 보아야 한다. 다니엘서 9장 24절은 허물이 그치고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고 영원한 의가 드러날 것이라고 선포한다. 결국 70이레의 핵심은 죄를 용서하고 마귀의 종 된 인간에게 자유를 주실 기름부음받은 자(受膏者, anointed one)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형제가 죄를 범하면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되느냐는 베드로의 질문에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셨다(마 18:21-22). 다니엘의 70이레와 예수님의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는 말씀에는 같은 수가 들어 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에 담긴 용서와 해방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에는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네 가지 중요한 예표가 있다. 제2장의 손대지 아니한 돌, 제7장의 인자 같은 이, 제9장의 기름부음 받은 자, 제10장부터 제12장까지의 세마포 옷을 입은 이다. 그 가운데 제9장은 기름부음 받은 자가 끊어질 것을 예언한다. 이는 영광 가운데 재림하실 그리스도보다 먼저 죽으러 오신 초림의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70이레(단 9:24-27)는 해석하기 어려운 본문이어서 여러 이단과 종말론이 자기 시간표를 세우는 데 이용해 왔다. 특히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는 69이레와 마지막 한 이레 사이에 긴 교회 시대를 넣고, 마지막 한 이레를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는 종말의 7년으로 풀었다. 그러나 그것은 본문의 순서를 따르지 않은 자의적인 해석이다. 본문을 그대로 읽으면, 초림하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죄 용서가 핵심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70이레를 바르게 해석하는 마스터 키는 무엇인가? 적어도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첫째,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단 9:24). 둘째, 70이라는 수에 담긴 안식년&amp;middot;면제년&amp;middot;희년의 구속적 의미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대하 36:21; 단 9:24). 셋째,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와 마지막 한 이레를 떨어뜨리지 말고 연속된 기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단 9:24-27). 이 외에도 더 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열쇠만 제대로 사용하면 70이레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계획하신 인류의 자유와 기업 회복이 보일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70이레를 여는 세 가지 마스터 키와 다니엘서 9장 24절의 여섯 목적, 숫자에 담긴 안식년과 희년의 비밀, 그리고 마지막 시대의 성도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70이레를 바르게 해석할 세 가지 마스터 키는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신학교 기숙사 사생회장을 맡았을 때 였다. 그때에 회장직 때문에 모든 방을 열 수 있는 마스터 키를 받은 적이 있다. 각 방의 열쇠로는 자기 방만 열 수 있지만 마스터 키는 어느 방이든 열 수 있었다. 70이레에도 수많은 해석 가운데 본문의 전체 문을 열어 주는 마스터 키가 필요하다. 어느 한 연대나 번역만 붙잡아서는 전체를 풀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 번째 마스터 키(key, 열쇠)&lt;/strong&gt;는 &lt;strong&gt;그리스도 중심적 해석&lt;/strong&gt;(基督中心的解釋, Christ-centered interpretation)이라는 키다. 다니엘서 9장 24절의 여섯 일을 완전히 이룰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고레스는 포로 귀환을 허락했고, 느헤미야도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했지만 죄를 종결하거나 영원한 의를 가져오지 못했다. 역사적 인물들이 그리스도의 일을 부분적으로 예표할 수는 있어도 예언의 최종 실체가 될 수는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두 번째 마스터 키&lt;/strong&gt;는 &lt;strong&gt;70이라는 숫자 속에 감추어진 구속의 의미&lt;/strong&gt;다. 70은 7에 10을 곱한 수이며, 70이레는 70에 다시 7을 곱한 기간이다. 그리고 490은 다시 49에 10을 곱한 수이다. 여기서 7은 안식을 가리키고, 49는 해방의 주기를 가리키고, 10은 충분함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70이라는 수를 통하여 땅과 사람을 쉬게 하고 죄의 빚을 탕감하며 종을 풀어 주고 잃은 기업과 가족을 회복하실 뜻을 미리 다니엘에게 보여 주신 것이.&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세 번째 마스터 키&lt;/strong&gt;는 &lt;strong&gt;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와 한 이레의 연속성&lt;/strong&gt;이다. 본문은 일곱 이레가 지나고 예순두 이레가 지나며 마지막 한 이레가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 준다(단 9:25-27). 그런데 69이레 뒤에 정해지지 않은 긴 간격을 집어넣고 마지막 한 이레만 먼 종말로 옮기면 예언이 끊어진다. 그렇게 하면 27절의 &amp;lsquo;그&amp;rsquo;를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아니라 적그리스도로 해석하게 되고, 그가 7년 평화조약을 맺었다가 3년 반 뒤에 제사를 금지한다는 시간표를 만들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amp;lsquo;그&amp;rsquo;를 앞에서 말한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읽으면 모든 내용이 예수님의 초림 사역 안에서 다 해결된다. 주님은 공생애 마지막에 가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피로 제자들과 언약을 세우셨고, 공생애 뒤 십자가에서 끊어지셨으며, 완전한 속죄(贖罪, atonement)를 이루어 희생 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하셨다(막 14:24; 히 10:10-14).&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세 개의 열쇠는 따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에 놓고 숫자의 구속적 의미를 보며 예언의 연속성을 지킬 때 70이레의 본질이 드러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기준을 놓치면 초림하신 예수님의 죽음보다 종말의 적그리스도에게 관심이 쏠린다. 다니엘서 9장에는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고 황폐하게 하는 사건도 나온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 40년 만에 실행된 예표적인 인물일 뿐이다. 정말 2천 년을 뛰어넘어 종말의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력이 등장했다고 해서 예언의 주인공까지 대적 세력으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악한 세력은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배경이며, 중심은 끊어짐을 당하면서도 새 언약(新約, new covenant)을 세우는 그리스도다. 본질을 붙들면 적그리스도의 출현 날짜를 계산하는 데 빠지지 않고 예수님의 속죄와 언약을 붙들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왜 70이레의 핵심은 날짜가 아니라 죄 용서와 그리스도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70이레를 연구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그것이 어떤 시기를 말하는 것이지만 날짜가 중심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날짜를 기준으로 한다면, 어느 왕의 명령을 기점으로 삼아야 할른지, 그리고 한 이레를 며칠이나 몇 년으로 계산해야 할 것인지에 따라 여러 시간표들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재림 시기에 대한 정확한 날짜와 시각을 사람이 알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마 24:36). 우리는 시대의 징조를 분별해야 하지만 숫자를 억지로 짜 맞추어 날짜를 확정해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70이레의 중심&lt;/strong&gt;은 &lt;strong&gt;죄를 용서할 자가 온다&lt;/strong&gt;는 데 있다. 다니엘은 단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갈 날만 묻지 않았다.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자기와 자기 민족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정치적 포로 귀환을 넘어 인류를 마귀의 종살이에서 해방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보여 주셨다. 사람을 원래의 고향과 가족과 기업으로 돌아가게 할 완전한 희년의 계획이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베드로는 형제가 자신에게 죄를 범할 때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셨다. 여기의 일곱과 일흔은 용서의 횟수를 계산하여 그 다음에는 미워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안식년과 희년의 정신을 따라 완전한 용서와 해방을 베풀라는 말씀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8:21-22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의 한 &amp;lsquo;이레(일곱, 7)&amp;rsquo;는 문맥에 따라 한 묶음의 일곱을 뜻한다. 일곱 날이 될 수도 있고 일곱 해로 계산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수를 통하여 죄를 끝내고 해방을 이루실 충분하고 완전한 기간을 정하셨다는 사실이다. 본문이 말하는 기름부음 받은 자의 죽음과 언약과 제사의 종결에 초점을 맞추면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에 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니엘서 9장의 &amp;#39;기름부음을 받는 자&amp;#39;&lt;/strong&gt;는&amp;nbsp;&lt;strong&gt;재림 때 나타날 적그리스도보다 먼저 초림하여 죽으실 예수님&lt;/strong&gt;을 보여 준다. 다니엘서 7장의 &amp;#39;인자 같은 이&amp;#39;는 영광과 권세를 받고 재림하실 왕을 강조하지만, 제9장의 &amp;#39;기름부음 받은 자&amp;#39;는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고 예언한다(단 9:26). 우리의 죄를 용서하려고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실 어린양이 만세 전에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벧전 1:18-20).&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신 뒤에는 구원의 범위도 모든 민족으로 확장되었다. 이제 혈통적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다(롬 2:28-29; 갈 3:29). 70이레의 죄 용서와 자유는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참여하는 자에게 주어진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다니엘서 9장 24절의 여섯 가지 목적은 어떻게 성취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70이레에 정해진 여섯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lt;strong&gt;첫째 반역을 끝내는 것&lt;/strong&gt;이며, 둘째 &lt;strong&gt;죄를 마감하는 것&lt;/strong&gt;이다. 그리고 &lt;strong&gt;셋째 죄악을 속죄하는 것&lt;/strong&gt;이며, &lt;strong&gt;넷째 영원한 의를 가져오는 것&lt;/strong&gt;이다. 그리고 &lt;strong&gt;다섯째 환상과 선지자의 말씀을 확정하고 성취하는 것&lt;/strong&gt;이며, &lt;strong&gt;여섯째 지극히 거룩한 곳에 기름을 붓는 것&lt;/strong&gt;이다. 이 여섯 가지가 70이레를 그리스도 중심으로 읽어야 할 가장 강력한 근거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단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부터 넷째까지는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lt;/strong&gt;이다. 고레스도 느헤미야도 사람을 죄에서 구원(救援, salvation)할 수 없다. 오직 죄 없으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죄값을 지불하셨고,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의를 가져오셨다(롬 3:21-26). 주님은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독립시키는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죄와 마귀의 권세에서 건지는 영적 메시아로 오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로 환상과 선지자의 말씀에 인을 친다는 것은 구약의 예언이 그리스도 안에서 확증되고 성취된다&lt;/strong&gt;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자신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눅 24:44). 다니엘서의 환상도 예외가 아니다. 손대지 아니한 돌과 인자 같은 이와 기름부음 받은 자와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모두 초림과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여섯째로 지극히 거룩한 곳에 기름을 붓는다는 말씀은 사람 한 명에게만 기름을 붓는다는 뜻이 아니라 거룩한 처소가 성별되는 것&lt;/strong&gt;을 가리킨다. 필자는 이것을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교회가 탄생하는 사건과 연결하여 해석하고자 한다.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뒤 성령을 보내심으로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행 2:1-4; 고전 3:16).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성령을 받은 자가 거룩한 처소로 세워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우리말 번역 가운데는 이 마지막 표현을 &amp;lsquo;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부음을 받는다&amp;rsquo;고 사람에게 적용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히브리어 표현은 문맥상 지극히 거룩한 것 또는 지극히 거룩한 곳을 가리킬 수 있다. 필자는 여기에서 거룩한 처소에 기름이 부어지는 의미를 선택한다. 그렇게 읽으면 예수님 개인이 기름부음을 받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분이 성령을 보내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처소로 기름붓고 구별하시는 교회의 탄생까지 70이레의 목적 안에 들어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흐름은 &lt;strong&gt;이스라엘의 절기&lt;/strong&gt;에도 나타난다. &lt;strong&gt;유월절&amp;middot;무교절&amp;middot;초실절&amp;middot;칠칠절로 이어지는 봄 절기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성령 강림&lt;/strong&gt;을 보여 준다. &lt;strong&gt;나팔절(喇叭節, Feast of Trumpets)&amp;middot;속죄일(贖罪日, Day of Atonement)&amp;middot;초막절(草幕節, Feast of Booths)로 이어지는 가을 절기는 마지막 때의 소집과 악의 청산과 영원한 거처&lt;/strong&gt;를 보여 준다. 초림의 예수께서 죄 용서와 교회의 탄생을 시작하셨고, 재림(再臨, second coming)하실 예수께서 그 구속의 경륜을 완성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봄 절기와 가을 절기를 한데 섞어서는 안 된다&lt;/strong&gt;.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과 무교절의 무덤, 초실절의 부활, 칠칠절의 성령 강림은 초림의 사역 안에서 순서대로 이루어졌다. 가을에는 나팔이 울려 백성이 모이고, 속죄일에 죄와 악이 청산되며, 초막절에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기쁨이 완성된다. 그러므로 70이레는 초림만 말하고 끝나는 예언도 아니며 재림의 사건만 떼어 다루는 예언도 아니다. 초림으로 시작된 죄 용서와 교회의 성별이 재림 때 완전한 자유와 영원한 거처로 이어지는 하나의 구속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amp;lsquo;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amp;rsquo;도 혈통과 지리만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lt;/strong&gt;. &lt;strong&gt;천국에서 이스라엘은 &amp;#39;이기는 자들&amp;#39;을 가리키고, 거룩한 성은 &amp;#39;새 예루살렘&amp;#39;으로 완성되기 때문이&lt;/strong&gt;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성령의 기름부음 아래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진다. 이것이 다니엘서 9장 24절의 여섯 목적이 향하는 최종 방향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70과 490이라는 수에는 어떤 안식년과 희년의 비밀이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70은 7에 10을 곱한 수다. 7은 이 땅에서의 완전한 주기를, 10은 충분함을 나타낸다. 이스라엘이 지키지 않은 안식년(安息年, sabbatical year)을 하나님께서 충분히 되찾으신 기간이 바벨론 포로 70년이다. 역대하 기자는 유다가 포로로 떠난 뒤 땅이 황폐한 채 안식년을 누리며 70년을 지냈다고 기록한다(대하 36:20-2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대하 36:21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분배받기 시작한 주전 1399년부터 예루살렘이 멸망한 주전 586년까지를 계산해 보았다. 그 기간은 813년이다. 813년을 7년으로 나누면 116번의 온전한 안식년 주기가 나온다. 만약 지키지 않은 안식년을 숫자 그대로 모두 갚게 하셨다면 116년 동안 땅을 비우게 하셔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70년을 정하셨다. 이는 기계적인 날짜 계산보다 7 곱하기 10이라는 영적 의미를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희년도 마찬가지다. 813년에는 50년 단위의 희년이 16번 포함된다. 이스라엘은 그 희년도 온전히 지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모든 누락을 산술적으로 더하여 116년이나 16회의 별도 기간을 부과하신 것이 아니라 70이라는 수로 충분한 징계와 안식을 나타내셨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징계하시면서도 자기 백성을 영원히 버리지 않으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70이레는 70에 다시 7을 곱한 490이다. 이를 49년 단위로 보면 희년의 주기를 열 번 충분히 펼친 수가 된다. 정확히 50년마다 오는 희년과 산술적으로 동일하다는 말이 아니라, 일곱 안식년의 완성과 희년의 자유를 충만하게 이루실 뜻이 담겼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를 만세 전에 설계하시고 그 중심에 기름부음 받은 자를 두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숫자의 비밀을 깨닫게 된 계기도 중요하다. 다니엘은 자신만 편안히 살 길을 구하지 않았다. 왕궁에서 높은 지위에 있었지만 자기와 자기 민족의 죄를 끌어안고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했다. 하나님께서는 한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눈물 흘리는 종에게 70년을 넘어 70이레의 비밀을 보여 주셨다. 자기 죄뿐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죄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 우리도 대한민국의 역사와 교회의 형편을 남의 일처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온 우주와 나라들의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을 통하여 시대를 움직이신다. 다니엘처럼 &amp;lsquo;그들이 죄를 지었다&amp;rsquo;고 말하는 데 머물지 말고 &amp;lsquo;우리가 죄를 지었다&amp;rsquo;고 고백해야 한다. 자신은 왕궁에서 평안히 살 수 있어도 민족의 황폐함을 두고 울었던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 더 큰 계시를 주셨듯이, 나라와 민족의 구원을 품는 기도는 마지막 시대의 비밀을 감당할 그릇을 만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70과 490을 단순한 연대표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70년은 빼앗긴 땅에 안식을 돌려주는 기간이고, 70이레는 죄와 마귀에게 빼앗긴 인간에게 영원한 자유를 돌려주는 기간이다. 숫자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의 충만한 성취를 가리키는 표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안식년과 면제년은 무엇이 다르며 각각 무엇을 놓아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안식년과 면제년(免除年, year of release)은 모두 칠 년을 단위로 하지만 대상과 시작점이 다르다. 안식년은 공동체 전체에 정해진 일곱째 해에 땅을 쉬게 하는 규례다. 육 년 동안 씨를 뿌리고 포도원을 가꾸어 소출을 거두지만 일곱째 해에는 파종도 가지치기도 하지 않는다(레 25:1-5). 이 규례의 핵심은 땅이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하는 데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5:4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안식년에 저절로 난 소출은 땅 주인만 독점할 수 없었다. 주인과 남종과 여종과 품꾼과 거류민이 함께 먹고 가축과 들짐승도 먹었다(레 25:6-7).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땅에서 유대인만 배불리 먹이려 하지 않으셨다. 나그네와 종과 짐승까지 은혜를 누리게 하셨다. 이는 온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기다린다는 말씀과 연결된다(롬 8:19-2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으로 오셨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는 외형만 붙잡았지만, 주님은 병들고 사탄에게 매인 자를 고쳐 참된 안식을 주셨다(마 12:8; 눅 13:10-17).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자신에게로 부르시며 쉼을 주겠다고 말씀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면제년은 땅보다 사람에게 초점이 있다. 어떤 사람이 빚을 지거나 종으로 팔려 온 때부터 육 년을 섬기고 일곱째 해가 되면 그를 놓아준다. 공동체에 정해진 같은 해에 일제히 돌아오는 안식년과 달리, 사람마다 빚을 지고 종이 된 시점에 따라 놓이는 때가 달라질 수 있다. 그때 형제의 빚을 탕감하고 히브리 종을 자유롭게 하되 빈손으로 보내지 말고 넉넉히 주어야 했다(신 15:1-3, 12-1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신 15:1-2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 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주기도문에도 면제년의 정신이 담겨 있다. 마태복음 6장 12절의 헬라어 &amp;lsquo;오페일레마&amp;rsquo;는 빚을 뜻한다. 우리말 성경은 죄로 풀어 번역했지만, 그 배경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놓아준 것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빚을 용서해 달라는 간구가 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의 비유도 큰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 자기에게 적게 빚진 형제를 용서해야 한다는 원리를 보여 준다(마 18:23-3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안식년이 놓아주는 것은 땅이며, 면제년이 놓아주는 것은 빚진 사람과 종 된 사람이다. 영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육체도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으신 땅이며, 죄로 마귀의 종이 된 인간도 하나님의 소유다. 예수께서는 육체에 참된 안식을 주고 죄의 빚을 탕감하며 마귀의 종살이에서 우리를 풀어 주려고 오셨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희년이 회복하는 네 가지는 우리의 구원과 어떻게 연결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희년(禧年, Jubilee)은 안식년과 면제년을 포괄하면서 두 가지 회복을 더한다. 일곱 안식년, 곧 49년이 지난 뒤 50년째를 거룩하게 구별하고, 일곱째 달 열흘 속죄일에 뿔나팔을 불어 온 땅의 주민에게 자유를 공포했다(레 25:8-10). 그 나팔을 &amp;lsquo;요벨&amp;rsquo;이라고 하며, 희년은 완전한 해방과 원상 회복의 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레 25: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희년의 첫 번째 회복은 땅의 안식이다. 파종과 가지치기를 멈추고 하나님의 땅을 쉬게 한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마귀에게 점령당하여 고통받던 육체가 예수님 안에서 안식을 얻는 것이다. 주님은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두루 다니시며 마귀에게 눌린 사람들을 고치셨다(행 10:3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두 번째 회복은 종의 해방과 빚의 탕감이다. 마귀는 죄를 근거로 사람을 붙들고 종노릇하게 하지만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죄값을 지불하셨다. 사람이 회개(悔改, repentance)하여 죄를 자백하면 죄 사함을 받고 악한 영이 떠날 근거가 생긴다(요일 1:9). 축사(逐邪, deliverance)는 내 몸이 귀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했음을 선포하고 마귀의 지배에서 놓이는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는 소유지, 곧 기업의 회복이다. 이스라엘 사람이 가난하여 조상의 땅을 팔았더라도 희년이 되면 본래 소유지로 돌아갔다. 우리의 본래 기업은 하늘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늘의 상속자로 계획하셨고, 예수께서는 마귀에게 빼앗긴 기업을 다시 차지하도록 길을 여셨다.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가 되려면 믿음으로 시작할 뿐 아니라 끝까지 회개하며 주님을 따라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넷째는 가족의 회복이다. 종이 되었던 사람은 희년에 원래 가족에게 돌아갔다.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의 자녀다. 마귀는 사람을 자기 가족으로 만들려 하지만 예수께서는 피값으로 우리를 사서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려보내신다. 희년은 단지 감옥에서 풀려나는 소극적인 자유가 아니라 본향과 기업과 가족을 모두 되찾는 적극적인 구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네 가지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된다. 땅도 하나님의 것이고, 사람도 하나님의 것이며, 천국과 그 기업도 하나님의 것이다. 마귀는 어느 것도 영원히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기름부음 받은 자를 보내 육체에 안식을 주고, 빚을 없애고, 종을 해방하며, 하늘의 기업과 하나님의 가족을 회복하신다. 490년이라는 70이레는 바로 이 희년의 충만한 성취를 향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희년의 성취자 예수를 믿는 성도는 마지막 때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께서는 희년의 성취자로 오셨다.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61장의 두루마리를 펴시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려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읽으셨다. 그리고 이 말씀이 듣는 자들의 귀에 응했다고 선언하셨다(눅 4:16-2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61:1-2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초림하신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희년을 시작하셨고, 성령을 보내 교회를 거룩한 처소로 세우셨다. 마지막 때에는 가을 절기의 순서가 성취된다. 나팔절에는 주님이 천사들을 보내 나팔을 불게 하여 자기 백성을 소집한다. 필자는 이것을 단순한 피난이 아니라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할 전사들을 부르는 소집으로 해석한다. 속죄일에는 악의 세력이 청산되고, 초막절에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영원한 천국의 거처가 완성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지금은 전사 같은 신부를 준비하는 때다. 아가서가 보여 주듯이 성도는 백합화같이 정결한 신부일 뿐 아니라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전사 같은 신부가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도 신부로 세우는 신부가 되어야 한다. 자기만 간신히 천국에 들어가려 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여 다른 사람도 하늘의 기업과 가족에게 돌아오게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준비의 첫째는 회개다. 마귀와 내통할 죄의 근거를 그대로 둔 사람은 거룩한 전쟁에 쓰임받기 어렵다. 회개기도문으로 죄를 자백하고 악한 영을 내보내며 몸과 마음을 주님의 소유로 구별해야 한다. 필자는 오늘날의 회개 훈련을 주님이 마지막 전사 후보자를 준비시키는 과정으로 본다. 죄 덩어리요 흙 덩어리였던 이방인도 회개하면 은혜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영적 속박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도 희년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다만 정신질환이나 현실 판단 상실을 한 가지 영적 원인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자해&amp;middot;타해 위험이나 급성 정신증이 나타나면 즉시 119와 응급실 또는 정신건강의학과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회개와 축사는 전문 치료를 임의로 중단할 근거가 아니다. 생명을 보호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영적 자유를 섬겨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준비의 둘째는 바른 말씀에 서는 것이다. 번역과 교리의 틀이 잘못되면 성경을 읽고도 본뜻에서 멀어질 수 있다. 세대주의적 번역은 70이레를 적그리스도 중심으로 끌고 갈 수 있고, 예정론(豫定論, predestination)의 틀에 갇힌 번역은 한 번 얻은 구원이 회개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처럼 읽히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원감람나무도 믿지 않을 때 꺾였으므로 돌감람나무였던 이방인은 더욱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한다(롬 11:17-22; 빌 2:1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유대인도 버려야 할 민족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다. 루터의 후기 반유대적 글이 후대의 반유대주의에 악용되었듯이, 예수를 거절한 조상의 죄를 이유로 오늘의 후손을 미워하거나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생명이 붙어 있는 사람에게는 회개하고 구원받을 기회가 있다. 그러므로 살인과 낙태와 자살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생명을 살리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자살 위험에 처한 사람은 정죄하지 말고 즉시 곁을 지키며 전문적인 응급 도움을 연결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다.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하나님께서는 천국의 기업을 차지하고 다른 영혼까지 이끌 사람을 찾으신다. 희년의 성취자이신 예수를 붙들고 회개하며,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 그때 마지막 나팔이 울려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이 부르시는 대열에 설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70이레를 여는 세 가지 마스터 키와 죄 용서라는 중심 주제, 다니엘서 9장 24절의 여섯 목적, 70과 490의 영적 의미, 안식년&amp;middot;면제년&amp;middot;희년의 차이와 마지막 시대의 준비를 살펴보았다. 70이레는 날짜를 맞히기 위한 암호가 아니라 기름부음 받은 자를 통하여 죄를 끝내고 인간을 마귀의 속박에서 해방하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니엘서 9장의 기름부음 받은 자는 고레스나 느헤미야로 완성되지 않는다. 초림하여 십자가에서 끊어지고 자신의 피로 언약을 세우며 완전한 제사로 옛 제사를 끝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예언을 이룬다. 주님은 성령을 보내 교회를 거룩한 처소로 세우셨고 다시 오셔서 영원한 의와 희년의 나라를 완성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70은 7에 10을 곱한 수이며, 70이레는 70에 다시 7을 곱한 수다. 이 숫자는 이스라엘이 지키지 않은 날짜를 산술적으로 정산하는 데 머물지 않고, 하나님께서 안식과 면제와 희년을 충분하고 완전하게 이루실 것을 보여 준다. 70년 동안 땅을 쉬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70이레를 통하여 사람과 기업과 가족까지 회복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안식년은 땅을 놓아주고, 면제년은 빚진 자와 종을 놓아주며, 희년은 여기에 소유지와 가족의 회복을 더한다. 우리의 육체도, 생명도, 천국의 기업도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예수께서는 죄의 빚을 갚고 마귀의 종살이에서 우리를 풀어 하늘의 본향과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때의 전사 같은 신부로 준비되어야 한다. 날마다 회개하여 마귀가 붙잡을 근거를 없애고, 성령의 기름부음 아래 말씀과 복음으로 다른 영혼을 살려야 한다. 혈통과 교단과 과거의 신앙경력에 기대지 말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하여 희년의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들고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 하늘의 기업과 하나님의 가족에게 돌아가며 다른 영혼도 그 대열에 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09월 11일(금)&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p&gt; &lt;p&gt;이 설교는 다니엘서의&amp;nbsp;&lt;strong&gt;&amp;lsquo;70이레&amp;rsquo; 환상&lt;/strong&gt;을 그리스도 중심적인 관점에서 풀어내어, 이것이 단순한 날짜 계산이 아닌 인류를 향한&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구속적 설계&lt;/strong&gt;임을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70이레의 핵심을 구약의&amp;nbsp;&lt;strong&gt;안식년, 면제년, 희년&lt;/strong&gt;&amp;nbsp;개념과 연결하며, 이는 인간이 마귀의 포로 상태에서 벗어나 죄 사함을 얻고 영원한 기업을 회복하는 과정을 예표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세대주의적 해석처럼 미래의 적그리스도나 물리적 날짜에 집착하기보다,&amp;nbsp;&lt;strong&gt;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lt;/strong&gt;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를 끝내고 영원한 의를 드러내신 본질적 사역에 집중할 것을 촉구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amp;nbsp;&lt;strong&gt;회개&lt;/strong&gt;를 통해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참된 자유와&amp;nbsp;&lt;strong&gt;희년의 축복&lt;/strong&gt;에 동참하여 천국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70이레 환상의 궁극적 목적임을 일깨워 줍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