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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침묵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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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11)]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7)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4)(시22:1~21)_2026-06-03(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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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6-03T23:23:14+09:00</published>
		<updated>2026-06-04T01:23:40+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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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1)]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7)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4)(시22:1~2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SMRwAH_FhHU 1. 들어가며 다윗은 메시아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이다. 이사야를 메시아 예언의 대표 선지자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지만, 예언의 분량과 구체성의 넓이에 있어서는 다윗의 시편이 이사야서를 훨씬 능가한다. 이것이 지난 시간에 이어 이번 시간에...</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기독론(111)]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7)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4)(시22:1~21)&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SMRwAH_FhHU&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SMRwAH_FhHU?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sans-serif; font-size: 15px; line-height: 1.8; margin: 0; padding: 0; } .sermon-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2em; } .sermon-body { font-size: 15px; } .sermon-verse { font-size: 15px;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lt;/style&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메시아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이다. 이사야를 메시아 예언의 대표 선지자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지만, 예언의 분량과 구체성의 넓이에 있어서는 다윗의 시편이 이사야서를 훨씬 능가한다. 이것이 지난 시간에 이어 이번 시간에도 다윗의 시편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이다.&lt;strong&gt; 다윗이 남긴 시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 탄생, 공생애, 고난, 죽음, 부활, 승천, 보좌 우편에서의 통치, 그리고 마지막 아마겟돈 전쟁까지 메시아의 전 생애가 촘촘하게 예언되어 &lt;/strong&gt;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시편을 올바르게 읽는 출발점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다윗이 남긴 수많은 시편 가운데 사무엘상하에 기록된 것은 단 한 편, 시편 18편뿐이다. 나머지 시편들은 사무엘상하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사무엘상하만 읽어서는 다윗을 온전히 알 수 없다는 뜻이며, 시편 전체를 함께 읽어야만 비로소 다윗의 내면과 그가 남긴 예언의 전모가 드러난다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이번 시간에는 다윗의 시편이 이사야서의 메시아 예언과 어떤 점에서 성격이 다른지, 시편 22편과 저주의 시편들에 담긴 메시아 예언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성취되었는지, 그리고 다윗이 그토록 처절한 비탄과 저주의 기도를 드렸음에도 직접 보복하지 않은 영적 이유는 무엇인지를 살펴볼 것이다. 아울러 다윗의 비탄과 저주의 근원에 있는 상처와 악한 영이 무엇이며, 그것이 오늘날 성도의 회개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시편과 사무엘상하의 관계로부터 시작하여, 다윗의 시편이 메시아 예언으로서 어떤 독특한 위치를 지니는지, 그리고 오늘을 사는 성도가 그 가르침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시편 18편이 사무엘하 22장과 겹치는 이유는 무엇이며, 시편의 나머지가 사무엘상하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남긴 시편 가운데 사무엘상하에 그대로 수록된 것은 오직 시편 18편뿐이다. 시편 18편 1절과 2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amp;quot;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amp;quot; (시 18:1-2). 이 노래가 사무엘하 22장에 그대로 나타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8:1-2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무엘하 22장 1절에서 3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amp;quot;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amp;quot; (삼하 22:1-3). 두 본문이 사실상 동일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삼하 22:1-3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 18편이 사무엘하 22장에 수록된 것은 이 시편이 사울의 손에서 구원받은 이후에 지어졌으며, 그 역사적 맥락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무엘하의 저자는 다윗의 생애를 역사적으로 기술하는 과정에서 이 노래를 그대로 인용하였다. 그러나 &lt;strong&gt;다윗이 지은 다른 시편들, 예를 들어 고통 중에 드린 비탄의 시와 저주의 시들은 사무엘상하의 역사적 서술 안에 편입되지 않았다&lt;/strong&gt;. &lt;strong&gt;사무엘상하는 사건의 전개를 중심으로 기록된 역사서이기 때문에, 다윗의 내면적 감정 표현이나 기도의 세부 내용까지 다 담을 수는 없었던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사무엘하 1장에는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amp;#39;활의 노래&amp;#39;가 언급되지만, 그 내용이 사무엘서에 기록되지 않고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다고 전한다 (삼하 1:18). 야살의 책에는 다윗뿐만 아니라 여호수아가 언급한 사건들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 책에는 멜기세덱이 노아의 아들 셈이었다는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성경 밖에 존재했던 자료들을 포함하면 다윗의 기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방대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결국 사무엘상하와 시편의 관계는 이것이다. &lt;strong&gt;사무엘상하는 다윗의 행적을 외면적으로 기록한 역사서이며, 시편은 그 행적 이면에 있던 다윗의 내면, 그의 고뇌와 부르짖음과 찬양을 담은 영적 기록&lt;/strong&gt;이다. &lt;strong&gt;이 둘을 함께 읽을 때 비로소 다윗이라는 인물의 온전한 모습이 드러난다&lt;/strong&gt;. 그리고 그 시편들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에 대한 풍성한 예언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시편을 단순한 찬양시 모음집으로 보지 않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다윗의 시편은 이사야서와 어떤 점에서 메시아 예언의 성격이 다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시편과 이사야서는 모두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다. 그러나 두 예언은 그 성격과 방식에 있어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대언한 선지자였다. 그가 남긴 예언은 하나님이 이사야를 들어 쓰셔서 하나님의 뜻을 직접 선포하게 하신 것이다. 이사야 9장의 &amp;quot;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amp;quot; (사 9:6)는 말씀,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의 예언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lt;strong&gt;이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아 기록했기 때문에, 그의 예언에는 좋은 소식과 구원의 선포가 중심을 이룬다&lt;/strong&gt;. 메시아의 탄생, 갈릴리에서의 사역, 치유의 기적들, 고난받는 종의 대속적 죽음이 이사야서에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lt;strong&gt;그러나 이사야서에서는 다윗의 시편에서처럼 &amp;quot;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amp;quot;, &amp;quot;왜 나에게 응답하지 않으십니까&amp;quot;와 같은 처절한 절규가 나오지 않는다. 이사야는 자신의 고통이나 처지를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말씀을 전달했을 뿐이기 때문&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반면 다윗의 경우는 다르다. 다윗은 자신이 처한 현실의 고통을 하나님 앞에 쏟아내는 과정에서, 그것이 의도치 않게 메시아 예언이 되었다&lt;/strong&gt;. 다윗이 자신의 극한 고통을 과장하여 표현한 것들, 즉 &amp;quot;수족을 찔렀나이다&amp;quot;, &amp;quot;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는다&amp;quot;, &amp;quot;혀가 입천장에 붙었다&amp;quot;는 표현들은 다윗이 실제로 경험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들은 자신의 처지를 시적으로 과장한 표현이다. 그런데 성령은 그 과장된 표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 대한 구체적인 예언으로 삼으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이사야 예언과 다윗 예언의 결정적 차이이다. &lt;strong&gt;이사야의 예언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이사야가 기록한 것이고, 다윗의 예언은 다윗이 자신의 처지를 호소한 것을 하나님이 메시아 예언으로 삼으신 것&lt;/strong&gt;이다. 따라서 &lt;strong&gt;이사야의 예언이 메시아에 대한 긍정적이고 선포적인 예언이라면, 다윗의 예언은 메시아가 당하실 고난과 수치와 버림받음의 부정적이고 처절한 측면을 예언하는 것&lt;/strong&gt;이다. 이 두 예언은 서로 보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에는 메시아의 신분에 관한 예언도 풍성하다. 시편 2편 7절에서는 &amp;quot;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amp;quot; (시 2:7)라고 하여 메시아의 신성을 예언하였고, 시편 110편 1절에서는 &amp;quot;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amp;quot; (시 110:1)라고 하여 메시아가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앉아 통치하실 것을 예언하였다.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를 &amp;#39;내 주&amp;#39;(Lord)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이 단순한 메시아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심을 다윗이 성령 안에서 알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다윗의 시편은 메시아의 신분(하나님의 아들, 철장권세를 가진 만왕의 왕, 선한 목자,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에 이어 메시아의 고난(수족 찔림, 옷 제비뽑기, 조롱), 메시아의 영광(보좌 우편 통치, 부활, 승천)에 이르기까지 메시아의 전 생애를 예언하는 방대한 예언서이다. 이것이 다윗을 메시아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라고 할 수 있는 이유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시편 22편의 비탄 표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 22편은 다윗의 비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 예언으로 성취된 가장 풍성한 본문이다. 다윗이 자신의 처지를 토로한 이 시편의 표현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첫째, 버림받음의 절규&lt;/strong&gt;가 십자가 위에서 성취되었다. 시편 22편 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amp;quot;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amp;quot; (시 22:1).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이 말씀을 그대로 외치셨다. &amp;quot;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amp;quot; (마 27:46). 다윗이 하나님의 응답이 없어 답답했던 그 심경이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실제로 성취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조롱과 비방&lt;/strong&gt;이 성취되었다. 시편 22편 6절에서 8절에 다윗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amp;quot;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내밀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amp;quot; (시 22:6-8). 마태복음 27장 41절에서 43절에 이것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amp;quot;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예수를 욕하더라&amp;quot; (마 27:41-43).&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amp;nbsp; &lt;strong&gt;셋째, 수족이 찔리는 고난&lt;/strong&gt;이 성취되었다. 시편 22편 16절에는 &amp;quot;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amp;quot; (시 22:16)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의 손과 발은 십자가에 못 박혀 찔렸다. 이 시편이 기록된 BC 천년경에는 십자가형이라는 처형 방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이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명백한 예언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넷째, 옷을 제비 뽑는 일&lt;/strong&gt;이 성취되었다. 시편 22편 18절은 &amp;quot;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위하여 제비를 뽑나이다&amp;quot; (시 22:18)라고 기록한다. 요한복음 19장 23절에서 24절에 이것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amp;quot;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amp;quot; (요 19:23-24).&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섯째, 다윗이 시편 22편에서 묘사한 다양한 세력들의 공격&lt;/strong&gt;이 그대로 성취되었다. 12절의 황소는 거대한 종교&amp;middot;정치 세력을, 16절의 개들은 무지하고 폭력적인 군중을, 20절에서 21절의 사자는 악한 영의 세력을 각각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날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현장에는 이 모든 세력이 실제로 집결하였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헤롯과 빌라도, 로마 군병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군중들이 한데 모여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다윗이 자신의 극한 고통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들이 예수님의 수난에서 낱낱이 성취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뿐만 아니라 &lt;strong&gt;시편에는 비탄과 저주의 시편 이외에도 예수님의 고난과 관련된 예언이 따로 기록된 것들&lt;/strong&gt;이 있다. 예를 들어, 시편 31편 5절은 &amp;quot;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amp;quot; (시 31:5)라고 기록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 하신 마지막 말씀이 누가복음 23장 46절에 기록된다. &amp;quot;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숨지시니라&amp;quot;. 다윗이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긴다고 고백한 이 구절이 예수님의 마지막 숨결에서 그대로 성취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시편 34편 20절에는 &amp;quot;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amp;quot; (시 34:20)라는 예언이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군인들이 다른 두 사람의 다리는 꺾었지만 예수님의 다리는 꺾지 않았다. 요한복음 19장 36절은 &amp;quot;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amp;quot;고 기록한다. 다윗의 이 예언이 이처럼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로 성취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저주의 시편(35&amp;middot;55&amp;middot;69&amp;middot;109편)에는 어떤 메시아 예언이 담겨 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앞서 저주의 시편들이 신약의 관점에서 죄됨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저주의 시편들 안에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담아 두셨다. &lt;strong&gt;저주의 시편들은 단지 다윗의 원망과 분노를 기록한 문서가 아니라, 그 안에 메시아의 고난을 예언하는 말씀이 함께 들어 있는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 35편 11절에는 &amp;quot;불리한 증인들이 일어나서 내가 알지 못하는 일로 내게 묻는다&amp;quot; (시 35:11)는 표현이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재판 당시에 거짓 증인들이 일어나 예수님을 고발하던 장면에서 성취되었다. 마태복음 26장 59절에서 61절을 보면 대제사장과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거짓 증거를 찾았음을 기록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 69편 4절에는 &amp;quot;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주게 되었나이다&amp;quot; (시 69:4)라는 표현이 있다. 예수님은 아무 죄 없이 까닭 없이 미움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셨다. 예수님 자신도 요한복음 15장 25절에서 이 말씀을 인용하시며 자신에 대한 예언임을 직접 확인하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 69편 21절에는 &amp;quot;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amp;quot; (시 69:21)라는 표현이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고 하셨을 때 신 포도주를 갈대에 꿰어 드린 것이 요한복음 19장 28절에서 29절에 기록되어 있다. 다윗이 자신의 처지를 표현한 이 구절이 예수님의 십자가 현장에서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 55편 12절에서 14절에는 가장 가까운 친구의 배신이 묘사되어 있다. &amp;quot;나를 비방한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amp;quot; (시 55:12-14).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이 이 말씀의 성취이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13장 18절에서 &amp;quot;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도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amp;quot;고 하시며 이를 직접 확인하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 109편 24절에서 25절에는 &amp;quot;금식함으로 내 무릎이 흔들리고 내 육체는 수척하오며 나는 또 그들의 비방거리라 그들이 나를 보며 머리를 흔드나이다&amp;quot; (시 109:24-25)라는 표현이 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수척하고 비방받으셨으며,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흔들며 조롱하였다 (마 27:39).&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저주의 시편들에는 또한 &lt;strong&gt;저주를 받음 자체에 관한 예언&lt;/strong&gt;도 들어 있다. 시편 109편 17절에는 &amp;quot;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하였도다&amp;quot; (시 109:17)라는 말씀이 있다. 예수님은 갈라디아서 3장 13절의 말씀대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셨다. 또한 저주의 시편들에 이미 살펴본 시편 22편과 함께 시편 38편 11절 &amp;quot;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도 멀리 서있나이다&amp;quot;나 시편 41편 9절 &amp;quot;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amp;quot;와 같은 구절들도 제자들의 배신과 도주에서 성취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저주의 시편들 안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하는 말씀들이 풍성하게 담겨 있다. 하나님은 다윗의 저주 기도까지도 메시아 예언의 도구로 삼으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다윗이 저주 기도를 드리면서도 직접 보복하지 않은 것은 어떤 영적 이유에서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윗은 시편에서 원수들을 향하여 처절한 저주의 기도를 드렸다. 그렇지만 놀라운 사실은 그가 단 한 번도 직접 원수를 응징하거나 보복하지 않았다는 점&lt;/strong&gt;이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달려들어도, 아히도벨이 반역자 압살롬 편에 서서 다윗을 배신해도, 다윗은 손수 보복하지 않았다. 심지어 반역을 일으킨 아들 압살롬에 대해서도 &amp;quot;아이를 위하여 너그럽게 대우하라&amp;quot;고 당부할 만큼 다윗은 직접적인 복수를 삼갔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윗의 영적 성숙도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다윗은 상처가 컸고 악한 영들의 영향 아래 있었기 때문에 저주의 기도를 드렸지만, 그의 영의 나이는 실제로 매우 높았다. 그는 심령 안에서 하나님만이 심판자이심을 알고 있었다.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음에도 다윗은 &amp;quot;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향하여 내가 손을 들어서는 안 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로다&amp;quot; (삼상 24:6)라고 하며 손을 거두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삼상 24:6 그가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라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로다 하고&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다윗의 실제 행동 원칙이었다.&lt;strong&gt; 다윗은 기도로는 저주를 구했지만, 행동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렸다&lt;/strong&gt;. 이것은 다윗이 영적 원칙에 있어서 명확한 선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가 이처럼 분열된 모습을 보인 것, 즉 기도에서는 저주를 구하되 행동에서는 보복을 삼가는 것, 이것이 바로 다윗 안에 있는 악한 영의 영향과 그의 성숙한 영 사이의 갈등을 보여 주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다윗은 사무엘하 15장에서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도망가면서 자신의 아들 압살롬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명령했다. 이것은 자식에 대한 지나친 관용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윗이 어릴 때 받은 상처로 인해 자녀를 엄하게 다루지 못했던 것과도 연결된다. 엘리 제사장이 아들들의 죄를 보면서도 제대로 책망하지 못했던 것처럼, 다윗도 자녀를 마땅히 교훈해야 할 때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 역시 다윗 안에 있는 상처와 악한 영의 영향이 행동으로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우리는 다윗에게서 귀중한 원칙 하나를 배울 수 있다. &lt;strong&gt;내면의 감정이 폭발하여 잘못된 기도를 드리더라도, 실제 행동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lt;/strong&gt;이라는 것이다. &lt;strong&gt;다윗은 완전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행동을 통해 그 미성숙함을 어느 정도 보완하였다. 이 점에서 다윗은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귀한 모델을 제시&lt;/strong&gt;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다윗의 비탄과 저주의 근원에 있는 상처와 악한 영은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윗이 시편에서 이토록 처절한 비탄과 저주의 기도를 드린 데는 근원적인 이유&lt;/strong&gt;가 있다. 그것은 &lt;strong&gt;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깊은 내면의 상처와, 그 상처의 통로를 타고 들어온 악한 영들&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어머니는 이새의 정실 부인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새가 사무엘 앞에 아들들을 소개할 때 다윗을 아예 부르지 않았던 것 (삼상 16:11), 형제들이 다윗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멸시했던 것 (삼상 17:28), 이 모든 정황은 다윗이 가정 안에서 온전한 대접을 받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다윗의 어머니가 첩이었거나 일찍 남편을 잃은 과부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로 인해 다윗을 제대로 보호하고 대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lt;strong&gt; 어린 다윗은 가족으로부터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환경 속에서 자랐다. 이것이 다윗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상처를 다윗은 시편 27편에서 이렇게 고백하였다. &amp;quot;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amp;quot; (시 27:10). 이것은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라 다윗의 실제 경험이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상처는 사람의 가장 깊은 내면을 무너뜨린다. 이후 다윗의 생애에서 하나님의 응답이 잠시 지연되기만 해도 &amp;quot;왜 나를 버리셨나이까&amp;quot;라고 부르짖는 것도 이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다. 버림받은 경험이 깊은 사람은 잠깐의 침묵도 버림받음으로 느끼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lt;strong&gt;이 상처의 통로를 타고 여러 악한 영들&lt;/strong&gt;이 다윗 안에 자리를 잡았다. 그 영들을 살펴보면, &lt;strong&gt;첫째는 억울함을 당하게 하는 영&lt;/strong&gt;이다. 다윗은 자주 아무 잘못 없이 억울한 일을 당하였으며, 그것이 저주의 기도로 이어졌다. &lt;strong&gt;둘째는 상처를 받게 하는 영&lt;/strong&gt;이다. 다윗은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반복적으로 배신을 당하고 상처를 받았다. &lt;strong&gt;셋째는 인정받지 못하게 하는 영&lt;/strong&gt;이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하며 자랐고, 이것이 하나님께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불안함으로 이어졌다. &lt;strong&gt;넷째는 앞길을 막는 영&lt;/strong&gt;이다. 다윗의 생애에는 계속해서 장벽과 위기가 찾아왔으며, 이것이 다윗을 비탄으로 이끌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악한 영들이 다윗 안에 있었기 때문에, 다윗은 그 영들이 충동하는 대로 저주의 기도를 드렸다. 이것은 다윗이 회개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윗은 회개를 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볼 때 그 회개가 온전하지 못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온전한 회개란 단순히 잘못을 고백하는 것을 넘어서, 그 상처와 죄악의 통로를 타고 들어온 악한 영들이 실제로 떠나가는 것이다. 다윗은 회개를 통해 어느 정도 정화를 경험했지만, 악한 영들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그 영들의 영향을 받아 비탄과 저주의 표현을 쏟아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바로 다윗이 온전한 회개가 덜 된 상태였다는 증거이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7장 19절에서 &amp;quot;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amp;quot;라고 고백하며 (롬 7:19), 이것이 자신 안에 거하는 죄라고 하였다. 그 죄의 원제(原提)가 사실은 악한 영들이며, 이것을 내보내는 것은 철저한 자백의 회개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롬 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다윗의 경우를 통해 오늘날 성도에게 회개가 왜 그토록 중요한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비탄과 저주의 기도,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악한 영들의 영향을 살펴보았다면, 이제 이것이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주는 교훈을 살펴보아야 한다.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다윗처럼 악한 영들의 영향 아래 있는가? 그리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답은 분명하다. 회개이다. 그것도 단순한 회개가 아니라 자백하는 온전한 회개이다. &lt;strong&gt;다윗이 저주의 기도를 드렸던 것은 그가 특별히 나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그 안에 있는 악한 영들이 충동하였기 때문이다. 다윗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어린 시절부터 받은 상처, 부모나 형제로부터 받은 상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받은 배신과 소외의 상처를 통해 비슷한 악한 영들의 영향을 받고 있을 수&lt;/strong&gt;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중요한 것은 내가 그러한 상처를 받았다는 것, 그리고 그 상처를 통해 악한 영들이 들어왔다는 것을 자백하는 회개이다. &amp;quot;하나님, 내가 부모를 원망하고 저주했습니다. 내가 나를 괴롭힌 사람에 대해 저주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amp;quot;라고 자백하는 것은 죄를 고백하는 것이며, 그 고백을 통해 악한 영들이 떠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lt;strong&gt;자백은 누구든지 가능한 것이고 누구든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amp;quot;하나님, 그 사람을 저주해 주십시오&amp;quot;라고 청원하는 것은 여전히 허용되지 않는다. 이처럼 자백과 청원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lt;/strong&gt; 한다.&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다윗과 우리를 가르는 지점이다. 다윗은 그러한 저주의 마음을 자백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하나님께 청원하기까지 하였다. 신약의 성도는 그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의 기도 방향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가리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회개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회개를 통해 악한 영들이 떠나갈 때, 우리는 다윗이 경험했던 것처럼 억울함을 당하고, 상처를 받고, 인정받지 못하고, 앞길이 막히는 고통을 훨씬 덜 겪을 수 있다. 다윗이 그토록 억울한 일을 반복적으로 당한 것은, 그 안에 있는 악한 영이 억울한 일을 당하게 만드는 영이었기 때문이다. 악한 영을 회개로 내보내지 않으면, 그 영이 역사하여 계속해서 같은 종류의 고통을 반복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회개는 단순히 죄를 없애는 것을 넘어서, 삶의 고통스러운 패턴을 끊는 실제적인 영적 능력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회개하지 않아 악한 영이 충동하는 가운데 원수를 저주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은 주님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갈라디아서 3장 13절의 말씀대로 우리를 위하여 이미 저주를 다 받으셨다. 우리가 또다시 저주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은 이미 다 치르신 주님의 고난을 헛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는 주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마지막으로,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을 받으려고 해도 결국 한계가 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원수를 용서하는 기도를 드렸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태어날 수 있었다 (행 7:60). 반대로 만약 스데반이 저주의 기도를 드렸다면 바울의 회심은 없었을 것이다. 회개로 악한 영을 내보내고, 원수를 용서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비로소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 18편이 사무엘하 22장과 겹치는 유일한 시편이며 나머지 시편들은 다윗의 내면을 담은 별도의 영적 기록임을, 다윗의 시편과 이사야서가 메시아 예언에 있어서 서로 성격이 다르며 이사야가 하나님의 선포적 말씀을 대언한 반면 다윗은 자신의 고통을 토로한 것이 예언이 되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시편 22편의 버림받음과 조롱과 수족 찔림과 옷 제비뽑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서 낱낱이 성취되었음을, 저주의 시편들(35&amp;middot;55&amp;middot;69&amp;middot;109편) 안에도 거짓 증인의 등장과 까닭 없는 미움과 가까운 자의 배신과 쓸개와 초를 마시는 일에 이르기까지 메시아 예언이 풍성하게 담겨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어서 다윗이 저주 기도를 드리면서도 직접 보복하지 않은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심판자이심을 알고 있는 성숙한 영의 증거임도 살펴보았다. 그리고 다윗의 비탄과 저주의 근원에는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깊은 상처와 그 통로를 타고 들어온 억울함을 당하게 하는 영, 상처받게 하는 영, 인정받지 못하게 하는 영, 앞길을 막는 영들이 있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윗의 경우가 오늘날 성도에게 철저한 자백의 회개가 왜 그토록 중요한지를 가르쳐 준다는 사실까지 살펴보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윗은 메시아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상처받은 한 인간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상처에서 비롯된 과장된 표현들과 처절한 비탄의 언어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하는 도구로 삼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lt;/strong&gt;이다. 다윗이 그토록 처참하게 표현한 것들이 예수님에게는 실제로 이루어졌다. 조롱과 비방, 수족 찔림, 옷 제비뽑기, 가까운 자의 배신, 버림받음, 음부로의 하강까지, 이 모든 것이 다윗의 시편에 기록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낱낱이 성취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제 우리는 두 가지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 첫째, 다윗의 시편을 읽을 때는 언제나 그리스도론적 관점으로 읽어야 한다. 이 시편이 예수님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이 직접 &amp;quot;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이 있다&amp;quot;고 하신 말씀의 뜻이다(눅 24:44). 둘째, 다윗처럼 상처로 인한 악한 영의 영향 아래 비탄과 저주의 말을 쏟아내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이 아님을 알고, 철저한 자백의 회개를 통해 그 악한 영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할 때 우리의 입에서 원망과 저주가 사라지고 감사와 찬양이 넘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회개를 통해 악한 영을 몰아내고, 원수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또 다른 바울을 낳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06월 03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본 설교는 다윗이 남긴 시편이 이사야의 예언보다도&amp;nbsp;&lt;strong&gt;메시아의 생애와 고난을 더욱 방대하고 세밀하게 예언&lt;/strong&gt;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설교입니다. 정보배 목사는 다윗이 겪은 소외와 고통의 고백들이 단순한 개인적 한탄을 넘어,&amp;nbsp;&lt;strong&gt;그리스도가 겪을 십자가 사건과 배신, 부활의 영광&lt;/strong&gt;을 미리 보여주는 예표적 도구로 쓰였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인간적인 상처와 가계의 악한 영적 흐름을 끊어내지 못한 다윗의 한계조차&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lt;/strong&gt;&amp;nbsp;안에서 메시아의 비하를 드러내는 통로가 되었음을 통찰력 있게 짚어냅니다. 결국 이 설교는 성도들이 다윗처럼 고난 중에 원망하기보다&amp;nbsp;&lt;strong&gt;철저한 회개&lt;/strong&gt;를 통해 영적 억눌림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하는 삶으로 나아갈 것을 촉구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1)] 인포그래픽.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15/255/986729ef0443d0543cbc5d9bd3a2a997.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1)] 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15/255/8cf43a9eb3b204bdeaf2863cd45e83a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1)] 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15/255/9efda3d896397f0eff03935f83f0d4b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1)] 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15/255/0d419926d33f9a8096da6f3ed76f10b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1)] David_s_Messianic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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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1)] David_the_Messianic_Prophet (1).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15/255/797e8f821997db8653e45e89562d65d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1)] David_the_Messianic_Prophet (1).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15/255/4b42f3820061c21a12e0155330cad5a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1)] David_the_Messianic_Prophet (1).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15/255/e4f7b512f4119011a3c5a1e811721b3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1)] David_the_Messianic_Prophet (1).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15/255/4d885c56c65092c7d71537f3dd007bc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1)] David_the_Messianic_Prophet (1).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15/255/a71fba3736af43f0401073e45a0383b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1)] David_the_Messianic_Prophet (1).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15/255/4ae05cf2316a927d61b2a38a48bf336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1)] David_the_Messianic_Prophet (1).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15/255/5bee5e53e9ac4d55805ce7815c85c4c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1)] David_the_Messianic_Prophet (1).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15/255/e7d082b567b85d85c6a3d6df8fd3921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1)] David_the_Messianic_Prophet (1).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15/255/2aa6046eaa9b13b18dcdba67b27a5dd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1)] David_the_Messianic_Prophet (1).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15/255/276a9448f20bb1b5ebe1fcf833d86b9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1)] David_the_Messianic_Prophet (1).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15/255/f15620a6e6a0b7d36562fa6a72a7212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1)] David_the_Messianic_Prophet (1).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15/255/5eb24f62310a1be259fd7be98351303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10)]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6)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3)(시22:1~21)_2026-06-02(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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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6-02T09:26:20+09:00</published>
		<updated>2026-06-02T23:54:05+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0)]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6)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3)(시22:1~2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MpzXbxrIduQ 1. 들어가며 다윗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이스라엘의 왕이자 시편 기자인 그는 신구약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분량으로 소개되는 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다윗을 이해할 때 사무...</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10)]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6)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3)(시22:1~21)&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MpzXbxrIduQ&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MpzXbxrIduQ?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sans-serif; font-size: 15px; line-height: 1.8; margin: 0; padding: 0; } .sermon-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2em; } .sermon-body { font-size: 15px; } .sermon-verse { font-size: 15px;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lt;/style&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이스라엘의 왕이자 시편 기자인 그는 신구약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분량으로 소개되는 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다윗을 이해할 때 사무엘상하만을 참고하는 경향이 있다. 사무엘상 16장부터 시작되는 다윗의 생애는 사무엘하 마지막 24장까지 이어지며,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방대한 분량이다. 그러나 다윗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역대상도 함께 보아야 하고, 무엇보다 시편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사무엘상하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다윗의 내면, 그의 처절한 부르짖음과 저주의 기도가 시편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제기된다. 시편은 과연 어떤 책인가? 시편은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을 노래한 시가(詩歌)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예언의 말씀인가? 많은 성도들이 시편을 욥기, 잠언, 전도서, 아가서와 함께 시가서(詩歌書)로 분류하여 개인의 감정과 지혜를 노래한 문학 작품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lt;strong&gt;예수님께서는 시편을 포함한 구약 성경 전체가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는 말씀이라고 직접 선언&lt;/strong&gt;하셨다. 이 선언은 우리가 시편을 읽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lt;strong&gt;시편은 단순한 노래책이 아니라 메시아에 대한 예언서&lt;/strong&gt;이며, &lt;strong&gt;다윗은 인류 역사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가장 많은 예언을 남긴 최고의 예언자&lt;/strong&gt;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시편에는 아름다운 찬양과 감사의 노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원수를 향한 처절한 저주의 기도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다윗은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에게 혓바닥을 잘라 달라고, 음부에 산 채로 내려가게 해 달라고, 생명책에서 지워 달라고 하나님께 아뢰었다. 이 기도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신약의 관점에서 이것은 죄인가, 아니면 허용된 기도인가? 그리고 이 저주의 기도들이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우리는 다윗처럼 기도해도 되는가,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도해야 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다윗의 저주 기도가 왜 하나님의 심판 권한을 월권한 죄인지, 동시에 그것이 어떻게 메시아의 고난을 예언하는 도구로 쓰였는지, 그리고 신약의 성도로서 우리는 원수와 악인을 위하여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다윗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왜 성경 전체를 함께 읽어야 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전체를 함께 읽어야 한다. 이 말은 단순히 더 많은 성경을 읽으라는 권면이 아니라, 특정 인물을 이해할 때 그에 관한 모든 성경의 증언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원칙에서 비롯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생애를 기록한 성경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lt;strong&gt; 첫째는 사무엘상 16장부터 사무엘하 마지막 24장까지&lt;/strong&gt;이다. 여기에는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왕으로서의 통치와 그의 실수들이 기록되어 있다. &lt;strong&gt;둘째는 역대상&lt;/strong&gt;이다. 역대상은 사무엘상하가 전하지 않는 부분, 특히 성전 준비와 레위인 조직,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예배자로서의 면모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대상 15:16). &lt;strong&gt;셋째는 시편&lt;/strong&gt;이다. 시편에는 사무엘상하나 역대상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는 다윗의 내면이 담겨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대상 15:16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령하여 그들의 형제 노래하는 자들을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복음서를 읽는 방식과도 같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만을 읽는다면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요한복음을 통해서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요한복음 1장은 &amp;quot;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amp;quot;로 시작하며 (요 1:1),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복음서이다. 사복음서가 각각 예수님의 다른 측면을 조명하듯이, 사무엘상하와 역대상과 시편은 각각 다윗의 다른 측면을 조명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사무엘상하는 다윗의 외적 행적&lt;/strong&gt;을 보여 주고, &lt;strong&gt;역대상은 예배자로서의 다윗&lt;/strong&gt;을 보여 주며, &lt;strong&gt;시편은 다윗의 영적 내면과 하나님 앞에서의 처절한 부르짖음&lt;/strong&gt;을 보여 준다. 특히 &lt;strong&gt;시편을 봐야 하는 이유는 사무엘상하를 아무리 읽어도 발견할 수 없는 내용들이 시편에 나오기 때문&lt;/strong&gt;이다. 예를 들어 다윗이 아히멜렉의 제사장들을 죽인 에돔 사람 도엑을 저주하는 기도, 압살롬의 반역 당시 배신자 아히도벨을 향한 저주의 기도 등은 사무엘서에서는 일절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시편에서만 나타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역대하는 열왕기상하가 기록한 남북 왕조의 역사 가운데 북이스라엘 왕들의 이야기를 걷어내고, 남유다 왕들의 이야기만을 중심으로 기록한 책이다. 역대하는 솔로몬부터 시작하며, 그 전에 기록인 역대상에는 조상들의 이야기부터 다윗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처럼 성경은 같은 시대와 인물을 각기 다른 관점과 목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 모든 기록을 함께 읽어야만 비로소 온전한 그림이 그려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읽지 않고서는 성경 전체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 어린양, 나팔, 인(印) 등의 상징들은 모두 구약 성경, 특히 에스겔, 다니엘, 스가랴, 요엘 같은 묵시 문학과 창세기의 유월절 어린양에 이르기까지 구약 전체를 알아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예언된 모든 묵시 문학의 종합이 요한계시록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장에서 예수님은 &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amp;quot;고 선언하시는데 (계 1:17), 이것은 이사야서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동일한 것으로, 예수님이 곧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말씀이다(사 41:4, 44:6, 48:12).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분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책이다. 다윗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사무엘상하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역대상과 시편을 함께 볼 때 비로소 다윗이 어떤 인물이었는지가 온전히 드러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예수님은 시편이 자신에 대한 예언임을 어떻게 직접 증언하셨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는 &lt;strong&gt;구약 성경이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는 말씀&lt;/strong&gt;이라고 직접 선언하셨다. 이 선언은 단지 이사야서나 미가서 같은 예언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lt;strong&gt;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 전체&lt;/strong&gt;에 해당하는 것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먼저 &lt;strong&gt;요한복음 5장 39절에서&lt;/strong&gt;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amp;quot;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amp;quot; (요 5:39). 여기서 말씀하시는 &amp;#39;성경&amp;#39;은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구약 성경이다. 예수님은 구약 성경 전체가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연구하면서도 정작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론적 관점, 곧 &amp;#39;이 성경이 예수님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amp;#39;라는 눈으로 읽어야 비로소 성경의 깊이를 볼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고&lt;strong&gt; 누가복음 24장 44절에서&lt;/strong&gt; 예수님은 부활 이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amp;quot;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amp;quot; (눅 24:44).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구약 성경의 세 구분, 즉 모세의 율법(창세기에서 신명기), 선지자의 글(역사서와 예언서), 그리고 시편(성문서)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시며 이 모든 기록이 자신을 가리킨다고 선언하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의 의미는 매우 크다. &lt;strong&gt;시편은 예수님이 직접 지목하신 예언서이다. 시편은 인간의 감상을 기록한 노래집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메시아 예언서인 것&lt;/strong&gt;이다. 이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도 일치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와 갈라디아서에서 구약 성경의 사건들이 모형론적(模型論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음을 가르쳤다. 모형론이란 구약의 인물, 사건, 제도들이 신약에서 성취될 실체의 그림자요 예표라는 해석 방법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관점으로 보면 다윗의 생애 전체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예표하는 그림자이며, 다윗이 시편에서 노래한 내용들은 장차 예수님께서 당하실 고난과 영광을 예언하는 말씀이다. 실제로 시편에는 어떤 예언서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많다. 이사야서가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아를 예언했다면, 시편은 그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구체적으로 메시아의 고난과 왕권을 예언하고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바로 다윗을 신구약 성경 전체를 통틀어 메시아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로 볼 수 있는 근거이다. 다윗은 영분별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지혜의 말씀의 은사에 있어서 최고봉에 있었으며,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시편을 통해 수천 년 후에 이루어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생하게 예언하였다. 또한 다윗은 신구약 성경에서 이기는 자의 최고봉이다. 요한계시록은 이기는 자가 왕과 제사장이 될 것을 약속하는데, 다윗이 바로 그 왕과 제사장 직분의 최고의 예표이다. 그러므로 다윗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이해하는 길이요, 시편을 올바로 읽는 것은 메시아의 고난과 영광을 올바로 이해하는 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저주의 시편(35&amp;middot;55&amp;middot;69&amp;middot;109편)에는 어떤 저주의 내용이 담겨 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시편 가운데는 원수에 대한 저주를 담은 시편들이 있다. 학자들은 이를 &amp;#39;저주 시편&amp;#39; 혹은 &amp;#39;탄식 시편&amp;#39;&lt;/strong&gt;이라고 부른다. 저주의 시편들은 모두 비탄 시편에 속하며, 비탄 가운데서 원수를 향한 저주가 특히 강하게 나타나는 것들을 따로 저주 시편으로 분류한다. 대표적인 것이 &lt;strong&gt;시편 35편, 55편, 69편, 109편&lt;/strong&gt;이다. 이 시편들에는 다윗이 자신을 핍박하는 원수들을 향하여 얼마나 처절하게 하나님께 호소하고 저주를 구하였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가장 완화된 형태의 저주는 &lt;strong&gt;시편 35편&lt;/strong&gt;에서 나타난다. 시편 35편은 십황무지 사람들이 자신을 고해바친 것을 배경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하였다. &amp;quot;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된 자가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며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서로 눈짓하지 못하게 하소서&amp;quot; (시 35:19). 이 구절만 보면 비교적 온건한 기도처럼 보인다. 다른 저주 시편들과 비교했을 때 시편 35편의 저주는 가장 약한 수준에 속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35:19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된 자가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며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서로 눈짓하지 못하게 하소서&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시편 55편&lt;/strong&gt;은 다윗의 중기, 곧 압살롬의 반역이 일어나던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삼하 15장).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편에 서서 다윗을 죽이려는 모략을 꾸밀 때 다윗이 드린 기도이다. 여기에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하였다. &amp;quot;내가 성 안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사오니 주여 그들을 멸하소서 그들의 혀를 잘라 버리소서&amp;quot; (시 55:9). 그리고 15절에서는 한층 더 강렬한 저주가 나온다. &amp;quot;사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임하여 산 채로 음부에 내려갈지어다&amp;quot; (시 55:15). 이것은 민수기 16장에서 고라와 그의 무리가 땅이 갈라지며 산 채로 음부에 내려간 사건을 연상시키는 저주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5:9 내가 성 안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사오니 주여 그들을 멸하소서 그들의 혀를 잘라 버리소서&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55:15 사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임하여 산 채로 음부에 내려갈지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시편 69편&lt;/strong&gt;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던 초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다윗은 더욱 무서운 저주를 드린다. &amp;quot;그들의 거처가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의 장막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 그들의 죄악에 죄악을 더하사 주의 공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시고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amp;quot; (시 69:25-28). 이 기도는 단순히 원수를 물리쳐 달라는 수준을 넘어서, 원수들이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도록, 즉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져 구원받지 못하도록 구하는 기도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69:25-28 그들의 거처가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의 장막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 그들의 죄악에 죄악을 더하사 주의 공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시고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리고&amp;nbsp;&lt;strong&gt;시편 109편&lt;/strong&gt;은 다윗이 도피 초기에, 에돔 사람 도엑이 다윗을 고해바쳐 아히멜렉을 포함한 놉의 제사장들이 모두 죽임을 당한 사건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편에서 다윗의 저주는 극에 달한다. &amp;quot;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amp;quot; (시 109:8-10). 단순히 원수를 죽여 달라는 기도를 넘어서, 그 원수의 자녀까지 고아가 되어 길거리에서 빌어먹게 해 달라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09:8-10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무엘상하를 아무리 정독해도 다윗이 이런 저주의 기도를 드렸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시편에만 나온다. 이것이 다윗을 이해하는 데 있어 시편을 반드시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 저주의 기도들이 단순한 인간의 분노 표현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지를 이제 살펴보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다윗의 저주 기도는 어떤 점에서 하나님의 심판 권한을 월권한 죄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저주 기도는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다윗은 사실 아무런 죄 없이 까닭 없이 핍박을 받았다. 그가 자신을 보호해 주어야 할 사울 왕으로부터 쫓기고, 신뢰하던 측근이 배신하고, 죄 없는 제사장들이 자신 때문에 목숨을 잃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더욱이 다윗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소외당하고, 형제들로부터 무시를 받으며 자랐다. 이새가 사무엘에게 아들들을 소개할 때 다윗을 아예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윗이 가정 안에서 얼마나 소외된 존재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삼상 16:11). 이렇듯 &lt;strong&gt;다윗이 태어날 때부터 받았던 깊은 상처들은 겹겹히 쌓여 어느 순간 처절한 저주의 기도로 분출되어 나온 것&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삼상 16:11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기도의 내용&lt;/strong&gt;을 단계별로 살펴보면, &lt;strong&gt;첫 번째 단계는 &amp;quot;내가 억울합니다. 하나님 나를 건져 주소서&amp;quot;라고 호소하는 것&lt;/strong&gt;이다. 이것은 죄가 아니다. &lt;strong&gt;두 번째 단계는 &amp;quot;그들을 벌하여 주시고 심판하여 주시어 더 이상 나를 힘들게 하지 못하게 해 주소서&amp;quot;라고 구하는 것&lt;/strong&gt;이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허용 범위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윗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amp;quot;그들의 혓바닥을 잘라 버리소서&amp;quot;, &amp;quot;산 채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소서&amp;quot;, &amp;quot;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소서&amp;quot;, &amp;quot;그 자녀들이 고아가 되고 빌어먹게 하소서&amp;quot;라는 기도를 드렸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이러한 다윗의 저주의 기도는 왜 죄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심판의 권한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lt;/strong&gt;이다. 어떤 사람이 생명책에서 지워질지 그대로 기록될지, 어떤 사람이 성 밖으로 쫓겨날지 불못에 던져질지는 오직 심판자이신 예수님만이 결정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amp;quot;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amp;quot;라고 말씀하셨으며 (요 5:22), 요한계시록 21장 8절은 불못에 던져질 자들의 명단을 기록한다. &amp;quot;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amp;quot; (계 21:8). 이렇게 어떤 사람이 성밖으로 가야하는지 불못에 던져져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21:8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lt;strong&gt;다윗은 그 권한을 자신이 대신 행사하려고 하나님께 주문한 것&lt;/strong&gt;이다.&lt;strong&gt; 이것은 하나님의 재판권을 월권(越權)한 것&lt;/strong&gt;이다. 하나님이 결정하실 일을 인간이 지정하여 하나님께 요청한 것, 그것 자체가 죄이다.&lt;span style=&quot;color:#e67e22;&quot;&gt;&lt;strong&gt; 벌을 내리는 것은 하나님이 결정할 일이지만, 어떤 종류의 벌을 내릴지, 생명책에서 지울지 남겨 둘지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이지, 인간이 하나님께 주문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더 나아가 &lt;strong&gt;신약의 빛 아래서 보면, 이러한 기도는 더욱 용납될 수 없다&lt;/strong&gt;.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43-44절에서 이렇게 명령하셨다. &amp;quot;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amp;quot; (마 5:43-44). 이것은 헬라어 원문에서 명령법 현재 시제로 기록된 말씀이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원수를 사랑하고 계속해서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뜻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5:43-44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예수님은 원수를 미워하고 저주하라고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이것이 신약의 기준&lt;/strong&gt;이다. 다윗의 저주 기도는 구약 시대에 상처받은 한 인간의 분노가 폭발한 것으로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이 옳은 기도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lt;strong&gt;하나님의 심판 권한을 월권한 죄이며, 악한 영에 의해 충동되어 드린 기도&lt;/strong&gt;였다. 오늘날에도 고통당하는 성도들에게 &amp;quot;힘들면 그를 저주하는 기도를 해도 된다&amp;quot;고 가르치는 목회자들이 있지만, 이는 성경을 제대로 보지 못한 데서 비롯된 잘못된 가르침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시편 22편의 비탄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예언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시편 22편은 비탄 시편의 정점이다. 저주의 시편들은 모두 비탄 시편에 속하며, 비탄 시편 가운데서 저주가 극도로 강화된 것이 앞서 살펴본 저주 시편들이다. 그런데 &lt;strong&gt;시편 22편을 읽어 보면, 다윗이 묘사하는 비탄의 내용이 단지 자신의 처지를 과장한 시적 표현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너무나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음&lt;/strong&gt;에 놀라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시편 22편의 첫 구절&lt;/strong&gt;은 이렇게 시작한다. &amp;quot;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amp;quot; (시 22:1). 이 부르짖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친히 외치신 말씀이다. &amp;quot;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amp;quot; (마 27:46). 다윗이 자신의 고통을 표현한 이 부르짖음이 예수님의 입술에서 그대로 울려 퍼진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시편 22편 15절&lt;/strong&gt;을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온다. &amp;quot;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에 두셨나이다&amp;quot; (시 22:15). 다윗이 실제로 혀가 입천장에 붙을 만큼 목이 말랐던 경험이 구체적으로 사무엘서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amp;quot;내가 목마르다&amp;quot;고 부르짖으셨고 (요 19:28), 실제로 극심한 목마름 가운데서 죽어 가셨다. 시편 22편의 이 표현은 예수님의 고난을 예언한 것이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2: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에 두셨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더욱 놀라운 것은 &lt;strong&gt;시편 22편 18절&lt;/strong&gt;이다. &amp;quot;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위하여 제비를 뽑나이다&amp;quot; (시 22:18). 다윗의 생애에서 원수들이 그의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은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 이것은 다윗이 자신의 극한 고통을 시적으로 과장하여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이 일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amp;quot;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amp;quot; (요 19:23-24).&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2: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위하여 제비를 뽑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19:23-24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lt;strong&gt;시편 22편 16절&lt;/strong&gt;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amp;quot;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amp;quot; (시 22:16). 다윗의 생애에서 누군가가 실제로 다윗의 수족을 찌른 적은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손과 발이 찔리셨다. 더욱이 이 시편이 기록된 것은 B.C. 1,000년경이다. 당시에는 십자가형이라는 형벌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십자가형은 훗날 로마제국이 사용한 형벌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이 이것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은 인간의 예측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예언임이 분명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2: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시편 22편은 이 극한의 비탄 가운데서 원망과 절규로만 끝나지 않고, 결국 하나님을 찬송하는 결말로 이어진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 이후 부활하시어 영광을 받으심을 예언하는 것이다. 비탄이 극에 달할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얼마나 처참했는지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다윗이 시편에서 과장하여 표현한 모든 고통이 예수님에게는 실제로 이루어졌다. 옷이 제비 뽑히는 수치, 수족이 찔리는 고통, 혀가 입천장에 붙는 갈증,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버림받는 배신이 모두 그대로 성취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하나님께서 다윗의 저주 기도를 성경에 남겨두신 이유는 무엇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lt;strong&gt;다윗에 드린 저주의 기도는 하나님의 심판 권한을 월권한 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 기도들을 성경에 포함시켜 우리에게 전해 주셨는가?&lt;/strong&gt;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윗의 저주 기도가 지닌 예언적 의미에서 찾을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시편에서 자신의 고통을 과장하여 표현한 것들, 예를 들어 &amp;quot;내 수족을 찔렀나이다&amp;quot;, &amp;quot;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는다&amp;quot;, &amp;quot;혀가 입천장에 붙었다&amp;quot;, &amp;quot;산 채로 음부에 내려간다&amp;quot;는 표현들은 다윗이 실제로 경험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처한 극한의 고통을 시적으로 과장하여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lt;strong&gt;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 과장된 표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하는 말씀으로 성경에 남겨지게 &lt;/strong&gt;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만약 다윗이 이런 극한의 표현들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고난이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우리가 이해하는 데 있어 훨씬 더 어려웠을 것&lt;/strong&gt;이다. 다윗의 처절한 비탄과 저주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에게 어떻게 배반당하고, 어떻게 유린당하고,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인지를 누군가는 예언해야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의 그 격렬한 성정(性情)을 들어 쓰신 것이다. 다윗은 그것이 훗날 메시아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예언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다윗의 입술을 통하여 수천 년 후에 이루어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미리 기록해 두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특히 시편 55편에서 다윗이 아히도벨을 향하여 드린 저주 기도, &amp;quot;산 채로 음부에 내려갈지어다&amp;quot;라는 기도는 예수님의 수난과 직결된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은 다윗의 절친한 모사꾼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손을 잡고 다윗을 배반한 것의 예표이다. 다윗이 아히도벨에 대해 기도한 저주가 결국 예수님을 향한 예언이 되었고, 예수님은 실제로 죽음 이후 음부에까지 내려가셨다 (벧전 3:19). 또한 시편 69편의 &amp;quot;그들의 거처가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의 장막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amp;quot;라는 기도는 사도행전 1장 20절에서 가룟 유다에게 성취된 것으로 인용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벧전 3: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행 1: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고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으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이다. &lt;strong&gt;하나님은 다윗의 상처와 분노와 과장된 표현까지도 사용하셔서 메시아의 고난을 예언하는 도구로 삼으셨다&lt;/strong&gt;.&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렇다면 &lt;strong&gt;하나님이 이 저주 기도들을 성경에 남겨두신 것은 우리에게 &amp;quot;다윗처럼 저주하라&amp;quot;고 가르치기 위함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 저주 기도들이 성경에 남겨진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얼마나 처참한 고난을 당하셨는지를 보여 주기 위함&lt;/strong&gt;이다. 동시에, &lt;strong&gt;그 저주 기도들 자체는 다윗이 악한 영에게 잠시 넘어간 상태에서 드린 죄된 기도였음&lt;/strong&gt;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이 저주 기도들이 성경에 남겨진 것은 우리에게 &lt;strong&gt;하나의 중요한 경고&lt;/strong&gt;이기도 하다. &lt;span style=&quot;color:#e67e22;&quot;&gt;&lt;strong&gt;우리가 고통 중에 원수를 저주하는 기도를 드릴 때, 그 기도는 이미 우리의 죄값을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더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lt;/strong&gt;&lt;/span&gt;이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의 모든 저주를 대신 받으셨다. &amp;quot;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amp;quot; (갈 3:13). 그분이 이미 받으신 저주를 우리가 또다시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주님의 고난을 다시 헛되게 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신약의 성도는 원수와 악인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저주 기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예언되었고, 그 모든 것이 성취되었다. 이제 신약의 성도로서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예수님의 가르침은 명확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마태복음 5장 43-44절&lt;/strong&gt;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치셨다. &amp;quot;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amp;quot; (마 5:43-44). 헬라어 원문에서 &amp;#39;사랑하라&amp;#39;(아가파오)와 &amp;#39;기도하라&amp;#39;는 동사는 모두 명령법 현재 시제이다. 이것은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명령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5:43-44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더욱이 여기서 사용된 &amp;#39;사랑&amp;#39;은 헬라어 아가페(ἀ&amp;gamma;ά&amp;pi;&amp;eta;)이다. 이것은 남녀 간의 에로스(eros)적 사랑이나 친구 간의 필리아(&amp;phi;&amp;iota;&amp;lambda;ί&amp;alpha;)적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죄인인 인류를 위해 독생자를 내어 주신 &lt;strong&gt;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lt;/strong&gt;이다. 그 수준의 사랑으로 원수를 계속해서 사랑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명령이다. 이것은 우리의 감정이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lt;strong&gt;원수를 위하여 어떻게 기도해야 &lt;/strong&gt;하는가? 그것은 &lt;strong&gt;그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천국에 들어가도록 기도하는 것&lt;/strong&gt;이다. 바울이 되기 전에 청년 사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던 자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가 바울이 되었다. 또한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이렇게 기도하였다. &amp;quot;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amp;quot; (행 7:60). 바울이 회심하게 된 배경에는 스데반의 이 용서의 기도가 있었다. 우리가 원수를 위해 기도할 때, 그 원수가 사울처럼 바울이 될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못 박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amp;quot;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amp;quot; (눅 23:34). 예수님은 3년 반 동안 가르치고 치료하고 섬겼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단 한 사람도 자신을 옹호하지 않고 모두 배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저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제자들과 군중들을 저주하셨더라면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지지 못했을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눅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로마서 12장에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 가르쳤다. &amp;quot;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amp;quot; (롬 12:17)고 했고, &amp;quot;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amp;quot; (롬 12:21)고 하였다. 악으로 악을 이기려 하면 악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뿐이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신약의 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롬 12:17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롬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이것은 개인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국가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국가의 지도자가 잘못된 정책을 펼친다고 하더라도, 그를 저주하고 모욕하는 것은 신약 성도의 방식이 아니다&lt;/strong&gt;.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지도자를 붙잡으시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요, 나라가 악한 지도자를 만난 것이 우리 백성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일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귀신들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우리는 귀신들을 향하여 담대하게 대적하고 물리쳐야 한다. 그러나 사람은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아무리 악한 자라도, 아무리 우리를 핍박하는 자라도, 그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요 회개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이다. 우리가 악한 기도를 하면 할수록 악한 영이 더욱 역사하게 되며, 그것은 결국 이미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신 주님을 또다시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가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려 할 때,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이 땅에 흘러가게 된다. 그것이 신약 시대를 사는 성도가 걸어가야 할 기도의 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사무엘상하뿐만 아니라 역대상과 시편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 예수님 자신이 시편을 포함한 구약 성경 전체가 자신에 대한 예언임을 직접 선언하셨다는 것, 저주의 시편들(35&amp;middot;55&amp;middot;69&amp;middot;109편)에 담긴 처절한 저주의 내용들, 다윗의 저주 기도가 하나님의 심판 권한을 월권한 죄라는 것, 시편 22편의 비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다는 것, 하나님께서 그 저주 기도들을 성경에 남겨두신 섭리적 이유, 그리고 신약의 성도가 원수와 악인을 위하여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이기는 자의 최고봉이다. 왕이요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다윗은 그 누구보다도 탁월하다. 그리고 다윗이 남긴 시편들은 이사야의 예언을 비롯한 어떤 예언서보다도 더 많은 분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예언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은 메시아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 성경이 이처럼 풍성한 증거를 남겨 두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더 깊이, 더 온전히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동시에 다윗은 상처받은 인간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와 형제들에게 소외당한 상처, 죄 없이 쫓기며 도망자로 살아야 했던 상처, 신뢰하던 자들에게 배신당한 상처가 그를 저주의 기도로 이끌었다. 그 기도는 하나님의 심판 권한을 월권한 죄였지만, 하나님은 그 죄까지도 섭리 가운데 사용하셔서 메시아의 고난을 예언하는 말씀으로 삼으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요 경륜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이 사실을 깨달을 때 두 가지 태도를 가져야 한다. &lt;strong&gt;첫째, 예수님의 고난이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더욱 깊이 묵상해야&lt;/strong&gt; 한다. 다윗의 저주 기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깊이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혀가 입천장에 붙는 목마름, 옷이 제비 뽑히는 수치, 수족이 찔리는 고통, 가까운 자들로부터 버림받는 배신, 산 채로 음부에 내려가는 죽음까지, 이 모든 것이 다윗의 시편에 예언되었고 예수님에게 실제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이 고난의 실재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둘째, 우리는 더 이상 다윗처럼 원수를 저주하는 기도를 드려서는 안 된다&lt;/strong&gt;. 예수님은 이미 그 저주를 다 받으셨다. 우리가 다시 그 저주를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주님의 고난을 헛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며,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을 걸어야 한다. 사울이 바울로 변화된 것처럼, 우리의 용서와 기도의 씨앗이 또 다른 바울을 낳을 수 있다. 그리하여 원수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그들도 회개하여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06월 02일(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구약의 다윗이 시편에서 쏟아낸&amp;nbsp;&lt;strong&gt;저주의 고백&lt;/strong&gt;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표하는&amp;nbsp;&lt;strong&gt;메시야적 예언&lt;/strong&gt;으로 연결되는지를 탐구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다윗이 원수를 향해 뱉은 가혹한 저주들이 인간적인 한계와 분노를 드러낸&amp;nbsp;&lt;strong&gt;영적 허물&lt;/strong&gt;이었음을 지적하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비탄의 목소리를 사용해 장차 예수님이 겪으실&amp;nbsp;&lt;strong&gt;십자가의 수치와 고통&lt;/strong&gt;을 세밀하게 예언하셨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신약의 성도들은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amp;nbsp;&lt;strong&gt;원수를 사랑하고 기도하라&lt;/strong&gt;는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며, 다윗의 사례를 통해&amp;nbsp;&lt;strong&gt;심판의 권한&lt;/strong&gt;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경 전체를&amp;nbsp;&lt;strong&gt;그리스도 중심적&lt;/strong&gt;으로 바라봄으로써, 인간의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조차 인류 구원을 위한&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섭리&lt;/strong&gt;&amp;nbsp;안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명확히 전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0)] 인포그래픽.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84/255/45fbb05a1fc086092284bc2bbb99436a.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0)] David_s_Curses_and_the_Messianic_Cross.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84/255/4229020aa78cf52beddbaa3427c038f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0)] David_s_Curses_and_the_Messianic_Cross.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84/255/95b72f951d8c103a258a4305530f6a3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0)] David_s_Curses_and_the_Messianic_Cross.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84/255/01869043c1ddda358817a5fc8fcaa08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0)] David_s_Curses_and_the_Messianic_Cross.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84/255/d1ac748fb4179d0d8e4f3db8e50f2e8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0)] David_s_Curses_and_the_Messianic_Cross.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84/255/4d3d1baafcc1331129b02d5bfef7139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0)] David_s_Curses_and_the_Messianic_Cross.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84/255/0da6c5cc8ddec9b4d3d1a00d6baa01a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0)] David_s_Curses_and_the_Messianic_Cross.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84/255/365acc94d81d7d308493ba61ab46cf2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0)] David_s_Curses_and_the_Messianic_Cross.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84/255/0c621ecff0dbd6db23d2399feecb698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0)] David_s_Curses_and_the_Messianic_Cross.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84/255/758afab47696291c171979670fe8423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0)] David_s_Curses_and_the_Messianic_Cross.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84/255/5af5e727b7c7e7d9d94cd19cf2949dc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0)] David_s_Curses_and_the_Messianic_Cross.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84/255/97bd5b2bb05ef63387fb13534d29e9c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10)] David_s_Curses_and_the_Messianic_Cross.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284/255/1dadcc6e386eee1cc311216a2988fa7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0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5)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2)(시22:1~21)_2026-06-01(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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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6-01T15:06:35+09:00</published>
		<updated>2026-06-01T17:13:26+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0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5)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2)(시22:1~2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8_z-Y2WW3yY 1. 들어가며 지금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구약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고 있다.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quot;내가 메시아다&quot;라고 한다고 해서 메시아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메시아를 그렇게 얼렁뚱땅 세우지 않으신다. 만약 그런 식이라...</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기독론(10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5)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2)(시22:1~21)&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8_z-Y2WW3yY&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8_z-Y2WW3yY?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sermon-title { font-size: 16px;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2em; } .sermon-body { font-size: 15px; } .sermon-verse { font-size: 15px;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 &lt;/style&gt; &lt;div style=&quot;margin:0; padding:0;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039;나눔고딕&#039;,sans-serif; font-size: 15px; line-height: 1.8;&quot;&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지금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구약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고 있다.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amp;quot;내가 메시아다&amp;quot;라고 한다고 해서 메시아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메시아를 그렇게 얼렁뚱땅 세우지 않으신다. 만약 그런 식이라면 누구나 &amp;quot;내가 메시아다&amp;quot;, &amp;quot;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amp;quot;라고 하면 다 될 것이다. 그래서 절대 그런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메시아가 어떤 존재로 이 땅에 오실 것인지를 다 약속해 놓으신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 신분적 약속이 매우 정밀하다. 왕의 후손으로 올 것이며, 그 시작은 아브라함의 씨로 올 것이고, 야곱의 씨로, 유다의 씨로, 이새의 아들로 올 것이라는 혈통적 약속이 있다. 그리고 그 출생지는 미가서 5장 2절에 의해 베들레헴으로 정해져 있다. 고로 한국 땅에 태어난 사람은 결단코 메시아가 될 수 없다. 이만희도, 문선명도, 안상홍도 메시아가 될 수 없다. 또한 주님께서 육체를 두 번 입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어떤 분은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무려 365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최소 28개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 대해서 확실성을 가지고 지금 믿고 가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구약 성경은 사실 씨앗으로 주어진 말씀이기에, 이 씨앗은 열매가 어떤지를 잘 모른다. 심어 봐야 안다. 그래서 반드시 구약 성경은 신약의 열매를 확인한 다음에 그 씨앗이 무엇이었는지를 찾아가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지금 공부하고 있는 &lt;strong&gt;시편 22편의 말씀은 모형론적 예표가 아니라 말로써 장차 일어날 일을 예언한 본문이다. 다윗 자신의 처절한 버림 당함의 경험을 통해, 장차 메시아가 어떻게 사람들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당할 것인지를 예언한 시편이 시편 22편&lt;/strong&gt;이다.&amp;nbsp;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메시아에 대한 구약의 정밀한 예언이 무엇이며, 다윗의 비탄시와 저주시가 어떻게 메시아의 십자가 고난을 예언했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2. 메시아의 신분적 약속은 무엇이며 왜 중요한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메시아를 어떻게 세상에 보내실지 그 신분을 미리 정밀하게 약속해 놓으셨다. &lt;strong&gt;이것은 거짓 메시아가 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하나님의 장치다&lt;/strong&gt;. 신분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누구든 &amp;quot;내가 메시아다&amp;quot;라고 자칭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이단의 길은 활짝 열리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먼저 첫째로, 혈통적 약속&lt;/strong&gt;이 있다. 메시아는 &amp;#39;여자의 씨&amp;#39;로 오신다. 이것은 창세기 3장 15절에 이미 약속된 최초의 복음이다 (창 3:15).&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이어서 아브라함의 씨로, 야곱의 씨로, 유다의 씨로, 이새의 아들로 오신다. 이것은 한 줄기로 흘러내려 가는 혈통의 약속이다. 그 정점에 다윗 왕가가 있다.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왕의 후손으로 오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음으로 둘째로, 처녀가 잉태하여 메시아를 낳을 것&lt;/strong&gt;이라는 약속이 있다. 이것은 이사야 7장 14절에 정밀하게 약속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lt;strong&gt;셋째로, 메시아의 출생지&lt;/strong&gt;가 정해져 있다. 미가 5장 2절은 베들레헴 에브라다를 메시아의 출생지로 못 박는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놓으신 신분적 약속이 정밀하기 때문에, 한국 땅에 태어난 사람이 &amp;quot;내가 메시아다&amp;quot;라고 주장해도 그것은 거짓이다. 이만희도 메시아가 될 수 없고, 문선명도 메시아가 될 수 없으며, 안상홍도 메시아가 될 수 없다. 베들레헴이 아닌 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다윗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녀의 몸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뿐만이 아니다. &lt;strong&gt;넷째로, 메시아가 오실 때 그를 알아보지 못할까 봐 하나님은 선구자를 보낼 것이라고 미리 예언&lt;/strong&gt;해 두셨다. 이사야 40장과 말라기 3장, 4장에 그 선구자에 대한 예언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말 3:1&amp;nbsp;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말 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세례 요한이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 먼저 와서 메시아의 길을 예비한 것이다. 높은 산은 낮아지고 낮은 곳은 높아져서 평탄한 길을 만들어,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한 자가 바로 세례 요한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런 정밀한 신분적 약속과 선구자의 예언이 있었기 때문에, 메시아는 함부로 자칭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우리는 구약 성경에 기록된 그 모든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정확히 이루어진 것을 확인했기에 그분을 믿는 것이다. 막연한 종교적 감정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정밀한 예언의 성취 위에 서서 믿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견고함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3. 왜 예수님이 육체를 다시 입는다는 주장은 거짓인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는 &lt;strong&gt;예수님이 다시 육체로 오신다는 주장을 펴는 이단들&lt;/strong&gt;이 있다. 문선명, 안상홍, 이만희 같은 자들이 그렇다. 그들은 &lt;strong&gt;예수님이 다 이루지 못하셨기 때문에 자신이 대신 와서 마저 이루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헛소리이고 거짓&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왜냐하면 메시야가 육체를 두 번 입으신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한 분 하나님이셨던 분이시다. 그러나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피를 흘리셔야 했다. 히브리서 9장 22절은 피가 죄를 속하는 것임을 분명히 말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히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 레위기 17장 11절은 피가 곧 생명임을 말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본래 하나님이신 분이 피를 흘리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속죄양이 되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다.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그분은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시어 십자가에서 단번에 완전한 제사를 드림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끝내주셨다. 그런데 다시 어떤 제사를 또 드리신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얘기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히브리서 9장 28절은 분명히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단번에 자기 몸을 드려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셨고, 두 번째 나타나실 때에는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구원에 이르도록 나타나신다고 하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님이 다시 육체를 입고 오신다는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단들은 성경 몇 군데를 짜깁기해서 자기 주장을 만들어 내지만, 그것은 결코 진리가 아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이단들의 또 다른 술수는 성경 번역의 미숙함을 이용하는 것&lt;/strong&gt;이다. 요한복음 8장 24절을 보면 우리말 번역에는 &amp;quot;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amp;quot;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은 &amp;quot;에고 에이미&amp;quot;(ἐ&amp;gamma;ώ &amp;epsilon;ἰ&amp;mu;&amp;iota;), 곧 &amp;quot;I AM, 나는 나다&amp;quot;이다. 이것은 출애굽기 3장 14절의 &amp;quot;스스로 있는 자&amp;quot;와 똑같은 표현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8: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분명히 자신을 &amp;quot;스스로 있는 자&amp;quot;라고 선언하셨다. 그러나 번역자들의 헬라어 실력이 미치지 못해 그 본래의 뜻이 우리말로 정확히 옮겨지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이단들은 그 번역의 빈틈을 파고들어 예수님을 사기꾼으로 몰아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요한계시록 1장 17절은 분명하게 말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러한 본문들은 예수님 자신이 한 분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증언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육체를 다시 입고 오신다는 주장은, 한 분 하나님의 정체를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거짓이다. 한 분 하나님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단번에 우리의 죄 문제를 끝내신 것이지, 무슨 일이 남아서 다시 누가 와서 마저 이루는 일이 있을 수 없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4. 구약의 씨앗은 왜 신약의 열매로 확인해야 하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성경 해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원리가 있다. &lt;strong&gt;구약은 &amp;#39;씨앗&amp;#39;이고 신약은 &amp;#39;열매&amp;#39;라는 것&lt;/strong&gt;이다. 씨앗만 보고서는 그 열매가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사과 씨앗을 처음 보는 사람은 그것이 사과를 맺을지 배를 맺을지 모른다. 심어 봐야 안다. 열매가 나야 &amp;quot;아, 이 씨앗이 사과 씨앗이었구나&amp;quot; 하고 비로소 알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lt;strong&gt;구약 성경의 예언과 모형은 반드시 신약에서 그 성취된 열매를 확인한 다음에야 그 씨앗의 정체를 거꾸로 찾아 들어가야&lt;/strong&gt; 한다. 우리는 신약을 통해 이미 그 열매를 알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열매를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분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신약 성경, 특히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깊이 공부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가장 깊이 있게 다룬 복음서이며, 요한계시록은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다룬다. 이 두 권에 예수님의 완전체가 드러난다. 그리고 &lt;strong&gt;사복음서 전체를 통해 공생애의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lt;/strong&gt; 하고, &lt;strong&gt;요한계시록을 통해 영광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lt;/strong&gt; 한다. 이 둘을 합쳐야 예수님이 누구신지 비로소 알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렇게 &lt;strong&gt;신약을 통해 열매를 확인하고 나면, 구약의 수많은 예언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로 통합되는 것&lt;/strong&gt;을 보게 된다. 창세기 3장 15절의 여자의 씨도, 이사야 7장 14절의 처녀의 아들도, 미가 5장 2절의 베들레헴에서 나올 자도, 그리고 시편 22편의 버림 당하는 자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로 모아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이것은 예수께서 한 포의 알약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예언자들이 각자의 시대에 각자의 본문을 통해 메시아에 대해 말한 것이 다 모여서, 한 알약으로 압축되어 예수 그리스도에게 와 박혀 버리는 것이다. 그 알약을 입에 넣고 삼키면 우리 안에 생명이 들어온다. 그분이 바로 그 알약이시고, 그분이 곧 그 씨앗이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만약 구약만 가지고 메시아를 찾으려 하면 길을 잃기 쉽다. 유대인들이 지금까지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신약의 열매를 거부하고 구약의 씨앗만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씨앗만 보고는 그 정체를 결코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는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또한&amp;nbsp;&lt;strong&gt;하나님께서 신약 성경을 헬라어로 기록하게 하신 것도 이와 같은 이유&lt;/strong&gt;에서다. 헬라어는 당시 세계 공용어였고, 표현이 매우 논리적이고 정밀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메시아를 정확하게 알기를 원하셨기에 헬라어로 기록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목사된 자들은 헬라어를 공부해야 한다. 가방끈이 짧다는 이유로, 어렵다는 이유로 헬라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확한 말씀의 증언자가 되어야 할 책임이 목사에게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많은 교단과 교리가 두루뭉술한 가짜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그동안의 잘못된 세뇌가 사람들을 어둠 속에 가두어 놓았다. 그것을 정확히 잡아 주어야 한다. 신약을 정확히 보고, 그 열매로 구약의 씨앗을 다시 찾아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 모습이 드러난다. 거꾸로 가는 길이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해 두신 정확한 순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5. 한 분 하나님께서 어떻게 친히 육체를 입고 오셨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가 그동안 배워 온 것은 이런 식이다. 하나님이 힘드시니까 아들에게 &amp;quot;아들아, 네가 내려가서 인류를 위해 죽어라&amp;quot;라고 명하셨고, 아들은 &amp;quot;아버지여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어찌 갈 수 있겠습니까. 다른 일은 얼마든지 잘할 수 있사오니 다른 일을 맡겨 주시옵소서&amp;quot;라고 거절한 것이 아니라, &amp;quot;예, 분부대로 다녀오겠습니다&amp;quot; 하고 내려왔다는 식의 설명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본래 가르침이 아니다. &lt;strong&gt;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한 분 하나님이시다. 전능자이시고, 스스로 계신 분이시다.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친히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이지, 아들이라는 다른 인격이 보냄을 받아 내려온 것&lt;/strong&gt;이 아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의 인격으로 오심으로 두 분의 인격이 생겨난 것이다.&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왜 성경은 &amp;quot;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amp;quot;고 표현하는가. 그 표현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대로 오셨다고만 표현하면, 하늘의 보좌가 공석이 되어 버린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우리의 이해 수준을 고려해서, 또 천지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가 한 순간도 끊어지지 않음을 보여 주시기 위해, 성경은 &amp;quot;아들을 보내셨다&amp;quot;는 표현을 쓰신 것이다. 예를 들어,&amp;nbsp;요한복음 3장 16절과 요한일서 4장 9-10절이 그런 식의 표현을 사용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일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런 표현은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무엇인가? 실제를 살펴보아야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지를 깊이 알게 된다. 대리자를 보내어 속죄케 하시는 것과, 본인이 친히 오시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왕이 친히 와서 백성의 발 앞에 엎드리는 것과, 사람을 시켜 형식적 사과를 보내는 것은 같지 않다. 조선 시대에 임금이 친히 행차하면 백성이 &amp;quot;어인 일로 이곳까지 오셨나이까?&amp;quot; 하고 놀랐던 것이 그 이유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친히 우리를 위하여 육체를 입고 오셨다. 이것이 정확한 성경의 가르침이다. 사도행전 20장 28절이 그것을 분명히 증언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초청하여 마지막 권면을 하면서, 하나님이 친히 피를 흘려 교회를 사셨다고 말한다. 하나님 자체는 피를 가지신 분이 아니지만, 사람의 몸을 입으셔서 친히 피를 흘리셨기에 그 피를 &amp;quot;하나님의 피&amp;quot;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확히는 &amp;quot;아들의 피&amp;quot;라고 해야 하지만, 그 본질적 의미를 우리는 &amp;quot;하나님이 친히 흘리신 피&amp;quot;로 알아들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런데 &lt;strong&gt;이러한 한 분 하나님의 비밀은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에게 최초로 계시&lt;/strong&gt;되었다. &amp;quot;스스로 있는 자&amp;quot;라는 이름이 그것이다(출 3:14).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에게는 &amp;quot;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amp;quot;는 자기 계시가 주어졌다. 시기적으로 보면 약 주전 740년경, 이사야 시대였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사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모든 자기 계시가 모여서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 통합된다. 예수님은 요한계시록에서 &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amp;quot;고 친히 선포하신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계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한 분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피를 흘리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정확히 알아야 할 복음의 핵심이다. 이 사실을 알면 알수록, 우리가 받은 사랑의 깊이를 깨닫게 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6. 구약은 메시아를 어떤 두 가지 방식으로 예언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구약 성경이 &lt;strong&gt;메시아를 예언하는 방식&lt;/strong&gt;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lt;strong&gt;하나는 모형론적 예표&lt;/strong&gt;이고, &lt;strong&gt;다른 하나는 말로 된 예언&lt;/strong&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먼저 모형론적 예표&lt;/strong&gt;가 있다. 이것은 어떤 사물이나 사건, 인물을 통해 장차 오실 메시아를 그림자로 보여 주는 방식이다. 모세 오경에 이런 모형론이 풍부하게 나타난다.&amp;nbsp;대표적인 예가 민수기 21장의 놋뱀 사건이다. 광야에서 백성들이 불뱀에 물려 죽어 갈 때, 모세가 장대 위에 놋뱀을 매달았다. 그것을 쳐다보는 자마다 살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민 21:8-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 14절에서 이 사건을 직접 자신의 십자가에 대한 예표로 인용하셨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요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외에도 출애굽기에 나오는 어린 양, 성막의 제사 제도, 대제사장의 의복과 직무, 광야의 만나, 반석에서 나온 생수 같은 것들이 모두 메시아를 가리키는 모형론적 예표인 것이다. 우리는 모세 오경에서 여호수아서까지 이런 예표론을 차례로 살펴본 바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두 번째는 말로 된 예언&lt;/strong&gt;이다. 이것은 모형이 아니라 예언자가 입을 열어 &amp;quot;장차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amp;quot;라고 분명히 선포하는 방식이다. 다윗의 시편과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스가랴 같은 예언자들의 책에 풍부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이런 말로 된 예언은 단순한 추측이나 인간의 예감이 아니다. 수백 년, 수천 년 후에 일어날 일을 어떻게 인간이 미리 말할 수 있겠는가. 오직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시간 밖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시간 안에 있는 예언자에게 들려 주셨기 때문에 그 일을 미리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벧후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lt;strong&gt;시편 22편은 모형론적 예표가 아니라 말로 된 예언&lt;/strong&gt;에 속한다. 다윗은 자기가 겪은 처절한 고통의 경험을 시로 풀어내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게 성령의 감동을 받아 장차 오실 메시아의 십자가 고난을 말로 예언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시편은 그가 살아낸 인생의 기록이지만, 동시에 메시아를 향한 예언서이다. 그가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 형들에게 무시당할 때, 부모에게서 버림 당하는 느낌을 받을 때, 그 경험이 그저 한 개인의 한풀이로 끝나지 않고 메시아의 고난을 미리 그려 보이는 그림이 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우리는 모세 오경의 예표론에서 다윗의 시편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모형이 아니라 말로 직접 예언된 메시아의 모습을, 그중에서도 그분이 어떻게 사람들과 하나님께 버림 당하실 것인지의 모습을 시편 22편이 가장 분명히 보여 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렇게 구약은 모형과 말이라는 두 방식으로 메시아를 예언해 두셨다. 우리는 그 두 방식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서 정확히 성취된 것을 신약을 통해 확인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결코 자칭 메시아가 아니다. 구약 전체가 가리키던 그 한 분이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7. 다윗은 왜 시편 22편 같은 비탄시와 저주시를 쓰게 되었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시편 22편은 흔히들 비탄시로 분류&lt;/strong&gt;하고 있다. 비탄시는 고통과 슬픔, 절망 가운데서 부르짖는 시다. 그런데 시편 22편을 비롯해 시편 27편이나 35편, 시편 69편, 시편 109편 같은 본문들은 비탄을 넘어 저주의 차원으로 들어간다. &amp;quot;그의 자식들은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의 자식들은 유리 걸식하게 하소서&amp;quot; 같은 격한 저주가 등장하기 때문이다(시 109:8-10).&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그렇다면 오늘날 신약의 성도들은 이러한 저주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다윗은 늘 그렇게 격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윗에게도 피치못할 영적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다윗 안에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거절감의 영, 버림 받는 영, 억울함을 호소하는 영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그가 받은 상처의 결과이기도 하다(시 27:10).&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시27:10&amp;nbsp;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amp;nbsp;&lt;/span&gt;&lt;/strong&gt;&lt;br /&gt; &amp;nbsp; 사무엘이 사울 왕에 이어 새 왕에게 기름을 부으러 이새의 집에 왔을 때, 이새는 일곱 아들을 차례로 사무엘 앞에 세웠다. 엘리압부터 시작해서 일곱 형들을 모두 거쳤지만,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기름을 부으라고 하지 않으셨다. 사무엘이 &amp;quot;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amp;quot;고 묻자, 그제서야 이새는 &amp;quot;막내가 남았는데 양을 치고 있다&amp;quot;고 답한다. 다윗은 아버지에게도 없는 아들 취급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삼상 16:11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뿐 아니다. 다윗이 형들이 있는 전쟁터에 음식을 가져갔을 때, 큰형 엘리압은 그를 향해 &amp;quot;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내가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amp;quot;라고 비난했다. 양 떼는 어떻게 하고 왔느냐며 그를 몹시 못된 놈이라고 무시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lt;strong&gt;이처럼 다윗은 형들로부터 무시당했고, 아버지로부터는 천대받았으며, 결국 사울 왕에게 쫓기기 시작하면서 스물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도망자의 신세가&lt;/strong&gt; 되었다. 시편 69편 8절은 다윗의 그 외로움을 정확히 증언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69:8 내가 나의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나의 어머니의 자녀에게는 낯선 사람이 되었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자기 형제들에게도 객이 되고, 자기 어머니의 자녀들에게도 낯선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윗의 어머니의 자녀들이라 함은 누이 스루야와 그 아들들 곧 요압 장군 같은 자들을 포함한다. 그런 가족조차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위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시편 27편 10절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다윗은 그의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고 표현했다. 이런 어린 시절의 상처와 거절감이 다윗 안에 영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거절감의 영, 버림 받는 영이 그 안에 자리 잡았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자신을 힘들게 한 사람들을 향해 &amp;quot;그의 자손은 끊어지게 하시고 그의 자식들은 고아가 되게 하시며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하시고 그의 자식들은 유리 걸식하게 하소서&amp;quot; 같은 격한 기도가 터져 나온 것이다. 시편 109편이 그 대표적인 본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09:8-10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런 격한 저주의 기도는 그가 잘했다고 평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분명히 죄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일부 설교에서는 이것을 &amp;quot;여러분도 속에 있는 한을 그대로 토해 내야 상처가 풀린다&amp;quot;고 가르치며, 욕을 직접 하라고 시키기도 한다. 어떤 교회는 부모를 때리는 시늉을 하게 하고, 어떤 곳은 거친 욕설을 토해 내라고 한다. 그것은 상처를 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상처를 만들고, 더 많은 악한 영을 불러들이는 행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 다른 잘못된 해석은 이렇게 풀이한다. &amp;quot;자신이 직접 원수를 갚는다면 그것은 죄가 되겠지만, 하나님께 저주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다.&amp;quot; 그러나 이것도 본질을 놓친 해석이다. 다윗의 저주시가 칭찬받을 만한 본보기여서 성경에 남겨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lt;strong&gt; 왜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런 저주의 시를 허락하셨는가? 바로 메시아의 버림 당함을 가장 정확하게 예언하기 위해서&lt;/strong&gt;다. &lt;span style=&quot;color:#e67e22;&quot;&gt;&lt;strong&gt;다윗이 사람들로부터 버림 받고, 형제들에게 외면당하고, 부모에게서 천대받는 그 처절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는 장차 오실 메시아가 어떻게 사람들과 하나님께 철저히 버림 당할 것인지를 누구보다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lt;/strong&gt;&lt;/span&gt;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위대성은 그가 죄성이 없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격한 기도를 입으로 토해 내면서도, 결코 자기 손으로 직접 원수를 갚지는 않았다는 점에 있다.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두 번 있었지만, 다윗은 &amp;quot;내가 어찌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손으로 치겠느냐&amp;quot; 하며 끝까지 참았다. 아비새가 창과 물병을 가지고 가자고 했을 때도, 다윗은 사울의 잠자리에서 창과 물병만 가지고 떠났다.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는 고소해 하지 않고 활의 노래를 지어 비통하게 울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삼하 1: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환경 속에서 하나씩 배워 갔다. 처음부터 다 잘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손으로 원수를 갚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그는 평생에 걸쳐 배웠다. 그 배움의 과정이 시편으로 남았고, 그 시편이 후대에 공연되며 다윗 자신의 한풀이를 넘어 메시아의 고난을 예언하는 본문이 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8. 시편 22편의 대적 비유는 무엇을 가리키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시편 22편은 메시아의 십자가 고난을 가장 생생하게 예언한 본문 중 하나&lt;/strong&gt;다. 1절의 첫 마디부터 그렇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직접 인용하신 그 말씀이다. 마태복음 27장 46절, 마가복음 15장 34절에도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마 27:46 제 구 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천 년 전에 시편에 적어 놓은 그 말씀을, 메시아께서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그대로 인용하여 부르짖으신 것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윗이 자기도 모르게 성령의 감동으로 메시아의 십자가 부르짖음을 미리 받아 적어 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메시아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지 않으면 우리의 죄값이 치러질 수 없다. 하나님의 버림 다음에 오는 것이 지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버림 당하시고, 죽으셔서 음부에까지 내려가셨다. 요나의 표적을 이루기 위하여 사흘을 음부에서 지내시고 부활하셨다. 그 처절한 버림 당함을 가장 잘 표현할 자가 누구였겠는가. 그것이 다윗이었다. 다윗이 평생 짊어진 거절감의 상처가 메시아의 버림 당함을 예언하는 그릇이 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 고로, &lt;strong&gt;시편 22편이 그리는 대적자의 모습을 살펴보면, 메시아를 둘러싼 영적 세력의 정체&lt;/strong&gt;가 드러난다. 본문은 네 가지 짐승의 이미지를 사용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먼저, 12절에&amp;#39; 황소&amp;#39;와&amp;#39; 바산의 힘센 소들&amp;#39;이 등장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2: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바산은 요단 동편의 비옥한 지역으로, 그곳의 소들은 크고 힘이 셌다. &lt;strong&gt;황소와 바산의 힘센 소는 메시아를 에워싼 거대한 권력자들, 곧 그 시대의 종교 권력과 정치 권력&lt;/strong&gt;을 가리킨다. 예수님 당시에는 산헤드린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로마의 관원들이 메시아를 사면에서 압박해 들어왔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음으로 13절과 21절에 &amp;#39;사자&amp;#39;가 등장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2: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2:21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사자&lt;/strong&gt;는 베드로전서 5장 8절에서 &lt;strong&gt;사단을 가리키는 짐승&lt;/strong&gt;으로 명시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메시아를 향해 부르짖으며 찢으려 한 사자는 &lt;strong&gt;사단 자신과 그의 졸개 영들&lt;/strong&gt;을 가리킨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향해 영적 세계에서 사단의 세력이 총공격을 퍼부었다는 사실이 이 비유에 담겨 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세 번째로 16절에&lt;strong&gt; &amp;#39;야생의 개 떼&lt;/strong&gt;&amp;#39;가 등장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22: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성경에서 개는 부정한 짐승의 대표이며, 이방인이나 부도덕한 자를 비유적으로 가리키는 데 자주 쓰인다. 들개처럼 떼를 지어 달려드는 무리는 &lt;strong&gt;메시아를 조롱하고 핍박한 군중들, 곧 진리에 무지하면서도 폭력적으로 휩쓸리는 무리&lt;/strong&gt;를 가리킨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특히 &amp;quot;내 수족을 찔렀나이다&amp;quot;라는 표현은 십자가형의 직접적인 예언이다. 다윗 시대에는 십자가형이라는 처형 방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다윗은 천 년 전에 손과 발을 찌르는 형벌을 미리 적어놓았다. 이것이 성령의 감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마지막으로 넷째로, 21절에 &amp;#39;들소&amp;#39;가 등장한다. &lt;strong&gt;들소의 뿔&lt;/strong&gt;은 짓밟고 들이받는 &lt;strong&gt;폭력적 파괴력의 상징&lt;/strong&gt;이다.&lt;strong&gt; 메시아를 향해 무자비한 폭력이 몰려들었음&lt;/strong&gt;을 보여 준다.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관에 찔리시고 손과 발에 못 박히신 그 모든 폭력이 들소의 뿔로 표현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이 네 가지 짐승의 비유는 메시아의 십자가가 단순한 인간의 처형이 아님을 보여 준다. 그것은 &lt;strong&gt;권력자들의 음모이자(황소)&lt;/strong&gt;, &lt;strong&gt;사단의 총공격이자(사자)&lt;/strong&gt;, &lt;strong&gt;군중의 폭력이자(개)&lt;/strong&gt;, &lt;strong&gt;무자비한 살육이었다(들소)&lt;/strong&gt;. 그 모든 것이 메시아에게 동시에 쏟아졌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다윗은 그 모든 대적의 한가운데서, 결국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구원하셨음을 노래한다. 21절 후반부에 &amp;quot;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amp;quot;라는 고백이 그것이다. 메시아의 고난은 패배로 끝나지 않는다.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진다. 이것을 다윗은 천 년 전에 이미 보았던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시편 22편의 대적 비유는 단순한 다윗의 한풀이가 아니라, 메시아의 십자가에 임할 영적 전쟁의 청사진이다. 그 청사진이 천 년 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한 점 빗나가지 않고 그대로 성취되었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title&quot;&gt;9. 나오며&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lt;strong&gt;메시아에 대한 구약의 정밀한 예언과 다윗의 비탄시&amp;middot;저주시가 어떻게 메시아의 십자가 고난을 예언했는지&lt;/strong&gt;를 살펴보았다. 메시아의 신분적 약속이 매우 정밀해서 자칭 가짜 메시아가 끼어들 틈이 없다는 사실을 살펴보았고, 예수님이 육체를 다시 입으신다는 이단들의 주장이 왜 거짓인지를 살펴보았다. 또한 구약의 씨앗은 신약의 열매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는 해석 원리를 살펴보았고, 한 분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비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구약이 모형론적 예표와 말로 된 예언이라는 두 방식으로 메시아를 예언했음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다윗이 자신의 어린 시절 상처와 도망자 생활을 통해 메시아의 버림 당함을 가장 생생하게 예언한 자가 되었으며, 시편 22편의 황소, 사자, 개, 들소가 메시아의 십자가에 임할 영적 전쟁의 청사진이었음을 살펴보았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정확히 알아야 한다. 예수님을 모르면 모를수록 그분을 신뢰하는 마음이 떨어진다. 그래서 교회를 십 년 다니고도 어느새 점집을 찾아가고 무당을 찾아가는 일이 벌어진다.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이고, 신뢰가 떨어진 이유는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온다고 로마서 10장 17절은 말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말씀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두리뭉실한 가짜 교리에 더 이상 휘둘려서는 안 된다. 신약을 정확히 읽고, 그 열매로 구약의 씨앗을 다시 찾아 들어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한 분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아야 하고, 그분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피를 흘리셨음을 알아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한 우리는 다윗의 시편 22편이 보여 주는 메시아의 처절한 고난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 메시아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할 만큼 우리를 사랑하셔서, 친히 그 버림을 받아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우리도 살아오면서 버림 당하는 영, 거절감의 영, 억울함을 호소하는 영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그런 영들이 우리 안에 자리 잡아 인생을 망치고 신앙을 무너뜨리는 일을 막아야 한다. 부지런히 회개해야 한다. 회개의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에 가까워진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그러했다. 그러나 그는 격한 저주의 기도를 입으로 토하면서도, 결코 자기 손으로 직접 원수를 갚지 않았다. 사울 왕이 죽었을 때도 그는 비통하게 울었다. 이 자세를 우리 또한 배워야 한다.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은 회개와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또 우리는 말씀의 증언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우리만 누리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회개하고 주께 나오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을 도와야 한다. 어떤 신학교를 나왔는지, 목사의 가정인지, 몇 년을 믿었는지를 따지지 말아야 한다. 회개의 마음 하나 보고 함께 가야 한다. 그 사람도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쓰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날다마늘 우리에게는 시편 116편 12절의 고백이 있어야 한다.&lt;/p&gt; &lt;p class=&quot;sermon-verse&quot;&gt;시 116: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원래 우리는 버려진 사람들이었고, 영원히 지옥에 갈 자들이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건지셔서 하늘나라를 가장 잘 준비할 수 있는 시대로 부르셨다. 회개의 길을 주시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길을 주셨다. 그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준비해서 들어가는 자가 되게 하셨다. 이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부지런히 회개하고,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amp;nbsp;그리하여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히 알고, 그분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깊이 묵상하며, 우리 안의 거절감과 버림 받는 영을 부지런한 회개로 끊어 내고, 다른 사람의 회개를 돕는 자로 살아가, 마지막 날 주님 앞에 합당한 모습으로 서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2026년 06월 01일(월)&lt;/p&gt; &lt;p class=&quot;sermon-body&quot;&gt;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설교핵심]&lt;/p&gt; &lt;p&gt;이 설교는 구약의 다윗을&amp;nbsp;&lt;strong&gt;메시아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lt;/strong&gt;로 조명하며, 시편 22편에 기록된 그의 고난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amp;nbsp;&lt;strong&gt;완벽하게 예표&lt;/strong&gt;하는지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성경의 예언이&amp;nbsp;&lt;strong&gt;혈통과 지리적 요건&lt;/strong&gt;&amp;nbsp;등 구체적인 증거를 통해 참된 메시아를 분별하게 함으로써 이단들의 거짓 주장을 반박하고&amp;nbsp;&lt;strong&gt;신앙의 확실성&lt;/strong&gt;을 제공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다윗이 겪었던&amp;nbsp;&lt;strong&gt;가족과 공동체로부터의 철저한 소외와 거절감&lt;/strong&gt;은 단순한 개인적 비극을 넘어, 하나님께 버림받아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amp;nbsp;&lt;strong&gt;예수님의 처절한 고통&lt;/strong&gt;을 미리 보여주는 예언적 장치로 해석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가&amp;nbsp;&lt;strong&gt;성경적 근거&lt;/strong&gt;를 통해 주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고난 속에서도 자신을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며&amp;nbsp;&lt;strong&gt;회개의 복음&lt;/strong&gt;을 전파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명을 일깨웁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인포그래픽.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5ddebc1064291a1807817a559fc8eb2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itanium_Messianic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9415cb628ef0d264d8ed06a3d55feee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itanium_Messianic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59d72eccc885bbe18e14723ed9d97e7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itanium_Messianic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2b24b8869e75174d3dffc5cbce3d2f1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itanium_Messianic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2e755423e20318210b3cb49e2f2eaf3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itanium_Messianic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7b32251bb1256183582275c5c3895d8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itanium_Messianic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8ba3bffb69887705b8d06d72c26a934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itanium_Messianic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c69131db728b0629554d64f42fcf5d4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itanium_Messianic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a4d99607fc8a6aa35bc9070095bab7b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itanium_Messianic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a6617dc6df387bd602a43ffd0c6951c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itanium_Messianic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e2202b8d9f261f25c0a8cef07a232f3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itanium_Messianic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6e475b19c2ef7cd4011ee8e6d3de966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itanium_Messianic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10e909aec1280983963a1cdaf6705e3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itanium_Messianic_Blueprin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7cda69a2d562a8b9690658f27e49985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itanium_Messianic_Blueprint.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8c64b289088d5c5e98b27a336ae8bd3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he_Prophetic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836ff96743d41a9c95da3851c7c330f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he_Prophetic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0a276a473e05396d782adb7a9b4d71e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he_Prophetic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5d75267ef7b7fd123c653059837f396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he_Prophetic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3aad90a0196e66ddd8bb79226be4127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he_Prophetic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1a0f0319c731c96dec5fba1ebbd2f72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he_Prophetic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7e31c0fbf761908da7905ea1a144727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he_Prophetic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d3d0cc70bfa70e4ec0a4db4154e9791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he_Prophetic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98/255/611281d5ba9f7395d3bf46de1c287d1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9)] The_Prophetic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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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10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5)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2)(시22:1~21)_2026-06-01(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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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6-01T09:00:37+09:00</published>
		<updated>2026-06-01T09:00:37+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2026-06-01(월) 새벽기도회 제목: [기독론(10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5)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2)(시22:1~2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8_z-Y2WW3yY [설교핵심] 이 설교는 구약의 시편 22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받는 메시아라는 사실을 증명하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 계획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설교입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수님이 신분이 낮은 인간으로 오셔서 겪은 철저...</summary>
	<content type="html">&lt;p&gt;2026-06-01(월) 새벽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0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5)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2)(시22:1~21&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8_z-Y2WW3yY&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8_z-Y2WW3yY?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구약의 시편 22편을 통해&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가 고난받는 메시아라는 사실&lt;/strong&gt;을 증명하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 계획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설교입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수님이 신분이 낮은 인간으로 오셔서 겪은&amp;nbsp;&lt;strong&gt;철저한 소외와 버림받음&lt;/strong&gt;이 다윗의 고통스러운 삶을 통해 이미 구체적으로 예언되었음을 역설합니다. 특히 하나님께 버림받는 영적 고통은 인류의 죄를 속량하기 위한&amp;nbsp;&lt;strong&gt;메시아만의 필수적인 증표&lt;/strong&gt;이며, 이는 신약에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외치신 말씀으로 완벽히 성취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amp;nbsp;&lt;strong&gt;성경적 예언의 성취&lt;/strong&gt;를 명확히 깨달아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갖추고, 회개를 통해 주님의 품성을 닮아가는 신앙의 자리에 설 것을 촉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0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2) 찬양대장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위엄(시78:65~71)_2026-05-29(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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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5-29T08:50:04+09:00</published>
		<updated>2026-05-30T00:21:20+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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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0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2) 찬양대장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위엄(시78:65~7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ZUPCGQWtCgU [기독론(10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2) 찬양대장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위엄 (시 78:65-71) 1. 들어가며 찬양은 인간이 하나님께 올려 드릴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예배의 행위이다. 그러나 모든 찬양이 다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누...</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기독론(10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2) 찬양대장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위엄(시78:65~71)&lt;/span&gt;&lt;/strong&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ZUPCGQWtCgU&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ZUPCGQWtCgU?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title&gt;&lt;/title&gt; &lt;link href=&quot;https://fonts.googleapis.com/css2?family=Nanum+Gothic:wght@400;700&amp;amp;display=swap&quot; rel=&quot;stylesheet&quot; /&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039;나눔고딕&#039;, sans-serif; font-size: 15pt; line-height: 1.8; margin: 0; padding: 0; color: #222; } .title { font-size: 17pt;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bottom: 30px; } h2 { font-size: 16pt;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3em; margin-bottom: 0.8em; } p { margin: 0 0 0.6em 0; } .scripture {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margin: 0 0 0.6em 0; } .signature { margin-top: 1.6em; } &lt;/style&gt; &lt;div class=&quot;title&quot;&gt;[기독론(10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2) 찬양대장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위엄 (시 78:65-71)&lt;/div&gt; &lt;h2&gt;1. 들어가며&lt;/h2&gt; &lt;p&gt;&amp;nbsp;&amp;nbsp;찬양은 인간이 하나님께 올려 드릴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예배의 행위이다. 그러나 모든 찬양이 다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누구를 향한 찬양이며, 누구를 높이는 찬양인가에 따라서 그 본질이 완전히 갈라진다. 자기를 왕으로 세워 준 인간을 찬양할 것인가, 아니면 그 인간을 세우신 하늘의 왕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것인가. 이 한 가지 선택이 찬양의 운명을 결정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다윗 왕은 이 영적 분기점을 정확히 분별한 인물이었다. 그는 비천한 목동에서 한 나라의 왕이 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왕직(王職)이 결코 자기의 것이 아님을 잠시도 잊지 않았다. 자기 나라가 자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며, 자기는 다만 하나님께서 잠시 위임하신 통치자일 뿐임을 깊이 깨달았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를 찬양할 수 있는 모든 권력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자기가 아닌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러한 다윗의 영성이 그가 세운 세 명의 찬양대장 &amp;mdash; 아삽, 헤만, 여두둔 &amp;mdash; 에게 그대로 흘러 들어갔다. 이 세 사람은 다윗이 누구를 향해서 노래하는지를 분명히 보았고, 다윗이 어떤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를 정확히 분별했으며, 그 다윗의 시편을 깊이 연구하여 자신들의 찬양시를 빚어내었다. 이들이 빚어낸 찬양시는 단지 음악적 예술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왕이신 하나님을 높이고, 시온산에 좌정하신 여호와의 영광을 만방에 선포하며, 모든 피조물이 그분을 찬양해야 할 마땅한 이유를 노래한 영적 고백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찬양은 하나님을 왕으로 높이며 섬기는 최고의 방법이다. 이 영적 진리를 다윗과 그의 세 찬양대장이 영적 실재로 보여 주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윗이 세운 세 찬양대장의 삶과 그들이 만든 찬양시를 통해서,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께 어떻게 찬양을 올려 드려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h2&gt;2. 다윗이 왕이 된 후 가장 먼저 마음에 둔 일은 무엇이었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이 왕이 된 후 가장 먼저 마음에 둔 일은 무엇이었을까. 보통의 사람이라면 자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정적(政敵)들을 제거하는 일에 먼저 손을 댔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자기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궁궐을 짓는 일에 매달렸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가 왕권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마자 가장 먼저 마음에 둔 일은 다름 아닌 법궤(法櫃)를 운반하는 일이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법궤는 엘리 제사장 시대에 블레셋 군대에게 빼앗긴 후로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중심에서 떠나 있었다. 법궤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가시적 상징이었다. 그러므로 법궤가 그 자리에 없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린 상태로 살아왔다는 의미이다. 다윗은 왕이 되자마자 이 잃어버린 영적 중심을 회복하는 일이 가장 시급함을 깨달았다. 자기 권력의 안정보다도, 자기 가문의 영광보다도,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첫 번째 시도는 실패하였다. 법궤는 본래 레위인 제사장들의 어깨에 메어 운반해야 하는 것인데, 다윗이 처음에는 그것을 수레에 싣고 옮겼다. 그 결과 웃사라는 자가 그 자리에서 죽는 영적 사건이 발생하였다. 합법적인 방법이 아니었기에 하나님께서 치신 것이다. 다윗은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한동안 법궤 운반을 중단하였다 (삼하 6:6-7).&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삼하 6:6-7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이 사건을 통해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합법적인 방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배웠다. 그래서 다윗은 다시 법궤를 운반할 때에는 반드시 레위인 제사장들의 어깨에 메도록 하였다. 그러나 단지 법궤를 옮기는 일 자체에만 그친 것이 아니다. 다윗은 이 법궤 운반의 자리에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영적 사건을 일으켰다. 그것이 바로 찬양대(讚揚隊)의 첫 출범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이 왕이 된 후 가장 먼저 마음에 둔 일이 법궤 운반이었다면, 그 법궤 운반의 자리에서 다윗이 가장 마음을 쏟은 일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었다. 곧 그의 영적 출발점에 이미 &amp;#39;하나님을 향한 찬양&amp;#39;이라는 핵심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다윗에게 있어서 왕이 된다는 것은 자기를 높이는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세우신 하나님을 높이는 자리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그는 왕권 안정과 동시에 그 출발의 첫 마음을 &amp;#39;찬양&amp;#39;에 두었던 것이다.&lt;/p&gt; &lt;h2&gt;3. 다윗은 왜 역대상 15장에서 찬양대를 처음으로 세웠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무엘상하만 알아서는 안 된다. 시편만 알아서도 안 된다. 반드시 역대상을 함께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무엘상하에 들어 있지 아니한 역사적 기록들이 역대상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찬양대의 첫 출범에 관한 기록은 역대상 15장에 자세히 나와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역대상 15장의 기록을 보면, 다윗은 법궤를 모셔오면서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을 시작하였다. 그것은 바로 노래하는 자, 곧 찬양대를 처음으로 세운 일이다. 모세의 율법에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가 자세히 규정되어 있으나, 그 어디에도 &amp;#39;노래하는 직무&amp;#39;에 관한 명시적 규정은 없었다. 그러므로 그 이전에는 노래하는 제사가 존재하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다윗이 법궤를 모셔오는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노래하는 자들을 세운 것이다 (대상 15:16).&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대상 15:16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령하여 그의 형제들로 노래하는 자들을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이 세운 노래하는 자들은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아니라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 모든 악기를 동원한 오케스트라 규모의 찬양대였다. 곧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합법적 형태의 오케스트라 찬양대가 출범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찬양대를 이끌 세 사람의 대장이 세워졌으니, 그 세 사람이 바로 아삽과 헤만과 에단(여두둔)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 세 사람은 단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에 세워진 것이 아니다. 다윗은 이들을 레위 지파의 세 가문 &amp;mdash; 게르손, 고핫, 므라리 &amp;mdash; 에서 한 사람씩 균형 있게 세웠다. 아삽은 게르손 자손이요, 헤만은 고핫 자손(고라 자손)이요, 에단은 므라리 자손이었다. 곧 다윗은 레위 전체 지파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세움으로써,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동참하도록 하는 영적 구조를 만든 것이다 (대상 15:17-19).&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대상 15:17-19 레위 사람이 요엘의 아들 헤만과 그의 형제 중 베레갸의 아들 아삽과 그의 형제 므라리 자손 중에 구사야의 아들 에단을 세우고 그 다음으로 그들의 형제 스가랴와 벤과 야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마아세야와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문지기 오벧에돔과 여이엘을 세우니 노래하는 자 헤만과 아삽과 에단은 놋제금을 크게 치는 자요&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에서 헤만은 사무엘의 손자임을 주목해야 한다. 곧 사무엘의 첫 아들 요엘의 아들이 바로 헤만이다. 사무엘이라 하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던 그 위대한 선지자이다. 그 사무엘의 손자가 다윗이 세운 찬양대장의 한 사람이 된 것이다. 영적 계보가 이렇게 면면히 이어진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에단의 또 다른 이름이 여두둔이다. 한 사람의 두 이름인데, 다윗이 세운 찬양대장의 명단에서 에단과 여두둔은 동일 인물의 다른 칭호이다. 다윗은 이렇게 레위 지파 안에서 가장 깊은 영성과 가장 풍성한 음악적 재능을 겸비한 세 사람을 골라내어 찬양대장의 직무를 맡겼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이 역대상 15장에서 찬양대를 처음 세운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가장 합당한 예배가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것은 단순히 제사를 드리는 일이 아니라, 모든 악기와 모든 목소리를 동원해서 하나님을 왕으로 높여 드리는 찬양의 예배였다. 이 찬양대가 본격적으로 그 직무를 수행한 것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 때 성전이 지어진 이후이다. 그러나 그 영적 시작은 다윗으로부터 출발하였다. 다윗은 이 영적 통찰을 통해서 인류 예배사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lt;/p&gt; &lt;h2&gt;4. 아삽&amp;middot;헤만&amp;middot;여두둔은 누구를 찬양하기로 결단했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이 세운 세 찬양대장 &amp;mdash;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 &amp;mdash; 은 누구를 찬양하기로 결단했을까. 이 질문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기를 세워 준 인간 다윗을 찬양하기로 결단했다면, 그들은 영원히 다윗의 그늘에 묻혀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은 영적 분별력이 뛰어난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을 세워 준 다윗 그 자체를 찬양한 것이 아니라, 다윗이 섬긴 하늘의 왕 여호와를 찬양하기로 결단하였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 결단이 얼마나 위대한가는 사울 왕과 비교해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사울 왕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왕으로 세워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를 자기 것으로 착각하여 자기 마음대로 통치하였다. 그래서 백성들은 사울 왕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했다. 만일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이 사울 왕의 시대에 살았다면, 그들은 사울을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다윗의 시대에 살았고, 다윗이라는 영적 모범을 보았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은 자기 왕직(王職)이 하나님으로부터 잠시 위임받은 직분에 불과함을 분명히 알았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를 왕으로 부르는 대신, 하나님을 진정한 왕으로 부르는 시편을 끊임없이 지었다 (시 2:6).&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2: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에서 다윗은 자기가 왕이면서도 진정한 &amp;#39;나의 왕&amp;#39;은 시온산에 좌정하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였다. 곧 다윗은 자기가 통치하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결국 자기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 나라의 진정한 통치자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았다. 이 영적 통찰이 다윗을 사울과 결정적으로 구별 짓는 요소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러한 다윗의 영성이 어디에서 가장 떨어지면 위험한가. 바로 교만의 자리이다. 자기가 왕이라는 자각이 우주의 중심이 되어 버리면, 그 순간 사탄 마귀의 영이 그 안에 들어온다. 다윗은 이 영적 위험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을 왕으로 높이는 시편을 썼다 (시 9:7-8).&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9:7-8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시며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 시편은 하나님께서 보좌에 좌정하신 영원한 왕이심을 분명히 노래한다. 다윗에게 있어서 진정한 보좌는 자기가 앉은 예루살렘의 왕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좌정하신 시온의 보좌였다. 그 보좌에 앉으신 분이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시고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는 진정한 왕이심을 다윗은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이 이러한 시편을 쓸 때마다, 그 시편을 가장 가까이서 들은 사람들이 바로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이었다. 이들은 다윗의 시편을 단지 듣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깊이 연구하였다. 다윗이 시편으로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지, 다윗의 시편의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찾아내었다. 그리고 그 핵심을 자기들의 찬양시에 그대로 담아내었다 (시 9:11).&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9:11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 세 사람의 결단은 영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만일 그들이 다윗을 찬양하기로 결단했다면, 그들은 다윗에게 아부하는 어용 음악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윗을 세운 하늘의 왕 여호와를 찬양하기로 결단함으로써, 영적 진리를 만방에 선포하는 선지자적 직무를 수행하였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찬양대장의 직무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 역시 이들의 결단을 기뻐하였다. 자기에게 아부하지 않고 자기를 세운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윗은 자기가 세운 찬양대가 영적으로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곧 다윗과 그 세 찬양대장은 영적으로 하나가 되어,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왕으로 높이는 일에 평생을 바친 것이다.&lt;/p&gt; &lt;h2&gt;5. 고라 자손 헤만의 시편이 증언하는 왕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lt;/h2&gt; &lt;p&gt;&amp;nbsp;&amp;nbsp;헤만은 고핫 자손, 곧 고라 자손의 후예이다. 고라라 하면 민수기 16장에서 모세를 거역하여 반역하다가 땅이 갈라져 산 채로 음부에 떨어진 인물이다. 그런 고라의 후손이 어떻게 다윗의 찬양대장이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민수기 26장의 기록을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다. 고라가 반역할 때 고라의 아들들은 그 반역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고라의 후손은 살아남았고, 그 가운데서 사무엘과 헤만 같은 위대한 인물이 나왔다 (민 26:11).&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민 26:11 그러나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하였더라&lt;/p&gt; &lt;p&gt;&amp;nbsp;&amp;nbsp;이 영적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한 사람의 죄가 그 자손 모두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 자손 중에서도 회개하고 하나님 편에 서는 자가 있으면, 그들은 살아남을 뿐 아니라 위대한 영적 계보를 이루어 간다. 고라 자손이 바로 그러한 영적 표본이다. 우리는 성경 전반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시편 하나하나를 해석해 갈 때 비로소 그 깊은 뜻을 알게 된다.&lt;/p&gt; &lt;p&gt;&amp;nbsp;&amp;nbsp;헤만이 쓴 시편은 시편 제2권에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시편은 모두 다섯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권(1~41편)에는 다윗의 시가, 제2권(42~72편)에는 고라 자손의 시가, 제3권(73~89편)에는 아삽의 시가 중심을 이룬다. 이러한 시편의 구조 자체가 다윗과 그의 세 찬양대장의 영적 협업을 보여 준다. 고라 자손의 시는 모두 열한 편이며, 아삽의 시는 모두 열두 편으로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니다.&lt;/p&gt; &lt;p&gt;&amp;nbsp;&amp;nbsp;고라 자손 헤만의 시편은 다윗의 시편을 그대로 본받아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시편 46편을 보면, 헤만은 하나님을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요 산성이라고 노래한다 (시 46:1-4).&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46:1-4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에서 &amp;#39;피난처&amp;#39;, &amp;#39;산성&amp;#39;, &amp;#39;요새&amp;#39;라는 표현은 본래 다윗이 시편 18편에서 사용한 영적 언어이다. 곧 헤만은 다윗이 사용한 영적 언어를 그대로 따와서 자기의 찬양시에 담아낸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다윗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임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다윗이 체험한 하나님이 곧 자기가 찬양해야 할 하나님임을 확신한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시편 47편에서 헤만은 더욱 분명하게 하나님을 왕으로 노래한다 (시 47:1-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47:1-2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왕이 되심이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 시편을 자세히 보면, 헤만이 어떤 영적 결단을 내렸는지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결코 다윗을 &amp;#39;온 땅의 왕&amp;#39;이라고 노래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amp;#39;온 땅의 큰 왕&amp;#39;이라고 노래한다. 다윗은 비록 주변의 모든 나라를 복속시킨 위대한 왕이었으나, 헤만은 그 다윗을 세우신 하나님이야말로 참된 왕이심을 분명히 분별하였다 (시 47:6-8).&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47:6-8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lt;/p&gt; &lt;p&gt;&amp;nbsp;&amp;nbsp;시편 48편에서 헤만은 그 왕이 좌정하시는 자리를 노래한다 (시 48:1-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48:1-2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 받으시리로다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에서 &amp;#39;북방에 있는 시온산&amp;#39;이라는 표현은 영적으로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닌다. 천국을 향해서 가는 영혼의 방향이 북쪽이기 때문이다. 영혼이 육체를 떠나 천국으로 갈 때, 은하계를 통과하며 북극성을 따라간다. 욕단 민족인 우리 한민족의 조상들도 북극성을 따라 동방으로 왔으며, 그 북극성을 항상 가리키는 별이 바로 북두칠성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주사의 별자리 탑들이 이러한 영적 사실을 증언한다. 그것은 결코 불교의 흔적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조상들이 하나님께서 계신 곳을 찾아왔다는 영적 표시였다. 헤만은 이러한 영적 비밀까지도 그의 찬양시에 담아낸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시편 84편은 헤만이 자기 자신의 영적 결단을 가장 분명히 고백한 시편이다 (시 84:10).&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84: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lt;/p&gt; &lt;p&gt;&amp;nbsp;&amp;nbsp;문지기란 다윗이 24반차의 직제 가운데 세운 가장 낮은 직분이다. 다윗은 제사장과 레위인과 성가대와 문지기를 모두 24반차의 직제로 세웠다. 그 가운데 가장 낮은 자리가 문지기인 것이다. 그런데 헤만은 자기가 비록 찬양대장이라는 높은 자리에 있어도, 영적으로는 자기를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 정도의 낮은 자로 여겼다. 이러한 겸손이 곧 진정한 찬양대장의 영성이다. 자기를 낮추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왕으로 높이는 자만이, 그 찬양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자가 된다.&lt;/p&gt; &lt;h2&gt;6. 아삽과 에단(여두둔)의 시편은 다윗의 영성을 어떻게 계승했는가?&lt;/h2&gt; &lt;p&gt;&amp;nbsp;&amp;nbsp;게르손 자손인 아삽과 므라리 자손인 에단(여두둔)도 헤만과 마찬가지로 다윗의 영성을 그대로 계승하였다. 그들의 시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윗이 체험한 하나님을 자기들도 그대로 체험하고 찬양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아삽의 시편은 시편 73~83편에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그 가운데 시편 77편을 보면, 아삽은 다윗과 똑같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한다 (시 77:13-14).&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77:13-14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신 신이 누구오니이까 주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lt;/p&gt; &lt;p&gt;&amp;nbsp;&amp;nbsp;아삽이 이러한 시편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의 영적 직관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다윗이 가르쳐 준 영적 진리를 정확히 이해했고, 그 이해를 자기의 찬양시로 빚어내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특별히 시편 78편은 오늘 본문이 속한 시편으로서, 아삽이 다윗의 영성을 가장 깊이 계승했음을 보여 준다 (시 78:67-71).&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78:67-71 또 요셉의 장막을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유다 지파와 그가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며 그의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도다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에서 아삽은 하나님이 다윗을 양 떼 가운데서 취하사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우셨음을 노래한다. 곧 다윗 왕직의 본질이 &amp;#39;목자(牧者)&amp;#39;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목자라는 직분은 시편 110편의 &amp;#39;왕 같은 제사장&amp;#39; 직분과 연결된다. 그 왕 같은 제사장은 곧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왕이다. 그분은 자기 백성을 압제하는 왕이 아니라, 자기를 희생하여 떡과 포도주를 공급하는 왕이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폐지하시고 성만찬을 제정하신 것은, 바로 자기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왕임을 증명하시기 위함이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아삽은 이러한 영적 비밀을 정확히 알았다. 그래서 그는 시편 80편에서도 하나님을 &amp;#39;이스라엘의 목자&amp;#39;로 노래한다 (시 80:1).&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80:1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은 자기가 본래 비천한 양치기였음을 결코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의 출발이 양 떼를 치던 자리였음을 분명히 기억하였다. 보통의 왕들이라면 자기 출신의 비천함을 감추려 할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도리어 그 비천함을 자기 찬양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내가 본래 죄인이었으며 구원받기에 합당치 않은 자였음을 철저히 깨달아야 한다. 그렇게 자기의 비천함을 깊이 깨달을수록,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더욱 깊어진다. 아삽은 다윗의 이러한 영성을 그대로 계승하여, 자기의 시편에서도 하나님을 목자로, 자기 백성을 양 떼로 노래한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시편 82편에 이르면, 아삽의 영성은 더욱 놀라운 차원으로 올라간다. 그는 하나님께서 신들의 모임 가운데서 재판하시는 어전 회의의 장면을 그의 시편에 담아낸다 (시 82:1).&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82:1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lt;/p&gt; &lt;p&gt;&amp;nbsp;&amp;nbsp;이 장면은 욥기와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어전 회의를 그대로 보여 준다. 구약 시대에는 천사들이 그 어전 회의에 참여하였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천사 대신 모세, 엘리야, 베드로, 바울 &amp;mdash; 이 네 사람이 그 어전 회의에 참여한다. 모세는 행위 책을 따라 행위적으로 판단하고, 엘리야는 예언을 따라 얼마나 믿었는지를 판단하며, 베드로와 바울은 예수의 피로 덮어 용서해 달라고 변호한다. 아삽이 이러한 영적 비밀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은 다윗이 환상 중에 보고 와서 들려준 이야기를 아삽이 깊이 귀담아 들었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러한 영적 통찰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윗과 같은 깊은 영성을 가진 자만이 알 수 있다. 그런데 아삽은 다윗의 곁에서 그 영성의 떨어진 부스러기까지 주워 담아 자기 것으로 삼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영적 계승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므라리 자손인 에단(여두둔)도 마찬가지였다. 시편 89편은 분명히 에단의 시로 표제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다윗의 영성이 그대로 흘러 들어가 있다 (시 89:18).&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89:18 우리의 방패는 여호와께 속하였고 우리의 왕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속하였기 때문이니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에단은 다윗이 직접 한 이야기를 그대로 들어서 자기의 찬양시에 담아냈다. 시편 89편의 후반부에서 에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그대로 노래한다 (시 89:26).&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89:26 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에서 &amp;#39;주는 나의 아버지&amp;#39;라는 호칭이 등장한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을 &amp;#39;아버지&amp;#39;라고 부른 사람은 거의 없다. 두세 사람에 불과하다. 그런데 다윗이 그러한 영적 호칭을 사용하였다. 그것은 시편 27편에서 다윗이 고백한 영성에 근거한다 (시 27:10).&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은 자기 아버지에게서도, 자기 어머니에게서도 버림받은 자였다. 어린 나이에 형들로부터 외면당해 들판으로 보내어졌고, 자기 어머니에 관한 기록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그는 그 버림받음 가운데서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로 모셨다. 인류 역사상 거의 최초로 하나님을 &amp;#39;아버지&amp;#39;라고 부른 사람이 다윗이라고 추정된다. 그리고 에단은 다윗이 그렇게 부르는 것을 자기의 시편에 그대로 옮겨 담았다. 얼마나 다윗의 말을 깊이 귀담아 들었는가를 알 수 있다.&lt;/p&gt; &lt;h2&gt;7. 할렐루야 시편(146~150편)이 모든 피조물에게 찬양을 명하는 이유는?&lt;/h2&gt; &lt;p&gt;&amp;nbsp;&amp;nbsp;시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가면, 어떤 영적 흐름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시편 초반부에는 비탄시, 저주시, 회개시 등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시편이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찬양의 색채가 짙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편인 시편 146~150편에 이르면, 그 모든 시편이 &amp;#39;할렐루야&amp;#39;로 시작하여 &amp;#39;할렐루야&amp;#39;로 끝난다. 그래서 이 다섯 편을 &amp;#39;할렐루야 시편&amp;#39;이라고 부른다. 시편 가운데 찬양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 할렐루야 시편들은 모두 다윗의 시로 추정된다. 시편의 표제어가 명시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앞 사람의 시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러므로 시편 146편부터 150편까지는 다윗이 자기 생애 마지막에 빚어낸 찬양의 정수(精髓)라고 볼 수 있다 (시 146:1).&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146: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에서 다윗은 시편 146편을 통하여 분명히 노래한다 (시 146:10).&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146:10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lt;/p&gt; &lt;p&gt;&amp;nbsp;&amp;nbsp;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는 분이며, 내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는 분이다. 곧 진정한 왕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다윗은 마지막 순간까지 분명히 고백한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시편 147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한다 (시 147:4-5).&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147:4-5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우리 주는 위대하시고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리고 시편 147편 8절에는 비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이 나온다. 이 부분은 우리가 자주 부르는 &amp;#39;비를 준비하시니&amp;#39;라는 찬양의 모티프가 되는 본문이다. 시편 147편의 또 다른 핵심은 그 결론부에 있다 (시 147:20).&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147:20 그는 어느 민족에게도 이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들은 그의 법도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lt;/p&gt; &lt;p&gt;&amp;nbsp;&amp;nbsp;곧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베푸신 은혜는 다른 어느 민족에게도 베푸시지 아니한 특별한 은혜라는 사실을 다윗은 강조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시편 148편은 이 할렐루야 시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다윗은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하기 때문이다 (시 148:2).&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148:2 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먼저 천사들이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 (시 148:3).&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148:3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음으로 우주 자연 만물인 해와 달과 별들이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 (시 148:7).&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148:7 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lt;/p&gt; &lt;p&gt;&amp;nbsp;&amp;nbsp;심지어 타락하여 용이 된 사탄까지도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시 148:10).&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148:10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lt;/p&gt; &lt;p&gt;&amp;nbsp;&amp;nbsp;심지어 부정한 것으로 분류되는 기는 것과 나는 새와 짐승과 모든 가축까지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에서 다윗이 모든 피조물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피조물이 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천사도, 해와 달도, 별들도, 심지어 타락하여 용이 된 사탄까지도, 그리고 기는 것과 나는 새며 짐승과 모든 가축까지도 &amp;mdash;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서 빚어진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그 모든 피조물은 마땅히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 영적 진리가 시편 150편에서 그 결정적 결론에 이른다 (시 150:3-6).&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시 150:3-6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은 자기 생애를 통해서 가장 중요한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인간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직무라는 사실이다. 다윗은 본래 자기가 직접 성전을 짓고 싶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맡기셨다. 그렇다면 다윗 자신은 무엇으로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다윗은 이렇게 결단하였다 &amp;mdash; &amp;#39;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내 마음의 과제로 삼겠다&amp;#39;. 그래서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을 찬양대장으로 세우고, 모든 악기를 동원한 오케스트라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린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 결과 하나님께서 다윗을 얼마나 기뻐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름을 자기의 이름 안에 넣어 주셨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amp;#39;다윗의 자손&amp;#39;이라고 부르게 하신 것이다. 어떤 인간이 하나님의 이름 안에 자기 이름을 넣어 받을 수 있는가. 오직 다윗 한 사람뿐이다.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기 때문이다.&lt;/p&gt; &lt;h2&gt;8. 루시퍼와 다윗의 결정적 차이, 진정한 찬양의 본질은 무엇인가?&lt;/h2&gt; &lt;p&gt;&amp;nbsp;&amp;nbsp;이제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영적 비밀을 보아야 한다. 그것은 하늘의 찬양대장이었던 루시퍼와 땅의 찬양대장을 세운 다윗 사이의 결정적 차이이다. 이 차이를 이해해야 진정한 찬양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본래 하늘에는 찬양대장이 있었다. 그가 바로 루시퍼이다. 루시퍼는 하나님께서 가장 높은 지혜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으신 천사장이었다. 에스겔서 28장에 그 영적 사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겔 28:12-13).&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겔 28:12-13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이 두 가지이다. 첫째는 루시퍼가 단장하였던 보석이 모두 아홉 개라는 사실이다. 대제사장의 흉패에 박힌 열두 보석 가운데 아홉 개가 일치한다. 이는 루시퍼가 본래 하나님 앞에서 대제사장과 같은 영광스러운 직분을 가졌음을 보여 준다. 둘째는 &amp;#39;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amp;#39;라는 구절이다. 곧 루시퍼는 본래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대장의 직분을 받은 자였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런데 이 루시퍼가 어떻게 되었는가. 그는 타락하였다. 자기가 받은 그 가장 높은 지혜와 가장 아름다운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를 하나님의 자리로 높이고자 하였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 앞에서 찬양해야 할 자기의 직무를 저버렸고, 도리어 자기를 찬양하라고 다른 천사들을 미혹하였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것이 바로 사탄 마귀의 본질이다. 자기 자신을 찬양 받는 자리에 올리는 것 &amp;mdash; 이것이 사탄의 영이다. 그래서 사탄에게 사로잡힌 사람은 반드시 자기를 찬양 받는 자리로 올리려 한다. 사울 왕이 그 영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사울은 자기가 받은 왕직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자기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다윗은 자기가 본래 양 떼나 치던 비천한 목동이었음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 자기가 왕이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분명히 알았다. 그래서 다윗은 충분히 자기를 찬양하라고 시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자기를 찬양하라고 명한 적이 없었다. 도리어 자기를 세우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자기 백성을 가르쳤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것이 루시퍼와 다윗의 결정적 차이이다. 루시퍼는 자기가 가진 가장 높은 영광의 자리에서 자기를 찬양받고자 하여 타락하였으나, 다윗은 자기가 받은 가장 높은 왕의 자리에서 자기를 찬양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였다. 이 차이가 곧 멸망과 영광의 갈림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얼마나 기뻐하셨는가. 그것은 천국에서 다윗의 영적 지위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다윗은 천국에서 찬양하는 자들의 마을 &amp;mdash; 곧 레위 지파의 찬양 동산 &amp;mdash; 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 영적 서열로 보면 우리 한민족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큼 높은 자리에 있다. 그의 찬양을 들으면 그 영성의 깊이가 즉시 느껴질 정도이다. 이러한 영적 사실들이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영적 세계의 실재로서 확인되는 사실들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주의 종 된 자에게 이 사실은 특별히 두려운 경고이다. 목사라는 직분이 있어 말씀을 전하고 교회를 운영하지만, 하나님이 진정한 왕이심을 항상 자각하지 못하면, 그 자각이 떨어지는 순간 교만죄가 나오고, 그 교만죄가 결국 사탄 마귀의 길로 미끄러져 내려가게 된다. 다윗은 이 영적 위험을 알았기에 한 순간도 자기를 왕의 자리에 올리지 아니하였다. 천주교가 마리아를 중보자로 세워 신격화시킨 오류, 여호와의 증인이 한 분 하나님 교리를 잘못 이해하여 예수님을 피조물로 격하시킨 오류 &amp;mdash; 이 모든 이단적 오류가 결국 &amp;#39;누구를 찬양할 것인가&amp;#39;라는 영적 분별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직 한 분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들로 오신 그분만이 찬양받기 합당하시다는 진리를 분명히 붙들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로써 진정한 찬양의 본질이 분명히 드러난다. 진정한 찬양은 인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진정한 찬양은 자기를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낮추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왕으로 모시는 것이다. 진정한 찬양은 분위기에 휩쓸려 흘러가는 떼창이 아니라, 영적 분별의 결과로 빚어진 정확한 고백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영적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곧 찬양은 하나님을 왕으로 높이며 섬기는 최고의 방법이다. 이것이 다윗과 그의 세 찬양대장 &amp;mdash;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 &amp;mdash; 이 영적 실재로 보여 준 진리이다.&lt;/p&gt; &lt;h2&gt;9. 나오며&lt;/h2&gt; &lt;p&gt;&amp;nbsp;&amp;nbsp;지금까지 우리는 다윗이 세운 세 찬양대장의 삶과 그들이 만든 찬양시를 통해서,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께 어떻게 찬양을 올려 드려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다윗이 왕이 되어 가장 먼저 마음에 둔 일은 법궤를 모셔오는 일이었으며, 그 자리에서 그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오케스트라 규모의 찬양대를 세웠다. 그가 세운 세 찬양대장 &amp;mdash;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 &amp;mdash; 은 자기들을 세워 준 다윗을 찬양한 것이 아니라, 다윗이 섬긴 하늘의 왕 여호와를 찬양하기로 결단하였다. 그들은 다윗의 시편을 깊이 연구하여 그 영성을 그대로 자기들의 찬양시에 담아내었고, 시편 146~150편의 할렐루야 시편에서 그 찬양의 절정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 모든 영적 진리가 한 가지 사실로 수렴된다 &amp;mdash; 곧 찬양은 하나님을 왕으로 높이며 섬기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사실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다윗과 그의 세 찬양대장의 영성을 본받아야 한다. 자기를 찬양받는 자리에 올리려 하는 사탄의 영을 분별하여야 한다. 자기를 낮추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왕으로 모셔야 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직분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잠시 위임받은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특별히 주의 종 된 자들은 더욱 그러하여야 한다. 목사라는 직분이 있어 말씀을 전하고 교회를 운영하지만, 그 모든 일의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항상 자각하여야 한다. 이 자각이 떨어지는 순간 교만죄가 나오며, 그 교만죄가 자라면 결국 사탄 마귀의 영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래서 주의 종 된 자는 더욱 다윗의 영성을 본받아야 한다. 자기가 본래 왕될 자가 아니었음을, 자기가 본래 구원받기에 합당치 않은 자였음을,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모든 성도는 다윗처럼 찬양을 사랑하여야 한다.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일에 평생을 바쳐야 한다. 자기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간에 환난 중에 있든지 평탄 가운데 있든지 &amp;mdash;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이 본래 비천한 목동이었던 자기의 출발점을 잊지 않았듯이, 우리도 본래 죄인이었던 자기의 출발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비천함을 깊이 깨달을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깊어진다. 그 은혜의 깊이만큼 찬양이 빚어진다. 그래서 우리의 찬양이 깊고 진실해진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리하여 자기를 낮추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왕으로 높이며, 다윗과 그의 세 찬양대장처럼 평생토록 모든 악기와 모든 호흡을 다하여 여호와를 찬양함으로써, 천국에 가서도 영원토록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거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class=&quot;signatur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ignature&quot;&gt;2026년 05월 29일(금)&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title&gt;&lt;/title&gt; &lt;link href=&quot;https://fonts.googleapis.com/css2?family=Nanum+Gothic:wght@400;700&amp;amp;display=swap&quot; rel=&quot;stylesheet&quot; /&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039;나눔고딕&#039;, sans-ser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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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link href=&quot;https://fonts.googleapis.com/css2?family=Nanum+Gothic:wght@400;700&amp;amp;display=swap&quot; rel=&quot;stylesheet&quot; /&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039;나눔고딕&#039;, sans-serif; font-size: 15pt; line-height: 1.8; margin: 0; padding: 0; color: #222; } .title { font-size: 17pt;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bottom: 30px; } h2 { font-size: 16pt; font-weight: bold; color: #38688c; margin-top: 3em; margin-bottom: 0.8em; } p { margin: 0 0 0.6em 0; } .scripture { font-weight: bold; color: #854ba0; margin: 0 0 0.6em 0; } .signature { margin-top: 1.6em; } &lt;/style&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05)]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1) 고라자손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위엄(시48:1~14)_2026-05-28(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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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5-28T21:52:39+09:00</published>
		<updated>2026-05-28T22:00:40+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05)]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1) 고라자손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위엄(시48:1~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Y1hbJRiwHcs 1. 들어가며 한 사람의 생애가 얼마나 깊이 하나님을 사랑했는가는, 그가 죽은 뒤에 남긴 흔적으로 증명된다. &#039;다윗&#039;이라는 한 인물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단순히 위대한 왕으로 머물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전형(典型)이요 원형(原型...</summary>
	<content type="html">&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아침묵상입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05)]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1) 고라자손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위엄(시48:1~14)&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https://youtu.be/Y1hbJRiwHcs&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Y1hbJRiwHcs?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lt;meta name=&quot;viewport&quot; content=&quot;width=device-width, initial-scale=1.0&quot;&gt; &lt;title&gt;&lt;/title&gt; &lt;link href=&quot;https://fonts.googleapis.com/css2?family=Nanum+Gothic:wght@400;700&amp;amp;display=swap&quot; rel=&quot;stylesheet&quot; /&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margin: 0; padding: 0; font-family: &#039;Nanum Gothic&#039;, &#039;나눔고딕&#039;, sans-serif; font-size: 16px; line-height: 1.9; color: #222222; } .post-title { font-size: 20px; font-weight: 700; color: #38688c; line-height: 1.5; margin: 0 0 4px 0; } .post-subref { font-size: 16px; font-weight: 700; color: #38688c; margin: 0 0 20px 0; } p.body { margin: 0 0 14px 0; text-align: left; } p.subtitle { margin: 40px 0 12px 0; font-size: 17px; font-weight: 700; color: #38688c; } p.scripture { margin: 0 0 14px 0; font-weight: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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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며 그가 세운 질서를 천국의 질서로 삼으신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다윗 체제의 정점에 무엇이 있는가? 그것은 &amp;#39;찬양&amp;#39;이다. 다윗은 성전을 짓지 못하게 하심을 받았으나, 대신 4,000명의 성가대를 세워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였다. 그는 자신이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가장 높이 영화롭게 할 수 있는 마지막 길이 찬양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찬양대를 이끈 세 사람의 대표 가운데 하나인 &amp;#39;헤만&amp;#39;이 한때 하나님을 거역했던 고라의 후손이었으며, 또한 다윗이 흘린 눈물의 시(詩)를 그대로 가져다가 노래(歌)로 부활시킨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한 그 마음을, 찬양을 맡은 자들이 똑같이 사랑하여 노래로 빚어낸 것이다. 한 사람의 깊은 사랑이 다른 이들에게로 흘러가 거룩한 찬양의 강을 이룬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진정한 왕의 위엄이 미친 자리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시편 48편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진정한 왕의 위엄이 어떻게 고라 자손에게까지 미쳤으며, 그들이 어떻게 다윗의 시를 노래로 만들어 만왕의 왕을 찬양하게 되었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quot;subtitle&quot;&gt;&lt;span class=&quot;post-title&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2. 하나님은 왜 구약에 없던 &amp;#39;왕권의 분배&amp;#39;를 다윗에게서 시작하셨는가?&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구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통치 권한을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다는 말씀은 없다. 원래 통치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행하시는 일이었다. 한 분 하나님께서 홀로 만물을 다스리시는 것, 이것이 구약 전체를 관통하는 질서였다. 그런데 이 질서에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향하여 &amp;quot;내 마음에 합한 자&amp;quot;라 부르시고(삼상 13:14), 당신이 앉아 통치하시는 그 자리를 그에게도 분배해 주시기로 결정하신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붙들어야 할 영적 사실이 있다. 이 왕권의 분배가 다윗 때에 비로소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만세 전부터 하나님의 경륜 안에 이미 있었던 것이다. 다만 표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있을 수 있었으나 드러나지 않았던 그 뜻이, 다윗이라는 한 사람을 통하여 비로소 역사 속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amp;quot;내 마음에 합한 자가 있다면, 내가 앉아 통치할 그 자리를 너에게도 분할하여 주겠다&amp;quot;고 결정하셨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이 사실을 여호수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땅을 지파별로 분배할 때, 가장 치열하게 싸워 대적을 몰아낸 자들이 가장 넓은 기업을 차지하였다. 이것은 단순한 옛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장차 임할 천국의 질서를 미리 보여 주는 영적 모형이다. 천국에서 넓은 땅을 분배받은 사람들을 살펴보니, 모두가 이 땅에서 영적 싸움을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이었다. 영적 전쟁을 감당한 자가 하늘의 땅을 많이 차지한다는 사실이 여기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결코 안일하게 머물러서는 안 되며, 반드시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흘리는 영적 수고의 땀방울 하나하나가, 장차 천국에서 받게 될 기업의 넓이를 결정짓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또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당신이 택하신 종들에게는 특별한 우선권, 곧 특별 분양권을 주라고 명하셨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한 지파를 택하여 장자 대신 당신의 일을 맡기셨으니, 그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 특별한 분깃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본래 모든 집의 장자는 하나님의 것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장자들을 대신하여 &amp;#39;레위 지파&amp;#39;를 택하시고 당신의 거룩한 일에 세우셨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 그 택함받은 종들은 특별 분양권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엄중한 진리가 있다. 예정은 되어 있으나 고정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정되어 있다 하여도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이 있기에, 그 자리는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하나님 앞에 특별히 쓰임받을 자로 보냄받지 않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스스로의 결단으로 &amp;quot;내가 그 길을 가리라&amp;quot; 결정하면, 하나님은 그 헌신을 얼마든지 받으신다. 이것이 바로 &amp;#39;나실인 제도&amp;#39;가 보여 주는 영적 원리이다. 본래 제사장으로 태어나지 않았어도, 스스로 하나님께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기로 서원하면 하나님께서 그 헌신을 거룩하게 받으셨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음을 증거한다. 우리는 그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다. 다윗은 바로 그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택하고 사랑한 사람이었으며,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당신의 왕권을 나누어 주기로 결정하신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삼하 7:8-9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ubtitle&quot;&gt;&lt;span class=&quot;post-title&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3. 천국의 모든 행정 시스템은 왜 &amp;#39;다윗식 24반차&amp;#39;로 돌아가는가?&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두 종류의 왕을 깨달아 갔다.&lt;strong&gt; 첫째는 목자와 같은 왕&lt;/strong&gt;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목자로 살았기에, 시편 23편에서처럼 목자의 심정을 누구보다 깊이 알았다. 이 목자 되심은 에스겔서에서 정확하게 예언되었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겔 34:23-24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이 예언은 다윗보다 약 400년 뒤에 살았던 에스겔 선지자가 선포한 것이다. 다윗이 다시 살아 돌아올 일은 없으니, 이 &amp;quot;내 종 다윗&amp;quot;은 장차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가리키는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amp;quot;모세의 아들&amp;quot;이나 &amp;quot;이사야의 아들&amp;quot;이라 부른 적이 없고, 오직 &amp;quot;다윗의 자손&amp;quot;이라 부른 것은, 이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증거한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보내실 당신의 아들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신다는 것, 곧 왕 노릇 하실 분이 최고의 신분으로 오신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알려 주신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0장에서 &amp;quot;나는 선한 목자라&amp;quot; 하신 것이다(요 10:11).&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이제 다윗이 만든 그 체제를 살펴보자. 다윗은 늙어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삼은 후, 레위 사람들을 직무에 따라 정밀하게 나누었다. 사천 명을 성전 문지기로, 또 사천 명을 여호와께 찬송을 드리기 위해 그가 만든 악기로 찬송하는 자들로 세웠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대상 23:5 사천 명은 문지기요 사천 명은 다윗이 찬송하기 위하여 만든 악기로 여호와를 찬송하는 자들이라&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그러한 나눔의 정밀함을 보라. 아론 자손의 제사장 계열은 엘르아살 자손에서 열여섯 반차, 이다말 자손에서 여덟 반차, 합하여 정확히 스물네 반차로 나뉘었다. 누가복음 1장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바로 이 아비야 반열에 속한 제사장이었다. 레위 자손도 스물네 반차로, 성가대도 스물네 반차로, 문지기도 스물네 반차로 나뉘었다. 곧 다윗이 세운 모든 직무가 스물네 개의 반차로 정렬된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우리는 충격적인 영적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lt;strong&gt;요한계시록이 보여 주는 천국의 모든 행정 시스템이 스물네 장로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스물넷이라는 숫자가 바로 다윗이 이 땅에서 만들어 놓은 틀이라는 사실&lt;/strong&gt;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체제를 그토록 기뻐하셔서, 천국의 질서를 다윗식으로 삼으신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위로를 준다. 천국의 삶은 이 땅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흔히 우리는 천국을 이 땅과 완전히 단절된 별개의 세계로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당신을 위해 행한 모든 일을 영원토록 기억하고자, 천국에 그 기념을 새겨 두시는 분이다. 천국에 있는 모세의 집에도 법궤가 있고, 그 안에 십계명 두 돌판과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만나 담은 항아리가 따로 보관되어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행한 일을 천국에서 기념물로 간직하기를 기뻐하신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드린 모든 수고가 천국에 고스란히 기억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마다 &amp;quot;네가 나를 위해 행한 이 모든 일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나는 너를 위하여 기념관을 지어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amp;quot;고 말씀하실 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천국에는 그렇게 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념관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흘리는 헌신의 수고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quot;subtitle&quot;&gt;&lt;span class=&quot;post-title&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4. 다윗은 어떻게 메시아가 &amp;#39;하나님의 아들&amp;#39;로 와서 왕 되심을 미리 알았는가?&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더욱 놀라운 것은, &lt;strong&gt;장차 오실 메시아가 &amp;#39;하나님의 아들&amp;#39;로 오셔서 왕 노릇 하실 것임을 다윗이 미리 알았다&lt;/strong&gt;는 사실이다. 시편 2편을 읽을 때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인간이 어떻게 이토록 하나님의 뜻을 깊이 헤아릴 수 있었는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감동을 주셔서, 그가 살던 시온산과 예루살렘 성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천국의 이름을 짓고, 그의 자손에게서 메시아를 보내겠다고 결정하셨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시 2:6-7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하나님께서 거룩한 산 시온에 당신의 왕을 세우시며, 그 왕을 향하여 &amp;quot;너는 내 아들이라&amp;quot;고 선언하신다. 곧 장차 아들로 오실 메시아가 왕 노릇 하실 것을 다윗이 미리 알았던 것&lt;/strong&gt;이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 왕의 통치가 어떠한지를 보여 준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시 2:8-9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다윗에게 그대로 성취되었다. 다윗은 아말렉으로부터 블레셋에 이르기까지 주변의 모든 이방 나라를 유업으로 얻어 다스렸다. 그가 다스린 것은 자기 백성을 철장으로 짓누른 것이 아니라, 거역하는 이방 나라들을 철장으로 제압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궁극적 성취는 장차 하나님의 아들로 오실 메시아에게 있다. 다윗이 자신을 향하여 &amp;quot;주는 나의 아버지시라&amp;quot; 고백한 시편의 구절이, 결국은 메시아의 왕 되심을 예표하는 것이었다(시 89:26). 한 인간 다윗이 이 땅에서 누린 왕권과 승리는, 장차 영원한 왕으로 오실 그분의 통치를 미리 비추는 거울이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시 89:26&amp;nbsp;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amp;nbsp;&lt;/span&gt;&lt;/strong&gt;&lt;/span&gt;&lt;br /&gt; &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영적 사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amp;#39;시온산&amp;#39;을 그대로 천국의 산으로 삼으시고, 예루살렘 성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amp;#39;새 예루살렘&amp;#39;이라 부르시며, 다윗의 자손에게서 메시아를 보내기로 결정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이라는 한 사람과 그가 살던 땅과 그가 세운 질서를 얼마나 기뻐하셨는가를 증거한다.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이토록 깊이 헤아렸기에, 하나님께서도 다윗의 모든 것을 영원한 나라의 모형으로 삼으신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quot;subtitle&quot;&gt;&lt;span class=&quot;post-title&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5. 철장(鐵杖)의 통치는 성 안과 성 밖에서 어떻게 갈라지는가?&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에 부딪힌다. &lt;strong&gt;천국에는 철장으로 다스릴 대적이 없는데, 그렇다면 시편 2편 9절의 &amp;quot;철장&amp;quot;은 어떻게 해석해야&lt;/strong&gt; 하는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인용하실 때 그 답이 드러난다(계 2:26-27).&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계 2:26-2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포이마이노)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주목할 것은, 시편에서 &amp;quot;깨뜨린다&amp;quot;고 하신 말씀을 예수님께서는 &amp;quot;다스린다(포이마이노)&amp;quot;로 인용하셨다는 점이다. &amp;#39;목양한다&amp;#39;는 의미를 그 안에 담으신 것이다. 곧 하나님의 백성은 철장이 아니라 목양으로 다스림을 받는 양들이다. 철장의 통치는 성 밖에 있는 자들, 곧 여전히 거역적인 것이 남아 있어 합당하지 않아 쫓겨난 자들에게 임하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새 하늘과 새 땅에 거룩한 성이 내려올 때, 성은 빛의 도시이기에 그 안과 가까운 바깥쪽은 그나마 환하다. 그러나 점차 더 바깥으로, 더 어두운 쪽으로 갈수록 슬피 울며 이를 갈고 고통당하는 자리가 나타난다. 그리고 가장 끝, 곧 지옥으로 떨어지면 완전히 철장으로 다스림받는 자들, 곧 사탄과 마귀가 있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받은 구원은 일종의 맛보기이다. 마귀가 여전히 활동하는 이 땅의 구원은 참된 안식이 아니다. 마귀가 없는 그곳,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그곳에서 누리게 될 지형과 구조와 계급 체계를,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서 그대로 받으신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이 영적 사실은 우리의 신앙에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 &lt;strong&gt;우리는 단지 이 땅에서 구원의 맛을 본 것에 만족하여 머물러서는 안 된다. 빛의 도시인 성 안으로, 곧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그 중심으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lt;/strong&gt;한다. 성 밖 어두운 곳으로 밀려나지 않으려면, 이 땅에 사는 동안 거역하는 옛 성품을 버리고 주님의 다스리심에 온전히 순복하는 양이 되어야 한다. 철장의 다스림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선한 목자의 음성을 따라 푸른 풀밭으로 인도함받는 양 떼의 자리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quot;subtitle&quot;&gt;&lt;span class=&quot;post-title&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6. 하나님이 레위 지파에게 맡기신 &amp;#39;최종적이고 최고의 일&amp;#39;은 무엇인가?&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하나님께서 레위 지파 제사장을 세우신 일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놀랍게도 그것은 &amp;#39;찬양&amp;#39;으로 끝난다&lt;/strong&gt;. 제사장을 세우신 까닭이 이 땅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나, &lt;strong&gt;최종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lt;/strong&gt;이라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lt;strong&gt;이 찬양은 아론 때에는 없었다. 다윗이 처음으로 만든 것&lt;/strong&gt;이다. 다윗은 &amp;quot;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인가?&amp;quot;를 고민하였다. &amp;quot;나는 왕이 아니다. 하늘의 왕, 진짜 만왕의 왕, 영광의 왕은 저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인간으로서 내가 하나님을 높일 수 있는 마지막 최고의 방법이 무엇인가.&amp;quot; 그 결론이 바로 찬양이었다. 그래서 교회는 찬양의 은혜로 가득해야 한다. 찬양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찬양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하나님께서 찬송 중에 임하시기 때문이다(시 22:3).&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시 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주님은 당신의 백성이 찬송할 때 그 찬송을 보좌 삼아 임하신다. 신약의 사도 바울도 이 진리를 깊이 알았다. 그는 에베소서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을 거듭 강조한다(엡 1:6).&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엡 1: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바울은 성자께서 행하신 일을 찬송하고(엡 1:6), 성부께서 행하신 일을 찬송하며(엡 1:12),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셔서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신 성령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하여(엡 1:14),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천사가 아닌 인간을 택하여 당신의 아들들로 삼으셨음을 선포한다. 에베소서 1장을 자세히 보면, 바울은 한 장 안에서 &amp;quot;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amp;quot;, &amp;quot;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amp;quot;, &amp;quot;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amp;quot; 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 하나님을 향한 찬송을 세 번이나 거듭 강조한다. 곧 &lt;strong&gt;우리가 창세 전에 택함받고 예정되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그 모든 구원의 목적이, 결국은 삼위 하나님을 찬송하는 데 있다&lt;/strong&gt;는 것이다. 곧 &lt;strong&gt;우리가 지음받은 가장 마땅한 목적이요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 바로 찬양인 것&lt;/strong&gt;이다. 다윗은 이 사실을 알고 찬양대를 세웠으며, 그 일은 솔로몬 때에 이르러 성전에서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다(대하 5:13-14).&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대하 5:13-14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찬송이 극에 달하자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으로 성전에 가득하여, 제사장들이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다. 이것이 찬양의 능력이다. 하나님께서는 찬송 중에 그 영광으로 임하신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우리는 &amp;#39;시편&amp;#39;이라는 책 자체의 비밀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시편은 한 사람이 쓴 책이 아니다. 최소한 여덟 명의 저자가 있었으며, 그 가운데 일곱 명은 이름이 밝혀져 있고 한 사람 이상은 익명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것들 중에 다윗의 시가 일흔세 편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아삽의 시가 열두 편, 고라 자손의 시가 열한 편이며, 솔로몬이 두 편, 모세가 한 편, 헤만이 한 편, 에단 곧 여두둔이 한 편을 남겼다. 주목할 것은, 가장 많은 시를 남긴 이 핵심 저자들이 &amp;#39;다윗&amp;#39;이며 그리고 다윗이 찬양하라고 세운 자들로서 &amp;#39;아삽과 헤만과 여두분(에단)&amp;#39;이며 그들의 가문인 &amp;#39;고라의 자손들&amp;#39;이라는 사실이다. 즉 이들이 시편의 중심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시편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은 모세가 쓴 시편 90편이다. &amp;quot;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amp;quot;로 시작하여 &amp;quot;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amp;quot;로 이어지는 그 노래가, 시편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반면 가장 나중에 기록된 것은 시편 126편으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때 부른 노래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시 126:1-2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 그리고 포로 된 자들이 시온으로 돌아올 때, 그들의 입에는 웃음이, 혀에는 찬양이 가득하였다. 이 찬송의 배경이 되는 또 하나의 시편이 있으니 그것은 시편 137편이다. 바벨론의 여러 강변에 앉아 시온을 기억하며 울던 그들이,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 두고 &amp;quot;우리가 어찌 이방 땅에서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amp;quot; 탄식하였으나, 마침내 다시 돌아와 그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의 포로 가운데서도 늘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으니, 시온산을 하나님이 계신 산으로, 예루살렘을 하나님이 계신 성으로 사무치게 사모하였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lt;strong&gt;이스라엘 백성이 언제 어느 때나 그토록 시온과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로 여기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바로 다윗 때문&lt;/strong&gt;이다.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아 &amp;#39;다윗성&amp;#39;이라 일컫고(삼하 5:7), 그곳에 법궤를 모셔와 하나님을 최고로 섬겼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섬기되, 집부터 지어 드리고자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니, &amp;quot;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amp;quot; 고민하다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택하였다. 그리하여 성전이 지어지기도 전에 성막 앞에서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 이 세 레위 사람을 세우고, 사천 명의 성가대로 하여금 악기를 연주하며 찬양하게 한 것이다. 이백 명의 성가대만 찬양해도 그 아름다움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어려운데, 다윗은 사천 명을 세워 오케스트라를 더하여 하나님을 높였으니, 이 얼마나 거룩하고 아름다운 일인가!&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이 대목에서 한 가지 분명히 새겨야 할 영적 사실이 있다. 찬양은 돈을 받고 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삯을 받고 연주하는 자의 손끝에서는 은혜가 흘러나오지 않는다. 비록 연주가 다소 서툴지라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성도의 찬양이 참된 은혜가 된다. 다윗이 세운 찬양대가 바로 그러하였다. 그는 삯꾼이 아니라, 진실로 신앙이 좋은 자들을 골라 거룩한 직임을 맡겼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body&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subtitle&quot;&gt;&lt;span class=&quot;post-title&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7. 다윗이 지은 &amp;#39;시(詩)&amp;#39;를 고라 자손&amp;nbsp; 헤만은 어떻게 &amp;#39;노래(歌)&amp;#39;로 만들었는가?&lt;/span&gt;&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이제 이 설교의 정점에 이른다. &lt;strong&gt;다윗이 세운 찬양대의 세 대표자는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lt;/strong&gt;이다. 이들은 각각 레위의 세 아들, 곧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 가문을 대표한다. 본래 레위 지파의 세 가문은 성막을 운반할 때 각기 맡은 직무가 달랐다. 고핫 자손은 법궤와 성물을 메었고, 게르손 자손은 휘장과 덮개를 맡았으며, 므라리 자손은 널판과 기둥 같은 골조를 운반하였다. 직임은 달랐으나 모두가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함께 감당한 한 형제였다. 다윗은 이 세 가문에서 각각 한 사람씩을 택하여 찬양대의 대표로 세웠으니, 아삽은 게르손 자손의 대표요, 헤만은 고핫 자손의 대표이며, 여두둔(본래 이름은 에단)은 므라리 자손의 대표이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스물네 반차의 성가대를 조직한 것이다.&lt;strong&gt; 다윗은 돈을 받고 연주하는 자들이 아니라, 진정으로 신앙이 좋은 자들을 골라 이 거룩한 직임을 맡겼다.&amp;nbsp;그런데 이 헤만의 혈통을 추적하면 충격적인 사실&lt;/strong&gt;이 드러난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대상 6:33 레위 자손 중에서 직무를 행하는 자와 그의 아들들은 이러하니 그핫의 자손 중에 헤만은 노래하는 자라 그는 요엘의 아들이요 요엘은 사무엘의 아들이요&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헤만은 요엘의 아들이요, 요엘은 사무엘의 아들이다. 곧 &lt;strong&gt;헤만은 그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의 친손자&lt;/strong&gt;였던 것이다. 그런데 사무엘의 아들들은 결코 본받을 만한 자들이 아니었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삼상 8:3 그의 아들들이 자&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사무엘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뇌물을 받아 판결을 굽게 한 불량자였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 후손 가운데서 찬양대장 헤만을 세우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수고한 것을 혹 당대에 받지 못할까 염려할 필요가 없다. 아들이 받지 못하면 손자라도 받는 것이다. 사무엘이 평생 하나님께 헌신한 그 수고가, 불효한 아들을 건너뛰어 손자 헤만에게서 영광스러운 찬양의 직임으로 열매 맺은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bod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더 충격적인 사실이 이어진다.&lt;strong&gt; 헤만의 족보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 &amp;#39;고라&amp;#39;가 있다는 사실&lt;/strong&gt;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대상 6:37 스바냐는 다핫의 아들이요 다핫은 앗실의 아들이요 앗실은 에비아삽의 아들이요 에비아삽은 고라의 아들이요&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amp;nbsp; 아뿔싸, &lt;strong&gt;헤만은 곧 고라의 후손이었다. 사무엘 또한 고라의 후손이었던 것&lt;/strong&gt;이다. 고라가 누구인가? 민수기에서 다단과 아비람과 온과 더불어 모세와 아론을 거역하여,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을 삼켜 버린 그 반역의 주동자가 아닌가.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기록한다. 고라는 반역하였으나 그의 아들들은 그 반역에 가담하지 아니하였다고. 그리하여 땅이 그들을 삼킬 때에 고라의 아들들은 살아남았다(민26:10-11).&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trong&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민 26:10-11&amp;nbsp;땅이 그 입을 벌려서 그 무리와 고라를 삼키매 그들이 죽었고 당시에 불이 이백오십 명을 삼켜 징표가 되게 하였으나 11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하였더라&amp;nbsp;&lt;/span&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amp;nbsp;&amp;nbsp;여기에 우리가 붙들어야 할 영적 진리가 있다. 우리 조상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못된 일을 행하였다 할지라도, 결코 절망할 것이 없다. 그 &lt;strong&gt;죄에 동참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여 &amp;quot;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amp;quot; 결단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후손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당신의 사람을 세워 쓰신다&lt;/strong&gt;. 살아남은 고라의 아들들에게서 사무엘이 나오고, 그 사무엘에게서 찬양대장 헤만이 나온 것,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이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class=&quot;post-title&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8. 시편 88편과 48편은 헤만이 지은 것인가 다윗이 지은 것인가? 아니면 고라가 지은 &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것인가?&lt;/span&gt;&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잠시 &lt;strong&gt;시편이라는 책이 어떻게 편집되었는지&lt;/strong&gt;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편은 모세 때부터 바벨론 포로 귀환 때까지&lt;strong&gt; 약 천 년에 걸쳐 기록된 찬양의 모음집&lt;/strong&gt;이다.&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 모세의 시편 90편이 가장 오래된 것이요, 포로 귀환기의 시편이 가장 나중의 것이니, 이렇듯 천 년의 노래들을 후대의 사람들이 하나로 묶은 것이다. 그 최종 편집자는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에 이르러 작업을 마쳤다. 그런데 이 편집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amp;nbsp; 시편 전체는 사실 &lt;strong&gt;다섯 권으로 나뉘어&lt;/strong&gt; 있는데, 이는 모세오경, 곧 창세기(시편 1-41편)와 출애굽기(시편 42-72편)와 레위기(시편 73-89편)와 민수기(시편 90-106편)와 신명기(시편 107-150편)의 구조를 그대로 본뜬 것이다. 또한 고라 자손의 시는 두 번째 묶음으로 구별되어 있고(시편 42편부터), 아삽의 시도 세 번째 묶음으로 묶여 있으니(시편 73편부터), 이는 찬양의 내용을 주제별로 정돈한 것이다. 마태복음이 예수님의 말씀을 다섯 개의 큰 단락으로 묶어 놓은 것과 같은 원리이다. 이처럼 다섯이라는 숫자로 정돈하는 방식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사고 깊숙이 새겨진 거룩한 질서였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lt;strong&gt; 이 헤만이 지은 노래가 무엇인가. 시편 88편 하나가 남아&lt;/strong&gt; 있다. 그것은 시편에 등장하는 일곱 주제별 종류의 시편, 곧 찬양시, 비탄시, 감사시, 지혜시, 제왕메시야시, 신뢰시, 저주시 가운데 비탄시의 대표적인 작품이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trong&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시 88:1-2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 앞에서 부르짖었사오니 나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하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기울여 주소서&lt;/span&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lt;strong&gt;이 비탄의 내용을 누구의 것인지 추적하면, 그 본래의 시는 다윗의 것임&lt;/strong&gt;이 드러난다. 시편 88편 후반부를 보라.&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trong&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시 88:14-15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 내가 어릴 적부터 고난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 주께서 두렵게 하실 때에 당황하였나이다&lt;/span&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trong&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시 88:18&amp;nbsp;주는 내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amp;nbsp;&lt;/span&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amp;nbsp;&amp;nbsp;&amp;quot;어릴 적부터 고난을 당하여 죽게 되었다&amp;quot;는 이 고백은 누구의 생애인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소외받고 버림받은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amp;quot;사랑하는 자와 친구&amp;quot;는 가장 친한 친구 요나단을 가리키고, &amp;#39;내가 아는 자&amp;quot;는 자신을 왕으로 세운 사울이 죽는 비통을 겪은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시편은 오랜 세월 고통 가운데 쫓겨 다녔던 다윗의 생애 그 자체이다. 시편 51편이 밧세바와의 죄 이후의 회개라면, 시편 88편은 다윗이 평생에 걸쳐 겪은 고난의 총체적 탄식이다. 곧 &lt;strong&gt;다윗이 흘린 눈물의 시(詩)를, 헤만이 그대로 가져다가 노래(歌)로 빚어낸 것이다.&amp;nbsp;바로 이것이 오늘 본문 시편 88편의 비밀&lt;/strong&gt;이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amp;nbsp; 그렇다면 &lt;strong&gt;시편 48편은 누가 지은 노래일까? 표제에 &amp;#39;고라 자손의 시&amp;#39;라 기록된 이 찬양시&lt;/strong&gt;는, 다윗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긴 그 마음을 &lt;strong&gt;고라 자손 헤만이 노래로 만든 것&lt;/strong&gt;이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trong&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시 48:1-2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받으시리로다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산이 그러하도다&lt;/span&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시온산을 하나님의 거룩한 산으로, 예루살렘을 만왕의 왕의 성으로 노래하였으니, 그 마음을 이어받은 헤만이 동일한 고백을 찬양으로 올려 드린 것이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trong&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시 48:6-8 거기서 떨림이 그들을 사로잡으니 고통이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도다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도다 우리가 들은 대로 만군의 여호와의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나니 하나님이 이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리로다&lt;/span&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윗이 시편 7편과 9편과 2편에서 노래한 그 왕의 다스리심과 보좌에 앉으심을, 고라 자손이 그대로 받아 찬양으로 빚어낸 것&lt;/strong&gt;이다. 한 왕을 이 땅에 보내어 그 통치를 받았던 백성이, 그 왕을 통하여 진짜 왕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격하여 찬양을 올린 것이다. &lt;strong&gt;다윗이 하나님을 너무도 사랑하여 그분을 만왕의 왕으로 섬겼기에, 그 마음을 읽은 헤만이 &amp;quot;우리도 이 노래를 지어 부르자&amp;quot; 하여 다윗의 시를 찬양으로 빚어 시편에 담은 것&lt;/strong&gt;이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깊은 영적 사실을 깨닫는다. 다윗이 그토록 하나님을 사랑한 것을 알았기에, 찬양을 담당한 그들 또한 하나님을 그토록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윗이 어떤 사람이었는가? 신앙이 좋은 자들만을 골라 찬양대로 세운 사람이 아닌가. 그러므로 그 찬양대원들은 삯을 위해 노래한 것이 아니라, 다윗의 사랑을 본받아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노래한 것이다. 그들은 다윗의 비탄의 시를 가져다가 비탄의 노래로 부르고, 다윗의 찬양의 시를 가져다가 &amp;quot;우리 하나님,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상에 영광의 왕이시며 전쟁에 능하신 우리 주로다&amp;quot; 찬양한 것이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이 찬양을 얼마나 기뻐하셨던가! 다윗이 사천 명의 성가대를 세웠듯이, 천국의 십사만 사천 가운데서도 따로 구별된 무리가 보좌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다. 진짜 왕을 이 땅에 보내어 그 통치를 받았던 백성이 감격하여 그 왕을 찬양하되, 그 왕이 바라본 진짜 왕, 곧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 너무도 기뻐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세 사람의 찬양대장으로 하여금 다윗의 마음을 온전히 읽게 하시고, 그 마음을 그대로 노래로 표현하여 찬양을 올려 드리게 하셨다. 이것이 바로 시편 48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거룩한 비밀이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class=&quot;post-title&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9. 나오며&lt;/span&gt;&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amp;nbsp;&amp;nbsp;지금까지 우&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리는 &lt;strong&gt;시편 48편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진정한 왕의 위엄이 어떻게 고라 자손에게까지 미쳤는지&lt;/strong&gt;를 살펴보았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왕권의 분배를 처음으로 받은 자였으며, 그가 세운 24반차의 체제는 천국의 행정 질서가 되었다. 그는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왕 되실 것을 미리 알았고, 철장의 통치와 목양의 다스림을 구별하였으며, 무엇보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 찬양임을 깨달아 성가대를 세웠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그 찬양대를 이끈 고라 자손 헤만은, 한때 반역했던 조상의 후손이었음에도 회개한 자손의 계보를 따라 세움받아, 다윗이 흘린 눈물의 시를 노래로 부활시켰다.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분명한 영적 교훈을 남긴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한다. 천국의 넓은 땅은 영적 전쟁을 감당한 자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한 모든 수고를 영원히 기억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주님을 위하여 흔적을 남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조상의 죄에 절망하지 말아야 하며, 회개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결단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후손을 통해서라도 영광을 베푸심을 기억해야 한다. &amp;#39;고라&amp;#39;가 반역하였어도 그 회개한 자손에게서 &amp;#39;사무엘&amp;#39;과 &amp;#39;헤만&amp;#39;이 나왔듯이, 우리의 결단은 우리 당대뿐 아니라 우리 후손에게까지 거룩한 열매로 이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찬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찬양은 인간이 지음받은 이후로 마땅히 행해야 할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며, 하나님께서 그 찬송 중에 영광으로 임하시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amp;nbsp;&amp;nbsp;다윗처럼 &amp;quot;나는 없어도 되고 있어도 되는 자이나, 오직 만왕의 왕이신 주님은 영광 받으실 분이시다&amp;quot; 고백하며, 나를 지으시고 구원하시고 천국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껏 찬양을 올려 드려야 한다. 그리하여 나의 찬양을 통하여 다른 사람도 그 은혜를 받아 함께 하나님을 높이며, 영원토록 만왕의 왕을 찬송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2026년 05월 28일(목)&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정보배 목사&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설교핵심]&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이 설교는&amp;nbsp;다윗 왕이 수립한 찬양 체계와 천국에서의&amp;nbsp;왕적 지위&amp;nbsp;및 질서 사이의 깊은 연관성을 영성적인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정보배목사는 다윗을 단순한 지상 국가의 통치자가 아닌, 천국의 통치 모델을 이 땅에 구현한&amp;nbsp;왕의 전형으로 정의하며, 그가 세운&amp;nbsp;24반차의 제사장 및 성가대&amp;nbsp;조직이 하늘나라의 행정 시스템과 일치함을 강조합니다. 특히 고라 자손인&amp;nbsp;해만과 같은 인물들이 다윗의 신앙 고백을 노래로 승화시킨 과정을 조명하며, 구원받은 성도들이 영적 싸움을 통해 얻게 될&amp;nbsp;최고의 신분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는 왕권임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지상의 삶이 천국에서의 영원한&amp;nbsp;기념관이자 보상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향한&amp;nbsp;찬양이 인간의 가장 고귀한 본분이자 사명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5)] 인포그래픽.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79/254/c5463ba56e32dfc486346928cce759a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5)] David_s_Heavenly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79/254/196b65da70afd2229f5978f78e25380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5)] David_s_Heavenly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79/254/55e261ff8d799ba7d65457462d24aae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5)] David_s_Heavenly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79/254/83a415864338b3bb8f42317ff4f7db0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5)] David_s_Heavenly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79/254/50785fa15c79a09c1fc0eff430e6d29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5)] David_s_Heavenly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79/254/a5e9305457e00458ba00c674c0b5e85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5)] David_s_Heavenly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79/254/2e3f326fb4934c3051adc69e0c4bed7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5)] David_s_Heavenly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79/254/a5fcb5ed993fc84ec4259ce9226207e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5)] David_s_Heavenly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79/254/7cc85a2f4d56d3e4319275d7c1d8e1d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5)] David_s_Heavenly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79/254/74a527f5d79adbe7dc9513d2dd775b3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5)] David_s_Heavenly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79/254/19e53937884df7a0457f03b54daf4e6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5)] David_s_Heavenly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79/254/4ec2b4472cbb304899b03ac3e8150d8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5)] David_s_Heavenly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79/254/9a1c86245ce9ccefd14fa5b9c85af29c.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04)]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0)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3)(시110:1~7)_2026-05-27(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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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5-27T08:40:06+09:00</published>
		<updated>2026-05-28T09:51:33+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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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04)]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0)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3)(시110: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O7qFXjZSbUA 1. 들어가며 시편 110편은 다윗이 성령의 감동 가운데 본 하늘 보좌의 장면을 기록한 말씀이다. 이 시는 단순히 이스라엘 왕의 즉위식 노래가 아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의 주에게 말씀하시고, 그분을 오른쪽에 앉히시며, 원수들을 발...</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04)]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0)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3)(시110:1~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O7qFXjZSbUA&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O7qFXjZSbUA?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h2&gt; &lt;p&gt;&amp;nbsp;&amp;nbsp;시편 110편은 다윗이 성령의 감동 가운데 본 하늘 보좌의 장면을 기록한 말씀이다. 이 시는 단순히 이스라엘 왕의 즉위식 노래가 아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의 주에게 말씀하시고, 그분을 오른쪽에 앉히시며, 원수들을 발판이 되게 하시는 장면을 보여 준다(시 110:1). 여기서 다윗의 주는 다윗보다 뒤에 오실 메시아이지만 동시에 다윗보다 높으신 주님이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이 말씀 안에는 왕권과 제사장직이 함께 들어 있다. 시편 110편은 메시아가 원수들을 다스리는 왕이심을 말하면서도, 그 왕이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심을 선포한다(시 110:4). 그러므로 이 시편은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본문이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회개와 천국복음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말씀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려 주는 동시에 성도가 장차 어떤 사람으로 빚어져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한 분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가지신 구원의 경륜은 창조와 타락, 아브라함의 부르심, 이스라엘의 역사, 다윗 언약,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부활과 승천, 교회 시대, 재림과 왕국,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완성으로 이어진다. 그 경륜의 중심에는 왕이자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시편 110편을 중심으로 예수님께서 왜 왕이자 제사장이시며, 그분을 따르는 성도가 어떻게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어야 하는지&lt;/strong&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gt;&lt;br /&gt; &amp;nbsp;&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2. 시편 110편은 왜 왕 같은 제사장의 절정인가?&lt;/span&gt;&lt;/h2&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시편 110편의 첫 번째 특징은 왕권&lt;/strong&gt;이다. 여호와께서 메시아를 오른쪽에 앉히신다는 것은 &lt;strong&gt;그분에게 통치권과 심판권과 승리의 권세가 주어졌다&lt;/strong&gt;는 뜻이다. 성경에서 오른쪽은 권능과 영광의 자리다. 다윗은 자기 혈통에서 오실 분이 단지 후손이 아니라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실 왕이라는 사실을 보았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나 시편 110편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네 번째 절에서 갑자기 제사장직이 들어온다. 전쟁과 통치와 심판의 시편 한가운데에 &amp;lsquo;영원한 제사장&amp;rsquo;이라는 말씀이 박혀 있다. 이것이 이 본문의 결정적 특징이다.&lt;strong&gt; 하나님이 세우신 최종 왕은 단순히 원수를 제압하는 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담당하는 제사장 같은 왕&lt;/strong&gt;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은 이 사실을 더 밝히 보여 준다. 어린양의 피로 사신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고, 끝내 왕 노릇 하는 자로 서게 된다(계 5:10). 성도의 최종 신분은 막연한 천국 입성이 아니다. 회개하고 믿음으로 주님께 속한 자는 구원을 받고, 이기는 자는 왕권에 참여한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계 5: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왕국)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왕 같은 제사장은 뭉뚱그려 말할 수 없는 신분이다. 왕은 통치와 전쟁과 심판의 책임을 가진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며 백성을 위해 중보하고 축복하며 하나님을 찬송한다. 이 둘이 한 인격 안에서 만날 때, 시편 110편의 메시아상이 드러난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이기는 성도에게 분깃으로 주어진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경의 종말론은 성도에게 막연한 위로만 주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은 이기는 자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가 주어진다고 말한다(계 2:26-27). 이 통치는 세상적 지배가 아니라 목자의 통치다. 헬라어로 &amp;lsquo;다스리다&amp;rsquo;에 쓰인 포이마이노는 본래 양을 치고 돌보는 목양의 뜻을 품고 있다. 그러므로 천국의 왕권은 압제의 권력이 아니라 목양의 권세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계 2:26-2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시편 110편은 이 모든 흐름의 절정이다. 왕이신 예수님은 원수들을 발 아래 두시는 분이시며,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자기 피로 백성을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이 본문을 바로 읽으면 천국에서 성도의 마지막 신분, 곧 왕 같은 제사장의 영광이 보인다.&lt;/p&gt; &lt;p&gt;&amp;nbsp;&amp;nbsp;하나님의 경륜의 타임라인을 따라가면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창조 때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다스리는 사명을 주셨다. 그러나 타락으로 사람은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 아래 놓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율법과 성막과 제사 제도를 주셨다. 그 모든 과정은 장차 오실 왕이자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예표하는 길이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에게 와서 이 흐름은 왕권으로 집중되었다. 다윗 언약은 메시아 왕국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왕권만으로는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왕이 아무리 강해도 백성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그 왕국은 거룩할 수 없다. 그래서 시편 110편은 왕권 한가운데 제사장직을 놓는다. 이것이 성경의 정밀한 연결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이기는 자의 약속도 이 틀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천국의 상급은 세상적 평등주의로 뭉뚱그릴 수 없다. 성경은 어린양의 보좌 가까이에 있는 자들, 왕권에 참여하는 자들, 섬기는 자들, 그리고 각자의 행위대로 상을 받는 질서를 말한다. 다만 그 모든 상급은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어린양의 피와 회개와 믿음과 충성 위에 주어진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처럼 시편 110편은 예언과 교리와 실천을 동시에 붙든다. 예언으로는 메시아의 보좌 우편과 원수의 굴복을 말한다. 교리로는 왕권과 제사장직의 결합을 말한다. 실천으로는 성도가 장차 누릴 영광에 합당하게 오늘의 삶을 준비해야 함을 말한다.&lt;/p&gt; &lt;p&gt;&lt;br /&gt; &amp;nbsp;&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3. 다윗은 어떻게 예수님을 왕과 제사장으로 보았는가?&lt;/span&gt;&lt;/h2&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은 자신의 시대만 본 사람이 아니&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다. 그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보았다. 주님께서도 시편 110편을 인용하시며 그리스도가 단순히 다윗의 자손으로만 이해될 수 없음을 밝히셨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지만, 동시에 다윗이 &amp;lsquo;내 주&amp;rsquo;라고 부른 분이다(마 22:44).&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마 22: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에는 한 분 하나님의 구원 경륜이 담겨 있다. 하나님은 여러 분으로 나뉘어 각각 따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아버지로서 구원을 작정하시고, 아들의 신분으로 육신을 입고 오셔서 피 흘려 속죄를 이루시며, 성령으로 성도 안에 오셔서 회개와 거룩함과 이김의 길로 인도하신다. 다윗은 이 경륜의 중심에 서실 메시아를 미리 보았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의 영적 통찰은 우연한 상상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좇아 살던 사람이었다. 그는 왕이 되기 전부터 하나님을 목자로 알았고, 왕이 된 뒤에도 자기 권력을 자기 영광을 위해 쓰지 않으려 했다.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으나 자기 손으로 왕권을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때와 질서를 믿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이 시편 110편에서 본 예수님은 보좌 우편에 앉으신 왕이며 동시에 영원한 제사장이다. 이것은 인간의 족보나 제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왕은 유다 지파에서 나오고, 제사장은 레위 지파 아론 계열에서 나오는 것이 율법의 일반 질서다. 그런데 다윗은 유다 지파에서 오실 왕이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제사장이 되실 것을 보았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것이 성경 팩트다. 메시아의 왕권은 다윗 언약과 연결되고, 제사장직은 멜기세덱의 서열과 연결된다. 예수님은 아론 계열의 한 제사장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아론 이전에 이미 등장한 더 근원적인 제사장직을 따라 오셨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시편 110편 4절을 붙들고 예수님의 제사장직이 영원하다고 증언한다(히 7:17).&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히 7:17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은 이 사실을 알고 왕직의 의미를 다시 배웠다. 왕은 권세를 누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통치의 뜻을 살아내는 자다. 왕은 백성을 자기 소유물로 삼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양 떼를 맡은 자다. 그리고 왕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자의 마음으로 백성을 축복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다.&lt;/p&gt; &lt;p&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 이 본문을 사용하신 방식도 중요하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고 물으셨고, 그들이 다윗의 자손이라고 대답하자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지적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단순한 인간 메시아가 아니라, 다윗보다 먼저 계시고 다윗보다 높으신 주님이심을 드러낸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은 자기보다 높으신 주님을 보면서도 그 주님이 자기 후손으로 오실 것을 알았다. 이것이 성육신의 신비다. 영원하신 한 분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의 신분으로 낮아지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왕권은 피조물이 얻은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구원 행위 안에서 나타난 왕권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다윗은 제사장직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아론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거룩한 직분을 감당했으나, 그들 자신도 죄인이었다. 그들은 반복해서 제사를 드려야 했고, 죽음 때문에 직분을 계속 이어 갈 수 없었다. 다윗이 본 메시아는 그런 한계 안에 갇힌 분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맹세로 세워지고 영원히 계시는 제사장이었다.&lt;/p&gt; &lt;p&gt;&lt;br /&gt; &amp;nbsp;&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4.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왜 목자 같은 왕인가?&lt;/span&gt;&lt;/h2&gt; &lt;p&gt;&amp;nbsp;&amp;nbsp;세상의 왕권은 자주 두려움에서 출발한다. 자기 자리가 불안한 왕은 백성을 압제하고, 반대자를 두려워하며, 권력으로 사람을 눌러 자기 자리를 지키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그렇게 서지 않는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자기 자리를 하나님께 맡기고, 백성을 양 떼로 본다.&lt;/p&gt; &lt;p&gt;&amp;nbsp;&amp;nbsp;&lt;strong&gt;다윗은 어린 시절부터 목자였다. 그는 양을 지키며 사자와 곰과 싸웠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목자의 눈으로 배웠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amp;lsquo;나의 목자&amp;rsquo;라고 고백했다(시 23:1-3). 이것은 왕의 개념을 새롭게 쓰는 고백이다. 하나님은 의와 공의로 심판하시는 왕이시지만, 동시에 자기 백성을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목자&lt;/strong&gt;이시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시 23:1-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이 통찰은 &lt;strong&gt;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더 분명히 확인된다. 하나님은 장차 한 목자를 세워 양 떼를 먹이겠다고 하셨고, 그 목자를 &amp;lsquo;내 종 다윗&amp;rsquo;이라고 부르셨다(겔 34:23-24).&lt;/strong&gt; 여기서 다윗은 이미 죽은 역사적 다윗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겔 34:23-24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이 예언의 성취로 오셨다. 그분은 선한 목자이시며,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셨다(요 10:11).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본질이다. 왕권의 정점은 자기 보존이 아니라 자기 희생이다. 참된 왕은 백성을 위해 죽을 수 있는 목자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시편 110편의 심판 언어를 세상적 폭력으로 읽으면 안 된다. &amp;lsquo;원수들을 발판이 되게 하신다&amp;rsquo;는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는 사탄과 귀신들과 악한 영들의 권세가 끝내 그리스도 아래 굴복한다는 뜻이다. &lt;strong&gt;목자 같은 왕은 양 떼를 해치는 원수에게는 심판의 왕으로 나타나지만, 자기 양에게는 생명을 주는 목자로 &lt;/strong&gt;나타난다.&lt;/p&gt; &lt;p&gt;&amp;nbsp;&amp;nbsp;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백성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백성을 먹이고, 쉬게 하고, 소생시키며, 의의 길로 인도한다. 다윗은 이 왕의 모습을 미리 알았고, 자기 삶에서 그 길을 따라가고자 했다. 그래서 다윗의 왕권은 예수님의 왕권을 비추는 그림자가 되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 점에서 다윗은 사울과 다르다. 사울은 사람의 평가와 왕위의 안전에 흔들렸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백성의 소리를 두려워했고, 다윗을 경쟁자로 보았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을 때도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자기 손으로 치지 않았다. 왕권을 자기 힘으로 움켜쥐려는 사람과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목자라는 히브리어 &amp;#39;라아&amp;#39;는 먹이고 돌보며 길을 인도한다는 뜻을 가진다. 목자는 양을 이용해 자기 이름을 높이지 않는다. 양의 형편을 알고, 위험을 막고, 길 잃은 양을 찾으며, 약한 양을 품는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도 이와 같다. 왕의 권위는 양 떼를 자기 뜻대로 부리기 위한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양 떼를 살리기 위한 책임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 때문에 예수님의 심판과 예수님의 목양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목자가 이리와 도둑을 막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양을 해치는 원수에게는 물러서지 않는다. 시편 110편의 전쟁 언어는 양 떼를 구원하기 위한 목자의 거룩한 전쟁으로 읽어야 한다.&lt;/p&gt; &lt;p&gt;&lt;br /&gt; &amp;nbsp;&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5. 예수님은 왜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르는가?&lt;/span&gt;&lt;/h2&gt; &lt;p&gt;&amp;nbsp;&amp;nbsp;시편 110편 4절의 핵심 단어는 &amp;lsquo;멜기세덱&amp;rsquo;이다. 멜기세덱은 히브리어 멜레크와 체데크가 결합된 이름으로, 뜻으로 풀면 &amp;lsquo;의의 왕&amp;rsquo;이다. 그는 또한 살렘 왕이었다. 살렘은 샬롬, 곧 평강과 연결된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은 성경 안에서 의의 왕이며 평강의 왕으로 나타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창세기 14장에서 멜기세덱은 아브람이 전쟁에서 돌아올 때 등장한다. 그는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아브람을 축복했다(창 14:18-20). 레위도, 아론도, 시내산 율법도 있기 전의 일이다. 그래서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은 아론 계열보다 앞선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창 14:18-20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히브리서는 이 사실을 매우 중요하게 해석한다. &lt;strong&gt;아론의 제사장들은 맹세 없이 세워졌고, 죽음 때문에 직분이 계속 바뀌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맹세로 세워진 제사장이시며,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직도 갈리지 않는다&lt;/strong&gt;(히 7:20-24).&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히 7:20-21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히 7: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이 차이는 구원론의 핵심과 연결된다. 아론 계열의 제사장은 먼저 자기 죄를 위해 속죄해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으로 오셔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셨다. 그분의 피는 짐승의 피처럼 반복되는 제사가 아니라, 죄인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완전한 속죄의 피다.&lt;/p&gt; &lt;p&gt;&amp;nbsp;&amp;nbsp;따라서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다는 말은 단지 제사장 계보가 다르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lt;strong&gt;예수님의 제사장직이 하나님의 맹세 위에 세워졌고, 아론 제사장직보다 앞서며, 죽음으로 중단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드리는 완전한 제사장직이라는 뜻&lt;/strong&gt;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도도 이 원리를 알아야 한다. 왕 같은 제사장은 직함을 얻는 것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삶의 방향이 있어야 한다. 그 삶은 자기 영광을 구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고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서 &amp;lsquo;서열&amp;rsquo;이라는 말도 중요하다. 이것은 단지 순번이나 직급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질서와 방식에 속해 있는가를 묻는 말이다. 예수님은 아론의 방식, 곧 반복 제사와 죽음으로 끊기는 방식에 속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방식, 곧 의와 평강, 축복과 공급, 영원성과 하나님의 맹세의 방식에 속하신다.&lt;/p&gt; &lt;p&gt;&amp;nbsp;&amp;nbsp;헬라어로 제사장은 &amp;#39;히에류스&amp;#39;라고 한다. 제사장은 거룩한 일을 맡은 자이며,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문제를 담당하는 자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지 중간에서 절차를 수행하는 제사장이 아니시다. 그분은 제물이며 제사장이며 성전의 실체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모든 예표를 자기 안에서 완성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 사실은 성도의 담대함과도 연결된다. 예수님이 영원한 제사장이시기 때문에, 회개하고 그분께 나아오는 자는 버림받지 않는다. 땅의 제사장은 죽고 바뀌지만, 하늘의 대제사장은 영원히 살아 계셔서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신다(히 7:25).&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멜기세덱은 아브람에게서 십분의 일을 받았다. 이것은 아브람이 멜기세덱을 자기보다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인정했다는 표다. 히브리서는 이 점을 근거로 &lt;strong&gt;레위적 제사장직보다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이 더 큰 질서에 속한다&lt;/strong&gt;고 설명한다.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바로 그 더 큰 질서의 완성이다.&lt;/p&gt; &lt;p&gt;&lt;br /&gt; &amp;nbsp;&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6. 떡과 포도주는 왕의 헌신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span&gt;&lt;/h2&gt; &lt;p&gt;&amp;nbsp;&amp;nbsp;멜기세덱이 아브람에게 가지고 나온 것은 &amp;#39;떡&amp;#39;과 &amp;#39;포도주&amp;#39;였다. 일반적인 제사장은 백성이 가져온 제물을 하나님께 드린다. 그러나 &lt;strong&gt;멜기세덱은 전쟁에서 돌아온 아브람에게 자기 편에서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 이것은 제사장 같은 왕의 중요한 특징을 보여 준다. 참된 제사장은 받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공급하는 자&lt;/strong&gt;다.&lt;/p&gt; &lt;p&gt;&amp;nbsp;&amp;nbsp;아브람은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돌아왔다. 그는 승리했지만 지쳤을 것이다. 그때 멜기세덱은 전쟁에서 이긴 자를 축복하고, 떡과 포도주로 힘을 공급했다. 이것은 장차 &lt;strong&gt;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실 몸과 피의 그림자&lt;/strong&gt;다.&lt;/p&gt; &lt;p&gt;&amp;nbsp;&amp;nbsp;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 식탁에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amp;lsquo;이것은 내 몸&amp;rsquo;이라고 하셨다. 또 잔을 주시며 &amp;lsquo;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amp;rsquo;라고 하셨다(마 26:26-28).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제사장으로서 자기 자신을 양식과 생명으로 내어 주셨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마 26:26-28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서 왕의 헌신이 드러난다. &lt;strong&gt;세상 왕은 백성에게 바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먼저 자기 몸과 피를 주신다. 세상 왕은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 백성을 희생시키지만, 예수님은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신다. 이것이 목자 같은 왕이며 제사장 같은 왕의 길&lt;/strong&gt;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은 이 비밀을 알았기에 자기 왕권을 성전과 찬양과 헌신으로 사용했다. 그는 하나님의 집을 사모했고, 성전을 짓기 위해 자기 소유를 드렸다.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였고, 신약의 관점에서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 연결된다. 다윗의 마음은 자기 궁궐보다 하나님의 집을 향해 있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 주신 떡과 포도주는 구원의 길을 분명히 보여 준다. 죄인은 자기 의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오직 예수님의 몸과 피, 곧 십자가의 속죄를 믿고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회개와 천국복음의 중심이다. 회개 없는 왕권은 교만이 되고, 속죄 없는 제사장직은 종교 행위가 된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성찬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생명의 표&lt;/strong&gt;다. 그 표를 받는 성도는 자신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영혼을 살리는 복음을 위해, 자기에게 맡겨진 것을 드리는 사람으로 자라가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떡은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양식이고, 포도주는 피와 언약과 기쁨을 상징한다.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온 장면은 단순한 환대가 아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자에게 생명과 회복을 공급하는 제사장적 행동이다. 예수님은 이 그림자를 마지막 만찬에서 완성하셨다.&lt;/p&gt; &lt;p&gt;&amp;nbsp;&amp;nbsp;여기서 성도의 구원은 분명해진다. 사람은 선행이나 종교적 열심만으로 죄 사함을 얻지 못한다. 죄 사함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 주어진다. 그러나 그 피를 값싼 은혜로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 피로 산 백성은 회개와 믿음으로 주께 돌아와야 하며,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거룩한 삶을 배워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왕 같은 제사장은 이 원리를 삶으로 배운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만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맡겨진 시간, 물질, 은사, 마음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드린다. 다윗이 성전을 위해 준비한 마음은 바로 이러한 멜기세덱적 헌신과 연결된다. 그는 왕이었지만 제사장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릴 것을 준비했다.&lt;/p&gt; &lt;p&gt;&lt;br /&gt; &amp;nbsp;&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7. 왕 같은 제사장은 누구를 축복하고 무엇과 싸우는가?&lt;/span&gt;&lt;/h2&gt; &lt;p&gt;&amp;nbsp;&amp;nbsp;멜기세덱은 아브람을 축복하면서 &amp;lsquo;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amp;rsquo;을 찬송했다. 여기서 축복의 대상은 단순히 세상에서 부자가 된 사람이 아니다. 전쟁에서 대적을 이기고 돌아온 사람이다. 영적 의미로 보면, 왕 같은 제사장은 악한 영의 권세와 싸워 이긴 자를 축복하고 세워 주는 사람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오늘의 교회가 붙들어야 할 영적 팩트가 여기에 있다. 성도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다.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을 누르는 싸움이 아니다. 성경은 &lt;strong&gt;우리의 싸움이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싸움&lt;/strong&gt;이라고 말한다(엡 6:12).&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악한 영들인 귀신과 뱀들은 죄와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틈을 붙잡고 사람을 묶으려 한다. 그래서 회개는 단지 마음을 편하게 하는 종교적 행위가 아니다. 회개는 어둠의 권세가 붙잡고 있던 근거를 제거하고, 예수님의 피 아래로 돌아오는 영적 전쟁이다. 왕 같은 제사장은 이 사실을 알고 영혼들을 회개와 믿음과 순종으로 이끌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막 16:17). 이것은 인간의 능력을 자랑하라는 뜻이 아니다. 대적을 손에 붙이시는 분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도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에서 이긴 자는 자기 능력을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왕 같은 제사장은 세상 성공만을 축복하지 않는다. 돈을 벌었거나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영적 승리를 말하지 않는다. 참된 축복은 죄에서 돌이키고, 귀신의 압제에서 풀려나고, 예수 이름으로 원수를 이기며, 다른 영혼을 살리는 자리로 나아가는 데 있다.&lt;/p&gt; &lt;p&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은 성도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사탄을 이긴다고 말한다(계 12:11). 이것이 종말의 성도가 붙들어야 할 전쟁 방식이다. 어린양의 피는 속죄의 근거이고, 증언하는 말씀은 진리의 선포이며,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는 태도는 왕 같은 제사장의 헌신이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계 12: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왕 같은 제사장의 축복은 영혼을 향한다. 그 축복은 죄인을 회개로 이끌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며, 전쟁에서 지친 자에게 떡과 포도주를 공급한다. 이 축복은 말만의 축복이 아니라 생명을 나누는 축복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이 싸움의 출발점은 회개다. 악한 영은 죄의 근거를 붙잡고 역사한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우상숭배의 죄, 자신의 탐욕과 음란과 미움과 거짓의 죄, 말씀을 거역한 불순종의 죄가 회개되지 않을 때 어둠은 틈을 얻는다. 그러므로 귀신론은 호기심의 영역이 아니라 회개와 거룩함과 직결된 영적 팩트다.&lt;/p&gt; &lt;p&gt;&amp;nbsp;&amp;nbsp;하지만 영적 전쟁은 사람을 두려움으로 몰아넣기 위한 가르침이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다. 귀신은 예수님의 권세 앞에서 굴복한다. 성도는 자기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어린양의 피와 말씀과 예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해야 한다. 이것이 안전한 영적 전쟁의 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왕 같은 제사장은 전쟁에서 돌아온 자를 정죄하지 않고 회복시킨다. 지친 자에게는 말씀의 떡을 주고, 죄책에 눌린 자에게는 예수님의 피를 증거하며, 두려움에 묶인 자에게는 주님의 왕권을 선포한다. 축복은 입술의 좋은 말에 그치지 않고 영혼을 실제로 살리는 사역이 되어야 한다.&lt;/p&gt; &lt;p&gt;&lt;br /&gt; &amp;nbsp;&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8. 다윗처럼 왕직을 준비하는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lt;/span&gt;&lt;/h2&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은 한 말씀을 가볍게 흘려보낸 사람이 아니다. 그는 &amp;lsquo;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amp;rsquo;이라는 한 말씀을 붙들고 왕직의 의미를 깊이 묵상했을 것이다. 주의 말씀은 그의 발에 등이요 길에 빛이었다(시 119:105). 하나님이 보여 주신 한 장면은 그의 왕권 전체를 이끄는 나침반이 되었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처럼 왕직을 준비하는 성도는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왕이시지만, 자기 백성을 살리기 원하시는 목자이시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람을 정죄하는 즐거움에 머물지 않고, 회개하도록 돕고, 살도록 먹이고, 의의 길로 인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성도는 제사장처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향을 올리고 백성을 위해 중보하며 하나님을 찬송한다. 천국에서 마지막까지 남는 제사장적 사명도 찬송과 섬김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지으신 목적을 찬송에 두셨다(사 43:21).&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이 성가대를 세우고 시편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왕은 자기 이름을 높이는 노래를 만들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찬송을 세워야 한다. 왕 같은 제사장은 자기 성공담을 반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노래하게 하는 사람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도는 교회를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 다윗의 마음은 성전을 향해 있었고, 오늘의 성도에게 성전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 연결된다. 교회는 단순한 모임 장소가 아니라 회개와 말씀과 예배와 영적 전쟁과 찬송이 일어나는 하나님의 경륜의 현장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다윗처럼 왕직을 준비하는 성도는 사울의 길을 경계해야 한다. 사울은 사람의 시선과 자기 자리의 불안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다. 왕권은 빼앗아 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실 때 맡겨지는 것이다. 천국의 왕권도 마찬가지다.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은 조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충성과 회개와 믿음으로 준비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베드로는 성도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불렀다(벧전 2:9). 이 말은 모든 성도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자동으로 왕권을 누린다는 뜻이 아니다. 선택받은 족속답게, 거룩한 나라답게, 하나님의 소유 된 백성답게 어둠에서 불러내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해야 한다는 뜻이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벧전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결국 준비는 오늘의 삶에서 이루어진다. 회개할 것을 회개하고, 말씀을 곱씹으며, 귀신과 악한 영의 권세를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고, 교회를 세우며, 지친 영혼에게 복음의 떡과 보혈의 포도주를 전하는 삶이 왕 같은 제사장의 준비다. 이것이 다윗이 보여 준 길이며,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길을 따라가는 성도의 길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말씀을 곱씹는 태도도 중요하다. 정결한 짐승이 되새김질을 하듯이, 영적으로 정결한 사람은 들은 말씀을 다시 묵상하고 삶에 적용한다. 다윗은 한 말씀을 붙들고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찾았다. 오늘의 성도도 설교를 들은 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 말씀이 자신의 가정과 교회와 영적 전쟁의 현장에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동탄명성교회가 붙들어 온 회개와 천국복음도 이 준비의 실제적인 길이다. 회개는 구원의 문을 통과한 후에 버리는 초보가 아니라, 천국의 상급을 준비하는 성도의 계속적인 호흡이다. 천국복음은 죽어서 좋은 곳에 간다는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장차 그리스도 앞에서 어떤 신분과 상급으로 설 것인지를 오늘 준비하게 하는 복음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또한 준비된 성도는 찬송의 사람이 된다. 시편은 단지 감정의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선포하는 신앙 고백이다. 다윗과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찬송은 왕권과 제사장직의 만남을 보여 준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입술은 귀신의 말과 세상의 원망을 끊고, 하늘의 질서에 자신을 맞추는 거룩한 통로가 된다.&lt;/p&gt; &lt;p&gt;&lt;br /&gt; &amp;nbsp;&lt;/p&gt; &lt;h2&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9. 나오며&lt;/span&gt;&lt;/h2&gt; &lt;p&gt;&amp;nbsp;&amp;nbsp;지금까지 하나님이 &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세우신 왕이 왜 목자 같은 왕이며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제사장 같은 왕인지를 살펴보았다. 시편 110편은 예수님을 보좌 우편에 앉으신 왕으로 보여 주며, 동시에 하나님의 맹세로 세워진 영원한 제사장으로 보여 준다. 이 두 신분은 예수님 안에서 완전하게 하나가 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성도는 이 말씀을 관념으로만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이름은 영광스러운 만큼 무겁다. 왕권을 사모한다면 목자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하고, 제사장직을 사모한다면 자기 자신을 드리는 헌신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지 않은 권세욕은 왕권이 아니라 교만이 되며, 영혼을 살리지 않는 제사장 의식은 종교적 형식이 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의 구원 경륜 가운데 육신을 입고 오신 메시아이시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자기 몸과 피를 내어 주셨고, 부활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며, 지금도 자기 백성을 위해 중보하신다. 그분은 장차 다시 오셔서 원수들을 완전히 굴복시키시고, 이기는 자들에게 왕권의 상급을 주실 것이다.&lt;/p&gt; &lt;p&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도는 오늘의 작은 자리에서 왕 같은 제사장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하고, 회개와 천국복음을 붙들어야 하며, 귀신과 악한 영의 권세를 예수 이름으로 대적해야 한다. 또한 교회를 사랑하고, 영혼을 먹이며,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다윗은 실수도 있었지만 그의 중심은 하나님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이 어떤 왕을 원하시는지를 묵상했고, 자기의 왕직을 하나님의 집과 찬양과 백성을 위해 사용하고자 했다. 성도 역시 넘어짐이 있더라도 회개로 다시 일어서야 하며, 자기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자 같은 왕, 제사장 같은 왕의 성품을 이루어 가야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시편 110편의 예언은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고, 그 은혜는 오늘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의 길로 부르고 있다. 그 길은 압제의 길이 아니라 목양의 길이며, 자기 보존의 길이 아니라 자기 헌신의 길이고, 세상 자랑의 길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와 증언의 말씀으로 이기는 길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왕이자 영원한 제사장으로 붙들고,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6년 05월 27일(수)&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본 설교는 시편 110편을 바탕으로 다윗이 예언한 메시아의 통치적 특성과 성도가 지향해야 할 영적 지위를 고찰한 설교문입니다. 핵심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단순히 심판하는 권력자가 아니라&amp;nbsp;&lt;strong&gt;목자 같은 왕&lt;/strong&gt;이자&amp;nbsp;&lt;strong&gt;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lt;/strong&gt;이라는 이중적 직분을 완성하셨음을 강조합니다. 다윗은 성령의 감동으로 천국의 실상을 미리 보고 이를 자신의 삶에 투영함으로써,&amp;nbsp;&lt;strong&gt;희생과 헌신을 통해 백성을 먹이고 축복하는&lt;/strong&gt;&amp;nbsp;참된 지도자의 본을 보였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이러한 다윗의 삶을 통해 오늘날의 신앙인들도 미래의 상급인&amp;nbsp;&lt;strong&gt;이기는 자의 반열&lt;/strong&gt;에 오르기 위해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묵상하며 각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닮은&amp;nbsp;&lt;strong&gt;왕 같은 제사장&lt;/strong&gt;으로 거듭나 천국에서 영원한 기업을 누리도록 준비시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인포그래픽.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3d27bb34f2f14faf9fd800b7f2e693f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Royal_Priesthood.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ae41096cd5abf5f748651bf6c8a69a2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Royal_Priesthood.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1f371fb64b68c9e59954b00754cbffa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Royal_Priesthood.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6361b0ac97572fa7d77c324ecb9c771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Royal_Priesthood.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353a1a6fbafe17ab7af0313e3e56927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Royal_Priesthood.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e55fe0cb65bf6eda0040be05efbef44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Royal_Priesthood.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b8b23b28fa6d47faed52518c003f3fd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Royal_Priesthood.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ac6fff186e3773de27075cf56ea1863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Royal_Priesthood.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3cd8c71210b766b77d3ac383f97310e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Royal_Priesthood.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c4118d3b16a90216e588898061848a9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Royal_Priesthood.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0dd8fa03e2bb4d7a8f7f169bf9b69c1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Royal_Priesthood.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c0bae1c16a9f142f7db3fafff6253a4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Royal_Priesthood.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be27b79b451fbe8fd7e79a1d5a4d294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Royal_Priesthood.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9610f541497ac72d66d5eb14fe81c95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King_Pries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93787dabf31d56e2ba1e6b004fd842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King_Pries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19c18ca9789ffab03c8e693d9e93ea4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King_Pries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477f8f6273dd30840754affb57f27d5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King_Pries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6398edea83e46bcd28cfab9818a0c47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King_Pries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bc6cc2027082203fd53f6a1d3446255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King_Pries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87a554e5f66e8454f2d19dc85403de4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King_Pries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82ded04a3b43e64f8cdbb3c1fc6cead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King_Pries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7e1de0efe495fef346f1ad790dbda47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King_Pries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a63ce79bbeb54919ad6116bb82f7f3d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King_Pries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6c7e80d2d9d3b56526a33c72bce1235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King_Pries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9f6ae691694b0da402b433c9c68f355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4)] The_King_Pries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03/254/ba33c05ab7600debfa2059a3b02ea7ee.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03)]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9)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2)(시110:1~7)_2026-05-26(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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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5-26T08:38:55+09:00</published>
		<updated>2026-05-26T14:07:04+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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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03)]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9)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2)(시110: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dK6eZeWZvT4 1. 들어가며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 질문은 기독론의 중심 질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신약성경만 읽어서는 충분히 다 풀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인물들과 사건들을 통하여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사역을 미리...</summary>
	<content type="html">&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아침묵상입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03)]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9)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2)(시110:1~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https://youtu.be/dK6eZeWZvT4&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dK6eZeWZvT4?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br /&gt; &amp;nbsp;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 질문은 기독론의 중심 질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신약성경만 읽어서는 충분히 다 풀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인물들과 사건들을 통하여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사역을 미리 보여 주셨다. 아브라함을 통해서는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실 것을 보이셨고, 이삭을 통해서는 그 아들이 모리아산의 희생 제물처럼 죽으실 것을 보이셨으며, 야곱을 통해서는 이기는 자가 상속자가 되는 길을 보이셨다. 그리고 유다와 요셉,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왕직과 통치와 구원의 부분적인 그림자를 보여 주셨다.&lt;br /&gt; &amp;nbsp; 그러나 구약에서 참된 왕의 예표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사람은 다윗이다. 사울은 왕의 자리에 앉았지만 왕직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다. 그는 사람을 두려워했고, 자기 왕권을 지키기 위해 권세를 남용했으며, 하나님의 말씀보다 백성의 요구를 더 크게 여겼다. 반대로 다윗은 실수도 있었고 죄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책망 앞에서 무릎을 꿇을 줄 알았고, 하늘의 왕이신 하나님을 배우며, 장차 오실 메시아의 왕직을 예언한 사람이었다.&lt;br /&gt; &amp;nbsp; &lt;strong&gt;다윗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lt;/strong&gt;가 여기에 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amp;ldquo;다윗의 자손&amp;rdquo;으로 불리셨고, 요한계시록에서는 &amp;ldquo;다윗의 뿌리요 자손&amp;rdquo;이라고 자신을 계시하셨다(계 22:16). 이는&lt;strong&gt; 다윗의 생애와 시편이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lt;/strong&gt;임을 보여 준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중에서도 &lt;strong&gt;시편 110편은 다윗이 본 하늘의 비밀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본문&lt;/strong&gt;이다. 이 시편은 메시아를 두 가지 직분으로 계시한다. 첫째, 그는 원수들을 발등상 되게 하실 때까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시는 왕이시다(시 110:1). 둘째, 그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시다(시 110:4). 왕은 원수를 다스리고, 제사장은 죄인을 하나님께 나아가게 한다. 이 두 직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lt;br /&gt; &amp;nbsp; 그러므로 시편 110편을 읽을 때 우리는 단순히 고대 왕의 즉위시를 읽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께서 경륜 가운데 아들로 오셔서 왕이자 제사장으로 사역하시는 비밀을 보아야 한다. 또한 그 예수님 안에서 성도들이 장차 왕 같은 제사장으로 어떻게 준비되어야 하는지도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시편 110편에 나타난 예수님의 왕직과 제사장직이 무엇이며, 성도는 어떻게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2. 왜 다윗을 통해 참 왕을 배워야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br /&gt; &amp;nbsp; 구약에는 많은 인물이 나온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고, 이삭은 약속의 아들이며, 야곱은 이기는 자의 예표다. 요셉은 고난 후에 높임받은 통치자의 그림자이고,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지도자이며,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으로 백성을 인도한 장군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왕은 아니었다. &lt;strong&gt;하나님께서 &amp;ldquo;왕&amp;rdquo;이라는 직분을 통해 장차 오실 메시아의 통치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신 인물은 다윗&lt;/strong&gt;이다.&lt;br /&gt; &amp;nbsp; 그런데 이스라엘의 첫 왕은 사울이었다. 그러나 사울은 왕직의 실패를 보여 준 사람이다. 그는 처음에는 겸손해 보였지만, 왕권을 붙들고 나서는 하나님보다 백성을 더 두려워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도 백성의 요구를 의식하여 좋은 양과 소를 남기고 아각을 살려 두었다(삼상 15:24). 이것은 왕이 누구 앞에서 살아야 하는지를 잃어버린 모습이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삼상 15: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때 이후 다윗은 사울을 보며 배웠다. 왕은 백성의 눈치를 보는 자가 아니라, 자신을 세우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는 자다. 왕은 사람에게 버림받지 않으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서는 안 된다. 사울은 사람 앞에서 왕의 체면을 지키려다가 하나님 앞에서 버림을 받았다. 다윗은 이 실패를 보며 &amp;ldquo;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amp;rdquo;를 왕직의 기준으로 삼게 되었다.&lt;br /&gt; &amp;nbsp; 또한 다윗은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도 사울과 달랐다. 그는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스스로 왕좌를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그는 &amp;ldquo;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amp;rdquo;를 자기 손으로 치지 않았다. 다윗은 왕직이 쟁취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맡기시는 자리임을 알았다.&lt;br /&gt; &amp;nbsp; &lt;strong&gt;왕직은 사람의 야망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고 세우시며,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 갈 때 맡겨지는 것&lt;/strong&gt;이다. 다윗은 사명으로 보냄받은 자였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으며,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강하게 임한 자였다. 사무엘이 기름을 부은 후 여호와의 영이 다윗에게 크게 감동되었다(삼상 16:13). 여기서 &amp;ldquo;크게 감동되었다&amp;rdquo;는 히브리어는 &amp;lsquo;찰라흐&amp;rsquo;의 의미를 품고 있으며, 강하게 임하고 돌진하듯 역사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다윗은 단순히 정치적 재능을 가진 왕이 아니었다. 그는 &lt;strong&gt;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된 왕&lt;/strong&gt;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무엘상하의 사건 속에서만 이해될 수 없고, 시편 속에서 더 깊이 이해되어야 한다. 사무엘상하는 다윗의 사건을 보여 주고, 시편은 다윗의 영을 보여 준다. 시편 안에는 다윗이 본 하늘 보좌, 시온산, 영광의 왕, 메시아의 고난과 승리, 왕직과 제사장직의 비밀이 담겨 있다.&lt;br /&gt; &amp;nbsp; 그러므로 &lt;span style=&quot;color:#e67e22;&quot;&gt;&lt;strong&gt;다윗을 통하여 참 왕을 배워야 한다. 다윗을 모르면 왕직을 모른다. 왕직을 모르면 예수님의 왕 되심도 온전히 알 수 없다. 그리고 예수님의 왕 되심을 모르면, 성도가 장차 왕 노릇할 자로 어떻게 준비되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3. 왕직은 왜 사탄을 대적하는 권세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br /&gt; &amp;nbsp; 왕직은 왜 필요한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피조물만 있다면 철장 권세가 필요하지 않다. 모든 존재가 하나님께 자원하여 순종한다면 심판과 다스림의 권세가 나타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하늘에서 반역이 일어났다. 사탄이 하나님을 대적했고, 그를 따르는 악한 영들이 생겼다. 그러므로 왕직은 본질적으로 반역한 악한 영의 질서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세우기 위한 직분이다.&lt;br /&gt; &amp;nbsp; 시편 110편 1절은 이 왕직의 핵심을 보여 준다. &amp;ldquo;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amp;rdquo;는 말씀이다. 여기서 원수는 단지 인간적 원수만을 뜻하지 않는다. 다윗의 생애에서는 사울과 주변 이방 나라들이 원수처럼 나타났지만, 신약의 빛 안에서 보면 참된 원수는 혈과 육이 아니라 사탄과 악한 영들이다(시 110:1).&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도 여기에 연결된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고, 동시에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오셨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증언한다(요일 3:8).&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러므로 &lt;strong&gt;왕직은 사람을 짓누르는 권세가 아니다. 왕직은 사람을 배후에서 묶고 속이고 죄짓게 만드는 사탄의 질서를 깨뜨리는 권세&lt;/strong&gt;다.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지만, 동시에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씀한다. 사람은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대상이다. 그러나 사람을 죄와 사망으로 끌고 가는 악한 영은 대적해야 할 대상이다.&lt;br /&gt; &amp;nbsp; 다윗의 삶은 이것을 예표한다. 그는 골리앗을 무너뜨렸다. 골리앗은 단순한 거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고 두려움으로 묶어 놓은 악한 권세의 그림자다. 다윗이 물맷돌로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은 장차 예수께서 사탄을 깨뜨리시고, 그 아래 있는 악한 영들을 쫓아내실 것을 미리 보여 준다.&lt;br /&gt; &amp;nbsp;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도 먼저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다.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신 후, 주님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며 하나님 나라가 임했음을 나타내셨다. 이것이 왕직의 실제다. 왕은 자기 백성을 억압하는 자가 아니라, 백성을 억압하는 악한 영의 권세를 깨뜨리는 자다.&lt;br /&gt; &amp;nbsp;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와 사역자는 왕권을 잘못 사용해서는 안 된다. 목회적 권위, 영적 권세, 직분, 은사가 사람을 겁주고 복종시키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울식 왕권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며, 사람을 괴롭히는 악한 영을 대적하기 위한 것이다.&lt;br /&gt; &amp;nbsp; 왕직은 사탄을 대적하는 권세다. 이 질서가 무너지면 권세는 군림이 되고, 직분은 자기 과시가 되며, 교회는 생명을 살리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누르는 곳이 된다. 다윗이 보여 준 왕직, 그리고 예수께서 완성하신 왕직은 그와 다르다. 참 왕은 원수를 발등상 되게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생명을 주고 자유를 주는 왕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4. 제사장직은 왜 죄인을 살리는 직분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br /&gt; &amp;nbsp; 왕직이 사탄의 반역 때문에 필요하다면, 제사장직은 인간의 죄 때문에 필요하다. 사람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속죄 제사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뱀의 말을 듣고 죄를 지었고,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므로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필요했다. 그 길이 제사장직이다.&lt;br /&gt; &amp;nbsp; 제사장은 히브리어로 &amp;lsquo;코헨&amp;rsquo;이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섬기며, 제물을 드리고,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백성이 하나님께 용서받고 가까이 나아가도록 돕는 직분이다. 레위 계열의 제사장들은 매일 제사를 드렸고, 해마다 대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갔다. 이는 죄인이 그냥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보여 준다. 피가 필요하고, 중보가 필요하며, 정결케 함이 필요하다.&lt;br /&gt; &amp;nbsp; 그런데 &lt;strong&gt;시편 110편&lt;/strong&gt;은 놀라운 말을 한다. &lt;strong&gt;메시아가 왕일 뿐 아니라 제사장이라는 것&lt;/strong&gt;이다. 더구나&lt;strong&gt; 아론의 반차가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lt;/strong&gt;이라고 말한다(시 110:4).&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여기서 우리는&lt;strong&gt; 예수님의 직분&lt;/strong&gt;을 정확히 보아야 한다. &lt;span style=&quot;color:#e67e22;&quot;&gt;&lt;strong&gt;예수님은 왕으로서 원수를 깨뜨리신다. 동시에 제사장으로서 죄인을 살리신다. 왕직만 있고 제사장직이 없다면 죄인은 심판 앞에서 설 수 없다. 제사장직만 있고 왕직이 없다면 사탄의 권세가 계속 사람을 묶어 둘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이 둘이 하나가 된다&lt;/strong&gt;. &lt;strong&gt;그분은 원수를 멸하는 왕이시며, 자기 피로 죄인을 속죄하는 제사장&lt;/strong&gt;이시다.&lt;/span&gt;&lt;br /&gt; &amp;nbsp; 히브리서는 예수께서 육체에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셨고,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 온전하게 되셨다고 말한다(히 5:7-9). 이것은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실제 순종의 길을 걸으셨음을 보여 준다. 그분은 고난 없는 왕이 아니셨고, 피 없는 제사장이 아니셨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히 5:7-9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예수께서 제사장이시라는 것은 성도에게 큰 위로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셨고,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힘입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히 4:15-16).&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히 4:15-1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제사장직은 죄인을 살리는 직분이다. 예수님의 피는 심판의 보좌 앞에서 우리를 멸망시키는 근거가 아니라,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하는 근거가 된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님의 제사장직을 붙들어야 한다. 왕이신 예수님은 악한 영을 깨뜨리시고,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죄인을 속죄하신다. 이 두 직분이 함께 있을 때 구원이 온전해진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5. 멜기세덱은 왜 왕이자 제사장인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br /&gt; &amp;nbsp; 시편 110편의 제사장직을 이해하려면 멜기세덱을 알아야 한다. 멜기세덱은 창세기 14장에 갑자기 등장한다. 그는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돌아올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축복했다. 성경은 그를 &amp;ldquo;살렘 왕&amp;rdquo;이며 &amp;ldquo;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amp;rdquo;이라고 부른다(창 14:18-20).&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창 14:18-20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amp;lsquo;멜렉&amp;rsquo;과 &amp;lsquo;체데크&amp;rsquo;의 의미를 품고 있다. &amp;lsquo;멜렉&amp;rsquo;은 왕이고, &amp;lsquo;체데크&amp;rsquo;는 의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멜기세덱을 &amp;ldquo;의의 왕&amp;rdquo;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그는 살렘 왕이다. 살렘은 평강과 연결되므로, 그는 &amp;ldquo;평강의 왕&amp;rdquo;으로도 설명된다(히 7:1-2).&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히 7:1-2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여기서 중요한 것은 &lt;strong&gt;멜기세덱이 왕이자 제사장이었다&lt;/strong&gt;는 사실이다. 아론 계열의 제사장은 왕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왕과 제사장은 보통 분리되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왕이면서 제사장이었다. 이 점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된다.&lt;br /&gt; &amp;nbsp; 예수님은 유다 지파에서 나셨다. 율법대로라면 제사장은 레위 지파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제사장이 되실 수 있는가. 그 답이 시편 110편 4절이다. 예수님은 아론의 반차가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시다. 아론의 제사장직은 혈통을 따라 이어졌고 죽음 때문에 계속 바뀌어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죽지 아니하는 생명의 능력에 따라 세워졌고 영원하다.&lt;br /&gt; &amp;nbsp; 히브리서는 이 점을 분명히 말한다. 예수님은 육신에 속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않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제사장이 되셨다(히 7:16-17).&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히 7:16-17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러므로 &lt;strong&gt;멜기세덱은 예수님의 두 직분을 동시에 보여 주는 인물&lt;/strong&gt;이다. 그는&lt;strong&gt;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lt;/strong&gt;이며, &lt;strong&gt;동시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lt;/strong&gt;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오셨다. 그분은 의로 다스리는 왕이시고, 평강을 주시는 왕이시며, 자기 피로 우리를 하나님께 이끄는 제사장이시다.&lt;br /&gt; &amp;nbsp; 제사장직은 죄인을 살리는 일을 한다. 그러나 그 제사장직의 궁극적 목적은 죄인이 속죄받아 하나님의 나라에서 왕 노릇할 자로 준비되게 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는 제사가 필요하지만, 천국에서는 더 이상 죄를 위한 제사가 필요하지 않다. 죄가 완전히 처리된 나라에서 남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섬김과 통치다. 그러므로 제사장직은 왕직으로 나아가는 구원의 길을 연다.&amp;nbsp;멜기세덱은 바로 이 질서를 미리 보여 준다. 왕과 제사장이 따로따로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 안에서 결합될 때, 참된 구원과 통치가 나타난다. 그 완성이 예수 그리스도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6. 철장 권세는 누구에게 사용해야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br /&gt; &amp;nbsp; 시편 2편은 메시아 왕의 통치를 철장 권세로 묘사한다. &amp;ldquo;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리며 질그릇같이 부수리라&amp;rdquo;는 말씀이다(시 2:8-9).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에서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권세와 연결된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시 2:8-9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예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에 말씀하시면서 이기는 자와 끝까지 주님의 일을 지키는 자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릴 것이라고 하셨다(계 2:26-27).&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계 2:26-2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여기서 &amp;ldquo;다스리다&amp;rdquo;와 관련된 헬라어 흐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한계시록의 표현은 단순한 폭력적 지배가 아니라 &amp;lsquo;포이마이노&amp;rsquo;의 목양적 의미와 연결된다. 포이마이노는 양을 치다, 목양하다, 다스리다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철장 권세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짓누르는 권세가 아니다. 성도를 향해서는 목양의 권세로 나타나야 하고, 사탄과 악한 영을 향해서는 깨뜨리는 권세로 나타나야 한다.&lt;br /&gt; 이 구분이 매우 중요하다. 왕권을 받은 사람이 이 구분을 잃어버리면 성도를 향해 철장을 휘두른다. 직분을 가지고 사람을 저주하고, 영적 권위를 이용해 성도를 겁주고, 자기 말에 복종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위협한다. 이것은 왕직의 남용이다. 철장 권세는 성도를 때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철장 권세는 악한 영을 깨뜨리라고 주신 것이다.&lt;br /&gt; &amp;nbsp;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다. 주님은 죄인들과 세리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으며, 귀신에게 눌린 자를 자유케 하셨다. 사람을 향해서는 긍휼과 회개를 베푸셨지만, 귀신을 향해서는 단호히 명령하셨다. 이것이 왕직의 바른 사용이다.&lt;br /&gt; &amp;nbsp; 성도는 사람을 원수로 삼아서는 안 된다. 부모가 상처를 주었어도, 가족이 나를 버렸어도, 사람은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다. 다윗도 &amp;ldquo;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amp;rdquo;라고 고백했다(시 27:10). 사람에게 버림받은 경험이 있어도, 하나님께 영접받으면 그것이 새 정체성이 된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시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러나 사람을 통해 역사하는 악한 영은 대적해야 한다.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되지만, 사람을 죄와 사망으로 몰아가는 귀신의 역사는 끊어야 한다. 왕직은 사람을 죽이는 권세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탄의 역사를 깨뜨리는 권세다.&lt;br /&gt; &amp;nbsp; 그래서 철장 권세는 분별이 필요하다. 성도에게는 지팡이를 들어 목양해야 하고, 악한 영에게는 철장을 들어 대적해야 한다. 목자가 양을 때리는 데 막대기를 쓰고, 사자와 곰 앞에서는 침묵한다면 그것은 목자의 직무를 거꾸로 쓰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도 이 원리를 회복해야 한다. 권세는 성도를 억압하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괴롭히는 악한 영을 깨뜨리는 데 써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7. 왜 믿음은 열매와 행위로 드러나야 하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br /&gt; &amp;nbsp; 성경은 믿음을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이 삶의 열매 없이 끝난다고 말하지 않는다. 믿음은 시작이지만, 그 믿음이 참되다면 길과 열매와 행위로 드러난다.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과 악인의 길을 비교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또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한다(시 1:1-2).&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시 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여기서 시편 1편은 추상적인 믿음만 말하지 않는다. 따르지 않고, 서지 않고, 앉지 않는 실제 삶을 말한다. 그리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지속적인 태도를 말한다. 그 결과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시 1:3).&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시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을 말하면서 삶의 방향을 점검하지 않을 수 없다. 이신칭의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귀한 진리다. 그러나 그것을 회개와 순종과 열매를 무시하는 방종의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믿음으로 시작한 자는 반드시 그 믿음에 합당한 길을 걸어야 한다. 야고보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한다(약 2:17).&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약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이번 설교의 흐름에서 이것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 문제와 연결된다. 왕직은 아무에게나 맡겨지는 장난이 아니다. 사울처럼 능력과 정결함이 준비되지 않은 채 권세를 붙들면, 그 권세가 교만과 타락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각 사람을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처럼 다양한 용도로 쓰시되, 반드시 깨끗하게 된 그릇을 귀히 쓰신다(딤후 2:20-21).&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딤후 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여기서 핵심은 그릇의 종류보다 깨끗함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분량으로 쓰임받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금그릇처럼, 어떤 사람은 은그릇처럼, 어떤 사람은 나무그릇이나 질그릇처럼 쓰임받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그릇이든 더럽다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지 않다. 반대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된다.&lt;br /&gt; &amp;nbsp; &lt;strong&gt;성도는 직분을 탐내기 전에 깨끗함을 구해야 한다. 왕직을 탐내기 전에 왕직에 합당한 마음과 삶을 배워야 한다&lt;/strong&gt;. 제사장직을 말하기 전에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피로 씻김받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제사장적 마음을 품어야 한다. 믿음은 입술의 고백에서 시작되지만, 회개와 순종과 열매 속에서 검증된다.&lt;br /&gt; &amp;nbsp; 그러므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 성도는 날마다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나는 악인의 꾀를 따르고 있는가. 나는 죄인의 길에 서 있는가. 나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가. 나는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열매 맺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자신을 살피는 자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8. 성도는 어떻게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gt;&lt;br /&gt; &amp;nbsp; 예수님은 왕이자 제사장이시다. 그런데 성경은 그 예수님 안에서 성도도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았다고 말한다. 베드로는 성도를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들,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부른다(벧전 2:9).&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왕의 제사장체계)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요한계시록도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해방하시고, 우리를 나라(왕국)와 제사장들로 삼으셨다고 말한다(계 1:5-6). 이것은 성도의 신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보여 준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계 1:5-6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왕국)와 제사장[들]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그러나 이 신분은 방종의 면허가 아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어떻게 왕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가?&lt;/p&gt; &lt;p&gt;&amp;nbsp; &lt;strong&gt;첫째, 회개와 순종과 충성으로 그 신분에 합당하게 준비되어야&lt;/strong&gt; 한다. 예수님은 이들 중에서 이기는 자의 반열을 따라 보좌에 함께 앉게 하는 이가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계 3:21). 그러므로 성도는 단지 믿었다는 사실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 길은 첫째, 회개다. 제사장직은 피와 정결과 연결된다. 회개 없이 제사장적 삶을 말할 수 없다. 죄를 품고 악한 영에게 통로를 열어 두면서 왕권을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회개는 죄의 근거를 제거하고, 악한 영의 역사를 끊고, 예수님의 보혈로 자신을 정결케 하는 길이다.&lt;/span&gt;&lt;/span&gt;&lt;/span&gt;&lt;br /&gt; &amp;nbsp; &lt;strong&gt;둘째, 영적 전투를 수행해야 한다&lt;/strong&gt;. 왕직은 사탄과 귀신을 대적하는 권세다. 성도는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야 하지만, 사람을 통해 역사하는 악한 영의 세력은 대적해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과 성령의 권세 안에서 귀신의 역사를 끊고, 가족과 교회와 민족을 묶고 있는 악한 영의 진을 무너뜨려야 한다.&lt;br /&gt; &amp;nbsp; &lt;strong&gt;셋째, 목양할 줄 알아야 한다&lt;/strong&gt;. 철장 권세를 성도에게 휘두르면 안 된다. 성도를 향해서는 포이마이노, 곧 목양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양을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고, 다친 양을 싸매며, 길 잃은 양을 찾아야 한다. 왕 같은 제사장은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살리는 사람이다.&lt;br /&gt; &amp;nbsp; &lt;strong&gt;넷째, 시온과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하는 것&lt;/strong&gt;이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사랑했고, 시온을 하나님의 거처로 노래했다. &amp;ldquo;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amp;rdquo;라고 고백했다(시 122:6).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어린양이 시온산에 서 있고, 그와 함께 14만 4천이 서 있다고 말한다(계 14:1).&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시 122: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계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성도는 이 땅이 전부인 사람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기를 사모해야 한다. 그 성 안에서 주님 가까이 서고, 영광의 왕과 함께하는 자로 준비되어야 한다. 마지막 때 주님은 하늘 군대와 함께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신다. 요한계시록 19장은 백마 타신 주님을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보여 준다(계 19:11-16).&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계 19:11-16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amp;hellip;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 길은 높아지는 길이 아니라 낮아지는 길이다. 자기 권세를 내려놓고, 주님의 피를 의지하여 회개하며, 성령의 은사와 권세를 받아 악한 영을 대적하고,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다윗은 버려진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붙들었고, 시온과 예루살렘을 사모했으며, 영광의 왕이신 여호와를 찬양했다. 성도도 이 길을 배워야 한다.&lt;br /&gt; &amp;nbsp; 시편 110편 3절도 이 준비를 보여 준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며,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이 주께 나온다고 말한다(시 110:3). 여기서 청년은 단순히 육체의 나이를 말하지 않는다. 영적으로 깨어 있고, 원수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으며,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는 자를 가리킨다. 왕 같은 제사장은 억지로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권능의 날에 자원하여 자신을 드리는 사람이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class=&quot;chapter&quot;&gt;&lt;span class=&quot;scripture&quot;&gt;시 110: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또한 성도는 한 분 하나님께서 어떻게 경륜 가운데 일하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시편 110편의 &amp;ldquo;여호와께서 내 주에게&amp;rdquo;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둘이라는 뜻이 아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한 분 하나님께서 때가 차매 아들로 오시고, 육신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이는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경륜의 비밀이다. 그러므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 성도는 예수님을 단지 위대한 선지자나 왕으로만 보지 않고,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자신을 나타내신 분으로 알아야 한다.&lt;/p&gt; &lt;p&gt;&amp;nbsp; 이 지식은 머리의 지식으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예수님이 왕이심을 안다면 악한 영과 타협하지 않아야 하고, 예수님이 제사장이심을 안다면 날마다 그 피를 의지하여 회개해야 한다.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심을 안다면, 성도도 일시적인 종교 활동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 삶은 오늘의 말과 선택과 관계와 섬김 속에서 드러나야 한다.&lt;/p&gt; &lt;p&gt;&amp;nbsp; 마지막으로 &lt;strong&gt;성도는 자신에게 맡겨진 작은 자리와 일부터 충성해야&lt;/strong&gt; 한다. 큰 왕권을 말하면서 작은 섬김을 멸시하면 안 된다. 하나님은 사람의 겉모양보다 중심을 보시고, 오늘의 충성과 회개와 순종을 통해 장차 맡기실 영광을 준비하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 /&gt; &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trong&gt;9.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br /&gt; &amp;nbsp; 예수님께서 왜 왕이자 제사장으로 오셨으며, 성도는 어떻게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시편 110편은 메시아의 두 직분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그분은 원수를 발등상 되게 하시는 왕이시며,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시다. 왕직은 사탄과 악한 영을 대적하는 권세이고, 제사장직은 죄인을 살려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직분이다.&lt;br /&gt; &amp;nbsp; 성도는 이 두 직분의 의미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왕권을 사람을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되며, 철장 권세를 성도에게 휘두르는 방식으로 오해해서도 안 된다. 성도에게는 목양해야 하고, 귀신에게는 대적해야 한다. 사람은 구원의 대상이며, 악한 영은 끊어 내야 할 대상이다. 이것이 왕직의 바른 사용이다.&lt;br /&gt; &amp;nbsp; 또한 성도는 제사장적 정결을 잃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날마다 회개해야 하며,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믿음은 시작이며, 회개와 순종과 열매는 그 믿음이 살아 있음을 드러내는 길이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성도는 신분을 자랑하기보다 그 신분에 합당한 삶을 준비해야 한다.&lt;br /&gt; &amp;nbsp; 다윗은 시온을 사모했고, 예루살렘을 사랑했으며, 영광의 왕이신 여호와를 높였다. 그의 고백은 장차 어린양이 서실 하늘의 시온산과 새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게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의 성공만을 자랑하지 말고,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주님 가까이 설 것을 사모해야 한다. 영광의 왕과 함께할 거룩한 군사로 준비되어야 하며, 회개와 충성과 영적 전투의 길을 끝까지 걸어야 한다.&lt;br /&gt; &amp;nbsp;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보좌에 함께 앉는 권세를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의 왕직과 제사장직을 아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그 직분의 생명과 정신을 따라 살아야 한다. 예수님의 피로 정결케 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한 영을 대적하며, 성도들을 목양하고,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왕이자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따라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서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6년 05월 26일(화)&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아래는 다른 요약입니다.&lt;/p&gt; &lt;p&gt;-----------------------------&lt;/p&gt; &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103)]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9)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2)(시110:1~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dK6eZeWZvT4&lt;/p&gt; &lt;p&gt;&amp;nbsp;&lt;/p&gt; &lt;meta charset=&quot;utf-8&quot;&gt; &lt;title&gt;&lt;/title&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 &lt;style type=&quot;text/css&quot;&gt;body { font-family: &quot;Noto Serif KR&quot;, &quot;Nanum Myeongjo&quot;, serif; font-size: 12pt; line-height: 1.9; color: #222; margin: 0; padding: 0; } .chapter { max-width: none; margin: 0; padding: 0; } h2 { font-size: 13pt; font-weight: 700; color: #38688c; margin: 0 0 1.2em 0; } p { margin: 0 0 1em 0; text-indent: 0; } .scripture { font-weight: 700; color: #854ba0; margin: 0.8em 0 1.5em 0; text-indent: 0; } &lt;/style&gt; &lt;/span&gt;&lt;/p&gt; &lt;div class=&quot;chapter&quot;&gt; &lt;h2&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1. 들어가며&lt;/span&gt;&lt;/h2&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단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아니었다. 그는 하늘의 비밀을 본 사람이었다. 목동으로 들판에서 양을 치던 사람, 사울에게 쫓겨 광야를 떠돌던 사람, 왕이 된 뒤에도 자신의 죄 앞에서 침상을 눈물로 적셨던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단순한 성공한 왕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amp;ldquo;내 마음에 맞는 사람&amp;rdquo;이라고 하셨고, 그를 통하여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신분과 사역을 예언하게 하셨다(행13:22).&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행13:22 하나님&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께서 다윗을 세우시며,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룰 자라고 말씀하셨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본 비밀 가운데 가장 깊고도 놀라운 본문은 시편 110편이다. 이 시편에서 다윗은 장차 오실 메시아를 두 가지 직분으로 증언한다. 하나는 왕이시며, 다른 하나는 제사장이시다. 왕은 다스리는 자이며,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속죄와 중보를 담당하는 자다. 그런데 다윗은 이 두 직분이 한 분에게서 동시에 성취될 것을 보았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된 왕직과 제사장직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이 사실은 당시의 일반적인 신앙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구약의 율법 체계 안에서 왕은 주로 유다 지파에서 나오고, 제사장은 레위 지파 아론의 계열에서 나왔다. 그런데 다윗은 유다 지파에서 오실 메시아가 제사장도 되실 것을 보았다. 더구나 그 제사장직은 레위 계열이 아니라 &amp;ldquo;멜기세덱의 반차&amp;rdquo;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직이라고 예언하였다(시110:4).&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시110:4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고 뜻을 바꾸지 아니하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하셨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lt;strong&gt;시편 110편&lt;/strong&gt;은 단순한 왕권 찬가가 아니다. 이 본문은 &lt;strong&gt;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성육신하실 그리스도, 고난을 통과하실 그리스도, 부활 승천 후 보좌에 앉으실 그리스도, 그리고 원수들을 완전히 굴복시키실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는 예언&lt;/strong&gt;이다. 다윗은 예수님이 오시기 약 천 년 전에 이 비밀을 성령 안에서 보았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함이며, 동시에 성령의 계시가 아니고서는 인간이 스스로 도달할 수 없는 하늘의 영역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오늘 성도들이 이 본문을 붙들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수님이 왕이자 제사장이시라는 사실은 교리적 지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이긴 자로서 보좌에 앉으신 것처럼, 그분은 이기는 성도들에게도 보좌에 함께 앉는 은혜를 약속하셨다(계3:21).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을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계1:6). 그러므로 예수님의 왕직과 제사장직을 아는 것은 성도의 정체성과 사명을 아는 일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계3:21 예수께서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앉으신 것처럼, 이기는 자에게도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계1:6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를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다윗이 어떻게 시편 110편을 통하여 예수님이 왕이자 제사장이심을 예언했으며, 그 예언이 오늘 성도들의 부르심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lt;/span&gt;&lt;/p&gt; &amp;nbsp; &lt;h2&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2. 다윗은 어떻게 예수님을 미리 알았는가?&lt;/span&gt;&lt;/h2&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예수님을 미리 알았다는 것은 단순히 후대 사람들이 다윗의 시를 예수님에게 적용했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시편 110편을 인용하시며,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메시아를 &amp;ldquo;내 주&amp;rdquo;라고 불렀음을 말씀하셨다(마22:43-44). 다윗은 자기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보면서도 그분을 단순한 후손으로만 보지 않았다. 그는 그분을 자신의 주님으로 보았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마22:43-44 예수&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께서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르며, &amp;ldquo;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셨다&amp;rdquo;고 기록한 사실을 말씀하셨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여기에서 중요한 표현은 &amp;ldquo;성령에 감동되어&amp;rdquo;이다. 다윗의 예언은 인간의 추론이나 정치적 기대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성령의 조명 안에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신분을 보았다. 이것이 하늘의 비밀이다. 하늘의 비밀은 인간이 배워서만 얻는 지식이 아니다. 배움은 필요하지만, 계시와 조명이 없으면 그 배움은 껍데기에 머무른다. 다윗은 배운 자이기 전에 하나님께 붙들린 자였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은사를 여러 방식으로 보여 준다. 어떤 은사는 출생과 가문을 통해 나타나는 일반 은사처럼 보인다. 디모데의 믿음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에게서 이어진 거짓 없는 믿음의 흐름 속에 있었다(딤후1:5). 그러나 동시에 안수를 통해 다시 불일듯 일어나야 할 하나님의 은사도 있었다(딤후1:6).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타고난 그릇도 있고, 부르심 가운데 부어지는 특별한 은사도 있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딤후1:5 디모데 안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은 먼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안에 있었고, 바울은 그 믿음이 디모데 안에도 있음을 확신하였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딤후1:6 바울은 안수를 통하여 디모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일어나게 하라고 권면하였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다윗에게는 특별히 영적인 것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시와 예언으로 풀어내는 은사가 탁월했다. 그는 골리앗 앞에서 단지 용감했던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이 전쟁이 사람의 전쟁이 아니라 여호와께 속한 전쟁이라는 것을 알았다(삼상17:47). 그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자기 손으로 치지 않았다. 그는 보이는 상황보다 하나님의 질서를 더 두려워했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삼상17:47 다윗은 전쟁이 여호와께 속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실 것을 선포하였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하늘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조급하지 않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다니면서도 왕권을 빼앗기 위해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때를 기다렸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 왕을 세우시고 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영적 질서가 다윗의 내면을 붙들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고난을 통해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메시아의 길을 미리 몸으로 살아 내는 사람이 되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결국 &lt;strong&gt;다윗이 예수님을 미리 알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lt;/strong&gt;이다. 그는 하나님이 왕으로 이 땅에 보낸 자였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였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한 자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장차 이루실 구속사의 흐름을 미리 보도록 허락받은 자였다. 이 사실은 오늘날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에게도 무겁게 다가온다. 하늘의 비밀을 전하려면 세상의 아는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회개로 깨끗해져야 하고, 성령의 조명 아래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뜻을 자기 욕망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lt;/span&gt;&lt;/p&gt; &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lt;/span&gt; &lt;h2&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3. 왜 하늘의 비밀을 아는 은사가 필요한가?&lt;/span&gt;&lt;/h2&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이 세우신 왕에게는 단지 행정 능력이나 전쟁 능력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왕은 백성을 하나님의 뜻 안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러므로 &lt;strong&gt;하늘의 왕이신 하나님을 대신하는 이 땅의 왕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늘의 뜻을 아는 영적 감각&lt;/strong&gt;이다. 다윗은 이 점에서 사울과 달랐다. 사울은 왕의 자리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잃었고, 다윗은 광야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붙들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성경에서 왕은 단지 권력자가 아니다. 왕은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드러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은 자기 뜻대로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받아 다스리는 자다. 다윗이 위대한 이유는 그가 완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죄를 지었다. 밧세바를 범했고, 우리아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며, 인구 조사로 백성에게 재앙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는 죄를 지적받았을 때 변명하지 않고 회개했다(시51:17).&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시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며, 하나님께서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신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하늘의 비밀을 아는 은사는 회개와 분리될 수 없다. 죄가 쌓이면 영적 감각은 흐려진다. 귀신의 역사와 조상의 죄와 마음의 완고함이 사람의 영을 어둡게 만들면, 말씀을 들어도 껍데기만 듣게 된다. 그러므로 말씀의 비밀을 깨닫는 일은 지적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정결의 문제이기도 하다. 다윗이 깊은 예언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상한 마음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도 마찬가지다. 바울은 셋째 하늘과 낙원에 이끌려 간 경험을 말하면서, 사람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했다(고후12:2-4). 그는 환상과 계시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구약의 말씀 속에 감추어진 그리스도의 비밀을 풀어낼 수 있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는 시편 110편의 예언이 히브리서에서 깊이 해석될 수 있었던 것도, 성령께서 바울에게 그 비밀을 열어 주셨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고후12:2-4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이 셋째 하늘과 낙원에 이끌려 가서 사람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들었다고 말하였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하늘의 비밀을 아는 은사는 사람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은 창조에서 시작하여 성육신, 십자가, 부활, 승천, 보좌 우편, 성령 강림, 교회의 시대, 회개와 축사, 재림, 천년왕국,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시간표다. 이 시간표를 모르면 사람은 신앙을 자기 문제 해결의 도구로 축소한다. 돈을 잘 벌고, 병이 낫고, 세상 지위가 올라가는 것만 간증의 중심이 되어 버린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참된 간증은 &amp;ldquo;내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다&amp;rdquo;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왕이심을 알면 성도는 세상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이심을 알면 성도는 죄와 귀신의 억압 아래 머물지 않고 회개와 보혈의 능력으로 나아간다. 예수님이 보좌에 앉으셨음을 알면 성도는 인생의 목적을 땅의 성공에 두지 않고 하늘의 상급과 왕권의 부르심에 둔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하늘의 비밀을 아는 은사는 오늘날에도 필요하다. 다만 그 은사는 반드시 말씀의 팩트와 성령의 조명과 회개의 정결함 안에서 분별되어야 한다. 환상과 계시를 말한다고 모두 참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짓이 있다는 이유로 참된 성령의 조명까지 부정해서도 안 된다. 다윗은 성령 안에서 보았고, 바울은 환상과 계시 안에서 풀었으며, 성도는 기록된 말씀과 성령의 조명 안에서 그 비밀을 깨달아야 한다.&lt;/span&gt;&lt;/p&gt; &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 &amp;nbsp;&lt;/span&gt; &lt;h2&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4. 시편 110편은 왜 왕과 제사장을 증언하는가?&lt;/span&gt;&lt;/h2&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시편 110편은 짧지만 매우 깊은 본문이다. 1절은 메시아의 왕직을 말한다. &amp;ldquo;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amp;rdquo;이라는 표현은 한 분 하나님께서 장차 육신을 입고 오실 그리스도에게 왕권을 주시는 장면을 예언적으로 보여 준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과 자기의 주님 사이의 신비한 대화를 보았다. 이 말씀은 삼신론적 분열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께서 구속 경륜 안에서 아들로 나타나실 신비를 보여 주는 예언적 언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시110:1 여호와께서 다윗의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원수들이 발판이 되기까지 주의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고 하셨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amp;ldquo;오른편에 앉으라&amp;rdquo;는 말은 단순히 위치를 뜻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보좌에 앉는다는 것은 통치와 심판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메시아에게 원수들이 발판이 될 때까지 보좌의 권세를 맡기신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뒤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고 왕으로 등극하셨다는 뜻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시편 110편 2절은 그 왕권이 시온에서부터 뻗어 나간다고 말한다. 시온은 다윗이 하나님의 임재와 왕권을 연결시킨 장소다. 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며 시온을 하나님의 통치와 예배의 중심으로 세웠다. 훗날 요한계시록은 어린양이 시온산에 서 계신 장면을 보여 준다(계14:1). 이는 다윗이 보았던 왕권의 중심이 마지막 때 어린양의 통치와 연결됨을 보여 준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계14:1 요한은 어린양이 시온산에 서 있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시편 110편의 절정은 4절이다. 메시아는 단지 왕이 아니라 영원한 제사장이다. &amp;ldquo;멜기세덱의 반차&amp;rdquo;라는 표현은 창세기 14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면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창14:18). 그는 왕과 제사장의 직분을 동시에 지닌 인물로 등장한다. 그래서 그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 된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창14:18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레위 제사장직은 혈통을 따라 계승되었고, 죽음 때문에 계속 바뀌어야 했다. 그러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직은 혈통적 계승에 매이지 않는 영원한 제사장직을 가리킨다.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 바로 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다고 해석한다(히7:17). 이것은 다윗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었음을 보여 준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히7:17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증언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왕은 원수를 굴복시키고, 제사장은 죄를 속한다. 예수님은 이 두 사역을 모두 이루셨다. 십자가에서 죄를 담당하심으로 대제사장의 일을 이루셨고, 부활과 승천으로 사탄과 사망의 권세를 꺾으심으로 왕의 권세를 드러내셨다. 그러므로 시편 110편은 예수님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메시아 예언이다. 다윗은 예수님의 신분과 사역을 한 본문 안에 담아낸 것이다.&lt;/span&gt;&lt;/p&gt; &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 &amp;nbsp;&lt;/span&gt; &lt;h2&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5. 멜기세덱의 반차는 무엇이 다른가?&lt;/span&gt;&lt;/h2&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멜기세덱의 반차를 이해하려면 먼저 레위 제사장직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레위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법 질서 안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들은 제사를 드리고, 백성의 죄를 위한 속죄 의식을 집행하며, 성소에서 섬겼다. 그러나 그들도 죄인이었다. 그러므로 백성을 위해 제사하기 전에 자기 죄를 위해 먼저 제사해야 했다. 또한 그들은 죽기 때문에 영원히 직분을 계속할 수 없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히브리서는 이 점을 분명히 말한다. 레위 계열의 제사장들은 수효가 많았는데, 이는 죽음 때문에 항상 직분을 계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직도 갈리지 않는다(히7:23-24). 이것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직의 핵심이다.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혈통적 계승이 아니라 생명의 능력에 근거한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히7:23-24 레위 제사장들은 죽음 때문에 직분을 계속할 수 없었으나, 예수님은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직이 변하지 않는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또한 레위 제사장들은 짐승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갔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다(히9:12). 짐승의 피는 반복되어야 했지만, 그리스도의 피는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반복의 제사장이 아니라 완성의 제사장직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히9:12 그리스도께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었다. 살렘은 평강을 뜻하는 말과 연결된다. 그는 또한 의의 왕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해석된다(히7:2). 예수님은 의의 왕이시며 평강의 왕이시다. 그분은 죄인을 의롭게 하시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들에게 평화를 주신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은 단순한 고대 인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왕적 제사장직을 미리 보여 주는 예표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히7:2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은 의의 왕으로 해석되고, 살렘 왕이라는 칭호는 평강의 왕으로 해석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다윗이 이 비밀을 시편 110편에서 붙든 것은 놀라운 일이다. 창세기 14장에 잠깐 등장하는 멜기세덱을 보고, 장차 오실 메시아의 영원한 제사장직과 연결한다는 것은 인간적 해석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성령께서 다윗에게 구속사의 깊은 줄기를 보여 주신 것이다. 그리고 히브리서는 그 줄기를 붙들어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을 해석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여기에서 동탄명성교회가 강조해 온 한 분 하나님 신앙의 관점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별개로 존재하는 또 다른 신이 아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하나님 밖의 제삼자가 중보하는 방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오셔서 자신의 피로 우리를 속량하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깊은 신비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멜기세덱의 반차는 단순한 교리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지금도 자기 백성을 위해 중보하시며, 그 피의 능력으로 죄와 귀신의 권세에서 건져 내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성도는 이 대제사장을 붙들어야 한다. 죄를 숨기지 말고 회개해야 하며, 귀신의 억압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보혈과 이름의 권세 안에서 자유를 얻어야 한다.&lt;/span&gt;&lt;/p&gt; &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 &amp;nbsp;&lt;/span&gt; &lt;h2&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6. 예수님은 어떻게 은혜의 보좌를 여셨는가?&lt;/span&gt;&lt;/h2&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시편 110편의 &amp;ldquo;오른편에 앉으라&amp;rdquo;는 말씀은 예수님의 승천과 보좌 등극을 가리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좌에 앉으시기까지의 길은 영광의 길이기 전에 고난의 길이었다. 그분은 육체로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셨고,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다(히5:7-9). 이것은 예수님이 참 사람이셨음을 보여 준다. 그분은 피곤하셨고, 배고프셨고, 고통을 느끼셨다. 그러나 죄는 없으셨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히5:7-9 예수님은 육체로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셨고,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 온전하게 되심으로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담당하셨다. 원래 하나님의 보좌는 거룩과 심판의 보좌다. 죄인은 그 앞에 설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심판받아야 할 죄인의 길을 대신 걸으셨다. 그 결과 믿고 회개하는 자는 이제 두려움만으로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긍휼과 은혜를 얻기 위해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히4:16).&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히4:16 성도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이 변화는 작지 않다. 심판의 보좌가 은혜의 보좌로 열렸다는 것은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은혜는 죄를 가볍게 여기는 허락장이 아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예수님의 피는 회개하는 자를 씻는다.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보혈은 지식이 될 수는 있어도 실제 능력으로 역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은혜의 보좌는 회개하는 자에게 열린 보좌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또한 하늘 성소를 정결하게 하셨다. 사탄은 본래 하늘의 영광 가운데 있었으나 교만으로 타락한 존재다. 에스겔 28장은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이 교만으로 인해 쫓겨나는 장면을 보여 준다(겔28:14-17). 하늘에서 시작된 반역은 땅에서도 죄와 귀신의 역사로 이어졌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피로 이 더러움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처리하셨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겔28:14-17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이 아름다움과 지혜로 인해 교만해졌고, 결국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는 심판을 받았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축사는 복음의 주변부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귀신을 쫓아내신 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표적이었다(마12:28).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뒤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추격한 것처럼, 예수님은 먼저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시고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는 권세를 맡기셨다. 성도는 죄를 회개하고,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죄의 통로를 끊고, 예수 이름의 권세로 더러운 영을 몰아내야 한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마12:28 예수께서 하나님의 영으로 귀신을 쫓아내신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은혜의 보좌는 예수님의 왕직과 제사장직이 만나는 자리다. 왕으로서 예수님은 원수를 굴복시키신다. 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은 피로 죄를 씻으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은혜의 보좌 앞에서 용서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스림의 권세도 회복해야 한다. 죄에게 지배받지 않아야 하고,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아야 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왕 같은 제사장의 삶을 배워야 한다.&lt;/span&gt;&lt;/p&gt; &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 &amp;nbsp;&lt;/span&gt; &lt;h2&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7. 성도는 왜 왕 같은 제사장인가?&lt;/span&gt;&lt;/h2&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이 왕이자 제사장이시라는 사실은 성도에게 직접 연결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은 자들을 왕국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베드로도 성도들을 향해 &amp;ldquo;왕 같은 제사장&amp;rdquo;이라고 불렀다(벧전2:9). 이 표현은 모든 성도가 똑같은 수준의 왕권을 이미 누린다는 가벼운 말이 아니다. 그것은 성도가 제사장적 정체성을 가지고 왕적 부르심을 향해 자라가야 한다는 뜻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벧전2:9 성도는 택하신 족속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고 거룩한 나라와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 부름받았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제사장은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이라면, 그는 먼저 예배와 회개와 중보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제사장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더러운지, 무엇이 거룩한지 분별해야 한다. 오늘날 성도들이 귀신의 역사와 죄의 통로를 모른 채 세상 성공만을 복으로 여긴다면, 제사장적 정체성을 잃은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왕은 다스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성도의 왕권은 세상 권력처럼 남을 억압하는 힘이 아니다. 성도의 왕권은 먼저 자기 죄와 욕망과 귀신의 역사를 다스리는 데서 시작된다. 자기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과 열방을 다스릴 수는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철장 권세를 약속하셨다(계2:26-27). 이기는 자는 단지 입으로 믿는다고 말한 자가 아니라 끝까지 주님의 일을 지키는 자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계2:26-27 예수께서는 이기고 끝까지 주님의 일을 지키는 자에게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시편 2편은 메시아가 철장으로 열방을 깨뜨리실 것을 예언한다(시2:8-9). 요한계시록은 이 권세가 이기는 성도들에게도 주어질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amp;ldquo;다스리다&amp;rdquo;라는 의미는 목양의 의미와도 연결된다. 헬라어로 목양하다를 뜻하는 &amp;ldquo;포이마이노&amp;rdquo;는 단지 지배한다는 뜻이 아니라, 양을 돌보고 인도하며 필요할 때 엄격하게 보호한다는 뜻을 가진다. 왕권은 목양과 분리되지 않는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시2:8-9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민족들을 기업으로 주시고, 땅끝까지 소유로 주시며,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리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도의 왕권은 지금부터 훈련되어야 한다. 순종은 죽은 뒤 갑자기 생기는 성품이 아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천국에서도 낮은 자리에서 순종을 배워야 한다. 새 예루살렘 성 안과 성 밖의 차이는 단순한 공간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님께 얼마나 온전히 순종하는 존재로 준비되었는가의 차이와 연결된다. 성도는 지금부터 하나님의 말씀과 참된 주의 종의 가르침 앞에서 자기 의지를 꺾는 훈련을 해야 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이 부르심은 영적 특권이면서 동시에 책임이다. 지도자는 더 엄중한 심판을 받는다. 다윗도 죄를 지었을 때 그 대가를 피하지 못했다. 회개했지만 칼이 집을 떠나지 않는 징계를 받았다. 그러므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성도는 세상 권세를 부러워하기보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더 높은 부르심에는 더 깊은 회개와 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lt;/span&gt;&lt;/p&gt; &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 &amp;nbsp;&lt;/span&gt; &lt;h2&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8.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lt;/span&gt;&lt;/h2&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갈망이 있어야 한다. 다윗은 단지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찾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고, 하나님의 뜻을 사랑했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했다. 그래서 그는 시온을 사랑했고, 법궤를 모셔 오기를 원했으며, 성전을 짓고자 하는 마음까지 품었다. 비록 성전은 솔로몬이 지었지만, 그 마음은 다윗에게서 먼저 나왔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다윗의 위대함은 회개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죄를 지었으나 죄를 합리화하지 않았다.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들었을 때 &amp;ldquo;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다&amp;rdquo;고 고백했다(삼하12:13).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의 특징이다. 죄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지적받았을 때 즉시 하나님 앞에 무너지는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받는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scriptur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삼하12:13 다윗은 나단의 책망 앞에서 자신이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다고 고백하였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또한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다. 밧세바에게서 난 아이가 병들었을 때 그는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러나 아이가 죽은 뒤에는 하나님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는 하나님께 구할 때와 하나님이 결정하신 뒤 순복해야 할 때를 알았다. 이것은 신앙의 깊은 성숙이다. 하나님의 뜻을 자기 뜻으로 끌어내리려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뜻을 하나님의 뜻 앞에 내려놓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예수님의 삶을 미리 닮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원수에게 쫓겼지만 원수를 자기 손으로 죽이지 않았다. 예수님도 자신을 못 박는 자들을 향해 용서를 구하셨다.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을 구원했다. 예수님은 사탄의 권세를 꺾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다. 다윗은 시온을 왕권과 예배의 중심으로 세웠다. 예수님은 하늘 시온에서 어린양으로 서 계신다. 그러므로 다윗의 생애는 메시아의 그림자를 담고 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오늘 성도도 다윗처럼 살아야 한다. 이는 다윗의 모든 행동을 따라 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의 마음의 방향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했고, 죄 앞에서 회개했으며,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순복했고, 원수 갚는 일을 자기 손에 맡기지 않았다. 그는 하늘의 비밀을 알았기에 흔들림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았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말씀을 깊이 배워야 한다. 그러나 말씀 공부는 성령의 조명과 함께 가야 한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의미도 소중하다. &amp;ldquo;멜기세덱&amp;rdquo;은 의의 왕이라는 뜻과 연결되고, &amp;ldquo;살렘&amp;rdquo;은 평강과 연결된다. &amp;ldquo;그리스도&amp;rdquo;는 헬라어 &amp;ldquo;크리스토스&amp;rdquo;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며, 히브리어 &amp;ldquo;마쉬아흐&amp;rdquo;와 같은 의미다. 이런 어원은 성경의 영적 팩트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어원 지식도 회개와 순종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생명이 되지 못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려면 네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하늘의 비밀을 사모해야 한다. 둘째, 죄를 깨달을 때 즉시 회개해야 한다. 셋째, 예수님이 왕이자 제사장이심을 붙들어야 한다. 넷째, 자신도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았음을 알고 이기는 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시편 110편을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오늘의 부르심으로 받는 길이다.&lt;/span&gt;&lt;/p&gt; &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 &amp;nbsp;&lt;/span&gt; &lt;h2&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9. 나오며&lt;/span&gt;&lt;/h2&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다윗이 시편 110편을 통하여 예수님이 왕이자 제사장이심을 어떻게 예언했는지를 살펴보았다. 다윗은 성령의 감동 안에서 장차 오실 메시아를 보았고, 그분이 원수들을 발판으로 삼으실 왕이시며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심을 증언하였다. 이 예언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 안에서 성취되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셨고,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으며,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그분은 심판의 보좌를 은혜의 보좌로 여셨고, 회개하는 자들이 긍휼과 은혜를 얻도록 길을 만드셨다. 또한 왕으로서 사탄과 사망의 권세를 꺾으셨고,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귀신을 쫓고 죄의 권세를 이기는 삶을 맡기셨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성도는 이 사실을 지식으로만 알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이 왕이심을 믿는다면 그분의 다스림 아래 순종해야 한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이심을 믿는다면 그분의 피 앞에 회개해야 한다. 예수님이 이긴 자에게 보좌를 약속하셨다면 성도도 이기는 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 왕 같은 제사장의 부르심은 장식용 호칭이 아니라, 회개와 순종과 영적 전쟁과 중보의 삶으로 감당해야 할 실제 사명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땅의 성공을 복의 전부로 오해한다. 그러나 세상의 지위와 재물은 죽음 앞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이다. 그분이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구원자이시며, 왕이자 대제사장이시며, 다시 오실 심판주이심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분의 경륜 안에서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분별해야 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하늘의 비밀을 알았기에 고난 중에도 길을 잃지 않았다. 그는 죄를 지었지만 회개했고, 원수 앞에서도 하나님의 질서를 지켰으며, 자기 왕권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크게 보았다. 성도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말씀을 배우되 성령의 조명 안에서 배워야 하고, 은사를 사모하되 정결한 회개 안에서 사모해야 하며, 왕권을 바라보되 먼저 제사장적 거룩함을 갖추어야 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시편 110편은 오늘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예수님을 단지 구원자로만 알고 있는가, 아니면 왕과 제사장으로 알고 있는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죄와 귀신의 묶임을 방치하고 있는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았음을 알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 복만을 좇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성도는 다시 회개하고,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며, 다시 주님의 경륜 안에서 자기 부르심을 붙들어야 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amp;nbsp;&amp;nbsp;그리하여 예수님이 왕이자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깊이 알고,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span&gt;&lt;/p&gt; &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 &amp;nbsp;&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2026-05-26 (화요일)&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정보배 목사&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이 설교는 시편 110편을 중심으로&amp;nbsp;&lt;strong&gt;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자 제사장으로 오실 것&lt;/strong&gt;을 예언한 다윗의 영성을 탐구하며,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amp;nbsp;&lt;strong&gt;이기는 자의 자격&lt;/strong&gt;을 역설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진정한 왕의 모델로 다윗을 제시하며, 왕직은&amp;nbsp;&lt;strong&gt;사탄의 세력을 척결하기 위한 권세&lt;/strong&gt;로, 제사장직은&amp;nbsp;&lt;strong&gt;인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긍휼&lt;/strong&gt;로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특히 구원은 믿음으로 시작되나 그 결실은&amp;nbsp;&lt;strong&gt;행함과 열매를 통한 심판&lt;/strong&gt;으로 완성됨을 강조하며, 성도들이 스스로를 깨끗하게 비워 주님의 쓰임에 합당한&amp;nbsp;&lt;strong&gt;하늘의 군대&lt;/strong&gt;가 되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결론적으로 다윗이 시온산과 예루살렘을 사모했듯, 신자들도&amp;nbsp;&lt;strong&gt;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lt;/strong&gt;가 되어 장차 다가올 영광의 나라에서&amp;nbsp;&lt;strong&gt;왕 노릇 하는 상속자&lt;/strong&gt;가 될 것을 독려하는 목회적 권고를 담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lt;strong&gt;[설교요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고딕,NanumGothic,Malgun Gothic,sans-serif;&quot;&gt;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자 제사장으로 오셨다. 왕직은 사탄과 악한 영의 반역을 다스리고 깨뜨리기 위한 직분이며, 제사장직은 죄에 빠진 인간을 속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기 위한 직분이다. 다윗은 시편 110편에서 이 두 직분이 장차 메시아 안에서 하나로 결합될 것을 보았다. 특히 멜기세덱은 왕이면서 제사장이었던 인물로서, 예수께서 레위 계열이 아닌 영원한 제사장으로 오실 것을 예표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왕직은 사람을 억압하는 권세가 아니라 사탄을 깨뜨리는 권세이며,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죄인을 용서하고 살리는 직분이다. 성도도 회개와 순종과 영적 전투를 통해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어야 한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인포그래픽.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e6e1869f6dafcbb5855156fe3d7019a9.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멜기세덱_반차의_왕과_제사장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5c433f0080bdae306de87b5eee3ca2b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King_Pries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2eee74474f525621cecbe45286d5dc5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King_Pries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f52069d34763ebbf407c91486577bc4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King_Pries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e988eadd26304df0007da1f881027bb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King_Pries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7588a8e2f3cdb1367a9a4afc956bd9a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King_Pries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d3acef656edb6c81617e952cb993c1d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King_Pries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b043ef30a051b8088b6daac7604bf88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King_Pries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1230a9870f1d49548d855adb755c348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King_Pries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3f67a25ac015a5688443c56361a9f1c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King_Pries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dbf673ac87946dd55cab15fea57ad4f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King_Pries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a700682b2ddc2e00479770df3a91400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King_Pries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4f4de85a591302a8a519bffcc353071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King_Pries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2d26be9d9517ac33013acb5899d961a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King_Pries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35f309c584d9d7d4b170270ec3d4837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King_Pries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b7d6f16fb214a3eefc01f2b792353e8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King_Priest.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0f81492798efec518adc877ae39903d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Eternal_King_Pries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8160ada1e99689a9a1ccd196eba7c46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Eternal_King_Pries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6d634c220c2ec0e883f2285e62a371f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Eternal_King_Pries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edf911f8933261cf788e56063179464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Eternal_King_Pries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e1e57a6ac58756995886ea585f7e717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Eternal_King_Pries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2f31651cb9ab45ec5dd5315ac87d4d0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Eternal_King_Pries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ab02b30b8e84aad17df4dd6797c14eb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Eternal_King_Pries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0d0a79948f406cd83a44ffacc6c20ae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Eternal_King_Pries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5c8e808f2134b709810f355e5d5fc1d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Eternal_King_Pries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f0179e8847a4d60c3bdec716b413275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Eternal_King_Pries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3cadc84def7187a9aadfb27ed2b6f8c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3)] The_Eternal_King_Pries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795/254/29320c2086df202b9a9704b223c7aff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기독론(102)]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8)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1)(시110:1~7)_2026-05-25(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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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5-25T16:55:14+09:00</published>
		<updated>2026-05-26T13:03:47+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02)]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8)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1)(시110: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_Y-0B3nPzV4 1. 들어가며 다윗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만 기억될 사람이 아니다. 성경 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대표적인 예표이며, 장차 오실 메시아의 왕직과 제사장직을 미리 본 사람이다. 그는 단지 시를 잘 쓰고 찬양을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아침묵상입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기독론(102)]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8)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1)(시110:1~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lt;/span&gt;&lt;/p&gt; &lt;p&gt;&lt;span&gt;https://youtu.be/_Y-0B3nPzV4&lt;/span&gt;&lt;/p&gt; &lt;div class=&quot;youtube-div&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_Y-0B3nPzV4?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980b9;&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quot;&gt;&lt;strong&gt;1. 들어가며&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다윗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만 기억될 사람이 아니다. 성경 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대표적인 예표이며, 장차 오실 메시아의 왕직과 제사장직을 미리 본 사람이다. 그는 단지 시를 잘 쓰고 찬양을 사랑한 왕이 아니었다. 그는 하늘의 비밀을 보았고,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으로 오실지를 성령의 감동 가운데 예언한 사람이었다.&lt;br /&gt; &amp;nbsp; 다윗이 이러한 비밀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인간적인 재능 때문만이 아니었다. 사람에게는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자연적 재능이 있다. 노래를 잘하는 재능, 가르치는 재능, 섬기는 기질, 부드러운 성품, 사람을 환대하는 태도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반 은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늘의 비밀은 일반 은사만으로 열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와 메시아의 직분과 하늘 보좌의 비밀은 성령께서 열어 주셔야 알 수 있다.&lt;br /&gt; &amp;nbsp; 다윗은 바로 그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다. 그는 평범한 종교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미리 준비된 왕적 증인이었다. 하나님은 그를 왕직의 사명으로 이 땅에 보내셨고, 그의 마음을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하셨으며,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강하게 임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다윗은 구약 시대의 왕이면서도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놀라운 예언을 할 수 있었다. 그 예언의 절정이 바로 시편 110편이다.&lt;br /&gt; &amp;nbsp; 시편 110편은 짧지만 깊다. 여기에는 &lt;strong&gt;메시아께서 여호와의 오른편에 앉으시는 왕이심&lt;/strong&gt;이 나온다. 또한 &lt;strong&gt;그분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심&lt;/strong&gt;도 나온다. 곧 &lt;strong&gt;시편 110편은 예수님을 왕과 제사장으로 동시에 증언한다. 이것은 구약 율법의 제도만으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하늘의 비밀&lt;/strong&gt;이다.&lt;br /&gt; &amp;nbsp; 성도에게 이 계시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다.&lt;strong&gt;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시라는 사실은 그분을 믿는 성도도 장차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어야 함을 알려 &lt;/strong&gt;준다. 믿음은 시작이고, 회개와 순종과 충성은 그 신분에 합당하게 준비되는 길이다. 또한 이 계시는 성도가 무엇을 사모해야 하는지를 바꾸어 놓는다. 세상에서 잠시 높아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왕이자 제사장이신 주님 가까이에서 그분을 섬기고 그분과 함께 왕 노릇하는 것이 성도의 참된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lt;strong&gt;이 시간에는 다윗이 어떻게 하늘의 비밀을 알고 시편 110편에서 예수님을 왕과 제사장으로 예언하였으며, 성도는 그 계시 앞에서 어떻게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2. 다윗은 어떻게 하늘의 비밀을 알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다윗은 &lt;strong&gt;하늘의 비밀을 알았던 사람&lt;/strong&gt;이다. 하지만 그 비밀은 책을 많이 읽고, 인간적 연구를 많이 해서 얻은 지식만은 아니었다. 물론 말씀을 사랑하고 묵상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깊은 경륜은 성령의 감동 없이는 열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보여 주시지 않으면 볼 수 없고, 하나님이 들려주시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영역이 있다.&lt;br /&gt; &amp;nbsp; 다윗에게는&lt;strong&gt; 먼저 그에게 주신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보냄을 받은 자였&lt;/strong&gt;다. 그는 하나님께서 왕직을 맡기기 위해 보내신 사람이었다. 사울은 백성의 요구 속에서 세워진 왕이었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두시고 준비하신 왕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왕직을 쟁취하려 하지 않았다. 기름부음을 받고도 사울을 자기 손으로 제거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와 때를 기다릴 줄 알았다.&lt;br /&gt; &amp;nbsp; 또한 &lt;strong&gt;다윗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lt;/strong&gt;. 하나님은 그를 &amp;ldquo;내 마음에 맞는 사람&amp;rdquo;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다윗이 감정적으로 하나님을 좋아했다는 정도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고, 무엇을 미워하시며, 어떤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지를 알아 가는 사람이었다. 하늘의 비밀은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자에게 맡겨지지 않는다.&lt;br /&gt; &amp;nbsp; 그리고 &lt;strong&gt;다윗에게는 여호와의 영&lt;/strong&gt;이 강하게 임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을 때,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크게 감동되었다. 히브리어로 &amp;ldquo;크게 감동되었다&amp;rdquo;는 표현은 단순히 조용히 머문다는 뜻이 아니라, 강하게 임하고 돌진하듯 역사하는 뜻을 가진다. 다윗은 여호와의 영이 위에 임하여 은사와 능력을 주시던 구약 시대의 사람이었지만, 그에게 임한 영의 역사는 매우 강했다.&lt;br /&gt; &amp;nbsp; 이와 관련하여 성경은 디모데에게도 자연적 믿음의 유산과 안수를 통해 받은 은사가 함께 있었음을 보여 준다. 디모데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해 거짓 없는 믿음을 이어받았고, 또한 바울의 안수와 장로회의 예언을 통해 은사를 받았다(딤후 1:5-6, 딤전 4:14).&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딤후 1:5-6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딤전 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왕으로서의 자연적 기질만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lt;strong&gt;그는 성령의 특별한 감동을 통해 영분별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지혜의 말씀의 은사, 예언의 은사와 같은 신령한 은사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lt;/strong&gt;으로 보아야 한다. 그는 사울에게 붙은 악한 영을 수금 연주로 물러가게 했고, 시편 속에서 메시아의 고난과 부활과 승천과 통치까지 예언했다.&lt;br /&gt; &amp;nbsp;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은 은사를 자랑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은사는 사람을 높이기 위해 주어지는 장식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성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며, 마지막에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백성을 준비시키기 위해 주어진다. 그러므로 하늘의 비밀을 받은 자일수록 더 낮아져야 하고, 더 많이 회개해야 하며, 더 조심스럽게 말씀 앞에 서야 한다. 다윗이 큰 은사를 받았음에도 자기 죄 앞에서는 상한 심령으로 엎드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lt;br /&gt; &amp;nbsp; 사도 바울도 엄청난 환상과 계시의 세계를 경험했다. 바울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고, 사람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성경의 깊은 비밀이 단지 인간 학문으로만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후 12:1-4).&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고후 12:1-4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그러므로 다윗이 시편 110편에 나오는 왕와 제사장의 비밀을 알았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임한 사람에게 하늘의 비밀이 열린 것이다. 하늘의 비밀은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성도들을 새 예루살렘 성으로 인도하며,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시키기 위해 주어지는 계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36fa1;font-size:16px;&quot;&gt;&lt;strong&gt;3. 시편 110편은 왜 메시아 계시의 절정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시편에는 다윗의 신앙과 고난과 회개와 예언이 담겨 있다. 다윗을 알려면 사무엘상하만 보아서는 부족하다. 사도 바울을 알려면 사도행전뿐 아니라 바울서신을 함께 읽어야 하듯, 다윗을 알려면 그의 생애를 기록한 역사서뿐 아니라 그가 남긴 시편을 함께 읽어야 한다. 시편 속에는 다윗이 하나님을 어떻게 보았고, 메시아를 어떻게 예언했는지가 들어 있다.&lt;br /&gt; &amp;nbsp; 그중에서도 &lt;strong&gt;시편 110편은 메시아 계시의 절정&lt;/strong&gt;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편은 &lt;strong&gt;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두 가지 직분으로 압축&lt;/strong&gt;한다. &lt;strong&gt;첫째, 그분은 왕&lt;/strong&gt;이시다. &lt;strong&gt;둘째, 그분은 제사장&lt;/strong&gt;이시다. 이 두 직분이 한 분에게 함께 주어진다는 사실이 놀라운 비밀이다.&lt;br /&gt; &amp;nbsp; 먼저, 시편 110편 1절은 왕의 등극을 말한다. 여호와께서 다윗의 주에게 말씀하신다. &amp;ldquo;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amp;rdquo; 이것은 단순히 지상의 왕이 왕좌에 앉는 장면이 아니다. 하늘 보좌의 오른편에 앉으시는 메시아의 승리와 통치를 말한다(시 110:1).&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또한 시편&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 110편 4절은 제사장직을 말한다.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고 변하지 아니하신다. &amp;ldquo;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amp;rdquo; 여기서 메시아는 왕일 뿐 아니라 영원한 제사장으로 계시된다(시 110:4).&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이 본문이 중&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요한 이유는, 구약 율법의 제도 안에서 왕과 제사장은 보통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왕은 주로 유다 지파와 다윗 왕조의 계열에서 나오고, 제사장은 레위 지파와 아론의 계열에서 나온다. 그런데 시편 110편은 메시아가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이 될 것을 말한다. 이것은 레위 제사장 제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더 높은 질서다.&lt;br /&gt; &amp;nbsp; 예수님 &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당시에도 시편 110편은 메시아 논쟁의 중심 본문이었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면 어찌하여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를 주라고 불렀느냐고 물으셨다. 이 질문은 메시아가 단순한 다윗의 후손을 넘어 다윗의 주가 되시는 분임을 드러낸다(마 22:43-45).&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마 22:43-45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시&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편 110편 전체의 흐름도 이 사실을 뚜렷하게 보여 준다. 이 시는 단순한 왕실 축복시가 아니라, 하늘 보좌에서 이루어질 메시아의 등극과 제사장적 사역을 한눈에 보여 주는 예언적 찬송이다. 1절은 메시아께서 오른편 보좌에 앉으시는 왕의 등극을 말한다. 2절과 3절은 시온에서 권능의 규가 나오고,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는 장면을 보여 준다. 4절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직을 말한다. 5절부터 7절은 주께서 대적들을 심판하시고 승리하시는 장면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 시편은 왕권과 제사장직과 전쟁과 승리를 한 흐름 안에 담고 있다.&lt;br /&gt; &amp;nbsp; 그러므로 &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trong&gt;시편 110편&lt;/strong&gt;&lt;/span&gt;은 다윗의 시 한 편으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이 시편은&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 &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lt;strong&gt;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사역을 여는 열쇠&lt;/strong&gt;&lt;/span&gt;다.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지만, 다윗의 주이시다. 그는 왕으로 통치하시지만, 제사장으로 속죄하신다. 그는 원수를 발등상 되게 하시지만, 동시에 자신의 피로 은혜의 보좌를 여신다. 이것이 시편 110편이 메시아 계시의 절정인 이유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36fa1;font-size:16px;&quot;&gt;&lt;strong&gt;4. &amp;ldquo;내 주&amp;rdquo;는 한 분 하나님의 경륜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시편 110편 1절에서 가장 깊은 표현은 &amp;ldquo;내 주(아도나이)&amp;rdquo;다. 다윗은 &amp;ldquo;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셨다&amp;rdquo;고 고백한다. 여기서 여호와는 이스라엘이 섬기는 한 분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다윗은 여호와께서 &amp;ldquo;내 주&amp;rdquo;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을 본다. 이것은 다윗이 장차 오실 메시아의 신비를 미리 본 것이다.&lt;br /&gt; &amp;nbsp; 이 말씀을 하나님이 두 분이라는 뜻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성경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다만 그 한 분 하나님께서 자신의 경륜 가운데 아들로 오실 메시아를 계시하신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아직 성육신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다윗은 성령의 감동 가운데 장차 육신을 입고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미리 본 것이다.&lt;br /&gt; &amp;nbsp; &amp;ldquo;주&amp;rdquo;라는 히브리어 표현은 문맥에 따라 주인, 통치자, 존귀한 분을 가리킨다. 다윗에게 메시아는 단순히 자기 후손이 아니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지만, 본질과 권세로는 다윗의 주가 되신다. 이것이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던지신 질문의 핵심이다. 메시아가 단순한 정치적 후손이라면 다윗이 그를 주라고 부를 수 없다.&lt;br /&gt; &amp;nbsp; 한 분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로 오셨다는 것은 성육신의 신비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예수님은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그분은 단지 다윗의 후손에 머물지 않는다. 그분은 다윗이 주라고 부른 바로 그 메시아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면서 다윗의 주가 되신다.&lt;br /&gt; &amp;nbsp; 성경은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이요 살려 주는 영이라고 말한다.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도 안에 생명으로 역사하시는 분임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성도 안에 오신 성령의 역사는 한 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 주는 영으로 역사하시는 경륜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전 15:45).&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고전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이 관점에서 시편 110편을 읽으면, &amp;ldquo;여호와께서 내 주에게&amp;rdquo;라는 말씀은 삼신론적 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분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원 경륜 안에서 메시아의 왕권을 계시하신 말씀이다. &lt;strong&gt;다윗은 그 비밀을 천 년 전에 보았다&lt;/strong&gt;. 그는 장차 오실 예수님이 자기 후손이지만 자기보다 크신 주님이심을 성령 안에서 알았다.&lt;br /&gt; &amp;nbsp;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이러한 비밀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 예수님은 단순한 선지자나 도덕 교사가 아니다. 그분은 &lt;strong&gt;다윗이 주라고 부른 메시아&lt;/strong&gt;이며, &lt;strong&gt;왕의 보좌에 앉으시는 분&lt;/strong&gt;이며, &lt;strong&gt;자신의 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여시는 영원한 제사장&lt;/strong&gt;이시다. 다윗은 이 주님을 알았기에 그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잃지 않았다.&lt;br /&gt; &amp;nbsp; 또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고백과 사모함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이것은 단지 호적 명령이라는 역사적 사건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과 다윗의 언약과 다윗의 시온 사모함을 메시아의 탄생 안에서 이어 가셨다는 표지다. 예수님은 다윗의 뿌리요 자손으로 오셨고, 다윗이 바라본 주님으로 오셨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36fa1;font-size:16px;&quot;&gt;&lt;strong&gt;5. 오른편 보좌에 앉으신&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 왕은 어떤 분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시편 110편은 &lt;strong&gt;메시아께서 여호와의 오른편에 앉으신다&lt;/strong&gt;고 말한다. 성경에서 오른편은 단순한 위치가 아니다. 그것은 권세와 승리와 통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오른편에 앉는다는 것은 메시아께서 원수를 이기고 왕으로 등극하신다는 뜻이다.&lt;br /&gt; &amp;nbsp; 예수님은 본래부터 영광의 주이시지만,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은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으셨고, 배고픔과 피곤함과 고난을 겪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죄가 없으셨다. 그분은 육체에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셨고,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으며, 온전하게 되셨다. 그래서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히 5:7-9).&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히 5:7-9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lt;strong&gt; 예수님의 왕권은 고난과 순종을 통과한 왕권&lt;/strong&gt;이다. 세상의 왕은 권력을 얻기 위해 싸우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승리하셨다. 세상의 왕은 사람을 밟고 올라가지만, 예수님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낮아지셨다. 그러므로 그분의 오른편 보좌는 세상적 권력의 보좌가 아니라, 순종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얻은 승리의 보좌다.&lt;br /&gt; &amp;nbsp; &lt;strong&gt;이 왕권은 철장 권세와도 연결&lt;/strong&gt;된다. 시편 2편은 하나님의 아들이 열방을 유업으로 받고,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릴 것이라고 말한다. 요한계시록은 이 말씀을 이기는 자에게도 적용한다. 예수께서 아버지께 받은 것처럼, 이기는 자에게도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신다(계 2:26-27).&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계 2:26-2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여기서 &amp;ldquo;다스린다&amp;rdquo;는 헬라어 표현은 단순히 억압적으로 지배한다는 뜻에만 머물지 않는다. &amp;#39;포이마이노&amp;#39;라는 이 말은 &amp;quot;목양하다, 양을 치다, 다스리다&amp;quot;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철장 권세는 무자비한 폭력이 아니다. 악한 세력과 거역하는 질서를 꺾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바르게 다스리는 왕적 목양의 권세다.&lt;br /&gt; &amp;nbsp; 왕이신 예수님은 원수를 발등상 되게 하신다. 사탄과 귀신의 역사를 깨뜨리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정복하신다. 그러나 동시에 그분은 양들을 목양하시는 왕이시다. 주님의 왕권은 심판과 목양을 함께 가진다. 그러므로 성도도 왕 노릇을 사모한다면 먼저 예수님의 왕권이 어떤 것인지 배워야 한다. 그것은 군림의 권세가 아니라, 원수를 꺾고 양을 살리는 권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36fa1;font-size:16px;&quot;&gt;&lt;strong&gt;6.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은 누구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lt;strong&gt;시편 110편이 놀라운 이유는 메시아를 왕으로만 말하지 않고 제사장으로도 말하기 때문&lt;/strong&gt;이다. &amp;ldquo;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amp;rdquo;는 말씀은 구약의 제사장 제도를 넘어서는 계시다. 예수님은 유다 지파에서 나셨다. 율법상 제사장은 레위 지파, 그중에서도 아론의 계열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다면 유다 지파에서 나신 예수께서 어떻게 제사장이 되실 수 있는가? 그 답이 멜기세덱이다.&lt;br /&gt; &amp;nbsp; 멜기세덱은 창세기 14장에 등장한다. 그는 살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돌아올 때,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축복했다. 아브라함은 그에게 십분의 일을 드렸다(창 14:18-20).&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창 14:18-20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은 &amp;ldquo;의의 왕&amp;rdquo;이라는 뜻을 가진다. 또한 그는 살렘 왕이므로 &amp;ldquo;평강의 왕&amp;rdquo;의 의미도 가진다. 히브리서는 이 멜기세덱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설명하는 중요한 예표로 사용한다.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레위 계열의 육체적 혈통에 따른 임시 직분이 아니다. 그것은 죽지 아니하는 생명의 능력을 따라 세워진 영원한 제사장직이다(히 7:1-3, 16-17).&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히 7:1-3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히 7:16-17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제사장의 핵심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는 것이다. 히브리어로 제사장은 코헨이라 하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백성을 위해 중보하는 직무를 가진다. 그런데 예수님은 동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신 분이 아니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고,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단지 제사장 중 하나가 아니라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lt;br /&gt; &amp;nbsp; 다윗이 이 사실을 시편 110편에서 예언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레위 지파 제사장 제도 안에서만 생각하지 않았다. 성령의 감동으로 더 높은 제사장 질서를 보았다. 그것은 멜기세덱의 반차다. &lt;strong&gt;왕이면서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모습은 장차 왕이자 제사장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lt;/strong&gt;였다.&lt;br /&gt; &amp;nbsp; 그런데 사실 레위 계열의 제사장들은 모두 죽음 때문에 계속 바뀌어야 했다. 한 사람이 영원히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제사장직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분은 한 번 제사를 드리셨으나 그 효력은 영원하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신다. 이것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직의 깊은 의미다.&lt;br /&gt; &amp;nbsp; 그러므로 예수님은 왕으로서 원수를 깨뜨리시고, 제사장으로서 죄인을 하나님께로 이끄신다. &lt;strong&gt;왕권만 있으면 심판은 있으나 속죄가 없고, 제사장직만 있으면 중보는 있으나 원수 정복이 보이지 않는다&lt;/strong&gt;. 그러나 예수님 안에는 두 직분이 함께 있다. 그분은 &lt;strong&gt;원수를 굴복시키는 왕&lt;/strong&gt;이시며, 피로 &lt;strong&gt;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시는 제사장&lt;/strong&gt;이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36fa1;font-size:16px;&quot;&gt;&lt;strong&gt;7. 심판의 보좌는 어떻게 은혜의 보좌가 되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구약에서 하나님의 보좌는 두려운 보좌로 나타난다. 시편 97편은 구름과 흑암이 하나님을 둘렀고,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이며, 불이 그 앞에서 나와 대적들을 사른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보좌는 거룩하고 공의로운 심판의 보좌다. 죄인은 그 앞에 설 수 없다. 더러운 자는 그 앞에 가까이 갈 수 없다.&lt;br /&gt; &amp;nbsp; &amp;nbsp;그러나 시편 110편이 보여 주는 메시아는 왕이면서 제사장이다. 이 사실 때문에 보좌의 의미가 달라진다. 왕이신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신다. 그러나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죄인을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여신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성도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히 4:15-16).&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히 4:15-1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lt;strong&gt;심판의 보좌&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가 은혜의 보좌가 되었다&lt;/strong&gt;는 말은 하나님의 공의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lt;strong&gt;하나님의&amp;nbsp;공의가 충족되었다&lt;/strong&gt;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값을 담당하셨고, 부활과 승천 후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기 때문이다. 히브리서는 하늘에 있는 것들이 더 좋은 제물로 정결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리스도께서 참 하늘에 들어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고 증언한다(히 9:23-24).&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히 9:23-24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lt;/strong&gt;&lt;/span&gt;&lt;br /&gt; &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amp;nbsp; 이것이 예수님의 제사장직의 영광이다. 예수님은 사람의 연약함을 아신다. 그분은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시다. 그래서 그분은 죄인에게 긍휼을 베푸실 수 있고, 동시에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흠 없는 대제사장으로 서실 수 있다.&lt;br /&gt; &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amp;nbsp; 또한 &lt;strong&gt;이 보좌의 변화는 회개와 축사의 길과도 연결&lt;/strong&gt;된다. 죄는 악한 영에게 근거를 제공한다. 회개는 그 죄의 근거를 제거하고, 예수님의 피로 정결케 되는 길이다. 왕이신 예수님은 원수를 발등상 되게 하시고,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피로 우리를 씻으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회개해야 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한 영의 역사를 끊어야 한다.&lt;br /&gt; &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amp;nbsp; 이것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다. &lt;strong&gt;하늘에서 더러움이 제거되고, 땅에서도 죄와 귀신의 역사가 끊어져야 한다. 예수님의 왕직은 원수의 세력을 꺾는 권세이고,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죄인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직분&lt;/strong&gt;이다. 따라서 성도는 왕과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믿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그분의 피와 권세 안에서 실제로 정결해져야 한다.&lt;br /&gt; &amp;nbsp; 고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을 아는 자는 방종하지 않는다. 은혜를 안다는 것은 죄를 가볍게 여긴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피가 얼마나 귀한지를 알기에 더 깊이 회개한다. 심판의 보좌 앞에서 죽을 수밖에 없던 자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되었으니, 성도는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lt;br /&gt; &amp;nbsp; 여기서 성도는 구원론의 균형을 붙들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지옥을 피하는 표를 얻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분의 피로 죄에서 해방되고, 그분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길로 부름받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amp;ldquo;한 번 믿었으니 끝났다&amp;rdquo;는 안일한 생각은 은혜의 보좌를 오해한 것이다. 은혜의 보좌는 회개하는 자에게 열린 보좌이며, 순종하는 자를 돕는 보좌이며, 이기는 자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는 보좌다.&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36fa1;font-size:16px;&quot;&gt;&lt;strong&gt;8. 성도는 어떻게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예수님이 왕이자 제사장이시라는 계시는 예수님에 대한 교리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성도가 어떤 신분으로 부름받았는지를 보여 준다. &lt;strong&gt;요한계시록은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해방하시고,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lt;/strong&gt;고 말한다(계 1:5-6).&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계 1:5-6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왕국)와 제사장[들]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베드로도 성도를 왕 같은 제사장(왕의 제사장 체계)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모든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을 섬기며, 어두운 데서 불러내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해야 할 존재로서, 왕의 체계를 갖는다는 뜻이다(벧전 2:9).&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왕의 제사장 체계)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lt;/strong&gt;&lt;/span&gt;&lt;br /&gt; &amp;nbsp; 그러므로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자동으로 왕권을 누린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만 보좌에 함께 앉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믿음은 출발이고, 이김은 과정이며, 보좌는 상급과 책임이다. 성도는 회개와 순종과 충성을 통해 그 신분에 합당하게 준비되어야 한다(계 3:21).&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lt;strong&gt;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 같이 하리라.&lt;/strong&gt;&lt;/span&gt;&lt;br /&gt; &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amp;nbsp; 고로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려면 &lt;strong&gt;먼저 회개해야&lt;/strong&gt; 한다. 죄를 품고는 제사장으로 설 수 없다. 더러운 손과 나뉜 마음으로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다. 회개는 죄의 기록을 지우고, 악한 영의 근거를 제거하며, 성도를 정결한 그릇으로 세우는 길이다.&amp;nbsp;&lt;/span&gt;&lt;strong&gt;둘째, 성도는 순종을 배워야&lt;/strong&gt; 한다. 예수님도 육체에 계실 때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씀을 듣고도 자기 뜻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하늘의 비밀을 안 자는 자기 욕망을 위해 살 수 없다. 왕 같은 제사장은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위해 자신을 드리는 사람이다.&amp;nbsp;&lt;strong&gt;셋째, 성도는 충성해야&lt;/strong&gt; 한다. 세상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니다. 재물과 권력과 명예는 죽음 앞에서 내려놓아야 한다. 참된 간증은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참된 간증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았고, 그분의 피와 보좌와 왕권과 제사장직을 깨달았다는 고백이다.&amp;nbsp;&lt;strong&gt;넷째, 성도는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해야&lt;/strong&gt; 한다. 다윗은 시온을 사모했고,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도성으로 바라보았다. 요한계시록은 어린양이 시온산에 서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선 장면을 보여 준다. 이것은 성도의 최종 목적지가 막연한 위로의 상태가 아니라, 어린양이 계신 하늘 시온과 새 예루살렘 성임을 말해 준다(계 14:1).&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8e44ad;&quot;&gt;계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lt;/span&gt;&lt;/strong&gt;&lt;br /&gt; &amp;nbsp; 다윗은 하늘의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자기 길을 갈 수 있었다. 성도도 마찬가지다. 하늘의 비밀을 모르면 세상의 성공과 실패에 흔들린다. 그러나 예수님이 왕이자 제사장이심을 알고, 자신이 그분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았음을 알면, 오늘의 회개와 순종과 충성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이 땅의 평가는 잠깐이지만, 하늘 보좌 앞에서의 평가는 영원하기 때문이다.&amp;nbsp;그러므로 성도는 다윗처럼 주님을 알기를 사모해야 한다. 주님의 마음에 시선을 맞추고,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야 한다. 왕 같은 제사장은 자기 영광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왕이자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이다.&lt;br /&gt; &amp;nbsp; 이 길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세상적 간증에만 머무르는 것이다. 사업이 잘되고, 지위가 높아지고,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만을 복으로 여긴다면 하늘의 비밀을 놓치게 된다. 성도의 참된 간증은 &amp;ldquo;내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았다&amp;rdquo;는 고백이어야 한다. 그분이 왕이시며 제사장이시고, 나를 피로 씻어 하나님 앞에 세우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은혜다. 그 은혜를 아는 자가 회개하고 순종하며 충성하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된다.&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36fa1;font-size:16px;&quot;&gt;&lt;strong&gt;9. 나오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 우리는 다윗이 시편 110편에서 예수님을 왕과 제사장으로 예언한 의미를 살펴보았다. 다윗은 하늘의 비밀을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인간적 재능만으로 그 비밀을 알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왕직의 사명으로 보내셨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하셨으며,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임하게 하셨기에 메시아의 왕직과 제사장직을 미리 볼 수 있었다.&lt;br /&gt; &amp;nbsp;&lt;strong&gt; 시편 110편은 예수님을 왕으로 증언&lt;/strong&gt;한다. 그분은 여호와의 오른편에 앉으시며, 원수들이 발등상 되기까지 다스리시는 분이다. 그러나 그 왕권은 세상 권력처럼 군림하는 왕권이 아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순종을 통과하신 왕이며, 철장으로 악을 꺾고 포이마이노의 통치로 자기 백성을 목양하시는 왕이시다. &lt;strong&gt;또한&amp;nbsp;시편 110편은 또한 예수님을 제사장으로 증언&lt;/strong&gt;한다. 그분은 레위 계열의 임시 제사장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시다. 그분은 동물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셨고, 심판의 보좌 앞에서 죽을 수밖에 없던 성도들에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길을 열어 주셨다.&lt;br /&gt; &amp;nbsp; 성도는 이 계시 앞에서 자신의 부르심을 다시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의 피로 죄에서 해방하시고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이름을 자랑만 해서는 안 된다. 그 신분에 합당하게 &lt;strong&gt;회개해야 하고, 순종해야 하며, 충성해야&lt;/strong&gt; 한다. 또한 악한 영의 근거를 제거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원수의 역사를 끊어 내며,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해 준비되어야 한다.&lt;br /&gt; &amp;nbsp; 하늘의 비밀을 아는 자는 쉽게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세상의 성공과 실패가 영원한 결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왕과 제사장으로 아는 성도는 오늘의 고난도, 회개의 눈물도, 순종의 수고도 장차 보좌 앞에서 헛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다윗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마음에 시선을 맞추었던 것처럼, 성도도 주님의 뜻과 경륜에 자신의 삶을 맞추어야 한다. 그리하여 다윗처럼 하늘의 비밀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26년 05월 25일(월)&lt;/p&gt; &lt;p&gt;정보배 목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ba372a;&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gt;이 설교는 시편 110편을 중심으로&amp;nbsp;&lt;/span&gt;&lt;strong&gt;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자 제사장&lt;/strong&gt;&lt;span&gt;이라는 영적 비밀을 미리 깨달은 다윗의 영성과 그 예언적 가치를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다윗이 인간적 배움이 아닌&amp;nbsp;&lt;/span&gt;&lt;strong&gt;하나님이 부어주신 특별한 은사와 환상&lt;/strong&gt;&lt;span&gt;을 통해 신약의 구속사를 천년 전부터 내다보았으며, 이러한 지혜는&amp;nbsp;&lt;/span&gt;&lt;strong&gt;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lt;/strong&gt;&lt;span&gt;로서 철저한 회개와 순종을 거친 결과임을 강조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셋째 하늘의 계시를 통해 구약을 해석했듯, 오늘날의 신앙인들도&amp;nbsp;&lt;/span&gt;&lt;strong&gt;하늘의 비밀&lt;/strong&gt;&lt;span&gt;을 깨달아 예수님의 왕직과 제사장직을 본받는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경 속에 감춰진&amp;nbsp;&lt;/span&gt;&lt;strong&gt;메시아의 신분과 사역&lt;/strong&gt;&lt;span&gt;을 설명하며, 성도들이 회개를 통해 영적 눈을 뜨고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잇는&amp;nbsp;&lt;/span&gt;&lt;strong&gt;이기는 자&lt;/strong&gt;&lt;span&gt;가 될 것을 촉구하는 목적을 지닙니다.&lt;/span&gt;&lt;!--EndFragment--&gt;&lt;/p&gt; &lt;p&gt;&lt;span&gt;&amp;nbsp;&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236fa1;font-size:16px;&quot;&gt;&lt;strong&gt;[설교요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다윗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왕직을 주어 보내신 자였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으며,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임한 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일반 지식으로 알 수 없는 하늘의 비밀, 곧 장차 오실 메시아께서 왕이자 제사장이 되실 것을 시편 110편에서 예언하였다. 시편 110편은 메시아께서 여호와의 오른편 보좌에 앉으시는 왕이시며,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심을 증언한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통해 심판의 보좌를 은혜의 보좌로 여셨고, 이기는 자들에게도 왕권과 제사장적 섬김에 참여할 길을 열어 주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윗처럼 하늘의 비밀을 알고, 회개와 순종과 충성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어야 한다.&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기독론 #예수그리스도 #왕 #제사장 #영적비밀 #다윗 #천년전예언 #하늘의계시 #하나님의마음 #철저한회개 #말씀순종 #신약의구속사 #하나님나라 #선취의성경해석 #성도의부르심 #왕같은제사장 #장차영광 #새예루살렘성 #영적전쟁 #멜기세덱의반차&lt;/p&gt; &lt;p&gt;&lt;span&gt;&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인포그래픽_왕이자_제사장인_예수_그리스도.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411e0971ca4c1d833cf1a031eb4ca7e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인포그래픽.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968658b9df45e4ab35dd01b568fa81b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Heavenly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c4b81b4e7229d175abf5c22c9b8bd27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Heavenly_Blueprin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176c97a17842edc2f6b0e4f42341121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Heavenly_Blueprin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5be84b07a3f9399c44697ad1da21577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Heavenly_Blueprin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0b2b31e793f9bd77d44209351c8aba4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Heavenly_Blueprin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7940b069243c4caec968aae8f9d445e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Heavenly_Blueprin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31e4920a93ebf29c62e1da69fcc69ea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Heavenly_Blueprin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f97dc109b6a1d4c0c7deecd48f03c4b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Heavenly_Blueprin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e8ee9de14eeb0de90f609b57432b022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Heavenly_Blueprin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6dd5f0b4b386b50bef6265874dd0920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Heavenly_Blueprin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833ea0fcab7b607fb5b195af09b7d45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Heavenly_Blueprin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d20cfc7b911f545ebbfc0c9e52efe53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Heavenly_Blueprint.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5010496059b34f94bc6f9f423982d92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Heavenly_Blueprint.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42b3061594db333fe8038555ede5ad8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Heavenly_Blueprint.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6e8ce1666a5c45066888c2dd06bf41b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Heavenly_Blueprint.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72a723aead23064c4cb605e5db97661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King_Priest.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09dbac802b8705aae4ac9776730206d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King_Priest.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0986ad89419c460ba33eddf1d6acbac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King_Priest.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fdf95f3a424ed5687835306408f2369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King_Priest.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31fc73b3e309fcf7d4c6b7ba5e11106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King_Priest.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17a12e72db6c206e872ca5ab002cec5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King_Priest.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9bcdccd568a5a9b0f09c0b4e09dd1cc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King_Priest.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980b2a18a302737273d7c1e736eb01e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King_Priest.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bf3c61b29d911cab4c2f56b6ff8bea9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King_Priest.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06b94dc7ae66c3dfd5f776f16449970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King_Priest.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15bb84ca9d3d6c87b73619a0e3df888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102)] The_King_Priest.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051/254/45020237387d29629fa8bb13006519f8.webp&quot; /&gt;&lt;/p&gt; &lt;p&gt;&lt;span&gt;&amp;nbsp;&lt;/span&gt;&lt;!--EndFragment--&gt;&lt;/p&gt;</content>		<category term="기독론"/><category term="예수그리스도"/><category term="왕"/><category term="제사장"/><category term="영적비밀"/><category term="다윗"/><category term="천년전예언"/><category term="하늘의계시"/><category term="하나님의마음"/><category term="철저한회개"/><category term="말씀순종"/><category term="신약의구속사"/><category term="하나님나라"/><category term="선취의성경해석"/><category term="성도의부르심"/><category term="왕같은제사장"/><category term="장차영광"/><category term="새예루살렘성"/><category term="영적전쟁"/><category term="멜기세덱의반차"/>	</entry><entry>
		<title>[기독론(9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5)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2026-05-22(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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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5-22T09:21:28+09:00</published>
		<updated>2026-05-25T21:55:44+09:00</updated>
		<author>
			<name>갈렙</name>
		</author>
		<summary type="text">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9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5)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nXjJaFuelYY 1. 들어가며 사람은 무엇을 사모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이 땅의 성공을 사모하고, 어떤 사람은 사람들의 인정을 사모하며, 어떤 사람은 육신의 평안만을 사모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사람은 하늘의 것을 사모한다. 그는...</summary>
	<content type="html">&lt;p&gt;&lt;!--StartFragment--&gt;&lt;span&gt;아침묵상입니다.&lt;/span&gt;&lt;/p&gt;&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 rgb(186, 55, 42);&quot;&gt;&lt;strong&gt;[기독론(9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5)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lt;p&gt;&lt;span&gt;https://youtu.be/nXjJaFuelYY&lt;/span&gt;&lt;!--EndFragment--&gt;&lt;span&gt;&amp;nbsp;&lt;/span&gt;&lt;/p&gt;&lt;p&gt;&lt;span&gt;&lt;!--StartFragment--&gt;&lt;/span&gt;&lt;/p&gt;&lt;div class=&quot;youtube-div&quot;&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nXjJaFuelYY?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div&gt;&lt;p&gt;&amp;nbsp;&lt;!-- [if !mso]&gt;&lt;style&g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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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사람은 무엇을 사모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어떤 사람은 이 땅의 성공을 사모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어떤 사람은 사람들의 인정을 사모하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어떤 사람은 육신의 평안만을 사모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사람은 하늘의 것을 사모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이 땅을 최종 목적지로 보지 않는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자신이 돌아갈 본향이 있음을 알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 본향을 향해 오늘의 삶을 준비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다윗은 그러한 사람이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단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아니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lt;strong&gt;는 시온산을 사랑했고&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루살렘을 여호와의 집으로 사모했으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께 찬양드리는 일을 왕국의 중심에 두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또한 그는 제사장과 레위인과 찬양대와 문지기를 질서 있게 세웠다&lt;/span&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단순한 행정 조직이 아니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이 세운 질서 안에는 장차 하늘 보좌 앞에서 드러날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4&lt;/span&gt;&lt;span&gt;장로와 새 예루살렘과 이기는 자의 왕권을 예표하는 영적 그림자가 들어 있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특히 이번 말씀은 성도가 천국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교정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천국은 단순히 죽은 뒤에 편안하게 머무는 추상적 상태가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새 예루살렘 성&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생명나무&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생명수의 강&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를 말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성도는 막연한 위로만 붙들 것이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경이 보여 주는 실제적인 하늘 왕국의 질서를 배워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시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10&lt;/span&gt;&lt;span&gt;편은 이 다윗의 왕권을 넘어 더 깊은 왕권을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왕이었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자신보다 더 크신 분을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squo;&lt;/span&gt;&lt;span&gt;내 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squo;&lt;/span&gt;&lt;span&gt;라고 불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분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지만 동시에 다윗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시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10&lt;/span&gt;&lt;span&gt;편은 단지 다윗 왕조의 영광을 말하는 시가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것은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왕권을 성취하시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원수들을 발등상 삼으시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기는 자들에게 보좌의 영광을 나누어 주실 것을 보여 주는 왕권의 계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오늘날 성도에게도 이 말씀은 매우 실제적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는 단순히 천국이라는 막연한 장소를 기대하는 데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성도들의 최종 목표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더 나아가 주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찬양하며 왕 노릇하는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다윗을 배우는 것은 옛 왕의 전기를 읽는 일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어떤 사람에게 왕권의 영광을 맡기시는지를 배우는 일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이번 말씀을 통해 우리는 &lt;strong&gt;다윗이 왜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대표적 예표가 되었는지&lt;/strong&gt;를 보아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그의 시온 사랑&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루살렘 사모&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찬양의 열정&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24&lt;/span&gt;&lt;span&gt;반차의 질서&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한 보좌를 향한 신앙&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그리고 이기는 자의 왕권을 함께 살펴야&lt;/strong&gt;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래서 이 시간에는 &lt;strong&gt;하나님이 세우신 왕 다윗을 통하여 시온과 예루살렘과 찬양과 보좌의 질서가 어떻게 새 예루살렘 성과 이기는 자의 왕권으로 이어지는지를 살펴보고자&lt;/strong&gt;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lt;o:p&gt;&lt;/o:p&gt;&lt;/p&gt;&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lt;o:p&gt;&lt;/o:p&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2. &lt;/span&gt;시편 &lt;span lang=&quot;EN-US&quot;&gt;110&lt;/span&gt;편의 왕은 왜 다윗의 주인가&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시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10&lt;/span&gt;&lt;span&gt;편은 다윗의 시이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 자신만을 말하지 않는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 시는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이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여기서 다윗은 자기보다 더 크신 분을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squo;&lt;/span&gt;&lt;span&gt;내 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squo;&lt;/span&gt;&lt;span&gt;라고 부른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왕이었던 다윗에게도 주가 계셨다는 말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 사실은 구약의 왕권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것임을 보여 주는 결정적인 단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시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10:1).&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lt;span lang=&quot;EN-US&quot;&gt;110:1 &lt;/span&gt;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직접 해석하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만 알고 있을 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께서는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squo;&lt;/span&gt;&lt;span&gt;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squo;&lt;/span&gt;&lt;span&gt;라고 불렀음을 지적하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리스도는 분명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나 그분은 단지 혈통상 후손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분은 다윗보다 먼저 계신 분이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이 경배해야 할 주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마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2:43-45).&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마 &lt;span lang=&quot;EN-US&quot;&gt;22:43-45 &lt;/span&gt;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이 말씀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연결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신약의 예수 하나님이 서로 다른 두 하나님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에서는 보좌에 앉아 만유를 다스리시는 여호와로 나타나셨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신약에서는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보이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다윗의 주는 다윗의 혈통을 따라 오실 메시야이면서&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동시에 다윗을 지으시고 다윗을 세우신 주 하나님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요한계시록은 이 사실을 더 분명히 말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께서는 자신을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다윗의 뿌리와 자손&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이라고 하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뿌리는 근원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자손은 열매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께서는 다윗에게서 나오신 분이면서 동시에 다윗을 있게 하신 분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이 다윗 왕권의 비밀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그리스도를 예표했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리스도는 다윗을 넘어서는 원형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계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2:16).&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계 &lt;span lang=&quot;EN-US&quot;&gt;22:16 &lt;/span&gt;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그러므로 &lt;strong&gt;시편 &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110&lt;/span&gt;&lt;span&gt;편의 왕은 단순한 이스라엘 왕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원수들을 발등상 삼으시는 왕이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시는 왕이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영원한 제사장의 직분까지 가지신 왕&lt;/strong&gt;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이 왕을 바라보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령의 감동 가운데 그를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squo;&lt;/span&gt;&lt;span&gt;내 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squo;&lt;/span&gt;&lt;span&gt;라고 고백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이 다윗이 위대한 이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자기 왕권을 자랑한 사람이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자기보다 크신 왕을 알고 그 왕을 사모한 사람이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더 나아가 시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10&lt;/span&gt;&lt;span&gt;편은 왕권과 제사장 직분이 한 분 안에서 만나는 것을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왕은 다스리는 자이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제사장은 하나님께 나아가 백성을 대신하여 섬기는 자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런데 이 왕은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 되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지 통치자만이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자기 피로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신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시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10:4).&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시 &lt;span lang=&quot;EN-US&quot;&gt;110:4 &lt;/span&gt;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lt;/span&gt;&lt;/strong&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오늘날 성도도 이 질서를 알아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사람에게 맡겨진 직분과 은사와 권세는 모두 주님 아래에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이 자기 왕권을 그리스도의 왕권 아래에 두었듯이&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도 자신의 사명과 은사를 한 분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 아래에 두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럴 때 하나님이 세우시는 왕의 길이 열린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lt;o:p&gt;&lt;/o:p&gt;&lt;/p&gt;&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lt;o:p&gt;&lt;/o:p&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3. &lt;/span&gt;다윗은 왜 시온과 예루살렘을 사모했는가&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다윗의 생애에서 시온은 매우 중요한 장소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여부스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던 시온 산성을 빼앗아 &amp;#39;다윗성&amp;#39;이라 불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단순히 수도를 정한 사건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하여 장차 하나님의 도성&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곧 예루살렘과 시온의 영적 의미를 열어 가신 사건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삼하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5:7).&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삼하 &lt;span lang=&quot;EN-US&quot;&gt;5:7 &lt;/span&gt;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 &lt;/span&gt;&lt;span&gt;시온은 처음부터 화려한 성전이 있던 곳이 아니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그곳을 점령한 뒤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셔 오고자 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를 사모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자기 왕궁보다 하나님의 집을 더 마음에 두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이 다윗의 마음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자기 이름을 높이는 성을 먼저 찾지 않는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하나님의 이름이 머무를 곳을 먼저 사모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다윗은 시편에서 예루살렘을 향한 사랑을 여러 번 고백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사람들이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dquo;&lt;/span&gt;&lt;span&gt;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dquo;&lt;/span&gt;&lt;span&gt;고 말할 때 기뻐했다고 고백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또한 예루살렘에는 지파들이 올라가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거기에 다윗의 집의 보좌가 있다고 노래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trong&gt;다윗에게&amp;nbsp;&lt;/strong&gt;&lt;/span&gt;&lt;span&gt;&lt;strong&gt;예루살렘은 단순한 정치 수도가 아니라 예배와 감사와 보좌가 만나는 장소&lt;/strong&gt;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시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22:1-5).&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lt;span lang=&quot;EN-US&quot;&gt;122:1-5 &lt;/span&gt;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예루살렘아 너는 조밀한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 왜나하면&amp;nbsp;&lt;/span&gt;&lt;span&gt;&lt;strong&gt;다윗에게 예루살렘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자리&lt;/strong&gt;였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래서 그는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하라고 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가 형통하리라고 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여기서 형통은 단순한 세상 성공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신 곳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영적 복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시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22:6).&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또한 다윗은 &lt;strong&gt;성전을 직접 짓지는 못했지만&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전을 향한 마음을 포기하지 않았다&lt;/span&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금과 은과 놋과 철과 나무와 보석을 준비했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의 사명을 넘겨주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사명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완성하지 못한다고 해서 손을 놓지 않는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께서 자기 세대에 맡기신 몫을 알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길을 닦는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마음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lt;span lang=&quot;EN-US&quot;&gt;122:6 &lt;/span&gt;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gt;&amp;nbsp; 이 마음은 오늘날 성도에게도 필요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는 세상 도시의 번영만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성도는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하는 사람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이 지상의 예루살렘을 통해 하나님의 집을 사모했듯이&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신약 성도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아야&lt;/strong&gt;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그 성은 성도의 마지막 목적지이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는 곳&lt;/strong&gt;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그러므로 다윗이 시온과 예루살렘을 사모한 것은 단순한 애국심이나 수도 사랑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것은 하나님이 계신 처소를 향한 영적 갈망이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하나님 없는 왕궁보다 하나님이 계신 집을 더 사모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땅의 왕이었지만 하늘의 성을 바라본 사람이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lt;o:p&gt;&lt;/o:p&gt;&lt;/p&gt;&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lt;o:p&gt;&lt;/o:p&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4. &lt;/span&gt;새 예루살렘은 왜 다윗의 고백과 연결되는가&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lt;strong&gt;다윗이 사랑한 &amp;#39;시온&amp;#39;과 &amp;#39;예루살렘&amp;#39;은 요한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과 하늘 시온의 계시로 확장&lt;/strong&gt;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물론 새 예루살렘 성은 다윗이 만들어 낸 상상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것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경륜 가운데 예비하신 거룩한 도성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 도성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의 시편을 통해 시온과 예루살렘의 언어를 성경 계시 속에 깊이 새겨 두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시편은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복을 주신다고 말한다(시 128:5)&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또한 예루살렘에 계시는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찬송을 받으신다고 말한다(시 135:21)&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하나님께서 시온과 예루살렘을 단순한 지리 명칭으로만 사용하지 않으셨음을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곳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복을 주시며 찬송을 받으시는 거룩한 장소의 이름이 되었다.&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lt;span lang=&quot;EN-US&quot;&gt;128:5 &lt;/span&gt;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lt;span lang=&quot;EN-US&quot;&gt;135:21 &lt;/span&gt;예루살렘에 계시는 여호와는 시온에서 찬송을 받으실지어다 할렐루야&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요한계시록은 &lt;strong&gt;장차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다&lt;/strong&gt;고 말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 성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도시가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이 예비하신 도성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 성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처럼 아름답게 준비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은 단순한 상징이나 마음의 상태만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예비하신 실제적이고 영원한 처소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계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1:2).&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계 &lt;span lang=&quot;EN-US&quot;&gt;21:2 &lt;/span&gt;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또한 요한계시록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4&lt;/span&gt;&lt;span&gt;장은 어린양이 시온산에 서 계시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 장면을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lt;strong&gt;시온의 최종 의미가 그리스도와 이기는 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완성됨&lt;/strong&gt;을 말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이 땅의 시온을 하나님의 산으로 사모했다면&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요한계시록은 하늘의 시온에서 어린양과 함께 서는 자들을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계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4:1).&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계 &lt;span lang=&quot;EN-US&quot;&gt;14:1 &lt;/span&gt;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이 흐름을 보면&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의 고백은 하나님 나라의 타임라인 속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다윗은 시온을 점령했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루살렘을 여호와의 집으로 사모했으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시온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 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왕권을 성취하셨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요한계시록은 새 예루살렘과 하늘 시온을 보여 주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지상의 시온은 하늘 시온의 그림자요&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지상의 예루살렘은 새 예루살렘의 예표&lt;/strong&gt;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성도는 이 연결을 알아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천국을 막연히 좋은 곳으로만 생각하면 새 예루살렘 성의 목표가 흐려진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는 그 성 안에 들어가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 성 안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가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다윗처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마음은 오늘날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어져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이 점에서 다윗의 시온 고백은 하나님의 경륜의 타임라인 안에 놓인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지상의 시온 정복에서 다윗성이 시작되었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의 예루살렘 사모에서 여호와의 집에 대한 갈망이 노래되었으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리스도 안에서 다윗의 왕권이 성취되었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요한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과 하늘 시온이 완전히 드러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흐름으로 일하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lt;o:p&gt;&lt;/o:p&gt;&lt;/p&gt;&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lt;o:p&gt;&lt;/o:p&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5. &lt;/span&gt;다윗의 찬양은 어떻게 하늘 보좌를 예표하는가&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다윗은 찬양의 사람이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왕으로서 전쟁을 치렀고 나라를 다스렸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을 결코 주변적인 일로 여기지 않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lt;strong&gt;레위 사람들 가운데 &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4&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천 명을 세워 여호와를 찬송하게&lt;/strong&gt; 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또한 악기를 준비하고 찬양의 질서를 세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뻐하신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대상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3:5).&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대상 &lt;span lang=&quot;EN-US&quot;&gt;23:5 &lt;/span&gt;사천 명은 문지기요 사천 명은 다윗이 여호와를 찬송하려고 만든 악기로 여호와를 찬송하는 자들이라&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찬양은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는 일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찬양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영적 행위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의 백성이 마음과 목소리와 삶을 드려 하나님을 높일 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 자리는 하늘 보좌의 질서를 이 땅에 미리 가져오는 자리가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시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신다고 고백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시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2:3).&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lt;span lang=&quot;EN-US&quot;&gt;22:3 &lt;/span&gt;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다윗의 찬양 사역은 성전 예배의 기초가 되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제사만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께 올려 드릴 찬송의 소리도 중요하게 여겼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매우 깊은 영적 의미를 가진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제사는 죄 사함과 속죄의 질서를 보여 주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찬양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높이는 마음을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제도만 만드는 자가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을 사랑하는 예배의 분위기를 세우는 자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천국에서도 찬양은 중심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요한계시록은 보좌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는 자들을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특히 십사만 사천은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자들로서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배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보좌 가까이에 있는 자들에게 특별한 찬양의 권세와 영광이 있음을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계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4:3).&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계 &lt;span lang=&quot;EN-US&quot;&gt;14:3 &lt;/span&gt;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trong&gt;&lt;span&gt;다윗이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4&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천 명의 찬양대를 세운 일은 하늘의 찬양 질서를 미리 보여 주는 예표&lt;/strong&gt;로 볼 수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땅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질서를 세웠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요한계시록은 하늘에서 보좌 앞 찬양의 질서를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 둘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 땅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여 찬양한 자는 장차 하늘에서도 보좌 가까이에서 찬양할 소망을 품게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성도는 찬양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찬양은 감정의 흥분만도 아니고 예배 순서의 장식도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찬양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고백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특히 회개한 자의 찬양은 더욱 귀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죄로 더럽혀진 입술이 보혈로 씻겨 하나님을 높일 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 찬양은 보좌 앞에 향기로운 예배가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바로 이것을 알았던 왕이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전쟁에서 이기는 능력만 가진 사람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질서를 세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의 찬양은 그래서 하늘 보좌의 예표가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왕권은 찬양 없는 권력이 아니라 찬양으로 보좌를 높이는 거룩한 왕권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찬양은 영적 전쟁과도 연결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악한 영은 하나님을 높이는 정결한 찬양을 싫어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반대로 성령께서는 회개한 심령의 찬양 가운데 역사하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이 사울 앞에서 수금을 탈 때 악령이 떠났던 사건은 찬양이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영적 분위기를 바꾸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찬양하는 왕은 백성의 영혼을 살리는 왕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lt;o:p&gt;&lt;/o:p&gt;&lt;/p&gt;&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lt;o:p&gt;&lt;/o:p&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6. 24&lt;/span&gt;반차는 왜 &lt;span lang=&quot;EN-US&quot;&gt;24&lt;/span&gt;장로의 예표가 되는가&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 &amp;nbsp;&lt;/span&gt;&lt;span&gt;다윗은 &lt;strong&gt;성전 섬김의 질서를 세울 때 &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24&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반차라는 구조를 사용&lt;/strong&gt;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lt;strong&gt;&amp;#39;제사장들&amp;#39;을 24반차로 나누었고&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 &amp;#39;&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레위 사람들&amp;#39;과 &amp;#39;찬양대&amp;#39;와 &amp;#39;문지기들&amp;#39;도 질서 있게 24반차로&lt;/strong&gt; 세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단순히 많은 사람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위한 행정 방식만이 아니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다윗이 세운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4&lt;/span&gt;&lt;span&gt;반차에는 장차 하늘 보좌 앞에서 나타날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4&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장로의 질서를 미리 보여 주는 예표&lt;/strong&gt;적 의미가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 예를 들어,&amp;nbsp;&lt;/span&gt;&lt;span&gt;제사장 반차의 예는 누가복음에서도 확인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이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아비야 반열은 다윗 시대에 정해진 제사장 반차 가운데 하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다윗이 세운 반차 질서가 신약 시대까지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눅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5).&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눅 &lt;span lang=&quot;EN-US&quot;&gt;1:5 &lt;/span&gt;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역대상은 아비야가 여덟째 반차였다고 기록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사가랴의 제사장 직무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이 세운 질서의 연장선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성전 봉사의 흐름을 질서 있게 세웠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 질서는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 예배의 구조를 형성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대상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4:10).&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대상 &lt;span lang=&quot;EN-US&quot;&gt;24:10 &lt;/span&gt;여덟째는 아비야요 아홉째는 여사야요&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요한계시록은 하늘 보좌 주위에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4&lt;/span&gt;&lt;span&gt;장로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들은 흰 옷을 입고 금관을 쓰고 보좌에 앉아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그들이 단순한 예배 참석자가 아니라 통치와 제사장적 섬김의 영광을 함께 가진 자들임을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계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4:4).&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계 &lt;span lang=&quot;EN-US&quot;&gt;4:4 &lt;/span&gt;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trong&gt;&lt;span&gt;다윗의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4&lt;/span&gt;&lt;span&gt;반차와 요한계시록의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4&lt;/span&gt;&lt;span&gt;장로는 숫자만 같아서 우연히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질서를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4&lt;/span&gt;&lt;span&gt;반차로 세웠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요한계시록은 하늘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보좌 주위에 앉은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4&lt;/span&gt;&lt;span&gt;장로를 보여 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땅의 성전 질서가 하늘 보좌 질서를 반영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하늘 보좌 질서가 땅의 예배 질서 안에 예표로 나타난 것&lt;/strong&gt;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gt;여기서 우리는 &lt;strong&gt;하나님의 경륜&lt;/strong&gt;을 보아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은 아무 질서 없이 일하지 않으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은 예배에도 질서를 두시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섬김에도 질서를 두시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늘의 영광에도 질서를 두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모든 성도가 같은 장소와 같은 영광과 같은 보좌를 받는 것은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충성의 분량&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회개의 깊이&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주님을 사랑한 정도&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맡겨진 사명을 감당한 정도에 따라 하늘의 신분과 상급은 달라진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그러므로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4&lt;/span&gt;&lt;span&gt;반차는 성도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나는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질서 안에 있는가&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나는 보좌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섬기기를 사모하는가&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나는 이 땅에서 맡겨진 작은 직무를 소홀히 하면서 하늘의 큰 영광만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가&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이 세운 질서는 오늘의 성도에게 충성과 섬김의 길을 가르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하나님께서 다윗을 기뻐하신 이유는 그가 자기 왕권만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하나님의 집을 섬길 사람들을 세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제사장과 레위인과 찬양대와 문지기까지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직무를 감당하게 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이 하늘 왕국의 질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참된 왕은 혼자 높아지는 사람이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질서를 세우는 사람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이 질서는 오늘의 교회에도 적용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교회는 은사와 직분을 경쟁의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각 사람에게 맡겨진 자리는 하늘 보좌를 섬기는 예표적 자리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앞에 선 자도 하나님 앞의 종이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뒤에서 문을 지키는 자도 하나님 앞의 종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의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4&lt;/span&gt;&lt;span&gt;반차는 모든 섬김이 하나님의 집 안에서 질서와 목적을 가져야 함을 가르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lt;o:p&gt;&lt;/o:p&gt;&lt;/p&gt;&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lt;o:p&gt;&lt;/o:p&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7. &lt;/span&gt;하늘 보좌는 왜 하나이며 누가 그 보좌에 앉는가&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하늘 보좌를 이해할 때 가장 먼저 붙들어야 할 사실은 &lt;strong&gt;하나님의&amp;nbsp;보좌가 하나라는 것&lt;/strong&gt;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경은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신다고 말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만유를 다스리는 왕권은 본래 한 분 하나님께 속해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은 피조물 가운데 한 분이 아니시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여러 신들 가운데 가장 높은 분도 아니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은 홀로 만유의 왕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시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03:19).&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시 &lt;span lang=&quot;EN-US&quot;&gt;103:19 &lt;/span&gt;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이 보좌의 진리는 한 분 하나님 신앙의 중심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서로 다른 보좌에 앉은 다른 신적 존재들처럼 나누어 보아서는 안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왜냐하면&amp;nbsp;&lt;/span&gt;&lt;span&gt;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는 하나님은 어린양으로 오셨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아버지는 영으로 계시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아들은 보이는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자기를 낮추셨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죽기까지 복종하셨으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십자가에서 승리하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으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리고 놀랍게도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이 왕권의 절정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계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3:21).&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계 &lt;span lang=&quot;EN-US&quot;&gt;3:21 &lt;/span&gt;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이겼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 같이 하리라&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모든 사람이 단지 믿는다는 이름만으로 같은 왕권을 받는 것은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주님은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squo;&lt;/span&gt;&lt;span&gt;이기는 자&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squo;&lt;/span&gt;&lt;span&gt;에게 보좌를 약속하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이기는 자는 죄와 세상과 사탄과 자기 육체를 이기는 자&lt;/strong&gt;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회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주님의 뜻을 위해 자기 생명을 드리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맡겨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자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lt;strong&gt;다윗은 이러한 이기는 자의 예표&lt;/strong&gt;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도 죄를 지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나 그는 죄를 숨기지 않고 회개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하나님의 집을 사모했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의 이름을 높였으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찬양과 예배의 질서를 세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무엇보다 그는 하나님보다 자신의 왕권을 더 크게 여기지 않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자기보다 크신 주를 알고 그 주를 높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하늘 보좌가 하나라는 사실은 성도의 신앙을 바로잡는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는 사람의 권세나 직분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모든 권세는 한 분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동시에 주님께서 이기는 자에게 보좌의 영광을 나누어 주신다는 사실은 성도의 삶에 거룩한 도전을 준다(계 3:21)&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고 뜻을 이루기 위해 헌신한 자를 기억하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들에게는 단지 들어가는 구원만이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스리는 상급과 왕권의 영광이 예비되어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성도는 천국을 단지 안전한 피난처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성도는 보좌 가까이 나아가기를 사모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것만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주님 가까이에서 찬양하고 섬기며 왕 노릇하는 이기는 자의 길을 바라보아야&lt;/strong&gt;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을 배우는 이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 &lt;/span&gt;&lt;span&gt;왕 노릇은 세상적 지배욕이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늘의 왕권은 자기 뜻을 관철하는 권세가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책임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께서 십자가의 순종으로 보좌의 영광에 들어가셨듯이&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도 자기 자아를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자신을 드릴 때 하늘 왕권에 합당한 자로 준비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보좌는 욕망의 자리가 아니라 이김의 결과로 주어지는 자리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lt;o:p&gt;&lt;/o:p&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 font-size: 16px;&quot;&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8. &lt;/span&gt;이기는 자는 어떻게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가&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성도의 최종 목표는 막연한 천국이 아니라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요한계시록은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 안에 들어갈 권세를 받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두루마기를 빠는 것은 회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삶을 가리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계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2:14).&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계 &lt;span lang=&quot;EN-US&quot;&gt;22:14 &lt;/span&gt;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여기서 구원론의 균형이 필요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 것은 은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나 믿었다고 해서 아무렇게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lt;strong&gt;성 안에 들어갈 자는 두루마기를 빨아야&lt;/strong&gt;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곧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죄를 품고 사는 자&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세상과 타협하는 자&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귀신에게 문을 열어 주는 자&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주님의 보혈을 가볍게 여기는 자는 새 예루살렘 성 안의 영광을 가볍게 기대할 수 없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헬라어로 회개를 뜻하는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lsquo;&lt;/span&gt;&lt;span&gt;메타노이아&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rsquo;&lt;/span&gt;&lt;span&gt;는 마음과 생각의 방향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죄를 사랑하던 마음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향하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사탄에게 속한 자리에서 빠져나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는 것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회개는 악한 영의 근거를 제거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를 성령의 전으로 회복시키는 정결의 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또한 &lt;strong&gt;이기는 자는 충성하는 자&lt;/strong&gt;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사랑했기 때문에 자기 생애 동안 성전 건축을 준비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비록 성전은 솔로몬이 지었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마음과 재물과 질서를 다해 그 일을 예비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은 그 마음을 귀히 여기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오늘의 성도도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작은 자리에서 충성하는 삶이 하늘의 큰 영광을 준비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 또한&amp;nbsp;&lt;/span&gt;&lt;span&gt;&lt;strong&gt;이기는 자는 찬양하는 자&lt;/strong&gt;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침묵이 아니라 찬양이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 보좌 가까이 있는 자들은 주님을 찬양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이 땅에서 시온의 하나님을 찬송했듯이&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는 이 땅에서도 보좌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술을 가져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회개 없는 찬양은 얕아지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찬양 없는 회개는 기쁨을 잃기 쉽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회개와 찬양이 함께 갈 때 성도는 새 예루살렘 성의 삶을 미리 맛본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 그래서&amp;nbsp;&lt;/span&gt;&lt;span&gt;&lt;strong&gt;이기는 자는 천국을 침노한&lt;/strong&gt;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예수께서는 천국은 침노를 당하고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말씀하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이것은 폭력적 욕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 나라를 향한 거룩한 열망과 적극적인 믿음을 말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기를 사모하는 자는 적당히 신앙생활하지 않는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회개를 선택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사명을 선택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 나라를 선택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span&gt;마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1:12).&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843fa1;&quot;&gt;&lt;strong&gt;마 &lt;span lang=&quot;EN-US&quot;&gt;11:12 &lt;/span&gt;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오늘의 선택은 장차 받을 영광과 연결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지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의 선택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으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회개를 선택하는 자와 죄를 붙드는 자는 같을 수 없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주님의 집을 사모하는 자와 세상 성공만을 사모하는 자는 같을 수 없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보좌 가까이 찬양하기를 원하는 자와 변두리에 머물러도 만족하는 자는 같을 수 없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이기는 자의 길은 분명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회개로 두루마기를 빨아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맡겨진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처럼 시온과 예루살렘을 사모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한 분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를 바라보아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 길을 가는 성도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주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왕 노릇하는 영광을 얻는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이 길에서 귀신론적 분별도 필요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죄는 악한 영이 역사할 수 있는 통로가 되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상처와 미움과 탐욕과 음란은 영혼을 어둡게 만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나 회개는 그 통로를 닫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보혈은 더러움을 씻으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령은 성도를 다시 빛 가운데 세우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사람은 은혜를 값싼 것으로 여기지 않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날마다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lt;o:p&gt;&lt;/o:p&gt;&lt;/p&gt;&lt;p class=&quot;0&quot;&gt;&lt;!-- [if !supportEmptyParas]--&gt;&amp;nbsp;&lt;!--[endif]--&gt;&lt;o:p&gt;&lt;/o:p&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style=&quot;color: #236fa1;&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9. &lt;/span&gt;나오며&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우리는 시편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110&lt;/span&gt;&lt;span&gt;편의 왕권과 다윗의 시온&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middot;&lt;/span&gt;&lt;span&gt;예루살렘 사모가 어떻게 새 예루살렘과 이기는 자의 보좌로 이어지는지를 살펴보았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은 단순한 옛 왕이 아니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예표였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의 자손이시며 다윗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미리 보여 준 사람이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다윗을 배우는 것은 한 인물을 칭찬하는 일이 아니라&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고 어떤 사람에게 왕권의 영광을 맡기시는지를 배우는 일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성도는 &lt;strong&gt;시편 &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110&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편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아야&lt;/strong&gt;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분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지만 동시에 다윗의 주가 되시는 분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분은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보이는 하나님이시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원수들을 발등상 삼으시는 왕이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는 모든 직분과 은사와 권세를 그분의 왕권 아래에 두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성도는 다윗처럼 &lt;strong&gt;시온과 예루살렘을 사모해야&lt;/strong&gt;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오늘날 그 사모함은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한 갈망으로 이어져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천국을 막연한 평안의 상태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실제적인 도성이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는 그 성 안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 성 안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생명나무와 생명수의 강이 있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lt;/span&gt;&lt;span&gt;성도는 다윗처럼 찬양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찬양은 예배의 장식이 아니라 보좌 앞에 나아가는 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회개한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성도는 하늘 보좌의 질서를 이 땅에서 미리 경험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이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4&lt;/span&gt;&lt;span&gt;천 명의 찬양대를 세우고 악기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했듯이&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는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으로 세워 가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성도는 &lt;strong&gt;다윗이 세운 &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pan lang=&quot;EN-US&quot;&gt;24&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반차의 질서를 통해 하늘의 질서를 배워야&lt;/strong&gt;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나님은 무질서하게 일하지 않으신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제사장과 레위인과 찬양대와 문지기의 섬김에는 질서가 있었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요한계시록의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24&lt;/span&gt;&lt;span&gt;장로도 보좌 앞 질서 속에 나타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성도는 자기에게 맡겨진 작은 직무를 소홀히 하지 말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하늘의 영광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충성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성도는 &lt;strong&gt;하늘 보좌가 하나임을 알아야&lt;/strong&gt;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왕권은 한 분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 한 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런데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성도는 단지 천국에 들어가는 데 만족하지 말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죄와 세상과 사탄과 자기 육체를 이기는 자가 되어 보좌 가까이 나아가는 영광을 사모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성도는 &lt;strong&gt;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기 위해 날마다 두루마기를 빨아야 &lt;/strong&gt;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두루마기를 빠는 것은 회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삶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회개는 악한 영의 근거를 제거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를 성령의 전으로 회복시키는 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믿음은 시작이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회개와 충성은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켜 가는 길이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는 오늘의 선택이 장차 천국의 신분과 상급과 영광에 연결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p class=&quot;0&quot;&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그러므로 이번 말씀은 성도의 신앙 목표를 분명하게 교정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는 구원받았다는 말에 안주해서는 안 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구원받은 자답게 왕이신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성도는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해야 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보좌 가까이에서 찬양할 날을 준비해야 하며&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다윗처럼 하나님의 집을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amp;nbsp;&lt;/span&gt;&lt;span&gt;그리하여 다윗처럼 시온과 예루살렘을 사모하고&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span&gt;회개와 찬양과 충성으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 주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왕 노릇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gt;.&lt;/span&gt;&lt;/p&gt;&lt;div class=&quot;hwp_editor_board_content&quot; data-hjsonver=&quot;1.0&quot; data-jsonlen=&quot;70079&quot; id=&quot;hwpEditorBoardContent&quot;&gt;&lt;!--[data-hwpjson]{&quot;documentPr&quot;: {&quot;di&quot;: &quot;&quot;,&quot;dp&quot;: {&quot;dn&quot;: &quot;test.hwp&quot;,&quot;ta&quot;: 1,&quot;d1&quot;: 5,&quot;d2&quot;: 1,&quot;dv&quot;: 0,&quot;dr&quot;: 1,&quot;do&quot;: 1,&quot;vj&quot;: &quot;1.1&quot;,&quot;an&quot;: &quot;Hancom Office Hangul&quot;,&quot;av&quot;: &quot;10, 0, 0, 13462&quot;,&quot;ao&quot;: &quot;WIN&quot;,&quot;ab&quot;: &quot;32&quot;,&quot;ar&quot;: &quot;LE&quot;,&quot;as&quot;: &quot;Windows_8&quot;},&quot;dis&quot;: false,&quot;ds&quot;: {&quot;ti&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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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날 24장로와 새 예루살렘과 이기는 자의 왕권을 예표하는 영적 그림자가 들어 있었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8C&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8D&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특히 이번 말씀은 성도가 천국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교정한다. 천국은 단순히 죽은 뒤에 편안하게 머무는 추상적 상태가 아니다.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성, 생명나무, 생명수의 강,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를 말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막연한 위로만 붙들 것이 아니라, 성경이 보여 주는 실제적인 하늘 왕국의 질서를 배워야 한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8D&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8E&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시편 110편은 이 다윗의 왕권을 넘어 더 깊은 왕권을 보여 준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자신보다 더 크신 분을 ‘내 주’라고 불렀다. 그분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지만 동시에 다윗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시편 110편은 단지 다윗 왕조의 영광을 말하는 시가 아니다. 그것은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왕권을 성취하시고, 원수들을 발등상 삼으시며, 이기는 자들에게 보좌의 영광을 나누어 주실 것을 보여 주는 왕권의 계시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8E&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8F&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오늘날 성도에게도 이 말씀은 매우 실제적이다. 성도는 단순히 천국이라는 막연한 장소를 기대하는 데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최종 목표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더 나아가 주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찬양하며 왕 노릇하는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을 배우는 것은 옛 왕의 전기를 읽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며, 어떤 사람에게 왕권의 영광을 맡기시는지를 배우는 일이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8F&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90&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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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을 말하지 않는다. 이 시는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이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다윗은 자기보다 더 크신 분을 ‘내 주’라고 부른다. 왕이었던 다윗에게도 주가 계셨다는 말이다. 이 사실은 구약의 왕권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것임을 보여 주는 결정적인 단서다(시 110:1).&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94&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95&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95&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96&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직접 해석하셨다.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만 알고 있을 때, 예수께서는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음을 지적하셨다. 그리스도는 분명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 그러나 그분은 단지 혈통상 후손이 아니다. 그분은 다윗보다 먼저 계신 분이며, 다윗이 경배해야 할 주이시다(마 22:43-45).&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96&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97&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마 22:43-45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97&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98&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이 말씀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연결된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신약의 예수 하나님이 서로 다른 두 하나님이 아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에서는 보좌에 앉아 만유를 다스리시는 여호와로 나타나셨고, 신약에서는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보이셨다. 그러므로 다윗의 주는 다윗의 혈통을 따라 오실 메시야이면서, 동시에 다윗을 지으시고 다윗을 세우신 주 하나님이시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98&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99&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요한계시록은 이 사실을 더 분명히 말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다윗의 뿌리와 자손”이라고 하셨다. 뿌리는 근원이다. 자손은 열매다. 예수께서는 다윗에게서 나오신 분이면서 동시에 다윗을 있게 하신 분이다. 이것이 다윗 왕권의 비밀이다. 다윗은 그리스도를 예표했지만, 그리스도는 다윗을 넘어서는 원형이시다(계 22:16).&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99&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9A&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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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여부스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던 시온 산성을 빼앗아 다윗성이라 불렀다. 이것은 단순히 수도를 정한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하여 장차 하나님의 도성, 곧 예루살렘과 시온의 영적 의미를 열어 가신 사건이다(삼하 5:7).&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A2&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A3&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삼하 5:7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A3&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A4&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시온은 처음부터 화려한 성전이 있던 곳이 아니었다. 다윗은 그곳을 점령한 뒤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셔 오고자 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를 사모했다. 자기 왕궁보다 하나님의 집을 더 마음에 두었다. 이것이 다윗의 마음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자기 이름을 높이는 성을 먼저 찾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이 머무를 곳을 먼저 사모한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A4&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A5&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다윗은 시편에서 예루살렘을 향한 사랑을 여러 번 고백했다. 그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고 말할 때 기뻐했다고 고백한다. 또한 예루살렘에는 지파들이 올라가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고, 거기에 다윗의 집의 보좌가 있다고 노래한다. 예루살렘은 단순한 정치 수도가 아니라 예배와 감사와 보좌가 만나는 장소였다(시 122:1-5).&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A5&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A6&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시 122:1-5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예루살렘아 너는 조밀한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A6&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A7&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다윗에게 예루살렘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자리였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하라고 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가 형통하리라고 했다. 여기서 형통은 단순한 세상 성공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신 곳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영적 복이다(시 122:6).&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A7&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A8&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또한 다윗은 성전을 직접 짓지는 못했지만, 성전을 향한 마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금과 은과 놋과 철과 나무와 보석을 준비했고,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의 사명을 넘겨주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완성하지 못한다고 해서 손을 놓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자기 세대에 맡기신 몫을 알고,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길을 닦는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마음이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A8&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A9&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시 122: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A9&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AA&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이 마음은 오늘날 성도에게도 필요하다. 성도는 세상 도시의 번영만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다. 성도는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하는 사람이다. 다윗이 지상의 예루살렘을 통해 하나님의 집을 사모했듯이, 신약 성도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 성은 성도의 마지막 목적지이며,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는 곳이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AA&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AB&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그러므로 다윗이 시온과 예루살렘을 사모한 것은 단순한 애국심이나 수도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신 처소를 향한 영적 갈망이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하나님 없는 왕궁보다 하나님이 계신 집을 더 사모한다. 다윗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땅의 왕이었지만 하늘의 성을 바라본 사람이었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AB&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AC&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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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되는가?&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AE&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AF&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다윗이 사랑한 시온과 예루살렘은 요한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과 하늘 시온의 계시로 확장된다. 물론 새 예루살렘 성은 다윗이 만들어 낸 상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경륜 가운데 예비하신 거룩한 도성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 도성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고, 다윗의 시편을 통해 시온과 예루살렘의 언어를 성경 계시 속에 깊이 새겨 두셨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AF&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B0&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시편은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복을 주신다고 말한다. 또한 예루살렘에 계시는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찬송을 받으신다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온과 예루살렘을 단순한 지리 명칭으로만 사용하지 않으셨음을 보여 준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복을 주시며 찬송을 받으시는 거룩한 장소의 이름이 되었다(시 128:5, 시 135:21).&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B0&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B1&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시 128: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B1&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B2&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시 135:21 예루살렘에 계시는 여호와는 시온에서 찬송을 받으실지어다 할렐루야.&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B2&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B3&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요한계시록은 장차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말한다. 그 성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도시가 아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도성이다. 그 성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처럼 아름답게 준비된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은 단순한 상징이나 마음의 상태만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예비하신 실제적이고 영원한 처소다(계 21:2).&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B3&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B4&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B4&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B5&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또한 요한계시록 14장은 어린양이 시온산에 서 계시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 장면을 보여 준다. 이것은 시온의 최종 의미가 그리스도와 이기는 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완성됨을 말한다. 다윗이 땅의 시온을 하나님의 산으로 사모했다면, 요한계시록은 하늘의 시온에서 어린양과 함께 서는 자들을 보여 준다(계 14:1).&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B5&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B6&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계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B6&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B7&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이 흐름을 보면, 다윗의 고백은 하나님 나라의 타임라인 속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다윗은 시온을 점령했고, 예루살렘을 여호와의 집으로 사모했으며, 시온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했다. 그 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왕권을 성취하셨고, 요한계시록은 새 예루살렘과 하늘 시온을 보여 주었다. 그러므로 지상의 시온은 하늘 시온의 그림자요, 지상의 예루살렘은 새 예루살렘의 예표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B7&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B8&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성도는 이 연결을 알아야 한다. 천국을 막연히 좋은 곳으로만 생각하면 새 예루살렘 성의 목표가 흐려진다. 성도는 그 성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 성 안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고,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가 있다. 그러므로 다윗처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마음은 오늘날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어져야 한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B8&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B9&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이 점에서 다윗의 시온 고백은 하나님의 경륜의 타임라인 안에 놓인다. 지상의 시온 정복에서 다윗성이 시작되었고, 다윗의 예루살렘 사모에서 여호와의 집에 대한 갈망이 노래되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다윗의 왕권이 성취되었고, 요한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과 하늘 시온이 완전히 드러난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흐름으로 일하신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B9&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BA&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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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C2&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C3&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계 14: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C3&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C4&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다윗이 4천 명의 찬양대를 세운 일은 하늘의 찬양 질서를 미리 보여 주는 예표로 볼 수 있다. 다윗은 땅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질서를 세웠고, 요한계시록은 하늘에서 보좌 앞 찬양의 질서를 보여 준다. 이 둘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여 찬양한 자는 장차 하늘에서도 보좌 가까이에서 찬양할 소망을 품게 된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C4&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C5&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그러므로 성도는 찬양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찬양은 감정의 흥분만도 아니고 예배 순서의 장식도 아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고백이다. 특히 회개한 자의 찬양은 더욱 귀하다. 죄로 더럽혀진 입술이 보혈로 씻겨 하나님을 높일 때, 그 찬양은 보좌 앞에 향기로운 예배가 된다. 다윗은 바로 이것을 알았던 왕이었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C5&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C6&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전쟁에서 이기는 능력만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질서를 세운다. 다윗의 찬양은 그래서 하늘 보좌의 예표가 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왕권은 찬양 없는 권력이 아니라 찬양으로 보좌를 높이는 거룩한 왕권이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C6&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C7&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찬양은 영적 전쟁과도 연결된다. 악한 영은 하나님을 높이는 정결한 찬양을 싫어한다. 반대로 성령께서는 회개한 심령의 찬양 가운데 역사하신다. 다윗이 사울 앞에서 수금을 탈 때 악령이 떠났던 사건은 찬양이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영적 분위기를 바꾸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찬양하는 왕은 백성의 영혼을 살리는 왕이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C7&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C8&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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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서 질서와 목적을 가져야 함을 가르친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D6&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D7&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D7&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D8&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D8&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D9&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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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가까이에서 찬양하고 섬기며 왕 노릇하는 이기는 자의 길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을 배우는 이유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E2&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E3&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왕 노릇은 세상적 지배욕이 아니다. 하늘의 왕권은 자기 뜻을 관철하는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책임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순종으로 보좌의 영광에 들어가셨듯이, 성도도 자기 자아를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자신을 드릴 때 하늘 왕권에 합당한 자로 준비된다. 보좌는 욕망의 자리가 아니라 이김의 결과로 주어지는 자리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E3&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E4&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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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마음과 재물과 질서를 다해 그 일을 예비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귀히 여기셨다. 오늘의 성도도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작은 자리에서 충성하는 삶이 하늘의 큰 영광을 준비한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EA&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EB&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이기는 자는 찬양하는 자다.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침묵이 아니라 찬양이 있다. 하나님 보좌 가까이 있는 자들은 주님을 찬양한다. 다윗이 땅에서 시온의 하나님을 찬송했듯이, 성도는 이 땅에서도 보좌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술을 가져야 한다. 회개 없는 찬양은 얕아지고, 찬양 없는 회개는 기쁨을 잃기 쉽다. 회개와 찬양이 함께 갈 때 성도는 새 예루살렘 성의 삶을 미리 맛본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EB&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EC&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이기는 자는 천국을 침노하는 자다. 예수께서는 천국은 침노를 당하고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폭력적 욕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향한 거룩한 열망과 적극적인 믿음을 말한다.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기를 사모하는 자는 적당히 신앙생활하지 않는다. 그는 회개를 선택하고, 사명을 선택하고, 하나님 나라를 선택한다(마 11:12).&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EC&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ED&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ED&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EE&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오늘의 선택은 장차 받을 영광과 연결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지만, 성도의 선택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으신다. 회개를 선택하는 자와 죄를 붙드는 자는 같을 수 없다. 주님의 집을 사모하는 자와 세상 성공만을 사모하는 자는 같을 수 없다. 보좌 가까이 찬양하기를 원하는 자와 변두리에 머물러도 만족하는 자는 같을 수 없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EE&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EF&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그러므로 이기는 자의 길은 분명하다. 회개로 두루마기를 빨아야 한다. 맡겨진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 다윗처럼 시온과 예루살렘을 사모해야 한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 한 분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 길을 가는 성도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며, 주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왕 노릇하는 영광을 얻는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EF&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0&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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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예표였고, 다윗의 자손이시며 다윗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미리 보여 준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을 배우는 것은 한 인물을 칭찬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고 어떤 사람에게 왕권의 영광을 맡기시는지를 배우는 일이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F4&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5&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성도는 시편 110편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분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지만 동시에 다윗의 주가 되시는 분이다. 그분은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보이는 하나님이시며, 원수들을 발등상 삼으시는 왕이시다. 성도는 모든 직분과 은사와 권세를 그분의 왕권 아래에 두어야 한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F5&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6&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성도는 다윗처럼 시온과 예루살렘을 사모해야 한다. 오늘날 그 사모함은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한 갈망으로 이어져야 한다. 천국을 막연한 평안의 상태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실제적인 도성이며, 성도는 그 성 안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성 안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고, 생명나무와 생명수의 강이 있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F6&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7&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성도는 다윗처럼 찬양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찬양은 예배의 장식이 아니라 보좌 앞에 나아가는 길이다. 회개한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성도는 하늘 보좌의 질서를 이 땅에서 미리 경험한다. 다윗이 4천 명의 찬양대를 세우고 악기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했듯이, 성도는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으로 세워 가야 한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F7&quot;: {&quot;n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8&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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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구원받은 자답게 왕이신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야 한다. 성도는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해야 하고, 보좌 가까이에서 찬양할 날을 준비해야 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집을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quot;}]}]},&quot;01DCE9863B14CA60000001FB&quot;: {&quot;np&quot;: &quot;&quot;,&quot;id&quot;: -2147483648,&quot;pp&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1&quot;,&quot;si&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3&quot;,&quot;bf&quot;: 0,&quot;ru&quot;: [{&quot;cp&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FE&quot;,&quot;ch&quot;: [{&quot;t&quot;: &quot; 그리하여 다윗처럼 시온과 예루살렘을 사모하고, 회개와 찬양과 충성으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 주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왕 노릇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quot;}]}]}},&quot;sl&quot;: { },&quot;cs&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187&quot;: {&quot;cc&quot;: 2,&quot;ci&quot;: 1936024420,&quot;td&quot;: 0,&quot;tv&quot;: false,&quot;sc&quot;: 1134,&quot;ts&quot;: 8000,&quot;ms&quot;: &quot;01DCE9863B14F17000000204&quot;,&quot;os&quot;: &quot;01DCE9863B14CA6000000200&quot;,&quot;gl&quot;: 0,&quot;gc&quot;: 0,&quot;gw&quot;: false,&quot;ns&quot;: 0,&quot;np&quot;: 0,&quot;ni&quot;: 0,&quot;nt&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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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됩니다. 정보배 목사는 성도들이 단순히 구원을 얻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윗처럼&amp;nbsp;&lt;/span&gt;&lt;strong&gt;하나님 중심의 사명과 사모함&lt;/strong&gt;&lt;span&gt;을 품어 천국에서&amp;nbsp;&lt;/span&gt;&lt;strong&gt;왕 노릇 하는 권세&lt;/strong&gt;&lt;span&gt;와 보좌 가까이에서 찬송하는 영광을 누리기를 강력히 권면합니다. 결국 이 설교의 핵심은 철저한&amp;nbsp;&lt;/span&gt;&lt;strong&gt;회개와 충성된 헌신&lt;/strong&gt;&lt;span&gt;을 통해 새 예루살렘 성 안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amp;nbsp;&lt;/span&gt;&lt;strong&gt;종말론적 소망과 사명 의식&lt;/strong&gt;&lt;span&gt;을 고취하는 데 있습니다.&lt;/span&gt;&lt;/p&gt;&lt;p&gt;#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기독론 #하나님이나의왕 #다윗왕 #새예루살렘성 #시온산 #24반차제사장 #천국보좌 #마음과합한자 #구원 #천국에서왕노릇 #왕의권세 #주의보좌가까이 #찬송의영광 #철저한회개 #충성된헌신 #주인공 #종말론적소망 #사명감&lt;/p&gt;&lt;p&gt;&lt;span&gt;&amp;nbsp;&lt;/span&gt;&lt;/p&gt;&lt;p&gt;&lt;img alt=&quot;[기독론(99)] 인포그래픽.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54/253/5d247d48fa76b708aee02b878e39971c.webp&quot; /&gt;&lt;/p&gt;&lt;p&gt;&lt;!--EndFragment--&gt;&lt;/p&gt;&lt;p&gt;&lt;img alt=&quot;[기독론(99)] The_Celestial_Blueprint.pdf_1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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