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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침묵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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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4 Nov 2026 23:01:5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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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탄명성교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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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228)]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7) 에돔의 남은 자를 통해 살펴보는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원대한 뜻의 비밀(02)(암9:11~12)_2026-11-04(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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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 [기독론(228)]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7) 에돔의 남은 자를 통해 살펴보는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원대한 뜻의 비밀(02)(암9:11~12)&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정보배목사&lt;/p&gt; &lt;p&gt;https://youtu.be/sDNy6S-uWBY&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sDNy6S-uWBY?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구약 성경의 예언서인 아모스서를 중심으로&amp;nbsp;&lt;strong&gt;그리스도의 예표와 이방인 구원의 비밀&lt;/strong&gt;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에돔과 아담의 역사적&amp;middot;언어적 연관성을 설명하며,&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기업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던 에서의 태도&lt;/strong&gt;를 통해 영적 상속권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나아가 이방인인 우리에게도 열린 구원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amp;nbsp;&lt;strong&gt;자유의지를 올바르게 사용하여 천국의 상속자&lt;/strong&gt;가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전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소선지서는 왜 &lt;strong&gt;북 이스라엘의 회복&lt;/strong&gt;을 그토록 강조하는가?&lt;br /&gt; 2. 신약은 왜 히브리어 본문과 다른 &lt;strong&gt;70인역&lt;/strong&gt;을 인용했는가?&lt;br /&gt; 3. &lt;strong&gt;이사야 7장 14절의 &amp;#39;처녀&amp;#39;&lt;/strong&gt;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lt;br /&gt; 4. &lt;strong&gt;번역 성경&lt;/strong&gt;과 &lt;strong&gt;원문 성경&lt;/strong&gt;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lt;br /&gt; 5. 아모스 9장 12절은 왜&lt;strong&gt; &amp;#39;에돔의 남은 자&amp;#39;&lt;/strong&gt;라고 말하는가?&lt;br /&gt; 6. 에서는 어떻게 &lt;strong&gt;장자의 기업&lt;/strong&gt;을 잃고 세일 산으로 갔는가?&lt;br /&gt; 7. 형제였던 에돔은 어떻게 &lt;strong&gt;이스라엘의 원수&lt;/strong&gt;가 되었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228)&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7)&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에돔의 남은 자를 통해 살펴보는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원대한 뜻의 비밀(0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암 9:11-1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지금 구약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거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구약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뽑아내고 있는 것이다. 율법서와 역사서를 지나 시편과 잠언과 아가서 같은 시가서를 살폈고, 예언서에 들어와 대선지서를 지나 이제 소선지서를 살펴보고 있다. 그 가운데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豫表, type)는 아홉 가지인데, 첫 번째는 9장 11절의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시는 그리스도이고, 두 번째는 9장 12절의 이방인들까지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다. 우리는 지금 이 두 번째 예표를 살펴보고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9:11-12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12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 말씀에는 풀어야 할 물음이 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은 북 이스라엘이 장차 에돔의 남은 자와 모든 민족을 기업으로 차지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인용한 야고보 장로는 70인역을 따라 사람들 가운데 남아 있는 이들과 모든 이방인들이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행 15:17). 70인역으로 들어가면서 주어가 바뀌고 동사가 바뀐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살펴보니 그것은 점 하나, 획 하나의 차이였고 모음을 어떻게 붙이느냐의 차이였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든 것까지 미리 다 알고 계셔서 단어 하나까지 그렇게 쓰게 하셨던 것인가? 그리고 70인역이 아담, 곧 사람의 남은 자로 읽은 그 자리에 아모스는 왜 굳이 에돔의 남은 자라고 기록했을까? 에돔이 거기에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찾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소선지서가 북 이스라엘을 향해 품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출발하여, 신약이 70인역을 인용한 이유와 번역 성경을 대하는 바른 태도를 살펴보고, 성경 속 에서와 에돔 족속의 역사를 따라가면서 에돔의 남은 자에 담긴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원대한 뜻의 비밀을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소선지서는 왜 북 이스라엘의 회복을 그토록 강조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소선지서의 많은 부분이 남 유다가 아니라 북 이스라엘을 향한 예언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은 많이 충격적이다. 사무엘상하를 읽으면 사울 왕과 다윗 왕의 이야기가 나오고, 열왕기상하로 넘어가면 솔로몬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나라가 두 동강이 났다(B.C.930년경). 남쪽은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였고, 나머지 열 지파는 북쪽으로 가서 여로보암이 나라를 세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북 이스라엘의 신앙은 혼합 신앙(混合信仰, syncretism)이었다.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에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신이라고 하였다(왕상 12:28-29).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았고(왕상 12:31),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절기를 정하여 지켰다(왕상 12:32). 안식일도 지키고 할 것은 다 했다. 그런데 그 송아지를 하나님처럼 섬기라고 하니, 진짜 믿음을 가진 자는 벧엘과 단에 가서 제사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로 갔는가?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이 계시는 장소로 가자 하여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래서 산 위에 있는 여호와의 제단에 올라가 거기서 제사를 드렸는데, 갈멜 산도 그런 제단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바알 종교를 들여온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 제단마저 헐어 버렸다(왕상 19:10).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갈멜 산에서 엘리야 선지자를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과 맞붙게 하셨다. 엘리야는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다시 수축하고(왕상 18:30) 그 위에 물을 붓게 한 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여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드러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 신앙을 지키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그들이 아마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세 절기(신 16:16)가 되면 남쪽 예루살렘에 가서 지키고 오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때는 경계선에 보초를 세워 막아 놓은 때가 아니었다. 우리나라도 해방 뒤에 38선이 그어졌지만 6&amp;middot;25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오가기도 했던 것과 같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북 이스라엘은 결국 하나님 신앙보다 섞인 신앙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는 자가 없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몰랐다. 그래서 그 땅에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 찾아왔다(암 8:11). 하나님께서는 그런 북쪽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남쪽의 선지자를 북쪽으로 파송하기도 하시고, 북쪽에서 선지자를 세우기도 하셔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고 계속 말씀하게 하셨다. 대선지서인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대부분 남 유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호세아부터 시작되는 소선지서에 들어오면 호세아와 아모스가 북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나중에 살려 주시겠다는 회복의 약속을 계속 전한다. 아모스 다음은 오바댜이고 오바댜 다음은 요나인데, 요나도 가드헤벨 출신의 북 이스라엘 선지자이다(왕하 14:25). 이것은 북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 그만큼 컸다는 것이다. 한번 내 백성이면 어찌하든지 내 백성으로 삼겠다는 하나님의 강렬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가 주 예수를 믿으면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 주님께서 영원한 구원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잘못으로 영원한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될 때 주님께서 그것을 얼마나 안타깝게 여기시겠는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져 한 사람 한 사람 성 밖으로 갈 때 주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탈락시키기 위해서 구원하신 것이 아니다. 탈락하는 자는 어쩔 수 없이 탈락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will)를 주셨고, 주님은 우리가 그 자유의지로 스스로 선택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강제로 프로그램을 입력해서 끌고 가시는 것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우리가 매일 자유의지를 어떻게 쓰느냐가 아주 중요하다. 우리는 어찌하든지 주님께 붙어 있기 위하여 조그만 생각과 판단과 행동에서부터, 돈을 쓰거나 은사와 달란트를 쓸 때에도 어디부터 쓸 것인가를 잘 생각해야 한다. 자칫하면 그것을 놓쳐 버리고, 나중에 죽고 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갈며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마 8:12). &amp;quot;그때 내가 순종했어야 했는데, 그때 내가 깨우쳤어야 했는데, 그때 주께 돌아가 회개를 시작했어야 했는데&amp;quot; 하고 안타까워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이야기를 다 통틀어 보면, 소선지서는 하나님께서 북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며 한번 구원하신 자를 영원히 구원받게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강력하게 담고 있다. 필자는 이전에 이것을 한 번도 생각지 못했다가, 이번에 다시 강의하면서 전체를 보니 다가오는 것이 달랐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하시는 분이 아니다. 실패한 사람도 다시 돌아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표현이 바로 에돔의 남은 자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신약은 왜 히브리어 본문과 다른 70인역을 인용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과 신약의 사도들은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 헬라어 구약성경인 70인역(七十人譯, Septuagint)을 사용했다. 그런데 70인역은 한 번에 번역된 것이 아니다. B.C.280년경 모세오경부터 시작하여 이후 약 200년에 걸쳐 하나씩 하나씩 번역되어 합쳐진 것이다. 우리나라에 성경이 처음 들어올 때에도 1882년에 누가복음이 먼저 번역되고, 이어서 다른 복음서들과 서신서가 차례로 번역되어 1887년에 신약 전체가 나온 것과 같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신약성경에 인용된 70인역의 말씀을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번역한 성경과 비추어 보면 다른 곳이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사도들이 잘못 번역된 70인역을 쓰신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필자는 여기에 두 가지 가능성을 열어 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째는 계시의 진전(啓示의 進展, progressive revelation)이다. 원래는 주님께서 히브리어 구약성경대로 말씀하셨지만, 유대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복음이 사마리아와 땅끝까지(행 1:8), 곧 이방인에게까지 증거되도록 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70인역으로 번역할 때 더 드러내어 확대하셨을 가능성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는 오히려 70인역이 원문에 더 가까울 가능성이다. 우리가 지금 개역개정 성경이나 영어 성경으로 번역해서 쓰고 있는 히브리어 구약성경은 70인역이 나온 지 한참 뒤의 것이다. 히브리어로 기록된 원본(原本), 곧 원전은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우리가 번역해서 쓰는 히브리어 본문은 A.D.6세기에서 10세기에 걸쳐 마소라 학자들이 모음 부호를 붙여 전한 마소라 본문(Masoretic Text)이고, 그 완전한 사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A.D.1008년의 레닌그라드 사본이다. 히브리어는 원래 자음만 기록하였고 모음이 없었다. 계속 전수되어 내려오던 본문에 한참 뒤에야 모음을 집어넣은 것이다. 그러니 자음만으로는 에돔(אֱדוֹם)인지 아담(אָדָם)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아모스 9장 12절은 70인역이 원문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오랜 전수 과정에서 무엇이 없어지고 떨어져 나가며 모음이 잘못 붙어서 지금의 마소라 본문이 만들어졌을 수도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야고보 장로는 예루살렘 회의에서 바로 이 70인역의 아모스 말씀을 인용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15:16-17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기업으로 얻는 주체였던 이스라엘이 사라지고, 남은 사람들과 모든 이방인들이 주를 찾는 주체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붙들어야 할 사실이 있다. 필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원전을 영감(靈感, inspiration)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100% 믿는다. 또한 예수님께서 70인역을 인용하신 것을 보면 70인역으로 번역된 말씀도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본다. 그래서 앞으로 최소한 신약성경이 인용하고 있는 70인역의 말씀은 더 살펴보아야 한다. 고로 필자는 이렇게 본다. 원래 마소라 본문의 말씀이 있었으나, 70인역으로 번역하면서 하나님께서 계시를 더 진전시켜 주셨다(아니 70인역 번역자들이 본 히브리어 사본이 원래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기왕 성경을 번역할 때 하나님의 뜻이 더 드러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증거가 바로 예수님께서 70인역을 사용하셨다는 사실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이사야 7장 14절의 &amp;#39;처녀&amp;#39;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70인역이 히브리어 본문과 다르게 번역한 대표적인 말씀 하나를 들어 보겠다. 바로 이사야 7장 14절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 처녀라고 나온다. 처녀는 남자를 가까이하지 아니한 여자를 말한다. 그런데 이 처녀가 히브리어로는 알마(עַלְמָה)라고 되어 있다. 알마는 결혼할 나이가 된 젊은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처녀만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그런데 왜 처녀라고 되어 있는가? 이 말씀이 70인역으로 갔을 때 남자를 가까이하지 아니한 여자, 곧 파르테노스(&amp;pi;&amp;alpha;&amp;rho;&amp;theta;έ&amp;nu;&amp;omicron;&amp;sigmaf;)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태복음 1장 23절은 마태가 이사야 7장 14절을 인용한 것인데, 마태는 히브리어 구약성경이 아니라 70인역을 인용했다. 필자는 그 당시에는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본다. 성경이 지금처럼 많이 있을 때가 아니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의 처녀가 헬라어로 파르테노스, 곧 버진(virgin)이다. 이 단어가 요한계시록 14장에도 나온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여자가 두 종류이다. 하나는 처녀이고, 하나는 바람난 음녀이다. 우리는 처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어린 양의 신부가 된다. 바람이 나서 사탄을 따라가고 귀신을 따라가면 약혼을 했어도 신부로 삼아 주지 않으신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4: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여자라는 말은 헬라어로 귀네(&amp;gamma;&amp;upsilon;&amp;nu;ή)이고, 순결한 자라는 말이 파르테노이(&amp;pi;&amp;alpha;&amp;rho;&amp;theta;έ&amp;nu;&amp;omicron;&amp;iota;), 곧 파르테노스의 복수형이다. 이 순결한 자들이 바로 처녀들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정리하면 이렇다. 이사야서의 히브리어 본문은 이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고 말하지만, 그 여자가 처녀인지 아닌지는 분명히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70인역은 그것을 번역할 때 처녀라고 번역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마태는 그 70인역을 인용하여 처녀라고 기록하였다. 여기에도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그때에는 정확히 몰랐으나 하나님께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영감으로 더 가르쳐 주셨을 가능성과, 원래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는데 그 히브리어 본문을 우리가 찾지 못해서 지금처럼 변형되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것을 계시의 진전으로 본다. 원래 마소라 본문이 있었으나, 70인역으로 번역하면서 하나님께서 동정녀 탄생의 계시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70인역을 사용하셨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번역 성경과 원문 성경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읽는 한글 개역개정 성경도 영감된 성경이라고 할 수 있는가?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기록된 원문은 100%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한글 성경은 번역이므로 얼마든지 다르게 번역될 수 있다. 그러므로 번역 성경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 물론 우리는 이 번역 성경을 중요하게 여긴다. 필자도 지금 킹제임스 버전이나 바른성경이나 표준새번역을 쓰지 않고 개역개정 성경을 쓴다. 그만큼 개역개정 성경이 가장 잘된 번역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번역본에도 얼마나 많이 틀린 곳이 있는지 모른다. 뜻을 왜곡시켜서 아예 특정 교리를 합리화하게 만든 곳까지 있다. 그런데 누가 그 이야기를 하겠는가? 우리나라 140여 년 기독교 역사를 뒤집어야 하는 일이니, 웬만한 담력으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래서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는 이것이 놀라운 복이다. 우리는 원래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역개정 성경을 한 글자도 변함이 없는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번역서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물론 이 번역이 이루어질 때에도 존 로스부터 시작하여 번역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하심이 있었다고 필자는 본다. 우리나라의 번역 가운데 가장 멋진 번역은 성경의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영어 성경도 신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 god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써서 God로 구별할 뿐이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번역했다면 하나님을 신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번역자들은 신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말 하ᄂᆞ님을 성경의 유일하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삼았다. 이런 나라가 세상에 없다. 그래서 예수 안 믿는 사람에게 누구를 믿느냐고 물을 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그 사람을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고 하지 무당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당이 섬기는 신은 귀신이고,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이 믿는 신은 하나님이다. 할렐루야! 이렇게 구별되도록 성경을 번역해 놓았으니 존 로스부터 시작한 번역이 얼마나 훌륭한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필자가 번역 성경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원문에 더 익숙해져야만 지금 우리가 혼란스럽게 여기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 신학자를 따라가지 말고 원문을 따라가면 답이 나온다. 구원론도 답이 나오고 삼위일체도 답이 나온다. 원문을 제대로 알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지금 우리가 헷갈리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까지 일반 성도들이 들을 필요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평신도가 듣지 말아야 할 이야기가 아니다. 다 들어도 은혜가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신학교의 현실은 어떠한가? 서양에서 들어온 자유주의 신학의 역사비평학(歷史批評學, historical criticism)과 비신화화(非神話化, demythologization)는 성경에 나와 있는 모든 기적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그렇게 경험했다고 하는 자들의 고백을 써 놓은 것이며, 그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신학이 되어 버렸고, 그래서 유럽의 교회가 무너져 버렸다. 이것이 정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인지 아닌지 조사해 보자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분해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신학교의 현실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교회에 와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하는 목회자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특별히 말씀의 은혜를 주셔서 그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말씀을 이어받아 원래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르게 전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아모스 9장 12절은 왜 &amp;#39;에돔의 남은 자&amp;#39;라고 말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제 다시 아모스 9장 12절로 돌아가 보자. 이것이 아담의 남은 자인지 에돔의 남은 자인지 사실은 알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역사적으로 에돔의 남은 자를 아담의 남은 자로 번역하게 하심으로써 그 뜻을 더 분명하게 하셨다. 아담의 남은 자란 무엇인가? 아담이 범죄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아담을 죽이지 아니하시고 아담의 후손을 다 죽이지 아니하셔서, 살아남아 있는 자들이 주를 찾아 결국 다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에베소서까지 연결하면, 그렇게 구원받은 자들 가운데 상속자가 될 자도 있고 그들 중에는 왕 노릇 할 자도 있다는 것이다. 할렐루야!&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처음부터 아담이라고 할 것이지 왜 에돔이라고 했을까? 그 핵심이 히브리서 12장에 나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히 12:15-17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15절의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은 원문으로 보면 하나님의 은혜에서 뒤처져 배제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에서 배제되는 자가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16절의 음행하는 자는 르우벤을 지칭한다. 르우벤은 장자였으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다(대상 5:1). 그리고 이어서 장자의 명분(長子의 名分, birthright)을 판 에서가 나온다.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을 자가 원래 누구였는가? 에서였다. 에서는 이삭의 정실 부인인 리브가에게서 난 쌍둥이의 큰아들이었다. 에서는 첩에게서 난 자식도 아니고 다른 데서 데려온 자식도 아니었다. 정실 부인의 장자이자 쌍둥이의 형이었다. 그러니 원래는 에서가 기업을 받는 것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마소라 본문의 원문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amp;quot;이는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를 기업으로 차지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을.&amp;quot; 여기서 기업으로 차지한다는 동사가 야라쉬(יָרַשׁ)인데, 기업으로 상속받는다는 뜻이다. 이 상속의 동사가 에돔의 남은 자와 묶여 있다. 이것은 에돔이 원래 기업을 받을 장자 에서의 후손이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원래 기업을 차지해야 할 에돔이 그 기업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모스는 바로 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원래 상속할 자는 에서였는데 에서가 상속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원래 하나님의 기업을 차지할 야곱의 후손인 북 이스라엘이 그 기업을 차지하지 못한 것을 너무나 안타까워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 우리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기업(基業, inheritance)을 차지할 자로 작정하고 부르셨는데, 죄짓다가 기업을 차지하지 못할 자가 있을까 봐 하나님께서는 너무 안타까우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하늘나라의 기업을 차지할 자가 되어야 한다. 턱걸이로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이 말씀을 듣지 못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 말씀을 들은 사람이 상속자(相續者, heir)가 되지 못한 채 천국에서 땅도 없이 돗자리 펴 놓고 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시간을 써야 할지, 내 은사와 달란트를 어디에 써야 할지, 내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를 모르고 살아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가 이방인이 아니었다면 필자는 이런 말씀을 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이방인은 원래 아무런 자격이 없었다. 아담의 남은 자로 해석한다면, 우리는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지옥에 갈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도 주를 찾도록 하시겠다는 것을 70인역을 통해서 밝히 드러내셨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아, 자신을 가지라!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 있다(마 20:16). 우상에 찌들어 있던 너희라 할지라도 하늘의 상속자가 될 수 있고 왕 노릇 할 자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우리는 원래 아담의 후손이고, 주님께서 우리를 원래 그렇게 디자인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타락해 버렸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그런 자들을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시고 긍휼을 베푸시겠다는 강렬한 암시를 아모스 9장 12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고 계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시 16절을 보면,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은 망령된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를 믿고 이 이야기를 들었으면서도 다시 세상 길로 가는 것이 망령된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17절이 더 중요하다. 에서는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했으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도 이것을 따라가지 않고 다시 뒤로 물러가면(히 10:39),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왜 이 이야기를 듣게 하셨겠는가? 이 이야기를 모든 사람이 다 듣는 것은 아니다. 천국 말씀은 들을 귀 있는 자만 듣는다. 그래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다(계 2: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처럼 우상숭배에 찌든 사람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들어 쓰신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샘플로 보여 주고 계신다. 필자는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었다. 사명대사의 형상을 한 큰 귀신을 우두머리로 하여 2천만이 넘는 귀신을 품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회개시켜 그 영들을 내보내시고 지금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어떠한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 있다 할지라도 절대 절망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때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이 말씀을 듣는다면 그를 들어 쓰시겠다고 하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에서는 어떻게 장자의 기업을 잃고 세일 산으로 갔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에돔은 왜 에돔인가? 원래 장자가 되어야 했던 에서는 왜 하나님께서 살려 두신 남은 자만 조금 남게 되었는가? 에돔이 처음 나오는 창세기 25장으로 가 보자. 리브가가 임신을 했는데 태 속에서 두 아들이 서로 싸웠다(창 25:22). 쌍둥이였다. 태 속에서 싸우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배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크니까 태 속에서 막 싸운 것이다. 왜 싸웠을까? &amp;quot;내가 먼저 나갈래.&amp;quot; &amp;quot;아니야, 내가 먼저 나갈 거야.&amp;quot; 먼저 나가는 자가 형이고, 형만 장자의 기업을 받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속에 이미 영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임신된 지 1개월에서 3개월 사이에 영이 들어오니, 그 아이들에게는 이미 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영은 벌써 다 알았다. 내가 먼저 나가야 한다고.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아들 가운데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이 기업을 받았듯이 장자만이 축복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쌍둥이이니 너나 나나 차이가 없었다. 동시에 임신된 것이다. 그래서 서로 내가 형이 되겠다고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여호와께서 리브가에게 미리 알려 주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창 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나중에 야곱 족속이 에돔 족속보다 강해져서 에돔 족속을 멸망시킨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는 것은 에서가 야곱을 섬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산 기한이 차서 쌍둥이가 태어났다. 이삭이 육십 세였을 때였다(창 25:2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창 25: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서라는 말의 뜻은 사실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붉고 털이 많아서 에서라고 했다는 것을 통해서, 학자들은 털이 많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런데 에서의 별명이 에돔이다. 에서가 야곱에게 그 붉은 것을 먹게 하라고 하였기 때문에 에서의 별명이 에돔이 된 것이다(창 25:30). 에돔이라는 말은 붉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또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셨는데, 아담은 히브리어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아담이라는 말은 어디서 왔는가? 히브리 라비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붉다는 뜻이다. 사람을 땅의 흙으로 지으셨는데(창 2:7) 그 흙이 붉은 흙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하늘을 바라보는 자, 곧 본향을 찾는 자라는 뜻이다. 히브리인이라는 말이 유브라데 강을 건너온 자라는 뜻을 가진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가 &amp;quot;요단강 건너가 만나리&amp;quot;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도 붉다는 의미를 갖고 있고, 에돔은 아예 붉다는 의미이다. 에돔과 아담은 같은 근원의 말이다. 그래서 에돔과 아담이 마소라 본문과 70인역 사이에서 오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 버렸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긴 것이다(창 25:34).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겼어야 했는데, 중요한 것을 하찮게 여긴 것이다. 우리도 이 시대 가운데 무슨 말씀을 들으며 어디에 내 시간을 들여야 할지에는 중요한 것이 있고 덜 중요한 것이 있다. 이 말씀을 안 듣고 매일 부지런히 사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분간하지 못하면 결국 떨어져 나가게 된다. 에서가 장자권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팥죽 한 그릇 먹으려고 자기가 실수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에서는 이것 때문에 동생을 죽이려고 했다. 야곱이 장자권을 가져갔는데, 나중에 성경의 연대로 계산하면 약 77세에 축복권까지 받아 가니 에서가 죽여 버리겠다고 한 것이다(창 27:41). 그래서 어머니 리브가는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겠느냐며 야곱에게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외삼촌 집에 피해 있으라고 하였다(창 27:44-45). 그러나 야곱은 20년 동안 그곳에 있다가 약 97세에 아내들과 자식들을 낳아 많은 식구를 데리고 돌아오게 되었다(창 31:41). 그런데 돌아올 때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왔다(창 32:6). 야곱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때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죽기 살기로 기도하였다. 필자가 보기에 그 기도는 이런 마음이었다. &amp;quot;하나님, 저는 장자권 하나 때문에 이 고생을 겪는데, 제 자식들은 모두 장자의 축복을 받기를 원하고, 제 자식이 하나도 죽지 않기를 원합니다.&amp;quot; 그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드셨다. &amp;quot;그래, 나는 모든 사람이 천국을 차지하고 장자의 축복을 받아 기업의 상속자가 되기를 원한다. 너 혼자만 딱 지정하지 않겠다. 너는 내 마음을 알았구나. 잘했다.&amp;quot;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다. 야곱은 발꿈치를 잡은 자라는 뜻이다. 형이 먼저 나가 버리니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 얼마나 먼저 나가고 싶었으면 발꿈치를 잡고 나왔겠는가? 그런데 그 이름이 이스라엘, 곧 이긴 자로 바뀌었다(창 32:28).&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두 무리의 군대를 보이셨다.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나 &amp;quot;이는 하나님의 군대라&amp;quot;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 곧 두 진영이라 하였다(창 32:1-2). 또 야곱이 에서에게 앞서 보낸 사자들(창 32:3)은 히브리어로 말아킴인데, 이 말은 천사로도 번역되는 말이다. 필자는 하나님께서 그 두 무리의 군대 가운데 한 무리는 야곱을 돕게 하시고, 한 무리는 에서에게 보내셔서 에서를 따라오는 모든 악한 영을 제압하게 하셨다고 본다. 에서는 자기 무리보다 엄청나게 큰 군대를 직접 눈으로 보고 겁에 질렸을 것이고, 누구냐고 묻는 에서에게 그 천사들은 야곱이 보낸 자라고 대답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에 긍휼의 마음을 심어 주셔서, 에서는 야곱을 용서하였다. 에서가 달려와서 야곱을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입 맞추고 서로 울었다(창 33:4). 화해한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아버지 이삭이 죽었을 때 에서와 야곱이 함께 장사하였다(창 35:29). 형제 관계의 우애가 좋았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뒤에 에서는 가나안 땅을 떠나 세일 산으로 갔다.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창 36:6-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창 36:8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장자로 인정하시면서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기업으로 주셨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신 2:5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세일 산은 어디인가? 하나님께서 원래 약속하신 땅은 가나안 땅이다. 사해 위쪽으로 올라가면 모압 평지가 있고, 모압 평지에서 요단강을 건너면 첫 성이 여리고이다. 요단강 서편의 땅을 저 북쪽에서부터, 사해 바닷가 맨 아래쪽의 브엘세바까지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다. 이 약속의 땅이 천국을 상징하는데, 이것을 야곱이 받았다. 그러면 에서는 어디로 갔는가? 사해 아래쪽에 세렛 시내가 있다. 그 세렛 시내 아래쪽 동편의 땅을 에돔이라고 한다. 세렛 시내 아래로 쭉 내려가면 홍해가 보이고, 그 맨 아래에 에시온게벨과 엘랏이 있다. 이 홍해에서 사해까지 이어지는 골짜기를 아라바 계곡이라고 한다. 이 아라바 계곡 오른쪽, 곧 동편의 산지가 세일 산지이고 이것이 세일 산이다. 그리고 세렛 시내 위쪽에서부터 사해 중간쪽의 아르논 강까지를 모압 땅이라고 한다. 아르논 강에서 얍복 강 사이는 한때 여러 족속이 오가기도 했지만 그 오른쪽은 암몬 족속의 땅이다. 이 나라들은 강을 경계로 나뉘어 있다. 그래서 세렛 시내 아래쪽은 에돔, 세렛 시내 위쪽에서 아르논 강까지는 모압, 아르논 강에서 얍복 강 쪽은 암몬으로 지형을 외워 두면 쉽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세일 산은 다른 땅보다 특별히 붉은 산이다. 우리나라 땅도 어떤 곳에 가면 황토처럼 붉은 흙의 땅이 있듯이, 세일 산도 그런 곳이다. 붉은 사람 에돔이 붉은 산에 살게 된 것이다. 또 세일 산은 완전히 바위의 나라이다. 그 바위 틈에 집을 짓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매우 열악했다. 그래도 에돔 족속은 놀랍게 거기서 살아남아 그 산지에 적응하였다. 그래서 어느 나라도 이 나라를 침범하기가 어려웠다. 후대에 페트라로 알려진 그 바위 지역을 다른 나라들이 잘 정복하지 못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형제였던 에돔은 어떻게 이스라엘의 원수가 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화해했던 형제는 어떻게 원수가 되었는가? 이스라엘의 철천지원수는 아말렉이라고 한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했을 때 길에서 만나 피곤할 때에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다(신 25:18).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반드시 쳐서 없애 버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 아말렉이 누구인가? 에서의 손자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창 36:12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서의 장자가 엘리바스인데, 엘리바스가 첩 딤나를 통해서 낳은 자식이 아말렉이다. 이스라엘은 죽을 때까지 아말렉과 원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없애 버리라고 하신 것이다. 이처럼 에서의 후손과 이스라엘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뒤로 시간이 지나면서 두 민족은 진짜 원수가 되었다. 사울 왕 때에 이스라엘은 에돔 족속과 자꾸 전쟁을 하였다(삼상 14:47). 다윗 왕은 주변의 모든 나라와 싸워 평화를 이루기 위해 세워진 왕이었는데, 에돔 족속과도 싸웠다. 그래서 최초로 에돔 족속을 정복한 사람이 다윗 왕이다. 다윗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 죽이고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었다(삼하 8:13-14). 그런데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에는 에돔 사람 하닷이 일어나 솔로몬의 대적이 되었다(왕상 11:14). 정복이 되었는데도 다시 일어나서 원수가 되려고 한 것이다. 그러다가 여호람 때에는 에돔이 유다의 손에서 배반하여 자기 위에 왕을 세웠다(왕하 8:20-22). 다윗 때에 정복당했다가 다시 독립한 것이다. 그리고 아마샤 왕은 에돔을 공격하여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명을 죽이고, 에돔의 수도 격인 보스라와 셀라 가운데 셀라를 취하여 그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다(왕하 14: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스라엘과 에돔 족속이 영영 가까이하지 못할 민족이 된 결정적인 이유는 민수기 20장에 있다. 출애굽 2세대가 가나안 땅으로 가려면 아라바 계곡 동편의 에돔 땅을 지나가야 했다. 그래서 모세는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며 &amp;quot;당신의 형제 이스라엘&amp;quot;이라고 하였다(민 20:14). 하나님께서도 에서의 자손이 너희 동족이니 그들과 다투지 말고 돈으로 양식을 사서 먹고 돈으로 물을 사서 마시라고 하셨다(신 2:4-6). 에돔 사람은 형제이니 미워하지 말라고도 하셨다(신 23:7). 그래서 이스라엘은 밭으로나 포도원으로 지나가지 않고 우물물도 마시지 않고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겠다고 하였고(민 20:17), 물을 마시면 그 값을 내겠다고까지 하였다(민 20:19). 그런데도 에돔 왕이 막아섰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20:18 에돔 왕이 대답하되 너는 우리 가운데로 지나가지 못하리라 내가 칼을 들고 나아가 너를 대적할까 하노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 땅은 한 평도 안 된다는 것이다. 과거에 자기 조상 에서가 야곱 때문에 쫓겨나 광야 옆의 이 척박한 바위 산지에 살게 되었다고 여겨, 너희 때문에 우리가 쫓겨났다는 적대감을 없애지 않고 계속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어쩔 수 없이 에돔 땅의 변방 경계를 돌아서 가게 되었다(민 20:21). 그때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은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우리 조상 때에 두 민족이 한 형제였지만 싸웠으니 우리가 피해 간다고 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뒤에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너가서 나라를 세웠다. 그런데 그 나라가 두 동강이 나서 북 이스라엘이 먼저 멸망하였고(B.C.722년), 남 유다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멸망을 당하였다(B.C.586년). 그런데 남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할 때 에돔 족속이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하다. 그들은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에 &amp;quot;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amp;quot; 하였다(시 137:7). 그때 에돔 족속이 한 이야기가 바로 오바댜의 이야기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옵 1:10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에돔 족속을 완전히 멸망시키셨다. 하나님께서는 오바댜 선지자를 불러서 에돔 족속이 왜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해 놓으셨다. 이것이 오바댜의 이야기이다. 에돔 족속은 계속 반대편에 섰다가 결국 없어졌다. 이 모든 것은 에서가 스스로 장자권을 판 데서 시작되었다. 기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탄과 마귀도 마찬가지이다. 그들도 원래 높은 자리에 있다가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쫓겨났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니 그것이 기분 나빠서 끝까지 대적하다가 결국 없어진다. 에돔 족속의 이야기가 이와 똑같다.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겨 잃어버리고, 그것을 얻은 형제를 끝까지 미워하다가 없어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번 시간에 살펴본 핵심은 무엇인가? 우리가 이러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말씀을 들었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자는 것이다. 결론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는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나중에 에서처럼 슬피 울며 기업을 이어받으려고 해도 회개할 기회마저 얻지 못할 수 있다(히 12: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 말씀을 깨닫고 이런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방인으로 태어났지만,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는 이 축복만큼은 다른 민족에게 넘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신 이 사명을 필자는 다른 민족에게 넘기고 싶지 않다. 우리가 이것을 이루어 보자는 것이 간절한 소망으로 다가왔다. 주님께서는 이 일을 매우 기뻐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에돔 족속은 에서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에서는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 후회했지만 그것을 다시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늘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고, 그중에 왕 노릇 하는 자가 되게 하시겠다는 놀라운 뜻을 품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매일 회개하며 시간과 은사와 달란트와 물질을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데 먼저 써야 한다. 다음 시간에는 오바댜의 이야기를 통해서 오바댜와 아모스를 연결해 볼 것이다. 우리 모두가 끝까지 주님께 붙어 있어서 하늘나라에 갔을 때 하나님께 온전히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하늘의 기업을 물려받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1월 04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아침묵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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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morning_qt/332021#comment</comments>			<pubDate>Wed, 04 Nov 2026 09:02:0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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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227)]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6) 에돔의 남은 자를 통해 살펴보는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원대한 뜻의 비밀(아모스9:11~12)_2026-11-03(화)</title>
			<link>https://dongtanms.kr/morning_qt/331927</link>
				<description>&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227)]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6) 에돔의 남은 자를 통해 살펴보는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원대한 뜻의 비밀(아모스9:11~12)&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zGW2A9hRLU8&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zGW2A9hRLU8?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구약의 예언과 신약의 성취&lt;/strong&gt;를 연결하여&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만세전 구원 계획과 이방인의 구원&lt;/strong&gt;이라는 깊은 영적 비밀을 전달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마소라 사본과 70인역의 차이를 통해 구약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세밀한 섭리를 설명하며,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민족이&amp;nbsp;&lt;strong&gt;주님을 찾고 구원을 얻는 것&lt;/strong&gt;이 하나님의 원래 뜻임을 강조합니다. 또한, 단순한 죄 용서를 넘어&amp;nbsp;&lt;strong&gt;내면의 악한 영을 쫓아내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lt;/strong&gt;이 마지막 때 하나님의 군사로 쓰임 받기 위한 필수 과정임을 역설합니다. 궁극적으로 성도들이 진리의 지식 안에서 깨어&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원대한 계획과 미래의 상속자&lt;/strong&gt;로서 올바른 신앙의 노선을 끝까지 완주할 것을 촉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pan&gt;&lt;/strong&gt;&lt;/p&gt; &lt;p&gt;1. 구약에서 감추어졌던 &lt;strong&gt;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비밀&lt;/strong&gt;은 무엇인가?&lt;br /&gt; 2. &lt;strong&gt;속죄&lt;/strong&gt;만 &lt;strong&gt;구원&lt;/strong&gt;으로 알면 성도의 삶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lt;br /&gt; 3. &lt;strong&gt;마소라 텍스트&lt;/strong&gt;와 &lt;strong&gt;70인역&lt;/strong&gt;은 무엇이며 왜 둘 다 존중해야 하는가?&lt;br /&gt; 4. &lt;strong&gt;아모스 9장 12절&lt;/strong&gt;은 두 본문에서 어떻게 다르게 기록되었는가?&lt;br /&gt; 5. 하나님은 왜 &amp;#39;&lt;strong&gt;기업으로 차지함&lt;/strong&gt;&amp;#39;을 &amp;#39;&lt;strong&gt;주를 찾음&lt;/strong&gt;&amp;#39;으로 바꾸게 하셨는가?&lt;br /&gt; 6. 예루살렘 회의에서 &lt;strong&gt;베드로와 야고보&lt;/strong&gt;는 이방인 구원을 어떻게 증언했는가?&lt;br /&gt; 7. &lt;strong&gt;일으켜진 다윗의 장막&lt;/strong&gt;에 들어가려면 왜 귀신을 쫓아내야 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227)&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6)&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에돔의 남은 자를 통해 살펴보는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원대한 뜻의 비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암 9:11-1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난 시간에 살펴본 아모스 9장 11-12절은 우리가 일평생 마음에 두고 또 두어야 할 말씀이다. 이방인으로 태어난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으며,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귀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용한 사도행전 15:16~18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신 뒤에 에돔의 남은 자와 모든 민족이 주를 찾아 구원을 받게 하겠다고 하셨다. 여기서 에돔의 남은 자란 이방인들 중의 구원받을 자의 예표인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 말씀에는 놀라운 문제가 하나 숨어 있다. 우리가 읽는 개역 성경이 번역한 히브리어 구약성경과, 신약의 사도들이 인용한 헬라어 70인역이 아모스 9장 12절을 서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어도 다르고 동사도 다르며 명사도 다르다. 히브리어 구약성경(맛소라 텍스트)은 이스라엘이 에돔의 남은 자와 모든 민족을 기업으로 차지한다고 말하는데, 헬라어 구약성경인 70인역은 사람들 가운데 남은 자들과 모든 민족이 찾아낸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틀린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필자는 이 차이를 살펴보면서, 많은 충격과 도전과 감동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민족의 구원에 관한 계획을 원래 갖고 계셨으나, 이스라엘이 훗날 순종하지 않을 것까지 예상하시고 그 말씀 안에 이미 그것을 암시해 두셨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마소라 텍스트와 70인역이 아모스 9장 12절을 어떻게 다르게 기록했는지, 하나님께서는 왜 신약의 성도들은 70인역을 사용하게 하셨는지, 그리고 예루살렘 회의에서 야고보 장로가 이 말씀으로 무엇을 증언하고자 했는지를 살펴보면서, 에돔의 남은 자를 통해 드러난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원대한 뜻의 비밀을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구약에서 감추어졌던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1장과 3장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 성도들에게는 아직 가르쳐 주지 않으신 비밀이 있었다. 그것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經綸, administration)의 비밀(祕密, mystery)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토라, 곧 모세오경부터 시작하여 역사서와 시가서와 예언서까지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비밀을 차례대로 살펴보고 있다. 초기에는 그 비밀이 희미하게 조금씩 나타났었다. 그러다가 예언서에 들어와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분열되고 그 나라들이 쇠잔해 갈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말씀을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하게 하셨다. 예를 들어, &amp;quot;내 백성 아니었던 자를 내 백성이라&amp;quot; 하겠다고 하셨으며(호 2:23), &amp;quot;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겠다&amp;quot;고 하셨다(욜 2:28). 그리고 &amp;quot;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amp;quot;이라고 하셨다(욜 2:32), 그리고 &amp;quot;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이방민족)이 있을 것&amp;quot;이라고 하셨다(암 9:1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들을 통하여 우리는 이방인들도 누구든지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이방인이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고, 그 이방인 가운데서 왕 노릇 할 자도 나올 것이라는 내용은 사실 뚜렷하게 계시하지 않으셨다. 암시만 계속했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에 그것을 조명해 주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주님의 재림을 앞두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어마어마한 비밀이 속속히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그 비밀이 어떤 것인지를 바울은 이미 2천 년 전에 기록해 놓았다(엡 3: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엡 3: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나 같은 죄인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에 감격했다. 그래서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속죄(贖罪, atonement)가 곧 구원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구속사를 듣고 감동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속죄는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하기 위한 전 단계이며,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부분이었음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도 교회는 그동안 구속사적 성경 해석, 곧 속죄와 속량의 각도에서만 성경을 가르쳤다. 그러니 아무리 공부해도 풀리지 않고 답답하고 시원하지 않은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품으신 원래의 계획이 있었는데, 그것을 전혀 모른 채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에서 빗나가 범죄한 것으로부터 원상복귀시키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지금 우리 교회는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세우신 계획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천지를 창조하시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계획으로서, 천사들에게는 결코 주지 않으시고 인간에게 주시려는 계획이었다. 그것은 바로 천사가 아니라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엡 1:5), 상속자가 되게 하며(엡 3:6), 왕 노릇하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딤후 2:11-12).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잘못 알고는,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어떤 개인은 구원하기로 예정하시고 어떤 개인은 멸망하기로 하셨다는 이중예정론을 철석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사랑의 하나님을 잔인한 하나님으로 만들어 놓고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 이해가 안 되고 믿고 따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잘못된 말씀을 바로잡고, 이제라도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붙잡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영원히 누릴 상과 지위를 준비해야 할 때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한 번 진리의 길에 들어섰다가 다시 뒤로 물러가 침륜(沈淪)에 빠지면 다시 돌이키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히 10:39). 한 번 진리의 길에 들어왔으면 끝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중간에서 벗어나면 결국 성 밖으로 갈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그러므로 진리의 지식에 이른 사람은 이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시려는 계획에 따라,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에 어떻게 보답할 것인가 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속죄만 구원으로 알면 성도의 삶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전에 성도들은 자신이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했으며 그것에 대해 반복해서 말해왔다. 속죄를 받은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사람이 구원을 받은 것은 속죄로 인한 것만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속죄를 통해 칭의를 받은 성도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그 사람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가게 하고, 그래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야 구원을 받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구원에 있어서 이러한 절차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속죄를 받았으며 예수님에 의한 아버지의 생명 분배로 인하여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우리가 구원을 받고 그 은혜에 보답하며 살려고 노력했으나, 내 속에는 귀신이 드글드글 가득 찬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대부분 답보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지라도 전혀 떠나지 않고 내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귀신은 내 속에서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최소한 그들은 우리 몸속에서 두 가지 일을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첫째, 나를 계속 죄로 유혹하는 것&lt;/span&gt;이다. 예수를 믿고 나면 모든 사람이 하루아침에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뒤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죄를 짓는다. 그것은 우리 속에서 죄의 유혹으로 역사하여 죄를 짓게 만드는 놈들이 있어서다. 그것들이 바로 우리 몸속에 있는 뱀들과 귀신들이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여전히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과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둘째, 저주받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게&lt;/strong&gt;&amp;nbsp;하는 것&lt;/span&gt;이다. 조상으로부터 이미 내려온 영들과 내가 지은 죄로 들어온 영들이 내 안에 가득 들어 있으면 예수님을 믿은 자가 되었을지라도 그것들이 주는 저주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칭의(稱義, justification)가 나의 모든 저주를 없애 준 줄로 착각했다. 속에는 더러운 뱀들과 귀신들이 아주 드글드글한 상태인 것을 잘 몰랐던 것이다. 사실 우리가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주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영들이 우리 몸속에 드글드글하지만 그것을 예수님의 피로 우선 덮어놓으시고 사람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넣어 주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이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귀신은 하나도 떠나지 않았으니 저주스러운 삶이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은 자가 되었어도 계속 병에 시달리고, 계속 가난하게 살며 또한 앞길이 열리지 않는 자녀들의 문제로&amp;nbsp; 인해 걱정하고 근심하며 신앙생활을 해온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것을 포장하여서, 자신은 지금 십자가를 지고 있으며 주님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다고 착각해 왔는가!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고난이 아니다. 참된 고난은 적극적인 고난인 것이지 내 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들 때문에 받는 고난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정한 고난은 복음을 증거하다가 핍박을 받는 것이거나 회개하다가 악한 영의 공격을 받아서 고난을 받는 것이다. 내가 죄를 지어서 들어온 영들에다가 조상에게서 내려온 영들에 의해 내가 고통받는 것은 결코 진정한 고난이 아니다. 베드로전서에서는 이 둘을 분명히 구별한다(벧전 4:15-16).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벧전 2:2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벧전 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복음 전파를 위한 고난은 내가 안 받아도 될 것을 받는 자처하여 받게 되는 고난이다. 회개도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다가 악한 영의 공격을 받을 때에는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고자 나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적극적인 고난이기 때문이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다(딤후 2:20). 그런데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받으려면 이 모든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딤후 2:2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딤후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장차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에 주님과 같은 모습이 되려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신 것처럼 우리도 계속 자신을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우리 성도들은 이렇게 부지런히 회개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 시대에 태어나 이런 말씀을 듣게 된 것을 놀라운 은혜라고 여긴다. 특별히 주님이 오실 때가 다 된 이 시점에서 이러한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은 더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일명 우리는 지금 떨이의 축복을 받고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어떤 물건을 비싸게 팔다가도, 해가 저물어 집에 들어갈 때가 되면, 상인들은 떨이라고 하면서 막 주지 않는가! 우리가 바로 그러한 때에 태어난 것이다. 천국 창고에 가득한 은사들은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에게는 거의 필요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주님이 만들어 쌓아둔 것이다. 그러니 언제 그것을 가져다가 써야 하는가? 지금 이 세상에 살 때에 그것을 써먹어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교회 성도들은 열심히 회개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어떤 분은 2천 번, 3천 번 계속 회개하고 있는데, 그렇게 날마다 회개하다 보면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쏟아부어 주실 때가 올 것이다. 많은 사람이 아직 모르지만 이 단계가 오면 놀라운 은혜가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그런 사람을 찾고 계시며 깨우고 계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귀신 한 쫓아보고 병 한 번 고쳐 보겠다고 교회를 찾아나서는 것은 매우 얕은 물가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러한 삶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날마다 일으키지 않으셨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한 번 베푼 기적이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예수님 자신이 영의 생명의 양식, 하늘의 양식을 공급하는 자라는 것을 알려 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에서도 마찬가지다.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는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였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축사는 이 땅이 이미 이 세상 임금인 마귀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으니, 회개하여 거기에서 빨리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이때 쓰임받는 사람은 장차 어마어마한 자리를 보상으로 차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마소라 텍스트와 70인역은 무엇이며 왜 둘 다 존중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70인역의 아모스 9장 12절에서는 누가 주를 찾아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답하려면 먼저 우리 손에 있는 성경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가진 개역 성경의 구약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번역한 것이다. 이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마소라 텍스트(Masoretic Text, MT)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B.C.280년경부터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을 70인역(七十人譯, Septuagint)이라고 한다. 전승에 따르면 B.C.3세기 중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이스라엘 지파마다 여섯 명씩 72명의 학자가 모여 모세오경을 번역했고, 그 뒤 B.C.2세기 무렵까지 예언서를 비롯한 구약 전체가 헬라어로 번역되었다. 70명 또는 72명이 번역했다고 하여 70인역이라 부르며, 로마 숫자 70을 따서 LXX라고 표기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소라 텍스트(히브리어 구약성경)와 70인역(헬라어 구약성경)이라는 두 가지 구약성경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신약성경을 기록한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은 구약을 인용할 때 대부분 70인역을 따랐다. 예수님께서도 70인역을 따라 인용하셨다(마 15:8-9, 사 29:13).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두 개의 영감된 성경책이 존재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특히 아모스 9장 12절을 보면, 마소라 텍스트와 70인역이 다르다. 주어도 다르고 동사도 다르고 명사도 다르다.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마 5:1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일점은 히브리어에서 가장 작은 글자인 요오드를 가리키고, 일획은 글자와 글자를 구별하는 작은 획을 가리킨다.&amp;nbsp; 그런데 히브리어에서는 요오드가 와우로 바뀌거나 획이 조금만 달라져도 글자가 바뀌고 뜻이 바뀌어 버린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작은 글자와 작은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 말씀이 맞으려면 신약의 성경 기록자들은 마소라 텍스트를 그대로 가져다 썼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70인역을 가져다 썼다. 예수님께서도 그러셨다. 그렇다면 70인역은 맛소라 텍스트와 비교해 보면 일점 일획이라도 틀린 곳이 있으니 가짜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사도들이 구약성경을 인용하실 때에는 70인역을 인용하셨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70인역이 번역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70인역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간섭이 강력하게 임한 번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한글 성경은 어떠한가?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원전은 100% 하나님의 영감(靈感, inspiration)으로 기록된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70인역은 하나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번역된 성경ㅇ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개역 성경은 여러 번역본들을 보고 번역한 한글 번역본이다. 그래므로 지금도 더 새롭게 원문에서 번역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말 성경은 구역, 개역, 개역개정, 표준새번역, 새번역 등으로 계속 번역되어 왔다. 그러나 어느 번역도 완전하지 않다. 자신의 사상적&amp;middot;신학적 입장에 따라 번역하여 왜곡해 놓은 곳도 얼마나 많은가! 그러므로 한글 번역을 영감된 원본처럼 여겨 고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바로 그것을 원어에서 찾아내어 바르게 설명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마소라 텍스트를 정확히 살펴보고, 신약이 인용한 구절이라면 70인역이 그것을 어떻게 번역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신약에서 인용하지 않은 구절은 마소라 텍스트만 보아도 상관없다. 그러나 신약에서 인용한 구약 구절이 마소라 텍스트와 다르게 인용되어 있다면, 사도들과 성경 기록자들이 잘못한 것인가? 그러나 그렇게 볼 수 없다. 70인역을 인용한 신약성경의 말씀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고로 최소한 신약에서 인용된 구약 구절은 70인역으로도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안타깝게도 70인역은 아직 제대로 된 한글 번역본을 찾기 어렵다(어느 개인이 창세기와 출애굽기 및 사무엘상을 번역한 것이 있기는 하다). 성경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으니 70인역의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언어 감각을 많이 주신 사람들이 70인역을 번역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70인역으로 넘어가는 그 중간 단계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섭리하셨는지까지 알게 되면, 하나님의 역사 운행하심을 더 선명하고 확실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만 성경을 공부하라는 법은 없다. 누구든지 듣고자 하는 사람은 배울 수 있다. 이 말씀을 잘 듣고 공부하여 나의 포지션과 위치를 제대로 찾아가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아모스 9장 12절은 두 본문에서 어떻게 다르게 기록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앞 장에서 두 성경의 차이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살폈으니, 이제 아모스 9장 12절을 직접 비교해 보자. 9장 11절은 두 본문이 대동소이하므로 넘어간다. 문제는 12절이다. 개역개정은 마소라 텍스트를 이렇게 번역했다(암 9: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9:12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소라 텍스트를 필자가 직접 직역하면 이렇다. &amp;quot;이는 그들이 에돔의 남은 것과 모든 민족들을 기업으로 차지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런 그들 위에 나의 이름이 불려 있다. 이것들을 행하고 있는 여호와의 선언이다.&amp;quot; 여기서 &amp;quot;그들&amp;quot;은 누구인가?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에게 말씀을 전했으므로 직접적으로는 북이스라엘 백성이다. 그러나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킨다고 했으니 남유다도 함께 포함될 수 있다. 고로 &amp;quot;그들&amp;quot;은 언약 백성인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다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에돔의 남은 자들과 모든 민족 위에 하나님의 이름이 불린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뜻이다. 그들도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아모스 9장 12절을 70인역을 가지고 필자가 직역하면 이렇다. &amp;quot;사람들 가운데 남아 있는 이들과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찾아내도록 하기 위함이다.&amp;quot; 그렇다면 무엇이 바뀌었는가? 우선 세 가지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째, 주어가 바뀌었다. 마소라 텍스트에서는 &amp;quot;그들&amp;quot;, 곧 이스라엘이 주어다. 그런데 70인역에서는 사람들 가운데 남아 있는 이들과 모든 민족들이 주어가 되었다. 차지하는 쪽이 아니라 찾는 쪽이 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동사가 바뀌었다. 마소라 텍스트의 동사는 기업으로 차지한다는 &amp;#39;야라쉬&amp;#39;다. 그런데 70인역은 이것을 찾는다는 &amp;#39;다라쉬&amp;#39;로 번역하였다. 야라쉬(יִירְשׁוּ, 이르슈)와 다라쉬(יִדְרְשׁוּ, 이드르슈)는 요오드(י)와 달렛(ד) 한 글자 차이다. 요오드의 획을 조금 더 내리면 달렛이 되고, 조금 덜 내리면 요오드가 된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일점 일획의 차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명사가 바뀌었다. 마소라 텍스트의 &amp;#39;에돔&amp;#39;이 70인역에서는 &amp;#39;아담&amp;#39;, 곧 사람이 되었다. 에돔(אֱדוֹם)과 아담(אָדָם)은 자음은 같고 모음만 다르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원래 모음 부호가 없었고, A.D. 6~10세기에 마소라 학자들이 나중에 붙였다. 그러므로 같은 글자를 에돔으로 읽어도 되고 아담으로 읽어도 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마소라 텍스트의 말씀이 무효화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일으켜진 다윗의 장막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살폈다(요 1:14). 그래서 장막절, 곧 초막절의 끝날에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고 외치셨다(요 7:37-38). 이것이 바로 구원에 있어서 핵심은 생명 분배에 관한 말씀이다. 속죄는 그 전 단계일 뿐이다. 그런데 마소라 텍스트에서 &amp;quot;모든 민족들&amp;quot;은 히브리어로 &amp;#39;고임&amp;#39;이며 헬라어로는 &amp;#39;에트네&amp;#39;, 곧 이방 민족들 내지는 열방들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필자는 구원받은 자들이 천국에 가서 성 밖에 있는 이러한 민족들을 다스리며 왕 노릇한다고 가르치고 있다(계 22:5). 그것이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오기 때문이다(계 21:24-26). 고로 마소라 텍스트가 말한 기업으로 차지한다는 말씀은 무효화된 말씀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회개하고 충성하는 자에게 열려 있는 약속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하나님은 왜 &amp;#39;기업으로 차지함&amp;#39;을 &amp;#39;주를 찾음&amp;#39;으로 바꾸게 하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앞 장에서 과연 70인역으로 번역되면서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보았다면, 이 장에서는 왜 바뀌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모스 시대까지, 할례를 받은 언약 백성인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에게 너희가 회개하고 나의 뜻을 따라오면 너희 가운데서 기업을 상속할 자와 왕 노릇 할 자가 엄청나게 많이 생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바로 아모스 9장 12절의 그 약속이다. 기업으로 차지할 땅도 있고 왕 노릇할 사람도 있으니 그런 자가 되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하나님의 기대는 계속 허물어졌다. 왜 그랬을까?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회개하라고 해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고 세상의 기쁨과 명예와 권력만 추구했다. 특히 북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고 송아지 우상을 섬겼다. 하나님을 섬긴다면서 우상을 섞어서 섬겼다. 지금도 섞인 복음이 가득하지 않은가! 그러지 말라고 하셨으나 그들은 순종하지 않았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타락하여 B.C.72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하고 흐지부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끝까지 언약을 붙들고 율법을 지킨 것은 남유다 백성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모스가 예언한 때는 B.C.760년경이다. 아모스는 웃시야 때 지진이 있기 2년 전에 말씀을 받았는데(암 1:1), 필자가 역사 기록으로 찾아보니 그 지진은 B.C.758년경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그로부터 500년도 더 지난 뒤에 마소라 텍스트를 헬라어로 번역할 때, 하나님께서 이 구절을 다르게 번역하게 하셨다(아니 원래 히브리어 성경을 그렇게 번역한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로서는 그렇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신약에서 야고보 장로가 이 구절을 인용할 때에 70인역을 인용했기 때문이다(행 15:16-18). 그러므로 70인역의 아모스 9장 12절의 말씀을 우리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이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먼저는 하나님의 백성인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나중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히브리어 성경이 이미 기록해 놓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하나님께는 원래의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동시에 장차 될 일도 다 알고 계셨다. 그래서 처음부터 요드와 달렛 한 획 차이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amp;#39;야라쉬&amp;#39;를 쓰게 하시고, 모음만 바꾸면 &amp;#39;아담&amp;#39;으로 읽힐 수 있는 &amp;#39;에돔&amp;#39;을 쓰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암시해 놓으셨는데 우리가 찾아내지 못했을 뿐이다. 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역사는 상상을 초월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70인역이 번역될 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기대를 거의 거두어 가고 계실 때였다. 그래서 히브리어 구약성경에 나오는 &amp;#39;차지하기 위함이다&amp;#39;(야라쉬)라는 동사는 70인역에서 &amp;quot;찾아내도록 하기 위함이다&amp;quot;(다라쉬)라고 번역했다. 그럼, 왜 하필 &amp;#39;찾다&amp;#39;라는 단어인가? 아모스가 당시 북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외친 말씀이 바로 &amp;#39;찾으라&amp;#39;(다라쉬)라는 말씀이었기 때문이다(암 5: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5: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amp;quot;찾으라&amp;quot;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amp;#39;다라쉬&amp;#39;다. 원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아 회개하고 충성했으면 그들이 &amp;#39;야라쉬&amp;#39;가 되었을 것이다.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고 왕 노릇을 하는 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선지자가 와서 그토록 책망하며 회개하라고 외쳐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찾는 자를 바꾸어 버리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금도 똑같다. 회개하라고 하는데 회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은 바꾸어 버리신다. 그러나 오늘날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자들은 혈통적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 자손의 축복은 만고불변이며 그것은 반드시 천년왕국 시대에서라도 실현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마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촛대가 이미 옮겨진 채 있기 때문이다(계 2:5).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에게 주어진 이 놀라운 은혜를 제대로 수용하지 않으면 그 은혜는 다른 곳으로 또 흘러갈 것이다. 이 교회에서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에 서 있는지 알아야 한다. 산더미처럼 굴러들어올 수 있는 복의 기회를 발로 차 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예루살렘 회의에서 베드로와 야고보는 이방인 구원을 어떻게 증언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바뀐 70인역의 말씀은 신약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그것은 A.D.49년경 예루살렘 회의에서였다. 예루살렘에서 최초로 회의가 열리게 된 이유는 이방인들이 할례도 받지 않고 안식일도 지키지 않고 있는데 주께 돌아와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를 의논하기 위해서였다(행 15:1, 5). 그때 유대인 신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amp;quot;우리가 이것을 지키려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너희도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려면 이것을 다 해야 한다.&amp;quo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이 문제의 핵심을 베드로가 이미 경험한 채 있었다. 이전에 베드로가 이달리야 부대의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행 10:1). 고넬료의 집안은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방인을 전도하는 일에 쉽게 뛰어들지 않으려 하자, 하나님께서는 그가 기도할 때 보자기 환상을 보여 주시면서, 더러운 짐승(이방인들을 지칭함)을 잡아먹으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셨다(행 10:16). 이제는 이방인도 거룩해지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무슨 뜻이 있는가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왔고, 그는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할례도 받지 않고 안식일도 지키지 않은 그들에게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이 임했고, 그들은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였다(행 10:44-46). 그러자 베드로와 함께 간 유대인들은 깜짝 놀랐다. 우리는 할례를 받고 안식일을 지키고, 더러운 이방인과 어울리지 않고 음식도 가려 먹고 절기도 지키고 십일조도 하면서 겨우 살아남아 이 은혜를 받았는데, 저들은 무엇이냐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것에 대해 훗날 3차 전도여행 중에 로마서 4장에서 이러한 내용을 기록해 놓았다(A.D.57년).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할례받은 족속으로 세우시기 전에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는 것이다(창 15:6). 아브라함은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았고(창 16:16) 99세에 할례를 받았다(창 17:24). 그때 아브라함이 육체를 따라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자,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가 육체를 따라가지 않겠다는 회개의 표시로 포피를 베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때에 할례가 주어진다. 그러므로 믿음이 먼저였고 할례는 나중이었다(롬 4:1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4: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믿음의 후손들 가운데는 할례받은 자도 있고 할례받지 않은 자도 있다. 고로 믿음을 가지면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누구든지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고로 신약의 가장 중요한 두 사도인 베드로와 바울이 이렇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증언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요엘의 예언의 성취다(욜 2:32, 행 2:21). 사도들은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amp;quot;아,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유대인만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었구나!&amp;quot; 그러자 베드로가 그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행 15:9-1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15:9-11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방인들도 역시 예수의 피에 의하여 자기의 마음이 깨끗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주께 돌아온 이방인들에게 더 이상 율법의 멍에, 곧 의식법의 멍에를 목에 두지 말자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도 이것을 깨닫고 있는가? 아니, 깨달아야 한다.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여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아서 홍수가 나면 다 떠내려가고 말 것이다(마 7:26). 특히 말씀을 들었는데도 깨닫지 못한 자가 있다면 빨리 그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해야 한다. 그것은 불신앙의 영, 의심의 영들을 빨리 제거해야 한다. 이러한 불신앙의 영의 대표적인 죄는 제사의 죄인데, 이러한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얼마나 고집이 센지, 옛날에 믿던 것을 계속 믿으려고 고집을 피운다. 특히 대한민국의 종손 집안의 남자들이 그렇다. 그래서 종교개혁(宗敎改革, Reformation)의 신앙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까지 칭의만을 우려먹을 것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자 야고보 장로가 일어났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 가운데 처음으로 이름이 나오는 동생이다(마 13:55). 그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다락방에서 기도하면서 성령을 받았고(행 1:14), 사도들이 흩어져 복음을 전할 때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로서 그 교회를 대표했다(갈 1:19, 2:9). 그가 쓴 책이 신약성경 야고보서이며,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했다(약 2:26). 그런데도 오늘날 우리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면 지금도 그런 자를 행위 구원론자라고 매도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자기가 종교개혁의 후손임을 자임한다. 그렇다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부정하겠다는 뜻인가(마 7:21)? 그런데 완전한 히브리파 유대인이었던 야고보는 이 회의에서 아모스 9장 11-12절을 마소라 텍스트가 아닌 70인역으로 인용하면서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 정리했다(행 15:16-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15:16-17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여기서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핵심사상이 나온다. 70인역에는 &amp;quot;찾아내도록&amp;quot;이라는 단어의 목적어가 없다. 무엇을 찾는지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야고보는 70인역의 암 9:12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70인역(표준본)에 없는 말인 &amp;#39;주를&amp;#39;을 집어넣었다. 사람들 가운데 남아 있는 이들과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찾아내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인용한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변화다. 야고보는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태어난 동생이다. 바로 위의 형을 형, 형 하고 부르던 그가 이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 땅에서는 그가 형인 줄 알고 함께 살았는데, 그분은 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오신 분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도마도 예수님을 랍비로만 생각했다가 예수님의 부활 후에 &amp;quot;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amp;quot;라고 고백했다(요 20:28). 그러므로 오늘날도 역시 성령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예수님을 주라고 할 수 없다(고전 12: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요엘 2장 32절도 마찬가지다. 마소라 텍스트는 &amp;quot;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amp;quot;라고 기록했다. 그런데 70인역은 여호와를 &amp;#39;퀴리오스&amp;#39;, 곧 &amp;#39;주&amp;#39;로 옮겼고, 신약은 그 &amp;#39;주&amp;#39;를 예수님께 적용했다(행 2:21).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오심이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고로 하나님께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켜 세우신 이유는 예수님을 이 땅에 장막으로 보내셔서, 사람들 가운데 남아 있는 모든 자와 모든 이방 민족이 그 장막 안으로 들어와 주를 찾고 구원받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 남은 자들 안에는 유대인의 남은 자도, 이방인의 남은 자도 다 포함될 수 있다. 그리고 누구든지 주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따라가면, 마소라 텍스트가 말한 아모스 9장 12절의 약속처럼 기업을 차지하는 자도 거기서 나올 수 있다. 이 복은 원래 유대인들과 북이스라엘이 누렸어야 했는데, 그들이 누리지 못해 우리 이방인들에게까지 왔다. 그런데 우리가 그 복을 놓쳐 버린다면, 천국에 간다 해도 한없는 후회가 있을 것이다(마 8:12).&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일으켜진 다윗의 장막에 들어가려면 왜 귀신을 쫓아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지막으로, 이제는 다윗의 장막의 확장인 교회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에 상속자가 되고 왕으로 통치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살펴보자. 요한복음 1장 14절에 의하면, 일으켜진 다윗의 장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또한 예수께서도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다(요 2:19, 21). 예수님이라는 장막 안에 하나님이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장막은 이제 교회로 확장되었다(고전 3:16). 교회를 향한 만세 전의 계획은 하나님의 양자(養子, adoption)가 되고(엡 1:5), 상속자(相續者, heir)가 되는 것이며, 아브라함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엡 3:6). 할례를 받지 않아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할례법이나 안식일법은 모두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려주는 의식법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진짜 유대인은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인 것이다(롬 2:28-29). 그러므로 다시 세워진 장막의 확장인 교회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충성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마찬가지로 그들로 하여금 &amp;#39;야라쉬&amp;#39;(기업으로 차지하다)를 하게 해 주실 것이다. 기업을 상속으로 물려받게 해 주시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는 사실 아모스 9장 11-12절을 성취하시려고 이 땅에 장막을 치셨다. 그래서 영원한 하늘 장막인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셨다. 천국은 하나님의 장막이며 하나님의 품이다. 우리는 그 장막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오늘날 사람이 그 장막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무엇인가? 그것은 곧 뱀들과 귀신들이다. 비록 구약 시대에는 귀신 이야기가 별로 나오지 않지만,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이 땅에는 이미 귀신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자마자 금식하시고 마귀와 맞붙어 그가 제시한 세 번의 시험을 모두 이기셨다(마 4:1-11). 그리고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 원리에 따라, 예수께서는 사탄 마귀의 부하들인 귀신을 내쫓으셨다. 그때에 예수께서는 귀신으로 말미암아 들어온 저주도 없애 주셨고, 병도 고쳐 주셨으며, 장애인도 고쳐 주시고, 죽은 자도 살려 주셨다. 예수님께서 이제 이 세상에 장막을 치시고 그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셨을 때, 그 장막은 곧 천국이었고 그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이었다(마 12:2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으로 바꾸어 말한다면,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하늘의 장막에 들어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쳐 주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다. 그리고 사도들에게도 그러한 일을 하게 하셨다. 그리고 이것을 이어받은 초대교회도 그러한 일을 했다. 그런데 그 후로 약 2천 년간 교회는 이러한 교회의 주된 사역으로 삼지 않았다. 천국의 장막에 들어가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 우리는 다시 귀신을 이야기하고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가? 그것은 이제 천국에 들어갈 때가 다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 마지막 때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왜 하필 대한민국에서 귀신을 쫓아내면서 천국을 준비시키고 있는가? 그건 이 세상에 대한민국처럼 무당 문화가 센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작두를 타는 무당들이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 중에는 아예 귀신을 받기 위해 신내림을 하고 귀신을 신처럼 의지하며 따라가는 자가 많다. 전 세계에서 귀신과 가장 많이 접촉하여 그것을 이용해 사람을 속이고 괴롭혀 온 민족은 대한민국이 제일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대한민국에서 시작하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 민족에게 귀신 이야기를 하면 다른 어떤 민족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다 알아듣는다. 금요기도회 때에 필자가 전한 말씀을 한 100편쯤 들어 보라. &amp;quot;아, 그랬었구나&amp;quot; 하고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때에 무속 문화를 가장 많이 받아들인 우리 민족을 찾아내셔서, 우리를 통해 귀신을 쫓아내게 하시고 그렇게 해서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고 하늘나라에서 왕 노릇 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지난 번에 레위기를 강해하면서 레위기 1-7장은 제사를 통한 속죄이고, 11장부터 마지막 27장까지는 정결과 성화(聖化, sanctification)라는 것을 찾아내어 전했다. 그리고 정결과 성화 가운데 단체적인 성화가 23장의 절기였음을 말씀드렸다. 그런데 그 절기 가운데 재림의 절기인 하반기 절기의 첫 번째 절기, 곧 나팔절(레 23:24)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나팔절은 재림하시는 예수께서 싸우시는 전쟁, 곧 아마겟돈 전쟁을 할 자들을 뽑는 소집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번에 공부하면서 이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우리 안의 귀신을 다 쫓아내려는 것은 단순히 저주를 끝내기 위함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은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군대를 만들어 아마겟돈 전쟁에 동참하게 하기 위함이다(민 1:3). 민수기를 읽어 보라. 2차례 인구조사를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민 1:3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싸움에 나갈 만한 군대를 만드셔서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하게 하시고, 마지막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게 하시려고 지금 우리민족을 먼저 부르신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깨닫고 너무나 가슴이 벅차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다. 이 영광스러운 미래를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 지금 준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이 말씀을 듣고 있는 바로 여러분일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모스는 B.C.760년경에 다윗의 무너진 장막이 일으켜지면 이스라엘이 에돔의 남은 자와 모든 민족을 기업으로 차지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500년도 더 지난 뒤에 70인역을 통하여 그 말씀을 사람들 가운데 남은 자들과 모든 민족이 주를 찾는 말씀으로 해석하게 하셨다. 그래서 에돔이 아담이 되고, 차지함이 찾음이 되었다. 그리고 야고보 장로는 예루살렘 회의에서 &amp;#39;주를&amp;#39;을 넣어 이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이방인들이 할례 없이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원대한 뜻이었음을 더 확실하게 선포했다.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는 말씀 안에, 하나님께서는 원래의 계획과 장차 될 일을 함께 담아 두셨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그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에게서 끝날 일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아 &amp;#39;야라쉬&amp;#39;를 놓쳤듯이, 우리 민족도 우리에게 주어진 회개와 천국복음 전파 기회를 놓치면 촛대는 또다시 옮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의 길에 한 번 들어섰다면 우리는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기왕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야 한다. 그러므로 속죄의 은혜에 감격하는 것으로 머물지 말고, 회개를 통해 내 속의 귀신을 쫓아내어 죄의 유혹과 저주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기는 전쟁을 하기 위해 우리는 기본적으로 회개를 시작해야 한다. 혹 회개하다가 악한 영의 공격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두려워하지 말고 더욱더 회개에 힘써야 한다. 그래서 자신을 더 깨끗하게 하여 귀히 쓰는 그릇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끝까지 가는 자는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될 것이고 그들 중에는 왕 노릇을 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간에서 벗어나 떨어져 나간 자는 성 밖에 남겨져 이를 갈게 될지도 모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 귀신을 쫓아내고 전투방언 기도를 하게 함으로써 영적 전사로 우리를 만들고 계신다. 이 시대 가운데 하늘에서 상속자가 될 사람과 왕 노릇 할 사람을 세우시려고 지금 먼저 우리 대한민국을 들어 쓰시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붙들어야 한다. 그 기회를 놓쳐 촛대가 옮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더욱더 이 일을 끝까지 힘써야 한다. 그래서 마침내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1월 03일(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아모스 9장과 그리스도의 약속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7e41e447db2c1430465701b3f348423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다윗의_장막과_감추어진_비밀.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1ac00c72f493d5a135c807d3f1bc322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다윗의_장막과_감추어진_비밀.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badc584c77b84509cebdcab5a505b1f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다윗의_장막과_감추어진_비밀.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6ff73c3f49603fd183b93e3f9130217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다윗의_장막과_감추어진_비밀.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c42374ea26a2729e07ead6c749599e3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다윗의_장막과_감추어진_비밀.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ac58fce71f4743afb110953c4878450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다윗의_장막과_감추어진_비밀.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8e0900a27ed8d45f195515f42e4f7d1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다윗의_장막과_감추어진_비밀.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9a613a6f7a11ec9e651d6346a3b1639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다윗의_장막과_감추어진_비밀.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dc0f7997b355a7b28e11b4975fac37e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다윗의_장막과_감추어진_비밀.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d6ed1d1dece6b8ac22b6871c9aa8dd3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다윗의_장막과_감추어진_비밀.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95646b2f8ad5ff0d7a6ce1fbbf455fe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다윗의_장막과_감추어진_비밀.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e0d4ece78dc50728e6260455f3deb59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다윗의_장막과_감추어진_비밀.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b131b98c220bfc10a76c28ac3d66dddb.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아모스_9_12_예언과_성도의_사명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ded76e09a86565481015bf3780adbcf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아모스_9장_12절_섭리적_차이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6632cd5b28f0ee0c384cc16d05da6fba.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이방인을_향한_하나님의_비밀_설계도.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34d3a696979d98a1f4da87c790b4d7a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이방인을_향한_하나님의_비밀_설계도.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21c7e48602f3201068a1bcf11461502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이방인을_향한_하나님의_비밀_설계도.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019b05a5884586cc82a4f1ac3ba97d8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이방인을_향한_하나님의_비밀_설계도.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f24ede6331d3f235cb060c6bbdb3c30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이방인을_향한_하나님의_비밀_설계도.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bad0f3ed9811185bb7f06c808de9cba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이방인을_향한_하나님의_비밀_설계도.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2bb49c81061ce4417001e5ad6e8d9db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이방인을_향한_하나님의_비밀_설계도.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945831ddbab10291f32323ee89a1efa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이방인을_향한_하나님의_비밀_설계도.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6f6026fb32311c84e8bf6da98b51ef8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이방인을_향한_하나님의_비밀_설계도.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d3ff5103ea5c434bb3dbf99618b9f9d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이방인을_향한_하나님의_비밀_설계도.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4cebbc422d4f14c544c6f3f123f568a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7)] 이방인을_향한_하나님의_비밀_설계도.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927/331/7268f13f16eda7f34d0b26dc25e835d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아침묵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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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morning_qt/331927#comment</comments>			<pubDate>Tue, 03 Nov 2026 09:57:45 +0900</pubDate>
		</item><item>
			<title>[바른 구원(03)]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면 다시 기록될 수 있는가?(히6:4~8)_2026-11-02(화)</title>
			<link>https://dongtanms.kr/morning_qt/331922</link>
				<description>&lt;p&gt;2026-11-02(화) 온라인새벽기도회&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바른 구원(03)]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면 다시 기록될 수 있는가?(히브리서6:4~8)&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si5s_QUIUcE&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si5s_QUIUcE?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참된 구원과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는지&lt;/strong&gt;에 대해 영적 실체를 바탕으로 설명합니다. 설교자 정보배 목사는 &lt;strong&gt;오직 믿음만 강조하는 교리가 회개를 소홀히 하게 만들었다&lt;/strong&gt;고 지적하며, 진정한 구원은 &lt;strong&gt;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와 변화를 맺는 것&lt;/strong&gt;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은 쉽게 지워지지 않지만 &lt;strong&gt;교회를 대적하거나 하나님의 질서를 심각하게 파괴하는 등 현저한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이름이 흐려지거나 지워져 회복될 수 없다&lt;/strong&gt;고 경고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메시지의 목적은 성도들이 &lt;strong&gt;매일의 회개와 예수 보혈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lt;/strong&gt;, 생명책에 이름이 선명하게 기록된 상태로 천국에 이를 수 있도록 &lt;strong&gt;돌이키고 깨어 있게 하는 것&lt;/strong&gt;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lt;strong&gt;&amp;#39;오직 믿음&amp;#39;&lt;/strong&gt;이라는 말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무엇을 놓치게 했는가?&lt;br /&gt; 2. &lt;strong&gt;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참된 구원&lt;/strong&gt;이란 무엇인가?&lt;br /&gt; 3. 내 속에 &lt;strong&gt;하나님의 생명이 있는지&lt;/strong&gt;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lt;br /&gt; 4. &lt;strong&gt;축사 사역자&lt;/strong&gt;와 &lt;strong&gt;말씀 사역자&lt;/strong&gt;를 살펴보니 무엇이 드러났는가?&lt;br /&gt; 5. 손에서&lt;strong&gt; 예수의 피&lt;/strong&gt;가 나오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보혈을 구하고 사용해야 하는가?&lt;br /&gt; 6. &lt;strong&gt;생명책의 이름&lt;/strong&gt;은 쉽게 지워지는가, 그리고 &lt;strong&gt;성령 모독죄&lt;/strong&gt;란 무엇인가?&lt;br /&gt; 7. 지워진 이름은 &lt;strong&gt;왜 다시 기록될 수 없으며&lt;/strong&gt; 어떤 경우에 지워지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바른 구원론(03)&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면 다시 기록될 수 있는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히 6:4-8)&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제목이 좀 무섭기는 하다. 생명책(生命冊, Book of Life)에서 자신의 이름이 지워지면 다시 기록될 수 있을까? 이런 말씀을 증언할 수 있게 된 것은 필자에게 그동안 계시의 많은 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선 시간에 우리는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지는 이유와 그 시점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는 이것이다. 한 번 생명책에서 지워진 이름은 회개하면 다시 기록될 수 있는가, 아니면 영영 기록되지 않게 되는 것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질문은 두렵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많은 교회가 &amp;#39;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amp;#39;, &amp;#39;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amp;#39;라고 가르치면서 이 질문 자체를 하지 않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본 자라도 타락하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한다(히 6:4-6). 그렇다면 누가, 어떤 죄를 지었을 때 회개가 되지 않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의 이름이 지워지는가? 그리고 한 번 지워진 이름은 다시 기록될 수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명책에서 지워지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종교개혁자들이 말했던 &amp;#39;오직 믿음&amp;#39;이라는 구호가 무엇을 놓치게 했는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참된 구원이란 어떤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 영적 세계에서 실제로 확인한 사역자들의 모습과 예수의 피의 의미, 그리고 히브리서를 통하여 생명책에서 지워진 이름이 다시 기록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amp;#39;오직 믿음&amp;#39;이라는 말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무엇을 놓치게 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예전에는 말씀 연구에만 치중했다. 말씀을 깊이 전한다는 사람들의 가르침을 두루 살펴보고, 필자 나름대로 &amp;#39;이것은 이런 것이다&amp;#39;라는 체계를 세워나갔다. 그러던 어 날 회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amp;#39;아, 종교개혁(宗敎改革, Reformation)자들이 잘 했지만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인 회개를 그만 놓치고 말았구나&amp;#39;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성경을 다시 한 번 보기 시작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성경에는 종교개혁자들이 그토록 주장했던 &amp;#39;오직 믿음&amp;#39;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이 성경에 없었다. 믿음으로 칭의를 얻는다는 말은 있다. 그러나 &amp;#39;오직 믿음&amp;#39;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없다. 이 말은 마르틴 루터가 만들었던 말이다. 루터는 1522년에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로마서 3장 28절에 &amp;#39;오직&amp;#39;(allein)이라는 말을 넣었다. 헬라어 신약성경에서 &amp;#39;믿음&amp;#39;과 &amp;#39;오직&amp;#39;(모논)이 함께 나오는 곳은 단 한 곳뿐인데, 그곳은 오히려 &amp;#39;믿음으로만은 아니다&amp;#39;라고 문장 뿐이다(약 2:2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약 2: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개역개정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도 &amp;quot;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amp;quot;라는 말이 나오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면 &amp;#39;~이 아니면&amp;#39;(에안 메)이라는 문구이다. 물론 루터가 그렇게 번역한 것은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만큼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함으로써 구원의 또 다른 요소인 회개(悔改, repentance)를 배제시키고 말았다. 그래서 &amp;#39;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amp;#39;가 되었고, 좀 더 나아가서는 &amp;#39;하나님이 예정했으면 구원을 받는다&amp;#39;까지 옮겨 가 버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니 구원받은 사람은 자신의 구원을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나의 구원이 안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말았으니, 그 사람 속에 있는 성령께서는 얼마나 탄식하시겠는가? &amp;quot;너희가 그러한 교리를 따르고 있으나, 너희 양심에 비추어 보아라. 너는 지금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amp;quot; 하실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듣기 편한 말을 원한다. 목회자 자신도 &amp;quot;당신은 교회에 나왔으니까 구원받습니다&amp;quot;라고 말을 해 주어야지, &amp;quot;당신처럼 신앙생활하면 천국에 못 갑니다&amp;quot;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듣기 좋은 말로서 &amp;quot;교회만 출석하면 구원을 받습니다.&amp;quot; &amp;quot;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amp;quot; 라고 잘못&amp;nbsp; 전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에 출석한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며,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는 것은 맞지만 예수님을 믿은 후에 지은 죄들로 인하여 구원을 못받는 사람도 발생하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성경적인 정확한 가르침을 무엇인가? 믿기만 해서 구원을 받는가? 믿음이 없이 구원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믿기만 한다고 해서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참된 구원이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다시 질문해 보자. 정말 참으로 구원받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요한계시록까지 가서 우리가 정리할 수 있는 것은 구원이란 내 영혼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야 구원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참된 구원이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상태적인 구원은 이 땅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나, 궁극적으로 천국에 들어가야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니 우리의 구원은 장소적 구원으로 끝이 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구원받아 이 땅에서부터 성령의 통치를 받으면서 형통하게 사는 것은 상태적 천국을 맛보는 것이다. 이것은 천국을 미리 맛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구원은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 집에 들어가기 전에 견본 주택에 가서 잠시 머무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생명의 나라 곧 천국에 들어가야 완전히 구원을 받은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생명이시다. 그 생명을 아들에게 주어 그의 속에 있게 하셨다(요 5:26). 그리고 아들이 그 생명을 믿는 자들에게 분배해 주신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의 생명이 성령으로 그 사람의 영 속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그때에 비로소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다. 그리고 그가 죽을 때에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을 때에 그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생명은 이 땅에서부터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하였다(요일 5:12). 사실 천국은 아버지의 생명을 가진 자만 들어가는 나라이다. 그리고 이 생명의 나라에 들어갈 사람만이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된다. 다시 말해, 천국의 호적에 기록되어 천국의 시민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고로 사람의 최종적인 구원 여부는 생명책의 녹명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교회를 열심히 50년을 다녔어도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면, 아직 예수님의 생명이 그이 속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이 여태껏 교회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것은 그가 교회에 나가서 교양 생활을 하고 종교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생활하는 자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도 교회 생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평생에 한 번 정도는 정말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내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내 속에 생명이 들어 있는지 없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건 히브리서 6장 7-8절에 그 힌트가 나와 있다. 그것은 땅의 열매에 관한 히브리서 기자의 비유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히 6:7-8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땅은 우리 자신을 말하고, 자주 내리는 비는 성령의 은혜를 말한다. 그 은혜를 흡수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합당한 결과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을 보내시고 생명을 주어 천국에 들어가게 하셨는데, 그 밭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과를 내지 않고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면 어떻게 되는가? 가시와 엉겅퀴는 범죄의 결과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뒤에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기 때문이다(창 3:18). 범죄의 결과만 계속 나타난다면 그 밭은 버림을 당한다. 예수님께서도 &amp;quot;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amp;quot;(마 7:20)고 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귀신을 쫓아낼 때와 같다. 머리가 많이 아프다고 하자. 제사를 지내도 머리가 아플 수 있고, 절에 다녀도 아플 수 있고, 축농증에 걸려도 아플 수 있다. 뇌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고, 혈관이 막힐 수도 있다. 여러 이유가 있다. 그런데 무슨 영이 그 머리를 붙잡고 있는지 모르면 쫓아내기 어렵다고 하여, 보는 은사(영안)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 영을 보고 쫓아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보지 못하는 사람은 평생 못 쫓아내는가? 예수님께서는 &amp;quot;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amp;quot;(요 20:29)라고 하지 않으셨던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보는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신 은사이기 때문에 볼 수 있다면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보지 못한다고 해서 쫓아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결과론적으로 쫓아내면 된다. &amp;quot;머리 아프게 하는 영들은 싹 다 나와라. 불로 태워져라.&amp;quot; 그러면 무슨 이유로 들어왔든 그 귀신은 태워지고 박살 난다.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두려움의 영은 폐와 위(胃),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심장, 이렇게 세 군데 정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면 간단하다. &amp;quot;이 몸에 두려움을 주는 영들은 싹 다 나와라&amp;quot;, &amp;quot;심장에 있는 영은 나와라&amp;quot; 하면 된다. 복잡할 필요가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원도 이와 같다. 영적 세계를 볼 수 있다면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째, 생명책을 들추어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에 있는 생명책을 우리가 어떻게 들추어 보겠는가? 천사가 다 보여 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수호천사가 두 명 붙어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에게는 수호천사 두 명이 붙어 있다. 수호천사가 없으면 구원받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그 사람의 손에서 예수의 피가 흘러나오는지를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피가 나오지 않는 사람은 생명이 그 속에 없거나, 생명이 있었으나 지금 타락해서 생명이 빠져나가 버린 사람이다. 그래서 손에서 예수의 피가 나오는가는 그 사람이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를 가르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예수의 피가 철철 넘치게 나오는 사역자는 신뢰하고 따라가도 된다. 그러나 손에 혈흔만 있는 사람이 있다. 피가 터지지 못하고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아직 한 번도 터져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손에서 피가 아예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생명책에 이름이 없다. 그래서 귀신 축사(逐邪, deliverance)는 잘하는데 손에서 예수의 피가 나오지 않는다면 가짜일 수 있다. 사탄이 쓰는 종일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이것은 영적 세계에 눈이 열려야 알 수 있다. 눈이 열리지 않았다면 결과론적으로, 곧 행위의 열매로도 확인할 수 있다. 20년, 30년을 교회에 다녔는데 단 한 사람도 전도해 본 적이 없고, 주님께서 감동하실 정도로 헌신해 본 적도 없고, 깨어 있기 위해 정말로 노력해 본 적도 별로 없이 세상의 가치관대로 살아가고 있다면 걱정해야 한다.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는지를 말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축사 사역자와 말씀 사역자를 살펴보니 무엇이 드러났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평신도들은 필자가 많이 조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큰 교회를 목회하는 목회자들을 필자는 축사&amp;middot;치유를 하는 목회자와 하지 않는 목회자, 이렇게 둘로 나누어 영적으로 조사해 보았다. 그랬더니 차이가 있었다. 이것을 통해서도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는지, 지워진다면 다시 기록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성경 근거는 뒤에서 다 말하겠지만, 실제를 먼저 알면 성경을 훨씬 더 집중해서 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째, 축사&amp;middot;치유를 현재 행하고 있는 사역자들 가운데에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 자가 있었다. 그들은 생명책에 이름도 없고 수호천사도 없는데, 두 종류였다. 하나는 손에 혈흔이 있어서 피가 터지지 못하고 살짝 보이기만 하는 종류이고, 또 하나는 아예 피가 없는 종류였다. 이들은 과거에 하나님의 종이었다. 예수를 믿어서 생명이 있었다. 그런데 은사 사역을 하면서 타락했다. 그래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지워져 버린 것이다. 이런 사람의 생명책을 보면, 펼치면 열렸다가 이내 닫혀 버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사람의 이름은 생명책에 다시 기록되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보다 더 나쁜 경우도 있었다. 손에서 검은 액체가 나오는 축사&amp;middot;치유 사역자다. 이 사람은 거듭난(重生, regeneration) 적이 없는 사역자다. 생명이 들어간 적이 없다. 그 속에 사탄이 들어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성령인 것처럼 속인 것이다(고후 11: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후 11: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그는 자기를 성령의 사역자라고 말하고 성령 사역을 하고 있지만 거듭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양날 검과 불칼도 가지고 있고 방패도 들고 있다. 뒤에 천사는 없다. 생명책에 이름은 없으나 무기는 있다는 말이다. 은사가 있으니 귀신도 쫓고 사역을 할 수 있다. 검은 액체가 나오는 사람도 두 종류가 있다. 검은 액체만 나오는 사람이 있고, 검은 액체가 나올 뿐만 아니라 저승사자, 곧 사탄의 천사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후자는 사탄 쪽에서 많이 활동하는 자로서, 사탄이 전투 지휘관처럼, 정예 부대처럼 쓰는 자들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우리 손에서 예수의 피가 터져 나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예수의 피가 많이 나오는 사람은 예수님의 피를 알고 회개를 많이 외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기 때문이다. 고로 축사 사역은 사실 매우 위험한 사역이다. 타락하기 쉽고, 생명책에 이름이 없어도 사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필자가 대한민국의 모든 목회자를 다 조사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100% 정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영적 세계의 실체를 보고 결과론적으로 말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축사를 하지 않고 말씀만 증언하는 굵직굵직한 목회자들을 쭉 조사해 보니, 그들 가운데에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 사람이 없었다. 그 점에서는 축사 사역보다 좀 더 나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 가운데에도 위험한 분들이 있었다.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이 모이는 교회를 목회하는 분들이지만, 위험한 분들 가운데 14만 4천 명의 보좌 자리에 들어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셔서 그 사역을 하라고 시키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말씀 사역자 전부가 아니라 위험한 분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세상적으로는 뛰어나지만 실제로는 보좌 자리가 없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위험한 분들도 두 종류였다. 손에 혈흔만 있거나, 예수의 피가 아예 보이지 않았다. 회개를 전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회개를 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것에 의하면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하나는 천국 집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 높은 층이었는데 지금 계속 허물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계속 이렇게 간다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또 하나는 상이 적다는 것이다. 저 정도의 종이면 어마어마한 천국의 상을 준비해 놓았겠다 싶었는데, 기껏해야 3층이고 대부분 1층이었다. 천국 집을 짓지 못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왜 그런가? 이 땅에서 자기가 영광을 다 받아 버렸기 때문이다. 필자가 전에 말했듯이 천국 집의 재료는 이 땅에서 올라갈 때 계산되어 올라간다. 그런데 자기 자랑, 자기 영광을 받으면 재료가 올라가지 않아 결국 집이 지어지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는 자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마 6: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필자는 천국 집의 층수가 낮은 사람도 조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손에서 예수의 피가 나오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보혈을 구하고 사용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과 예수 보혈(寶血, precious blood)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보혈을 많이 외치고 예수의 피를 많이 뿌려야 한다. 손에서 보혈이 나오는 사역자는 그 보혈로 사역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보혈이 나오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달라고 하면 된다. 손을 이렇게 펴고 &amp;quot;주님, 보혈 주세요. 가득히 주세요. 철철 넘치게 주세요&amp;quot; 하고 구하면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게 받은 보혈은 어디에 쓰는가? 저승사자가 오면 저승사자에게 예수의 피를 뿌리면 된다. 환자에게도 뿌리면 되고, 우리가 위험할 때 그 상황에 뿌리면 된다. 그리고 내 몸에 발라서 &amp;quot;주님, 나를 보호해 주세요&amp;quot; 하면 된다. 이를테면 장례식장에 갈 때 &amp;quot;주님, 오늘 장례식장에 가는데 나를 보호해 주세요&amp;quot; 하고 보혈을 바르는 것이다. 십자가를 세우는 것도 좋고 보혈을 바르는 것도 좋다. 이렇게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처음에는 &amp;quot;보혈을 주세요&amp;quot; 하고 구하기만 하다가, 나중에는 보혈이 점차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팔에서, 온 손에서, 손가락에서도 보혈이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듯 나간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들어 낼 확률, 곧 천국의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사람을 만들어 낼 확률이 매우 높다. 정말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분들은 이런 종이 되기를 추구하면 좋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생명책의 이름은 쉽게 지워지는가, 그리고 성령 모독죄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생명책의 이름은 언제 지워지는가? 답은 이것이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필자도 목회자들을 보면서 &amp;#39;저분에게 과연 생명이 있을까?&amp;#39;, &amp;#39;아, 저렇게 살면 안 될 텐데, 바른 삶이 아닌데&amp;#39;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지워지지 않았다. 왜 그런가? 그 사람이 처음부터 타락한 것이 아니라 진짜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생명이 있어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생명책의 이름을 쉽게 지우지 않으신다. 이것이 결론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지워질 수는 있다. 손에 혈흔이 맺힌 종이었으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 사람이 몇 분 있었는데, 그들은 은사 쪽이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피가 그 속에서 나와 사람들의 속죄를 돕고, 회개하게 하고, 귀신을 쫓아 주지 못한다면, 남들에게는 구원받을 수 있도록 말해 주었을지라도 본인은 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천국을 보장받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이것은 필자가 진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론적으로 나온 것을 힌트로 드리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생명책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말씀한다. 그러나 실제로 필자가 보았을 때 하나님은 쉽게 지우시지는 않는 것 같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꽤 오래전에 한 성도가 필자에게 상담을 해 왔다. &amp;quot;목사님, 저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졌겠지요? 저는 구원 못 받겠지요?&amp;quot;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분은 남편의 외도로 큰 충격을 받고 나이가 꽤 든 뒤에 음행의 죄를 짓고 살았다. 몇 년 전에 그 죄를 다 끊었다. 그런데 &amp;#39;이렇게 살면 안 되지&amp;#39; 하는 양심의 가책과 성령의 음성이 있었는데도 그것을 외면하고 죄를 지었으니, 자기는 버림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필자는 &amp;quot;회개할 수 있습니다.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amp;quot;라고 답해 드렸다. 그래도 그분은 쉽게 믿지 못했다. 그분이 가장 걱정한 것은 마태복음 12장 31-32절 말씀이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2:31-3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의 배경은 이렇다. 예수께서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셨는데(마 12:22), 바리새인들이 &amp;quot;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amp;quot;(마 12:24)고 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귀신의 왕, 곧 사탄의 힘을 빌려서 한다고 매도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 죄를 두고 이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은사&amp;middot;치유&amp;middot;축사를 하면 귀신이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교회에서 방언하지 말라고 막는 일이 많다. 그것은 상당히 좋지 않은 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amp;quot;이 세상&amp;quot;은 지금의 세대(아이온), 곧 이생이고, &amp;quot;오는 세상&amp;quot;은 죽은 후의 세대, 곧 내생이다. 세대는 이 둘밖에 없다. 그런데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이생에서도 내생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령훼방죄(聖靈毁謗罪, blasphemy against the Holy Spirit)를 짓는 자는 죽어서 그 죄값을 받는다. 그것은 최소 성 밖이며, 바깥 어두운 데나 불못에도 떨어질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정확한 문맥과 단어를 보아야 한다. 성령을 &amp;#39;모독&amp;#39;하고 성령을 &amp;#39;거역&amp;#39;해야 한다. 성령을 외면한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모독하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음행의 죄를 지은 것은 성령을 모독한 것이 아니다. &amp;#39;아, 이러면 안 되는데&amp;#39; 하면서 죄를 지은 것은 적극적인 모독이 아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다. 음행의 죄를 지었다고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다. 끊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 회개하면 용서받는다. 물론 그 죄를 계속 짓고 있다면 당연히 지옥에 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되도록이면 천국에 보내시려고 생명책의 이름을 쉽게 지우지 않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지워진 사람이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했을 때 지워지는가? 아주 현저하게 죄를 지어야 한다. 그러면 현저하게 죄를 짓는다는 것은 어떻게 죄를 짓는 것인가? 이번 본문 히브리서 6장 4-5절을 보자.&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히 6:4-5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한 번 빛을 받았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았다. 성령에 참여한 바 되었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이 무엇인지 맛보았다. 장차 올 시대, 곧 내세의 능력까지 맛보았다. 얼마나 조건이 많은가! 이렇게까지 하고도 타락한 자들이다. 그러니 타락에 이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아무래도 은사 사역을 하는 사람이 더 빨리 그곳에 다다를 수 있다. 왜냐하면 은사로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추구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amp;#39;나는 말씀밖에 모릅니다&amp;#39; 하는 사람은 자기를 높이는 데 조금 덜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이 타락하여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 적극적인 죄, 현저한 죄가 무엇인지를 히브리서 10장 29절이 이렇게 표현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히 10: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죄는 지어도 성령을 모욕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지는 않는다.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 곧 예수의 피를 두고 &amp;#39;쓸데없다, 짐승의 피나 예수의 피나 똑같다&amp;#39;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 한 생명책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지금 천국 집이 허물어지고 있는 주의 종들, 층수가 1층밖에 없는 주의 종들을 보면 생명책의 이름이 흐려지고 있다. 천국의 이름은 기록하는 천사가 잉크로 쓴다. 그런데 이름이 지워질 수 있는 자들의 경우 그 잉크가 번지는 모습으로 점점 희미하게 흐려지고 있다. 이것은 무엇인가? 지금 계속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한 이단 교주는 처음에는 예수를 잘 믿는 장로였는데, 은사가 나타난 뒤 나중에는 예수를 욕하며 짓밟는 모독의 말을 했다. 그 이름이 점차 흐려지다가 싹 지워진 것이다. 필자가 확인해 보니 그는 지옥의 넓은 곳에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를 책망하실 때 빨리 돌이켜야 한다. 모욕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령께서 계속 책망하시는데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점점 흐려지게 된다. 그 끝이 어떻게 되는지는 히브리서 6장 6절이 말해 준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지워진 이름은 왜 다시 기록될 수 없으며 어떤 경우에 지워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생명책에 기록되었으나 지워진 자는 어떻게 되는가? 다시 기록되는가? 히브리서 6장 6절이 이 문제에 답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히 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가 안 된다는 것이다. 현저하게 죄를 지어 버리면 회개하게 할 수 없다. 필자는 그런 여러 사례를 들어 보았는데, 그 사례들을 종합해 보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경우는 세 가지다. 이것은 필자의 경험으로 말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째,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심히 고의로 방해하고 어지럽힐 때다. 쉽게 말하면 교회에 오물을 뿌리듯 모욕하며 그런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다. 아무리 교회가 밉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그런 자는 하나님께서 오래 두지 않으시고 데려가신다. 회개의 기회조차 주지 않으신다. 필자는 그렇게 데려가시는 것을 보았다. 바울도 이렇게 경고했다(고전 3: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주의 종을 대적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때다. 목사가 잘못했다고 멱살을 잡고 끌어내고, 목사를 무릎 꿇려 놓고 책망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저하게 죄를 짓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용서하지 않으신다. 얼마 후에 교통사고나 다른 사고로 데려가시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은 그냥 두지 않으신다. 회개하게 하지 않으신다. 모세와 아론의 질서를 대적한 고라의 무리를 땅이 삼킨 것과 같다(민 16:32-3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왜 그런가? 하나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질서를 파괴한 자는 마귀처럼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한 것이기 때문이다(사 14:14). &amp;quot;내가 너를 판단하겠다&amp;quot;는 것이다. 누가 판단하는가? 네가 심판자가 되겠다는 것인가? 절대 심판자가 되지 말라. 주님만 심판하실 수 있다. 목사의 잘못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다. 기도하고, 정 안 되면 본인이 그 교회를 떠나면 된다. 심판하지 말라. 그래서 필자는 이런 사례를 말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앞에서 말했듯이 예수님을 부인할 때다. 이렇게 되어 버리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고, 지워지면 다시 기록되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차라리 교회에 다니면서 아직 생명이 들어오지 않아 교양 생활을 하는 사람이 더 은혜다. 그 사람은 언제라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남편이나 아내가 억지로, 가정의 화평을 위해서 교회에 나와 주고 있다면 감사해야 한다. &amp;#39;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자가 여기 있구나&amp;#39; 하고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기록된 자가 현저하게 타락해 버리면 다시 회복시킬 수가 없다. 히브리서 12장 16-17절이 그 사례를 하나 더 보여 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히 12:16-17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여기서 &amp;quot;음행하는 자&amp;quot;가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한 르우벤을 가리킨다고 본다(창 35:22). 그리고 에서는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팔았다. 육체의 욕심을 위해 자기의 신앙을 팔아 버린 자들은 결국 이름이 지워지고, 하나님은 회개할 기회를 주지 않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지금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면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죄를 짓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지금 회개의 기회를 주실 때 빨리 회개해야 한다.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기 전에 회개해야 한다. 지워져 버리면 끝이다. 더 이상 안 된다. 하나님은 다시는 생명책에 기록하지 않으신다. 반면에 회개하지 못하는 사람은 양심의 가책이 없다. 주의 종을 무릎 꿇리고 멱살을 잡아도 한 번도 &amp;#39;내가 잘못했다&amp;#39;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성령을 모독한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는 이미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니 절대 심판자가 되지 말라. 피켓을 들고 &amp;quot;목사를 몰아냅시다&amp;quot; 하는 일을 절대 하지 말라. 그 일로 자식까지 힘들어진다. 오히려 이렇게 기도하라. &amp;quot;하나님, 주의 종이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셔서 정말 진실한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해 주세요.&amp;quot; 정 안 되면 본인이 나오면 된다. 대항하지 말라.&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정리하자면 이렇다. 생명책에 한 번 기록된 이름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끝까지 죄만 짓고 산다면 생명책에서 지워져 성 밖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현저하게 죄를 지어 이 땅에서부터 지워지면 그는 100% 지옥이다. 다시 말해 끝까지 죄만 짓는 자는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흐려지다가 회개하지 못하고 죽으면 성 밖에 남겨지고, 현저한 죄로 지워진 자는 불못에 떨어진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찬송 한 절을 불러도 눈물이 난다. 우리 교회의 한 집사님이 &amp;quot;찬송 한 절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있게 하소서&amp;quot; 하고 기도하는데, 그 마음이 필자에게 그대로 느껴졌다. 찬송 한 절을 불러도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사람, 그 사람이 생명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도 은사가 나타나고 능력이 나타난다고 교만해지면 위험하다. 천국 집이 허물어지고, 1층이 되고, 생명책의 이름이 흐려지고 있는데 자기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나빠지기 전에, 성령의 음성이 들리면 빨리 회개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회개 기도문으로 회개하는 것만큼 축복된 삶이 없다. 왜 그런가? 생명의 길로 가겠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왜 버리시겠는가? 다른 것은 다 못 해도 &amp;quot;나는 회개를 기본으로 일평생에 천 번은 회개하고 가리라&amp;quot; 작정하고 가면 된다. 해 보라. 죄를 안 짓게 되고 혈기와 분노가 사라진다. 귀신이 나가니까 자동으로 건강도 회복되고 물질도 회복되고 다 회복되게 되어 있다. 신비한 일이다. 귀신이 그것을 못 하게 막기 때문에 힘이 드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회개는 보혈이 꼭 필요한 일이다. 회개하면 보혈이 부어져서 죄가 용서되는 속죄(贖罪, atonement)가 있고, 회개하면 보혈로 말미암아 귀신이 녹아서 정결하게 된다. 그러므로 회개야말로 하루에 한 번씩 꼭 해야 할 일이다. &amp;quot;죽을 때까지 나는 하루에 한 번씩은 회개하리라&amp;quot; 하고 회개한다면, 우리의 삶은 버려지는 데까지 가지 않을 것이고 주님께서 치워 버리시는 데까지 가지 않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과연 누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가? 그것이 내가 되지 않기를 원한다. 성령께서 책망하실 때 말씀대로 회개하고 돌이키자. 돌아온 탕자처럼 과거를 묻지 않으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알고, 현저한 죄가 아니라면 빨리 회개하여 돌이키자. 그리하여 생명책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고 다시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도록 우리 자신을 만들어 가자. 오직 믿음만 추구하지 말고 종교개혁 때 잃어버린 회개를 제대로 하여,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날 천사가 와서 우리를 데려갈 수 있도록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 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1월 02일(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아침묵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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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morning_qt/331922#comment</comments>			<pubDate>Mon, 02 Nov 2026 23:07:5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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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225)]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4)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03)(아모스9:11~12)_2026-10-30(금)</title>
			<link>https://dongtanms.kr/morning_qt/331524</link>
				<description>&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225)]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4)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03)(아모스9:11~12)&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syR2xlC20Jw&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syR2xlC20Jw?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본 설교는 구약 성경의 &lt;strong&gt;아모스서&lt;/strong&gt;와 &lt;strong&gt;요한계시록&lt;/strong&gt;을 바탕으로 &lt;strong&gt;다윗 왕국의 무너진 장막을 회복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lt;/strong&gt;과 성도가 천국에서 누릴 &lt;strong&gt;영적 왕권&lt;/strong&gt;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다윗이 성경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인물인 이유가 그가 장차 &lt;strong&gt;만왕의 왕이자 영원한 제사장&lt;/strong&gt;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때문이며, 예수님 역시 스스로 &lt;strong&gt;다윗의 자손이자 뿌리&lt;/strong&gt;임을 증명하셨음을 강조합니다. 또한, 구약 시대의 육적인 전쟁과 달리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lt;strong&gt;영적 전쟁&lt;/strong&gt;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음으로써 천국에서 &lt;strong&gt;만국을 다스리는 권세&lt;/strong&gt;를 얻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궁극적으로 이 메시지의 목적은 육체적 쾌락을 좇는 삶에서 벗어나 회개와 순종을 통해 &lt;strong&gt;영적 이스라엘로서 존귀한 신분을 얻고 천국 복을 놓치지 않는 것&lt;/strong&gt;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예수님은 왜 스스로 &lt;strong&gt;&amp;quot;다윗의 뿌리요 자손&amp;quot;&lt;/strong&gt;이라고 밝히셨는가?&lt;br /&gt; 2. 성경은 다윗을 어떻게 &lt;strong&gt;왕의 대표&lt;/strong&gt;로 높이며, 그 &lt;strong&gt;왕권&lt;/strong&gt;을 누구에게 주시는가?&lt;br /&gt; 3. &amp;quot;&lt;strong&gt;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lt;/strong&gt;&amp;quot;는 말씀은 어떤 왕권을 뜻하는가?&lt;br /&gt; 4. 다윗은 &lt;strong&gt;시편 110편&lt;/strong&gt;에서 무엇을 보았으며, &lt;strong&gt;천국의 왕과 제사장&lt;/strong&gt;은 무슨 일을 하는가?&lt;br /&gt; 5. 다윗은 왜 &lt;strong&gt;피를 많이 흘렸다&lt;/strong&gt;는 이유로 &lt;strong&gt;성전&lt;/strong&gt;을 짓지 못했는가?&lt;br /&gt; 6. 다윗은 어떤 마음으로 &lt;strong&gt;왕위&lt;/strong&gt;를 대했기에 참된 왕이 되었는가?&lt;br /&gt; 7. &lt;strong&gt;무너진 다윗의 장막&lt;/strong&gt;은 무엇이며, 그 &lt;strong&gt;복&lt;/strong&gt;은 어떻게 이방인에게 넘어왔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225)&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4)&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03)&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암 9:11-1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최고의 목적은 하늘나라를 준비하여 그곳에서 가장 존귀한 신분을 얻게 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 가장 존귀한 신분은 천국에서 왕 노릇 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를 보고 배워야 하는가? 성경은 한 사람을 계속 가리킨다. 그것은 다윗이다. 다윗이 대체 누구이기에 신구약 성경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되었을까? 하나님께서 그를 자랑하실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모스서는 &amp;quot;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amp;quot;(암 9:11)라는 약속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먼저 다윗이 어떤 왕이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다윗을 잘못 생각하면 다윗의 장막을 세상의 왕국으로 오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amp;quot;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amp;quot;(요 18:36)고 말씀하셨다. 왜 그런가? 다윗의 장막의 회복은 이 땅의 왕국을 다시 세우는 일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인 나라를 세우시고 그 복을 이방인에게까지 넓히시는 일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예수님께서 왜 자신을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라고 하셨는지, 성경이 다윗을 어떻게 왕의 대표로 높이는지, 다윗이 시편 110편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그리고 그가 왜 성전을 짓지 못했으며 어떤 마음으로 왕위를 대했는지를 살피고, 무너진 다윗의 장막이 무엇이며 그 복이 어떻게 이방인에게 넘어왔는지&lt;/strong&gt;&lt;/span&gt;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예수님은 왜 스스로 &amp;quot;다윗의 뿌리요 자손&amp;quot;이라고 밝히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신약에 들어와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amp;quot;다윗의 자손&amp;quot;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마 9:20, 12:23, 15:22, 20:30-31, 21:9, 15).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도 다윗의 동네라고 불렸다(눅 2:4).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사람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 다윗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과 주님께서 직접 &amp;quot;내가 다윗의 자손이다&amp;quot;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뉘앙스가 많이 다르다. 사람은 부족할 수 있다. 어리석어서 판단을 잘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당신 자신을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엄청나게 다른 것이다. 그분은 거짓말을 하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요한계시록을 모든 성경의 결론으로 본다. 신약 성경의 결론이자 구약 성경의 결론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이 모든 판단의 가장 중요한 가치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 안에서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누구라고 하셨는지가 중요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amp;quot;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amp;quot;(출 3:6)고 하셨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역을 예표하는 이기는 자들이다. 그리고 &amp;quot;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amp;quot;(출 3:14)고 하셨고, 이사야를 통해서는 &amp;quot;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amp;quot;(사 41:4, 44:6, 48:12)고 하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요한계시록 1장에서 똑같이 &amp;quot;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amp;quot;(계 1:17)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동시에 당신에게 인간의 이름을 붙이신다(계 22:1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다. 인간으로서 이 땅에 왔다 간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예수님은 천국에 다시 올라가셔서도 &amp;quot;나는 다윗이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다윗을 중요하게 여긴다&amp;quot;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천국에 올라간 성도의 대표인 이십사 장로 가운데 한 사람도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한다(계 5: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5: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유대 지파의 사자는 왕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요한계시록에서 다윗은 왕으로 나온다. 고로 예수님께서 스스로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라고 밝히신 것은, 천국에서 왕 노릇 하는 자의 본이 다윗이라는 것을 친히 보증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성경은 다윗을 어떻게 왕의 대표로 높이며, 그 왕권을 누구에게 주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성경은 다윗을 어떻게 왕의 대표이라고 높이고 있는가? 그것은 세 가지 정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첫째로, 다윗의 왕권은 철장 권세로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기 때문&lt;/span&gt;이다. 예수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에 이렇게 약속하셨다(계 2:26-2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6-28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은 다윗의 시편을 인용한 것이다(시 2:7-9). 여기서 &amp;quot;내게&amp;quot;라고 말하는 이가 다윗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2:7-9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 다윗의 시편을 그대로 인용하여 이기는 자에게 철장 권세를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일평생 다윗을 탐구해야 한다. 한마디로 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도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둘째로, 예수님께서 천국 문의 열쇠를 다윗의 열쇠라고 부르셨기 때문&lt;/span&gt;이다.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셨다(계 3: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천국에 들어가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결정하는 열쇠를 예수님께서 다윗의 열쇠라고 하신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을 뿐 아니라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다윗이 가졌던 왕권을 예수님도 그대로 가지시고, 이기는 자에게도 그 왕권을 주시겠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셋째로,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족보에서 다윗에게만 왕이라는 직분을 붙였기 때문&lt;/span&gt;이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 그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 모두 42대로 되어 있다(마 1:17). 그 가운데 예수님의 조상으로서 최초의 왕은 다윗이고, 다윗부터 여고냐까지 열다섯 명의 왕이 나온다. 그런데 모든 사람의 이름을 댈 때 아무도 직분을 쓰지 않는데, 단 한 사람 다윗에게만 직분을 넣었다. &amp;quot;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amp;quot;(마 1:5-6). 솔로몬도 왕이었고 르호보암, 아비야, 아사, 여호사밧, 웃시야, 히스기야, 요시야도 다 왕이었지만 왕이라는 말을 넣지 않았다. 다윗에게만 왕을 넣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태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동방 박사들은 &amp;quot;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amp;quot;(마 2:2)고 물었다. 두 맹인은 &amp;quot;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amp;quot;(마 9:27)라고 외쳤고, 가나안 여자도 &amp;quot;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amp;quot;(마 15:22)라고 외쳤다. 마가복음은 이 여자를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한다(막 7:26).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치시고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올라오실 때에도 무리는 &amp;quot;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amp;quot;(마 21:9)라고 환영했다.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붙인 죄패에도 &amp;quot;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amp;quot;(요 19:19)이라고 왕의 명칭을 넣었다. 그래서 마태복음을 왕의 복음서라고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마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가장 많이 인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장 존귀한 신분, 곧 왕 노릇 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할렐루야! 그 왕 노릇 하는 자리에서 탈락하지 말라는 것이다. 고로 성경은 다윗을 왕의 대표로 세우고, 그 왕권을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 주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amp;quot;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amp;quot;는 말씀은 어떤 왕권을 뜻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복음의 주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이다(요 20:31).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이 인간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말한다면, 요한복음은 하늘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말한다. 인간의 최고 높은 자리는 왕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아 왕 노릇 하실 분이다. 그래서 더 높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amp;quot;네가 유대인의 왕이냐&amp;quot;고 묻자(요 18:33),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요 18:36-3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8:36-37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진리에 속한 자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필자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듣지 않는다. 그러나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말씀을 한 번만 들어도 삶을 고치고, 누가 다그치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를 다그치며 회개한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진리에 마음이 꽂히기 시작한다. 그러나 거짓과 진리를 늘 섞어서 물 탄 것을 먹던 사람은 계속 물 탄 것을 좋아한다. 필자는 물 탄 것, 설탕 탄 것을 다 빼고 순수한 복음으로 간다. 할렐루야!&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왕이라고 하신 것은 어디에서 왕 노릇하는 자라는 뜻인가? 그분은 바로 영계의 왕이라는 뜻이다. 원문으로 보면 &amp;quot;내 나라&amp;quot;는 &amp;quot;내 왕국&amp;quot;이다. 예수님은 이 땅의 유대인의 왕만이 아니시다. 물리적인 이 세상에 속한 왕만이 아니시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시다(계 17:14). 영적인 모든 세계와 사탄과 마귀는 주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주님께서는 말씀 한마디로 그 존재 자체를 없애 버리실 수도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왜 그냥 두시는가? 인간의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will)를 시험하시려고 그러시는 것이다. 마귀의 말을 따라갈 것인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갈 것인가를 선택할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로봇처럼 프로그램을 집어넣어 하나님 말씀만 따라가게 한다면 인간에게 무슨 자유의지가 있다고 하겠는가? 주님은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날마다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amp;quot;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amp;quot;(고전 9:27)라고 했다. 내게 주신 많은 시간과 은사와 달란트와 물질을 어디에 가장 값지게 쓸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고로 가장 인간다움은 자유의지에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 자유의지를 자기 욕망을 위해 쓰거나, 사탄 마귀처럼 주님 없이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면 교만이 높아지고 자기 자랑과 뽐냄이 시작된다. 여로보암 2세와 웃시야가 그랬다. 여로보암 2세의 왕조는 끝났고, 웃시야 왕은 나병에 걸려 죽는 날까지 별궁에 살았다(대하 26:21). 하나님이 왜 너를 왕으로 세우셨는지, 왜 너에게 그 지위와 직분을 주셨는지, 왜 너에게 돈을 주셨으며 왜 너에게 건강을 주셨는지를 몰랐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왜 나라의 최고 지도자로 세우셨고 왜 법관으로 세우셨는지를 모르면 마찬가지다. 느부갓네살 왕처럼 하나님을 알았다가도 교만해지면 무너지고(단 4:30-33), 예수를 믿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어도 지워질 수 있다(계 3: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 육체가 잘 먹고 잘 살며 쾌락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골프를 치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니다. 하늘나라를 준비하여 거기에서 아름다운 신분을 얻는 것이 우리 인생의 최고의 목적이다. 할렐루야!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이다. 고로 예수님의 왕권은 이 세상의 왕권이 아니라 영계를 다스리는 왕권이며, 우리도 그 나라를 바라보고 자유의지로 날마다 주님을 선택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다윗은 시편 110편에서 무엇을 보았으며, 천국의 왕과 제사장은 무슨 일을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가장 훌륭한 계시를 받은 사람 세 명을 꼽는다면 그 가운데 한 명이 다윗이라고 본다. 그는 위대한 선지자들도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윗 왕국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다윗 왕국이 다시 회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이 어떻게 살았고 어떤 복을 받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시편 110편을 보자(시 110: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110:1-2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2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quot;여호와께서 내 주에게&amp;quot;라는 말에서 &amp;quot;내 주&amp;quot;는 장차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다가 천국에 올라가셔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왕 노릇 하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원수들을 발판으로 밟고 권능의 규를 잡고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시다. 베드로도 오순절에 이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선포했다(행 2:34-3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B.C.1040년에 태어나 30세에 왕이 되었고, B.C.1010년부터 970년까지 40년 동안 왕 노릇 하였다(삼하 5:4). 그러니 B.C.1000년경에 살았던 사람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오른편에서 왕 노릇 하실 것을 환상으로 보아 버린 것이다. 당시에 하나님께 아들이 있을 줄을, 정확히는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실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 힌트는 창세기 18장에 있었다. 여호와께서 두 천사와 함께 아브라함에게 오셔서 &amp;quot;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amp;quot;(창 18:10)고 하셨다. 필자는 이것을 아들이 오실 것을 미리 알려 주신 힌트로 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확인해 보니 천국에서 예수님은 보좌에 앉아 계시다가도 집에 심방하실 때가 있다. 그러면 그때 보좌는 비어 있을까? 아니다. 거기에 빛으로 앉아 계신 분이 있다. 동시에 존재하시는 것이다. 이 땅에서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대화하시는 것도 들을 수 있다. 보좌가 세 개 있는 것도 아니고, 오른편에 보좌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보좌는 하나이고 거기 앉으신 분도 한 분이시다. 놀라운 비밀이다. 한 분 하나님이시지만 전혀 다른 두 인격체처럼 말씀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이 신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인간이 되시기로 선택하셨고, 그래서 아들로 오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다윗은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한다(시 110: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왕일 뿐 아니라 영원한 제사장(祭司長, priest)이라는 것이다. 아론 반차의 제사장들은 죽으면 그 직분을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했지만,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영원하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던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창 14:18-19). 멜기세덱이 제사를 드렸는가? 아니었다. 그는 떡과 포도주를 공급하고 축복하는 자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만찬을 통하여 떡과 포도주를 공급하신 것은 &amp;quot;나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온 대제사장이다, 나는 왕만이 아니다&amp;quot;라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래서 천국에서 우리의 마지막 신분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한다(벧전 2:9).&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천국에서 왕 노릇과 제사장 노릇은 무엇인가? 필자가 천국에서 자세히 확인해 보니, 왕 노릇 하는 것은 성 밖에 가서 만국 위에 왕 노릇 하는 것이다. 성 밖에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들어간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있다. 그들 위에서 왕 노릇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제사장은 무엇인가?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24 반차로 나뉘어 24 마을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십사 장로가 있다. 이십사 장로는 24 마을의 수장이다. 주님께서 영광의 광장으로 불러 예배를 드리실 때에는 24 마을의 모든 사람이 올라가 예배드릴 때도 있고, 지파와 같은 각 마을만 올라가서 예배드릴 때도 있다. 예배의 자리에는 24 마을의 자리가 다 있다. 그때 24 마을의 대표가 주님 앞에 가서 거문고를 타는데, 그 옆에는 금 대접이 있다(계 5:8). 이십사 장로만 부르는 노래가 있고, 십사만 사천 명만 부르는 노래가 있고(계 14:3), 허다한 무리가 부르는 노래와 천사만 부르는 노래가 다 다르다. 그런데 이때에 이십사 장로가 거문고를 타면 주님께서 너무 기뻐하신다. 그때 금 대접을 주님께 올린다. 이때 올린 금 대접은 천국의 24 마을에 살고 있는 천국 성도들이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다. 그 기도를 주님께 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천국에 이미 우리 가족이 들어가 있으면 구원받을 확률이 더 높아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제사장 노릇을 한다는 것은 천국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천국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쓰임 받으려면 제사장이 되어야 하고, 성 밖으로 가서 다스리려면 왕이 되어야 한다. 그 예표가 바로 &amp;#39;다윗&amp;#39;이다. 다윗은 성가대를 어마어마하게 만들었고, 제사장과 레위인과 찬양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을 다 24 반차로 나누어서 일하게 했다(대상 24:18; 대상 25:31). 다윗은 천국을 보고 와서 그것을 천 년 전에 미리 이 땅에 세운 것이다. 고로 우리는 다윗을 일평생 생각해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다윗은 왜 피를 많이 흘렸다는 이유로 성전을 짓지 못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다윗을 읽을 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 다윗이 전쟁을 많이 하여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성전을 짓지 말라고 했다는 말씀이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했지만 회개하여 용서를 받았다. 회개하면 누구든지 용서받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청원은 다 들어주셨지만 성전을 짓는 것만큼은 안 된다고 하셨다(대상 22:8-10).&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대상 22:8-10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9 보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는 온순한 사람이라 내가 그로 주변 모든 대적에게서 평온을 얻게 하리라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그의 생전에 평안과 안일함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10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지라 그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어 그 나라 왕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은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왕 가운데 가장 많이 전쟁한 왕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amp;quot;너는 전쟁을 많이 한 사람이라 피를 많이 흘렸으니&amp;quot;(대상 28:3) 성전을 지을 수 없고 평화의 왕이 와서 지어야 한다고 하셨다. 평화의 왕이 그의 아들 솔로몬이다. 솔로몬은 평강이라는 뜻의 샬롬에서 나온 이름이다. 아가서의 술람미(아 6:13)를 솔로몬의 여성형으로 보기도 한다. 히브리어는 원래 자음으로만 기록되었고 모음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붙여 읽는데, 같은 어근에서 솔로몬은 남성형, 술람미는 여성형으로 보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다윗은 무언가 잘못했다는 것인가?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아주 중요하다. 그 열쇠가 앞에서 본 요한복음 18장의 말씀이다. &amp;quot;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amp;quot; 이기게 하였을 것이라는 말씀은 성도들이 앞으로 싸워야 할 전쟁이 영적 전쟁(靈的 戰爭, spiritual warfare)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나 구약 시대는 아직 강한 귀신들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사탄의 왕국이 아직 없었고 뱀들이 돌아다녔을 뿐이다. 물론 귀신들도 있기는 있었지만 그들은 숫자가 적어서 아직 군대로 조성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 시대에는 귀신과 싸우라거나 귀신을 쫓아내라는 명령이 한 번도 없다. 그 대신 귀신에게 조종당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었다.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이 아닌 바알과 아세라 같은 다른 신을 섬겼던 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타락한 천사가 신 노릇을 하면서 사람들을 조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종당하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이루어지지 못하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쫓아내고 그 땅을 다시 넘보지 못하게 하도록 전쟁을 하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구약 시대의 전쟁은 궁극적으로는 영적인 것이었지만, 인간과 전쟁하는 것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육적인 전쟁을 하면 죄없는 여자도 죽이고 아이도 죽여야 할 때가 있다. 그 성을 끝까지 방어하겠다고 버티면 불로 태워 모두 죽이게 되는데, 그때 여자도 죽고 아이도 죽지 않겠는가? 실제로 다윗은 그 땅을 칠 때 남녀를 살려 두지 않았다(삼상 27:9). 죄 없는 사람들도 죽어 간 것이다. 그래서 전쟁은 살인죄와도 맞물려 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전쟁이었기에 전쟁을 수행했지만, 그때 무고한 사람도 죽어 갔다. 그렇기 때문에 &amp;quot;네가 피를 많이 흘렸다&amp;quot;는 것은 육적인 전쟁에서 무고한 피를 흘렸으니 성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신약에서는 단 한 번도 인간과 전쟁하라는 말씀이 나오지 않는다. 오직 영적 전쟁을 하라고만 되어 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다(엡 6:12).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amp;quot;서로 싸우지 마라,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amp;quot; 하는 인간의 방법만 가르친다. 그것만 가르친다면 사실 그 종은 가짜다. 그것은 세상에 학문에서도 가르치고 또한 일반 치유학에서도 다 가르친다. 교회에 오지 않아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영적 싸움을 해야 한다. 할렐루야!&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신약에서는 왕 노릇을 할 수 있는 자에 대한 소개가 완전히 달라진다. 왜냐하면 신약시대 이후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는 귀신과 싸워서 이기는 자인 것이지, 사람과 싸우는 자가 아니다. 사람과 싸우고 있다면 아직 귀신에 속고 있는 자이다. 지금도 내가 혈기가 나서 다른 사람과 다투고 있다면 그는 천국에서 왕 노릇 하기 어렵다. 어떤 교회에 가면 장로들이 목사를 휘두르며 &amp;quot;젊은 목사야,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 안 들으면 너는 끝이다&amp;quot; 라고 말하기도 한다. 장로가 되니 이 땅에서 왕 노릇처럼 군림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막 9:35). 그런데 그것을 모른다. 조금 지위가 있고, 조금 능력이 나타나고, 조금 깨달은 것이 있으면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한다. 귀신이 가르쳐 준 것을 깨달음이라 여기고 스스로 보혜사라고 하는 자도 있다. 완전히 미혹된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우리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내일 아침에 그냥 끝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주 예수님께서 허락하시고, 지켜 주시고, 보호하시고, 가르쳐 주시고, 인도하셔서 지금 우리가 있는 것이다. 고로 다윗이 성전을 짓지 못한 것은 육적 전쟁에서 흘린 무고한 피 때문이며, 신약의 성도는 사람이 아니라 귀신과 싸워 이기는 왕이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다윗은 어떤 마음으로 왕위를 대했기에 참된 왕이 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진짜 왕다운 왕은 다윗밖에 없었다. 왜 그런가? 다윗은 자기가 왕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시키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위가 없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오직 하나님만 높아지시면 되는 것이었다. 할렐루야! 이것이 바로 다윗의 생애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이 반역했을 때를 보라. 요압 장군을 보내어 압살롬을 치게 했다면 그때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을 것이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왕노릇 하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징계하시는 것이라면 그것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우는 가운데 기드론 시내를 눈물을 머금고 건너갔다(삼하 15:23). 그리고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돌려보내며 이렇게 말했다(삼하 15:25-2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삼하 15:25-26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26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이 다윗 왕이다. 다윗은 &amp;quot;나는 천한 사람으로서 왕이 될 만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왕으로 세워 주셨다&amp;quot;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가 스스로 왕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도 사울 왕을 죽이지 않았다. 최소한 두 번은 직접 죽일 수 있었으나 살려 주었다. &amp;quot;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amp;quot;(삼상 24:6)이라고 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가 무엇인지를 잘 알았다. 설령 이 땅의 목사가 타락하여 잘못 가르칠지라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으로 대우할 때 하나님은 그 성도의 마음을 다 아신다. &amp;quot;함부로 하지 마라, 그는 내가 종으로 세운 자다.&amp;quot; 이처럼 하나님께는 질서가 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부터 그것을 알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다윗은 왕이 된 뒤에도 왕위를 움켜쥐고 왕권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이 없었다. 그의 관심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항상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에게 주어진 백성과 가나안 땅을 주변 민족으로부터 지켜 내기 위해 힘썼다. 그것이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가장 많이 전쟁을 해야 했고 많은 피를 흘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그가 시온 산성을 빼앗고(삼하 5:7), 두로 왕 히람이 백향목으로 집을 지어 주었을 때에도(삼하 5:11) &amp;quot;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내 하나님의 집은 초라한 천막에 있다&amp;quot;는 생각을 했다. 그의 마음은 항상 주님이 앞에 있었다. &amp;quot;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amp;quot;(시 23:1). &amp;quot;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amp;quot;(시 23:5). 그분이 내 마음의 중심에 계셔야지, 내가 주인이 되면 망가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울은 반대였다. 왕위에 남아 있으려고 몸부림을 쳤다. 다윗이 내 왕위를 찬탈하려 한다며 그를 죽이라고 했다. 밥상에서 다윗 편을 드는 아들 요나단에게 오히려 화를 내며 단창을 던져 죽이려고도 했다(삼상 20:33). 그러나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왕권을 넘기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윗을 끝까지 보호해 주었고, 다윗이 왕이 되거든 자기 자손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했다. 다윗은 왕이 된 뒤에 끝까지 수소문하여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내어 &amp;quot;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amp;quot;(삼하 9:7) 하고 자기 밥상에서 먹게 했다. 이처럼 다윗은 의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잊지 않고 배신하지 않았다. 고로 다윗이 참된 왕이 된 것은 왕위를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께 맡겼으며,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와 은혜를 끝까지 지켰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무너진 다윗의 장막은 무엇이며, 그 복은 어떻게 이방인에게 넘어왔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제 다시 아모스서로 가 보자. 아모스서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이고, 심판을 당하지 않으려면 회개하라는 것이다. 아모스서에 나타난 회개는 5장 4절부터 나온다. &amp;quot;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amp;quot;(암 5:4). &amp;quot;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amp;quot;(암 5:6). 찾으라는 이 말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회개(悔改, repentance)라는 것은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것이다. &amp;quot;아버지, 살려 주세요. 내 죄를 용서해 주세요.&amp;quot; 이렇게 아버지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이 &amp;quot;찾으라&amp;quot;는 말이 아모스서의 결론인 9장 11-12절과 연결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9:11-12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12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 두 가지가 나온다. 핵심은 11절이다. 그렇다면 &amp;#39;다윗의 무너진 장막&amp;#39;은 무엇이겠는가? 죄를 지어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 쇠잔해진 왕국, 쇠락해진 왕권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와 남유다의 웃시야 때에 그들의 왕권을 가장 높여 주셨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를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가 잘한 것처럼 착각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끝장내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불을 보내시고 지진을 보냈다. 그래도 그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이처럼 인간은 교만하다. 무언가 잘되면 자기가 잘해서 된 줄로 착각한다. 주님께서 하게 하셔서 가능했던 것인데도 말이다. 물론 인간의 노력이 없으면 안 된다. 필자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본다. 목숨을 각오하고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적당히 하면 은혜도 적당히 온다. 죽기를 각오해야 내 몸이 죽을 것 같을 때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어떤 형벌을 받아 쇠잔해질 것을 다 아시고 다섯 가지 환상을 통하여 아모스에게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끝장난다고 그대로 끝나 버린다면 너무나 소망이 없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다윗의 허물어진 장막을 다시 세우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무너진 왕권을 다시 세우시겠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웃시야 이후에 히스기야 왕도 있었고 요시야 왕도 있었으나, 어느 누구도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세우러 온 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다윗의 장막을 세우러 오신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시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설교하면서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왕위에 앉게 하리라고 맹세하셨고,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선포했다(행 2:30-36).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실시된 최초 회의에서 주의 형제 야고보(갈 1:19)는 아모스 9장 11-12절을 직접 인용했다(행 15:16-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15:16-17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세우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다시 소생시키고 회복시키려고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무진장 관심이 많으셨다. 제자들을 보내실 때에도 &amp;quot;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amp;quot;(마 10:5-6)고 하셨다. 그러나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그분을 거부해 버렸다. 기득권을 가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기가 선생 노릇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만 배우러 가니 기분이 나빠서 죽이려 했다. 또 다른 기득권 세력인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채찍으로 장사꾼들을 내쫓으시며 성전을 돈 버는 수단으로 만들고 있다고 책망하자 기분이 나빠서 죽이라고 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트집잡기를 &amp;quot;그가 안식일을 범했다, 그가 신성을 모독했다, 그가 성전을 헐었다가 사흘 만에 세운다고 거짓말을 했다&amp;quot;라며 예수님을 공격하고 모함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도 예수님은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그들을 계속해서 품으려 하셨다(마 23:37). 그래도 안 되자 &amp;quot;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amp;quot;(눅 23:28)고 하셨다. A.D.70년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될 그날이 보이셨던 것이다. 그 죄가 얼마나 컸으면 훗날 히틀러에게 600만 명이 학살당하는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겠는가? 그래서 결국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amp;quot;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amp;quot;(마 28:19)라고 명하셨다. 그것이 바로 아모스 9장 12절의 성취다. B.C.760년경의 예언이 약 800년 뒤에 그대로 성취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12절의 &amp;quot;그들&amp;quot;은 다윗의 장막, 곧 하나님께서 하나로 보시는 남북의 이스라엘이다. 에돔은 아모스 1장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쳤기 때문에 불로 태우시겠다고 한 민족 가운데 하나다(암 1:11-12). 그 에돔이 다 쳐졌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가 있을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또 다른 이방 나라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을 이스라엘에게 기업(基業, inheritance)으로 주시겠다는 것이다. 에돔의 남은 자들도 적이 아니라 살려야 할 자들이다. 그런데 그 기업을 주시려고 예수님이 오셨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메시아를 배척해 버렸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마 8:11-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8:11-12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는 아모스 9장 11-12절이 문자 그대로 성취될 때가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천년왕국을 만들어 다시 유대인을 쓰시겠다고 한다. 이제 그런 해석은 멈추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우실 왕국은 영적인 왕국이다. 예수님은 영적인 나라를 세우시고 영적인 천국을 주시는 것이지, 이 땅에 육신적인 나라를 다시 세우시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타락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소망을 둘 수는 없다. 온전히 성령의 소유가 된 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유대인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성도들을 쓰신다. 그들이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 상관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영적인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을 쓰시고, 이기는 자를 쓰시고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놀랍게도 아모스 9:12절의 말씀이 번역의 과정에서 바뀌었다. 12절의 &amp;quot;기업으로 얻게 하리라&amp;quot;는 히브리어로 야라쉬(יָרַשׁ)다. 이는 &amp;#39;상속으로 받다, 기업으로 얻다, 획득하다&amp;#39;라는 뜻이다. 그런데 야고보는 아모스 9장 11-12절을 인용할 때 히브리어 구약 성경이 아니라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七十人譯, Septuagint)을 인용하였다. 그런데 70인역은 이 대목을 &amp;quot;사람들 가운데 남아 있는 이들과 모든 민족들이 찾아내도록 하기 위함이다&amp;quot;라고 번역했다. &amp;#39;에돔&amp;#39;이 &amp;#39;사람&amp;#39;으로 바뀌었고, 동사가 &amp;#39;에크제테오(ἐ&amp;kappa;&amp;zeta;&amp;eta;&amp;tau;έ&amp;omega;)&amp;#39;로 바뀌었다. 제테오는 &amp;#39;찾다&amp;#39;라는 말인데 앞에 에크가 붙어 강조하므로 &amp;quot;간절히 찾다&amp;quot;라는 뜻이다.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은 원래는 자음으로만 기록되어 있었는데, 에돔(אדום)과 사람(אדם)은 자음이 거의 같고, 기업으로 얻다(야라쉬)와 찾다(다라쉬)도 한 글자 차이가 날 뿐 거의 비슷하다. 이것이 어떻게 바뀌었고 왜 바뀔 수밖에 없었는지는 다음 시간에 구체적으로 말하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 에크제테오는 바로 5장 4절의 &amp;quot;너희는 나를 찾으라&amp;quot;와 연결된다. 5장 4절과 6절의 &amp;quot;찾으라&amp;quot;는 히브리어로 다라쉬(דָּרַשׁ)이고, 70인역은 그것도 똑같이 에크제테오로 번역했다. 그러니 무슨 뜻인가? 원래 기업으로 얻게 하려 했던 이스라엘 민족이 거역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으니, 이방인들이 나를 찾으면 원래 유대인들과 북이스라엘에게 약속한 그 복을 너희에게 주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면 하늘나라 성 밖의 만국을 기업으로 차지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물론 유대인이 넘어진 것을 고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렀지만(롬 11:11), 우리가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러니 원가지를 향하여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롬 11:18).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 복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다면 그 복은 다시 넘어간다. 주님은 누구라도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시겠다고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셨다(계 2:5). 고로 무너진 다윗의 장막은 예수 그리스도로 다시 세워졌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이방인에게 그 기업이 넘어왔으니, 우리는 그 촛대를 놓쳐서는 안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지금 대한민국에 엄청난 복을 주시려고 대한민국 사람들을 불러 깨우고 계신다. 회개와 천국 복음을 듣게 된 이 모든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다. 촛대가 유럽으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다시 한국까지 옮겨 왔는데, 이것을 놓쳐 버리면 안 된다. 필자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지만, 이 일에 무엇인가 하나라도 동참한다면, 하늘에서 받을 상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 상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다윗을 일평생 연구하자. 그는 자신이 받은 왕위를 결코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고 살았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내게 주어진 지위와 직분이 주님의 것인 줄로&amp;nbsp; 알고, 군림하지 말고 섬기는 자가 되자. 사람과 싸우지 말고 이제는 정말 귀신과 싸워 이기자. 그리고 아모스가 외친 대로 날마다 하나님을 찾자. 회개란 아버지를 찾고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번역까지 바꾸셔서 하나님을 찾는 이방인에게 주시겠다고 한 그 복을 놓치지 말자. 우리가 회개하여 준비되고 하나님 나라에 충성할 때, 북한에까지 복음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아모스의 이 놀라운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도착했으니, 이 복을 놓치지 않고 천국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서는 복된 주인공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30일(금)&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아모스서와 그리스도의 왕국 교훈 인포그래픽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efeaab993bd9980b8ce5e2e4aa3609a2.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Blueprint_of_the_Eternal_King.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fe7129b5e8ad2dc4fbd06eeeeac651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Blueprint_of_the_Eternal_King.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1cc05f810473fce31da4fdba2869b9d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Blueprint_of_the_Eternal_King.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a8a9715ca8b6a52cb91f6d11880dffa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Blueprint_of_the_Eternal_King.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e5ba61fb1c17a2c3801b905f92a3c59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Blueprint_of_the_Eternal_King.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06a077ddcd05a6bea2290d7d87adf82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Blueprint_of_the_Eternal_King.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8efdb05e155e09d30b11ce373c774f7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Blueprint_of_the_Eternal_King.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e0fc6d7e48e58332e4feaba86abd576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Blueprint_of_the_Eternal_King.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8db2070654d87442adc809ea289a660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Blueprint_of_the_Eternal_King.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9717f52801dc92e0e73c1b7d1283371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Blueprint_of_the_Eternal_King.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3292ecb1f2b7851739bd59d7e54dae6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Blueprint_of_the_Eternal_King.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6fd0c39ef7ff2e975b57b3dba105b06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Blueprint_of_the_Eternal_King.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4bf28eef7684526dc687f7ef2179d62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Blueprint_of_the_Eternal_King.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e5b0ed39647111061321a8bd4824fce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다윗_장막_회복과_영적_왕권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a1b68e7e6cf062c2758affcd418481b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다윗의_장막_회복과_영적_왕국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9a7c23a6b0dce5fb5b0178064b0aad08.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다윗의_장막과_영원한_왕국.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91bd2ea2d475392826b1603aef99cdf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다윗의_장막과_영원한_왕국.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ab123444c77fe60224ff36c82d08a5d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다윗의_장막과_영원한_왕국.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010ccdddf65cdb57d4e55b9e47bb2d8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다윗의_장막과_영원한_왕국.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fc55b05a217c12d6604cd7d123afec4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다윗의_장막과_영원한_왕국.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4df94976be45b4d4b517ef1375b4b12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다윗의_장막과_영원한_왕국.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b8143ac7ff49bd25c7636e7b827644d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다윗의_장막과_영원한_왕국.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26a1101758d951a5e29872df4188a35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다윗의_장막과_영원한_왕국.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5531d0081972f542c0120d9419c494e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다윗의_장막과_영원한_왕국.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007614f6e09e10ea918dafefd8fe741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다윗의_장막과_영원한_왕국.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2268fa73cd2b86b34d355d0417cfaac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다윗의_장막과_영원한_왕국.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a78ab756cec87e4c5ef6a8c94719618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5)] 다윗의_장막과_영원한_왕국.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524/331/438f86b23683b7ef08820949c7e0780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아침묵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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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morning_qt/331524#comment</comments>			<pubDate>Fri, 30 Oct 2026 09:57:2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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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224)]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02)(아모스9:11~12)_2026-10-29(목)</title>
			<link>https://dongtanms.kr/morning_qt/331485</link>
				<description>&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224)]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02)(아모스9:11~12)&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7BdiTtGV6r8&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7BdiTtGV6r8?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본 설교는 구약 성경 아모스서를 바탕으로&amp;nbsp;&lt;strong&gt;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지도자의 자세와 성도의 올바른 태도&lt;/strong&gt;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북이스라엘의 물질적 번영 이면에 숨겨진&amp;nbsp;&lt;strong&gt;정치적 오만과 극심한 빈부격차, 그리고 도덕적&amp;middot;종교적 타락을 신랄하게 폭로하고 심판을 경고&lt;/strong&gt;한 역사적 배경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특히 정보배 목사는 세상의 권력과 부를 자신의 쾌락과 지배를 위한 도구로 오용했던 여로보암 2세나 웃시야 왕의 태도를 비판하며, 자신의 허물을 겸손히 인정하고 백성을 살리기 위해 희생했던&amp;nbsp;&lt;strong&gt;다윗의 중심과 삶야말로 진정한 왕의 모형이자 하나님이 회복하고자 하는 무너진 장막의 핵심&lt;/strong&gt;임을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직분이나 부유함 앞에서 교만하여 군림하려 들지 말고&amp;nbsp;&lt;strong&gt;겸손히 섬김의 자리를 지켜야 하며&lt;/strong&gt;, 가난한 자 역시 요행을 바라기보다 성실하게 본분을 다함으로써&amp;nbsp;&lt;strong&gt;오직 하나님만이 참된 선이 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lt;/strong&gt;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lt;strong&gt;무거운 짐을 진 아모스&lt;/strong&gt;는 왜 그 짐을 감사함으로 질 수 있었는가?&lt;br /&gt; 2. 남유다 사람 아모스는 &lt;strong&gt;북이스라엘에서 어떻게 먹고 살며&lt;/strong&gt; 예언했는가?&lt;br /&gt; 3. 하나님은 왜 &lt;strong&gt;지진&lt;/strong&gt;으로 여로보암 2세를 깨우려 하셨는가?&lt;br /&gt; 4. 아모스서는 어떤 순서로 &lt;strong&gt;심판과 회개와 회복&lt;/strong&gt;을 선포하는가?&lt;br /&gt; 5. 부강했던 북이스라엘 안에서 &lt;strong&gt;부자와 가난한 자&lt;/strong&gt;는 어떻게 살았는가?&lt;br /&gt; 6. 하나님은 왜 하필 &lt;strong&gt;&amp;#39;다윗&amp;#39;의 무너진 장막&lt;/strong&gt;을 다시 세우겠다고 하셨는가?&lt;br /&gt; 7. &lt;strong&gt;천국에서&lt;/strong&gt; &lt;strong&gt;왕 노릇 할 자&lt;/strong&gt;는 어떤 마음을 지닌 사람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224)&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0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암 9:11-1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지위와 권세와 부를 맡기시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을 누리고 군림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고 섬기라고 주신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조금만 일이 잘 되고 지위가 높아지면 교만해진다. 자기가 어디에서 시작된 존재인지를 잊어버리고, 자기가 잘나서 그 자리에 오른 줄로 착각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런 지도자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시며, 어떤 사람을 참된 왕의 본으로 세우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모스서는 이 물음에 답을 준다. 아모스서는 웃시야와 여로보암 2세라는 두 왕의 시대에 일어난 지진으로 시작하여(암 1:1),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일으키시겠다는 약속으로 끝난다(암 9:11). 왜 하필 다윗인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다윗 이후로 가장 잘 먹고 잘 살던 그때, 두 나라의 왕은 다윗처럼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하여 두 왕에게, 그리고 그 시대의 부자들과 지도자들에게 &amp;quot;다윗을 보라&amp;quot;고 외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남유다 사람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에서 어떻게 예언했는지, 아모스서가 어떤 구조로 심판과 회개와 회복을 선포하는지, 그리고 부강했던 북이스라엘의 속사정이 어떠했는지를 살피고, 하나님께서 왜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겠다고 하셨으며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는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무거운 짐을 진 아모스는 왜 그 짐을 감사함으로 질 수 있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모스라는 이름은 &amp;quot;짐을 지고 가는 자&amp;quot;라는 뜻이다. 어떤 이는 여기에 &amp;quot;무거운&amp;quot;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하는데, 뜻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짐을 지고 갈 수 있었다는 것은 아모스가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영의 나이가 많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짐이 그에게는 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기를 써 주신 것이 감사했다. 그의 속에는 항상 그런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전에 이런 말이 있었다. &amp;quot;대한민국에서 목사 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 새벽 기도만 없으면 정말 좋을 텐데, 대한민국에서 목사가 되려면 새벽 기도를 해야 하니 너무 힘들다.&amp;quot; 그러나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지 거기에 대하여 왈가왈부하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겠는가? 하나가 나쁘다고 해서 다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시험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일 수 있다. 주어진 환경을 나쁘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나빠지고, 원망과 불평이 끊임없이 나오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회개가 되어 악한 영이 떠나간 뒤로 날마다 감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피곤에 지쳐 쓰러질 것 같아도 이렇게 지쳐 쓰러질 정도로 주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수천 년 된 귀신이 들어와서 나가지도 않고 버티는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목소리가 상할 때가 있다. &amp;quot;찬양을 잘하고 싶은데 목소리가 어쩌지?&amp;quot;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금요일에 강력하게 전투 기도를 하고도 주일에 말씀을 증언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께서는 필자에게 귀신을 쫓는 일과 함께 말씀도 잘 증언하라고 맡기셔서 늘 바쁘다. 그래도 감사하다. 왜냐하면 나를 통하여 누군가가 주님을 더 알게 되고 주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준비된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다. 주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주의 일을 하다가 가기를 원하는 것, 이 마음이 바로 다윗의 마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셨는가? 공생애를 시작하시자마자 세례 요한에게 안수를 받아 죄를 넘겨받으셨다. 대속죄일에 아론이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그 머리에 두었던 아사셀 염소처럼(레 16:21),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넘겨받으신 것이다. 그때 세례 요한은 이렇게 외쳤다(요 1:2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였고(마 11:11), 제사장이자 선지자의 직분을 가진 인류의 대표였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듯이(삼상 16:13),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안수함으로 성령을 받아 메시아의 직분을 감당하는 다리를 놓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무거운 짐을 지고 가시면서도 &amp;quot;힘들다, 피곤하다&amp;quot;는 말씀을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얼마나 피곤하셨으면 배를 타고 이동하실 때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셨겠는가(막 4:38). 그래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을 찾아 살리시는 데 마음을 쏟으셨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다. 그리고 그 주님의 마음을 가장 닮은 사람이 바로 &amp;#39;다윗&amp;#39;이다. 고로 짐을 감사로 지게 하는 힘은 주님의 마음, 곧 다윗의 마음에서 나온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남유다 사람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에서 어떻게 먹고 살며 예언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모스서를 공부할 때 꼭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남유다 사람이 북이스라엘에 가서 선지자 노릇을 할 때 어디서 밥을 먹고 어디서 잠을 자고 살았을까 하는 것이다. 자기 집이 있었다면 집에서 밥을 먹고 나와서 예언을 선포했겠지만, 그곳은 남의 나라였다. 밥 먹으러 집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남유다까지 오가려면 며칠이 걸렸겠는가? 성경에는 아내가 따라와서 밥을 해 주었다는 말도 없고, 북이스라엘에 집이 있었다는 말도 없다. 그러면 기록이 없으니 모른 채 지나가면 되는가? 사람은 육체를 가졌기에 먹고사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그가 북이스라엘에 가서 예언할 때에 과연 그는 어디에서 살았고 누가 밥을 먹여 주었는지를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경을 볼 때에는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훨씬 더 잘 보인다. 왜냐하면 영화를 찍으려면 모든 배경이 세팅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어디에서 자고, 어디에서 살고,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까지 생각해 보아야 아모스 선지자가 어디에서 어떻게 예언을 했는지 좀 더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선 예수님을 보자. 예수께서는 원래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었지만 공생애 동안에는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다(마 4:13). 고로 그곳 가버나움에서 예수님께서 머무르셨던 집이 있었을 것이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 집에 계실 때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데려왔는데, 무리 때문에 예수님께 데려갈 수 없자,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달아내렸다(막 2:1-4). 필자는 그 집이 예수님께서 사시던 집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그 집이 예수님이 기거하던 집이 아니었다면 남의 집 지붕을 함부로 뜯어내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으셨겠는가? 남의 집 지붕을 뜯었다면 돈을 많이 물어주어야 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사시는 집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허용된 것이 아닌가 싶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모스 선지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지진이 일어나기 2년 전에 북이스라엘로 건너갔다(암 1:1). 그런데 그때 그곳에서 그가 선지자 노릇을 하기가 과연 좋았겠는가? 그런데 아모스 선지자는 지혜롭게 예언했다. 먼저 북이스라엘의 주변 나라부터 그들의 심판을 예고했다. 그러다가 맨 나중에 북이스라엘에 관하여 예언을 했다. 그러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아모스가 왕을 모반한다고 여로보암에게 고발하고(암 7:10-11), 아모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암 7:12-14).&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7:12-14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13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 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필자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아모스가 아주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선 시간에 말했듯이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아모스는 목축업자였고, 돌무화과나무를 재배하여 대량으로 생산하고 판매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돈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그가 북이스라엘에서 머물 곳을 구하여 살았을 것이고, 밥도 사 먹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우리도 어떤 곳에 집이 없으면 얼마 동안이나마 머무를 수 있는 곳을 찾아 집을 얻은 후에, 음식은 돈을 주고 사 먹지 않는가? 그도 역시 남의 나라의 땅에 집도 가지고 있지 않고 밥을 먹여줄 사람도 없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물질을 어느정도 소유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로 아모스는 가난한 자가 아니라 부자였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므로 아모스가 촌사람이고 가난한 농부나 목동이었다고 하면서 그가 가난한 자들의 대변자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외지 사람이었던 아모스의 말에 힘이 실리도록 어떤 일을 행하셨다. 그것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도 깜짝 놀랄 어마어마하게 큰 지진을 일으킨 것이다. 그것이 바로 B.C.758년경에 일어난 그 웃시야 지진이다.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에는 웃시야 왕이 분향하던 날에 지진이 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지진은 200년이 훨씬 지난 스가랴 시대에도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감람산이 갈라지면 &amp;quot;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amp;quot; 도망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슥 14:5). 그만큼 큰 지진이 일어났기 때문에 남유다에서 올라와서 심판을 선포하는 아모스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조사해 보니, 문서를 남긴 기록 선지자들 가운데 남유다 사람으로서 북이스라엘에 가서 말씀을 전한 사람은 아모스밖에 없었던 것 같다. 과거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의 사람이 유다에서 벧엘로 가서 예언한 일은 있었지만(왕상 13:1), 기록 선지자로는 오직 아모스뿐이다. 호세아는 같은 시대의 사람이지만(호 1:1) 그는 남유다 사람이 아니라 북이스라엘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남유다 사람을 보내어 북이스라엘에서 예언하게 하셨겠는가? 그리고 그가 선포한 예언이 무겁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건 한마디로, B.C. 758년에 일어난 대지진에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하나님은 왜 지진으로 여로보암 2세를 깨우려 하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B.C.763년에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amp;quot;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amp;quot;고 외쳤다(욘 3:4). 사흘 동안 걸어야 할 큰 성읍에서 하루만 외쳤는데도 그들은 동물까지 함께 금식하면서 회개했다. 그런데 그날 마침 개기일식이 일어났다. 그러자 니느웨 사람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했다(욘 3:5). 그리고 그 뒤로 함부로 요나의 나라를 쳐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5년 뒤인 B.C.758년경에는 북이스라엘의 어떤 곳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아모스서 첫 절은 그것을 말한다(암 1: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1: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지진의 진앙지는 북쪽 하솔 지역으로 추정된다. 북쪽에서 땅이 흔들렸다는 것은 그때 북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 2세가 깨닫고 돌아왔어야 했다는 것을 뜻한다. 당시 하나님께서 땅을 흔드시는 일은 예삿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진이 잦은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땅이 흔들릴 때 속히 깨달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나라는 지진 지대는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깨우시고자 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다. 필자는 어렸을 때 태풍과 홍수 때문에 얼마나 많이 피난을 다녔는지 모른다. 강변 둑 바로 안쪽에 집을 짓고 살았기 때문이다. 강 옆에 있는 엄청나게 큰 둑이 있었는데, 어느 해에는 그 둑이 터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강물이 불어나면 피난을 가야 했다. 물이 둑의 끝까지를 10으로 볼 때, 8부 능선 높이까지 차오르면 공무원들이 와서 사람들을 모두 피난시켰다. 그렇게 위험한 지경을 겪어 보았기 때문에 필자는 그때마다 자연재난이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연의 신호를 볼 수 있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하나님은 요한계시록에서 나팔 재앙을 내리실 때를 보자. 하나님께서는 먼저 자연을 치신다. 첫째 나팔은 땅을, 둘째 나팔은 바다를, 셋째 나팔은 강들과 물샘을, 넷째 나팔은 해와 달과 별을 치신다(계 8:7-12). 그리고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나팔에 가서야 사람을 치신다(계 9:4). 그러므로 자연을 먼저 치실 때 빨리 알아들으면 사람이 다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내 육체의 문제로 치실 때 빨리 깨달으면 내 영혼이 다치지 않는다. 할렐루야! 이것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것을 생각하지 못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로보암 2세는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랫동안, 즉 41년간 통치했다(왕하 14:23). 그리고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가장 넓은 영토를 회복한 왕이기도 했다(왕하 14:25). 하나님께서 그렇게 엄청난 영토를 주셨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이것을 하셨다는 것을 깨닫고, 송아지 우상과 바알 신앙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만 섬기자고 종교개혁 운동을 펼쳤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북이스라엘을 세웠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왕하 14:24). 자기가 잘나서 북이스라엘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착각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진으로 그를 흔들어 깨웠지만 그는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 그때 엄청난 규모의 강한 지진은 그와 그의 나라를 위한 하나님이 주시는 마지막 경고와도 같은 것이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아모스서는 어떤 순서로 심판과 회개와 회복을 선포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때 북이스라엘로 파송을 받은 남유다의 선지자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에 가서 무엇을 전했는가? 아모스서를 보면,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1장부터 4장까지는 죄를 폭로하고 심판(審判, judgment)을 선고하는 내용이다. 다음으로 5장과 6장은 회개를 촉구하고 다시 멸망을 경고한다. 그리고 7장과 8장은 환상을 통하여 북이스라엘의 미래를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9장에서 회복을 약속한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요엘서나 호세아서와 거의 비슷한 패턴이다. 심판을 선고하고, 회개를 촉구하고, 회복과 구원을 약속하는 것이 그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먼저, 아모스 1장과 2장은 주변의 나라들과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간단하게 선고한다. 모두 똑같은 말로 시작한다. &amp;quot;아무개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amp;quot; 그리고 똑같이 &amp;quot;불을 보낼 것이다&amp;quot;로 이어진다. 첫째는 아람의 수도 다메섹이었다(암 1:3-4). 둘째는 블레셋의 도시 가사다(암 1:6-7). 셋째는 페니키아의 도시 두로다(암 1:9). 그다음은 에서의 후손인 에돔(암 1:11; 창 36:1), 롯의 후손인 암몬(암 1:13; 창 19:38)과 모압(암 2:1; 창 19:37)이다. 그리고 남유다였다(암 2:4-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처럼 아모스는 아람 나라부터 남유다까지 일곱 나라에 대하여 심판을 선고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2장 6절에서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를 언급했다. 그런데 다른 나라들은 유다까지도 모두 불을 보내신다고 하는데, 이스라엘에 대해서만은 불을 보내신다는 말이 없다. 필자는 그래서 이스라엘에게는 예고편으로 지진을 내리신 것으로 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어지는 아모스 3장과 4장은 북이스라엘만을 향하여 집중적으로 심판을 선고한다. 3장 1절은 &amp;quot;이스라엘 자손들아&amp;quot;라고 부르며 시작하고, 4장 1절은 &amp;quot;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amp;quot;라고 부른다. 바산은 요단 동편의 기름진 목초지여서 그곳의 암소들은 살이 잘 찐 채 있었다. 이것은 부유층에 사는 이스라엘의 여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녀들은 힘없는 자를 학대하고 가난한 자를 압제하면서 남편에게 술을 가져오게 하여 마셨다(암 4: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처음에 주변 나라들을 다 치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좋아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다가 3장에서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선고하니 이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7장에서는 그가 아모스에게 유다 땅으로 도망하라고 하며 그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다(암 7:12-13).&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아모스 5장 4절부터 분위기는 바뀐다. 그러니 회개(悔改, repentance)하라는 것이다(암 5:4-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5:4-6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5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quot;나를 찾으라&amp;quot;는 말씀은 곧 회개하라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불이 나온다. 그리고 요셉의 집은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지파, 곧 북이스라엘을 가리킨다. 그들의 행위가 더러웠기 때문에 하나님은 선을 구하라고 하셨다(암 5:14-1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5:14-15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18절을 보면, 여호와의 날이 곧 올 것을 경고한다. 그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고 한다(암 5:18). 여호와의 날이 심판의 날이 되지 않고 구원의 날이 되도록 하라고 미리 경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모스 6장에 들어가면 시온과 사마리아의 교만한 지도자들에게 화를 선포하며(암 6:1) 이스라엘의 멸망을 다시 말하고, 7장과 8장은 환상을 통하여 장차 이스라엘을 어떻게 하실 것인지를 미리 보여 준다. 그리고 9장에서 회복을 말한다. 그 회복의 말씀이 9장 11절부터 15절까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9: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아모스더러 왜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틈을 막고, 허물어진 것을 세우겠다고 예언하게 하셨겠는가? 그것은 아모스 1장 1절의 지진 때문이다. 지진으로 다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예언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참 잘 와닿는 말씀이었을 것이다. 고로 아모스서는 지진으로 무너진 것을 다윗의 장막으로 다시 세우시겠다는 약속을 소망케 하는 책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부강했던 북이스라엘 안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는 어떻게 살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북이스라엘이 지진으로 집들이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겠는가? 그때 북이스라엘의 죄악상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첫째로, 정치적으로 죄를 범했기 때문&lt;/span&gt;&lt;/strong&gt;이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와 남유다의 웃시야 왕은 자기가 잘나서 나라가 잘 먹고 잘 사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먼저 요나 선지자를 통하여 주변의 강국을 눌러 놓았는데도 그것을 잘 몰랐다. 하나님께서 북쪽의 앗수르와 남쪽의 애굽이 힘을 쓰지 못하게 하신 것은 남북의 두 나라가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하시려는 배려였다. 그런데 그들은 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착각했다. 이것이 정치 지도자의 착각이다. 실제로 그때는 다윗의 통일 왕국 시대를 제외하면 남북 역사에서 가장 잘 먹고 잘 살던 때였다. 주변 나라들이 쳐들어오지 못하니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둘째로, 경제적으로 죄를 범했기 때문&lt;/span&gt;&lt;/strong&gt;이다. 북이스라엘은 겉으로는 잘 사는 듯했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빈부 격차가 엄청나게 심했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 아모스 3장 15절에서 하나님은 &amp;quot;겨울 궁과 여름 궁을 치리니 상아 궁들이 파괴되며 큰 궁들이 무너지리라&amp;quot;고 선포케 하신다(암 3:15). 부자들은 여름 별장과 겨울 별장을 따로 가지고 있었고, 값비싼 상아로 장식한 집을 짓고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서울 강남의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길 때이다. 청년부 임원들이 모여서 다음 임원 모임을 어디에서 할지 이야기하고 있는데 &amp;quot;이번에는 우리 아빠 별장으로 가자&amp;quot;고 하는 것이었다. 그 청년들은 거의 다 명문대에 다니는 부잣집 자녀들이었다. 임원 회의를 마치면, 부장님이 사 주는 랍스터를 먹으러 가고, 큰 스테이크가 나오는 식당에 갔다. &amp;quot;여기는 진짜 부자 동네구나.&amp;quot;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보리밥만 먹고 자란 필자는 그때 처음 부자 동네가 어떤 곳인지를 경험했다. 그런데 아모스 시대의 부자들이 바로 그렇게 별장에서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모스 6장에서는 그 지도자들의 생활을 더 자세히 묘사한다(암 6:4-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6:4-6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5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6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집만 상아로 지은 것이 아니라 침상까지 상아로 만들었다. 그 위에 누워 기지개를 켜며 양과 송아지를 잡아먹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악기를 만들었지만, 그들은 다윗처럼 악기를 만들되 자기 흥을 즐기기 위해서 만들었다. 유흥의 영이 가득했던 것이다. 필자가 축사를 해 보면 과거에 부자로 살았던 양반들 가운데 유흥의 영이 가득한 사람이 많았다. 손만 대도 몸의 여러 곳에서 유흥의 영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들은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고 비싼 향유를 바르면서도 요셉의 환난, 곧 무너져 가는 나라에 대해서는 근심하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그때 약한 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아모스 2장 6-7절은 그것을 보여 준다(암 2:6-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2:6-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7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은을 받고 의인을 판다는 것은 재판관들이 뇌물을 받고 의인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은 신 한 켤레 값에 팔려 갈 만큼 가난하게 살았다. 권세 있는 자들은 힘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았다. 올바로 가려는 연약한 자에게는 &amp;quot;그따위로 살아서 밥 먹고 살겠느냐, 잘못된 것이라도 옳다고 말하라&amp;quot; 하면서 그들이 가야 할 길을 굽게 했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드나들 정도로 도덕적, 성적으로도 타락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아모스 5장 11-12절은 그들이 어떻게 재물을 모았는지도 말해준다(암 5:11-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5:11-12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12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옛날에는 재판관들이 성문에서 재판했다. 그런데 그들이 뇌물을 받고 가난한 자의 송사를 들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율법은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신 24:17), 그들은 그 반대로 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아모스 8장 4-6절은 그들의 장사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암 8:4-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8:4-6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5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6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월삭과 안식일에는 장사를 할 수 없으니 그날이 언제 지나서 빨리 장사하여 돈을 벌까 하고 기다렸다는 것이다. 곡식을 담는 그릇인 에바는 작게 하고, 값을 치르는 무게인 세겔은 크게 하여 눈속임으로 돈을 벌었다. 사기를 친 것이다. 이렇게 불리한 경제 활동으로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셋째로, 종교적으로 죄를 범했기 때문&lt;/span&gt;&lt;/strong&gt;이다. 2장 8절은 이렇게 말한다. &amp;quot;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amp;quot; 율법은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돌려보내라고 했다.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유일한 옷이기 때문이다(출 22:26-27). 그런데 제사장들은 그 옷을 돌려주지 않고 제단 옆에서 그 겉옷 위에 누웠다. 이처럼 제사장들은 정치와 결탁하여 권력을 누리고 살았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을 빌려주고 받은 담보물로서 겉옷은 해 지기 전에 되돌려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돌려주지 않았고, 신전에서 벌금으로 거둔 돈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취하고 살았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그들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벧엘과 길갈에 가서 제사를 드리면서 죄를 더했다(암 4:4-5).&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는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부자들은 기부를 더 많이 해야 한다. 자기가 수고해서 얻은 것이라도 기부를 많이 해서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자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객과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기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반대로 가난한 자가 하는 일은 모두 선하고 다 옳다고 보는 것으로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가난한 자가 일하기 싫어하는 것까지 모두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성경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땀 흘려 수고해서 땅의 소산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노동자 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고 하는 이들은 자기들의 선택이 무조건 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 선하시다(막 10:18). 고로 부자든 가난한 자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어야 한다. 그래야 부자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가난한 자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부자인 사람은 더욱더 누리려 하고 더 빼앗으려 한다. 그리고 가난한 자는 일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하나님은 왜 하필 &amp;#39;다윗&amp;#39;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세우겠다고 하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에게 장차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켜 세우겠다고 예언하게 하셨는가? 왜 모세의 장막도 아니고, 여호수아의 장막도 아니고, 솔로몬의 장막이 아니라, 다윗의 장막을 언급하셨는가? 그것은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으로서, 장차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지위와 신분이 어떤 사람에게 주어지게 될른지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다윗은 30살에 왕이 되었지만, 한 번도 자기가 잘나서 왕이 되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다윗은 항상 자신이 원래 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성경 기록을 다 조사해 보면, 다윗의 어머니는 이새의 정식 아내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래서 다윗은 온전한 대접을 받지 못했고 형제들에게서도 천대를 받았다(삼상 17:28). 그러므로 그는 항상 &amp;quot;나는 원래 아무것도 아니었다&amp;quot;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왕위를 내려놓아야 할 순간에 결코 미적거리지 않았다. 그러나 여로보암 2세는 상아 궁에서 고기를 상에 미어터지게 차려서 먹으며 엄청나게 누리고 살았다. 그건 사울 왕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다윗은 항상 그렇게 사는 것이 과분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백성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다윗은 자기를 내려놓을 줄을 알았다. 특히 그의 나이 65세 때에 인구 조사를 시킨 죄로 백성이 전염병으로 죽어갔을 때,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께 청원했다(삼하 24:1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삼하 24:17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quot;범죄한 자는 나인데 왜 백성을 치십니까? 나와 내 집을 쳐서 없애 버리시고 이 백성은 살려 주십시오.&amp;quot; 다윗은 이런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다. 사실 다윗의 일생에 있어서 큰 죄는 단 두 번뿐이었다. 하나는 밧세바와 간음한 사건이고, 또 하나는 인구 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밧세바와의 간음을 한 뒤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았을 때에 회개하는 법을 배웠다. 나단 선지자가 책망했을 때 그는 즉시 &amp;quot;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amp;quot;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고(삼하 12:13), 시편 51편에 보면 눈물로 회개했다. &amp;quot;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amp;quot;(시 6:6)라고 고백할 만큼 그는 울며 회개했다. 왕일지라도 그는 기꺼이 권세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잘못을 고백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회개해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다윗이 미리 알려 준 것이다. 그는 자기가 누리고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 살라고 왕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백성을 살리라고 왕으로 세워졌다는 것을 항상 생각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다윗은 평생 자기를 대적했던 여러 장군들이 있었으나, 그 장군들이 자기에게 투항하여 나올 때 한 번도 그들을 해치지 않았다. 다 품어 주었다. 다만 다윗 밑에 있던 장군들이 시기하여 죽여 버렸다. 그래서 사울의 군장 아브넬을 요압이 죽였고(삼하 3:27), 압살롬의 군장이었던 아마사도 요압이 죽였다(삼하 20:10). 그러나 다윗은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기꺼이 받아 주는 사람이었다. 자신도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다윗의 가장 위대한 점은 하나님의 집을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다윗은 선지자 나단에게 &amp;quot;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amp;quot;(삼하 7:2)라고 말했다. 내 집은 향기 나는 백향목 집인데 하나님의 집을 초라한 천막에 둘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집을 내 집보다 더 아름답게 지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것이다. 오늘날 자기 집은 좋은 집에 살면서 하나님의 집은 초라해도 아무런 걱정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과는 달랐다. 하나님께서는 &amp;quot;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amp;quot;으나 누구에게도 백향목 집을 지어 달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하셨다(삼하 7:6-7). 그런데 다윗이 스스로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고 하니 하나님께서 너무 감동하셔서 이렇게 약속하셨다(삼하 7:14-1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삼하 7:14-15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혹시 후손이 죄를 지으면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겠지만 왕위는 빼앗지 않으시겠다는 언약(言約, covenant)이다. 그렇게 해서 다윗의 왕위가 세워졌다. 그렇다면 그 왕위에 앉아 남유다의 제10대 왕이 된 웃시야는 다윗처럼 이러한 마음을 품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마음을 품지 않았다. 나중에는 왕권과 제사장의 권한을 구별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종교의 권한까지 자기가 차지하려고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려고 달려들었다.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졌던 것이다(대하 26:16).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기게 하셨고(대하 26:19), 그때 하나님께서는 지진을 내리셨다고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증언해 주고 있다. 그러나 웃시야가 눈물로 통회했다는 말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는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로 별궁에 살았다고 전할 뿐이다(대하 26:21).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amp;quot;다윗을 보라, 다윗을 보라, 다윗을 보라. 왕들아, 여로보암 2세야, 웃시야 왕아, 다윗을 보라. 다윗은 너희처럼 살지 않았다.&amp;quot; 고로 하나님께서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시겠다고 하신 것은, 자기를 낮추고 회개하며 백성을 살리려 했던 다윗의 마음이 진정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다운 마음이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는 어떤 마음을 지닌 사람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왜 우리는 구약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배우고 있는가? 하나님의 경륜은 야곱에게서부터 시작된 이기는 자를 세우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야곱은 하나님과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기 때문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창 32:28). 그런데 이기는 자의 최고봉은 역시 왕 노릇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야곱의 아들이었던 요셉과 유다의 이야기도 그것을 잘 보여 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야곱에게 그의 허리에서 장차 왕들이 나올 것이라고 알려 주셨다(창 35:11-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창 35:11-12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이기는 자의 꽃은 역시 왕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자는 천국인 새 예루살렘 성 안에 하나님의 자녀로 들어가고 상속자로 들어간다. 그러나 이기는 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속으로 받는다고 했다(계 21:7). 그리고 그 가운데 최고는 바로 왕 노릇을 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하늘의 나라를 누구에게 맡기시는가? 그 땅을 누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가? 그것은 왕들에게 맡기신 것이다. 이것이 왕 노릇하는 자를 탄생시키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경륜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야곱은 왜 이기는 자라고 불리게 되었는가? 아브라함과 이삭 때에는 장자 한 사람만 기업을 잇고 나머지는 멀어져 갔다. 그런데 야곱은 자기 자식 모두가 다 기업을 받는 자가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들을 지키려고 목숨을 내걸었다. 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잘되도록 힘쓴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얍복 강가에 남아 허벅지 관절이 어긋날 정도로 몸부림치면서 기도하면서(창 32:25), &amp;quot;하나님이여, 이 내 열두 아들을 다 상속자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들을 살려주소서&amp;quot; 하고 간구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윗도 야곱과 마찬가지의 품성을 지녔다. 아니, 그보다 더 큰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왕이 되었으나 그 자리에서 군림하려 하지 않았고 누리려 하지 않았으며 압제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자신이 백성을 살리라고 세워졌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늘 겸손했다. 그러자 주님께서도 다윗의 그런 마음을 기뻐하셨다. 왕 노릇을 할 자는 이런 모습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잘못했을 때에는 그것을 시인할 줄 알고, 자신이 가진 왕적 지위라 할지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그 지위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백성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자신을 징계하고 백성을 살려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자여야 한다. 모세도 그랬다.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지 않으시려면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자기 이름을 지워 달라고 간구하지 않았던가!(출 32:3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다윗(B.C.1040~970)의 삶을 얼마나 기뻐하셨으면, 이사야 선지자(B.C.740~680, 사역기간)를 통하여 다윗의 왕좌에 앉으실 메시아를 이렇게 약속하셨겠는가!(사 9:6-7).&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여러 선지자를 통하여, 그리고 신약에 와서도 계속해서 다윗을 언급하셨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amp;quot;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amp;quot;라고 전했다(눅 1:32). 이것은 그 보좌에 앉는 자,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는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 알려 주시는 것이다. 온전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기꺼이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진짜인 사람, 그러한 자가 천국에서 왕 노릇을 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큰 교회를 하면서 누리기만 했다면 그가 천국에서 왕 노릇 한다는 것은 턱도 없는 이야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천국 상황을 확인해 보니 천국에서는 평소에 모두 흰옷을 입고 다니는데, 단 두 사람만 왕복을 입고 다닌다. 다윗과 솔로몬이다. 그런데 다윗의 왕복은 빛으로 가득하지만, 솔로몬의 왕복은 빛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솔로몬은 다윗 왕이 돌아다니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솔로몬은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말년에 마음이 돌아서서 우상을 숭배했다(왕상 11:4). 그래서 간신히 천국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왕으로 세워진 이유를 잘 알았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왜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신이 권세를 잡으면 군림하려 하는가? 그건 그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귀신 때문이라고 본다. 사탄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며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으로 타락했던 존재였는데, 그 부하들 역시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사탄의 반역에 가담했기 때문이다(사 14:14). 그래서 뱀들과 귀신은 계속 올라가려고 하고, 자리를 차지하면 군림하려고 하며, 자기 밑에 있는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정말 다윗처럼 되려면 자기 속에 있는 귀신이 떠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귀신이 떠나가는 길은 오직 회개밖에 없는 것이다. 고로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는 회개로 자신의 더럽혀진 마음을 비우고, 끝까지 겸손히 섬기고 충성하는 사람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지위와 직분을 주실 때 그것으로 군림하고, 밑에 있는 사람들을 부려 먹고, 떵떵거려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이 누릴 수 없는 권한을 누리면서도 뻔뻔스럽게 괜찮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이 드러나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파렴치한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리면 백성이 힘들어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항상 이렇게 생각한다. &amp;quot;나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다.&amp;quot; 필자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서, 종손 집안에서, 단군의 무당의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에 오직 감사할 뿐이다. 자격도 되지 않는 사람에게 과중한 직분을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일평생 단 한 번이라도 군림하려 한다면 그것은 안 된다고 본다. 내게 주어진 어떤 지위나 어떤 은사도 나에게 군림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섬기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지도자가 될수록 그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주님께서도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 않았는가!(마 20:26).&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권력을 주셨는지, 왜 부자로 살게 하셨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면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게 된다. 또한 가난한 자로 태어났다면 열심히 회개하고 열심히 일해서 그 가난을 벗어나려고 해야 한다. 요행이나 법을 이용해서, 일하지 않고도 누리려 하는 얄팍하고 거짓된 악한 마음을 가져서는 아니 된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도 망하게 된다. 그렇다. 부자들은 부자가 될수록 섬겨야 한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은 열심히 일해서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잘 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남북으로 나뉘었던 이스라엘의 상황을 통하여 우리도 하나님께서 교훈하시는 바를 우리 마음에 새기자. 날마다 회개하여, 내 속에서 군림을 부추기는 악한 영을 내보내고, 주님께서 맡겨 주신 직분을 끝까지 겸손히 감당하는 충성된 일꾼들이 되자.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되, 큰 자는 낮은 자로서 섬기고 낮은 자는 더 열심히 일하여 충성된 종으로 인정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다음 시간에는 이어서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 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더욱더 살펴보겠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29일(목)&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와 다윗의 장막 회복 인포그래픽-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9fc0f990a0ccf04b02311b09c0d88ef5.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007515f83eafd585195c5c2134530cd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2130d08fb813c96ebed71c7807221a7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c3777e89222b48b28e60cc1f72d6cf0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52d742ca0b5c36e29f11440bb7caf46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50ca092a904927fa15d2a94ca45f7c8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918497fa65d2d1a148f0045adfb67e5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2f994819ca00d4d64b79f1ca9e451b8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4df314723d78a3b97a54662f41915a5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83197ad699b7af03950117caf8c9c96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c684f03fe006535630ef80cdab0e3a4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ecf93abf3c9bbe304882a5df324aa39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b94966346bfe5adc0ec2fa2cb9b5728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에_나타난_그리스도의_예표.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28131b87df07b299b2ef394131478f5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의_경고와_회복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d45303a8a9ff73a1ca1335b0ce26c09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아모스서와_다윗의_장막_리더십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03c48153a2ddffe8d330811b6b6da627.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aef326da01fd046c2bdc824f1ecf30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6428a9f886e0e9b1deed0935568cc34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621a80c1cea66d10099abe3fee6106a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8896fc13d7fd2564d6e30f18ac68ab2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6fd785a596451bceb3baa09bebb9562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8f243be268c515c1c842a3b1817ad9e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f8e002cb31a6b234a9db03fe97d26a5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2fa185ef7e74a3f070f519e2205b27a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b44b703950f80c47da254e008e38096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f20fa17efc8ca56018c76cb7d3cb106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05cc3d1eef0fa5831ece5f906f5ecdd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4)] 무너진_장막과_영원한_왕좌.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485/331/345769b7b582f895d55449efe618528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아침묵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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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morning_qt/331485#comment</comments>			<pubDate>Thu, 29 Oct 2026 17:39:29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223)]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2)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01)(아모스9:11~12)_2026-10-28(수)</title>
			<link>https://dongtanms.kr/morning_qt/331344</link>
				<description>&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223)]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2)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01)(아모스9:11~12)&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YrsnA18ZvDE&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YrsnA18ZvDE?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본 설교는 구약 성경 아모스서를 바탕으로&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교만, 그리고 진정한 회개의 필요성&lt;/strong&gt;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남유다의 &lt;strong&gt;웃시아 왕&lt;/strong&gt;과 북이스라엘의&amp;nbsp;&lt;strong&gt;여로보암 2세&lt;/strong&gt;가 거둔 국가적 번영이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철저한 섭리와 역사적 도우심&lt;/strong&gt;의 결과였음을 역사적 사건과 대조하여 설명합니다. 그러나 두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를 자신의 공로로 착각하고 타락하자, 하나님께서는&amp;nbsp;&lt;strong&gt;대지진&lt;/strong&gt;과 같은 강력한 경고를 통해 그들의 교만을 깨우치려 하셨음을 강조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메시지는 인간의 업적을 자랑하는 삶에서 돌이켜&amp;nbsp;&lt;strong&gt;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철저히 회개하는 것&lt;/strong&gt;만이 진정한 구원과 회복에 이르는 길임을 청중에게 일깨워 줍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lt;strong&gt;아모스서의 주제 말씀&lt;/strong&gt;은 왜 5장 24절이 아니라 9장 11-12절인가?&lt;br /&gt; 2. 예수님은 &lt;strong&gt;가난한 자와 마귀에게 눌린 자&lt;/strong&gt;를 어떻게 도우셨는가?&lt;br /&gt; 3. 아모스 1장 1-2절의 &lt;strong&gt;지진&lt;/strong&gt;은 무엇을 미리 보여 준 하나님의 경고였는가?&lt;br /&gt; 4. &lt;strong&gt;여로보암 2세&lt;/strong&gt;와 &lt;strong&gt;웃시야&lt;/strong&gt; 때 남북 왕국은 어떻게 가장 강성해졌는가?&lt;br /&gt; 5. 요나의 니느웨 선포와 &lt;strong&gt;일식&lt;/strong&gt;은 북이스라엘의 평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lt;br /&gt; 6. &lt;strong&gt;웃시야가 나병에 걸린 날의 대지진&lt;/strong&gt;은 두 왕에게 무엇을 깨우쳤는가?&lt;br /&gt; 7. &lt;strong&gt;무너진 다윗의 장막&lt;/strong&gt;을 다시 세우신다는 약속은 무엇을 말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223)&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2)&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01)&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암 9:11-12)&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가 누리는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恩惠, grace)로 된 것이다. 나라의 안정도, 개인의 형통도, 사역의 열매도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게 도우시고 보호하시고 미리 일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사람은 그것을 자주 잊는다. 자기가 설교를 잘해서 교회가 부흥한 줄로, 자기가 정치를 잘해서 나라가 안정된 줄로 착각한다. 그것은 하나만 알고 다른 하나를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런 착각에 빠진 자들을 어떻게 깨우시는가? 그리고 깨우침을 받지 못하고 무너진 자들을 어떻게 다시 세우시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모스서에는 바로 이 착각에 빠진 두 명의 정치 지도자가 등장한다. 한 사람은 남유다의 웃시야 왕이고, 또 한 사람은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다. 두 사람 모두 자기가 정치를 잘해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고 착각했다. 왜 이 두 왕이 아모스서의 첫 장 첫 절에 등장하는가? 그리고 왜 아모스서는 9장 11-15절,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시겠다는 약속으로 끝나는가? 첫 단락과 마지막 단락은 하나의 이야기로 묶여 있다. 그 사이를 잇는 단서가 1장 1절에 나오는 웃시야 시대에 일어난 지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아모스서의 주제 말씀이 무엇인지를 먼저 바로 잡고, 성경과 함께 역사의 기록, 곧 요나 시대의 일식과 요세푸스가 남긴 웃시야 때의 대지진 기록을 통하여 아모스 9장 11-12절의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을 통해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어떤 자세로 통치를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기를 바란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아모스서의 주제 말씀은 왜 5장 24절이 아니라 9장 11-12절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아모스서의 주제 말씀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5장 24절이라고 즉각적으로 말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5: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오직 정의를 물 같이 흐르게 하고,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한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사람이 구원을 얻거나 영생을 얻는 것은 아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분이요 심판자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인 것이지,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 최고의 선이라고 하신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니 잘 사는 자들과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은 회개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 본문에서 그렇다는 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물론 가난한 자를 도와주라는 말씀은 율법에 나온다. 신명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객과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라고 하셨고(신 24:17-21), 옷 한 벌밖에 없는 사람의 옷을 전당 잡았으면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라고 하셨으며(출 22:26), 자기의 형제를 종으로 삼지 말라고 하셨다(레 25:39-42).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든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은 가난한 자를 돕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반대로&amp;nbsp;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긴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긍휼(矜恤, mercy)의 마음을 받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밥을 퍼 주는 사역을 해야 한다. 그것은 그의 사명이다. 그러나 그것이 궁극적인 것은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아모스서의 주제 말씀은 무엇인가? 필자에게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히 9장 11-12절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9:11-12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12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왜 이것이 핵심인가? 이 말씀을 따라가면 누구나 구원을 받고 이방인도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무지하여 아모스서를 보면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는 말씀에만 초점을 맞춘다. 옛날부터 다 그래 왔기 때문에 그것이 중심인 줄 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고로 아모스서의 중심은 공의로운 심판의 경고를 넘어, 그 심판으로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시고 이방인까지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에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예수님은 가난한 자와 마귀에게 눌린 자를 어떻게 도우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예수님은 누구를 어떻게 도우셨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약한 자와 힘없는 자를 도우셨다. 그런데 복음서를 다 들어가 보면 예수님은 가난한 자보다 귀신에게 시달린 자를 고쳐 주셨다. 가난한 자들에게 밥을 주신 사역은 오병이어와 칠병이어(마 15:34), 이 두 번이다. 그런데 그 일 때문에 사람들이 쫓아오자 예수님은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다(요 6:15). 그리고 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6:26-2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나는 너희에게 밥을 주는 사역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정확히 알려 주신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을 계속 도와주면 그 사람은 일하지 않는다. 게을러진다. 공짜로 어떻게 얻어먹을 수 없나 하며 일평생을 살게 된다. 일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나 일할 수 있는 멀쩡한 사람이 그것을 이용해 먹고 사는 것은 옳지 않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사는 것이 바른 것이다. 그러므로 아모스가 정말 주장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모르면 우리도 잘못하면 좌파 사상으로 넘어가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은 가난한 자를 도우셨지만, 사도행전은 그 핵심을 이렇게 요약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이 도우신 사람들은 전부 마귀에게 눌린 자들이었다. 마귀에게 눌려서 병들고, 마귀에게 눌려서 귀신 들리고, 마귀에게 눌려서 가난하게 되고, 마귀에게 눌려서 어려움을 당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 주셨다. 진짜 핵심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만약 귀신을 쫓아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마지막 때에 용이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시대가 온다(계 9:1). 그때 엄청난 황충, 곧 귀신들이 올라와서 다섯 달 동안 전 세계를 괴롭힌다(계 9:5). 그때 우리 속에 귀신이 많으면 엄청난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빨리 회개(悔改, repentance)하여 내 속에 있는 귀신을 드러내고 내보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아모스 1장 1-2절의 지진은 무엇을 미리 보여 준 하나님의 경고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아모스는 언제 활동했으며, 그때 하나님은 무엇을 보여 주셨는가? 아모스 1장 1-2절을 보자.&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1:1-2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2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시온은 남유다의 예루살렘이다. 갈멜산은 북이스라엘에 있다.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 모두 팔백오십 명과 맞붙었던 곳이다(왕상 18:19).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다 심판(審判, judgment)하시겠다는 뜻이다. 그 심판이 임하면 목자의 초장도 말라 버린다. 이 목자는 누구인가? 드고아의 목자, 곧 아모스 자신의 초장도 마르는 것이다. 갈멜산 꼭대기도 마르고 파괴된다. 하나님의 심판이 예루살렘에서부터 계속 일어날 것이니 조심하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하나님은 장차 심판하실 것을 무엇으로 미리 보여 주셨는가? 지진으로 보여 주셨다. 1장 1절은 그 지진이 남쪽은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북쪽은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2세의 시대에 일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아모스가 계시의 말씀을 받은 것은 지진이 일어나기 2년 전부터였다. 말씀을 받은 뒤 2년 후에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진은 하나님이 장차 공의(公義, justice)로 심판하실 것을 보여 주신 전조였다.&lt;br /&gt; &lt;img alt=&quot;[호세아강해(08)] 웃시야 시대 대지진 인포그래픽.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4c9f8046a1d4fa4755477e4d6b6842a4.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지진을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경험했겠는가, 경험하지 않았겠는가?(암 7:10) 당연히 경험했을 것이다. 여로보암 2세도 당연히 겪었을 것이고 웃시야 왕도 당연히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은 일찍 망하고 그 뒤로 남유다의 역사로 이어지는데, 이 지진 이야기는 200년이 훨씬 지난 뒤에도 잊히지 않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것이 스가랴서에 나온다(슥 14:4-5). 하나님은 예수님이 감람산에 지상 재림하실 때 지진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 비유로 웃시야 때의 지진을 쓰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슥 14:4-5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5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이를지라 너희가 그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스가랴는 BC 520년경에 활동한 선지자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웃시야 때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9&amp;middot;11 사태라고 하면 2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비행기가 쌍둥이 빌딩을 들이받던 충격을 지금도 기억하는 것과 같다. 대체 무슨 지진이었기에 그랬겠는가? 고로 이 지진이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알게 되면 아모스 9장 11-12절을 이해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여로보암 2세와 웃시야 때 남북 왕국은 어떻게 가장 강성해졌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웃시야와 여로보암 2세는 어떤 왕이었는가? 역사 기록을 찾아보면 남유다의 제10대 웃시야 왕은 BC 792-740년에 통치했고, 북이스라엘의 제13대 여로보암 2세는 그보다 1년 앞선 BC 793년부터 753년까지 통치했다. 남북으로 나뉜 이스라엘에서 남쪽은 20명의 왕이 이어졌고 북쪽은 19명의 왕이 이어졌다. 웃시야는 남유다의 제10대 왕으로서, 52년을 다스렸다(대하 26:3). 가장 오래 다스린 왕은 55년을 다스린 제14대 므낫세이고(왕하 21:1), 웃시야는 두 번째다. 북이스라엘의 제13대 왕 여로보암 2세는 41년을 다스려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 통치한 왕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이 통치하던 때에 이스라엘은 통일 왕국이었다. 그러다가 르호보암 때 나라가 갈라져, 남쪽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남아 남유다가 되었고 북쪽은 나머지 열 지파가 올라가 여로보암이 왕이 되었다. 그렇게 갈라진 이후로 웃시야와 여로보암 2세 때가 가장 넓은 영토에서 살았던 때이고, 어쩌면 주변의 공격 없이 가장 평화롭게 살 수 있었던 시대였다. 그래서 세상의 역사책에는 이때가 가장 부강한 시대로 기록되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때 거의 다 타락했다. 재판관들은 은을 받고 불리한 재판을 하게 했고, 부자들은 사람을 신 한 켤레에 사고팔았다(암 2:6). 빈부의 격차가 심해서 밑에 있는 사람들을 아주 괴롭혔고, 부자들은 상아 침대에 누워 고기를 먹고 살았다(암 6:4). 이것은 나중에 살펴볼 것이다. 지도자들은 불의를 보고도 눈을 감아 주었고,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고 재판을 해 주었다. 제사장들도 타락하여 정치적인 세력을 유지하는 데 힘을 썼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라는 괜찮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열왕기의 기록을 보자(왕하 14:23-2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왕하 14:23-25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제십오년에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사십일 년간 다스렸으며 24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2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원래 북이스라엘 땅은 갈릴리 바다 근처까지였다. 그런데 여로보암 2세 때 다메섹을 회복하고 하맛까지 차지했다(왕하 14:28). 아람의 다메섹을 지나 엄청나게 올라간 것이다. 그런데도 앗수르가 쳐들어오지 않았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필자가 지난번 호세아서를 강의하면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여로보암 2세 시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평화를 주신 데에는 뜻이 있었다. 바람이 나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북이스라엘을, 고멜을 아내로 취한 호세아를 통하여 돌이키게 하시되, 가장 많은 영토를 차지하게 하셨을 때 그렇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이 시대에는 선지자 세 명이 겹친다. 25절을 보면 여로보암이 영토를 회복할 때 요나 선지자가 활동하고 있었다. 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요나는 BC 795-755년, 호세아는 BC 760-725년, 아모스는 BC 760-750년에 활동했다. 그러니 BC 760년경에는 요나는 끄트머리였고, 호세아는 시작했으며, 아모스는 한창 활동하고 있었다. 아모스가 BC 760년에 부름을 받았다면 지진은 2년 뒤인 BC 758년경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에 스티븐 오스틴 등의 학자들이 이 지진을 조사했는데, 그들은 이 지진을 BC 750년경에 일어난 규모 7.8에서 8.2의 지진으로 보았다. 지금도 이런 지진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엄청난 것이다. 그런데 그 진앙지가 하솔 위쪽, 곧 북쪽이었다.&lt;/p&gt; &lt;p&gt;&lt;img alt=&quot;[아모스강해(09)] 요나·아모스·호세아 활동 시기 인포그래픽.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0c53eb62275686649d777f78fffbf35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20261028_051948.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164655f5a24dda4f696f55106b0bb97f.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면 이 지진에 남쪽의 웃시야 왕이 더 충격을 받았겠는가, 아니면 북쪽의 여로보암 2세가 더 충격을 받았겠는가? 당연히 북쪽의 여로보암 2세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가 충격을 받도록 하신 것이다. &amp;quot;너의 땅을 이렇게 많이 넓혀 준 때가 없었는데, 넓은 영토를 차지했다고 자만하지 말라, 이렇게 잘 사는 나라, 영토가 안정된 나라를 만든 것은 내가 한 것임을 잊지 말라.&amp;quot; 하시며 땅을 흔들어 깨우신 것이다. 여로보암 2세는 당시 북쪽 최고의 왕이 되었고, 빈부 격차가 심했지만 주변의 어느 나라도 쳐들어오지 못하는 안정된 나라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나라를 주신 이유를 여로보암 2세도 몰랐고 웃시야도 몰랐다. 고로 이 지진은 하나님께서 두 왕을 깨우시려고 보내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요나의 니느웨 선포와 일식은 북이스라엘의 평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왜 세계 최대 강국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치지 않았는가? 요나서를 보자. 요나는 호세아와 아모스보다 한참 앞선 세대이면서 마지막에 겹치는 사람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여,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고 하셨다.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기 때문이다(욘 1:1-2). 니느웨는 당시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다. 요나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큰 성읍이었지만 하루 동안만 다니며 외쳤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욘 3:4-6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십 일이 지나면 무너진다는 선포를 듣고 왕은 사람과 짐승까지 다 금식하게 했다(욘 3:7). 예수님은 이 일을 이렇게 인용하셨다(마 12:41).&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2:41 심판 때에ㅍ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나의 이야기는 지어낸 우화나 전래 동화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의 니느웨 왕은 누구였는가? 학자들은 역사 기록을 추적하여 그 왕을 BC 772-755년에 재위했던 아슈르단 3세로 추정한다. 그때가 언제였는지도 나온다. 그의 재위 때 개기일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나가 외치기만 해서는 바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개기일식을 보내셨다. 그날이 BC 763년 6월 15일이다. 해와 달과 별은 창조 이후로 똑같이 돌기 때문에 거꾸로 계산하면 그 날짜를 알 수 있다.&lt;/p&gt; &lt;p&gt;&lt;img alt=&quot;[호세아강해(07)] 앗수르 왕들의 재위 연대표.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8606270b204bd8efca4d558b9ff824d4.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 전에 앗수르를 중심으로 여러 도시에서 반란이 일어나 엄청난 소요 사태가 있었고 전염병이 쏟아졌는데, 6월 15일에 일식까지 일어나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다. 옛날에는 해와 달과 별로 점을 쳤으니 온 나라가 캄캄해지자 난리가 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금식하며 여호와를 믿고 회개했다. 필자가 확인해 보니 그때의 아슈르단 3세와 그때 니느웨에 살았던 사람들이 천국에 있었다. 앗수르 사람들 가운데 그때 회개했던 사람들만 천국에 가 있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lt;/p&gt; &lt;p&gt;&lt;img alt=&quot;[호세아강해(08)] 앗슈르단 3세 통치기 주요 사건.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681a16b4f26deff965876c13f0362621.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여로보암 2세가 무슨 실력이 있고 군사력이 좋아서 넓은 영토를 차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진이 있기 약 5년 전인 BC 763년에 요나가 가서 이 나라가 망한다고 외쳐서 앗수르 전체가 회개했다. 하나님께서 세계 최대 강국 앗수르를 회개시켜 놓으셨기 때문에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침범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은 계속 치고 올라가 하맛까지 올라갔다(왕하 14:25). 하나님이 다 작업하신 것이다. 만세 전부터 해와 달과 별들의 움직임을 정해 놓으시고, 그때에 요나를 딱 보내셔서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하셨다. 앗수르 제국은 벌벌 떨며 절대 북이스라엘을 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여로보암 2세는 그것을 모르고 자기의 치적이라고 자랑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진을 통하여 깨우신 것이다.&lt;/p&gt; &lt;p&gt;&lt;img alt=&quot;[아모스강해] 북이스라엘 여로보암2세의 영토_하맛어귀에서 아라바바다까지.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b1b19c4f275bba4c1e371279f96972d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아모스강해] 아라바 바다.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22fd911905195fdda67a1a165ca493d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아모스강해] 여로보암2세때의 북이스라엘의 영토_하맛어귀에서 아라바바다(01).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c388792fefce8a9450a36b53abf4c30d.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진이 일어났기 때문에 남유다 드고아의 목자였던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에 올라가 벧엘에서 외쳐도, 지진의 충격파가 있었으므로 아무도 남유다에서 올라온 선지자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었으니 조금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고로 북이스라엘의 평화는 여로보암의 실력이 아니라, 요나를 통해 앗수르를 회개하게 하신 하나님의 보호하심에서 나온 것이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웃시야가 나병에 걸린 날의 대지진은 두 왕에게 무엇을 깨우쳤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남유다의 웃시야는 어떻게 되었는가? 웃시야도 자기가 나라를 잘 다스려서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중에 그는 겁을 상실하여 자기가 제사장 노릇까지 하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왕이 권력을 남용하여 제사장의 직분까지 다 쥐어 보려고 한 것이다. 정치 지도자가 종교까지 다 쥐어 보려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지도자의 끝이 어떻게 되는지 보라(대하 26:16-19).&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대하 26:16-19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17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용맹한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18 웃시야 왕 곁에 서서 그에게 이르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19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감히 왕에게 덤빈다고 화를 내는 그때 이마에 나병이 생겼다. 나병은 최고의 저주의 형벌이다.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그를 성전에서 급히 쫓아냈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갔다. 웃시야 왕은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고,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다(대하 26:20-2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그 깨우는 지진은 언제 일어났는가? 바로 웃시야에게 나병이 생긴 그날 지진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사실은 과연 어디에 기록되어 있을까? AD 37-100년경에 살았던 유대 학자 요세푸스가 고대 유대 역사를 상세히 기록한 「유대 고대사」 9권 10장 4절에 나온다. 그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웃시야는 자신의 성공으로 교만해져 제사장에게만 허락된 분향을 직접 행하려 했다. 제사장 아사랴와 제사장 80명이 저지했다. 제사장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왕이 분노하고 있을 때 큰 지진이 일어나 땅이 흔들렸다. 지진으로 성전에 균열이 생겼고, 그 틈으로 햇빛이 들어와 왕의 얼굴을 비추자 왕의 얼굴에 나병이 생겼다. 그 지진으로 예루살렘 서쪽 산의 절반이 떨어져 나와 약 4스타디온, 곧 약 740m를 굴러가 멈추었고, 그 토사로 길과 왕의 정원까지 다 묻혀 버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lt;img alt=&quot;[아모스강해(02)] 웃시야 왕 시대의 대지진 기록.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35ec0c7fb5065eccf4a020101cd4aeb0.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날 740m나 산이 쫙 갈라져 옮겨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BC 758년경의 일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지진을 보내셔서 두 왕에게, &amp;quot;이 두 나라를 지금 가장 융성한 나라로 만들어 준 것은 나다, 너희가 잘나서 한 것이 아니다.&amp;quot;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북쪽의 여로보암 2세도 회개하지 않았고 남쪽의 웃시야도 회개하지 않았다. 웃시야는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분향까지 하다가 나병에 걸려 죽을 때까지 그 병을 안고 살다가 죽어 갔다. 북이스라엘은 끝까지 깨닫지 못하다가 40년이 채 못 되어 BC 722년에 멸망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지진이 일어나자, 2년 전부터 북쪽으로 와서 선포하던 아모스의 말을 북쪽 사람들은 꼼짝 못하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모스 선지자는 &amp;quot;하나님께서 이 지진을 일으키신 것처럼 너희를 멸망시키실 것이다, 너희의 잘못을 다 드러내어 심판하실 것이다, 나는 공의로운 하나님이다. 이것이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amp;quot;고 하였던 것이다. &amp;quot;나는 반드시 너희가 행한 대로 갚아 줄 것이다&amp;quot;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의 제단이 무너진다는 것이 아모스가 보았던 다섯 번째 환상, 곧 제단 곁에 서신 주님의 환상이다(암 9:1). 지진 2년 전부터 받은 말씀이었으니 이 환상이 미리 그것을 보여 준 것이라고 판단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서도 아모스서는 회개의 길을 열어 둔다. 심판을 먼저 말하고, 그다음에 회개를 말하고, 그다음에 회복을 말하는 요엘서와 똑같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5: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지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겠는가 한번 생각해 보라. 그리고 5년 전, B.C.763년에 개기일식이 있었고, B.C.758년에 지진까지 일어나니 앗수르와 제3대 아슈르단 3세(B.C.772-755)가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래서 여로보암이 통치하는 동안 손도 대지 못했던 것이다. 고로 대지진은 남북의 두 왕에게 너희의 부강함은 너희의 치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으니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을 찾으라고 깨우친 사건이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신다는 약속은 무엇을 말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아모스서의 마지막 말씀은 무엇을 말하는가? 다시 9장 11-12절로 돌아가 보자. 그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지진으로 무너진 틈을 막고, 쓰러진 장막과 성전을 다시 세우며, 허물어진 것을 다시 일으키는 비유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를 회복시키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너희가 내가 다 도와주어서 잘 먹고 잘 살고 평안하게 된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압제하며 불의를 계속 행한다면 내가 반드시 심판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징계를 받아 완전히 망한 나라에도 주님은 긍휼을 베푸신다. 언젠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세우시고, 지진으로 생긴 그 틈을 메우셔서 다시 잘 살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이 그것을 보여 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9:14-15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15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일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런데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죽이고 지금도 믿지 않는 저 이스라엘 나라가 다시 회복된다고 주장하는 세대주의 사상이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승천하실 때에 이제는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파할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다(마 28:19). 이것은 다음 시간에 더 이야기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아모스서에 나타나 있는 그리스도의 아홉 가지 예표(豫表, type) 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바로 이 9장 11-12절에 있다. 다윗의 장막을 다시 일으키시는 그리스도, 그리고 이방인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다. 고로 아모스서는 첫 절의 지진으로 시작하여, 그 지진의 상처를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물게 하실 하나님을 노래하며 끝난다.&lt;/p&gt; &lt;p&gt;&lt;img alt=&quot;[아모스아강해(06)] 아모스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9가지 예표.pn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129af9460fa58a2ac7b38661527c78d4.webp&quot; /&gt;&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지난밤 이것을 준비하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하나님이 다 주관하고 계셨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자기가 잘나서 이룬 업적과 치적을 자랑하다가, 사울처럼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나 세우며 다니다가(삼상 15:12) 결국 비참하게 버려지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누리는 많은 행복이 내게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믿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물론 실제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정치를 잘해서, 내가 기도를 많이 해서, 내가 회개기도문을 잘해서만이 아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 내가 여기 있기까지 보이지 않게 나를 도와주셨다. 이것을 기억해야만 우리가 타락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붙잡고 갈 수 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의 일생에 행복한 일, 좋은 일이 많아진다면 주님의 은혜로 된 것을 믿고 그 은혜에 보답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혹시 우리의 삶에 어려움이 닥쳤다면 주님을 찾으라는 경고로 들어야 한다. 그리고 빨리 하나님을 찾아 회개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복을 계속 누릴 수 있다. 내 인생이 망가졌어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면 다시 회복될 수 있다. 우리 인생의 쓰디쓴 물이 빠져나가고 새 인생을 살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믿고, 그분이 바라시는 회개를 통하여 악한 영을 내보내어 주님께 온전히 치유를 받자. 그리하여 이 땅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다가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며, 아모스서의 이 교훈을 평생 잊지 않고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28일(수)&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서와 다윗의 장막 회복 인포그래픽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a7869fb82a95418b8a7b50581a503b27.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cccc5c6512888c8a71ac757f78bf1cf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5c5125c11170dec7f06a5638024579c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9a9cfdcbc65e6ba00755619c79cb26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19f48074231c970b46ad9ffaaee927e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f2ca774b21caed102c45d8a3e56b7ab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f9b79b30ded9fd3acdc40865b19d11a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a3bbf1862449242bad7e7fd7884f6b6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08cb23b419a06746efb128710b60c8b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92fabaaaf9254320c0c2802126765a4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93634d3163b334ccbffe996e0b26dbc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06e6fd52e26f2c68555907b20f99ae3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7566848a82c344f9f519c23d9cb0a0f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34c4cf4d55c64457fbeb3091f0c48da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54c41fbedac8006bae73aa6f7850c5d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의_우주적_설계도.pdf_1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045f348d14c78dc1eac05cda9e85514f.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아모스서_심판을_넘어선_은혜와_회복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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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황금빛_균열과_신성한_건축.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1e24cf85754eb998b8b6f1aecc4a8db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황금빛_균열과_신성한_건축.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9d66cef775c3760c2b2b2e2d947752b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황금빛_균열과_신성한_건축.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a54734a44fad2d5fb113dac3ae7e23c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황금빛_균열과_신성한_건축.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ac3eab59c8ffe7cbffe0aeefa3f5dac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황금빛_균열과_신성한_건축.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dd3f35a4e1669cbc9d246f573145f6a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황금빛_균열과_신성한_건축.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c0077e7952ea23ef0c6c46e83073adf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황금빛_균열과_신성한_건축.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182e7dd79ceabf2a3d86afde3951e8d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황금빛_균열과_신성한_건축.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1c85c5c2f6e120a13601f2217fafe32a.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3)] [아모스강해(02)] 황금빛_균열과_신성한_건축.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344/331/f8a49a36015931d0a92127ae6948a2d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아침묵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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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morning_qt/331344#comment</comments>			<pubDate>Wed, 28 Oct 2026 21:56:1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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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222)]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1) 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쓰셨는가?(아모스 1:1, 7:14~15)_2026-10-27(화)</title>
			<link>https://dongtanms.kr/morning_qt/331160</link>
				<description>&lt;p&gt;ㅊ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222)]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1) 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쓰셨는가?(아모스 1:1, 7:14~1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Grf_y5Rbxsg&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Grf_y5Rbxsg?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아모스서의 배경과 선지자 아모스의 정체성&lt;/strong&gt;을 세밀하게 분석하며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할 시각을 제시합니다. 정보배 목사는&amp;nbsp;&lt;strong&gt;좌파 세력이나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아모스서를 정치적 또는 왜곡된 목적로 오용하는 실태를 지적&lt;/strong&gt;하며, 아모스가 단순한 가난한 천민이 아니라&amp;nbsp;&lt;strong&gt;풍족한 부유함과 목축업을 겸비했던 유력한 인물&lt;/strong&gt;이었음을 원문 분석을 통해 밝혀냅니다. 또한, 남유다 출신의 아모스가 북이스라엘로 파송되어&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징벌과 회복의 메시지를 담대히 선포한 사명자&lt;/strong&gt;였음을 강조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인간적 욕심이나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대언했던 아모스의 삶&lt;/strong&gt;을 통해 성경을 바르게 깨닫고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전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하기 위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아모스서는 왜&lt;strong&gt; 좌파와 시한부 종말론자들&lt;/strong&gt;이 자주 이용하는 책이 되었는가?&lt;br /&gt; 2. 아모스가 예언하던 &lt;strong&gt;여로보암 2세 때의 북이스라엘&lt;/strong&gt;은 어떤 나라였는가?&lt;br /&gt; 3. &lt;strong&gt;드고의 &amp;#39;목자&amp;#39; 아모스&lt;/strong&gt;는 정말 가난한 천민이었는가?&lt;br /&gt; 4. 하나님은 왜 &lt;strong&gt;남유다 사람 아모스&lt;/strong&gt;를 &lt;strong&gt;북이스라엘&lt;/strong&gt;에 보내셨는가?&lt;br /&gt; 5. 아모스는 &lt;strong&gt;벧엘의 제사장 아마샤 &lt;/strong&gt;앞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예언했는가?&lt;br /&gt; 6. 선지자가 아니었던 아모스는 어떻게 &lt;strong&gt;환상을 보는 선견자&lt;/strong&gt;가 되었는가?&lt;br /&gt; 7. 하나님께서 &lt;strong&gt;아모스를 쓰신 이유&lt;/strong&gt;는 무엇이며, 그&lt;strong&gt; 이름&lt;/strong&gt;은 무엇을 말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222)&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1)&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쓰셨는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암 1:1; 7:14-15)&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으신다. 백성이 우상을 섬기며 멀어져 갈 때에도 하나님은 종을 보내어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듣고 돌아오게 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도 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면 엉뚱한 사상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성경이 말하려는 핵심을 놓치면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성경에 덧입혀 이용하기 때문이다. 아모스서가 바로 그런 책이다. 아모스서는 1장부터 9장까지로 되어 있어 소선지서 가운데 상당히 긴 쪽에 속하며, 우리가 자주 들어 보는 유명한 말씀이 여럿 들어 있다. 그러나 그 말씀들 가운데 몇몇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특정한 사상과 운동을 위해 이용되어 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아모스서에 들어오기 전에 요엘서를 통하여 기독론과 성령론, 구원론과 종말론을 살펴보았다. 특히 구원론을 많이 다루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지만 한 번 받은 구원이 무조건 영원한 것은 아니며, 이중 예정은 성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 이제 아모스서에서 우리가 주의해서 볼 말씀은 좌파 사상과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이용해 온 말씀들이다. 왜 하필 아모스서가 그렇게 이용되었을까? 아모스서는 북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는 책이고, 그 경고 속에 가난한 자와 연약한 자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씀이 누구를 향해, 어떤 시대에, 어떤 사람을 통해 주어졌는지를 알면 이야기가 달라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북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남유다 드고아 사람 아모스를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쓰셨을까? 왜 선지자 학교에서 훈련받은 사람이 아니라 양을 치고 돌무화과를 거두던 사람을 부르셨던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아모스가 어떤 시대에 살았고, 어떤 신분의 사람이었으며, 벧엘의 제사장 앞에서 어떻게 말씀을 전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아모스 1장 1절과 7장 14-15절을 중심으로, 히브리어 원문에 나타난 아모스의 직업과 이름의 뜻을 살펴서 하나님께서 아모스를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쓰신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오늘날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당신의 종으로 쓰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아모스서는 왜 좌파와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책이 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아모스서의 어떤 말씀들이 이용되어 왔는가? 아모스서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5장 24절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5: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을 가장 많이 쓰는 사람들은 좌파 계열의 사람들이다. 이 구절을 거의 그들의 중심 주제처럼 사용한다. 아모스서에는 가난한 자, 연약한 자, 착취당하는 자가 다른 서신서에 비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모스서는 좌파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성경이며, 특히 5장 24절은 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구절이다. 좌파가 말하는 것이 전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공산주의(共産主義, communism)와 연결되면 하나님의 사상이 아닌 전혀 다른 사상으로 넘어가 버린다. 그러므로 아모스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성도도 자칫 그쪽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을 주의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다음으로 잘 알려진 아모스서의 말씀은 말씀의 기갈을 다룬 8장 11-12절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8:11-1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은 북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이다. 그 당시 북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만한 선지자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남유다의 선지자가 올라가서 말씀을 전해야 했다. 말씀이 그만큼 부족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조금 더 아는 사람은 9장 11-12절을 안다. 이 말씀은 아모스서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9:11-12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12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왜 이 말씀이 중요한가? 이 말씀이 사도행전 15장에 그대로 인용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교회에는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가 수장으로 있었다(갈 1:19). A.D. 49년경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렸을 때 야고보는 이방인들도 이제 구원받을 때가 되었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아모스 선지자가 이미 말했다고 이 말씀을 가지고 선언했다(행 15:16-1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옛날 다미선교회가 많이 이용한 말씀이 있다. 그것은 아모스 3장 7절이다. 필자는 당시 이 말씀을 귀에 닳도록 들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미선교회는 1992년 10월 28일에 주님이 오신다고 주장했다. 이를 이끈 목사와 사역자는 천사들이 와서 그 날짜를 다 보여 주었다고 했다. 하나님은 당신의 비밀을 감추어 두지 않으시고 이렇게 종들에게 알려 주신다는 근거로 이 구절을 이용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고로 아모스서에는 상당히 중요한 말씀들이 있는 동시에 좌파와 시한부 종말론(時限附 終末論)자들이 이용해 온 말씀도 들어 있다. 이 아모스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우리도 까딱 잘못하면 그들의 이용물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가르쳐 준 바대로 들어야 한다. 이 아모스서를 잘 뜯어서 삶아서 구워서 요리해서 절구에 찧어서 번철에 부쳐서, 광야의 만나처럼(민 11:8) 우리 영혼의 양식으로 먹을 수 있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아모스가 예언하던 여로보암 2세 때의 북이스라엘은 어떤 나라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아모스는 어느 시대에 북이스라엘에 가서 말씀을 전했는가? 아모스 1장 1절은 그 시대를 밝힌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1: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 나오는 여로보암은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2세다. 그의 통치 기간은 BC 793-753년경이다. 지진 전 이 년이라고 한 것을 보면 그때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던 모양이다. 웃시야 때의 이 지진은 수백 년 뒤 스가랴 선지자도 기억할 만큼 큰 사건이었다(슥 14:5). 그런데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북이스라엘은 영토가 가장 크게 확장되었고 가장 잘 살던 시대였다. 북이스라엘 역사에서 제일 풍요로운 때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아모스서를 공부해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시대의 부자들은 가난한 자를 착취해서 부자가 된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앞으로 차례대로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먼저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들에게 역사하시고 보호하셨기에 북이스라엘이 그런 풍요를 누릴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면 아모스서를 부자가 약한 자를 착취해서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니 부자들을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로만 잘못 알게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아모스의 말씀을 잘못 듣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노동자는 무조건 선이고, 부자나 기업은 없애야 할 존재요, 기업가는 악덕 지주라는 생각으로 넘어가게 된다.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바로 그렇게 했다. 1946년 악덕 지주의 모든 재산을 몰수해서 서민들과 노동자들에게 나누어 준다며 무상으로 땅을 나누어 주었다. 나누어 주니까 사람들은 현수막을 내걸고 스탈린 만세, 김일성 장군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협동농장으로 다 거두어 가 버렸다. 공산주의가 되면 나중에는 사유지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완전히 빼앗겨 버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을 잘 알아야 한다. 아모스서는 다른 성경에 비해 사람들을 좌파 사상의 노예로 만드는 자들에게 특히 많이 이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아모스서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를 정확히 모르면 우리의 신앙도 그렇게 잘못 적용할 수 있다. 고로 아모스서를 읽을 때에는 착취와 가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풍요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그 풍요 속에서 하나님을 떠난 백성의 죄를 함께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드고아의 &amp;#39;목자&amp;#39; 아모스는 정말 가난한 천민이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아모스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1장 1절은 그를 드고아의 목자라고 소개한다. 드고아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6km 떨어져 있는 시골 마을이다. 이 지역은 목축을 하기에 좋은 땅이고, 돌무화과나무도 많았다. 돌무화과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잘 먹지 않는 열매다. 그런데 열매가 맺힐 때 칼로 상처를 내어 즙을 빼 주면 열매가 익으면서 쓴맛이 빠져 먹을 수 있게 된다. 본래는 주로 동물에게 주는 사료였다. 그런데 그것이 많이 나는 산지로 알려진 곳이 바로 드고아이다. 또한 다윗 시대에 요압이 압살롬을 돌아오게 하려고 드고아에서 지혜로운 여인을 데려온 일이 있다(삼하 14:2). 그래서 드고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있는 도시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럼, 드고아는 지형상 어디에 있는가? 지도를 놓고 보면, 누가 어디에서 선지자가 되었는지를 잘 파악할 수 있다. 북쪽에는 가드헤벨 사람 요나가 있었고(왕하 14:25), 엘리사가 있었고, 디셉 사람 엘리야가 있었다. 모두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다. 그러나 남쪽으로 내려오면 사무엘과 예레미야, 그리고 아모스가 나온다. 아모스는 드고아 출신의 남유다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북이스라엘에 파송되어 예언했던 사람이다. 지난번에 살펴본 바와 같이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출신으로서 자기 백성 북이스라엘에 말씀을 전했고, 요나도 북이스라엘 출신이었다. 그러나 아모스는 남유다 사람으로서 북쪽으로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특히 호세아와 아모스는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다(호 1:1).&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아모스가 드고아의 목자라고 성경에 나오는데, 그는 목자라는 말은 어떤 뜻인가? 히브리어로 목자는 보케르요, 헬라어로는 포이멘(&amp;pi;&amp;omicron;&amp;iota;&amp;mu;ή&amp;nu;)이다. 영어로 하면 셰퍼드(shepherd), 양을 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아모스 1장 1절의 목자는 이 셰퍼드라는 뜻의 일반적인 목자가 아니다. 우리말로는 목자라고 번역했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노케드(נֹקֵד)라는 다른 단어를 쓰고 있다. 칠십인역은 이 단어를 따로 번역하지 않고 아카림이라고 음역해 두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것을 확인하려고 칠십인역(헬라어 번역 구약성경)을 찾아보았다. 이 노케드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 한 번 더 나온다. 열왕기하 3장 4절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왕하 3:4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의 양을 치는 자가 바로 &amp;#39;노케드&amp;#39;다. 이스라엘의 목자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삯꾼 목자다. 요한복음 10장에 나오는 삯꾼은 목자이기는 하지만 진짜 목자가 아니라 삯을 받고 고용되어 일하는 목자다. 돈을 받고 하기 때문에 이리나 늑대가 와서 양떼를 해치려고 하면 도망가 버린다. 자기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요 10:12-13). 이런 삯꾼 목자는 대부분 고용된 자로서 천민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갈멜의 거부였던 나발처럼 많은 양 떼를 직접 소유하고 치는 사람이다(삼상 25:2). 이런 사람은 부자에 속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노케드는 어디에 속하는가? 그건 후자에 속한다. 드고아의 목자라고 하니 천한 목동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다. 노케드는 양을 직접 쳐서 그것을 공급해 주는 자로서, 목자 중에서도 부자에 속한 목자인 것이다. 이는 털이 많은 좋은 양들을 키우는 사람이다. 모압 왕 메사가 그랬다. 그는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칠 만큼 엄청난 털을 생산하고 양을 판매하는 사람이었다. 노케드는 바로 이런 종류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노케드를 가장 잘 번역한 말은 목자보다는 목축업자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털을 판매하고 양을 판매하고 양을 거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좌파 계열의 설교를 들어 보면 아모스가 드고아의 목자였다는 이유로 그를 날품팔이 삯꾼이요 천민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원문의 뜻은 그렇지 않다. 아모스는 부자였다.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아모스를 가난한 사람의 대표로 생각했을까? 7장 14절 때문이다. 아모스가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에게 &amp;quot;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amp;quot;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여기의 목자는 히브리어로 보케르(בּוֹקֵר)이며, 소를 뜻하는 바카르와 관련된 말이다. 1장 1절의 목축업자는 노케드이고 7장 14절의 목자는 보케르다. 그러니 아모스는 직접 가축을 치는 목자이면서 양들을 거래하고 판매하고, 털을 생산해서 옷을 만드는 공장에 갖다 주는 사람이었다. 옛날로 말하면 지주에 속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거기다가 그는 &amp;#39;뽕나무를 재배하는 자&amp;#39;라고 나온다. 사실 우리나라 뽕나무와 무화과나무는 잎사귀가 거의 비슷하다. 둘은 같은 뽕나무과에 속한다. 가지를 툭 꺾으면 쌀뜨물 같은 하얀 즙이 나오는데, 무화과에서는 많이 나오고 뽕나무에서도 나온다. 필자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양잠업을 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우리말로 이해하기 쉽게 뽕나무로 번역했을 뿐이지, 원문은 돌무화과인 것이다. 히브리어로 쉬크밈(שִׁקְמִים)이라고 되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돌무화과는 무화과처럼 열매가 크고 달콤하지 않다. 작고 별로 달지 않다. 감으로 말하면 우리에게 당감, 장두감이 있는가 하면 똘감이 있지 않은가! 똘감은 동그랗게 생겼지만 떫기 때문에 우려 먹거나 아니면 홍시로 만들어 먹어야 한다. 그것이 돌무화과다. 그런데 그 돌무화과나무를 재배하는 자라고 했지만 원문을 보면 돌무화과를 거두어들이는 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집단으로 돌무화과를 심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 열매를 거두어 짐승의 양식으로 판매했을 것이다. 너무 가난하고 기근이 들면 사람도 그것을 먹었다고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탕자가 먹으려 했던 쥐엄 열매도 원래 동물의 사료로 들어가는 것이다. 쥐엄 열매는 아카시아나무 열매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는데, 아카시아 열매의 콩은 납작한 반면 쥐엄 열매 안에는 동글동글한 콩이 들어 있다. 맛은 별로 없지만 한 나무에 어마어마하게 열린다. 그것이 뚝뚝 떨어지면 주워다가 그 안에 있는 콩을 사료로 썼다. 보통 동물이 먹고 사람은 잘 먹지 않는 것인데, 탕자는 그것으로나마 배를 채우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마저 얻지 못했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눅 15: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돌무화과도 이처럼 사람이 먹기에는 조금 껄끄럽고 맛이 없지만 동물의 사료로는 많이 쓰이는 것이었다. 아모스는 그것을 집단으로 재배해서 판매하던 사람이었다. 한글의 개역개정 번역본으로 보면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양 떼를 따랐다는 말이라고 나오니, 이 양반은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다. 고로 아모스의 정확한 신분은 목축업자이면서 돌무화과를 대규모로 거두는 농부였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하나님은 왜 남유다 사람 아모스를 북이스라엘에 보내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남유다 드고아에 살던 이 사람을 누가 북쪽으로 보냈는가? 7장 1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를 데려다가 선지자로 파송했다고 나온다(암 7:14-15).&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7:14-15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15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15절에 말씀에서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왜냐하면 북이스라엘은 송아지를 갖다 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섬기던 우상숭배 국가였기 때문이다. 솔로몬이 죽은 뒤 왕국이 나뉘자(BC 930년경) 여로보암 1세는 백성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려고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하나는 벧엘에, 하나는 단에 두었다(왕상 12:28-29). 그 뒤로 약 170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을 향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여전히 내 백성 이스라엘이라고 하신다. 아직도 내 백성이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왜 그러신가? 하나님은 한 번 우리를 구원하셨으면 영원히 구원하고 싶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포기를 잘 안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부르셨다. 그러나 우리가 그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죄를 계속 지어서 더럽혀져 버리거나, 현저하게 죄를 짓거나, 남들을 실족하게 만들어서 예수 믿는 사람을 지옥에 가게 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썩은 부패의 삶을 계속 살아서는 안 된다. 그러면 구원에서 탈락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신 것은 영원히 구원받으라고 부르신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구원받은 자답게 살지 못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구원에서 탈락된다. 그러면 그는 성 밖이나 더 바깥의 어두운 데 혹은 불못에까지 간다(계 22:15, 21:8).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성 밖에 두시려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송아지 우상을 하나님이라고 섬겼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저 북이스라엘 백성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씀하고 계셨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모스서가 기록된 때는 언제인가? 그때는 B.C. 760년에서 750년경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더 말할 것이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은 B.C. 722년에 멸망한다. 약 30년에서 40년 뒤에 북쪽 나라가 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망하기 전까지 계속 선지자들을 보내셨다. 그래도 안 되니까 이제는 남유다 사람까지 보내신 것이다. 북 이스라엘도 내 백성이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그만큼 북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종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을 그렇게 계속해서 사랑하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살 때 하나님이 나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를 통해 나를 부르시면 즉시 응답해야 한다. 나를 살리시려고 부르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끝까지 당신의 종을 보내시고 이 땅에서 그를 부르시지만, 그 부르심을 받은 자의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았던 북이스라엘은 결국 멸망하고 만다. 부르심에 빨리 응답하는 자는 살고, 끝까지 듣지 않는 자는 망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아모스는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 앞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예언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의 어디에 가서 누구 앞에서 말씀을 전했는가? 그는 북이스라엘의 땅에 있는 벧엘로 갔다. 북이스라엘이 자기 백성들이 남유다의 예루살렘에 가지 못하도록, 금송아지 우상을 하나님이라고 속이고, 그 우상을 벧엘과 단에 제단을 세워 놓았기 때문이다. 단에도 제사장이 있었고 벧엘에도 제사장이 있었다. 단은 북쪽 끝에, 벧엘은 남쪽에 있었으니 마치 우리나라의 서울과 부산처럼 나라의 양쪽에 세워 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심은 벧엘이었다. 벧엘은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이라고 불릴 만큼 북이스라엘 종교의 중심지였다(암 7:13). 모든 백성이 제사를 지내러 벧엘로 몰려왔다. 아모스는 바로 그 벧엘에서 말씀을 선포했다. 그 벧엘의 제사장이 아마샤였다. 벧엘의 제사장이었으니 그의 권력과 힘이 대단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처음에는 아마샤도 아모스를 좋아했을 것이다. 왜 좋아했을까?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주변 나라들을 하나님이 다 심판하셔서 불로 태워 없애 버리실 것이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1장과 2장에 보면,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주변 나라들 6개국과 남유다에 대한 심판을 먼저 선포한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은 3장부터 본격적으로 나온다. 그중 하나만 보자.&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1:3-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다메섹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 4 내가 하사엘의 집에 불을 보내리니 벤하닷의 궁궐들을 사르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amp;#39;다메섹&amp;#39;은 아람 나라의 수도이고 벤하닷은 아람의 왕이다. 그 벤하닷의 궁궐들을 불로 다 사르겠다는 것이다. 6절에는 &amp;#39;가사&amp;#39;가 나온다. 가사는 블레셋의 수도 같은 곳인데, 가사도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겠고 그 성에 불을 보내겠다고 하신다(암 1:6-7). 이런 패턴으로 두로, 에돔, 암몬, 그리고 2장 1절의 모압까지 여섯 나라가 나온다. 그다음 2장 4절에는 유다까지 나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을 듣는 벧엘의 제사장은 기분이 좋았을까, 아니면 나빴을까? 아마 기분이 좋아서 &amp;quot;잘했어, 잘했어&amp;quot; 하고 박수를 쳤을 것이다. 우리 동서남북에 있는 나라들, 우리를 괴롭힌 나라들이 다 망한다니, 불에 타서 궁궐들이 다 파괴된다니 &amp;quot;잘 되었군, 잘 됐어&amp;quot; 했을 것이다. 그리고 덩달아 유다도 망한다고 하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amp;quot;오, 너는 선지자요 나는 제사장이니 너하고 나하고는 러닝메이트하자.&amp;quot; 하면서 아주 잘하고 있다고 했을지도 모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그다음에 아모스는 2장 6-8절에서 이스라엘의 죄를 요약해서 짧게 선포한다. 먼저 운을 띄운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2:6-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7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8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때 아모스는 이렇게 말했다. 은으로 의인을 팔았다는 것은 재판관들이 판결을 굽게 했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를 신 한 켤레에 거래했다는 것은 가진 자의 착취가 엄청나게 심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드나들었다는 것은 도덕적 타락, 곧 성적 타락이 극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그럼,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웠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와서 자기의 겉옷을 맡기고 무언가를 빌려 갔는데, 부자가 그 옷을 돌려주지 않고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율법은 전당 잡은 옷을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라고 명령했다(출 22:26). 그런데도 돌려주지 않았으니 부자들의 엄청난 착취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것으로 포도주를 마셨다는 것은 제사장도 덩달아 타락했다는 말이다. 그랬다. 재판관과 부자와 지도자와 제사장들의 타락, 거기에 성적 타락까지, 결국 북이스라엘은 내부적으로 부패했고 더럽혀져 있었으며, 악이 성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3장부터 이스라엘 자손들아 하고 부르며, 너희가 포로로 잡혀가 완전히 쑥대밭이 되고 비참하게 될 것을 본격적으로 풀어서 말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보기에 아모스는 머리가 상당히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된다. 만약 처음부터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들이 부패하고 타락하고 착취하여, 너희의 부녀들이 먹을 것이 없어 자식들을 잃고, 너희는 포로로 잡혀가 자식들은 종이 되고, 농사지은 것은 다 빼앗겨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을 때가 올 것이니 회개하라고 했다면 그들이 들었겠는가? 처음부터 북이스라엘을 막 내리치는 말을 했다면 벧엘의 제사장이 가만두었겠는가? 결코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정치적으로 볼 때 최고 권력자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북이스라엘의 왕이 있었다. 그는 사실 제사장으로서 자신이 신의 말을 받았다며 신탁을 왕께 말하고, 왕을 추켜 세우고, 왕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자였다. 아마샤도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아모스 5장에 가서 비로소 회개하라고 선포한다. &amp;quot;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amp;quot;고 선포한다(암 5:4). 그리고 9장에 가서 북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말한다. 이는 심판을 말하고, 마음을 찢고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말하고, 그다음에 회복을 말하는 요엘서와 거의 비슷한 스타일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렇듯 점차적으로 아모스가 이스라엘에게 재앙과 멸망을 예고하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주변 나라들에 대해서는 조금 말했는데,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세 배, 네 배로 확 불려서 말하니 아마샤가 화가 끝까지 났던 것이다. 그러자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무엇이라고 했는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7:12-13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13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유다 땅으로 도망하라는 것은 도망가지 않으면 그를 죽이겠다는 말이다.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라는 말에는 아마샤의 처지가 들어 있다. 너도 떡 먹으려고 여기서 이러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샤의 자기 생각이다. 자기는 왕에게 잘 보여 떡 먹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제사장 노릇을 하니까, 아모스도 그런 줄 안 것이다. 너도 권력을 잡으려고 이러는 것이지, 너도 돈을 벌려고 이러는 것이지 하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아마샤의 수준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또한 아마샤는 벧엘의 제단을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이라고 보았다. 여기는 왕의 권력이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곳을 정치적인 힘을 쓰는 곳으로 보았지,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는 생각이 없었다. 똑같이 제사를 드리고 제사장이 제사를 드려 주지만 그 제사는 완전히 정치적인 목적의 것이었고, 아마샤는 자신을 권력을 유지시켜 주는 장소라고 생각했고, 왕은 그의 지지자라고 생각했다. 이것을 거꾸로 추정해 보면 북쪽에는 참된 영적 지도자가&amp;nbsp; 없었던 것이다.&amp;nbsp; 제단에서 권력과 돈을 얻기 위해 제사를 드려 주는 제사장만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종이 없어 당신의 백성이 망하게 되었으니 살리시려고 호세아를 들어서 쓰시고 또 아모스를 보내셨는데, 아마샤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전승에 따르면 아모스는 벧엘에서 회개를 외치다가 결국 아마샤(또는 그 아들)에게 몽둥이로 맞아 순교(殉敎, martyrdom)했다고 한다. 고로 아모스는 지혜롭게 말씀을 전하되, 권력자의 분노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던 선지자였음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선지자가 아니었던 아모스는 어떻게 환상을 보는 선견자가 되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아모스는 원래 선지자의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는가? 7장 14절에 보면, 아모스는 그러한 자가 아니었다. 그는 말하기를 &amp;quot;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amp;quot;라고 말했다. 선지자의 아들이란 선지자 학교에 들어가 공부해서 결국 선지자가 된 사람을 가리킨다. 엘리야 시대에 선지자의 제자들이 많이 생겨났고, 엘리사 시대에 이르러 그들이 엘리사 밑에서 무리를 이루어 공식적으로 배운 것이다(왕하 2:3; 6:1). 다시 말해 선지자학교가 있어서 그곳에서 선지자들을 배출해 낸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되려면 선지자 학교에서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해야 선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모스는 선지자 학교에서 훈련받은 사람이 아니었다. 돌무화과나무를 재배하여 거두어 판매하고, 양 떼를 목축하여 판매하던 사람이었다. 고로 그의 말은 &amp;quot;나는 신학교를 나온 사람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amp;quot;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북이스라엘의 선지자 노릇을 하게 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그때 아마샤는 그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는가? 그는 그를 선지자(先知者, prophet)를 뜻하는 나비라고 부르지 않고 선견자(先見者, seer)라고 불렀다. 선견자는 미리 보는 자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환상을 보지 않고도 예언할 수 있다. 그러나 선견자는 환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마샤가 그를 선견자를 뜻하는 &amp;#39;호제&amp;#39;라고 부른 것은 아모스가 환상을 보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실제로 아모스서에는 그가 본 환상이 무려 다섯 가지나 나온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 번째는 7장 1-3절의 &amp;#39;메뚜기 환상&amp;#39;이다. 메뚜기가 와서 북이스라엘을 다 먹어 치울 것이라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보여 주신 환상이다. 두 번째는 7장 4-6절의 &amp;#39;불 환상&amp;#39;이다. 도시가 다 불에 타 버릴 것이라는 환상이다. 그런데 이 첫 번째와 두 번째 환상에서는 아모스가 살려 달라고 간구하자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그것을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암 7:3, 6). 하나님께서 그나마 북이스라엘에게 주의 종의 청원을 들으시고 마지막 긍휼을 베푸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세 번째는 7장 7-9절의 &amp;#39;다림줄 환상&amp;#39;이다. 하나님께서 이 도시를 멸망시키려고 다림줄로 재고 계심을 뜻한다. 그렇다. 언제 그 나라를 심판하실지를 재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 환상부터는 하나님께서 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이제 벌하시겠다고 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네 번째는 8장 1-3절의 &amp;#39;여름 과일 환상&amp;#39;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암 8:2 그가 말씀하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이르되 여름 과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름 과일은 히브리어로 &amp;#39;카이츠&amp;#39;(קַיִץ)이고 끝은 &amp;#39;케츠&amp;#39;(קֵץ)다. 두 단어는 같은 자음으로 되어 있고 모음에 따라 달라진다. 하나님은 여름 과일이 다 거두어져 싹 없어지는 환상을 통해, 언어유희로 이스라엘에 &amp;#39;끝&amp;#39;이 이르렀음을 보여 주신 것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9장 1-4절의 환상이다. 그것은 주께서 제단 곁에 서서 그 제단을 허물어 버리시는 환상이다. 그렇다. 아모스는 환상을 보는 예언자였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 사람이 부름을 받기 전에 예언을 해 보았을까? 또한 환상을 보았을까? 아마도 그러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 쓰실 때부터, 아모스 1장 1절 말씀처럼 이상으로 말씀을 받기 시작했다. 계시를 받은 것이다. 그렇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그 사람을 진짜 이 땅에 쓰시려고 보내셨으면 즉시 즉시 초자연적인 역사가 그에게 달라붙는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달라붙고, 환상을 볼 수 있는 능력도 주어진다. 그러나 내가 주의 종으로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수고해도 그러한 은사와 능력이 달라붙지 않는다. 주의 종들에게는 이런 특징이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래서 내 조상들이 어떤 조상들이었는지도 매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내 조상으로부터는 일반 은사(恩賜, gift)가 내려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께 부름을 받으면 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특별한 은사가 달라붙는다. 능력이 붙고, 축사의 은사가 붙고, 환상의 은사가 붙고, 예언할 수 있는 은사가 붙는다. 분별력의 은사,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도 달라붙는다(고전 12:8-10). 고로 아모스가 선견자로 불리게 된 것은 원래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하나님께서 사역을 맡기실 때부터 그에게 환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때를 따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알려 주신다. 네가 이런 일을 해야 하니 이런 것이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원래 글을 가르치는 서당 훈장의 가문의 후손으로서 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그래서 필자는 그쪽 방면으로 쓰임받을 줄 알았고, 교육 목회를 통해 대한민국을 바꾸어 보겠다는 생각을 품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성경 공부를 많이 시켰다. 그런데 성경 공부를 통해 최종적으로 찾아낸 것은 &amp;#39;회개&amp;#39;의 중요성이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회개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마 4:17, 계 22:15). 그래서 필자는 7년 동안 오직 이 회개만을 외쳤다. 그런데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회개하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회개해야 천국에 가는데, 천국은 저 멀리 있고 지금 내 삶이 어려워 죽겠으니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7년을 외쳐 보았지만 사람들이 별로 따라 주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다음 2차 작전으로 돌입하셨다. 그것이 바로 코로나다. 코로나로 말미암아 드디어 사람들이 유튜브로, 영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필자는 2020년 6월, 한 사건을 통해 비로소 영적 세계의 사역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영적 사역 쪽에 들어와 환상을 보고, 능력을 행하고, 축사하고, 병을 고치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달라붙게 되었다. 오라고 하지 않아도 온다. 살겠다고 더 먼 곳일지라도 찾아온다. 이런 일은 필자에게 이전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이미 그것을 예정해 놓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때가 되자 필자를 불러내셨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은사를 붙여 주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하나님의 사역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사역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더욱더 두려움과 떨림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하나님께서 아모스를 쓰신 이유는 무엇이며, 그 이름은 무엇을 말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아모스에게는 선지자로서 장차 부름받아 쓰임받는 사명이 이미 있었을 것이다. 필자가 천국에서 확인한 바, 아모스는 144,000명의 보좌 가운데 일곱 번째 줄의 보좌에 앉아 있는 엄청나게 높은 지위를 가진 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에 가서 회개를 외치는 사명을 주어 이 땅에 보내셨다면, 처음부터 선지자 학교에 보내어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는 것이 더 좋지 않았겠는가? 어릴 때부터 선지자 학교에 들어가서 예언하는 법, 환상 보는 법, 말하는 법, 선포하는 법, 그리고 율법을 배우는 것이 더 낫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돌무화과를 거래하는 일과 목축을 거래하는 일을 하게 하셨다. 시골에 살았지만 일종의 큰 거상으로 일하게 하셨던 것이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살게 하신 것일까? 왜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불러내어 직무를 맡기셨을까? 그리고 또 왜 북쪽 사람이 아닌 남쪽 사람인 그를 데려다가 쓰셨던 것일까?&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이 사람 곧 아모스를 쓰시려는 뜻은 이미 그의 아버지 때부터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아모스라는 이름에서부터 그의 사역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히브리어에서 아모스라는 이름은 &amp;#39;짐을 지고 있는 자&amp;#39;라는 뜻이다(아마스, עָמַס, 짐을 싣다). 하나님은 북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짊어지고 갈 사람, 정치적인 거물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은 그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그 일을 위해 배포가 큰 사람으로 그를 조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가 그냥 시골에서 뽕나무나 재배하다가 양떼나 치던 사람이었다면 벧엘의 아마샤 앞에 가서 그는 주눅이 들어 말도 못 꺼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모스를 쓰시려고 배포가 큰 사람으로 살게 하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한 아모스는 엄청나게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에 주변 나라들이 멸망한다고 먼저 말할 줄 알았다. 그러나 벧엘의 제사장인 아마샤가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리고 그는 글도 엄청나게 잘 쓰는 문장가였다. 왜냐하면 아모스서에는 문학적인 표현이 대단히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amp;quot;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amp;quot;는 5장 24절도 엄청나게 멋있는 문학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이 뽕나무나 재바하고 양 똥이나 치유는 무식쟁이였다고 말하면 안 된다. 그는 비록 시골에서 살았지만 상당히 지혜롭고 유식했던 사람이었다. 압살롬을 데려오기 위해 쓰임받았던 드고아의 지혜로운 여인처럼, 아모스도 그 동네에서 공부를 꽤나 잘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아모스는 엄청나게 온유했다. 남쪽 유다 사람이 북쪽에 왔는데도 사람들이 그를 바로 내치지 않을 정도로 말을 참 잘했다. 혈기와 분노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대언한 대쪽 같은 사람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모스를 쓰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네 가지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d35400;&quot;&gt;첫째, 아모스는 돈이나 명예나 인기나 권력을 탐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lt;/span&gt;이다. 그렇다. 주의 사역자는 돈과 명예와 인기를 얻으려는 욕심으로 일하지 않아야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다. 아모스는 가난해서 돈을 벌려고 북쪽에 온 것이 아니었다. 권력을 누려 보려고 온 것도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께서 파송하셔서 온 것이다. 그는 이미 남쪽에 있을 때에 권세도 누려 보고 돈도 가져 보았던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가난한 자를 대변하러 온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d35400;&quot;&gt;둘째, 아모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는 겸손함이 있었기 때문&lt;/span&gt;이다. 옛날부터 선지자 학교를 나왔다면 그에게도 약간 우쭐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모스는 나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들어 쓰셨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의 말씀만 그대로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d35400;&quot;&gt;셋째, 아모스는 예상외로 유식하고 지혜로웠으며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lt;/span&gt;이다. 그가 쓴 글을 보면 생각보다 유식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가 부름받은 이후에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정도였다는 것을 보면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요 기도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lt;span style=&quot;color:#d35400;&quot;&gt;넷째, 아모스는 그 이름의 뜻대로 짐을 지고 갈 수 있는 자였기 때문&lt;/span&gt;이다. 그는 자기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며 그것을 끝까지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책임을 완성하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는 마음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순교까지 한 것 같다. 그랬다. 아모스는 하나님이 그에게 짊어지게 하신 짐이 있었지만, 그 짐을 무겁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권력자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기쁨으로 자신의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도 아모스 선지자처럼 이렇게 말씀하셨다(마 11:28).&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리고 시편 기자도 이렇게 말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시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 우리가 짐을 맡길 대상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그 짐을 맡기셔도 기쁘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모스는 아마샤라는 엄청난 거물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쓰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고 본다. 고로 하나님은 욕심 없이, 겸손히, 지혜롭게 기도하며 끝까지 짐을 지는 사람을 당신의 종으로 쓰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모스서를 이용하여 아모스가 가난한 자의 대변자였다고 말하는 것은 틀렸다. 아모스는 가난한 천민이 아니라 양떼를 사고파는 목축업자요 돌무화과를 대규모로 거두는 부유한 농부였다. 그는 가난한 자의 편에 서서 부자를 없애자고 외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 부르시는 북이스라엘을 살리시려고 보내신 하나님의 종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자세히 나눌 것이다. 또한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이용한 3장 7절도 하나님의 종 선지자가 어떤 선지자여야 하는지를 말해 주는 말씀이다. 이것도 다음 시간에 계속 이어서 살펴볼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번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과연 어떤 사람을 당신의 종으로 쓰시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날 때 하나님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amp;#39;일반 은사&amp;#39;를 주시고, 직분을 맡았을 때에는 그 직임에 따라 성령의 &amp;#39;특별 은사&amp;#39;를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나의 분량과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빨리 파악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충성의 일에 동참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늘나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자신을 과장하여 허풍을 떨면서 일하다가 잘못된 길을 가서는 안 된다. 또한 이미 주어진 것이 있는데도 게을러서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일을 맡기시려고 누군가를 통해 부르실 때 빨리 응답하자.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일을 맡기실 때에는 우리에게 어떤 자질이 필요한지를 아시고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일을 맡기실 때에는 거기에 합당한ㅇ 영적인 은사도 붙여주시기 때문이다. 송아지를 섬기던 북이스라엘을 향해서, 너희는 내 백성이라 하시며 끝까지 예비된 당신의 종을 보내신 하나님께서 지금은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아모스처럼 맡겨 주신 짐을 기쁨으로 지고 끝까지 걸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27일(화)&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서와 그리스도의 예표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47adce98ed342c3fa542d537fcd14686.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d4ac88f695761793074ef98e525cc21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c074454111fc6bd1b4584b3abeb3548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6ff4e2eeb59eee63c83d1588cf4b68d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049bfc22937533aac056ea8b0620448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5a9e92ce8a1162fad5984b4442f11db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4147486129b084c5c09453aa15b7c60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dbe4bbed9a4ad10c56288b04e04210c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6900981e875105ea25258494f481484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f9174cfe07b5c78a03f873945c00765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4020c08196ad9f5aac599422c0d9189f.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b4f403ae45ab59dd1f79b6ac2a41a05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13e3e9caf2521ced78eeee85cd2cc86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The_Amos_Dossier.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b2aa5866a0a3b4cbbec40bd7d8ffd5f0.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_선지자를_쓰신_이유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10d6edde09aac4c7154c4752b083e65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_선지자의_오해와_진실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80cd5fe140edf3f6d99c48c10a4fb464.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207bd4dc9f8b9acce13a50225ef92e5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be997237437a24678bed5e32dd3d28d0.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690430c167383fad4e9e4fbcc06a001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075b61b7885f0834e94cbd17d37e3ec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3b4ae8df6a854c44c53248f9b515fbe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67aae92478756a73eab619cc77a97e0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87ef9dfe07fbeb99c35d60114c813b87.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78968b727a59de27efcbc06a8a31509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1871cbadd4ea591cc32eefe72079111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58aa745d7f0bdb8b5565cc83ca965f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8b60ccf1ad5a3f9271edf68095be1446.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50b116391697b3e043514401299e0fd1.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09a550f0df87f965f0b957ee4ec967e9.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기독론(222)] 아모스의_재발견.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60/331/ac02da0cfe4771a6cd48e92a450ad793.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아침묵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dongtanms.kr/morning_qt/331160</guid>
	<comments>https://dongtanms.kr/morning_qt/331160#comment</comments>			<pubDate>Tue, 27 Oct 2026 12:46:19 +0900</pubDate>
		</item><item>
			<title>[온라인새벽기도회(2026.10.26/월,새벽5시반] [바른 구원(02)]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지는 이유와 그 싯점은 언제인가?(출32:30~35)</title>
			<link>https://dongtanms.kr/morning_qt/331104</link>
				<description>&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바른 구원(02)]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지는 이유와 그 싯점은 언제인가?(출32:30~35)&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p&gt; &lt;p&gt;https://youtu.be/R3DRZpyYgEo&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R3DRZpyYgEo?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구원의 확신과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조건&lt;/strong&gt;에 대한 목회적 가르침을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로, 진정한 구원은&amp;nbsp;&lt;strong&gt;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lt;/strong&gt;&amp;nbsp;시작되며, 이때 신자의 이름이&amp;nbsp;&lt;strong&gt;하늘의 생명책에 기록&lt;/strong&gt;된다고 설명합니다. 둘째로,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 하나님의 선물이나, 신자가&amp;nbsp;&lt;strong&gt;지속적인 범죄와 불순종&lt;/strong&gt;&amp;nbsp;속에서 회개하지 않고 은혜를 등한시한다면&amp;nbsp;&lt;strong&gt;살아있을 때라도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수 있음&lt;/strong&gt;을 경고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므로 인간에게는&amp;nbsp;&lt;strong&gt;믿음을 지키고 죄를 즉시 회개할 책임&lt;/strong&gt;이 있으며, 철저한 회개를 통해 돌이킬 때만이&amp;nbsp;&lt;strong&gt;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와 영원한 구원&lt;/strong&gt;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lt;strong&gt;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때&lt;/strong&gt;는 언제이며, 그 기준은 무엇인가?&lt;br /&gt; 2. 구원이 전적인 은혜라면 왜 &lt;strong&gt;인간에게 책임&lt;/strong&gt;이 있는가?&lt;br /&gt; 3. 한 번 주신 구원이 &lt;strong&gt;영원한 구원&lt;/strong&gt;이라는 말은 어디까지 맞는가?&lt;br /&gt; 4. &lt;strong&gt;출애굽과 광야 여정&lt;/strong&gt;은 우리의 &lt;strong&gt;구원 과정&lt;/strong&gt;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br /&gt; 5. &lt;strong&gt;금송아지를 만든 일&lt;/strong&gt;은 왜 그토록 큰 죄였는가?&lt;br /&gt; 6.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은 &lt;strong&gt;생명책&lt;/strong&gt;에 대해 무엇이라 답하셨는가?&lt;br /&gt; 7. &lt;strong&gt;이름이 지워지지 않으려면&lt;/strong&gt; 징계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바른 구원(02)&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지는 이유와 그 시점은 언제인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출 32:30-35)&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야 천국에 간다. 이것은 확실하다. 그러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 그런데 생명책에 기록되었던 이름이 지워지면 어떻게 되는가? 그 역시 천국에 가지 못한다(계 3:5). 그렇다면 한 번 기록된 이름이 지워졌다가 다시 회개하면 다시 기록되어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이 문제를 정확히 정리해야 한다. 그럼,&amp;nbsp;사도 바울은 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말하지 않고 어떻게 말했을까?&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믿음과 회개로 천국에 간다고 정의한다. 왜냐하면 믿는다 하더라도 죄를 짓게 되기 때문이고, 그 죄가 쌓이면 구원이 취소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자발적인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 우리 속에 귀신이 있어서 유혹하여 넘어가기 때문이다. 사람 안에 성령이 계시면 그 유혹을 버텨낼 힘이 있겠지만, 성령이 계시지 않으면 버틸 힘이 없어서 우울증과 중독에 빠지고 만다. 그런데 구원받을 때에는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온다. 그래서 내 안에 전쟁터가 된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은 뒤에도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생&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때와 그 기준은 무엇이며, 기록된 이름이 지워지는 이유와 그 시점은 언제인지를 출애굽기 32장에서 모세가 드린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을 통하여 살펴보고자&lt;/strong&gt;&lt;/span&gt;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때는 언제이며, 그 기준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구원을 받는가? 우리가 거듭날 때 받는다. 정확히 말하면 성령이 내 영 안에 들어오실 때 구원을 받는다(요 3:5-6).&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3:5-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사람에게는 두 번의 출생이 있다. 먼저 부모를 통하여 육체로 태어나는 출생이 있고, 그다음에 영으로 또 태어나는 두 번째의 출생이 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육신의 부모가 있고 영의 부모가 있는 것이다. 태어난다는 것의 의미는 다른 것이 아니라 부모의 생명이 나에게 분배되는 것이다. 거듭남도 마찬가지다. 육체가 그렇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생명을 분배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거듭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분이 A.D.30년 오순절 이후의 보혜사 성령이시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 속에 성령을 넣어 주시고 계신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고전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에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살려 주는 영 곧 생명주는 영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 그러면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하늘에 있는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왜 많은 이름 가운데 &amp;#39;생명책&amp;#39;이라고 부르는가? 천국에 들어갈 것인지의 여부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천국은 오직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가 믿어서 하나님의 생명이 분배되면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는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없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주는 영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셔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오순절 이후 예수께서는 생명을 주는 영이 되시어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신다(계 3:20). 이때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그분을 받아들이면 그분이 내 안에 들어오신다. 문을 여는 것은 사실 우리의 몫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인 분이기 때문에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으신다. 이때 성령이 들어오시게 하려면 반드시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어 영접해야 한다(롬 10:9-10, 요 1:12).&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성령께서 생명을 가지고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그 순간 하늘의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는 것이다. 그런데 믿는 순간에 반드시 성령이 들어오시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믿음과 동시에 들어오시기도 하지만, 믿은 뒤 한참 후에 성령이 들어오시기도 한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지만 아직 성령이 들어오지 않아 생명이 없는 채로 교양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곧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의 하나는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는 순간 수호천사가 2명이 되는 것이다. 필자가 생명책과 구원 여부를 조사해 보니, 아직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수호천사가 없었고, 기록되었다가 살아 있는 동안 지워져 버린 사람에게도 수호천사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 천사들은 우리의 상태를 알려 주는 바로미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생명책은 천국에 있는 어떤 큰 건물 안에 보관되어 있다. 그 건물에 엄청나게 많은 생명책이 진열되어 있는데, 거기에 우리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어야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구원이 전적인 은혜라면 왜 인간에게 책임이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마음의 문을 열어 그분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자유의지다. 하나님께서 무턱대고 &amp;quot;너를 구원시켜야 되겠다&amp;quot; 하시며 강제로 들어오시는 법은 없다. 그런데 예정론은 이 자유의지를 아주 무시해 버렸다. 천국에서 그 사람을 구원하기로 예정했으면 그 사람은 구원받고, 예정하지 않았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이중 예정론(二重豫定論, double predestination)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셔서 선행적 은총을 베풀어 주시지만, 사람이 스스로 거부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만약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대로 어떤 사람은 구원받고 어떤 사람은 멸망으로 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실 수 없다. 멸망으로 예정해 놓고 &amp;quot;너는 지옥에 가라&amp;quot; 하시면 그 사람이 심판 때에 따지지 않겠는가? &amp;quot;왜 당신은 나를 구원으로 예정하지 않고 멸망으로 정하셨습니까?&amp;quot; 그러면 하실 말씀이 없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도 있는 것이다. &amp;quot;내가 너에게 구원의 기회를 얼마나 많이 주었느냐? 그런데 네가 거역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너의 운명은 네가 결정한 것이다.&amp;quot; 그때 우리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지옥에 마땅히 들어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심판을 하시려면 반드시 우리에게도 책임이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한 모든 준비는 하나님께서 다 해 놓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는 구원은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 없이 구원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주님께서 전적으로 준비해 주신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그 구원을 우리가 등한히 여기면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히 2:3).&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히 2: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정론을 주장하는 사람 가운데 자기가 영원한 멸망으로 예정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필자는 한 명도 본 일 없다. 모두 자기는 구원으로 예정되었다고만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만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반대편에는 공의가 있다. 공의를 빼면 안 된다. 공의를 빼면 악을 심판하실 수 없고 사탄을 심판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공평하게 &amp;quot;구원을 위한 만반의 준비는 내가 다 해 놓았다. 그러나 그것을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네가 선택하라&amp;quot;고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극적이어야 한다. 기도하러 나오는 것도, 말씀을 듣는 것도, 회개하는 것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그냥 살아서는 안 된다. &amp;quot;내가 너에게 분명히 기회를 주었는데 왜 하지 않았느냐?&amp;quot; 하시는 말씀이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어떤 사람은 로마서 8장을 들어 이렇게 말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롬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하시면 그 사람을 끝까지 놓으려 하지 않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을 때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지켜 주신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손을 놓아 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롬 8:26) &amp;quot;그렇게 살면 안 된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amp;quot; 하고 계속 우리에게 경고하신다. 그렇게 많이 말씀하셨는데도 그 음성에 순종하지 않아서 결국 멸망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우리에게는 책임이 항상 따른다. 그래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빌 2:12).&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한 번 주신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는 말은 어디까지 맞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성령이 들어오셔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그 이름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가?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은 예정론 쪽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으로서, &amp;#39;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amp;#39;이라고 믿는 믿음에서 그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이 말은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지만 틀린 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영원히 구원받으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영원히 구원받으라고 주신 것이지, 빼앗아 가려고 준비하고 주신 것이 결코 아니다. 조금 그를 살펴보다가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웠다가 다시 썼다가 하려고 주신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 것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그 구원을 등한히 여기고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성령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죄를 짓는다면, 특히 현저하게 죄를 짓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 구원에서 제외시켜 버리신다. 영원한 구원으로 주신 것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생명책에서 지우실 것인지 말 것인지를 훗날 결정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영원히 구원받으라고 주신 구원을 우리 스스로 놓쳐 버리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생명책에서 이름은 언제 지워지는가? 대부분은 죽을 때 지워진다. 성령께서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죽는 날까지 그를 책망하시기 때문이다. &amp;quot;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건 잘못된 것이다. 빨리 돌이켜야 한다.&amp;quot; 그런데도 돌이키지 않으면 죽을 때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우신다. 그러나 살아 있을 때 지워지는 사람도 간혹 있다. 필자는 예전에 이것을 제대로 몰라서 죽을 때 지워진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amp;#39;영적 전투&amp;#39; 설교를 하면서 생명책이 어떻게 지워지는지 조사하다가, 죽을 때 지워지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육체가 살아 있을 때에도 지워지는 사람이 간혹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성경에도 그것이 나와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특히 타락한 사역자들이나 목사들은 살아 있을 때에도 지워진다. 평신도는 그렇게까지 쉽게 지우지 않으시는 것 같은데 목사들은 지워 버리신다.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가르침과 사역이 계속 예수의 이름으로 교회나 집회라는 이름 안에서 시행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야고보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라고 말했다(약 3:1). 생명도 없는 사람, 이미 지워진 사람이 가르치는 것, 또는 죄를 계속 지으면서 생명을 전하고 구원받으라고 하는 것은 가증한 일이다. 그런 자는 지워 버리시고, 다시는 회개할 기회도 주시지 않으신다. 이것은 히브리서에 잘 나온다. 그러므로 함부로 지도자가 되지 말라. 지도자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천국 상황을 말씀드리자면 평신도가 구원받는 것보다 주의 종이 구원받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반면에 생명책에 아예 기록되지 않은 사람, 곧 교회에 다니지만 아직 성령이 들어오지 않은 사람에게는 구원받을 기회가 있다. 그러나 한 번 생명을 받아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며 살면서도 성령의 계속된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지워진 사람은 생명책에 그 이름이 다시 기록되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출애굽과 광야 여정은 우리의 구원 과정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언제 지워지는지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말하는가? 그것은 출애굽기 32장에 나와 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우리 구원의 여정에 관한 정확한 샘플이다. 애굽의 바로 왕은 사탄과 세상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나옴으로써 사탄과 마귀의 포로에서 나와 1차적 구원을 받은 것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광야를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죽이려고, 다시 말해 구원을 잃어버리게 하려고 그들을 데려오신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서(출 3:6)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데려가시려고 데리고 나오셨다. 그들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인하여 죽지 않고 애굽에서 나왔고 홍해를 건너 세례를 받았다. 성막으로 보면 번제단과 물두멍을 통과한 것이다. 그리고 광야에서 성소의 일곱 금 촛대인 성령의 인도와 분향단의 기도와 떡상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 교회생활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요단강, 곧 우리 육체의 죽음을 건너야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무 범죄도 하지 않은 사람을 광야에서 죽이시겠는가? 하나님의 목적은 영생을 주시는 것이지 멸망이 아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영원히 구원받으라고 주신 구원이다. 구원을 주셨다가 빼앗았다가 하는 등의 장난처럼 주신 것이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광야로 데려다 놓았더니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싫다고, 애굽이 더 낫다고, 애굽의 음식이 더 맛있다고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 예수를 믿고 사는 것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왜냐하면 교회 생활이 곧 광야 생활이기 때문이다. 한 번 생각해 보라. 우리가 한 번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도록 귀신이 가만히 놔두겠는가? 어떻게든 실족시켜 떨어뜨리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나를 데려가시려고 예수님을 믿도록 인도하셨으니, 내 인생이 힘들고 어려워도 끝까지 믿고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믿음이 내게도 필요하다. &amp;quot;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하셨으면 어떤 어려움과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헤치고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것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겪고 어려움과 고통은 일시적인 것뿐이다. &amp;quot; 이러한 믿음으로 사는 자가 결국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출애굽 1세대들은 불평하다가 38년간 광야에 살다가 죽었는데 이들 전부가 다 지옥에 들어갔는가?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광야에 나온 모든 사람이 다 범죄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들 중 열 명의 정탐꾼과 정탐꾼을 따르는 무리들이 범죄한 것이다. 그렇다면 출애굽 1세대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그들은 어마어마한 액수의 예물을 자발적으로 드려 성막을 지은 사람들이다. 너무 많이 가져와서 그만 가져오라고 할 정도로 많이 가져왔다(출 36:5-7). 그러므로 광야에 나온 출애굽 1세대들은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도 있었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자들을 따르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들도 있었다. 그래서 광야에 나왔던 사람 가운데 일부는 지금도 천국에 가 보면, 14만 4천에 들어 보좌에 앉아 있는 이들도 있다. 다 지옥에 간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각자의 믿음으로 된 것이다. 우리도 &amp;quot;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낫겠다&amp;quot;고 외쳤던 지휘관을 따라 그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하나님을 믿을 것인지는 각자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떤 교단에 소속되어 있느냐가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것이 아니다. 교단이 어떤 교리를 가지고 말하든지, 그것이 성경 말씀에 어긋난 것이라면 그것을 따라가지 않으면 된다. 필자는 목사가 된 지 30년이 되었지만 교단이 필자에게 무엇을 믿으라고 강요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소속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다고 아들의 이가 실 필요가 없다(겔 18:2). 끝까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믿음을 지켜 하나님의 뜻대로 산 사람은 천국에 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금송아지를 만든 일은 왜 그토록 큰 죄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금송아지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애굽에서 살 때에 눈에 보이는 신을 섬겼기 때문이다. 특별히 애굽의 소 신(아피스&amp;middot;하토르)을 섬겼던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숫자만 많아졌을 뿐(출 1:7)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자고 했다. 그들은 다른 신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 곧 엘로힘을 송아지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의 세계에 계신 분이다. 그런데 어떻게 물질로 만들 수가 있는가? 그래서 우리에게는 실수하지 않도록 십계명의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출애굽 1세대들은 광야에서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광란의 춤을 추었다. 그러자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사람은 누구나 어떤 형상을 만들어 놓으면 그것을 신격화하고 빌고 음식을 차려 놓고 촛불을 켜 놓고 거기에 절을 한다. 우상은 나무를 깎아서 금박을 붙여 놓은 것에 불과한데 사람들이 거기에 절을 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그렇게 해 보니 어떤 효험이 있고 영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자꾸 나무에 절을 하니 귀신들이 와서 달라붙어 있다가 어떤 일을 해 주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신이 자기의 기도에 응답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 귀신이 장난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상을 만들어 절하면 안 된다. 사람이 절을 하면, 그 형상은 신이 아니지만 그 뒤에 있는 악한 영이 신 노릇을 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우리가 드리는 제사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차려 놓고 신주와 위패를 놓고 절하면 원래는 없던 영이 그곳에 오는데, 그것은 자기 조상이 아니라 귀신이다. 귀신이 와서 조상 흉내를 내는 것이다. 필자가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의 방, 곧 조상 귀신 역할을 하는 귀신의 방을 확인해 보니,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양을 하고 있는 귀신들이 돌아가신 분의 영정 사진을 벽에 붙여 놓고 그 얼굴 모양을 흉내 내기 위해 꾸미고 있었다. 그런데 100% 똑같이 흉내 내지는 못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은 &amp;quot;어, 이건 좀 다르다&amp;quot; 하면서 눈치채기도 한다. 불신자인데도 불구하고 &amp;quot;이분은 우리 조상이 아닌데&amp;quot; 하고 알아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은 진짜 조상이 오셨다고 착각한다. 이것은 무당을 찾아가도 발생하는 일이다. 무당은 굿을 신청한 사람과 자기의 돌아가신 어머니만 아는 추억, 예를 들어 장롱 속에 돈다발을 넣어 둔 일 같은 것을 말해준다. 그러면 &amp;quot;어머니가 오셨구나&amp;quot;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귀신은 그간 어머니의 일을 다 지켜보고 있던 놈이었다. 그러므로 귀신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로 그의 후손들을 감쪽같이 속이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출애굽 후 1세대들이 절대 만들지 말라고 했던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서 광란의 춤을 춘 것은 큰 죄 중의 죄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로 다 죽게 생겼다. 그러자 모세가 먼저 하나님 대신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했다. 그래서 하나님 편에 선 자들은 자신을 따르라고 했다. 그랬더니 레위 자손이 합류했다. 그러자 모세는 광란의 춤을 추고 있는 자들을 치게 하였다. 그래서 그날 레위 자손들은 자신의 형제들을 쳐서 삼천 명가량 죽였다(출 32:28).&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은 생명책에 대해 무엇이라 답하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상태에서 모세는 이 죄를 어떻게 하나님께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하면서 하나님께 올라갔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32:31-32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때 모세는 백성을 살려 보려고 하나님이 거부할 수 없는 주장을 내놓았다. 아마도 모세의 영의 나이가 22세로 높았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영의 나이가 큰 사람은 포부가 크고 그릇이 크다. 그러나 반대로 영의 나이가 적으면 속이 좁아 자꾸 삐지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다. 그리고 무슨 말을 들으면 이전과는 완전히 뒤집힌 말도 따라간다. 그러나 영의 나이가 큰 사람은 무슨 말을 들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배포가 컸던 모세는 하나님께 담판을 지어도 세게 지었다. &amp;quot;주여, 이 백성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만약 이 백성을 용서하지 않으시려면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주옵소서.&amp;quot; 이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청원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여기서 생명책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이때 모세가 자기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달라고 한 것은 그의 이름이 이미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반응하셨는가? &amp;quot;그래, 네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고 이 백성을 살리겠다&amp;quot;고 하지 않으셨다. 모세가 자신의 이름을 지워 달라는 청원에 응답하지 않으셨다. 필자는 그것이 사람의 이름이 한 번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가 다시 지워지면 다시는 기록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모세에게 말씀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즉 사람이 범죄하면 지워 버린다고 하셨다. 이 말은 꼭 죽을 때 지운다고 하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 한 번 구원받은 자 속에 들어오신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중보하신다. 그래서 &amp;quot;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언젠가는 회개할 것입니다. 1년만, 2년만 기다려 주세요&amp;quot; 하시며 끝까지 떠나지 아니하시고 그를 붙잡아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죽을 때가 아니라 범죄할 때 지우신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천국에 가려면 죄를 지었으면 빨리 회개해야 한다. 회개하지 않고 있다면 큰 죄를 지었거나 죄가 너무 많으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물론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죄를 짓지 않고 살 사람이 아마도 없을 것이다. 빌립보서 4장에 보면, 빌립보 교회의 중직자였던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서로 심히 다투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들과 함께 복음에 힘쓴 그녀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고 했다(빌 4:2-3). 그 정도로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는가? 첫째는 주님을 부인할 때다. 둘째는 현저히 죄를 짓고 우상숭배와 같은 죄를 짓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서 다른 우상을 계속해서 섬기는 것, 예수를 믿으면서 무당을 찾아가는 것도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그리스도인이 적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예수님을 믿었던 자들이 신사참배를 하였다. 예수를 믿었으나 신사참배를 한 사람들 중에는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진 자가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함부로 예수를 믿다가 어려움이 왔다고 해서 예수를 안 믿는다고 주님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그 믿음을 지켜 내야 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한 번 믿은 것을 끝까지 지켜 내는 것이고, 회개란 지은 죄를 빨리 회개하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얼마 전에도 예수님을 잘 믿던 한 사람이 예수님의 은혜를 현저하게 무효로 만드는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실까? 아닐 것이다. 당장 지워 버리실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 번 생명책에서 삭제된 이름은 두 번 다시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한 번 지워지면 회개할 기회가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히브리서에 나오는 말씀인데, 그것은 다음 시간에 더 자세하게 살펴볼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이름이 지워지지 않으려면 징계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금송아지를 만든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셨을까? 용서는 하셨지만 그 죄에 대해 징계를 내리셨음을 알 수 있다. 왜 그랬는가? 그건 그들이 그 죄에 대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amp;nbsp; 송아지 우상숭배의 죄에 대해 그 뒤로 한 번도 회개했다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다른 방식을 취하셨다. 그것이 출애굽기 20장 5절의 방식이다.&amp;nbsp;&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32: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는 우상숭배의 죗값을 묻겠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상숭배의 죄는 심각한 죄이기 때문에 그 죄값을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이는 그들이 빨리 깨닫고 회개하라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즉, 자신에게 어떤 고통이 찾아올 때 빨리 돌이키려고 아픔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출애굽하면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를 때에 아마도 이스라엘 민족은 생명책에 그들의 이름들이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송아지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으니,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질 위기에 처한 것이고, 그것을 회개하라고 벌을 삼사대까지 묻게 하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그 죄값으로 인하여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늘날도 똑같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는데 죄를 짓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귀신을 통해서 질병과 가난과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뿐만 아니라 자녀에게도 문제가 생긴다. 그럴 때 빨리 &amp;quot;아, 내가 범죄해서 이런 고통을 당하는구나&amp;quot; 하고 재빨리 돌이키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 회개하지 않고 있다가, 어느 날 현저하게 죄를 지으면 그날로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처음부터 멸망으로 예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다. 우리가 범죄하고 거역해서 구원받은 자가 되었지만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모든 인류를 위해 예수님께서 죽으셨는데도 그 피를 믿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이 그 죄값을 자신이 받게 되어 불못에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 죄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 주셨는데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니 스스로가 그 죄값을 받게 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베풀어 주신 무한한 사랑에 감사하면서 빨리 무릎 꿇고 회개해야 한다. &amp;quot;하나님,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겼습니다. 잘못했습니다.&amp;quot; 이 한마디를 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신다. 돌아온 탕자를 보라(눅 15:11-32). 아들은 아버지가 살아 계신데도 아버지의 재산을 달라고 했다. 이는 아버지더러 빨리 없어지라는 말과 같다. 아직 성숙하지 않아 돈을 쓸 능력이 없는데도 그는 그 돈을 아버지께 받아내어 허랑방탕하게 썼다. 원문의 뜻대로 번역하면 돈을 마구 뿌리며 다 날려 버린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기근을 보내셨다. 그에게 일종의 간접 징계를 내리신 것이다. 그러자 그도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라도 배를 채우려 했으나 그것을 주는 자가 없었다(눅 15:16). 그때 그는 &amp;quot;아버지의 재산을 달라고 한 것도 나빴지만 그것을 허랑방탕하게 날려 버린 것은 큰 잘못이로구나. 아버지께 가서 용서를 빌자. 아들로 받아 주지 않으시면 품꾼의 하나로라도 받아 달라고 부탁해 보자&amp;quot; 하고 아버지께 돌아갔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눅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아버지는 &amp;quot;이놈의 자식, 내 말을 그때 들었어야지&amp;quot; 하고 단 한마디도 따지지도 않았다. 아들이 온다고 하니 버선발로 달려 나가 목을 끌어안았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 죄를 묻지 않으시고 용서해 주신다. 우리는 용서한다면서도 &amp;quot;이번 한 번만 봐준다&amp;quot; 하며 용서해 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지었던 무슨 죄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더 이상 그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든지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손에 가락지를 끼워 주시고 발에 신을 신기시고 옷을 입히시며 아들의 자리를 다 회복시켜 주신다. 그러므로 회개가 구원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성령께서 생명을 가지고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다. 그때 우리는 거듭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히 구원받으라고 영원한 구원을 주신다. 그러나 그 구원을 등한히 여기고 성령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신다. 대부분은 죽을 때 지워지지만, 주님을 부인하거나 현저하게 죄를 짓는 자, 특히 잘못 가르치는 지도자는 살아 있을 때에도 지워진다. &amp;quot;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amp;quot;(출 32:33)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죽을 때가 아니라 범죄할 때 지우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한 번 지워진 이름은 다시 기록되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순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했으면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목숨까지도 걸어야 한다. 그리고 죄를 지었으면 빨리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다. 우리는 믿음과 회개로 천국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께서 내게 질병이나 가난이나 어려움으로 징계하실 때, 우리는 그것을 회개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빨리 탕자처럼 아버지께 돌아가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해야 한다. 그래야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다.&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큰 구원으로 인도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결코 등한히 여기지 말고, 어떤 핍박과 환난이 닥쳐도 믿음을 지켜내며, 잘못했으면 즉시 회개하여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 구원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 끝까지 지켜, 천국에서 영원히 거주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25일(일)&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인포_생명책과 끝까지 지키는 믿음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ed8429051efe0cdcbec6a3b40f59e411.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3e03a77e6a1da48e599585d609641b2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79a805cc16e405a7dab603affb83722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feaa4af98f449b75d6e183235b9d9c5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b4fee3cf42c25b0ec6729743e4614a22.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5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8c08b73144730f813406252591a571c5.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6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7da769e39e6723450b3954c4d70f8e1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7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81744a06908f7f63187afc647402600c.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8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ad373dc8e2bcb137806c4ee9e37f626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9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4140c97030243e50986b6d7af694422e.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10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5ac4adc3b24e9df0876ce0f1662ab363.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11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2eb696a5a92f58978b9e9b268c6f54fd.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12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93d1d826e20bb52343748d71af50ab3b.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13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2a835a45e9a289e94473608307913cf8.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의_영적_법칙.pdf_14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8f62c2835995aecd837b3c565d89fc7d.webp&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과_구원의_원리_vora.jpg.webp&quot; src=&quot;https://dongtanms.kr/files/attach/images/16776/104/331/b4fbf5f770de04c1917e0bfdaf252424.webp&quot; /&gt;&lt;/p&gt; &lt;p&gt;&lt;img alt=&quot;[비른구원론(02)] 생명책에_기록된_구원의_지침_vora.jpg.webp&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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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아침묵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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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morning_qt/331104#comment</comments>			<pubDate>Sun, 25 Oct 2026 23:39:15 +0900</pubDate>
		</item><item>
			<title>[기독론(219)]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6) 불못(지옥)에 들어갈 자들 중에는 구원받았으나 탈락한 자들도 들어있는가?(욜2:32, 마25:41~46)_2026-10-22(금)</title>
			<link>https://dongtanms.kr/morning_qt/330879</link>
				<description>&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기독론(219)]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6) 불못(지옥)에 들어갈 자들 중에는 구원받았으나 탈락한 자들도 들어있는가?(욜2:32, 마25:41~46)&lt;/strong&gt;&lt;/span&gt;_동탄명성교회&lt;/p&gt; &lt;p&gt;https://youtu.be/uHUFTYR961o&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uHUFTYR961o?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설교핵심]&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nbsp;&lt;/span&gt;이 설교는&amp;nbsp;&lt;strong&gt;성경적 구원관과 종말론적 심판의 기준&lt;/strong&gt;을 다루며, 특히&amp;nbsp;&lt;strong&gt;신자라 할지라도 행함과 회개의 부족으로 인해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음&lt;/strong&gt;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만세전 예정설을 반박하며&amp;nbsp;&lt;strong&gt;조건적 견인과 구원 탈락의 가능성&lt;/strong&gt;을 주장하고, 천국 안에서도 세부적인 처소가 나뉘어 성 밖, 바깥 어두운 곳, 그리고 불못(지옥)으로 향하는 네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말만 앞세우고 섬김이 없었던&amp;nbsp;&lt;strong&gt;외식하는 자들과 지도자들&lt;/strong&gt;이 양의 탈을 쓴 염소처럼 심판받을 수 있음을 지적하며, 성도들에게&amp;nbsp;&lt;strong&gt;철저한 회개와 진실한 섬김의 삶&lt;/strong&gt;을 촉구하는 것이 이 메시지의 핵심 목적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lt;strong&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던지는 7가지 질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1. &lt;strong&gt;예정과 견인&lt;/strong&gt;을 살펴본 결론은 무엇이며, 구원에서 탈락한 자는 어디로 가는가?&lt;br /&gt; 2. &lt;strong&gt;성 안, 성 밖, 바깥 어두운 데, 불못&lt;/strong&gt;은 어떻게 다른가?&lt;br /&gt; 3. 요한계시록 22장 15절의 &amp;#39;&lt;strong&gt;개들&lt;/strong&gt;&amp;#39;은 누구이며, 왜 성 밖에 있는가?&lt;br /&gt; 4. 요한계시록 21장 8절이 말하는 &amp;#39;&lt;strong&gt;불못&lt;/strong&gt;&amp;#39;에 들어갈 자는 누구인가?&lt;br /&gt; 5. 마태복음 25장의&lt;strong&gt; 양과 염소 심판&lt;/strong&gt;은 언제, 누구를 심판하는 것인가?&lt;br /&gt; 6. &amp;#39;&lt;strong&gt;지극히 작은 자 하나&amp;#39;&lt;/strong&gt;는 누구이며, &lt;strong&gt;염소&lt;/strong&gt;는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lt;br /&gt; 7. 자신을 양이라 여기는 &lt;strong&gt;염소&lt;/strong&gt;는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돌이킬 수 있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219)&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6) 불못(지옥)에 들어갈 자들 중에는 구원받았으나 탈락한 자들도 들어 있는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욜 2:32; 마 25:41-46)&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욜 2:32).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처음부터 어떤 사람을 구원에서 차단해 놓고 지옥에 가라고 심판하시는 잔인한 분이 아니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이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 그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구원에서 탈락한 자들이 성 밖으로 가기도 하고, 성 밖에서도 더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기도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불못, 곧 지옥에는 예수를 믿지 않은 자들만 들어가는가? 예수를 믿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던 자들 가운데서도 불못에 들어가는 자가 있는가?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25장에서 양과 염소를 구분하시고 왼편에 있는 자들을 영원한 불에 들어가게 하셨다. 그런데 그 염소는 과연 불신자인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불못에 들어갈 자들이 누구이며, 그 가운데 구원받았으나 탈락한 자들도 들어 있는지를 요한계시록과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예정과 견인을 살펴본 결론은 무엇이며, 구원에서 탈락한 자는 어디로 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어떤 개인을 구원하기로 예정하셨다는 가정이 성경적인지를 살펴보았다. 성경은 단 한 번도 어떤 개인을 만세 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하였다고 기록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설이었다. 그래도 그것은 들어 줄 만하다. 그러나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영원한 멸망으로 예정하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하나님의 속성을 완전히 위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으로부터 처음부터 차단해 놓으시고 &quot;나는 의로우니 내가 차단했지만 너는 지옥에 가라는 심판을 달게 받으라&quot;고 하시는 잔인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문제를 교리로 만든 것이 도르트 총회(Synod of Dort, 1618~1619)의 무조건적 선택(無條件的 選擇, unconditional election)과 성도의 견인(聖徒의 堅忍, perseverance of the saints)이었고, 이것은 칼빈의 이중 예정설(二重豫定說, double predestination)에서 온 것이었다. 그런데 살펴보니 무조건적 선택이 아니라 무조건적 부르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다 부르신다. 다만 그 부르심에는 순서가 있었다. 유대인이 먼저요 헬라인이 나중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하나님의 예정의 핵심은 무엇이었는가? 누구를 구원하기로 하고 누구를 멸망하기로 정하는 것은 사람이 타락한 뒤에 나오는 과정이었다. 원래 하나님의 예정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양자가 되고 상속자가 되는 것이었다(엡 1:3-5; 3:6). 그 예정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선행적 은총(先行的 恩寵, prevenient grace)을 베푸셔서 죄인의 상태와 그 결과가 어떠한지를 알게 하시고, 그 상태에서도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시며, 구원받게 하시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나타내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지를 빼앗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존중하신다. 그래서 오늘도 마음의 문을 두드리신다(계 3:20). 하나님께서는 강제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잘못을 고백하기도 전에 용서하실 모든 것을 다 해 놓으시고 믿으라고 초청하신다. 이 얼마나 큰 사랑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우리는 위대한 신학자들이 말하니 그것이 맞는 것처럼 따라갔다. 왜 신학자를 따라가는가?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하고, 성경 말씀을 따라가야 하며, 성경 원어가 가르쳐 준 대로 따라가야 한다. 원어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판단할 때 아주 중요한 잣대가 된다. 헬라어 원문을 살펴보니 만세 전에 구원할 자를 예정했다고 말해 온 본문들은 번역이 왜곡되어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성도의 견인이 아니라 조건적 견인(條件的 堅忍)이었다. 끝까지 인내하는 자, 그 믿음을 지키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 바울이 &quot;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quot;(딤후 4:7)라고 고백한 것처럼 살아야 구원을 받는다. 요한계시록 22장 14-15절은 자기 두루마기를 빨아 죄를 용서받아야 성 안에 들어갈 권세가 주어진다고 말한다. 이 말씀은 불신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믿는 신자를 가리킨다. 믿는 신자라 할지라도 죄의 총량이 너무 많으면 죽을 때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면서(계 3:5) 성 밖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구원에서 탈락할 가능성은 두 가지다. 성 밖으로 가는 자가 있고(계 22:15), 불못에 떨어지는 자가 있다(계 21:8).&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성 안, 성 밖, 바깥 어두운 데, 불못은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동안 우리는 천국과 지옥만 있다고 들어 왔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 성 밖도 있고, 마태복음에는 세 번에 걸쳐 바깥 어두운 데가 나온다(마 8:12; 22:13; 25:30). 누가복음에도 비슷한 표현이 한 번 나오지만(눅 13:28), 정확한 표현은 마태복음에만 세 번 나온다. 천국(天國), 곧 하늘들의 왕국이라는 표현도 마태복음에만 나온다. 다른 곳에서는 상태로서의 천국을 말하지만, 마태복음은 들어가는 천국, 곧 장소로서의 천국을 말한다. 그 장소적 천국이 바로 새 예루살렘 성이다. 마태복음 25장 1-13절에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들어간 집이 아버지의 집이요 신랑의 집이며, 그것이 새 예루살렘 성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성 안에 들어갈 자가 있고 성 밖에 남겨질 자가 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성 밖에 남겨진 자다. 마태복음 25장 2절의 &#039;어리석은 자로 있었다&#039;는 미완료형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어리석은 자로 있어 왔다. 처음부터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고 등불만 들고 있었다. 등불만 있으면 신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분의 기름이란 무엇인가? 신랑을 사모하고 신랑만을 나의 신랑으로 맞이하기를 원하는 간절함의 표현이다. 거기에는 기도도 있고, 눈물도 있고, 정성도 있고, 사랑도 있고, 인내도 있고, 고난을 겪어 낸 것도 있다. 이것들이 모아져 주님께 보여졌을 때 &quot;합당하다&quot; 하시며 들이시지만, 그냥 성령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성 밖에 남겨질 확률이 매우 높다. 어떤 상태로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무지함이 우리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정확하게 들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을 충분조건과 필요조건으로 설명해 왔다. 여분의 기름이 있을 때가 충분조건이다. 그러나 설령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필요조건으로서 회개를 하면 들어갈 수는 있다. 성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도 주님 맞을 준비를 하지 못한 자는 죄된 본성과 귀신이 하나도 나가지 않은 채 예수를 믿는다. 그 때문에 죄를 지어 죄가 주렁주렁 많으니 성 밖에 남겨질 수밖에 없다. 천국 성 안에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하고 성 밖에 남겨지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내쫓기는 자들이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을 직역하면 &quot;그리고 너희는 쓸모없는 종을 더 바깥쪽의 어둠 안으로 내쫓으라. 거기서 울부짖음과 이들의 갊이 장차 있을 것이다&quot;이다. 쓸모없는 종은 26절의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열 처녀의 비유가 모든 성도들을 비유하는 표현이라면, 14-30절의 달란트 비유는 하나님의 종들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이마에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으로 인을 쳐서 이 땅에 보내신 14만 4천에 들어갈 자들이요, 장차 왕 노릇 할 자들이며, 천국에 가면 보좌에 앉아 통치할 자들이다.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적극적으로 일해야 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이 땅에 보내셨는데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성 밖이 아니라 더 바깥쪽의 어둠 안으로 간다. 그곳은 형벌의 장소다. 그러나 지옥은 아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있다가 지워진 자만 가는 곳이며 불신자는 가지 않는다. 손발이 묶이는 자도 있고 채찍에 맞을 자도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바깥 어두운 데에는 세 부류가 간다. 마태복음 8장의 나라의 본 자손처럼 민족적 사명을 받고도 완수하지 않은 자, 22장의 예복을 입지 않은 자, 그리고 25장의 달란트 비유처럼 개인적 사명을 받고도 망각하고 게을러 하지 않은 자다. 특히 무익한 종은 하나님을 굳은 사람이어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분으로, 마치 자기를 부려 먹는 고리대금업자처럼 여겼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다. 필자는 주님 앞에 쓰임받으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부려 먹으려고 부르셨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를 구원하신 그 은혜를 오늘도 갚지 못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리고 죄송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quot;당신이 나를 고용해서 일을 시킨 것이니 나는 안 하겠다&quot;는 것, 이것이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적극적으로 일하지 않는 주의 종들에게는 엄청난 심판이 있을 것이다. 필자가 실제를 말한다. 주의 종들 가운데 천국 성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목숨을 걸어야 하고 말씀 하나하나에 날마다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 삶을 살지 않는다면 주의 종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기 어렵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성 안에 들어갈 자, 성 밖에 남겨질 자, 바깥 어두운 데로 내던져질 자, 그리고 아예 지옥에 들어갈 자다. 하나님의 영광의 측면에서 보면 새 예루살렘 성은 영광으로 가득 차 있어 따로 빛이 필요 없고 밤이 없다. 성 밖은 성 안에서 비치는 빛이 있어서 지구와 거의 동일한 환경이다. 물도 있고 자연도 아름다워 그래도 살 만하다. 그러나 더 바깥 어두운 데는 빛이 없는 황량한 장소이며 형벌의 장소다. 지옥은 빛이 하나도 없고 불이 타는 곳이며, 고통과 영원한 형벌의 장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보여 준 그림처럼 새 하늘과 새 땅의 땅속이 불못이다. 그곳은 캄캄함과 어둠에 더하여 영원한 불이 있는 장소이며, 영혼이 태워지는 장소다. 지상에서 손가락 하나를 태울 때의 고통보다 천 배가 넘는 엄청난 고통을 그것도 계속해서 겪는 곳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성 안에는 누가 들어가는가? 신부와 충성된 성도는 당연히 들어간다. 그리고 더 작게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회개하는 자는 들어간다. 그러나 천국에 턱걸이로 들어간 사람은 신부가 되지 못한다. 마태복음 25장 1-13절에서 신부가 될 자는 처음부터 여분의 기름을 준비해 온 자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처음 예수를 믿을 때부터 신부 단장을 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턱걸이로 들어간 자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구경한다. 필자가 직접 현실을 말한다. 구경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요한계시록 22장 15절의 개들은 누구이며, 왜 성 밖에 있는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요한계시록 22장은 불신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자를 말한다. 점술가들은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어긴 자들이다. 음행하는 자들은 제7계명을, 살인자들은 제6계명을 어긴 자들이다. 우상 숭배자들은 당연히 제1, 2계명을, 거짓말하는 자들은 제9계명을 어긴 자들이다. 이처럼 십계명을 어긴 자들이 성 밖으로 간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도 십계명을 지키지 않고 죄를 범하는 것이 지금 당장 예수 믿을 때에 판정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야고보의 말씀처럼 그의 인생을 다 돌아보았는데 계속 그러고 있었다면 당연히 성 밖으로 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원문에는 15절에 &#039;성&#039;이라는 말이 없다. 단지 &#039;바깥쪽에 있으리라&#039;이다. 그렇다면 무엇의 바깥쪽인가? 14절을 보면 알 수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자기의 겉옷을 계속 빨고 있어야 성 안에 들어간다. 그러니 15절의 바깥쪽은 성 바깥쪽이다. 마태복음 25장 1-13절의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남겨진 자들이다. &quot;나는 예수만 믿으면 의롭다 함을 얻어 천국에 들어갈 것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 될 것이다. 나는 만세 전에 예정되었으니 구원은 걱정 없다.&quot; 죄를 엄청나게 지으면서도 이렇게 생각하는 자들이 거기에 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개들은 누구인가? 개들이 천국에 못 간다니 슬퍼하는 사람이 많다. 요즘에는 강아지를 사람처럼 키운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며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개는 영혼이 없다. 천국의 존재는 영적 세계에 속한 존재다. 이 땅의 개들은 영혼이 없으니 성 밖에 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개들이 성 밖에 있다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일 수밖에 없다. 주님께서는 이미 성경을 알고 인용하신 것이다. 나중에 주님께 기도하며 물어보라. 주님께서 알려 주신다. 이사야 56장 9-12절이 개들이 누구인지를 말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개들은 타락한 지도자들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사 56:10-11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스라엘의 파수꾼은 지도자다. 파수꾼은 적이 쳐들어오고 귀신이 쳐들어오면 빨리 알려서 사람들을 살려 내야 한다. 그런데 맹인이어서 보지 않는다. 눈을 감고 있으니 성도들에게 무슨 경고를 하겠는가?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한다. 알고도 말하지 않는다. 이단 정죄를 받을까 봐 알고도 말하지 않는다. 꿈꾸는 자들은 옛날 예언자들이 꿈으로 예언했던 것처럼 예언하는 자들이며, 누워서 잠자기를 좋아하는 게으른 자들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039;탐욕이 심하여&#039;는 원문에 &#039;목구멍이 커서&#039;라는 뜻이다. 목구멍이 커서 만족을 알지 못하고 날마다 먹을 것만 찾는다. 인생은 잘 먹고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성도들이 영적으로 바짝 말라 지옥에 갈지도 모르는데, 자기 배가 부르다고 성도들의 영혼을 살지게 하지 못한다. 그러고도 목자라 한다. 짖지 못하는 개요, 맹인이요, 가짜 예언자다. 몰지각한 목자들, 곧 분별력이 없는 목자들이다. 다 제 길로 돌아가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quot;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quot;(사 56:12) 하고 먹고 마신다. 개들은 이런 주의 종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 자들은 성 밖으로 간다. 그래도 성 밖으로 가는 자는 조금이라도 한 것이 있는 자다. 악하고 게으른 주의 종들은 더 바깥 어두운 데로 간다. 너무나 많이 간다. 주의 종들은 성 안에 거의 들어가지 못한다. 주의 종들은 깨어나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일반 성도들은 어떠한가? &quot;무슨 십계명을 지키느냐, 교회에서 십일조를 할 필요가 있느냐, 뭘 거룩하게 사느냐, 믿음만 가지면 의롭다 함을 얻고 의롭다 함을 얻으면 자동으로 거룩해져서 천국에 들어가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회개 기도를 하느냐, 너는 속죄를 모르느냐&quot; 하는 사람들이 성 밖으로 간다. 우리가 회개 기도를 하는 것이 속죄만을 위한 것인가? 속죄는 시작이다. 우리가 회개하는 것은 정결하게 되기 위해서이며, 거룩한 신부가 되기 위해서이며, 내 속의 악한 영을 내보내어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할 거룩한 자들로 발견되기 위해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요한계시록 21장 8절이 말하는 불못에 들어갈 자는 누구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면 불못, 곧 지옥의 형벌은 누가 받는가? 그곳은 성문 출입이 불가하고 영원한 심판을 받는 장소다. 가장 기본이 되는 말씀이 요한계시록 21장 8절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은 둘째 사망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불못에 들어가는 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째, 주님을 부인하는 비겁한 자들이다. 두려워하는 자들은 비겁한 자들이다. 죽이려고 할 때 주님을 모른다고 하고, 교회에 가서는 &quot;주님 용서해 주세요&quot; 하는 자들이다.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할 때에는 바쳐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절대 주님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주님을 부인하면 성 밖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고 바깥 어두운 데로 가는 것도 아니다. 지옥으로 간다. 인내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믿지 아니하는 자들, 곧 불신자들이다. 불신자들 가운데 성 밖이나 바깥 어두운 데로 가는 자는 아무도 없다. 불신자는 전부 불못으로 간다. 그의 죄가 용서되지 않았으므로 죗값을 받아 영원한 멸망, 곧 둘째 사망,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장소로 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십계명을 어기는 자들이다. 흉악한 자들은 가증한 자들이니 몰렉에게 자녀를 바친 자들과 같은 자들이다. 살인자들은 제6계명을, 음행하는 자들은 제7계명을,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은 제1계명을, 거짓말하는 자들은 제9계명을 어긴 자들이다. 이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곧 불바다에 던져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우상 숭배하는 자들, 곧 옛날의 십계명으로 말하면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어긴 자들이 어디로 가는지를 요한계시록 14장이 말한다. 9절은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말한다. 말세에는 표를 받는 것까지 하겠지만, 사람들은 옛날부터 그 표를 받아 왔다. 그러므로 그 표는 물질적인 표가 아니라 영적인 표일 수 있다. 창세 이후로 그런 표를 받아 왔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3장 8절은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이 다 짐승에게 경배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받는 형벌은 이러하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14:10-11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039;고난을 받으리니&#039;는 헬라어 바사니스테세타이(βασανισθήσεται)로서 고통을 겪는다, 더 정확하게는 고문을 받는다는 뜻이다. &#039;세세토록&#039;은 에이스 아이오나스 아이오논(εἰς αἰῶνας αἰώνων), 곧 세대들의 세대들까지다. 그렇기 때문에 12절은 &quot;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quot;라고 말한다. 우리가 마침내 구원을 얻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죽임을 당하더라도 그 표를 절대 받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13절은 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한다. 천국에서 쉬고 그다음에 왕 노릇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십계명을 어기는 자 가운데서도 필자가 히브리서 6장이나 10장을 대입해 보면, 현재의 죄를 짓는 자, 곧 고의로 계속해서 죄를 범하는 자가 불못에 들어간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히 10:26-27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적들을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았다는 것은 구원받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짐짓 죄를 범하면 맹렬한 불만 있다. 맹렬한 불은 바깥 어두운 데에는 없다. 29절은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어도 지옥에 떨어질 자가 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은 불못에 떨어질 자의 총지도와 같다. 한마디로 말하면 주님을 부인하는 비겁한 자들, 불신자들, 그리고 십계명을 지키지 않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 심판은 언제, 누구를 심판하는 것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조금 더 풀어서 말씀하셨다. 마태복음의 말씀에 의하면 불에 던져질 자는 세 종류다. 그 첫 종류가 마태복음 25장 31-46절의 염소에 속한 자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영원한 불은 영원히 불타오르는 곳, 곧 불못을 가리킨다. 46절은 이것을 영원한 형벌, 곧 영벌이라고 말한다. 성 밖에서 더 멀어진 바깥 어두운 데에 있는 것도 일종의 형벌이다. 그러나 바깥 어두운 데는 어두운 곳이지 불못은 아니다. 진짜 형벌이라고 나오는 곳은 불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염소는 누구인가? 옛날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염소는 예수를 믿지 않는 자요 양은 예수를 믿는 자다. 그래서 양은 천국, 염소는 지옥이다. 불신자는 지옥에 가고 믿는 자는 천국에 가니 믿음이 중요하다. 과연 그러한가? 마태복음 25장의 세 가지 비유가 불신자들에게 해당하는 비유인가, 아니면 성도들에게 경고하는 비유인가? 예수님께서 &quot;천국은 마치 이와 같으니&quot; 하실 때 불신자에게 하신 말씀이 있는가?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 계열의 한 해석은 이 본문의 &#039;모든 민족&#039;에 주목한다. 믿는 자들이 아니라 민족들이므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살아 있는 민족들을 심판하시고, 양에 속한 민족은 지상 천년왕국의 백성으로 들어간다고 해석한다. 과연 주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신 것인가? 우리는 이 심판이 언제 있으며 누구를 심판하는 것인지를 본문을 통하여 찾아보아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5:31-33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언제 심판하는가?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오실 때,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셔서 심판하신다.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한다. 마태복음 16장이 그때 어떤 심판이 있는지를 말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때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는 심판이 있다. 28절은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서 그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마태복음 19장은 그 보좌에 앉으시는 때를 이렇게 말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아 심판하실 때 제자들도 심판자로 참여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필자가 천국에 가서 확인해 보니 가룟 유다를 제외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보좌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29절은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한다고 말한다. 행한 대로 갚아 주는 것이니 이것은 상급 심판(賞給 審判)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양과 염소의 심판은 불신자와 신자를 가르는 심판이 아니라 신자를 대상으로 행한 대로 갚는 심판이다. 상을 줄 것인가 벌을 줄 것인가를 정하는 심판이다. 그 결과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여보낼 자와 성 밖으로, 더 바깥 어두운 데로, 그리고 지옥으로 보낼 자가 갈리는 총심판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이 심판은 믿음을 가졌느냐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에 따라 갚아 주는 심판이다. 예수님께서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그것을 보여 준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5:34-36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나라를 상속받으라고 하신다. 이 심판은 상속시키는 심판이다. 그러자 의인들이 &quot;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그렇게 하였나이까&quot;라고 묻는다(37-39절). 여기서 의인들은 행위로 의로운 삶을 살아온 자들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구원이 시작될 때의 일이고, 지금은 마지막 때에 우리가 살아온 모든 생애를 보고 심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039;주여&#039;라는 말은 의인들도 하고, 44절에서 왼편에 있는 자들도 한다. 그러므로 염소에 속한 자들이 불신자였을 가능성은 차단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지극히 작은 자 하나는 누구이며, 염소는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신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하신다. 이 형제는 누구인가?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간 자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다. 히브리서 2장 11절은 믿는 자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신다고 말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원문에는 &#039;오른편에&#039;가 &#039;오른쪽들로부터&#039;라는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보좌로부터 오른쪽에 있는 자들이 있고 왼쪽에 있는 자들이 있다. 보좌에, 곧 주님께 가까울수록 상이 크다. 필자는 이것이 상급에 차이가 있음을 말해 준다고 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는 통합측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어려서 교사를 할 때 이 마태복음 25장의 비유를 통해 누가 천국에 들어가는지를 이렇게 배웠다. 지극히 작은 자, 곧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되어 먹을 것이 없어 고통받는 자를 도와주면 천국에 간다. 이것은 천주교의 해석과 비슷하다. 예수를 믿든 안 믿든 상관없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먹을 것을 주고 옷을 입혀 주면 된다는 것이다. 밥퍼 사역 같은 일이 그런 해석과 비슷하다. 그런 일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누가 그런 일을 하겠는가? 필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존경스럽다. 사명이 있어서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밥퍼 사역을 통해 예수를 믿게 하는 사람은 그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가난한 자에게 밥을 퍼 주고, 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혀 주고, 감옥에 갇힌 자들을 위해 서명하고 변호하면 천국에 위대한 신분으로 들어가는 줄 아는데, 그 해석은 &#039;이 나의 형제들&#039;을 빼 버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원문을 직역하면 이러하다. &quot;그리고 왕이 대답하여 그들에게 장차 말할 것이다. 아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나의 형제들, 곧 가장 작은 이들 중 하나에게 행한 만큼 나에게 행한 것이다.&quot; 원문에는 &#039;여기&#039;라는 말이 없다. &#039;이&#039;라는 지시대명사다. 멀리 있는 것을 가리키는 &#039;저&#039;가 아니라 가까이 있는 것을 가리키는 &#039;이&#039;다. 이것은 지금 오른편에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지극히 작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039;이 나의 형제들&#039;이면서 동시에 가장 작은 자들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예수를 믿으면서 가장 작은 자는 누구인가? 본문에 나와 있다.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된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그리고 옥에 갇힌 자다. 여기서 옥에 갇힌 자가 가장 큰 힌트다. 그가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갔겠는가, 예수를 전파하다가 감옥에 갔겠는가? 반드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자로 말씀하신 오른편의 사람들에게, 죄를 지어 감옥에 간 자를 돌아보았다고 칭찬하시는 것이겠는가? 이들은 복음을 전파하다가 감옥에 갇혀 먹을 것도 없이 헐벗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상태에 있던 자들이다. 감옥에 갇혔으니 병원에도 가지 못한다. 그들은 주와 복음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 당시에는 오늘날의 선교사가 아니라 방랑 전도자가 있었다. 주님 말씀처럼 전대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가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다(마 10:9-10). 그러니 그들은 돈이 없고, 입을 것도 먹을 것도 없으며,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히면 감옥에 갇혔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끌려갈 때에 할 말을 그때에 주시리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마 10:19). 지극히 작은 자는 단순히 가난한 자, 병든 자, 고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 때문에 스스로 가난해진 자요, 복음 때문에 헐벗은 자요,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자다. 이것이 원초적인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오른편에 있는 양에 속한 자들은 그런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빌립보의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행 16:14-15)나 로마 교회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롬 16:3-5) 같은 사람들이다. 바울이 먹고살 수 없어서 천막 만드는 일을 했겠는가? 그런 사람들도 일을 하며 복음 전하는 자들을 섬겼다. 천국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빛나는 사람은 전도를 가장 많이 하여 천국에 많은 사람을 보낸 사람이다. 그러므로 염소에 속한 자들이 하지 않은 것은 예수를 믿으라고 전하지 않은 것이요, 그 때문에 핍박받지 않은 것이요, 예수를 믿게 하려고 복음 전하는 자들을 아무것도 지원하지 않은 것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5: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들도 &#039;주여&#039;라고 부른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주님께서 오셨다면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복음을 전파하다가 고통받는 자들, 영광스럽지도 않고 생색낼 수도 없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드러내고 생색낼 때는 했지만 지극히 작은 자, 별 볼 일 없는 자는 무시했다.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 자들이다(마 23:24).&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자신을 양이라 여기는 염소는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돌이킬 수 있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놀라운 힌트가 마태복음 25장 32절에 있다. 여기서 양은 프로바톤(πρόβατον)으로 다 자란 양이고, 염소는 에리포스(ἔριφος)로 새끼 염소다. 다 자란 양과 새끼 염소를 그림으로 비교해 보면 거의 비슷하다. 다 자란 염소는 수염이 나서 염소처럼 보이지만, 새끼 염소는 양과 거의 똑같다. 염소에 속한 자들은 교회에 와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금 염소인데도 자기는 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양과 염소는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염소에 속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039;주여&#039;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 믿는 자답게 살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는 자답게 생활했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구원받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결국 영원한 불로 들어간다. 그들은 본문의 의인들처럼 바깥으로 드러날 일이 아닌 작은 일에는 신경 쓰지 않고 행함이 없었던 자들이다. 생색내는 자요, 외식(外飾)하는 자요,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은 자다. 교회에서 중직을 맡은 자일 가능성이 높고, 오래 믿었을 가능성도 높다. 주의 종일 가능성은 더 높다. 주의 종이 성도들 가운데 부자가 오면 &quot;여기 앉으라&quot; 하고 가난한 사람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살았다면(약 2:2-4) 그는 염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우리 가운데 태어날 때부터 양으로 태어난 자는 없다. 다 염소다. 거기서 예수를 믿어 주님을 닮아 가는 것이다. 그런데 미련한 다섯 처녀가 처음부터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듯이, 어떤 것이 바른 길인지를 모르니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면서도 자기가 살아온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른 채 믿었던 자들이 염소에 속한 자들이다. 외식하는 자, 생색내는 자, 이름을 낼 때는 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자, 이런 삶을 사는 자들은 바깥 어두운 데가 아니라 지옥으로 간다. 성령께서 계속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도 일평생을 그렇게 살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quot;너는 나를 믿는 자라고 말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자였으나 바깥 어두운 데에도 못 간다. 너는 불못이다.&quot;&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필자가 실제를 말한다. 이런 자는 많지 않으리라고 본다. 성 밖으로 가는 자는 어마어마하게 많고, 바깥 어두운 데로 가는 자는 조금 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가 불못에까지 들어가는 자, 곧 주님을 부인하거나, 현재의 죄를 짓거나, 일평생을 외식하며 지도자인 척하며 살아온 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더 적다. 그러나 적다 할지라도 이런 자들에 대한 심판이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염소에 속한 자들은 교회의 지도자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요(마 23:3), 성도들 앞에서 높임받기를 원하나 섬기지 않은 자다. 교회에 와서 한 번도 섬기지 아니하고 섬기는 것을 추하게 생각하며 보이는 것에만 자기를 드러내려 하는 자를 주님께서는 염소라고 부르실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돌이킬 수 있는가? 나는 항상 양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내 삶의 행위를 통하여 과연 내가 양에 속한 자인지 염소에 속한 자인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이라도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회개하여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자로 나 자신을 바꾸어 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불못에 들어갈 자들 중에는 구원받았으나 탈락한 자들도 들어 있는가? 그렇다. 불신자는 모두 불못으로 간다. 그리고 예수를 믿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던 자들 가운데서도 주님을 부인하는 비겁한 자, 짐짓 죄를 범하며 회개하지 않는 자, 그리고 예수를 믿고도 일평생 섬기지 않고 말만 하며 높임받기를 원하고 외식하며 살아온 염소에 속한 자는 불못에 들어간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왼편에 있는 자라고 하셨으니, 그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심판은 불신자를 향한 말씀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우리를 향한 경고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믿었는가뿐만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시고 행한 대로 갚으신다. 특히 이 나의 형제들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 곧 복음 때문에 가난해지고 헐벗고 감옥에 갇힌 자들을 어떻게 대했는가를 보신다. 생색낼 수 있는 일에만 손을 내밀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자를 외면했다면, 우리는 스스로 양이라 여기는 새끼 염소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나의 삶의 행위가 양에 속한 자의 것인지 염소에 속한 자의 것인지를 살피고,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지금 회개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고, 복음 전하는 자들을 돕고, 교회 안에서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섬겨야 한다. 섬기는 자가 복된 자이며, 이 땅에서 섬기는 자가 천국에서 섬김을 받는 자가 된다. 그러므로 나의 삶의 모든 것을 통해 꼭 섬기는 자가 되어, 마침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23일(금)&lt;br /&gt;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아침묵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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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론(218)]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5) 구원에서 탈락한 자들이 가는 곳 중에서 성밖과 바깥 어두운 데는 어떻게 다른가?(욜2:32, 마25:26~30)_2026-10-22(목)</title>
			<link>https://dongtanms.kr/morning_qt/330872</link>
				<description>&lt;p&gt;아침묵상입니다.&lt;/p&gt; &lt;p&gt;제목: &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기독론(218)]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5) 구원에서 탈락한 자들이 가는 곳 중에서 성밖과 바깥 어두운 데는 어떻게 다른가?(욜2:32, 마25:26~30)&lt;/span&gt;&lt;span style=&quot;color:#000000;&quot;&gt;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lt;/span&gt;&lt;/p&gt; &lt;p&gt;https://youtu.be/fn8YnYgrxrM&lt;/p&gt; &lt;p&gt;&lt;iframe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quot; allowfullscreen=&quot;allowfullscreen&quot; class=&quot;dtmseditor-live-iframe dtmseditor-youtube-iframe&quot; frameborder=&quot;0&quot; loading=&quot;lazy&quot;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fn8YnYgrxrM?enablejsapi=1&quot;&gt;&lt;/ifram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설교핵심]&lt;/span&gt;&lt;/p&gt; &lt;p&gt;이 설교는 구원에서 탈락한 이들이 향하는&amp;nbsp;성밖과&amp;nbsp;바깥 어두운 곳, 그리고 천국(성안)의 실상에 대해 설명하는 기독론 강연입니다. 강연자는 구원에서 탈락한 대다수가 머무는 성밖이 지구와 유사하지만 질병과 저주가 존재하는 반면, 자격 없이 침입했거나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이들이 갇히는&amp;nbsp;바깥 어두운 곳은 엄중한 형벌이 따르는 장소라고 강조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설교의 목적은 성도들에게 철저한&amp;nbsp;회개와 신앙적 충성을 촉구함으로써, 눈물과 고통이 없는 영원한 낙원인&amp;nbsp;새 예루살렘 성안에 반드시 입성하도록 권장하는 데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c0392b;&quot;&gt;[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lt;/span&gt;&lt;/p&gt; &lt;p&gt;1. 구원에서 탈락한 자들은 어디로 가며, 성 밖은 어떻게 나뉘는가?&lt;br /&gt; 2. 천국은 만원인가, 예수님은 우리의 거처를 언제 예비하셨는가?&lt;br /&gt; 3. 새 예루살렘 성 안과 성 밖은 빛과 문과 다스림에서 어떻게 다른가?&lt;br /&gt; 4. 성 안에는 없고 성 밖에는 있는 것은 무엇인가?&lt;br /&gt; 5. 예복 없이 혼인 잔치에 들어온 자는 왜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는가?&lt;br /&gt; 6. 악하고 게으른 종은 왜 바깥 어두운 데로 가는가?&lt;br /&gt; 7. 나라의 본 자손들은 왜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faf7f1;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line-height:1.95;font-size:18px;padding:40px 20px 60px;word-break:keep-all;&quot;&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px;letter-spacing:.22em;color:#7a5c34;text-align:center;margin:0 0 18px;&quot;&gt;기독론(218)&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5)&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font-size:30px;line-height:1.5;font-weight:700;color:#23201c;letter-spacing:-.01em;margin:0 0 8px;word-break:keep-all;&quot;&gt;구원에서 탈락한 자들이 가는 곳 중에서 성 밖과 바깥 어두운 데는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font-size:18px;line-height:1.6;color:#5a544c;margin:18px 0 8px;word-break:keep-all;&quot;&gt;(욜 2:32; 마 25:26-30)&lt;/p&gt; &lt;p style=&quot;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text-align:center;color:#5a544c;font-size:14px;margin:0 0 40px;&quot;&gt;동탄명성교회 &amp;middot; 정보배 목사&lt;/p&gt; &lt;div style=&quot;width:64px;height:3px;background:#7a5c34;margin:0 auto 48px;border-radius:2px;&quot;&gt;&amp;nbsp;&lt;/div&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1. 들어가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욜 2:32). 그리고 구원의 최종적인 마지막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었으나 그 구원에서 탈락하는 자들이 있다. 지난 시간에는 그들이 성 밖과 불못으로 간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회개하지 못해 자기 두루마리를 빨지 못한 채 지은 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자들은 성 밖으로 간다(계 22:14-15). 그리고 비겁한 자들, 곧 주님을 부인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십계명을 어기는 심각한 죄를 지은 자들 가운데 일부는 불못에도 간다(계 21:8). 그렇다면 성 밖은 다 똑같은 장소인가? 그렇지 않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기존 교회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천국과 지옥만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amp;#39;성 밖&amp;#39;이 있고, 그 성 밖에도 더 바깥쪽에 &amp;#39;바깥 어두운 데&amp;#39;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amp;quot;목사님, 그것은 연옥 아닙니까?&amp;quot; 하고 묻는다. 그러나 연옥과는 전혀 다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동안 천국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천국에 어떤 장소가 있는지, 천국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천국의 지위가 무엇인지, 천국에서 어떤 집에 사는지를 몰랐을 뿐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성 안과 성 밖이 어떻게 다르며, 성 밖 가운데서도 바깥 어두운 데는 어떤 곳이고 누가 그곳에 가는지를 성경과 필자가 확인한 천국의 실상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2. 구원에서 탈락한 자들은 어디로 가며, 성 밖은 어떻게 나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구원에서 탈락한 자들은 어디로 가는가? 성 밖으로 가거나 불못으로 간다. 이것은 정답이다. 그리고 구원에서 탈락한 사람의 대부분은 성 밖으로 가고 일부는 불못으로 간다. 필자가 여기서 &amp;#39;대부분&amp;#39;과 &amp;#39;일부&amp;#39;라고 표현하는 것은 성경에 문자 그대로 나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국의 실제 상황을 알고 그것을 반영한 일종의 추정치에 해당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성 밖을 다시 둘로 나누어 말씀하셨다. 그리고 지옥을 말씀하셨다. 그것이 나오는 말씀이 마태복음 25장이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세 가지 비유가 이어서 나온다. 마태복음 25장의 1-13절의 &amp;#39;열 처녀 비유&amp;#39;는 성 밖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의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문 밖에 남겨졌는데, 이 문이 신랑의 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신랑은 주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문 밖은 성 밖인 것이다. 이어서 마태복음 25장 14-30절의 &amp;#39;달란트 비유&amp;#39;는 바깥 어두운 데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마지막 비유로서 마탭고음 25장의 31-46절의 &amp;#39;양과 염소의 비유&amp;#39;는 그 땅 밑에 있는 불못, 곧 영원한 벌을 받는 장소를 보여 준다. 그 불못은 원래 인간을 처벌하기 위해 만든 장소가 아니라 마귀와 그 사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예비된 형무소이자 형벌의 장소다(마 25:41). 마귀가 지옥에 갈 때 그를 따르는 자도 함께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에게서 하루라도 더 빨리 벗어나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amp;#39;바깥 어두운 데&amp;#39;는 원문으로 &amp;#39;에이스 토 스코토스 토 엑소테론&amp;#39;(&amp;epsilon;ἰ&amp;sigmaf; &amp;tau;ὸ &amp;sigma;&amp;kappa;ό&amp;tau;&amp;omicron;&amp;sigmaf; &amp;tau;ὸ ἐ&amp;xi;ώ&amp;tau;&amp;epsilon;&amp;rho;&amp;omicron;&amp;nu;)이다. &amp;#39;엑소테론&amp;#39;은 비교급으로서 &amp;#39;더 바깥쪽&amp;#39;이라는 뜻이고, &amp;#39;스코토스&amp;#39;는 어둠, &amp;#39;에이스&amp;#39;는 &amp;#39;~안으로&amp;#39;라는 뜻이다. 그래서 &amp;#39;더 바깥쪽의 어둠 안으로&amp;#39;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림으로 상상해 보면 조금 더 이해하기 쉽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고, 그 땅 위에 새 예루살렘 성이 있다. &amp;#39;성 안&amp;#39;은 빛의 나라다. 이곳이 바로 천국이라고 불리는 장소다. 그런데 이 성의 빛은 너무나 밝아서 그 빛이 밖에까지 비치고 생명수가 성 밖으로까지 흘러나가기 때문에 성 바로 바깥 곧 &amp;#39;성 밖&amp;#39;은 빛도 있고 물도 있고, 단풍도 드는 지구의 아름다운 자연과 거의 똑같다. 그러나 멀어질수록 점점 황량해져 식물도 자라지 않고, 나중에는 캄캄해진다. 그 캄캄한 데를 &amp;#39;바깥 어두운 데&amp;#39;라고 한다. 그리고 그 바깥 어두운 데를 지나 뚝 떨어지면 그 안쪽이 바로 빛이 하나도 없는 어둠 자체, 곧 &amp;#39;불못&amp;#39;이라는 장소다. 불못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의 바로 땅 밑에 있다. 새 하늘과 새 땅 위에 천국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새 예루살렘 성만을 우리는 천국이라고 부른다. 고로 우리 성도들은 어찌하든지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3. 천국은 만원인가, 예수님은 우리의 거처를 언제 예비하셨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천국은 이미 사람이 가득 차서 더 들어갈 곳이 없는가? 어떤 사람은 천국이 만원이라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요 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는 아버지 집인 천국에 거할 곳(거처)이 많으며, 예수님께서 부활 후 올라가서 우리를 위해 거처를 예비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우리의 하늘 아버지 집은 만원이 아니다. 또한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구약 시대에도 천국에 들어가 살고 있는 성도들이 있었고 신약의 성도들도 천국에 들어가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공생애의 거의 끝무렵에 예수께서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셨으니, 그때까지는 아직 성도들이 살 집이 지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고로 구약의 성도는 한 사람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낙원, 곧 아브라함의 품에 임시로 거처하고 있었다(눅 16:22).&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예수께서는 부활 승천하신 뒤에 하늘에 처소를 예비하셨다. 맨션 같은 큰 집을 짓기 위해 가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목수라는 직업을 가지셨는지도 모른다(막 6:3). 그래서 우리 주님은 집을 잘 지으시는 분이다. 그러나 직접 집을 지으시는 것이 아니라 건축 천사들에게 다 지시하셔서 아름답게 지으신다. 그렇게 집을 지으신 다음에 구약의 성도들은 한꺼번에 그 집으로 들어가서 살게 하셨다. 그리고 그 뒤로는 신약의 성도들이 죽어서 부활하여 올라가는 대로, 곧바로 행위 심판이 이어져서 상과 지위를 받고 천국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주님이 오실 때 한꺼번에 부활하는 것은 단체적인 부활로서 둘째 부활이라고 칭하고,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후 개인적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들의 부활은 개인적인 부활로서, 첫째 부활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신 뒤로 성도들이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죽으면 오늘 바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결코 무덤에서 쉬었다가 주님이 오시는 날 부활체로 도킹하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천국이 만원이라는 말은 거짓이다. 주님께서는 구원받을 모든 성도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지어 놓으셨고, 거기에 들어갈 숫자까지 정해 놓으셨다. 그리고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사람에게 그리로 들어가라고 하신다. 고로 지금 천국에는 이미 들어간 성도들이 지어진 집에서 살고 있으며, 그 가운데 14만 4천명의 주의 종들이 있다. 이들 중에 위쪽에 있는 그룹의 사람들은 지금 성 밖으로까지 나가 철장 권세를 사용하여 왕 노릇을 하고 있다. 이것을 가리켜 &amp;#39;천년왕국&amp;#39;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천년왕국의 끝머리에 일어날 일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4. 새 예루살렘 성 안과 성 밖은 빛과 문과 다스림에서 어떻게 다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성 안과 성 밖은 어떻게 다른가? 성 밖도 천국과 거의 같은 환경이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아니다. 성 안과 성 밖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장차 들어갈 새 예루살렘에 대한 소망이 더 생긴다. 이에 대해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말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1:23-25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새 예루살렘 성은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은 1만 2천 스다디온, 약 2,200km의 정방형이다(계 21:16).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약 400km이니 그 다섯 배가 훨씬 넘는다.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 성은 황금으로 되어 있어 빛이 나면서도 황금색깔이다. 옛날부터 천국을 &amp;#39;황금 집&amp;#39;이라고 많이 말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빛처럼 성을 비치니 성 안에는 전기 시설이 필요 없다. 가장 따뜻하고 춥지 않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성 밖은 이와 다르다. 그러나 성 밖은 성 안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은 장소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에 나오는 &amp;#39;만국&amp;#39;은 성 밖에 사는 사람들이다. 원문으로는 &amp;#39;민족들&amp;#39;(에트네, ἔ&amp;theta;&amp;nu;&amp;eta;)이다. 24-27절을 원문에 입각하여 직역하면 이렇다. &amp;quot;민족들이 그 도시(성)의 빛을 인하여 장차 걸어 다닐 것이다. 그리고 땅의 왕들이 그들의 영광을 그 도시 안으로 가져온다. 낮들에 그 도시의 문들은 결코 닫히지 아니할 것이다. 그곳에는 밤이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민족들의 영광과 존귀를 그 도시 안으로 장차 운반할 것이다.&amp;quot; 원문에서 성은 여성 명사이므로 &amp;#39;그녀&amp;#39;로 번역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것을 &amp;#39;그 도시&amp;#39;로 바꾸어 두었다. 그리고 26절의 &amp;#39;그들&amp;#39;은 사람들이 아니라 땅의 왕들이다. 한글 성경은 &amp;#39;사람들이&amp;#39;라고 잘못 번역해 놓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말씀에서 성 안과 성 밖의 차이가 적어도 세 가지 측면에서 드러난다. 먼저, 빛이다. 성 안에 밤이 없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 안을 두루 비추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 안은 항상 낮이어서 밤이 없다. 그런에 성 안에 있는 장소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얼마나 강한지, 성 바깥 곧 성의 바로 뽀짝 옆에 살게 있는 민족들은 그 성의 빛을 인하여 다닐 수 있다. 그 빛은 성 바로 바깥까지는 강하게 비치지만 더 바깥쪽으로는 그 빛이 비치지 않는다. 다른 데는 칠흑 같은 어둠인데 성의 빛이 비치는 곳까지만 밝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다음으로, 문이다. 성문들은 결코 닫히지 않는다. 문은 항상 열려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만 통과할 수 있다. 그래서 성 밖에 사는 사람들은 성 안에 들어갈 수 없다. 희한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진주 문 앞에 가서 문이 열리지 않아 울었다는 간증도 있다. 그 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열린다. 혹시 거기에 갔는데 문이 열리지 않으면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amp;#39;열어 주소서&amp;#39; 할 것이 아니라 &amp;#39;주 예수여&amp;#39; 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하셨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런데 필자가 천국의 실제를 말하자면, 성 밖에 사는 사람도 성 안에 들어갈 수는 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성 밖에 있는 사람을 부르실 때가 있기 때문이다. 지옥에 있는 사람은 부르지 않으시지만 성 밖에 있는 사람은 부르실 때가 있다. 그때가 되면 그 시간만 허용되어 성 밖에 살던 사람도 천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들도 과거에 주 예수님을 믿어 생명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범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는 절대 들어오지 못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지막으로, 다스림이다. 땅의 왕들은 자기 영광, 곧 밖에서 군림할 수 있는 왕적 권세를 가지고 성 안으로 들어온다. 그들은 성 밖에까지 가서 왕 노릇을 하고 들어오는 것이다. 왕 노릇은 성 안의 백성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그곳은 천국이 아니다. 땅의 왕들은 이미 첫째 부활로 인하여 천국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왕노릇하는 자들을 갈라진다. 이들은 왕노릇을 하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성 밖으로 나가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다스린다. 고로 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6-28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는 이기는 자가 철장을 가지고 민족들을 다스린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철장으로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한다는 것은 성 밖에는 여전히 거역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에다가 왕노릇하는 자에게는 새벽 별을 주신다고 하셨다. 필자는 이 별이 은하계의 행성들이라고 본다. 행성을 다스릴 자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 주인들이 있는지는 필자도 거기까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우주까지 다스리게 하실 것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5. 성 안에는 없고 성 밖에는 있는 것은 무엇인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성 안에는 없고 성 밖에는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 가지 정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첫째, 저주와 상처다. 요한계시록 22장은 이렇게 말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1-3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는 성 안에는 다시 저주가 없지만, 생명나무 잎사귀가 만국, 곧 성 밖의 민족들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다고 말한다. 고로 성 밖은 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부활체라도 다친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주님의 특별한 보호가 있어 다치지 않는다. 그러나 성 밖은 보호가 없다. 말을 듣지 않는 자는 철장으로 맞으면서 다치기도 하고,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또한 생명나무 잎사귀가 필요하다. 성 안에는 가난이나 질병이나 신기나 귀신 들림 같은 저주가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둘째, 밤과 피곤이다. 성 안에는 다시 밤이 없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다(계 22:5). 밤이 없다는 것은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보통 사람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자고 쉬는데, 쉬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다. 천사들을 보라. 귀신들은 24시간 우리를 공격해도 피곤하지 않다. 우리는 피곤한데 그들은 피곤하지 않다. 천국에서도 쉬지 않아도 항상 최상의 컨디션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렇다면 천국에서는 왜 잠을 자는가? 그건 지구에서 잠자던 기억이 나서 한 번씩 자 보는 것이지 피곤해서 쉬는 것이 아니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부활체는 천사와 비슷하여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다. 지구에서 먹던 습관이 있어서 먹고, 잔치에 초대할 때 기쁨을 더하려고 먹는 것이지,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먹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빛이 하나도 없이 어둠만 있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불못이다. 그곳에서는 빛이 전혀 없다. 다만 지글지글 타오르는 유황불로 인하여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셋째, 사망과 애통과 아픔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는 성 안에는 더 이상 사망도, 애통도, 곡하는 것도, 아픈 것도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영원한 부활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 밖에서는 죽었다 사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필자는 본다. 성 안에 들어간 사람 가운데 자기를 비관하는 사람은 없다. 필자의 아버지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섬기며 다녀도 그곳에 들어온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하다. 울부짖음도 없다. 사망은 죄의 삯이다(롬 6:23). 그런데 성 안에서는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 죄를 짓게 유혹하던 마귀와 귀신도 없다. 귀신은 어둠의 세상 주관자인데, 천국에는 귀신도 마귀도 없다. 그러므로 성 안에는 죄도, 어두운 밤도, 아픔도, 죽음도, 눈물도, 슬픔도 없다. 전기도 에어컨도 히터도 약도 필요 없다. 그곳에 가지 않으려면 죄를 짓고 절대 회개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반드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6. 예복 없이 혼인 잔치에 들어온 자는 왜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성 밖 가운데서도 더 바깥 어두운 데에는 누가 가는가? 성경은 세 부류를 말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 첫 번째가 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 잔치에 들어온 자다. 천국의 실상을 모르면 이 이야기를 하기는 조금 곤란할 것이다. 필자는 천국의 실상을 알고 천국을 전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니 이것을 조금 더 전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마태복음 22장에는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 비유가 나온다. 그런데 이 비유는 두 가지 비유가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누가복음 14장 15-24절의 큰 잔치 비유는 마태복음 22장 1-10절의 첫 번째 비유에 속한다. 초청받아서 잔치에 들어가기까지의 이야기다.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그 뒤에 장면이 하나 더 있다. 이것은 주님께서 재림하시고 휴거와 지상 재림이 끝난 뒤,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시작될 때의 상황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2:11-14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성경은 말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러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주님을 부인할 성도도 있을 것이다. 말세가 되면 666표를 받지 않으면 죽이려 할 것이다. 그때 부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죄를 지어 옷이 너무 더럽혀져 들어가지 못한다. 더러운 옷을 입고 혼인 잔치에 들어오는 신부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개하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이 사람은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들어올 수 없는 자가 성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성 안의 사람들은 다 흰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만 예복 없이 들어온 것이다. 그 성 안에 들어올 수 없는 자, 그 성안에 들어오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 곧 자격이 없는 자가 그 성 안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혼인예복을 입어야 하는데 그는 혼인예배복을 입지 않고 그 성 안에 들어간 것이다. 이때 예복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입혀지는 의의 옷이라고도 할 수 있고, 혼인 잔치에 참여할 때 입는 희고 깨끗한 세마포 겉옷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옷을 입지 않은 자 성 문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사실 12개의 천국의 진주 문들은 항상 열려 있다. 하지만 보이지는 않아도 그문이 열리지 않기 때문에 생명책에 그 이름이 없는 자는 못 들어가는데, 이 사람이 어떻게 들어간 버린 것이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amp;#39;네가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느냐&amp;#39; 하시자 그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옛날 개역한글 성경은 이것을 두고 &amp;#39;유구무언이어늘&amp;#39;, 곧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고 번역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사람은 원래 성 밖에 있었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데 합당하지 않게 성 안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 벌을 주시려고 그의 손발을 묶어 &amp;#39;더 바깥 어두운 데&amp;#39;로 내쫓으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더 바깥 어두운 데는 성 밖에 있어야 할 사람이 허락 없이 성 안에 들어왔다가 쫓겨나 형벌을 받는 장소인 것을 알 수 있다. 그곳은 캄캄함이 어마어마하여 거의 지옥을 방불한다. 손발이 묶인 채 그곳에서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이곳도 성 밖의 한 부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도 죄를 적게 지은 사람은 성의 바로 바깥쪽에 있고,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성에서 더 바깥쪽에 위치하게 된다. 죄를 많이 지었든 적게 지었든 다 같은 지옥에 간다는 것은 옛 말이다. 지은 죄만큼 대가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하는 방법을 알려 주셔서, 행위책에 기록된 죄 된 행위를 다 지워 버릴 수 있도록 육체가 있는 동안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그러므로 남은 기간에 빨리 회개해야 한다. 천국에 턱걸이로 들어간다 할지라도 회개하지 못한 만큼 빛이 나지 않는다. 그러면 예배를 드릴 때 앞으로 가고 싶다고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주님과 친밀한 정도에 따라 자리가 정해져 있어 앞으로 가지 못한다. 누리는 빛과 영광이 다르다. 고로 우리는 회개를 많이 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7. 악하고 게으른 종은 왜 바깥 어두운 데로 가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바깥 어두운 데에 가는 두 번째 부류는 누구인가?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마 25:14-30)에 나오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주인의 돈을 땅에 감추어 두고 일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주인이 굳은 사람이어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은다고 핑계를 댔다. 그러자 주인이 &amp;#39;악하고 게으른 종아&amp;#39;라고 책망했다(마 25:24-26). 여기서 게으르다는 것은 일하기 싫어했다는 것이고, 악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색한 분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기가 일하기 싫어서 일을 하지 않고는, 주인이 자기를 착취하려고 달란트를 주어 부려 먹으려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 주인은 그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차라리 그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 맡겨 이자라도 받게 했어야 하지 않았느냐고 했다(마 25:27).&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 달란트 비유는 주님의 종들에 관한 비유다.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종들, 곧 14만 4천을 지칭한다. 그들이 나중에 어떻게 심판을 받는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왜 그들이 14만 4천인지는 필자의 요한계시록 강의 보완편 52강에 다 기록해 두었고, 앞으로 책으로도 나올 것이다. 그렇다. 14만 4천은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낸 종들로서 천국에서 보좌에 앉을 자들이다. 이들 가운데서 앞 부분에 해당하는 자는 왕 노릇하는 자가 될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말씀은 이렇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이는 이기는 자가 주님과 함께 보좌에 앉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14만 4천은 보좌에 앉아 예배를 드리고, 통치자로서 왕 노릇을 하는 자들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악하고 게으른 종은 일하라는 사명을 받고 이 땅에 보내졌는데 그 일을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 종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시고, 영적 나이도 성숙하게 하시고, 은사와 달란트를 합쳐 주시고, 더 큰 천사를 붙여 주셔서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그런데도 일하기 싫어서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형벌을 주신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러므로 이 비유는 사명을 받은 종이 그 사명을 저버리면 무익한 종이 되어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더 나쁜 종도 있다. 마태복음 24장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24:48-51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 그는 어떤 종이었는가? 그는 하나님의 참된 종들을 이단이라 정죄하고 때리며, 술친구들과 먹고 마시며 세상의 향락과 명예와 즐거움을 따라 산 종이었다. 그러자 주님은 그를 엄히 맞게 하고(채찍질하고) 형벌을 받게 하라고 했다. 여기서 &amp;#39;종&amp;#39;이란 하나님께서 보내신 특별한 종들이다. 그들도 바깥 어두운 데로 가서 슬피 울며 이를 간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종으로 세워 보내셨는데, 자유의지가 있으니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하지 않은 것이다. 사명 없이 이 땅에 온 평신도들은 하지 않았다고 책망받지 않고 자신이 한 일이 있으면 전부 보상만 있다. 그러나 주의 종들은 사명을 하지 않으면 성 밖으로 간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내팽개치고 세상의 즐거움과 향락을 따라 세상 길로 간 쓸모없는 종이라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가 가진 것을 다 빼앗겨 열 달란트 받은 자에게 주어야 하고(마 25:28-29), 자기는 더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도 원래&amp;nbsp; 충성했다면 14만 4천에 들어갔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하나님께서 아담의 창조 이후 주님의 재림 때까지 보내시는 종의 숫자는 14만 4천에서 한 명도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 그 종들이 상당수 있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지 않으니 믿지 않아도 된다. 천국에 가 보아야 아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런 종들이 말하고 있으니 귀담아들어야 한다. 우리의 영혼은 소중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또 요한계시록 21장 27절은 거짓말을 일삼는 자는 결코 그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원문으로는 &amp;#39;거짓말을 만들고 일삼고 있는 자들&amp;#39;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도 &amp;#39;성 밖이 어디 있느냐, 바깥 어두운 데가 어디 있느냐, 천국과 지옥밖에 없다&amp;#39;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그 죄의 대가를 반드시 받는다. 모세도 한 번 혈기를 내어 잘못했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민 20:10-12). 그러므로 지도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진실해야 하는지 모른다. 주님께서는 주의 종들을 엄하게 심판하신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8. 나라의 본 자손들은 왜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는가?&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렇다면 바깥 어두운 데에 가는 세 번째 부류는 누구인가? 민족적 사명이 있는데도 그 사명을 감당하지 않은 자들이다. 마태복음 8장은 하인의 중풍병을 고침받은 가버나움의 이방인 백부장 이야기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마 8:10-12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여기서 동서로부터 오는 많은 사람은 이방인들을 지칭하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언약 백성인 유대인들을 지칭한다. &amp;#39;앉으려니와&amp;#39;는 원문에서 비스듬히 기대어 앉는다는 뜻으로, 천국의 혼인 잔치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난다. 유대인들은 언약 자손으로서 먼저 초청을 받아 그 자리에 갈 수 있었고, 많은 이방인을 천국으로 인도해야 할 사명을 받은 민족으로 이 땅에 보내졌다. 그런데 그 민족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니 그냥 성 밖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더 바깥쪽 어두운 데로 보내시는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형벌이다. 우리 민족에게도 마지막 때에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할 민족적 사명이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런데 &amp;#39;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amp;#39;는 말씀은 마태복음에 여섯 번 나온다(마 8:12; 13:42, 50; 22:13; 24:51; 25:30). 성 바로 바깥, 지구처럼 환경이 좋은 곳에서는 이를 갈지 않는다.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난 자들이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지옥에까지 떨어진 자들이 슬피 울며 이를 간다. 그것은 후회한다는 것이다. &amp;#39;나도 예수를 믿었는데, 그렇게 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도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amp;#39;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가 지워졌으나 지옥은 아닌 곳, 그러나 어둠이 가득한 그 더 바깥쪽 어두운 데에서 손발이 묶이고, 마태복음 25장처럼 매를 맞기도 한다. 말을 듣지 않으니 철장으로 맞는 것이다. 고로 성 밖과 바깥 어두운 데는 같은 성 밖이지만, 바깥 어두운 데는 형벌을 받는 장소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21px;line-height:1.55;font-weight:700;color:#2980b9;margin:54px 0 22px;padding-bottom:14px;border-bottom:1px solid #e5ded2;word-break:keep-all;&quot;&gt;9. 나오며&lt;/p&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주님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인해서는 안 된다. 목숨은 하나지만 일찍 죽든 늦게 죽든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우리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순교자는 더 큰 일을 할 수 있었는데도 일찍 죽었기 때문에 천국에서 엄청난 보상을 받는다. 그러므로 언젠가 죽을 것이라면 순교의 현장이 온다 할지라도 스데반처럼 기꺼이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행 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살려 주시면 주님의 일을 더 하여 천국 집을 준비하고 아름다운 지위를 준비해야 한다. 비록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지 못했어도 회개만 한다면 우리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주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22px 0 26px;padding:18px 22px;background:#f4efe4;border-left:4px solid #8e44ad;border-radius:6px;font-size:16.5px;line-height:1.85;color:#8e44ad;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weight:bold;word-break:keep-all;&quot;&gt;계 22:14 자기 두루마리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lt;/div&gt; &lt;p style=&quot;margin:0;font-size:18px;line-height:1.95;color:#23201c;font-family:&#039;Noto Serif KR&#039;,&#039;Nanum Myeongjo&#039;,&#039;Batang&#039;,serif;text-align:justify;word-break:keep-all;&quot;&gt;&amp;nbsp;&amp;nbsp;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아니하고, 지은 죄를 회개하여, 더 이상 사망과 저주와 죽음과 귀신과 아픔과 슬픔과 눈물이 없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lt;/p&gt; &lt;p style=&quot;margin:72px 0 0;padding-top:22px;border-top:1px solid #e5ded2;font-family:&#039;Noto Sans KR&#039;,&#039;Malgun Gothic&#039;,sans-serif;font-size:13.5px;color:#5a544c;text-align:center;line-height:1.8;&quot;&gt;2026년 10월 22일(목)&lt;br /&gt; 정보배 목사&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아침묵상</category>					<dc:creator>갈렙</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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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dongtanms.kr/morning_qt/330872#comment</comments>			<pubDate>Thu, 22 Oct 2026 23:36: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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